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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8

1. 임권택의 ‘만다라’(1981) < 문학산의 시네마 다르마 < 2020 연재모음 보신문

1. 임권택의 ‘만다라’(1981) < 문학산의 시네마 다르마 < 2020 연재모음 < 지난연재 < 기사본문 - 법보신문



1. 임권택의 ‘만다라’(1981)

1. 임권택의 ‘만다라’(1981)
기자명 문학산 교수
본문 글씨 키우기 본문 글씨 줄이기 바로가기 기사저장문학산의 시네마 다르마
입력 2019.01.07 14:37


치열한 수행자 삶 다룬 한국 불교영화 백미

한 길만걸어온 임권택 영화감독
‘만다라'로 불교영화 관심 이끌어
​​​​​​​
불교 넘어서 이상세계 구현 위해
낭비 없이 사는 치열한 삶 주목

만행의 길을 떠나는 주인공의 뒷모습에서 관객들은 길을 관조할 넉넉한 시간을 갖게 된다. 영화 ‘만다라' 장면.

임권택은 한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영화다. 영화는 그에게 예술이며, 인생이었으며 심지어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존재증명이었다. 영화는 그의 전부였다. 때문에 그는 영화의 길에서 한 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며 다른 길을 상상도 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그의 영화에 길을 걷는 주인공들이 한여름의 매미 울음소리만큼 가득하다. 심지어 임 감독은 서양식 로드무비(road movie)가 아닌 길 영화로 명명하여 카메라로 길을 넉넉하게 담아냈다.

그에게 영화는 삶의 길이며 종교에 근접해갔다. 예술의 신앙화는 그를 종교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으며 그의 영화적 전성기도 불교영화를 연출한 1980년대에 펼쳐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만다라’는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감독 임권택에게는 1970년대 대중영화 감독의 오명을 씻어내는 일등 공신이 ‘만다라’였고, 한국 불교영화사에서 전입신고를 한 작품이 윤용규의 ‘마음의 고향’(1949)이라면 부끄럽지 않은 불교영화의 명함을 내민 작품이 ‘만다라’였다. 1980년대 성애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애마부인’(1982), ‘어둠의 자식들’(1981)이 한국 영화제작 목록을 채워갈 때 이장호의 ‘바람불어 좋은날’(1980)과 함께 한국 영화의 난파선을 이끌고 항해한 작품도 ‘만다라’였다. ‘만다라’는 임권택의 작가적 행보에 등대 역할을 했다면 한국 불교영화사에서는 큰 등불이 되었다.

‘만다라’는 순도 높은 불교영화다. 불교영화의 정의는 다양하다. 불교영화는 좁게는 ‘불교인이 등장하고 사찰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그 범위를 넓히면 ‘불교를 주제로 하거나 소재로 하는 영화’까지 아우른다. 광의의 불교영화나 협의의 불교영화로 살펴보아도 ‘만다라’는 모범적인 불교영화다. 두 주인공은 승려이며 배경은 사찰이다. 그들은 성불하기 위해 수행을 하며 심지어 계율의 울타리를 벗어나 파계로 수행의 범위를 확장한다.

첫 시퀀스에서 동안거 장면이 몽타주로 응축된다. 크레딧이 끝나면 남북을 가로 지르는 길을 따라 허허 벌판에서 버스가 다가오는 익스트림 롱쇼트가 등장한다. 본격적인 첫 장면은 길에서 시작되며 마지막 장면도 만행의 길을 떠나는 법운(안성기 분)의 뒷모습이다. 두 장면 모두 동양화처럼 펼쳐진 익스트림 롱쇼트로 길을 프레임에 채우고 롱테이크로 관객들이 길을 관조할 넉넉한 시간을 보시한다. ‘만다라’는 길에서 시작하여 길에서 마침표를 찍으며 길과 길 사이에 수행자들의 움직임과 마음이 걸려있다. 서양의 평론가는 홍상수 영화를 한 줄로 요약했다. 그 명료한 명제는 ‘여성이 홍상수 영화의 시간축이며 영화 안에서 시간의 단일성을 이루어낸다’이다. 이 표현을 임권택의 영화에 견주어 보면 ‘길이 임권택 영화의 서사의 축이며 영화 안에서 서사적 일관성을 획득한다’로 번역가능하다.

임권택은 한국인이며 ‘한국’이라는 용어에 대해 깊이 성찰하여, 오랫동안 영화적 번역 작업을 수행했다. 한국의 소리는 ‘서편제’에 담아냈고 한국의 종이는 ‘달빛 길어올리기’(2011)에 지천년(紙千年)정신을 압착하였다. 한국의 종교는 ‘만다라’에 당도하여 한국주의의 본령에 도달한다. 그의 한국에 대한 천착은 한국이라는 장소에 대한 예찬이 한 편에 자리한다면 다른 한편에는 예술가의 자기 완성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영화적 매혹이 서 있다.
법운은 계율을 중시하는 지산의 행보를 거부하다 천천히 계율의 울타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평의 확장을 꾀한다.

그가 소설 ‘만다라’를 영화로 선택한 이유는 자기완성에 대한 매혹이었다. 정성일과 인터뷰에서 “‘만다라’를 읽고 감동한 것은 자기 삶을 이렇게 치열하게 살수 있구나, 한 치의 낭비도 없이, 몸을 던져서 살 수 있는 이런 치열한 삶이라는 게, 그러니까 불교라는 카테고리를 떠나서 자기를 구현해가고 자기의 이상 세계를 향해 낭비 없이 치열하게 산다는 것”에 주목했다고 술회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종교와 예술)을 위해 스스로를 연소해버리는 삶에 대한 매혹이 ‘만다라’를 선택한 까닭이다.

‘만다라’에서 지산(전무송 분)과 법운 수좌는 성불을 위해 수행한다. 그들은 화두를 참구한다. 화두는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고 넓어지는 병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 새가 자라고 있구나, 그런데 그 새가 자라서 꺼내야하는데 너는 그 새를 어떻게 꺼내겠느냐”이다. 임권택은 두 가지 수행의 길을 제시한다. 하나의 길은 두 인물이 계를 받고 서원(誓願)을 통해 스스로 성불하기 위한 수행 정진의 방편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에 사는 중생들의 구제를 위해 마음의 격랑을 뚫고 가는 것이다.

지산과 법운은 계율 안에서 수행과 파계를 통해 경계를 넓히고 지우는 두 가지 행보를 보여준다. 연구자들은 소승 불교와 대승불교로 나누어 법운은 계율을 중시하고 수행 정진하는 소승불교의 길을 걸으며, 지산은 중생 구제를 위한 노력과 계율의 경계를 확장하는 대승불교를 대표하는 수좌로 나누었다. 법운은 지산의 행보를 거부하다 천천히 계율의 울타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지평의 확장을 꾀한다. 그는 결국 ‘새를 가두는 병’인 계율로부터 해방된다. 지산의 파계는 법운에게 병을 깨뜨리게 하는 일종의 망치 역할을 한다. 지산은 스스로 “새가 갇힌 병은 현실이자 욕망, 계율이지, 난 그냥 그 병을 깨버렸어 육체가 마음이고 마음이 곧 육체야”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법운은 불교영화의 백미인 수행 장면을 통해 화두를 깨우친다. 법운은 해변에서 용맹 정진할 때 바다 위로 새가 날아간다. 새는 억압의 그물에서 벗어난 자유를 표상한다. 새는 법운의 자유에 대한 열망과 병속의 새가 병에서 자유로워졌음을 암시한다. 이로 인해 마지막 장면에 길을 떠나는 법운은 만행은 세상 속으로 향하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행보로 귀결된다.

문학산 영화평론가·부산대 교수

 


2022/07/07

태장계(胎藏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장계(胎藏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태장계(胎藏界)

불교개념용어

 중생의 마음에 태아처럼 감추어져 있는 진리의 세계를 가리키는 불교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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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대승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중 아자 범자원상 태장계만다라
분야
불교
유형
개념용어
 
 정의
중생의 마음에 태아처럼 감추어져 있는 진리의 세계를 가리키는 불교교리.

내용
태장계는 금강계(金剛界)와 함께 밀교의 2대 법문의 하나이다. 


태장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밀교경전인 『대일경(大日經)』에 설해진 태장계만다라(胎藏界曼茶羅)이다. 
태장계만다라는 중생에 잠재되어 있는 비로자나여래의 자내증(自內證)을 만다라로 표현한 것으로서, 범부의 심성에 감추어진 진리의 세계가 우주적인 자비로 구현된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태장계만다라는 『화엄경』의 법신관을 계승하고, 현교에 전통적으로 설해진 불·보살과 우주관을 통합하여 조직적인 진리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태장계만다라는 부족의 구성에 따라 크게 불부(佛部)·연화부(蓮華部)·금강부(金剛部)의 3부로 나누어진다. 
이때 불부는 붓다의 깨달음으로 대원경지(大圓鏡智)와 평등성지(平等性智)의 발현이고, 
연화부는 대비(大悲)의 이타심으로 묘관찰지(妙觀察智)의 발현이며, 
금강부는 지혜를 통해 현실에서 진리를 구현하는 성소작지(成所作智)의 덕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붓다의 깨달음이 중생의 마음에 내재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태장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체계 연구』(정성준,이스트워드,2007)

  • 『밀교학의 기초지식』(정성준,이스트워드,2004)

  • 『秘密マンダラの世界』(八田幸雄,東京: 平河出版社,1988)

  • 『密敎經典成立史論』(松長有慶,京都: 法藏館,1980)

  • 『大日經の成立に關する硏究』(酒井眞典,東京: 國書刊行會,1976)

  • 『密敎の歷史』(松長有慶,京都: 平樂寺書店,1969)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2016년)
정성준(동국대학교)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장계(胎藏界))]

불교 만다라에 나타난 인간심성개발의 교육모델 연구 - 태장계만다라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불교 만다라에 나타난 인간심성개발의 교육모델 연구 - 태장계만다라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불교 만다라에 나타난 인간심성개발의 교육모델 연구 - 태장계만다라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alization of Educational Model for Buddhist Maṇḍalas for the Development of Human's Consciousness oriented with Tathāgata Realm Manḍala in Vairocana Sūtra


동아시아불교문화

약어 : 동아시아불교문화

2016, vol., no.27, 통권 27호 pp. 385-414 (30 pages)

발행기관 :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연구분야 : 불교학 > 지역불교및불교사연구
정성준 /Seongjoon Cheong 1
1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불교사회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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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근대 심리학자 프로이드(G. Freud)로부터 시작된 근대 심리학은 칼융(C.J. Jung)에 이르러 인도종교문화의 만다라를 잠재의식의 분석과 치유과정에 최초 응용하였다. 

만다라를 통한 잠재의식의 시험적 접근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현대의 임상심리학이나 이론심리학 모두에 있어 만다라는 인간의 심층의식을 들여다보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서구에 티벳불교가 알려지면서 불교의례 체계를 이루는 조직적인 만다라가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서구심리학계에 알려진 만다라는 도형에 담긴 내면적 의미를 간과하였다
불교만다라는 도형 속에 정교하고 복잡한 불교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불교만다라를 중심으로 한 의례체계는 7세기 『大日經』의 출현을 계기로 대부분 완성되어 인도에 불교가 사라질 때까지 500여 년 동안 번성하였다. 

불교 만다라는 인간의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목표를 지향하지만 
그 기초는 인간의 마음을 깨달음으로 이끄는 교육적 도구로 해석된다. 

현대 교육학의 변화는 과거 획일적 교육이 피교육자에게 주는 고통과 불안을 인식하고, 인본주적 심리학에 바탕을 둔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례로 홀리스틱 교육(holistic education) 방식인간의 내적 상태를 고려하는 인본주의적 교육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심지어 인간의 종교적이거나 내적인 체험을 중요시하는 교육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양의 종교와 명상이 주목받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마음과 인간본성의 불교적 해석은 현대교육의 지향점과 상당히 일치하는 점이 있다. 

본 논문은 밀교의 의례체계 가운데 만다라가 지닌 고전적 교육방식에 대해 현대교육과 유사성을 비교해보고, 
불교교육의 유용한 도구로서 만다라의 가능성을 살펴보려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홀리스틱 교육과 STEAM교육이념의 두 가지 사례를 전거로 현대 교육계의 새로운 경향과 밀교만다라의 경우 태장계만다라의 의례를 통해 현대와 고전의 교육체계를 비교하려 한다. 
만다라의 의례체계는 인간의 심층의식에 대한 시각적 분석과 통찰력, 의식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종교적 비의라는 경직성을 극복한다면 인간의 심리변화라는 교육적 도구로 가능성을 열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The modern psychology which was begun by G.Freud has been developed enormously for the decades and influenced education, economic, culture of human societies and applied to versatile areas of human's activities. The discovery of subconsciousness which were drawn from the analysis of psychology aimed at the change of human nature was an opening of new horizon of psychology. As one of the methods to approach to the subconsciousness of human the hypnosis technology was adopted as a subsidiary tool but C.Jung adopted Maṇḍala visualization which comes from the traditional rituals of Indian religion so as to analyze the inspect of subconsciousness and attempting psychical cure. Now a days the Mandala is understood as an observation scheme to look into the subconsciousness of human beings in both of area of theoretical psychological and clinical psychology In the late 1980's Tibetan Buddhism was introduced to western world especially due to the historic tragedy of Tibet and to His Holiness the Dailai Lama 14th's win for the Nobel piece prize. The remarkable specialty of Tibetan Buddhism is divided into two parts one of which is Tibetan logic and the other is Esoteric Buddhism that the specialized Buddhist doctrine and practice of Mandala was introduced to western world for the first time. The Buddhist Mandala was more than a tool for just discerning the latent consciousness of human being but for a realization of enlightenment of Buddhism on the foundation of religious purpose. The Buddhist Mandala is a representation of human mind which divide re realm of consciousness into latent and phenomenal one and as a educational expedient to lead the knowledge and mind of sentient beings to enlightenment. The traditional practices of Mahayāna Buddhism are composed of reading and memorization of scriptures and practice Buddhist meditation on the basement of keeping religious precepts but by the advent of Esoteric Buddhism in the middle of 7th century the later part of Mahayana Buddhism was overwhelmed by Esoteric Buddhism and Buddhist logics until the disappearance of Buddhism by Muslim in India in 11th century. The educational aspects of Vairocana Sūtra is represented in the “Chapter of the Stage of the Mind in Varocana Buddha” which interprets the nature of mind on the foundation of Mind Only Buddhism to make it a point of the emptiness of consciousness, the immediate realization and accomplishment in her or his life time and dependent rising of consciousness, and the foundation of Alāya consciousness. The practice of Mandala visualization is to utilize reciting Mantra, visualization of Mudra and Maṇḍala along with the religious rite of consecration and Homa. But the Mandala of Vairocana Sūtra is different from Vajra Peak Tantra in that the Maṇḍala of Vairocana Sūtra is a horizontal one to develop the supreme knowledge to outer world but still in the consciousness of practitioner's consciousness but the Mandala of Vajra Peak Tantra is to activate latent consciousness to phenomenal world of this mundane world.


키워드
만다라,
심리학,
잠재의식,
대일경,
태장계만다라,
중대팔엽원

Maṇḍala, Buddhist Psychology, Subconsciousness, Mind Only Buddhism, Vairocana Sū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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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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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秘儀 : 비밀스러운 종교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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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175

종교적 비의(秘義)

현대미술이 기적을 찾는 마음과 하나가 될 때

writer 임근준 AKA 이정우(미술·디자인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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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자인 사라 손튼(Sarah Thornton)은, “현대미술은 무신론자를 위한 일종의 대안 종교가 됐다”고 일갈한 바 있다.
그렇다면, 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현대미술은 무엇일까? 대체로 전통적 신앙심과 현대미술의 가치 체계는, 공존은커녕 양립하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득의양양하던 현대예술가가 마음이나 몸에 병을 얻어 종교에 귀의하면, 작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현대적 비판정신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기묘한 예외는 존재한다.

  • 이탈리아의 움브리아 주 페루자 현에 ‘산타 리카 다 카시아’라는 이름의 작은 예배소가 있다. 그곳은, 좌절하고 실망한 사람들의 수호성인인 카시아의 성녀 리타를 기리는 아우구스티누스 선교회의 성소다. 한데, 유명 관광지도 아닌 그곳에서, 1980년 범상치 않게 생긴 봉헌물이 발견됐다. 1979년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예배당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봉헌물 형태의 비의적(秘義的, Mystique) 현대미술품이 발견된 것. 영문을 모르는 수녀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종교적 작품에 적힌 제목은, <이브 클랭이 카시아의 성녀 리타께 바치는 봉헌물(Ex-voto dédié à Sainte-Rita de Cascia par Yves Klein)>이었다(흔히 줄여서 ‘익스-보토’, 즉 봉헌물이라고 부른다).

  • 이는, 1961년 2월, 프랑스의 현대미술가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이, 33세 생일을 몇 달 앞두고,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바친 제 작업의 요체였다. 봉헌물의 상자는 특별히 제작된 플랙시글라스 팔레트로, 나사로 봉인하게 돼 있다. 3단으로 분할된 상단부엔 작가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색상의 재료, 핑크색 안료, 청색 안료, 금박을 삼위일체로 담고 있고, 그 아래의 좌우로 긴 공간에 작가의 친필 기도문을 넣었으며, 그와 등치를 이루는 하단의 공간엔 다시 청색 안료를 채우고 세 개의 작은 금괴를 세로 가로 세로로 배치했다(이브 클랭은 ‘분홍색’이 삶을, ‘청색’이 정신성을, ‘금색’이 절대성을 상징한다고 생각했고, 이 세 가지 색이 모여서 생명력의 총체를 이룬다고 믿었다).

  • 이브 클랭이 카시아의 성녀 리타께 바치는 봉헌물

    ①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
    <이브 클랭이 카시아의 성녀 리타께 바치는 봉헌물 (Ex-voto dédié à Sainte-Rita de Cascia par Yves Klein)>

    1961년 / 14×21×3.20cm/ 플랙시글라스, 나사못, 기도문을 적은 종이, 청색 안료, 핑크색 안료, 금박, 소형 금괴

  • 편지의 형태로 봉납된 기도문은, 기본적으론 이미 당해 1월에 독일 크레펠트의 무제움하우스랑게(Museum Haus Lange)에서 개막한 대규모 회고전 <이브 클랭: 모노크롬과 불(Yves Klein: Monochrome und Feuer)>에 감사하고 또 성공을 기원하는 내용인데, 읽어보면, 그 문구가 퍽 순수하고 또 절실하다. “청색, 금색, 핑크색, 비물질 / 전설 속 에덴의 상태에 부합하는 자연 속 인간의 삶으로 회귀하기 위한, 빈 공간, 공기의 건축, 도시의 공기, 공기의 조절, 드넓은 지리학적 영역. 세 개의 금괴는 ‘비물질적 회화의 감수성의 첫 네 영역’을 판매함으로써 얻은 최종 산물이옵니다. / 전지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 주 예수의 이름으로, 고귀하신 성모 마리아를 위해.

    수호성인 카시아의 성녀 리타를 통해 제 무한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고맙습니다. Y.K. / […] 공허의 극장 – 제 작업의 여백 – 그 우주생성론 – 저의 청색 – 일반론으로서의 제 모든 이론에서 무엇이든 특별한 변화를 허하소서. 제 적들이 친구가 되게 하시고, 원컨대, 저를 적대하며 해하지 않게 하소서. 저와 제 작업 모두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시옵소서. 이 모두 이루어지리로다. / […] 카시아의 성녀 리타시여, 불가능하고 절망적인 이상들의 수호성인이시여, 지금까지 제게 베풀어주신 진지 전능하고 신묘한 도움의 손길에 무궁한 감사를 드리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그럴 자격이 없다 하여도 저와 제 예술에 도움의 손길을 다시 한 번 허락하시어 제가 창조한 모든 것들이 모자란 저 자신에도 불구하고 언제까지나 위대한 아름다움으로 남도록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 여기에 공간이 있다

    ② 이브 클랭(Yves Klein, 1928-1962)
    <여기에 공간이 있다(Ci-gît l'Espace[Here Lies Space])>

    1960년 / 패널에 금박과 조화와 자연산 해면과 합성 레진과 청색 안료 / 124.9×100×10cm

  • 이브 클랭은 1950년대에 이미 연예인 못잖은 쇼맨십으로 사회적 논란거리가 됐던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문화적 사기꾼이었던 것은 아니다. ‘비물질적 감수성(Sensibilité Immatérielle)’을 제 작업 세계의 열쇳말로 삼았던 그는, 물질의 실존을 관문 삼아 비물질적 초월성의 영역으로 나가갈 수 있으리라 믿었고, 실제로 ‘갤러리의 텅 빈 공간을 예술 작품으로 제시한 최초의 추상예술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어려서부터 장미십자회의 비의적 교리에 심취했던 이브 클랭에겐, 현대미술의 가치 체계에 온전히 포섭되기 어려운 신앙인의 면모가 있었다. 장미십자회의 우주진화론(La Cosmogonie des Rose-croix)의 가르침에 따라, 작가는 ‘공간은 비었거나 허망한 것이 아닌 정신 그 자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가톨릭 교리로부터 삼위일체나 숭고의 상징 체계를 빌려온 현대미술가들을 보기는 어렵지 않지만, 아예 제 작업을 수호성인에게 봉헌하고, 그것이 제 작업 세계의 비가시적 기준점이 되도록 꾸민 사례는, 이브 클랭이 유일하다.

    1955년 전업 작가로 활동을 본격화한 이브 클랭은, 1960년 제 작업 세계의 기본적 상징 체계를 사실상 완성했고, 1961년 커리어의 대전환을 맞을 참이었다. 돌이켜보면, 1960년은 작가에게 실로 특별한 해였다.

  • 5월 개막한 개인전 <청색 시대의 인간측정학(Anthropométries de l'époque bleue)>은 대성공이었고, 곧이어 자신만의 물감인 ‘인터내셔널 클랭 블루(IKB: International Kein Blue)’로 특허권까지 인정받았으며, 10월엔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주창한 누보레알리즘 운동의 발기인으로 참여해 전후 미술계의 새로운 변화를 주도했다. 따라서 1961년을 맞는 작가의 마음은, 여느 해와 달랐을 테다. 4월엔 미국 뉴욕의 유력화랑 레오카스텔리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었고, 화염방사기로 그림을 그리는 <불의 회화> 연작을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었으며, 또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연인 로트라우트 웩커와 약혼한 상황이었다.

  • 작가의 간곡한 기원은 응답을 받은 듯했다. 1961년에 벌인 작업과 전시는 모두 성공적이었고, 미국에서의 명성도 높아갔다. 하지만, 이브 클랭은 당해 10월 몇몇 동료들과 함께 누보레알리즘 그룹의 해체를 선언해버렸다. 미국식 팝아트에 경도된 피에르 레스타니의 새로운 선언문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버린 나머지, 중요한 동료를 적으로 돌리게 됐던 것. 1962년 1월 21일엔 약혼자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면사포 아래로 이브 클랭이 제작한 청색 왕관을 쓴 신부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나, 당해 6월 6일, 만 34세의 이브 클랭은 파리의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고, 두 달 뒤인 8월, 미망인은 니스에서 아들 이브를 낳았다.

  •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

    ③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In Search of the Miraculous)>

    1975년 / 대서양 횡단에 나서기 전에 시행된 기념 합창의 기록.

    *<대양의 파도 위에서의 삶(Life on the Ocean Wave)>을 부르는 혼성중창단의 모습.
    80장의 기록 사진 가운데 하나.

  • 바스 얀 아더르

    ④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

    *기적적인 것을 찾아 나서기 전, ‘대양의 파도(Ocean Wave)’라 명명된 포켓 크루저(초소형 보트)를 점검하고 있는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의 모습.

  • 이러한 비의적 헌신(獻身)의 모습은, 네덜란드의 개념미술가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의 마지막 작업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얀 아더르는, 1975년 <기적적인 것을 찾아서(In Search of the Miraculous)>라는 제목의 괴이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대양의 파도(Ocean Wave)’라 명명된 포켓 크루저(초소형 보트)를 타고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기로 작정했던 것. 1975년 7월 9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이프 코드(Cape Cod)를 출발해서, 계획대로 두 달 반 안에 영국 팰머스(Falmouth) 해안에 무사히 도착했다면, ‘가장 작은 배로 대서양 횡단에 성공한 인물’로 역사에 기록됐을 테다. 그러나, 항해 시작 이후 3주 만에 라디오 통신이 두절됐고, 모험가는 실종됐다. 열 달 뒤인 1976년 4월, 아일랜드 해변에서 스페인 어선이 주인 잃은 배를 발견했지만, 작가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본디 작업은 크게 셋으로 나뉘어 실행될 계획이었다. 제1부는 오밤중에 캘리포니아의 어느 언덕에서 해변으로 걸어가는 제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한 것이고, 제2부가 대서양을 횡단에 도전하는 일이었으며, 제3부는 암스테르담의 해변에서 앞서 시행한 심야 산책을 재연하고 사진으로 기록할 예정이었다.

  • 한데, 이 작업을 진행하던 당시 작가의 나이는 만 33세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나이와 같았다. 2007년 마리온 반 윅(Marion van Wijk)과 코스 달스트라(Koos Dalstra)는 이 미스터리 사건을 추적-조사해 자료집을 발간했다. 제목은 <바스 얀 아더르:기적적인 것을 찾아서 ― 수사 파일 143/76(Bas Jan Ader: In Search of the Miraculous ― Discovery File 143/76)>. 이들의 조사에 따르면, 스페인 코루냐 주의 산 디에고 항만에 정박해 있던 ‘대양의 파도’는 1976년 5월 18일과 6월 7일 사이에 사라졌고, 배를 찾는 데 실패한 경찰은 1977년 2월 1일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를 종결해버렸다. 바스 얀 아더르는 기적을 향한 도전을 빙자해 자살을 기도했던 것일까? 그의 모친은 1975년 10월 12일 아들의 죽음을 예견한 듯 음울한 시를 쓴 바 있다. 다음은 시구의 일부다. “그대는 슬픔의 깊은 우물이 읊조리는 행복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 절망과 번민과 죽음으로부터 울려 나오는 사랑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 아트 & 프로젝트 소식지 89(Art & Project Bulletin 89)

    ⑤ 바스 얀 아더르(Bas Jan Ader, 1942-1975?)
    <아트 & 프로젝트 소식지 89(Art & Project Bulletin 89)>

    1975년 8월호 / 포토리소그래프 인쇄물 / 29.6 x 42cm (펼친 크기)

  • 대양의 파도 위에서의 삶

    *뒤표지에 인쇄된 악보는 헨리 러셀(Henry Russell)의 노래 <대양의 파도 위에서의 삶(Life on the Ocean Wave)>(1838)으로, 영·미 해군에서 애창되는 행진곡이다. 아더르가 자신의 포켓 크루저에 붙인 ‘대양의 파도’란 이름은 이에 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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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계 · 금강계 만다라에 대한 이해 > 총지소식 | 불교총지종

태장계 · 금강계 만다라에 대한 이해 > 총지소식 | 불교총지종


총지소식

불교총지종은 ‘불교의 생활화, 생활의 불교화’를 표방하고 자리이타의 대승불교 정신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생활불교 종단입니다.

태장계 · 금강계 만다라에 대한 이해
호수 39호 발행인 법공 발간일 2002-12-01 신문면수 5면 
카테고리 총지논단 서브카테고리 -
필자명 - 필자법명 법경 필자소속 - 필자호칭 - 필자정보 법장원 리라이터 -
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18-04-28 

태장계 · 금강계 만다라에 대한 이해







1. 만다라의 뜻

만다라는 산스크리트로 ‘본질 · 정수를 얻다’는 뜻입니다. 즉, 만다라는 삼라만상의 본질을 원만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만다라는 일체제법의 본질을 원만하게 성취한 부처와 그것을 추구하는 보살과 그들의 무수한 권속들이 모인 장엄도량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한역에서는 만다라를 단 · 도량 · 윤원구족 · 청정 · 취집 · 원 · 구 · 발생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습 다. 이같은 번역은 산스크리트의 어원 해석을 바탕으로 한 『대일경소』의 주석에 따른 것입니다.

이 주석서의 해석 가운데 윤원구족과 같은 말은 부처의 자내증, 즉 자기의 마음 속에서 깨달은 진리의 경지를 표현한 말입니다.

대체로 만다라의 구체적인 용례로는 밀오의 단 · 도량 · 제불 · 의 취집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다라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불보살과 명왕들의 취집을 그려놓은 것을 말합니다.

원래 만다라는 고대인도에서 흙으로 단을 쌓고 그 단 위에 신상을 안치하거나 신상을 그려 신을 초청하여 공양하는 수법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밀교에 수용되어 토단위에 부처와 보살과 명왕들을 모시는 것으로 발전되었습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호마라든가 공양을 올리는 밀교의식을 행할 때 토단의 만다라가 축성되고 흰가루로 선을 긋고, 때로는 채색을 하여 그리기도 합니다.

만다라의 구조는 고대인도의 왕성을 모방한 것으로 성벽과 성루,성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2,태장계 만다라

태장계만다라는『대일경』에 근거하여 그림으로 나타낸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태장계만다라’는 ‘대비태장생만다라의 준말입니다. 태장이란 문자 그대로 모태안에서 자라난다는 것 을 뜻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성, 즉 여성적 원리에서 나온 발상으로서 생명의 성장과 탄생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생을 얻은 태아가 모태안에서 자라나는 성장을 도상화한 것이 바로 태장 만다라입니다.

‘태장’이란말은 ‘싸다’, ‘포괄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태장만다라는 대비한 부처의 마의보리심을 모태에 비유하고 그 모태안에서 인간과 우주가 불이일체가 되어 성장하는 것을 돕는 것, 즉 교화 활동의 뜻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태장만다라는 중존인 대일여래가 갖추고 있는 종교적 구원인 대비의 활동을 중심으로 해서 그것 이 안에서부터 밖으로 퍼져나가는 도식 을 취하고 있습니다.

태장만다라는『대일경』에 설한 교설에 따라 여러 제존을 도상화한 것 입니다. 태장만다라의 그림구도는 대일여래를 중심으로 해서 시계방향의 방사형으로 제존이 배치 되어 퍼져 나갑니다. 이것은 단계를 따라 배치된 부처와 보살, 명왕, 제천, 신 등의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 입니다.

태장계만다라는 12대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대원만다라라 고도 합니다. 중앙의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만다라의 제존은 모두 414존입니다.

태장만다라는 3중의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중앙의 중대팔엽원을 중심으로 하여 변지원 · 관음원 · 금강원 · 지명원의 4원이 사방으로 둘러져 있고, 제2중에 6 대원 석가원 · 문수원 · 허공장원 · 소실지원 · 지장원 · 제개장원이 사방으로 둘러져 있으며, 제3중에는 외금강부원이 외곽을 둘 러싸고 있습니다.

중대팔엽원과 제1중의 4대원은 보리심의 덕을 나타내고, 제2중의 6대원은 대비의 덕을 나타내며, 제 3중인 외금강부원은 널리 모든 유정들에 게 미치는 방편의 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바로『대일경』에서 교설하고 있는 ‘보리심을 근본으로 하고 대비를 인으로 하여 방편에 이르는 수행 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 태장계만다라는 금강계만다라와 달리 각각의 존상들이 하나의 소속과 역할, 기능들을 지니고 있는데에 반해, 금 강계는 불보살들이 모습과 형상을 달리 하여 수차에 걸쳐 등장한다는 것이 큰 특징입니다.


3, 금강계만다라

금강계만다라는『금강정경』의 실천철학을 그림으로 나타낸 만다라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금강계만다라는 ‘일체의 성취보살’이 오상성신 관의 수행을 통해 증득한 깨달음의 세계를 나타낸 만다라입니다. 
이 만다라에는 대일여래를 비롯하여 1461존이 모셔져 있습니다. 금강계만다라는 대일여래를 중존으로 하는 사불을 중심으로 사방에 제존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제존에는 모두 금강이라는 이름을 붙어 밀교의 독특한 보살로 재생 시키고 있습니다. 즉 중앙의 대일여래가 사바라밀의 수행에 의하여 사불로 나눠지고, 이 동서남북의 아촉 · 보생 · 아미타 · 불공성취의 사불과 중앙 대일여래에 친근한 제존들이 개현하고 있습니다. 이 무수한 불 · 보살과 제존들은 바로 중앙 대일여래의 별덕을 각기 상징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만다라를 통하여 행자는 그 제존들의 덕성을 체험하여 마침내 대알여래와의 일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금강계만다라의 중심되는 수행법입니다.

금강계만다라는 태장만다라가 방사형으로 넓혀가는 것과는 달리 
방형으로 구획된 9개의 작은 만다라를 모아, 
마치 물체를 쌓아올리고 동시에 사방으로 커다란 화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금강계만다라는 아홉 개의 작은 만다라가 모여서 이루어졌다고 하여 구회만다라라고 합니다.

구회만다라는 중앙의 성신회가 중심이 되어 항삼세삼매야회에 이르도록 구성되어 있고, 그것이 다시 역순으로 항삼세삼매야회에서 성신회에 이르는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구조는 여래가 중생을 교화하는 활동을 단계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후자의 역순은 수행자의 수행의 순서와 그 경지를 나타내고자 한 것입니다. 이 역순은 중생이 부처의 경지, 즉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나타낸 것입니다. 전자를 과로부터 인으로 나아가는 하전문또는 향하문이라고 하 고, 후자를 인으로부터 과로 나아가는 상전문또는 향상문이라고 합니다.

이와같이 하전문은 보리심의 본성인 자성의 자각을 상징하고, 싱전문은 수행자의 관법수행을 통하여 깨달음에 이름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법장원 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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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라 - 나무위키 만다라(1981) / Mandara (Mandala)

만다라 - 나무위키

만다라

최근 수정 시각: 
1불교의 미술2. 심리치료에서의 만다라3. 전근대 동남아시아의 정치체제4. 한국의 소설5. 웹툰 나이트런의 만다라(나이트런)

1. 불교의 미술[편집]

만다라 / 曼陀羅, 曼荼羅 / Mandala / मण्डल, maṇḍala
  • 원 · 圓 · cir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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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계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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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계 만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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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장계 종자자 만다라

밀교를 중심으로 활성화된 불교미술.

한중일 세 나라는 일반적으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의 묘사를 근거로 하여 만다라를 그린다. 위 사진들은 모두 일본밀교의 만다라이다.[1]

대일경에 나오는 만다라를 태장계(胎藏界), 금강정경에 나오는 만다라를 금강계(金剛界)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각 본존을 상징하는 범자(梵字)로 만든 만다라를 종자자(種子字)만다라라고 일컬으며, 본존들의 상징물들로 구성한 만다라는 삼마야계(三摩耶界)만다라라고 부른다.

불교에서 만다라를 사각형 또는 원형의 신성한 단에 경전에 의거하여 조성하고, 모든 의식이 끝난 뒤에는 반드시 파괴함이 원칙이나, 때로 완성된 만다라를 회화로 그려 경배와 명상의 대상으로 모시기도 한다.[2]

묘하게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만화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그 만화의 장르가 공포나 심령오컬트라면 열에 아홉은 등장한다. 작안의 샤나에서는 종자자 만다라가 등장한다. 작중 디지몬 테이머즈에서는 금강계 만다라가 샤크라몬의 필살기로 등장한다. 진 여신전생 1,2에서도 타이틀 화면으로 등장한다. 기동무투전 G건담에서는 등장인물인 키랄 메키렐이 만다라 건담에 탑승한다. 작품 최후반에 데빌 건담이 콜로니를 장악했을 때 이에 맞서는 건담연합의 리더기로 활약하며, 다른 건담들과 함께 합체기 만다라 원진 극락왕생으로 데빌 건담의 촉수를 파괴한다. 천공전기 슈라토에서는 히다카 슈라토와 천왕 휴가, 용왕 료마, 가루라왕 레이가 4인의 팔부중이 모든 소마를 끌어모아 쓰는 합동 필살기인 수왕 만다라진이 나온다. 발동 주문은 나우마크 사만다 보다남 옴 보론. 세인트 세이야의 등장인물인 골드 세인트 비르고 샤카의 기술인 천무보륜의 시전시 전용배경으로 만다라가 나온다.
external/www.onm...

티베트 불교의 만다라

특히 티베트 불교에서는 물감이 아니라 색색의 모래로 만다라를 만드는데, 이를 만드는 광경은 장관이라 할 만하다. 색모래로 만든 만다라를 의식과 기도가 끝나고 마지막에 모두 쓸어 모아 강에 흘려버린다. 이는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덧없으며 세상에 모든 것에 집착할 의미가 없음을 상기하기 위함이며, 남은 만다라를 삿된 무리(이교도/악령)들이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3]

티베트는 일본밀교와 달리 주로 금강정경에 근거하여 만다라들을 그린다. 일본의 만다라가 본존을 직접 그린 만다라, 종자자 만다라, 삼마야계 만다라를 모두 구별해서 그리는 것과는 달리, 티베트 밀교는 이 세 가지를 모두 조합하여 만다라를 조성한다. 물론 이 세 가지 만다라를 따로 그리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모든 본존들을 조각하여 만든 입체적 만다라를 최고로 여긴다.[4] 그러나 입체 만다라는 만들기가 어렵고 보존이 어려워서 현존하는 것은 몇 점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부터 한국에 티베트 불교가 들어와 만다라가 조금씩 대중에게 알려졌는데, 이 틈을 파고 돈에 눈이 먼 상인들이 만다라가 무슨 부적인 마냥 '이 만다라는 이런 데 좋네, 저 만다라는 여기에 특효네.' 하면서 만다라를 인쇄하거나 괴랄한 모양으로 조각해서 파는 것이 빈번하다. 그러나 이런 만다라는 완전히 잘못되었다. 실제 티베트 불교를 수행하는 수행인들은 이러한 광경을 보면 놀라 뒤집어지다 못해 이런 만다라를 사거나 파는 사람들을 걱정한다.[5]

또 심리치료사나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 만다라를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런 것들은 불교의 만다라와는 이름만 같을 뿐 상징과 의미가 완전히 다르므로 주의할 것.[6]

2. 심리치료에서의 만다라[편집]

external/rdice.n...
external/fthmb.t...[7]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칼) 구스타프 융이 주장한 개념으로써, 심리치료의 한 기법이기도 하다. 1의 만다라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이 만다라는 위쪽에 설명된 만다라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힌두교, 불교, 도교 등의 동양종교와 연금술과 같은 신비주의적인 사상을 비롯하여, 중세 그리스도교의 예수, 장미, 십자가 그림 등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중심을 둘러싸고 있는 순환적인 원형 혹은 정사각형의 형태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데, 융은 이러한 그림들이 무의식의 의식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통합적인 인격을 상징한다고 보고 이를 만다라라고 불렀다.

융 자신도 이러한 만다라 그림들을 그리면서 내적 균형을 잡아가기도 하였으며 그것을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과정으로서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중요한 과정으로 보았다.[8] 이는 현대 심리치료에서도 계승되어, 현대에 와서 이 만다라 기법은 미술치료, 놀이, 수행 및 안정 등을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사용되고 있다.

미술치료에서 만다라 색칠의 그 의미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내면으로의 회귀와 만남 그리고 자아실현 이라는 사람이라면 꼭 필요한 삶의 단초를 충족시키는데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람의 욕구가 충족됨으로써 만다라 색칠하기는 그 효과가 여러 방면으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만다라의 구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여기 참고.

3. 전근대 동남아시아의 정치체제[편집]

어원은 1. 다른 지역의 봉건제와 비슷한 체제로 후견 세력과 피후견 세력의 계약관계의 체제이나 군주 개인의 카리스마와 친분으로 유지되는 체제라 다음 군주 대에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체제다. 이때문에 동남아시아의 제국은 군주가 사망하면 순식간에 해체되기도 한다. 도시국가 연맹체에 가까운 봉건제로 다른 지역의 봉건제들보다 안정성이 낮은 체제라고 볼 수 있다.

4. 한국의 소설[편집]

소설가 김성동이 1978년에 "한국문학"이란 잡지에 발표한 소설로 원래는 중편소설이었지만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할때 작가가 장편소설로 개작했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이 기독교적인 배경에서 종교의 문제를 파헤친 소설이라면, 김성동의 만다라는 불교적 배경에서 종교의 문제를 파헤친 소설이다.

좌익 경력으로 처형된 아버지로 인해 괴로워 하다 승려가 된 법운과 파계승 지산의 이야기를 통해서 깨달음과 실존의 문제를 논하고 있지만, 작가의 불교에 대한 이해가 너무 얕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임권택감독에 의해서 1981년 영화화 되었는데, 법운역에 안성기, 지산역에 전무송이 캐스팅 되었다. 높은 작품성으로 일본의 명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도 만다라를 임권택의 3대 걸작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다만 소설과 영화는 결말에 있어 차이가 상당히 크다. 분량적으로 보면 맨 마지막에 가서 약간 달라지는 정도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필요하다'와 '필요없다' 수준으로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만다라의 결말과 소설의 결말이 다른 이유는 소설가 김성동이 후에 한국 불교계와의 관계가 개선되며 소설 만다라 결말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만다라 소설 초판 및 구버전을 보면 영화와 결말이 같다.

그리고 이렇게 후에 김성동이 결말을 수정함에 따라 만다라는 결말 수정 전 버전으로 읽은 평과 결말 수정 후 버전으로 읽은 평이 상당히 다르다. 만다라가 한국 문학계에서 희대의 문제작 중 하나로 손꼽혀왔던 이유를 알고 싶다면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결말이 수정되기 전 버전을 구해서 보자.

깃발 없는 기수와 더불어 임권택을 본격적으로 비평적 논의 대상으로 올려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거장 임권택의 시발점이 되는 영화.

제20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6개부분에서 수상했고 전무송은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다.

5. 웹툰 나이트런의 만다라(나이트런)[편집]

[1] 일본밀교의 만다라라고 해도 일본밀교는 중국밀교를 잘라내기>붙여넣기를 했을 뿐이라 도상이 똑같다. 9세기 중반 당나라 무종 때 당나라에서 유학한 일본 승려 엔닌의 기록에 "만다라를 베껴 그렸다. 모두 원본과 동일하여 흡족하다."하는 것이 있다. 또한 현재 일본 히에이잔이 보관하는 엔닌의 만다라는 위의 만다라와 동일하다.(장신구나 장엄물 같은 세부사항만 다르다.) 그러므로 현재 맥이 끊긴 우리나라의 신라와 고려의 밀교도 분명 위와 동일한 만다라를 조성하는 문화양식이 있었을 것이다. 즉 결론적으로 한중일 삼국의 만다라는 동일했다.[2] 만다라는 모두 네 가지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1.색을 입힌 모래로 만들기. 2.진흙이나 금속을 사용하여 입체로 만들기. 3.비단이나 종이 위에 회화로 그리기. 4.깊은 명상의 상태에서 선정(禪定)으로써 드러내기. 이중 첫번째는 원 만다라의 규칙에 따라 만들어 사용한 뒤 파괴된다. 또 네 번째는 만다라를 수행자가 마음속으로 관하여 상상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물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3] 하우스 오브 카드(미국 드라마)에서도 한 에피소드가 통째로 이 만다라에 관한 내용인데, 여기에서도 백악관에 초청된 티베트 승려들이 만다라를 완성한 후 솔(귀얄)로 쓸어서 파괴한다. 프랭크는 하필 공무중이라 이 완성의 순간을 보지 못했는데, 클레어가 그래도 파괴하기 전에 완성본 사진은 찍어놨으니 다행이라고 위로한다.[4] 일본에도 이러한 방식이 있지만, 일본의 입체 만다라는 티베트와 달리 만다라의 가장 핵심부분 혹은 중심부분만 입체로 만들고 나머지는 벽화를 배치하거나 건축물을 배치하여 처리한다. 하지만 티베트는 말 그대로 만다라 전체를 입체로 만들어 피라미드처럼 배치한다.[5] 만다라 자체가 불, 보살들의 세계. 깨달음의 영역들을 표시하는 상징이다. 앞서 설명했던 만다라가 상징하는 의미와 수행자들이 애써 만든 만다라가 완성되면 곧 이를 파괴하는 깊이 있는 이유를 상기하자.[6] 연꽃 무늬나 기하학적 도형을 여러 원색으로 칠하면 만다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냥 무시하자.[7] 심리치료용 만다라 도안. 여기다가 내담자가 색을 칠하는 식으로 그림을 꾸미며 치료를 진행[8] 쉽게 말하자면 자아 탐색과 통합과정 + 내적 균형잡기로써 이 만다라 기법을 사용한다는거다.===

만다라(1981) / Mandara (Mandala)

https://www.youtube.com/watch?v=ztXiqXgMV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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