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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2018. 1. 28. — 카마다 토지 : [고사기]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일본서기]를 읽으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테마가 되고 ...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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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4. —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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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by소걸음Jan 24. 2018
개벽신문 제67호, 2017.9
대담 :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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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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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에 앞서
(1) 영성으로 여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이르고, 그가 쓴 논문과 수필 그리고 칼럼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철저한 수도·수행·수련을 쌓아서 신도적(神道的) 영성 인간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온 인물이다. 종교적·문화적 활동도 활발하고 광범위하여, 신도(神道) 노래를 작곡·작사·연주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다. 그가 애용하는 자연악기 - 특히 돌피리(石笛) - 에 혼을 담아서 부는 신묘한 음령(音靈)은 심신혼(心身魂)에 깊게 울려 퍼진다. 영화도 제작하였는데 거기에는 ‘카마다혼’(鎌田魂)이라고 할만한 것이 용해되어 있다.
카마다 교수의 신도학에는 물학(物學)·심학(心學)·기학(技學)·영학(靈學)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시류와 상황에 의해 좀더 강조·특화되는 변주는 있지만-. 그것은 김태창 선생의 한학1에 물학(物學=자연미학)·심학(心學=도덕리학)·실학(實學=실언실행학實言實行學)·영학(靈學=활명신생학活命新生學)이 상극·상화(相和)·상생적으로 연동하고 있는 것과 깊게 공명한다. 그래서 이 대화는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기보다는 혼과 혼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영성의 철학대화가 되리라 기대된다.
이번 대화는 일본적 영성의 카마다 토지적인 체인과 한적 영성의 김태창적 체득이 그 사이에서 야마모토 쿄시적 직각(直覺)을 통해서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한 진지한 시도이다. 전지구적·전인류적으로 보편타당한 것을 만들어내기 직전의 일본인과 한인(韓人)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함께 공공하는 영성의 철학 대화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인과 한인이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실현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영성의 작용에 주목했다는 점이 이번 대화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그 작용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인이 근원적 생명력을 개체생명의 내부에 내폐(內閉)시키는 것(物)이 아니라, 개체생명과 개체생명의 사이·만남·어우러짐에서 드러나는 영적인 운동과 소통 그리고 변화를 창발·촉진·진화시키는 일(事)을 말한다.
(2) 영성과 마주하는 것의 곤란함과 진지함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 영성(스피리츄얼리티)은 어려운 문제이다. 마음도 충분히 가시화될 수 없지만 영(靈)이나 영성은 그 이상으로 가시화될 수 없고 양화될 수 없으며 측정될 수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의식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경우에는 직관이나 상상력이나 추측이나 비유를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신도영학(神道靈學)을 기초지운 혼다 치카아츠(本田親徳. 1822-1889)는 “영으로 영을 대한다(以靈對靈)”고 했는데, “뇌로 영을 대하”거나(以腦對靈) “물리학으로 영을 대하”는 것에는 방법론적으로 대상론적으로 커다란 한계가 있다는 뜻이리라. 이전에 “카마다 토지의 스피리츄얼리티 5원칙”을 만들어, ‘일본 스피리츄얼 케어워커2 협회’의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적이 있다:
1.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3요소는 ①전체성(통째) ②근원성(뿌리) ③심화·변용(깊어짐)이다.
2.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삶의 나침판’(생명의 콤파스)이자 ‘도(Way)’이다.
3.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혼자’이면서 ‘함께 가는 두 사람[同行二人]’이다.
4. 스피리츄얼 케어는 ‘사이’에 있는 작용을 감지하는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임기응변적 발동이다.
5. 스피리츄얼 케어는 ‘생태지(生態智=자연에 대한 깊고도 신중한 공포와 외경에 기초하여 생활 속에서의 예민한 관찰과 경험으로 단련된, 자연과 인공의 지속가능한 창조적 균형유지 시스템의 기법과 지혜)’에 의해 연마된다.
이번 대화에서도 이와 같은 내 나름대로의 ‘영성’론을 피력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차이가 부각되었다. 그 차이 중의 하나는 수평축과 수직축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타계관(他界觀)의 핵심에는 ‘상세’(常世)3나 ‘니라이카나이’4와 같은 수평적인 바다 저편에 혼이나 신이나 조상의 혼령[祖靈]이 사는 세계가 상정되고 있다. 그에 반해 한인의 타계관의 중심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로부터의 수직적인 시선과 바다 저편으로부터의 수평적인 시선에 의해 생기는 마음과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이웃나라라고 해도 당연히 공통점과 함께 커다란 차이도 있다. 그 차이가 풍토와 역사적 경험에도 기초하고 있음을 새삼 재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보편적 영성·지구적 영성’에 이르는 길을 ‘스사노오적 영성’의 발로·발현으로서 탐구해 나가고 싶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김태창 선생과 야마모토 쿄시 편집장에게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2.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 :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만남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카마다 토지 선생님의 [강좌 스피리츄얼학(전7권)]5의 제3권 [스피리츄얼리티와 평화]6가 이번에 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란 무엇인가요?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 : 저는 ‘스피리츄얼리티’(spirituality)와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번역어로 서로 연결시키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영성에는 크게 네 가지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근원성’입니다. 자기 자신을 근원에서부터 성립시킨 인간존재의 가장 근간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이자 뿌리입니다.
둘째는 ‘전체성’입니다. ‘전체성’을 ‘토털리티’(totality)나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요컨대 우주의 부분이 아니라 우주 전체로, 보편성과 관련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변용성’입니다. 심화,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변용’이란 한꺼풀, 두꺼풀 벗겨서 본질이 점점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세 살짜리 아이가 내장하고 있던 근원성과 전체성은 역사와 경험이 가속되고 변용되어 80세가 되었을 때에는 깊이를 더해 가지요.
넷째는 나를 나이게 하는 ‘방향성’입니다. 저는 그것을 ‘생명의 콤파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영성’ 개념의 용례에 대해서는 카마다 선생님이 [신도의 스피리츄얼리티]7에 수록된 <‘일본적 영성’의 고찰>에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논의를 인용해 가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김태창 선생님은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 제가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과정을 겪으면서 체득한 것을 말씀드리면,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은 ‘개념’이기보다는 실동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특징은 근원적 개신(開新) 작용입니다. ‘개신’이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연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활명신생’(活命新生) 작용입니다. 천명(天命)으로서의 생명, 즉 천지의 생명활동=우주생명=명(命)을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개체생명=생(生)을 새롭게 하는(新·改)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안(内)과 밖(外)을 그 사이(中·間)에서 양쪽을 양립양전(兩立兩全)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작용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생명 그 자체이게 하는 내재적 생명력으로서의 혼=넋과 그 외재적 타자의 동류(同類)의 생명력=혼=넋을 그 사이에서 맺고·잇고·살리는 작용입니다. 혼=넋은 개체내유(個体内有)의 생명력이고, 영=얼은 개체(생명)와 개체(생명) 사이에서 양쪽을 안고 넘어서는 생명력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민독창(爲民獨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여민공창(與民共創)의 작용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일본적 영성], 전후인 1946년에 [영성적 일본의 건설], 1947년에 [일본의 영성화]라는 영성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3부작을 가장 열정적으로 언급해 왔고 또 주목해 온 일본인이 바로 카마다 선생님이십니다.
종전 전후에 '영성 3부작'을 저술한 스즈키 다이세츠
카마다 토지 :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적 영성을 파토스(情動)적인 방면으로 드러낸 것이 정토종이고, 지적 방면으로 발현시킨 것이 선불교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에 반해 신도는 일본적 영성이 미숙하고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8의 신도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종교적인 깊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히라타신학(平田神學)은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국학자(國學者)의 신도 이데올로기의 원류이자 원흉이라고 대단히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히라타 아츠타네의 정치사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읽고 있었습니다만, 히 라타 아츠타네 속에 들어있는 오오모토교(大本教) 등으로 이어지는 영학적(靈學的)·영성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아츠타네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학적(靈學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론은 편협하고 부분적이며 일면적입니다. 히라다 아츠타네에 대한 스즈키다이세츠의 이해와 평가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인의 재기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부활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영성 3 부작을 발표한 그는 불교신자나 선수행자라는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우국지사의 입장에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미래공창(未来共創)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절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깊은 공명을 느꼈습니다.
저의 관심은,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성을 접근하는데 있어 일본국학(日本國學)이나 일본영학(日本靈學)의 의미파악 - 내부생명이나 생명의 내적 체험 - 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근원적인 생명의 개신력(開新力)이라고 하는 한영학(한靈學)의 작용과의 ‘상관연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지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카마쿠라불교(鎌倉佛敎)에서 일본적 영성의 시동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로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빌려서 일본화하여 사용했다는 점에 일본영학(日本靈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성적 일본’이란 생명적 개신력(開新力)에 의해 소생하는 일본이고, ‘일본의 영성화’는 일본인의 혼이 무위신앙(武威信仰=迷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자 평화일본의 건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에서 생각해 보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이 아닌 ‘영성’을 굳이 신생일본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성’이라는 말에다 근본적 개신력으로서의 역동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가 그 개신적 생명력의 약동에 눈을 떠서 그것을 체인(體認)·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소생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와 일체화된 2,600년 간의 신도국가(神道國家)가 망했다고 - .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왜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가 패전하기 1년 전에 쓴 [일본적 영성]을 카마다 토지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스즈키 다이세츠: 신도국가를 전면 부정, 카마다 토지: 자연생성력과 대지성을 평가
카마다 토지 :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자연’ 개념에는 쿠카이(空海. 774~835)9도 배운 자연지(自然智)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또 ‘스스로’와 ‘저절로’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일본신화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섬이 소금이 저절로 응결되어 생긴 오노고로섬(淡路島)입니다. 그리고 건국신화에서는 남신(男神)인 이자나기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가 성적 교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일본의 섬들(大八洲=오오야시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스히’(産靈)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입니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자연관이나 생명관 속에 생태지(生態智)로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대지를 영성의 근거로 가장 소중히 여겨 온 일본인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대지를 빼앗은 것은 실로 ‘절대모순’이군요. 게다가 그들의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식의 문화파괴에 손을 더럽히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 현인신(現人神)으로 군림하는 일본이라는 ‘자기’에 한반도 사람들을 ‘동일’화시키는(內鮮一體) 것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절대모순은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에게는 사상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의 국가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근대일본의 신도에는 과연 ‘영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일본신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카마다 토지 :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도는 생태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입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의 신도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국가관리적인 ‘인위신도’(人爲神道)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화하고 폭설을 내리고 태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다양한 자연의 형성력이나 생성력이나 무스히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삼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신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신을 제사지내 왔습니다.
제 연구실에는 오오모토교(大本敎)의 교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1836~1918)10의 [친필(お筆先)]이 있습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11은 귀문(鬼門)의 신인데, 이 친필에는 용문(龍門)의 음악공주(音姫), 비의 신, 바람의 신, 스와(諏訪)12의 신, 폭풍(荒れ)의 신, 지진의 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시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신의 원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국가신도’와는 다릅니다. 국가관리의 신도는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강한 국민국가,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견고하고 부국강병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된 문제의식은 종래의 신도적인 신성(神性)이나 불교적인 불성(佛性)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었다고 독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닐까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신도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이른바 기성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전쟁과 억압과 비리의 구(舊)일본의 파멸 위에 평화와 자유와 진리가 충만한 신(新)일본의 소생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이방인인 저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야마모토 쿄시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적 영성’의 ‘일본적’이라는 말입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는 ‘장소적 논리’가 있고, 그것은 결국 ‘대지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김태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한인(韓人)의 독자적인 사상철학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체감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먼저 건전하고 상생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본적’ 영성과의 대비로 ‘한(桓·檀·韓)적’ 영성의 특성을 저 나름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저에는 탈(脫)장소·초(超)장소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상관연동태’(天地相關連動態)이자 ‘천연성’(天然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다 선생님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대지성=자연성은 저의 정직한 감각에서 보면 지연성(地然性)=토지(土地)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과 같은 정태(情態)입니다. 반면에 제가 체감하고 있는 천지상관연동태=천연성은 천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동태(動態)입니다. 그래서 지연(地然)으로서의 자연과 천연(天然)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저를 포함한 일본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군요.
김태창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한인(韓人)에는 일본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상·철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로서의 한인을 외부에 실재하는 별도의 주체로 정당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폐된 근대한일사, ‘청일전쟁’에서 동학군 대량학살
야마모토 쿄시 : 저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시형의 행동과 사상철학을 앎으로써 한적 영성의 심오함과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깜짝 놀랄 만큼 가치있는 학문과 미래개신(開新)을 향한 공동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한살림운동 특집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청일전쟁과 한반도 식민지화를 진행한 진상을 99.9% 이상의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의 통치자에 의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한반도에 대해서 왕궁침탈과 동학농민군 섬멸이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그 진상은 [미래공창신문]에 자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언젠가 교과서의 근대 일본사가 수정되겠지요.
먼저 일본인 자신이 역사의 진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에도시대의 일본인이 조선통신사를 대단히 존경하며 그 고도의 지식을 배웠듯이, 앞으로의 일본인도 ‘이질적인 타자’인 한인(韓人)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두 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개신(開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의 하나가 되는 책으로 저는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 사람들, 2014)13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그렇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은 25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사태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쿄시 : 실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는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도 이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다이세츠가 영성삼부작에서 ‘영성’의 내실로서 다룬 것은 여래(如来)의 대비(大悲)이자 보살의 서원(誓願)입니다. 즉 스즈키 다이세츠는 어디까지나 대승불교에서 영성의 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대비’(大悲)나 ‘자비’(慈悲)나 ‘반야의 지혜’나 ‘불성’이나 ‘법성’(法性)과 같은 불교용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경애체인지(境涯體認知)로서 ‘영성’(=무분별지)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한 데에서 저는 국제인(國際人) 다이세츠의 탈일본화된 미래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카마다 선생님께서 히라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주로 인위적인 국가신도와는 다른 자연신도의 문맥에서 사용하였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마다 토지 : 히라타 아츠타네의 생각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흐름은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신도적인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도가 주자학과 하나가 되어 국가신학(國家神學)을 형성하고, 그것이 메이지헌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등으로 계승되어 가는 영학(靈學)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1875~1962)나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로 계승되어 가는 민속학과 같은, 보다 민간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의 신관(神觀)과 결부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히라타 아츠타네 내부에는 이른바 국가성과 민중성, 국가신도와 민중신도의 양극(兩極)이 있었던 것이지요.
야마모토 쿄시 :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는 원래 영성은 없다는 것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장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적 영성’을 굳이 히라타아츠타네 식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카마다 토지 : 그것은 ‘일본인의 혼의 행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면은 ‘야마토혼(大和魂)이나 ’야마토정신(大和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신도적인 문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츠타네가 사사(師事)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시키지마(敷島)의 야마토정신(大和心)을 누가 물으면 아침해에 비쳐지는 산벚나무꽃"이라고 노래했고, 그 전의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1697~1769) 등은 [만요슈(万葉集)]의 정신을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히라타 아츠타네에 이르면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에 이미 원형적인 신화(原神話)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일본적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기(記紀)]14나 축문(祝詞)15은 그런 일본적 영성을 부분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라고나 할까, 보다 심층에 있는 근원성이나 보편성을 ‘영성’에서 찾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즈모(出雲)의 신(神)이 지니고 있는 힘, 즉 ‘카쿠리요’(幽世=저세상)의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야마토정신이 완성되어 안심하기 위해서는 사후의 생존까지를 포함한 진혼(鎭魂)을 말하고, 그 혼의 행방을 내다본 상태에서 영성이라는 존재를 실감하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라타신학(平田神學),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로 흘러들어간 것은 그런 혼의 세계에 대한 체험·체현·체득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영학(靈學)의 방향이 히라타신학 속에 있는영성적 방향을 계승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피리츄얼리티의 한 요소로 카마다 선생님은 우주전체의 보편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드셨습니다. 한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7년에 쓴 [일본의 영성화]에서 기기신화(記紀神話)의 우주생성 이야기에 대해 “보통의 논리 형성 및 과학적 사상 위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비합리성”, “원시민족의 망상담(妄想譚)”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영성이 일본의 신도보다 도리로 보나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나 뛰어나다는 전거로, 가령 <보현보살의 십원(十願)>을 의역(意訳)하여 “제불여래(諸佛如来)의 본체는 대비심(大悲心)이고, 이 대비(大悲)는 중생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숭고한 뜻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단지 모든 생명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도 강도 돌도 흙도 별도 눈도 모두 일체중생이다. (중략) 비에도 꽃에도 산에도 구름에도 이 자비심을 비춰주는 것이 있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러한 중생을 상대로 모든 공덕과 모든 혼을 거기로 회향(回向)하고, 그것에 따라서 함께 아뇩다라삼막삼보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은 무궁함을 지니고 있다, (중략) 제불여래는 하나같이 이 대비(大悲)를 체(體)로 하고 있다. 이 대비체(大悲體)가 곧 영성적 생활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日本の靈性化], 法蔵館, 1947)
지금까지의 카마다 선생님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동학사상이 각성”
김태창 : 먼저 카마다 선생이 국가신도 혹은 인위신도(人爲神道)와는 다른 자연신도(自然神道)를 강조하고, 그 맥락에서 영성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신 점에 저는 공통인식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국학(國學)은 그것이 일본에서이건 한국에서이건, 내부결속을 위해서는 순기능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이나 문화의 벽을 넘어서 국가간·민족간·문화간의 대화·공동(共働)·개신(開新)을 실천하는 데에는 역기능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적’(韓的)이나 ‘한인’(韓人) 또는 ‘한민’(韓民)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하나의 차원에 고정·폐쇄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인을 일본인이게 하는 원상(原像)으로서의 영성을 의미깊게 논구하기 위해서 신도적(神道的)·불교적 배경을 명시하려고 하는 카마다 선생과 야마모토 편집장의 의견을 성의를 담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확인한 상태에서 굳이 ‘한적 영성’(=한인적·한민적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체험적 실감을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이지안지’(以地安地=땅으로 땅을 편안하게 한다)적 생명력이고, ‘한적 영성’은 ‘이천벽지’(以天闢地=하늘로 땅을 연다)적 생명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무한한 포용성과 평화성과 평등성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한인(韓人)의 역사적 집합체험, 그리고 저의 개인적 체험의 핵심에는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대지를 빼앗기고,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토대로서의 토지를 뿌리째 뽑힌 “저주받은 대지의 백성”(Frantz Omar Fanon. 1925~1961)의 무의식이, ‘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한(恨)’의 의식과 무의식의 형태로, 삶 속 가장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습니다. 대지야말로 실로 전란과 살육과 억압과 불평 등과 비리비도(非理非道)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대지박탈의 실체험이 적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야마모토 쿄시 :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본인은 대지를 상실한 난민으로 세계에 흩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은 싫더라도 대지를 빼앗긴 백성의 비참함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의 일본은 일찍부터 원전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7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국자멸의 길이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생각있는 동아시아의 이웃나라 사람들과 연계해서 생명소생·활명(活命)연대 운동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김태창 : ‘한적 영성’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이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정토교(浄土教), 특히 신란(親鸞) 등과 선불교에서 그 지적(知的)·정적(情的) 자각의 계기를 확인하는 것과 대비해서 보면, 한적 영성은 최제우나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거기에서 촉발된 민중/농민 운동/투쟁에 의해 확실히 자각·각성·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 다시개벽’(再開闢)적 영성이자 ‘시천주’(侍天主)적 영성이자 ‘내유신령(内有神霊) 외유기화(外有氣化) ’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두 번째 특징은 ‘활명신생’(活命新生) 작용입니다. 천명(天命)으로서의 생명, 즉 천지의 생명활동=우주생명=명(命)을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개체생명=생(生)을 새롭게 하는(新·改)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안(内)과 밖(外)을 그 사이(中·間)에서 양쪽을 양립양전(兩立兩全)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작용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생명 그 자체이게 하는 내재적 생명력으로서의 혼=넋과 그 외재적 타자의 동류(同類)의 생명력=혼=넋을 그 사이에서 맺고·잇고·살리는 작용입니다. 혼=넋은 개체내유(個体内有)의 생명력이고, 영=얼은 개체(생명)와 개체(생명) 사이에서 양쪽을 안고 넘어서는 생명력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민독창(爲民獨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여민공창(與民共創)의 작용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일본적 영성], 전후인 1946년에 [영성적 일본의 건설], 1947년에 [일본의 영성화]라는 영성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3부작을 가장 열정적으로 언급해 왔고 또 주목해 온 일본인이 바로 카마다 선생님이십니다.
종전 전후에 '영성 3부작'을 저술한 스즈키 다이세츠
카마다 토지 :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적 영성을 파토스(情動)적인 방면으로 드러낸 것이 정토종이고, 지적 방면으로 발현시킨 것이 선불교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에 반해 신도는 일본적 영성이 미숙하고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8의 신도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종교적인 깊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히라타신학(平田神學)은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국학자(國學者)의 신도 이데올로기의 원류이자 원흉이라고 대단히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히라타 아츠타네의 정치사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읽고 있었습니다만, 히 라타 아츠타네 속에 들어있는 오오모토교(大本教) 등으로 이어지는 영학적(靈學的)·영성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아츠타네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학적(靈學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론은 편협하고 부분적이며 일면적입니다. 히라다 아츠타네에 대한 스즈키다이세츠의 이해와 평가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인의 재기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부활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영성 3 부작을 발표한 그는 불교신자나 선수행자라는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우국지사의 입장에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미래공창(未来共創)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절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깊은 공명을 느꼈습니다.
저의 관심은,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성을 접근하는데 있어 일본국학(日本國學)이나 일본영학(日本靈學)의 의미파악 - 내부생명이나 생명의 내적 체험 - 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근원적인 생명의 개신력(開新力)이라고 하는 한영학(한靈學)의 작용과의 ‘상관연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지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카마쿠라불교(鎌倉佛敎)에서 일본적 영성의 시동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로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빌려서 일본화하여 사용했다는 점에 일본영학(日本靈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성적 일본’이란 생명적 개신력(開新力)에 의해 소생하는 일본이고, ‘일본의 영성화’는 일본인의 혼이 무위신앙(武威信仰=迷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자 평화일본의 건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에서 생각해 보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이 아닌 ‘영성’을 굳이 신생일본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성’이라는 말에다 근본적 개신력으로서의 역동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가 그 개신적 생명력의 약동에 눈을 떠서 그것을 체인(體認)·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소생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와 일체화된 2,600년 간의 신도국가(神道國家)가 망했다고 - .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왜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가 패전하기 1년 전에 쓴 [일본적 영성]을 카마다 토지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스즈키 다이세츠: 신도국가를 전면 부정, 카마다 토지: 자연생성력과 대지성을 평가
카마다 토지 :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자연’ 개념에는 쿠카이(空海. 774~835)9도 배운 자연지(自然智)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또 ‘스스로’와 ‘저절로’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일본신화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섬이 소금이 저절로 응결되어 생긴 오노고로섬(淡路島)입니다. 그리고 건국신화에서는 남신(男神)인 이자나기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가 성적 교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일본의 섬들(大八洲=오오야시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스히’(産靈)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입니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자연관이나 생명관 속에 생태지(生態智)로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대지를 영성의 근거로 가장 소중히 여겨 온 일본인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대지를 빼앗은 것은 실로 ‘절대모순’이군요. 게다가 그들의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식의 문화파괴에 손을 더럽히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 현인신(現人神)으로 군림하는 일본이라는 ‘자기’에 한반도 사람들을 ‘동일’화시키는(內鮮一體) 것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절대모순은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에게는 사상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의 국가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근대일본의 신도에는 과연 ‘영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일본신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카마다 토지 :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도는 생태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입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의 신도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국가관리적인 ‘인위신도’(人爲神道)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화하고 폭설을 내리고 태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다양한 자연의 형성력이나 생성력이나 무스히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삼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신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신을 제사지내 왔습니다.
제 연구실에는 오오모토교(大本敎)의 교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1836~1918)10의 [친필(お筆先)]이 있습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11은 귀문(鬼門)의 신인데, 이 친필에는 용문(龍門)의 음악공주(音姫), 비의 신, 바람의 신, 스와(諏訪)12의 신, 폭풍(荒れ)의 신, 지진의 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시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신의 원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국가신도’와는 다릅니다. 국가관리의 신도는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강한 국민국가,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견고하고 부국강병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된 문제의식은 종래의 신도적인 신성(神性)이나 불교적인 불성(佛性)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었다고 독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닐까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신도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이른바 기성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전쟁과 억압과 비리의 구(舊)일본의 파멸 위에 평화와 자유와 진리가 충만한 신(新)일본의 소생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이방인인 저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야마모토 쿄시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적 영성’의 ‘일본적’이라는 말입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는 ‘장소적 논리’가 있고, 그것은 결국 ‘대지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김태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한인(韓人)의 독자적인 사상철학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체감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먼저 건전하고 상생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본적’ 영성과의 대비로 ‘한(桓·檀·韓)적’ 영성의 특성을 저 나름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저에는 탈(脫)장소·초(超)장소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상관연동태’(天地相關連動態)이자 ‘천연성’(天然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다 선생님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대지성=자연성은 저의 정직한 감각에서 보면 지연성(地然性)=토지(土地)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과 같은 정태(情態)입니다. 반면에 제가 체감하고 있는 천지상관연동태=천연성은 천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동태(動態)입니다. 그래서 지연(地然)으로서의 자연과 천연(天然)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저를 포함한 일본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군요.
김태창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한인(韓人)에는 일본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상·철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로서의 한인을 외부에 실재하는 별도의 주체로 정당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폐된 근대한일사, ‘청일전쟁’에서 동학군 대량학살
야마모토 쿄시 : 저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시형의 행동과 사상철학을 앎으로써 한적 영성의 심오함과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깜짝 놀랄 만큼 가치있는 학문과 미래개신(開新)을 향한 공동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한살림운동 특집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청일전쟁과 한반도 식민지화를 진행한 진상을 99.9% 이상의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의 통치자에 의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한반도에 대해서 왕궁침탈과 동학농민군 섬멸이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그 진상은 [미래공창신문]에 자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언젠가 교과서의 근대 일본사가 수정되겠지요.
먼저 일본인 자신이 역사의 진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에도시대의 일본인이 조선통신사를 대단히 존경하며 그 고도의 지식을 배웠듯이, 앞으로의 일본인도 ‘이질적인 타자’인 한인(韓人)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두 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개신(開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의 하나가 되는 책으로 저는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 사람들, 2014)13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그렇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은 25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사태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쿄시 : 실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는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도 이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다이세츠가 영성삼부작에서 ‘영성’의 내실로서 다룬 것은 여래(如来)의 대비(大悲)이자 보살의 서원(誓願)입니다. 즉 스즈키 다이세츠는 어디까지나 대승불교에서 영성의 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대비’(大悲)나 ‘자비’(慈悲)나 ‘반야의 지혜’나 ‘불성’이나 ‘법성’(法性)과 같은 불교용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경애체인지(境涯體認知)로서 ‘영성’(=무분별지)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한 데에서 저는 국제인(國際人) 다이세츠의 탈일본화된 미래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카마다 선생님께서 히라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주로 인위적인 국가신도와는 다른 자연신도의 문맥에서 사용하였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마다 토지 : 히라타 아츠타네의 생각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흐름은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신도적인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도가 주자학과 하나가 되어 국가신학(國家神學)을 형성하고, 그것이 메이지헌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등으로 계승되어 가는 영학(靈學)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1875~1962)나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로 계승되어 가는 민속학과 같은, 보다 민간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의 신관(神觀)과 결부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히라타 아츠타네 내부에는 이른바 국가성과 민중성, 국가신도와 민중신도의 양극(兩極)이 있었던 것이지요.
야마모토 쿄시 :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는 원래 영성은 없다는 것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장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적 영성’을 굳이 히라타아츠타네 식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카마다 토지 : 그것은 ‘일본인의 혼의 행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면은 ‘야마토혼(大和魂)이나 ’야마토정신(大和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신도적인 문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츠타네가 사사(師事)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시키지마(敷島)의 야마토정신(大和心)을 누가 물으면 아침해에 비쳐지는 산벚나무꽃"이라고 노래했고, 그 전의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1697~1769) 등은 [만요슈(万葉集)]의 정신을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히라타 아츠타네에 이르면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에 이미 원형적인 신화(原神話)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일본적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기(記紀)]14나 축문(祝詞)15은 그런 일본적 영성을 부분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라고나 할까, 보다 심층에 있는 근원성이나 보편성을 ‘영성’에서 찾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즈모(出雲)의 신(神)이 지니고 있는 힘, 즉 ‘카쿠리요’(幽世=저세상)의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야마토정신이 완성되어 안심하기 위해서는 사후의 생존까지를 포함한 진혼(鎭魂)을 말하고, 그 혼의 행방을 내다본 상태에서 영성이라는 존재를 실감하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라타신학(平田神學),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로 흘러들어간 것은 그런 혼의 세계에 대한 체험·체현·체득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영학(靈學)의 방향이 히라타신학 속에 있는영성적 방향을 계승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피리츄얼리티의 한 요소로 카마다 선생님은 우주전체의 보편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드셨습니다. 한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7년에 쓴 [일본의 영성화]에서 기기신화(記紀神話)의 우주생성 이야기에 대해 “보통의 논리 형성 및 과학적 사상 위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비합리성”, “원시민족의 망상담(妄想譚)”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영성이 일본의 신도보다 도리로 보나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나 뛰어나다는 전거로, 가령 <보현보살의 십원(十願)>을 의역(意訳)하여 “제불여래(諸佛如来)의 본체는 대비심(大悲心)이고, 이 대비(大悲)는 중생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숭고한 뜻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단지 모든 생명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도 강도 돌도 흙도 별도 눈도 모두 일체중생이다. (중략) 비에도 꽃에도 산에도 구름에도 이 자비심을 비춰주는 것이 있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러한 중생을 상대로 모든 공덕과 모든 혼을 거기로 회향(回向)하고, 그것에 따라서 함께 아뇩다라삼막삼보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은 무궁함을 지니고 있다, (중략) 제불여래는 하나같이 이 대비(大悲)를 체(體)로 하고 있다. 이 대비체(大悲體)가 곧 영성적 생활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日本の靈性化], 法蔵館, 1947)
지금까지의 카마다 선생님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동학사상이 각성”
김태창 : 먼저 카마다 선생이 국가신도 혹은 인위신도(人爲神道)와는 다른 자연신도(自然神道)를 강조하고, 그 맥락에서 영성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신 점에 저는 공통인식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국학(國學)은 그것이 일본에서이건 한국에서이건, 내부결속을 위해서는 순기능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이나 문화의 벽을 넘어서 국가간·민족간·문화간의 대화·공동(共働)·개신(開新)을 실천하는 데에는 역기능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적’(韓的)이나 ‘한인’(韓人) 또는 ‘한민’(韓民)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하나의 차원에 고정·폐쇄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인을 일본인이게 하는 원상(原像)으로서의 영성을 의미깊게 논구하기 위해서 신도적(神道的)·불교적 배경을 명시하려고 하는 카마다 선생과 야마모토 편집장의 의견을 성의를 담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확인한 상태에서 굳이 ‘한적 영성’(=한인적·한민적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체험적 실감을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이지안지’(以地安地=땅으로 땅을 편안하게 한다)적 생명력이고, ‘한적 영성’은 ‘이천벽지’(以天闢地=하늘로 땅을 연다)적 생명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무한한 포용성과 평화성과 평등성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한인(韓人)의 역사적 집합체험, 그리고 저의 개인적 체험의 핵심에는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대지를 빼앗기고,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토대로서의 토지를 뿌리째 뽑힌 “저주받은 대지의 백성”(Frantz Omar Fanon. 1925~1961)의 무의식이, ‘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한(恨)’의 의식과 무의식의 형태로, 삶 속 가장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습니다. 대지야말로 실로 전란과 살육과 억압과 불평 등과 비리비도(非理非道)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대지박탈의 실체험이 적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야마모토 쿄시 :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본인은 대지를 상실한 난민으로 세계에 흩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은 싫더라도 대지를 빼앗긴 백성의 비참함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의 일본은 일찍부터 원전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7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국자멸의 길이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생각있는 동아시아의 이웃나라 사람들과 연계해서 생명소생·활명(活命)연대 운동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김태창 : ‘한적 영성’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이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정토교(浄土教), 특히 신란(親鸞) 등과 선불교에서 그 지적(知的)·정적(情的) 자각의 계기를 확인하는 것과 대비해서 보면, 한적 영성은 최제우나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거기에서 촉발된 민중/농민 운동/투쟁에 의해 확실히 자각·각성·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 다시개벽’(再開闢)적 영성이자 ‘시천주’(侍天主)적 영성이자 ‘내유신령(内有神霊) 외유기화(外有氣化) ’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