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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01

함석헌의 바가바드기타 주석에 나타나는인용 모음 주석법의 재해석* 나혜숙**

 인도철학제46집(2016.4),75~100쪽

http://krindology.com/db/docs/03.ip46_NHS.pdf

함석헌의 바가바드기타 주석에 나타나는인용 모음 주석법의 재해석*


나혜숙**


Ⅰ들어가는 말. 

Ⅱ 힌두 주석 전통에서 바라본 이 문헌의 연구 가치.

Ⅲ 인용 모음에 대한 기존 해석들. 

Ⅳ 독자의 기타 이해에 초점을 둔 인용 모음. 

Ⅴ 나가는 말.


요약문 [주요어: 함석헌, 바가바드 기타, 주석법, 인용 모음, 해석, 독자]


본 연구는 함석헌(1901-1989)의 바가바드 기타 주석에 나타나는 인용 모음 주석법을 재조명한다. 기존의 해석들과 달리, 본 연구에서는 함석헌이 인용 모음 주석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독자의 기타 이해를 돕는 데 있다고 주장하고 다섯 가지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함석헌은 마치 초횡의 노자익처럼 기타에 대한 좋은 주들 의 요점만 모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편리함을 추구한다. 이러한 의 미에서 함석헌의 기타 주석서를 ‘기타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함석헌은 기타 본문에는 없는 해제와 서론을 만들었다. 도움 없 이 기타를 읽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는 그는, 해제와 서론을 만드는 것은 독자가 기타를 읽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직접 밝혔다. 셋째, 함석헌은 어려운 단어, 구절, 시구에 여러 번역과 주석을 제공한 다. 자신의 인도 철학 지식에 한계가 있으므로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번역과 주석을 제공해 독자가 읽고 스스로 뜻을 가늠하게 하기 위 해서이다. 넷째, 함석헌은 다른 주석을 인용할 때 논리적인 핵심만 인용 하지 않고 다른 주석가들이 사용하는 인용까지 포함시키는 일이 잦다. 그 이유는 되도록 다양한 인용을 통해 생소한 기타를 이해하기가 수 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함석헌은 여섯 명의 기타 주석가 가운데 라다크리슈난 의 주석을 압도적으로 인용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문헌을 풀이하고, 동서 양의 예시를 풍부하게 들고, 중세 힌두 주석가들도 인용하는 주석가이 므로, 기타의 내용을 조금 더 알기 쉽게 소개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이 사실들에 근거를 둘 때, 함석헌의 인용 주석법은 선별한 모음이고 독자의 기타 이해를 돕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결과라고 이해할 수 있

다.

 

* 이 논문은 2015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5S1A5B5A07042502).

** 서강대학교 종교연구소 연구원. rapanda1@hanmail.net



Ⅰ. 들어가는 말


바가바드 기타(이하 기타로 약칭)는 고대 힌두 경전 가운 데 한국에도 잘 알려진 경전이다. 한국에 처음 이 경전이 번역된 것은 산스크리트어의 영역서(英譯書)1)를 인도학자 박석일이 번역 한 바가바드 기타로 1978년2) 정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박석일의 번역은 중역(重譯)이기는 하지만 힌두교의 대표적 경전군에 속하 는 기타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번 역서 다음에 출간된 역서는 앞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산스크리트 어의 영역서3)를 함석헌(1901-1989)이 번역하고 주석을 단 바가

 

1) Prabhavananda, Swami & Christopher Isherwood, trans.(1st ed. 1944; rep. ed. 1972).

2) 몇 군데에서 초판으로 소개된 1987년 박석일의 바가바드 기타는 중판(重版)이다.

3) 함석헌은 어떤 영역서(英譯書)를 저본으로 번역했는지 서지 정보를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주석서 첫머리에 언급한

“에브리맨스(Everyman’s) 문고판의 바가바드기타”(함석헌 1996: 56)를

단서로 하고 여러 번역을 대조한 결과, 그가 저본으로 한 기타는 다음의

영역서에 포함된 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Nicol Macnicol, ed.(1938),

HinduScriptures:HymnsfromtheRigveda,FiveUpanishads,the

Bhagavadgita,Everyman’s Library, London: J. M. Dent & Sons

Ltd.이다. 이 책은 이미 영역되어 출판되었던 힌두 경전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리그 베다와 우파니샤드는 막스 뮐러(Max Müller)의 번역, 기타는 라이오넬 바넷(Lionel D. Barnett)의 번역이고,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가 서문을 썼다. 이 1938년 판본은, 로버트 제너(Robert C. Zaehner)가 새로 번역, 편집하고 서문을 쓴 개정판이 1966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오기 전까지 꾸준히 인쇄를 거듭했다(1943,

1948, 1957, 1959, 1963. 1965). 이 1938년 판본에 실린 바넷의 기타

번역(책 제목은 Bhagavad-Gita:orTheLord’sSong)은 1905년 첫 출간된 이후 여러 번 증쇄했기 때문에 어떤 판본인지 확실하지 않다.

1906년부터 1982년까지 에브리맨스 문고판의 출판 역사를 편찬한

바드 기타이다. 함석헌의 역주서는 스무 권의 함석헌전집 중 한 권으로 한길사에서 1985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기타에 대한 많은 번역서, 해설서, 논문이 출판되었다.

기타에 대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역서이자 최초의 주 석서이기도 한 함석헌의 기타 주석에는 눈에 띄게 두드러지는 점이 있다. 그것은 이 문헌이 기타에 대한 다른 주석, 힌두교 외 의 종교 경전, 문학 작품의 인용을 모아놓은 방법으로 일관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논자(論者)가 논점을 근거를 들어 전개하 는 쓰기 방식이 익숙한 현대에, ‘주석가가 왜 자신의 주석을 주 (主)로 하지 않고 인용 모음을 주로 하는가?’, ‘이러한 주석법을 어 떻게 이해하면 좋은가?’와 같은 질문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함석헌의 주석서에는 이 주석법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이 일체 없다. 그래서 본 논문에서는 먼저 과거에 이 질문을 던지고 대답한 학자들의 언급을 분석한 후, 함석헌의 주석서를 주의 깊게 읽어 이 질문에 새로운 측면에서 대답해 보려고 한다. 그리고 함 석헌의 인용 모음 주석법이 기존의 이해들과 달리 ‘독자의 기타 이해’와 관련된 활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함석헌의 주석서 판본 이 세 종류4)이기 때문에, 기타와 그 주석을 인용할 때 독자의 편의상 쪽 표기대신 기타의 장과 절로 표기한다. 선행 연구에 들어가기에 앞서 함석헌의 기타 주석서의 연구 가치를 논한다.

 

시모어(Seymour)는 1905년 판본인 듯하다고 추정한다(Seymour 2011:

146).

4) 위에서 언급한 함석헌전집 13권(한길사 1985), 이거룡의 해제를 넣은 ‘한길그레이트북스’ 18권(한길사 1996), 이거룡의 해제를 빼고 다시 편집한 함석헌저작집 28권(한길사 2009).

Ⅱ. 힌두 주석 전통에서 바라본 이 문헌의 연구 가치

함석헌의 기타 주석서는 함석헌 연구자나 기타 연구자에게 잘 알려진 문헌이기는 하지만 이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세밀한 연구는 이 문헌이 출간된 후 현재까지 30년이 넘는 동안 거의 전 무하다. 박홍규는 “함석헌의 바가바드 기타에 대한 연구는 없 다” )고 바르게 지적했다. 2013년에 출판된 박홍규의 논문함석 헌과 간디의 종교관 비교: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 로는 중요한 서지 정보가 불분명한 데에 따른 오류가 있기는 하 지만, ) 함석헌의 기타 주석서를 연구의 주요한 한 축으로 삼았 고 텍스트 연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이 문헌을 가장 비중 있 고 세밀하게 다룬 연구다.

이렇게 이 문헌을 대상으로 한 연구물 수는 턱없이 적지만, 이 문헌은 활발하게 연구할 가치가 있다. 연구하는 방향에 따라 그 가치를 다양하게 논할 수 있겠지만, 본 논문에서는 힌두 주석 전 통에서 바라보는 이 문헌의 가치를 살펴보고자 한다. 함석헌은  기타를 주석서 형태로 출간했는데 그 자체가 주목할 만하다. 왜 냐하면 주석서는 힌두 지적(知的) 전통이 전수되는 형태를 가장 특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힌두교 내 교파 간 분쟁은 물리적 이라기보다 주로 지적 논쟁이고, 일반적으로 이 논쟁은 교파의 권 위 있는 근본 경전에 대한 주석과 해석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주 석가는 자신이 속한 교파의 근본 경전을 주석하면서 교리의 입장 에 맞추어 경전을 해석할 수 있음을 입증해내고, 그 해석에 동의 하지 않는 다른 교파에 속한 논쟁자들의 의견을 포함시키고 논박 한다. 그리고 때때로 어떤 주석에 복(複) 주석이 쓰이고, 그 복 주 석에 또 복 주석이 쓰이는 방식으로 주석 전통이 이어졌다. 그리 고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복 주석들이 붙은 주석은 경전에 준 하는 큰 권위를 얻게 되는 경우도 생겼다. 이렇게 힌두교의 교파 간 철학적, 종교적, 신학적 교류는 전통적으로 주석이라는 형태로

행해졌다.7)

함석헌이 노자와 장자의 경전에도 주석했기 때문에 왜 특별히 힌두 경전 기타에 주석을 한 것이 특별한 일일까 생각할 수 있 다. 그러나 힌두 지적(知的) 전통에서 지식이 전수되고 교류된 주 된 방식이 ‘주석’이라는 것은 인도 문헌에 관심 있는 연구자가 아 닌 이상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고, 함석헌의 주석서에 대한 기 존 해석과 평가에서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를 환 기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는 주석에서 논쟁자를 포함시키고 논박 하는 인도의 전통적인 주석 방법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가 힌두 종교와 철학의 면면(綿綿)한 주석 전통에 대해 알고 있었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번역서가 아니라 주석서를 남긴 사실에 과대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 사실 을 과소평가할 필요도 없다.

 

7) 김호성(2004: 195)은 다음과 같이 힌두 지적(知的) 전통의 특징을 잘 정리해 말해 주었다. “선행하는 원전에 대한 주석/해석으로서 그 철학사가

전개되어 왔다는 점은 인도철학의 한 특징이다. 근현대에 이르러

해석학(Hermeneutics)이 서양의 신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발전되어 왔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나, 자기학문의 방법론을 해석학으로서 의식하는 것에는 다소 뒤졌다고 하더라도, 그 哲學史 전체가 해석학적 특징을 躍如하게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정통의(vedic) 인도종교철학에 앞서는 것은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비록 함석헌은 힌두 사상을 잘 모른다고 겸손해했지만 문헌을 읽어보면 실제로는 많은 인도 주석과 번역을 읽었음을 알 수 있 다. 그가 힌두 주석 전통을 ‘이론적으로’ 몰랐을 수는 있어도, 기 타의 주석 전통이 인도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여러 인도 주석을 읽으면서 ‘실제로’ 맛보았다. 그리고 스스로 의식하지도 의 도하지도 않았겠지만 힌두 주석의 그리고 기타 주석의 전통적 흐름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국내에 기타에 대한 한글 번역서, 해설서, 학술 논문은 적극적으로 출판된 데에 비해, 한국인이 쓴 기타 전체에 대한 주석서는 지금까지도 함석헌의 주석서뿐이다. 그래서 함석헌의 주석서에 담긴 주석 내용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힌두 경전 자체가 생소하던 1980년대 국내에 힌두 경전이 주석서 라는 형태로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함석헌의 주석서는 국내 힌두 종교와 철학 연구사에서 독특하고, 과감하고, 의미 있 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이 문헌의 가치를 주석서라는 형식상의 특징을 가지고 논했다. 이제 이 주석서의 여러 주석법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다고 판단되고 학자들도 가장 주목했던 인 용 모음식 주석법에 관해 기존의 해석들을 각각 살펴본다.


Ⅲ. 인용 모음에 대한 기존 해석들


함석헌의 인용 모음에 관한 학자들의 언급은 함석헌에 관한 글 과 기타에 관한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의 의견을 네 가지 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장광설 및 온갖 것의 수집으로 본 해석, 둘째, 인용을 나열이라고 성격 지운 후 회통과 종교다원주의로 본 해석, 셋째,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인용으로 대체한다는 해석, 넷 째, 인용을 비교 행위로 본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

1. 장광설, 온갖 것 수집 심재룡은 기타를 다양한 해탈의 길이 담긴 경전이 아니라 카 스트 제도를 옹호하는 “일관된 절대주의 철학의 산물” )로 해석한 다. 그래서 기타를 해석하는 다른 방식들을 비판하면서 “어떤 이들은 이 <노래>에서 석가, 공자, 노자, 예수 등 인류의 온갖 성 인의 말씀을 다 발견하노라고 장광설을 벌이는가 하면” )이라고 말한다. 심재룡이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구절의 “어떤 이 들”에 함석헌이 속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류황태는 “[기타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보이는 번역 서도 거의 없다. 함석헌의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자신의 관점이 명확하지 않다. 세상 온갖 것을 다 수집해 놓은 것 같다.”10)고 말 한다. 본 논문에서는 함석헌이 인용을 모으는 행위를 자신의 지식 을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아무 것이나 수집하는 행위로 해석하지 않고, 독자가 기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라고 주장할 것이다.

2. 나열, 회통과 종교다원주의

이거룡은 인용 모음 주석법에 관해 처음 주목하고 가장 분량 있는 글을 남겼다. 그는 함석헌의 인용이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체계도 없이 그저 이런저런 주석가들의 생각을 나열해놓은 듯하 고”, ) “백과사전식의 나열처럼 보이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고 말한다. 그는 무분별해 보이는 나열식 주석법이 부정 적으로 여겨질 수 있음을 잘 알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선생의 나열식 인용은 결코 싸구려 절충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의미의 회통(會通)이 아닐까 싶다. 좀 단순하고 투박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종교 경전들을 나란히 인용하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것만으로도 각 종교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등을 기대고 있는 듯하여 실로 보기가 좋은 것이다.13) 이후 김영호도 이거룡과 같은 입장에 선다.

꼭 종교학 이론을 세우지 않더라도 여러 종교 경전들을 나열식으로 인용하는 것만으로 그는 종교간의 갈등이 보이게 안 보이게 첨예한 오늘의 풍토에 경종을 주고 종교 다원주의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 그것을 학자들은 절충주의(syncretism)라고 하기도 하지만, 단순한 절 충이 아니고 높은 자리에서 감싸안는 ‘회통’(會通)이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말일 것이다.14)

이렇게 이거룡, 김영호는 함석헌의 인용 모음을 ‘나열’이라고 보 고 나서 회통과 종교다원주의의 긍정적 측면으로 해석한다. 함석 헌의 인용에서 종교다원주의와 회통을 제시(김영호)까지는 아니 더라도 발견(이거룡)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본 논문에 서는 함석헌의 인용 모음 주석법이 무분별한 나열의 성격보다는 선별한 모음의 성격에 가깝고, 회통과 종교다원주의보다는 우선 독자의 기타 이해에 더 관련된 활동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3. 인용을 빌려 자신의 말을 한다.

이거룡은 함석헌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인용을 통해 한다고

해석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보면 선생의 생각이 담긴 부분이라고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듯하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주석을 끌어다 쓰는 가운데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다하는 주석을 내고 있

 

13) 이거룡(1996) p. 51.

14) 김영호(2001) pp. 238-239.

다.15)

‘이러저러한 경전들이 이러저러하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에, 기실 자기의 생각을 담아낸다.16)

류황태는 함석헌이 “자신의 맘에 드는, 자신의 판단에 적당한 인용 비교를 해 놓았다.”17)고 말한다. 박홍규도 류황태와 같은 입 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면 함석헌의 바가바드기타 해석서에는 간디를 비롯한 여러 사 람의 해석이 함석헌 자신의 해석과 함께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해석 과 달리 타인의 해석을 인용한 것은 어떤 의도인지 명확하지 않다. 그 해석에 찬성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해석의 하나로 제시한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해석 중 한두 가지를 인용하고 있 으므로 자신의 의견과 같다고 본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18)

인용이란 함석헌이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도구이거나(이거 룡), 그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나(류황태) 자신의 의견과 같은 부분 을 인용했다(박홍규)는 해석이다. 주를 선별하는 행위, 선별한 주 안에서도 인용할 부분을 고르는 행위에는 선별하고 고르는 자의 시각이 분명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그가 ‘자신 의 말을 대신 전하는 주’ 혹은 ‘자신의 의견과 같은 주’를 선별해 인용했다기보다는, ‘독자가 기타를 잘 이해하는 데에 적합하다 고 판단한 주’를 인용한다고 제안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점이 함석헌 자신보다는 독자에게 있다고 제안할 것이다. 주석서에서 함석헌은 직접 주석하는 일도 많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을 굳이 인용을 통해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15) 이거룡(1996) p. 49.

16) 이거룡(1996) p. 51.

17) 류황태(2009) pp. 65-66.

18) 박홍규(2013) p. 89.

4. 인용을 비교한다. 기타의 구절과 인용을 비교한다.

함석헌의 인용 주석법에 대해 류황태는 “대부분 관련이 없는, 초점에 맞지 않는 인용 비교를 늘어놓는다” )고 말한다. 그리고 박홍규는 “그의 바가바드기타 해석은 … 그 각 구절을 다른 종 교나 사상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이를 비교종교학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고 말한다. 류황태는 함석헌이 “인용 비 교”를 한다고 평가했는데, 함석헌은 번역끼리는 비교했지만, 자신 이 인용한 주석, 경전, 문학 작품끼리 비교하거나, 평가하거나, 해 석하는 일을 일체 하지 않는다. 함석헌이 주를 선별해 모으는 데 에 관심이 있었고 모아 놓은 인용들끼리 비교하지는 않았기 때문 에 류황태가 말한 “인용 비교”는 성립되기 힘들다. 그리고 본 논 문에서는, 함석헌의 인용법이 박홍규가 말한 대로 기타의 구절 과 다른 사상들을 비교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오히려 기타의 구절을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돕기 위해 여러 인용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교 행 위란 모음 행위보다 한 단계 발전된 분석 행위인데, 함석헌이 기 타의 구절과 다른 종교나 사상을 ‘비교한다’고 평가할 만한 근거 가 약하기 때문이다.


Ⅳ. 독자의 기타 이해에 초점을 둔 인용 모음


기존의 해석들과 달리, 본 논문에서는 인용 모음 주석법이 독자 의 기타 이해를 초점으로 둔다고 주장하기 위해 다섯 가지 근 거를 제시할 것이다. 첫째, 함석헌은 좋은 주들에서 뽑은 요점을 한데 모은다. 둘째, 해제와 서론을 만든다. 셋째, 어려운 단어, 구 절, 문장에 여러 번역을 소개한다. 넷째, 제3의 인용을 포함시킨 다. 다섯째, 동서양의 예시들과 중세 힌두 주석가들을 인용한 라 다크리슈나의 주석을 가장 많이 인용한다. 이들을 차례로 살펴본

다.

1. 좋은 주를 한데 모아 편리하다.

함석헌은 기타 주석서에서는 인용 모음에 대해 논한 적이 없 지만, 다른 주석을 모아 놓는 주석법의 장점은 편리함이라고 다른 곳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많은 주석서 중 초횡(焦竑)의 노자익(老子翼)에 관련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노자에 대해서 고래로 주석이 많아요. 옛날 사람은 요새와는 또 달 라서는 노자익(老子翼)이라는 걸 제일 편리하다 하지요. 왜 그런고 하니 각 사람의 주(註)를 다 보려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은 그 렇겠지만, 그럴 새가 있어요? 그런데 초횡(焦竑)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재주도 있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인데, 모든 걸 골라서, 자기 말도 이따 금 나오긴 나오지만, 자기만이 아니고 남들의 좋은 주를 모아서 냈어

요.

이 책의 특색은 본문이 있을 뿐만 아니라, 본문을 한 사람이 해석하 는 것이 아니고 개중에 그래도 누가 누가 했던 주로 좋은 걸로 몇 개 골라서 그 요점 되는 거를 같이 실었어요. 이 사람 저 사람의 해석을 볼 수가 있어 편리한 거야. 이름도 노자익이라 하는데 왜 익(翼)이 라 그랬는고 하니, 새에게 나래가 있으면 잘 날 수 있는 모양으로 이 런 주가 있으면 좋다는 거지요. ‘덕(德)을 우익한다’ ‘호랑이에 나래 붙 은 사람’이라 그러잖아요? 노자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좋은 주를 붙 였다 그런 의미로 노자익이라 그래요.21)

함석헌이 노자에 대한 특정 주석에 관해 쓴 위 인용글에서 그

 

21) 함석헌(2009a) p. 56.

가 주석 활동에서 중시한 세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여러 해석 을 한데 볼 수 있는 편리함을 중시한 점, 둘째, 많은 주석 가운데 좋은 주석을 골라 싣는 점, 셋째, 선별한 주석 중에서도 요점을 싣 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기타 주석에 그대로 적용된다. 함석헌도 여러 사람의 해석을 실었고, 주를 선별했고, 선별한 주 를 다 인용한 것이 아니라 요점이라고 생각한 점을 실었다. 그러 므로 그가 초횡의 주석법을 기타에 도입했다고 볼 수 있고, 그 런 의미에서 함석헌의 기타 주석서를 ‘기타익(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익에 관한 함석헌의 생각을 고려 하고, 또 그가 노자익에 관해 서술한 주석법과 기타의 주석법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함석헌의 인용은 기존의 연구에서 쓰인 ‘나열’로 이해하기보다는 ‘모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함석헌의 주석 의도를 더 잘 살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함석헌이 이 방법을 사용하는 목적은 ‘자신이’ 편리하게 기타를 읽기 위함도 있겠지 만, ‘독자가’ 기타에 관한 여러 주석을 한데 모아 편리하게 읽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2. 해제와 서론을 만든다.

함석헌은 해제와 서론을 만들어 싣는다. 그는 말로만 전해 듣던 기타를 부산 헌책방에서 우연히 발견해 놀라고 기뻤다고 말한 직후, “주도 설명도 하나 없으니 옳게 이해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 래도 읽고 또 읽으니 좋았습니다.”라고 말한다. 함석헌이 저본으 로 삼은 힌두 경전들(Hindu Scriptures) )의 한 부분으로 실린 바넷(Barnett)의 기타 영역에는 해설과 주가 있기는 하지만 아 주 적었다. ) 함석헌은 자신이 이 경전을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번역으로 읽을 때 막막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기타 영역서 에 포함된 서론과 부록을 선택해 해제용(解題用)으로 번역해 싣는 다. 그는 왜 해제와 서론이 필요한지를, 그리고 왜 자신의 말로 쓰 지 않고 다른 글을 번역해 싣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내가 경험해 봤으니 설명 없이는 알기 어려울 줄을 압니다. 해제나 서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해제의 경우] 서툰 내가 하는 것보다는 잘한 이의 것을 빌리는 것이 옳을 듯해 스와미 프라바바난다(Swami

Prabhavananda)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의 공 동 번역에 실린기타와 마하바라타기타의 우주론두 장을 우선 실어서 앞으로 읽어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할까 합니다.24)

함석헌이 해제용으로 번역해 실은기타와 마하바라타에는  기타와 기타가 속한 마하바라타의 주요 주제인 다르마 (dharma)가 소개되어 있다. 또기타의 우주론에는 기타의 핵 심 철학인, 상키야(sāṅkhya) 철학의 순수 정신인 푸루샤(puruṣa) 와 근본 물질인 프라크리티(prakṛti)의 이원론이 소개되어 있고, 근본물질에서 23개의 물질이 전개되는 원리가 도표와 함께 실려 있다. 둘 다 기타에 생소한 한국 독자에게 입문용으로 소개하기 에 적당한 자료이다. 또한 원래 기타 본문에는 서론이 없지만 함석헌은 거의 모든 장(열여덟 장 중 열다섯 장)에 인용으로 이루 어진 서론을 넣는다. 이렇게 해제와 서론을 주석에 넣는 것은, 그 가 “설명 없이는 알기 어려울 줄을 압니다. 해제나 서론이 필요합 니다”, “앞으로 읽어가는 데 도움이 되게 할까 합니다”라고 말한 대로, 독자가 기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 외에는 따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3. 어려운 단어, 구절, 문장에 여러 번역을 소개한다.

함석헌은 기타 본문의 단어, 구절, 시구 전체가 어려울 때 여 러 번역을 제공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본다. 우선, 기타 2.66을

 

24) 함석헌(1996) p. 56. 묶음표는 필자의 삽입.

함석헌은 “마음의 통일 없는 사람에게 이성 없고, 마음의 통일 없 는 사람에게 영감도 없다. 영감이 없는 사람에게는 평화가 없고 평화가 없는 사람에게 어디서 즐거움이 있겠느냐?”로 번역한다. 이 구절의 단어를 주석하면서 그는 “영감”의 산스크리트어 bhavana(원래는 bhāvanā)를 소개한 후, 이 단어에 대한 총 일곱 가지 번역을 소개한다. 산스크리트어 bhāvanā는 직역하면 형용사로서 ‘존재하게 하는’, ‘일으키는’, 명사로서 ‘생각’, ‘상상’, ‘명상’이라는 뜻으로 이 시구에서는 번역이 까다롭다. 그래서 함석헌은 자신의 번역인 ‘영감’으로 뜻을 결정하면서도, 일곱 번역, 즉 ‘헌신’(간디), ‘집중력’(라다크리슈난), ‘정려(靜慮)’(다카쿠스, 즉 세계성전전집 ), ‘올바른 상태’(데이비스), ‘반성’(힐), ‘지식 추구의 유지’(텔랑), ‘신령 감응’(바넷, 즉 에브리맨스 문고판)을 소개한다.

또 난해하다고 판단한 기타 8.4 )에 대해서는 다섯 명(라다크 리슈난, 다카쿠스, 간디, 스와미 프라부파다, 틸라크)의 번역을 모 두 문장 채로 소개한다. 함석헌이 주석을 길게 인용하는 일은 흔 하지만, 번역가들의 기타 시구 번역을 통째로 인용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이 시구가 그에게 상당히 난해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본문에 인도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 ‘푸루샤’가 들어가자 다 음과 같이 말한다.

… 그중 가장 문제 되는 것이 둘째 구절에 있는 푸루샤라는 말이다. 그것은 사람, 사람 몸, 인류, 개인, 인격, 혼, 초월적 영, 원시 남성 등 등으로 번역되는 말이다. 인도 철학을 모르는 나로서는 도저히 확신을 가지고 그중 어느 것을 골라낼 수가 없다. 위에 인용한 여러분들의 번 역을 참조해 독자가 스스로 짐작하기 바란다.(기타 8.4에 대한 함석 헌의 주석 중) 함석헌이 이 시구와 특정 개념을 번역하는 어려움을 밝히고, 그

래서 여러 번역을 제공하고, 독자가 직접 살펴보기를 권하는 모습 을 볼 수 있다. 함석헌이 ‘푸루샤’ 개념을 이해하는 데 겪은 어려 움은 다른 곳에서도 보인다.

숨은 푸루샤를 말하는 것인데, 물질(prakriti)에 대립시켜서 생명의 씨, 혹은 정신, 혹은 얼, 혹은 인격, 혹은 말씀(로고스)이라 부를 수 있 는 것이므로 여기서 숨이라 해봤다. 어떤 번역에는 원인(原人)이라 하 기도 했다.

수천 년에 걸쳐 발전해 온 힌두교의 복잡한 교리, 철학, 신화, 우주 론의 뜻을 우리로서는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읽는 데 다소 도움이 될까 하여 바가바드기타 있는 그대로의 한 절을 인용하여 그것이 얼마나 많은 이름으로 불리는가를 보이기로 한다.(기타 8.22 에 대한 함석헌의 주석)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함석헌은 바가바드기타 있는 그대로라는 기타 주석서에 나열된 푸루샤의 별칭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푸루쇼타마(Purushottama), 트리비크라마(Trivikrama), 케샤바 (Keshvava), 마다바(Madhava), 아니룻다(Aniruddha), 흐리시케샤 (Hrishikesha), 상카르사나(Sankarsana), 프리쥼나(Pradyumna), 슈리다라(Sridhara), 바수데바(Vasudeva), 다모다라(Damodhara), 자나르다나(Janardana), 나라야나(Narayana), 바마나(Vamana), 파

드마나바(Padmanabha) 등등이다.”

푸루샤는 리그 베다부터 상키야 철학과 베단타 철학을 거쳐 힌두 사상에서 풍요롭고 깊이 있게 발전한 철학 개념이므로, 함석 헌이 주석가로서 겪었을 학문적 어려움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그 의 주석에서 보이는 훌륭한 점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 번역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언급을 회피하거나 최소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그는 자신이 확신 있게 뜻을 선택하기 어 려움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밝히고, 여러 번역과 주석을 인용해 독 자가 이들을 참고한 후 직접 뜻을 가늠하기를 권한다. 이것은 그 의 인용 모음이 독자의 기타 이해에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말 해 준다. “읽는 데 다소 도움이 될까 하여 바가바드기타 있는 그 대로의 한 절을 인용”한다고 그가 한 말에서도, 그의 주석 인용 이 독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함석헌은 그가 인용한 주석들의 해석적 시각끼리 혹은 인용한 주석끼리 평가하거나 비교하는 일은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본문의 단어, 구절, 문장 번역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이 사실은 그가 주석가들의 해석과 인용을 비교하는 일보다는 기타 의 본문을 이해하는 일에 더 무게를 둔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다.

4. 제3의 인용을 포함시킨다.

함석헌은 주석, 경전, 문학 작품을 직접 인용할 뿐만 아니라, 그 가 인용하는 주석가가 인용하는 제3의 인용도 자주 포함시킨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예를 든다. 함석헌은 기타 4.23을 주석하면 서 데사이 )의 주석을 인용한다. 우선 기타 4.23은 다음과 같다.

집착을 떠나 해탈하여, 그 마음은 지혜 위에 굳게 서고, 그 행동, 희 생을 위하는 사람의 행위(業)는 온전히 소멸되어버리느니라.(기타 4.

23)

함석헌은 이 본문에 대한 데사이의 주석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

다.

[4장] 19절에서 23절까지는 자유로운 행위의 모든 조건을 묶어서 설명하는 말이다. 3장 9절에서는 희생을 위한 행위는 얽어맴이 없다고 했는데 이 절에서는 희생은 카르마, 곧 업까지도 소멸시킨다고 한다. 업이란 이제 앞으로 열매를 맺을 행위다. 희생은 그와 같이 얽어맴을 예방도 하고 고칠 수도 있는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다. 구자라트의 신 비가 나라신하 메다(Narasinha Metha)는 무지한 사람을, “굴러가는 차 밑을 걸어가면서 자기가 그 차를 끌고 가거니 하고 믿는 개와 같 다”고 말하였다. 판디트 살타발레카르(Saltavalekar)는 지혜있는 사람 을 설명하기 위해 이런 아름다운 비유를 했다. “차를 타고 앉아 있는 사람이 차가 움직이는 대로 움직이지만, 정말 움직이는 것은 차뿐이 다. 그와 마찬가지로 어진 사람은 지극히 높으신 이를 찾아 제 몸이라 는 차를 타고 나가는데, 그 몸은 움직이나 자신은 가만히 앉아 있다.”

(기타4.23에 대한 데사이의 주석)

함석헌이 데사이의 주석을 인용할 때, 데사이가 인용한 두 사람 나라신하 메다와 살타발레카르의 인용은 굳이 들어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 함석헌은 데사이의 주석적 요점에 더해 데사이가 인용한 부분, 즉 함석헌에게는 제3의 인용까지 포함시킨 것이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물론 그가 이 비유가 마음에 들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가 독자가 기타 본문을 더 잘 이해하는 데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함석헌의 주석서에서 가 장 긴 주석인 기타 6.10에 대한 주석은 그 대부분이 라다크리슈 난의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기타 6.10은 다음과 같다.

요가를 닦는 사람은 은밀한 곳에 홀로 남아 있어, 몸과 마음을 억제 하고, 모든 욕망과 가진 것을 버리고, 늘 정신 모으기를 힘써야 하느니

라.(기타 6.10)

이 시구에 대해 라다크리슈난은 우선 요가에 대해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를 언급하면서 외부로 향하는 마음을 명상의 대상 으로 집중시켜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이때 구약성서의잠언 을 인용한다. 또 “은밀한 곳”이라는 구절을 주석하면서 마태복 음6장 6절을 인용하고, 오리겐이 은둔자들에 관해 기록한 글을 인용한다. 또한 “몸과 마음을 억제”하는 구절을 주석할 때에는 중 세 힌두 주석가 샹카라를 인용하고, 자기를 억제해 마음이 정결해 져야 하나님과 깊이 교통할 수 있다고 해석하면서 워즈워드, 릴케 를 인용한다. 또 외계로 향한 마음을 거두어 자신의 혼으로 한데 모음을 설명하면서 플라톤의 메논을 인용한다.

함석헌은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적 요점, 즉 외부로 향하는 마음 을 명상의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는 요점만 인용해도 되었을 텐데, 긴 분량인데도 라다크리슈난이 언급하고 인용하는 다양한 경전, 종교가, 문학가, 철학자를 모두 실었다. 우연히 주석 인용이 이러 한 스타일을 띄게 되었다고 말하기에는 제3의 주석이 포함되는 모습이 일관적이고 사례가 많다. 이것은 함석헌이 인용을 잘라내 기보다는 주석서에 되도록 포함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해준

다.

그렇다면 함석헌은 왜 제3의 인용을 되도록 많이 포함시키고 싶어 했을까? 종교다원주의로 해석하고자 하는 독자는 이 부분을 그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함석헌이 기타의 시구에 나 타난 사상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같은 사상이 다른 종교, 사상, 문학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나 필자는 함석헌이 제3의 인용을 포함하는 이유는 국내 에 생소한 힌두 경전 기타 본문을 다양한 배경을 가진 독자가 수월하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주려는 작업이라고도 이해한다. 다시 말해서, 독자가 다양한 종교적, 문화적 사고의 개념 틀에 빗 대어 기타 본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논리적이고 딱 딱한 요점만 싣지 않고 의도적으로 제3의 인용까지 모두 포함시 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거룡은 함석헌의 주석법에 대해 기술하면서 다양한 언어로 표현될 때 의미가 명확해지는 점을 잘 지적했다. 그는 “어느 한 종교의 사상은 그 종교 자체의 언어로 해석되기보다는 다른 종교 의 언어로 풀어 밝혀질 때 더욱 선명하게 제모습을 드러내”27)는 것이라고 말한다. 회통의 입장에서 함석헌의 주석 모음을 해석하 는 이거룡이 이 문장에 특별한 강조점을 두었다고 생각하지는 않 지만, 이 문장은 함석헌이 다른 주석을 인용하는 주석법의 목적을 핵심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함석헌은 기타 의 언어를 다른 종교들의 언어, 다른 문화들의 언어로 풀어 밝힌 부분까지 포함시킴으로써 독자가 기타의 언어를 더 잘 이해하 도록 돕고자 했다. 함석헌 자신에게도 생소했을 힌두 경전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그 스스로 연구하여 주석을 달고, 주석가들의 주석 도 인용하고, 해당 시구의 요점을 그 자신도 다른 종교와 문화에 빗대어 생각해 보고, 다른 주석가들이 인용한 부분도 빼지 않고 의도적으로 인용에 포함시켰다고 볼 수 있다.

5. 라다크리슈난 주석을 압도적으로 인용한다.

마지막으로, 함석헌은 압도적으로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을 사용 한다. 라다크리슈난(1888-1975)은 대학의 철학 교수, 부총장, 외교 대사를 거쳐 인도 대통령(1962-1967)을 지낸 인물로서 학계와 정 계에서 모두 활동했지만, 인도의 고대 고전(기타, 우파니샤드, 법구경)을 주석한 주석가기도 했다. 함석헌은 기타를 주석하 면서 총 여섯 명의 인도인 주석가(인용 빈도가 높은 순서대로, 라 다크리슈난, 간디, 마헤시, 데사이, 틸락, 스와미 프라부파다)를 인 용하는데, 함석헌이 간디를 존경했기 때문에 간디의 주석에 크게 의지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을 간디 의 주석보다 세 배 가량 많이 사용하고, 기타 본문의 모든 장에 빠짐없이 사용한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추정할 수 있다.

첫째, 라다크리슈난의 주에는 산스크리트어가 로마자로 들어가 있고, 각 시구마다 주석이 길지 않고, 단어와 짧은 구절에 대한 주 석이 많다. 또한 간디, 마헤시, 틸락의 주석은 짧은 구절의 주석보 다는 자신의 해설이 주(主)이고 각자의 관점을 담은 사상이 포함

 

27) 이거룡(1996) p. 51.

되는 데에 반해,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은 관점을 담았다기보다는 단어, 구절을 중심으로 문헌 풀이에 조금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라다크리슈난은 샹카라(Śaṅkara, 8세기), 라마누자 (Rāmānuja, 11세기), 마드바(Madhva, 13세기), 베단타 데시카 (Vedānta Deśika, 13세기), 마두수다나 사라스바티(Madhusūdana Sarasvatī, 16세기)와 같은 중요한 힌두 중세 기타 주석가들을 자주 소개한다. 산스크리트어를 모르는 함석헌이 주석서들을 직접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므로, 중세 힌두 주석가들의 작품을 풍부 하게 담은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에서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이 점 은 그가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을 인용할 때 자주 이 중세 주석가 들의 인용까지 포함시키는 점으로 알 수 있다.

셋째, 라다크리슈난은 인도 철학과 종교의 가치가 서양 철학과 종교에 뒤떨어지지 않으며 동양과 서양의 사상에 교류점이 많았 다는 것을 보이고자 했으므로, 서양의 종교나 문학을 인용하여 인 도 사상과 비교해 언급하거나 인용하는 곳들이 많다. 예들 들어, 기타 11.5에서부터는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의 간청을 받은 후 자 신을 신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보여준다. 라다크리슈난은 이 종교 체험을 예수의 변모, 사울의 다마스커스 도상의 환상, 콘스탄틴의 십자가, 잔다르크의 환상에 빗대고, 성 힐데가르드의 작품을 인용 한다. 동서양을 이분(二分)하는 틀로 이해한 함석헌에게, 동양 사 상과 서양 사상을 비교하는 라다크리슈난의 주석 경향은 잘 맞았 을 것이다.

이렇게 다른 주석가들보다 문헌 풀이에 충실하고, 힌두교 안에 서 기타의 주석들을 소개하고, 기타와 힌두교 밖의 사상들을 비교하는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점으로 미 루어, 함석헌이 독자의 기타 본문 이해에 역점을 두었다고 이해 할 수 있다.


Ⅴ. 나가는 말


본 논문에서는 함석헌의 기타 주석에 두드러진 주석법이 인 용 모음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주석법에 대해 기존에 행해진 해석을 네 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장광설과 온갖 것의 수집이 라고 본 해석, 둘째, 나열이라고 성격 지운 후 회통과 종교다원주 의라고 본 해석, 셋째, 자신의 말을 대신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용 을 사용한다는 해석, 넷째, 인용 간에 비교하거나 기타 구절과 인용을 비교한다는 해석이었다. 이 기존의 해석들과 달리, 본 논 문에서는 함석헌의 인용 모음 주석법은 독자의 기타 이해를 도 우려는 행위와 관련 있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 다섯 가지를 제 시하였다.

첫째, 비록 함석헌이 기타 주석서에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초 횡의 노자익을 들어 설명한 부분을 참고하여, 함석헌은 기타 를 읽는 이가 좋은 주의 요점만 모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편 리함을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기타 주석서를 함석헌의 ‘기타익’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보았다. 같은 맥락에서, 함석헌의 인용을 ‘나열’이라기보다는 ‘모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함 석헌의 주석 의도를 살린 더 적절한 이해라고 주장하였다. 둘째, 함석헌은 기타 본문에는 없는 해제와 서론을 만들었다. 자신이 해제와 서론 없이 기타를 읽기 어려웠던 경험에 바탕을 두었고, 그래서 해제와 서론을 만드는 것은 독자가 기타를 읽는 데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고 직접 밝혔다. 셋째, 함석헌은 힌두 종교 와 철학을 논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을 정직하고 겸손하게 드러내 고, 어려운 단어, 구절, 시구에 여러 번역과 주석을 제공한다. 자신 의 지식에 한계가 있으므로 여러 번역과 주석을 통해 독자가 읽 고 스스로 가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넷째, 함석헌은 다른 주석 을 인용할 때 논리적이고 딱딱한 핵심만 인용하지 않고 다른 주 석에 담긴 제3의 인용까지 인용에 포함시키는 일이 잦다. 그 이유 는 제3의 인용을 통해 생소한 기타를 이해하기가 수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함석헌은 여섯 명의 기타 주석가 중 라다크리슈난의 주석을 압도적으로 인용 한다. 라다크리슈난은 문헌 풀이에 주목하고, 자신의 해석도 하면 서 동서양의 예시를 풍부하게 들고, 중세 힌두 주석가들도 인용하 는 주석가이므로, 함석헌이 생소한 힌두 경전의 내용을 조금 더 알기 쉽게 독자에게 소개하기에 적합했을 것이다. 이 다섯 가지에 근거를 두고 전체적으로 볼 때, 함석헌의 인용 모음 주석법은 기 존 해석들과 달리, 독자가 한국인에게 생소한 기타를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한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석헌이 독자의 기타 이해를 돕고자 한 이 유는, 그가 기타가 “진리의 말씀” )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 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어 한 것과 관련 있다. “진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밝히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그가 “전도” )라는 비 유적 표현을 사용할 만큼 기타 독서에서 큰 감화를 받았고 기 타를 다른 이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은 확실하다. 즉, 그는 독 자가 기타를 지식으로만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담 긴 진리를 깊이 있게 이해해 삶에서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바람은, 자신이 주석 없이 읽을 때 겪은 어려웠던 경험을 살려, 독자가 기타를 더 잘 이해하게끔 도와주는 행위로 표출되었다. 그리고 기꺼이 고백한 힌두 사상에 대한 지식의 한계 안에서, 최 선으로 선택한 주석법이 바로 ‘인용 모음’이라는 주석법으로 나타 났다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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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Reinterpretation of the Commentarial Method of Collecting Quotations: in Ham Seok-heon’s Commentary on the Bhagavad Gītā

Haesook Ra

Sogang University

This study aims at shedding new light on Ham Seok-heon’s commentarial method of collecting quotations in his commentary on the BhagavadGītā (henceforth Gītā). Although he leaves his own comments, Ham Seok-heon (1901-1989, henceforth Ham) mainly uses a particular kind of commentarial method; that is, he quotes passages from both other commentators’ commentaries and other religious texts as well as works of literature. Previously, several scholars interpreted this kind of commentarial method as a disorderly enumeration of quotations or as based on religious pluralism, and so on. This study, however, argues that it is rather a selected collection of quotations, by which he wants to help the readers of the commented text Gītā understand better. I suggest five reasons for this argument.

First, mentioning Jiao Hong(焦竑)’s commentarial method in the 老子翼, Ham writes that Jiao Hong collected at one place selected good comments from different commentaries. Considering this record, it can be assumed that Ham also desired the readers of the Gītāto read at one place the selected good comments. Second, He makes a preface, which is a translation of two chapters from a dif-

 

 ∙印度哲學제46집

ferent book, to the Gītāand the introductions to almost every chapter of It. Having an experience of reading it almost without any commentarial aid, Ham writes himself that he makes the preface and introductions for the sake of helping the readers understand the Gītā better. Third, he provides the difficult words, phrases, and sentences of the Gītā with various translations and comments. As he reveals that he is not conversant with Indian philosophy, the various translations and comments are for the readers themselves to decide the meaning of those difficult parts. Fourth, he quotes not only the logical and central ideas but also rich citations that other commentators provide. It can be conjectured that Ham wanted to include numerous citations, so that they facilitate the readers’ understanding of the Gītā. Finally, Ham depends most on Radhakrishnan’s comments, which are characterized as annotating the Gītā text, giving abundant citations from both the Eastern and the Western traditions, and quoting the medieval Indian commentators such as Śaṅkara, Rāmānuja, and Madhva. Based on these five observations, this study intends to show that Ham’s commentarial method of collecting quotations was devised in order to help the readers of the Gītā acquire a better understanding of It.

Keywords : Ham Seok-heon, BhagavadGītā, commentarial method, a selected collection of quotations, interpretation, readers.

투고 일자 : 2016년 3월 28일 심사 기간 : 2016년 4월 11일 ~ 4월 28일 게재 확정일 : 2016년 4월 29일








202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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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바드 기타(भगवद्गीता, Bhagavad Gīt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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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한국어: 바가바드 기타
산스크리트어: भगवद्गीता
영어: Bhagavad Gita


1. 개요2. 특징3. 등장인물4. 구성5. 들어가며: 아르주나의 고민6. 내용7. 2차 창작8. 여담9. 한국 출간

1. 개요[편집]

네 할 일은 오직 행동에만 있지 결코 그 결과에 있지 않다.
행동의 결과를 네 동기가 되게 하지 마라.
그러나 또 행동하지 않아서도 안 된다.
결과가 좋고 나쁨을 동일하게 보는 마음을 가지고 행동하라.

제2장 47절, 48절.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행위를 강조하면서..[1]
『바가바드 기타』는 산스크리트어로 '거룩한 자의 노래'라는 뜻이며, 인도인의 정신적 지침서이다. 700구절로 된 시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마하바라타의 일부분이었다가 힌두교의 주요 경전에 포함되면서 독립되었다. [2]

드르타라슈트라는 쿠루(Kuru)족의 왕권 계승자였으나 장님인 관계로, 동생인 판두에게 왕권이 계승이 되었다. 하지만 판두는 왕위에 오르고 나서 다섯 아들을 두고는 일찍 죽어버린다. 이에 판두의 아들들과, 원래의 왕위 계승자였던 드르타라슈트라의 아들들 간의 왕위쟁탈전이 발생하게 된다. 이 과정 속에서 드르타라슈트라는 판두의 아들들과 드르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의 전쟁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 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전쟁에서 판두의 오 형제 중 셋째 아르주나는 왕위계승전쟁에 대해 심한 회의를 느낀다. 자기의 친형과 친동생과 연합해서, 사촌들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것이었다. 차라리 사촌 형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르주나의 마차를 몰던 마부인 크리슈나가 이러한 회의에 대해서 조언과 충고를 한다. ‘전쟁의 목적이 단지 왕권을 찬탈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에 맞서 정의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너에게 부과된 의무(전쟁)를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해야 하고, 그런 사명을 아르주나인 너가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설교를 해 나가는 과정이 바가바드 기타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기존 질서 유지(카스트 제도)를 위한 합리화[3]에 불과하다는 말만으로는 평가될 수 없는 인도 철학의 정신을 대표하는 무언가가 있다. '행동을 할 때,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라'는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으며 행동에 관련해 마음을 흔드는 좋은 글귀들도 많다. 또한 바가바드 기타는 욕심을 없애기 위해서 행위를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버리고 평정심을 가진 상태에서의 행위를 권장함으로써, 속세에서도 마음의 평온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철학이며 삶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바꿔준다는 점에서, 인도 내에서는 불교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발전된 사상으로 보며, 이를 인도 철학의 정수라고까지 생각하는 것이다.

2. 특징[편집]

  • 삶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행위에 따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러한 삶에서 초탈해야 하는 것이 옳은가?
    • 삶에서 벗어나려는 것은 옳지 않다. 의무로써 삶에 참여하라. 고통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 영혼(아트만)은 영원하며 소멸하지 않는다. 반면, 몸은 생성 소멸된다. 영혼은 몸을 가졌다가 없어졌다가를 반복하는 윤회를 하게 된다.
  •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세속적인 사회적 역할에 충실하라. 즉, 각자의 본분을 잘 지켜서 사회가 유기적으로 돌아가게끔 하라. [4]
  • 삶에서 자신의 의무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 욕망을 내려놓고 행동하라!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삶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을 행하라.
  •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공동체와 세상의 질서를 위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자기 희생이 필요하다. 모든 존재는 상호의존적이기 때문이다.
  • 이러한 행동을 방해하는 것이 욕망인데, 그렇다면 욕망을 어떻게 버릴 것인가?
    • 세상사에 평정심('사마두카수캄')을 가지고 임하라. 가난한 자 앞이든, 부유한 자 앞이든, 예쁜 사람 앞이든, 추한 사람 앞이든, 무서운 사람 앞이든, 만만한 사람 앞이든, 기쁘든 슬프든, 동일한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것. 이렇게 '마음과 감각을 제어하는 자기절제의 수행법'을 요가라고 한다.
    • 욕망없는 평정심을 가지고 자기의 역할을 실천하라. 행위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자가, 모든 욕망을 버린 사람이라 할 수 있다.
  • 에고(자신의 욕심)가 없이 자신희생 정신으로 하는 행위, 즉 우주와 공동체 전체의 복지에 기여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성자이다.
  • 바가바드 기타는 세세한 부분까지 상좌부 불교의 특징과 똑같다. 윤회, 오온(아트만), 지옥, 행동 중시 등에서 서로 같다. 심지어 탄생시기와 발전 시기 까지 똑같으므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내용이 비슷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바가바드 기타를 읽으면 상좌부 불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며,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불교 또한 힌두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5]
    • 다만, 상좌부 불교는 계급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바가바드 기타는 계급을 긍정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3. 등장인물[편집]

  • 드리타라스트라: 하스티나푸라 국의 국왕이자, 카우라바 100형제의 아버지.
  • 산자야: 드리타라스트라 왕의 마부이자 벗. 작중 드리타라스트라와 이야기를 나누며 비야사가 준 능력에 힘입어 영매로 전장의 상황을 전해준다.
  • 드라우파디: 판다바 5형제의 아내.
  • 드리스타드윰나: 판다바 군대의 총사령관.
  • 드루파다: 드라우파디와 드리스타드윰나, 쉬칸디의 아버지.
  • 두료다나: 카우라바 100형제 중 맏이. 작중 메인 빌런.
  • 아르주나: 판다바 5형제 중 셋째.
  • 크리슈나: 아르주나의 외사촌이자[6] 절친한 벗 겸 조력자. 전투 중에는 아르주나의 마부로 활약한다.

4. 구성[7][편집]

1. 아르주나의 고민
2. 삼캬 요가
3. 카르마(행위) 요가
4. 즈나나(지식) 카르마(행위) 산야사(내버림) 요가
5. 내버림의 요가
6. 진정한 요가
7. 즈나나(지식) 비즈나나 요가
8. 브라마 요가
9. 왕지식과 왕신비
10. 거룩하신 능력
11. 일체상
12. 박티(헌신) 요가
13. 밭과 밭알이와 그 분별
14. 3성 분별
15. 멸과 불멸을 초월하는 지상 자아
16. 거룩한 바탈과 귀신 바탈
17. 세 종류의 신앙
18. 내버림에 의한 해

5. 들어가며: 아르주나의 고민[편집]

아르주나는 (사촌이자 숙적인) 두료다나 그리고 그 휘하 군대와의 결전을 앞둔 상태였으나, 여전히 번민과 괴로움을 떨쳐 내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대해 개전 전날 밤 크리슈나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게 되고, 그리하여 크리슈나의 설법이 시작된다.

자세한 내막은 쿠룩셰트라 전투/배경쿠룩셰트라 전투/전력의 모집과 편성을 참조하면 좋다.

6. 내용[편집]

추가 예정.

7. 2차 창작[편집]

8. 여담[편집]

“기타가 놀라운 작품인 이유는 아주 간단한 고민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한다는 겁니다. 바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죠.”

“처음 읽었던 게 50년 전이었을 거예요. 20대 때요. 작품의 언어와 이미지, 그리고 내용에 매료됐었죠. 기타는 철학 책이 될 수도 있고, 종교 책이 될 수도 있으며, 행동개시를 요구하죠. 이 모든 게 될 수 있어요. 이 모든 작용을 한다는 게, 이 작품이 가진 힘이에요. 3,000년 전에 쓰여진 이야기가 아직도 재미있다는 겁니다. 그 속의 개념들은 논쟁거리가 되기도 했죠. 그런데 아직도 흥미로운 겁니다.”

“바가바드 기타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는 거죠. 이게 철학이든 대서사시이든지요. 이 우주를 통치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다면, 기타를 작성한 저자들은 그 신적 존재가 이런 말을 했을 거라고 믿고 쓴 거죠. ”

“네덜란드오페라단이 저에게 연락이 와서는 오페라를 만들자고 하길래, 간디를 주제로 하자고 했죠. 그때 간디의 삶은 기타에 근거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간디는 기타를 외웠어요. 그 사실에 충격을 받았죠. 왜냐하면 그는 사회 변화를 주도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를 이끌었던 것은 이 한 권의 책이었다는 거예요. 비폭력에 헌신한 사람이 어떻게 투쟁을 할 수 있나? 그게 바로 핵심이에요. 기타의 핵심이기도 하고요. 간디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비폭력 사회운동이었던 거죠. 결국 간디는 폭력의 피해자가 됐어요. 1947년 그는 암살당했잖아요. 그것도 기타의 교리를 따른다는 이들로부터요. 오페라의 마지막 부분은 행진이 있기 전날 밤을 그려요.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에게 요지를 알려주죠. 선이 시들어 죽었을 때는 신이 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와서 선을 회복하기 위해 산다고 말하죠.”
필립 글래스

핵무기 역사와 조금 연관된다. 최초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핵개발에 성공한 뒤 감상을 표현하면서 비슈누가 아르주나를 설득할 때 말한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를 인용하였다.

9. 한국 출간[편집]

  • 길희성 번역본 - 인도종교철학을 전공한 길희성 전 서강대 교수의 번역으로, 초판은 현음사에서 출판되었다가 이후 서울대출판부로 발행처를 옮김. 대역으로 되어 있어 연구자들이 많이 본다.
  • 함석헌 번역본 - 한길사에서 이전에 함석헌 전집 일부로 발행했다가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재발행. 간디와 라다크리슈난 등의 주석을 인용. 의미가 통하는 구절마다 성서 및 쿠란, 중국 고전 경전들의 어구를 인용해 보충한 것이 특징인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바가바드기타 판본이다.
  • 이현주 번역본 - 간디가 해설한 바가바드기타를 옮김, <쉽게 풀어읽는 바가바드기타> 지음
  • 석지현 번역본 - 일지사에서 발행. 불교 승려인 역자가 역주.
  • 김병채 번역본 - 슈리크리슈나다스아쉬람에서 발행한 것으로 국내 최초의 샹까라 주석본 번역.
  • 박지명 번역본 - 동문선에서 발행. 길희성 번역본과 마찬가지로 범한대역.
  • 정창영 번역본 - 물병자리에서 발행. 의역이 많으나 내용을 쉽게 풀어씀

[1] 마음을 비우고 행동하라는 것이지,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옳다고 생각한 것이 있으면 행동을 해야되며,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은 내려놓아야 된다는 것.[2] 혹은 원래 독립적인 경전이었지만 이후 마하바라타 안에 편입되었다.[3] 유교도 마찬가지다. 공자의 정명이 비슷한 개념으로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아들이 아들다워야 한다."(군군신신부부자자)는 공자의 말과 유사하다. 공자도 좋은 의미에서 한 말이지만, 후대의 사람들은 이 말을 신분제를 고착화 시키는데 이용하곤 했다.[4] 카스트 제도가 성립하는 이유이다.[5] '바가바드 기타'와 '상좌부 불교'는 둘 다, '원시 불교'와 자이나교'에 대한 반발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원시 불교에서는 자신의 역할을 무소의 뿔처럼 던져 버리고 출가하라는 것인데, 사람들이 너도나도 출가를 하게 되니 사회가 무너지게 되고 혼란해졌다. 이에 대한 반발로 바가바드 기타와 상좌부 불교가 탄생하여, 자신의 맡은 역할을 충실이 이행하는 "행위"를 중시하는 가르침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6] 아르주나의 어머니인 쿤티가 크리슈나의 아버지인 바수데바의 친누이이다.[7] 함석헌 역주 바가바드기타를 기준으로 함.

2021/10/17

알라딘: 지금도 쓸쓸하냐

알라딘: [전자책] 지금도 쓸쓸하냐

[eBook] 지금도 쓸쓸하냐 -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 (간행물윤리위원회) 
이현주 (지은이)샨티2014-01-16 



책소개

구름이 묻고 산이 답한다는 뜻의 '운문산답(雲問山答)' 시리즈 1권. 문답형식으로 된 67편의 글을 실었는데, 구름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언제나 바뀌고 있는 '나'가 물으면, 산처럼 늘 거기에 있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또 다른 '나'가 대답하는 형식의 띄고 있다.

자신 안에 숨어있는 참나 혹은 하나님의 목소리를 통해 진리를 깨닫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차분한 글들이다.
목차
1
그렇다면 누워 있거라 / 지렁이 앞에서 / 별 것 아닌 것 / 한 그루 능금나무 / 외로움 / 모든 것이 돈으로 바뀌는 세상에서 / 더 자세히 보아라 / '이것이 진리다' 하고 말하는 자는 / 장애물과 장애 / 에고 뭉치 / 첫걸음 / 잘려진 나무 등걸 / 피장파장 / 제대로 늙는 비결 / 참 종교 거짓 종교 / 이미 완벽하다 / 삶과 죽음 /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 / 흐름이 있을 뿐 / 무엇을 묻고 있느냐 / 세상 모든 것이 네 것이다 / '그것' 아닌 '이것'으로 살기 / 숨을 '쉰다'는 것

2
쓸쓸함 / 그냥 보아라 1 / 그냥 보아라 2 / 지금도 쓸쓸하냐? / 작은 일 큰 일 / 좋은 일 / 천사들과 함께 살아온 천사 / 충분히 맛보아라 / 뻥튀기 과자 / 모든 것이 바로 너다 /곶감 한 개와 오랜 버릇 / 깨달음의 길 / 왼뺨 오른뺨 / 승부에 대한 집착 / 착각 / 지저귀는 것들이 새들인가? / 농과 공 / 눈 밝은 것과 감사하는 것 / 폭력 / 돋보기 / 돈을 사랑하는 것 / 꿈속의 에고들 / 불에 타서 재가 된 새끼줄처럼 / 자책도 자긍도 / 밥 먹을 때에는 밥을 먹어라

3
사랑하지 말아라 / 이윽고 때가 되면 / 용서받지 못할 죄 / 어머니 작품 / 단소 탓이 아니라면 / 진정한 '반미' / 전쟁과 전쟁 놀이 / 에고를 에고로 반대하면 / 마찬가지 / 중요한 것은 마지막 말 / 치유되지 않은 상처 / 와이셔츠와 티셔츠 / 불편부당 / 하고 싶었던 일들 / 접시꽃 /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 / 크바스도프의 장애 / 안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 / 하느님은 사랑만 보신다

저자 및 역자소개
이현주 (지은이) 
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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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2004년 1월 이 달의 책 선정(간행물윤리위원회)
2005년 한국의 책 번역지원도서

이아무개 목사가 자기 속 또 하나의 자기와 나눈 마음의 대화록

'위로와 안식, 그리고 깨달음을 위한 기도'라 불러도 좋을 이 책은,
구름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언제나 바뀌고 있는 '나'가 물으면,
산처럼 늘 거기에 있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또 다른 '나'가 대답을 하는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예컨대, 쓸쓸함에 겨워하는 '나'에게 쓸쓸함도 손님이라고, 잘 대접해 보내라고
또 하나의 '나'가 말합니다. 그 또 하나의 '나'는 오랜 마음 공부 길에서 만난 그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했습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네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쓸쓸함〉중에서

이현주 목사는 이 책에 실린 67편의 문답 글을 통해 하늘과 땅과 별과 바람에게서 들을 수 있는
자연의 소리,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법을 일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책은 한평생
'마음 공부'의 길에 매진해 온 그의 오랜 구도자적 삶이 빚어낸 열매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의 이런 달고 시원한 열매를 맛보는 것은 또한 그와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즐거움이 아닐까 합니다.
억지스럽지 않음 가운데서, 먹고 일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오히려 성장을 위한 행복한 경험이
가능하다는 그의 전언은 그래서 이 고집스럽고 팍팍한 세상 여행길에
참으로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깨달음이 개인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차원으로 이어지는 문제임을 보여주는
그의 글 한토막만 더 소개해 봅니다.

"선생님,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게 무엇입니까?……
사회 현실을 외면하면서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는 겁니까?"
"길을 밟지 않고서 길을 갈 수 있느냐?……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사탄의 길'이지 '깨달음의 길'은 아니다. 속지 말아라.
깨달음이란, 밥 먹고 일하고 사람 사귀는 평범한 접기

마이리뷰

     
아내에게 주는 책을 먼저 읽다 새창으로 보기
책을 고르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내 경우는 나의 기분이 책을 선택하는데 크게 좌우될 때가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이성적으로 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연을 가장한 운명이라도 만나려는 듯 그렇게 내 감각에 따른다. 때로는 표지디자인 때문에, 어떤 때는 제목 때문에, 어떤 때는 나를 위로해주리라 믿는 저자 때문에 책을 고른다. 아내에게서 책을 그만 사보라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듣고, 서점에 들어가 고른 책이 다름 아닌 ꡔ지금도 쓸쓸하냐ꡕ(이 아무개/샨티/2003)이다. (책을 그만 사라는 충고를 듣고 곧장 서점으로 달려가는 꼴이라니…)

이현주 목사는 자신의 단독 저서일 경우 이제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고 이 아무개라고 저자이름을 써놓는다. ‘아무개’는 특정인을 지칭하는 지시어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현주 목사는 그러니까 자신이 특정인으로 불리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원래 감리교단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마저 자진하여 버림으로 홀홀단신 목사일을 하고 있다. 어디에도 얽히거나 구속되지 않으려는 그가 사실은 조금 부럽기도 하고 많이 두렵기도 하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마냥 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그는 직업상 기독교 목사이지만 그의 저술에는 하느님과 예수님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나오고 공자, 노자, 장자도 나온다. 그러니까 그가 믿는 하느님은 -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 이미 기존의 기독교 범주에서 멀찌감치 벗어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니다.

이 책은 두개의 자아가 대화하고 있는 형식으로 짜여져 있다. ‘몸나’와 ‘얼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고, 어찌보면 정신의 스승과 자신이 대화를 하는 것 같기도 한 이 형식이 참으로 독특하다. 매일 매일 스스로 반성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 그는 매일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ꡔ대학(大學)ꡕ에서 나오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日新 又日新)’의 경지라 하겠다. 책에 나와 있는 한 대목 :

“선생님, 오늘 종일토록 참 쓸쓸합니다”
“알고 있다. 축하한다.”
“축하한다고요? 무엇을 말입니까?”
“내가 하루종일 쓸쓸했다는 사실을. (……)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여라.”
“어떻게 하는 것이 쓸쓸함을 잘 대접하는 겁니까?”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할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모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되 아무것도 움켜잡지 말고 아무것에도 움켜잡히지 마’는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마도 이 아무개의 삶의 목표가 아닌가 싶다. 그는 그렇게 매일 매일을 자기 자신과 대화하며 - 어쩌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과 대화하며 -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이면서 목사가 아닌 이 아무개의 이 책을, 신자이면서 신자가 아닌 나의 아내에게 건네줘야지. 그녀에게 참으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 접기
천사뚱 2003-12-10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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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와의 대화

'쓸쓸함'은 인간 모두의 공통의 제목이 될수 있나 보다, 적어도 최소한 가끔씩이라도.
외로움, 쓸쓸함을 잊기 위해 우리가 하는 많은 생각들, 그리고 행동들.
본명이 이현주 라지만 책에는 '이아무개'라고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지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라고 말한다. 잘 대접한다는 것은, 그것을 떨쳐 버리거나 또는 반대로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고, 때가 되면 떠나려니 하고 지켜보라는 것이다. '지켜보라는 것'.
관(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한가지에 마음을 집중하고 주시하라는 것이다. 내가 읽은 책에서만 해도 얼마나 여러 사람이 그것에 대해 말했던가. 이 책도 예외가 아니구나.

'생각하지 말아라. 사람 생각으로 가서 닿을 수 있는 경계가 아니다.'
생각이 뭐 그리 중요하랴. 사람이 하는 생각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던가. 생각으로 우리가 얻는 답이 있던가.
'에고를 없애거나 부수려고 하지 말아라.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단단해지는 게 에고의 성질이다. 무시하지도 말아라. 무시당할 수록 에고는 그만큼 더 거칠어진다. 무시보다 더한 공격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자비의눈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지켜보거라.그것이 에고를 변화시킬 것이다.'

읽으면서 공감하는 이 말들이, 실제로 나의 일상에 얼마나 적용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감은 잡힌 것 같다. 나의 성격의 문제점을 볼 것이 아니라, 또는 어떻게 고쳐나가려고 애 쓸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은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소중하고 완벽한 존재. 그대로 받아들이고, 모든 감정을 충분히 맛보라.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 사람들의 것. 상처 입고 마음 쓸 것이 아니다. 오는 대로 맞고, 가는 것을 지켜보라. 꾸미고 포장하려 하지 말라.

지금도 쓸쓸하냐? - 그렇다. 그 쓸쓸함을 지켜 보고 있는 중이다.

- 접기
hnine 2007-10-2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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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함이 느껴질때 문득 생각이 나는 글입니다 지금도 쓸쓸하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해야지요 아무개님은 그냥 쓸쓸함이 찾아오면 반기라고 하니까요 그래, 쓸쓸함이 찾아왔기에 이 글을 써 봅니다 쓸쓸함을 모시면서.
플로라 2007-02-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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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망하면요? / 망해라!

어제 만난 언니가 재밌게 읽었단다. 자기 속에 있는 마음 둘이서 주고 받은 얘기가 재밌단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재밌다고 하기에, 또 제목에 묘한 끌림이 있어 읽게 되었다. 진짜 재밌다. 코미디라고 할 정도다^^ 코미디라고 비하하는 게 아니고 정말 허를 찌르는 답변에 웃음이 나는 것이다. 요즘 기분이 울적할 때 그래서 쓸쓸한 기분이 들 때 이 책을 펼쳐 읽곤 했다. 거기 적힌 말들을 다 몸으로 안을 수는 없어도, 주고 받는 말을 읽다 보면 덜 쓸쓸한 기분이 든다. 세상살이가 그렇지? 어렵지? 근데 쉽지? 그런 마음이 든다. 지금 당장 다 이해하지 못 해도 곁에 두고 살면서 자주 만나고 싶은 책이다.

"전해 듣기로는 틱낫한의 '자두마을'에서도 수련회비를 거둔다는데요?"

"(중략) 너는 어떻게 할 참이냐? 만약에 네가 어떤 수련 모임을 주관한다면 회비를 거두겠느냐?"

"그런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그러다가 망하면요?"

"망해라!"

^^ 이런 식이다. 이렇게 흘러가는 대로 살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좀 더 연습을 하면 어느 순간 그리 되겠죠?

아무것도 미리 걱정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미리 궁리할 것 없다. / 쓸쓸함도 너에게 온 손님이다. 지극 정성으로 대접하고, 쓸쓸한 만큼 쓸쓸하되, 그것을 떨쳐버리거나 움켜잡으려고 하지 말아라. 너에게 온 손님이니 때가 되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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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ao of Gardening: A Collection of Inspirations Based on Lao Tzu's Tao Te Ching


By Pamela Metz
17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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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Most books on gardening are read for information. Those books provide important details on the "do’s" and "don’ts" of growing things. This book, The Tao of Gardening, is to be read for inspiration. Using English translations of the classic Tao Te Ching by the Chinese sage, Lao Tzu, the author has adapted the words and concepts to the universal human activities of gardening. Rod MacIver, in Heron Dance, writes "The Tao Te Ching is a poem, a book, set of guideposts, leading to a way of being that is simple, and that is harmonious. It celebrates the workings of nature and of the universe, the cycles of life, the cycles of water. Taoism grew out of pre-dynastic China, a time when people lived close to the land. It is a philosophy more than a religion - rather than attempting to define the Great Mystery, it espouses humble acceptance, gentleness and non-interference. The Tao is about a harmony that can be more often sensed than described or understood." The Tao of Gardening then, is a way of gardening that is a journey and a way of living. It recognizes the inner and outer spiritual dimensions of the many parts that make up the whole of gard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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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의 도 - 농사짓는 이와 돌보는 이를 위한 노자의 도덕경  
파멜라 메츠 (지은이),이현주 (옮긴이)민들레2014-06-30원제 : The Tao of Gardening (2001년)

책소개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주제로 다시 풀어 쓴 책이다. 사람살이의 근본인 농(農), 농사에서 배우고 자연에 작은 관심을 갖는 일이 진정 절실한 때이다. <농사의 도>는 땅에서 일하고, 사람을 돌보고, 자연과 우주 속에서 사는 이 근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한다.

“예수도 노자도 사람인데 마땅히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가 두 분 모두 없으니 궁금합니다. 그분들은 과연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노자께선 아예 대놓고 직접 말씀하셨지. 사람은 땅을 배우고 땅은 하늘을 배우고 하늘은 도를 배우고 도는 자연을 배운다(道法自然)고.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곧 자연이라는 그런 말씀인 거라.”
목차
옮긴이의 말| 축하합니다 007

1 농사의 도 2 역설과 잡초 3 가지치기 4 끝없이
5 제철 6 어머니 땅 7 생명의 순환 8 물의 소중함
9 너무 10 제 몫의 보상 11 있는 것과 없는 것
12 논밭의 색 13 돌보는 사람 14 엮음
15 옛날 농부들 16 그 사이에 17 지혜로운 농부
18 균형 19 단순함 20 농부와 농부 아닌 사람들

21 넉넉한 논밭 22 논밭에 있는 도 23 준비
24 바닥에 몸을 낮추어 25 경작 이전 26 집 안
27 착한 농부 28 꽃가루받이 29 모든 일에 때가 있다
30 자연의 힘 31 농기구들 32 보이지 않는 에너지
33 앎과 부 34 기적 35 날마다 그날의 도
36 가을걷이 37 만족 38 농사의 힘 39 명상
40 할 일과 하지 않을 일

41 겸손 42 재생산 43 침묵 44 행복 45 계획
46 위험 무릅쓰기 47 기다림 48 도를 깨우침
49 만물을 돌봄 50 마음껏 쏟아 붓기 51 자연 사랑
52 가보의 씨앗 53 논밭이 사라질 때 54 영감
55 어린 묘목 56 끈기 57 날마다 펼쳐지는 신비
58 본보기 59 기름진 논밭 60 경작

61 농부의 생애 62 논밭의 중심 63 어려움
64 바꿔주기 65 평범한 논밭 66 물길 67 논밭의 교훈
68 자연과 더불어 일하기 69 자연에 굴복함
70 농부의 가슴 71 치유와 성장 72 대용품 73 느긋함
74 무상 75 정신과 영감 76 유연함 77 너그러움
78 물의 기운 79 실수에서 배우기 80 평화
81 논밭 속에 있는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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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축하합니다


“예수도 노자도 사람인데 마땅히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가 두 분 모두 없으니 궁금합니다. 그분들은 과연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법을 자연한테서 배우지 않았겠나?”
“자연한테서 배웠다고요? 예. 그러고 보니 ...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파멜라 메츠 (Pamela K. Metz)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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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 81장을 ‘농사’를 주제로 다시 풀어 쓴 『농사의 도』 외에 『배움의 도 The Tao of Learning』, 『The Creative Tao』, 『The Tao of Loss and Grief』 그밖에 여러 책을 펴냈다.
최근작 : <농사의 도>,<배움의 도> … 총 3종 (모두보기)
이현주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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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옥觀玉이라고도 부르며, ‘이 아무개’ 혹은 같은 뜻의 한자 ‘무무无無’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 1944년 충주에서 태어나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했다. 목사이자 동화작가이자 번역가이며, 교회와 대학 등에서 말씀도 나눈다.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 글들을 쓰고 있으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 선생과 함께 『노자 이야기』를 펴냈다. 옮긴 책으로 『지금 이 순간이 나의 집입니다』, 『너는 이미 기적이다』, 『틱낫한 기도의 힘』, 『그리스도의 계시들』 등이 있다.
최근작 : <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관옥 이현주의 신약 읽기 (양장)>,<부모 되기, 사람 되기> … 총 269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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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민들레 Vol.137>,<그렇게 가족이 된다>,<민들레 Vol.136>등 총 93종
대표분야 : 교육학 10위 (브랜드 지수 107,93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노자의 도덕경 81장을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주제로
다시 풀어 쓴 『농사의 도』
돌볼 때와 내버려둘 때를 알기

“예수도 노자도 사람인데 마땅히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그에 대한 정보가 두 분 모두 없으니 궁금합니다. 그분들은 과연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노자께선 아예 대놓고 직접 말씀하셨지. 사람은 땅을 배우고 땅은 하늘을 배우고 하늘은 도를 배우고 도는 자연을 배운다(道法自然)고.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의 스승의 스승이 곧 자연이라는 그런 말씀인 거라.” - 옮긴이의 말 가운데

사람살이의 근본인 농(農), 농사에서 배우고 자연에 작은 관심을 갖는 일이 진정 절실한 때입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쫓겨나고 마을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한 발 물러서서 세계를 논밭으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평화로운 환경을 금세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우리는 ‘좋은 삶’에 대한 다른 상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농사의 도』는 땅에서 일하고, 사람을 돌보고, 자연과 우주 속에서 사는 이 근본적인 인간의 삶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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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농사의 도'에 결부시켜본 이야기들... 새창으로 보기
별 생각 없이 책을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가 81장으로 끝나는 걸 보고,

다시 제 8장을 펴보았다.

81장은 노자 도덕경의 장절 수라는데 생각이 미쳤던 것인데,

역시나... 상선약수의 8장은 '물의 소중함'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노자를 농사짓는 일과 비유하여 나름의 논리를 펼쳐본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동양의 '노자' 사상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듯 싶기도 하다.

 

노자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노자한비열전'에 묶였듯, 정치 사상의 하나이다.

노자의 반대편에 선 주장은 '억지로 다스리는 법치'였던 셈이다.

노자는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다스려지도록 하는 무위지치'를 역설한 셈이다.

 

서양의 어휘 '자연'은 '명사적'이다.

서양의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고, '정복'의 대상으로 보기 쉽다.

인간은 그 '자연'에 가장 해로운 존재인 셈이다.

그러나 동양의 문맥에서 '자연'은 '부사적'이다.

'자연히', '저절로', '억지로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같은 의미다.

그것은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경지를 드러내는 말이지 정복이나 분투의 대상은 아닌 셈이다.

 

노자의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굳이 풀이하자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스스로 따르게 하는 다스림으로 풀어야 한다.

 

서문에서 무위당 선생과의 대화 중, '도법자연'을 '도는 자연을 배운다...'로 풀었다.

그 말이 그 말 같지만, 도법자연...이란, 자연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란 스스로 그러게 되는 현상...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이라 생각한다.

'자연'이 스승이라고 하고 있다.

'자연'이라는 대상이 배울점이 아니라,

세상 만물의 이치는 억지로 애쓴다고 되거나 안 되지 않으니, 저절로 이뤄지도록 그렇게 살라는 말이렷다.

 

1장, 도가도비가도... 구절을

농사의 도는 드러나 보이는 어떤 것이 아니다...라는 말과 연결지어 놓았다.

농사는 '곡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자식 농사는 '자식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고,

나처럼 학생 농사 짓는 사람은 '아이들을 기르는 일'이기도 하다.

 

유치원 어린 아이들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듣기도 하고, 상황 판단이 느리기도 하다.

그러니 아이인 것이다. 그런 어린 아이를 혼내는 일이야 당연지사지만,

귀싸대기를 올려붙여 아이가 날아가게 하는 일은 참 무서운 일이다.

나도 경력이 늘수록 가르치는 일은 <명시적 교육과정>처럼 드러나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하다.

수업을 똑부러지게 잘 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하는 교사도 물론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자라는 데는 <암시적 교육과정>이 큰 역할을 한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공론을 하는 속에서 자란다.

 

노자 17장은 太上 下知有之 태상 하지유지  其次 親而譽之 기차 친이예지  其次 畏之 기차 외지  其次 侮之 기차 모지 이다.

가장 높은 것... 정치 철학이니 '임금'쯤 되겠다. 지도자로 치환해도 무방하고,

이 책에서는 농사꾼으로 비유했다.

 

제일은 아랫사람이 그 있다는 걸 아는 정도...

다음은 아랫사람이 친하고 높이는 존재. 그보다 못한 건 공포의 존재... 박정희 같은...

마지막은 업수이여기는 모멸스런 존재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그렇지 안을까?

이 책에서는

지혜로운 농부는 논밭에 자라는 것들을 억지로 키우지 않는다.

때로는 사람들이 그가 있는 줄도 모른다.

지나치게 열심히 농사에 억지를 부리는 농부는

논밭을 망칠 수 있다.

일할 때 일하다가, 물러설 때 물러서는 농부는

논밭으로 하여금 스스로 논밭이 되게 한다.

이렇게 갖다 붙인다.

앞부분은 수긍이 가지만, 뒷부분은 좀 억지다 싶기도 하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지나치게 '열심히' 일해온 경향이 있는 나로서는, 많이 돌아볼 일이다.

 

농사의 도에서는 '놓아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것들을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더욱 맑아진다.

만물이 저마다 제 길을 가고 있다는 진실을 깨달음으로써

도를 깨우치게 된다.

너무 많이 간섭하면, 논밭에 장애물을 늘어놓는 것이다.

 

경험상, 아이들도 그렇다.

냅둬도 잘 자란다.

선행 학습을 시키고 어쩌고... 들들 볶는 것은, '알묘조장'의 우를 범하게 된다.

싹을 쏘옥~쏘옥~ 뽑아 올려주는 일은,

그 싹의 뿌리를 흔들어놓아서 시들어 죽게 만든다.

 

52장. 근본은 언제나 분명치 않다.

열매를 맛볼 때, 네가 경험하는 것은 열매의 맛, 색깔, 크기, 감촉 따위들이다.

 

사과를 맛있게 베어 먹어도, 사과 고갱이의 씨앗이 번식의 기틀이 된다.

우리가 즐기고 경험하는 것은 핵심 고갱이가 아닌 주변의 것들이다.

우리를 즐겁게하는 경험들은 모두 삶의 고갱이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고갱이는 무엇인가... 그 근본을 잊지 말아야 한다.

 

농사를 짓자면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이 더 좋을 때가 있다.

어떨 때는 그냥 놔 버리는 것이 더 낫다.

그것은,

자연으로 하여금 제 길을 가게 하고

자연스런 방식으로 논밭을 일구는 것이기도 하다.

 

두 해동안 고락을 같이 하던 아이들이 졸업반이 되었다.

이제 스물이라고 술집에서 민증을 검사해도 내쫓기지 않는다.

맥주라도 한 잔 놓고 애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아이들이 자란 것은, 부모의 관심도 아니고, 학교의 교육과정도 아니다.

아이들을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다.

저절로 자기들끼리 비비적대면서,

상처를 입고 치유를 받으면서 그렇게 자란 것을 알게 된다.

부모나 학교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덜주는 방향으로 바뀌려 노력해야 한다.

 

더 많은 것을 주려고 고민하지 말고,

아이들이 저절로 얻어가는 과정에 더 많은 것들이 녹아들도록...

아주 자연스럽게 교육과정을 덧대는일이 어른이 할 일이다.

 

불현듯, 노자를 열 권쯤 쌓아 두고 노닥거리고 싶다.

당연히 그러면 졸릴 것이다만... 그냥, 희망 사항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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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5-01-15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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