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共創)
by소걸음Jan 18. 2018https://brunch.co.kr/@sichunju/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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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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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주 : 이 글은 2017년 8월 14~16일에 동양포럼 주최로 열린 한·중·일 철학·문학 대화를 위한 사전의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그해 3월 1일 오후 일본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에 있는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선생의 자택에서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인의 사회로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과 후카오 선생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와 미래공창이라는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을 미래공창신문 재외기자 겸 원광대 원불교사상연구소 연구원 야규 마코토(柳生眞) 박사가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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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발행인 겸 편집
김태창 : 동양포럼 주간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 오사카대학 준교수
시간 : 2017년 3월 1일
장소 : 오사카의 타카츠키시(高槻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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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의미에서의 혼의 해방을 위한 시론
야마모토 교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보통 ‘식민지화’라고 하면 근대 이후 서양 열강에 의한 인간의 생명과 재산 및 여러 권리들을 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만 이번은 <혼의 탈식민지화> 총서를 내시고 전문분야 횡단적으로 연구와 언론 활동을 하고 계시는 후카오 요코 오사카대학 준교수와, 공공하는 철학의 시각에서 ‘동아시아에 있어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중심 의제로 한 대화 활동을 계속해 오신 김태창 선생과의 진솔한 대화가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저의 생각이 있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태창 동양포럼 주간 : 한국에서 오늘(3월 1일)은 1919년에 조국의 자주독립을 전세계에 선언하고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강력 규탄하기 위해서 남녀노소가 총궐기했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3.1절이라고 부르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후의 36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포함해서 98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적·집단적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 상황에서의 탈출과 참된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틀림없이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정치적·법률적인 의미에서는 자주독립 주권국가의 지위를 되찾았는데도 불구하고 철학적·사상적·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도 말끔히 탈식민지화되고 탈영토화된 영혼을 키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양(多樣)·다원(多元)·다층(多層)의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주제로 삼은 대화 집회를여러 번 개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어딘가 미흡한 성과밖에 올리지 못해 실의와 좌절에 빠져 있던 차에 우연히 후카오 선생의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책과 그에 관련된 몇 권의 총서들을 읽게 되었고 몇 가지 절실하게 체감한 바가 있어서 우선 한중일의 관심 공유자들에 의한 대화의 장을 마련해서 진지한 공구공론(共究共論)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고 한·중·일 삼국간의 바람직한 미래를 함께 열어 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카오 요코(深尾葉子) 오사카대학(大阪大學) 준교수 : ‘혼의 식민지화’라는 의미에서는 동아시아가 공유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김태창 선생님의 문제 관심이군요.
김태창 : 그런 생각을 생각으로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올해 광복절(8월 15일)을 끼어서 8월 14일부터 16일까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제로 한중일의 학자·연구자·학생들에 의한지역간·세대간·남녀간 대화의 광장을 제가 주재하는 동양포럼에서 개최하려고 합니다.
후카오 요코 : 아주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한·중·일에서 각각 한 명씩 국민 작가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문학자를 뽑아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비교 검토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는 철학이나 사상보다는 문학에서 더 잘 다루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 단계로 한국의 조명희(趙明熙),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그리고 중국의 루쉰(魯迅)을 새로 조명해 보려는 것입니다. 세 명 모두 압도적인 문명력(文明力)을 가지고 쳐들어오는 서양 중심의 근대화라는 이름의 격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저항하고, 자민족과 자국민의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점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저의 관심은 한국·한국민이 대일본제국부터의 정치적·법률적인 의미에서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달성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후의 경과를 보면 중앙(서울)에 의한 지방의·현재세대에 의한 장래세대의·남성에 의한 여성의 재식민지화·재영토화라는 사태가 갈수록 심화되어가고 정치·문화·의식적인 의미에서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한 영토화라고밖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위기감과, 그것에 대해서 사상적·철학적으로 어떻게 대응·대결·대처하느냐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다차원적인 식민지 근성과 영토민적 기질의 발본색원을 시도하는 것이 긴급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참된 의미에서 영혼이 자유롭게 된 상태에서만이 한중일의 바람직한 미래를 서로·함께·치우침 없이 창발(創發)시킨다는 목표가 실현가능하게 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한·중·일이 각각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의 과정을 제대로 겪어내는 것이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라는 경험칙(經驗則)을 체득했는데 이것을 다시 증험하고 싶다는 것이 저 자신의 입장입니다. 저의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결과에 바탕을 둔 신념의 재확인입니다.
진정한 미래공창의 원동력은 정말로 자유로운 영혼 간의 영통(靈通)·영향(靈響)·영화(靈和)를 통해야만 온전하게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하면 한중일 각각이 현실적인 현상 면에서는 각양각색이지만 근원적인 면에서는 공통적으로 영혼이 과거에 형성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중일이 아직도 상호경계와 적대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을 충분히 감안하고서도 영혼이 과거의 주박으로부터 충분히 해방되지 않는 채로 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동아시아는 교묘하게 분단되고 있습니다. 그 분단에 일본인도 중국인도 모두 놀아나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듯 쉽사리 몸과 마음과 넋이 통째로 얽매이게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만 김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야스토미 아유무(安冨步) 도쿄대학 교수와 후카오 선생이 함께 쓰신 ‘<총서: 혼의 탈식민지화>의 간행사’에서 “신체에 의해 실현되는 운동을 ‘혼’이라고 부른다”고 쓰셨습니다. 많은 것을 간결하게 표현한 이 한마디에 어떠한 의미를 담으신 것입니까? “혼”과 “마음”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혼은 몸과 맘과 뜻을 균형 있게 아우르고 조화롭게 하는 근원적 생명력
후카오 요코 : ‘혼’과 ‘마음’을 엄밀하게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감정과 마음은 이차적으로 만들어지는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애국주의”가 계속 주입되면 피가 끓고 충성심이 환기되곤 합니다.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되기 십상입니다만 실은 머리에 입력된 것에 의해서 용이하게 조작되는 면이 있습니다. 마음은 신체의 위쪽에 있고 혼은 명치 가까이에 있으며 혼은 존재의 본질이나 전체성과 직결되고 신체에 깃드는 중심이라고 느낍니다.
혼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신체성(身體性)을 가진 생명의 움직임의 역동성을 물심양면에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정된 혼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깥세상과 항상 교류하면서 삶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근원이 되는 혼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신체에 의해서 실현되는 운동’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 개개인을 생각하면 국가 레벨의 식민지화라는 문제 이전에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모나 어른들에게 양육되고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와서 여러 가지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것을 몸에 지니게 됩니다. 때로는 신체적으로 몹시 위화감을 느끼는 것조차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를 거기에 억지로 맞추게 됩니다. 그것은 “목표”가 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이기도 합니다만 바로 그러한 것이 성장 과정 속에 심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주박(呪縛)”이라는 말을 씁니다만 그것을 주입시킨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져도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계속해서 주박하고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그 주박을 없애려고 해도 ‘이것이 없으면 나는 끝장이다. 절대로 놓을 수 없다’라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되기 때문에 좀처럼 없앨 수 없습니다. 이 주박이야말로 언젠가는 인간 사회를 죽음으로 몰아놓는 작용을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근대 이후의 동아시아에서는 주박의 연쇄가 겹겹이 쌓이고 있습니다. ‘전쟁’의 기억이 다양한 주박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그것을 망각하려 하고 더욱 견고한 뚜껑 밑에 봉인하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 있는 혼은 그것에 괴로움을 느끼고 있을 텐데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에 이르기까지 밀봉당해 버리면 거기서 벗어나가기는 매우 어려워집니다.
김태창 : 이러한 경우의 ‘혼’이란 어떤 것입니까?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자면 혼이란 개개인의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몸과 맘과 뜻을 균형 있게 아우르고 조화롭게 기능하도록 받쳐주는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야말로 근본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다름 아닌 반생명·생명파괴·생명부정의 극치이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영혼이란 우주생명과 개체생명의 상관연동태인데 그것은 절대로 식민지화·영토화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는 성역인데 감히 그것을 지배·통제·주박하려는 참월이요 참람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서 온 생명의 참모습을 되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경우에는 혼의 식민지화가 어떤 현상으로 나타납니까?
후카오 요코 : 저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보면서 해설해 보았습니다. 여러 물건으로 무장한 인간의 혼이 그 무장을 잇달아 벗어가는 과정이 멋있게 그려져 있습니다. 하울의 성은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몸에 걸친 보기 흉한 성입니다만 마법이 풀리는 과정에서 마지막에 널빤지 한 장만이 남게 됩니다. 최후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태까지 가지 않으면 ‘탈식민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그러한 혼의 탈식민지화 과정을 한 번 경험한 줄로 알았습니다만 실제로는 거기서부터 또 수십 년간 다른 잡동사니들을 몸에 걸치고 그것들에 얽매어 왔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습니다. 한 번 더 그것(혼을 뒤덮은 잡동사니)을 없애야 되겠는데 한편으로는 ‘이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린다’는 고착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그것에 매달리고 있었습니다.
김태창 : 말씀을 들어보니까 제가 실제로 체험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재식민지화·재영토화와 재탈식민지화·재탈영토화가 끝도 없이 반복되는 계속적인 과정과 서로 일치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말씀하신 대로 일단 혼의 탈식민지화가 이루어졌는가 싶으면 또다시 혼의 식민지화가 잠입하게 됩니다. 정말 큰 고통입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것들을 정말 힘겹게 뛰어넘어 왔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몹시 괴로워하셨을 때는 아직 식민지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습니까?
후카오 요코 : 머리로는 ‘이것이 원인이다’라고 알고 있었지만 몸이 말을 안 듣게 됩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몸을 계속해서 괴롭혔던 것입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계속 자문하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번 자기가 있는 자리를 떠나 보라’라는 말을 듣고 관동(關東) 지방의 병원에 1주일 정도 스트레스 입원했습니다. 그런 자리가 주어져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금방 불안정해졌는데 ‘그렇게 불안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일단 안정시키고 나서 한 가지 한 가지씩 차근차근 학습을 하게 된 것이 50세를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소아(小我)의 혼은 대아(大我)와의 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립
야마모토 교시 : 스트레스 입원으로 ‘학습’을 하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의학적인 지식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씀입니까?
후카오 요코 : 그런 건 아닙니다. 입원이라고 말은 해도 실제로는 별달리 한 것이 없습니다. 그냥 병원에서 세 끼 차려주는 밥을 먹으면서 자기의 정신과 마주 대하고 ‘자기 혼자서 편히 쉬라’라는 지시를 받은 것뿐입니다. 약도 안 먹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저에게는 그런 경험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위하여’, ‘가족을 위하여’ 일상의 시간과 정신을 다 써 버리고 있었습니다. ‘저 혼자서 편히 쉬다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심한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은 해도 제몸은 편해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편해진 몸에 의식을 돌리고 자기 안에 잠재했던 에너지를 돌릴 수 있게 되었음을 확인하면서 간신히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지난달의 일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혼의 탈식민지화’는 ‘혼의 독립’과 동시 진행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혼의 독립’이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후카오 요코 : 강한 혼을 저도 동경합니다. 하지만 저처럼 투구와 갑옷으로 전신을 무장하고 몸도 굳어져 있는 상태로는 ‘독립한 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몸에 걸친 잡동사니를 벗어던진 혼이 자기 내면으로 숨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재생산되어가는 데에 아마도 ‘독립한 혼’의 참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야 겨우 일어서서 재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게 된 상태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것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나의 개인주의’라는 강연에서 앞으로는 ‘자기본위로 간다’고 말한 것과 같은 일종의 의식 전환과는 다른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조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소세키가 혼의 탈식민지화를 의식하고 있었는지 루쉰(魯迅)은 어땠는지 매우 흥미로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혼을 둘러싼 사회생태학’이라고 부르는데 물질적·물리적으로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작동함으로써 ‘삶’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항상 열려 있어서 외계와 소통함으로써 산다는 것이 성립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과 ‘혼의 독립’이 일치한 상태에서 스스로 경계를 짓고 경계 바깥의 것을 배제한다는 것은 걸맞지 않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외계와 혼 사이를 차단하던 뚜껑이 열려서 혼이 바깥세상의 공기를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게 되셨군요.
후카오 요코 : 자신이 항상 ‘이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외부에 실은 우리를 성립하게 해주는 소통작용이 널리 파급되고 있는 거지요. 그것은 아마도 우주에 퍼져 있는 연기(緣起)와도 같은 것인데 그 안에서 하나의 생명체로 살고 있는 거지요. 그러니까 혼은 틀림없이 독립하고 있지만 그 독립이라는 것은 우주적 상호작용 속에서만 가능한 독립입니다. 불교사상에서는 그것을 ‘대아(大我)’라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를 함께 생각하는 친구가 최근에 마침내 그 “대아”의 경지를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했었는데 저도 빨리 그런 경지에 도달하고 싶습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충실하게 산다’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혼의 소리’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매우 어려운 질문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합니다만 그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아주 힘든 과제이기도 합니다.
김태창 : 하지만 바로 거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평상시에는 혼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거니와 혼의 소리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습니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는 사이에 부지불식간에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만 혼은 늘 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것을 알아듣는 귀가 없거나 혹은 들리는데도 일부로 안 들리는 척하는 것이 아닐까요?
후카오 요코 : 오히려 혼의 절규를 차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김태창 : “‘혼의 소리’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납니까?
후카오 요코 : 여러 형태의 병적인 거부반응으로 나타납니다. 그것이 제 경우에는 ‘혼의 부조(不調)의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나는 여기에 갇히고 있다”라는 신호가 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혼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은 그것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고 혼이 아무리 신음소리를 내고 있어도 태연하고 멀쩡합니다.
임무를 잘 수행해서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 관료기구 안에서 기계와 같이 목적을 달성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혼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책에서는 ‘혼의 식민지화’가 그릇 속에 뚜껑이 꽉 덮여진 채로 갇혀진 혼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인격이 아니라 여러 모로 위장된 인격으로 왜곡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김태창 : 지금 일본에서는 소위 혼론(魂論) 또는 영성론(靈性論)이라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유행하고 몇몇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일본적 영성론’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에는 여러 층이 있는데 가장 깊은 층에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혼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혼은 마음과는 서로 분리시킬 수 없지만 그렇다고 같은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저에게는 마음이란 결국 의식이요 그것은 일반적으로 이성 또는 지성+감성 또는 감정+의지로 파악되어 왔는데 비해서, 혼이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받치고 있는 보다 깊고 보다 근원적인 생명력=에너지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해두고 싶은 것은 대다수의 일본인 전문가들이 혼을 마음과 같은 것으로 보는 데 반해서 저는 혼은 마음과는 다른 생명력=에너지로 파악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영과 혼을 혼용하는 경향이 한일 양국에 유행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저 자신은 영을 우주적 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혼을 개체적 생명력=에너지로 구분해서 그 두 가지 생명력=에너지의 상관연동태로 영혼을 새로 밝힌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태창 : 갓 태어난 아이는 식민지화·영토화 이전의 영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는 가정교육이라는 명분으로 어떤 틀에 맞추려고 하지만 아이는 그냥 “살고 싶다”고 외치면서 자기 나름의 생명력의 발휘를 방해하는 자에 대해서 강렬하게 반항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부모야말로 아이의 영혼을 식민지화·영토화시키는 첫 번째 가해자라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가정도 학교도 사회도 생명력의 발동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도처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속박·구속·제약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적나라한 생명력의 발동을 그대로 방치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타자)이 거기에 함께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약육강식의 수라장이 되고 강자가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약자를 마구 짓밟게 되는 야만상태를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공존의 규칙으로 법률이나 예의나 윤리도덕이 만들어지고 적나라한 생명력을 어느 정도 조정할 필요가 있게 됩니다.
사회나 국가의 기본질서라는 것이 없을 수 없는 조건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억제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나치면 아이의 생명력을 쇠퇴시키게 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적정화·적절화·시중화(時中化)하느냐가 모든 사회에 있어서 기본과제입니다만 현재 상황은 억제가 너무 심해서 젊은이들이 생명력을 발휘할 기회가 막히고 마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는 대다수 젊은 세대의 공통감각이 극심한 좌절감과 절망감인데 그 원인이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희망 상실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인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이 확실하게 인식되고는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의미 있는 실천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제대로 문제해결에 함께 임한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측면에서 건전한 사회화 교육도 필요하고 기본적인 예절학습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후카오 요코 :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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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은 어떤 연유로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과제로 삼게 되셨습니까?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상대화한다
후카오 요코 : 아마 유소기(幼少期)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어린 시절은 부모님이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의 준말)이나 일·중 우호운동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그러한 사회운동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제 주위에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종의 도그마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저에게는 느껴졌습니다. 사회주의나 문화혁명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어른들을 왠지 ‘이상하다’라는 눈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호언장담하는 것과 정반대로 자신의 삶이나 몸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는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였지만 중학교부터는 속박이 심해지고 교칙에 심한 부조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인간을 틀에 얽매어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고도경제성장의 와중이었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미치듯이 산을 깎아 주택을 조성하는가? 고도경제성장에 열광하는 일본사회는 무언가에 흘렸듯이 스스로의 생태계를 잠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까’가 저의 모든 물음의 밑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연구자가 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황토고원(黃土高原)에 가서 저쪽에서 일본을 보게 되자 ‘일본은 이상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스스로를 상대화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상당히 ‘이상’한 것에 사로잡힌 채로 인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쪽은 저쪽대로 일본인이 사로잡혀 있는 것과 다른 것에 사로잡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사로잡히고 있는 것은 일본이 사로잡히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서로가 각기 다른 것에 속박되어 있지만 혼이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는 똑같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일·중 간을 왕래하는 가운데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것입니다.
바깥쪽의 시점을 가지는 것으로 ‘자기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상대화한다’는 인류학과 역사학이 구사해 온 수법을 중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하면서 학습했습니다. 이 과정을 언어화시킨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 시리즈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 원전 문제를 올바로 보고 지적하는 지식인이 없다
야마모토 교시 : 지금 생태계를 가장 심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이 원자력발전이지요. 후쿠시마 원전의 엄청난 사고 이후 원전 ‘전문가’에 대한 신용은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해설자의 원전 재가동에 의문을 표시하는 발언에서는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고, 신문기사에서도 장래세대에의 책임을 지는 현재세대의 배려나 책임을 명확하게 의식하는 발언이 들려오지 않습니다. 국회에서도 원전 피재민의 참상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현실’이 될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21세기형 ‘문명재(文明災)’와 전면으로 대결·대응·극복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원전으로 물이나 공기를 오염시키는 것은 인간 스스로를 해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 악순환의 공포를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원전이 언젠가는 인류에 대해 가공할 복합 재해를 가져온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그것을 정지시킬 수 없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입니까?
야마모토 교시 : 원전 재가동의 국책에 ‘NO’의 뜻을 표시하지 않는 지식인은 ‘반지성인(反知性人)’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학력과 지성의 높낮이는 곧 연동하지는 않습니다. 코이데 히로아키(小出裕章) 교토대학 조교(助敎)가 원자력 전문의 과학자로서 ‘원전 반대’를 외치고 경종을 울렸습니다만 인문계의 지식인은 대부분 ‘나랑 상관없다’는 자기규제 속에 숨어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타자와 장래세대와 공진(共振)할 수 있는 자기 혼에 뚜껑을 덥고 그릇과 과학만능 이데올로기에 의해 혼마저 식민지화 당하고 있습니다. ‘혼의 탈식민지화’를 주창하고 계시는 후카오 선생은 전문가의 그러한 자기완결적인 학문적 자세에 친숙하지 못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이른바 아카데믹한 학술 활동에 참가하면 저는 자꾸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그래서 계속하기 힘들어집니다. 이른바 ‘전문가’로서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면 아무래도 거부반응이 일어나게 되니까 결국 어느 학회도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후카오 교수가 논문이나 학술잡지 등을 통해 발표하시는 내용은 ‘학문’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탈식민지화된 혼이 온전하게 작동하는 세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는 실천 활동의 한 가운데에 계실 때 가장 충실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그건 그래요. 그 밖의 일에 몰두하려 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탐구’는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그것은 학문의 영역에서 권위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그 영역에만 머무는 것도 아닙니다. 항상 어딘가로 향해서 현 위치로부터 탈출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학문, 배운 것을 묻다, 묻는 방법을 배우다
김태창 : 한자문화권에서 쓰는 ‘학문(學問)’이라는 말은 본래 ‘배운 것을 되묻다’, 혹은 ‘묻는 방법을 배우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이언스’의 번역어로서의 ‘학문’과는 그 의미하는 바가 다릅니다. 지금 후카오 선생이 말씀하신 것은 오히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학문’과 가깝다는 느낌이 듭니다. 메이지시대 일본에서는 서양에서 전래된 ‘사이언스’라는 말을 과학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전문분야별로 나누어진 분과학문(分科學問)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거지요. 과학이란 분화된(科) 학(學)이라는 거죠. 분할된 범위에 한정된 실증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정된 전문 분야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알고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히 무지몽매한 학자를 자주 보게 됩니다. 정말로 중요한 ‘인간’, ‘사회’,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전혀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어려서 조부로부터 현대어로 발하자면 사상·철학·문학·종교·도덕·윤리·역사 등을 아우르는 동양고전 중심의 인간 형성학을 배워 익혔고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서양식의 분과학문으로서의 정치학과 철학을 연구 교수했으나 어떤 특정 전문 분야에 특화되는 것이 생리에 안 맞아서 언제나 새로운 강좌를 창설해서 저 나름의 생각을 학생들과 자유 활발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저 나름의 분야횡단적인 디스커스(담론)를 시도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자리에서가 아니면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 같은 문제를 함께 논의한다는 것은 거의불가능하니까요.
후카오 요코 : 수업이 그대로 탈식민지화의 생생한 과정이었군요.
김태창 : 제가 젊은 한 시절을 한국 충청북도 청주시 개신동에 있는 충북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공동학습과정을 겪었습니다. 교수라는 의식을 의도적으로 버렸었습니다. 충북대학교의 소재지도 ‘개신(開新)’동이지만 충북대학교의 건학 이념도 ‘개신(開新=새로운 미래를 함께 연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정한 학문은 개신하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햇병아리 학문 연구자일 때부터 새로운 미래를 열려고 하는 사람과 현재 국내외 학회에서 일단 공인된 것을 재빨리 수용하고 번역해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자는 연구자라기보다는 수입업자로 본 거지요. 비록 몸과 마음이 식민지화·영토화되어 있더라도 영혼이 식민지화·영토화 되지않는 상태라면 ‘개신개래’(開新開來=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그 뜻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엶으로써 지금은 없는 미래가 열린다)의 여지가 아직은 남아 있고 거기에 희망과 기대를 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까지 식민지화·영토화 되어 버리고 그것이 습관화되면 거기서 탈출하기 어렵게 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화·영토화된 상태가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 : 정말 그렇습니다.
관 주도 의식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파급
김태창 : 저는 일본의 국가공무원연수소에서 고급공무원에게 여러 번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종래의 ‘관주도의식’으로부터의 탈각과 ‘민관 대화·공동·개신을 통한 사회변혁의식으로의 대전환’의 필요성과 중요성입니다. 그런데 일부의 반응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한마디로 관주도의 무엇이 문제냐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의 일본이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은 올바른 관주도의 성과이며 문제가 있다면 국민의 의식수준이 시대적·상황적 요청에 걸맞게 향상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닌가, 라는 반문이었습니다. 국민은 어디까지나 관주도에 의한 계몽·계도·계발의 대상이지 사회변혁의 주체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뿌리깊게 박혀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고구조가 관료조직의 기반이 되었고 근대국민국가 형성의 전 과정을 통해서 정리·확립·강화되다가 제2차세계대전 후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전후 일본사회를 아직도 지배하고 있다는데 적지 않게 놀랐던 거지요. 이런 생각이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통해서 우리나라 사회를 오염시켰고 일본 사회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연원이 바로 거기에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후카오 요코 : 자기들의 특권적 위상과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양심적인 관료는 자꾸 고립되고, 관료는 집단으로 ‘국민보다 우리 입장이 평온무사한 게 제일이야’라는 병에 걸려 있다는 인상입니다. 양심적인 관료 OB가 목소리를 높여 주었으면 합니다. 신문기자도 이빨 빠진 ‘조직인간’입니다. 관리된 지면을 버리고 큰 언론매체를 뛰쳐나와서 고군분투하는 진정한 저널리스트 중에서 일본과 동아시아의 미래를 개신(開新)하는 인물이 나타나는 것을 기대합니다.
사이에서 생각한다
김태창 : 지금 후카오 선생이 중국과 일본을 왕래하면서 거기서 일중관계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보겠다고 애를 써온 것은 다름 아닌 미래공창의 실천궁행입니다. 일중 어느 쪽에도 너무 편향되거나 종속되지 않으면서 일중 간의 관계 개선을 민간 주도로 도모하고 계신거지요. 저는 대화모임에서 늘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이동하는 가운데서 생각해 왔다는 의미입니다. 사이에서 생각한 것을 나라(한국이나 일본이나 중국이나 어느 나라든) 안에서 문제 관심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미래공창을 실현하려는 끝없는 여정을 거쳐 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후카오 요코 : “‘사이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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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번역 | 야규 마코토·박장미 | 개벽신문 제65호(2017.7)
영혼의 탈식민지화, 탈영토화는 미래공창으로 이어져야
김태창 : 저는 여러 곳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거론해 왔지만 그것이 최종목표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그것은 함께하는 개신개래=미래공창으로 이어지는 아주 중요한 과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이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요. 미래공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영혼이 다시 무언가의 식민지·영토가 되고 맙니다.
야마모토 교시 : 저는 ‘혼의 탈식민지화’를 거론할 때 반드시 동시에 생각해야 될 문제가 ‘미래공창(未來共創)’이라고 생각합니다. 탈식민지화된 혼은 ‘혼의 빈 껍질’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뚜껑을 열고 자유로워진 혼은 어린아이와 같이 편견이나 선입견 등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으니까 거기에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한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여겨지니까요.
김태창 : 탈식민지화·탈영토화된 영혼이란 어떤 의미에서 일체의 과거에 의한 주박·결박·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영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과거가 거의 없고 미래만이 풍부한 어린아이의 영혼과 같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를 만든다는 생각처럼 반생명적이고 식민지화적·영토화적인 것이 없습니다. 아이를 부모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까 아이를 부모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부모 멋대로 아이를 지배·통제·규정하려고 합니다. 말로는 아이의 인권과 존엄을 존중한다면서도 부모 뜻에 맞추어서 인간형성을 꾀하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그런 감각으로 육아하는 사람이 많지요.
김태창 : 저는 그런 사고와 행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의 근본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부모의 식민지나 영토가 아닙니다. 아이는 독자적인 생명가치를 지니고 부모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의 파트너입니다. 그와 같은 인식과 실천을 일상생활화 하는 것이 최우선의 긴급과제입니다.
아주 오래전의 일입니다만 노르웨이의 오슬로대학에서 열린 세계미래학 대화집회에서 ‘미래는 현재의 영토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었습니다. 격렬한 논의의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합의점은 미래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닌 생크추어리(성역)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장래세대는 현재세대의 식민지·영토가 아니라 함부로 사유화해서는 안 되는 성역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식과 실천의 근본전환이야말로 세대간 공정윤리의 출발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의식화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이 부모 세대의 근본적 책무가 아니겠습니까?
후카오 요코 : ‘부모의 책임’이라는 말은 곧잘 쓰이고 있지만 그 뜻을 잘 알고 쓰고 있는 사람이 몇사람이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육이 아니라, 공동학습 - 아이를 부모의 식민지화하지 말라
김태창 : ‘부모의 책임’이라는 이면에 오히려 부모의 지배력이나 통제력을 강화시킴으로써 부모의 식민지·영토로 만드는 데에 삶의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부모로서는 자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해주는 것이겠지만 그것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공창이 아니라 부모가 자기 뜻대로 강행하는 미래 독창에 지나지 않아 아이의 입장에서는 넘어야할 장벽에 불과하다는 점에 신경을 안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저는 한국의 충청북도 교육청 간부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교육’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한마디로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교육’이 아니라 공동(共働) 학습이라는 말로 바꿀 필요가 있고 그 공동 학습의 핵심과제는 세대 간 미래공창을 가능케 하는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제대로 이루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를 체계적으로 성취시켜온 교육에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주축으로 하는 공동학습으로의 대전환을 호소했던 거지요.
후카오 요코 : 그런 공동학습의 자리가 계속 마련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창 : 공감해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통인식이 형성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요. 끈질긴 대화가 필요하겠지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한다’는 것은 훈련일지는 모르나 공동 학습은 아닙니다.
후카오 요코 : 시키는 대로 하는 교육이 아직도 학교교육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면 당장에 이단으로 몰리니까 사태 개선이 어렵습니다.
김태창 : 우선 누군가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 뜻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다른 사람─특히 젊은 학생들─에게 거의 강제적으로 따라오도록 하는 교육강제=훈육으로부터 미래를 모두 함께하는 대화·공동·개신을 통해서 열어나간다는 사고와 행위를 진작시키는 쪽으로의 근본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도 누군가가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고 모두가 공동학습자가 되고 상호실천자가 되는 공동체험·체득·체인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후카오 요코 : 저도 함께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숙, 부모로부터의 독립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후카오 요코 : 우리 어머니는 1935년에 하얼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일본군에 투항한 봉천감옥(奉天監獄)의 수감자들에게 작업을 시키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3세 때에 아마 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수감된 중국인들을 731부대에 보내는 자리에 계셨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를 잘 아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는 무척 괴로웠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머니와 함께 1938년 무렵에 일본에 귀국했습니다. 어머니는 잔류고아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몸소 겪은 원초적 경험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심적 상처를 입은 듯싶습니다. 좀처럼 믿기지 않는 행위를 빈번하게 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서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대단히 고생했습니다. 저의 친아버지는 39세 때에 자살하셨습니다. 그 진상도 전연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고뇌와 관계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와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재혼해서 저를 매우 애지중지 키워주신 의붓아버지는 신체 허약의 철학자 같은 사람이었는데 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언제나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면 도움을 받기 위해 재혼한 남편이 병약했으니까 ‘이럴 수가’라는 마음이 계셨고 열심히 뛰고 있는 사람을 잡고 극도로 핍박해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어른은 왜 그렇게 되는 걸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39세가 되던 무렵, 저도 어머니와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틀렸다’고 비관하다가 폐렴에 걸렸을 바로 그 때, ‘여기서 비명에 죽게 될 바에야 차라리 무언가 새로운 행동을 해야겠다’고 해서 생각해낸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어머니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게 되었지만 지금은 간신히 마음이 안정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그렇게까지 괴롭히지 않았으면 그토록 고생도 안 했겠지만 그런 고통의 과정이 없었으면 이런 연구를 계속하게 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어머님의 입장에서 보면 공격적인 면을 드러내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지요.
후카오 요코 : 아마도 그럴 겁니다. 사흘에 한 번씩은 폭발했습니다. 지금은 정말 온화해졌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마음을 열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김태창 : 도쿄대학의 니시히라 타다시(西平直) 교수가 교토포럼에서 ‘세대계승’에 대해 말하는 문맥에서 바로 어머니에 의한 병리의 발생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소위 ‘모인병(母因病)’이라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해방시켜주지 않고 자기에게 철저하게 종속되도록 강요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서 아이의 독립을 극심하게 저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최초로 경험하는 ‘영토화·식민지화’는 다름 아닌 어머니에 의해서 강행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절대선으로서의 어머니상의 신화와는 어긋나는 현상들입니다.
김태창 : 남자아이는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먼저 아버지와 갈등을 일으키고 거기서 자기 형성이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과정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잘 알려진 일입니다. 그러나 어머니로부터의 독립이 인간의 성숙에게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별로 말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최근 저는 우리 아이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물론, 키우고 있는 고양이나 개에 대해서도 그들의 자립을 저해하게 되지 않나 하고 극력 명심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제가 미국이나 유럽에 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않았습니다만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학자와 여러 사람들과 사귀고 더러 그 가정에도 초대받아 가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느끼게 된 것은 특히 일본의 어머니 가운데는 아이를 아유화(我有化)하고 자기 영역 안에 가두어 놓고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결코 용납하려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어도 어머니의 힘이 강해서 어머니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끝내 자유롭게 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고 여자아이보다 남자아이의 경우에 더 심한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흔히 듣게 되었습니다.
죽어서도 자유 - 하늘에 뿌려 달라
후카오 요코 : 그런 경향을 두고 ‘자기중심’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저는 아이가 끝내 자기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고 보는 것입니다. 항상 어머니의 명령이 귀에 들려와서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경향을 학생들에게서 볼 수 있어서 그렇게 느낍니다.
김태창 : 모인병적인 현상은 비단 어머니에게 한정되지 않습니다. 인간보다 국가나 국토에 관련해서도 때로는 모인병적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를테면 국가나 국토가 모든 것을 흡입 용해시키는 강력한 인력으로 작용하는 경우입니다. 저는 한국이라는 국가, 한반도라는 국토, 태어나서 자란 향토에 밀착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거부해 왔습니다. 그래서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郎)의 장소의 철학에는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한국이라는 땅에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은 미국이나 일본이라는 땅에도 친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느 땅이나 땅에 묶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노마드(유목민)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죽으면 땅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땅에 묻지 말고 하늘에 뿌려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성신은 토지신인 경우가 많습니다. 대지모신(大地母神)의 신화 같은 것도 그 예에 속하지요. 그러나 남성신은 바람이나 불꽃이나 벼락처럼 땅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형상으로 나타납니다. 저 자신도 남성신을 닮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땅에 묻혀서 흙으로 돌아가기보다는 하늘로 올라가서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은 겁니다.
후카오 요코 : 그러네요.
하늘의 종교, 땅의 종교 / 머무름과 자유로움
김태창 : 종교의 측면에 눈을 돌려도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는 불교는 결국 땅의 종교인데 반해서 기독교는 하늘의 종교라는 양자의 특성에서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땅에 밀착해서 토지와 친밀한 관계를 강화하는데서 입명안심을 모색하느냐 아니면 토지와의 관계를 끊는 데서 새로운 생명의 차원·지평·세계를 개신하느냐에 근본적인 지향의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는 어느 땅에도 속박되지 않는 까닭에 불안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부분이 있습니다. 언제나 불안하고 표류하며 방랑하는 사막민들이 발견한 종교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지요. 거기서 길러진 본래적인 비정주(非定住)·비안주적(非安住的)인 생활습관은 어떤 의미에서 온갖 식민지화·영토화에 대한 내성(耐性)을 기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고 나서는 이단 배제·말살의 독선적인 조직 종교가 되고 거기서 절대 진리에 의해 모든 인간의 영혼을 영토화·식민지화시키기를 지향하는 일대 신앙자제국(信仰者帝國)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만 본래의 예수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당시의 종교권력으로부터 개개인의 영혼을 탈식민지화·탈영토화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민중해방운동이었다고 하겠습니다. 결코 어느 편이 좋거나 옳고 어느 편이 나쁘고 그르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과 땅을 지향하는 삶을 택하는 사람의 양쪽이 있고 양쪽의 삶을 잘 아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 분이 조치대학(上智大學)의 미야모토 히사오(宮本久雄: 현 도쿄준신대학(東京純心大學) 교수)입니다. 그분은 저를 구약성서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같은 인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느 땅에 안주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나타나서 “지금 있는 그 장소를 떠나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쪽으로 가라”라는 명령에 호응해서 아무 미련도 없이 정착해 온 땅을 떠나 미지의 타향으로 이동하면서 한평생 떠돌이의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를 여는’ 일이 아브라함의 삶이자 보람이었습니다. 고향 땅에서 안주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늘 미래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삶도 있는 것입니다. 절대다수의 일본인이 정주형(定住型)인데 비해 저는 외래의 이주형(移住型)의 인간이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 점이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후카오 요코 : 계속적인 이동을 통해서 상대성에 대한 의식을 예민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지금도 태어난 장소에 그대로 살고 있으니까 말하자면 초안주형(超安住型)의 인간입니다. 그 안에서 어머니와의 싸움이 있고, 그 위화감을 지렛대로 삼고 어떻게든 거기서 이탈해야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습니다. 저의 경우는 한편에서는 강하게 이동을 희구(希求)하면서도 다른 편에서는 한곳에 뿌리가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 자신이 안고 있는 모순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한곳에 계속 머물고 있으면 이동을 거부하고 한곳에 밀착하는 경향이 상화되는 게 분명합니다. 특히 일본사회의 공동체적 주박은 정말로 숨쉬기조차 곤란한 지경입니다.
김태창 : 교토포럼 관계로 독일을 자주 드나들었을 때 자주 ‘하이마트로지히카이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고향상실상태’를 가리키는 말인데 사람은 고향을 떠나서 방황하고 있을 때보다 고향에 있으면서 고향이 고향 같지 않게 느껴지는 고향 상실감이 훨씬 심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후카오 선생의 경우도 비슷하지 않나, 라는 느낌이 듭니다.
후카오 요코 : 저는 그런 경향이 아주 강한 것 같습니다.
김태창 : 저는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주로 공공철학 대화활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본의 오사카와 한국의 청주 사이를 왕래하면서 새로운 인문학 대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청주는 저의 고향이기도 한데 전혀 고향이라는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고 아주 낯선 타향=신향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오히려 거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동학 운동을 일으킨 최제우(崔濟愚)는 태어난 고향을 한 번 떠나서 여러 곳을 방황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에서 배척당하고 도무지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향땅을 버리고 낯선 타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새로운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고 짧기는 해도 농도 짙은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도 그렇고 무함마드도 그런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마모토 교시 :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나서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노력을 해서 엘리트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국가시험을 돌파해서 국가공무원이 되고, 동료와의 격렬한 경쟁도 이겨내면서 중요한 벼슬을 손에 넣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안정된 지위와 많은 수입을 보장받고 장래에 대한 걱정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그 세속적인 성공을 가지고 ‘이것이 골(Goal)이다’라고 여긴 순간, 그 사람은 미래공창의 저해요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입장에 있으면서 자기 양심에 비춘 사회 변혁에 대한 용기 있는 행동에는 무관심하고, 자기 일신의 안전과 더 입신출세하는 것에만 눈이 향하고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이 뛰어난 업무 수행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나의 생명에너지가 전개(全開)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후카오 요코 : 그렇습니다. 원전 관계자들도 그랬을 것입니다.
김태창 : 모두 다 자각 없이 근원적인 생명에너지를 죽이고 있는 거지요.
후카오 요코 :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너는 이미 죽었어!(웃음)’. 죽어버리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까닭이 없겠지요.
김태창 : 일본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을 기본적으로 모성 사회로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 있는 모든 것─인간을 포함해서─을 포용해서 그 안에서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입니다.
후카오 요코 : 포용한다기보다 포위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관계’의 울안에 갇혀 버립니다. 국외자나 이방인은 철저하게 격리 차별합니다. 중국도 차별이 심한 나라입니다만 길거리나 마을 안에서 모르는 타자와 우발적으로 아주 의미 있는 회화를 나누거나 서로 아는 사이가 되고 서로 돕는 일이 의외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일본에서는 일일이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부터 물어야 됩니다. 어설프게 말을 걸으면 곧 ‘이 사람은 수상하다’는 소리를 듣게 되고, 일일이 상대에게 신경을 쓰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중국에 가면 그러한 면은 굉장히 자유롭고, 정말로 호흡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야마모토 교시 :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가 지적했듯이 일본인은 ‘장소의 공기’를 눈치 채고 그것에 맞추는 것이 행동규범이 되고 있습니다. 자유로운 대화보다 무언(無言)의 ‘동화(同化) ’ 압력이 강합니다. 동화할 수 없으면 ‘KY’(kūki oyomenai: ‘공기를 못 읽다’ 즉 분위기를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로 간주되고 소외당하게 됩니다. 정의나 도리를 열성적으로 말하면 금방 ‘너무 시비를 가려서 시끄럽다’고 해서 미움을 받게 됩니다.
후카오 요코 : ‘도리’를 느끼고 그것에 공명해서 움직이는 것도 별로 없어요. 중국의 시골에서는 ‘도리’에 맞는다고 느끼면 얼마든지 도와주는 사람이 생깁니다. 일본에서는 ‘도리’ 감각이 희박해서 묵묵 무반응입니다. 김 선생님계서도 여러 번 겪어서 아시겠지만 말입니다.
야마모토 교시 : 일본에서는 도리라는 게 따로 없고 그저 관(官)이 하라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리입니다. 말하자면 공(公)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관이 주도하는 공과 다른 민 주도의 공공을 따로 떼어서 그것을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실천으로서 개신했던 것이 도쿄대학출판회에서 간행된 시리즈 <공공철학> (총 20권)을 통해서 김태창 선생이 역설하셨던 공공성과 다른 ‘공공하다’의 중요한 뜻이 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공공하는 도리를 생각하고 논의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현시킴으로서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대화적·공동적·개신적 실천이 ‘미래공창(未來共創)’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분석이나 평가가 아닙니다. 미래 개신(開新)에의 꿈, 희망, 행동입니다. 지사(志士)들에 의한 도쿠가와 막부의 타도와 메이지유신이야말로 ‘미래공창’이 아닌가, 라는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근대 일본은 주로 초슈벌(長州閥·현 야마구치현 출신자들)에 의해 사물화(私物化)된 국가였습니다. 한국을 식민지화시키고, 대륙 침략을 추진하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급기야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패전하고 망국의 비극을 스스로가 초래했습니다. 일찍이 일본의 지도자들이 그렸던 대동아공영권이나 팔굉일우의 구상들은 모두 일부의 광신적인 일본 지상주의자들의 미래독창의 망상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의 생명이 상실되었고 훨씬 더 많은 한국민과 중국인의 생명이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이나 중국인의 영혼마저 식민지화되고 영토화되었는데 그것이 가져온 부메랑효과인지 알게 모르게 일본인의 영혼도 타자에게 씌웠던 식민지화·영토화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는데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국인의 경우 일본인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대륙적인 규모의 크기, 너그러움, 공감력, 다원성, 포용력, 등등의 자질이 느껴집니다. 일본의 ‘동’(同: 공기를 읽기, 분위기를 눈치 채기)적인 기질이 ‘화(和)’로 변할 때에는 서로를 어울리게 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요.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서로의 장점을 서로 살리는 관계가 되면 여기서부터 한중일간 평화상태가 세계평화 구축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지요.
후카오 요코 : 최근의 일본인 학생들은 대만에는 가지만 중국에는 안 가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국과는 인연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는 좋은 인연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창 :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의 요건임에도 불구하고 관계개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일본인 은 절대적 소수자인 것 같습니다.
후카오 요코 : 일본인 가운데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말을 들으면 당장에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런 말의 진의를 수상하게 여기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폄하·왜곡시키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학생에게서도 느끼는 일입니다만 굉장히 완고한 장벽이 있고 그것을 깨부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지금 일본사회의 폐색상태를 어떻게 해 보고 싶습니다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모두 눈을 떴을 덴데도 일본은 조금도 변화하지 않는 채로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에서는 절망적입니다.
김태창 : 후카오 선생이 보시기에 인간의 영혼이 식민지화 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태는 어떤 것입니까?
후카오 요코 : 생각과 행동이 고착화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독차지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적 사고를 근본 전환시키지 않고서는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습니다. 일본인에게는 친밀한 인간관계나 공동체에 예속되는 경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조직이 사람(사원)을 통째로 끌어안고 있기 때문에 오직 그곳에서의 보신(保身)만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 이외의 일들은 그저 기분전환 정도로 조금씩 일시적으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안정과 성공을 이루기 위한 전술이 모두 식민지화의 방향으로만 고정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도 정해진 길에서 빗나간 생각을 하지 않게끔 철저하게 규제하고 오로지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는 사람만을 대량 재생산하는 데에 있습니다. 학교의 클럽 활동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을 보니까 클럽 활동이라는 것도 모두 영혼을 식민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죽어도 거기에 매달려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주입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 상태로 회사에도 들어가고 또 가정을 꾸려나가는 일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반의 구석구석에도 그런 사고가 들어가 있는 거지요. 일본인의 삶은 집에서 회사, 회사에서 집으로 오가는 가운데 술집에서 잠깐 동안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서 집에 돌아가서 자고 또다시 회사에 나가는 식의 고정된 왕복입니다. 지역사회와 직장만으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왜 ‘사이’ 라는 것이 없는 걸까요? 다른 연령층이나 다른 업종의 다양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계기도 동기도 시간도 없습니다. 중국의 길거리나 공원에는 다양한 모임이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다름 아닌 노예 공동체군요. 노예는 스스로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중 속에 섞어서 남과 똑같이 하면서 그런대로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
후카오 요코 : 그래서 흔히 조직인간 타령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마모토 교시 : 결국 그것은 자기 자신의 노예근성을 ‘과시’하는 도착된 심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인간’은 꼭대기에 서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연기력에 묘한 자신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강자에 대한 굴종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방향을 약간 바꾸어 보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후카오 준교수와 김태창 선생의 문제관심의 공통점을 전제로 하고 대화를 전개해 왔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차이점을 의도적으로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을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도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김태창 선생께서 후카오 선생의 저서와 논문들, 그리고 거기에 관련된 다른 학자들의 저작들을 읽어 보시고 나서 어떤 차이점에 주목하셨는지부터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태창 : 첫째로 직감하게 된 차이는 ‘혼’과 ‘영혼’의 차이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견해는 일관해서 혼과 영을 구분해서 논의를 전개해 왔습니다. 누구의 이론이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직접 체험·경험·증험·효험해 온 결과 혼은 개체생명력=에너지로, 그리고 영은 개체생명(체)과 개체생명(체)과의 사이·개체생명(체)과 우주생명과의 사이로부터 국가간·민족간·문화간·종교간 등등 다차원적인 ‘사이’에 작동하는 상관연동적·상호매개적인 근원적 생명력=에너지로 나누어서 파악·이해·성찰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후카오 선생을 비롯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개인 중심의 논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 경향과는 달리 저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주로 국가간·민족간·문화간 그리고 개인간 등등 다차원의 사이들에서 일어나는 영(靈)과 개개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혼(魂)’의 탈영토화·탈식민지화를 동시에 공구공론(共究共論)하는데 역점이 주어져 있습니다.
둘째로 ‘혼의 탈식민지화’(후카오)와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김)는 ‘혼의 탈식민지화’라는 공통점을 함께 지니고 있으면서도 ‘영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것이 ‘혼의 탈식민화’ 논의에는 없는 뚜렷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혼은 개체 내에서 작동하는 독자적 생명에너지라고 하면 영은 개체간·집단간에서 작동하는 관계 형성적 생명에너지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체험학습에서 얻은 소견입니다. 그러니까 개개인의 내적 생명에너지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혼의 탈식민지화이고 개인간·집단간의 생명에너지가 식민지화되는 상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동시 병행적으로 성취시킨다는 것이 영혼의 탈식민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탈식민지화와 탈영토화는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입니다.
그래서 셋째로 식민지화와 영토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관한 저의 개인적인 체험·체득·체인의 귀결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공통점은 양쪽이 똑같이 개인·민족·국가·문화 등등의 자주성·자립성을 박탈당하고 상실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차이점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차이는 식민지화는 명백한 의식을 동반한 가시적 자주성 박탈이고 영토화는 자각증상이 결여된 비가시적 자립성 상실입니다. 대일본제국에 의한 자주성 박탈은 분명한 의식을 동반한 채로 당한 것이고 영토화는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에 의해서 우리 나름의 문화적·의식적 자립성이 상실되고 과잉 종속성이 현저하게 강화되는 데도 그것에 대한 뚜렷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하는 경향이 그냥 계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렇다면 오는 8월 14~16일에 개최 예정인 한·일 철학·문학 대화에서는 조명희(趙明熙·1894~1938)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 루쉰(魯迅·1881~1936)을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라는 관점에서 상호 비교·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우선 어떤 비교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전혀 예상 못하거나 안 하실 심산이십니까?
김태창 : 대회를 주관하는 입장에서 아무 말도 안 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것 같고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예단하는 것은 무례한 것 같아서 조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저의 개인적인 예감만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이 한국을 영과 혼이라는 양면에서 식민지화를 이루려고 하는 가운데서 일본인과 일본 사회가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토화되어 가고 있다는 모순적 상황을 개탄했고, 뤼쉰은 분명하게 식민지화된 영과 혼의 비참한 인간상을 다양한 형태로 소상하게 묘사했으며, 조명희는 글자 그대로 피와 땀과 눈물로 영혼이 철저하게 식민지화 되는 과정을 실사했다고 볼 수 있는데 조명희가 가장 뚜렷하게, 루쉰이 그 다음으로 영혼의 탈식민지화·탈영토화를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에는 어떤가, 라는 것이 논점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한국은 완전히, 중국은 반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상태에 있었던 데 비해서 일본은 가까스로 서양의 식민지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대표적인 문인들이 지니고 있었던 기본적인 시대인식과 상황인식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어떤 문제가 제기되고 어떤 논의가 전개되고, 어떤 공통인식이 도출될지 안될지 주최자인 저도 궁금합니다.
야마모토 교시 : 그러면 이것으로 두 분의 대화를 마감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