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Sejin Pak".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Sejin Pak". Show all posts

2023/09/30

Sejin Pak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머리글

(2) Sejin Pak -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
김태창의 <공공철학 이야기>를 지난 주 (9월 중순)에 읽기 시작했는데
---
- 퀘이커공부방이라는 독서모임에서는 일주일에 한 쳅터 씩 나가기로 하고 제 1장인 <원효>에 대해 읽을 계획이었는데,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머릿글>이 꽤나 길고, 읽어보니 중요해서 그 <머릿글>과 책의 <후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실제로 이 두 부분은 읽어보면 이 책을 읽기 위해 잘 읽어두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 그런데 이 두 부분은 <저자> 김태창 선생이 쓴 것이 아니고 두 일본인이 쓴 것이다. 실제로 김태창 선생이 글로 쓴 것은 없고, 일본에서 일어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우선 원광대 교수 야규 마코토가 일어 글로 옮기고, 서경대 교수 정지욱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머릿말>은 일본에서 김태창 선생과 <공공철학 대화>로 오래 동인 협력해왔던 카타오카 류 (일본 동북대학) 교수가 (일어로) 쓴 것이다. 그러니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걸처 만들어진 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
- 이번에는 왜 두 일본인이 위의 두 부분을 썼고, 왜 그 글들이 중요한가에 대해 써보려고 하는데,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책의 길고 긴 제목이다.:
(1)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2) 한 삶과 한 마음과 한 얼의
(3) 공공철학 이야기
----
(2)의 부분부터 시작하자면,
- 지난 번에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할 때 나는 이 책을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철학사>같은 책이라고 말했고 실제 각 쳅터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한국의 역사적인 사상가들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는 머릿글과 후기를 읽고 왜 이 책이 <한국철학사>가 아닌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 우선 이 책에서는 <한국 철학>이라는 말이 없고, 제목과 책 안에 나오는 <한 삶>, <한 마음>과 <한 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들을 <한 사상>이라고도 짧게 말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한>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고 놀랍다. 머릿 글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한반도에 수천년을 흐르는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 중심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도 다르지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참조).
----
(1)의 부분에 대하여:
- 이 책의 내용은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일어로 나눈> 말을 글로 옮기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왜 그런가> 저자 (발표자) 김태창에 의한 직접적인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에 의한 서문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한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할 것 같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설명이 없다. 그런데 머릿 글과 후기를 쓴 두 일본인이 이 이야기는<일본인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머리 글을 쓴 타카오카 류 교수에 의하면 <한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일본인들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거울으로서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일본(인 들)이 <한얼>을 부정하고, 억압하고, 말소하려고 했던 역사가 있어서, <한사상> 이야기를 들으므로서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한 사상>이야기들은 일본 비판이 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러니 일본인의 반성이라면 비판을 들어서 이 반성이 아니라 <무언가 깨달는 것이 있어서의 반성>이라고 생각된다. 그 깨달른 것이라는 것이 (3)의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보인다
----
(3)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
- 이 책은 제목이 <공공철학>인데 저자에 의한 <공공철학>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공공철학>이 무엇인가를 재대로 설명하자면 시간이 걸린다. 또 동시에 여러 곳 (다른 책들) 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어있으니 머릿글에서 되풀이 하지는 않고 (!) 필요한 만큼 만 말하겠다고 카타오카 류 교수는 머릿 글에서 말한다.
-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관 중심>의 <공공>이 아니라 <민 중심>인, <개인을 살리는> <공공>이라는 것인데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 중심>이라고 한다. 이 과제를 <활사개공>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발의 <멸사봉공>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공공하는> 또는 ,공공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리더적인 인간 모델>로 보고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뽑아서 본다는 것이다 이야기 대상의 인물들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뽑는 것이지만, 일본인에게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 들에게도 역시 <우리 나라> 사람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만 받아드리지 말자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말이 되나? 나에게는 되는 것 같다. 나라나 민족을 초월하는 이야기라면 ,한국인 모두가 하는 것처럼<한국철학>이라고 부르면 포인트가 틀리게 되는 것 같다.
----—
지난 글:

Sejin Pak |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2) 원효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2) 원효
---
지난 글은 여기:
https://www.facebook.com/sejin.pak8/posts/pfbid0yf2unKfLSCwwrQjjBuEiu5rfHysJ1Uw8ze2nQDtMXc1bJamw38HySX65ZcAdMf5Nl
---
- 이 글을 쓰기 까지는 김태창 책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의 머리글이 아닌 첫 부분인 <원효> 하는 인물과 사상에 대해 읽고, 그 후로 약 20 시간 이상 원효에 대해 여러가지 글을 읽었다. 그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인데, 내가 원효에 대해 읽은 것을 모두 포함하여 이 책의 제 1장에 나오는 <김태창의 원효론>이 <나에게는>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된다. 그 평가가 객관적인 것인가, 주관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다른 사람들에게 맏기지만, 김태창의 글이 나의 마음에 닦아온다. 다음 번에 쓸 <이도흠의 원효론>도 좋고, 비교가 되지만 나에게는 <김태창의 원효론>이 훨씬 좋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김태창은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려고 원효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이도흠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는 줄여서 설명을 한다.

- 원효에 대한 제 1장의 내부 차례 (사진 1)을 보면 원효에 대한 글이 일본의 국보 이야기 (제 1부) 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원효의 화쟁 사상에 대한 설명(제 5부)에 <일본의 화 사상>의 이야기에는 반드시 나오는 8세기 일본의 쇼토쿠 태자 이야기가 비교로 나온다. 이 비교로서 김태창은 일본인 독자/청자들의 마음을 건드리려고 하고 있는 것인데, 그 마음이 책을 읽는 나에게도 전해온는 것이다. 한국인 독자들에게도 책을 <나처럼 읽는다면> 전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물론 아마도 많은 한국인에게는 그것이 전달되지 않을 것도 같다. 우선 이 책을 찾아 읽으려고도 하지 않는 점도 있지만, 읽어도 느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 이 장에서는 원효라는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풍류도, 풍류도인이란 무엇인가가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읽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그런 인물이 나오는 배경인 <신라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이르킨다. 한국의 전통을 이씨 조선의 문화로서 이해하려는 것을 넘어스려는 뜻이 였보인다. 앞으로 시가이 나면 신라문화에 대하여도 공부해 보려고 한다.

- 이 장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보다도 <화쟁사상>에 대한 설명인데, 그 부분은 제 5부의 제 1 부분에 나오고, 결론에 또 다시 요약되어 나온다. 이 요약 부분을 사진 2, 3, 4, 5에 올린다. 이 결론에는 원효의 화쟁사상은 <이성중심주의적>이 아니고 논쟁의 상대와 마음이 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되어있는데, 이렇게 만 짧게 이해한다면, 오해되기 쉬워서 한 마디 해 놓는데, 앞부분의 제 5장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충분히 <논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상대방의 이야기는 하는 이야기 만이 아니라, (1) 그 이야기가 나오는 <컨텍스트/맥락>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더 나아가서 (2) 그 <인식론적 토대>도 고려할 필요가 있고, 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3) 소통의 도구인 <언어 자체에 대한 통찰>도 필요하다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 우선 지극히 논리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야야기의 연장을 다음 글인 이도흠의 화생론에서 계속하려고 한다.
----

















------










2023/08/11

[독서생활] [나를 바꾸기] 위한 [타오이즘]공부 - 나를 위한 간단한 일차적 정리

Sejin Pak | Facebook

[독서생활] <나를 바꾸기> 위한 <타오이즘> 공부 - 나를 위한 간단한 일차적 정리
---
-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도덕경>과 <노장사상> 공부를 해본다. 그런데, 그런 공부를 해서 뭐를 배울까? 어느 정도의 지적 이해를 얻는 것 이상 뭐가 남는가? <자신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뭔가를 배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오이즘 Taoism/Daoism> 공부를 다시 한다.
- 이번의 포카스는 
(1) 동양에서는 흔히 <노장사상>이라고 불리우는 <철학 사상>으로서의 <타오이즘>과 
(2) <기공>같은 일종의 <수련문화>로서의 <타오이즘>, 그리고
(3) 흔히 <도교>라고 불리우는 <종교>.로서의 <타오이즘>간의
 <차이와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자는 데에 있다. 거기에서 무언가를 깨달을 것 같다고는 전에부터 생각했다. 
- 나도 많은 사람들처럼 <삶의 철학>으로서의 <노장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세상을 보는 눈으로의, 또는 인생철학으로서의 노장사상이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몸에 대한 동양식 이해와 제대로 실천은 하지 않았으나  태극권, 또는 요가같은 <몸 가꾸기>에 관심이 있었다.  <도교>라는 <종교적> 타오이즘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의 일종의 <미신적> 민중종교라고 생각하여 특별히 관심도 없었고,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철학사상으로서의 타오이즘 (노장사상)과종교로서의 타오이즘 (도교), 그리고 수련이나 의학으로서의 타오이즘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관계를 설명하는 책들을 만났다. 첫번 째 만난 책이 종교학자 최준식의 책 <,,,>의 <노장사상과 도교>라는 부분 (장)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약 10년 전에 읽은 듯하여 어느 정도에서  최준식의 책을 다시 읽게되었고, 이 세 책에서 타오이즘에 대한 나에게는 가장 도움이 될만한 프레임이 떠 오르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 여기 기록해두려고 한다. 이 정리를 일차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앞으로 몇년 간 더 공부를 하면서 뭔가가 바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말이다. 그래서 제 2차 정리와 제 3차 정리가 몇년에 한번씩 일어나리라 생각한다. 
---
- 우선은 휴스턴 스미스와 최준식의 <타오이즘> 이해에 대하여 말하자면, 타오이즘에 대한 다른 책들과 달리 이 두 저자는<노장사상> 만이 아니라 <도교>에 대하여도 함께 논한다는 것을 지적해야겠다. 그러나 두 저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휴스턴 스미스는 타오이즘에는 세가지 면이 있다고 한다. 그 하나는 <철학으로서의> 타오이즘이고, 그 둘째는 <종교로서의> 타오이즘이다. 

-














+5














25:38
Organized Daoism & Internal Alchemy (Neidan)
Let's Talk Religion

2023/08/03

Sejin Pak - [독서생활] 홍동마을 - 풀무학교 - 유기농업운동의 시작 - 한일관계 — - 한국의 유기농업... | Facebook

Sejin Pak - [독서생활] 홍동마을 - 풀무학교 - 유기농업운동의 시작 - 한일관계 — - 한국의 유기농업... | Facebook


[독서생활] 홍동마을 - 풀무학교 - 유기농업운동의 시작 - 한일관계

- 한국의 유기농업 운동에 관심을 가지면 풀무학교와 홍동마을에 대하여 나온다. 한국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지도 모르겠으나, 외국인에 가까운 나로서는 언제인가 책을 한권 구해 읽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하여 산 첫번째 책이 이 책이다. 저자가 4명인데 충남연구원이란 곳의 연구위원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보고서 같은 냄새가 난다.
- 책은 4장으로 되어있다: 1] 풀무학교, 2] 홍동 마을의 유기농업의 역사, 3] 협동과 연대의 이야기, 4] 홍동마을을 넘는 네트워크. 처음 세장은 당연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발전했다. 이중에 아마도 풀무학교가 가장 중요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유기농업이운동이 시작되었고, 또 또 그 운동의 실현을 위해 협동조직들이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 나에게는 풀무학교와 한국의 유기농업운동의 시작에서 제일 인상적인 이슈는 일본과의 관계가 필수적이었다는 것이다. 두페이지를 복사하여 밑에 올린다.
- 풀무학교의 설립자가 무교회 신앙인이였다는 것은 알았는데, 그것이 이 학교의 교육에 어떻게 반영되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으나, 학교의 설립목적에 기독교교육이 들어가 있고, 이런 말들이 나온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복음의 씨를 뿌린다". 이런 말 만으로는 그런 가치가 농업교육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잘 알 수가 없으나, 기독교 대안-농업학교라는 이유로서 일본의 애농회와 관계를 맺게 되고, 또 네델란드의 개혁교회의 재정원조도 받게 된다. 이 점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의 진보 기독교회가 서방 교회의 원조-지원을 받은 경우와 비슷하다. 1975년에 일본 애농회의 회장 코오타니 준이치씨가 풀무학교에 와서 한 강연의 충격이 한국의 유기농업의 시작이었다는 이야기는 과거에 신문잡지 기사에서도 본적이 있는 것 같다. 코오타니씨가 무교회 교인이었다는 것은 일어 위키페디아를 읽어서 알게 되었다.
- 일본과의 관계는 학교의 자매관계, 유기농 조직간의 관계등으로 깊어가고 계속되었다. 일본에 있는 자매교들에서는 신앙면은 얼마나 강조하는지 모르겠으나, 찾아본 기사에서는 농업만이 아니라 평화교육을 상당히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또 어느 기사에서 읽었던가 한중일은 형제나라라는 개념을 가르친다는 것도 읽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어가는 요즈음, 이런 대안 학교,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회운동이 일본과의 교류에서 주류와는 다른 한일관계를 만들어간다.











All reactions:19회리, Park Yuha and 17 others

Yoon Seok Won

제 처가 홍동 출신입니다. 덕분에 유기농업 단지에 자주 갑니다.

2023/07/26

Sejin Pak - [인물] 일본인 이슬람/언어/철학자 이즈쓰 토시히코 -


Sejin Pak
otdsSpnoref472 2Jiu65i61h823228f5am830uy383mc 90ui0i371lt0gg ·


[인물][책] 이즈쓰 토시히코와 그의 책 <의식과 본질>

- 지난 12 주 간 씨름을 한 책 <의식과 본질>이라는 책의 저자.
- 왜 일본에서는 그와 그의 책이 “그렇게”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이 읽히고, 잘 이해가 안되어도, 일생을 걸처 여러번 다시 읽히는 중요한 책이 되어있고, 한국에서는 이 책이나 저자에 대해 제대로 알려지기 조차 하지 않았을까?
- 그 이유를 분석해보는 것은
[1] 일본, 한국, 한일관계의 정신사의 이해를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과제라고 보인다.
[2] 그것은 <정신사>라는 것을 의식의 <비교문화사 적 접근>과 <심층구조적 접근>이라는 두 면을 고려하는 <메타 히스토리>로 구성하는 것이다.
[3] 비교종교사의 새로운 프레임워크라고도 볼 수 있다.
—-
사진은 1979년에 스위스의 아라노스 컨퍼런스에서 강의하는 이즈쓰 토시히코.



Sejin Pak - [인물] 일본인 이슬람/언어/철학자 이즈쓰 토시히코 ---- - 그의 책 <의식과 본질>을... | Facebook

- 그의 책 <의식과 본질>을 공부한지 오래된 줄 알았는데, 일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공부의 파급효과는 커서 여러 가지 책들을 읽게 되었다. 현재 <퀘이커 공부방>에서 <수피즘과 노장사상>을 공부하고 있는데 나는 얼마전부터 시간을 다른데 더 쓰려고 당분간 빠지기로 했다. 그러나 물론 이 책은 나도 마처야 할 것이다. 다음 번에 내가 읽을 이즈츠의 책은 <Zen Buddhism>이다.
===
코토 대학 철학과에 욉페이지에 있는 이즈츠 소개
---
[이즈츠는 다양한 언어로 집필된 사상의 문헌을 읽고, 거기에 표현된 세계관을 석출하는 것을, 자신의 저술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했다. 사고와 언어를 자르고, <인류에는 공통 보편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확신, 그 체계화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
만년에는 <동아시아, 인도, 이슬람, 유대의 신비사상>을 <각각의 역사적 차이를 넘은 차원에서 유형론적으로 파악>하여 <동양철학>으로서 구조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즈츠는, 불교의 유식론에 있어서의 <아라야식>——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최심층에 정위하는 <식> -- 을, 언어 의미론에 응용해 「언어 아라야식」이라고 명명했다.
다종다양한 언어의 수만큼 사상, 의미, 세계관·가치관이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지만, 인류에 공통 보편적인 의미가능체의 저장소 혹은 「종자」로서 언어 아라야식이 있어, 다양한 형태나 이미지는, 거기에서 언어나 풍토・민족성을 매개하여 결정하는 <의미 구조체>라고 파악했다.]
===
이즈츠는 코토대학이 아니니라 케이오 대학 출신이었고, 외국에서 활동한 시기가 길었는데, 일본으로 돌아올 때, 코토대학에서 모셔가려고 했으나 모교 케이오대학으로 가게 되었다고 어디선가 읽었다.<일본의 현대철학>이라면 보통 <쿄토학파> 이야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이즈츠가 끼어있지 않다. 이즈츠는 외국에서의 활동시간이 길어서 일본에서의 후학양성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이즈츠에게도 쿄토학파에게처럼 선불교는 중요했으나, 이즈츠의 비교대상은 서양철학이 아니라 이슬람철학이라서 거기서 갈라진 듯하다.

All reactions:3崔明淑, Paul Ma and 1 other


崔明淑

수피즘을 마치고 노장사상을 읽고 있는데 발표식으로 3장씩 읽고 있고 내용은 흥미진진합니다. 노장사상은 수피즘처럼 이븐아비의 난해한 주장정리가 아니라 이즈츠의 중국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인해 고증해 가는 주장도 명료하고 읽기가 수피즘때와는 비교가 안 될만큼 쉽습니다. 발표자는 정해졌으니 그냥 듣는다는 생각으로 오세요~ ~

2023/06/28

Sejin Pak - [건강과 행복의 과학] 내장과 행복이 무슨 상관? <배가 말해주는 직관> --- 이전의 글에서... | Facebook

[건강과 행복의 과학] 내장과 행복이 무슨 상관? <배가 말해주는 직관> --- 이전의 글에서... | Facebook

[건강과 행복의 과학] 내장과 행복이 무슨 상관? <배가 말해주는 직관>
---
이전의 글에서 계속
---
<건강과 행복의 과학>이라는 온라인 강좌의 제6강에서 <내장과 행복>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는데, 그 이야기는 우선 <내장과 뇌>의 관계에서 시작한다. 일본에서는 1990년에 와서 내장에 있는 균이 <좋은 균>도 있고, <나쁜 균>도 있다는 인식이 시작되어 <좋은 균 상품> 마저 개발되고 책도 나오고 했지만, <내장의 균>이라는 인식은 <장내 미생물군 microbiota>라는 인식에는 아직 못 미치고 있었다.
- <장내 미생물군 microbiota>이라는 것은 인간의 몸안에 특히 내장안에 균이 살아있는데 좋은 균도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수많은 여러 종류의 <미생물군>이 함께 마치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조직체와 같은 존재로 있다는 이해이다. 이 조직체는 일종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의 뇌와도 소통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 안에 들어있지만, 인간의 의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이 움직이는데, 인간이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는 것 까지 알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언어에도 <배로 안다>는 표현이 있는데, 과학적이지는 아니나 이제야 점점 밝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배로 안다>는 것은 머리보다 빨리 직관적으로 뭔가를 안다는 이야기이다.
- 그런데 인간의 몸에서는 뇌와 내장 <장내미생물군>사이에 소통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Gut-Microbiota axis (일어로는 脳腸相関 뇌장 상관)이라고 부르는데 내장의 이런 기능에 대해 알게된 것은 지난 몇년 사이에 미국에서 시작했고, 그 후에 일본에도 알려젔으나, 물론 미국 만큼은 아니다.
- <내장과 행복>이라는 말은 <내장이 편해야 행복하다>는 내장을 지능이 없는 신체 부분으로 생각하고 그 부분의 상태가 좋으면 (배속이 편하면) 나도 편하다는 정도의 이해가 아니고, <내장의 기분>을 이해하고, 그 기분에 마추어 주여야 <나>도 행복하다는 식으로 이해하여자 될 것 같다. 여기서 <나>는 <뇌>와 뇌화학이 가저오는 ,느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는 <나>라는 것은 <두뇌의 나> 만이 아니라 <내장의 나>라는 것이 있으니 이 둘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 같으다. 그런데 아직까지 ,마음의 나>에 대해서는 나온지 않는다.
----
밑에 나오는 글과 비데오가 <뇌장상관>에 대하여 짧게 잘 설명을 하는데, 영문글로도 있어서 한국어로 구글 번역해보았다.
---
===
직감을 믿으세요: 뇌-장 연결이 직관적으로 결정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2021년 10월 1일 게시됨 출처 BrainFacts/SfN
뇌와 장 사이의 양방향 통신은 식사를 소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이상을 수행합니다. 직관적인 의사 결정과 같은 더 높은 인지 기능도 지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직감적인 결정"은 옵션을 신중하게 고려할 시간이 없을 때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
2021 뇌인지 영상 공모전 영상입니다 .
Aline Ivy Salillas가 제작했습니다.
BrainFacts/SFN에서 제공하는 콘텐츠
---
직감을 믿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까? 직감을 찾는 것은 위험할 수 있지만 뇌와 장 사이의 양방향 통신 덕분에 직관적인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추 및 말초 신경계 외에도 우리 몸에는 식도에서 직장까지 약 1억 개의 뉴런을 포함하는 장 신경계가 있습니다. 장의 뉴런은 장 감각을 생성하는 경로를 제공하며 감각 신호를 뇌와 척수로 전송하여 이러한 감각에 작용합니다. 소화관 내벽에는 신경족 세포라고 하는 구심성 뉴런과 연결되는 장내분비 세포가 있으며, 이 세포는 감각 정보를 처리하고 복부에서 뇌로 이어지는 미주 신경을 통해 소화관에서 뇌간으로 보내는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뇌 장축(brain gut axis)이라고 하는 뇌와 장 사이의 양방향 통신이 이루어집니다.
뇌 장 축 (The brain gut axis)은 우리의 소화를 유지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동기 부여와 직관적인 의사 결정과 같은 더 높은 인지 기능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제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내수용성 (interoception), 즉 신체의 내부 상태를 감지하는 능력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전두엽 피질에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저장합니다. 이러한 내수용 신호는 우리 환경에서 무엇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불행하게도, 뇌 돌출 네트워크의 중앙 허브인 섬 피질 (the insular cortex, the central hub of the brain salience network )에 의해 이러한 신호의 단편만이 우리의 의식으로 전달됩니다. 돌출 네트워크의 임무는 이러한 내부 수용 신호를 필터링하고 처리하여 의식적인 인식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호는 불편함과 고통을 수반하는 우리의 직감을 생성합니다.
이제 우리는 누군가를 피하고 싶은 직감을 경험했거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즉시 많은 옵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진화한 이후로 우리의 직감은 이미 생존 본능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직감은 우리의 조상이 포식자나 천연 독에 접근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경계하는 방법과 같은 생존 유형 시나리오에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선택을 평가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때 우리의 직감을 신뢰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감정 기반 의사 결정의 이점을 조사하여 참가자에게 각각 고유한 기능 세트가 있는 4대의 가상 자동차를 제시했습니다. 그들의 임무는 자신의 감정이나 각 옵션에 대해 언급된 기능에 따라 최고의 자동차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바탕으로 기능보다는 감정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이 복잡한 결정에 대한 선택의 질을 높였습니다.
우리의 직감은 또한 금융 거래와 같은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우리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금융 거래자와 비거래자의 내수용 능력을 비교했습니다. 결과는 직감이 강한 트레이더가 의사 결정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나타내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트레이더가 거래 분야에서 더 성공적임을 시사합니다.
직감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것은 복잡할 수 있지만 결정을 지나치게 생각하면 위험한 시간 제약 환경에서 더 나은 선택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뇌-장 연결은 우리의 직관과 의사 결정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차를 고를지 결정할 때 수많은 복잡한 결정을 내릴 때 항상 우리의 직감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논리를 직관으로 대체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점에 유의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든 결정의 합리적인 세부 사항을 고려해야 하지만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이러한 세부 사항을 과도하게 분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직감을 위해 가는 것은 위험하지만, 우리의 직감을 맡기는 것은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
Like
Comment
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