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이남곡.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이남곡. Show all posts

2025/12/14

조현 이남곡 인터뷰 5


공자 애제자 자공의 제자가 "자공이 공자보다 훌륭하다"고 하자, 
자공이 공자와 자신을 어떻게 비교했나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Transcript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을
텐데요. 공자는 다양한 사람. 그리고
또이 제자들에 대해서도
저는 공자라는 분이 참 신기했는데
우리도 이렇게 가까운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좋면 좋다 식으로 이렇게
그냥 두루뭉실하게 하지. 사람을 진짜
있는 그대로 얘는 이래 얘는 이래
이렇게 얘기가 참 어려울 것 같은데
공장님이 그렇게 얘기를 했더라고요.
야이야 이분 참 캐릭터 진짜 독특하다
이런 느낌이 가질 정도로 그랬는데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
아마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 공자가
아 나는 이게 이게 뭐냐 이게
중요해. 공자식이 어떤 그런 건데
아 공자는 새로운 용어를 잘 이렇게
만들지 않아요.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험 부대의 세수를
담는 시기에요.
어 그렇게 해서 내용을 아주 바꾼게
군자입니다. 그러니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이
그 그런 거예요. 군자와 소인이라고
하는 걸 이렇게 대비시키는데
이것도 어떤 어 고정된 상태가
아니에요. 공자 스스로도
인간의 진화를 생각하는 거예요.
어 예를 들면 어 이테면 이런 말이
나오거든. 어 소인은 이익에이 이리
이익에 받고
어 군자는 의에 받다 이런 말을
해요.이 하는데
어 예를 들어서 그러면 이익을
추구하면 안 된다든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음.
어,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면
방을
다원
이익을 지나치기 추가하다 보면 원망이
많다. 이렇게 표현해. 원망이 많다는
객관적인 사실이잖아. 이걸 이야기하는
거예요. 네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든지
뭐 이익을 추구해서 안 된다 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이익을 추구하면 원망이 많다는 말은
원망이 원망이 다른 사람이 원망하면
내가 행복할 수 있나요?
행복할 수 없지. 예.
그거 사실을 이야기하는 거 그 선택은
네가 알아서
예.
그래서 그런 상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지금 저 군자 소할 때
어 화위 부동 뭐도 마찬가지예요.
사람을 평가할 때 기준
근데 보면 재밌는게 그 기준 군자라고
하는 기준이 상당히 높이 설정한 사람
평가 기준이에요.
기준인데 그보다 좀 위에 있는게
있어.
군자보다 뭐 먹고 우회를 따지는게
아니지만 군자보다도 조금 높은 단계를
뭐라고 했느냐면 인자라고 그랬다.
인자. 인자. 어질인자. 예. 여기에
대한 것도 참 공자의 어떤 평가
기준에 대해서 물어보니까
그건 나중에 인에 대한 이야기하고도
연관되지만은
아주 평상적이고 쉬운 건 굉장히 쉽게
이야기해. 근데 깊게 들어가면
엄청나게 깊어요. 그래서
어 진짜 공자를 어느 정도 잘 아는
제자 예를 들면 아내나 자공 같은
사람이라야 공자의 기필 알아.
예.
누가 자공한테 자공의 그니까 자공의
제자야. 네.
이름 기억가 안 나는데 공자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제자의 제자 뭐
나의 차이가 많니까 이렇게 이제
나는데 자공의 제자가
자공한테 선생님이 그니까 자공이 당신
저 공자보다 훨씬 나았다 얘기 이렇게
하니까
그 자공이 말하는게 그런 말을 해.
나는
울타리 밖에서 보이면 다 보인다.
네가 보니까 좀 넓어 보인단 말이지.
인데 공자는 담장이 높아서 안이 안
들여다 보인다는 거. 이게 바로 이제
그 차이예요. 근데
인자를 이렇게 이야기할 때 누가
인하냐고 물어보면
글쎄 그 사람이 이런 건 잘해. 이런
건 아주 잘해. 잘하는데 과연 그
사람이나도가 말할 수 있나 하는 건
모르겠다가 대부분이야.
네.
부정도 긍정도 아니야. 진짜 그 그
모르게 보통 모르겠다 하면 부정적인
의미로 말할 때 있잖아요.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모르겠는데
하면 대체로 그 부정적인 이게 공자가
모르겠다 할 땐 그건 그런 표현이
아니야. 진짜로 모르는 거야. 그
사람의 그 깊이 인이라 하는 것이 그
그 말할 땐 굉장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데
가벼운 건 아주 가볍게 말합니다.
아욕인 사인지
내가 인을 원하게만 하면 그 인이
바로 온다.
이런 건 일상 생활했어요. 이게 예를
들면 좌측 깜빡이 넣고 있는
자동차한테
양보하기 위해서는 경우 있잖아. 왜
이제 그런 그런 거는 그서는 것만으로
그게 이루어져 그쪽에 이제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대단한 사람들을
놓고이 사람이 인한 사람입니까
물어보면 대부분은 무엇무엇은 대단히
잘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인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평가. 근데
인자보다 더 높은 단계가 뭐냐?
성자.
성인이요. 성인. 예. 그래서 대초로
이제 공자는 나름대로
그 인격 그 인격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음.
내면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유가
얼마나 진척되 있느냐라는 그
현대적으로 말하면 그 자유도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했지 않느냐 이렇게
봅니다.
예.
그러니까 그까 공자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는 뭔가 고정관념을
가지고 한나가 마음에 안 들으면 아
저 인간은 못 싸 이렇게 버리는데
공자는 그게 자질은 자질대로 인격은
인격대로 이렇게 따로 평가하는게
굉장히 독특하더라고. 그러니까 이제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 관포지교에
나오는 관중이라 인물에 대해서도
그 사람이 자질과 능력과 인을
불리해서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관정대에서는 이제 뭐 자로라는 제자가
황공이 경자 교를 죽였을 때 소홀은
따라죽었는데 관중은 따라 죽지
않았으니까 관중은 인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하니까 공자는 황공이
제율를 교합하는데 무력을 쓰지 않는
것은 관중의 공이 크니 그러니까
그 비록 따라죽진 않았지만은 나중에
좀 갈등을 소란스럽지 않고 나라를 좀
평화롭게
이렇게 만드는 그런 정도의 능력은
관중이 아니면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
그건
그인 이상의 것이다고 이렇게 굉장히
이렇게 평가한대 보고 야 공자의 사람
기준 그 평가가 너무 인을 강조하다
보니까음 인하지 못하면 저건 사람이
아닙니다. 이렇게 할 수도 있는데
공가 굉장히 그런 점은 어 상당히 그
따로따로 뭐 하나가 부족하더라도 다른
쪽이 괜찮으면은 괜찮다고 이렇게
평가하는 대목이 공자의 어떤 그 어떤
세심한음
세심한 대목으로 보여줬습니다.
관중에 대해서는 이제 그 공자가 그
당시 관중은 공장보다
1세기를 앞선 사람이야. 100년
정도 나쁜 사람인데
아마 그 당시에
가장 훌륭한 정치가의 모델로 됐던게
이제 관중일 거예요. 죽음 같은
사람은 이제 훨씬 그 전이고 그런데
관중에 대한 평가가
논중적입니다.
앞에 내가 몇 편이 정확히 안
드렸는데 관중을 물어봤을 때 대단히
이게 박해요. 공장의 평가가.
그 사람 아주 저 음
소인이야 소인. 근데 뒤에 나오는 몇
편에 나오는데 데는 공자를 그렇게
평가할 지금. 왜냐하면 권력 투쟁
과정에서
자기의 그 적대적인 쪽 적대적인 쪽에
포섭되거든.
네. 관중이 관포에 교라했으면 포수이
속해 있던 그 진영의 포수에서 그것
이제 그 재황공이야. 재황공의 이제
그 1급
그 저
어 산모가 되는 거죠.
그래 가지고 정치를 하는데 평화적으로
무력을 쓰지 않고
어 상당히 계획을 달성하고이 소위
춘초 오회 중에 하는 사람이 되게
만들었다는 거
그걸 평가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력을 쓰지 않고 계획을 성공했다.
일화가 그 논에 나오는 일화가 유명한
일화가 있죠. 백 백시라고 하는
사람이 300 뭐인가 뭐 그 저 개혁
과정에서 이게
예예. 저기 뺏겼어. 저 어 뺏겼
이게
그 저 관중의 개혁 과정에서 자기가
그 손해를 봤는데
죽을 때까지 관중을 원망하지 않았다.
예. 그만큼 개혁 주체의 어떤 그이
도덕성이라든지 개혁 주체의 그 공평
무사함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대인으로 평가하는
거예요.
그렇게 봐야 됩니다.
논어 전체를 이렇게 논에 연천하다는
이제 세밀하게 사람의 어떤 그
인간성이나 이런 것들을 착하게 규명해
주셨는데 제가 보기에는이 백규라는
부은
그 최고의
인물이다. 이렇게 이제 아 그니까 제
느낌에 왜 왜 그러냐면은
요즘에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도 그
결리 사이라는 말도 있듯이
중요한 일의 결정에 개인적인 이익이
되느냐 못 되느냐 이게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 국가적으로
미래에 이익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고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서
접정을내는 소인배들을 너무 많이
보다보니까
이게 이제 백규라는 사람은
관중이라는 라는 인물이 자기가 자기
것을 그렇게 많이 뺏사가 버는데도
불구하고이 사람이 천하의 정치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런 개혁을
단행했기 때문에 아 그 사람이 내
것을 비록 뺏겠지만은 관중은 지금
잘하고 있다고 이렇게 해 주는 사람이
요즘에 있겠느냐 말이야. 요즘 요즘에
정치 소임배들 하도 많이가 보니까
자기에게 털만큼이라도 손해를 보면
그냥을
갈고 붙어 갈고 전부다 나올 뿐이지
이런 어떤 이런 큰 인물이 이게
백규라는 인물이이
300을 가진 인물이라 그러지만은
3천억 3만을 가진 재우나 재화의
마음 쓰는 것을 보면 그 정도의
그릇으로 보이더라고요. 참. 아이
정도 인물이 참
너무 감동입니다.
선백 이런 거는 그 병업이란 말이
그런 건 아닌 거 같고 그 단위가
단위가 이제 그 그런데
사실은 그 서로 나는 그거를 저 뭐라
그러나 상응한다고 봐요.
예.
어 관중 같은 정치가
있고 거기에 상응하는 백시 같은
사람이 있어서 가능한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서로 서로 교호
작용하는 거죠.
예.
에, 내가 이제 뭐 가끔 사람들하고
이야기할 때 듣는 말이 있어요.
군자나 성인을 지향하는 이런
정치야말로 사실은 민주주의라든지
근대화를 늦췄다는 거예요.
음.
어, 오히려 사람이 불완전하다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시스템을 만드는 소인의
질서, 소인의 이게 맞다는 거야.
그게 자본주의고
예. 근데 민주의라고 보는 거예.
내가 그 말을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지만. 예.
그러나 그런 상태가 만들어낸 지금 저
정치와 경제 체제의 지금 현실이
뭐냐면
어 인류의 종적인 멸망가지를 바라보게
하는 그런 거대한 지금 모순앞에노
놓이 했거든. 그러니까 아까 이야기한
대로 자본주의와 근대민주의라는게
소인의 질서다는 거예요. 왜냐면
소인이라는 거는 사람들이 불완전하다고
하는 걸 인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여러
가지 시스템 만들어 놨는데
공연이 그렇지도 않은 건 말이요 저
군자이 무슨 저 성인이냐 하는 거
목표로 해서 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체주의와 집단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않느냐. 예.
이제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하나
이제 좀 더 나가야 돼. 더 나가야
되는 거는 소인과 군자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서 이렇게 사람을 분류하는
기준으로 보니까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거예요.
공자는 결코 그렇게 분류하는 기준으로
우회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제시하지
않았어요.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이해한 거예요.
진정한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인데
앞으로는 난는 이게 요새 군자라는
말이 별로 이렇게 이미지가 안 좋아서
사람들한테 좀 말하긴 그렇지만은 굳이
그 말을 표현한다면 이제는 소인의
질서 질서에서부터 군자의 질서로
넘어가야 돼요. 그 길만이
문명을 전환할 수 있고 그 길만이
인류를 지금 이런 존속의 유기로부터
넘어서게 할 수 있다. 예. 그래서
어떻게 보면 과감하게 그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제는 소인의 질서에 그
안주해 가지고 그런 질서 가지고 되지
않는다.
이제는 인간 자체가이 내면에서 자유
자유도가 더 커져 가지고
어 군자의 질소로 군자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민주주의
군자의 질서에 의한 경제 체제 이렇게
돼야 되지 않느냐. 예.
그래서 나는 유교가 아본주의
체제를 변정하는데 나는 그 돌아가면
공장의 정신으로 돌아가면 나는 상당히
에너지가 될 거라 봅니다.
좀 앞서 나가인데예.
그러니까 동아시아에서 나온 어떤
공자의 그런 질서를 오히려
동아시아에서는 너무 천박한 자본주에
너무 물들고 오히려 북유롭데가 그것을
조금 실현한듯한
어 그런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이 우리가 새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더 좋은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되다는 생각이 입니다.
==

2025/12/13

조현 이남곡 인터뷰 4 20251206

조현 이남곡 인터뷰 4 20251206

공자의 한글자 비법. 자기를 살리는 방법, 타인을 살리는 방법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157K subscribers
454 views  Dec 12, 2025

Transcript
증자는 공자의 어떤 개 정신적인 아주
개승자죠. 증자는 공자의 돈은 충과
서일 뿐이라고 했고
공자는 평생 실천할 만한 것을 하나만
든다면 그것은 서라고 했는데서 용서할
때 서
왜 그랬을까요?어서
[웃음]
서라고 하는 거는 사실은 이제
한문으로 용서할 서자인데
용서하고는 다르죠. 그 용서는 뭔가
아 상대가 잘못이 있지만 내가 그걸
좀 용서한다 하는 느낌인데 선은
그렇죠.
어 그런 거 아니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인 상태가 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실은
아 아집에서 자유로울 때 가능하죠.
그렇죠. 내가 틀림 없다든지 하고
또는 내 중심으로 생각하면
상대를 받아들이기가 어렵죠.
그 서가 돼야 이게 화위 부동이에요.
그렇죠.
화위부동이라는게 사실은 이게 사람
사이 관계에서 일종에 평화인데 이렇게
화합하는 거 평화인 상태인데
그 하나가 부동이거든요.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려고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상대를 나에게 동화시키로
한다는 건 내가 틀림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그 방향으로 상대를
끌어뜨리려 하잖아.
그렇죠.
그러면 그건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그래서 대표적으로 이제
소위는 어 동이 불화해. 근데
어 군자는 화위 부동이에요.
예.
이게 사실은 서죠. 서. 그게 서을
아마
좌우명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을
만하다고 이제 저를 이야기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선은 공자가 이야기를 해요.
기소 불욕 불시어의 네가 원하지 않는
바을
어 남에게도 시키지 마라 이렇게 이제
이야기를 하는데
충에 대해서는 어이 별로 말한게
없어요. 예.
뭐 공자 일반적인 그 말하는 방식인데
뭘게 자세히 설명하거나 정의하듯이
말하는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에
물어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하기도
하고. 근데
내가 우연히 그 어떤 걸 보다가 충에
해당하는게 뭐 보통 충하면
어 뭐 나라에 대해서 충성하는 거 뭐
이런 걸 왜냐하면 그 예전에 군주에
대한게 충이죠. 예. 어, 부모는
효고 근데
그런게 이렇게 선입관처럼 있어 가지고
현대인들이 충이란 말을 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게 젊은 세대일수록 어 그런데
사실은 충의 개념이 그런게 아니다
하는게 내가 논을 보면서 느끼는
거예요. 뭐냐면이
천이 뭘까 하고 나도 나 내름대로
이렇게 그 하다 보니까
14세기 15세기의 그 에르트 기독교
신비주의자
거룩함에 대한 정의를 해 놓은게
있어요. 그 세 가지를 정의했더라고.
하나는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그 거룩함의 조건이
해야 할 당위에 다음을 하는 거예요.
아. 두 번째는 아 그 일에 집중하는
거지. 전념 전념하는 거고
세 번째가 아주 중요하더라고.
기쁨이요.
네.
앞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는 의무나
뭐 이렇게 그런데 사는 거지만 해야
할 일에 다음을 하는 거는
자발성이
아하
진짜 마음에 하고 싶어서 자발 이게
자발성 전념 기쁨 에카로트는 거룩함에
대한 걸 이야기했는데 내가 쭉 그
논를 보면서 나오는 충이라고 하는
단어의 어떤 개념을 생각할 때
이게 이게 비교적 잘 들어맞는 말
같아.
예. 자발적이고 전념하는 거예.
전이라는 건 그에 몰두하는 거니까
소위 그 자기를 잃을 정도로 마
모라적인 어떤 그런 전념 상태가
충이야. 예.
근데 그것이 그다음 세 번째가 중요한
기쁨이야 돼.
요게 충이지 않을까? 그래서
적어도 이거는 충이라 하는 건 자기를
자기를 가장 잘 살리는게
충이고
네.
선은
상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충과 서가 어울려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 살게 되는
가장 중요한 등목이지 않을까? 아,
그 실제로 나는 협동조합의
어떤 어 가능성이라든지 중요성 같은
거를이 좀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협동하는 사람들하고 많이 만났습니다.
그동안에 주로 만나면서
그 이제 임문 운동가로서 만났을 때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는 춤과서가
바로 협동 운동이 성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등목으로 충과 서를
이야기해요. 그래서 아마 저는 그렇게
봅니다. 충과서를. 예. 그 예.
충과서에서
이제 충은 한자로 가운데 중에
마음심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제가
보기에는 이제 굉장히 중요한 거
같아. 그러니까 마음의 중심을
잡는다는게 자칫하면은
어떤 주체적인 어떤 고정관념, 자기의
주대 이런게 아니고 우리는 어떤
상처에 사로잡히거나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우울에
사로잡히거나 어떤 그런 것에 어떤
감정적인 것 하나의 편벽된 생각에
사로잡혀 가지고 완전히 거기에 푹
빠져 버리면은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리는데 어떤 사로잡히는 상태
사로잡히는게 이제 결국 그게 아집이
돼 버리는데 뭐 그게 사상이 됐든
철학이 됐든 감정이 됐든 그
사로잡힘에서
벗어나는게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제 그 그리고 마음의
중심을 그렇게 사로잡히면서 일단
벗어나면은 이제 서가 좀 쉽게 되는
서라는 것은 이렇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그 말을 받아들이고 또
듣는 건데 자기가 뭔가의 편견에
사로잡 잡혀 있으면 상대방의 말이
쉽게 곡회가 되고 오해가 되고
그러는데 이렇게 자기가 어떤
사로잡히면서 벗어나면은 어가 이렇게
자기가 어떤 옳다는 것에 딱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에서
좀 벗어나 있으면은 자유로운 상태
평안한 상태가 되면은 상대방이 있는
마을을 있는 그대로 그 말을 이렇게
수용하는 입장받고 생각하는 이런 서의
자세가 좀 더 쉽게 되지 않을까 이제
이런 어 생각이 듭니다. 우리 이남욱
선생님은
그 삶에서서 늘 삶의 태도 자체가
서가 잘 되시는 분이에요.
아 그거는 잘 모르는게
이제 그렇게 하려고 부담히 노력하는
사람이죠. 예. 사람인데
그 이야기하다 보니까
아 사실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내
기억에 이렇게 첫도 오르는 사람이
셋이에요.
이제 하나가 공자가 가장
어 자기 지위로 생각했던 유일한
제자가 안회죠. 예.
그다음에
아연은 굉장히 가난한 사람이뭐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쌍벽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공입니다.
자공. 음. 청자나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이제 논창 과정에 뭐 이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마이 상당히 좀
하는 거 같지만 실제 공자 시대 논을
보면은
예.
공자 시대는 자공 아 이제 안회하고
자공이 쌍벽을 잃어요. 어 자공은
부자야. 상당한 부자로서
공자 학단의 그 물질적인 그 기초
규척을 제공하는 사람인데이
사람도 대단한 사람이죠. 대단한
사람인데 어 자공이 한번 자공일
거야. 그 공장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야 기소 무시어인
내가 원하지 않는 걸 다른 사람
시키지 않겠다 했더니 공자 말이
너는 아직 그럴 만한 저게 못된다라고
얘기해. 그래서 예 사실은
공공자님도 굉장히 정론 집필이 찍는
소리를 하시 그 아 그럼 아 그 저
무색깔 정도로 해 버린다고 이럴테면
뭐 저 자로가 아이 어 삼 뭐삼군을
뭐할 때는 뭐 누가고 하겠습니까 너는
아니야
그렇죠 너처럼 맨손으로 호랑이나
때려잡으려는 만용이나 부르는
인간하고는 같이 위태로 같이 하면 그
하여튼간에 그런 식인데
그 이야기들 들어서 내 이야기 하기
나도 그렇게 알고 노력할 뿐이지 그
참 쉽지 않습니다. 아 쉽지 않아요?
아니이 선생님은 잘하시고 또이
선생님도 공자님 못지 않게 찍는
말씀을 해 놓으셨더라고이 대목에서
뭐라고 하냐면 협동조합하는 사람들이
제일 협동적이지 못하고 민주화를
부르짖는 인간이 독재적인 인간이 많고
또 경천 공감 프로그램을 이렇게
한다는 인간들이 경천 공감이 안 되고
그래서 속이 엄청 찔리더라고. 저도
이제 경천을 그 강조하는 나차람
프로그램 하는데 그래서 이제 저하고
집에서 모시고 사는 분이 아니 경감
그렇게 강조하면서 경청 공감 안 되고
있잖아 지금. 저도 이제 집에서
이렇게 당하고 사는데이 책에서도
이렇게 탁 또 아픈 대목을 확세 놓고
아이 또 예리하게 내가 많이 경험을
해 봐서 알아요. 내가 경험하는게
뭐냐면
공동체 운동이나 협동 운동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보니까
그것이 좋은 거거든.
네. 그게 좋은 방향이니까 하는데
그 좋은 것이니까 하는데 그 대신에
그게 뭐라면 거기에 대한 아집이
강해집이 강하다고 하는 거는
소통이 안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지
않습니까? 왜냐면 자기 성경에 틀림
없거든. 실제로 협동 운동을 하건
공동체 운동을 하건 마을 운동을 하건
여기 가장 중요한 거는 소통인데
그러니까 그 그 좋은 가치들이
머릿속에 있는데 실제 자기
성격상으로는 아집이 강한 거예요.
근데 처음에 내가 그게 좀 꽤 아 꽤
심하다 보여튼간에 좀 어 좀 난처
거야 실제 왜냐면 많이 내가 그거 좀
봤으니까 그 많이 봤찬데 앞뒤가 다른
모습
예 근데 그거를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다라고 하는 생각이 있어 왜냐하면
머릿속에서라도 아 이게 좋은거다 하는
것만 해도 사실은 좋은 거예요.
근데 다만 그것이 체득이 안 돼
있어. 안 있고 그걸 달성하려고
나가는 그 실천을 하는 데는 장애가
돼 버려요. 성격적으로. 그 성격이
뭐냐면 내가 생각하는게 틀림이 없이
옳다.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게
있기 때문에 사실 이게 소통의 장애가
되지. 그래서
어 나는 좀 그걸 아주 비난만한 쪽에
사고는 내가 버렸어요. 아 저렇게
생각하는 거 말도 훌륭해. 음.
아, 진짜이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그게 그 진짜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저도
이제 경청 공감을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내전에 그런 것이 안 됐을 때
내가 옳다는 이렇게 생각 속에 빠져서
살 때에 나의 그 심리적 공함과 그
피곤함, 피폐함을 너무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아직도 잘 안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강조하는 거지. 네가
하지도 못한 것을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이제 비난을 물론 받을 수는
있지만은 내가 스스로 안 돼서
힘들었던 삶을 성찰한 결과 아 그게
절실하고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그래도
조금 그걸 열고 보니까 더 편안해지고
그런 걸 이제 깨닫는 것이지 그걸 또
완전히 정론 직필로 또 너도 안 되는
것을 그렇게 그럴 그럴 그럴 일을
예 감사합니다. 입니다.


2025/12/11

조현 이남곡 인터뷰 3 20251206



Transcript 3

공자 사상의 핵심을 보통 인이나 예로
하는데요.
그런데 이제 공자는
흥어이 이벌의 성어학이라고 해서
시에서 시 포에서 일어나서 악으로
음악 음악의 악 악으로 완성된다고
했는데요.
보통 이제 성인 철학자가 공자님처럼
감성적인 신하 예술 음악을 중시하고
강조한 인무를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거든요.이를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그 점이 이제 사실은 그 뭐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해 나가야 될 부분이
하난데 무지의 자각에 바탕을 둔 연찬
그리고 그것에 바탕으로 둔 호학 학
배우는 걸 배우길 탐가는 걸 좋아하는
거 이런게 사실은
공자한테는 인의 예지보다도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예.
대부분 그 점에서 이제 아까 이제
우리 저 조선생이 지금 말을 하셨기
때문에
인의 예지하고
어 아까 그 공공
공공 예라고 하는 게
여기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어떤 유학자보다도 내가 이제 물론
과문이니까 많이 못 봤지만 어떤
유학자보다도 더
아주 내가들을 때 아 이거 핵심을 잘
짚었네라고 하는 표현을
내가 원불교 대경에서 발견을 해요.
원불교의 소태산 대종사가
이야기하는 가운데 아마 유학자 유교
사람하고 대화하는 과정일 텐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 뭐냐면
허무멸을 허무멸 이게 이
어 실제로 비공짜가 나오는 건
노자에도 빌공자가 안 나옵니다. 노자
도덕경에도 한자도 안 나와요. 공공
공사상이 없어 거기는.
유 유학에 유교 쪽에도 공자
이야기에도 공짜가 별로 안 나와.
필공자가 안 나오는데
내가 기억하기엔 그 아까 9편 7장에
공공이란 말이 나오는데요
말을 어 허무멸이라고 하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면 공연을 불교에서 말하
저 소태산 대종사의 표현들 하면
대중사가 급발을 표현하더라고 공을
아니 허무 정멸을 채로 하고 체 몸
하고 인의 예지를 용으로 합니다.
용어로 삼는다.
음.
아주 내가 그 말 듣고이 엄청난 이게
느낌 모아요.
정확하게 정확하게라는 건 내 탄이니까
다른 사람들 다른 생각하겠지만 내가
볼 때는 핵심을 질렀어.
근데 이게 사실은 논에도 나옵니다.
어 그게 노 공자의 직접적인 이야기는
아니에요. 아니고
6원 6패라는 말을 해요.
음. 6원 6패 여섯 가지 이에
대해서 이게 덕도 되지만 이게 폐가
될 수 있다는게 6원 6패인데 그게
그게 전인
예지 같은 것들이 다 덕인데이 덕이
무엇이 뒤되지 않으면 하는 말은
호학이에요. 불호학. 만일에 배우는
걸 좋아하지 않은 홍악을 하지 않으면
다 패단이 되는 거예요.
그니까 이거 이게 바로 어 어떻게
보면 아까 초태산 저 박중민 선생이
이야기하는 핵심이요. 음.
어. 허무 정밀이란 표현이 좀 조금
우리 마음에 좀 아 닿지 않았다는
오히려 공이란 말이 그 좋았는데 공을
채로하고 음
인위 예지를 용어로 삼는다는 이제
이런 그거가 이제 하나 생각이 되고
아까인가
예에 대한 는데
지금 말씀하신 그 흥어시
입을래
성어랑
예예
일반적으로 다른 성인들한테는 볼 수
없죠.음 음.
근데 실제로 공자는
어 인간의 어떤 감정에 일어남
주로 상당히 보면 뭐 대단히 이성적인
성력은 주로 그 대단히 이성적인 근데
공자는
어 인간의 어떤 감정이라든지 이게
정서라든지에 대한 탁월한 통찰이
있어요.
그 그게 지금 그 문장 상당히 어려운
문장입니다. 나도이 이게 흥원이
이번에 성어하기 이거 어떻게 어떻게
봐야 되나 하는 거 이게 잘 들어오지
않았어요? 처음에 그러는데 이
쭉 공자 이렇게 논를 몇 차례 쭉
보다 보니까 이게 이제 들어와 사람이
어떤이
감정이 일어나는 것에 온초적인 감정을
나는 시라고 표현한 거 같아.
네.
온초적 감정이야 이게. 보면 아 근데
대초로 그 어 히로의약도 있지만 내가
볼 때는 그 원초적 감정이 뭐냐면
아름다움 같아. 예.
아름다움에
대한 감 그거야이 저 예 일어날 때
이게 시야 그러니까
그때 뭐 식경이지 뭐지 하는 걸 많이
예를 들어서 시를 모르면 뭐 하는
말을 제자들한테 많이 이야기해 시를
모르고 어떻게 하는 말은
그 사람의 어떤 원초적 감흥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 이런 것들이
일어나게 시인데
어 시 처음 일어나는 감정은
거치어요. 음
거칠다고 이러는 감정이 거칠어
거칠어서이
거친 걸 그대로 해 가지고는 내가 볼
때는 공자가 생각할 때는
이상적인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건
조금 어 그대로 안 된다. 그게
입을래야. 입을래. 근데 여기서
얘는요
얘가 또 이게에 뭡니까? 아, 공자가
아, 그 과거에 공자 이전에 여러
가지 사상 여러 가지 이런 부분들을
어 내용을 바꾸고 바꾸고 확장하는
걸 해요. 그게 바로 헌부대 세수를
담는 방식이 하난데 하나가 군자고
군자도
내용을 바꿔 버려. 군자라는 건
사실은 대단히 그 신분제 사회에서의
위계 질서를 나타내는게 군자
아닙니까? 요 소위 관료 지배 계급을
나타내는게 군자야. 임금이 아들이라는
건데 내용을 완전히 벗어버려. 내용을
그 그런게 아니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군자다라고 이렇게 바꿔
버린다.
또 하나가 예입니다.
보통 예하게 되면 그냥 딱딱한 예의
범죄 이미 굳어져 있는 예의 범죄를
이야기하는데 공자는 이걸 확장해
버려요.
음.
아름다운 인간의 관계 아름다운 질서를
예로 합니다.
극기 복리할 때 얘가 바로 그예요.
네. 아름다운 인간 실수인데
적어도 인간이 일어나는 어떤 온초적인
어떤 그런 감흥을 예로서
다시 말해서 아름다운 질서를
향한 인간의 어떤 그런
그런 것으로 이렇게 좀 정제되지
않으면이라는
뜻이 이래예요.
아 그렇게 보여 나한테. 그리고데
마침내
그게 완성으로 나타나는게 음악입니다.
흠. 이건 다 요새 아주 현대
현대하고 통화하는 공자의 감각 같아.
예.
요새 보세요.
예.
음악이 지금 얼마나 지금 뭐 어 내가
가끔 그 그런 이야기 저 하는데
요새 인무운동가 뭐 철학가들 나와서
100마디 하는 것보다
어 가수가 어 이렇테면 트로 말하면
임영웅이가 한번 노래를 하면이
사람들이 감성을 깨워버려. 어 근데
거기에 이게 이게 이게 중요한 거야.
거기에 내용이 담기는 가사 가사하고
어떤 음률 음률 자체가 이게 적어도
어 어떤 인간의 보편적
그 지향을 담올 수 있어야 돼이
얘야이이 현대적으로 말하면
어 요새 또 그 저 임영보다 더 요새
뜨겁게 되는게 저거잖아. 음.팝 데몬
헌터스
그 나도 그 봤어요. 봤는데 어
솔직히 나는 감각은 트로트가 더 맞아
살펴봤는데
그런데
굉장히 귀중한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게
지금도 근데 공자는 그 성어학이라고
하는게 나는
어 요새는 또 저 실제로
이론으로도요. 아 저 정치 이론이나
뭐 사회 이론으로도 정동 이론이라고
하는게 상당히 각광을 받습니다. 뭔가
하면 인간은 감동을 해서 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실제로 일이 안
이루어져. 정동이야. 정동.
근데 그런 면에서 본다 그러면 어
어떤 성인보다도 어 공자는 그런면
뛰어나다고 보여지.
그렇죠. 그러니까
자 공장님은
우리가 이제 예전에 예도 조선 시대
어떤 성리학의 어떤 보수의 질서를
세우는 그런 예만 우리가 그 굉장히
꼰대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장유의서 뭐 어 사고리충 뭐 같은
부부 유별 이런 식으로 남녀 차별 어
또 뭐 윗사람에 대한 또 충성 하여튼
이런 거만 굉장히 예를 예로 알고
있는데 공자의 본질은 은 지금이
책에서도 우리농선님께서
얘가 서로의 관계 사이 좋음 쪽으로
아주 우리 현대적으로 굉장히 공자의
어떤 핵심적인 예를 풀어 주셨는데요.
그러니까 또 이렇게 더군다 어떤
감성적인 부분은 제가 보기에는 공자에
대해서이 부분을 사람들이 지금 엿목을
알면은 공자의 매력에 정말 엄청나게
빠졌다. 그러니까
저는 이제 예를 들면 예수님 같은
경우는 굉장히 뭐 격동적인 것도 있고
엄청난 사랑이 넘치고 정의를 세우는데
어떤 주한점을 줬어 뒀다면은 또
부다 같은 경우는 이제 고통의 소멸에
대해서 엄청나게 이렇게 중점을 두다
보니까 그 얘기를 하다 보니까 또
출가자들 이후에 전문 수행자들에게
대부분의 설법을 하다 보니까 어떤
감성적 적인 면은 상당히 거의 배제를
했거든요. 감성적인 면이 드러나는게
거의 없는데
이제 공자님의 경우는 굉장히 이렇게
감성적이에요. 너무나 어 이렇게 있고
그래서 아까 뭐 대중경 말씀도
하셨지만 저는 이제 공자님의 에의에
관점은 조금 그것과는 다른데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제 허무 정멸로
보기보다는
그 이제 운물교회에서도 저는
유무상이란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데
이제 물러설 때는 무지만은 유로 다
드러나듯이 우리가 이제 사랑하고
미워하고 뭐 이렇게 하는 일체 어떤
감성적인 것이 원래 아무것도
없다기보다는 이제 불교적으로 보면
연기론 쪽으로 보면은 단지 어떤 조건
그 상황에서만 미움이 있는 것이지
연구적으로 항시 내 미움이 고정적인
형태로 딱 가시와 어떤 철퇴와 창이
내 마음속에 항상 유지돼 있는 것이
아니고 미움이라는 것이 증심이라는
것이 갈등이라는 것이 그 항상 조건에
의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조건이
해주면 그 자체는 공이고 그건 자체는
무고
그 때문에 이제 유무상통을
다 넘나들면서
그것을 무라고 하기보다는 그렇게
카탈스 하는 그런 감성적인 것도 우리
삶이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서 시도
쓰고 노래도 부부 부르는 것을 아주
배태하기보다는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감성들을 이렇게 공자님께서
이렇게 했다는데 대해서 현대인들의
감성과는 너무도 이렇게 딱 어울린다.
특히 가를 특히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나이 공자님의
공장님이 거의 매일 노래를 했다 그
매일 노래를 했다 할 정도로 감성적인
분인데
야 요즘 한국인들의 정서에
굉장히 부합된 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그래 그 아 참 재밌어요 그게
공자 스스로가 상당한 정도 수준의 에
음악에 대한 초회가 대단하셨죠?
대단했어. 대단하고
자기도 악길 잘 다루고
그 저 자로가이
나오는 이야기데 자로가 한번 공장이
있는데 와서 그 설이라 악기 아마 그
검은고 비싼 거 뭐했는데 그걸 하는데
어떻게 네가 감히 이런 걸 하느냐
하고 나
아 잘오라 하는 제자는 사실은 보면
재밌는 제자 중에 하나야
스스름이 없이 그냥 공자하고 나의
차이도 제일 적어 아홉살 차이밖에 안
나 근데
공자와 제자들은 보 40 몇 살
차이나는 청년들하고도 막 그걸
하거든. 예제 그
어 제일 그 이제 그 허무 없이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까 너 너 같이
그렇게 저 그런 정도 아기 하는 놈이
어떻게 우리 집에 와서 하느냐 하고
나무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공자가
그 아 그리고
어 그 아까 이번 애하고도 관계되는
건데
순임금이 만든 음악을 제일 좋아했어.
그러니까 그게 돼 있는 거야.이데
네.이 그 인간이 그 추구해야 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질서 안에 들어
있는 거예요. 그게 순임금의 음악을
듣고는
뭐 석달 동안인가
고기맛을 몰랐다고 할
소라는 음악을 듣고
그게 소화가 바로 이제 아마 순임금
거 그 그런 그 그런 식인데
내가 요새 그 좀 지난번 우연히 무슨
방송을 보다 보니까 아 그 말이 좀
그 연결이 돼서 하나 생각되는
거예요. 송창식.
네.
우리 나고 봐 비슷할 거야. 나이가.
송창식. 송창식이 KBS 사는 거
있어. 그
부의 거 그게 나와서
하데 마침 그때 송창식이 노래를
부르는 날인가 하는 노래를
이제여 가수가 송창이 노래 하는데
부르는가 하는 걸 박정현이가
불렀다고.
아하. 아 사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한 사람이 박정현입니다. 예.
근데 박정현이 콘서트 한번가 보는게
죽기 전에 하늘이
버디스
버디스
아 버
박정희 노래를 듣고 송창 씨가 딱
평을 하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고. 내
정확하게 표현을 안 되는지 모르는데
요새 음악을 보면 자기가 볼 땐 너무
그 표현이 그래. 그게 좀 거칠다는
거야 이게. 근데 뭔가 음악의 표준이
있어야 될 거 표준이란 말을 하거든.
표준 표현이 정확한지 내가 기억을
못했는데 근데 박정희한테 최대히
찬사야.
나는 박정희를 볼 때 그 표준을 보는
거 같다는 거예요.
아하
그 내가 그 말을 듣고 송창식기도
굉장히 마음에 들더라고.
그 이럴 테면
예,
지금 음악
뭐 뭐야, 케팝 데모넌헌넌터스 같은게
지금 세계적인 각각을 받고 있지만 더
앞으로 어 하려고 그러면
세계가 지향해야 될 예,
세계가 지향해야 될 아름다운 질서를
그 안에 담을 수 있어야 돼. 이것이
아마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이런
우리 공장한테서 크게 배우는 겁니다.
예.

조현 이남곡 인터뷰 2 20251206

조현TV휴심정
2,139 views  Dec 8, 2025
===
오늘은 특별한 분을 뵈러 전북 익산에 왔습니다. 저와는 수십년 인연을 맺고 있고, 제가 존경하는 이남곡 선생님을 뵈러왔습니다. 
이남곡선생님이 무려 천페이지에 달하는 ‘논어를 연찬하다’는 책을 냈습니다. 한문만 하시는 분보다, 보다 폭넓은 시각, 현실적인 시각과 인문적 시각을 통섭해 낸 책이어서 저도 논어를 참 좋아하고, 많은 논어를 읽었지만, 백미로 꼽을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남곡 선생님은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민주화운동을 하며 옥살이도 하시고, 1970년대엔 농촌지역에서 교사를 하며 교육실천연구회 활동도 하고, 법륜스님이 정토회 가장 초기에 설립한 불교사회연구소 소장도 지냈고, 1994년부터 8년은 경기도 화성 산안마을 야마기시실현지 공동체에서 무소유공동체 실험에 동참하시면서 2004년부터는 전북 장수에 정착해 연찬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서 연찬을 이끌어오고, 그 이후 익산에 머물면서 인문운동가라고 활동하고 계십니다.
 2010년에 세상을 떠나신 부인 서혜란 여사님은 여성민우회 창립을 주도한 여성운동, 생협운동가였지요. 20여년전 저도 야마기시에 어린 딸을 데리로 자주 놀러가곤했는데요. 그 때 이남곡 선생님과 서혜란 여사님이 참 다정하게 반겨주셨지요. 
 이남곡 선생님이 17년전 논어에 대한 첫 책. 즉 이번 책의 원조격인 원고를 제가 보내서 한겨레출판사에서 ‘논어-사람을 사랑하는 기술’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었지요. 
 이남곡 선생님께서 우리 시대에 남겨준 정신적 보배인 ‘논어를 연찬하다’를 가지고 연찬의 자세로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조현TV 휴심정

===
Transcript 2

그나욱 선생님께서 22년 동안 공자와
함께 살았다고 해도 다름이 없는데요.
공자의 사람됨을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어떻습니까?
어,
[박수]
내가 이제 아마 예술 세 살에
처음으로 논어를 보게 돼요.
왜냐하면
뭐 저 조선도 알다시피
내가 그 당시 어떤 사회 피역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공자에 대해서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겠느냐 하는 거는
팀자이 가지죠. 예전는 우익의 대부
아 보수 반도반도
사상적 원조 정도로 이제
보고 있었는데
그래서 내가 그 논를 볼 당시에 그
세상에 나왔던 책 중에 하나가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이런 책이 나와
나올 정도에 있어요.
그렇죠. 그 100만 불 이상 판 책
논에 대한 책이 또 엄청나게 막 저
기초로 쏟아질 때었었는데
내가 논를 접하게 된 거는 당시 이제
장수로 이사를 해 가지고 저 장수에
정착을 해서
내가 정착하다 보니까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 뭐 이제 장석에도
있지만은 전주라든지 뭐 이렇게 좀
가까운
몬이라든지 이런 곳에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자연히 이제 그 여러 가지
우리가 같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들이 마련해 말
자연스럽게 됐어요. 예. 사람들이 뭐
모이게 되는데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이게 소통이 안 되는 거야.
이해 관계까지가
다르지 않지 뭐 귀농한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사회 운동하는 사람도 뭐
있는데 그런데도
어 생각이 다르면 이게 소통이 안
돼. 그래서 이게 사실은 하나의 그
단적인 어 그런 현상이죠. 우리 이거
지금 현재 지금이이 뭐 극단적으로
서로 이렇게 적 뭐 적대하고 증화하고
하는 이런 평가름의 이런 퇴성이
나타나고 되는 그
근데 그래서 아이 이렇게 돼서는 좀
서로 소통하기가 힘드니까
무언가 성인급의 사람을 하나 앉혀
놓고
같이 좀 이렇게 이야기 해 보면
어떨까 해서
사람들한테저 우리 한번 성인을 한번
누구 안혀 놓고 한번 이야기 해
보자. 그래서 했더니
어 성인하면 또 오른 사람들
있잖아요.서 이제 석가지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을 안쳐놓더라도
의견이 다를 것 같아.
불교를
저거하는 사람 믿는 사람하고 또
반대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렇죠. 그렇죠.
예수님을 안쳐라도 예수님 마찬가지야.
예수님 안쳐라도 또 이게 제일 만만한
사람을 골라보자. 이건 누가 누가 막
그냥 요구를 하고 뭘 해도 예예.
별로 그 뭐 그 괜찮은 사람 딱
공자야. 그 당시에 왜냐면 공자 이미
막 비난을 많이 받고 있거든다.
그리고
어 우리나라에서도 사대 종교에서도
빠져버렸어.
유결하는 거. 그러니까이
뭐 권력이 없는 거야 이게. 예.
그래서 앉혀 놓고 해서 저도 뭐 큰
기대 안 하고 처음 보니까 사실
이렇게 보다 보는데
어느 순간이다 보니까 점점 공자의 그
진수가 이렇게 나한테 이게 뭐 내
시각이죠. 내 감각이지만 보여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마 내가 주자 승리학에
바탕을 체계적인 학습을 했던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았을게 보이는데
그 보이는게 보이게 했던 요소가 내
자신의 경험들이에요. 변역 운동에
대한 경험들 그리고 그 저 어 감옥에
서였던 성찰 그 나와서 어 이게
불교사 연구소에서 같이 탐구하던 거
그리고 하나 더 나가 가지고 실질 해
보고 싶어서 무소위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거 했던 연찬 이런 부분들에
의해서 공자가 하는데
아마 그런 면이 아마 나중에 이렇게이
이런 책을로 나옵니다만은
어 그중에서도
어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내가
뭐 뭔가 어떤 걸 발견했을 때 그런
느낌이 있잖아. 아 그런 느낌이 있던
문장이 하나 있어.
그죠? 어허
그것이 전체 노는 문장 가운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별로 별로 그렇게 흘러
버리는 문장인데에
노노 자한편 이게 9편이죠. 9편
7장에 나오는 문 예
어 말은 간단합니다. 내가 아는 것이
있는가? 아는 것이 없다.
아하. 아 무지야 무지야.
이게 내가 이제 한 분도 별로 내가
공부해 본 사람이 없지만 내가 논어
보면서 이제 한문도 더듬더듬
문법도 이해하기도 하고 하는데
무지 야야야 야 야라고 하는 거는
상당히 강한 표현이에요.
예. 에 호라고 하는 거는 좀 강한
표현이 아니고 뭐 그거는 뭐 좀 질문
비슷하게
약한 표현인데
야하는 상당히 강한 편현이에요.
무지 무지야 이거
무지하고
그다음에 하는 말이 그런데 그런데라는
건 내가 이제 좀 고친 거고
어 누구라도 와서 물어보면는게
유비부
문어 비부라 하는 거는
별로 볼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요.
아주 저 똑똑한 사람이라든지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비부
누구라도 와서 비부 비부가 어떤
비부가 나한테 물어오면 유비부 문어
물어보면
그다음이 재밌어요. 요게 요게요
해석이
아마 일반적인 논의 해석하고는 많이
다를 겁니다.
공공여야란 말이 나와. 공공여야
빌공자가 두 번 공공여야
텅빈서란
말이에요. 음
텅빈돼서 해 가지고 그다음에 나오는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른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그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을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그니까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내가 그 양끝을
두들겨서이 한문으로 말하면
아고기양단.
음.
고는 이게 두들긴다는 게
내가 그 양끝을 양단을 두들겨서
갈런
음.이
갈인데 끝까지 끝까지 밝혀 보겠다.
끝까지 밝혀 보겠다.
예. 이게 사실은 평 이게 보통
논어에서는이 문장 논어 자한편
아 9편 7장 7장에 나온이 문장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요.
대수럽지 않게 넘어가는 것 중에
상당한 해석이 어떻게 하는가 하면
무지를 공자는 말이지 스승 중에
스승으로 알려 준 사람인데 무지야
했거든.
겸손한 표현이다.
아 상당히 그렇게 봐요. 겸손한
표현이다. 겸손한 표현이고 그렇게
보다 보니까 무지하고 뒤에 나오는
거는 뭐냐면
간언을 아까 양쪽 끝을 두들겨서
끝까지 밝혀보겠다는 갈 갈을 갈을
어떻게 하면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렇게 나와.
그러니까이 이렇게 해석하는 거 자체가
얼마나 모선되는지 자체를 의식을 못
해. 앞에는 무지라고 했는데 뒤에는
가르치겠다. 왜? 공자는 스승 중의
스승인데
스승이 이렇게 무지라고 하는 건
대단히 겸한 표현이야. 아 그러니까
앞에는 무지를 그렇게 해 놓고 뒤에는
가르치겠다.
천만해. 전혀. 그이 나한테는 그게
바로 들어오는 거예요.
왜? 연차이라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까
연천이라는 걸 내가 저 실제로 해
봤기 때문에
공공을 대부분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텅 비었다는 걸 앞에 비부를 수식하는
말로 해.
아무리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이거
아무리 멍청하고 텅 빈 사람이 와서
물어봐도 나는 끝까지 양쪽을 두들겨서
끝까지 가르치겠다.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죠.이
말이 안 되는 해석을 대부분 그렇게
하고 근데 나한테는
공공이 비을 수식하는게 아니야.
음.
공자를 수식하는 말이요.
내가 텅 빈 상태에서
야방시 전차는 해 보셨잖아.
영위에 선다는 그러니까
영유에 선다 핵심적인 거예.
예. 그거를 어 그렇게 해서 그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아닌 영의 영의
서서 제로
일체 제로 베이스에서
그 말은 뭐냐면 무지를 자각한
상태에서라는 말이야. 예.
그런데 그 말을 또 사람들이 이렇게
잘 해석 못 하면 그럼 내 내가 알고
있는 걸 다 버리란 말이냐? 버리면
안 돼. 버려 가지고 어떻게
파이칩니까? 버리라는게 아니고
내가 인식하고 있는 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감각일 뿐이고 나의 판단일
뿐이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틀림
없다라는 생각이 없는 거예요.
이게 영예요. 그니까 무지를 장악한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그리고
무지야 해 버리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죠.
불가지론이요.
알 수 없어. 그건 나요. 불가지론
아니면 이런들 어려 저런들 어때리
회의론이 여기에 빠지잖아요. 이게
연찬 정신이거든. 치열하게 탐합니다.
어떤 바탕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나의 감각이고
판단일 뿐이지만 하는 자각이 있는
상태. 그러니까 내 생각이
틀림없다는게 아니지.
그런 단정이나 고정이 없는 상태에서
끝까지 한번 탐구해 보겠다. 요게
논어 9편 7장이에요.
예. 이것이 나한테 전편을 읽는
키워드가 됩니다. 그러고 보면 다른
부분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기
시작해요. 네.
음. 그래서
막 이런 점이에 내가 그 논노하고
이렇게 만나서
그 후 스스로 입문동이라고 하는 거
임문동갈 자체하고서 주로 동반자가
논어했습니다. 왜?
연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걸 야마귀시
연찬을 가지고 이야기하기 힘들어
사람들한테.
이름도 잘생 한 데다가
아 그래도 연천 야마기시 연찬 덕분에
국회에서도 뭐 하면 맨날 요즘에
연한다. 연찬 말은
많이 따오긴 한데 연이 안 돼. 실제
그게 연천이 아니고 그냥 뭐 저
연천회라 말은 많이 해.
근데
어 그거를 내가이
야망의 나오면서 나오는 것도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지 모르겠지만은 지금
세상에서는 어 그런 어 방식 그런
방식은 보편증을 획득하기가
어렵더라고. 음흠. 어
그냥 뜻 맞는 사람끼리 몇 사람은
행복하게 살 나도
어 내가 그게 저 그런 면에서는 저
전혀 야마이 살면서 불편이 없었어요.
나는 왜냐면 그런데 좀
원래 좀 익숙한 사람이야. 목소리
그래서 아근데 이게 운동으로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나왔어 나왔는데
그 연찬을 이렇게 보편했으면 좋겠는데
야마이 씨가 지금 일본에서도
운동으로선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그 일본에서 또 여러 가지 저 뭐 안
좋은 선입관들이 많아서
그 뭐뭐라 일종에
사교 비슷하게 사교 집단 비슷하게
이렇게 보하는 견해도 있고 해서
한국은 뭐 그런 것까지는 아닙니다만은
일본이 이제 본산이니까 한국은 뭐
한국
한 곳에 있잖아요. 한 곳 뭐 어디
거기죠? 향남 바람 바람 산남마인데
어 그래서 내가 그 입문 운동을
하면서 어 야마귀시이라는 이름보다는
공자의 이름을 불려서 사실은 연차의
보편화 운동이랄할까 이게 핵심입니다.
이 핵심이고
그게 그걸 통해서만 지금의 이렇게
심리적 내전에 가까운
우선 지금 저 우리 정치 상황 퇴적인
정치 상황을 넘어설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생각도 있었고
또 여러 가지 뭐 협동 운동이라든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운동들이
있잖아요. 이런 운동들이 정말로
뿌리를 데리고 성공할 수 있으려면
그 내부의 소통문화 그리고 어떤
합의에 이르고 실천하는 그런 면에서
어 이런 연이라는게 참 중요하게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예.
공자하고 만나서 공자하고 미올
기간이었지.
네. 네
그 22년 동안 이제 공자와 함께
미를 하셨는데에
공자 이제 사람됨을 물었고 이제
그러니까 공제 핵심을 지금 그 어떻게
보면은 그 무지의 자가 무지의 자가
그러니까 야마귀시 연찬에서도
어 영위에서 모든 것을 제로에서 실제
뭔가
실제는 뭔가 그러니까 선입견을 을
가지고 그것을 합리하기 위해서 논리적
변명거리를 항상 하는게 학문이고
사람들의 논리데 그러니까 100분
토론 하면은 전혀 100분 동안
교집합이 하나도 안 생기고 서로 더
등을 돌리기만 하는데 그러니까
내가이기는게 목적이 아니고 내 논리의
병명거리 합리성을 찾는게 목적이
아니고 진짜는 뭔가
진실은 뭔가 이런 것을 그러니까
자기가 무지의 자각 편견과 고정관념을
놓지 않으면은 는 실제적 진실을
탐구할 수 없기 때문에 공자였던 이런
어 모습을 가장 높게 평가하셨고
그러니까 그 불교소도 승산 스님이
미국가 가지고 어 선불 세계 알려 때
그분은 항상 트레이드 마크가 오직
모를 뿐
오직 모를뿐 그랬는데
그런 것도 어떻게 보면 이제 그
분류가 무하고
그 무상이고 그러니까 무지의 자각하게
더 철저한 것이 불교하지만 한국
선불교의 모습 보면은 굉장히 그
기독교 이상으로 놀랍게 독선적인
모습이 또 강한데 그리고 예를 들면은
일본의 야마귀시도
연찬 정신이 놀라울만큼 야마귀시
미오조라는 사람이 다시 이렇게 무지의
자각을 현실에 맞게 100년 전에
퇴살려냈는데
어떻게 그렇게 연을 예리하게 이렇게
파헤치는 단체가 연찬 정신하고 또 정
반대 대로 또 가버려 가지고
어 또 그게 또 산산 조각이 많이
깨지고서 에존이라는 새로운 곳으로
이렇게 탄생하고 그러니까 그게 그렇게
이제 공자도 그렇게 위대한 무지에
자각을 했음에도 한국에 와서 성리하기
위해서 너무 또 독선적으로 변했듯이
그런 점이 어떤 참 그 삶의
아이런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제
본질의 근본 바탕을 따져야지 어떤
지금의 또 야마귀시 공동체를 보고
야마귀시 미오조를 오해하면 안 되고
지금 성리학만 보고 또 공자를
오해하면 안 되고 어 또 지금의 어떤
선승들의 모습만 독선적인 모습만 보고
또 붙다야만 되고 하튼 이제 그런
점을 느끼게 입니다. 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잘못된 이유 #이남곡 #야마기시 #논어를 연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