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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21

천방(天放) 선생의 ‘경의설(敬義設)(1) - 김선욱, 장흥투데이 2023

201호 사설 - 천방(天放) 선생의 ‘경의설(敬義設)(1) - 장흥투데이

201호 사설 - 천방(天放) 선생의 ‘경의설(敬義設)(1)

김선욱
승인 2023.10.11 


조선 최초 ‘경의설 篇’ 되었을 것 … 위백규 “유실되어 매우 아쉽다”

16세기 초 천방 유호인은 성리학자로서 ‘중용차이(中庸箚疑)’ 말고도 ‘대학도(大學圖)’와 ‘경의설(敬義說)’도 저술했지만, 병란 등으로 일실(逸失) 되어, 『천방선생문집』에는 수록되지 못했다.

많은 시편을 포함하여 경의설(敬義說) 등 학문적 결과물이었을 학문 편(篇)들이 온전히 보존되어 유문집(遺文集) 출판에 포함이 되었다면, 특히 ‘경의설(敬義說)’이 유문으로 남겨졌더라면, 아마 조선조 사림계(士林界)에서 거의 유일한 ‘경의설 편’이 되었을 것이다. 

조선조 성리학에서 ‘경의(敬義) 사상’을 대표 사상으로 결집했던 이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이었지만, 남명도 ‘경의설’ 이름을 내세운 독자적인 유문 편(篇)은 없었기 때문이다.

‘경의(敬義) 사상’은 남명이 만들어낸 독창적인 유학이나 다름없었다. 그 이전에는 ‘경의(敬義) 유학’보다는 ‘경(敬)’의 유학과 ‘의(義)’의 유학으로 널리 쓰였고, 남명이 비로소 그 경(敬)과 의(義)의 유학을 합치하여 ‘경의(敬義)’ 유학을 새롭게 창출해 낸 것이었다.


그 경의(敬義)라는 유학, 그리고 그 유학의 두 뿌리라 할 수 있는 ‘경(敬)’과 ‘의(義)’는 당초부터 천방 선생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질기고 깊은 인연을 함께해 온 정통유학이었다.

천방은 남명으로부터 성리학은 배웠다. 그렇다면, 천방의 ‘경의설’ 역시 남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난데없이 천방이 ‘경학(經學)’도 아니고 ‘경의설(敬義說)’을 집필했다면, 그것은 바로 남명의 경의(敬義) 학설에서 영향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