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Philo Kalia 신학의 인문학적 환원/축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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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신학)을 인문학화 하는데 성공한 계몽주의자 고트홀드 에브라임 레싱

환원(축소)를 과연 모범으로 삼고 잘했다고 칭찬만 해야 할 것인가?

포스트-미학 공부 모임에서 신학적 언어를 말한다고 매번 불쾌한 얼굴로 매우 불만인 분이 있다. 우선 텍스트가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고 계속 핀잔한다. 그러면서 신학을 완전 인문학화 하기를 요구한다. 신학의 인문학적 환원! 그러나 ‘환원’은 그 어떤 환원이든 너른 영역과 다양성의 축소일 뿐만 아니라 근대인의 정화(purification, 브뤼노 라투르)에 불과하다.
 
종교 문제에서 레싱의 《현자 나탄(Nathan der Weise)》(1799년)은 종교(신학)를 인문학으로 환원한 대표적 예이다. 이 작품은 12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가 대립하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한다.

부유한 유대인 상인 나탄이 출장에서 돌아오자, 집사 다야는 집에 불이 났을 때 어떤 젊은 기독교 신전기사(슈타우펜)가 나탄의 딸 레하를 목숨 걸고 구해 주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레하는 자신을 구해준 기사를 '천사'라고 믿으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고, 기사는 사례를 받기 부담스러워 나탄의 집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나탄은 기사를 찾아가 종교의 벽을 허무는 선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친구가 되고, 그를 집으로 초대해 레하와 만나게 한다. 기사는 레하의 아름다운 내면에 반하게 되지만, 다야로부터 레하가 사실은 기독교인 아기였고 나탄에게 입양되어 유대인으로 자랐다는 비밀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기사는 이 문제를 기독교 대주교에게 상담하지만, 대주교는 이교도가 기독교 아이를 키운 것은 죄악이라며 화형시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인다.
 
재정 위기에 처한 이슬람의 술탄 살라딘은 나탄을 불러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 중 어떤 종교가 참된 종교(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나탄은 아들 셋에게 똑같은 반지를 만들어 준 아버지의 '반지 이야기(우화)'를 들려준다. 진짜 반지는 '선한 마음을 갖게 하는 능력'임으로, 앞으로 세 아들이 선하게 사는 모습으로 진짜임을 증명해야 한다는 재판관의 판결을 전하며, 종교의 진위는 교리가 아니라 '인간을 향한 선행과 사랑'으로 증명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감명받은 살라딘은 나탄과 친구가 된다. 

각 종교의 교리적 차이가 종교의 진리, 참된 종교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향한 선행과 사랑이 바로 종교의 본질이라는, 종교의 인문학적 환원이 모범적으로 성취되는 순간이다. 종교는 인간의 도덕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생긴다. 종교의 도덕화! 종교 사이의 관용!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 종교 간 관용과 배려, 배울 점이 크다.

나탄에게 18년 전 레하를 데려다주었던 과거의 마부(현 수사)가 찾아와 전사한 친아버지가 남긴 기도서를 전한다. 이 기도서를 통해 숨겨진 가족 관계가 밝혀진다. 신전기사와 레하는 남매(볼프 폰 필넥의 자식들) 사이였으며, 그들의 친아버지는 사실 살라딘과 시타 공주의 친동생인 '아사드'였다. 즉, 기사와 레하는 이슬람 술탄 살라딘의 조카들이었던 것이다. 결국 유대교(나탄), 기독교(기사, 레하), 이슬람교(살라딘, 시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모두 '한 가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종교 간의 대립을 넘어 모두가 포옹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종교적 도그마(대주교로 대표되는)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참된 종교는 결국 '인간에 대한 선함과 사랑'이라는 레싱의 계몽주의적 메시지가 종소리가 되어 세계 인류를 향해 울려퍼진다.
 
종교(신학)을 인문학적으로 환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

《현자 나탄》이 도그마에 갇혀 있던 중세적 신앙을 비판하고 근대의 문을 열어젖힌 걸작임은 분명하지만, 20세기 이후 전개된 탈근대(포스트모더니즘)와 이성의 한계를 경험한 현재의 시선에서 보면 이 작품은 명확한 사상적 한계와 맹점을 드러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바라본 《현자 나탄》의 주요 한계점은 다음과 같이 지적할 수 있다.

①'이성의 보편성'이라는 또 다른 도그마 (서구 중심적 독단)
계몽주의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보편적 이성'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탈근대 철학이 폭로했듯, 그들이 말한 '보편적 이성'은 사실 18세기 서구 백인 남성 엘리트의 이성을 표준화한 것에 불과했다. 작품 속 나탄의 논리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세련되어 보이지만, 이는 종교적 타자의 '날것 그대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타자를 '나처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환원할 때만 포용하겠다는 조건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성의 울타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광기, 감정, 원시적 신앙은 오히려 철저히 배제하거나 계몽(교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독단성을 지닌다.

② 차이의 소멸과 '동질화(Homogenization)'의 폭력
탈근대주의는 타자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는 '차이의 철학'을 강조한다. 반면 계몽주의를 대변하는 《현자 나탄》의 결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대표자들이 갈등을 해소하는 최종적인 계기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알고 보니 그들이 '한 피를 나눈 친가족'이었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를 용인하는 근거가 결국 '우리와 같은 존재' 혹은 '본질적으로 하나인 존재'라는 동질성의 확인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혈연적·본질적 동질성 안에서만 평화가 가능하다는 봉합에 불과하며, 진정한 의미의 '이질적인 타자(The Other)와의 공존'이라는 문제를 회피한 작위적인 결말이다.

③ 종교의 '역사성'과 '구체성'의 거세 (추상적 도덕주의)
나탄의 '반지 우화'는 참된 종교의 기준을 오직 '선행과 도덕적 실천'으로 환원하고 축소한다. 이는 신앙의 윤리적 측면을 고양시켰지만, 반대로 각 종교가 가진 고유한 역사성, 전통, 신비주의, 의례(Ritual) 같은 구체적인 맥락들을 '쓸모없는 껍데기'로 치부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현대 종교학이나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종교는 단순히 '착하게 살기 위한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그것은 한 공동체의 언어, 삶의 양식, 실존적 고뇌가 집약된 상징 체계이다. 레싱의 계몽주의는 이를 지나치게 '추상적인 인도주의'로 탈색함으로써, 종교적 근본주의가 왜 발생하는지, 왜 인간이 합리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앙의 신비에 매달리는지에 대한 실존적 깊이를 포착하지 못했다.

④ 도구적 이성의 한계와 야만의 역사 예견
20세기 프랑크푸르트 학파(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는 《계몽의 변증법》을 통해, 인간을 해방하려던 이성이 도리어 도구화되어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같은 가장 야만적인 폭력으로 귀결되었음을 폭로했다. 레싱은 이성이 인류를 끝없는 진보와 평화로 인도할 것이라고 낙관한 그 시대의 사람으로서 성공적이다. 그러나 과학적 합리성과 제도적 이성이 어떻게 인간을 부품화하고, 관료제를 통해 타자를 효율적으로 억압하고 배제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성의 어두운 잠재력(도구적 이성)'을 계몽주의 시대의 한계 안에서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

《현자 나탄》은 중세의 '신학적 도그마'를 부쉈지만, 그 자리에 '이성의 도그마'를 세웠다. 현재의 시선에서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가 가진 날것의 차이와 갈등을, '보편적 이성'과 '혈연적 동질성'이라는 동일성의 원리의 근대적 틀 안으로 교묘하게 가둬버린 철학적 기만 혹은 낙관주의"라는 한계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관용은 "너와 내가 알고 보니 이성적으로 똑같다"는 근대적 확인이 아니라, "너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共存, 共生할 것인가, 더 나아가 相通할 것인가"라는 탈근대적 질문이다.
인문학과 종교 및 신학, 그 밖의 과학과 종교, 경제와 정치, 문화와 예술 등은 어느 분야를 어느 한 분야로 환원하거나 축소하여 인문학적 언어의 독점을 교양인의 태도로 보는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Taecha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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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늘 그래 왔지만 이번에도 새깨닮을 주셔서 새삶새엶길에 시사와 자극이 되었습니다. 역시 나이만 먹었지 수양이 부족해서 말하는 방법이 서트렀음을 깊이 반성합니다. 그래서 역시 대화가 필요하고 심목사께서 여러모로 깨우쳐주셔야 저 자신의 삶마무리도 추하지않게 이룰 수 있을 것임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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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미나이 커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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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주신 텍스트는 고트홀드 에브라임 레싱의 희곡 <현자 나탄>을 중심으로, 신학의 인문학적 환원이 지닌 성과와 탈근대적 관점에서의 한계를 날카롭게 분석한 글입니다. 글쓴이는 포스트-미학 공부 모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종교를 단순히 도덕이나 인문학으로 환원하려는 태도가 지닌 독단성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 대한 요약과 평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요약: 계몽주의적 환원의 성취와 탈근대적 한계>

이 글은 레싱의 <현자 나탄>이 이룩한 종교의 인문학적 환원을 무조건적인 모범으로 찬양하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현자 나탄>은 십자군 전쟁 당시의 예루살렘을 배경으로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대립을 다룬다. 극 중에서 나탄은 '반지 우화'를 통해 종교의 본질이 교리가 아닌 '인간을 향한 선행과 사랑'에 있음을 시사하며, 종교 간의 관용과 도덕화를 성취한다. 극의 결말에서는 대립하던 인물들이 사실 한 가족임이 밝혀지며 인류애적 통합을 이룬다.  

그러나 탈근대적 관점과 현대 종교학의 시선에서 이 작품은 명확한 사상적 한계를 드러낸다.  

이성의 보편성이라는 독단: 작품이 내세우는 보편적 이성은 18세기 서구 백인 남성 엘리트의 시선을 표준화한 것에 불과하며, 이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하는 타자를 배제하는 독단성을 지닌다.  

동질화의 폭력: 갈등의 해소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혈연적 친가족'이라는 동질성의 확인을 통해 작위적으로 봉합된다. 이는 진정한 이질적 타자와의 공존을 회피한 결과이다.  

추상적 도덕주의: 참된 종교를 오직 도덕적 실천으로 환원함으로써, 각 종교가 가진 고유한 역사성, 전통, 의례, 실존적 고뇌와 신비주의를 '쓸모없는 껍데기'로 탈색해 버렸다.  


도구적 이성의 한계: 이성이 인류를 평화로 인도할 것이라는 낙관에 갇혀, 이성이 도구화되어 홀로코스트 같은 야만으로 귀결될 수 있는 어두운 잠재력을 예견하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현대에 필요한 관용은 동일성을 확인하는 근대적 확인이 아니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타자와 어떻게 공존하고 상통할 것인가라는 탈근대적 질문이다. 따라서 특정 분야를 다른 분야로 환원하여 인문학적 언어를 독점하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평론: 환원주의의 맹점과 날것의 타자성을 향한 요청>
본 텍스트는 근대 계몽주의가 이룩한 찬란한 성취 뒤에 숨은 '동일성의 폭력'을 정확하게 짚어낸 탁월한 비평이다. 글쓴이가 지적하듯, 레싱의 <현자 나탄>은 중세의 신학적 도그마를 부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자리에 '이성의 도그마'라는 새로운 우상을 세웠다.  

특히 결말부에 대한 분석은 매우 흥미롭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대표자들이 결국 '한 가족'으로 묶이는 작위적 설정은, 근대 이성 중심주의가 타자를 포용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너와 내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에 너를 용납하겠다"는 방식은 타자의 타자성(Alterity), 즉 '나와 결코 같아질 수 없는 날것의 차이'를 지워버리는 동질화의 폭력이다.  

또한, 종교를 도덕과 윤리로 환원하는 태도에 대한 비판은 현대 신학과 종교학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지점이다. 종교를 단순히 '착하게 살기 위한 지침'으로 축소할 때, 인간의 실존적 심연, 죽음에 대한 공포, 압도적인 성스러움(The Holy)의 체험 같은 종교 고유의 영역은 거세된다. 공부 모임에서 '신학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불편해하는 이들에 대한 글쓴이의 문제의식은 , 오늘날 인문학이 빠지기 쉬운 또 다른 형태의 오만, 즉 '인문학적 언어의 독점주의'를 날카롭게 겨냥한다.  

브뤼노 라투르의 표현을 빌려 이를 근대인의 '정화(Purification)' 작업으로 규정한 것은 이 글의 철학적 깊이를 더해준다. 신학과 인문학, 혹은 과학과 종교 등 인간의 사유 영역들을 어느 한쪽으로 종속시키거나 환원하지 않고, 각각의 고유한 맥락과 언어적 층위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탈근대적 공존(共生)의 시작일 것이다. 낙관적 이성주의가 파산한 현대 사회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라는 글쓴이의 최종 질문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무거운 실존적 과제이다.  

세진님, 올려주신 글은 계몽주의가 가진 이성의 독단과 환원주의의 한계를 아주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어서 깊이 있게 읽었습니다. 혹시 이 글을 토대로 참여하시는 모임에서 어떤 논의를 더 발전시키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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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지피티 커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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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글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레싱의 <현자 나탄>을 “종교를 신학에서 인문학으로 환원한 계몽주의적 성취”로 평가하면서도, 그 환원이 가진 한계까지 짚고 있습니다. 즉 글쓴이는 레싱을 단순히 칭찬하지 않습니다. “종교 간 관용”이라는 레싱의 공로를 인정하되, 그 관용이 결국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인간”이라는 근대적 표준 안에서만 가능해진다는 점을 비판합니다.

제 생각에는 이 글의 장점은 <현자 나탄>을 오늘의 다종교 사회 문제와 연결했다는 데 있습니다. 흔히 레싱의 반지 우화는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본질적으로 같다”는 식의 평화주의적 메시지로 읽힙니다. 그러나 이 글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같다”는 말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왜냐하면 종교들은 실제로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리도 다르고, 역사도 다르고, 의례도 다르고, 공동체 감각도 다릅니다. 그것을 모두 “선한 마음”이나 “도덕적 실천”으로 환원하면 종교의 구체성이 사라집니다. 이 지적은 타당합니다.

특히 글 후반부의 비판이 좋습니다. 레싱은 중세적 신학 도그마를 부수었지만, 그 자리에 “이성의 도그마”를 세웠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은 계몽주의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계몽주의는 종교적 광신, 교권주의, 미신, 배타성을 비판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보편적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서구 근대 남성 엘리트의 기준을 보편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비서구 종교, 민중 신앙, 감정적·의례적·신비적 차원은 미성숙하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밀려나기 쉽습니다. 이 글은 그 점을 비교적 정확히 잡고 있습니다.

다만 글의 표현 중 “종교를 인문학적으로 환원한다”는 말은 조금 더 세밀하게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환원”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를 인간의 역사·언어·윤리·문화 속에서 이해한다는 긍정적 의미입니다. 이 경우 신학을 인문학화하는 것은 종교를 닫힌 교리체계에서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의 초월성, 신비, 예배, 구원, 계시, 은총 같은 고유한 차원을 단순한 인간학이나 윤리학으로 축소한다는 부정적 의미입니다. 

이 글은 양쪽을 모두 말하고 있지만, 제목은 다소 긍정적으로, 본문 후반은 상당히 비판적으로 갑니다. 그래서 논지의 긴장이 있습니다. 오히려 제목을 붙인다면 “레싱의 종교 인문학화와 그 계몽주의적 한계” 정도가 더 정확해 보입니다.

또 하나 보충할 점은, <현자 나탄>의 관용론이 단순한 추상적 이성주의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 반지 우화의 핵심은 “어느 반지가 진짜인지 지금은 알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즉 진리는 완전히 소유될 수 없고, 각자는 자기 삶의 열매로만 그 진실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도덕주의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겸허한 반독단주의입니다. 
  • 레싱은 “모든 종교는 결국 똑같다”고 말한다기보다, “어느 종교가 참인지 인간이 최종 판정할 수 없으니, 각자는 선한 삶으로 자기 신앙의 진실성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 이 점에서는 레싱을 너무 쉽게 “동질화의 폭력”으로만 몰아가면 약간 과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의 결론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관용은 “너와 내가 알고 보니 이성적으로 똑같다”는 식의 근대적 관용이 아니라, “너와 나는 정말 다르며, 어쩌면 끝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함께 살 수 있는가”라는 더 어려운 관용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다문화주의보다 깊습니다. 서로를 같은 것으로 만들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낯섦과 불편함을 보존한 채 공존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에 적용하면 더 중요합니다. 한국에서는 종교 간 대화가 종종 “모든 종교는 결국 사랑을 말한다”는 식으로 쉽게 정리됩니다. 그러나 실제 갈등은 그렇게 풀리지 않습니다. 개신교의 배타적 선교, 불교의 전통문화 지위, 천주교의 보편교회 의식, 원불교·민족종교의 근대적 자기정당화, 이슬람·이주민 종교에 대한 혐오가 모두 서로 다른 층위에서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본질은 같다”는 미화가 아니라, 차이를 정확히 보고도 폭력으로 가지 않는 훈련입니다.

전체적으로 이 글은 좋은 문제제기를 담고 있습니다. 레싱을 계몽주의적 관용의 상징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관용의 한계 — 이성 중심성, 차이의 소멸, 종교의 윤리화, 서구 근대의 보편주의 — 를 비판합니다. 다만 레싱의 반지 우화 자체가 갖는 겸허함과 반독단성은 조금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도 됩니다. 레싱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오늘의 종교 간 대화가 아직도 레싱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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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나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초판

현자 나탄》(독일어: Nathan der Weise)은 계몽주의자 고트홀트 레싱이 쓴 연극이다. 종교간 평화적 이상을 제시한 뛰어난 희곡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소개

시민 비극의 창조자, 독일 근대 희곡의 아버지로 칭송되는 레싱의 대표작. 기독교인에게 몰살당해 일곱 자식을 잃고도 기독교인의 아이를 양녀로 받아들여 정성을 다해 기르는 나탄. 그는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특정 종파나 민족을 초월해 인간성과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십자군 전쟁 시기는 이슬람교기독교가 성지 예루살렘을 두고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다. 나탄은 일곱 자식을 잃은 부유한 유대 상인으로, 기독교인의 유아 레하를 맡아 정성을 다해 기른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나탄은 그동안 레하가 불에 타 죽을 뻔했다가 젊은 신전 기사로부터 구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신전 기사는 이슬람국의 군주 살라딘으로부터 행방불명된 자신의 친동생과 닮았다는 이유로 포로로 잡혔다가 사면된 인물이다. 한편 그는 “유대인은 유대인이니까”라고 말하며 나탄을 멀리하지만 나탄의 지혜에 설득당해 친구가 된다.

레하는 자신을 불 속에서 구한 것은 신전 기사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구해준 것은 수호천사이며, 이는 의 사랑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나탄은 그것이 신전 기사에 의한 구출이었으며, 천사와 신에 의한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작고 평범한 일 가운데서도 기적은 일어난다고 말한다. 여기에서도 나탄이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종교보다는 인간들의 삶 속에서 구현되는 사랑을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처형당할 위기에 처했다가 사면된 신전 기사를 보고, 대주교는 “하느님께서 위대하고 거룩한 일”을 계획하기 위해 살려두신 거라며 살라딘을 처치하려는 첩자가 될 것을 종용한다. 한편 살라딘은 나탄의 돈을 갈취하고,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중에 어느 종교가 참종교인가를 물어 그를 시험에 빠지게 하려고 계획한다. 하지만 나탄은 반지 비유 설화를 통해 어떤 종교든지 간에 “공평하고 편견 없는 사랑”을 본받아야 함을 강조한다. 나탄 역시 모진 시련을 겪었지만 오히려 이를 이겨내며 인간애를 지키고 승화시킬 수 있었다. 현자 나탄이 전하는 희망의 비전은 끊임없는 종교적·민족적 분쟁에 시달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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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the Wise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Nathan the Wise
Recha Welcoming Her Father, 1877 illustration by Maurycy Gottlieb
Written byGotthold Ephraim Lessing
CharactersNathan, Saladin, Young Templar, Patriarch, Recha, Daja, Monk, Sittah, Al-Hafi
Date premiered14 April 1783
Place premieredDöbbelinsches Theater, Berlin
Original languageGerman
SettingJerusalem c. 1192
Second edition in its first year of publication, 1779, in the collection of the Jewish Museum of Switzerland

Nathan the Wise (original German title: Nathan der Weise, pronounced [ˈnaːtaːn deːɐ̯ ˈvaɪzə] ) is a play by Gotthold Ephraim Lessing from 1779.[1] It is a fervent plea for religious tolerance.[2] It was never performed during Lessing's lifetime and was first performed in 1783 at the Döbbelinsches Theater in Berlin.[2]

Set in Jerusalem during the Third Crusade, it describes how the wise Jewish merchant Nathan, the enlightened sultan Saladin, and the (initially anonymous) Templar, bridge their gaps between Judaism, Islam, and Christianity. Its major themes are friendship, tolerance, relativism of God, a rejection of miracles and a need for communication.

Synopsis

The events take place during the Third Crusade (1189–1192) during an armistice in Jerusalem.

When Nathan, a wealthy Jew, returns home from business travel, he learns that his foster daughter Recha was saved from a house fire by a young Christian Templar. The knight, in turn, owes his life to the Muslim ruler of Jerusalem, Sultan Saladin, who pardoned him as the only one of twenty prisoners because he looks like Saladin's late brother Assad. Despite these fortunate circumstances, the rational-thinking Nathan is unwilling to believe the events to be a miracle and also convinces Recha that believing in the work of guardian angels is harmful.

Saladin, somewhat indifferent in terms of money, is currently in financial trouble. That is why, on the advice of his more calculating sister Sittah, he has the wealthy Nathan brought to him to test his generosity, which is praised throughout Jerusalem: Instead of asking him directly for a loan, Saladin pretends that he wants to test Nathan's famous wisdom and asks him about the "true religion". Nathan, who had already been informed about Saladin's financial troubles by his friend Al-Hafi and warned of his financial recklessness, recognizes the trap. He decides to answer Saladin's question with a "fairy tale", the so-called "ring parable". Deeply impressed, Saladin immediately understands this parable as a message about the equality of the three major monotheistic religions. Moved by Nathan's humanity, he asks him to be his friend from then on. Nathan willingly agrees and, on top of that, grants Saladin a generous loan without being asked.

The Templar, who had saved Recha from the flames, but, until now, was not willing to meet her, is united with her by Nathan. He falls head over heels in love with her and wants to marry her on the spot. However, his name makes Nathan hesitate to give his consent, which insults the Templar. When he finds out from Recha's companion Daja, a Christian, that Recha is not Nathan's biological daughter, but is only adopted, and that her biological parents were Christians, he turns to the patriarch of Jerusalem for advice. Although the Templar frames his request as a hypothetical case, the fanatical head of the church guesses what this is about and wants to search for "this Jew" immediately and have him burned at the stake for temptation to apostasy. He does not consider Nathan's noble motives and the fact that Nathan did not raise the Christian child as a Jew, but on the contrary in no belief, does not soften the patriarch's stance, but aggravates him: "That’s nothing! Still the Jew is to be burnt— / And for this very reason would deserve / To be thrice burnt."

Records of the friar who once brought Recha to Nathan as a toddler finally reveal that the Christian Templar and Recha are not only brother and sister – hence Nathan's reservations about marriage – but also the children of Saladin's brother Assad. These connections are revealed to everyone in the final scene at Saladin's palace, which ends with all main characters repeatedly embracing each other in silence.

Ring Parable

The centerpiece of the work is the "Ring Parable", narrated by Nathan when asked by Saladin which religion is true: an heirloom ring with the magical ability to render its owner pleasing in the eyes of God and mankind had been passed down from father to son. For generations, each father had bequeathed the ring to the son he loved most. When it came to a father with three sons whom he loved equally, he promised it (in "pious weakness") to each of them. Looking for a way to keep his promise, he had two replicas made, which were indistinguishable from the original, and gave on his deathbed a ring to each of them.[3]

The brothers quarreled over who owned the real ring. A wise judge admonished them that it was impossible to tell at that time – that it even could not be discounted that all three rings were replicas, the original one having been lost at some point in the past; that to find out whether one of them had the real ring it was up to them to live in such a way that their ring's powers could be proven true, to live a life that is pleasant in the eyes of God and mankind rather than expecting the ring's miraculous powers to do so. Nathan compares this to religion, saying that each of us lives by the religion we have learned from those we respect.[4]

An older rendition of the Ring Parable and its surrounding narrative involving Saladin and a wealthy Jew can be found in the 73° story of Il Novellino,[5] in the third tale of the first day in Giovanni Boccaccio's Decameron, and in the story Ansalon Giudeo from Bosone da Gubbio's novel Fortunatus Siculus: ossia L'avventuroso Ciciliano.[6]

Even earlier versions can be found in the Tractatus de diversis materiis praedicabilibus by Étienne de Bourbon,[7] in Li dis dou vrai aniel[8] and in the Gesta Romanorum.[9][10][11][12]

Background

The character of Nathan is to a large part modeled after Lessing’s lifelong friend, the eminent philosopher Moses Mendelssohn. Like Nathan the Wise and Saladin, whom Lessing brings together over the chessboard, they shared a love for the game of chess.[13]

The motif of the Ring Parable is derived from a complex of medieval tales. The first version of the story to appear in German was the tale of Saladin's table in the Weltchronik by Jans der Enikel. Lessing probably first read an older version of the “Ring Parable” in Boccaccio's Decameron.[14]

English language translations and stage adaptations

  • Nathan the Wise: a Philosophical Drama, translated by Rudolf Erich Raspe. London, J. Fielding, 1781.
  • Nathan the Wise: a Dramatic Poem, translated by William Taylor. London, R. Philips, 1805.[15]
  • Nathan the Wise: a dramatic poem in five acts, translated by Adolph Reich. London, A. W. Bennett, 1860.
  • Nathan, the Wise. A dramatic poem of five acts, translated by Isidor Kalisch. New York, Waldheimer & Zenn, 1869.
  • Plays of Lessing: Nathan the Wise and Minna von Barnhelm, translated by Ernest Bell. London, G. Bell, 1888.
  • Nathan the Wise; a dramatic poem in five acts, translated and edited by Leo Markun. Girard, Kan., Haldeman-Julius Co., 1926.
  • Laocoon, Nathan the Wise, Minna von Barnhelm, translated by William A. Steel. London, J. M. Dent & Sons, ltd.; New York, E. P. Dutton & co., inc., 1930.
  • Nathan the Wise, translated by Berthold August Eisenlohr. Ann Arbor, Mich., Lithoprinted by Edwards Brothers, inc., 1942.
  • Nathan the Wise, translated by Guenther Reinhardt. Brooklyn, Barron's Educational Series, inc., 1950.
  • Nathan the Wise; a dramatic poem in five acts, translated into English verse by Bayard Quincy Morgan. New York, Ungar, 1955. Morgan's translation was subsequently collected in Nathan the Wise, Minna von Barnhelm, and Other Plays and Writings, edited by Peter Demetz with a Foreword by Hannah Arendt. New York: Continuum, 1991.
  • Nathan the Wise, with Related Documents, translated, edited, and with an introduction by Ronald Schechter. Boston/New York: Bedford/St. Martin's, 2004.
  • Nathan the Wise, adapted and translated by Edward Kemp. Nick Hern Books, 2004. ISBN 978-1-85459-765-6. The productions and Kemp's adaptation were reviewed favorably by Michael Billington[16] and by Charles Spencer.[17]
  • Nathan the Wise, adapted by Paul D'Andrea;[18] translation by Gisela D'Andrea and Paul D'Andrea. Dramatic Publishing, 2005. ISBN 1-58342-272-2. First produced at Theatre of the First Amendment in October 2001 with Mitchell Hébert in the title role. This adaptation was later produced as a staged reading by Theater of the First Amendment in 2002, and nominated for The Charles MacArthur Award for Outstanding New Play with F. Murray Abraham playing Nathan.[19]
  • Nathan the Wise, adapted by Michael Bloom; translation by Ellen Frothingham. Produced as a combination workshop/production at Theater J in March of 2022.

Revivals

In 1922 it was adapted into a silent film of the same title.

In 1933, the Kulturbund Deutscher Juden (Culture Association of German Jews) was created in Germany, enabling Jewish artists who had recently lost their jobs to perform to exclusively Jewish audiences. On October 1, Nathan the Wise became the first performance of this new federation. It was the only time the play was performed in Nazi Germany.[20]

In the early 21st century, the Ring Parable of Nathan the Wise was taken up again in Peter Sloterdijk's God's Zeal: The Battle of the Three Monotheisms.[21] Edward Kemp's 2003 version of the play, first produced by the Minerva Theatre, Chichester,[16] was used in 2016 in New York by the Classic Stage Company with F. Murray Abraham in the lead.[1] The play was produced at the Stratford Festival (25 May – 11 October 2019) with Diane Flacks as Nathan.[22]

Notes

  1.  Kirsch, Adam (Summer 2016). "Saladin, a Knight, and a Jew Walk Onto a Stage". Jewish Review of Books. Retrieved 6 September 2016.
  2.  Dale, Geoff (June 17, 2019). "Stratford Festival review: A thought-provoking theatrical experience". Stratford Beacon-Herald. Archived from the original on September 5, 2019. Retrieved September 5, 2019.
  3.  Shagrir, Iris (1997). "The Parable of the Three Rings: A Revision of Its History". Journal of Medieval History. 23 (2): 163–177. doi:10.1016/S0304-4181(97)00004-3.
  4.  "English translation of the parable, with German original" (PDF). gkoehn.com.
  5.  Il Novellino LXXIII
  6.  Ansalon Giudeo from Bosone da Gubbio's novel Fortunatus Siculus: ossia L'avventuroso Ciciliano
  7.  Anecdotes historiques, légendes et apologues, Tractatus de diversis materiis praedicabilibus, Quarta Pars, De Fortitudine, 331, pages 281-282.
  8.  Li dis dou vrai aniel
  9.  La parabola dei tre anelli, by Claudio Tugnoli.
  10.  Il signore delle anella, by Marco Veglia, Heliotropia 11.1–2 (2014).
  11.  Of the triple State of the World
  12.  Gesta romanorum, Cap. 89, De triplici statu mundi
  13.  Dahlstrom, Daniel (3 December 2002). "Moses Mendelssohn".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Retrieved 26 October 2006 – via plato.stanford.edu.
  14.  The Decameron consists of ten tales told on each of ten days. The “Ring Parable” is found in the third tale of the first day, although the characters here are Saladin and Melchisedech (as the wise Jew).
  15.  Nathan the Wise at Project Gutenberg
  16.  Billington, Michael (May 3, 2003). "Nathan the Wise: Minerva Theatre, Chichester". The Guardian. Eric Bentley once said that this becomes a bad, 'preachy' play in English translation: not so in Edward Kemp's excellent version.
  17.  Spencer, Charles (September 21, 2005). "Enlightened values speak to today". The Telegraph. Edward Kemp's fine translation, which combines Germanic seriousness with a winning English wit, and cuts the sprawling four-and-a -half hour original down to a manageable playing time of less than three hours, was first presented at Chichester in 2003.
  18.  D'Andrea is Robinson Professor of Theater and English at George Mason University; see D'Andrea's webpage.
  19.  Rich, Colleen Kearney (January 9, 2006). "Lending a Stage Hand: Theater of the First Amendment Nurtures Playwrights and Composers". The Mason Gazette. George Mason University.
  20.  Goldsmith, Martin (2000). The Inextinguishable Symphony. New York: John Wiley & Sons. p. 61.
  21.  Sloterdijk, Peter (2009). God's Zeal – The Battle of the Three Monotheisms. Translated by Weiland Hoban. Wiley. ISBN 978-0-7456-4507-0.
  22.  "Nathan the Wise". stratfordfestival.ca. Stratford Festival. Retrieved 2019-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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還(돌아올 환): 되돌아오다, 돌아가다.
元(으뜸 원): 근본, 시작, 본래.
즉, ‘환원’이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어로는 주로 "reduction"이라고 표현되며, 
이는 줄이거나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