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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4

조현 이남곡 인터뷰 9

공자가 말한것같지않은 의외의 행복의 조건 첫번째와 두번째는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711 views  Jan 3, 2026
Transcript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그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라고 그러니까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비닐락 부위호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답했는데요.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관계 정성을 다하는게 쉽지 않은
경지겠죠.
음.
어, 지금 나는 저 노의 그 연에
대한
것 가장 중요하게 봐갖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본게 이거예요.
두 번째로 본게 물질과 정신의
조합니다에 대해서 공자만큼
대단히 현실대 바탕을 두고 이상을
추구한
그런 성인 철학자
드무입니다.
이혼화시켜서 보지.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현상 세계와 뭐 이렇게
표는데 공자는 이론적으로 보고
있거든.
어 공자가 어떤 마을을 지날 때
제자들하고 문답이 있지요. 어 어떤
다을 지나면서 제제자들이 물어봐요.
선생님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뭐부터
해야 됩니까?라고 라고 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할 때 내가 요거
가끔 저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전에
이제이 물어봐요. 당신이 생각할 때
공자람을 뭐라 했겠어?
어 부라고 했겠어? 아니면 어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을까? 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뭘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공자에 대한 그 생각
윤리 도덕 무슨 이상 세계 이런 거가
머릿속에 있어 가지고
대답이 나와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이야기했을 것 같지 않은 거야.
정신적 이야기할 수 천만해. 요게
바로 공자의 출발이에. 공자는
부호예요. 부. 먼저 부호를
이야기해. 아.
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행복의
조건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해서 본 거예요. 이게 현실의
어마 예수나 석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부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공자는 부를 이야기해.
예.
그다음에요 하고 물어봤을 때 답이
교야. 교.
예.이
이 교가 가르칠 교자인데이
가르칠 교를 쓰니까 대부분 또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그 공자에 의해서 무슨
교 가르침을 정신적인 뭐 배움 아니
근데 사실은 교라고 하는 거는
그런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좀
가깝다면 교양이야. 교양
기가 막혀요.
공자가 이게 제자 문답이
부 그다음 교요. 그러니까 정신 이게
물질적
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그러나 이걸로 행복하지 않아. 이게
2차적으로 교
근데 나는이 교를 교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은데
난는 정신적 성숙이라고 여기서 또 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를 근데
이게 어 소위 그 서구 군대화
과정에서 서구 군대화를 이끈 계급이
부르거든.
네. 부르가 두 가지를 가지고 근데에
주역이 됐다는 그 두 가지가 뭐냐니까
이게 나와 예
부와 교양이
근데 이거를 이미 2500 공자가
설파했다니까 부교 근데
그다음 여기 나오는 문장은 비닐랑하고
부호래 요게 백미입니다. 나는 이게
백미라고 보고 있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근데
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그래 그 선생이 말하는 교가 거기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이 문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해
사람들이 떨어뜨려 보니까 잘
연결시겠는데 나는
전체로 볼 때 이어 이어져서
생각하는게 좋아.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부.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교. 예. 정신 성숙인데
그 교가 뭐냐라고 하 대해서 자
물어보는 거예요. 아 선생이 말하는
교라는게 이거 아닙니까 하고 하는 게
비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라는 말도 나오고 여기는
비이 무원이란 말도 나오고
아첨하거나 원망하는 거는 사실은
바탕이 같아.
예. 그니까 비 무교
부위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아니 그 당당시 생각할
때 제자들이 생각할 때이 정도면
충분히 정신적 성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 공자 부정하지 않아요. 그거 어
그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 그러면서 제시한게 두 가지야.
빈이락
그렇죠.
부이
호래
둘 다 나가고 호가 들어가 이게 참
이게
그러니까 비일하게 뭐냐 그러니까 또
이게 요새 저 생태주의나 뭐 이런
데서는
자발적 가난이라든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살자 이거야. 예.
자발적 가난이
가나안은
이게 빈일락은 가나안을 즐기란 말이
전혀 아니에요.
예.
공자는 부를 아까도 부를 일차적으로
봤다니까. 어 이거 대단히 중세예요.
근데 빈일락은
원하지 않아도이 가난이라는게 무슨
부자라는게 원한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난하게
가난한 상태라도
낙이라는 건 다른 걸 즐기라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보통 이제 그다에 안빈
낙도 도를 즐기다.이
하는데 예
요새 도를 질이라 하면 이게이이 말이
잘 사람들한테 안 먹히지만은 사실은
어 뭔가 이게
예술 예술적 감각 예술 그너 너 저
뭐 저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게 예술적 감동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
그다음에에이 정신적인 어떤 그런 좀
숨고한 정신적인 적인 작용들이
있잖아요. 남한테 이렇게 저
어 소의 그 저 뭐야 보살행을
한다든지 남을 위해서 하는 이런 거라
그다음에 요새 또 하나 이제 나는
그전에 영성이란 말 잘 안 썼 솔직히
말 잘 안 썼어. 왜냐면 그 영성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막 말하죠.
아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돼. 아니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고
아니 옛날에 지금 내가 근데 영성이란
말할어 내가. 예. 왜냐면 아 그거는
나는 영성을 지성하고 이렇게 딱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성에 가장 높은
단계를 영성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어떤 영적인 어떤 그런 깨달음이라든지
이런 세계를 얻었을 때 오는 기쁨이
커요.이 이 기쁨을
맛보게 되면
맛보게 되면
부에 대한 욕망 그게 가나안보다는
부를 추구하는데
그 부에 대한 욕망이 저절로
감수한다니까. 근데 이게 사실은
옛날에 절대빈곤이나 어떤 절대적인
어떤 불평등 사회에서는
빈일학을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이거는 어떻게 보면
소위 요새는 그런 말 안 쓰는데
반동적이야.
아니 가난한 사람 보고 빈일하
그렇죠.
예. 근데 사회적 원이 근데
적어도 절대 빈공에서 보존한 사회
이럴테면
풍요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이거를
빈락이 참 현대 어떤 문명을 전환하는
키가 된다고 보는 그 키가 뭐냐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에요.
예.
단순 소박한 삶이 뭘 참고 무슨 내
피바는게 아니야.
아까 그 아까 이야기한 정신적 가치,
예술적 가치 또는 영성 이런 부분에서
어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나안을 참는 삶이 아니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요거는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어. 빈이락을
그 대신 말은 좀 바꿔야 될지 몰라.
왜냐면 빈자가 들어가면 요건 조금
감각이
그다음에 부위 호래 이거
어 빈이랑 못치잖아요. 나는 뭐 이게
굉장히 이게
그 부자가 아까 뭐라 그랬지? 부자에
교만하자 하는 거
부위 무교이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지. 근데
교만하지 않은 거 가지고는
아까 이야기하를 아까 이거 부위
호회할 때 내는
어 그 예의 무슨 전통적인 예의 범죄
같은 걸 나타내는게 아니야. 예.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될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내라고 봤을 때
부자가 그 아름다운 질서를
진짜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이거예요.
나눔과 풀어놓음이야.
그렇죠?
그 나눔과 풀어놓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야. 혹
좋아하는 거. 이렇게 되는게 바로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선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거 이거 단순하게 무슨 어 부위
무교 뭐 무슨 비첨해 더 나아가서
비닐락 부위호래 이거를 이렇게만 그냥
단순하게 그게 그렇게 오는게 아니고
굉장히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번역하는
어떤 정신적인 어떤 그런
어 진화랄할까 이런 데서 두 가지가
예이
바람직하기에는 사실 그것도 이제 하나
내가 바람직한 건데
아,
참동 개혁 세력이라면
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게
현대적으로 빈자라는게 들어가는 건
사실은 조금 좀 뭐하지만
단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그런 개혁
세력이 나와야 돼.
네.
이게 말이지 그 막 그 평등을 위해서
하고 뭐 특권에 반대하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몸에 붙어 버려. 그거 공자
아 지적 아주 예리하게 하고 있어요.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그 경계하는 말은 뭐라 하는가면
그 불인이 몸에 안 붙도록 해라.
음.
이거 보통 이게 그냥 슬금은 지나는
실제로 그런 그 내 내 경험을 통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가 몸에
붙어 버리는 경우
반독 운동하다가 또 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권에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특권이 그렇게 뭐여 붙어 버리는 경우
그 니체도 그 이야기했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
그 이야기를 공자가 바로 이야기해요.
음. 그래서 어 나는 그 적어도
그렇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들 이게 개혁의 주체가
되고
그게 중산층 이상이 부위 호래하는
중산층 이상이 지지를 할 때이 참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
게까지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봤는데
내가 너무 많이
앞을 내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실제로 아까 이게 군자의 질서다는 거
소연의 질서에서 군자의 질서로 이게
자본주의가 그렇게 이행해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이
대목에서 공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데요. 저도 이제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종교라는게
예를 들면 뭐 사회이 종교일수록 현실
복락을 구하지 마라. 어 구원은 내세
있는 것이고 하지. 그 뭐 현실의 뭐
뭘 구하지 말라고 굉장히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헌금은
엄청나게 강의하면서 자기 욕망은
충실하게 자기 영감은 엄청나게 자기는
놀수로 있었다고 다니고 엄청나게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할머니들 1년 사셨을 간장에다 밥비는
사람 보고 500만 원 1천만 원씩
울어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열심히 살면서 자기 생계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식으로
니얼하게 얘기를 해 줘야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서
어 자기의 어떤 삶의 문제도 삶에서
중요한 문제니까 열심히 개선하면서
부지런히 해서 잘 살아라 이렇게
공자의 즉이 훨씬 현실에 와 다가
선단 말이야. 그러면서 뭐
가난하면서도 출발할 수 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다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남들처럼 요즘에 뭐 3만 불
시들하지만은 나는 1만 불 밖에 못
된다 그래서
울고 찍고 한탄할 것이 아니고 요즘에
새회복지 잘 돼서 도소관도 있고
남들이 해행지만 나는 해행 못
가더라도 도서관 공원 잘 이용해서
햇빛 잘 재고 잘 걷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살아라는 어떻게 보면
공장인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 빈이라 하라
그니까 남들만큼 그렇게 수만 불에
3삼만 불은 못 산다 하더라도
못 산다 하더라도 비닐락해라 이렇게
하는게 공자님의 말씀이 현실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변에도 이제
나름대로 부유하고 사회적인게 높지만은
보통 그러면은 자기가 꼭 그 부자
행세 부자값을 꼭 하고 또 권세값을
꼭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진정한
인간들의 사김, 사람 사이의 관계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잖아요. 하여튼 그런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말씀해 주신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지.
예. 그러니까 그게 너무 이제
현실적이어서 공자님 참 좋습니다.
공자님 마음에 들어요.
예. 나는 비지락보다는 요새 이런
말로 좀 바꿔 쓰고 싶은게 단순
소박한 삶의 풍요 예
요게 좀 어떻게 보면 예
우리 시대적 테마가 아닐까 이렇게
봅니다. 단순 소박한 사물의 풍요
저 공자는 부를 예를 테면 돈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나
역시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리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환이 아니라 건강한
불을 공략하는 매우 중요한게 있.
그렇죠. 그렇습니다. 건강한 불을
중시 그게 그거를
저 일차적으로 이렇게 저 어떤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
아, 그렇죠.

조현 이남곡 인터뷰 8

대한민국 100년 최고 대통령이 가름할 태도는 바로 이것 
#이남곡 #야마기시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717 views  Jan 1, 2026


Transcript


공자는 15세의
학문의 뜻을 두고 30세에 자립을
했고 40세에 불록 미혹되지 않는다.
또 50세 지천명 하고 60세
이순이라고 했는데 귀가 순해진다.
이수는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타인의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경청할 수 있었다는 것인데
왜 천명을 아는 것보다 이순 경청이
나이가 더 많은 윗단계로 설정한
것일까요?
예.
그 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
내가 처음에 논를 잃을 땐 천명을
안다는 거를 어 하늘의 명령이라든지
진리를 깨닫는다 이런 쪽으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어 그런데 나중에 이제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공자의 어떤 근본적
혐입니다. 아까 무지의 자각이라는 건
근본적 혐요.이 무슨
외부 나타내는 그런 혐가 아니고
혐인데
그거를
이해하 그걸 이렇게 이해하면서는
공자가 내가 진리를 알았다든지 천명을
뭐 알았다든지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수정판에 이제 한결에서
수정판에는 천명을 알았다고 하는 거를
어 자기 분술 깨달았다 뭐 이런
정도가
될 것 같이 생각을 했고
인간의 어떤 성숙 과정에서 볼 때는
어 바로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림 없다라든지
하는 단정이나
고정이 있으면 다른 사람 말이 잘 안
들리죠.
예. 근데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됐을 때 다른 말은 말하면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가 됐을 때
다른 사람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소통이 잘 안 되고 이렇게 서로
대립이 극 극단적으로 이렇게 악화되는
거는 바로 그 부분이라 생각하거든요.
내 생각이 틀림 없다는 확정 편양이
그것도 집단적 확정 편양이
지배하기 때문인데 그 상태를 넘어서기
위해서 사실은 가장 중요한게
내가 생각하는 것, 내가 아는 것은
어 틀림없는 것이 아니다. 내 생각에
틀림 없다라고 하는 것이 틀림 없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야말로 착각이다라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해요.
그럴 때 비로소 다른 사람 말이
그대로 들려올 수 있지 않을까? 음.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굉장히 중요하신 말씀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천명을 알았다느니
깨달았다느니 불교적으로는 깨달았다느니
기독교적으로는 자기가 무슨 뭐 사명을
받았다니 이런 분들을수록 너무 왕고해
가지고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 가지고
어떤 뭐 사회비 교주 같은 역할은
하지만은
보편성이 참 떨어지고 일반인들하고
이렇게 소통되기가 어렵고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보는데요. 꼭 그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저는 이제 종교라는게
도를 깨닫고 어떻게 보면은 노자에서도
첫 줄부터 내가 도라고 확신하면은
그건 도가 아니
이미 도가 아니다. 그까 어떤
진리라는 것도 내가 그렇게 진리의
어떤 아집을 가지고 그것만이 진리고
그것만이 옳고
그것만이
정의고 이렇게 고집하는 순간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이렇게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종교인들이 오히려 이순하고
정반되고
그렇습니다. 솔직히
입은
엄청나게
100개 천개의 입처럼 열려 있지만
귀는 꽉 다친 모습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보거든요.
종교인들에도 저희가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오히려 종교인들의 특성이 뭐냐? 이분
굉장히 스피커는 큰데 기름 꽉 닫혀
있다. 이런 느낌을 많이 봤는데
그래서 공작께서
이렇게 이수훈을 훨씬 더 천명보다
오히려 52시명이면은
자기 분수를 알면은
이순 귀가 순해지는 경기는 더 높은
경기로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삶의 태도가 참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저도 이제에
낮차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경청을
굉장히 중요시 하고 이렇게 경청
훈련을 하는데 제가 이제 종교인들을
많이 대하면서 저 자신부터가 가 저
자신부터가 제가 올탄을 확신에
빠지면은 다른 사람 말을들을 필요가
없어요. 다른 사람 말을 들 그러면은
아무리 내가 옳은 것을 아는 것처럼
뭐가 진리인 것처럼 주장을 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저 소통이 안
되는 것을
이제 느끼거든요. 그래서 제가 익산에
오기 전에 전주에서 들려서 하룻밤
잤는데 거기 이제 코끼리 유치원
코끼리 가는 길 그 골목길에 그
공동체처럼 이렇게 살아가시는 분들이
이렇게 이제 유추원 어린이부터 거기
초등학생부터 청년들하고 그 60대
사람들이 너무 이렇게 스스름 없이
어울리는 거 보고 이상님도 이렇게
80이 넘으셨는데 젊은이들하고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그거 보면 너무
부럽거든요. 그게 요즘은 제일
부럽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그 꼰대
근성을 좀 버리고 젊은 애들 잘
어울리고 싶은데 우리 딸부터 나보다
꼰대라 그러
괴로움을
딸 딸이 몇 살이어? 단대입니다.
20대하고도 좀 잘 통하고 싶
10대하고도 좀 잘 통하고 싶은데 잘
통하고 싶은데 지금 꼰대를 좀 벗고
좀 귀가 순해져서
낮아질 필요가 있는데 그 이순의
경기가 참 부럽습니다. 저도 벌써
공자님이 말은 벌써 2수는 이미
지났는데도
귀가 귀를 더 열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공자는 이제 군자
불기라고 했는데요.
이제
고정된 어떤 그릇 이런에 그릇이 틀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왜 군자는 불기라고
했습니까?
어, 공자가
용어 개념 자체 내용을 아주 새롭게
한 대표적인게 군야입니다. 그 사실은
군자하고 소인을 구분하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반발심을 가져요.
처음에 논어 같이 할 때 한 사람이
그 기억이 돼요. 같이 하다가 중간에
난 그만두겠습니다고가 버리더라고.
음.
이제 그 모임이 안 나오는데 안
나오는게 뭐냐 하니까 나는 소인으로
살겠습니다.
그게 마치
군자라고 하는 인간 형이 마땅히
그렇게 해야 된다.
음.
아 뭐 당위.
음. 뭐 그런 거로 이렇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이해야 합니다. 그게 공자
스스로도내는 군자가 갖춰야 될 더띠
세 가지인데 그 중에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라고
실토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군자는 꼭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인간상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식이 자유로워지는 어떤
친화를 이야기하는 거 자유로지.
근데에
어떤이 불기라고 하는 그릇이
아니다는데 그릇이라는 것은 틀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 틀 속에 갇힌지 않는다는
뜻 같아요. 그래서 아마
거기에 대한 거는 다른 말로 여러
표현들이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이럴 테면 주의 불비라든지 이게
사실은 다 통화 주의 불부는 주의
불비는 어떤 특정하게 어떤 편백한데
사로잡지 않는다는
그니까 이게 보편적이다 이럴 테이
널리 널리 널리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 불길란 말을 쓴 거 같고 특히
어 권력이나 정치에 관여된 사람들이
일정한 그 기물적 인간 그릇
틀 잡힌 인간이 됐을 때 그 패단는이
말할 수 없지 그렇죠. 예. 예.
그러니까 정치에서 튼 이제 팬덤은
강하지만은 항상 다른 쪽하고 이제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데 인기는 패거리는 잘 모지만
우리 한국 정치가 근데 최근에 보니까
이제 그 이재명 대통령이 팩을 하면서
일본 다카이치 총리와 만나고 나서
일본 취재진들이
그 일본 총리하고 만나 보니까
어떠냐? 일본 당신은 좀 좌적이고
일본 총리는 구라고 이렇게 이제
소문이 나 있는데 서로 성향이 이렇게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 보니 어떠냐는
식으로 여튼 뉘앙스를 이제 물어보니까
야 걱정을 다 들었다. 그 만나
보니까 뭐 실제 그 생각했던 거하고는
영 다르더라. 잘 통하고
그리고 당신들도 나에 대해서
일본에서도 우뢰를 많이 했지 않느냐.
그리고 저 완전히 좌골통이 한국
대통령이 됐는데 일본 엄청나게 이제
배타적으로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은 지금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우하지 않지 않느냐. 내가
일본 가서 굉장히 이제 유화 제스처를
했기 때문에 그러지 않느냐 이런
뉘앙스로 이제 얘기를 하고 다가 이제
총리를 만나 보니까 그분도 하여튼
야당으로 뭐 밑에 있을 때와 일본
전체 지도자가 됐을 때는 다르지 않게
되냐.
어떤한 당의
당수로 있을 때와 이렇게 대통령이
있을 때 자세가 다르듯이 이렇게
달라지 않겠느냐. 그래서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본다. 이렇게 이제
유연하게 물처럼 이렇게 얘기하니까
양쪽도 상당히 또 부드러워지고 관계도
편안해지고 한 것처럼 그게 대표적인
군자 불기죠.
자기 틀림만 박혀가지고 그 틀에서
끝까지 평행선을 걷고 끝까지
대체하기보다는 물처럼 유연하게 뭐
트럼프를 만나면 트럼프하고 또
응대하고 또 국제 정대에서도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또 상종 안 할
수도 없는 거니까 시진핑을 만나면
시진핑의 그에 막 걸맞게 또 어 또
정해진 그릇이 아닌 또 유연하게 또
대치하고 이런 모습을 보고 야이
양반이 전에 대통령을 몇 번 해본
사람처럼 유연하게 하게 하네. 이런
느낌을 가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어
상당히 AP 끝나고 뭐 더 여론
조사에서 인기도 없고 그게 어떻게
보면은 이제 군자 불기가 사람들에게
어필라는 한 면이라고
이제 보이지도 마요. 하여튼 우리
정치도 조금 이렇게 위연하게 이렇게
너무 정해진 고정된 틀에서 어 좀
벗어나서
이렇게 실사 구시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도 상당히 필요하겠다 이런 생각을
예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그
사실은
어 정 권력 투쟁 과정는
어 야당의
어떤 대표로서 활동할 때하고
어 대통령은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인데
볼 땐 당연히 이게 시각이 달라져야
됩니다. 그래서 어 이번에 그 이재명
대통령도
뭐 취임사에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걸로
기억하는데
대체로 대통령이 되면 그런 말들 다
이렇게 보통 하는게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제 그런 부분이 실제로 이렇게
좀 이렇게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하려고 그러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합니다. 근데 우리
정치가 알다시피
이게 증오와 어떤 분열 대립의 정치가
되다 보니까
이런 내공원을 갖추는 정치인들이 이게
성숙하 성장하기가 힘이 들어요.
그렇죠.
중도하면 마치 회석 기대처럼 이렇게
생각하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문 하더라도 실제로 나는
그 대연정을 주장하거든요.
근데 대연정을 추장한 것을
양쪽에서 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요.
그런게 난 그 안타까운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지금 심리적 내전
상태를 넘어서
진정한 어떤 그런 뭐랄까 번영과
자유로 나가려고 하면 나는 한 번은
어 대연정에 성공해야 된다고 봅니다.
그래서 그거를
그거를 닦을 수 있는 막 그런 지도자
이런 지도자를
역사가 대망을 하고 있다. 이렇게
봐요. 예. 아, 이번에 이재명
대통령이 만일에 그런 쪽에
어, 어떤 단초를 열 수 있다 그러면
상당히 큰
업적을 남길 겁니다.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 그러니까 우리가 좁은 것을
피어는 정의롭게 하는 것 개혁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은 80년
동안 좁혀지지 않는이 안금 신리적
내전 상태를 극복하는 어 회통과
화해와 어떤 평화로 가는 이런 것은
우리 한민족에게 지금 해방 벌써
80년이 됐기 때문에 이제 100년을
앞두고 너무나 중요한 문제기 때문에
그 문을 여는 사람이 이 해방
100년의 최고의 대통령이 될
것이다. 저는 그렇게 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이 공자가 말한 군자
불기가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등목인 거죠.

2026/01/03

조현 이남곡 인터뷰 7


공자가 말한것같지않은 의외의 행복의 조건 첫번째와 두번째는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
Transcript


제자 자공이 공자에게
그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으며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라고 그러니까 공자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비닐락 부위호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답했는데요.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고 부유하면서도
관계 정성을 다하는게 쉽지 않은
경지겠죠.
음.
어, 지금 나는 저 노의 그 연에
대한
것 가장 중요하게 봐갖고 그다음 두
번째로 본게 이거예요.
두 번째로 본게 물질과 정신의
조합니다에 대해서 공자만큼
대단히 현실대 바탕을 두고 이상을
추구한
그런 성인 철학자
드무입니다.
이혼화시켜서 보지.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현상 세계와 뭐 이렇게
표는데 공자는 이론적으로 보고
있거든.
어 공자가 어떤 마을을 지날 때
제자들하고 문답이 있지요. 어 어떤
다을 지나면서 제제자들이 물어봐요.
선생님 지금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는데 뭐부터
해야 됩니까?라고 라고 했을 때
뭐부터 해야 되느냐 할 때 내가 요거
가끔 저 사람들하고 대화하면서 그전에
이제이 물어봐요. 당신이 생각할 때
공자람을 뭐라 했겠어?
어 부라고 했겠어? 아니면 어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이야기했을까? 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니까
뭘 먼저 이야기했을 것 같으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공자에 대한 그 생각
윤리 도덕 무슨 이상 세계 이런 거가
머릿속에 있어 가지고
대답이 나와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이야기했을 것 같지 않은 거야.
정신적 이야기할 수 천만해. 요게
바로 공자의 출발이에. 공자는
부호예요. 부. 먼저 부호를
이야기해. 아.
어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어떤 행복의
조건의 일차적 조건을 물질적 수요의
충족해서 본 거예요. 이게 현실의
어마 예수나 석가 그렇게 말하지 않을
거예요. 먼저 부를 이야기 안 할
거예요. 공자는 부를 이야기해.
예.
그다음에요 하고 물어봤을 때 답이
교야. 교.
예.이
이 교가 가르칠 교자인데이
가르칠 교를 쓰니까 대부분 또 공자는
가르치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그 공자에 의해서 무슨
교 가르침을 정신적인 뭐 배움 아니
근데 사실은 교라고 하는 거는
그런 가르침이라고 하는 뜻보다는 좀
가깝다면 교양이야. 교양
기가 막혀요.
공자가 이게 제자 문답이
부 그다음 교요. 그러니까 정신 이게
물질적
그 수요를 충족하는 것이 일차적이고
그러나 이걸로 행복하지 않아. 이게
2차적으로 교
근데 나는이 교를 교양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괜찮은데
난는 정신적 성숙이라고 여기서 또 저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교를 근데
이게 어 소위 그 서구 군대화
과정에서 서구 군대화를 이끈 계급이
부르거든.
네. 부르가 두 가지를 가지고 근데에
주역이 됐다는 그 두 가지가 뭐냐니까
이게 나와 예
부와 교양이
근데 이거를 이미 2500 공자가
설파했다니까 부교 근데
그다음 여기 나오는 문장은 비닐랑하고
부호래 요게 백미입니다. 나는 이게
백미라고 보고 있어. 현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근데
뭐라고 물어보는가 하면
그래 그 선생이 말하는 교가 거기서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이 문장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걸 이해
사람들이 떨어뜨려 보니까 잘
연결시겠는데 나는
전체로 볼 때 이어 이어져서
생각하는게 좋아. 그러니까
일차적으로 부.
그러나 그건 필요 조건이고
충분 조건은 교. 예. 정신 성숙인데
그 교가 뭐냐라고 하 대해서 자
물어보는 거예요. 아 선생이 말하는
교라는게 이거 아닙니까 하고 하는 게
비첨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아첨하지 않고라는 말도 나오고 여기는
비이 무원이란 말도 나오고
아첨하거나 원망하는 거는 사실은
바탕이 같아.
예. 그니까 비 무교
부위하면서 교만하지 않으면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아니 그 당당시 생각할
때 제자들이 생각할 때이 정도면
충분히 정신적 성수가 아니야.
그러니까
어 공자 부정하지 않아요. 그거 어
그 대단하지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충분치
않아 그러면서 제시한게 두 가지야.
빈이락
그렇죠.
부이
호래
둘 다 나가고 호가 들어가 이게 참
이게
그러니까 비일하게 뭐냐 그러니까 또
이게 요새 저 생태주의나 뭐 이런
데서는
자발적 가난이라든지 같이 가난하고
같이 살자 이거야. 예.
자발적 가난이
가나안은
이게 빈일락은 가나안을 즐기란 말이
전혀 아니에요.
예.
공자는 부를 아까도 부를 일차적으로
봤다니까. 어 이거 대단히 중세예요.
근데 빈일락은
원하지 않아도이 가난이라는게 무슨
부자라는게 원한 대로 되는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가난하게
가난한 상태라도
낙이라는 건 다른 걸 즐기라는 거지.
그래서 이걸 보통 이제 그다에 안빈
낙도 도를 즐기다.이
하는데 예
요새 도를 질이라 하면 이게이이 말이
잘 사람들한테 안 먹히지만은 사실은
어 뭔가 이게
예술 예술적 감각 예술 그너 너 저
뭐 저 아름다운 풍경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 같은게 예술적 감동
음악을 들었을 때 느끼는 감동
그다음에에이 정신적인 어떤 그런 좀
숨고한 정신적인 적인 작용들이
있잖아요. 남한테 이렇게 저
어 소의 그 저 뭐야 보살행을
한다든지 남을 위해서 하는 이런 거라
그다음에 요새 또 하나 이제 나는
그전에 영성이란 말 잘 안 썼 솔직히
말 잘 안 썼어. 왜냐면 그 영성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내가 볼
때 조금 이상한 사람들이 막 말하죠.
아이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돼. 아니야.
그런 눈으로 보면 안 되고
아니 옛날에 지금 내가 근데 영성이란
말할어 내가. 예. 왜냐면 아 그거는
나는 영성을 지성하고 이렇게 딱
구분하지 않습니다. 지성에 가장 높은
단계를 영성이라고 봐요. 근데 그런
어떤 영적인 어떤 그런 깨달음이라든지
이런 세계를 얻었을 때 오는 기쁨이
커요.이 이 기쁨을
맛보게 되면
맛보게 되면
부에 대한 욕망 그게 가나안보다는
부를 추구하는데
그 부에 대한 욕망이 저절로
감수한다니까. 근데 이게 사실은
옛날에 절대빈곤이나 어떤 절대적인
어떤 불평등 사회에서는
빈일학을 이야기하는 거는 사실은
굉장히 이거는 어떻게 보면
소위 요새는 그런 말 안 쓰는데
반동적이야.
아니 가난한 사람 보고 빈일하
그렇죠.
예. 근데 사회적 원이 근데
적어도 절대 빈공에서 보존한 사회
이럴테면
풍요가 넘치는 사회에서는 나는 이거를
빈락이 참 현대 어떤 문명을 전환하는
키가 된다고 보는 그 키가 뭐냐니까
단순 소박한 삶이에요.
예.
단순 소박한 삶이 뭘 참고 무슨 내
피바는게 아니야.
아까 그 아까 이야기한 정신적 가치,
예술적 가치 또는 영성 이런 부분에서
어떤 큰 기쁨을 느끼게 되면
물질적인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합니다.
다시 말해서 단순 소박한 삶은
가나안을 참는 삶이 아니고 풍요로운
삶이에요. 요거는 현대적으로 살릴 수
있어. 빈이락을
그 대신 말은 좀 바꿔야 될지 몰라.
왜냐면 빈자가 들어가면 요건 조금
감각이
그다음에 부위 호래 이거
어 빈이랑 못치잖아요. 나는 뭐 이게
굉장히 이게
그 부자가 아까 뭐라 그랬지? 부자에
교만하자 하는 거
부위 무교이
정도만 돼도 대단한 거지. 근데
교만하지 않은 거 가지고는
아까 이야기하를 아까 이거 부위
호회할 때 내는
어 그 예의 무슨 전통적인 예의 범죄
같은 걸 나타내는게 아니야. 예.
바로 인간이 지향해야 될 가장
아름다운 질서를 내라고 봤을 때
부자가 그 아름다운 질서를
진짜 좋아한다는 건 뭘 의미하느냐
이거예요.
나눔과 풀어놓음이야.
그렇죠?
그 나눔과 풀어놓음을 어떻게 해야
된다는 당위가 아니야. 혹
좋아하는 거. 이렇게 되는게 바로
지금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모선을 해결하는데
핵심적이라고 봐요. 그래서 나는
이거 이거 단순하게 무슨 어 부위
무교 뭐 무슨 비첨해 더 나아가서
비닐락 부위호래 이거를 이렇게만 그냥
단순하게 그게 그렇게 오는게 아니고
굉장히 현재 자본주의 체제를 번역하는
어떤 정신적인 어떤 그런
어 진화랄할까 이런 데서 두 가지가
예이
바람직하기에는 사실 그것도 이제 하나
내가 바람직한 건데
아,
참동 개혁 세력이라면
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게
현대적으로 빈자라는게 들어가는 건
사실은 조금 좀 뭐하지만
단순 소박한 삶을 즐기는 그런 개혁
세력이 나와야 돼.
네.
이게 말이지 그 막 그 평등을 위해서
하고 뭐 특권에 반대하고 한 사람들이
사실은 몸에 붙어 버려. 그거 공자
아 지적 아주 예리하게 하고 있어요.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들한테
아주 그 경계하는 말은 뭐라 하는가면
그 불인이 몸에 안 붙도록 해라.
음.
이거 보통 이게 그냥 슬금은 지나는
실제로 그런 그 내 내 경험을 통해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독재가 몸에
붙어 버리는 경우
반독 운동하다가 또 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특권에 반대한다면서 오히려
특권이 그렇게 뭐여 붙어 버리는 경우
그 니체도 그 이야기했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
그 이야기를 공자가 바로 이야기해요.
음. 그래서 어 나는 그 적어도
그렇게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들 이게 개혁의 주체가
되고
그게 중산층 이상이 부위 호래하는
중산층 이상이 지지를 할 때이 참된
변화가 올 것이다. 그래서요 그런
게까지 너무 간단한 걸 물어봤는데
내가 너무 많이
앞을 내다보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실제로 아까 이게 군자의 질서다는 거
소연의 질서에서 군자의 질서로 이게
자본주의가 그렇게 이행해 이렇게 보고
있어요. 그러니까 저도 이제이
대목에서 공자에 대한 신뢰감을 갖게
되는 건데요. 저도 이제 종교 전문
기자를 오래 하다 보니까 종교라는게
예를 들면 뭐 사회이 종교일수록 현실
복락을 구하지 마라. 어 구원은 내세
있는 것이고 하지. 그 뭐 현실의 뭐
뭘 구하지 말라고 굉장히 물질적인
것을 경시하는 것처럼 하면서 헌금은
엄청나게 강의하면서 자기 욕망은
충실하게 자기 영감은 엄청나게 자기는
놀수로 있었다고 다니고 엄청나게
팬트하우스에 살면서
할머니들 1년 사셨을 간장에다 밥비는
사람 보고 500만 원 1천만 원씩
울어낸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게
말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차라리 열심히 살면서 자기 생계
문제를 해결하라. 이런 식으로
니얼하게 얘기를 해 줘야
이게 이렇게 사는 것은 죄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서
어 자기의 어떤 삶의 문제도 삶에서
중요한 문제니까 열심히 개선하면서
부지런히 해서 잘 살아라 이렇게
공자의 즉이 훨씬 현실에 와 다가
선단 말이야. 그러면서 뭐
가난하면서도 출발할 수 없이 우리가
현실에서 열심히 노력한다 그래서 다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남들처럼 요즘에 뭐 3만 불
시들하지만은 나는 1만 불 밖에 못
된다 그래서
울고 찍고 한탄할 것이 아니고 요즘에
새회복지 잘 돼서 도소관도 있고
남들이 해행지만 나는 해행 못
가더라도 도서관 공원 잘 이용해서
햇빛 잘 재고 잘 걷고 이렇게 밝고
건강하게 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하여튼 그렇게 살아라는 어떻게 보면
공장인데
나도 그렇게 살고 있어. 아,
그러니까 그렇게 그 빈이라 하라
그니까 남들만큼 그렇게 수만 불에
3삼만 불은 못 산다 하더라도
못 산다 하더라도 비닐락해라 이렇게
하는게 공자님의 말씀이 현실적이고
그리고 가끔은 우리 주변에도 이제
나름대로 부유하고 사회적인게 높지만은
보통 그러면은 자기가 꼭 그 부자
행세 부자값을 꼭 하고 또 권세값을
꼭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진정한
인간들의 사김, 사람 사이의 관계
이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사람도
가끔 보이잖아요. 하여튼 그런 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자께서 말씀해 주신
거 아닙니까?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야지.
예. 그러니까 그게 너무 이제
현실적이어서 공자님 참 좋습니다.
공자님 마음에 들어요.
예. 나는 비지락보다는 요새 이런
말로 좀 바꿔 쓰고 싶은게 단순
소박한 삶의 풍요 예
요게 좀 어떻게 보면 예
우리 시대적 테마가 아닐까 이렇게
봅니다. 단순 소박한 사물의 풍요
저 공자는 부를 예를 테면 돈을 구할
만하다면 비록 마부 노릇이라도 나
역시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살리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환이 아니라 건강한
불을 공략하는 매우 중요한게 있.
그렇죠. 그렇습니다. 건강한 불을
중시 그게 그거를
저 일차적으로 이렇게 저 어떤 행복의
조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
아, 그렇죠.

2026/01/01

조현 이남곡 인터뷰 6


'있는 그대로 본다'(여실지견)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600 views  Dec 30, 2025

===
Transcript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 이제 그게 사실 많은 사람들이에
공자에 대해서 그 이야기할 때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 대부분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하고 모른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정확하게 그걸 잘
몰라요. 어, 뭐 실제로는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또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
어. 어 근데
보통은 이제이 말을 사람들이 막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해. 아까 이야기 뭐라
그러죠? 안다고 하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른다 모른다고 하는게 진짜라는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위 메타인지라
그러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거지.
자기 자신을 아는 거예요.이 이게
모르는 것인지 아는 것인지 대한게
돼야 이걸 안다고 하는데
나는이이 대부분 사람들이이 말을
가지고 공자의 어떤 지에 대한 태도를
말해. 라는 그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흘러 넘어가는
무지
그 그 문장이이 문장보다 훨씬 더
나는 공자의 그 인식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네.
어, 안다고 하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모른다고 한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이다 하는 거는
어 거짓된 어떤 허위에 또는 왜곡된
어떤 지혜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어 사람은 누구도 누구도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사실은 예
지혜 시작이다. 참된이다. 그리고
그게 바탕이 됐을 때 진정한 호학
배우고 싶어지는 거예요. 예.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고 싶어지질
않죠. 내가 아는 누가 다른 사람
이야기하면 그거 걸리죠. 오히려
내가 아는거 틀리면
그 그런게 없어지는 상태
그가 지혜 출발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 예.
그러니까 우리 이제 이나욱 선생님도
상당히 초기에 이제 불교적인 관점도
그러면서 이제 공제를 탐구했기 때문에
무지의 자각에 대해서 어떤 불교적인
관점과에
굉장히 이제 회통을 시킨 측면이 많이
이제 관점이 등장하는데
제가 보기엔 어떻게 보면은 이제
부따의 관점에서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일체는 승산 선사가 얘기했듯이
오직 모를 뿐이고 어 우리가 실제를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신의 어떤 감각 신호를
통해서만 이제 간접적으로 우리가 우리
모니터에 뜬 다큐멘타리가 유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62 자체가 아니고 어떤
PD의 각색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유기한 다큐를 보듯이 모니터를 통해서
우리가 뇌의 각색과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편집된에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그게 팩트
사실이 아니고 실제가 아닌
상이 상
상이다. 상이다. 그게 이제 부다의
관점이고 그렇지만 공자는 제가
보기에는 이제
그렇다면은 이제 완전히 붙다 관점과
똑같다면은 아예 일체 우리가 어떤
안다고 고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는
것은 이제 공작께서는 굉장히 현실을
중시하고 실사 수식으로 이미 우리가
이제 무지의 바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공자는 우리가 현실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삶에서 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에 더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더 겸하게 실사 구지적으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관점에서 그것을 풀어낸
것이 아닌가?
이제 조선생 그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 같은데
그런 면도 있어요. 그런 면도 있는데
어 무지를 자각한 상태가
모든 지혜 참된 지혜에 바탕이 된다고
하는 거는
나는 석가나 공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없어요. 어 다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
뭔가 그 공자가 현실에 발을 딛고서
있어서 여러 가지 그 점이 내가
공자하고 통하는 점이에요.
예.
어 수행 따로
일상적인 삶 따로 있는게 아니고 이게
일치돼. 근데 요건 보통 많이 이들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공자한테는
정치 경제 현상 사회 현상과 자기를
변화시키는 어떤 수행이란 말 공장
별로 안 수기라 그래. 투기 수기라
하는데
그것이 하 이렇게 하나가 돼 있어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어 공자
이야기할 때는 약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면 공자는 말이지 수기를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없지 않느냐 천만의 말씀이에요.
공자는 배우는 거 호학 그 자체가
수행이에요. 그다음에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무적야 무막야
의지이라는 거예요. 이것이다라고 또는
이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오직
의에 따를 뿐이다하는 그 자체가
수행에
그다음에 화이부도 그 자체가 수행이에
저 사람을 나하고 다른 사람을 말하지
나한테 일치시키려고 하 하는 걸 하지
않는 거 그 자체가 수행이에 그러니까
되테면 공자한테 수행 방법이 없는게
아니고 수행이 바로 현실의
삶 정치 경제
그런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게 이제
공장한테 이제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아까 아는
걸 알 아는 걸 하고 모르는 걸
모르는 걸 아는 걸 하는 거는 이제
그 아까 조선생은 그거를대 중요하게
평가했는데 그건 마찬가지
공자가 제일 저 사랑했던 제자가
아내인데 아내를 하나님 모두를 잡아서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불 이과 불천노라는 이야기를래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화가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뭐 화가
나지 않는 상태라든지 또는 잘못이
없는 무어 위에 그런 걸 상 전혀
상정하잖아요.
예. 불 이과 불천인데 요것도
사람들이 보는 사람마다 좀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불이가라는게 두 번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이야긴데
한 번 범한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보통 많이 그렇게 봅니다.
내 나한테 그렇게 다가오지 않고
그런도 있지만은
잘못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게 두 번
잘못하는 거예. 불과라고 하는 두 번
잘못 보지 않는다는 자기가 잘못했으면
바로 잘못을
알아차리는 거 잘못을 알고 누가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면 받아들인 거예
그래서 그다음에 뭐가 뭐 하느냐니까
과즉 물탄계야
잘못이 있으면 바로 기탄없이 바로
고친다 이게 그게 돼 그게 그게 되는
거예요.
불천노도 마찬가지. 불천노도 한강에서
뺨 맞고 아니 한강에서 뺨 맞는게
아니고
한강이 아주 눈 그다음에 사람한테 좀
이렇게 화나면 그 강아지를 찾다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불처돌 근데 사실은
어 그런 면도 있겠지만 나는 2차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거.
그렇죠.
2차 화살.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요.
이게 2차 화살이
그러니까 한 번 화가 났는데 그게
빌미가 돼 가지고 또 생각할수록 더
화가나 이걸 안 한다. 그니까
사람의 어떤 불완전성이라는 걸
인정하는 바탕에서 제시를 하고 있
모델로 인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조선생이 이야기한 그런 뭐 아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르는 걸 모른다는게
참된
그런 점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사람들 들어가 있던 이런 관계 속에서
그러나
그보다 하나 더 나가는게 밑에 바탕이
있는 거예요.
예. 예예.
그데 보통 말할 때
특히 불교에 또 뭐 상당하 좀 이렇게
스님들 이해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를 봐라 이런 말을 해.
네.이
말이 사실은 아이
모순되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봐라
하는 거는 멸실
그 말은 이해는 돼. 있는 것을
바라는 건 당신의 어떤 주관이나 예
당신의 어떤 이해 관계나 당신의 어떤
그런 어 사고 방식 아 그 그런 걸
떠나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봐라. 실차 구시해라 하는데
근데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어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는데
출발해야 돼. 예예. 그 보통 있는
그대로 보자 하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답의 비과학적인 말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해 예
그것이 무지의 자각예 아주 정확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부다의 어떤 관점으로 보면은 우리가
이제 무심이라고 하는데 뭐 징오라든가
우울이라든가 모든 이렇게 마음의
갈등이라든가 적이라든가 이런
애착이라든가 이런 것도 근본으로
보면은 무심 뭐 고통이할 것도 없고
우리가 생사도 볼 리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은 실은 그보다도 고통을
굉장히 중요한네 가지 진리 중에
하나로 출발해는데 고통이라 할 것이
없다 그러면 수행도 필요 없고
깨달음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하여튼 현실을 인정하자. 그래서 저는
이제 무심 근본 당처에서는
무심이지만은 저는 이제이 유튜브
이름도 휴심인데 휴심인데 우리가
현실의 고통 현실에 지금 누군가가
분리을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 뭐
성폭행을 당하고 무슨 아픔을 당했다.
그러면 이미 일어난 것을 한 마음을
쉬는 것도 중요한 것이 원래야 고통은
없는 거야. 음.
이렇게 하면 원래 지금 암한자가 암
걸려가지고 죽겠는데
원래
암도 없고 원래 생사도 없는 거야.
이제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근기에
따라서 붙다조차도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또 설교를 하잖아요.
무심을 얘기함과 동시에
또 공자님께서도
이제
불천노
그렇죠. 불촌노라고.
화가 원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이제 화를 옮기지 않는 것 그 안의
경만해도 이건 거의 이제 우리가
성인으로 봐 주는 거죠. 그게 제가
보기에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의
땅을 딛고 있는 말씀이고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제 왔는 것이죠. 원래 화가
없다. 원래 우울이 없다. 이런
거보다는 이렇게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때 한 생각을 딱 놓고 휴심하고
이것이 굉장히이 자세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이제에 보는
것이죠.
공자는 괴력 난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그러는데 왜 그랬습니까?
그게 사실은이 공자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그리고 내가 볼 때는
21세기에 종교 혁명을
하는데 아 가장 중요한 어떤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괴라고 하는 건
이제 괴의함 이적이에요. 소위
말하면이 그여
미러클 미러클 기적
기적하고 좀 다를나 하여튼
과학적이거나 함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음이
신비한 현상들 이적들
이적들 예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근데 보통 종교들은요 이적에 바탕
그런 걸로 현데 거기 그거 그거
그렇다고 이럴 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요게
아주 중요한테는
그런 세계예요.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하거나
그러질 않 그 미지의 세계로 놔두는
거지.
그게 바로 아는 걸 알다 그 뭐 그까
대부분 사실은이 허구의 허위에 바탕을
둔 신념책이라는 거는 모르는 걸
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이제 그게
아까 이야기한 그 이야기 핵심이에요.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 하는
괴한 걸 이야기하잖아요.
그다음에 역력은 폭력입니다. 힘.
힘을게 폭력. 그니까 철저한
평화주의자예요. 공자는. 음.
그다음에 란이야. 란 이게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란. 난을 예전에 그
공자에 대해서 대단히 수구적인 사
사람 반동적인 사람이다 하는 거.
나를
부정해. 예. 나를 이렇게 안 돼.
아 아직 어 소위 장난이라 해서 자금
만들 작정이 난 나는 만들면 안 되는
근데
어 나는 그래서 그 요번 책에서도
아마 그걸 하나 썼을 거예요. 난을
넘어 혁명으로라는 게
그까 공한테는 난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어 들어 있는 그런 창이
아니야.
그다음에 신도 마찬가지.음 신에
대해서도
어 이게 모르는 세계 미지 세계를
놔두는 거지. 그래서 그거를 마침 뭐
형태화시킨다든지 막 의인화 해 가지고
하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요네
가지 요소가 사실은 어 21세기 특히
문명 전환과 관련해서 종교의 역할
나는 새로운 어떤 종교의 어떤 나는
그 뭐 조금 말을 좀 거칠게 하면
종교의 혁명이 필요한 시대다 이렇게
생각하는데에
그런데 바로 괴력 난심 같은 거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은 공자의
정신이랄랄랄할까 정신 살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입니다. 예.
예.

==

2025/12/14

조현 이남곡 인터뷰 5


공자 애제자 자공의 제자가 "자공이 공자보다 훌륭하다"고 하자, 
자공이 공자와 자신을 어떻게 비교했나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Transcript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텐데요. 공자는 다양한 사람. 그리고
또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저는 공자라는 분이 참 신기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좋면 좋다 식으로 이렇게
그냥 두루뭉실하게 하지. 사람을 진짜
있는 그대로 얘는 이래 얘는 이래
이렇게 얘기가 참 어려울 것 같은데
공장님이 그렇게 얘기를 했더라고요.
야이야 이분 참 캐릭터 진짜 독특하다
이런 느낌이 가질 정도로 그랬는데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아마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공자가
아 나는 이게 이게 뭐냐 이게
중요해. 공자식이 어떤 그런 건데
아 공자는 새로운 용어를 잘 이렇게
만들지 않아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험 부대의 세수를
담는 시기에요.
어 그렇게 해서 내용을 아주 바꾼게
군자입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이
그 그런 거예요. 군자와 소인이라고
하는 걸 이렇게 대비시키는데
이것도 어떤 어 고정된 상태가
아니에요. 공자 스스로도
인간의 진화를 생각하는 거예요.
어 예를 들면 어 이테면 이런 말이
나오거든. 어 소인은 이익에이 이리
이익에 받고
어 군자는 의에 받다 이런 말을
해요.이 하는데
어 예를 들어서 그러면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든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음.
어,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면
방을
다원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다 보면 원망이
많다. 이렇게 표현해. 원망이 많다는
객관적인 사실이잖아.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네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든지
뭐 이익을 추구해서 안 된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면 원망이 많다는 말은
원망이 원망이 다른 사람이 원망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나요?
행복할 수 없지. 예.
그거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 그 선택은
네가 알아서
예.
그래서 그런 상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저 군자 소할 때
어 화위 부동 뭐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
근데 보면 재밌는게 그 기준 군자라고
하는 기준이 상당히 높이 설정한 사람
평가 기준이에요.
기준인데 그보다 좀 위에 있는게
있어.
군자보다 뭐 먹고 우회를 따지는게
아니지만 군자보다도 조금 높은 단계를
뭐라고 했느냐면 인자라고 그랬다.
인자. 인자. 어질인자. 예. 여기에
대한 것도 참 공자의 어떤 평가
기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그건 나중에 인에 대한 이야기하고도
연관되지만은
아주 평상적이고 쉬운 건 굉장히 쉽게
이야기해. 근데 깊게 들어가면
엄청나게 깊어요. 그래서
어 진짜 공자를 어느 정도 잘 아는
제자 예를 들면 아내나 자공 같은
사람이라야 공자의 기필 알아.
예.
누가 자공한테 자공의 그니까 자공의
제자야. 네.
이름 기억가 안 나는데 공자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제자의 제자 뭐
나의 차이가 많니까 이렇게 이제
나는데 자공의 제자가
자공한테 선생님이 그니까 자공이 당신
저 공자보다 훨씬 나았다 얘기 이렇게
하니까
그 자공이 말하는게 그런 말을 해.
나는
울타리 밖에서 보이면 다 보인다.
네가 보니까 좀 넓어 보인단 말이지.
인데 공자는 담장이 높아서 안이 안
들여다 보인다는 거. 이게 바로 이제
그 차이예요. 근데
인자를 이렇게 이야기할 때 누가
인하냐고 물어보면
글쎄 그 사람이 이런 건 잘해. 이런
건 아주 잘해. 잘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나도가 말할 수 있나 하는 건
모르겠다가 대부분이야.
네.
부정도 긍정도 아니야. 진짜 그 그
모르게 보통 모르겠다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말할 때 있잖아요.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모르겠는데
하면 대체로 그 부정적인 이게 공자가
모르겠다 할 땐 그건 그런 표현이
아니야. 진짜로 모르는 거야. 그
사람의 그 깊이 인이라 하는 것이 그
그 말할 땐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데
가벼운 건 아주 가볍게 말합니다.
아욕인 사인지
내가 인을 원하게만 하면 그 인이
바로 온다.
이런 건 일상 생활했어요. 이게 예를
들면 좌측 깜빡이 넣고 있는
자동차한테
양보하기 위해서는 경우 있잖아. 왜
이제 그런 그런 거는 그서는 것만으로
그게 이루어져 그쪽에 이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대단한 사람들을
놓고이 사람이 인한 사람입니까
물어보면 대부분은 무엇무엇은 대단히
잘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평가. 근데
인자보다 더 높은 단계가 뭐냐?
성자.
성인이요. 성인. 예. 그래서 대초로
이제 공자는 나름대로
그 인격 그 인격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음.
내면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유가
얼마나 진척되 있느냐라는 그
현대적으로 말하면 그 자유도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했지 않느냐 이렇게
봅니다.
예.
그러니까 그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는 뭔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한나가 마음에 안 들으면 아
저 인간은 못 싸 이렇게 버리는데
공자는 그게 자질은 자질대로 인격은
인격대로 이렇게 따로 평가하는게
굉장히 독특하더라고. 그러니까 이제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 관포지교에
나오는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자질과 능력과 인을
불리해서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관정대에서는 이제 뭐 자로라는 제자가
황공이 경자 교를 죽였을 때 소홀은
따라죽었는데 관중은 따라 죽지
않았으니까 관중은 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공자는 황공이
제율를 교합하는데 무력을 쓰지 않는
것은 관중의 공이 크니 그러니까
그 비록 따라죽진 않았지만은 나중에
좀 갈등을 소란스럽지 않고 나라를 좀
평화롭게
이렇게 만드는 그런 정도의 능력은
관중이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
그건
그인 이상의 것이다고 이렇게 굉장히
이렇게 평가한대 보고 야 공자의 사람
기준 그 평가가 너무 인을 강조하다
보니까음 인하지 못하면 저건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공가 굉장히 그런 점은 어 상당히 그
따로따로 뭐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다른
쪽이 괜찮으면은 괜찮다고 이렇게
평가하는 대목이 공자의 어떤 그 어떤
세심한음
세심한 대목으로 보여줬습니다.
관중에 대해서는 이제 그 공자가 그
당시 관중은 공장보다
1세기를 앞선 사람이야. 100년
정도 나쁜 사람인데
아마 그 당시에
가장 훌륭한 정치가의 모델로 됐던게
이제 관중일 거예요. 죽음 같은
사람은 이제 훨씬 그 전이고 그런데
관중에 대한 평가가
논중적입니다.
앞에 내가 몇 편이 정확히 안
드렸는데 관중을 물어봤을 때 대단히
이게 박해요. 공장의 평가가.
그 사람 아주 저 음
소인이야 소인. 근데 뒤에 나오는 몇
편에 나오는데 데는 공자를 그렇게
평가할 지금. 왜냐하면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자기의 그 적대적인 쪽 적대적인 쪽에
포섭되거든.
네. 관중이 관포에 교라했으면 포수이
속해 있던 그 진영의 포수에서 그것
이제 그 재황공이야. 재황공의 이제
그 1급
그 저
어 산모가 되는 거죠.
그래 가지고 정치를 하는데 평화적으로
무력을 쓰지 않고
어 상당히 계획을 달성하고이 소위
춘초 오회 중에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는 거
그걸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력을 쓰지 않고 계획을 성공했다.
일화가 그 논에 나오는 일화가 유명한
일화가 있죠. 백 백시라고 하는
사람이 300 뭐인가 뭐 그 저 개혁
과정에서 이게
예예. 저기 뺏겼어. 저 어 뺏겼
이게
그 저 관중의 개혁 과정에서 자기가
그 손해를 봤는데
죽을 때까지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예. 그만큼 개혁 주체의 어떤 그이
도덕성이라든지 개혁 주체의 그 공평
무사함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대인으로 평가하는
거예요.
그렇게 봐야 됩니다.
논어 전체를 이렇게 논에 연천하다는
이제 세밀하게 사람의 어떤 그
인간성이나 이런 것들을 착하게 규명해
주셨는데 제가 보기에는이 백규라는
부은
그 최고의
인물이다. 이렇게 이제 아 그니까 제
느낌에 왜 왜 그러냐면은
요즘에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그
결리 사이라는 말도 있듯이
중요한 일의 결정에 개인적인 이익이
되느냐 못 되느냐 이게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국가적으로
미래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고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접정을내는 소인배들을 너무 많이
보다보니까
이게 이제 백규라는 사람은
관중이라는 라는 인물이 자기가 자기
것을 그렇게 많이 뺏사가 버는데도
불구하고이 사람이 천하의 정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런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아 그 사람이 내
것을 비록 뺏겠지만은 관중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
요즘에 있겠느냐 말이야. 요즘 요즘에
정치 소임배들 하도 많이가 보니까
자기에게 털만큼이라도 손해를 보면
그냥을
갈고 붙어 갈고 전부다 나올 뿐이지
이런 어떤 이런 큰 인물이 이게
백규라는 인물이이
300을 가진 인물이라 그러지만은
3천억 3만을 가진 재우나 재화의
마음 쓰는 것을 보면 그 정도의
그릇으로 보이더라고요. 참. 아이
정도 인물이 참
너무 감동입니다.
선백 이런 거는 그 병업이란 말이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그 단위가
단위가 이제 그 그런데
사실은 그 서로 나는 그거를 저 뭐라
그러나 상응한다고 봐요.
예.
어 관중 같은 정치가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백시 같은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서로 서로 교호
작용하는 거죠.
예.
에, 내가 이제 뭐 가끔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듣는 말이 있어요.
군자나 성인을 지향하는 이런
정치야말로 사실은 민주주의라든지
근대화를 늦췄다는 거예요.
음.
어, 오히려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시스템을 만드는 소인의
질서, 소인의 이게 맞다는 거야.
그게 자본주의고
예. 근데 민주의라고 보는 거예.
내가 그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예.
그러나 그런 상태가 만들어낸 지금 저
정치와 경제 체제의 지금 현실이
뭐냐면
어 인류의 종적인 멸망가지를 바라보게
하는 그런 거대한 지금 모순앞에노
놓이 했거든.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대로 자본주의와 근대민주의라는게
소인의 질서다는 거예요. 왜냐면
소인이라는 거는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여러
가지 시스템 만들어 놨는데
공연이 그렇지도 않은 건 말이요 저
군자이 무슨 저 성인이냐 하는 거
목표로 해서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않느냐. 예.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하나
이제 좀 더 나가야 돼. 더 나가야
되는 거는 소인과 군자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서 이렇게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공자는 결코 그렇게 분류하는 기준으로
우회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았어요.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이해한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인데
앞으로는 난는 이게 요새 군자라는
말이 별로 이렇게 이미지가 안 좋아서
사람들한테 좀 말하긴 그렇지만은 굳이
그 말을 표현한다면 이제는 소인의
질서 질서에서부터 군자의 질서로
넘어가야 돼요. 그 길만이
문명을 전환할 수 있고 그 길만이
인류를 지금 이런 존속의 유기로부터
넘어서게 할 수 있다. 예.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과감하게 그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제는 소인의 질서에 그
안주해 가지고 그런 질서 가지고 되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 자체가이 내면에서 자유
자유도가 더 커져 가지고
어 군자의 질소로 군자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민주주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경제 체제 이렇게
돼야 되지 않느냐. 예.
그래서 나는 유교가 아본주의
체제를 변정하는데 나는 그 돌아가면
공장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나는 상당히
에너지가 될 거라 봅니다.
좀 앞서 나가인데예.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 나온 어떤
공자의 그런 질서를 오히려
동아시아에서는 너무 천박한 자본주에
너무 물들고 오히려 북유롭데가 그것을
조금 실현한듯한
어 그런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가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되다는 생각이 입니다.
==

2025/12/13

조현 이남곡 인터뷰 4 20251206

조현 이남곡 인터뷰 4 20251206

공자의 한글자 비법. 자기를 살리는 방법, 타인을 살리는 방법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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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 views  Dec 12, 2025

Transcript
증자는 공자의 어떤 개 정신적인 아주
개승자죠. 증자는 공자의 돈은 충과
서일 뿐이라고 했고
공자는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서라고 했는데서 용서할
때 서
왜 그랬을까요?어서
[웃음]
서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이제
한문으로 용서할 서자인데
용서하고는 다르죠. 그 용서는 뭔가
아 상대가 잘못이 있지만 내가 그걸
좀 용서한다 하는 느낌인데 선은
그렇죠.
어 그런 거 아니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인 상태가 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 아집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죠.
그렇죠. 내가 틀림 없다든지 하고
또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 서가 돼야 이게 화위 부동이에요.
그렇죠.
화위부동이라는게 사실은 이게 사람
사이 관계에서 일종에 평화인데 이렇게
화합하는 거 평화인 상태인데
그 하나가 부동이거든요.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로
한다는 건 내가 틀림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상대를
끌어뜨리려 하잖아.
그렇죠.
그러면 그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그래서 대표적으로 이제
소위는 어 동이 불화해. 근데
어 군자는 화위 부동이에요.
예.
이게 사실은 서죠. 서. 그게 서을
아마
좌우명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제 저를 이야기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선은 공자가 이야기를 해요.
기소 불욕 불시어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을
어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어이 별로 말한게
없어요. 예.
뭐 공자 일반적인 그 말하는 방식인데
뭘게 자세히 설명하거나 정의하듯이
말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에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하기도
하고. 근데
내가 우연히 그 어떤 걸 보다가 충에
해당하는게 뭐 보통 충하면
어 뭐 나라에 대해서 충성하는 거 뭐
이런 걸 왜냐하면 그 예전에 군주에
대한게 충이죠. 예. 어, 부모는
효고 근데
그런게 이렇게 선입관처럼 있어 가지고
현대인들이 충이란 말을 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게 젊은 세대일수록 어 그런데
사실은 충의 개념이 그런게 아니다
하는게 내가 논을 보면서 느끼는
거예요. 뭐냐면이
천이 뭘까 하고 나도 나 내름대로
이렇게 그 하다 보니까
14세기 15세기의 그 에르트 기독교
신비주의자
거룩함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게
있어요. 그 세 가지를 정의했더라고.
하나는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그 거룩함의 조건이
해야 할 당위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아. 두 번째는 아 그 일에 집중하는
거지. 전념 전념하는 거고
세 번째가 아주 중요하더라고.
기쁨이요.
네.
앞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는 의무나
뭐 이렇게 그런데 사는 거지만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는
자발성이
아하
진짜 마음에 하고 싶어서 자발 이게
자발성 전념 기쁨 에카로트는 거룩함에
대한 걸 이야기했는데 내가 쭉 그
논를 보면서 나오는 충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떤 개념을 생각할 때
이게 이게 비교적 잘 들어맞는 말
같아.
예. 자발적이고 전념하는 거예.
전이라는 건 그에 몰두하는 거니까
소위 그 자기를 잃을 정도로 마
모라적인 어떤 그런 전념 상태가
충이야. 예.
근데 그것이 그다음 세 번째가 중요한
기쁨이야 돼.
요게 충이지 않을까? 그래서
적어도 이거는 충이라 하는 건 자기를
자기를 가장 잘 살리는게
충이고
네.
선은
상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과 서가 어울려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 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등목이지 않을까? 아,
그 실제로 나는 협동조합의
어떤 어 가능성이라든지 중요성 같은
거를이 좀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협동하는 사람들하고 많이 만났습니다.
그동안에 주로 만나면서
그 이제 임문 운동가로서 만났을 때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춤과서가
바로 협동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등목으로 충과 서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아마 저는 그렇게
봅니다. 충과서를. 예. 그 예.
충과서에서
이제 충은 한자로 가운데 중에
마음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는게 자칫하면은
어떤 주체적인 어떤 고정관념, 자기의
주대 이런게 아니고 우리는 어떤
상처에 사로잡히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우울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그런 것에 어떤
감정적인 것 하나의 편벽된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전히 거기에 푹
빠져 버리면은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는데 어떤 사로잡히는 상태
사로잡히는게 이제 결국 그게 아집이
돼 버리는데 뭐 그게 사상이 됐든
철학이 됐든 감정이 됐든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제 그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그렇게 사로잡히면서 일단
벗어나면은 이제 서가 좀 쉽게 되는
서라는 것은 이렇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또
듣는 건데 자기가 뭔가의 편견에
사로잡 잡혀 있으면 상대방의 말이
쉽게 곡회가 되고 오해가 되고
그러는데 이렇게 자기가 어떤
사로잡히면서 벗어나면은 어가 이렇게
자기가 어떤 옳다는 것에 딱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서
좀 벗어나 있으면은 자유로운 상태
평안한 상태가 되면은 상대방이 있는
마을을 있는 그대로 그 말을 이렇게
수용하는 입장받고 생각하는 이런 서의
자세가 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이제
이런 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이남욱
선생님은
그 삶에서서 늘 삶의 태도 자체가
서가 잘 되시는 분이에요.
아 그거는 잘 모르는게
이제 그렇게 하려고 부담히 노력하는
사람이죠. 예. 사람인데
그 이야기하다 보니까
아 사실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내
기억에 이렇게 첫도 오르는 사람이
셋이에요.
이제 하나가 공자가 가장
어 자기 지위로 생각했던 유일한
제자가 안회죠. 예.
그다음에
아연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뭐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쌍벽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공입니다.
자공. 음. 청자나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이제 논창 과정에 뭐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마이 상당히 좀
하는 거 같지만 실제 공자 시대 논을
보면은
예.
공자 시대는 자공 아 이제 안회하고
자공이 쌍벽을 잃어요. 어 자공은
부자야. 상당한 부자로서
공자 학단의 그 물질적인 그 기초
규척을 제공하는 사람인데이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죠. 대단한
사람인데 어 자공이 한번 자공일
거야. 그 공장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야 기소 무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다른 사람
시키지 않겠다 했더니 공자 말이
너는 아직 그럴 만한 저게 못된다라고
얘기해. 그래서 예 사실은
공공자님도 굉장히 정론 집필이 찍는
소리를 하시 그 아 그럼 아 그 저
무색깔 정도로 해 버린다고 이럴테면
뭐 저 자로가 아이 어 삼 뭐삼군을
뭐할 때는 뭐 누가고 하겠습니까 너는
아니야
그렇죠 너처럼 맨손으로 호랑이나
때려잡으려는 만용이나 부르는
인간하고는 같이 위태로 같이 하면 그
하여튼간에 그런 식인데
그 이야기들 들어서 내 이야기 하기
나도 그렇게 알고 노력할 뿐이지 그
참 쉽지 않습니다. 아 쉽지 않아요?
아니이 선생님은 잘하시고 또이
선생님도 공자님 못지 않게 찍는
말씀을 해 놓으셨더라고이 대목에서
뭐라고 하냐면 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이
제일 협동적이지 못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인간이 독재적인 인간이 많고
또 경천 공감 프로그램을 이렇게
한다는 인간들이 경천 공감이 안 되고
그래서 속이 엄청 찔리더라고. 저도
이제 경천을 그 강조하는 나차람
프로그램 하는데 그래서 이제 저하고
집에서 모시고 사는 분이 아니 경감
그렇게 강조하면서 경청 공감 안 되고
있잖아 지금. 저도 이제 집에서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이 책에서도
이렇게 탁 또 아픈 대목을 확세 놓고
아이 또 예리하게 내가 많이 경험을
해 봐서 알아요. 내가 경험하는게
뭐냐면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 운동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그것이 좋은 거거든.
네. 그게 좋은 방향이니까 하는데
그 좋은 것이니까 하는데 그 대신에
그게 뭐라면 거기에 대한 아집이
강해집이 강하다고 하는 거는
소통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
않습니까? 왜냐면 자기 성경에 틀림
없거든. 실제로 협동 운동을 하건
공동체 운동을 하건 마을 운동을 하건
여기 가장 중요한 거는 소통인데
그러니까 그 그 좋은 가치들이
머릿속에 있는데 실제 자기
성격상으로는 아집이 강한 거예요.
근데 처음에 내가 그게 좀 꽤 아 꽤
심하다 보여튼간에 좀 어 좀 난처
거야 실제 왜냐면 많이 내가 그거 좀
봤으니까 그 많이 봤찬데 앞뒤가 다른
모습
예 근데 그거를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어 왜냐하면
머릿속에서라도 아 이게 좋은거다 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좋은 거예요.
근데 다만 그것이 체득이 안 돼
있어. 안 있고 그걸 달성하려고
나가는 그 실천을 하는 데는 장애가
돼 버려요. 성격적으로. 그 성격이
뭐냐면 내가 생각하는게 틀림이 없이
옳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게
있기 때문에 사실 이게 소통의 장애가
되지. 그래서
어 나는 좀 그걸 아주 비난만한 쪽에
사고는 내가 버렸어요. 아 저렇게
생각하는 거 말도 훌륭해. 음.
아, 진짜이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그게 그 진짜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경청 공감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내전에 그런 것이 안 됐을 때
내가 옳다는 이렇게 생각 속에 빠져서
살 때에 나의 그 심리적 공함과 그
피곤함, 피폐함을 너무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아직도 잘 안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강조하는 거지. 네가
하지도 못한 것을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이제 비난을 물론 받을 수는
있지만은 내가 스스로 안 돼서
힘들었던 삶을 성찰한 결과 아 그게
절실하고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그래도
조금 그걸 열고 보니까 더 편안해지고
그런 걸 이제 깨닫는 것이지 그걸 또
완전히 정론 직필로 또 너도 안 되는
것을 그렇게 그럴 그럴 그럴 일을
예 감사합니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