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0

Formations of the Secular: Christianity, Islam, Modernity by Talal Asad




Amazon.co.jp: 世俗の形成――キリスト教、イスラム、近代 : タラル・アサド, 中村 圭志: Japanese Books

世俗の形成――キリスト教、イスラム、近代
by タラル・アサド (Author), 中村 圭志 (Translator)  Format: Tankobon Hardcover
2.0 2.0 out of 5 stars   (1)
著者は社会人類学者であり、「非西洋に対する西洋の言説の批判」をテーマに著述を続けている。
その名は、まず人類学の世界において知られているが、本書に収められた論考は、
さらに宗教学・政治学にまで射程をひろげる。

従来、人類学者にとって「宗教」とは、その普遍的本質を論じようと熱意を傾けてきた対象であった。
その一方で、ある意味では自分たちの立つところそのものであり、何ら変わったところのない
ように思える脚下の制度、「世俗」について論じることには、さしたる緊急性を感じないままきていたと言える。
その虚をついたのが、本書である。

著者はまず、啓蒙主義や今日のリベラリズムを含む「西洋の伝統」と「イスラムの伝統」との間にある
ズレの構造を、丹念な記述的方法によって明らかにしていこうとする。そこから、西洋的近代化と
功利的個人主義が現代の発展を判定するための基準である――のみならず、あらゆる伝統がその後に
続くべき唯一の真性な軌道である、という考えの限界が論じられる。

世俗的近代性という、特殊に西洋的なモデルの再考を迫り、近代の権力と宗教的諸伝統の
再布置を試みた、エキサイティングな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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θ
2 out of 5 stars興味深いが、「世俗」概念導入がどれだけ有効だったかはいささか疑問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3, 2016
Format: Paperback
「宗教」というものは現代の社会ではある種の特殊性を持ってみられる一方、リベラルな民主国家はその普遍性が自明視される。

しかし、そうしたリベラルな民主国家が寄って立つ「世俗」もまた決して無色透明でもなければ中立的でもないと筆者は述べる。

本書は「宗教的なもの」と「世俗的なもの」の両軸を用いて近代化、そして現在の社会制度を分析していこうとしている。


ただ、読んだ印象を先に書くと、一部では鋭い指摘もあるが、総じて「手垢のついた近代批判、西欧主義批判を『世俗』というワードに焼きなおして語っているだけ」という面が拭えなかった。

基本的には、「世俗」が考えてきた人間像や生き方の設定、公私区分の枠組の普遍性、中立性を疑い、それを歴史的に紐解いて明らかにしていく。

併せて、他の植民地地域の「野蛮」を「人権」等を論拠に矯正しようとする西欧人も特定の価値に囚われていることを示していく。

これらは妥当だと思うが、すでに既存の近代批判で散々見飽きたものと酷似しており、新味をあまり感じられないし、「世俗」概念をわざわざ持ち出した意味も見えてこない。


もっとも、いくつかの本書での批判対象となっている考え方(「痛み」を権力への抵抗として描く、イスラムを本質を欠く存在とみなす、等)が日本人である当レビュワーには頭に浮かべないようなものだったので、西欧における独特の宗教的な文脈があるのかもしれない。

ともあれ、日本人である当レビュワーには、近代に「苦痛」を「計量可能性」に結び付ける発想が滑り込んだ話等、面白い点もあるのだが、本書の深みはイマイチ見えてこ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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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형성――기독교, 이슬람, 근대
by 타랄 아사드 (Author), 나카무라 케이시 (Translator)  Format: Tankobon Hardcover
2.0 2.0 out of 5 stars   (1)
저자는 사회인류학자이며 '비서양에 대한 서양의 언설의 비판'을 주제로 저술을 계속하고 있다.
그 이름은 우선 인류학의 세계에서 알려져 있지만, 이 책에 수록된 논고는
한층 더 종교학·정치학까지 사정을 늘린다.

종래, 인류학자에게 있어서 「종교」란, 그 보편적 본질을 논하려고 열의를 기울여 온 대상이었다.
한편,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들의 서 있는 곳 그 자체이며, 아무리 바뀌었던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각하의 제도, 「세속」에 대해서 논하는 것에는, 그런 긴급성을 느끼지 않은 채 오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허를 받은 것이 본서이다.

저자는 우선 계몽주의와 오늘날의 리베라리즘을 포함한 '서양의 전통'과 '이슬람의 전통' 사이에 있는
엇갈림의 구조를 정교한 기술적 방법으로 밝혀내려고 한다. 거기서 서양적 근대화와
공리적 개인주의가 현대의 발전을 판정하기 위한 기준이다――뿐만 아니라 모든 전통이 그 뒤를
이어야 할 유일한 진성한 궤도라는 생각의 한계가 논해진다.

세속적 근대성이라는 특수하게 서양적인 모델의 재고를 강요하고 근대의 권력과 종교적 전통의
재포치를 시도한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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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out of 5 stars
흥미롭지만 '세속'개념 도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어쩐지 의문
Reviewed in Japan on January 3, 2016

'종교'라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종류의 특수성을 가지고 보이는 한편, 리버럴한 민주국가는 그 보편성이 자명시된다.

그러나 그러한 리버럴한 민주국가가 들러 서 있는 '세속'도 또한 결코 무색투명도 아니면 중립적이지 않다고 필자는 말한다.

본서는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양축을 이용해 근대화, 그리고 현재의 사회제도를 분석해 나가려 하고 있다.

다만 읽은 인상을 먼저 쓰면 일부에서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지만, 총괄적으로 "수술이 붙은 근대 비판, 서구주의 비판을 '세속'이라는 워드로 다시 구워 말하고 있을 뿐"이라는 면이 닦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세속」이 생각해 온 인간상이나 생활 방식의 설정, 공사 구분의 틀의 보편성, 중립성을 의심해, 그것을 역사적으로 참해 밝혀 나간다.

아울러 다른 식민지 지역의 '야만'을 '인권' 등을 논거로 교정하려는 서구인도 특정 가치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기존의 근대 비판으로 흩어져 질리지 않은 것과 닮아 있어, 신맛을 그다지 느낄 수 없고, 「세속」개념을 일부러 꺼낸 의미도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몇몇 본서에서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는 사고방식(「아픔」을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 그리는, 이슬람을 본질이 부족한 존재로 본다, 등)이 일본인인 당 레뷰워에는 머리에 떠오를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서구에서의 독특한 종교적인 문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본인인 당 레뷰워에게는 근대에 ‘고통’을 ‘계량 가능성’에 연결시키는 발상이 미끄러진 이야기 등 재미있는 점도 있지만, 이 책의 깊이는 이마이치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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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tions of the Secular: Christianity, Islam, Modernity 
by Talal Asad

amazoncustomer
5.0 out of 5 stars Asad is a rare gem in our contemporary attempts to ...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November 24, 2015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Asad is a rare gem in our contemporary attempts to think about religion, secularism, law etc. Nothing matches the quality and greatness of his thinking. Whatever he writes is always full of insights. But it is very difficult to understand what he is trying to say in terms of the secular (dispositions) and secularism (as a doctrine) unless one reads his other master-piece Genealogies of Religion together with this one. That story he tells there, of the monastic world of medieval monks in particular, some of whom like High of St. Victor he mentions in the Formations, is essential to understanding how he thinks about the secular, vis-a-vis the pre-modern world of religious practice and its connection to community and tradition. This concept of tradition is what he also tries think in the Formations, with regard to thinking about what the secular inaugurates; but one needs to grasp of how he thinks about tradition in the Genealogies to understand how he tries to think about question of tradition in the sec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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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hduddin Abdul Razaq
5.0 out of 5 stars Engaging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October 1, 2018
Verified Purchase
In Understanding the formation of the concept of 'this' is a very informative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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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rose by any other name
5.0 out of 5 stars Five Stars
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September 23, 2016
Format: PaperbackVerified Purchase
Text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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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주의의 구성>: 탈랄 아사드가 해체한 근대 세속주의의 권력 담론 요약 및 평론

1. 서론: 세속주의라는 근대적 신화에 메스를 들이대다

무함마드 아사드의 아들이자 세계적인 종교인류학자인 탈랄 아사드(Talal Asad)가 2003년에 출간한 <세속주의의 구성: 기독교, 이슬람, 근대성>(Formations of the Secular)은 현대 인문·사회과학계에서 종교와 세속주의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통째로 뒤흔든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아사드는 이 책에서 서구 근대성이 확립한 가장 공고한 신화, 즉 <세속주의는 종교로부터 해방된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이성의 영역>이라는 명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는 세속주의를 단순한 정치와 종교의 분리가 아니라, 근대 국가가 인간의 신체와 도덕, 그리고 정치를 통제하기 위해 구축한 특수한 <권력 담론이자 통치 기술>로 규정한다. 본 글에서는 이 난해하지만 혁신적인 텍스트의 핵심 논지를 요약하고, 아사드가 이룩한 비판적 성취와 한계를 평론하고자 한다.

2. <세속주의의 구성>의 핵심 내용 요약

아사드는 인류학적 족보학(Genealogy) 방법론을 사용하여,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속적인 것’(the secular)과 ‘세속주의’(secularism)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었는지 추적한다.

세속적인 것과 종교의 근대적 발명

아사드의 첫 번째 핵심 논지는 ‘종교’와 ‘세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서구 기독교 역사 속에서 변형되며 <함께 발명된 쌍둥이>라는 점이다. 근대 세속 국가는 스스로를 중립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기 위해, 종교를 인간의 삶 전체에서 분리해 내어 개인의 ‘내면적 신념’이나 ‘사적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즉, 무엇이 정당한 종교이고 무엇이 배제되어야 할 미신이나 세속의 영역인지를 결정하는 권력 자체가 바로 근대 세속 국가라는 것이다. 아사드는 이를 통해 세속주의가 종교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권력이 종교를 재정의하고 통제하는 과정임을 밝혀낸다.

근대 국가의 폭력과 신체의 규제

책의 중반부에서 아사드는 세속주의 체제 하에서 인간의 신체와 고통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분석한다. 세속주의적 근대성은 종교적 순교나 고행을 야만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고통의 제거를 인도주의적 가치로 내세우지만, 정작 국가의 목적(전쟁, 자본주의적 생산 등)을 위해 가해지는 거대한 제도적 폭력과 고통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합법화한다. 즉, 세속 국가는 잔혹함을 금지한다는 명목 하에, 인간의 신체적 행위와 도덕적 감성을 국가가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재규율한다.

이슬람, 민족국가, 그리고 소수자의 딜레마

아사드는 유럽 내 무슬림 소수자 문제와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통해 세속주의의 배타성을 폭로한다. 서구 세속주의 국가들은 이슬람이 사적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영역(복장, 법적 관습 등)으로 걸어 나올 때 이를 ‘근대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다. 세속주의적 관용은 오직 <국가가 허용한 사적 영역 안에서만> 유효하기 때문이다. 아사드는 이슬람 전통이 가진 유기적 삶의 방식이 근대 민족국가의 획일적인 세속적 법질서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필연성을 논증한다.

3. 평론: 근대성 비판의 도약인가, 대안 없는 해체주의인가

긍정적 평가: 세속적 오만을 무너뜨린 인류학적 성찰

<세속주의의 구성>이 지닌 가장 위대한 사상적 성취는 서구식 세속주의가 지닌 독점적 보편성에 심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점에 있다. 아사드는 세속주의가 종교적 광신을 치료하는 유일한 처방전이 아니라, 서구 기독교 역사라는 특수한 토양에서 자라난 <지방적 담론>임을 명확히 규명했다. 이는 그의 아버지 무함마드 아사드가 <교차로에 선 이슬람> 등에서 서구 근대성의 물질주의를 신앙의 언어로 비판했던 것에서 나아가, 아들은 포스트구조주의(미셸 푸코의 권력 담론 등)의 엄밀한 학문적 언어로 서구의 헤게모니를 완벽히 해체해 낸 것이다.

그는 세속주의 국가가 자처하는 ‘중립성’과 ‘관용’의 가면을 벗겨냄으로써, 어떻게 세속주의가 비서구 문화와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또 다른 형태의 교조적 권력으로 작동하는지 폭로했다. 신앙을 단순한 개인의 취향으로 환원하지 않고, 인간의 신체적 습속과 공동체적 전통이라는 두터운 맥락 속에서 바라본 그의 시선은 현대 포스트콜로니얼(탈식민주의) 연구의 최고의 자산이다.

비판적 평가: 대안의 부재와 또 다른 본질주의의 위험

그러나 이 저작은 강렬한 비판과 해체의 힘에 비해, 그 이후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정치철학적 취약성을 노출한다.

아사드는 근대 세속 국가의 권력과 폭력을 철저하게 해부하지만, 세속주의 담론이 해체된 자리에 어떤 형태의 대안적 정치 공동체나 법질서가 들어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세속주의의 위선을 고발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종교가 공적 권력을 장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신정정치적 폭력이나 인권 유린이라는 또 다른 현실적 위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눈을 감는다. 또한, 서구 세속주의를 하나의 거대하고 정형화된 ‘권력 덩어리’로 범주화함으로써, 세속주의 내부에서 전개되어 온 민주적 가치나 시민사회의 자율적 역동성을 다소 평면화했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이슬람과 민주주의의 구체적인 헌법적 통합 모델을 설계하려 했던 능동적 정치가였다면, 아들은 텍스트와 담론의 모순을 짚어내는 철저한 관찰자이자 비평가의 위치에 머문다.

4. 결론: 근대 세계의 경계선에서 읽는 나침반

탈랄 아사드의 <세속주의의 구성>은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근대라는 무대의 숨겨진 구조를 폭로하는 지적 각성제다.

비록 현실적인 제도적 대안을 직접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종교적 근본주의’와 ‘세속적 근본주의’가 맹목적으로 충돌하는 21세기의 오늘날, 이 책이 주는 사상적 울림은 결코 작지 않다. 아사드는 우리에게 세속주의라는 근대적 도그마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의 힘을 길러주었으며, 서구 중심적 문명관을 넘어 인간의 다양한 전통과 삶의 양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참된 세계인(Cosmopolitan)의 성찰적 태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신앙과 이성,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근본부터 다시 사유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여전히 높은 산맥이자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원하시는 1,000단어 분량과 주해 성격에 맞춰 요약 및 평론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혹시 탈랄 아사드가 책에서 다룬 사우디아라비아의 처벌 방식에 대한 분석이나, 에드워드 사이드 등과의 사상적 교류 등 더 자세히 살피고 싶으신 대목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세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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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mations of the Secular: Christianity, Islam, Modernity / 탈랄 아사드, 『세속적인 것의 형성: 기독교, 이슬람, 근대성』>은 현대 종교학·인류학·정치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간단히 말해 이렇다. <세속주의는 종교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 권력이 종교, 정치, 윤리, 신체, 감정, 공적 공간을 새롭게 재배치한 역사적 구성물이다.> 탈랄 아사드는 “세속적인 것”을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상태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근대 서구, 특히 기독교 이후의 유럽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특수한 개념이며, 이후 식민주의와 국민국가를 통해 세계 보편처럼 확산되었다고 본다.

이 책은 2003년에 출간되었고, 아사드의 이전 저작 <Genealogies of Religion / 종교의 계보학>과 이어진다. <Genealogies of Religion>에서 그는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서구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범주라고 비판했다. <Formations of the Secular>에서는 그 문제의식을 더 밀고 나아가 “세속”과 “세속주의” 역시 자연적·중립적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보인다. 따라서 이 책은 종교와 세속의 단순한 대립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아사드가 먼저 문제 삼는 것은 자유주의적 세속주의의 자기 이해다. 일반적으로 세속주의는 종교전쟁 이후 평화를 위해 종교를 사적 영역으로 돌려보내고, 공적 영역을 중립적으로 만드는 정치 원리로 설명된다. 이 설명에 따르면 세속주의는 관용, 합리성, 개인의 자유, 종교 간 평화를 보장하는 문명적 성취다. 아사드는 이 이야기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너무 자기축하적이라고 본다. 세속주의는 단순히 종교를 억압에서 해방한 것이 아니라, 종교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국가가 새롭게 규정한 체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근대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는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정치인지, 어떤 종교 행위가 허용되고 어떤 행위가 공공질서를 위협하는지 판단한다. 이때 국가는 중립적 심판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종교의 형식과 한계를 정하는 강력한 권력이다. 아사드에게 세속주의는 종교를 단순히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사적인 믿음>, <양심의 문제>, <개인의 선택>이라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의례, 신체 규율, 공동체적 의무, 법적 전통으로서의 종교는 점점 낯설고 위험한 것으로 취급된다.

이 책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의 비교는 매우 중요하다. 아사드는 세속주의가 기독교를 배경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서구 근대에서 종교는 점차 내면의 믿음, 개인 양심,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틀 속에서 이해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역사적으로 법, 윤리, 의례, 공동체 질서, 신체 규율이 분리되지 않는 전통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므로 서구식 세속주의의 기준으로 이슬람을 보면, 이슬람은 자꾸 “정치적 종교”, “전근대적 종교”, “공적 영역에 과도하게 침입하는 종교”로 보이게 된다. 아사드는 바로 이 판단 기준 자체가 이미 세속주의적 권력의 산물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아사드가 이슬람주의를 단순히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이슬람은 원래 정치와 종교가 하나이므로 세속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식의 본질주의도 피한다. 그의 관심은 이슬람을 이상화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근대 국가, 식민주의, 자유주의, 인권 담론, 안보 담론 속에서 이슬람이 어떻게 특정한 방식으로 문제화되는지를 분석한다. 다시 말해 그는 “이슬람은 세속주의와 양립 가능한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왜 우리는 그런 질문을 그런 방식으로 묻게 되었는가?”를 묻는다.

이 책의 한 장점은 “세속”을 단순한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몸과 감각의 문제로 본다는 데 있다. 아사드는 세속 근대가 인간의 고통, 잔혹성, 신체, 감정, 죽음을 어떻게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예컨대 현대 자유주의 사회는 고문과 잔혹한 형벌을 비문명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전쟁, 감옥, 식민지 폭력, 안보국가의 폭력을 합리적 필요로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세속 근대가 반드시 폭력을 줄였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폭력의 형식과 정당화 언어가 바뀌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사드는 또한 인권 담론을 섬세하게 다룬다. 그는 인권을 단순히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권이 보편적 도덕언어로 제시될 때, 그것이 실제 국제정치에서는 특정 국가와 문명이 다른 사회를 판단하고 개입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사드가 “인권은 위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더 복잡하게 말한다. 인권은 고통받는 사람을 보호하는 언어일 수 있지만, 동시에 근대 권력이 어떤 고통은 보이게 하고 어떤 고통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방식과 연결된다.

책의 또 다른 핵심은 “신화로서의 세속주의” 비판이다. 자유주의 세속주의는 자신을 합리성, 평화, 관용의 체제로 묘사한다. 반대로 종교는 갈등, 열정, 비합리성, 폭력의 원천으로 묘사되기 쉽다. 그러나 아사드는 이 구도가 역사적으로 부정확하다고 본다. 근대 세속 국가는 엄청난 전쟁, 식민지 지배, 인종주의, 국가폭력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폭력을 종교의 본성으로 돌리고 세속을 평화의 영역으로 보는 것은 매우 편향된 역사서술이다.

이 책은 무함마드 아사드의 사상과 비교해도 흥미롭다. 아버지 무함마드 아사드는 이슬람의 보편적 원리와 샤리아의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현대 무슬림 공동체의 재건을 말한 근대주의자였다. 그는 이슬람이 현대 세계에 답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아들 탈랄 아사드는 그런 규범적 재건보다, 먼저 “현대 세계가 종교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통제하는가”를 묻는다. 아버지가 “이슬람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를 물었다면, 아들은 “우리가 종교와 세속을 말하는 언어 자체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묻는다. 이 점에서 탈랄은 아버지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훨씬 더 인류학적이고 계보학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책의 장점은 매우 크다. 첫째, 세속주의를 중립적 상식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만든다. 많은 사람은 세속주의를 종교 갈등을 해결하는 보편적 해법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사드는 세속주의도 하나의 역사적 권력 구성이라고 보여준다. 둘째, 이슬람을 “세속화가 덜 된 종교”로 보는 서구 중심적 시각을 비판한다. 셋째, 종교를 단순한 믿음 체계가 아니라 몸, 의례, 법, 감정, 공동체 훈련의 문제로 이해하게 한다. 넷째, 자유주의의 언어 속에 숨어 있는 권력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한계도 있다. 첫째, 책이 매우 어렵다. 아사드는 명료한 교과서식 설명을 하지 않는다. 푸코식 계보학, 인류학, 정치철학, 종교사, 법이론이 뒤섞여 있어 독자가 따라가기 쉽지 않다. 개념을 정의하고 체계적으로 전개하기보다, 익숙한 전제를 흔드는 방식으로 쓴다. 그래서 처음 읽는 독자는 “그렇다면 아사드가 대안으로 무엇을 주장하는가?”라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둘째, 아사드는 자유주의 세속주의의 권력성을 매우 잘 비판하지만, 세속주의가 실제로 종교적 소수자, 무신론자, 여성, 이단자, 개종자, 비판적 지식인을 보호해온 측면은 상대적으로 덜 강조한다. 세속주의는 권력 장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교 권력의 강제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아사드의 비판은 날카롭지만, 이 균형은 독자가 보완해서 읽어야 한다.

셋째, 이슬람 전통에 대한 그의 접근은 깊고 섬세하지만, 때로는 이슬람 내부의 권력 문제를 충분히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다. 식민주의와 자유주의가 이슬람을 어떻게 문제화했는지는 잘 보이지만,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 국가, 남성 권력, 종교 권위, 관습이 개인을 어떻게 억압했는지는 상대적으로 덜 부각된다. 물론 아사드의 목표가 이슬람 사회 비판이 아니라 세속주의 비판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넷째, 이 책은 규범적 입장이 일부러 모호하다. 아사드는 자유주의 세속주의의 모순을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국가를 주장하지도 않는다. 그는 대안을 설계하기보다 문제를 다시 묻게 만든다. 이 태도는 학문적으로는 강점이지만, 정치적 판단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불만족스러울 수 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책은 특히 의미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사적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는 말이 상식처럼 쓰인다. 이 말은 필요할 때가 많다. 종교가 국가권력과 결합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사드를 읽으면 그 말 자체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누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나누는가? 어떤 종교는 문화로 인정되고, 어떤 종교는 정치적 위협으로 취급되는가? 국가가 “중립”을 말할 때 그 중립은 정말 중립인가? 이런 질문은 한국의 기독교, 불교, 원불교, 이슬람, 신흥종교, 퀘이커 같은 소수 종교를 이해할 때도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Formations of the Secular>는 세속주의를 반대하는 책이라기보다, 세속주의를 너무 쉽게 믿지 말라고 요구하는 책이다. 아사드는 종교가 선하고 세속이 악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더 근본적으로, 우리가 종교와 세속을 구분하는 방식 자체가 역사적으로 만들어졌고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종교는 사적이고, 세속 국가는 중립적이며, 근대는 관용의 진보다”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더 이상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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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해주신 일본 아마존 독자의 서평은 

탈랄 아사드의 <세속주의의 구성>이 서구 이외의 문화권(특히 동아시아)에서 읽힐 때 발생하는 아주 전형적이면서도 날카로운 한계를 정확히 짚어낸 훌륭한 비평입니다.

이 서평에 대한 요약 및 주해 평론을 대화 규칙(<해라> 체 및 괄호 < > 사용)에 맞춰 다음과 같이 정리해 드립니다.

일본 아마존 독자 서평에 대한 분석 및 평론: 동아시아적 시선에서 본 서구 담론의 해체

1. 서평의 핵심 논지 요약

이 리뷰어는 별점 2점(<5점 만점>)을 부여하며, 책의 흥미로운 부분들을 인정하면서도 <세속>(the secular)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저자의 시도가 과연 얼마나 유효했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 긍정적 측면: 리베랄(자유주의) 민주국가가 보편적이고 중立적이라고 자명시하는 <세속>이라는 공간이 사실은 무색투명하지도 중립적이지도 않음을 역사적으로 끄집어낸 점, 그리고 근대가 <고통>(pain)을 <계량 가능성>과 결부시킨 대목 등은 흥미롭고 유의미하다고 평가한다.

  • 비판적 측면: 그러나 이 책의 전반적인 논조는 이미 기존의 인문학에서 수없이 다루어진 <진부한 근대 비판 및 서구 중심주의 비판을 '세속'이라는 단어로 포장지만 바꿔 끼운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굳이 세속이라는 개념을 새로 꺼내 들 만큼의 신선함(Newness)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 문화적 거리감: 또한 저자가 비판하는 몇몇 대상(고통을 권력 저항으로 묘사하는 것, 이슬람을 본질이 결여된 존재로 보는 것 등)은 일본인인 리뷰어의 사고방식으로는 애초에 떠올리기 힘든 서구 특유의 종교적 맥락이기에, 텍스트의 깊이에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2. 비판적 커멘트 및 평론

첫째, 동아시아의 ‘비(非)개신교적 세속성’이 놓인 맹점

이 일본인 리뷰어가 이 책을 서구 비판의 <재탕>으로 느낀 것은 매우 당연하면서도 필연적인 결과다. 서구에서 <세속주의>(Secularism)는 기독교(특히 개신교)라는 거대한 절대 권력과 투쟁하며 형성된 정치적·문화적 산물이다. 따라서 서구 지성계에서 세속주의의 기만을 폭로하는 것은 엄청난 지적 충격을 준다.

반면,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기독교적 일신교 정치가 사회 전체를 지배한 역사가 없다. 유교, 불교, 신도(Shinto) 등이 혼재된 다교(Polytheistic)적 환경 속에서 근대를 맞이했기 때문에, 동아시아인들에게 ‘종교와 분리된 세속 공간’은 서구처럼 피 흘려 쟁취한 절대적 도그마라기보다는, 근대화 과정에서 수입된 하나의 사회 제도에 가깝다.

분석: 이 리뷰어가 "우리(<일본인>)는 애초에 생각지도 못한 서구 독특의 종교적 맥락이 있는 것 같다"고 한 고백은 정답이다. 탈랄 아사드의 타격 대상은 서구의 개신교적 근대성이기 때문에, 그 배경이 없는 독자에게는 아사드의 분투가 <이미 다 아는 서구 문명 비판>을 단어만 바꾸어 공회전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둘째, '손때 묻은 근대 비판'이라는 지적의 타당성과 한계

"손때 묻은(<手垢のついた>) 근대 비판의 재포장"이라는 리뷰어의 표현은 포스트모더니즘과 탈식민주의 담론에 익숙한 지식인들이 가질 만한 정당한 비판이다. 미셸 푸코가 <감視와 처벌> 등에서 권력과 신체, 인권을 해체했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했으니, 아사드의 글이 그들의 그림자 아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아사드가 굳이 <세속>이라는 워드를 들고나온 이유는, 푸코나 사이드조차도 ‘세속주의’만큼은 합리적 이성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실수를 범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아사드의 공헌은 서구 비판의 범위를 인권과 제국주의를 넘어, 근대인이 공기처럼 마시는 <세속적 감성>(secular subjects) 그 자체로 확장했다는 데 있다. 리뷰어는 이를 ‘말장난’으로 폄하했으나, 이는 아사드가 행한 족보학적 미세 분석의 깊이를 담론 수준으로만 단순화하여 받아들인 결과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셋째, ‘근대적 고통의 계량화’에 대한 공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뷰어가 최고로 흥미롭다고 꼽은 대목, 즉 <근대가 고통을 계량화와 결부시켰다>는 지점을 포착한 것은 이 서평의 백미다. 아사드는 근대 세속 국가가 인도주의의 이름으로 고통을 통제하고 수치화(의학적, 사법적 통계)하면서, 오히려 국가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모순을 짚었다. 리뷰어는 본능적으로 이 대목이 지닌 인류학적 독창성을 알아본 것이다.

3. 결론

이 일본 아마존 서평은 탈랄 아사드의 텍스트가 지닌 <철저한 서구 중심적 맥락>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서구 근대성을 해체하기 위해 씌어진 책이기에, 그 근대성의 세례를 비껴간 혹은 다르게 겪은 동아시아의 독자에게는 그 파괴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아사드의 서구 비판을 정확히 이해하면서도 본인의 문화적 위치(<일본인 독자>)를 자각하며 텍스트의 거리감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점에서, 이 서평은 단순한 불평을 넘어 비서구권 독자가 서구 이론을 만날 때 던져야 할 주체적 질문을 담은 뛰어난 비평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세진님, 이 독자의 지적처럼 서구의 세속주의 담론이 한국이나 일본의 종교·정치 현실에 적용될 때 생기는 괴리감이나, 아사드가 책에서 다룬 고통의 계량화 이론에 대해 더 논의하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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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본 아마존 독자평은 꽤 흥미롭습니다. 단순한 악평은 아니고, 탈랄 아사드의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이해한 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새로운가?”라고 묻는 비판입니다. 저는 이 서평이 절반은 맞고, 절반은 아사드의 핵심을 조금 놓쳤다고 봅니다.

이 독자는 먼저 책의 기본 논지를 잘 잡고 있습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가 특수하고 사적인 것으로 보이는 반면, 리버럴 민주국가는 보편적이고 중립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사드는 그 리버럴 민주국가가 기대고 있는 “세속” 역시 무색투명하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는 매우 정확한 이해입니다. <Formations of the Secular>의 핵심은 바로 “세속은 종교의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근대 권력이 종교와 삶을 재배치한 역사적 형성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리뷰어는 곧바로 이렇게 비판합니다. “일부 날카로운 지적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낡은 근대비판·서구중심주의 비판을 ‘세속’이라는 말로 다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이 비판은 일본 독자 입장에서는 나올 만합니다. 일본 지식계에서는 이미 메이지 이후 서구 근대 수용, 근대국가, 식민주의, 국민국가, 제국주의, 인간주의, 보편주의 비판이 상당히 축적되어 있습니다. 특히 포스트콜로니얼 이론, 푸코, 사이드, 가라타니 고진, 사카이 나오키, 아사다 아키라 이후의 논의를 어느 정도 접한 독자라면, “서구의 보편성은 사실 특정한 역사적 권력의 산물이다”라는 말은 아주 새롭게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리뷰어가 느낀 피로감은 이해됩니다. “또 근대비판인가, 또 서구 보편주의 비판인가”라는 반응입니다. 실제로 아사드의 책은 쉬운 명제 하나만 떼어놓으면 이렇게 요약될 위험이 있습니다. “세속주의도 중립이 아니다.” 이 정도로만 읽으면 식상해 보입니다. 리뷰어가 별 두 개를 준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합니다. 그는 책의 문제의식은 인정하지만, “세속”이라는 개념을 새로 도입해야 할 만큼의 설명력은 못 느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비판이 아사드의 독창성을 충분히 보지 못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드의 핵심은 단순히 “서구도 편향되어 있다”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나 푸코식 근대 권력 비판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아사드가 더 집요하게 묻는 것은 “종교라는 개념 자체가 어떻게 근대 세속 권력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근대비판과 조금 다릅니다.

보통 근대비판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구 근대는 자신을 보편으로 포장했지만 사실은 특수한 문명이다. 자유, 인권, 합리성, 국가, 시민 같은 개념도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 아사드도 물론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와 “세속”이라는 구분 자체가 기독교 이후 유럽의 역사 속에서 형성되었고, 이 구분이 이슬람 같은 다른 전통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서구 자유주의 국가는 종교를 “개인의 내면적 믿음”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의례, 법, 신체 규율, 공동체적 의무, 식생활, 복장, 가족법, 교육 같은 것이 종교와 결합되어 있는 전통은 곧바로 문제적이 됩니다. 이슬람의 히잡, 샤리아, 할랄, 공동체적 의무는 “사적인 믿음의 경계”를 넘어 공적 영역을 침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사드가 말하는 “세속”의 힘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세속주의는 종교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교 형태는 정상으로 인정하고 어떤 종교 형태는 위험한 것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세속” 개념은 단순한 포장지가 아닙니다. 아사드에게 세속은 근대국가가 종교를 관리하는 방식, 신체를 규율하는 방식, 고통과 잔혹성을 판단하는 방식, 공사 영역을 나누는 방식, 자유와 강제를 정의하는 방식 전체를 가리키는 분석 개념입니다. 리뷰어가 “기존 근대비판과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맞지만, “그래서 세속 개념이 불필요하다”고 한 것은 조금 성급합니다.

리뷰어가 특히 흥미롭게 쓴 부분은 다음입니다. 자신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아사드가 비판하는 몇몇 생각, 예컨대 “고통을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묘사하는 발상”이나 “이슬람을 본질을 결여한 존재로 보는 발상”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 대목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히려 이 리뷰는 일본 독자가 아사드를 읽을 때 생기는 거리감을 잘 보여줍니다.

아사드의 책은 기본적으로 유럽 기독교, 자유주의 세속주의, 식민주의, 이슬람 표상, 인권 담론 사이의 긴장을 배경으로 합니다. 일본 독자는 이 문제를 직접 자기 역사로 경험하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일본도 근대국가, 국가신도, 제국주의, 식민지 지배, 전후 민주주의, 종교법인 제도라는 맥락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세속”은 서구 기독교 이후의 세속과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종교와 비종교의 경계가 전통적으로 서구식으로 뚜렷하지 않았고, 신도·불교·민속신앙·국가의 관계도 독특했습니다. 그래서 아사드가 비판하는 “기독교적 세속주의의 계보”가 일본 독자에게는 덜 절박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이 서평은 아사드 책을 일본적으로 읽는 한계를 보여줍니다. 일본 독자가 “이건 우리에게 그렇게 새롭지 않다”고 느낄 수 있지만, 사실 일본의 세속성도 분석되어야 합니다. 예컨대 메이지 국가는 신도를 “종교가 아닌 국가 의례”로 만들고, 불교와 기독교를 종교로 분류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아사드적인 문제입니다. 무엇이 종교이고, 무엇이 국민 의례이며, 무엇이 문화이고, 무엇이 정치인가를 국가가 규정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리뷰어가 일본의 국가신도와 전후 세속국가 문제까지 연결했다면, 아사드의 “세속” 개념이 훨씬 더 유효하게 보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뷰어가 “근대에 고통을 계량 가능성과 연결하는 발상은 흥미로웠다”고 한 것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아사드는 세속 근대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새롭게 분류하고 측정하고 관리하는지에 관심을 둡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권 비판이 아닙니다. 근대 국가는 잔혹한 형벌을 비판하면서도, 감옥, 병원, 군대, 식민지 행정, 전쟁, 안보 정책 속에서 고통을 합리적으로 배분합니다. “고통을 줄인다”는 명목 아래 고통을 측정하고 통제하고 정당화하는 체계가 생깁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아사드의 독창적인 면입니다.

이 독자평의 가장 큰 약점은 아사드의 글을 “논지의 새로움” 중심으로만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아사드의 힘은 완전히 새로운 주장을 발명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의 힘은 이미 익숙해진 개념, 예컨대 종교, 세속, 자유, 고통, 인권, 관용, 공적 영역 같은 말들을 낯설게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는 “세속주의도 편향되어 있다”는 단순 명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쓰는 개념들이 어떤 역사적 훈련과 권력 속에서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려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깊이는 한 번 읽어서 바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리뷰어가 “깊이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정직한 감상입니다. 실제로 아사드의 문장은 친절하지 않고, 결론도 명쾌한 처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주기보다, “당신이 질문을 구성하는 방식부터 의심하라”고 말합니다. 이런 책은 독자에게 불친절합니다. 별 두 개 평점은 그런 독서 경험의 불만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평가를 조금 달리하면, 바로 그 불친절함이 아사드의 방법입니다. 그는 세속주의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속주의가 자신을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하는 방식을 계보학적으로 해체합니다. 따라서 이 책을 “대안이 약하다”고 비판할 수는 있지만, “낡은 근대비판의 반복”이라고만 보는 것은 부족합니다.

한국 독자에게 이 일본 독자평은 좋은 경고가 됩니다. 우리도 이 책을 읽으며 “서구 보편주의 비판은 이미 많이 들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사드를 제대로 읽으려면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합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적이다”라는 말은 언제 부정적 의미가 되는가? 어떤 종교는 문화유산으로 인정되고, 어떤 종교는 미신이나 광신으로 분류되는가? 국가와 언론은 이슬람, 개신교, 불교, 신천지, 무속, 원불교, 퀘이커 같은 전통을 어떤 기준으로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는가? “세속적 공공성”은 정말 중립적인가?

이렇게 읽으면 아사드의 “세속” 개념은 단순한 서구비판을 넘어 한국과 일본에도 적용 가능한 분석 도구가 됩니다. 특히 일본의 국가신도, 한국의 반공국가와 개신교, 프랑스의 라이시테, 미국의 시민종교,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를 비교하면 아사드의 문제의식은 훨씬 살아납니다.

결론적으로 이 일본 독자평은 공정한 불만을 담고 있습니다. 책이 어렵고, 새로움이 잘 보이지 않으며, 기존 근대비판과 겹쳐 보인다는 지적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 독자는 아사드가 “세속”을 단순한 표어가 아니라 종교를 재구성하는 권력의 역사적 장치로 분석한다는 점을 충분히 밀고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서평은 좋은 출발점이지만, 최종 평가는 조금 박하다고 봅니다. 별 두 개보다는 별 세 개 반 정도가 더 적절해 보입니다. 아사드의 책은 감탄하며 술술 읽히는 책이 아니라, 나중에 다른 사례를 볼 때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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