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30

Sejin Pak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머리글

(2) Sejin Pak -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독서생활] 김태창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공공철학 이야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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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창의 <공공철학 이야기>를 지난 주 (9월 중순)에 읽기 시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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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퀘이커공부방이라는 독서모임에서는 일주일에 한 쳅터 씩 나가기로 하고 제 1장인 <원효>에 대해 읽을 계획이었는데, 책을 읽기 시작했더니 <머릿글>이 꽤나 길고, 읽어보니 중요해서 그 <머릿글>과 책의 <후기>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실제로 이 두 부분은 읽어보면 이 책을 읽기 위해 잘 읽어두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된다.
- 그런데 이 두 부분은 <저자> 김태창 선생이 쓴 것이 아니고 두 일본인이 쓴 것이다. 실제로 김태창 선생이 글로 쓴 것은 없고, 일본에서 일어로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눈 것을 우선 원광대 교수 야규 마코토가 일어 글로 옮기고, 서경대 교수 정지욱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머릿말>은 일본에서 김태창 선생과 <공공철학 대화>로 오래 동인 협력해왔던 카타오카 류 (일본 동북대학) 교수가 (일어로) 쓴 것이다. 그러니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걸처 만들어진 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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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는 왜 두 일본인이 위의 두 부분을 썼고, 왜 그 글들이 중요한가에 대해 써보려고 하는데, 우선 주목해야 하는 것은 책의 길고 긴 제목이다.:
(1)일본에서 일본인들에게 들려준
(2) 한 삶과 한 마음과 한 얼의
(3) 공공철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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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부분부터 시작하자면,
- 지난 번에 이 책을 간단히 소개할 때 나는 이 책을 일본인들에게 들려주는 <한국 철학사>같은 책이라고 말했고 실제 각 쳅터에서 다루는 것을 보면 한국의 역사적인 사상가들이니, 그렇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나는 머릿글과 후기를 읽고 왜 이 책이 <한국철학사>가 아닌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 우선 이 책에서는 <한국 철학>이라는 말이 없고, 제목과 책 안에 나오는 <한 삶>, <한 마음>과 <한 얼>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들을 <한 사상>이라고도 짧게 말하지만, 거기에 나오는 <한>은 <한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아니라는 점이 특별하고 놀랍다. 머릿 글에 나오는 설명에 의하면 한반도에 수천년을 흐르는 일종의 <집단적 무의식>이라는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 중심의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에도 다르지만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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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부분에 대하여:
- 이 책의 내용은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일어로 나눈> 말을 글로 옮기고 한국어로 번역한 것인데, <왜 그런가> 저자 (발표자) 김태창에 의한 직접적인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저자에 의한 서문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일본인에게 <한 사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할 것 같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설명이 없다. 그런데 머릿 글과 후기를 쓴 두 일본인이 이 이야기는<일본인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머리 글을 쓴 타카오카 류 교수에 의하면 <한 사상>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음으로서 <일본인들 자신에 대해서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는 <거울으로서의 역사>라는 표현을 쓴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일본(인 들)이 <한얼>을 부정하고, 억압하고, 말소하려고 했던 역사가 있어서, <한사상> 이야기를 들으므로서 그런 것들에 대한 반성이 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한 사상>이야기들은 일본 비판이 목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러니 일본인의 반성이라면 비판을 들어서 이 반성이 아니라 <무언가 깨달는 것이 있어서의 반성>이라고 생각된다. 그 깨달른 것이라는 것이 (3)의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에서 나온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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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공철학하기>의 이야기
- 이 책은 제목이 <공공철학>인데 저자에 의한 <공공철학>에 대한 설명이 없다. <공공철학>이 무엇인가를 재대로 설명하자면 시간이 걸린다. 또 동시에 여러 곳 (다른 책들) 에서 충분히 설명이 되어있으니 머릿글에서 되풀이 하지는 않고 (!) 필요한 만큼 만 말하겠다고 카타오카 류 교수는 머릿 글에서 말한다.
-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관 중심>의 <공공>이 아니라 <민 중심>인, <개인을 살리는> <공공>이라는 것인데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 중심>이라고 한다. 이 과제를 <활사개공>이라고 부르기로 한다는 것이다. 일본발의 <멸사봉공>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공공하는> 또는 ,공공하며 살아온> 사람들을 <리더적인 인간 모델>로 보고 역사에서 그런 인물들의 삶과 사상을 뽑아서 본다는 것이다 이야기 대상의 인물들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뽑는 것이지만, 일본인에게도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만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인 들에게도 역시 <우리 나라> 사람 (철학자)들의 이야기로 만 받아드리지 말자는 것이 포인트인 것 같다. 말이 되나? 나에게는 되는 것 같다. 나라나 민족을 초월하는 이야기라면 ,한국인 모두가 하는 것처럼<한국철학>이라고 부르면 포인트가 틀리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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