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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상가, 다석(多夕) 유영모의 맥락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현장아카데미 원장) 승인 2022.07.06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1)
몇 차례에 걸쳐 <성서와 문화>지에 다석 유영모(1890-1981)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다. 지면을 허락하신 관계자분들께 감사하며 방대한 다석 사상의 핵심을 간추려 전달코자 노력할 것이다.
다석 유영모
이번 첫 글에서는 다석을 ‘다석’ 되게 했던 그의 사상적 배경을 살피고 필자가 다석을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하겠다. 그간 필자는 고 김흥호 선생과 함께 펴낸 <<다석 유영모의 동양사상과 신학(솔, 2002)>>을 비롯하여 <<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모시는 사람들 2009)>>, <<빈탕한데 맞혀 놀이(동연 2011)>> 그리고 <<귀일신학(밀알북스 2020)>>등을 출판했고 다석학회 회원으로 활동해 왔다. 최근에는 <아주경제>에서 단행본 출판을 목적하여 다석 연구자들 12명을 인터뷰했고 연구 동향을 취재했는데 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다. 올해 말 이 책이 출판되면 다석 유영모를 조망하는 다양한 시각들을 한눈에 살필 수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 2008년 세계 철학자 대회가 한국(서울대학교)서 열렸고 여기서 한국을 대표하는 사상가 몇 분이 세계적으로 공식화되었다. 불교의 원효와 지눌, 유교의 퇴계와 율곡 그리고 역사는 짧지만 다석 유영모와 그의 제자 함석헌이 세계가 인정하는 기독교 사상가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하지만 다석 사상은 이 ‘빛을 꺼라’고 명했고 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빛, 곧 의식 탓에 인간은 더 큰 세계,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영모의 무엇을 세계 철학계가 인정한 것인지를 물어야겠다. 다석(多夕)이란 말에서 보듯 유영모의 호는 저녁 석(夕)자가 세 개씩이나 겹쳐있다. 한 마디로 많은 저녁이란 뜻이다. 그의 사상이 밝은 대낮보다 어둔 밤을 선호, 중시했음을 적시한다. 이는 밤이 지닌 동양적 에토스 때문이었다. 지금껏 서구 기독교는 어둠을 이기는 빛의 종교로서 빛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악을 이기고 어둠을 극복하는 선을 대변했던 것이다. 이 빛은 곧 의식이기도 했다. 빛으로 만사가 드러나듯 일체를 분별, 판단하여 가치를 드러내는 기준이 바로 의식인 까닭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서구는 의식을 앞세워 주체(동일)성의 철학을 탄생시켰고 그로써 세계 지배이데올로기를 정초했다.
하지만 다석 사상은 이 ‘빛을 꺼라’고 명했고 의식을 버릴 것을 요구했다. 빛, 곧 의식 탓에 인간은 더 큰 세계,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양이 사라질 때 비로소 장대한 우주, 서구가 보지 못한 존재의 여여성(如如性)이 드러날 수 있다. 이로부터 동양은 진공묘유(眞空妙有)를 말했고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인 것을 역설해 왔다. 어둠, 곧 ‘텅 빔’ 속에 모든 것이 가득 찼으며 ‘있음이 곧 없음’ 이란 서구에 낯선 논리를 탄생시킨 것이다. 기껏해야 동일률과 모순율에 익숙한 서구로서는 배중률에 근거한 다석의 하느님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비롯할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서구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지를 후술한 글에서 논할 수 있겠다. 김흥호가 다석 사상을 일컬어 ‘동양적 기독교’라 말했던바 서구 철학계의 평가는 이에 대한 긍정이자 인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다석 사상도 하루아침에 생긴 것도 그 혼자만의 창작물도 아닐 것이다. 앞선 이들의 영향사가 있었을 것이고 이를 녹여 자신 것으로 만든 치열한 과정의 산물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다석 사상을 전후좌우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위로는 동학, 풍류, 천부경에 맥이 닿았고 옆으로는 신채호, 내촌, 톨스토이, 간디 등과 소통했고 아래로는 함석헌, 김흥호, 안병무, 박영호 등에게 영향을 주어 소위 ‘다석 학파’ 내지 씨알 학파‘의 길을 열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다석 사상의 출처부터 서술하겠다. 정작 다석은 동학에 대한 말을 아꼈으나 필자는 양자의 관계성에 주목했다. 다석은 천부경을 오롯한 우리글로 번역할 만큼 이 책을 중시했다. 그 속에 인간을 중심에 둔 삼재사상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라는 천부경의 생각은 다석과 동학의 핵심이자 풍류적 인간 이해의 본질에 속한다. 다석이 강조한 귀일(歸一) 개념도 결국 ’인중천지일‘의 뜻에서 찾아야 옳을 것이다. 물론 다석 스스로 이런 생각을 언술한 바 없다. 하지만 그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다석 사상은 동학을 기독교적으로 토착화시킨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최근 도올의 동학 연구가 출판되어 세인의 주목을 받는 상황이다. 동경대전을 주해한 것인데 1. 2권의 각각의 부제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는 코리안이다‘와 ’우리는 하느님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다석 역시 이 점에서 결코 다르지 않다. 그가 천부경을 중시하는 것은 삼재사상 때문이고 그것이 한글 창제의 원리, 특별히 모음(ㅡ, ㅣ, ㆍ)의 원리가 된 까닭이다. 다석에게 한글은 우리 민족을 하늘로 부르는 하늘의 소리(천문)이었는데 그 근거는 삼재에 대한 뜻풀이에 있다. 세상(ㅡ)을 뚫고 하늘(ㅣ)에 오를 때 고통 하는 소리, 아(ㆍ)를 십자가로 봤다. 인간 누구나가 하늘이고 고통을 통해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동학의 21자 주문 ‘시천주조화정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도 이런 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하늘을 품은 인간, ’시천주‘의 자각은 ’인중천지일‘의 다른 표현이자 삼재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후일 긴 논문을 통해 정교하게 밝힐 생각이다.
다석과 동시대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면 관계상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다. 여기서는 다석 이후, 그의 영향 사 속에서 자기 소리를 내는 아래쪽 사람들, 즉 후학들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이렇듯 필자가 다석으로부터 이후의 영향사를 논하는 것은 선불교 바탕에서 신학을 재구성한 일본 교토학파의 기독교 이해와 견줄 목적에서이다.
다석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상적 발전 속에서 앞서 말했듯이 ’다석 학파‘ 내지 씨알 학파’의 기독교를 충분히 말할 여지가 있다. 일본뿐 아니라 서구와 변별된 토착적 기독교 사상을 여기서 찾을 일이다. 민중 신학도 의당 이 속에 포함될 수 있겠으나 그것으로 ‘다석 학파’의 기독교가 환원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고 봐야 옳겠다.
동학 시천주의 다석식 표현인 ‘바탈’(성)이 함석헌에게서 역사 속 ‘뜻’으로 해석되었고 김흥호는 그것을 동서를 아우르는 ‘실존’으로 표현했으며 박영호는 ‘얼 나’라는 이름하에 기독교 안팎을 넘나드는 개념으로 확대시킨 까닭이다. 안병무는 이를 씨알 민중이란 계급적 차원에서 이해했다.
이후 여러 신학자들이 이 개념을 부여잡고 나름 신학적 작업을 하고 있는바 이들 각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속성 차원에서 학파로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가톨릭 성서 신학자 정양모 신부도 이 반열에 서 있고 하이데거 연구자인 이기상 교수 역시 가톨릭을 배경 삼아 다석 언어관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 이 모두는 <<대학>>의 ‘민(民)’ 개념을 ‘씨알’로 풀었던 다석의 본래 해석에 빚진 결과였다. 인간은 누구든지 하늘이 준 바탈을 갖고 태어난 존재로서 그를 씨알로 명명했다. 물론 이들 간에도 상호 차이점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역사와 개인, 기독교와 이웃 종교, 동양과 서구, 개신교와 가톨릭, 각기 어디에 방점을 두는 가에 따라 다석을 이해하는 차원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본질적인 차이라기보다 학파 안에서의 발전적 동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향후 다석 학파의 기독교는 이런 지향성 하에서 더욱 확장될 필요가 있다. 필자가 <<귀일신학>>을 펴내면서 펜데믹 이후 시대를 위한 다석 사상이라 이름한 것도 민중 신학을 넘어 향후 영성 및 생태 신학을 위한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되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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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多夕) 유영모가 품은 사상가들
이정배 교수 승인 2022.07.20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2)
이번 호에는 다석에게 영향을 주었던 동시대 사상가 및 사조들에 대해 언급을 할 것이다. 앞선 글에서 다석의 영향사를 <<天符經(천부경)>>에 이르기까지 종적 차원에서 설명했다면 여기서는 다소 시차는 있지만 횡적 관계망 속에서 다석 사상을 조망할 생각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사상가라 할지라도 시대의 영향 없이 홀로 우뚝 설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다석과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들
다석과 그에게 영향을 준 사상가들
다석 유영모에게 직간접적인 큰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들을 재차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신채호, 여준, 레오 톨스토이, 간디 그리고 우찌무라 간조 등. 이들 영향력이 날줄 씨줄로 엮이면서 다석사상, 곧 씨알철학이 생겨난 것이다. 혹시 이번 지면에 여백이 생긴다면 한글, 훈민정음에 대한 다석의 생각도 살펴볼 것이다. 역시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던바, 다석은 한글, 곧 훈민정음을 <<天符經(천부경)>>의 골자인 천지인 삼재론의 빛에서 뜻을 찾고 구했다. 목하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게 된 한글은 다석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으나 그가 뜻을 확대 재생산(창조)시키기도 했다. 그렇기에 향후 한류의 전개와 더불어 다석의 한글이해 또한 확산될 것을 소망한다.
<<조선상고사>>의 저자 신채호는 다석에게 민족으로서의 ‘我(아)’에 대한 자각을 일깨웠다. 대종교에 몸담고 상해 임정에도 참여했던 신채호는 후일 아나키스트로 평가받아 부정적으로 취급받기도 했지만 사실 그의 민족이해는 씨알 사상의 단초가 되었다.
주지하듯 역사를 ‘我(아)’와 ‘非我(비아)’의 투쟁이라 보았으나 그에게 ‘我(아)’는 고루한 민족주의 차원을 벗었고 약자의 우선성을 내포했다. 강대국들에 맞서 민족을 강조했으나 민족 안에서도 민중과 여성 등 약자는 항존했기에 이들을 ’아‘의 범주에 포함시킨 것이다. 당시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비롯한 한국을 정복하는 현실에서 의당 민족이 강조되었을 뿐 ‘아’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항시 달리 표현될 수 있었다. 그가 일제가 주입한 민족 폄하사관, 소위 恨(한)의 민족사를 거부하고 강감찬, 을지문덕, 광개토왕 등의 민족 영웅들 역사, 영웅사관을 소개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다석은 이런 기저 하에서 대종교가 중시하는 <<天符經(천부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순수 우리말로 이 책 81자를 풀어냈고 신채호의 ‘我(아)’를 ,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즉 후일 그의 핵심 사상이 된 歸一(귀일)의 본원 처로 확대 시킨 것이다.
여준이란 분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오산학교 시절 다석이 만났던 가장 중요한 사람 중 하나다. 남강 이승훈의 권유로 오산학교 교장이 되었던 그는 그곳에서 몽양 여운형의 친척인 여준을 만났고 그를 통해 불교 경전, 노자 <<道德經(도덕경)>> 등을 만나 읽고 연구하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유교경전에 익숙했던 다석이었으나 여타 동양경전에 대해서는 배움이 없었던 터라 여준을 통해 자신의 사유 지평을 넓힐 수 있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합작 론을 주창했던 여운형 집안은 사실 동학교도였다. 그의 할아버지는 단양, 양평 등지에서 해월 최시형과 더불어 활동했던 분이기도 했다. 여운형은 후일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우기까지 했지만 여준은 家學(가학)으로서 동양경전에 더욱 심취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전 글에서도 말했지만 다석이 동학의 중요성을 인지 못 한 것이 필자에게 여전히 의아스럽다.
다석의 사상 속에 당대 지성인들에게 영향을 미쳤던 두 외국인이 있었다. 톨스토이와 간디가 그들이다. 주지하듯 톨스토이는 자신만의 바이블을 만들어 소위 비정통적인 기독교인의 삶을 살았다. 산상수훈이 그를 매료시킨 성서의 전부였고 실제로 그 정신대로 살고자 했다.
다석이 특히 주목한 것은 러시아 정교회의 성직 제도와 사유재산제에 대한 톨스토이의 부정적 생각이었다. 우선 神人(신인) 간의 중개자 개념을 부정한 것에 다석은 동의했다. 성직자들의 중개 없이 인간은 누구나 신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믿은 탓이다. 예수조차 중개, 대리자가 될 수 없다는 최근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견해와 흡사했다. 이런 이유로 정교회로부터 배척을 당했고 객사한 그의 장례식을 교회가 거부하기까지 했지만 살아생전 톨스토이는 산상수훈 정신만을 기독교의 본질이라 역설했다. 다석이 자신의 기독교 이해를 비정통이라 여긴 것도 톨스토이 영향 때문이었다. 사유재산제의 부정도 그를 가족들은 물론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은 큰 이유였다. 사후 자기 재산을 시민단체에 기부키로 한 결정을 두고 유족들과 시민사회가 갈등했다. 다석이 자기 재산을 동광원에 기부하며 생을 마감한 것도 이런 사건이 배경 되었다.
성자로 불리는 간디는 자서전 제목을 ’My Life is my message’로 적을 만큼 삶과 사상의 일치를 꾀한 존재였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거룩한 길을 걸을 수 있음을 확신시켰다. 하지만 자기 삶이 메시지가 되기 위해 인간은 거듭 貪瞋痴(탐진치)와 씨름해야만 했다. 정통 기독교가 말하듯 원죄 상태로의 인간 탄생을 거부했으나 몸을 지닌 인간의 獸性(수성)을 거듭 떨쳐 낼 것을 강조한 것이다. 조혼 탓에 부친 죽음 앞에서도 성욕을 참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냈던 간디였지만 이후 다른 삶을 펼쳤고 영국 식민지에 대행했으나 비폭력의 방식으로 적대감을 이겨냈으며 하루 일식을 하며 소유욕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석이 일식과 解婚(해혼)을 평생 삶의 지침으로 삼은 것도 간디의 영향이 컸다. 다석에게는 이것이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는 길이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일본 기독교인 우찌무라 간조를 만나면서 더욱 신학화 되어갔다.
물리학 공부를 위해 일본에 유학 갔던 다석은 거기서 무교회주의자 우찌무라 간조를 만났다. 이것은 이후 그의 제자들 - 예컨대 함석헌, 김교신, 김흥호 등 - 이 서로 정도차는 있었으나 무교회주의를 수용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본래 양명학에 심취했던 우찌무라는 기독교를 수용한 이후 무교회주의자가 되었다. 루터의 以信稱義(이신칭의) 사상을 수용했으나 일체 교회 제도는 부정했으며 일본식 기독교를 만들고자 했다. 루터 대속사상에 근거하여 기존 형식에 무관하게 성서를 읽었고 깨친 은혜를 갖고 일본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동양정신에 몰두한 다석은 루터의 대속적 기독교를 수용키 어려웠다. 자기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일을 기독교의 본질이라 여겼던 것이다. 남의 생명을 먹고 생활할 수밖에 없는 일상에 오히려 대속적 의미를 부여했다. 예수 스스로도 자신의 몸을 줄여(십자가) 마음을 확장시키는(부활) 방식으로 하늘과 하나 된 분으로 보았으며 그 예수가 우리 또한 그 길로 부른다고 생각한 것이다.
톨스토이가 촉발한 비정통적 기독교가 우찌무라 간조를 경유하며 동양적 기독교로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간디가 말했던 탐진치의 극복이 골자이자 관건이었다. 이에 더해 다석은 이웃을 침략하는 일본적 기독교에 동의할 수 없었다. 김교신에 의해 가시화되었지만 다석 역시도 대속적 기독교 이상으로 일본적 기독교에 거부감을 표출했던 것이다. 다석이 <<천부경>> 속의 三才論(삼재론)에 기초하여 자신의 기독교 이해를 도모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도 한글을 訓民(훈민) 차원이 아니라 백성을 하늘로 이끄는 天文(천문)이라 했고 한글을 통해 가독교를 표현하려는 창조적 노력을 경주했던 것이다. 지면 관계상 한글에 관한 다석의 설명은 다음 호의 주제로 남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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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소리’, 한글에 깃든 다석(多夕)의 사상
뉴스M 편집부 승인 2022.08.05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3)
지난 호에서 말했듯이 다석은 한글을 ‘천문(天文)’, 곧 ‘하늘의 소리’라 하였다. 이것은 백성을 가르치는 소리, 훈민이라 언급했던 창제자 세종의 감각을 뛰어넘는 한글 이해라 할 것이다. 최근 한글을 자국어로 택한 소수민족도 있다고 들었다. 최근 BTS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인들이 한글 가사로 된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으니 한글이 한류의 핵심이 될 미래를 기대해 본다. 감신대를 은퇴한 구약학자 방석종은 몇몇 음역 표기를 보충할 경우 한글이 세계 공용문자로 사용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한글이 사람을 하늘로 부르는 소리라면 그 뜻과 소리는 한국인에게만 독점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1446년 한글 창제 반포일은 세계를 구원하는 날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다석이 어떤 이유로 한글을 천문이라 했을지 살필 일이다.
주지하듯 한글은 모음(母音)과 자음(子音)으로 구성되었다.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 사상에서 비롯한 것이고 자음 즉 ‘아설순치후’의 다섯 소리는 오행(五行)론과 관계있다. 한마디로 삼재론과 음양오행론이 한글 창제의 원리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지인, 삼재가 어머니 소리이고 오행론으로 구성된 자음이 그의 소리를 쫓는 아들 소리란 점이다. 어미 소리를 듣고 그가 부르는 곳으로 따라갈 때 즉 모음과 자음이 옳게 만날 경우 정음(正音), 바른 소리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다석은 모음을 하늘소리, 일명 ‘계’ 소리라 했고 자음을 지금 여기서의 소리 ‘예’ 소리라 헸으며’ 소리가 ‘계’ 소리를 따를 때 그것을 ‘제’소리라 일컬었다. ‘제’ 소리가 정음, 바른 소리이자 구원의 길이라 할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한글 창제 원리에 있어 삼재론이 의뜸이란 사실이다. 삼재론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하 아래의 설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반도 내 백두대간을 중심하여 시베리아 북부까지 선을 그릴 때 그 오른쪽은 수렵 문화 지역이었고 반대편은 중국 농경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농경문화의 경우 빛의 있고 없음에 따른 음양 철학을 발전시켰고 삼재론은 짐승들의 목숨을 담보로 삶을 이어갔던 수렵문화를 배경 삼았다. 음양 철학이 오행의 관계철학으로 되었다면 삼재론은 ‘없음’을 우선하는 종교적 세계를 상상했던 것이다. 사냥 직전까지 작동한 생명력이 졸지에 사라진 그 현실에 주목한 결과다. 눈앞에 먹거리로 던져진 사체, 그 물질 보다 앞서 있던 생명력에 대한 경외가 수렵문화의 특징이자 삼재론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기본 철학은 삼재론 중심의 오행론 체계라 말할 수 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고 체제를 담은 책이 바로 <<天符經천부경>>이었다. 이미 <<道德經도덕경>>을 순수 우리말로 번역했고 몇 개의 불경을 풀었지만 다석은 궁극, 최종적으로 <<천부경>> 또한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시적 세계(地지)속에 비가시적으로 현존 활동하는 하늘의 도(天천)를 인간(人인) 속에서 찾을 것을 삼재론을 갖고 역설한 책이 바로 <<천부경>>이었던 것이다. 혹자는 다석이 말하는 ‘없이 있음’을 불교 혹은 노장사상의 영향이라 일컫지만 <<천부경>>까지 소급해야 옳다.
몸의 숨만 쉰다고 해서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얼의 숨도 쉬어야 인간이 된다고 보았다.
이제 한글 모음의 구성 원리로서 인간을 하늘로 이끄는 삼재론에 대한 다석의 풀이를 말해야겠다. 의당 <<천부경>>, 곧 ’없이 있음‘의 세계관의 토대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세계(-)는 탐진치로 만연되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대물림된다고 말하지는 않으나 탐진치는 다석에게 기독교 원죄와도 같다. 이보다 더 크고 중한 것이 인간 속에 감춰진 하늘 ’바탈‘ 이다. 이런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하늘을 갖고 태어난 인간(l)은 그렇기에 세상을 뚫고 하늘로 오를 존재이다. 인간이 여타 동물과 달리 직립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인간 세상을 뚫고 하늘 본성을 따르기가 결코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세상(-)을 뚫고 하늘로 오르는 인간(l),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세상을 뚫고 하늘로 오르는 순간, 세상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 그것이 십자가(+)이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하늘 뜻대로 하시라’는 예수의 절규가 터져 나온 시공간이다. 이 길은 인간이라면 가야 할 길이다. 누구에게도 ’대신’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예수 역시도 예외가 아니다. 삼재, 즉 ‘-‘. ‘l' 그리고 ‘ㆍ'가 서로 만날 때 ’으이아‘ 즉 고통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것이 인간이자 인간의 길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롯이 인간을 이렇게 부르는 보이지 않는 세계, ’계‘소리 덕분이다. ’계‘ 소리가 있기에 이 길을 걸을 수 있다. ’계‘소리에 ’예‘소리로 답하며 그것을 ’제‘소리로 만들라는 큰 뜻이 한글 속에 담겼다는 것이 다석의 지론이다.
이처럼 삼재 사상은 인간을 하늘로 부르는 어미 소리로서 ’계‘의 세계에 속했다. 예수 역시 이 소리에 답한 존재이다. 그가 짊어진 십자가는 우리를 대속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가다 우리 역시 ’길이 될‘ 것을 주문한다. 이런 길이 우리 앞서 존재한다는 것이 은총이자 대속이라면 대속일 것이다.
이렇듯 삼재론은 자음, 곧 ’예‘ 소리를 힘껏 추동하여 ’제‘소리로 이끈다. 다른 어떤 외국 언어에서도 찾을 수 없는 3단계 자음 변화가 바로 삼재론과 잇댄 사상적 열매인 까닭이다. 예컨대 ’ㅁ ㅂ ㅍ‘, ’ㅅ ㅈ ㅊ’을 다석은 물음, 부름, 푸름, ‘삶, 잠, 참’으로 풀었다. 삶의 물음을 꽉 물고 불려서 풀어내라는 뜻이고 삶은 죽음(잠)을 통해서만 진실(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가르쳤다. ‘목숨’, ‘말숨’ 그리고 ‘얼숨’이 바로 이런 뜻을 담았다. 몸의 숨만 쉰다고 해서 인간이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얼의 숨도 쉬어야 인간이 된다고 보았다.
이런 선상에서 다석은 소리글자인 한글을 뜻글자로 풀어내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상술한 내용을 근거로 한글에 상형문자인 한문 이상으로 뜻을 부여했던 것이다. 농사를 ’열음 질‘,즉 열매를 맺는 일로 풀었고, ’얼굴(골)‘을 하늘로부터 받은 얼의 골짜기라 했으며 사람을 하늘에서 받은 바탈을 불사르는 존재란 뜻으로 이해했다. 꽁문이와 꼭대기의 풀이도 흥미롭다. 아랫도리(항문)를 꼭 물어 단단히 조여야 하늘에 꼭 대일(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석은 한글이 인간을 하늘로 이끄는 천문이란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연유로 필자는 ’한글로 신학 하기‘란 긴 논문을 쓸 수 있었다. 이를 위하여 다석은 지금 사용치 않은 꼭지 없는 히읗 등 한글 4자 역시 되살렸고 그를 통해 뜻을 만들고자 하였다. 동시에 표준어 사용 탓에 사라진 지방 언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사투리가 그저 변방언어가 아니라 뜻이 담긴 언어인 것을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이런 의미에서 다석은 하이데거가 말대로 한글을 우리 민족의 존재의 집으로 본 것이 틀림없다. 한글을 하늘이 준 소리라 믿고 우리 인간을 ’없이 있는‘ 그 세계로 이끌고자 했던 다석의 노력이 참으로 귀하다.
다음 호부터는 몇 차례에 걸쳐 다석 사상을 서구사상과 견줘 풀어 설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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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계신 하느님”, 비(非)케리크마의 신 이정배 교수 승인 2022.08.19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4): 다석의 신론
이번 글에서는 다석의 하느님 이해, 곧 그의 신관을 살펴보겠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다석은 '있음'보다 '없음'을, 빛보다는 어둠을 우선시했다. 많은 저녁(밤)을 뜻하는 다석이란 이름 속에 이런 의미가 담겼다. 이는 서구 기독교나 그쪽 철학 사상과 견줄 때 대단히 낯설다. 하지만 다석은 이를 대립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없이 있는 하느님’이란 말이 적시하듯 없음과 있음은 결코 양자택일적이지 않다. ‘없음이 곧 있음'이고 ‘빛이 곧 어둠’이란 것은 서구 논리들, 동일률이나 배중률로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적시하는 다석의 예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핀 꽃을 보며 좋아하나 정작 나무와 꽃을 가능케 하는 허공을 보지 못하다는 것이다. 허공 없이는 나무도 꽃도 존재할 수 없다. 허공(무)이 우선이나 나무나 꽃과 둘일 수 없다(不二불이)는 것이 다석의 생각이다. 이 점에서 다석의 신론은 ’무위적 유위‘를 말하는 노자의 도,현상과 실재의 궁극적 일치(“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를 말하는 불교적 공(sunjata) 사상과도 회통할 수 있다.
하지만 다석의 하느님 이해가 이들 사상과 변별되는 지점 또한 없지 않다. 신적 초월성과 인간의 의지가 이들에 비해 강조된 까닭이다. 초월성은 대종교의 경전이 된 <<천부경>>의 영향이겠고, 인간 의지는 유교적 토양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를 통섭하여 다석은 십자가에서 정점을 이룬 예수를 설명했다. 인습적 기독교를 떠났지만 예수 없이 기독교의 독특성을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대속적 죽음으로 예수를 의미화하는 기성 신학과 어떻게 다른지는 다음 호에서 설명할 것이다.
얼마 전 <<없이 계신 하느님- 절대자에 대해 동양적으로 사유하기>>란 책이 동연에서 출판되었다. 성공회 윤정현 신부가 영국 버밍햄 대학에서 썼던 다석 관련 최초의 박사 논문이다. 2003년에 제출한 논문을 거의 20년 만에 한국어로 재탄생된 것이다. 앞서 말했던 필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좋은 자료라 생각하며 일독하면 좋을 책이다. 서구인들에게 하느님을 논하는 다른(동양) 논리가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석 신론의 논리적 전거를 밝히는 일에 주력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정된 지면을 통해 다석 신론의 속성과 의미 등에 초점을 두고 살필 것이다. 다시 후술하겠으나 다석이 즐겨 사용하는 ‘귀일’(歸一)이라는 말뜻도 소개하겠다.
하느님은 항시 인간 속에 있다. 태초부터 하느님은 인간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다석의 확신이었다.
없이 있는 하느님, 도대체 이 말뜻은 무엇인가? 초월성을 인정하면서도 없음을 강조하고 실체를 부정하면서도 ‘있음'을 말하는 다석의 신관은 서구 기독교적 사유, 교리체계에 안주한 사람들에게는 많이 낯설고 난해할 것이다. 다석 신관의 구조와 의미는 <천부경>의 한 구절 ‘인중천지일’ (人中天地一),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말 속에 모두 담겼다. 높이 계신 하느님이 육신을 지닌 인간 속에 내주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가 초월의 내주라는 뜻이다.
가톨릭 신학자 이반 일리치의 말대로 초월을 초월한 것이 땅 중의 땅인 ‘인간’이란 사실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독생자가 될 수 있다. 다음 호 주제지만 예수만이 초월적 육화일 수 없다고 봤다. 인간은 누구나 하늘(초월)을 ‘받’아 몸속에 모신 존재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석이 즐겨 쓰는 용어로- '바탈'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탈은 ‘받 할’, 즉 위로부터 ‘받’아 ‘할’ 것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받 할’을 자음 접변하여 읽으면 '바탈'이 된다.
이 '바탈'은 유교의 경우 본연지성이겠고 불교에는 불성일 것이며 동학은 인내천으로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 ’독생자‘로 언표될 수 있다. 이는 모두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살아야 할 인간의 공통된 모습들이다. 인간에게 얼굴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얼굴은 내면의 '바탈'이 드러나는 얼의 골짜기인 까닭이다. 따라서 하늘이 인간 속에 있다는 것이 바로 ‘없이 있는’ 하느님의 실상이다. 하느님은 항시 인간 속에 있다. 태초부터 하느님은 인간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다석의 확신이었다. 이때 바탈은 얼이자 성령이라 말 할 수 있다. 봐도 보이지 않는 비실체적 존재인 까닭이다. 초월의 내주로서 이것은 본디 초월성을 인정치 않는 불교나 노장사상과는 조금 달랐다. 이들 종교들은 세상 ‘밖’을 인정치 않았으나(0도=360도의 세계관) 다석은 ‘밖’을 중시했으니 말이다. 물론 ’밖’을 실체로 여겼던 기독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로써 다석은 모든 종교가 저마다의 '바탈'의 실현을 통해 온통 하나가 되길 바랐다. 종교가 하나 되는 것을 통해 세상 전체가 바르게 될 것을 희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일사상(신학)의 핵심이자 골자였다. 한마디로 인간 마음이 곧 빈탕이신(없이 계신) 하느님과 같음을 알라는 것이다. ‘빈탕한데 맞혀 노는 일’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할 일이 되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해왔던 신적 보편성의 실상이다. 여성 신학자 이은선의 말을 빌리자면 성’(聖)의 평범성’일 것이다.
이런 보편성에 이르려면 인간은 거듭 자신의 탐진치를 축소시켜내야 한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과 둘이 아닌 것을 알 때 가능하다. 자신의 삶도 하느님 존재가 그렇듯이 없이 있듯이- 빈탕한데 맞혀서-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인간은 덜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느님처럼 없이 있지 못하며 늘상 덜 없는 상태로 살고 있을 뿐이다. 바탈이 하늘인 것을 잊었기에, 둘 사이에 분리가 발생한 탓에 없음은 실종되고 견물생심을 일으키는 '있음'의 세계에 미혹된 탓이다. 따라서 ’덜‘ 없기에 더럽게 된 것이 인간의 실상, 곧 죄(인)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덜 없는 인간을 없이 계신 하느님으로 이끄는 것이 종교가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다석은 ‘목숨’, ‘말 숨’ 그리고 ‘얼 숨’을 순차적으로 구별하며 강조했다. 탐진치에 속한 인간이 목숨, 곧 육체의 숨을 쉬는 반면에 이를 벗고자 애쓰는 존재를 일컬어 '말 숨’을 쉰다고 했다. 종교들의 가르침이 곧 ‘말 숨’인 셈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귀일,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은 ‘얼 숨’에 달렸다는 것이 다석의 지론이다. 세상이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늘과 땅이 인간 속에서 하나가 된 상태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뭇 종교는 자신들 가르침을 절대화시키는 누로부터 해방되어야 마땅하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회통시켜 하나에로 이끄는 ‘영(성령)’인 까닭이다. 이 주제는 인간론과 귀일사상을 논하는 지면에서 재차 다룰 것인바 여기서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겠다.
주지하듯 서구 신학은 그간 ‘비신화화’(불트만), ‘비종교화’(본회퍼), 그리고 ‘비케리그마화’(부리)라는 신학적 방법론을 통해 기성 기독교의 틀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비신화화가 서구 전통 내에서 메시지의 시간적 차이를 극복한 경우라면 비종교화는 기독교 메시지를 윤리적 차원으로 확대시킨 차원일 것이다. 이에 반해 비케리그마화는 기독교 메시지가 공간 차에 따라 달리 의미화 될 수 있다는 신학적 견해다.
다석의 없이 계신 하느님은 이 점에서 비케리그마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말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 논할 예수에 대한 이해 역시 신앙의 그리스도와도 다르고 역사적 예수상과도 크게 변별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각각의 공간적 풍토에 따라 케리그마가 달리 표현될 수 있다는 비케리그마화가 다석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그 신학적 배경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글 말미에 사족처럼 덧붙였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없이 계신’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된 다석의 예수상을 살펴볼 것이다.
Tag#다석유영모#없이계신하나님#이정배교수
“없이 계신 하느님”, 비(非)케리크마의 신 이정배 교수 승인 2022.08.19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4): 다석의 신론
이번 글에서는 다석의 하느님 이해, 곧 그의 신관을 살펴보겠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다석은 '있음'보다 '없음'을, 빛보다는 어둠을 우선시했다. 많은 저녁(밤)을 뜻하는 다석이란 이름 속에 이런 의미가 담겼다. 이는 서구 기독교나 그쪽 철학 사상과 견줄 때 대단히 낯설다. 하지만 다석은 이를 대립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없이 있는 하느님’이란 말이 적시하듯 없음과 있음은 결코 양자택일적이지 않다. ‘없음이 곧 있음'이고 ‘빛이 곧 어둠’이란 것은 서구 논리들, 동일률이나 배중률로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적시하는 다석의 예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나뭇가지에 핀 꽃을 보며 좋아하나 정작 나무와 꽃을 가능케 하는 허공을 보지 못하다는 것이다. 허공 없이는 나무도 꽃도 존재할 수 없다. 허공(무)이 우선이나 나무나 꽃과 둘일 수 없다(不二불이)는 것이 다석의 생각이다. 이 점에서 다석의 신론은 ’무위적 유위‘를 말하는 노자의 도,현상과 실재의 궁극적 일치(“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를 말하는 불교적 공(sunjata) 사상과도 회통할 수 있다.
하지만 다석의 하느님 이해가 이들 사상과 변별되는 지점 또한 없지 않다. 신적 초월성과 인간의 의지가 이들에 비해 강조된 까닭이다. 초월성은 대종교의 경전이 된 <<천부경>>의 영향이겠고, 인간 의지는 유교적 토양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를 통섭하여 다석은 십자가에서 정점을 이룬 예수를 설명했다. 인습적 기독교를 떠났지만 예수 없이 기독교의 독특성을 말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대속적 죽음으로 예수를 의미화하는 기성 신학과 어떻게 다른지는 다음 호에서 설명할 것이다.
얼마 전 <<없이 계신 하느님- 절대자에 대해 동양적으로 사유하기>>란 책이 동연에서 출판되었다. 성공회 윤정현 신부가 영국 버밍햄 대학에서 썼던 다석 관련 최초의 박사 논문이다. 2003년에 제출한 논문을 거의 20년 만에 한국어로 재탄생된 것이다. 앞서 말했던 필자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좋은 자료라 생각하며 일독하면 좋을 책이다. 서구인들에게 하느님을 논하는 다른(동양) 논리가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석 신론의 논리적 전거를 밝히는 일에 주력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한정된 지면을 통해 다석 신론의 속성과 의미 등에 초점을 두고 살필 것이다. 다시 후술하겠으나 다석이 즐겨 사용하는 ‘귀일’(歸一)이라는 말뜻도 소개하겠다.
하느님은 항시 인간 속에 있다. 태초부터 하느님은 인간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다석의 확신이었다.
없이 있는 하느님, 도대체 이 말뜻은 무엇인가? 초월성을 인정하면서도 없음을 강조하고 실체를 부정하면서도 ‘있음'을 말하는 다석의 신관은 서구 기독교적 사유, 교리체계에 안주한 사람들에게는 많이 낯설고 난해할 것이다. 다석 신관의 구조와 의미는 <천부경>의 한 구절 ‘인중천지일’ (人中天地一),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로 존재한다’는 말 속에 모두 담겼다. 높이 계신 하느님이 육신을 지닌 인간 속에 내주한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재 자체가 초월의 내주라는 뜻이다.
가톨릭 신학자 이반 일리치의 말대로 초월을 초월한 것이 땅 중의 땅인 ‘인간’이란 사실이다. 이 점에서 인간은 누구나 독생자가 될 수 있다. 다음 호 주제지만 예수만이 초월적 육화일 수 없다고 봤다. 인간은 누구나 하늘(초월)을 ‘받’아 몸속에 모신 존재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석이 즐겨 쓰는 용어로- '바탈'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바탈은 ‘받 할’, 즉 위로부터 ‘받’아 ‘할’ 것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받 할’을 자음 접변하여 읽으면 '바탈'이 된다.
이 '바탈'은 유교의 경우 본연지성이겠고 불교에는 불성일 것이며 동학은 인내천으로 그리고 기독교의 경우 ’독생자‘로 언표될 수 있다. 이는 모두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살아야 할 인간의 공통된 모습들이다. 인간에게 얼굴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얼굴은 내면의 '바탈'이 드러나는 얼의 골짜기인 까닭이다. 따라서 하늘이 인간 속에 있다는 것이 바로 ‘없이 있는’ 하느님의 실상이다. 하느님은 항시 인간 속에 있다. 태초부터 하느님은 인간을 떠나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다석의 확신이었다. 이때 바탈은 얼이자 성령이라 말 할 수 있다. 봐도 보이지 않는 비실체적 존재인 까닭이다. 초월의 내주로서 이것은 본디 초월성을 인정치 않는 불교나 노장사상과는 조금 달랐다. 이들 종교들은 세상 ‘밖’을 인정치 않았으나(0도=360도의 세계관) 다석은 ‘밖’을 중시했으니 말이다. 물론 ’밖’을 실체로 여겼던 기독교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로써 다석은 모든 종교가 저마다의 '바탈'의 실현을 통해 온통 하나가 되길 바랐다. 종교가 하나 되는 것을 통해 세상 전체가 바르게 될 것을 희망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일사상(신학)의 핵심이자 골자였다. 한마디로 인간 마음이 곧 빈탕이신(없이 계신) 하느님과 같음을 알라는 것이다. ‘빈탕한데 맞혀 노는 일’이 세상에 태어난 인간의 할 일이 되었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해왔던 신적 보편성의 실상이다. 여성 신학자 이은선의 말을 빌리자면 성’(聖)의 평범성’일 것이다.
이런 보편성에 이르려면 인간은 거듭 자신의 탐진치를 축소시켜내야 한다. 이는 자신의 마음이 하느님과 둘이 아닌 것을 알 때 가능하다. 자신의 삶도 하느님 존재가 그렇듯이 없이 있듯이- 빈탕한데 맞혀서-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 인간은 덜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느님처럼 없이 있지 못하며 늘상 덜 없는 상태로 살고 있을 뿐이다. 바탈이 하늘인 것을 잊었기에, 둘 사이에 분리가 발생한 탓에 없음은 실종되고 견물생심을 일으키는 '있음'의 세계에 미혹된 탓이다. 따라서 ’덜‘ 없기에 더럽게 된 것이 인간의 실상, 곧 죄(인)라 할 것이다. 그럴수록 덜 없는 인간을 없이 계신 하느님으로 이끄는 것이 종교가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다석은 ‘목숨’, ‘말 숨’ 그리고 ‘얼 숨’을 순차적으로 구별하며 강조했다. 탐진치에 속한 인간이 목숨, 곧 육체의 숨을 쉬는 반면에 이를 벗고자 애쓰는 존재를 일컬어 '말 숨’을 쉰다고 했다. 종교들의 가르침이 곧 ‘말 숨’인 셈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귀일,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은 ‘얼 숨’에 달렸다는 것이 다석의 지론이다. 세상이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늘과 땅이 인간 속에서 하나가 된 상태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뭇 종교는 자신들 가르침을 절대화시키는 누로부터 해방되어야 마땅하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회통시켜 하나에로 이끄는 ‘영(성령)’인 까닭이다. 이 주제는 인간론과 귀일사상을 논하는 지면에서 재차 다룰 것인바 여기서 더 이상 진척시키지 않겠다.
주지하듯 서구 신학은 그간 ‘비신화화’(불트만), ‘비종교화’(본회퍼), 그리고 ‘비케리그마화’(부리)라는 신학적 방법론을 통해 기성 기독교의 틀을 바꾸고자 노력했다. 비신화화가 서구 전통 내에서 메시지의 시간적 차이를 극복한 경우라면 비종교화는 기독교 메시지를 윤리적 차원으로 확대시킨 차원일 것이다. 이에 반해 비케리그마화는 기독교 메시지가 공간 차에 따라 달리 의미화 될 수 있다는 신학적 견해다.
다석의 없이 계신 하느님은 이 점에서 비케리그마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말할 수 있다. 다음 장에서 논할 예수에 대한 이해 역시 신앙의 그리스도와도 다르고 역사적 예수상과도 크게 변별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각각의 공간적 풍토에 따라 케리그마가 달리 표현될 수 있다는 비케리그마화가 다석 사상을 이해함에 있어 그 신학적 배경이 될 수 있겠다 싶어 글 말미에 사족처럼 덧붙였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없이 계신’ 하느님의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된 다석의 예수상을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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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 길이 되라"
이정배 교수 승인 2022.09.09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5): 다석의 예수 이해
다석의 하느님 이해 –없이 계신 이- 가 서구사고에서 낯설 듯이 그의 예수론 또한 전통적 서구신학의 틀에서 많이 빗겨나 있다. 죄를 위해 대신 죽었다는 서구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대속론을 전혀 달리 해석했던 까닭이다. 이는 인간이 탄생 시부터 죄를 품었다는 원죄론에 대한 부정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 서구에서 적극 논의 되는 바, 원죄보다는 원은총(Original biessing)을 강조하는 편이다. 물론 다석도 인간 죄성을 인정했다. 인간 몸의 속성(기질)과 연관된 貪嗔痴(탐진치) 즉 욕심내고, 분노하고 치정에 얽힌 인간 삶의 실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인간 삶을 얼마나 비극적으로 만들어 왔는지를 절감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白死千難(백사천난)의 수행과정 속에서 인간이 극복할 일이지 누군가에 의한 속죄의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이점에서 다석은 톨스토이에 잇대어 자신의 기독교를 스스로 ’비정통‘이라 일컬었다. 여기서 비정통이란 말은 ’동양적‘이란 말과 뜻이 다르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다석은 예수의 유일성을 보편화 시켰다. 앞서 본대로 聖(성)의 보편성을 뜻한다. 예수만이 하늘의 독생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저마다 하늘의 독생자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없이 게신 이가 인간 속에 바탈(본성)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누구나 참을 그리워하고 참에 이르고자 애써야 할 존재이다. 다석은 이런 존재를 ’얼‘ 혹은 ’얼나‘라고 불렀다. 성령의 동양적 표현일 것이다. 비록 탐진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를 이길 수 있는 힘, 곧 하늘로부터 ’받‘아서 ’할‘ 것(바탈)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속알‘로서의 ’얼‘이다. 이점에서 예수가 독생자 듯이 우리 또한 독생자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자신 역시 독생자인 것, 곧 자신의 ’얼‘을 믿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옳다.
이점에서 예수와 우리 사이에 존재론적 차이가 없다. 하지만 예수와 우리 간의 구별(차이) 또한 없을 수 없다. 일상 속 우리와 다르게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석은 이에 대한 전통적 해석을 탈각시켰다. 그에게 십자가란 몸(탐진치)를 지닌 예수가 ’자기 뜻 버려 하늘 뜻‘ 구한(이룬) 지난한 수행의 꽃이자 열매였다. 그렇기에 다석은 종종 십자가와 부활을 ’몸 줄여 마음을 크게 만드는 일‘이라 풀었다. 탐진치라는 한계이자 제약을 스스로 해결한 존재, 그가 바로 예수였다는 것이다. 하늘 뜻에 따라 맛을 추구했던 자신의 삶(몸)을 이겨 하늘로 솟난 존재가 되었다. 이런 예수를 길이라 믿고 따르다 우리 역시 길 되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목표이자 이룰 과제이다. 이를 대속과 대별되는 일종의 ’자속‘사상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십자가를 걸머진 예수가 없다면 우리 갈 길도 분명치 않았을 것이다. 이점에서 예수가 갔던 길, 십자가는 그 자체로 은총이자 대속의 또 다른 의미라 하겠다. 길을 걸었던 사람이 앞서 있다는 것 이것이 구원이자 희망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바로 그런 존재였던 바, 이를 우리는 스승 기독론이라 명명해도 좋을 것이다. 다석 자신도 유불선 모두가 하늘로부터 받을 것은 다 받은 종교이지만 자신의 스승은 오로지 예수뿐이라 말했다. 피한방울을 나누지 않았으나 부모, 자식 지간보다 더 가깝고 무제약적인 존재, 그가 바로 동양적 의미에서 스승이다. 스승, 길을 간 사람이 앞서 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뿐이다.
여기서 필자는 불교와 기독교 대화에 전념하는 교토학파의 기독론과 역사적 예수 연구가들의 예수이해를 다석 사상과 비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토학파의 경우 신과 인간의 접촉에 주목했다. ’신이 우리와 늘 상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 개념을 불교의 ’불성‘과 연계 시킨 것이다. 인간 속에 불성이 있다는 것과 신이 함께 한다는 것을 같이 보았다. 하지만 이를 ’일차적 접촉‘이라 보고 진일보된 견해를 피력한 이도 있다. 예수의 경우 임마누엘에 만족치 않고 그 스스로 신이 된 ’이차적 접촉‘을 이뤘다는 것이다. 일견할 때 이들의 일차, 이차 접촉은 각기 다석의 ’얼‘ 사상과 스승 예수 이해와 유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교토학파의 경우 예수의 이차 접촉을 각(깨달음), 곧 돈오의 차원에서 이해했다. 다석과 달리 곧 자신 속 獸性(수성)과의 백사천난의 투쟁 차원을 간과했던 것이다. 다석의 시각에서 볼 때 의지의 결핍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토학파와 견줄 때 다석이 불교만큼이나 유교를 중시했던 까닭이다.
반면 역사적 예수 연구는 기존의 교리화된 대속사상을 깨는 측면에서 다석 사상과 맥을 같이 한다. 역사적 연구가 예수의 비유, 어록에 초점을 두는 까닭에 예수는 교회가 고백하듯 결코 대속주가 될 수 없다. 그의 죽음보다 삶이 강조된 까닭이다. 하지만 다석과 비교시 역사적 예수연구도 문제가 없지 않다. 역사 연구는 역사적 예수가 오늘을 사는 우리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지를 설명 하지 못한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정작 그와 우리의 관계설정을 방해한 탓이다. 역사적 예수는 기존의 교리적 고백적 차원이 전제될 때만 유의미하다. 하지만 다석은 예수나 우리가 같은 바탈(얼)을 지녔다고 봤기에 역사적 예수 연구의 난점을 극복했다. 모두가 하늘의 독생자란 사실, 없이 계신이의 존재근거란 것을 통해 우리와 예수를 관계시켰다. 반면 역사적 예수에게 얼 기독론은 매우 낯설 수밖에 없다. 바탈(얼)의 힘으로 길가다 길 되신 예수를 스승으로 따르며 우리 역시 길 되는 것이 스승기독론의 요체이다. 결국 다석 사상은 교토학파를 스승 기독론으로, 역사적 예수연구를 얼 기독론 차원에서 비판할 수 있었다.
다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실컷‘과 ’대충‘이란 두 말이었다. 예수와 같은 ’그이‘가 되고자 한다면 이 두 말과 멀리해야 옳다.
이런 다석의 예수론은 신론에서 언급한 바처럼 비케리그마화의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다. 성서 속 예수 상이 다석에 이르러 동양적으로 재해석(구성)된 까닭이다. 예수가 ’없이 계신 이‘의 삶을 체화시켰다면 서구적 신관에서 비롯한 예수이해와 변별되는 것이 당연하다. 앞서 봤듯이 전통적으로 대속적 구세주가 대세였고 역사적 예수연구는 제국 체제에 저항하는 지혜자 내지 혁명가로 예수를 각인시킨 반면 다석은 비정통적, 동양적 예수 상, 즉 수행적 차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경우 수행이라 해서 사적, 개인적 차원만 생각할 수 없다. 탐진치는 개인적 차원의 수성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탐욕, 사실을 왜곡하는 저널리즘 그리고 N 번방사태가 말하듯 사회의 구조적 차원까지 적시한다. 후술하겠지만 기후붕괴와 구조적 불평등 사회에서 탐진치와의 싸움은 세상을 구원하는 일이다. 여기서 다석은 전통적인 대속 사상을 동학의 '侍’(모심), 불교의 ’緣起‘(연기)와 같은 차원에서 풀어냈다. 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일상사가 곧 대속이란 것이다. 종교로서의 대속, 그 의미를 한껏 확장시킨 결과였다. 이는 세상에 관계 아닌 것이 없고, 이것과 저것이 상호적으로 발생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말한 생명 외경론도 같은 맥락이겠다. 그럴수록 남의 생명(삶의 의지)을 적게 탐하는 일이 중요하다. 단순하게 사는 삶이 몸 줄여 마음 넓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남의 생명대신 자기 생명을 바치는 삶이 수행이고, 자속이며 십자가를 지는 일이며 기독론의 본질이다.
다석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실컷‘과 ’대충‘이란 두 말이었다. 실컷 먹고 대충 사는 것을 복이라 여기며 맛을 추구하며 산다. 길을 가다가 길 되려면, 즉 예수와 같은 ’그이‘가 되고자 한다면 이 두 말과 멀리해야 옳다. 이것은 ’자기 몸을 산제사로 바치라‘는 성서 언어와 지극히 대치된다. 그러려면 종교를 통해 복 받는 일과 효용을 얻으려는 마음을 버려야 옳다. 하지만 대속적 기독론이 가져온 폐해가 너무 크다. 종교개혁이 말한 3개의 ’오직’(Only)교리가 자본주의 체제- 탐진치-를 유지, 존속, 확대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이점에서 다석의 수행적 기독론은 탐욕에 젖은 병든 기독교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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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없어 더러운 존재, 빈탕한데 맞혀 놀이 이정배 교수 승인 2022.09.17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多夕) 유영모" 연재 (6): 다석의 인간 이해
다석의 인간론을 쓰려하니 이미 앞에서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기독교에서 기독론- 예수이해 –이 인간 문제 해결을 위한 궁극적인 상수였던 까닭이다. 하지만 다석의 경우 인간을 예수에 종속시키지 않았다. 기독론을 유일무이한 절대적 교리로 여기지 않은 결과였다. 예수처럼 인간도 ‘빈탕(없이 있음)’의 독생자로 여겼을 뿐이다. 이웃 종교들도 하늘로부터 받을 것은 모두 다 받았다 했으니 기독교든 불교든 인간 이해에 있어 종교 간 차이도 없다.
지난 세월 형성된 서구 기독교의 두 유형, 가톨릭과 개신교의 두 신학원리들- 존재유비(Analogia entis)와 신앙유비(Analogia fidei)–에 의지해서 다석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의 선험적 죄 성 자체가 부정되었기에 유비(가톨릭)나 역설(개신교)의 논리가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이점에서 다석이 보여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각성은 서구 어느 것보다 깊다하겠다.
이점에서 이 글 제목이 ‘덜 없어 더러운 존재, 빈탕한데 맞혀놀이’로 되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앞서 본대로 하느님은 ‘없이 계신 분’이다. 인간이 하느님 형상이라면 그 역시 ‘없이 있어야 할’ 존재여야만 했다. 하지만 인간 속 獸性(수성), 탐진치로 인해 인간의 현존은 ‘덜 없는’ 상태에 놓였다. 한마디로 소유, 욕망 지향적인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없음의 존재가 되지 못한 인간 상태, 곧 ‘덜 없음’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더러움’이 된다. 더러움은 깨끗함의 반대어로서 인간 실존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때 더러움은 서구 기독교가 말했던 원죄와는 많이 다르다. 본래 인간은 없이 있는 존재, ‘바탈’로서 세상에 태어났던 까닭이다. 없이 있는 하느님이 바탈(얼)로서, 좀 더 넓게 화장시켜 말하자면 세상을 가득채운 영으로서 존재한다는 말이다.
하느님과 인간이 그렇듯이 하느님과 세상도 이점에서 不二(불이)적 관계 속에 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설명을 독점해온 서구 기독교로선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탐진치 탓에 더러워진 인간은 자신을 깨끗게 하면 된다. 어기서 ‘깨끗’은 거룩을 표현하는 다석 고유한 언어로서 한번 ‘깨’어져서 ‘끝’을 보라는 뜻을 지녔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 속 바탈에 의지하여 깨끗의 과정을 통해 ‘없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늘 계신 하느님의 거룩하심처럼 너희도 거룩 하라는 성서말씀의 본뜻이라 여겼다. 김흥호는 다석의 경우 인습화된 언어 ‘거룩’ 보다 ‘깨끗’이란 말을 더 선호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없음’과 ‘있음’에 따른 인간이해는 좀 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주지하듯 기독교는 영혼을 자신의 육체보다 절대 우월하게 생각해 왔다. 그래서 곧잘 자신의 영혼을 하느님 형상과 등가로 여긴 것이다. 여타 피조물과 견줘 인간은 월등히 우월한 존재로 봤다. 이것은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러 유색인에 대한 백인 우월주의로 확장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사상의 영향을 받은 토미즘 신학의 역할 탓이었다. 식물은 生魂(생혼)만을, 동물의 경우 생혼과 覺魂(각혼)을 그리고 인간은 이에 더해 靈魂(영혼)을 지녔다고 가르친 것이다. 생혼과 각혼은 죽음과 더불어 소멸하지만 영혼만큼은 지속하기에 신적 속성을 지녔다고 보았다. 몸속에서 자신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죽음이라 일컬었다.
하지만 최근 場(장, Field)이론을 근거로 인간 본질인 영혼이 달리 설명되는 추세이다. 몸속에 영혼이 있지 않고 영혼 속에 몸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영혼은 과학적 개념인 장(Field)과 호환될 수 있는 바, 영이라 불러도 좋고 ‘온생명’이란 말도 낯설지 않다. 거대한 생명공간으로서의 장(영)안에서 개체는 전체 없이 존재할 수 없고 모든 것은 차별 없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를 ‘새로운 애니미즘’(New Animism)이라 불러도 좋겠다. 이 때 영, 혹은 장은 다석이 말한 ‘빈탕’ 곧 ‘없음’과 다르지 않다. 그에게 허공이 곧 있음의 근거였던 까닭이다. 텅빈 곳에 영이 가득 차 있다는 것이 다석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유교의 경우 ‘태극이무극(太極而無極)’이었고 불교는 ‘진공묘유(眞空妙有)’로 언표 되었으며 기독교의 하느님을 ‘없이 계신 이’로 부른 이유였다. 이처럼 하느님 영이 줄 곧 우리와 더불어 있었기에 다석은 성령을 받으라는 말을 아주 싫어했다. 한시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었기에 누가 누구에게 베풀 수혜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물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영의 산물로 알라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다석이 성리학의 인식론, 격물(格物)을 盡物性(진물성)이라 달리 표현한 것에 주목한다. 격물은 만물이 동일한 理(이)를 갖고 있다는 전제하에 인간의 理(이)가 사물의 이치와 교감하다가 어느 순간 주객의 일치가 이뤄진다는 성리학의 으뜸 개념이다. 다석은 이를 ‘진물성’으로 재 개념화 시켜 사물과 인간 본성 간 간격이 사라진 하나 된 상태를 더욱 강조했다. 경물에서 보듯 사물을 대상화 시키지 않고 자신의 마음속에서 물성과의 일치를 역설한 것이다. 이점에서 다석은 주희의 理學(이학)이 아닌 왕양명의 心學(심학)과 유사하다.
동학에서 말하는 내 마음이 곧 네(그)마음이라는 ‘吾心卽汝心’(오심즉여심)의 경지라고 말해도 좋다. 사실 동학이 敬天(경천), 敬人(경인)을 넘어 敬物(경물)을 강조한 것도 이런 선상에서였다. 하지만 다석의 ‘진물성’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物(물)을 존경한다는 말 속에서 지행합일의 경지를 살폈다. 예컨대 닭을 마음에 품고 귀하게 생각했다면(경물) 사람은 새벽닭이 그렇듯이 부지런한 닭의 성질까지 닮아야 했던 것이다. 닭처럼 부지런한 존재가 되는 것이 진물성의 과제이자 목표였다. 이런 논의는 결국 ‘덜 없어’ 더러워진 존재, 탐진치에 찌든 인간을 치유, 해방 시킬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없이 계신 하느님처럼 존재하기 위한 길이었다. 예수의 십자가가 땅으로부터 하늘로 솟난 길이었듯이 우리 역시 솟난 존재가 되길 바라서였다. 누구든지 자기 몸을 제물삼아야(자속) 가능한 일이다.
다석의 십자가는 이렇듯 ‘덜 없는’ 인간이 ‘없이 계신 이’와 하나 되는 길을 적시한다. 이것이 단적으로 ‘見物不可生’(견물불가생) 즉 사람 또는 사물을 보고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언어로 표현되었다. 주지하듯 ‘덜 없는’ 인간은 뭇 사물에 마음을 빼앗기는 견물생심의 존재이다. 그럴수록 사물의 본성을 알고 그와 하나 되면 자기 마음을 지킬 것을 역설했다. 사물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동일한 영의 산물로 알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존재론적 각성은 자연과의 동근원성을 말하는 지점까지 확장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은 몸성히(목숨), 마음놓이(말숨)의 단계를 거쳐 자신의 바탈(얼숨)을 실현시킨 ‘바탈태우’의 경지라 할 것이다. 십자가는 대속의 상징이 아니라 스스로를 태워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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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이 있음의 존재론과 생태학 이정배 교수 승인 2022.10.04 05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7): 기후붕괴 시대의 다석 사상
지난 장에서 우리는 견물생심에 반하는 ‘見物不可生’(견물불가생), 물건을 보고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상태를 논했다. 욕망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현실과 맞서는 주체적 인간태도를 다석의 말로 표현한 것이다. 주지하듯 홀로세 말기의 지구생태계가 자본주의 폐해로 기후붕괴시대에 접어들었다. 물건에 마음이 홀려 인류가 욕망 덩어리로 살 경우 2050년 거주 불가능한 지구가 될 것이란 경고가 끊이질 않고 있다. 자연의 질적 파괴가 임계점을 넘어선 탓이다.
이런 난제를 해결키 위해 기독교 내부에서 여러 형태의 생태신학이 등장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이 등장했고 신론의 모형변이, 곧 어머니 하느님 이란 말도 회자되었다. 기독교내부의 뿌리은유-하느님, 그리스도 등-들을 생태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자연과 관계하는 인간의 태도를 바꿀 목적에서였다. 일리가 없지 않으나 이들 경우는 여전히 ‘있음’의 표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전 인류의 생태적 회심을 위해 다석이 말했던 ‘없음’의 존재론적 차원을 각인시키는 것이 필요할 듯싶다. 없이 있는 하느님을 닮은 ‘없이 있는 인간’이 될 때 자연 역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달리 말하자면 인간위주의 도구적 관점을 벗고 있는 그대로의 존재론적 관점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점에서 ‘없이 있는 하느님’은 생태학적 회심의 전거라 말할 수 있겠다.
다석 신론의 요체인 ‘없이 있음’이란 말은 서구 주류 담론 어느 것으로도 해명될 수 없었다. ‘없음’을 모든 것을 있게 하는 초월적 근거이자 전체로 봤던 까닭이다. 더욱이 이것이 인간 속에 바탈- 받아서 할 것-로서 주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인간 역시 하느님처럼 없이 있어야 할 존재가 된 것이다. 빈탕의 자녀인 인간은 자연을 욕망 대상이 아니라 존재론적으로 성찰해야 옳다. <다석 일지> 곳곳에 누차 언급 되었던 바,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旣成佛’(기성불)이었다. 우주만물을 신의 현현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느님 속성을 우주 만물 속에서 찾았다는 말을 누차 남겼다. 반면 인간은 아직 부처가 되지 못한 未成佛(미성불)상태로 있다. 자신을 없이 있는 존재로 깨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욕망을 지닌 몸으로서의 존재, 탐진치의 삶을 벗겨내지 못한 탓이다. 이런 현실에서 생태적 위기극복은 緣木求魚(연목구어)이고 생태적 회심은 言語道斷(언어도단)일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다석은 성령이란 말로 ‘없이 계신 하느님’과 인간의 ‘바탈’을 상호 소통시키고자 했다. 우주를 지속시키는 ‘하나’이자 자기 속의 ‘바탈’로서의 영을 우주 만물 속에서 봤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연 속에 깃든 영을 찾는 것 역시 인간의 할 일로 여겼다. 지난 장에서 언급한 ‘盡物性’(진물성)이란 말이 바로 이를 적시한다. 이는 사물(자연)의 본성과 인간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를 일컫는 바, 몸나(개체존재)의 극복을 전제한다. 절대생명인 ‘하나’와의 일치를 위해 자신의 바탈을 태울 때(바탈태우) 가능하다. 목숨만이 아니라 말(얼) 숨을 쉬는 존재가 되라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다석은 인간이 져야할 십자가라 했으며 이로써 누구든 그리스도가 될 수 있음을 가르쳤다. 자신의 바탈을 태우는 것을 십자가로 본 것이다.
다석은 예수 십자가를 ‘一坐食 一言仁’(일좌식일언인)이란 말로 다시 풀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했듯이’ 자기 몸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란 말뜻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다석에게서 ‘몸 줄여 마음 늘리는 일’로 재구성된 결과였다. “쌀 한 알을 심어 천 알, 만 알 수학하는 것도 이득이지만 斷食(色)으로 자신을 하느님께 바쳐 하느님 아들(그리스도)로 변하는 이득이 더 크다”는 그의 말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몸나가 이웃과 자연을 해치는 탐욕스런 자아이듯 말 숨 쉬는 참(얼)나는 우주만물과 하나 된 존재를 적시한다.
다석은 우주만물과 조화롭게 사는 것을 ‘禮’(예)라 했고 그것을 ‘알맞음’(中庸)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렇기에 참 나는 생태적 자아, 곧 생태적 회심을 이룬 존재라 말해도 좋겠다. 이런 차원에서 다석은 대속교리를 다음처럼 생태적으로 풀어냈다. “내가 먹는 낱알과 체소가 나의 생명을 위해 희생되어 힘을 내게 대속합니다.” “그리스도가 내 양식이라면 나를 위해 대속되는 만물은 죄다 그리스도입니다.” 등. 그렇기에 앞서 말한 ‘盡物性’(진물성)은 우주만물을 성례전적 대속 제물로 이해하기위한 전거였다. 대속하는 물질(자연)의 본성을 옳게 알아야 인간 역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닭고기를 먹으면 닭처럼 일찍 깨어 기도하고 일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사는 것이 그들 생명에 대한 보답이라 여긴 것이다. 한마디로 맛으로, 욕망으로 먹지 말고 뜻으로 살자는 것이다. ‘일좌식, 일언인’이 바로 이를 적시한다. 이를 ‘단식’과 ‘단색’으로 줄여 말해도 좋다.
一食(일식), 혹은 단식은 見物生心(견물생심)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남의 생명을 탐하지 말고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라는 것이다. 남의 생명 소중함을 깨달아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였다. 見物不可生(견물불가생), 사물을 보고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을 제물로 삼는 일식은 일종의 ’자기 비움‘으로서 인간을 생태적으로 재 주체화시킬 수 있다. 기후붕괴를 여실히 경험 중인 21세기의 화두가 평등도 자유도 아닌 단순성(Simplicity), 곧 최소한의 물질로 사는 일인 것도 일식의 뜻과 무관치 않다.
性(성)의 문제 역시 생태적으로 중요하다. 인류 존속을 위해 필요하겠으나 절제 없어 몸을 망치는 일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생존을 위해 살생하고 교미하는 동물과 인간이 같을 수 없다. 자연이 무너지듯 자기 몸을 해하는 욕망은 인간이 失性(실성)했다는 반증이다. 그럴수록 다석은 ’夫婦有別‘(부부유별)을 강조했다. 다석의 , 解婚(해혼)즉 부부로 살되 남녀로 사는 관계를 끊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성에 있어서도 금욕이 필요한 시대가 된 까닭이다. OECD 국가 중에서 포르노 문화가 가장 센 나라가 한국이란 사실이 많이 부끄럽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이 놓이고 자신의 바탈을 불사를 수 있다. 앞전에서 말한 꽁문이와 꼭대기란 말을 다시 기억하면 좋겠다. 다석은 남녀문제를 해결한 존재를 일컬어 ’마음 씻어난 이‘라 불렀다.
결국 일식과 단색은 없이 있는 하느님과 하나 되려는 인간의 수행이다. 빈탕한데 맞혀 놀아야 할 종교적 삶의 본질인 셈이다. 다석은 이를 自贖(자속)의 길이라 했다. 빈탕의 큰 하나를 모르면 탐진치의 지배를 벗을 길이 없다. 탕자처럼 매순간 몸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석은 거듭 강조한다. “꽃을 볼 때 온통 테두리 안의 꽃만 보지 꽃을 둘러싼 허공, 곧 빈탕을 보지 않습니다. 허공만이 참입니다.” 꽃을 꽃 되게 하는 것이 빈탕인 한 이것은 소유대상일 수 없다. 꽃만 볼 때 그것은 꺾고 싶고 갖고 싶은 물질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서구 생태학적 위기의 본질이다.
빈탕을 알아야 맛이 아닌 뜻을 따라 살 수 있다. 있음이 아니라 없음에 걸맞게 살자는 것이다. 덜 없어 더러운 인간 삶을 끝내야 인류에게 미래가 열릴 수 있다. 없음에 근거한 생태학적 회심 이것이 자신과 인류 나아가 우주를 구하는 길일 것이다. 기후붕괴 시대에 인간에게 절실한 것은 에코지능이다. 이는 자연 따라 사는 능력(Biomimicry)이러 불러도 좋다. 윤리적 소비란 말도 이로부터 비롯할 수 있다. 자연의 한계를 극복 대상이 아니라 적응대상으로 성찰하는 것이 옳다. 다석이 ’진물성‘ 개념을 내세워 견물불가생의 삶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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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의 ’없음‘과 성 프란시스코의 ’가난‘ 이정배 교수 승인 2022.10.19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8): 없음과 가난
다석은 1959년도 11월 경 <<다석 일지>>를 통해 독일의 신비 영성가 마이스터 에카르트를 두 차례나 연거푸 다루었다. ’없이 계신‘ 하느님을 인간의 바탈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평소 지론을 신(Gott)과 신성(Gottheit)을 구분하고 자신을 찾는 것이 하느님을 아는 것이라는 서구 신비사상 속에서 확인했던 까닭이다. 필자 역시 이 점에 공감하며 이런 구조 속에서 양자를 비교 성찰할 의욕을 느낀다. 하지만 논리적 구조에서만이 아니라 누구 게나 주어진 바탈로서의 ’얼‘이 삶을 통해 구체화되는- 길을 가다 길이 되라- 白死千難(백사천난)의 과정을 생각할 때 에카르트 보다는 가난을 살아냈던 성 프란시스코가 더 적합한 비교 파트너라 확신한다. 프란시스칸 작은 형제회 창립 80주년을 맞아 필자에게 연구과제를 주었기에 당시 이런 관심을 약술한 바 있었다.
사실 프란치스칸 전통은 루터의 종교개혁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성보다 의지를 강조했고 보편보다 개체를 앞세운 이 전통은 개신교 탄생의 자양분이었다. 하지만 농민전쟁을 진압하고 군주들 편에 섰던 루터와 견줄 때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살았던 프란시스코가 더 많이 생각났다. 차라리 가톨릭교회에 속하지 말고 그가 두세기 앞서 종교개혁의 주창자가 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고 많다. 프란시스코 교단에 속한 현 교황이 했던 말, ’교회의 복음화 없이 는 세상의 복음화 없다‘는 말을 주목한다. 가난을 통해 예수와 하나 된 삶을 살았던 프란치스코의 삶, 아마 그것이 그가 말하는 복음화의 실재(Reality)였을 것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코
프란치스칸 정신은 자본세를 맞아 사실적 종말로 치닫는 지구를 구할 백신일 수 있겠다. 그에게 가난은 곧 하느님이었고 그렇게 산 이가 예수였으며 우리를 그 길로 부르기 때문이다. 다석의 말로는 없이 계신 하느님 곧 ’빈탕‘한데 맞혀 사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들은 이것-가난과 없음-을 선이라 일컬었다. 더욱이 ’믿음‘에 근거한 속죄론을 앞세우지 않았고 하느님 주신 자유의지를 중히 여겼으며 오로지 가난-없이 있음-을 통한 신비적 합일을 지향했다. 바로 여기서 관상을 통해 신비적 합일을 이룬 에크하르트와 변별된다. 자연을 토미즘 전통에서 말하듯 신과의 유비(Analogia entis) 차원에서 보지 않고 신적 계시로 본 것도 자연을 旣成佛(기성불)로 여긴 다석과 전혀 다르지 않다.
프란치스칸 전통의 변별력은 ’하느님은 ’선(bonum)‘이고 창조된 모든 것 역시 ’선‘이다’는 말로 축약해서 말할 수 있다. 여기서 가난은 선의 다른 말이다. 왜냐면 독생자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가난한 자로 살았던 까닭이다. ‘내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예수의 십자가, 제 뜻마저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은 십자가에서 가난의 절정을 보았다. 하느님과 예수 그리고 세상(피조물)이 선이자 가난이란 것이 프란치스코 신학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하여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들 속에서 선을 찾는 일이 중요했다. 자연의 전적 타락을 말했던 개신교 신학과는 발상이 동이 서에서 멀 듯 달랐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육화’란 개념이다. 인간을 포함한 온갖 피조물에게 하느님 –가난- 善(선)에 참여케 하는 근원적 힘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는 창조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원 축복(Original Blessing)이란 말과 흡사하다. 일차적으로 하느님은 예수에게 자신과 일치된 본성을 갖게 했고 그것이 그가 걸머졌던 가난의 길, 십자가로서 나타났다. 그로써 그는 인간 및 피조물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느님의 선을 이루도록 도울 수 있었다. 피조물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간성, 곧 가난(선)을 덧입게 했던 것이다.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 일체가 자기개별화 과정을 통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태를 일컫는다. 프란시스코는 이를 육화된 그리스도의 성취로 이해했다. 자연의 창조성에 대한 대 긍정이라 하겠다. 이는 대속에 대한 다석 생각과 정확히 일치된다. ‘하늘로서 하늘을 먹는다( 以天食天, 이천식천)’는 동학의 말처럼 다석 또한 존재하는 모든 것, 저마다 상이한 것들이 서로를 살리고-대속하고- 있음을 강조한 까닭이다. 일체의 존재를 예외 없이 利他自利(이타자리)의 차원에서 봤던 것이다. 타자를 위한 방식으로 각기 개별화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 육화의 실현이었다.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예수(십자가)가 중요하다.
이처럼 성 프란시스코는 선, 창조(피조물) 그리고 구원을 하나로 보았다. 그 하나는 결국 완벽한 가난에서 성취된다. 세상을 치유하고 완성하는 길이 가난에 있다고 본 까닭이다. 그에게 종말은 세상의 끝이 아니라 피조물 전체를 하느님 목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세상 밖이 아니라 그 안에서 말이다. 따라서 자연이 하느님 선을 드러내 세상을 유익(대속)하게 하듯 인간 역시 자신 삶을 가난케 하여 여타 피조물을 살려내야만 했다. 여기서 가난은 세상을 치유하고 살려내는 일로써 ‘그리스도를 행함’, 즉 십자가를 지는 일과 같은 말이다. 따라서 프란치스칸은 사적인 것을 결코 인정치 않았다. 존재하는 것 일체가 선물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일체 존재가 신적인 사랑의 대상일 뿐 필요나 소유를 위한 것일 수 없었다. 여기서 사적 가난과 사회적 가난은 상호 무관치 않다. 한마디로 ‘共生共貧’(공생공빈)의 가치를 적시한다. 가난이자 선 자체인 하느님 본성에 상응토록 세상 만드는 것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존재이유라 본 것이다.
지금은 본뜻에서 많이 빗겨났으나 수도 공동체 역시 이련 연유로 생겨났다. 다석 역시 이런 차원에서 개신교 공동체, 歸一園(귀일원)건립을 위해 상당한 사적 재산을 기부했다. 말년의 다석은 이현필이 세운 동광원에 머물며 강의하고 예배하는 일을 즐겼다. 수도 공동체가 가난의 실험장이라 생각했던 까닭이다. 이처럼 프란치스코와 다석은 가난이 인간과 자연을 복원시켜 세상을 구원하는 최적의 백신이라 여겼다. 그럴수록 하느님의 선(가난)을 자기 무화의 방식으로 살아 낸 예수들 ‘모방’을 너머 윤리적 ‘합일’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이는 貪瞋痴(빈진치), 즉 욕심, 분노, 치정과 결별할 때 가능하다. 이들 제거하는 일이 십자가였던바 이 과정이 ‘빈탕한데 맞혀 노는’ 일로서 구원이었고 우리 모두를 예수처럼 독생자로 탄생(A Child is new born)시키는 것이었다.
이상에서 살폈듯 다석의 ‘없음’은 프란치스코가 말했던 선(bonum)과 다르지 않다. 말했듯이 선이 곧 가난이기도 했다. 이 선이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 속에 내재(육화)했으며 예수는 이들 피조물을 완성시키고자 하느님처럼 머리 둘 곳 없이 가난하게 사셨다. 자신을 내어준 하느님처럼 가난(십자가)했던 예수와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들 인생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내재된 선에 근거해서 인간은 누구나 예수처럼 살아야 했고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는 교리화 된 주류 기독교의 속죄론(대속)이 자리 할 여지가 없다. 선행적 은총인 ‘그리스도 육화’란 개념 때문이다. ‘없이 계신’ 하느님이 우리 속에 바탈로서 내주하고 있다는 말이겠다. 이렇듯 없음은 善(선)이자 靈(영)이었고 세상을 존속, 유지시키는 이었다. 하지만 하늘 ‘바탈’을 지닌 인간은 기성불인 자연과 달리 외물에 혹해 자신의 선한 본성을 잃고 ‘덜’없는 失性(실성)한 존재로 전락했다. 한마디로 ‘盡物性’(진물성)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럴수록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예수(십자가)가 중요하다. 우리에게 갈 길(십자가)을 제시하며 그 길을 걷도록 추동하는 까닭이다. 길을 가다가 스스로 길이 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렇듯 이들 두 사람은 대속과 모방 차원을 넘어 예수와 하나 되는 신비적, 실천적 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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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사상과 동학, 이들은 서로 낯설까?
이정배 승인 2022.11.05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9): 다석과 동학
평소 다석의 글을 읽으면서 큰 물음이 생겼다. 불교, 유교의 경전을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기독교를 풀이하고 죽음과 부활의 뜻을 펼쳤던 다석 이었지만 정작 동학, 천도교에 대한 그의 언급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간혹 말씀이 있었으나 긍정적이기 보다 오히려 부정적 톤이 강했다. 이점은 그의 제자 함석헌에게서도 예외 없이 그대로 이어졌다. 심지어 폄하하는 내용까지 찾을 수 있다. 한글을 천문이라 말하며 그 뜻을 가르쳤으나 최초로 한글 경전을 갖고 시작된 동학을 낯설게 느낀 이유가 많이 궁금했다.
평소 필자는 동학과 다석 사상은 같은 뿌리에 연원을 두었고 동일한 줄기에서 서로 색깔만 다른 열매를 맺은 것이라 여겼다. 동학사상의 본질과 구조를 기독교적 언어로 재구성한 것을 다석 사상이라 여길 정도였다. 이런 이유로 필자의 궁금증을 풀고자 이들 두 사상의 공통기원과 사상적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썼던 적이 있다.<<없이 계신 하느님, 덜 없는 인간( 모시는 사람들 2009)>>. 2008년 세계철학자대회에서 발표했으나 논의가 많이 확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3.1선언 백주년(2019) 이래로 동학 연구가 활발해 지면서 필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짧은 지면이지만 본고에서 이 점을 체계적으로 적시해 보겠다.
서세동점시기에 대처했던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우리 것을 지키려는 위정척사와 서구 것을 수용하려는 개화파의 시각이 그것이다. 물론 東道西器(동도서기)와 같은 틈새의 논리도 있었으나 器(물질, 서구)에 대한 道(정신, 동양)의 우선성을 강조하는 점에서 본질상 위정척사파의 관점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동학 연구자들 중심으로 온전한 제 3의 시각, 즉 ‘개벽’적 차원이 회자되고 있다. 과거로의 회귀나 서구를 답습, 추종했던 것과 달리 독자적 근대를 우리 식으로 잉태했다는 발상이다. 우리에게도 기독교 서구와 다르지만 동학사상에 토대한 ‘개벽적 근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서구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으로부터 벗고자 하는 주체적 태도로서 숙고할 가치가 있다.
본 주제를 갖고 출판된 연구서적 -<<개벽의 사상사-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창비 2022)>>-을 참고하면 좋겠다. 물론 논쟁할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동학을 폄하 내지 무시한 듯 보인 다석과의 비판적 대화를 위해 본 논지를 일단 수용할 것이다. 동학에 대한 다석의 부정적 편견 이면에 다음 요인들이 작용했을 것이라 추측한다. 무엇보다 그가 기독교적 세례를 받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근대 기독교적 세계관, 개화파의 시각을 지녔다고 말 할 수 있겠다. 후일 정통기독교로부터 벗어났지만 기독교 –스승 예수론- 에 근거해서 사유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유불선을 통합시킨 歸一(귀일)사상도 결국 기독교적 색체를 강하게 띄고 있다. 다석 연구자들 대다수가 기독교 신학자인 것도 이를 반증한다. 다석이 천체 물리학에 남다른 관심을 지닌 것 역시 개인적 취향을 넘어 근대적 세계관의 영향이었다.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영성을 강조했지만 동시에 합리적 사유 또한 중시했던 까닭이다. 하여 비합리와 초합리 간의 범주오류를 범치 않고자 애썼다. 이점에서 전쟁터에서 주문을 외라 가르치는 동학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영부를 불태워 물에 타 마시면 죽지 않는다는 설도 수용할 수 없었다. 오랜 전통을 지닌 유교, 불교와 견줄 때 자생적 종교인 동학이 미신(비합리)처럼 여겨진 탓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一理(일리)를 지닐 뿐 全理(전리)가 될 수는 없었다. 씨ᄋᆞᆯ(민)을 강조했으나 민중 종교성과 접하지 못했고 ‘다른’ 세상을 찾는 개벽의 불온성을 수용치 못한 까닭이다. 이는 다석 사상이 ‘우익’ 민족주의 사유와 연계되었음을 보여준다. 주지하듯 해방 전후 공간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독립이란 목표는 같았으나 이르는 방법에 있어 입장을 달리했다.
민족주의가 계급적 사유에 냉담했던 반면 사회주의는 민중 모순에 둔감한 민족주의를 비판했던 것이다. 대다수 종교들이 민족주의와 결탁하여 사회주의와 맞섰고 이들 중심으로 나라가 세워졌다. 우익 민족주의가 대한민국의 건국 주체가 된 것이다. 이점에서 다석 역시 사회주의와의 연결점을 갖지 못했다. 이에 반해 동학의 경우 사회주의 경향성을 지닌 그룹과 인물이 적지 않았고- 물론 모두가 그렇지 않았으나- 폭력도 불사한 측면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다석은 물론 제자 함석헌도 미신성 및 사회주의 성향을 띤 동학에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살아생전 다석이 관계했던 사람들 면모에서 우익민족주의에 경도된 그를 살필 수 있다.(<<다석전기 류영모와그의 시대>> 교양인 2012). 허나 그럴수록 필자는 동학과 다석 사상의 관계성을 역설할 필요를 느껴왔다.
짧은 지면에 이들 연관성을 모두 적시할 수 없지만 골격은 밝혀야겠다. 필자는 다석 사상이 동학을 경유, 최치원의 풍류사상과 만날 수 있으며 누차 언급했듯이 <<천부경>>에까지 소급한다고 생각해왔다. 최치원의 난랑비 서문에 실린 ‘玄妙之道, 包含三敎, 接化群生’(현묘지도, 포함삼교, 접화군생)이란 말이 동학의 경우 侍(시)자를 풀이한 ‘內有神靈, 外有氣化, 各知不移’(내유신령, 외유기화, 각지불이)란 개념은 물론 다석이 언급한 계소리(하느님), 예소리(예수), 제소리(성령)와 내용 및 구조적으로 비슷함을 넘어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사상 모두가 天地人(천지인)삼재사상의 틀거지 하에 있기에 가능한 발상이다. 즉 하늘, 땅, 사람, 곧 삼재론을 펼쳤으며 특히 사람에게서 하늘과 땅이 하나(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가 되었다는 <<천부경>>에 토대를 둔 사유체제란 것이다. 따라서 이들 각각은 표현에 있어 다르지만 구조 및 뜻으로는 전혀 다를 수 없다.
한국 고유한 道(도), 風流(풍류)는 본질에 있어 <<천부경>>속에 담긴 天地人삼재론과 관계있다. 유불선을 품는 모체이자 일상에서 생명을 잉태하는 힘인 풍류가 바로 삼재론이 산물이었다. 하지만 풍류의 핵심을 멋(조화)에서 봤던 유동식과 달리 필자는 生(생), 곧 살리는 일(接化群生, 접화군생)에 그 본질이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接’이란 말이 包含三敎(포함삼교)의 ‘包’와 합쳐져 후일 동학은 包接 제도를 발전시킨 것이다. 최치원과 동학 창시자 최제우가 모두 경주 崔(최)가로서 家學(가학)으로 연결된 된 것도 이런 관계성을 뒷받침한다.
동학에서 말하는 내유신령은 우리들 속에 거룩한 영이 내주한다는 것이며 외유기화는 이 영이 우주만물 속에서 활동한다는 뜻이고 각지불이는 이들 생명의 영을 누구도 옮기거나 망가트릴 수 없다는 의미를 지녔다. 다석은 이를 순수 우리글을 사용하여 ‘계’, ‘예’, ‘제’ 소리로 풀었다. 계는 인간을 하늘로 이끄는 하늘의 소리, 예는 그곳으로부터 이어 이어져 이 땅에 까지 이른 말씀 그리고 제는 그 말씀을 만나 그와 하나 된 삶(바탈태우)을 일컫는다. 이렇듯 최치원, 동학 그리고 다석 사상은 형식적으로는 삼수 변화에 토대를 두었고 내용적으로는 ‘인중천지일, 곧 사람 속에서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는 사상이며 단순한 조화(멋)가 아니라 세계와 삶 자체를 바꾸려는 뜻을 담고 있다. 짧게 이야기 했지만 이들 사상 간의 골격과 맥을 잡아 함께 이해할 때 우리는 다석을 좀 더 발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동학의 민중성, 생명성이 다석을 통해 드러나길 소망한다.
Tag#다석#동학#최제우#유영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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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유영모의 귀일(歸一)사상 이정배 승인 2022.11.25
이정배 교수의 "내가 이해하는 다석(10): 다석과 귀일사상
다석 사상의 핵심이자 결론은 귀일(歸一) 속에 있다. 귀일, 그 말은 하나에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그 ‘하나’가 뭔지를 묻고 찾고자 지금껏 여러 말을 해왔다. 여기서 귀일은 통일과 많이 다르다. 상호 다른 것을 원만하게 조정하는 것이 통일이다. 이 과정에서 타협과 대충, 속임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귀일은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온통 하나’가 되는 길이다. 근원으로 돌아갈 때 남북도 하나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현상적으로 다양한 종교들 역시 귀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서구 종교다원주의와 다석 사상이 같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제종교가 하나인 것 이상으로 세상 전체가 정의로울 수 있다고도 확신했다. 마지막 글인 본고에서 다석이 정치적 이념과 종교들을 어떻게 하나로 엮었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필자의 책 <<귀일신학(신앙과 지성사 2021)>>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다석은 유교에서 말하는 대동정의(大同正義)를 ‘온통 하나’란 말로 풀었다. 대동은 크게 같아진다는 뜻으로 어떤 ‘-ism’으로 환원될 수 없다. 세상은 이런 큰 하나를 모르기에 편 나눠 싸울 뿐이다. 인간 속에 이런 ‘하나’로부터 온 소중한 것이 내재한다. 이 하나로부터 수백 수천가지가 비롯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누구나 ‘큰 하나’를 간직한 자신 속 깊은 곳을 굳게 믿고 이를 위해 자신을 거듭 비워야 옳다. 즉 전체를 품은 하나가 내주한 곳이 바로 자신의 ‘속알’(본성)이기에 이는 비울수록 커진다. 마치 모든 것을 채우는 허공, 곧 진공모유(眞空妙有)의 우주처럼 말이다. 다석은 이를 ‘속곧이 믿븨’란 말로 표현했다. 자기 속의 하나를 깨쳐서 그를 싹 티워 지속해서 성장시키는 일을 적시한 것이다. 인중천지일로서의 인간 자신을 자각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주지하듯 대동의 ‘大’를 둘로 나누면 사람 ‘人’자가 두 개 생긴다. ‘同’을 쪼개면 ‘司(판단)’가 되고 ‘正’은 ‘下’와 ‘止’로, ‘義’는 ‘羊’과 我‘로 파자된다. 이를 종합하면 의견 분분한 사람들이지만 옳은 판단을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온 판단을 받아 양처럼 묵묵히 그 뜻을 따라야 한다는 말뜻이다. 온통 하나가 된 세상은 이렇게 이뤄진다. 이를 위한 방편이 경신중정(敬愼重正)이다. 언제든 요지부동한 마음을 갖고 ’하나‘에 집중하라는 의미다. 생각과 삶이 나뉠지라도 다른 것 속에 늘 상 같음이 있어 ’큰 하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다석은 ’신종추원‘(愼終追遠). 큰 하나로 돌아가는 것(귀일)이라 불렀다. 온통 하나인 것이 내주했기에 차이가 있지만 서로 닮을 수 있고 그 하나 탓에 모두 옳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제사, 곧 예배의 본질로 여겼다. 결국 귀일 사상은 허공(빈탕)과 마음이 하나라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다. 절대는 본래 나를 떠나서는 존재치 않기 때문이다. 이 하나를 온전히 감(感)하여 지(知)하는 일이 사람이 되는 길이자 사는 이유겠다. 인간이 이런 절대(온통 하나)의 아들로 느껴질 때 누구나가 독생자가 된다. 그렇기에 다석은 예수나 나나 모두 독생자인 것을 강조했다. 다석의 멋진 말을 소개한다. “허공이 공간을 만들고 이 공간에 뜻을 명령하는 것은 시간이다”시자명야(時者名也). 절대 하나를 느낀 바로 그 순간을 일컬어 시간이라 한 것이다. 빈탕(절대 하나)의 활동이 자기 것이 되는 때(시간제단)가 자기 몸을 산 제물로 바치는 예배의 자리(공간)이기도 하다. 이렇듯 하나(빈탕)에 맞혀 살면 우리 마음을 빼앗길 여지가 없다. 신앙(믿음)은 자신 속에서 큰 하나를 찾아 그에 자신을 맞추는 일이다. 이것은 동학에서 말하는 시천(侍天), 양천(養天), 체천(體天)과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누고 쪼개진 세상만 알뿐 온통 하나인 그를 외려 배척한다. 그럴수록 다석은 귀일로서만 정의로운 대동세계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다석은 현상적으로 달라 보이는 종교들 간의 회통을 강변할 수 있었다.
동양적 기독교, 비케리그마적 기독교, 비정통적기독교라 불렸던
다석 신학은 아시아적 ’大孝기독교(론)‘라 불려도 좋겠다
부언하지만 개체는 그에 앞서 존재했던 전체에서 나왔기에 그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이 귀일 사상의 핵심이다. 유교의 추원보본(追遠報本)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귀일 사상은 전체와 개체의 관계를 중시했다. 전체로서의 하나는 비록 알 수없는 것이나(不測) 그곳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작은 것이 큰 것 속에 흡수 통합되는 러시아 인형 같은 통섭(統攝)이 아니라 마치 소금물처럼 형체를 없이하며 맛을 내는 통섭(通涉)의 방식으로 그렇다. 따라서 기독교를 변증한 종래의 서구적 논리들- 천주교의 존재유비나 개신교의 신앙유비- 과는 전혀 달랐다. 불측의 존재인 큰 하나(빈탕)가 만물 속에 천지인 셋으로 머물며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온전히 품게 했던 까닭이다. 이 셋은 오로지 사람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이 셋의 귀일처가 바로 밑둥(바탈)인 것이다. 이런 하나를 찾아 그와 일치되려는 것이 종교들의 할 일이자 본질이다.
비록 존심/양성(유교), 돈오/점수(불교), 칭의/성화(기독교), 시천/양천(동학) 등 개념적 구별은 있지만 궁극적으로 온통 하나와 일치한 삶을 목적하기에 이들 간 소통은 항시 가능하다. 다석은 이런 삶을 일컬어 대효(大孝)라 칭했다. 그에게 예수는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대효의 존재였고 우리에게 그 길로 나설 것을 청하는 존재였다. 석가와 공자 역시 이점에서 차이가 없다. 단지 다석은 예수를 통해 대효의 길을 가려고 했을 뿐이다. 이런 연유로 다음과 같은 등식이 가능하다. 지면 여유가 없어 구조만 밝혀 보겠다. 앞서 말한 계소리/예소리/제소리를 기준하여 이에 상응하는 종교개념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예수(십자가)/성령(기독교), 견성/고행/성불(불교),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수로지위교(修道之謂敎,유교), 시천주(侍天主)/양천주(養天主)/체천주(體天主, 동학). 말했듯이 이들 개념들 모두는 큰 하나(빈탕)와 일치하기 위해 자기 속 깊은 곳을 곧게 믿고 자신을 비우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속곧이 믿븨‘의 삶을 명시한 것이다. 이점에서 그간 동양적 기독교, 비케리그마적 기독교, 비정통적기독교라 불렸던 다석 신학은 아시아적 ’大孝기독교(론)‘라 불려도 좋겠다. 다석의 귀일사상은 한마디로 大孝의 종교성을 견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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