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중후한 인물보다 더 강한 인물로 꼽은 것은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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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 6, 2026
Transcript
공자는 무릇 인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서고 싶은 곳에 남도 세워주고
자신이 이루려고 하는 것을 남도
이루게 한다. 가까운 것에서
알아차리고 실천하는 것이 인내 올바른
방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는데요.
그런데 공자가 나는 아직까지 진실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과 진실로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그렇게 했는데요. 그렇게 인자가
드물다는 것입니까? 저는 지금 인자를
이렇게 같이 보고 있는데 이렇게
공자는 그렇게 인자를 못 봤어요.
그니까 착각이지.
이걸 인자라고 보고 있으
착각이고
그 아까 이야기하지만 아까 이야기한게
저 유명한 문장입니다. 문장인데
그만큼 이테면 또 인을 아주 평의하게
말했거든.
보통 아 씨발이잖아. 네가 하고자
하는 걸 먼저 상대하게 해 주라이
말이야. 이게 이게 인이다. 그리고
아까 내가 그 비율 들었지만 좌측
깜빡이 놓고 기다리고 있는 자한테
내가 수업해 주면 그 인이야.
네.
내가 근데 그렇게 간단하게 이하는 거
같으면서도
진짜로 인을 좋아한다. 진짜로 인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이 뭘 의미하나에
대해서는
공장소 상당히 높은 어떤 기준을
이야기하는 거 같아. 그 왜냐면
심층의 의식까지 보고 있거든.
어 그런 말이 여러분들 나와요.
극벌욕을 하지 않으면 인이냐?
극벌욕을 하지 않는다. 이거 굉장히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 극이라는 건
누구 이기려고 하는 마음
벌은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 원은
원망하는 마음 요건 다욕이야
요런 거 하지 않으면 인이라고
합니까?
그것도 대단히 훌륭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 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대답을
그러니까 사실은
어 대단히 그니까 하여튼 뭐 대단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인인인이라는 걸
이야기하면서도 한편 깊이 들어가면
대단히 깊어요. 그냥 이런 건데이
문장에서는 그거하고 그 그렇게 진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을 자기가 보지
못했다.
음
공자가 못 봤는데
음
뭐 우리한테 보이겠어요?
요새 세상에 물질은 풍요해졌지만
정신의 상태가 과연
그런 사람들이 그냥 이렇게 발에
채이듯이 보이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아. 음,
오히려 불이난 사람들이 어,이 사람
불이 나네.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네.
이렇게
근데 그다음에 또 하나 얘기 뭐냐면
인을 좋아하는 것하고 불인을 미워하는
것을 두 개를 구분하고 있어요.
아,
요거에 아주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인을 좋아하는 것하고 불인을 미하는게
같은 질문에 스스로가 좀 이게 생각을
해 봐야 돼. 예.
공장 구분을 해. 예.
인을 좋아하는 건 더 말할수 좋은데.
예.
근데 인을 좋아하는 사람 진짜로 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참 만나기 힘들지만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은
뭐 많이 보잖아.
투사들.
근데 아주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
응.
진짜로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인을 좋아하는 것으로 성화가
돼야 되잖아요.
예. 근데 그게 잘 안 되는게 현실의
세계에 있단 말이에요.
음.
여기 여기이 문장에서 지금 그 뒤
뒤에 아마 나올 거예요.
진짜로 불인을 미하는 사람일 경우에는
그 불인이
자신의 몸에 붙지 않도록 해라는
거예요. 네.
요게 아주 그 저 그 문장에 나는
백미라고 봐요.
그러니까
요새 그 정의의 어떤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들한테
하나의 그 어이 뭐랄까 그런 정의를
위한 투쟁이 부패하거나 타락하지
않도록 하는데 금과 억주가 될 만한
말이야. 예.
불인을 미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예.
그 불인이 몸에 붙지 않도록 하라.
이럴 테면
특권을
특권의 반대 싸우는 사람이 알게
모르게 특권에 자기가 물들어
버린다든지.
또
반독재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이 독재적
성향을 갖게 된다든지
뭐 그렇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이게 나는 아주 굉장히 중요한
바람니다. 예.
그러니까 그 공작께서도 인자를 본
적이 없다고 그런데 저는 이제 가끔씩
제가 우리나라의 어떤 수많은
종교인들이나 수행자들의 영성가를 또
전 세계적으로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가끔씩 그런 질문을
받게 되는데요. 당신이 그렇게 수십년
동안 이렇게 지켜본 사람 중에서 누가
깨달았더냐, 누가 뭐 최고냐 하튼
이제 이런 질문들을 이제 가끔씩 받게
되는데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제가
답변을 제대로 안 해 주면은 어 이제
상대방들이 실망하는 모습들을 또 보게
되는데 저는 이제 그런 질문들 속에서
그 세속적인 궁금증은 이해가 가지만
질문이 내포한 그 완벽주의
그까 완벽주의라는 것은 예를 들면
공자님도 그때 당시에 미움을 많이
받기도 했고 상가집 개처럼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고 떠돌기도 했고
부처님도 이렇테면 재받았다 같은
사람의 눈에는 왜 저렇게 힘이 덕하고
원칙이 흔들리고 제대로 줄 때가
없느냐 이런 식으로 비난도 받고
죽임을 당할 뻔다고 예수님 같은 분도
유다에게는 저분도 왜 이렇게 힘이
덕하냐 이런 식으로 열성 문제자에게는
그렇게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자기의 시각에 의해서 어떤 성인
문자도 제대로 볼 수가 없기 때문에
그냥 그 왕고한 틀 시각 자체로
사람들이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그런
틀이 있기 때문에 그분의에 질문에
저도 이제 답을 해 줄 수가 없는데
그냥 제가 보기에는 아 그렇게
완벽주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그분의
다른 면물을 보면 다 실망하게
됐거든요. 전혀 누구든지 그런
완벽주의 시각에 자기 왕구한 틀에
맞춰 줄 사람은 세상에 있기 때문에
근데 아 저분은 이런 면이 참
훌륭합다. 저분은 이런 명이
훌륭합다. 이렇게는 얘기할 수가
있지만은 누가 제일 완벽하고 누가
제일 깨달았더냐 이런 식의 물으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하고는 상종하지 마.
그 어리석은 질문. 그거는 어리석
질문 정도가 아니고
음
그거 그런 질문을 하는 그 바탕이
나가 볼 테는 그저 어 우리 조
선생이 그 그런 사람을 어 고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냥 상종하지 않는게
제
그 예수께서 가족조차 버리고 큰 이제
사랑을 이제 나서라고 퇴근한 것과
달리 공자님은 가까운 사람부터 어떻게
보면 챙기라.
이게 상당히 현실적인
그런 차이를 어떻게 보십니까?
크게 또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예요.
네.이
잘못하면 가족주의나 혈주의나 뭐 이런
쪽으로 이게 발전했기 때문에 사실은
유교가 비난받는 거예요.
음.
예. 근데
공자의 기본적인
그 정치 철학이기도 하고 생각은
뭐냐면
근자열 원자래요.
근자열 가까운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서
사람이 온다 이거.
우리가 익산의 모델 도시를 만들면
음
어 인구가 줄지 않고 와. 아,
이게 근자열 원자 이게 기본
어 예수가 가까운 사람을 하라 하는
거는 아까 이야기한 혈련주의라든지
요새 흔히 말하는 가족 이기주의라든지
뭐이 이런 데서 벗어나라는 이야기 둘
다 성립합니다. 둘 다 맞는
말인데
근데 이제 그
가까운 이게 가까운 사람을 먼저 잘
챙기라 하는 이야기가 잘못 왜곡돼
가지고 지금 같은 유 같은 패단들이
나타났다고 봐야지 이렇게 가족주의나
무슨 이렇게 좀 실현주의라든지 이런
그런 거 같아요.
공자가 나는 강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어떤 사람이 그런
사람이 있다고 신정이란 인무를
지목하자. 아 공정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어찌를 강한 사람이라 하라고
했다는데 여기서 강은 외강할 때 그
강인데 강하다는 왜 욕심많은 사람은
강한 사람이 못 된다고 했을까요?
어 욕심는 사람은 욕심에 사로잡히지
그까 이렇테면 자기는 굉장히 강한
사람처럼 생각할지 몰라도
어 공자의 봤을 땐 그건 강한게
아니지. 예.
강의라는게이 테면이 꿋꿋함이라는
이야기 꿋꿋하다.
근데 그 꿋꿋함이라고 하는 거는
욕심많은 사람은 이게 아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니까이
공자의 강은
네
유연남이 이게이
바탕이 돼 있어요. 예,요
이야기 굉장히 내가 하나 좀이 관련된
이야기기 때문에 중요한 이야기가
뭐냐면음
공자도 강을 추구하거든. 강을
추구하지만 그 강이 뭐냐면 실제
내용으로는 그 유연함이 강이야.
네. 어
아마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라고 할까
이것이
어 공자가 이야기하는 어떤 그
이상적인 상태인데 그 유명한 문장이
있습니다.
군자는 무겁지 않으면
어
위험이 없고 네
군자 부중
불위 무겁지 않으면 위험이 없고
근데 그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사람들이
이제 공자를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학즉 불고
네
근데 이걸 또 아까 무거운 걸
좋아하는 무거운 거 무거운 거 어떤
중심이 잡히 있다는 무게 중심이
있다는 이야기데 예. 요거에 치우쳐
가지고 생각하다 보면 아 무거운게
좋고 무거워야 권위가 있다는 사실
권위 주인은 나쁜 거지만 벗어나야
되겠지만 권위 자체가 사라지면 안
돼요.
그렇죠.
제대로된 권위가 없으면 질서가 제대로
지금 요새가 그 권위 상실이거든.
아버지가 아버지 권위가 없고 선생이
선생 권위가 없으니까 교실이
붕괴하고. 예.
근데 그 다음에 나오는게 학즉
불고야. 그래서 요것도 어떻게
번역하는 거 하면 배워도 경고하지
못하고.
음. 마치 경고한 걸 좋은 것처럼
생각해 버려. 근데 이게 아주 달라.
학직 불거는 뭐냐면 배워서 경고해지는
거를
딱딱해지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배워도 완고하지 않고라고
번역하는게 나. 네. 나
그다음에 주충신 그럼 무엇으로 무게
그 무게를 무거움 아까 이야기한 걸
하느냐 하면 주충신 충과 신으로
이게요. 그다음에
무불력이자
무력이자라고 하는 거는
나보다 못한 벗이 없다는 거야.
아하.
음.
나보다 못한 벗이 없어. 그러니까
벗을 사귈 때 이거 번역을 또 어떻게
하는 사람이냐면 나보다 못한 사람과는
사귀지 말고 이렇게 번역하라고
해서
그런 말이 전혀 아니야. 나보다 못한
벗이 없어. 네.
다 이게 내가 이렇게 테면 수승이야.
수승. 어. 그래
곧이라는게 아주 딱
과즉 물탄계.
잘못면 바로 기털없이 고쳐라. 뭐
망설리지 말고 고쳐라는 거. 이게
가벼움이야. 그러니까이 무거움과
가벼움이 이렇게 조화된 그래서 사실은
공자의 강은 유연함이야. 예.
음.
그 말이야죠.
근데 욕심이 있고 이런 사람은 그
유연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강하다는
것이 보통은 자기 확신이 강한테 사비
교주처럼 또 그런 독재자처럼 자기
확신이 강한 자기 중심성
아집 이기심 이런 것이 강한 것을
그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강하다고
보통은 인식하는데 그것은 유연함과는
정 거리감은
설사 일시적으로는 그 폭력에 굴할지
모르지만은 그런 사람들은 만련이
되습니다. 별로 안 좋은
주역으로 보면 항 위에 피흘리고 진리
흘리고 끝이 안 좋은 경우를 우리가
역사에서 늘 보기 때문에
하여튼 그게 진정한 강함으로 볼 수가
없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