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7

독창적인 기철학의 길을 연 거인_ 서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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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적인 기철학의 길을 연 거인_ 서경덕
정정진 2017. 12. 24. 17:30





신분평등사상으로까지 연결된 독창적 기이론




이런 서경덕이었으니 조정에서 몇 차례 벼슬을 내렸다고 그가 받아들일 리가 만무했으리라. 이런 생활 속에서 서경덕은 마침내 그의 학문적 사변과 철학적 사유를 정리해야 할 시기에 다다랐다. 쉰여섯 살에 들어 그의 병이 깊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원리기' 등 논설 네 편을 지었다.




알다시피 이와 기는 성리학의 기초로 우주나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원리이다. 중국의 주자가, 우주는 어떤 원리인 '이'와 그 작용인 '기'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설파한 뒤 여러 학자들이 그 본질을 규명해왔는바, 서경덕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해명했는지 간단히 설명하면 그 내용은 이러하다.




형체가 없는 태허(太虛 : 우주생성 이전의 상태)를 선천(先天)이라고 하니 그것은 처음도 없고 끝도 없으며 쥐면 비어 있고 잡으면 없으며 귀로 들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이 태허에는 곧 단 하나의 기가 있을 뿐인데 후천(後天)에는 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약동이 일어나며 동시에 개벽이 일어난다. 이 같은 동작이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 그렇게 시키는가? 제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역시 제 스스로 그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이것을 '이'(理)의 시(時)라고 한다.




이런 논리는 확실히 주자의 설에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또 촛불이 타서 없어지는 것 같지만 그 기는 우주 안에 그대로 있는 것과 같이 인간도 태어났다가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보이지 않는 속에서 우주 속에 그대로 있다고 했다(이것을 물질불변설이라고 부른다).




이런 그의 선, 후천설과 물질불변설 등을 두고 당시의 학자들, 곧 이황 같은 유학자들은 정통의 설이 아니라고 반박하였다. 이에 그의 제자들은 서경덕의 학설이 주자의 이론과 다른 것은 중국의 주염계의 설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철저하게 독창적이요 스스로 깨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이론과 학설은 원효와 함께 우리나라 사상사에 우뚝 서게 되었다.




그가 이렇게 형이상학에 몰두했다고 해서 현실문제를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조정의 일을 논하기도 하고 잘못된 현실에 늘 민감하게 반응했다. 서경덕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다툴 일이 있으면 관가에 가지 않고 그를 찾아왔을 만큼 그가 현실 또는 민중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지함은 서경덕의 철학을 토대로 해 지은 '토정비결'을 민중들에게 주었고, 허균은 그의 사상을 키워 현실개혁을 부르짖었다. 조선 후기에 와서 민중들은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기까지 했는데 이것은 유학자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또 그의 선, 후천사상과 '기' 속에 '이'가 내재해 있다는 설은 조선 후기의 신분평등사상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어쨌든 논설 네 편을 지어놓고 병이 더욱 깊어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칠월 칠석날, 병석에 누웠던 그는 제자들에게 그를 화담에 옮겨달라고 했고, 화담의 물로 씻고 돌아오자 곧 임종을 알리는 호흡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제자가 "선생님, 지금 생각이 어떠십니까?" 하고 물으매 "살고 죽는 이치는 이미 안 지 오래다. 생각이 편안하다"라고 대답한 다음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이야기 인물한국사 1_ 이이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