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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04

종교란 무엇인가 | 오강남 | 이스라엘과 이란에서의 의미

[전자책] 종교란 무엇인가 | 오강남 | 알라딘
[eBook] 종교란 무엇인가 - 종교를 바라보는 또 다른 눈
오강남 (지은이)김영사2026-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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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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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4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돌아온 《종교란 무엇인가》 개정판. 갈등과 배타의 벽을 넘어 ‘열린 종교’의 길을 제시해온 인문학의 고전.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종교가 마주한 위기를 짚으며, 허상을 좇는 폐쇄적 신앙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향한 ‘심층 종교’로 나아갈 것을 제안한다. 특히 2026년 개정판은 저자의 성찰을 담은 ‘개정판 특별 서문’과 팬데믹 이후의 종교 지형을 분석한 ‘새로운 부록’을 수록해 고전의 의미를 오늘의 독자에게 새롭게 전달한다.

오늘날의 종교는 개인과 집단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소비되거나, 진리를 독점하려는 배타주의로 인해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이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껍데기에 머무르는 ‘표층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내면의 참된 ‘나’를 발견하고 존재의 변화를 경험하는 종교 본연의 길을 다시 묻는다.


목차


개정판에 붙여
여는 글
들어가면서

제1부 진리의 길
1. 진리란?
2.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마음
3. 허상과 실상으로서의 종교
4. 열어놓음의 길
5. 외로운 길

제2부 자유에의 길
1. 종교란?
2. 경전이란 무슨 책인가?
3. 하느님은 누구신가?
4. 얽매이지 않는 삶
5. 자아에서의 해방

제3부 믿음의 길
1. 믿는다는 것
2. 경전을 믿는다는 것
3. 사랑
4. 율법과 윤리

제4부 함께 가는 길
1. 헌금은 왜 하는가?
2. 전도
3. 생각과 사색
4. 기도와 명상
5. 종교와 종교의 만남

부록1
깨침과 메타노이아: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
부록2
심층 종교로의 길목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의 종교

맺는 글
주석
접기


책속에서
P. 5 “사실 오늘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정의의 문제가 중요하기 그지없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혹은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것이 종교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표면적으로는 전통 종교가 쇠퇴하는 탈종교 현상이 이 시대의 특징이라 하는데, 불행하게도 아직 옛 패러다임에 입각한 전통 종교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로 인해 세상은 배타성과 증오가 증폭되고, 심지어는 서로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접기
P. 30 “‘종교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간략하게나마 점검해보는 것이 좋겠다. 각 종교는 스스로 진리를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종교와 진리는 이런 의미에서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 문제를 다루기 전에 우리가 생각하는 진리라는 것이 무엇인가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종교 문제를 다루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라도,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지금의 사고방식이 올바로 되어 있는가, 우리가 갖추어야 할 정신 자세는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자는 것이다.”  접기
P. 102~103 “성경이나 기타 경전이 거룩하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이나 기타 경전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거룩한 것’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지, 그 자체가 그대로 거룩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거룩한 것 자체와 거기에 대한 표현 사이에는 넘나들 수 없는 구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혼동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 신성화하는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는다.”  접기
P. 173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기독교의 본래 정신에 입각해서 살지도 않는 많은 사람이 ‘마음의 변화’는 없이 오로지 ‘교회에만 종속’되어 사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를 분석한다. 그가 지적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일종의 편리를 위한 도구쯤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 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을 예수님이 모두 나 ‘대신’ 해주셨고 또 해주시리라는 편리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뜻이다. 나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나 대신 남 사랑하는 일 다 하시고, 나 대신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으니 나는 그저 그의 공로로 편히 놀고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접기
P. 248 “설령 이것이 헌금에 관한 말씀이라 하더라도 땅과 거기 충만한 것, 온 우주가 그의 것이니, 모자랄 것이 없으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코 묻은 헌금 같은 데 연연하지 않으신다고 해석하지는 않고, 모든 것이 그의 것이니 모두 내놓아라, 몽땅 바쳐라, 사정이 뭣하면 그중 일부라도 내놓으라는 식으로만 풀이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접기
P. 336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불교는 완전히 ‘남의’ 종교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기독교도 한국 불교인들에게 완전히 ‘남의’ 종교가 아니다. 두 종교는 모두 이제 한국이라는 토양에서 함께 자라고 있고,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인의 종교이며, 둘 다 이제 ‘우리’ 한국인의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우리’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한국 불교인과 기독교인에게 ‘우리’의 종교적 상호성과 종교적 성숙을 위해 힘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접기
P. 377~378 “한때 서양의 젊은이들이 자기들의 종교 전통에서 나와 동양종교 전통에 매료되는 것은 동양종교의 심층에서 찾을 수 있는 이와 같은 가르침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기독교 전통 중에도 심층적 신비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구태여 동양종교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이제 그들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나는 종교적이 아니라 영성적이다” 혹은 짧게 줄여서 “NRBS(No Religion, But Spirituality)”라고. 이제 이것이 어디 서양 젊은이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인가?”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오강남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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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비교종교학자.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도교, 힌두교 등 세계 각 종교를 섭렵하고 종교의 참된 의미를 찾는 일에 천착해온 비교종교학계의 석학.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10년 동안 기독교를 중심으로 종교학을 공부했고, 비교종교학이라는 말조차 생소하던 1970년대에 캐나다로 건너가 동서 종교와 철학에 몰두하면서 종교에 대한 관점에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 더보기

최근작 : <종교란 무엇인가>,<오강남의 시선>,<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 … 총 77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출판사 제공 책소개



“당신의 신은 안녕하십니까?”
표층 종교를 넘어 진짜 ‘나’를 만나는 시간

종교의 이름으로 갈등과 혐오가 번지는 역설의 시대. 한국 종교학계의 거장 오강남 교수가 종교의 참된 의미를 다시 묻는다. ‘신이란 누구인가’라는 본질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배타적인 교리와 맹목적인 경전 추종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진정한 믿음과 사랑의 상위법, 나아가 종교 간의 대화에 이르는 사유의 여정을 펼친다. 권위를 걷어낸 평이한 문체로 맹신의 벽을 허무는 그의 통찰은 여전히 날카롭고 설득력 있다. 14년 전 집필 당시의 배경과 문제의식을 돌아보며, 오늘날 더욱 심화된 종교 갈등과 사회적 분열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개정판 서문’에 담았다. 또한, 팬데믹 이후 변화한 종교 환경을 분석하고, 인문학적 종교 이해의 필요성을 짚은 글을 ‘새로운 부록’으로 추가했다.

반복되는 증오의 역사, 지금 왜 다시 ‘종교’인가
과거 중동의 비극부터 최근의 이스라엘-이란 분쟁, 그리고 미국 대선을 둘러싼 복음주의의 정치화까지, 세계 곳곳의 갈등 이면에는 여전히 종교적 선민의식과 근본주의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먼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갈라놓는 극단적 대립의 배후에도 종교적 갈등이 작용하고 있다. 평화의 촉매제가 되어야 할 종교는 왜 대결의 촉진제가 되었는가. 저자는 14년 만에 펴내는 개정판을 통해, 지금 더욱 절실해진 ‘종교의 기본’을 다시 묻는다.

지푸라기를 파는 장사꾼인가, 생명줄을 던지는 스승인가
저자는 진리의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위험으로 ‘맹목적인 당연함’을 지목한다. 일부 종교가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지푸라기’를 강요하는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참된 종교는 오히려 그 집착을 내려놓게 하고 삶의 본질을 붙잡는 ‘생명줄’을 건네야 한다고 말한다. 허상을 넘어 실재를 보게 하는 것, 그것이 심층 종교의 역할이다.

수염 기른 백인 하느님을 넘어 ‘참나’를 찾는 여정
저자는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백인 할아버지 하느님은 없다”라고 단언한다. 대신 존재의 근원이자 우리 안에 내재한 신성(神性)을 발견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경전의 문자에 갇힌 ‘예수에 관한 교리’를 믿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예수가 체현했던 믿음의 본질을 살아내는 과정이다. 어제의 나를 벗고 새로운 나로 나아가는 ‘의식의 변화’야말로 자유에 이르는 길이다.

적자생존에서 협력자 생존으로, 함께 가는 인류
이제 종교는 ‘나만 옳다’는 배타주의나 소극적인 포용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더 큰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종교다원주의’로 확장되어야 한다. 저자는 이를 ‘협력자 생존’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번 개정판 부록에서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변화한 종교 지형을 분석하며, 탈종교화 시대에 필요한 ‘심층 영성’의 방향을 제시한다.

진리에서 상생으로, 4단계로 읽는 종교의 본질
이 책은 ‘표층’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신앙을 ‘심층’의 영성으로 이끄는 4단계의 사유를 제안한다. ‘제1부 진리의 길’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믿음에 질문을 던지며, 삶의 근원을 붙잡는 진리를 탐구한다. ‘제2부 자유에의 길’은 문자주의를 넘어 내면의 신성을 발견하고, 의식의 전환을 통해 자유에 이르는 과정을 다룬다. ‘제3부 믿음의 길’은 교리를 넘어 ‘믿음 그 자체’를 살아내는 삶과 모든 경전 위에 놓인 ‘사랑’의 가치를 강조한다. ‘제4부 함께 가는 길’은 종교 간의 대화와 상생을 통해 갈등을 넘어서는 길을 모색한다.

거장이 건네는 간절한 질문
염소 무리 속에서 자신을 염소라 여기며 살던 아기 호랑이가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순간처럼, 저자는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신성을 일깨우라고 말한다. 통념이 규정한 ‘나’가 아니라 본래의 ‘참나’를 발견하는 여정. 오랜 사유와 탐구를 거친 거장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갈등의 세계를 넘어 더 넓은 이해와 평화의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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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란 무엇인가> 요약 및 평론

1. 요약: 표층을 넘어 심층으로 가는 길

오강남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의 본질을 '표층 종교(Surface Religion)'와 '심층 종교(Deep Religion)'라는 두 가지 층위로 구분하여 탐구한다. 저자는 현대 종교가 직면한 위기와 갈등의 원인이 종교의 외피인 표층에만 매몰되어 그 본질인 심층을 잃어버린 데 있다고 진단한다.

종교의 두 얼굴: 표층과 심층

표층 종교는 종교의 제도적, 문자적, 기복적 측면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신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초월적 존재이며, 신자는 그 신에게 복을 빌거나 사후의 구원을 보장받으려 한다. 표층 종교의 특징은 '무조건적인 믿음'과 '배타성'이다. 내가 믿는 교리만이 진리라고 믿기에 타 종교와 충돌하며, 경전의 문구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근본주의적 성향을 띠기도 한다.

반면 심층 종교는 종교의 상징과 비유 너머에 있는 근원적인 깨달음을 지향한다. 심층의 차원에서 신은 내 밖에 있는 대상이 아니라, 내 안의 참된 나(眞我) 혹은 우주의 근원과 맞닿아 있다. 여기서 종교의 목적은 단순히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변화'와 '의식의 확장'에 있다. 심층 종교는 모든 종교가 결국 하나의 진리, 즉 '궁극적 실재'를 향하고 있다고 보기에 관용적이고 포용적이다.

앎과 깨달음의 과정

저자는 종교를 '믿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앎'이란 지성적인 정보 습득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을 직접 체험하고 직관하는 '그노시스(Gnosis)'적 깨달음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죽음'의 과정이다.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고정관념과 이기적인 자아(Ego)가 죽음으로써 더 큰 생명과 하나가 되는 체험이다.

종교 문해력과 보편성

오강남은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종교 문해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경전의 문자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메타포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안목을 가질 때,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 불교의 '불성', 힌두교의 '범아일여'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같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임을 깨닫게 된다.

2. 평론: 경계에 선 자유인의 종교론

오강남의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를 가진 이들에게는 자기 성찰의 거울을,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종교라는 인류 문화의 핵심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 책이 지닌 가치와 비판적 지점은 다음과 같다.

탈근대적 종교 담론의 선구적 제시

이 책의 가장 큰 공헌은 한국 사회의 고착화된 배타적 종교 지형에 '심층 종교'라는 대안적 담로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한국 종교계는 유독 문자주의와 기복주의가 강한 편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유아기적 종교'로 규정하며, 성숙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교리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는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원인이 아닌, 영적 성숙의 토양이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한다.

비교종교학적 통찰과 보편적 영성

오강남은 특정 종교의 틀에 갇히지 않고 기독교, 불교, 도교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이는 저자 스스로가 여러 문화권과 종교 전통을 경험한 '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강 건너기 위해 뗏목을 이용하되, 건너간 뒤에는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불교적 비유를 빌려 종교의 도구적 성격을 강조한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영적 추구자들이 느끼는 제도 종교에 대한 피로감을 해소해주며, 종교를 넘어서는 '보편적 영성'으로 인도한다.

비판적 고찰: 심층의 엘리트주의와 실천적 공백

그러나 이 책이 견지하는 심층 종교 지상주의에는 몇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표층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대다수의 대중에게 종교는 공동체적 소속감과 정서적 위안을 주는 체계다. 심층의 깨달음을 강조하는 담론은 자칫 고도의 지적·영적 훈련을 거친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주의적 영성'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 표층의 위로가 필요한 민초들에게 심층의 철학은 때로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둘째, 종교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내면의 깨달음과 의식의 변화를 강조하다 보면, 종교가 마땅히 가져야 할 사회 정의나 구조적 악에 대한 비판적 기능이 약화될 우려가 있다. 개인의 해탈이 세상의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보다는 개인의 영적 여정에 무게가 실려 있다.

결론: 자유를 향한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란 무엇인가>는 종교라는 감옥에 갇힌 이들에게는 탈출구를, 종교를 외면했던 이들에게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수작이다. 오강남은 종교의 목적이 '종교를 잘 믿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인간'을 만드는 데 있음을 일깨운다.

결국 이 책이 말하는 종교란, 인간이 가진 유한성을 자각하고 무한한 실재와 연결되려는 끊임없는 몸짓이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믿는 신념이 혹시 자신을 가두는 벽이 되지는 않았는지 자문하게 된다. 진정한 종교는 나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큰 자유의 길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최종적인 메시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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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3

오강남, 부처님의 탄생 > 월간고경

부처님의 탄생 > 월간고경 | 백련불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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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와 사상]
부처님의 탄생
오강남 / 2024 년 1 월 [통권 제129호] / 
 24-01-05 13:20 / 조회390회 / 댓글0건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 1 |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명예교수)



연재를 다시 시작하면서



지난 1년 간 ‘심층종교와 불교의 미래’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쓰라는 부탁을 받고 1년치를 다 채워서 이제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작별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편집인으로부터 계속 연재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민하다가 ‘비교종교학자의 불교 이야기’라는 큰 제목을 가지고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비교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불교를 역사적으로 살펴 가면서 이웃 종교들, 특히 기독교와 상통하는 점, 서로 배울 점 등을 부각해서 종교 일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썼으면 합니다.



부처님의 탄생



오늘은 우선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불자라면 다 아시는 이야기이지만 다시 간단히 기술하고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상이한 자료 때문에 하나로 통일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대로 이야기해 보면, 부처님은 기원전 6세기 히말라야 산 밑자락, 지금의 네팔과 인도 변경 부근에 있던 카필라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샤카釋迦족에 속하는 슈토다나[淨飯] 왕이었고 어머니는 아름다운 마야摩耶 부인이었습니다. 부부는 결혼 후 여러 해가 지나도록 아기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45세쯤 된 어느 날 꿈을 꾸는데, 흰 코끼리가 코로 흰 연꽃을 들고 나타나 마야부인의 주위를 몇 바퀴 돈 다음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그 후 부인은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1. 부처님의 탄생을 그린 불전도(3세기 간다라, 페샤와르박물관).



해산일이 가까워오자 그 당시의 관습대로 친정에 가서 해산하기로 하고 친정으로 향했습니다. 가마를 타고 가는 도중 룸비니라고 하는 동산에 이르렀을 때 산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오른손을 드는 순간 아기가 왼쪽 옆구리에서 나왔습니다.



아기는 나오자마자 북쪽을 향해 길게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사자와 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늘 위와 땅 아래에 나 홀로 존귀하도다[天上天下唯我獨尊].”라는 탄생게를 외쳤습니다.

여기까지는 불자들이 모두 잘 아시는 이야기겠지요. 이제 예수님의 경우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예수님의 탄생도 성경 4복음서에 약간씩 다르게 나와 있어 통일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에 따르면 지금의 팔레스타인인 옛 유대 땅 갈릴리 지방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마리아라고 하는 젊은 처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요셉과 약혼 관계에 있었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도 전에 마리아가 아기를 배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약혼자를 배려해서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는데, 그때 천사가 그의 꿈에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받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고 하고, 이어서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따라 요셉은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2. 목동들의 경배를 받으시는 아기 예수님(17세기,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로마의 식민지였던 유대에 모두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구조사에 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북쪽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국 잇수로 따져 330리나 되는 고향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거기서 아기 예수를 낳았다는 것이 이른바 동정녀 출생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다른 경우들



첫째, 부처님이나 예수님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위대한 분들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출생이 특별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나 그리스, 중국의 영웅들의 탄생 설화는 물론 우리에게 가까운 우리 역사 이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예로 우선 박혁거세를 들 수 있습니다.



지금의 경주 지방에 있던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모여 나라를 세우자고 결의하고 덕 있는 사람을 임금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촌장 중 한 분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흰 말 한 마리가 꿇어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다가가자 말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가고 그 자리에 큰 알이 하나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알을 건드리자 거기에서 건강한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가 혁거세. 그 알이 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박혁거세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사진 3.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전해 오는 경주 나정羅井.



혁거세가 태어난 날 닭처럼 생긴 용, 계룡鷄龍이 우물가에 나타나 그 옆구리로부터 여자아이를 나았습니다. 이름을 알영이라 했는데, 혁거세와 알영은 자라나 부부가 되고, 혁거세는 서라벌(신라)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 외에 신라 4대 왕 석탈해도, 김씨의 시조 김알지도 모두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둘째, 또 다른 예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입니다. 하늘의 신 해모수가 하백의 세 딸 중 가장 아름다운 유화를 꼬여 그와 하룻밤을 지냈습니다. 그 일로 하백은 유화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어 헤매던 유화를 동부여의 금와왕이 그의 궁궐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런데 유화가 궁궐 방안에만 머물렀는데도 햇빛이 계속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비추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덜컥 임신하게 되었는데 해산을 하고 보니 큰 알이었습니다. 금와왕은 이를 불길하게 여겨 없애려고 온갖 방법을 다 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드디어 그 알에서 한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혼자서 걸어 다니고 일찍부터 힘이 세고 총명하였습니다.



탄생 설화의 속내



이런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믿어서 나름대로 신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그대로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종교사적으로 우리에게 말해 주려는 더 깊은 뜻이 무엇일까? 그 ‘속내’를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첫째, 이런 기적적인 탄생 이야기는 위의 박혁거세나 주몽의 이야기에서 보듯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경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 하나 때문에 불교나 기독교가 특별하다거나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둘째,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런 정신적, 정치적 영웅들이 이렇게 특별한 방법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위대하게 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이런 이들이 그만큼 위대하기에 그들의 탄생도 보통 이상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기이한 일이 생긴다고 믿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일거에 배격할 것은 아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그런 정신적, 정치적 영웅들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얼마나 위대하게 보였던가, 그들의 가르침이 그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느껴졌던가를 가름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순전히 역사적이나 생물학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무조건 그대로 믿으라고 하는 것을 문자주의(literalism)라고 하는데, 오늘날 젊은이들이나 지성인들에게 이런 문자주의를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불립문자不立文字라고 하여 문자에 사로잡히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바울이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속내’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자주의를 경계하는 이들이 많지만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문학비평가 및 문학이론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캐나다의 노드럽 프라이(Northrop Frye, 1912∼1991) 한 분만을 소개합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의미 깊은 말을 남겼습니다.



사진 4.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 1912∼1991).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 [역사적 사실을] 보고한다는 것은 성경 저자들에게 전혀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들은 신화나 은유를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준 것이다. 그들이 쓴 것은 상상력(vison)의 원천이 되는 것이지 교리의 근거가 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셋째, 부처님이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과 예수님이 말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아我’와 예수님의 ‘내가’가 무슨 뜻일까 하는 것입니다. 분명 이는 육체적이나 역사적인 자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여기서의 ‘나’는 우리 모두 속에 스며 있는 ‘우주적 나(cosmic I)’, ‘우리 본연의 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부처님의 선언과 예수님의 선포도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나가면서



제가 평소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불경이든 성경이든 모든 경전은 결국 변혁(transformation)을 위한 것이지 정보(information)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경전은 철지난 과학책이나 역사책이 아닙니다. 경전에서 오늘을 위한 메시지를 얻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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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강남 서울대학교 종교학 석사,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 종교학과에서 ‘화엄 법계연기에 대한 연구’로 Ph.D. 학위취득.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 명예교수. 저서로는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도덕경』, 『장자』, 『세계종교 둘러보기』,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종교란 무엇인가』, 『예수는 없다』, 『나를 찾아가는 십우도 여행』, 『살아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오강남의 생각』 등. 번역서로는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예수』, 『예수의 기도』, 『예언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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