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Kalia's post
Philo Kalia
r͏e͏p͏S͏n͏o͏s͏d͏t͏o͏g͏1͏h͏3͏t͏1͏g͏3͏m͏2͏8͏0͏g͏h͏m͏2͏l͏8͏7͏u͏7͏1͏8͏7͏5͏3͏u͏0͏u͏7͏l͏5͏m͏i͏6͏c͏6͏l͏4͏a͏t͏c͏5͏l͏i͏c͏8͏1͏3͏h͏ ·
천(하늘)_퇴계, 율곡, 남인 실학파와 북학파, 혜강 그리고 수운의 사상적 흐름을 신학적으로 통섭함(미친 시도).
최근 퇴계의 ‘理到’ 사상을 접하게 되었는데, 정소이 교수(서강대 종교학)가 ‘理道’를 ‘은총의 도래’와 연결 시켜 크게 고무되었다. ‘理道“는 퇴계의 철학에서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고도의 형이상학적 논쟁을 일으킨 개념이다. 즉 '리(理)가 스스로 도달한다(理自到)' 또는 '리가 발동한다(理發)'는 사상이다.
대학에 格物과 物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주자는 "물격자, 리지극지야(物格者, 理之極至也)"(사물의 이치에 이르렀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가 극진히 이른 것이다.)라고 주석한다.
여기서 '도달함(至)'의 주체를 '인간의 인식(내 마음)'으로 볼 수도 있고, 즉, 인간이 사물에 다가가 그 이치를 끝까지 파헤쳐 다다르는 것"으로 주어를 인간(내 마음)에 두는 입장이다. 율곡 계열의 학자들이 그렇게 했단다.
반면 퇴계는 理의 자발적·영성적 해석을 한다. 퇴계는 주자의 "리(理)가 극진히 이른다(理之極至)"라는 문장 그대로, 도달하는 주체를 '리(理) 그 자체'로 본다. 즉, "내가 사물을 밀도 있게 탐구(格物)하면, 사물 속에 있던 이치(理)가 비로소 스스로 발동하여 내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와 도달한다(理自到)"고 해석한 것이다.
주희가 정립한 정통 성리학에서 리(理)는 차갑고 정적인 우주의 도덕 법칙에 가까웠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앞서 논의한 ’주자신학‘에서도 그렇고 퇴계는 주자보다 더 나아가 이 리(理)에 실존적·능동적 생명력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김형효의 해석이다. ”理自到 上帝來臨“에서 퇴계가 말하는 리는 하느님으로서의 상제의 이론적 얼굴이고, 성인은 상제의 실천적(도덕적) 모습이다. 퇴계의 성리학은 理學이고 上帝學이다.
한형조의 말이다. 퇴계는 주자학을 추상화시키는 것을 학자들의 큰 병폐로 경계했던 사람이다. 그는 理나 仁 같은 이념적 원리나 보편적 가치도, 그 실질은 바로 ’나‘에 의해, ’나‘를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고 의미화되는 것임을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理道‘또한 그 굴체성의 체험적 확신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가 敬을 말하면서 늘 상제의 임재를 떠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야만 ”얇은 얼음 밟듯, 깊은 연못에 임하듯“이라는 유학적 권고가 실질을 갖출 수 있고 間斷 없는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퇴계의 敬이란 슐라이어마허의 ’전적 귀의(의존)의 감정‘에 담긴 외경이며 동시에 충일해지는 자기고양의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조성환의 말이다. 理가 다시 天이 된 이상, 그것은 단순한 궁구의 대상을 넘어서 섬김의 대상으로까지 나아가게 되는 여지가 열리게 된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예배와 찬양과 기도의 대상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유자들에게 예배는 祭香이고 찬양과 기도는 그들의 詩作에 잘 나타난 것이 아닐까.
여대월상제(如對越上帝) = 神前意識(Coram Deo)이 아닌가!
퇴계와 율곡의 사상은 실학제들에게 이어지면서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퇴계(退溪) 학맥의 영향을 받은 실학자들은 경기 남인 실학파로서 경세치용파(중농학파)라 한다. 주요 학자 반계 유형원, 성호 이익(李瀜), 순암 안정복(安鼎福), 녹암 권철신,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집대성한다.
율곡(栗谷) 학맥의 영향을 받은 실학자들은 노론/북학파로서 한양의 노론 세력과 청나라 문물을 적극 수용하려 했던 이용후생파(利用厚生派/북학파) 및 실사구시파이다. 실학자들은 율곡 이이의 학맥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주요 학자로서 연암 박지원(朴趾源), 초정 박제가(朴齊家), 담헌 홍대용(洪大容), 추사 김정희(金正喜) 등이다.
서학(西學) 및 천주학(天主學)이 조선에 수용되고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퇴계(退溪) 학파와 율곡(栗谷) 학파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했는가를 묻는다면, 단연 퇴계의 남인(南人) 학맥이다. 퇴계 철학의 핵심인 '리도(理到)'와 '여대월상제(如對越上帝)'는 천주교의 핵심 교리와 놀라울 정도로 잘 맞아떨어진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 권철신, 광암 이벽 등 남인 학자들은 퇴계의 이러한 상제 관념을 바탕으로, 서학이 들여온 '천주(天主, 하느님)'를 낯선 외래 신이 아니라 유교 원류의 '상제(上帝)'가 비로소 완전하게 드러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理가 스스로 도달한다는 '리도(理到)'의 구도는 "하느님이 먼저 인간을 찾아오시고 계시하신다"는 천주학의 구원관과 신학적으로 상통할 수 있는 사상적 구조이다.
<질문>
⬩理가 아니라 기(氣)가 주도하는 서학 수용은 없었는가?
⬩기학(氣學)의 대성자 최한기는 서학을 어떻게 보았는가
⬩퇴계의 후손인 수운 최제우의 혼연지기(渾然至氣)는 기(氣)와 천(天)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었는가?
⬩최한기
퇴계계 남인들이 서학의 '천주(天주)'를 상제(上帝)로 수용했던 것과 달리, 최한기는 서학의 초월적 인격신 관념을 거부한다. 그는 "우주 전체에 가득 찬 기(氣)가 스스로 움직이고 감응하는 것(대기운화, 大氣運化)이 곧 하늘의 뜻"이지, 우주 밖에 별도의 창조주(천주)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최한기에게 '하늘(天)'은 인격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상제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 충만하여 끊임없이 변형하고 소통하는 거대한 기운의 바다(大氣)`였다. 인간의 마음(心) 역시 내 몸 안의 '신기(神氣)'가 우주의 '대기(大氣)'와 끊임없이 기통(氣通)하는 과정으로 보았다.
⬩최제우
수운 최제우는 경주 최씨로, 학맥과 혈통상 퇴계학파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며 스스로도 유학적 교양을 완벽히 갖춘 인물이었다. 그런데 수운이 창시한 동학의 핵심 기도, 강령주문은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 願爲大降)"이다. 그렇다면 理를 중시하는 퇴계와 氣만 중시하는 기철학이 수운의 고유한 종교체험을 통해 어떻게 통합되었다고 보아야 하는가?
퇴계의 '리도(理到)' + 최한기의 '기(氣)' ➔ 수운의 '지기(至氣)와 시천주'로 변형된 것이 아닐까. 수운의 '지기(至氣)'는 퇴계의 영성과 최한기의 기철학이 서학의 충격 속에서 최고 차원으로 융합된 결정체라고 보아야 한다.
수운에게는 퇴계적 요소와 혜강의 요소가 융합된 것이다.
퇴계적 요소란 영성과 인격성을 의미한다. 수운의 '至氣'는 최한기처럼 단순한 물리학적 기운이 아니라, 인간의 기도를 듣고,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라며 소통하는 실존적·인격적 거룩함(허령, 虛靈)을 담지하고 있다. 이것은 퇴계가 '理到'와 '如對越上帝'에서 다루었던 그 거룩한 하늘의 현존이다.
혜강의 요소란 기(氣)의 일체성 (몸과 마음, 우주의 통합)이다. 수운은 그것을 차가운 성리학의 '리(理)'에 가두지 않고, 맹자의 '호연지기'처럼 내 몸과 우주 전체에 물리적·영적으로 가득 차서 흐르는 '기(氣)'로 파악했을 것이다. 수운에게 '지기(至氣)'가 내 몸에 내리는 것(至氣今至)은, 저 멀리 있는 인격신을 우상숭배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지극한 거룩한 기운(天=至氣)이 내 몸과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와 나와 하늘이 하나가 되는(시천주, 侍天主) 사건이다.
퇴계의 理, 율곡과 혜강의 氣, 서학의 요소를 비판하는 수운의 사상이 오늘의 기독교 신학과 통섭적으로 대화할 수 있을까?
나는 이들을 삼위일체론적으로 받아 리의 초월성을 성부에, 리의 도래를 성자의 화육에, 기의 통활 및 내재성을 성령의 임재와 현존으로 이해한다.
수운이 서학은 "하느님(천주)을 인간 외부에만 두고(외재적 이원론), 피조물인 인간과 우주를 하대하며, 내세의 구원만 바란다"고 비판했다. 서학에는 우주와 인간 몸속에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우주적 생명 기운(氣)'과 '내재적 성령의 임재'가 결여되어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응답:
① [성부] 理의 초월성과 원형 — 퇴계의 상제(上帝)·천리(天理), 수운의 시천주
동양 성리학에서 리(理)가 기(氣)에 앞서 우주의 생성력이자 도덕적 원형이며 절대적 질서로서 초월해 있는 측면은, 삼위일체론에서 '만물의 창조자이자 초월적 주재자이신 성부 하느님'과 상통한다. 우주 만물의 생성의 원리이며 만물이 따라야 할 절대적 도덕 질서이자 근원인 '리(理)'의 초월적 위상이다. 피조세계에 갇히지 않고 거룩한 뜻과 질서로 우주를 지탱하시는 성부 하나님(God the Father)의 초월성과 상응한다.
② [성자] 理의 도래(理到)와 화육 — 퇴계의 理到, 천주학, 그리고 서학 수용
퇴계가 포착해 낸 '리도(理到)'는 신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인 '성육신(Word became flesh)'의 완벽한 유교적/동양적 변증이다. 퇴계의 “理自到”에 대하여 한형조 교수는 "그 실질은 바로 '나'에 의해, '나'를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고 했다. "理가 '나'라는 역사적 삶/육신 속으로 들어오는 체험"이 바로 성자의 성육신 원리와 통한다. 남인 실학자들과 천주학은 이 '리도'의 구도를 통해 하늘의 뜻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는 서학을 수용했다. 초월해 계시던 성부의 말씀(理)이 인간의 역사와 피와 살(肉)을 입고 직접 찾아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구조적으로 일치한다.
③ [성령] 氣의 통활과 내재 — 최한기의 氣學, 수운의 至氣
최한기의 대기운화(大氣運化)와 수운 최제우의 '지기(至氣)'는 기(氣)의 통활성(通活性)과 내재성이며 현대 성령론이 말하는 '성령의 우주적 현존'과 통한다. 수운의 "지기금지(至氣今至)”의 간원은, 초월적 하느님이 성령의 바람(氣)을 통해 내 몸과 영혼, 그리고 피조세계 전체에 내재하고 현존(Immanence & Presence)하시는 성령강림의 사건과 통하지 않는가. 수운은 서학의 외재적 천주 관념을 기(氣)의 내재성으로 극복했다. 만물 속에 숨 쉬며, 인간 내면에 임재하여 영혼과 몸을 살리고, 만물을 하나로 잇는 성령(Holy Spirit, Ruach/Pneuma=氣)의 우주적 현존과 통활성을 뜻한다.
'리(理)'만을 강조하던 퇴계학파와 '기(氣)'의 실재성을 강조하던 율곡학파의 대립이, 삼위일체론적 틀 안에서 "리가 기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듯(理到), 성부/성자의 뜻이 성령의 기운(氣)을 통해 세상에 임한다"는 상호 보완적 관계로 통합된다. 또한 수운의 동학은 서학에 대한 반동적 학이 아니라, 서양 신학이 놓쳤던 '성령론적 우주 생명론(氣)'을 유교의 '리도(理到)' 영성과 결합하여 완성해 낸 생명론적 우주관으로 등장한다. 수운의 '지기'는 서구 근대 신학이 상실했던 '우주적 성령론'을 동양적 기학으로 회복시킨 선구적 본보기이다.
따라서 수운이 비판했던 종래 서구 신학의 아킬레스건인 '현실과 분리된 초월주의(외재적 천주)'를 극복하고, 우주의 근원(성부=理) - 역사의 사건(성자=理到) - 내면과 생명 세계의 생명력(성령=至氣)이 하나로 쉼 없이 움직이는 삼위일체적 '생명 통섭의 신학'이다.
⬩기독교 삼위일체론과의 통섭적 집 짓기(신학적 재해석)
동양 철학의 전통적 대립 구도인 리(理) vs 기(氣); 성리학 vs 기학/동학; 서학(초월) vs 동학(내재)의 갈등을 삼위일체론의 구조로 결합시키고자 했다.
①성부(God the Father) = 理의 초월성/원형(퇴계의 上帝, 수운의 侍天主/天主)
②성자(God the Son) = 理의 도래(理到)/성육신(역사 속 계시, 천주학 수용의 구도)
③성령(Holy Spirit) = 氣의 통활/내재/우주적 생명력(최한기의 大氣, 수운의 至氣, Ruach/Pneuma)
===
Nambutas Kim
심선생님이 주목하는 김형효, 한형조, 조성환.. 학자들의 하늘학 연구가 실로 면면히 이어지는 것에 크게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러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정경미(=정치경제 미학)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담론의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듭니다. 理學의 흐름 속에 든 일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학의 주체가 일반 백성이고, 민본주의 세력의 뒷받침이라면.. 응당 그런 정경미의 추구를 배제한 하늘학은 백프로는 아니리라 봅니다.
조선 초기 계몽군주 세종이 추구해온 '강남농법'에 따른 경제부흥 정책이 성종을 지나 연산군에 이르러 완전히 파탄나고, 되레 왕실재정 확대 조치라는 '신유공안'이 반정 이후에도 바로잡히지 않아 백성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었죠. 이는 중종대의 조광조와 사림파 개혁, 명종대의 외척 정치 그리고 선조대의 동서 붕당정치에서도 좀처럼 바로잡지 못한 중차대한 과제였습니다.
신분제의 회의 역시 이 시기의 중요한 공안이었습니다. 심지어 문정대비, 정난정 그리고 윤원형이 '서얼허통'을 실시하여 신분제 하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서얼들에게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서인 세력은 이 계통에서 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조건. 남명이 퇴계한테 보낸 편지에서 "선생의 제자들은 비를 들고 마당도 쓸지 못하는데.. 무슨 理를 논하느냐" 라는 투를 저는 명종대의 개혁정책가 남명의 정체성 하에서 읽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자 김우옹을 시켜서 <천군전>을 짓게 하고, 그 자신은 <신명사도>와 <신명사명>을 짓는 등 性理의 본질을 '천군'과 '신명'에서 찾았다고 봅니다.
율곡 또한 아홉법 장원한 詩人이지만, 유능한 행정관료의 필요성을 언급할 만큼 조선의 국가적 재정 정책을 개혁하려는 氣 중심의 의도가 다분히 엿보인다고 하겠죠.
바로 율곡 쪽에 서 있다가 동인으로 갔다는 비난을 크게 들은 죽도 정여립은 '정경미'의 관점에서 그런 결단을 내린 것으로 추론해볼 수 있고, 또한 '민본주의적 공화정'이란 죽도의 기치는 살아 생전 율곡을 감탄시켰을 뿐만 아니라 남명의 제자들 역시 교류할 수밖에 없던 공통분모로서 작용하고 있었다 봐야겠죠.
異論이 있을 수 없고 답이 정해져 있는 '성리학 정치'로 여전히 공방하고 있는 현재 한국정치는 명분으로는 더없이 높은 하늘학의 깃발이 펄럭인다고 보지만.. 그래선지 몰라도 우리는 퇴계 위주의 理學으로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실상입니다.
실제로는 민본주의적 공화정을 부르짖은 죽도 선생, '구중궁궐 과부' 문정대비와 '천애고아' 명종에게 경종을 울린 남명 선생, 그리고 금강산 출가수행에서 일찌감치 깨달음을 얻고 돌아와 세상의 氣를 살펴서 경제개혁을 펴고자 했던 율곡 선생이 되레 '하늘학'의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퇴계 일변도로 흐르는 조선성리학은 다시 신학과 보조를 맞출 여지가 없지 않겠지만, 그게 전부라면 반론 없이 참 심심한 일이 되겠죠. 너무 잘 맞아떨어지니까요.
아니, 균형을 어느 정도는 맞춰가야겠다는 생각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