2021/05/23

특별인터뷰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우리시대코드 < 일반기획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특별인터뷰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 우리시대코드 < 일반기획 < 기사본문 - 원불교신문




특별인터뷰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기자명 나세윤 기자
입력 2016.01.01
호수 1783

온전한 '조선''한국'만드는 자체가 정신개벽
▲ 백낙청 교수는 남북화해사업에 교단의 열성이 예전만 못하다고 안타까움을 표하며 한반도의 통합 작업에 교단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병신년(丙申年) 원숭이해를 맞아 특별인터뷰를 준비했다.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하고 오랫동안 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동하며 문학중심 지식인 운동을 이끌었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만나 〈정산종사법어〉 영역작업을 비롯 최근 창비의 표절시비 등 현안에 대해 질의했다.

- 새해 〈원불교신문〉 독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해주시죠.

원불교100주년기념대회를 원기101년에 하시는 것으로 압니다. 외국의 선교사나 선교자금의 도움이 없이 순전히 자력으로 이만큼 성장한 것은 참으로 자랑할 일입니다.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은 세상과 나라가 두루 어지럽고 교단도 매사가 잘되는 것만은 아닐 터인데 올해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 〈창작과비평〉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문학중심 지식인 운동이었고,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어려울 때 중심 추(錘)역할을 해왔습니다. 군부에 의해 폐간을 당하는 큰 시련도 있었는데요. 쉬지 않고 한국사회의 담론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직접적으로는 수많은 독자들이 읽어주고 믿어준 덕분이고, 더 크게 본다면 한반도의 어변성룡(魚變成龍)하는 기운을 탔다고 말해야겠지요. 새해가 창간 50주년인데, 저는 편집인에서 퇴임하는 대신 제 공부에 더 열중해서 창비와 한국사회의 변화에 한층 슬기롭게 공헌하는 길을 찾고자 합니다.

- 그런데 지난해 한동안은 백 교수님과 창비가 이른바 표절시비와 관련해서 많은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지요. 그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지요.

예. 표절시비가 걸린 작가 본인은 물론 저와 창비도 그를 두둔한다 해서 돈에 눈이 어두운 문학권력으로 비난을 받았지요. 지금은 거의 잠잠해졌는데 저는 두가지 이유로 이번 사태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첫째 논란 자체가 창비의 어리석은 초기대응으로 확대되었다는 점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다른 여러 부족함도 함께 되돌아볼 계기가 되었기에 고마운 일이고, 둘째로는 창비가 온갖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작가에 대한 과도하고 일방적인 단죄 여론에 끝까지 합류하지 않고 버텨냄으로써 향후 지속적인 발전에 필요한 도덕성을 확보했다고 믿어서 감사하는 거지요.

- 백 교수님은 이론가이자 문학평론가, 영문학자로서 살아오셨고, 한국 문학에 분단체제론이라는 사회과학적 이론을 세우셨습니다. 분단체제의 여정은 언제 끝이 날까요.

우리가 하기 나름이지 날씨예보 하듯이 언제 끝날 거라고 예측할 성질은 아니라고 봅니다. 다만 근년에 남북관계가 악화되니까 흔들리던 분단체제가 다시 고착되었다고 판단하는 분들이 계신데 지금은 말기국면의 혼란상이요 더욱 위험해진 국면이지 분단체제가 안정을 되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참고로 덧붙이면 분단체제론은 사회분석의 도구이긴 하지만 기존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을 뒤엎는 새로운 인문학이기도 합니다.

1945년의 광복과 동시에 분단된 우리 민족은 6·25전쟁의 참극을 겪고 무력통일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이후, 전쟁이 아닐 뿐 온전한 평화도 될 수 없는 정전협정 아래에서 분단이 일종의 '체제'로 굳어졌습니다. 이런 체제를 제대로 알아서 더 나은 한반도체제로 바꾸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인식능력이 필요하고 개개인의 마음공부를 포함하는 전면적인 전환이 요청됨을 강조하는 것이 분단체제론입니다.

- 민중문학론에서 근대성 담론으로, 다시 분단체제론으로 나간 지적 모험이 경이롭습니다. 연세대학교 김호기 교수는 교수님을 "영문학자라기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우른 '르네상스적 사상가'였다"고 말했는데요. 이 말에 동의하시는지요.

말씀하신 근대성 담론은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이중과제'라는 가설일 텐데 분단체제론보다 늦게 제출됐고 근년에 와서야 동아시아 지역을 넘어 서양의 담론계에서도 조금씩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김호기 교수의 평가는 저로서는 면구스러워요. 참다운 인문학은 마땅히 사회과학을 아우르는 것이므로 그걸 추구했다고 르네상스적 운운할 건 아니고요. 게다가 우리나라의 전통적 선비들만 해도 학문과 정치적·사회적 실천을 병행하면서 시(詩)·서(書)·화(畵)에 두루 능했는데 그 기준으로 봐도 저는 무척 초라하지요. 그러나 소태산 대종사께서 물질적 가난말고도 여러가지 가난이 있고 그런 걸 기꺼이 견디는 것이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 하셨으니 그 가르침을 따라 즐겁게 살고자 합니다.

- 〈원불교신문〉도 그렇지만, 〈창작과비평〉도 젊은 독자층 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짧고 격정적인 스낵 컬처가 유행입니다. 이런 세태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문화(문학 포함)적 전망을 하신다면.

지난날의 너무 엄숙한 문학이나 논설이 다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더라도 일부 젊은 세대의 풍조 역시 무조건 지지해줄 수는 없습니다. 선천시대가 후천시대로 바뀌는 세상의 혼란에 우리 모두가 휩싸여 있거든요. 어떤 묘책으로 단방에 해결될 사태는 아닙니다. 남녀노소가 서로 이해하고 소통하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각기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적공하는 길밖에 없겠지요.

- 〈정전〉, 〈대종경〉 영역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창교 100년을 맞은 원불교가 어떤 혁신과 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정전>, <대종경>에 이어 올해는 <정산종사법어> 번역을 마무리 짓게 돼서 큰 복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교전과 교서는 읽을수록 한국사회뿐 아니라 인류를 위한 소중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특히 불교 등 아시아의 전통에 생소한 나라와 대중들에게 가장 맞춤한 현대의 교법이 아닌가 해요. 원불교의 재가출가 여러분이 이 교법을 연마하고 실행만 한다면 무엇을 혁신하고 변화시킬지 저절로 분명해지리라 믿습니다. 교단의 규모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커지기를 바랍니다만, 일원대도와 삼동윤리를 몸에 익힌 교도가 일정 수만 되면 원불교보다 훨씬 큰 종교나 세속의 운동들에 대해서도 능히 정신적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교단 통일운동에 대한 조언이 있다면 전해주시죠.

요즘 남북화해사업에 대한 교단의 열성이 예전만 못한 것 같습니다. 시국과 정부당국이 그렇게 만든 면도 있겠지만 아무튼 아쉬운 일이지요. 그런데 남북의 화해와 협력, 나아가 한반도의 통합 작업에 교단이 직접 참여하는 일이 얼마나 많으냐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대종사께서 '조선이 다시 조선이 된다(朝鮮更朝鮮)'고 하셨을 때의 '조선'은 반도의 절반인 '남한'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하고 온전한 '조선', 온전한 '한국'을 만들어가는 공부와 사업 자체가 정신개벽의 일환이며 '물고기가 용이 되는' 과정임을 더 많은 분들이 공감했으면 합니다.


☞ 백낙청 교수는

ㆍ하버드대학교 철학박사
ㆍ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ㆍ〈창작과비평〉 편집인 겸 발행인
ㆍ시민방송RTV 명예이사장
ㆍ제2회 심산상 / 제1회 대산문학상
ㆍ제14회 요산문학상
ㆍ제5회 만해상 실천상
ㆍ제11회 늦봄통일상
ㆍ제11회 한겨레통일문화상
ㆍ제3회 김대중학술상
ㆍ저술 〈흔들리는 분단체제〉 외 다수

나세윤 기자 nsy@wo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