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박형규 (지은이),신홍범창비2010-04-19
전자책정가
14,000원
8.0 100자평(0)리뷰(1)
종이책 페이지수 500쪽
책소개
한국 민주화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박형규 목사. 이 책은 어두운 시대에 의연하게 고행의 길을 앞서온 그의 육성 고백록이자,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든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자료다. 특히 신홍범은 박형규 목사의 개인사를 꼼꼼하게 추적하는 동시에 박목사의 삶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젊은 독자들을 위한 귀중한 기억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목차
책머리에―박형규
추천사―함세웅
1. 나를 키운 기독교 가정
“너는 목사가 되어야 한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기독교계통으로
일본의 오오사까로
“천황 사진에 절할 바엔 차라리 죽겠습니다”
제2의 고향 진영에서 겪은 소작료 충격
결혼에 얽힌 이야기들
일제로부터 받은 모진 고문
해방 후의 사회적?사상적 혼란을 겪으며
부산대학 철학과에 입학하다
두가지 극단 사이에서 고민하며
군속이 되어 유엔군사령부로
문익환 목사와의 첫 만남
되찾은 신앙, 새로운 결단
2. 신학을 찾아서
토오꾜오신학대학 4학년에 편입하다
신학사상을 찾아서
윤창섭 형과의 우정
강원룡, 김관석 목사와의 첫 만남
귀국 후 공덕교회 전도사로
내 삶의 진로를 바꾸어놓은 4?19
유니온신학교로 유학길에 오르다
유니온에서 만난 신학자들
본회퍼, 니묄러, 그리고 씨몬느 베이유
유니온신학교 시절의 추억
3. 도시빈민 속으로
한일굴욕외교 반대운동
교회갱신운동에 뛰어들다
한국기독학생회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발족
김관석 목사를 NCCK의 총무로
『기독교사상』의 주간이 되다
예 할 것은 예,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하라
김동리 선생과의 찬반 토론
도시빈민선교를 시작하다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주민조직 이론의 선구자 알린스키
기독교방송의 상무가 되다
전태일의 죽음이 준 충격
김대중 전대통령에게 방송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다
언론을 향한 중앙정보부의 탄압
CBS를 사직하다
수도권도시선교위원회를 만들다
지학순 주교의 용기와 침묵시위
갈 곳 없는 방황 속에 피어난 우정
자유가 없는 곳에서는 이웃사랑도 할 수 없다
서울제일교회 임직식에서 흘린 눈물
4. 유신체제와의 대결
유신체제와 민주주의의 죽음
오르지 않은 횃불―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내란예비음모라니!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
“성경과 찬송가로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유신체제에 대한 계속되는 도전
민청학련 사건이 터지다
“금잔디다방이라면 아시겠습니까?”
학생들을 공산주의로 몰아가다
미친 권력의 무더기 사형선고
항소를 포기하고 영등포교도소로
나가면 더 좋고, 못 나가도 좋고
“젊은이들의 호소를 저버리지 맙시다”
일본의 크리스천들, 『뉴욕타임즈』에 전면광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NCCK 인권위원회의 탄생
다시 교회로 돌아오다
5. 민주화운동의 수난
민중교회의 탄생
민중신학의 탄생
수도권특수지역선교위원회 선교자금 사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유신정권
목사가 감옥 가는 것은 당연한 일
실패한 ‘빨갱이 만들기’ 시도
“목사님, 그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마십시오”
“신앙에 따른 종교활동은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과의 만남
얌전했던 아내가 민주투사로 변하다
기장 청년회 전주시위 사건
종말을 향해 치달은 유신체제
박대통령의 유고 소식을 듣다
6. 민주화를 또다시 막아선 신군부
YWCA 위장결혼식 사건
안타까운 두 김씨의 분열
이국땅에서 들은 광주민중항쟁
일본인 벗들의 눈물겨운 도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민주화운동을 도운 국제네트워크
“광주민중항쟁을 선동했다던데……”
기독교장로회 총회장을 맡다
NCCK 인권위원장이 되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목숨을 건 단식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
“대통령에게 망명을 권해도 되겠습니까?”
7. 아직도 봄은 오지 않았다
“박형규를 서울제일교회에서 추방하라”
전대미문의 주일예배 방해
60여 시간의 감금과 살해위협
백주에 테러를 당하다
길거리로 쫓겨난 서울제일교회
노상예배를 시작하다
서진룸쌀롱 살인사건과 서울제일교회
폭력에 맞서는 십자가 행진
패배감이 기쁨으로 변하는 신비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
예배장소이자 민주화운동의 터전
폭력을 이기는 비폭력
6월항쟁의 감동
또다시 실패한 대선 후보단일화
길 위의 예배를 끝내다
서울제일교회를 떠나다
하나님의 발길에 차여서
그후의 박형규 목사
회고담을 정리하고 나서―신홍범
영문 약어
참고문헌
수주 박형규 목사 연보
인명 찾아보기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박형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목사. 회고록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로 제25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10년 만해문학상
최근작 : <나의 믿음은 길 위에 있다> … 총 2종 (모두보기)
신홍범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조선일보≫ 외신부?문화부 기자와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역임했다.
최근작 : <조선 동아 100년을 말한다>,<마더 테레사> … 총 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민주화운동의 살아있는 역사, 박형규
그 뜨거운 삶의 기록!
박형규 목사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그 자체로 한국 민주화운동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는 그의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필요할까. 올해 미수(米壽, 88세)를 맞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사회활동에 참여하며 우리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박형규 목사. 이 책은 어두운 시대에 의연하게 고행의 길을 앞서온 그의 육성 고백록이자, 역사의 한복판에 뛰어든 한 개인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굴곡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중한 역사자료다.
한평생 길 위에서 신앙을 펼친 박형규 목사의 육성 고백록
4월 19일 나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 근처의 궁정동에 있는 큰 식당에서 결혼식 주례를 하고 있었다. 주례를 마친 뒤, 교회 여신도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는데 총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상하다 싶어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까이 가보니 학생들이 경무대 쪽으로 가다가 총을 맞고 밀려나오고 있었다. (…) 들것에 실린 학생들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무언가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에게서 나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았다. 하나님의 진노(震怒)가 쏟아지는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었다. (…) 나는 여러날을 4·19혁명의 현장에서 받은 충격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나 자신이 엉터리 목사로 살아왔다는 것을 거듭 뉘우치고 진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나아가 ‘값싼 복음’을 파는 목회를 청산하고 칼 바르트의 말처럼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일에 나를 바치기로 맹세했다. _본문에서
평범한 목회자였던 그를 교회 밖 세상으로 이끌어낸 결정적 사건은 4·19혁명이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뜨거운 피를 쏟은 4·19혁명을 눈앞에서 목도하며 그는 진정한 종교의 사명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되새기게 되었다. 독재정권하에서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횡행하던 암흑의 시대, 그의 외롭고도 의로운 십자가 행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형규 목사를 인터뷰하고 회고록을 정리한 신홍범 선생의 표현에 따르면 이후 “무시무시한 내란음모죄에다 긴급조치, 집시법 위반 등 여러 죄목으로 6번이나 감옥살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수시로 연행당하여 나라의 민주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수사기관에서 고초를 당하지 않은 해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이다. 1972년 ‘10월유신’이 발표되자 박형규 목사는 히틀러의 독재에 행동으로 맞선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목사처럼 “국가라는 미친 자동차”의 질주를 저지하기로 결심하고, 기독교의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함께한 최초의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배포하기로 했다. 거사계획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이 사건이 가져온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박정희정권은 ‘내란예비음모’라는 죄목으로 박목사를 포함한 가담자들을 구속하고 고문을 자행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독재권력의 노골적 횡포를 전국민에게 알리고 각 단체들의 연대를 강화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민청학련 사건과 5·18광주항쟁 등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박형규 목사는 ‘빨갱이’ ‘용공목사’로 몰리며 갖은 고초를 당했지만 아무도 그의 신념을 꺾을 수 없었다.
폭력을 이긴 비폭력의 신앙인
박형규 목사에게 쏟아진 박해는 전두환정권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박형규 목사를 회유할 수도, 굴복시킬 수도 없다고 판단한 전두환정권은 결국 박목사가 담당하던 서울제일교회를 와해시킬 계략을 세웠다. 서울제일교회의 일부 교인들을 협박하고 폭력배까지 끌어들여 예배를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4일간 감금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받은 박형규 목사와 신도들은 결국 교회에서 예배를 볼 수 없게 되었다. 교회에서 쫓겨난 이들은 그때부터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6년이나 계속된 노상예배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진으로 발전해갔다. 또한 민주화운동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민주화운동의 터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서울제일교회의 노상예배야말로 비폭력 민주화운동의 실험이었다.
그렇게 길 위에서 십자가 행진을 이어가는 동안 6월항쟁이 일어났고, 드디어 독재권력을 굴복시키고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특히 올해 2010년은 4·19혁명 50주년, 5·18광주항쟁 30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정신 계승의 해’로 선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위기가 심각하게 거론되는 요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한 투쟁과 노력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느덧 지나간 역사가 되어버렸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한평생 민주화운동과 인권운동에 헌신해온 박형규 목사의 특별한 생애는 민주화의 역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특히 신홍범은 박형규 목사의 개인사를 꼼꼼하게 추적하는 동시에 박목사의 삶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역사적 사건을 최대한 생생하게 재현해냄으로써 젊은 독자들을 위한 귀중한 기억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또한 많은 기독교교인들이 세속적인 기복신앙에 안주하고 교계의 여러 지도자들이 청와대나 고급호텔에서 권력자를 위한 기도회를 열고 있을 때 감옥에 갇혀 민주화를 염원하던 박형규 목사의 생애는 한 사람의 곧은 신앙이 사회적 실천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어온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메씨지와 뜨거운 감동을 전해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간의 영적인 구원과 사회적 구원이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사람의 영혼이 가난과 억눌림,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이웃들을 못 본 체하면서, 사회적 불의를 모른 척하면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어떻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 세상의 권력은 이런 신앙을 가진 사람과 교회를 박해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런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_본문에서 접기
정의가 강물처럼
한국 민주화운동에 있어 종교계의 역할을 잊어선 안 된다. 기독교로만 시각을 좁혀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기독교의 본래 의미-catholic의 본래 뜻-인 '보편과 종합'의 의미를 받들어 차이에 연연치 않고 민주화운동에 힘을 쏟았다.
가톨릭에선 김승훈과 문정현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두 분의 삶은 한국방송에서 제작한 '인물현대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신과 사람 사이의 중간자로서의 사제가 갖는 역할을 두 분은 온 몸을 던져 해내고 있다. 김승훈 신부는 작고하셨고, 문정현 신부는 여전히 젊은이처럼 활동하시는데 근래 병원에 자주 계신다는 얘기를 듣곤 마음이 아팠다. 정연주 사장 시절에 제작한 '인물현대사'인데 두 분의 일대기를 기록으로 남겨놓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일을 한 듯 하다. 지금의 한국방송에선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말이다.
개신교에선 김재준, 문익환,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박형규 목사를 꼽을 수 있다. 앞의 두 분은 '인물현대사'에서 다루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모두 기독장로회에 속한 분들이다. 이 책에서도 잠시 이야기하지만 숫자로만 보면 가장 많은 예수교장로회에 속한 많은 목사들이 학살자의 민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의 기도를 했더랜다. 무엇을 위로하고, 무엇을 축복했을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저자를 비롯해 관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이 분들을 보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스서 5장 24절)를 되새기게 된다. 이분들은 모두 이 말씀처럼 살아간 분들이다. 이 말씀처럼 살아가려 노력했다면 적어도 학살자의 민머리에 손을 얹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얹었더라도 '회개하라' 소리쳤을 것이다.
박형규 목사(1923-)
- 접기
파고세운닥나무 2010-07-01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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