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28

[모든 것의 새벽> (데이비드 그레이버 / 데이비드 웬그로).

Yoo Jung Gil - <모든 것의 새벽> 읽기에 함께 해주세요 (데이비드 그레이버 / 데이비드 웬그로)... |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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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읽기에 함께 해주세요
(데이비드 그레이버 / 데이비드 웬그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우가 함께 쓴 《모든 것의 새벽(The Dawn of Everything)》은 지난 수백 년간 인류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인류 문명 발전사'의 기초를 완전히 뒤흔드는 책입니다. 저자들은 방대한 최신 고고학·인류학 증거를 바탕으로, 불평등과 권위주의 국가가 인류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었음을 밝혀냅니다. 역사의 과거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은 미래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공동체전환사회 공부모임)에 참여하실분 아래 댓글을 달아주세요
8월 31일 (월) 저녁 8:30 -10:30
● 유정길 : 발제 1 : 1) 인류의 어린 시절에. / 2) 사악한 자유  
● 박재현 : 발제 2 : 3) 빙하시대 녹이기 / 4) 자유로운 인간.. 
9월 7일 (월) 저녁 8:30 -10:30
● OOO : 발제 3 : 5) 오랜 세월 전에 / 
● OOO : 발제 4 : 6) 아도니스의 정원 / 7) 자유의 생태학
9월21일 (월) 저녁 8:30 -10:30
● OOO : 발제 5 : 😎 상상의 도시  / 9) 등잔 밑이 어두운
● OOO : 발제 6 : 10) 국가에 기원이 없는 이유 
10월 5일 (월) 저녁 8:30 -10:30
● OOO : 발제 7 : 11) 한 바퀴 돌아오다  
● OOO : 발제 8 :12) 결론 - 모든 것의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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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 다시 쓰는 인류 역사
데이비드 그레이버,데이비드 웬그로 (지은이),김병화 (옮긴이),이상희 (감수)김영사2025-05-02원제 : The Dawn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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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20년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인류학자이자 활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와 함께 쓴 마지막 책이 드디어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인류학적 근거를 통해 수천 년간 구성되어온 사회구조를 꿰뚫어보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그레이버의 특장점이 이번 책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모든 것의 새벽》은 지난 30여 년간의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통해 그간 각광받아온 빅히스토리 계열 역사학자, 지리학자, 경제학자, 진화심리학자, 정치학자 등의 문명사가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문명 전반에 걸친 단선적 사회 진화의 신화와 유럽 중심의 목적론적 통념을 전복하는 획기적 통찰로 문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다.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가볍게 주고받던 대화에서 시작한 한 인류학자와 한 고고학자의 지적 기획이 인류사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목차


들어가는 말이자 헌사

1. 인류의 어린 시절에 고하는 작별 인사
- 또는, 이것이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책이 아닌 이유
2. 사악한 자유
- 선주민 비평과 진보의 신화
3. 빙하시대 녹이기
- 사슬에 묶임과 사슬에서 풀려남: 인간 정치의 변화무쌍한 가능성
4. 자유로운 인간, 문화의 기원, 사유재산의 등장
- (등장 순서는 다를 수 있음)
5. 오랜 세월 전에
- 왜 캐나다의 채집인들은 노예를 두었는데, 캘리포니아의 채집인들은 그러지 않았는지, 또는 ‘생산 양식’의 문제
6. 아도니스의 정원
-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혁명: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농경을 기피했는가
7. 자유의 생태학
- 농경이 세계 곳곳에서 처음 뛰고, 넘어지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들
8. 상상의 도시
-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계곡, 우크라이나, 중국의 유라시아 첫 도시민들 그리고 그들이 왕 없이 도시를 건설한 방법
9. 등잔 밑이 어두운
- 아메리카에서 사회적 주택 문제와 민주주의의 선주민 기원
10. 국가에 기원이 없는 이유
- 주권, 관료제, 정치의 소박한 시작
11. 한 바퀴 돌아오다
- 선주민 비평의 역사적 토대에 대해
12. 결론
- 모든 것의 새벽


지도와 도판 목록
참고 문헌
감사의 말
감수자의 추천사
옮긴이의 글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P. 13 새로 그려지는 그림이 기존의 것과 얼마나 다른지 잠시 맛을 보기로 하자. 이제는 농경이 등장하기 전의 인간 사회가 소규모의 평등한 무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이 명백해졌다. 그와 반대로 농경이 출현하기 이전 수렵 채집인의 세계는 대담한 사회적 실험의 세계였다. 그것은 진화 이론의 지루한 추상화보다는 다양한 정치적 형태들이 참여하는 축제 행렬과 더 비슷했다. 또 농경은 곧 사유재산의 시작을 의미하지 않았고, 불평등을 향한 돌이킬 길 없는 전진의 표시도 아니었다. 사실 최초의 농경 공동체들 가운데 많은 수는 비교적 지위와 위계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리고 계급적 차이가 돌처럼 굳어지지도 않았다. 세계 최초의 도시들 가운데 놀랄 만큼 많은 수가 확고한 평등주의 노선에 따라 조직되었고, 독재적 지배자나 야심적인 전사-정치가를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지배적인 행정부도 없었다.
_1. 인류의 어린 시절에 고하는 작별 인사 접기
P. 83~84 1703년의 유럽인들에게 이것은 매우 혼란스러운 문제였다.
나머지 대화의 많은 부분은 프랑스인이 유럽식 문명을 채택하는 데서 오는 이점을 두고 칸디아롱크를 설득하려 애쓰고, 칸디아롱크는 프랑스인이 웬다트식 삶의 방식을 채택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되받아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진심으로 내가 파리 주민들처럼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셔츠를 입는 데 오전 두 시간을 소모하고 화장을 하고, 어쩌다가 유산을 받고 태어난 뻔뻔한 멍청이들과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절을 하고 티격태격 살아가는 생활을 하는 게 행복할까? 당신은 정말로 내가 지갑 가득 주화를 갖고 있는데도 배고픈 사람에게 금방 나누어주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검을 갖고 있는데도 빈민들을 끌어다가 해군으로 밀어 넣는 불한당을 보는 즉시 그것을 빼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반대로 라옹탕이 아메리카식 삶의 방식을 채택한다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결국 그도 훨씬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칸디아롱크는 그에게 말한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칸디아롱크가 옳았다. 선주민 사회에 받아들여진 정착민들 가운데 원래 사회로 돌아가고 싶어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_2. 사악한 자유 접기
P. 158 평원의 부족들은 과거에는 농부였지만 스페인인들에게서 달아난 말들을 길들여 유목 생활을 채택한 뒤에는 대부분 곡물 농사를 포기한 사람들이었다. 늦여름과 초가을에는 규모가 작고 기동성이 뛰어난 샤이엔족과 라코타족이 버펄로 사냥을 위한 보급 준비를 하기 위해 큰 마을로 모여든다. 한 해 중 가장 민감한 이 시기에 그들은 진행을 위협하는 반항자들은 모조리 가두고, 채찍을 휘두르거나 벌금을 부과하는 등 전면적 강제력을 행사하는 경찰력을 임명한다. 하지만 로위가 관찰했듯이, 이런 ‘명명백백한 독재’는 엄격히 계절적이고 일시적인 수준에서만 작동했다. 사냥철이—그리고 그다음에 집단적으로 거행하는 선댄스 제의가—끝나면 그런 독재는 그가 아나키스트적 조직 형태라 부른 것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며, 사회는 다시 한번 작고 기동력 있는 무리로 쪼개진다.
_3. 빙하시대 녹이기 접기
P. 339 이런 식으로 볼 때 ‘농경의 기원’은 경제적인 변천이라기보다는 미디어 혁명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또한 텃밭 농사에서 건축, 수학, 열역학에 이르는, 그리고 종교에서 젠더 역할의 재규정에 이르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회적 혁명이기도 하다. 이 신세계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여성의 작업과 지식이 그것을 만들어내는 데서 중심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전체 과정은 환경적 재앙이나 인구통계학적 위기 상황에 의해 강제된 것이 아니라 매우 여유 있고 장난스럽기까지 했고 대규모의 폭력적 갈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게다가 그것들은 모두 근본적인 불평등이 도저히 발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수행되었다.
_6. 아도니스의 정원 접기
P. 415~416 100가구로 이루어진 마을은 이미 던바가 제기한 150인이라는 인지의 문턱을 진작에 한참 넘어섰다. 그리고 바스크의 마을들과 도시들은 이보다 훨씬 더 컸다. 그러니 적어도 그런 평등주의 시스템이—다른 맥락에서—수백 가정, 혹은 수천 가정으로까지도 확대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메가 유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원전 3000년대 중반, 그런 유적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폐기되었다. 왜 그랬는지 우리는 지금도 모른다. 한편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중요하다. 도시 규모의 조직도 매우 평등할 수 있었다는 증거가 그것이다. 이 점을 기억해두면서 우리는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에서 나온 더 잘 알려진 사례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해보자.
_8. 상상의 도시 접기
P. 606 사실, 권력이 그 범위를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에는 논리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제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제약이 우리가 말하는 주권과 행정과 경쟁적 정치라는 ‘세 원칙’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또 ‘국가’라는 그 어떤 관례적 정의를 고수함으로써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이런 제약 내에서도—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미노스 궁전 안에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어떤 의미로는 연극 무대, 어떤 의미로는 여성 성년식 협회이자 행정의 허브의 역할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배의 체제라는 것이 있기나 했던가?
_10. 국가에 기원이 없는 이유 접기
P. 623~624 역사는 정말로 특정한 방향을 취하는가?
아메리카의 경우, 우리는 실제로 그 질문을 다음처럼 제기할 수 있다. 세계의 지배적 정부 형태로서 군주제의 등장이 정말로 불가피했던가? (…) 콜럼버스 이전의 북아메리카의 역사로 판단하건대, 적어도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주 명확한 ‘아니요’다.
사실 북아메리카의 고고학자들이 ‘무리’ ‘부족’ ‘족장 사회’ ‘국가’ 같은 말을 쓰지만, 그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처럼 보이는 것들은 그런 모든 가정을 거부한다. (…) 대평원의 사회들 중에는 한 해 중 언제든 무리와 지금 우리가 국가와 동일시하는 특징들의 적어도 몇 가지를 공유하는 어떤 집단 사이를 오락가락한 것으로 보이는 사례가 흔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 진화의 스케일에서 상반되는 양 끝이어야 하는 지점 사이를 오락가락했다는 것이다. 그 자체로 더욱 놀라운 것은 대륙의 동부에서 발생한 일이다.
_11. 한 바퀴 돌아오다 접기
P. 724 우리는 이제 다른 모든 측면에서는 엄격한 어떤 연구가 인류 사회의 어떤 ‘원래’ 형태가 존재했다는 검토되지 않은 가정에서 출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그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거나 악하다는, 불평등과 정치적 인식이 아직 발생하기 전의 시간이 존재했다는, 뭔가가 발생하여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는, ‘문명’과 ‘복잡성’이 항상 인간의 자유를 대가로 얻어진다는, 참여 민주주의는 작은 그룹에서는 자연스럽게 실행되지만 도시나 민족국가 같은 것으로 확대될 수는 없다는 가정 등이 그런 출발점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신화임을 안다.
_12. 결론 접기
P. 15 확실히 역사에는 어떤 경향들이 있다. 어떤 것은 강력하다. 그 흐름은 너무 강해서, 거슬러 헤엄치기가 매우 어렵다(어떻게든 그 일을 해내는 사람이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하지만 '법칙'이란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들일 뿐이다.
P. 155 계절적인 이합집산의 패턴은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스톤헨지에 왕과 여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왕과 여왕이었을까? 어쨌 든 그들의 긍정과 왕국은 한 해에 두어 달 동안만 존재했으며, 다른 시 간에는 견과류 채집인들과 가축 몰이꾼들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졌을 것이다. 노동력을 소집하고, 식량 자원을 저장하며 수많은 상시적 사용인들을 먹여 살릴 수단을 가졌는데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왕족은 어떤 왕족일까? 접기 - 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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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책. 그레이버는 에너지가 넘치는 산문과 신랄한 재치로 유명하며, 웬그로 역시 중동 지역 연구에 탁월한 고고학자일 뿐만 아니라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있다. 《모든 것의 새벽》의 핵심에는 인간의 가치에 대한, 선하고 정당한 존재의 본성에 대한 매력적인 제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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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데이비드 그레이버 (David Graeber)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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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 1961년 뉴욕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나, 뉴욕주립대학교를 졸업. 마다가스카르에서의 현장 연구로 시카고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까지 예일대학교에서 가르쳤으나, 그의 대담한 사회 비판과 실천적 행동에 반감을 품은 학교 측으로부터 해고당한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2013년부터 런던정경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를 비롯한 세계정의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고고학과 인류학을 도구 삼아 자본주의와 국가 너머의 삶을 상상하고 새로운 삶과 관계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2020년 5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남으로써《해적 계몽주의》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고 말았다. 접기

최근작 : <해적 계몽주의>,<모든 것의 새벽>,<불쉿 잡> … 총 117종 (모두보기)

데이비드 웬그로 (David Wengrow)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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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자.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고고학 연구소 비교고고학 교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대학교와 베이징 대학교 그리고 오클랜드, 프라이부르크, 쾰른의 대학들에서 방문교수를 지냈다. 농경과 문자의 기원, 고대 예술, 초기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을 주제로 학술적인 글을 써왔고, 저서로 《무엇이 문명을 만드는가?》 《괴물의 기원》 등이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의 여러 지역에서 고고학 현장조사를 지휘해왔다. 〈가디언〉 〈뉴욕 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했고, 2021년 아트리뷰에서 선정하는 ‘현대예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위에 올랐다. 접기

최근작 : <모든 것의 새벽> … 총 24종 (모두보기)

김병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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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고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번역 기획 모임 ‘사이에’를 결성해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모든 것의 새벽》 《외로운 도시》 《음식의 언어》 《문구의 모험》 《증언: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세기말 빈》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 《짓기와 거주하기》 등 여러 책을 번역했다

최근작 : <추상표현주의> … 총 115종 (모두보기)

이상희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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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미국 미시간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고 일본 소고켄큐다이가쿠인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1호 고인류학자로, 2018년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펠로로 선임된 데 이어 미국 생물인류학협회와 리키재단이 수여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 공로상을 수상했다. 인류의 진화를 연구하며 다양한 독자층을 위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 《인류의 기원》은 8개 국어로 번역 및 출간되었으며 《이상희 선생님이 들려주는 인류 이야기》 《우리는 ... 더보기

최근작 : <사소한 인류>,<노시니어존>,<[큰글자도서] 인류의 진화> … 총 18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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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Again! 뒤집어본 영문법>,<성과 향상을 위한 코칭 리더십>,<우리는 서로의 말로 살아간다>등 총 1,898종
대표분야 : 요리만화 1위 (브랜드 지수 382,203점), 사회/역사/철학 1위 (브랜드 지수 793,532점), 과학 2위 (브랜드 지수 934,02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_리베카 솔닛, 《오웰의 장미》 저자

★★지성의 향연. 모든 내용이 우리가 안주해온 지적 믿음을 깨뜨린다.★★
_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 저자

★★기성 학계에서 지워진 실제 인류 역사를 복원하는 여정. 희망과 영감이 가득한 책.★★
_이상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인류의 기원》 저자

문명 전반에 걸친 신화와 통념을 전복하는 획기적 통찰
인간 본성과 사회에 관한 이해를 더 과학적·낙관적으로 재정립한 기념비적 명저

독창적 사상가이자 이 시대 최고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유작

2020년 이른 나이에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인류학자이자 활동가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고고학자 데이비드 웬그로와 함께 쓴 마지막 책이 드디어 한국 독자들을 만난다. 인류학적 근거를 통해 수천 년간 구성되어온 사회구조를 꿰뚫어보고,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그레이버의 특장점이 이번 책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웬그로는 고고학 분야에서 농경의 기원과 국가의 출현에 관한 최신 논의를 이끌고 있는 명망 있는 학자로, 두 저자는 “갈릴레오와 다윈이 천문학과 생물학 분야에서 행한 일을 인류사 분야에서 해냈다”(〈자코뱅〉).
《모든 것의 새벽》(원제 The Dawn of Everything)은 지난 30여 년간의 인류학과 고고학 연구 성과를 통해 그간 각광받아온 빅히스토리 계열 역사학자, 지리학자, 경제학자, 진화심리학자, 정치학자 등의 문명사가 실제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준다.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문명 전반에 걸친 단선적 사회 진화의 신화와 유럽 중심의 목적론적 통념을 전복하는 획기적 통찰로 문명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다. 심화하는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과 해결책을 주제로 가볍게 주고받던 대화에서 시작한 한 인류학자와 한 고고학자의 지적 기획이 인류사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이 책은 10년 동안 이어진 두 학자 간 우정 어린 협업의 산물이자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남긴 마지막 마스터피스다.

문명이 특정한 방향으로 단계를 밟아 진화한다는 환상
사회적 현실은 그보다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그 웬그로가 애초에 답을 찾고자 한 문제는 불평등의 기원이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사회적 ·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과학 분야의 화두로 떠올랐다. 다보스 포럼에서도 ‘세계적 불평등’이 주요 쟁점으로 오를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많은 경우 사회적 불평등 연구는 문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다. 지금까지의 문명사는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전락의 스토리는 인류가 농경을 도입한 약 1만 2,000년 전쯤 시작한다. 작은 무리를 이루어 평등하게 살아가던 인간 집단이 농업혁명 이후 대규모 사회로 발전하면서 계층화되었고, 자연스럽게 불평등과 부자유가 인간 삶의 조건이 되었다는 비관적인 이야기. 오늘날 심화하는 불평등은 이렇듯 인류가 단계를 밟아 진화해온 필연적 결과일까? 우리는 스스로 속박을 향해 달려든 것일까?
두 저자는 공동작업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불평등의 기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가 불평등해지려면 그보다 앞서 평등해야 한다. ‘평등 → 불평등’이라는 도식이 성립해야 하는데, 이는 최근 30여 년간 축적되어온 고고학과 인류학 연구 성과에 따르면 사실이 아니다. ‘순진 · 소규모 · 야만 → 복잡함 · 대규모 · 문명’이라는 사회 진화의 신화도 실제 역사와 다르다. 세계 각지에서 제각각 다양한 자연환경에 맞닥뜨린 우리의 선조들은 그처럼 단선적이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역사를 써오지 않았다. 사회적 현실은 항상 복잡하고 다채롭고 흥미롭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의 ‘원래’ 형태란 없으며, 인류 역사에는 그로부터 파생된 단계별 방향성도 없다. 다만 역사의 어느 시점부터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 붙들려 있다. 따라서 저자들은 질문을 수정한다. ‘우리는 어쩌다 폭력과 지배를 기초로 하는 하나의 사회적 형태에 전 지구적으로 고착되어버렸는가?’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 스티븐 핑커가 놓친 과거의 진실
불평등과 부자유가 삶의 필연적인 조건이 된 이유

저자들이 볼 때 인류사 분야의 주요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나 유발 하라리도 종래의 ‘사회 진화’ 도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 도식은 유럽 계몽주의의 소산이다.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과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문명 이전 자연 상태에 대한 ‘사고 실험’에서 시작해 사회계약과 근대국가의 출현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론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근거가 부족한 추정에서 시작한 역사다. 루소와 홉스는 17~18세기 유럽 당대의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의 진실을 충분히 관찰하지 않은 가설과 거기에서 유도한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견지했다. 현대 학자들이 이어받은 역사 서술 방식이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수렵 채집인 무리를 정치적 자의식 없는 유인원 취급한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과학학명’을 거친 인류에게는 스스로 만든 제도에서 벗어날 힘이 없다. 우리는 현재의 체제에 고착되었고, 다른 삶의 가능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다이아몬드는 인간에게 유의미한 수준의 사회적 평등은 원초적인 소규모 무리 안에서만 가능하다고 결론짓는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치적 불평등의 기원이 농경에 있다고 단언한다(《정치 질서의 기원》). 다이아몬드와 후쿠야마는 공히 복잡한 대규모 인간 사회는 위계질서와 관료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저자들이 현대판 홉스주의자로 부르는 스티븐 핑커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와 《지금 다시 계몽》에서, 고대의 우리 선조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잔혹하고 짧은 삶을 살았고, 유럽 문명의 발전을 토대로 이룩한 현대의 삶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평화롭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선적 사회 진화 이론을 옹호하면서 불평등과 부자유한 상황을 바꿀 대안은 없다고 말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그런 결론을 뒷받침할 역사적 증거는 없다고 비판하며, 더 나아가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실험한 우리 선조들의 새로운 역사를 재구성하는 “희망과 영감이 가득한 훌륭한 책이다”(이상희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수렵 채집, 농경, 사유재산, 도시, 국가, 민주주의 등
최신 연구 성과가 밝힌 역사의 진실에 기반한 문명의 역사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인류 사회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전복한다. 최근 몇십 년간 발견되었으나 전문 학술 영역 안에서만 논의되어온 새로운 고고학·인류학 증거들이 900여 페이지에 걸쳐 빼곡하게 제시되어 있다.

• 수렵 채집인도 정치적 자의식 갖춘 인간이었다.
기존의 서구 지성사에서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은 자유롭고 평등하며 순진무구한 미개인이거나 이기적이고 냉혹한 야만인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적절한 삶의 방식에 대해 토론하고 성찰하는 능력을 갖춘 현대인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북극권의 이누이트족은 여름에는 소규모로 쪼개져 수렵 채집을 하면서 강력한 가부장제를 작동시키는 반면, 겨울에는 한데 모여 평등한 집합적 삶을 산다. ‘적절한 사회는 어때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 의식의 결과, 그들은 상이한 사회의 가능성을 실험했으며, 이 같은 고고학적 증거는 계속 쌓이고 있다.

• 농업혁명은 없었다.
혁명은 과거와의 급격한 단절과 그로 인한 전면적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이다. 농업은 혁명적 사건이 아니었다. 농업혁명의 요람이라는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농경으로의 이행은 약 3,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브라질 남비콰라족에게서 발견한 증거는 ‘취미 농사’(‘했다 안 했다 하는 농경in-and-out-of-farming’) 혹은 ‘자유의 생태학’이라고 부르는 느슨하고 유연한 재배 방식 단계로, 수렵 채집과 함께 오래 존속했다. 농경은 하라리식으로 말해 밀과 인간의 ‘파우스트식 극적 계약’에 의해 파격적이고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초기 농부들은 채집인, 어부, 사냥꾼의 관심 밖 땅에 정착한 약자였다. 신석기시대 농경은 실패할 위험이 있었던 실험이었고, 종종 실패했다.

• 사유재산의 기원은 신성 개념이다.
사유재산은 농경으로 인한 잉여 생산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등장했을까? 농업경제보다는 제의적 맥락에 답이 있다.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소유권은 신성 개념에 기초한다. 사적 재산 개념과 신성 개념은 모두 본질적으로 배제의 구조를 띤다. 신성한 물건은 세상과 격리되어 보존된다. 어떤 물건이 ‘내 것’이 되는 순간 그것은 타인의 손길에서 격리되어 나의 절대적 권한 아래 놓인다. 제의에 사용된 특정 물건에 신성 개념이 주입되면서 여타 일상적 도구와는 구별되는 배타적 소유의 관념이 싹텄다.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는 수렵 채집인 사회에서도 소유권은 철저하게 보호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아란다족의 엄격하고 고통스러운 성년식 제의를 거친 남성은 자기 씨족의 신성한 수호자로서 거듭나고, 토템 문양이 새겨진 나뭇조각이나 돌조각은 신성한 물건으로서 그의 재산이 된다.

• 대규모 사회가 반드시 지배와 위계를 수반하는 것은 아니다.
다수 인구가 모여 큰 도시를 이루고 살면서도 행정적 위계와 권위주의적 지배의 흔적이 부족한 고고학적 발견이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흑해 북쪽의 선사시대 메가 유적에서는 중앙 집중화하지 않고 자율적 가정들을 조직한 시민 의회가 형성되었다. 남아시아 최초의 도시 문화인 인더스 문명에서는 지배 계급과 관리자 엘리트가 부재한 상태에서도 청동기시대 대규모 인간 정착지가 출현했다. 군주제로 기울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가 이내 돌아와 주민들에게 다가구 공동주택을 공급한 멕시코 테오티후아칸 같은 독특한 사례도 있다. 우리는 공동체가 도시 규모를 넘어가면 국가로 ‘진화’한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저자들에 따르면 국가는 도시에서 진화한 것이라기보다, 지배의 기초적인 세 원칙(‘주권’ ‘관료제’ ‘정치’)이 다양한 방식과 조건으로 결합한 체제다. 그런데 그 원칙들의 역사적 기원이 제각기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함께 묶여야 할 실질적 이유가 없다. 오늘날의 국가는 강고해 보이지만 실상 그 뿌리는 허약한 셈이다. 국가라는 지배 체제는 다른 모든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가변적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상상을 방해할 이유가 없다.

• 민주주의와 자유·평등의 이념은 아메리카 선주민 사상에서 발원했다.
오늘날 세계 질서의 근간으로 알려진 ‘서구적’ 근대정치 이념의 시원이 유럽 계몽주의 지식인이 아니라 아메리카 선주민이라는 폭로는 놀랍다. 북아메리카 동부 수림지대의 웬다트족 철학자-정치가 칸디아롱크의 유럽 문명에 대한 ‘선주민 비평’은 인간 해방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은 이성을 가진 인간일 수 없네.” 칸디아롱크는 인류 사회의 진보와 개선을 구상한다던 유럽 계몽주의 기획의 핵심인 합리적 이성과 개인적 자유의 부재를 비판했다. 또 아즈텍에 대항해 틀락스칼라와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코르테스와 스페인인들은 틀락스칼라의 민주적 사회 운영 시스템에 감명받았다. 당시 유럽인들은 거의 모두 반민주적이었기 때문에 중앙아메리카의 그 만남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배운 쪽이 있다면, 그것은 스페인인들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 · 평등의 이념은 아메리카 선주민에게 ‘카피레프트’가 있다.

유럽 중심주의로 인해 가려진 실제 역사를 복원하는 여정에서
더 과학적이고 더 낙관적으로 재정립하는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이해

그렇다면 어째서 ‘정설’ 혹은 ‘통념’은 실제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는가? 저자들에 따르면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아메리카 선주민 비평이 가하는 위협에 유럽 지식인들이 대응해 내놓은 단선적 사회 진화 이론의 유산이다. A. R. J. 튀르고와 애덤 스미스가 사회 발달의 정점을 ‘상업적 문명사회’로 상정하면서, 복잡한 노동 분업을 위해 자유와 평등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덕분에 전반적인 부와 자산이 눈부시게 증가할 수 있었던 유럽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사회 모델이 되었다. 이러한 응수는 아메리카 선주민 사상에 맞서 유럽 우월성이라는 감각은 지켜냈지만, 유럽식 버전을 따르지 않은 인류 과거의 방대한 부분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유럽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역사를 물질적 진보의 이야기로 각색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지금의 세계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인류가 오랜 기간 이루고자 한 목표로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 체제는 우리가 잠깐 고착된 일탈일 뿐이며, 인류는 수만 년 전부터 다양하고 유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왔음을 이 책은 보여준다.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다. 저자들은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자유와 자유의 직접적 결과인 평등을 포기하지 않고도 다양한 문명을 실현해온 장대하고 심오한 실제 역사의 흔적을 집대성해 보여준다. 그레이버와 웬그로는 현재의 우리도 자유를 희생하지 않고 다르게 살아갈 가능성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두 저자의 10년에 걸친 협업은 문명 전반에 걸친 신화와 통념이 인류 역사에 드리운 어둠을 몰아내고 인간 본성과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새벽의 여명을 비춘다. 인간을 실제보다 사려가 부족하고 덜 창조적이고 덜 자유로운 존재로 그리는 진화생물학과 빅히스토리 계열의 문명사가 제시하지 못하는 더 과학적이고 더 희망적인 인류 역사의 지평을 확인하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독자들을 새로운 역사학으로 불러들이려 한다. 인간의 역사는 단단하게 확정된 것이라기보다 가능성들로 가득 차 있다.”
_본문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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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이게 최선이었을까.. 챗gpt의 번역과 함께 읽어 비로소 온전한 이해에 도달 할 수 있었다. 구매
younghugh 2025-07-29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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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도 높은 책, 미완성인듯한 번역 구매
김온달집사 2025-09-1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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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구매
아리네 2025-05-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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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활용해서 번역하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여러번 곱씹을만한 내용으로 보인다.
정말 누군가 다시 번역해 주시길 부탁한다. 구매
nomad 2026-06-0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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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수준 새창으로 보기 구매
매우 훌륭한 원저를 번역이 훼손한 정도가 심각합니다. 오역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지적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하나만 예를 들겠습니다. Critically, such systems have a kind of inbuilt resistance to the enclosure and measurement of land.(원서 235쪽) 를 '비판적으로 보자면, 그런 시스템은 토양의 울타리 치기와 측정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편이다'로 번역한 것은 도대체 어떤 경위로 이렇게 한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일부러 오역한다고 해도 이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이 대목은 "결정적으로, 그런 시스템이 그 자체 내에 ... (농경의 전제가 되는 토지구획에 대해) 어떤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서 이 장의 의미와 맥락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리뷰를 평생 써 본적이 없었는데 학술서적 번역이 충실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에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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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light 2026-01-08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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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따라가는 여정 새창으로 보기 구매
17세기 중반 유럽의 법, 정치 사상가들이 (처음으로) 평등한 자연 상태라는 발상을 다루기 시작한다. 그것은 정부, 문자, 종교, 사유 재산 같은 서로를 구별해주는 중요한 수단들이 없는 사회를 말하는데, 유럽의 선교사들이 아메리카의 선주민들을 만나면서 시작된 변화였다.


당시 유럽은 끊임없이 이득을 추구하는 절대 권력 체제의 사회였다. 반면,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적어도 어떤 남녀도 타인에게 예속되지 않는 자율적 삶이 보장되고, 강제적 처벌이 없는 자유로운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평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유럽인들과 자유롭기 때문에 누구나 평등한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서로의 사회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이는 유럽 계몽주의 사상으로 이어진다.


아메리카 선주민 사회와 유럽 사회의 핵심적 차이는 부의 차이가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이었다. 선주민 사회에서는 부를 타인에 대한 권력으로 전환할 명백한 방법이 없는 반면, 유럽 사회는 소유에 대한 권력이 곧바로 인간 존재에 대한 권력으로 바뀔 수 있었다.


1703년에서 1751년 사이에 유럽 사회에 대한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비판은 유럽의 사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관습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 아메리카인들이 보였던 불쾌감과 혐오감은 수십 가지 언어로 수많은 대화를 거치며 차츰 진화하여, 권위, 건강, 사회적 책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의 본성에 대한 논의로 발전했다.


예수회 같은 일부는 자유의 원리를 직설적으로 비난했고, 식민지 정착인, 지식인, 본국의 독서 대중은 그것을 도발적이고 매력 있는 사회적 제안이라 보았다. 유럽의 제도에 대한 아메리카인들의 비평은 위력이 너무도 강해 기존의 지적, 사회적 합의를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최고의 무기로 선택했고, 위대한 계몽주의 철학자라면 거의 모두가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자유에 대한 논의도 점점 평등에 관한 논의로 변해갔다.


"현재 우리가 가진 자유, 평등, 민주주의의 이상이 서구 전통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사실 볼테르 같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놀랍게 느껴졌을 것이다. 앞으로 보겠지만, 그런 이상들을 선전했던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런 사상이 외국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31쪽)


신진 경제학자 A.R.J. 튀르고는 아메리카인들의 비평에 대항하여 사회 진화의 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사회적 진화가 항상 수렵에서 시작하여 목축으로 넘어가고, 그 다음에는 농경으로 갔다가 마지막에는 도시 상업 문명의 단계에 도달한다고 추론했다. 그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와 그의 동료들에 의해 인간 역사에 대한 일반 이론으로 가공되고, 얼마 안가서 유럽 사상가들과 대중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는다.


루소는 야만인들은 철학이 없고, 상상력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어리석은 야만인의 신화'를 퍼뜨렸다.19세기 제국주의자들은 이 전형성을 열렬하게 채택했고, 거기에 다윈 진화론과 우생학같은 '과학적인 정당화'의 외피를 다양하게 추가하였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한 것은 루소와 유럽 사회였다. 그들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반면 아메리카인들은 자의적인 권력과 지배가 어떤 것인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고, 그것을 피할 수 있도록 자신들의 사회를 설정했다.


아메리카인들에게 개인의 자유와 공산주의 사이에는 모순이 없었다. 공유와 필요로 운영되는 '기본적 공산주의'는 자유의 조건이었다. 굶주린 사람이나 집이 없는 사람은 일 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개인적 자유라는 유럽식 개념은 사유재산 개념에 필연적으로 묶여 있다. 이 결합은 고대 로마의 남성 가부장의 권력에서 유래한다. 이 관점에서 자유는 다른 인간에게 의존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제 1장을 읽었다. 놀라운 얘기다. 60년 가까운 삶을 살아오면서 처음 들은 얘기다. 비슷한 얘기로 미국의 연방제와 민주주의가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영향을 받아서 만든 제도라는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하우데노사우니', 다른 말로 '이로쿼이'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연맹 체제를 보고 배운 것이라고 한다.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이라는 책에 나온 내용이다.


근데 내가 더 놀란 것은 아메리카 선주민 사회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하기 싫은 것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설득 외에 강제나 형벌 같은 것은 없었다. 선주민 사회는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누렸기에 당연히 누구나 평등할 수 밖에 없었다. 70년대 존 웨인 서부극의 잔인하고 난폭한 '인디안'을 보면 자라온 나에게는 참 충격적인 이야기다.


헐리우드 미국 영웅주의에 물들어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헐리우드 미녀 배우들을 보면서 심미안을 키우고, 서구 중심주의 교육을 받아며 살아온 내가 서구 중심주의 세계관을 극복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명박이 '뼛속까지 친미, 친일'이라면, 나는 뼛속까지 친서구, 친백인의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태생부터 반골이고, 불공평에 알레르기 가까운 거부감이 있는 삐딱이였기에, 나는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비판하면서 나름으로는 서구 중심 주의라는 '세뇌'를, 최소한 논리적, 이성적으로는 극복해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의 의심과 회의와 비판은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라는 천부인권은 유럽의 계몽주의 사상에서 나왔다고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위선과 제국주의 수탈에 기인한 풍요를 기반으로 할 지라도. 근데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유, 평등, 박애의 뿌리는 아메리카 선주민에게 있다고 한다.


나는 자유와 평등의 구현이라는 민주주의는 실제 운영에 있어서 '합리성'을 기반으로 한다고 믿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신비주의 내지는 자연주의는 일종의 악세사리로 여기고 있었다. 마치 자본주의 중산층에게 소비되는 '체 게바라'같은. 그러면서 아메리카 선주민들을 그저 피해자로만 여기고 있었고, 그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이제 나는 그것이 나의 무지와 편견일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나는 여전히 무지하다. '불혹'을 거쳐도 여전히 미혹 하고, '지천명'을 지났어도 여전히 안개 속을 헤매고 있고, '이순'을 눈 앞에 두고도 여전히 단단한 고집의 알 속에 갇혀 있다. 날은 저물고 있는데 길은 멀다. 심지어 내가 가는 길이 무슨 길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책은 말한다. '뭔가 지독히 잘못되어버린' 이 세계가,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 빠졌는지 알기 위해, '선주민 비평가들의 안내를 받아 인간의 과거에 대한 증거에 새로운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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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 2025-08-04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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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리 조차 비판을 수용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하라리의 신작 넥서스에서 모든것의 새벽의 내용이 인용된 부분이 있다. 이 책의 내용과는 상관은 없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저서를 자신의 저서에 인용하는 하라리의 용기에도 칭찬을 하지 않을수 없는거 같다.
조기훈 2025-04-3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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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43] 모든 것의 새벽 새창으로 보기
제목 : 모든 것의 새벽


작가 : 데이비드 그레이버


출판사 : 김영사


읽은기간 : 2025/06/27 -2025/09/20






벽돌책답게 읽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처음 대여를 했는데 책이 두꺼워 다 못읽고 반납을 했다가 다시 빌려서 봤다.


제목이 매우 매력적인데 읽는데는 쉽지 않았다.


인류 역사 초기의 문명에 대한 이야기인데 흥미롭긴 하지만 머릿속으로 정리하기엔 쉽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기존 역사와 믿음과는 다른 내용이다 보니 더 수용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초기 문명시절에도 평등한사회에서 왕과 권력자가 생겼다는 단선적인 방향이 아니라, 평등한 사회, 민주사회, 왕 및 귀족사회등 다양한 사회가 파노라마처럼 함께 있었고, 단선적인 방향으로 역사가 흐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특히 그동안 많은 내용을 알지 못하는 아메리카의 초기 문명을 중심으로 내용이 설명이 되니 흥미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저자는 수십년 내에 이와 같은 문명발달사가 주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실제로 그렇게 될지 아니면 기존의 이론이 더 많은 증거를 보강해 강화될 지는 모르지만 초기 문명의 다양한 아규와 토론이 문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재미있지만 읽기는 쉽지 않았다.






p19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물질적 자원(토지, 칼로리, 생산수단)이 확실히 중요하다고는 해도 인간의 역사에서 궁극적인 질문은 그런 것을 얻을 기회가 평등한지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방법에 관한 결정에 도움을 줄 능력이 평등한가다.


p28 고대 무덤의 증거에서 얻어진 건강 관련 지표들이 발견되는 통계적 빈도를 근거로하여 인간 사회가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일반적 결론을 내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면 우리는 홉스와(그리고 핑커와도)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했을 것이다. 원래 인간이라는 종은 기르고 보살핌을 베푸는 종이며, 삶이 불쾌하고 잔혹하거나 짧아야 할 필연성이 전혀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p34 그녀는 야노마미족의 습격의 잔혹성을 묘사한다. 하지만 그는 1956년에 그녀가 야노마미족을 떠나 원래 가족을 찾아 나섰고 다시 서구 문명에서 살게 되었지만, 수시로 굶주리고 끊임없이 거부당하여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얼마 뒤 충분한 상황 인식에 근거하여 판단할 능력이 생기자 엘레나 발레로는 야노마미족과의 삶이 더 좋다고 판단하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돌아갔다.


p48 갑자기 유럽의 더 강력한 몇몇 왕국들이 지구상의 방대한 지역을 장악했고, 유럽 지성인들은 중국과 인도문명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사회적, 과학적, 정치적 이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런 세 이념의 홍수가 초래한 최종 결과가 계몽주의라 알려진 현상이다.


p51 우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점차 그들 나름으로 유럽의 제도에 대해 놀랄만큼 일관성 있는 비평을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비평이 유럽 자체에서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p53 토머스 홉스, 휘호 흐로티위스, 존 로크같은 저자들은 다들 출발점으로 삼는 성경의 서사를 건너뛰고, 다음의 질문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진 것이 인간성뿐이라면, 자연 상태의 인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p61 그들은 호의에 응답하며 읍과 마을에 거지가 한 명도 없도록 서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며 도와준다. 그리고 프랑스에 그토록 궁핍한 거지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그것을 아주 나쁜 일로 여겼고, 그것이 우리에게 자선의 마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를 심하게 비난했다.


p68 정치적 기준에서 프랑스인들과 아메리카인들이 토론한 것은 평등이 아니라 자유에 대해서였다.


p88 칸디아롱크의 의견은 독일어, 영어, 네델란드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고, 한 세기가 넘도록 여러 판본으로 계속 출판되었다.


p92 프랑스의 관찰자들은 거의 모든 아메리카 선주민들이 개인의 자율성과 행동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본다는 것-어떤 인간 존재가 다른 존재의 의지에 복종하는 일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운영하며, 그런 이유로 프랑스 사회를 본질적으로 파벌적 노에의 삶으로 본다는 것-을 명백히 깨달으면서 수많은 다른 방식으로 반응했다.


p113 칸디아롱크 같은 선주민 비평가들의 안내를 받아 인간의 과거에 대한 증거에 새로운 눈으로 접근해야 한다.


p121 우리가 고대 선조들의 사회적 조직에 대해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지극히 다양했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고대의 인간은 해안과 열대우림부터 산지, 사바나까지 무척 다양한 자연환경에서 살았다. 그들은 오늘날의 인간보다 훨씬, 훨씬 더 신체적으로 다양했다.


p124 사피엔트 패럭독스(유적적, 해부학적 현생 인류의 등장과 현생 인류와 관련된 복잡한 행동의 발달 또는 문명의 등장 사이에 왜 긴 시간 간극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가리킨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왜 후기 구석기 문화가 나온 이후 오랜 정체 상태를 거쳐 마지막 빙하시대가 끝날 때가 되어서야 신석기 문화가 등장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다-옮긴이)라고, 몇몇 연구자들은 심지어 인간 두뇌에 어떤 뒤늦은 변이가 있다고 가정하고 후기 구석기 혁명에서 보이는 외견상 탁월한 문화적 능력을 그것으로 설명하려고도 있지만, 그런 견해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p131 최근의 고고학적 연구가 낳은, 그래서 고고학자들로 하여금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에 대한 견해를 바꾸게 만든 또 하나의 예상치 못했던 상황은 거대 구조물의 출현이다. 유라시아에 있는 이런 구조물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튀르키예 남동부의 하란 평원을 바라보는 게르무스산맥에 위치한 석조 신전이다. 1990년대에 그 평원의 북쪽 경게를 조사하던 독일 고고학자들이 그 지방에서 괴베클리 테페라 부르는 장소에서 아주 오래된 고대 유적을 발견했다.


p142 어떤 인간 사회에나 회의론자와 비순응주의자가 있다고 믿을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차이점은 타인들이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있다.


p146 남비콰라족 족장을 그토록 유달리 눈에 익은 정치적 인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특성이었다. 공동의 이익과 개인적 야망 간의 규형을 맞추면서도 사실상 다른 두 가지 사회 시스템 사이를 이동하면서 유지하는 차분한 지혜라는 특성 말이다.


p151 거의 모든 사람은 아예 매장되지도 않는 와중에 일부 사람들이 풍부한 부장품과 함께 매장되는 상황이 문제되는 것이다.


p154 다른 말로 하면, 또 그 자체로 놀랍기는 하지만, 기우너전 3000년대에도 분명히 영국제도의 많은 지역에서 모종의 협동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스톤헨지가 지배 씨족의 고위급 설립자들에게 바쳐진 신전이라면-현재 몇몇 고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들 계보의 일원들이 중요한 역할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크다.


p158 로위가 관찰했듯이, 이런 명명백백한 독재는 엄격히 게절적이고 일시적인 수준에서만 작동했다. 사냥철이 -그리고 그 다음에 집단적으로 거행하는 선댄스 제의가- 끝나면 그런 독재는 그가 아나키스트적 조직 형태라 부른 것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면, 사회는 다시 한번 작고 기동력 있는 무리로 쪼개진다. 로위가 관찰한 내용은 놀랍다.


p162 그들은 교대디는 사회적 설정 사이에서 계속 왕복하고, 거대한 구조물을 지었다가 다시 허문다. 한 해의 특정한 시기에 전제주의적 구조가 등장하도록 허용한 다음 그것들을 해체한다. 그 모든 행동은 특정한 사회적 질서가 결코 고정되거나 불변적이지 ㅇ낳다는 것을 아는 데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p173 왜 위계 형식들을 구축했다가 해체하면서 수천 년을 보낸 뒤에, 호모 사피엔스-영장류 가운데 가장 영리하다고 하는-는 영구적이고 고치기 어려운 불평등 시스템이 뿌리를 내리게 허용했는가?


p178 동부 아프리카의 하드자족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마르투족 그룹들에 대한 연구는 현재의 채집인 사회가 수적으로는 작은 규모일지 몰라도 구성원들의 성격은 놀랄 만큼 국제적임을 보여준다.


p184 만약 모든 사회가 특정한 핵심 가치(부, 경건성, 미, 자유, 지식, 전투 기량)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다면, 평등 사회는 모든(혹은 거의 모든) 구성원이 최상의 가치가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그렇게 분배되어 있다고 동의하는 그런 사회다.


p193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적어도 최초의 질문을 다시 다듬어볼 수 있다. 진짜 수수께끼는 족장이나 심지어는 왕과 여왕이 처음 등장한 게 언제인가가 아니라, 그들을 웃음의 대상으로 치부하여 궁정에서 몰아내는 것이 언제부터 불가능해졌는가이다


pp198 살린스가 제시한 큰 그림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해둘 필요가 있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평균적으로 억압하에서 살아간 중세 농노도 아홉 시에서 다섯 시까지 근무하는 현대의 사무직이나 공장 노동자보다 적게 일했으며, 스톤헨지를 짓기 위해 큰 석판을 끌고 온 헤이즐넛 채집인과 유목민의 평균 작업 시간은 분명히 그보다 더 적었다.


p200 그들이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단순히 농사를 지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었다. 몽공고 넛이 사방에 천지인데 왜 식물을 심어야 하는가? 쿵족 한 명이 이렇게 말했다.


p203 인간은 농업에 손을 대기 오래전부터 수만 년 동안 상이한 삶의 방식을 실험해왔다. 차라리 변화의 전반적인 방향을 찾아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우리가 던진 질문에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어찌하여 한때는 우리의 사회적 관계의 본성이던 유연성과 자유를 잃고 영구적인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고착되었는가


p216 정착민이 야만적이고 손대 않은 황무지라고 여기는 땅은, 대개 알고 보면 선주민들이 소각 관리, 잡초 제거, 잡목림 식립, 비료 주기, 가지치기를 통해 또는 특정한 야생 식물군의 서식지를 넓히기 위해 하구 땅을 계단식으로 관리하고, 조개의 번식력을 높이기 위해 개펄에 대합 밭을 조성하며, 연어, 농어 등을 잡기 위한 보를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수천 년 동안 능동적으로 관리되어온 땅이었다.


p249 이런 특에 의거하여 볼 때, 재구성된 문화 지역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질문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질문이 된다. 그것은 농경을 수용할지 말지와 같은 결정이 단순히 칼로리상의 이익 계산이나 무작위적인 문화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치에 대한 질문, 인간이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그리고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여기는 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서로서로 어떤 관게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p284 그들이 그런 수탈이 자신들의 사회에서도 가능한 줄 알고 있었지만 거부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노예 보유는 자신들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훼손할 것이기 때문이었다(살이 찌고 게을러질 것이다)


p293 우리는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 없지만, 그런 사건이 발생하고 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것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생각하지 않기가 힘들어진다.


p307 김부타스는 이런 식의 논리를 제안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중동과 신석기시대의 유럽에 여성의 자율성과 제의적 우선권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르자 그녀의 생각 가운데 많은 부분이 에코페미니즙이나 뉴에이지 종교, 또 다른 수많은 사회운동의 현장에 수용되었다.


p336 중요시해야 할 지점을 농경과 길들임이 아니라 식물학이나 텃밭농사로 옮겨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단번에 신석기시대 생태학의 현실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그들은 야성적인 자연을 길들이거나 한 줌의 풀씨에서 최대한 많은 칼로리를 쥐어짜내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진정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마당의 텃밭을 만드는 일이었던 것 같다.


p349 오랫동안 농업혁명의 요람이라 여겨져온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사실은 구석기시대의 채집인에서 신석기시대 농부로의 전환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았다. 주로 야생 자원으로 먹고살던 단계에서 식량 생산에 근거하는 삶으로의 이행은 약 3,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리고 농업으로 인해 부가 더 불평등하게 집중될 가능성이 생겼다 하더라도, 이런 일은 거의 모든 경우에 그 가능성의 씨앗이 뿌려지고 나서 1,000년 뒤에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사이의 수백 년 동안, 사람들은 사실상 시험 삼아 짓는 농사, 취미 농사를 시도하고 있었고, 각자의 사회적 구조를 이리저리 전환하면서 생산 양식을 바꾸었다.


p366 농경의 안팎으로 이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 혹은 그 문턱에서 머무는 것은 결국 알고 보면 인간 종이 과거의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해온 일이었다. 그런 유동적인 생태적 설정-텃밭 경작, 호수나 오아이스 주변 범람 퇴수 농법, 소규모의 지형 관리(가령 불지르기, 가지치기, 계단식 밭 조성)와 반야생 상태에서 동물의 길들임과 사육과 광범위한 수렵, 어로, 채집 활동의 혼합-은 과거 세계 여러 지역 인간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p376 이런 반려동물은 흔히 사냥당해 잡아먹힌 동물의 새끼인 경우가 많다. 인간 양부모에게 받아들여지고, 어렸을 때는 먹이를 얻어먹고 보살핌을 받다가, 주인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된다. 이런 복종은 성체가 되어서도 지속된다. 반려동물은 잡아먹히지 않는다. 또 그 주인들이 새끼를 치는 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려동물들은 저마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며, 사람들은 반려동물들을 아이들처럼 키우며 애정의 대상이자 즐거움의 원천으로 여긴다.


p394 마치 현대의 채집인 사회가 근본적으로 다른 두 규모로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하나는 작고 친밀한 규모이며, 다른 것은 광대한 영토, 심지어는 대륙에까지 확장되는 규모다. 이는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인지과학의 시각에서 볼 때는 완벽하게 타당하다.


p411 주민들의 식물성 식단에는 밀, 보리, 공과 식물 외에 사과, 배, 체리, 자두, 도토리, 헤이즐넛, 살구도 포함되어 있다. 메가 유적의 거주민들은 농사를 짓고 삼림을 활용하는 동시에 붉은 사슴, 노루, 멧돼지를 사냥했다. 그것은 거대한 규모의 취미 농사였다. 이는 도시 인구가 엄청나게 다양한 야생 식품과 함께 소규모의 재배와 목축을 통해 자급자족하는 형태다.


p429 우루크가 유명해진 것은 그쓰기 덕분이다. 그곳은 우리가 문자 기록을 대량으로 갖게 된 최초의 도시이며, 이런 자료 가운데 일부는 왕의 지배가 들어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애석하게도, 그런 자료는 읽을 수는 있지만 해석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p449 지금까지 우리는 유라시아의 별개의 세 구역에서 도시가 처음 출현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았다. 각 경우에 우리는 군주제나 전사 엘리트가 존재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과, 그와 함께 각각의 도시가 공동체의 자치 제도를 개발했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p454 투웨이 강변의 스마오에서 이루어진 발굴은 이 모든 것과 함께 복잡한 공예와 전쟁의 증거를 풍부하게 제시했으며, 기원전 2000년경 있었던 전쟁, 대량 살해와 포로 매장의 증거도 보여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후대의 궁정 전통의 연감에서 상상되던 것보다 훨씬 더 활발한 정치적 장면을 발견한다.


p459 지금 우리는 도시 테오티후아칸이 멕시카족이 오기 전 여덟 세기 동안, 그리고 스페인인들이 오기 1,000년도 더 전에 전성기를 누렸음을 알고 있다. 그것이 세워진 시기는 기원전 100년경이며, 몰락한 것은 기원후 600년경이었다. 또 그 몇백 년 동안 테오티후아칸은 제국으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시기의 로마와 쉽게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장엄하고 수준높은 도시가 되었다.


p474 거대 구조물 건설의 모든 작업에는 노동력과 자원만이 아니라 인간 생명을 바치는 공양이 요구되었다. 건설의 중요한 단계마다 항상 제의적 살해의 고고학적 증거와 결부된다. 피라미드 두 기와 신전에서 나온 인간 유골을 합치면 희생자의 수는 수백에 이를 것이다. 그들의 시신은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그 위로 솟아오를 구조물의 평면도를 그리게 될 구덩이나 참호에 놓였다.


p482 이 설명에는 기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틀라스칼라에는 왕이 없었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의미로도 왕국의 연합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만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수상 경력이 있는 과학 분야의 언론인이지만, 16세기 중앙아메리카 역사에 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그는 2차 자료에 의존했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문제가 여기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p491 의회는 합리적인 논의와 장시간의 숙고를 통해, 필요하다면 몇 주일씩이라도 심의한 뒤에 결정을 내리고 합의를 추구했다.


p495 틀락스칼라 의회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개인적 카리스마나 경쟁자를 능가할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비하, 심지의 수치의 정신을 실행해야 한다. 그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복종하도록 요구받는다.


p525 저서 문화 성장의 설정에서 크로버는 인류의 전체 역사에서 예술, 철학, 과학, 인구의 관계를 살펴보았지만 어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또 그런 패턴은 같은 노선을 계속 밟아나간 더 최근의 몇몇 연구에서도 파악되지 못했다


p529 장래의 이집트학자들이 아무리 그것들을 높이 평가하게 될지라도, 중왕국 때 쓰인 시누헤 이야기 같은 문학의 우아함과 오시리스 숭배의 번영은 수천 명의 징집 병사, 강제 노역자, 처형된 소수민족 들에게는 전혀 위안을 주지 못했다. 그 이전의 암흑시대에 그들의 조부 세대는 대부분 아주 평화롭게 살았는데 말이다


p536 올멕에서도 그랬지만, 그 영향력의 놀랄 만큼 많은 부분이 행정적, 군사적 혹은 상업적 제도와 관련된 기술의 전파보다는 이미지의 형태-안데스의 경우, 작은 도기그릇과 개인 장신구와 직물에 그려져 분포되었다-로 발휘된 것으로 보인다.


p544 위대한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반 나체즈족은 매우 다른 삶을 살았던 것 같고, 그들의 표면상의 지배자의 소원을 기쁘게 무시하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그들은 독자적인 상업과 군사적 원정을 행하며, 때로는 위대한 태양이 보내는 신하들이나 친척들을 통해 전해진 명령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p548 지금까지 우리는 처음에 시작한 세 원칙-폭력, 지식, 카리스마-각각이 1차 체제에서 어떻게 하여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국가라 여기는 것과 닮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명백히 닮지 않은 정치 구조의 토대가 되는지 살펴보았다.


p553 수십 명, 수백 명, 때로는 수천 명에 달하는 인간 제물, 특별히 이 행사를 위해 살해된 인간 제물로 둘러싸인 왕의 무덤은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조적 도시국가인 우르에서 누비아의 케르마 정치집단, 중국의 상 왕조에 이르기까지 군주제가 결국 확립된 세계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 티베트, 일본, 러시아 초원에도 믿을만한 문장으로 된 묘사가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은 남아메리카의 모체와 와리 사회, 그리고 미시시피강 유역의 도시 카오키아에서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p569 사실상 왕이 내린 모든 결정은-전쟁이든, 동맹이든, 새 도시의 건설이든, 심지어 왕실의 사냥터를 확장하는 것 같은 외견상 사소해 보이는 문제든- 신과 조상 혼령, 즉 지고의 권위에 의해 인증되어야만 진행될 수 있었다.


p591 전쟁은 대체로 농사를 짓지 않는 계절에 하는 일이었다. 사제와 법관 역시 전업인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사실 이집트 고왕국, 중국의 상 왕조, 메소포타미아의 초기 왕조, 또는 고전기 아테네의 거의 모든 정부 기관을 맡은 직원들은 순환제로 일했고, 시골 영지의 관리자, 상인, 건설업자, 그 밖에 다른 직업인으로서 다른 삶을 살았다.


p597 이 책 전체에서 계속 다루었듯이, 세계 전역에서 작은 공동체들은 확대된 도덕적 공동체라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문명을 형성했다. 영속적인 왕, 관료나 상비군 없이도 그들은 수학적 지식, 달력과 관련한 지식의 성장을 촉진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야금술을 개발했고, 올리브, 포도, 대추야자를 재배했으며, 발효 빵과 발효 밀백주를 발명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옥수수를 기르고 식물에서 독과 약품, 향정신성 물질을 추출하는 법을 익혔다. 이 참된 의미에서의 문명은 직물과 광주리짜기에 적용된 주요 직물 기술과 도자기 제작용 물레, 석재 산업과 구슬 가공, 돛과 항해술 등등을 개발했다.


p604 학자들은 여사제 집단이 다스린 도시란 민족지학적 기록이나 역사적 기록에 전례가 없었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동일한 논리에 따라 남성이 지배하는데도 시각적 표상에서는 권위 있는 인물이 모두 여성으로 묘사된 왕국의 전례 역시 없었다고 똑같이 지적할 수 있다. 크레타에서는 뭔가 색다른 일이 분명히 일어나고 있었다


p631 투커의 지적에 따르면 씨족은 외교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 단순히 여행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외교적 임무의 의전을 정하고 전쟁을 막기 위한 보상을 지급하거나 포로를 받아들이는 일도 포함된다.


p651 체로키, 치카소, 촉토, 크리크, 세미놀레 부족을 말한다. 그런 부족들은 모두 참여자가 동등한 발언권을 가지며 합의 도출의 과정에 의해 운영되는 공동체 위원회가 다스리는 패턴을 보여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모두가 원로 사제들, 카스트, 군주의 흔적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세습적 지도부가 19세기까지도 남아 있으면서 더 민주적인 정부 형태를 선호하는 광범위한 추세에 거역하면서 최대한 버텼다.


p663 북아메리카의 사례는 전통적인 진화론 구도를 혼란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국가 형성의 덫에 한번 걸리게 되면 출구가 없다는 말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명확하게 입증했다.


p677 드농비유를 무찌른 뒤 기조나세는 군대를 해산하고 대위원회를 재구성하기 위해 새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으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녀가 다르게 행동하기로 선택했더라도 전례없는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p691 아이러니한 일인데, 앞에서 보았듯이 이제 그의 성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것은 현대 고고학의 결과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놀랐지만, 호카트가 예언한 대로, 구석시대 후번은 거창한 부와 명예를 대부분 죽었을 때 끌어모은 것으로 보이는 개인들을 위해 꼼꼼하게 연출된 장대한 매장의 증거를 정말로 남겼다.


p704 그들을 진정으로 경악하게 한 것은 채찍질하고, 끓는 물에 넣고, 낙인을 찍고, 살을 베는-때로는 요리하여 먹기까지 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웬다트족 마을이나 소도시의 거의 모두가, 여성들과 아이들까지도 거기에 참여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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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을꿈꾸며 2025-09-2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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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던지는 인류의 가능성 새창으로 보기
책 소개에 앞서, 책을 읽고 난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의 저자를 사랑하게 되었다(책의 작가들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타입이긴 하다만). 학문의 위대함을 일깨우면서, 실로 오랜만에 학구열에 불을 지피는 그런 책이다. 얼만큼이냐면 석사 학위를 하며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학계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후로 미뤄왔던 박사 과정 준비를 진지하게 재고할만큼이었다. 물론 이는 본인이 사회과학도 출신(?)이기 때문에 조금 더 과장된 것일 수 있다는 점.. 아무튼 묵직한 무게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눈부신 지적 자극의 세계에 풍덩 빠져 읽었다.






<모든 것의 새벽>이라는 제목과 동이 트는 듯한 표지와 다르게 이 책은 상당히 학술적이다(그렇지만 책의 두께가 이러한 제목과 표지의 서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상쇄한다. 매우 적절한 표지와 제목이라는 뜻). 실제로 이 책의 여러 챕터는 저자들이 이전에 발표했던 논문에서 내용을 가져온 것이라 한다.





책의 띠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문명과 진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을 송두리째 뒤엎는 문제작". 그리고 책의 뒷표지에는 리베카 솔닛의 추천사가 적혀있다: "모든 것을 근본적으로 개정하는 책. 역사와 미래를 상상하는 방식을 해방시킨다. 인류는 처음부터 창의적인 존재였으므로 어느 한 가지 방식으로만 행동하고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사실 위 두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니 위의 두 문장이 한 치의 과장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로, 두 데이비드가 공동으로 집필한 인류학 저서다. 그레이버는 현대의 사회와 경제, 정치 구조에 대한 비판적 연구로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아주 저명한 인류학자다. 특히나 인류학이 현실 사회의 변화를 위한 실천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창한 학자이다. 한편 웬그로는 고고학자로, 농경과 문자의 기원, 고대 예술, 초기 도시와 국가의 출현 등 인류 문명의 근원에 대한 주제로 연구해왔다고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이 두 학자가 기분 전환을 위해(???) '인류의 역사에 관한 대화'를 하다가 완성된 책이라고 한다.






저자들은 기존의 역사 서술자들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증거만을 선택적으로 활용해왔다고 비판한다. 특히 “소규모 사회는 평등하고, 대규모 사회는 반드시 왕, 대통령, 관료제를 갖춰야 한다”는 통념은 과학적 근거라기보다, 오히려 역사적 편견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온 ‘문명’, ‘역사’, ‘사회’에 대한 믿음들이 사실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고 외친다.





최근 축적된 방대한 증거들이 이러한 주장에 탄탄한 뒷받침을 이룬다. 고고학, 인류학, 그리고 그와 관련한 분야들에 최근 축적되어 온 증거들은, 인류가 "지난 3만 년의 세월 동안 어떻게 발전해왔는지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설명 방향을 가리킨다"(책의 14쪽).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1) 농경 등장 전의 인간 사회가 소규모의 평등한 무리로만 이뤄지지 않았으며, 2) 농경 출현 이전 수렵 채집인들의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했으며, 일종의 정치적이고도 사회적 실험이 다양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또한, 3) 농경의 발전으로부터 사유재산 제도가 생겨났고, 이로 인해 인류 사회가 지금과 같이 불평등해졌다는 명제 또한 근거가 없다.







저자들은 천 쪽이 넘는 이 벽돌책의 많은 부분을 ‘계층적 사회로의 선형적인 발전’, ‘문명을 위해 자유를 희생해야 했다는 믿음’, 그리고 ‘자본주의가 필연적인 사회 체계’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데 할애한다. 이는 결국, 계몽주의 철학에 뿌리를 둔 서구 중심적 세계관이 인류의 과거를 하나의 단일한 서사로 재단해온 결과라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풍부한 사례를 토대로 기존 문명론의 토대를 흔들고, 서구적 시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 서술 방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역사를 과연 ‘누가’, ‘무엇을 중심으로’ 써왔는지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가능성’에 대한 메시지다. 책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단선적이고 불가피한 경로를 따라 흘러온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의 새벽>은 우리가 지금까지 진리처럼 받아들여온 많은 통념들, 즉 '문명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유의 희생을 요구했고, 자본주의는 인간 사회의 최종적 체계라는 믿음'이 모두 재검토되어야 대상임을 시사한다.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역시 유일한 길이 아니며, 다른 삶의 방식과 사회 구조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힐링 도서’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 읽은 그 어떤 책보다도 나에게 힐링과 위안을 선사했다... 기존의 문명사 담론은 농업혁명이 인류 사회의 질서를 만들었고, 그 연장선에서 결국 자본주의가 탄생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결국 수렵채집 사회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인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절실히 감각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넘어서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 전의 수렵채집인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결론은 너무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다른 가능성은 없다’는 절망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다. 수렵채집 대 농경, 국가 대 무정부, 발전 대 정체라는 이분법을 넘어, 인간은 늘 다양한 사회적 실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얼마 전에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읽기 시작했다. 과학적 회의주의 학자로 유명한 마이클 셔머가 편집장인 회의주의 과학 잡지 '스켑틱'에서 10주년을 기념하여 베스트 에세이를 엮은 책이다. 이 책에서 마이클 셔머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나와 있다. "모든 회의주의에는 긍정적인 태도가 깃들어 있다. 회의주의적 논변에 인류의 모든 지식을 뒤집어엎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전적인 확신 같은 것 말이다."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하고 있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스켑틱 10주년 베스트 에세이)> 중 스켑틱 편집장인 마이클 셔머의 서문 중






마이클 셔머에 따르면 회의주의 그 자체는 지식을 긍정한다. 하지만 단순히 불합리한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는 진보를 이룰 수 없다. 거기에는 반드시 ‘그다음을 이끄는 뭔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상상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바로 그 “그다음”을 상상하게 만든다. 부정과 회의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가능한 사회에 대한 상상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이 책은 올해에 읽은 최고의 책이 될 것 같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이 가닿길 진심으로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계절적인 이합집산의 패턴은 또 다른 물음을 던진다. 스톤헨지에 왕과 여왕이 있었다면 정확히 어떤 종류의 왕과 여왕이었을까? 어쨌 든 그들의 긍정과 왕국은 한 해에 두어 달 동안만 존재했으며, 다른 시 간에는 견과류 채집인들과 가축 몰이꾼들의 작은 공동체로 흩어졌을 것이다. 노동력을 소집하고, 식량 자원을 저장하며 수많은 상시적 사용인들을 먹여 살릴 수단을 가졌는데도,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왕족은 어떤 왕족일까? - P155


신석기시대 농경의 시작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분명 그것을 현대가 아니라 구석기시대의 시점에서 보아야 하고, 어떤 부르주아 영장류 인간이라는 상상 속 종족의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신화 창조의 영역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버린다. - P325


- 접기
hj 2025-07-01 공감(0)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