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25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 정재서 |2006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 이화학술총서 | 정재서 | 알라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 이화학술총서
정재서 (지은이)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2006


























미리보기




책소개
한국 도교 연구사를 4단계로 나누어 그 흐름과 특징을 고찰했고, 그 내용을 역사.경전.세계관.의례 및 조직으로 나누어 그 개략을 설명하여 한국 도교에 대한 전반적인 그림을 제시했다.

중국 도교를 중국만의 토착 종교로 보지 않고 주변 문화와의 경합적, 다원적 관계에서 발생한 문화로 파악하는 입장에서 접근했다. 한국 도교를 중국 도교의 아류로 보아 단순히 현상을 기술하는 것을 지양하고 한국 도교의 고유성, 변별적 자질을 심도있게 탐구했다.

기존의 도교 연구서의 난삽한 학술적 문투를 벗어나 평이한 문체와 다수의 이미지 자료를 사용해 일반 독자들도 한국 도교의 기원.역사.개념.쟁점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목차


머리말

Ⅰ. 해방 후 한국 도교 연구의 흐름(1945~2006)
한국 도교 연구 어디까지 왔나?
시기별 연구 상황
문제 제기 및 전망

Ⅱ. 한국 도교 개설
한국 도교란?
한국 도교 약사
한국 도교의 경전
한국 도교의 세계관
한국 도교의 의례 및 조직

Ⅲ. 한국 도교의 기원
도교는 중국만의 토착 종교인가?
한국 도교의 기원 관련 자료
한국 도교의 기원 관련 가설
문화 다원주의와 도교

Ⅳ. 한국 도교의 역사적 전개: 중국 도교와의 대비적 고찰
도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한국 관방 도교의 역사적 전개
한국 민간 도교의 역사적 전개
한국 도교의 고유성

Ⅴ. 한국 도교 문학에서의 신화의 전유
서사 지식으로서의 도교
한국 도교계 시가에서의 신화의 전유
한국 도교계 소설.설화에서의 신화의 전유
자생설과 탈중심의 한국 도교 문학

Ⅵ.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도교 도상의 의미
고구려 고분벽화 새롭게 읽기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도교 도상의 의미
고구려 도교의 연원성과 연속성

Ⅶ. <온성세고>를 통해 본 조선 단학파의 이념적 성격
온양 정씨와 한국 도교
<온성세고>의 성립 및 내용
<온성세고>의 지향
단학파의 민족자존 의식

Ⅷ. 총계당 정지승의 도교 유적 탐사 보고
정지승의 도교적 삶
제천대를 찾아서
한국 도교 현지 조사의 의의

Ⅸ. 삼동윤리의 사상적 연원과 신세기적 의의
정산 송규의 학술적 위상
삼동윤리의 사상적 연원
삼동윤리의 신세기적 의의
신종교를 넘어 세계 윤리로

Ⅹ. 한국 도교 주요 인물 열전
한국 도교의 비조 최치원
조선 도교의 개조 김시습
조선 단학파의 태두 정렴
조선 내단학의 대가 권극중

맺는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바야흐로 한국의 도교학은 전개, 분화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도교학은 국제 도교학의 선행 입장에 대해 정체성을 확보하면서도 객관적으로는 논의의 수준을 제고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 도교를 기존의 단순 전파론적 입장에서 벗어나 변별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함과 동시에 문화 민족주의에 근거해 자족적으로 인식해온 구습을 탈피하는 용기도 요구된다 할 것이다. 이 책에서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다양한 논의들은 바로 이와 같은 입장에서 비롯된 일련의 시도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 맺는 말 중에서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정재서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서울대학교 중문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미국 하바드–옌칭 연구소와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서 연구 생활을 했다. 계간 『상상』 『비평』 등의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국내 최초로 『산해경』을 역주하여 동아시아 상상력의 화두를 제기한 바 있다. 이후 신화학, 도교학 등을 바탕으로 제3의 동양학과 신화학, 동아시아 담론 관련 논의를 전개해왔다. 중국어문학회장, 비교문학회장, 도교문화학회장, 인문콘텐츠학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영산대학교 석좌교수 겸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장으로 있다.
저서로... 더보기

최근작 : <이 시대의 가짜와 진짜>,<제3의 신화학>,<북창 정렴 연구자료 집성> … 총 66종 (모두보기)
리뷰쓰기
공감순




한국적 도교란 무엇인가



몇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도교 관련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도록과 함께 전시됐던 책이라 흥미를 갖고 있었는데 근처 도서관에 없어 오랫동안 숙제처럼 갖고 있다가 드디어 읽게 됐다.

오래 전에 나온 책이라 편집이나 내용이 다소 옛스럽긴 하나 300 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으로 읽기 편하고 도교가 아닌, 한국 도교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 무척 신선하다.

도교도 모호한데 한국 도교는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고구려 고분 벽화에 도교적 색채가 보인다 정도 밖에 몰랐다.

책에 따르면 한국의 도교는 고구려 영류왕 시절 당으로부터 전해진 역사적 기록 외에도 자생적 요소가 있었다고 본다.

이 책의 주제가 바로 한국 도교의 자생적 기원과 고유성을 밝히는 것이다.

화랑의 신선적 성향이나 고구려 벽화의 신선들, 백제의 금동대향로 등을 증거로 내세우고 최치원을 도교의 비조로 본다.

정확히 이해는 못했지만 산을 숭배하고 수련을 통해 신선을 지향하고, 성황신이나 칠성신, 조왕신 같은 무속적인 것도 자생적 도교의 속성으로 보는 것 같다.

샤머니즘이나 무속이 곧 원시 도교라 할 수 있을까?

중국은 도교가 하나의 종교나 학파로써 명확히 실체가 있는데 한국의 도교는 저자의 책 내용만으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저자는 도교가 발해만 주변의 동이에서 비롯된 변방적 성격의 사상으로써 중원과 다르다고 강조하는데 동이가 곧 한민족도 아니고 중원이 아니면 중국이 아닌 것도 아니니 공감하기가 어렵다.

조선 시대 단학파에 대한 고찰이 무척 흥미롭다.

주자학 일변도의 시대라 다른 학문이라면 기껏해야 실학이나 양명학 등 유교의 다른 갈래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적 수련을 통해 신선의 경지에 오르려는 단학파라는 흐름이 있었다는 게 신선하다.

김시습, 정렴, 정지승, 권극중 등이 소개된다.

또 최제우의 동학이나 증산도, 원불교 등도 수련을 통한 신선을 추구하는 도교적 성향을 지녔다는 점이 흥미롭다.

원불교는 이름 때문에 막연히 불교 계통인 줄만 알았는데 저자의 평대로 다원주의적 세계관과 평화를 추구하고 생태계까지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사상 같다.




<인상 깊은 구절>

67p

한국 도교에서 성립된 복원궁, 소격서 두 도관의 경우를 볼 때 이들은 결국 왕실과 국가의 도교 의례를 담당하기 위한 공적 기관이었지 도교 수행 자체를 목적으로 한 조직은 아니었다. 따라서 본래 중국 도관이 갖고 있는 여러 기능 중의 일부를 담당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사족 계층에는 도관의 형태를 갖추지는 않았으나 소규모의 자발적인 수련 조직 및 집단은 적지 않게 존재하여 그들 나름의 계보를 갖고 계승되어 왔던 것 같다.

79p

한국 도교 자생설은 단군 신화 및 고구려 건국 신화에 대한 도교적 윤색 내지 재해석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민족 의식이 기본 정서로서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민족 의식의 정도는 후대로 내려갈수록 높아지는데 이는 종주국이었던 명이 망한 이후 조선 후기에 일기 시작한 소중화적 자존 의식, 점차 기울어져 가는 국세에 대한 우국적인 정서의 표출 등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90p

전국 시기에 발해만 일대라는 변경에서 일어났던 문화 현상을 단원론적 문화사관에 의거, 오로지 중국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주변 문화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논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중국과 주변 문화와의 관계를 과연 오늘날의 배타적인 국가, 영토 개념으로 규정해도 좋은 것일까? 국경과 문화의 경역은 역사적으로 유동적이어서 일치할 수도, 서로 넘나들 수도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중국'이라는 개념은 근대 국민 국가 성립 이후에 확립된 것인데 우리는 은연중 이 개념을 고대 중국 문화에까지 연장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 배후에 중국을 고정불변한 실체로 보는 인식이 존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속지주의적인 문화사관은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일어난 일이기만 하면 과거의 현상일지라도 모두 '중국적'인 것으로 귀속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대륙 학자들의 '토생토장'이라는 관습적인 표현은 이러한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근래까지도 중국은 문명의 외래설, 특히 서방 기원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부심하였다. 그러나 동아시아 내부의 문화 문제에 있어서는 이른바 화이론적 사고로써 주변 문화의 정체성을 홀시하고 그것을 모두 중국으로 환원하려는 이중적인 문화사관을 견지하고 있다. 중국 역외의 학자들 역시 이러한 입장을 답습할 뿐 주변 문화의 변별적 자질을 읽어 낼 시각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발해나 고구려 역시 과연 한민족의 역사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중국에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고대사 전체를 현재의 영토 국가와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할 것 같다)

104p

당 황실은 원래 서방의 이민족 출신으로 문벌을 중시하던 당시의 풍조에 따라 자신의 혈통을 신성시하기 위해 노자를 원조로 모시게 되고 이에 도교는 국교가 되어 불교, 유교의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당대의 관방 도교는 도교와 황권의 완벽한 결합을 의미하며 이것은 당시의 정치적 목적과 긴밀히 상관된다. 첫째로 이미 말하였듯이 당 황실은 도교의 신권을 빌어 자신의 출신을 윤색하고 건국의 정당성을 보장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로 당시 왕성해 있던 불교의 세력을 꺾음으로써 일정한 정도의 사회, 경제적 효과를 도모하였다. 즉, 사원 경제력의 환수로 인한 국가 수입의 증대, 승려의 환속으로 인한 노동력의 증가 및 세수의 증대 등이 그것이다.

123p

도교는 중원 지역에서 자생한 문화라기보다 변경으로부터 유입된 외래의 이족 문화로서의 성격이 짙다. 초기 도교의 경전들이 모두 동방의 방사 계층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전설 및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따라서 도교가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주변적, 이족적인 속성은 본질적으로 다원적인 가치성을 지향하게 되므로 한국 문화와 쉽게 동화되면서 자연스레 자주 의식의 입장에 선 대외 자세를 갖게 된다. 고구려의 당에 대한, 고려의 주변 강국들에 대한 도전적인 입장들과 같이 역사상 도교와 자주 노선의 정책과는 긴밀한 상호관련이 있다. 근래 천황제와 도교와의 긴밀한 관계가 밝혀진 바 있었지만, 관방 도교의 강력한 영향하에 성립된 일본의 왕권이 대외적으로 과시하였던 자주성은 이 문제에 대한 유력한 좌증이 될 것이다.

137p

동학은 강일순이 최제우를 선도의 종장으로 칭했을 정도로 도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최제우가 득도를 자각하게 된 신비로운 체험부터 이미 상당히 도교적인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어느 봄날 최제우는 갑자기 몸이 전율하며 자칭 상제라고 하는 초월적 존재의 계시를 듣게 된다. 최제우의 이러한 종교 체험은 오두미도의 장도릉, 신천사도의 구겸지 등 중국의 초기 도교 교주들의 득도 상황과 거의 비슷하다. 교주들은 신비 체험 중에 신인(대개 천상노군)으로부터 교법이나 경전은 전수받는다. 최제우와 도교 교주들의 이러한 공통적 체험은 양자의 뿌리가 무속에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동학의 교법 중에서 가장 민간 도교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부주의 사용이다. 이른바 영부는 최제우가 앞서의 명상 체험중에 상제로부터 받은 것으로 동학교도에게 있어서는 도교의 불사약이나 선약에 상응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175p

도교의 한국 신화의 전유가 명조의 붕괴 이후 조선 후기의 지식계층 사이에 대두한 문화적 자존의식의 한 표현이었는지, 아니면 중국 도교에서 보여지듯이 한국 신화가 한국 도교의 내용이나 특성을 구현함에 있어 자발적인 전변 과정을 거쳐 왔는지 구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4p

"도가적 인생관이 현실 도피만이 아니라 차원을 달리한 현실 참여라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이에 따라 가령 정렴의 도교 수행을 가세의 변동으로 인한 개인적 굴절로 보기보다는 본래부터 있었던 '일가의 학풍'에 바탕한 자연스러운 처신으로 인식했다. ... 이제 우리는 조선조 단학파의 성격이 종래의 피상적 소견과는 달리 일정한 정치적 지향을 띠고 있으며 그것의 이념적 내용은 민족주의라든가 자주적 역사의식과 상관됨을 알 수 있다.

253p

최치원 도교학의 훌륭한 점은 그가 중국으로부터 귀국한 후 신라에 자생하고 있는 민족의 선도를 재인식하고 그 지위를 중국 도교보다 우위에 둔 점이다. 그는 <난랑비서>에서 고유의 선도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표명하였다. 결국 최치원은 중국의 내단수련법을 체득하고 이를 다시 풍류도의 삼교합일 체계 안에 수용함으로써 한국 수련 도교의 독특한 경지를 이룩해낸 것이다. 최치원 도교학의 이러한 경지는 이후 이자현, 이명, 김시습, 정렴 등에 의해 계승되어 고려, 조선 시기 문인, 사대부 수련 도교의 큰 줄기를 형성하게 된다. 최치원을 한국 도교의 비조라고 일컫는 까닭이 실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258p

"그대는 이미 세상 밖의 사람이 되었으니,

모름지기 세상 밖의 일을 행하게나"

마지막 두 구절은 노인이 김시습에게 당부한 말이다. 이제 수양대군에 대한 분노, 단종 복위에 대한 열망은 세상 밖 사람이 된 김시습에게 있어서 모두가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그가 해야 할 의미있는 일이란 '세상 밖의 일' 즉 수련을 하여 신선의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다. ... 그러나 이러한 유불도 3교합일의 성향은 김시습 개인 학문의 특성이 아니라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한국 古仙道의 전통이다. 한국 고선도 즉 풍류도의 또 하나의 중요한 취지는 사대주의를 배격하는 자주적 역사 의식이다.

268p

<용호비결>은 조선의 의학사상 특히 허준의 <동의보감>의 원리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의보감>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허준만의 독창적인 작품이 아니다. <동의보감>의 기획에는 당대의 여러 학자들이 관계했는데 정렴의 막내 아우 정작이 儒醫로서 참여하여 결정적인 이론을 제공하였다. <용호비결>에서 전개된 정기신론이 <동의보감>의 독특한 도교 의학 체계를 구성한 것이다.



- 접기
marine 2019-02-21 공감(5) 댓글(1)
Thanks to
공감




마이페이퍼
전체 (1)
페이퍼 쓰기
좋아요순



[책 오디세이] 에크리 읽기, O-기호의 매춘부, 회남자 외



아주 솜털 같은 미세한 차이지만 더위의 힘이 정점에서 점차 기우는 듯한 느낌이다. 길거리에는 뙤약볕이 햇물 번지듯 이글거리고, 담과 가까이 자란 나무들 밑은 그래도 그림자가 있어 발과 몸을 담그로 더운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오늘도 그러한 여름 하루였다.



브루스 핑크(Bruce Fink)의 <에크리 읽기>가 나왔다. 라캉을 즐겨 읽는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물론 브루스 핑크가 번역-편집한 '에크리'나 '세미나'가 우리말로 나오길 바라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일단 이것만으로도 짧은 단비는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핑크의 다른 책으로는 <라캉과 정신의학>이 있고, <성관계는 없다>에서는 <라캉의 주체(The Lacanian Subject, 1995)>의 일부가 번역되어 '성적 관계 같은 그런 것은 없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아무래도 핑크의 글쓰기 방식은 전달자 역할에 어울린다. 지젝이 약간 꼬는 재미(희롱)를 부리다가 내려 놓는 것 하고는 맛이 다르다. 그래서 지젝 스타일이 버겁거나 맞지 않는 사람한테는 오히려 핑크의 글이 더 당길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지젝에 비해 핑크의 책은 아직은 숫적으로 많이 부족하다.

그 동안 읽은 '라캉 입문서'들을 정리해서 페이퍼를 쓸 생각인데, 비슷 비슷한 책들이 있는 반면에, 꼭 읽으면 좋을 책들도 몇 권 눈에 띈다. 라캉은 지젝, 핑크와 같이 탄력 있는 줄을 뽑아내는 거미?들이 있는 것이 들뢰즈와 사뭇 다르다. 그리고 사상에서도 서로 같은 차원에서 비교할 극과 극은 아니더라도 얼핏 대비되는 것들이 보인다. 8월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9월로 넘어가기 전에 오랜만에 페이퍼를 꾸며봐야겠다.















<O-기호의 매춘부>는 'O'이라는 기호-아리비아 숫자 영, 알파벳의 'O' 그리고 무(無)의 개념 등을 좀 더 자극적이고 독창적인 시각으로 다룬 듯이 보인다. 물론 이런 비슷한 책들이 여럿 있지만, 그 대상에 어떤 비밀스런 우회로를 거쳐 도착하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O'는 시각적으로도 '우로보로스 뱀'을 연상케 하는데, 역시나 목차에도 '연금술' 항목이 있다. 이언 스튜어트는 과학, 특히 수학적 시각으로 자연을 꿰는 재주가 남달라 보인다. <하느님은 주사위 놀이를 하는가>에서 이 남자를 처음 접했는데, <자연의 패턴>도 그의 진가가 많이 실린 책 같다. 이 책은 전에 <자연의 수학적 본성>이란 약간 센 제목을 가지고 나온 적이 있다. <눈송이는 어떤 모양일까>도 비슷한 패턴을 가진 (자연 속에 숨어 있는 수학) 패턴에 관한 책이다.















회남자는 전부터 읽을 생각은 컷지만, 아직 제대로 눈맛도 못보고 있다. <회남자 황제내경> 이렇게, 회남자와 황제내경까지 묶어서 나온 책도 보인다. 출판사 김영사의 -지식인 마을 시리즈-라는데, 지성인 두명 혹은 고전 텍스트 두 개를 약간 긴장되게 한 권에 담아 번갈아가며 엮어 나가는 식으로 꾸며진 듯 하다. 황제헌원은 우리 고대사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바로 치우천황과 대결을 벌인 주인공이다. 황제가 이겼다는 설도 있고, 치우가 이겼다는 설도 있다. 그리고 치우가 나중에 티베트로 갔다는 말도 얼핏 어디서 본 기억이 나는데, 여긴 도통 어떤 것이 사실이고 신화인지 헷갈리는(헤깔리는x) 영역이다. 어쨌든 이번 여름이 가기 전에 회남자 한 권을 두툼하든 얄팍하든 한 놈 손에 쥘 생각이다.















'회남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약간 거슬러 올라가 도교에 관한 책들을 둘러본다. 나는 도교에 관해서는 앙리 마스페로의 책하고 사까이 다다오 등이 참여한 <도교란 무엇인가, 민족사> 그리고 <도교와 불로장수의학, 열린책들> 등이 기억난다. 그 외에도 <태을금화종지>니 <참동계천유> 등이 있는데, 지금 잠깐 훑어보니가 그새 품절이나 절판된 책이 많다. 물론 도가와 도교가 엄밀하게는 갈리는 것이긴 하지만 <도덕경>을 '여성성의 상징'으로 읽는 방법이 있듯이, 동양에서는 하늘보다 땅의 이치, 여성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도 보이곤 한다. 인도를 (사상적으로) 동양으로 보긴 어렵지만, 인도도 아리안족 침입 이전에는 여신의 힘이 만연했다. 그러나 도교에서의 여성성과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다. <도교와 여성>은 신화나 양생술에 치중한 다른 도교 관련 서들과 차별성을 갖으며, 또한 도교의 핵을 차지하면서도 베일에 가렸던 부분을 드러내는 것 같아 관심이 가는 책이다. <조선시대의 내단사상>은 한길사에서 나온 걸로 가지고 있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새로 나왔다. 박사논문을 단행본으로 만든 것인데, 중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내단 사상을 본격적으로 다룬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을 꺼낸 김에 <내단>이란 책도 잠깐 구경을 해보자. -심신수련의 역사-라는 부제를 가졌는데, 간단한 제목에 비해선 의미있는 작업의 결과가 담긴 것 같다. '내단(內丹)'은 체내에서 연단술을 통해 단을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몸 밖의 물질에 투사되어 발휘될 경우 '연금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참여해서 고대부터 명청시기까지 두루 살핀 것 같은데, 주로 일본학자들의 연구서에 의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학자들의 도교사에 대한 내공적 글쓰기도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DVD-



대니 보일 감독의 <선샤인>은 약간의 무리수를 둔 영화다. 아마 머리가 나쁘거나 뻔뻔한 감독이 아니라고 보는데, <이벤트 호라이즌(Event Horizon, 1997)>과의 비슷함을 어떤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 여기선 마치 '물활론'의 부활이랄까? 주인공들은 너무도 가까이 저 뜨거운 태양에 다가간다. 물론 아마겟돈 같은 임무라지만, 그런 영화를 뛰어넘는 처절함과 혼돈들이 우주선을 통째로 집어 삼킨다. 마치 대원들의 영혼을 삼킬만한 영적인 힘의 압도, 그렇게 거대하게 기다리는 태양처럼. 그러나 그러한 위험 앞에서 우리는(대원들은) 유혹에 노출된다. 태양은 우주의 자궁이 아니던가? 거기에 녹아들기 바라는 뜨거운 타나토스가 이 우주선 안에서 죽은 나무들을 대신해 자라나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스피어(Sphere, 1998)>나 타르코프스키와는 또 다른 스티븐 소더버그의 <솔라리스>에서도 비슷한 위기와 철학적 무게를 맛볼 수 있다.



<세익스피어 컬렉션>은 영국 BBC에서 만들어 낸 세익스피어의 영상 집대성과 비슷한 성격의 모음이다. 수십편(37편)이 담겨 있는 만큼 디스크 숫자도 거기에 버금간다. 세익스피어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소식일 것 같다.




- 접기
TexTan 2007-08-24 공감 (7) 댓글 (0)
Thanks to
공감
찜하기

====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요약 및 평론

1. 책 개요 및 핵심 주제

정재서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는 중국 중심의 단선적 도교 전래설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상고 신화와 고대 한국 문화의 고유한 자양 속에서 형성된 한국 도교의 발생적 기원과 역사적 변천 과정을 통사적으로 규명한 명저이다. 저자는 한국 도교를 단순한 중국 문화의 수용 결과가 아니라, 자생적 신선 사상 및 샤머니즘과 외래 도교 교단 체계가 상호작용하며 형성된 자율적 사상 체계로 재정의한다.

2. 주요 내용 요약

(1) 기원론: 동이(東夷) 문화와 자생적 신선 사상

저자는 도교의 핵심인 신선 사상의 뿌리를 한반도 및 만주 일대의 동이 문화권에서 찾는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산해경(山海經)> 등에 등장하는 불사국(不死國)과 신선 설화는 동방 해양 및 산악 지대의 신앙과 깊이 연관된다. 단군신화의 천손降臨(천손강림)과 수련적 모티프, 그리고 고구려·백제·신라의 선도(仙道) 전통은 중국에서 체계화된 제도의 도교(敎團道敎)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이미 자생적 도교의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증명한다.

(2) 역사적 궤적: 고대에서 조선까지의 변천

  •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 고구려의 영류왕대 도교 도입, 백제의 산수문전(山水紋磚)과 금동대향로에 투영된 도교적 세계관, 신라의 풍류도(風流道)와 화랑 제도는 자생적 선도와 외래 도교가 연합한 대표적 사례이다.

  • 고려시대: 국가적 차원에서 소격전(昭格殿) 등 제초(祭醮) 기관을 설치하고 도교를 국가 의례로 적극 흡수하였다. 이 시기 도교는 왕실의 복록과 국가의 안녕을 비는 호국적·귀복적 성격이 강했다.

  • 조선시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과 성리학적 명분론 속에서 제도적 도교는 약화되고 소격서 폐지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도교는 지식인들의 내단(內丹) 수련과 문학적 상상력, 그리고 민간의 무속·참위·비기 사상으로 침투하여 은밀하면서도 광범위한 생명력을 유지하였다.

(3) 한국 도교의 구조적 특징: 비제도성과 민중성

한국 도교는 중국처럼 강력한 교단이나 사원 중심의 '제도적 도교'로 발달하지 못했다. 대신 유교 및 불교와 기묘하게 결합한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양상을 띠었으며, 수련 중심의 내단 사상과 민간의 복록 기원 신앙으로 양분되어 전승되었다. 이러한 비제도적 특성은 도교가 권력의 억압 속에서도 민중의 의식과 비정통 지식인의 정신적 망명지로 유연하게 살아남는 동인이 되었다.

3. 비평 및 평론

(1) 학술적 의의: 사대주의적 수용론을 넘어서는 비판적 주체성

본서가 지닌 가장 독보적인 학술적 의의는 한국 도교 연구에 가해졌던 중국 중심주의(중화주의)와 식민사학의 타율성론을 일쇄했다는 점에 있다. 기존의 연구가 "중국에서 도교가 몇 년도에 전래되었는가"라는 외래적 시점에 집착했다면, 저자는 한국 고대 문화 고유의 신선적 요소와 샤머니즘적 전통이 외래 도교를 주체적으로 포섭하고 변용했음을 입증한다. 이는 한국 사상사의 범주를 성리학 중심의 단색조에서 탈피시켜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시각으로 확정한 정초 작업이다.

(2) 타자로서의 도교와 사상사적 해방

조선 시대의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는 양반 사대부 중심의 질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도교를 '음사(淫祀)'나 '이단'으로 규정했다. 저자는 이러한 지배 담론의 그늘 아래 억압받았던 도교적 상상력과 생명관을 부각함으로써, 한국 사상사 속 '타자(Other)'의 역사적 에너지에 주목한다. 패배한 지식인, 여성, 민중들이 도교의 비상과 신선 모티프를 통해 현실의 억압을 뛰어넘고자 했던 궤적을 밝혀냄으로써, 도교가 가진 비판적·해방적 역동성을 성공적으로 재조명하였다.

(3) 한계와 과제

다만, 자생적 신선 사상의 기원을 고대 동이 문화권과 연결 짓는 논지는 고고학적·문헌적 자료의 한계로 인해 간혹 원형비평적 추론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동이 문화와 초기 한족 문화의 경계가 애매한 상고 시대를 다룰 때 자칫 자국 중심적 문학/사상사 해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 이후의 풍부한 문헌과 유물을 통해 도교의 역사적 변용을 체계화한 논리성은 사학적·문학적 타당성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4. 결론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는 한반도의 사상적 지형에서 변방에 몰려 있던 도교를 도덕과 규범의 그늘에서 끌어내어 민족 고유의 원초적 상상력이자 문화적 자산으로 재정립한 결정판이다. 이 책은 한국인의 정신사적 뿌리가 단일한 이념이 아닌, 자연 친화적이고 우주론적인 도교적 유산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
정재서 지음, 2006 — 1,000단어 요약·평론

정재서의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는 “한국에 과연 도교가 존재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한다. 한국 종교사를 말할 때 흔히 유교·불교·무속은 독립된 전통으로 인정되지만, 도교는 중국에서 일시적으로 전래되었다가 소멸한 주변적 사상이나 민간 미신 정도로 취급되어왔다. 중국의 도관이나 도사 제도와 같은 조직종교가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재서는 이러한 판단이 중국 도교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은 결과라고 비판한다. 한국 도교를 이해하려면 중국의 제도도교가 한국에 얼마나 그대로 이식되었는가를 묻기보다, 중국에서 들어온 도교가 한반도의 토착 신앙과 결합하여 어떠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도교의 기원부터 현대에 이르는 역사를 개관하는 동시에, 한국 도교의 독자성과 동아시아 문화사에서의 위치를 밝히려는 연구서이다. 저자는 중국 문화를 단일한 중심으로 보지 않고 주변 문화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는 다원적 체계로 파악한다. (예스24)

책은 모두 열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장은 해방 이후 한국 도교 연구의 흐름을 정리하고, 제2장은 한국 도교의 역사·경전·세계관·의례와 조직을 개설한다. 제3장과 제4장에서는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적 전개를 다루며, 이후 장들은 도교문학과 신화, 고구려 고분벽화, 조선의 단학파, 도교 유적, 현대 종교사상, 한국 도교의 주요 인물들을 분석한다. 따라서 이 책은 통사라기보다 한국 도교 연구에 관한 여러 논문을 주제별로 묶은 종합 연구서에 가깝다. (알라딘)

<1. 한국 도교의 기원>

정재서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한국 도교의 역사가 중국 도교의 공식 전래 이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도교의 전래는 624년 당 고조가 고구려에 도사를 보내 <도덕경>을 강론하게 한 사건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건을 도교 자체의 최초 전래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신선문화와 도교적 신앙에 중국의 제도화된 도교가 공식적으로 도입된 사건으로 해석한다.

고대 한반도에는 하늘 숭배, 산악신앙, 영혼불멸, 신성한 조상, 장생에 대한 믿음이 존재했다.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인간과 신적 존재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되는 구조, 산신이 된 단군의 모습 등은 후대 신선사상과 결합할 수 있는 토착적 기반을 제공했다. 고조선과 삼한 사회의 제천의례, 산악과 동굴의 신성성, 무당을 통한 인간과 신의 교류도 도교적 세계관과 친화성을 지녔다.

다만 정재서는 한국 도교가 중국 도교와 전혀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성립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한국의 토착 신앙을 곧바로 도교라고 부를 수는 없다. 그의 주장은 토착적인 신선문화와 무속적 세계관이 중국 도교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 기반을 형성했고, 두 전통의 결합을 통해 한국적 도교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한국 도교는 순수한 자생도교도 아니고 중국 도교의 단순한 복제도 아닌 혼합적 종교문화이다.

<2.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삼국 가운데 중국 도교를 국가 차원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는 고구려였다. 연개소문은 불교세력을 견제하고 왕권 중심의 질서를 강화하기 위해 당나라에서 도사와 도교 경전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도교의 수용을 정치적 도구로만 설명해서는 부족하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사신도, 해와 달, 신선, 비천, 상서로운 동물 등은 이미 고구려인의 우주관에 도교적 상징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음을 보여준다.

정재서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도상을 중국 문화의 모방으로만 보지 않는다. 중국에서 유래한 청룡·백호·주작·현무와 신선의 이미지가 고구려의 장례관습과 내세관 속에서 재배치되었다고 본다. 고분은 단순히 시신을 묻는 장소가 아니라 죽은 자가 새로운 우주로 이동하는 공간이었다. 벽화 속 천상세계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다른 존재양식으로의 변환으로 이해한 고구려인의 상상력을 드러낸다.

백제의 도교는 고구려보다 기록이 적지만, 의약·천문·역법·점복·방술의 형태로 존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백제는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일본에 전달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다. 신라에서는 산악신앙과 화랑도의 수련문화가 도교와 긴밀하게 결합했다.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언급한 풍류도는 유교·불교·도교를 모두 포괄하는 고유한 도라고 설명된다. 정재서는 풍류도를 단순한 도교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신라의 신선사상과 산악수련, 화랑의 초월적 인간상이 한국 도교의 중요한 구성요소라고 본다.

통일신라의 최치원은 한국 도교사에서 핵심적인 인물이다. 그는 유학자이면서 불교와 도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후대에는 신선이 되어 산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재서에게 최치원의 중요성은 그가 특정 종교 하나의 인물이 아니라 유·불·도와 토착 신앙이 결합된 한국적 지식인의 전형이라는 데 있다.

<3. 고려의 국가의례와 도교>

고려시대에는 도교가 국가의례의 한 부분으로 제도화되었다. 왕실은 하늘과 별, 산천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고, 재난을 막고 국가의 안녕과 왕실의 장수를 기원하는 도교의식을 거행했다. 북두칠성을 비롯한 별에 대한 신앙도 널리 퍼졌다. 예종 때에는 도교 사원인 복원궁이 세워지고 도교 의례를 담당하는 기관과 인물들이 활동했다.

그러나 고려 도교는 중국의 도교 교단처럼 독립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불교가 국교적 지위를 차지한 상황에서 도교는 불교와 경쟁하기보다 혼합되는 경우가 많았다. 팔관회는 불교행사이면서 동시에 산천신·용신·천신을 섬기는 토착적·도교적 요소를 포함했다. 칠성신앙 역시 불교 사찰 안으로 들어가 칠성각의 형태로 존속했다.

이러한 혼합성은 한국 도교의 약점이 아니라 가장 뚜렷한 특징이다. 한국 도교는 독립 교단을 유지하지 못했지만 다른 종교의 내부로 침투하여 생존했다. 한국에서 도교가 보이지 않는 것은 도교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불교와 무속 및 민간생활 속에 녹아들어 별도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조선시대의 억압과 변형>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불교뿐 아니라 도교 의례도 비판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제도를 이어받아 소격서에서 하늘과 별에 대한 제사를 지냈지만, 사림파는 이를 이단적이고 미신적인 의례로 공격했다. 조광조의 주장에 따라 중종 때 소격서가 폐지되었으며, 이후 국가 제도로서의 도교는 크게 쇠퇴했다.

그러나 국가의 억압이 도교문화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도교는 왕실의 장수 추구, 의학과 양생술, 풍수지리, 점복, 문학과 회화, 민간신앙 속에서 계속 작동했다. 조선의 선비들은 공식적으로 성리학을 따르면서도 개인적으로 산수를 유람하고, 신선을 동경하며, 호흡과 명상 및 내단수련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한국의 단학파 또는 선도 수련 전통이다. 정렴, 한무외, 권극중 등은 인간의 몸 안에서 정·기·신을 단련하여 정신적 완성과 장생을 추구했다. 중국의 외단술이 광물과 약물을 조제해 불사의 단약을 만들려 했다면, 내단술은 인간의 몸을 하나의 우주이자 연단로로 보았다. 조선의 단학은 성리학적 언어와 도교적 수련법을 결합했고, 충효와 도덕적 수양을 중시했다.

정재서는 <온성세고>를 분석하면서 조선 단학파를 단순히 현실을 피해 산속으로 들어간 은둔주의자로 보지 않는다. 이들은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위기 속에서 개인의 몸과 정신을 바로 세우는 것을 사회 회복의 기초로 삼았다. 다만 그들의 도교는 독립적인 종교운동이라기보다 유교의 도덕윤리 안에서 정당화된 수련문화에 가까웠다.

<5. 도교문학과 신화의 전유>

한국 도교는 종교조직보다 문학과 신화에서 더욱 풍부하게 살아남았다. 신선, 선녀, 도사, 용궁, 별세계, 불로초, 신비한 산과 동굴은 고전소설과 설화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중국 도교의 신화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의 역사와 지리, 민간신앙에 맞게 변형했다.

정재서는 이를 ‘신화의 전유’라고 설명한다. 전유란 외부에서 들어온 신화를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필요에 따라 선택하고 재구성하는 행위이다. 한국 문학 속 신선세계는 중국의 곤륜산이나 봉래산을 모방하기도 하지만, 금강산·지리산·가야산·청학동과 같은 실제 한국의 산악공간에 자리 잡는다. 중국의 신선이 한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토착 산신과 결합하기도 한다.

도교적 문학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환상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부패한 정치와 신분질서를 넘어 자유롭고 평등한 세계를 상상하며, 죽음과 고통에 얽매인 인간이 다른 존재로 변화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선세계는 현실 밖의 공간이지만, 현실의 불완전함을 비판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6. 근현대 민족종교와 도교>

조선 후기와 근대에 들어 도교적 사상은 동학,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를 비롯한 신종교와 민족종교의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종교들은 중국의 도교 교단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았지만, 선천과 후천의 교체, 우주적 질서의 변화, 신인합일, 수련을 통한 인간 개조, 지상선경 건설과 같은 도교적 개념을 활용했다.

정재서는 특히 대순사상과 관련된 삼동윤리의 연원을 검토한다. 삼동윤리는 세계의 종교·인종·문화를 하나의 근원에서 바라보고 조화를 추구하는 사상이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종교혼합주의가 아니라 도교의 포용적이고 다원적인 우주관이 현대적으로 변용된 사례로 본다.

한국의 근대 민족종교는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 식민주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등장했다. 이들은 단군과 신선, 후천개벽과 지상낙원의 상징을 이용하여 민족적 주체성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을 표현했다. 도교적 상상력은 과거의 불로장생을 추구하는 데 머물지 않고 민족과 인류의 변혁을 꿈꾸는 역사적 상상력으로 변화했다.

<7. 한국 도교의 주요 특징>

정재서가 정리하는 한국 도교의 첫 번째 특징은 혼합성이다. 한국 도교는 유교·불교·무속과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유교적 도덕관념, 불교의 수행과 사찰문화, 무속의 신령관이 도교의 신선사상과 결합한다.

두 번째 특징은 비제도성이다. 중국처럼 전국적인 도관과 도사 조직이 장기간 유지되지 못했다. 대신 도교는 국가의례, 민간신앙, 의학, 풍수, 문학, 산악수련 등으로 분산되어 존재했다.

세 번째 특징은 강한 토착화이다. 중국 도교의 신과 상징을 받아들이면서도 한반도의 산신, 단군신화, 화랑도, 풍류도 및 토착 선도사상과 결합했다. 도교가 중국에서 완성된 뒤 한국으로 일방적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교류와 변형을 통해 한국적 형태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네 번째 특징은 문화적 지속성이다. 제도종교로서는 약했지만 한국인의 생활 속에는 도교적 요소가 매우 깊이 남아 있다. 장수와 건강을 비는 습관, 명당에 대한 관심, 산신과 칠성 숭배, 신선도와 십장생, 단전호흡과 기수련 등이 그 사례이다.

<평론>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종교의 존재를 교단과 조직만으로 판단하는 관점을 비판한 데 있다. 종교는 사원과 성직자, 공식 경전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몸에 대한 이해, 죽음과 내세에 관한 상상, 일상적 의례와 예술, 설화와 공간 감각 속에서도 지속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도교는 사라진 종교가 아니라 다른 전통 속에 분산되어 살아온 종교문화이다.

또한 정재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국가의 문화를 평가하는 문화적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한국 도교가 중국 도교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완전하거나 가짜라고 판단한다면, 한국 불교와 유교 역시 중국의 복제품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문화는 원형의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수용과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형성된다. 한국 도교의 혼합성과 비제도성은 결핍이라기보다 고유한 역사적 조건의 결과이다.

그러나 저자의 자생성 강조에는 주의할 점도 있다. 단군신화, 산악신앙, 무속, 화랑도에서 도교와 유사한 요소를 찾아낸다고 해서 그것들을 모두 도교의 기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논쟁적이다. 장생, 하늘숭배, 산악신앙은 세계 여러 문화에서 발견된다. 도교와 닮았다는 사실만으로 직접적인 역사적 연속성을 증명하기는 어렵다.

‘한국 고유의 선도’ 또는 ‘민족 고유의 도교’를 지나치게 강조하면 근대 민족주의가 고대에 투영될 위험도 있다. 고대인은 오늘날의 중국과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았다. 동아시아 문화는 인물·경전·의례·기술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교류권이었다. 따라서 한국 도교의 독자성을 말하더라도 그것을 순수한 민족적 기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 책은 여러 시기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묶은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시대별 역사가 한 흐름으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고대와 조선의 단학, 문학과 근대 종교에 대한 논의는 풍부하지만, 고려와 조선의 민간도교, 여성의 도교적 실천, 의학과 점복에 대한 생활사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후속 연구는 조선 후기 민간도교의 경전과 의례, 지역별 차이, 여성과 평민의 종교생활을 더욱 세밀하게 밝혀야 한다. 실제로 최근 한국 도교 연구에서도 자료의 번역·해제, 조선 후기 민간도교와 도교 경전 연구의 확대가 주요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KCI)

그럼에도 <한국 도교의 기원과 역사>는 한국 종교사를 바라보는 틀을 넓힌 중요한 저작이다. 이 책은 “한국에는 왜 중국과 같은 도교가 없었는가”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도교가 한국에 들어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어디에 스며들었는가”라고 묻는다. 이 질문의 전환을 통해 한국의 산신신앙, 고분벽화, 풍류도, 단학, 신선설화, 십장생, 칠성신앙, 근대 민족종교가 하나의 넓은 문화사적 관계망 안에 들어온다.

결국 정재서가 말하는 한국 도교는 하나의 고정된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인간, 자연과 몸, 삶과 죽음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세계관이며, 인간이 수련과 변화를 통해 현재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상상력이다. 한국 도교는 독립된 제도종교로서는 약했지만, 바로 그 유연성과 혼합성 덕분에 오랜 세월 한국인의 문화적 무의식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 책의 중요성은 사라진 종교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만 있지 않다. 한국 문화가 유교적 합리성과 불교적 구원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신선과 산악, 몸과 생명, 변신과 불사를 꿈꾼 또 하나의 상상력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