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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2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농촌과 선교 - [117호] 서클 이야기 :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117호] 서클 이야기 : 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 박성용
훈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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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클 대화 진행의 증언과 그 비전 2

박성용 / 비폭력평화물결 대표


1. 서클의 조우와 토대 구축기- 2005년~2009년: AVP/HIPP, 그리고 서클 프로세스

각각의 서클 모델이라는 시냇물들이 2020년 현재 하나의 흐름으로 되기까지 한국에서 경험한 서클의 기원을 되돌아가 보면 그 각각에 약간의 관심과 문제의식 그리고 작은 만남의 사건들이 존재한다. 그때는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몰랐던 우연적인 조우로 혹은 작은 움직임의 시작으로 여겨진 것들이었다. 목격자이자 비폭력활동가가 된 지금의 나도 그 당시엔 하나의 작은 꿈이나 바램이어서 실재(reality)가 되는 미래에 대해 정확히 무엇이 될지는 몰랐다. 또한 그 작은 실마리의 꿈 이상으로 내 개인의 삶과 단체의 내부외부상황이 모호하고 생존의 비안전성으로 인해 잔뜩 구름이 많이 낀 개인과 단체의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년간의 해외 유학 말기인 2001년 마지막 학기에 9.11사태를 퀘이커 펜들힐에서 가을학기를 보내면서, 그간 유학 외에 미통일운동의 단체인 <자주연합>의 지역활동가로 있었던 나는 퀘이커교도이자 함석헌의 제자였던 해외통일운동의 산 증언자인 이행우 선생님의 도움으로 등록비 없이 펜들힐 센터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9.11사태를 퀘이커교도들이 어떻게 비폭력직접행동과 비폭력 증언활동(witness movement)을 하는지 목격하고, 거기서 1주일에 한 번씩 하는 서클 대화모임을 참관하게 되었다. 이행우 선생과 이미 펜들힐에 왔다 간 정지석 박사와의 인연으로 한국에 오면서 박사과정 마무리가 필요한 정지석 박사가 있던 유네스코/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의 시민사회 실장 자리를 2002년부터 3년간 이어 받게 되었다.

2003년인가 그다음 해에 학술진흥재단의 아시아종교분쟁과 평화프로젝트 2년 연구 사업차 필리핀 민다나오에 가서 거기서 3주간의 평화훈련과정에 참여한 한국의 참여자 10여 명 중에 통역자 겸 와있는 이재영(당시, 한국아나뱁티스트소장) 소장과 박수선 선생(평화여성회)외 몇몇이 필리핀의 평화운동을 배우면서 지금의 가해자피해자대화모임에 대한 2년간의 훈련과정에 있었던 것을 우연한 만남으로 알게 되었다. 이 우연한 만남은 2005년 초에 아태교육원을 그만두고 5월부터 비폭력평화물결의 공동대표로 옮아가면서 예기치 않은 필연적인 네트워크 활동으로 지금까지 동료로서 몇몇 개인 활동가와 단체들의 연대라는 인연을 맺게 된다. 그리고 민다나오에서 2년차 학진연구관련 필리핀원주민 방문을 통해 현주민의 서클형 대화의 충격을 받았지만, 펜들힐과 필리핀 원주민의 대화방식이 서클진행방식에 의한 차이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깨달은 것은 비폭력 실천의 전략에 대한 몇 년 후의 성찰과 자각을 통한 일이다.


비폭력 실천의 방식 중 사회변화(social change)라는 입장에서 분단조국의 현실에서 당장 내게 다가온 활동은 ‘7.27한강하구평화의배띄우기’라는 약 천여 명의 연인원이 몇 년 동안 지속된 사업이다. 이 운동을 DMZ분단선없는 한강하구에서 유엔사를 괴롭히고 시민의 평화연대를 각성시키는 비폭력직접행동의 운동을 김포, 강화, 인천, 서울, 일산의 5개 도시 시민사회단체들과 종교기관들로 이루어진 10여 개의 단체연합운동이 내가 오기 전년도부터 4년간 전개되었다. 비폭력평화물결은 퀘이커교도인 미국의 비폭력세력단체(NPI, nonviolent peaceforce international)의 데이비드 핫소대표가 그간 미국에 3년간 방문하며 퀘이커교도로 바뀌어져 돌아온 민중신학자 박성준 공동대표가 몇몇 동료와 이미 2002년 북미전쟁 가능성 앞에서 ‘인간방패’라는 방식의 비폭력직접행동의 방식으로 인간안보를 꿈꾸며 만들었다. 이미 박성준 선생은 단체 내에서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평화’라는 방식으로 퀘이커의 영향을 받아 토킹피스로 하는 참여형 서클대화방식을 전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단체 내에서 다른 실무자들에게 공유된 것은 아니었다.


네트워크의 방식과 이로 인한 네트워크 리더십을 세우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 것은 -이는 물론 나에게도 처음부터 익숙한 방식은 아니었다. 상황이 나를 그쪽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그 당시 평화활동가 연차대회를 3년간 준비하고 운영하며 10여 개 평화단체들과의 인연과 그 평화활동가 연차대회를 통해 알게 된 기독교 평화훈련단체들 -개척자, 한국아나뱁티스트 센터, 평화여성회 등- 그리고 기타 여러 평화운동단체들과의 연대모임꾸리기를 통해 나온 실무적 정황에 의한 것이다. 참여, 같이 숙고하기, 의사결정의 진통 과정을 경험하기, 새로운 기획을 위한 분담, 홍보와 실행 등의 방식을 통해 몇 가지 기획들이 이루어 졌다. 공동대표에서 대표로 위치전환 후부터 한강하구배띄우기 이외에 평화활동가연차대회 만이 아니라 4 훈련단체들과의 기독교평화아카데미, 그리고 여러 단체들과 더불어 요한 갈퉁(평화학자 요한갈퉁은 NPI의 일본지부인 일본비폭력평화세력단체[NPJ]의 교코 대표와의 인연으로 초대되었다)의 TRANSCEND 모델의 훈련워크숍 진행 등이 펼쳐졌다. 이러한 연대단체들과의 훈련워크숍 및 연대활동의 핵심동기는 평화활동가의 지침과 임파워먼트 그리고 상호지원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왔고, 내가 소속한 단체는 평화운동이라는 전선운동을 지원하는 공급책으로서의 훈련과정과 훈련매뉴얼의 중요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서클에 대한 자각 없는 사전 경험 -펜들힐, 필리핀 민다나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평화단체들과의 과정을 만들어 초대, 참여, 숙의, 결정, 나아가기라는 무의식적인 동아리진행원리를 실무와 네트워크사업에서 진행하고 있었지만, 서클을 의식하고 훈련과정으로 만나는 것은 2006년 대전의 퀘이커교도인 이종희 선생이 독일생활 30년을 접고 한국에 들어와 때마침 독일 친구이자 AVP 진행자인 우테 카스퍼스의 방한과 AVP의 소개워크숍에 대한 제안을 받고서 이다. 나는 당시 이종희 선생 개인도 AVP도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독일 퀘이커단체의 재정지원과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으로 한국에서는 소개되고 있음)의 성격에 대해 듣고서 의심 없이 흔쾌히 2007년 4월에 10개 단체들의 동의를 얻어 첫 공개워크숍과 1일 맛보기 워크숍을 열어 참여자 40여 명의 전원의 동의로써 이 워크숍이 우리 평화활동가들에게 필요한 모델이고 향후 한국에서 진행되기를 바라는 결정을 얻게 되었다.


원래 재소자 임파워먼트 훈련 프로그램 진행과 그것의 가치를 일상에서 실현하는 AVP진행자커뮤니티형성(55개 국가에서 진행)을 위해 한국에서 시작된 AVP는 청소년훈련과 학교에서의 교사의 지원을 위해 본 단체의 사업으로 AVP와 연관된 모델인 HIPP(Help Increase Peace Program; 한국에서는 ‘청소년평화지킴이’로 소개됨)의 가능성을 2007년부터 산돌학교 등을 통해 확인하며 한국의 학교상황에 대한 적응을 모색하게 되었다(HIPP의 본격적인 진행자과정은 2009년부터 광명에서 광명교육연대와 네트워크 사업으로 첫 시작을 하게 된다.).


서클은 간단하지만 의식의 깊이에 자리 잡기까지에는 원래 낯선 문화와 진행방식이어서 이것을 본격적으로 만나는 작업은 서클 프로세스에 대한 삼선재단의 지원에 의한 연구에 의한 결과이다. 이는 2000년 하반기에 사회감수성학습(SEL; Social & Emotional Learning)의 2년간의 연구 그리고 이후 평화감수성 훈련의 AVP의 긍정적인 영향 하에 서클 자체에 대한 이론적인 연구인 서클 프로세스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클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긍정성을 갖게 되었고, 확신에는 불충분하지만 이제 서서히 서클로 하는 대화진행방식에 대한 이 연구와 AVP/HIPP의 경험을 통해서이다.

서클 프로세스에 대해 의식적으로 단체 내에서 밖으로 소개할 필요성을 지닌 도화선은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열심히 활동하던 한 촛불집회단체의 내부갈등에 대해 간단한 서클진행 대화방식의 도입부터가 시작점-아마도 2009년-이 된다(참고로 이명박 정부 시절에 촛불집회 이후 평화통일단체들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특히 통일단체들의 보이지 않는 굿바이의 현실이 너무 컸다. 이 시절에 통일단체는 1/3로 축소되어 명망가 높은 대표가 있는 단체를 제외하고는 다 사라졌다.) 안전한 공간, 초대, 참여, 돌아가는 리더십, 센터피스와 토킹피스 등에 관한 서클개념들이 대화진행의 작동원리로 정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관찰은 기독교평화아카데미 3년간의 네트워크형 평화훈련 과정에 있어 소수의 참여자가 모여 어렵게 훈련과정을 진행하여 의미 있는 활동가를 키워냈지만, AVP/HIPP 그리고 서클 프로세스 등은 일반 대중의 손쉬운 서클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불러내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경로로 서클 진행자로 서게 되었다는 점이다. AVP, HIPP를 만나서 혹은 단체 내부의 평화교육팀의 활동을 통해 서클을 만남을 통해 진행자로 활동가로 서는 일들이 매우 높아졌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현장에서 보게 된 것이다. 서클이 기존의 활동가에게 신념과 열정을 강화시키거나 일반인에게 동기부여와 새로운 활동가로 서게 하는 확률이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자연스러운 집중과 헌신이 나와 소속단체의 미션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비폭력평화물결에서 활동하던 초기 2005-2009년간은 유네스코·아태교육원이 시민사회 실장직에서 얻은 국내 평화단체들과의 연결, 그리고 평화의 배 띄우기, 평화활동가연차대회, AVP 등의 네트워크 사업 등을 통해 나와 소속단체의 자기 정체성과 방향 재정 위의 기간이자 서클이 단체에 수육(incarnate)이 되는 초기 시기였다. 이에 대해 다른 두 사건이 신념에 대한 전환을 준 것이 있었다. 그것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서클 프로세스의 중요성만 아니라 단체가 박성준 공동대표의 리더십이 떠난 단체 내 회원 활동 급격한 감소와 이명박 정권의 촛불단체들에 대한 집중적인 고사 작전을 통해 평화통일단체들이 사라지거나 어려움에 부닥쳐 2009년부터는 본 단체의 존재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불길한 징조 앞에서 2008년 촛불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바로 직전에 4월에 13개 단체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지 레이키의 비폭력직접교육(nonviolent direct education)워크숍 4박 5일을 치렀고, 2008년 가을부터 네트워크 사업으로 준비하여 2009년 가을까지 진행된 비폭력세계행진이라는 칠레에서 시작하여 북미 유럽 그리고 아시아를 거쳐 다시 남미로 가는 국제연대 활동을 치렀다. 이 두 사업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생존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과 결핍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얻었다는 점이다. 단체 내 전직 공동대표로 인해 모여든 후원자들의 떠남과 단체의 활동위축과 외부의 이명박 정권의 평화통일단체의 지원사업 중단의 시작이 주는 부정적인 충격이 서서히 몰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조지 레이키의 민중의 지혜와 열성을 끌어내는 방식과 비폭력 행동의 다른 방식으로서 사회 방어(social defense)와 제3자개입(TPNI; third party's nonviolent intervention)에 대한 이론적 이해를 처음 접했고, 20여 단체들과 아무런 재정 없이 시작된 <세계비폭력행진>의 국제연대를 무사히 치러 내면서 자원과 재정의 결핍의 시작에도 불구하고 활동의 풍성함이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만드는 민중에 대한 의존과 과정의 형성단계에 대한 중요성을 처음으로 이해하거나 그 중요성의 씨앗을 가슴에 품게 된 것이었다. 네트워크는 매우 중요한 ‘자원(resources)’이었고, 돌파를 위한 힘이 되었으며, 이들을 결합하는 '진정성 있는 문제의식'의 공유야말로 이들을 서로 끌어당기고 앞으로 가게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확신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확신은 단순히 신념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훈련이나 과정적 수단을 통해 발휘된다는 직접교육론(pedagogy of direct education)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비폭력대행진의 네트워크 사업이 끝나자마자 비폭력 훈련에 대해 집중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그간 알고 있었던 한국 NBC 센터의 캐서린 한 대표와 회복적 정의운동의 흐름에 대해 그동안 계속 들려주었던 이재영 소장을 2009년 11월 29일 보증금을 까먹어가며 버티고 있던 우리 단체의 가장 가난했던 공간인 서대문 영천시장의 2층의 사무실에 초대해서 모임을 갖게 되었다. 그 역사적 모임이 바로 ‘회복적정의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의 출발이다. 그동안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무엇이 새롭게 징조로 펼쳐지는 지를 공유하고, 훈련기관의 공통의 특성을 통해 무엇이 가능한지 협력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재영 선생의 그간의 회복적 정의 운동의 공헌에 눈여겨보아 왔고, NVC의 시민사회에서의 대화 운동의 가능성 그리고 AVP와 HIPP가 갖는 재소자들과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갈등과 폭력에 대한 임파워먼트 훈련에 대한 각각의 모델이 결합하고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연대사업으로서 ‘회복적 정의’에 대한 공동의 사업추진을 확인한 첫 모임이 되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평화여성회 내 갈등해결센터의 박수선 대표 등의 몇 단체들(광명교육연대, 나중에는 좋은교사운동 등)을 더 초대하여 본격적으로 ‘회복적정의시민사회네트워크’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하게 되었고 향후 여러 일들이 펼쳐져 나가는 시원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이는 허공에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동안의 여러 활동사업을 통한 신뢰와 우정에 의한 관계망이 형성되면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각자의 진실이 서로 엮여서(weaving) 새롭게 출범된 모임이고, 나는 이것이 각자의 작은 진정성으로 출발했지만 이 모임이 향후 중대한 변화를 일으킬 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예측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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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7

“종파 떠나 예수의 삶 실천 희망” - 천지일보 - 대전살림침례교회 이건종 목사

“종파 떠나 예수의 삶 실천 희망” - 천지일보 - 새 시대 희망언론



“종파 떠나 예수의 삶 실천 희망”

강소현 기자 (ann486@allthatnews.co.kr)
승인 2009.05.29 10:29

예수살기 대전모임 창립총회

왼쪽부터 이건종 목사와 이종희 대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삶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모임이 전국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대전에서도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번 총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식과 겹쳐 규모를 축소한 가운데 28일 기독교연합회관 2층 컨벤션홀에서 열렸다.

예수살기 대전모임 이종희(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퀘이커공동체) 대표는 국민장 추모식이 거행되는 가운데 모임을 취소하지 못하고 진행할 수밖에 없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 대표는 대전모임과 관련해 “교파와 교단을 떠나 더 나아가서 종단을 떠나 예수님의 삶을 인정하고 그분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참여가 가능하다”며 “현재는 기독교 신앙인들이 대부분이고 다른 종단에서도 많은 사람이 동참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당초 예상보다 한 시간여 늦게 시작한 모임은 유병규(대전충남평통사) 상임대표의 사회로 인도됐다. 이후 성만찬예전이 이어졌고, 문대골 목사와 양재성(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처장) 목사의 약속 나눔이 진행됐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기도문을 읊으며 명상 춤을 진행하는 이종희 공동대표와 참석자들


문대골(예수살기 전국모임)
상임대표는 “오늘날은 조직교회가 강화되고, 현실 속에서 예수님의 삶을 실제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며 “기독교 운동이 새롭게 승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대가 바뀌고 있는 시점에서 변화가 될 것은 변화가 되어야지 예배형식이라든지 형식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배에서는 기존의 기도형식에서 벗어난 색다른 기도가 진행됐다. 이종희 대표의 인도 하에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인 평화의 기도가 명상 춤을 참석자들과 함께 진행했다.

이날 총회에서는 대전평화여성회 이종희 공동대표와 대전살림침례교회 이건종 목사, 빈들감리교회 남재영 목사가 공동대표로 선임됐고, 마당교회 김철호 목사가 총무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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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9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함석헌저작집) 함석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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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함석헌저작집)

함석헌 지음
2009-03-13 | 한길사 刊
국판 | 반양장 | 620 쪽 | 20,000 원
978-89-356-6072-8 | 04800



친구, 친구! 없어요. 죄를 사하고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만이 친구인데 없나봐요.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내 맘을 알아줄, 붙들어줄 한 사람! 예수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예수 무얼 해요. 산피가 도는 구체...














친구, 친구! 없어요. 죄를 사하고 나를 일으켜주는 사람만이 친구인데 없나봐요. 나는 한 사람이 필요해요. 내 맘을 알아줄, 붙들어줄 한 사람! 예수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예수 무얼 해요. 산피가 도는 구체적인 예수만이 나를 위로하고 사하고 살리지. 없나봐요. 지금 내 방엔 아무도 없어요. 나 혼자! 안 형도 여기 없으니 이 편지지. 내 소원은 장발장이 되는 일. 그거 못 되면 삼손이라도! 죽으면서도 대적을 죽일 수만 있다면!
그러려면 참사람 소년이 나를 이 현 질서를 버티는 기둥까지 인도를 해주어야지. 나는 죽어 마땅해. 이 죽음이라도 이용하잔 말이야. 내가 죄는 지었지만 내 생각은 그래도 페스탈로치 모양 저 나무에 있어! 나는 불시로 떨어지는 병든 과일이지만 이거 썩어서라도 그래도 나를 길렀던 저 나무를 가꿔보잔 생각이오. 말이 아니 된 소리지, 말 아니 된 소리. 의형들은 아니 들을 거야, 아버지나 듣지. 아 형! 내 맘을 형용할 길 없습니다. 내일로 나를 벌하자는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일으켜 영 매장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아멘! 미국을 가겠는지 독일을 가겠는지. 전재호신의全在乎神意.
형, 나를 버리시오. 그러나 자세히 듣고 보기나 한 후에.
●「젖을 내라는데 어미가 썩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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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병무 님>
서로의 영이 살기 위해 주고받는 것
낡은 제도에 새 정신을
인 이야기
새 출발 기회 얻자는 것
마음의 정화 위해
젖을 내라는데 어미가 썩었소!
재기 신생
맘속에 명령을 받아야
인간적인 참, 하나님의 참
미국에서
내 맘이 나를 허하느냐 못 하느냐
세계의 새 종교운동과 평화운동
좀더 튼튼히 보고 생각을 새로이
유럽여행 계획
우선 안 형 논문부터
안 형 일에 방해 안 되도록
이번 길에 될 수록 볼 것 다 봐야
우선 런던으로
돌아가면 싸워야지
장차 올 것에 대한 준비
살아 있는 이 시간에
여정이 자꾸만 늦어집니다
이제 정말 가까이로 갑니다
런던 도착했소
나 자신이 나를 심판
그 나라 역사 있는 데
신흥국가를 보고 싶군요
공부 방해해 미안하오
참인물이 있다면
우리 일은 나로서 해결
건강이 걱정이군요
몸은 튼튼해졌소
민중이 정부를 신용 아니 합니다
비폭력 국민운동으로 민정 수립
민중이 일어서야
민중 계몽, 새 세력 육성
차라리 말하다가 죽기나 했으면
로스앤젤레스에서
안병무박사(安病無迫死)

<이준묵 님>
새 맘 되어 돌아가고 싶소
당나귀 되지 마셔
하늘나라 문을 교회당이 막았어
나라 못 일어서면 삼천만이 다 앉은뱅이
퀘이커 국제워크캠프
일반주민들과 접촉 있기를
워크캠프 건
속에 있는 것을 다 말할 친구
씨알 속에서 나를
인생의 끝은 차차 가까워 저쪽이 뚫려 비치는데
우리는 왜 이래야 합니까
혼자서 생각을 해남으로
세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예정대로
벗을 불러 하늘나라의 잔치를
마음만 서로 활짝 열린다면야
이 고난의 뜻

<이두수 님>
텅 빈 성전 안에는 하나님만

2
안반덕 씨알농장 일꾼들께
의(義)의 싸움 다 싸우고 기쁘게 만나는 날

<문대골 님>
여러 날이 지났소
감자는 될 수록 종자를 많이
소 건은 어떻게 됐소
소는 꼭 찾도록
한 푼도 두고 오지 못해 마음이
굶지나 않나 걱정
얼마나 힘들고 적적하오
송아지는 샀는지
대체 살아 있기는 하오
밝고 참된 혼을 기르는 도장

<김종성 님>
내 마음은 틀목집에
이 겨울을 참고 견디도록
적은 안에 있지 밖에 있지 않다
짐승들도 잘 있는가
골 안 곳곳에 아카시아를
마음이 급하오, 앞날이 없으니까
악이란 인간본질의 일면
제대했다니 좋고
잡지는 또 늦었소
이번 달엔 못 가게 될 듯
저번 주일에 참 미안하오
한 가지 묻겠소
도리가 통치 않는데
잡지는 난산 또 난산

<정만수 님>
비가 새고 파손된 곳 많습니다

<김숭경 님>
걱정 끼쳐 미안합니다
산양을 사려고
비준반대투쟁
자라나는 아이들
김지헌 군

<김태현 님>
아픈 맘을 참고
수고해서 얻은 첫 열매
죽으려던 마음도 살아납니다
삼무의 그 좋은 나라
보내주시는 열매 속에는
밀감 값도 싸다는데
향기롭게 내일을 밝혀주시오
정말 건강한 사람
난을 키우는 어려움

<석진영 님>
세상에서 그어논 금
그대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시원한 소식입니다
역사의 솥에서 이런 불길이
민중이 참 담대해졌습니다
사람 사는 나라답게
사람은 혼자는 못 산다
고요한 시간, 생각하는 시간
교육이 최후의 보루
사상 없는 민중
십 년 만에 또 삭발을
고난의 짐이 이제 바로 시작
날씨까지 비정상

<이향 님>
있을 자리에 있으면
글이나 써가지고야
스스로 넝마인 줄 알았거든
작은 일을 참되게 하는 데
모든 장소를 성당으로, 모든 일을 예배로
내일 모레 달을 같이 바라면서
건강하셔서 일 많이 하셔요
고통 이기는 길, 새로남 없이는 있을 수 없어
비 오고 꽃 활짝 피니
가장 아픈 데를 치시잔 것
우로부터 고쳐나는 것
만물이 스스로 바르게 되다
깊은 숨을 소리도 아니 나게
요즈음 또 시국이
믿음이란 화(化)를 이루자는 공부

<이미경 님>
세상이 어지러워진 것을 멍청히 보고만 있으니
늘 하나님의 평화 속에
한 달 넘게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아가페 동산
깊이 생각하는 생활

<이오덕 님>
참사람의 씨알 가꾸기

<법정 님>
새로운 밝히심을

<이천우 님>
하나님이 나를, 민중이 나를 믿어주셔야지

<김조년 님·부인님>
어느 구석에 대 씨?이
모든 것을 아는 자리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씨
주의(主義)의 희생물
잡지에도 어려움 많습니다
세계권력쟁탈전의 악조건
말씀의 가뭄
믿음이 모든 고난과 시험을
명동(明洞)이 아니라 암동(暗洞)

3
<이행우 님>
나를 거꾸러뜨리려는 악은
참된 정신의 불붙음
대동(大同)하는 정신
금년 비에 또 지붕이 샙니다
전 대통령의 방일(訪日)
지금이야말로 성경연구를
모임집 문제
차차 정신이 둔해가고 할 일은 많고
일은 자꾸 밀리고 바쁘기만


<장익근 님·명옥 님>
생명의 씨를 보존했던 노아의 심정
국민 전체의 지혜와 용기를
비디오로 간디를
사람들이 제 하는 일터에 있지 못하고
마지막이 언제 올지
시국, 정말 걱정입니다
싸움만 있을 뿐, 나라는 어디로

<이열 님>
나는 님의 갈대피리입니다

<노명환 님>
언제 어느 날 그런 일이
수고하셨지만 이기셨으니
어려움이 많으신데
열린 마음으로 서로 대하면
고통 모욕을 당하고도 미워하지 않는 큰 마음

<유영빈 님>
맛있다, 없다를 가리지 말자
참교육은 혼으로
연전에 이미 영구독자가
『씨알의 소리』가 벼락을
믿는 사람만이 역사인
봄 잘 맞으십시오

<박선균 님>
열정만으로 오래 못 가
인생 전체가 훈련
스스로 유익을 얻도록
새 학기에 공부 잘하시고
마음은 가두어두면 썩고 마는 거요

<강기철 님>
오는 15일에 재판을
읽고 난 느낌
옛글 한 수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하시는 것이 고마워

<김대숙 님>
진작 말을 할 것이지
퀘이커 모임에 한번 와보시오
무슨 말을 할까 미리 걱정 말라

<홍재경 님>
써먹을 생각의 노예가 아니 되는 공부
언제나 굳세고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스스로 힘을 쓰시오

<서정웅 님>
길이 나타날 때까지 믿는 마음으로
말 들을 줄 아는 참 아는 사람
한국의 간디
‘아, 배고프다’ 소리가 자꾸 들려
누가 뭐라거나 나는 내 할 일을

<임명수 님>
타는 촛불처럼 빛을 내며
죽을 각오로 순간에 살라

<경옥 님>
명절 때마다 어버이 생각 갑절
잘못을 뉘우치는 일은 그렇게 아름다워
네 길을 스스로 열어라
하나님의 경륜

<전경임 님>
네 혼으로 노래를 부르라
낚시질꾼이 그 딸에게

한가람 뿌리에서 양 떼를 먹이는 목자께

4
모임의 형제들에게
공주로 보내는 글 1
앓는 이에게
청도로 보내는 글
너는 언제까지나 그 꼴일 터이냐
광주로 보내는 글 1
광주로 보내는 글 2
해남으로 보내는 글
홍동으로 보내는 글
○○○ 씨에게 보내는 답장
공주로 보내는 글 2
영원히 불어 오고가는 바람소리
안반덕으로 보내는 글
맘을 다하라

5
내외문답
고아원으로 보내는 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음악
동문서답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씨에 주는 물음
새것이 어디 왔느냐
내가 믿는 예수
어떻게 하는 것이 버리는 것이냐
죄는 참말로는 없다
오월을 생각해본다
전 세계의 친구들에게
새해 머리에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글

6
<김용준 님>
우리는 언제나 사람답게 살아볼까
왜 이때껏 부버를 몰랐을까
날마다 마지막 날의 심정으로 살자
감사절 소감
영국은 여러 가지로 미국과 다르군요
양 치는 것이 흥미 있게 보여서 시험해보려오
필요하면 싸워야지요

<김세인 님>
『노자익』을 구해 보십시오
평화는 어서어서 강조되어야
앞으로 차차 어려운 시대가 될 것
『싸우는 평화주의자』가 발매금지 당했습니다
세배객이 예년보다는 줄었습니다
밥도 걸음도 말도 제대로

<홍성빈 님>
최후 진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박종택 님>
용서는 양심으로 해야지요
명상에 꼭 무슨 제목이 있겠습니까

<서형선 님>
호주행을 중지했소
이 인류는 결국 멸망할 것
명년 여름에 퀘이커 세계대회가 있습니다
계훈제 선생이 쇠약해져서 염려되오
어려움이 많아도 또박또박 일을 해나가시오
글도 늘 마음대로 내지 못하니 답답합니다

<한경원 님>
공공사업에 정신이 좀 있는 인물이 있습니까

<곽분이 님>
『성경』을 좀 진지한 태도로 가르쳐주어야겠다
이 나라야말로 제 얼굴 들여다볼 줄 모른다
일시적으로 좀 피곤했던 듯하다
깊이 생각해야 한다

<진영상 님>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입니다
의견이 다르더라도 서로 합하는 점에 갈 수 있어
사람이 자기를 불신하는 듯이 보이면 불쾌한 법

<함우용 님>
『씨알의 소리』 영인본 판매 때문에

<양영호 님>
일본에 한 주일 머물게 될 것이다

<정미희 님>
어린이라도 어찌 무심히 여길 수 있느냐

<함정해 님>
3년 전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고
온실과 뜰의 꽃나무가 잘 자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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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안병무 님
이준목 님
이두수 님

2
안반덕 씨알농장 일꾼들께
의의 싸움 다 싸우고 기쁘게 만나는 날
문대골 님
김종성 님
정만수 님
심숭경 님
김태현 님
석진영 님
이향 님
이미경 님
이오덕 님
법정 님
이천우 님
김조년 님·부인(이종희)님
이행우 님
장익근 님·명옥 님
이열 님
노명환 님
유영빈 님
박선균 님
강기철 님
김대숙 님
홍재경 님
서정웅 님
임명수 님
경옥 님
전경임 님
한가람 뿌리에서 양떼를 먹이는 목자께

4
백영자 님
전재경 님
장기홍 님
부산 모임 여러분께
공주로 보내는 글1
.
.
.

5
내외문답
고아원으로 보내는 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음악
동문서답
맘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
.
6
김용준 님
김세인 님
홍성빈 님
박종태 님
서형선 님
한경원 님
곽분이 님
진영사 님
함우용 님
양영호 님
정미희 님
함정해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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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웅혼한 역사의 외침, 민족의 큰 사상가 함석헌을 읽는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새로운 편집으로 간행된 ‘함석헌저작집’ 전30권 !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동서고금의 사상을 넘나들며 사람의 도리와 생명의 본질을 설파하는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은 오늘 우리들에게 삶의 비전이자 정신적 지표입니다. 선생의 저작은 상아탑 연구실이나 책상머리에서 쓴 것이 아니고 험난한 20세기 역사의 현장에서 몸소 체험하며 가슴에서 토해낸 ‘민족자서전’입니다. 정치와 언론, 교육과 종교의 혁명을 강조하며 다양한 삶(생명)의 원리와 실천론이 아우러집니다. 함석헌은 역사와 사회가 십자가를 이루는 교차점에 늘 서서 사유하고 실천한 공인으로, 지공무사의 정신으로 평생을 살아간 선비입니다. 민중들과 더불어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들의 무지를 사랑으로 깨우친 씨알들의 스승이었습니다. 불안과 위기의 이 시대에 함석헌 선생의 글을 읽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양심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이념에 사로잡히고, 무지와 물욕에 빠져 있는 우리의 잠든 혼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서거 20주기 및 탄생 108주년에 즈음하여 펴내는 ‘함석헌저작집’(전30권)은 1988년 전20권으로 간행된 ‘함석헌전집’을 토대로 그 이후 새로 찾아낸 72편의 시와 수십 편의 강연, 편지, 에세이를 수록하여, 오늘의 독자 감각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으로 편집했습니다.
함석헌 선생은 말씀과 글에는 마치 악곡의 변주곡처럼 거듭 반복되는 몇 가지 일관된 주제가 있습니다. 민중과 씨알, 민중사관 및 고난사관, 비폭력 평화주의, 국가(지상)주의 및 민족(중심)주의를 넘어서는 세계주의(globalism)로의 이행. 개혁과 혁명, 사회진화론, 종교적 가치관, 새 종교와 새 인류의 대망(待望). 개인주의를 넘어선 전체주의(holism), 상생론적 같이살기운동의 전개 등이 그것인데, 모두 혁명적인 거대 담론들입니다. 개인사와 민족사를 넘어선 인류 전체의 보편사 차원의 문제와 씨름하는 독창적 독자적인 담론들입니다. 이 주제들을 유의하면서 함석헌 선생의 말씀과 글을 읽는다면 우리는 큰 깨침을 얻게 될 것입니다.


22.진실을 찾는 벗들에게
“인생은 붙잡는 것이요 믿음은 놓치지 않는 것이다.”
함석헌저작집 제22권 『진실을 찾는 벗들에게』는 함석헌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것이다. 제6부에 실린 편지들은 새로 입수하여 이번 저작집에 처음 싣는다. 접기





2016/12/11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2009년 김조년 이종희

늙은 전사의 노래 권총이야기 |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 - Daum 카페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퀘이커이야기
권술룡|조회 98|추천 0|
2009.12.31. 09:02
http://cafe.daum.net/kwonsay/H7Jy/18

<고백>

<대전 퀘이커 모임> 출범이야기 / 12/20/일/15;00


대전퀘이커 공부모임이 5주년이 되는 날,
이제 '공부'를 떼고 정식으로 <대전 퀘이커 모임>으로 출범 합니다,
그간 참여하셨거나 애정과 관심을 가지신 친우들...그리고 서울모임에서
그리고 대구의 시작모임에서도 와 주셔서 모두 40여명이나 모여
작은 잔치 자리에 함께 하였지요,

이중 몆분은 퀘이커로 살기로 하였고
350여년의 퀘이커 역사에 전세계에 겨우 40만의 소수의 무리들,
세계평화운동의 핵심에는 늘 한줌밖에 않되는 퀘이커가...
그리고 고난속에 있었지요,

이날 6,25전란 직후인 60전 한국에 첫 퀘이커를 시작하여 그후
함석헌선생님이 참여한 이행우(80여세)선생님이 카나다에서,
그리고 대전퀘이커 공부모임을 처음 열게 시작해준 박성준선생과
매월 서울서 와주신 오철근선생등,,
그리고 독일에서 퀘이커가 되어 돌아와 이끌어 온 김조년/이종희님1
모두가 한결같은 모습들이 였지요,
40명가까운 이들의 소중한 시간이 엿지요,

서울모임 60년...5년준비한 <대전모임> 그리고 시작된 <대구공부모임>으로 3개 모임으로
<년회>가 때가오면 앞으로 가능해질 것이라 여겨집니다,
사회운동의 직임들을 모두 내려놓고 서울 삼청동에서 <길담서원>을 어렵게 꾸려가시는

박성준선생은
'한반도 중심인 대전에서 5년이나 기다리며 준비한 이 모임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 그리고
영성을 키우는 큰 역활을 할것이라!" 고 <대전퀘이커 모임>의 출범의 의미를 부여, 격려했다,

<세계기독교 고전 20선>중에 한권인 <퀘이커>창립자 <조지 폭스의 일기>를
함께 읽어가는 동안 옷깃을 여미며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의 생애내내 태산같은 파도와 맛서서 끊임없이 시대의 불의와 어둠, 열악한 감옥과
죽음의 위험, 테러와 고난에 찬 비 타협의 전도순레의 생애는 <퀘이커>이름 그대로 몸을 떨게 합니다,
사람의 영혼과 정신과 의기가 이렇게 높을수도 있구나! 하는 떨림이 였습니다,


소수의 작은 무리가 얼마나 높은 이상과 결기로 세상의 태풍의 눈으로 평화의 진군나팔수가 될수있기를! 소망하며 어떻게 키울것인가?!

어떻게 大鵬위 높고 깊은 뜻으로
세상을 다 가진것처럼 당당하고 여유로움으로...
느림과 태풍같은 행동으로 태산같이... 깃털같음으로...
불의의 시대를 꿰뚫어 나갈수 있기를 !,
'너의 삶으로 이야기 하라!"고 할수있기를 !,

일시; 12/20/일/15;00부터
장소; 대전,동구 용전동 (한남대뒤) 한숲아파트 112동 1902호 <한숲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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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존경하는 친우님께,

우리가 2004년 12월 퀘이커 공부모임을 시작한 지 꼭 5년이 지났습니다. 모두가 다 이 짧지 않은 기간 모임에 참석할 때마다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때때로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만나면 좋았고 또 궁금하여 기다려지기도 하였습니다. 지난 해 말부터 정식 퀘이커모임으로 출발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 또 한 해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여러 친우님들에게 퀘이커모임으로 출발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무르익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라는 말을 떼고, ‘퀘이커모임’으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언제나 함께 했던 친우님께서 이 때 같이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이것은 다수로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조직에 가입하는 절차를 통하여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다만 본인이 직접 함께 퀘이커 신앙정신으로 살아보겠다는 것을 표현하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내가 퀘이커로 살 수 있을까’, ‘그만큼 성숙되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정된 퀘이커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동의 신앙고백을 택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믿음과 삶은 자라는 것이기에 그렇게 살아보자고 표현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 믿습니다. 어린아이가 사람으로 갓 태어나서 성숙된 사람으로 자라듯이 우리의 믿음도 그렇게 살아보자고 하면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약속이요 진리를 찾아나가는 공동의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조직과 이름 없이도 살고 일을 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최소한의 그러한 틀을 가지고 가는 것이 필요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소한의 틀을 가져보자는 것입니다. 일단 함께 시작하겠다는 뜻을 저에게 주시면, 그날 같이 출발하는 사람들의 명단에 넣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미처 맘을 정하지 못한 친우님들이 부담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부담 없이 전과 꼭같이 모이고 즐기고 감동하고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다만, 개미들이 이사할 대 앞에 가는 개미와 맨 뒤에 가는 개미도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가 다 한 개미군단에 속해서 한 길을 가는 무리들입니다.

이렇게 시간을 잡아 보았습니다.

12월 20일 오후
15시: 고요예배
16시: 이러저러한 이야기 꽃
17시: 먹을거리 함께 나눔: 한밭레츠 두루부엌에 주문
18시: 우리끼리 하는 즐거운 마당; 음악, 춤, 기타

* 자기 악기를 하나 가지고 오셔서 연주하면 참 좋겠습니다.
언제나처럼 건강하시고 평화롭기를 빕니다.

2009년 12월 15일 김조년 드림

2016/10/04

AVP한국활동가 모임 |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빈들녁 - Daum 카페

AVP한국활동가 모임 |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빈들녁 - Daum 카페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 설립을 위한 제안과 초대

-빈들녁|평화를 향한 일상

평화세상|조회 61|추천 0|2012.10.15.



09:16http://cafe.daum.net/avpkorea/8KG6/20





지난 10년 동안 ‘비폭력평화물결’이란 단체를 통해 저는 비폭력영성과 실천 그리고 평화훈련/교육의 소개와 진행 워크숍을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중요한 과제로 깨달은 한 가지는 이제는 단순히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자기 내면과 관계에 있어 비폭력의 가치에 근거하여 실제로 삶의 전반에 걸쳐 좀더 따사롭게 상호성장과 돌봄, 그리고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신앙에 근거한 평화공동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이유 중 한 가지는 ‘비폭력대화(NVC),’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청소년평화지킴이(HIPP),’ ‘회복적 서클(RC)’ 등의 비폭력훈련모델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비폭력 실천 공동체, 그러한 문화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실습과 돌봄의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통해 개인의 수련으로서는 벅찬 과제를 내면의 의식과 실천이라는 생활로 살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며, 가치(사상과 영성)에 근거한 태도를 심화하고 확산하는 데 있어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현장의 필요성과 욕구에 기초하여, 신앙 공동체로서 평화를 사명으로 하되 그 방식을 역사적 평화교회와 인디언의 서클진행으로 하는 ‘평화서클 신앙공동체(평화교회)’를 제안합니다. 이 공동체는 듣고 말하기의 안전한 공간에서 각자의 지혜를 연결하여 ‘공동의 지혜’ 혹은 ‘서클의 중심’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형태를 말합니다. 그 역사적 맥락은 기독교의 역사적 평화교회와 간디의 사티그라하(진리의 증언)운동의 전통인 ‘더불어 홀로’의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지혜를 결합하는 방식을 안내 지침으로 삼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초안이자 비전이며, 이것을 구체화하는 것은 구성원들 모두의 동의과정(다수결이 아님)을 통해 상호 약속에 따른 책임이 부여됩니다. 개인의 선택을 안전하게 하기 위해 필요하면 실천약속을 실험하는 기간(1년~2년?)을 갖고 연장, 수정, 탈회를 자유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강요와 의무가 아닌 자발성과 선택의 원리가 존중되는 것입니다. 개인의 욕구에 근거한 이 두 원리에 기초하여 공동체의 치유와 화해, 배려와 돌봄, 헌신과 변혁의 원리가 동시에 존중되는 분위기를 지향합니다.



취지에 동감하고 이런 신앙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데 뜻을 같이 하시고자 하는 분을 초대합니다. 빈곤과 위기의 지구적 상황과 새로운 정치 실험의 대선의 한국상황에서 그 모든 것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지금, 혼란과 위기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료화하고 내적으로나 관계 그리고 공동체의 갈등을 전환하는 회복적 삶의 ‘신앙-실천’ 공동체의 형성에 함께 하시고자 하시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1. 가치와 목적



1) 서클이 주는 평등성, 관계, 배려, 경청과 존중 등의 비폭력·과 평화의 가치를 실천하는 가치지향의 만남을 중요시합니다.

2) 소수 인물이 아닌 서클 프로세스나 기타 동의과정을 통해 ‘공동의 지혜’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운영방식을 준수합니다.

3) 기독교평화전통과 국제사회의 비폭력운동전통이 지닌 살아있는 신앙, 사상, 영성 그리고 실천의 맥을 잇고 수련하며 이를 삶으로 증언하는 것을 소중히 합니다.

4) 개인과 가정이 지닌 혼란과 위기에 대한 치유와 화해의 회복적 실천(restorative practice) 그리고 지역사회의 폭력과 갈등을 전환하는 적극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기여합니다.

5) 비신앙인, 타종교인의 개종이 아닌 진리에 대한 상호배움과 공동의 선을 향한 대화와 협력의 열린 마음으로 공동의 ‘휴매니티’에 근거한 생명 존중에 관심을 둡니다.

6) 공동체 구성원의 친밀한 관계와 배움, 그리고 성장이 가능한 소규모형의 신앙공동체를 지향합니다.

7) 비폭력 평화 활동을 위한 현장과의 적극적인 연대와 현재 및 미래의 일꾼들의 사회적/사상적/영적 지원과 돌봄에 적극적인 노력을 합니다.





2. 참여 방식과 일정



1) 장소: 서울과 광명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모임 장소를 한 곳으로 정하거나 혹은 편의를 위해 격주로 서울과 광명을 오가며 모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곳은 임대, 한 곳은 빌려 씀).

2) 일정: 11월 말까지 의사표시를 통해 응답한 분들을 중심으로 2~3개월간 실험적인 (준비)모임을 갖고 여기서 나온 구체적인 청사진과 상호 약속(covenant-making) 과정을 거쳐 정식 모임을 갖도록 합니다.

3) 공동체 구성원 멤버십: 처음 시작은 공유된 가치와 방향에 대한 동의를 통해 멤버십을 갖되, 그 이후로는 게스트로서의 일정기간 참석후 멤버가 되는 일정한 과정이 있게 되며 이 과정은 준비모임에서 정합니다.





3. 문의 연락처: 박성용 (비폭력평화물결 대표/감리교 목사)

전화: 016-774-7613, 이메일: ecopeace21@hanmail.net

개인 블로그: www.ecopeace.pe.kr

(* 수시로 회의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어서 때로는 연락이 닿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메일로 연락처와 간단히 나누고 싶으신 것을 적어주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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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종소리 12.10.28. 21:09

빈들녘님,

제안을 읽었습니다. AVP와 AVP활동가가 지향하는 여러가지 가치 중의 하나는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서 활동한다는 점입니다. 

각자가 가진 신앙과 신앙공동체를 존중하는 것으로 충분 하다는 생각입니다. [평화교회?]라는 이름 안에 속한 활동가와 속하지 않은 활동가를 가르게 되며 [교회]라는 속성 자체가 종국에는 종교와 종파를 논하게 될 소지가 있다는걸 혹시 간과하신게 아닐까 하며 갸우뚱한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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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잎새(황필규), 
흐르는 강물처럼(김민경), 
맑은눈물(이혜숙), 
까꿍(박성일), 
양념짱(석연희), 
고요한종소리(이종희), 
흰돌(김조년), 
꽃단지(안영미), 
똥나무(이형우), 
마리솔(권승현), 
물과바람(최신옥) 
입니다.





AVP한국활동가 모임 | Welcome to the AVP Workshop! - Daum 카페

 비폭력평화물결|조회 322|추천 0|2009.03.02. 18:12http://cafe.daum.net/avpkorea/8KG3/1

삶을 변혁시키는 평화훈련(AVP)

국제워크숍을 한국에서 시작하며

(Welcome to the AVP Workshop!)



2000년 이후 급속히 성장한 한국 평화운동은 그동안 몇 차례의 활동가대회와 공동 워크숍 등을 통하여 평화의 거대담론만이 아니라 이를 일상의 생활 문화 속에 실현하는 과제를 제안하였고, 활동가들의 재충전과 훈련, 각 현장에서의 폭력에 대한 성찰과 이에 대한 극복, 활동가 자신의 폭력에의 노출에 대한 대안을 고민해 왔습니다.



1975년 이후 전 세계 40여 나라로 급속히 퍼진 AVP 모델은 바로 이런 우리의 고민에 대한 해결을 풀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집니다. 우리는 40명이 이미 작년 4월에 우테 카스퍼스 선생을 통해 평가워크숍을 하여 그 신념을 얻었고, 

본인은 영국에서 심화과정을, 

진행자인 이종희 선생은 독일에서 진행자 워크숍을 다녀왔을 정도입니다. 

이제 독일 AVP공동체의 관심과 국내에서 네트워크를 통해 어려운 형편에서도 서로 도와 한국에서 AVP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 첫 워크숍을 지난 1월에 두 번 입문과정을 하였으며 이제 세 번째,네번째 입문과정과 첫 번째 심화과정을 시작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매우 큰 기쁨입니다.



AVP에 관한 내용들은 어느 정도 본 자료집에 실려 있어서 그 내용과 목적, 가치관과 과정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기에, 몇 가지 중요한 점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우선적으로 AVP는 단순히 갈등해결 모델 그 자체만이 아니라 어떤 인간,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고, 어떻게 그것을 내면화(개인), 구조화(사회)하려고 하는 가에 대해 자발적 헌신에 기초합니다.

그리고 기술과 방법론을 넘어서 AVP의 핵심인 “변혁시키는 힘”의 발견과 육성이 중심 열쇠가 됩니다.

따라서 단순히 현장에 급하게 적용하고 대상인 타인에게 써먹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게서 어떻게 이것이 경험되어질 수 있는가(“사건화”)에 워크숍동안 주목해 주시면 AVP 전문 진행자가 되는 긴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AVP의 역사를 통해 볼 때 그리고 한국에서 AVP를 시작할 목적과 의미에 있어서 공동주관단체들은 단순한 일 년에 한 두 번의 워크숍이 아니라, 앞으로 2~3년간 계속적인 자체 공동학습시간을 따로 갖고 각자가 감옥, 공동체, 학교 등의 현장에서 AVP 전문 진행자로서 역할을 하여 개인, 공동체 그리고 사회에 자그마한 변화가 오도록 함께 뜻을 모으고자 합니다.



특히 당분간은 AVP워크숍은 단순 참가가 아니라 전문 진행자를 키워내는 과정에 전렴하기 때문에, 현재 참여하시는 분들만 아니라 앞으로 소개하실 미래의 참여자들께도 이런 취지에 동참해 주시면 AVP 공동체가 한국에서 새롭게 서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같이 긴 여정을 함께 갈 벗들에 대해 정말 진심에서 나온 감사와 참여하신 개인의 욕구들이 다 충족되는 경험들이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이 모임이 더욱 창의적이고, 각자의 희망이 배려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계속 주시면 서로 돌보고 힘을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여에 환영하며 간디의 말로 인사를 대신 마무리 합니다. “당신은 세상에서 보기를 원하는 그 변화가 되십시오(You must be the change you want to see in the world)"



2008년 11월 14일

2016/06/30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살림이야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길을 묻다, 길을 가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 ]
모든 이의 내면에 빛이 있습니다
진행 주요섭사진 홍진훤

조심하고 조심하자고 했다.
생각의 하나 던져 뿌려 보자는 심정으로 나도 생각하고 그도 생각하는, 아니 우리 시대가 함께 깊이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보자는 맘으로 편지를 썼다. 무엇인가를 가르치려는 듯이 느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매일의 다짐이었다.


함석헌기념사업회의 <씨알의 소리> 김조년 발행인(67) 2011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정년퇴임을 두어 앞두고, 제자 450 명에게 매일 아침 보냈던 편지글을 모아 청춘에게 안부를 묻다라는 책을 펴낸다. 책의 머리말에 제자들에게 편지를 마음을 싣고 있다.

어른들은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어린 이에게 자꾸 뭔가를 가르치고 길이 옳으니 따라오라고 다그치기 좋아하지 않던가. 그런데 김조년 선생은 어린 제자들을 같이 생각하는 으로 대우하며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보이니 다른 어른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함석헌 선생의 가장 성실한 제자


씨알 함석헌 선생의 사상을 이어받은 가장 성실한 제자로 꼽히는 김조년 선생은 독일에서 사회학, 교육학, 정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26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임 문을 김조년 선생의 연구실 옹달샘터 대전역에서 걸어서 30 정도 걸리는 대흥동성당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김조년 선생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직접 내려주었다.


살림이야기_ 한남대 교수직에서 퇴임하신 년이 되었는데, 요즘에는 주로 어떤 일에 주력하십니까?

김조년_ 지금도 일주일에 번씩 학교에서 강의를 합니다. 학기마다 대학원이나 학부 강의를 과목씩 맡아 왔는데, 이번 학기에는 학부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퇴임하면서 연구실에 가득한 책을 보면서 저걸 어디에 두나 하다가 이곳 옹달샘터를 마련했어요. 마침 명상춤 수행공간을 찾던 아내가 옆방을 씁니다. 함석헌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그전부터 하던 대로 <씨의 소리> 격월간으로 계속 발간하면서, 올해는 함석헌 전집 개정해서 펴내려 합니다. 정본을 만든다 마음가짐으로. 그게 일이 큽니다.


부인 이종희 선생은 명상춤 안내자로서 유명하다. 중세 유럽의 수도원 전통에서 비롯한 명상춤은 종교의 벽을 넘어 고요 속에서 평화와 행복을 찾는 영성훈련의 입문과정인데, 부부가 함께 독일에서 생활하면서 이종희 선생은 평화운동에 참여하고 명상춤을 배웠다. 일주일에 번씩 명상춤 수행모임을 연다. 또한 1970 함석헌 선생이 창간한 <씨의 소리> 1980 7 군부정권에 의해 강제로 폐간되었다. 1988 12월에 복간하여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신 뒤로는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맡아 격월간으로 내고 있다.


살림이야기_
환경운동연합과 민들레의료생활협동조합에도 참여해 오시지 않았습니까?
퇴임하시고
새로 시작한 일들도 있으실 텐데요.

김조년_ 단체활동에서도 물러나서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그동안 해보고 싶던 일이, 하나는 자존감이 부족하여 방황하는 탈학교 청소년들, 하나는 성폭력 피해 여성들과 인문학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하고 자기 자신을 되찾을 있도록. 그런데 용기를 내지 못하고 아직은 마음만 있어요. 지난해 3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고전공부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30~40 주부들이 자아정체감 때문에 방황을 많이 한다고 해요. 지인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해서, 같이 고전을 읽는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에밀 장자 읽었고 지금은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한국역사 읽고 있는데, 아주 재미있습니다. , 격주마다 옹달샘터 낭독회 열고 있습니다.


옹달샘터 낭독회는 매월 둘째, 넷째 화요일 저녁 시간 남짓 열리는데, 낭독자가 시간 가량 낭독하고, 뒤에 사람들이 음료수를 마시며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낭독하는 동안 음악가가 연주를 하기도 한다. 지난 5 15일로 1년이 되었다. 6월에는 서울에서도 낭독회가 열릴 예정이다.

김조년_
가을쯤에는
함석헌 사상 강좌 예정입니다.
그리고 퇴직 교수들과 함께 거리의 사회학 강좌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강좌에서 물어보았는데, 함석헌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없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함석헌 선생은 폭력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생명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사독재시절 많은 탄압을 받았지요. 1980년대에는 글을 쓰거나 발언할 기회도 모두 차단당했어요. 그래서 세상과 단절될 수밖에 없었지요. 이제는 제자로서 선생의 생각을 널리 알리도록 노력하려합니다. 선생의 글들은 교과서에 실리기에도 손색이 없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못해왔지요.


김조년 선생이 함석헌 선생과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시절 거슬러 올라간다. 1965 굴욕적인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14 동안 삭발 단식하던 함석헌 선생에게, 고등학생 김조년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고등학생에게 진지하게 답장했다. 편지 교류는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유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이어졌고, 소년은 스승이 창간한 잡지를 다시 내고 사상 연구와 평화 실천 면에서 스승을 이어가고 있다.

살림이야기_
20 동안 내온 <표주박통신> 요즘 하십니까?

김조년_ 퇴임 후에 이제까지 번도 못냈어요. 최근에 자꾸 묻는 사람들이 생겨요. 이제 하느냐, 오래도록 받았다 이런 얘기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해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요. 사실 다른 것들은 내게 맡겨진 일이고, 일은 <표주박통신>인데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해온 일이거든요.


<표주박통신> 제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했다. 1984 독일에서 귀국하여 사회사상사 수업을 맡았는데, 당시는 대학생들이 수업에만 열중할 사회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 30명의 학생들에게 주소를 받아 다한 강의 내용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이듬해 막스 호르크하이머 대한 내용을 편지로 보내며 <표주박통신>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달에 번씩, 홀수 마지막 편지를 썼다. 친구, 친지, 동료 편지를 받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전자우편으로도 보내며 2쪽짜리 편지가 36 책자가 되었고 독자도 30명에서 2,500명으로 늘었다.


권위와 형식에 굴복하지 않는 퀘이커


함석헌 선생은 한국에서 많지 않은 퀘이커로서도 유명하다. 김조년 선생 역시 부인과 함께 퀘이커로, 매주 일요일 아침 옹달샘터에서 퀘이커 예배를 한다. 스승이 퀘이커라고 그대로 따른 것은 아니다. 독일에 유학하던 함석헌 선생이 베를린을 방문하면 동포들과 퀘이커들을 찾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졌지만, 함석헌 선생이 세상을 뒤에야 지역 모임에 나가보았고 한국에 돌아와서 대전에서 퀘이커 공부 모임을 하면서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퀘이커가 되었다.



 퀘이커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글쎄 저도 그게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합니다라며 웃었다. 퀘이커는 350 기독교 개혁운동이 일어나던 시대에 생겨났다. 특히 영국 국교의 형식성,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삶이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반성으로 조지 폭스가 중심이 되어 시작한 종파이다. 퀘이커들은 미국으로 많이 건너갔는데, 가운데 유명한 이가 윌리엄 펜이다. 펜은 북아메리카 델라웨어 서쪽, 지금의 펜실베니아에 자리를 잡았다. 당시 영국의 개척자들은 인디언을 학살하고 몰아내며 땅을 차지했는데, 펜은 인디언 공동체와 최초로 평화협정을 맺고 공존하기로 했다.


김조년_ 퀘이커는 오직 진리에만 복종하고, 형식과 권위에는 복종하지 않는다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시절에는 신분이 높은 사람 앞에서 모자를 벗고 무릎을 꿇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퀘이커들은 너나 나나 같은 권위의 사람이다. 그러니 무릎을 꿇지 않는다. 우리는 진리에만 복종한다 이랬다고 해요. 그러니 미움을 사서 감옥에 많이 갔겠지요. 감옥 중에서도 가장 환경이 나쁜 곳에 갇히곤 했답니다. 퀘이커들이 감옥에서 나와서 것이 감옥개선운동입니다. 감옥은 지옥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야 곳이다라고 적극적인 운동을 벌입니다. 본인들이 고생을 해봤으니까요.


퀘이커는 신과 사이에 중간자가 필요없다 믿는다. 따라서 다른 종교와 달리 성직자나 예언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믿음이 앞서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이 직책이 되거나 영속적인 직업이 되어서는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크리스트교 사이에서도 한때 이단으로 취급받았다.


김조년_ 퀘이커는 종교 박해를 많이 받았지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끝까지 이겨내고 남았습니다. 그러면서 평화운동을 열심히 해서 지금은 평화종교라고 불릴 정도이지요. 평화운동의 핵심은 가지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비폭력으로, 그리고 원수는 없다 것이에요. 국가적으로 적대적인 존재라고 해도, 생명은 국가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국가란 한시적인 보호 조직일 영속적이지 않아요. 그러니 인간의 생명은 국경을 초월하지요. 적대국의 사람도 나의 형제이므로 싸움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병역거부입니다.

살림이야기_
학교일뿐 아니라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을 해왔고, 물론 지금도 앞으로도 왕성하게 활동하시겠지만, 퇴직한 돌아보는 시간이 생겼을 같습니다.

김조년_ 살면서 순간순간 계속 돌아보아야 되리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개인보다는 공동으로 함께하는 운동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혼자 고요히 생각도 하지만 공동의 불이 비추도록 함께 기원하거든요. 촛불 하나보다는 둘셋 겹치면 밝게 비추듯이, 어차피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요. 개인으로서는 이상대로 살아왔지만, 작은 공동체로 함께 살면서 실천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번째 아쉬움은 제가 좀더 적극적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남에게 강요를 못해요. 모든 사람은 내면에 스승이 있듯이 누구나가 똑같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그게 열리면 스스로 하게 되어 있는데, 다그쳐야 할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사회의 약점 하나는 사람들의 자발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맘으로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스스로 마음에서 솟아올라서 하는 것이 진짜지 하며 망설이곤 합니다. 젊다면, 보는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살림이야기_
사회학을 전공하고 사회복지학과에서 오랜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는데, 학문이나 학과가 사회활동과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김조년_ 저는 가지 희망이 있었어요. 번째는 좋은 학자가 되면 좋겠다. 번째는 좋은 교사가 되면 좋겠다. 처음에는 좋은 학자면 족할 같았는데, 한국에서 강단에 서고 학생들과 접해 보니 학문만으로는 되더라고요. 대학생들도 학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선생과 제자로 만나는 많은 거예요. 그런데 돌아보면 가지가 실패야. 학문적으로 그렇게 업적을 쌓지도 못했고, 이론을 개발하거나 탁월한 연구를 내놓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공부할 무엇인가를 찾는게 중요하다는 것만은 깨달았지요. 독일에서 유학하는 동안, 내가 여기에 사회학을 공부하러 왔나 하는 갈등을 많이 느꼈어요. 사회학이란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건데, 나는 한국에 속해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어느 강좌에서도 한국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독일의 사회학은 독일사회라는 재료를 가지고 독일의 학문적인 칼로 사회에 맞는 이론을 만드는 거예요. 나의 재료와 칼은 모두 한국에 있다, 여기에서 다만 칼을 어떻게 만드는지는 금속공학을 배우듯이 방법을 배워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또한 한국에 돌아와서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사회를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판단력으로 판단하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얘기하잖아요?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거기에서 한발 나아가 고기의 생리, 어디에 살고 무엇을 먹는지 알게 주어야 해요. 자세를 유지하려고 봤는데, , 실패했나 싶기도 하고.

매일매일 시간을 정해두고 고전을 한두 줄씩 읽자


살림이야기_ 한국사회에서 최근 청년들이 공동체나 공유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생활에서도 공동주거나 공유경제를 실천하는 움직임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적인 공동체와는 많이 다릅니다.

김조년_ 달라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좋으냐 나쁘냐를 이야기하는 사실 의미가 없어요. 뭐라고 하든 달라지는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판단은 우리의 몫일 텐데 함께 사는 , 그것이 단순히 개인의 확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시 말하면, 내가 똑바로 혼자 살면 되지, 사회가 어떻게 되든 간에라는 생각이 확장되어 우리들끼리만 멋지게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은 아니었으면 하죠. 삶은 빛이 되어 주변에 확산되어 나가야 합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살든 간에. 내가 옳은 삶을 살면 사회에도 옮음이 펼쳐져야 합니다. 이것이 함석헌 사상의 하나이지 싶은데. 함석헌 선생은 개인과 전체는 하나, 시간과 영원도 하나, 생과 사도 하나라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입니다. 개인의 정당한 삶은 사회개혁적 요소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살림이야기_ 가장 작은 공동체라고 하면 가족을 떠올리지 않을 없는데, 가족공동체에서 지키는 원칙 같은 있을까요?

김조년_ 아이가 있는데, 딸이 결혼하여 외손녀가 있고, 아들은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남에게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 하기를 희망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바깥에서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이래라저래라 하면 되겠죠. 제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 압력을 받은 같지는 않은데. 안팎으로도, 속과 겉이 일치하는 삶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힘든데요.


살림이야기_ <표주박통신> 통해서 사람들에게 삶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오셨습니다. 우리 살림이야기 독자들에게 말씀 나누어 주세요.

김조년_ 가장 핵심은 스스로 하는 입니다. 살림은 생명의 표현이지 않습니까? 생명은 누가 하라고 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 아닙니다.
속에 생명의 힘이 차면 폭발하듯 나오는 것처럼, 한살림에 참여하는 모든 개개인이 건실한 생명력을 확보하면 좋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좋은 먹을거리를 갖는 것이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이 역사와 생태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스스로 철학하는 힘을 갖도록 성장하면 좋겠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개별로 자기 건강을 챙기는 먹을거리 운동일 뿐이지, 우리 생활 전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게 됩니다. 하나,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조직을 이루는데 자꾸 내부가 복잡해집니다. 전부 좋은 일을 하려 모였는데 그럴까? 요사이 사람들이 많이 말하는 영성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지요. 영성이란 말이 어려운데, 옛부터 조상들이 말로 바꾸면 이겠다 싶습니다. 우리에게 덕이 부족한 거예요. 남을 날카롭게 지적할 줄은 아는데 이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 오히려 것을 해친다는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뭉뚝해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노자의 이야기로 밝음이 너무 강하면 눈을 해치듯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그렇지요. 그럼 저놈은 하는데 혼자 하면 손해 보나?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글쎄요, 손해를 보면 얼마나 보겠어요?


살림이야기_ 공부하는 이들이나 사회운동가들 외에 평범한 생활인들은 매일매일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좋은 삶일까도 고민입니다.

김조년_ 우리 학생들에게도 추천하는데, 가정에서 모든 일을 하기 전에 시간을 정해 두고, 부부나 같이 시간을 있는 사람들과 고전 한두 구절씩을 함께 읽어 보세요. 많이 말고 한두 구절만. 그러고 나서 해설하거나 토론하지 말고 명상을 합니다. 우리 부부도 일요일마다 함께 명상하고 평소에도 무엇을 읽었는지 알려주곤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살자고 합의하여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아니에요. 살다 보니까 둘이 비슷하게 되었습니다. 한살림 조합원이라면 의식이 높겠지요. 또한 조합원을 받아들일 기초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삶은 각자 자기의 몫이지만, 삶이 재미있어지는 공부를 기회를 주면 좋지요.



김조년 선생은 고전을 현대 고전과 과거의 고전 가지로 나누어 추천한다. 현대 고전이란 신문과 잡지를 말한다. 기자들이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쓰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책이나 교과서는 이미 낡은 것이다. 4 동안 신문만 열심히 읽어도 대학공부보다 나을 이라고 강조한다. 과거의 고전으로는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한국역사 씨에게 보내는 편지 함께 추천했다. 특히 <씨의 소리> 권두언을 모아 엮은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생의 마감을 앞두고 우리 모두에게 주는 유언 비슷한 간절한 이야기 담겨 있다.


생각이 깊은 어른을 만나면 자꾸 이것저것 삶의 고민에 대한 답을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김조년 선생은 한발 물러서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다. 저도 궁금하니 함께 생각해 봅시다라고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상대의 의견을 구한다.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빛이 있으니,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서로 모여 함께 각자의 빛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주요섭 님은 모심과살림연구소 소장으로 생명사상(모심) 협동운동(살림) 대한 연구와 교류활동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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