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일본의 두 얼굴 - 니시다 철학
허우성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00년 5월 8일 | ISBN 9788932011608
사양 양장 · 신국판 152x225mm · 547쪽 | 가격 20,000원
분야 서남동양학술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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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 책은 ‘생명’과 ‘논리’ 두 개념을 평생 화두로 사유를 전개한 니시다 철학의 본격 연구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각주의와 순수 경험의 철학, 절대무의 자각의 철학, 역사·정치철학을 니시다 철학의 세 가지 발전 단계로 상정하고 그 단계를 대변할 일련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읽어 정리하였다.
[책머리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정말로 미운 대상이라면 쳐다보고 싶지도, 알고 싶지도 않은 법이다. 우리의 뿌리 깊은 반일 감정 앞에 일본은 그와 같은 대상일까. 하지만 그런 감정에 충실하여 그저 모른 채로 지나칠 수 없으리만큼 일본은 가까운 이웃이고 무시하기에는 더욱 난처한 존재다. 일본이 지리적으로 바로 이웃일 뿐 아니라, 역사·정치·외교·경제의 모든 면에서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어왔으며 현재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이 이웃으로 지내는 것은 운명이리라. 국제 사회가 한국과 일본을 2002년 월드컵 대회의 공동 주최국으로 정해준 일에도 이와 같은 역사적 운명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운명적으로 저렇게 가까운 나라인 일본을 모르고서야 어찌 세상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본을 그중에서도 특히 근대 일본을 철학이나 사상의 면에서 이해하려고 할 때, 수많은 철학자 중 누구를 제일 먼저 알아두어야 할까? 근대 일본을 대표하고 그 복잡다단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철학자는 누구인가? 그건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가 아닐까. 그의 철학이 독창성과 보편성뿐 아니라 국적성까지 보이고 있음을 감안하고, 20세기 일본이 배출한 가장 탁월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일본 내외에서 널리 인정받아왔음을 고려하면, 이 주장에 토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니시다 철학을 본격적인 연구 대상으로 삼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은 먼 얘기였다. 서양의 그 어떤 철학자보다 우리에게 멀었다. 그에 비하면,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베르그송은 물론이고, 심지어 데리다, 들뢰즈, 료타르도 우리에게 훨씬 가깝다. 하지만 멀찌감치 두고 보아왔던 니시다의 삶과 철학에 대한 얘기는 동아시아 근대사 전체의 정열과 파멸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니시다는 철학사의 면에서 보면 단순히 일본 철학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서양 철학의 지평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곳곳으로 헤집고 돌아다녔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베르그송 등을 읽으며 배운 바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항상 서양 철학에 대하여 비판의 태도를 견지했다. 그 비판에서 예외가 된 자로는 독일의 역사철학자 랑케 정도일 것이다. 니시다는 서양 철학에 대한 발언과 비판을 통하여 서양 철학사 내부 깊이 침투하고 있고, 연구자와 독자에게 그 정당한 자리매김을 요구하고 있다.
니시다는 생명의 창조적 약동의 한 순간을 확인하고, 그것을 구원의 순간이라고 여기고, 이를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데 온 심혈을 기울였다. 니시다 철학은 생명의 약동 하나하나, 하나의 생명 사건이라고 할 만한 것을 존재론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철학은 사건 존재론이라 할 수 있다. 니시다는 생명 사건의 극치에서 생명의 진수가 실현된다 하고, 이 생명 사건에 대한 정치한 논리를 치열하게 추구했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표 정도가 아니라 세계의 일류 철학자로 볼 수 있다. 생명이 선(禪) 수행이나 베르그송 같은 서양 철학자에서 온 것이라면, 논리 부여는 생명철학을 보편화하겠다는 철학자로서의 소명 의식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는 서양 철학서를 깊이 읽으며, 그가 서양의 대표 논리로 간주했던 ‘일(一)의 다(多)’라는 논리를 비판하고, ‘일즉다(一卽多)’라는 생명의 논리를 창안하여 그걸 부단히 벼려 나갔다.
니시다는 처음 생명을 찾아 외부로 나가지 않고 내심으로 들어갔다. 그의 초기 철학이 보이고 있는 내향성은, 그가 패기에 찬 청년으로 출발했으나 곧 실직과 혈육의 죽음 등 인생의 여러 난관에 부딪혀 깊은 좌절과 비애를 맛보게 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선 수행을 하게 되었다는 점과 상당히 깊은 관계가 있었다. 청·장년기에 경험했던 이와 같은 비극의 경험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는 순수 경험과 절대무의 자각의 철학을 성립시켰다. 그러나 일본이 전쟁기에 돌입하게 되자 조국 일본의 운명에 깊이 공감하며 역사철학을 전개해나갔다.
니시다는 역사적 생명의 구현을 추구한 역사철학에서, 천황과 국체 그리고 전쟁을 옹호함으로써 일본 국민으로서의 국적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후기 여러 역사적·정치적 논문을 통해서 일본 국민은 어떤 역사적 환경에서도 창조적 응전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1943년 ‘역사철학’이란 주제로 쇼와 천황에게 어전(御前) 강의하기도 했다. 그는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 아래 동아 공영권 이념을 철학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이류 제국주의에 빠지게 되고, 중국과 조선인의 불행한 운명을 못보고 말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분노와 혐오를 일으키는 얘기를 듣게 되고, 한 순간의 생명 사건을 절대화하고 보편화하려는 일즉다(一卽多)의 일(하나)이 낳은 폭력을 목격하게 된다. 니시다 철학이 단순히 일본의 것만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것이라고 부른 연유는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철학자로서의 열정뿐 아니라, 일편단심 천황을 섬기고 민족을 위한다는 애국심도 분명 발휘했을 것이다. 그의 철학과 교토(京都) 학파의 철학은, 종전(終戰) 이전에는 도사카 등의 마르크시스트로부터, 이후에는 마루야마 등의 정치학자로부터 각각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 비판이 초기의 생명철학에까지 적용될 수 있을는지 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 그리고 역사철학에만 국한한다고 해도 그 비판이 니시다 역사철학의 용도 폐기나 완전 실패를 의미하는지, 오늘의 눈으로 보아도 모호하다.
니시다는 우리 한국인에게 한편으로는 생명력과 위안을, 다른 한편으로는 혐오와 분노를 동시에 안겨줄 수 있는 철학자다. 개인의 개성, 자유와 창조 행위 그리고 생명의 용출(湧出)을 주창한 생명철학에서, 우리는 상실된 생명을 회복하는 길을 확인하고 생명의 기운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천황과 국체를 옹호하는 역사철학 앞에서 우리 대다수는 혐오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니시다 철학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적어도 두 얼굴로 다가온다. 한 얼굴에서는 생명의 약동을 보고, 또 다른 얼굴에서는 제국주의 일본을 본다. 역사철학에 실망했다고 해서 약동하는 생명의 얼굴을 외면하려 해서도 안 되고, 생명철학에 도취하여 제국주의 일본의 얼굴을 망각해서도 안 된다.
니시다는 한 순간 한 순간의 생명, 우리의 행위에서 가장 고양된 순간을 지극히 사랑했다. 그걸 우리는 생명 사건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 생명 사건을 포착하기 위하여 때로는 힘의 이미지를 때로는 빛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그는 그래서 한때 19세기의 서양 인상파 화가들이 그들의 화폭에 담아내려고 했던 태양의 빛과 힘 그리고 생명을 좋아했다. 그가 절대 의지의 정점에서 노에시스(‘봄’)로 나간 것도 빛의 이미지를 따라간 결과일 것이다. 절대무의 자각 철학의 중앙에 있는 그 빛은, 불교로 말하면 심광(心光)이나 적광(寂光)을 닮아 있다. 그의 역사철학은 일장기로 상징되는 제국의 태양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제국의 태양에 논리의 힘까지 실어주자마자, 그는 제국주의 철학자로 변신하게 된다. 여기에서 보편 진리 주장과 제국주의, 달리 표현한다면 진리와 생존, 이 양자의 관계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니시다를 읽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과제다. 니시다가 믿었던 지애(知愛) 일치설에 따르면, 사랑이 없으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가 없으면 사랑할 수도 없다. 그런데 그의 글 어디에도 조선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조선은 필시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였을 것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던 존재이니만큼 공감이나 감정 이입의 대상이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일본을 중앙에 모신 팔굉일우(八紘一宇: 온 세상이 하나)라는 슬로건은 조선과 중국의 타자성을 근원적으로 박탈하고 말았다. 필자는 하지만 이 책에서 일본인 니시다에 대하여 그가 다 못 한 지애설을 실천에 옮기면서, 알기 위해서 사랑하려고 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이해가 나와 우리에 대한 자기 이해를 심화시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일본 철학자를 알아야 하는가? 일본이라는 타자를 알기 위해서다. 타자에 대한 이해는 자기 이해의 일부다. 타자 이해 없는 자기 이해는 원리상 불충분할 뿐 아니라, 타자에 대한 오해와 폭력을 동반하기 일쑤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일본의 어떤 대학에 한국학을 설치하지 않는 한, 우리도 일본학을 개설할 수 없다고 하는 목소리가 국내의 일부 대학에 있다. 이와 같은 목소리에는 일본을 쉽게 문화적·철학적 상국(上國)으로 대접해주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깊이 배어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거부감이 서양 학문에 대해서는 그다지 강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역사적 기억 때문인가? 서양이 정의로운 상국으로 보여서 그런가? 서양이 전달해주는 내용이 좀더 근사한 보편으로 보여서 그런가? 아니면 애당초 보편이 생존과 생육에 관계된 것이라 미리 이해하고, 배울 것이라면 보다 진보한 것으로부터 최후의 승자로 보이는 서양으로부터 배우는 편이 더 낫다고 여기는 것일까? 우리가 서구와 일본을 차별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일본을 잘 알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다.
조국 일본을 열렬하게 사랑했던 니시다 같은 사상가를 연구할 때, 한국인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은 많이 다른, 때로는 상반된 역사적 기억을 물려받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 1909)의 죽음이 그와 같은 예에 속한다. 이토는 일본 최초의 내각 총리대신, 추밀원(樞密院) 초대 의장, 한국 통감을 역임한 자로, 일본에서 근대 일본의 대표적 정치가, 근대 일본의 기틀을 마련한 지도자, 일본 입헌 정치를 확립한 정치가 등등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리에는 주로 일본 제국주의의 수괴, 침략의 원흉, 동양 평화를 파괴한 주범으로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의사(義士) 안중근(1879∼1910)의 의로운 행위를 통하여 이토를 민족의 원수로 기억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안중근은 흉악범이고 사형 받아 마땅한 인물이었다. 이와 같이 상반되는 역사적 기억 아래서 한국인이 일본인 철학자를 공정하게 연구할 수 있을까? 일본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연구와 발언에, 기억과 전통의 힘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지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또 그 힘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을까? 이런 여러 문제가 미제의 것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최소한 우리 민족의 역사적 기억에 짓눌려서 또는 단순한 민족 감정에서 이 책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는 이 책의 제목에서 ‘니시다 철학 비판’이라고 하는 대신에 단순히 ‘니시다 철학’이라고 했다.
생명과 논리의 니시다 철학은 대체로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자각주의와 순수 경험의 철학이고, 다음에는 절대무의 자각의 철학이며, 마지막으로 역사·정치철학이다. 필자는 이들 세 시기를 삼부로 나누고, 각 부의 중심에 「자각주의와 순수 경험: 진정한 자기를 찾아서」(3장), 「절대무의 자각의 철학: 빛 중심의 의식 다차원론」(5장), 「역사철학」(7장)이란 제목의 장을 각각 배치해두었다. 그것들 이외에도 「삶과 철학」(1장), 「두 생명과 하나의 논리」(2장), 「예술론과 신체론, 그리고 서양 예술가들」(4장), 「역사철학 이전의 ‘역사’와 전회」(6장), 그리고 「역사철학 비판」(8장)의 장을 넣어두었다.
1장은 니시다 철학이 형성되는 전기(傳記)적·역사적 배경을 다루는 장이다. 생명과 논리를 다루고 있는 2장 ‘두 생명과 하나의 논리’에 대해서는 약간 긴 설명이 필요하다. 2장은 니시다 철학의 정수이고 이 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의 개론은 아니다. 이 장을 읽고 이해하게 되면 나머지 모든 부분의 윤곽이 짐작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개론적인 성격이 있다. 하지만 그 난해성 때문에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개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 위치에 둘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다. 하나는 니시다 자신이 인생의 아주 초기부터 죽을 때까지 생명과 논리라는 두 개념들을 중심으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해왔다는 점이다. 이 두 개념은 따라서 그의 철학적 흐름을 관통하는 평생 화두에 해당한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는 필자에게 있다. 2장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니시다 철학 전체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안목을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필자는 2장을 뒤로 보낼 수도 없었고 빼기는 더욱 난감했다. 그리고 보다 쉬운 말로 바꿔보라는 요구도 있었지만, 그걸 들어줄 수 없었던 것이 반드시 시간의 제약 때문만이 아니다. 2장의 난해성은 오히려 니시다 철학의 난해성이다. 2장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니시다 철학을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독자 여러분도 필자처럼 한 번 그 이해에 도전해보라는 뜻이다.
니시다의 철학적 언어와 사유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2장을 건너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무리하게 읽다가 도중 하차하게 되면 독자와 필자 모두의 손실이기 때문이다. 3장, 4장, 그리고 7장을 읽은 후에, 아니면 최소한 예술론을 다룬 4장을 읽은 후에 2장을 읽기를 권한다. 예술가의 행위를 설명하는 말 속에서 ‘생명과 논리’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술로 통하는 길은 니시다가 상당 기간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간 경로이기도 하고, 필자가 그의 철학을 이해하면서 밟아나간 길이기도 했다.(각주 1, 내용: 이 책이 출판되기 전 서남재단은 이 책에 대하여 두 분 전문가의 심사 의견을 얻어서 필자가 참고로 삼을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해두었다. 심사자 한 분은 서강대 종교학과의 길희성 교수고, 다른 한 분은 역사 전공자라는 것만 알 뿐 그 이상은 모른다. 두 분의 의견에 필자가 일일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원고를 읽고 의견을 주시고 여러 가지 개선할 점들을 지적해주신 일에 대해 깊이 감사를 드린다. 특히 길희성 교수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여러 방면에서 의견을 주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반영하도록 힘썼다. 길교수는 특히 ‘생명과 논리’의 장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과 더불어 대안까지 제시해주었다. 2장이 이 책에서 가장 불만족스럽고 난해한 부분이라고 하고, 책으로 출판할 경우 빼어버려도 무방하며, 아니면 다시 써서 책의 결론 부분에 두든지, 현 위치에 두려면 대폭 수정·보완하기를 바란다는 의견이었다. 필자 스스로 뺀다는 생각까지는 못했지만 뒤로 보낼까, 라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제시한 세 길 중 아무 길도 따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본문에서 설명한 대로다. 또 한 분의 심사자인 사학자는 주로 일본 역사에 대한 필자의 기술에 주목하고 있었다. 인명·역사적 사건에 대한 명칭의 오류 또는 불일치를 지적해주었는데, 그건 감사한 마음으로 금방 수용했다. 일본사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지만, 필자는 스스로 취약한 분야라고 느끼는 부분이다. 그분은 니시다 철학이 동시대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과 그 현대적 연관성이 있을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주었다. 당장 검토에 착수할 수는 없지만 니시다가 국내 학계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를 과제로 남겨둔다. 그런데 이 사학자는 필자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생명과 논리 부분에 대해서는 별로 반응이 없었다. 니시다식으로 말하자면, 그분은 평생 시간을 공간적으로 이해하는 데 전념하고, 인격의 시간 또는 질적·내용적 시간의 면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사학도의 특성 때문이리라. 하지만 특성은 동시에 한계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6장에서는 전회 이전의 역사에 대한 니시다의 이해와 전회의 과정을 추적해볼 것이다. 8장은 니시다 역사철학에 대한 다른 이의 비판을 다루는 장이 될 것이다. 거기에서 일본 내부의 세 가지의 비판적 시각과 함께, 메이지 유신에 대한 한·일 사학자들의 긍정적 태도를 검토하고, 이 긍정적 태도가 니시다 역사철학에 대한 평가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생각해보고, 마지막으로 그의 역사철학이 제기하는 최대의 문제가 보편 진리 추구와 집단의 생존 사이의 관계에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것이다.
니시다는 『선의 연구』를 출판한 1911년부터 1945년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글을 썼다. 한창 기운이 왕성한 시절에는 매년 3∼4편의 논문을,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여 수백 매에서 천여 매 이상에 달하는 무게 있는 논문을, 주로 철학전문 잡지에 발표했다. 본 연구의 기본 자료로 삼았던 『니시다 전집』은, 발표된 논문들이 일정 분량 모여서 생전에 책의 형태로 출판한 것을 니시다 사후 다시 정리하여 발간한 것이다. 그는 생명·논리·개물·일반·행위·역사·시대 등의 핵심 주제들을 반복하여 다루고 있다.(각주 2, 내용: 가령 『선의 연구』(1911)는 수년에 걸쳐(1906∼1909) 발표된 네 편의 논문을 단행본의 형태로 출판한 것이다. 그 이후 7년에 걸쳐(1911∼1917) 발표한 10여 편의 글을 모아 『사색과 체험』이란 제목의 단행본으로 약간 내용을 달리하며 세 차례 출판했다. 이와나미 서점이 1665년 전집 발간시 『선의 연구』와 『사색과 체험』 둘을 하나로 합해 전집 1권으로 삼았다. ) 그 반복은 하지만 종전 입장의 되풀이가 아니라 차이와 새로운 변화를 담아나갔다. 부단히 자신의 입장을 수정·보완·발전시켜간 니시다 철학에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도 최후·최종의 입장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가 종전 이후까지 살아 남았다면 달라진 역사적 환경에 따라 상당히 다른 철학을 전개해 갔을 것이다.
니시다의 논문 하나하나는 대체로 자기 완결적이거나 ‘자기 동일적’이라는 의미에서 하나의 개물(個物)이다. 동시에 그 논문이 집필 당시의 니시다 사유 전체의 모습을 요약하여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보면 하나의 전체다. 논문 한 편이 하나의 논문이면서 전체를 담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개물즉일반(個物卽一般)’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 방식은 ‘불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유의 중점에 ‘불변’의 핵심 같은 것을 두고 부단히 새로운 요소를 첨가하여 새롭게 형성해가는 것이 그의 글쓰기 방식이었다. 자기 동일을 유지하면서도 왕성한 철학적 창조력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부단히 변화해갔으므로, 한 논문과 다음 논문 사이에 불연속의 연속의 관계가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동일의 유지 부분이 연속이고 변화의 부분이 불연속이다. 그 변화의 동력은 니시다의 철학적 창조력과 집요한 성찰과 더불어 시대 상황에 대한 민감한 반응, 그리고 서양 철학서 읽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니시다 철학에 대한 최선의 연구 방법은, 전집에 포함된 모든 논문을 몽땅 읽고 논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간파하여 적시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매우 더딘 방식일 뿐 아니라, 니시다 철학에 대한 한글 최초의 연구서에도 어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주요 주제를 선별한 다음, 그 주제에 따라 여러 논문을 통하여 변화해가는 궤적을 충실히 따라가며 설명하는 방식이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개별 논문이 가지고 있는 자기 완결성을 깰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개개의 개념이 변화해나간 궤적을 모든 논문 안에서 확인하는 일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고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취한 방법은 니시다 철학에 세 개의 발전 단계를 상정하고 그 단계를 대변할 만한 거의 같은 시기에 발표된 일련의 논문을 집중적으로 읽어 정리하는 식이었다.
니시다의 언어는 매우 생경하고 난해하다. 첫째 이유는 그에 대한 국내 연구가 거의 없고, 번역 또한 『선의 연구』를 제외하면 전무한 형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그의 창조와 독창이 빚어낸 수많은 철학적 신조어들 때문이다. ‘개물즉일반’도 그런 신조어 중 하나다. 니시다는 질적으로 가장 고양된 한 순간의 생명 사건을 ‘개물즉일반’이란 말로 그 성격을 규정했다. 개물과 일반은 각기 서양 철학이 말해온 존재론의 기초 개념인데, 의미상 ‘개물즉일반’이란 개념을 사용하기가 매우 곤란하다. 그런데 니시다가 개물과 일반이 상호 한정적으로 ‘즉’의 관계에 있다고 할 때, 우리는 낭패와 곤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표현 이외에도 영원이면서 찰나, 찰나이면서 영원 등과 같이, 언뜻 보면 형용모순의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런 신조어들을 이해하려는 결심과 인내가 없다면 니시다 철학의 연구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니시다 언어가 갖고 있는 생경함과 난해함을 완화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의 글을 직접 읽어 서서히 친숙해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직접 인용의 방식을 다소 사용하였다. 국내 니시다 철학의 연구 여건이 아직 미숙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원문을 읽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니시다 공부가 될 수 있다. 독자는 이러한 직접 인용을 읽음으로써 필자의 해석과 주장의 타당성을 점검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하나의 장 안에서 짤막한 소제목을 달아둔 것도 이해에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그것만 읽더라도 전체 내용의 줄거리를 짐작할 수 있도록 해보았다. 니시다 철학에 대한 연구와 번역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에는 좀 다른 방식으로 쓰고 싶다. 하와이 대학 박사학위 취득 논문이 니시다를 주제로 한 것이었는데, 그건 이미 십일 년 전의 일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니시다 철학 연구를 지원 과제로 선정해준 일, 그 이후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단계의 중간 과정을 성실하게 밟아준 일, 등등에 대하여 재단과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린다.
2000년 4월, 허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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