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나를 괴롭혀온 두 가지 감정은 수치심과 죄책감이다.
이 두 가지만 없었다면 내 인생은 훨씬 행복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를 괴롭혀온 두 가지 감정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했다.
어느 날 영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책
데이빗 호킨스의 ‘의식혁명’을 읽게 되었는데
호킨스 박사도 수치심과 죄책감을 가장 큰 부정성으로 보고 매우 낮은 조도를 부여했다.
그는 의식의 밝기를 도식화해서 룩스로 나타낸 것으로 유명하다.
수치심(shame)의 밝기는 20룩스다.
수치심은 심리적 건강을 무너뜨리고 몸을 아프게 만든다.
수치심보다 더 낮은 부정성은 없는데 죄책감조차 이보다 나은 수준의 40룩스다.
수치심과 죄책감은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 다르다.
가령 한 아이가 상점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없는 것을 보고 물건을 슬쩍했다고 하자. 도둑질을 한 아이의 마음속에는 ‘죄책감’이 요동치게 된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가게주인이 아이의 집을 찾아가 “당신의 아이가 도둑질을 했다”고 큰소리를 떠들고 부모도, 형제도, 동네 사람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 아이는 죄책감을 넘어서는 감정, 자신의 존재가 무너지는 감정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수치심이다.
수치심은 인간의 체면을 깎아내려 자존감에 치명상을 입힌다. 수치심이 극단에 다다르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자살은 인간이 수치심을 견디지 못해 그 칼날을 내부로 겨눈 것이다.
만약 그 칼날이 내면이 아닌 외부로 향하면 극단의 잔인함이 된다. 도덕적 극단주의자는 자신의 수치심을 남에게 투사하여 타인을 공격하는데 심지어 이러한 공격조차 정당한 것으로 착각한다.
“너는 잘못했으니까 벌을 받아도 싸.”
세간에 문제가 되었던 ‘여혐 묻지마 범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도덕적 극단주의자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는 정숙하지 못하므로 응징해 마땅하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을 파괴하고 남도 파괴하는 강한 부정성이 수치심이다.
사람마다 수치심을 느끼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 나의 잘못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크게 요동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바로 반성하고 사과한다. 그러면 괴로운 감정이 상쇄되는 것을 느낀다.
잘못하지 않은 일 갖고 비난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상대에게 실망하는 것으로 감정의 평정을 찾는다. 그를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그것이 나의 복수다.
물론 비난의 크기가 막대하다면 나도 평정심을 잃겠지만 나는 공인이나 샐럽이 아니기 때문에 몰아치는 비난을 받을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내가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는데 상대가 그것을 모른 척 넘어가 줄 때다. 그럴 때 나의 수치심은 극에 달해 정말 죽고 싶어진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데 징벌이 없다는 것. 이것이 견딜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를 찾아가 나를 벌해달라고 말할 용기도 없다.
아이들도 이런 감정 때문에 자살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친구는 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를 하고 있다.
그 친구가 말하길 대다수 학생들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지점은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낄 때’라고 한다.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노래도 못하므로 자신이 이 사회에 아무 보탬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것이다.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나는 그 대답이 매우 참신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릴 때도 내가 사회에 무슨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태어났으니 사는 거 아닌가.
다만 부모님 속을 썩이지 않고 선생님이나 친구 괴롭히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 역시 수치심과 관련이 깊은데 누군가에게 야단맞는 게 매우 수치스럽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결국 야단 안 맞으면 다행이라는 생각, 조금 노력해서 칭찬까지 들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때는 야단맞는 게 수치스러웠는데
지금은 상대방이 모른 척 넘어가 주는 게 수치스럽다.
심지어 아주 오래전 누군가 나의 잘못을 슬쩍 넘어가 준 사실까지 떠오르니 나는 매일매일이 너무나 괴로운 것이다.
나는 사실 이 괴로운 감정을 벗어나는 방법도 알고 있다. 의식혁명에서 말하는 긍정성 즉 중용, 자발성, 포용, 이성, 자발성, 사랑, 기쁨, 평화, 깨달음으로 나를 이동시키는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으므로 이 이야기는 다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