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산방
[인도철학사] 제17장 불이론의 베단타철학
길희성:
서울대학교 문리대 철학과 졸업. 하바드대학교에서 비교종교학 전공.
저서- Chinul, the Founder of the Korean Son Tradition
현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교수
▒ 목 차 ▒
■ 제2부 인도철학의 체계화
제17장 불이론의 베단타철학
1. 샹카라 이전의 베단타철학
2.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
3. 샹카라 이후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
1. 샹카라 이전의 베단타철학
▲ 위로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veda의 끝anta 혹은 목적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
다. 그러나 동시에 베단타는 우주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우파니사드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철학체계를 지칭한다. 베단타철학은 인도의 여러 철학 가운데서
가장 많은 추종자들을 가져왔고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으로서 과거 약 1000년을 통하여 다른 모
든 학파들을 지적활동에 있어서 압도하게 된 철학이다. 베단타철학은 그 근본경전으로서 우파니
샤드 자체는 물론이고, 우파니샤드 철학의 연장이나 다름없이 간주되는 바가바드기타와 또한 우
파니샤드의 다양한 철학을 간략하게 체계적으로 단명하고자 하는 베단타경 혹은 브라흐마경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흐마경은 서력 기원전 1세기경의 인도 인물로 추정되는 바다라야나가 저자로 전해져 왔으
나 그 내용상으로 보아 4-5세기경에 이르러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바라흐마경
에 의하면 상층계급의 사람만이 절대자인 브라흐만을 알 자격이 있다. 브라흐만에 대한 지식은
베다성전에 근거하며 인간의 독립적인 사고나 이론도 베다성전과 더불어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브라흐만은 최고자, 인격적 존재, 순수한 정신적 실체, 순수한 유(있음)로서 상주편재 무
한불멸의 존재이다. 만유의 생기와 존속과 귀멸을 일으키는 존재로서 만유의 모태이다.
브라흐만은 세계의 질료인이기도 하며, 세계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브라흐만은 전변에 의하여
세계를 산출하며, 이렇게 전개돼 나온 현상세계는 세계의 원인으로서의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
다. 세계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돼 나올 때는 공(빈 것, 하늘), 풍(바람), 화(불), 수(물), 지
(땅)의 순서로 전개되어 나오며, 이 다섯개의 원소가 다시 브라흐만으로 돌아갈 때는, 전개과정
의 역순으로 소멸한다고 한다.
세계의 창조와 존속과 귀멸(돌아가 소멸됨)의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개인아(개개인이 가진
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는 브라흐만의 부분이며 그것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무시(시작
점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이래로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 업의 응보는 무전력(無前力)에 의
1. 샹카라 이전의 베단타철학 ▲ 위로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veda의 끝anta 혹은 목적이라는 뜻으로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
다. 그러나 동시에 베단타는 우주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우파니사드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철학체계를 지칭한다. 베단타철학은 인도의 여러 철학 가운데서
가장 많은 추종자들을 가져왔고 가장 영향력있는 철학으로서 과거 약 1000년을 통하여 다른 모
든 학파들을 지적활동에 있어서 압도하게 된 철학이다. 베단타철학은 그 근본경전으로서 우파니
샤드 자체는 물론이고, 우파니샤드 철학의 연장이나 다름없이 간주되는 바가바드기타와 또한 우
파니샤드의 다양한 철학을 간략하게 체계적으로 단명하고자 하는 베단타경 혹은 브라흐마경에
기초하고 있다.
브라흐마경은 서력 기원전 1세기경의 인도 인물로 추정되는 바다라야나가 저자로 전해져 왔으
나 그 내용상으로 보아 4-5세기경에 이르러 현재의 형태로 완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바라흐마경
에 의하면 상층계급의 사람만이 절대자인 브라흐만을 알 자격이 있다. 브라흐만에 대한 지식은
베다성전에 근거하며 인간의 독립적인 사고나 이론도 베다성전과 더불어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브라흐만은 최고자, 인격적 존재, 순수한 정신적 실체, 순수한 유(있음)로서 상주편재 무
한불멸의 존재이다. 만유의 생기와 존속과 귀멸을 일으키는 존재로서 만유의 모태이다.
브라흐만은 세계의 질료인이기도 하며, 세계의 창조주이기도 하다. 브라흐만은 전변에 의하여
세계를 산출하며, 이렇게 전개돼 나온 현상세계는 세계의 원인으로서의 브라흐만과 다르지 않
다. 세계가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돼 나올 때는 공(빈 것, 하늘), 풍(바람), 화(불), 수(물), 지
(땅)의 순서로 전개되어 나오며, 이 다섯개의 원소가 다시 브라흐만으로 돌아갈 때는, 전개과정
의 역순으로 소멸한다고 한다.
세계의 창조와 존속과 귀멸(돌아가 소멸됨)의 과정은 무한히 반복된다. 개인아(개개인이 가진
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는 브라흐만의 부분이며 그것과 같지도 다르지도 않으며 무시(시작
점을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이래로 계속 되풀이 하고 있다. 업의 응보는 무전력(無前力)에 의
한 것이 아니고 신의 재정에 의해 받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 목적은 브라흐만과의 합일을 통한
해탈에 있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서 브라흐만의 명상에 의한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브라흐만에 대한 깨
달음을 얻은 자는 죽은 뒤 신들의 길을 따라서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
이렇게 해탈을 얻은 자는 세계의 창조와 유지의 힘을 제외하고는 절대자와 꼭 같은 완성과 힘을
갖춘다고 한다.
우리는 이미 우파니샤드 철학이 후기에 가서, 다분히 상키야samkhya적으로 발전되었음을 보았
거니와 상키야철학이 본격적으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전개함에 따라, 우파니샤드의 연구가들
가운데서는 이에 반발하여 우파니샤드의 본래적인 일원론적 사상을 옹호하려는 운동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브라흐마경은 이러한 상키야철학의 무신론적 이원론을 곳곳에서 비판하고 있
는 것이다.
브라흐마경은 내용이 지극히 함축적이고 간략해서 그 자체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다. 따라서 후세의 많은 철학자들은 이 경전에 주석서를 썼으며, 이들 주석가들은 각기
서로 다른 철학적 해석과 견해들을 보이므로 자연히 베단타철학 자체내에서도 이 주석들을 중심
으로 하여 여러 학파들이 성립되게 되었다.
모든 베단타철학자들은 세계를 여러 개의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실체들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려
는 다원적인 견해를 배척하고 다양한 현상세계의 배후에 단 하나의 궁극적이고 통일적인 실재가
있다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따른다. 문제는 어떻게 이 궁극적인 실재와 현상세계, 즉 물질 및 개
인의 영혼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가에 따라서 베단타철학자들은 상호간에 차이를 보여주고 있
는 것이다.
궁극적인 실재(브라흐만이라 부르는)와 함께 서로 다른 실체들의 존재들도 인정하며 세계를 이
실체들의 상호 작용으로 설명하되 브라흐만은 그들을 초월하고 그들을 지배하고 조정하는 어떤
존재로 간주하는 견해가 있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유일한 존재인 브
라흐만이 다양성의 세계로 자기를 전개한 결과로서 나타나는 현현양태로서 이해하는 견해가 있
다. 그런가하면 또 다른 입장에서는 다양성의 세계는 유일무이한 실재인 브라흐만을 가리고 있
는 베일과 같은, 그러나 알고 보면 단지 가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는 사상도 있는 것이
다.
현존하는 브라흐만경의 주석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유명한 것은 약 800년경에 씌어
진 샹카라의 브라흐마경소로서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의 견해 가운데서 세번째 입장을 옹호한 해
석서이다. 그러나 샹카라의 주석서를 통하여 우리는 그 전에도 브라흐마경에 대한 많은 해석과
주해가 가하여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샹카라의 철저한 불이론(不二論)인 철학적 입장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해석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이미 본대로 브라흐마경 자체의 철학적 입장은 샹카라의 불이론적인 철학과는 상당히 다
른 차이를 보여 주고 있으며 그의 불이론적 해석은 무엇보다도 그의 스승 고빈다파다
govindapada를 통하여, 혹은 직접적으로, 가우다파다 gaudapada라는 철학자의 사상적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우다파다는 만두키야카리카 mandukya-karika라는 만두키야 우파
니샤드의 철학을 다루는 논서의 저자로서, 그곳에서 그는 우리가 아는 한 처음으로 철저한 불이
론적 베단타철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샹카라는 이 만두키야 카리카에 대한 주석서를 썼으
며 거기서 샹카라는 베다의 불이론적인 철학이 가우다파다에 의하여 비로소 되찾아졌다고하여
가우다파다에 대한 상당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가우다파다는 대승불교의 공관(空觀)사상이나 유식사상의 강한 영향을 받은 자로서, 그의 저서
에서 우리는 이들 불교철학에서 사용하는 술어들이나 비유 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그
는 우파니샤드의 철학이 불타의 가르침과 일치한다고 믿었던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일체의 생멸
하는 현상세계는 실재인 신의 불가사의한 힘의 환술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며 실재의 세계는
어떤 다양성이나 이원성도 용납되지 않는다고 한다. 진제의 궁극적인 입장에서 볼 것 같으면 꿈
의 세계와 '깨어 있는 세계는 마찬가지이며 외부의 세계나 마음속에 나타나는 세계나 모두 우리
의 망상의 소산으로서 거짓 이라고 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밧줄을 뱀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
가지라는 것이다.
실재의 세계에는 주객의 구별이나 상이한 주체들과 객체들도 사라지며, 생멸도 인과도 없으며,
속박된 존재도 없으며 해탈을 원하는 자도 없다. 오직 빛나는 하나의 아트만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우다파다는 아트만을 무한한 공간에 비유한다. 개인아는 병속의 공간과 같이 제한된 것같이
보이나 결국 하나의 아트만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명한 자는 요가의 수행을 통하여 이와 같은
인식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가우다파다는 이렇게 만물을 브라흐만의 가현으로 보는 베단타철학을 전개한 것이다. '마야'의
개념은 이미 "슈베타 슈바타라 우파니 샤드"나 '바가바드 기타'에 나타나 있지만, 거기서는 마야
란 어디까지나 신이 스스로를 다양성의 세계로 전개하는 창조적 힘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후 점
차 마야는 인식주관의 무지, 혹은 우리를 속이는 신의 환술로서 이해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가우
다파다에 와서 결정적으로 가현설 혹은 마야설로 성립되게 된 것이다.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
타 해석은 바로 이 입장을 대표하는 것이다.
2. 샹카라의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
▲ 위로
가우다파다의 철저한 일원론적인 실재관을 이어받아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을 대성시킨 사람은
샹카라였다. 그는 "브르하드 아라니야카 우파니샤드"를 비롯한 주요 우파니샤드에 주석을 가했
으며 또한 "바가바드 기타"에도 주석서를 썼다. 그러나 그의 철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저서는 "브
라흐마경"에 대한 주석서 "브라흐마경소"로서 여기서 그는 여러가지 타학설들을 비판해 가면서
불이론적인 베단타철학의 입장을 확고히 다진 것이다. 그는 남인도 출생으로서 인도 각 지방으
로 여행하고 다니면서 자기의 학설을 전파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의 철학에 입각한 종교적 실천을 위하여 불교의 사원들처럼 많은 출가자
들의 단체를 만들어 고행의 실천과 더불어 브라흐만의 지식을 추구하였다. 샹카라는 불교의 사
상적 영향하에 베다의 사상을 재해석함으로서 바라문교의 부흥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이미 쇠
퇴해 가고 있던 불교에 큰 타격을 가하게 된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모든 형상과 성질과 차별성과 다양성을 초월한 브라흐만
이라는 절대적 존재뿐이다. 그것만이 유일한 실제이다. 브라흐만은 절대적으로 동질적이며 아무
런 성질도 갖고 있지 않은 순수한 존재 그 자체이다. 이 브라흐만은 우파니샤드의 진리대로 인간
의 참 자아로서 (tad tvam asi, aham brahma asmi) 스스로 빛을 발하는 자명성을 가진 순수한 식
이다. 이 식은 브라흐만의 속성이 아니라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식으로서의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은 모든 존재의 내적 자아로서 그 존재는 결코 의심하거나 부
정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정하는 행위 자체가 이 자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아는 모든 인식의 주체이기 때문에 결코 대상화하여 알 수 있는 것이 아니
다. 자아는 우리의 모든 정신적 작용 내지 인식활동을 통하여 그 배후에서 항시 빛을 비추어 주
고 있는 증인과 같은 존재로서 그 자체는 결코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
샹카라에 있어서 실재의 개념은 부정될래야 부정될 수 없는, 끝까지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부
정된다'는 말은 어떤 경험된 사실이 또 다른 어떤 경험에 의하여 거짓됨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꿈속의 실재는 꿈에서 깨어난 후에는 실재성을 부정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
에서 샹카라에 의하면 자아는 도저히 부정될 수 없는 실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
있는 자아의 네 가지 상태에 관한 우파니샤드 철인들의 사유가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 점
인 것이다. 즉 깨어 있는 상태에서나 꿈을 꾸고 있는 상태에서나, 깊은 수면에 빠져 있는 상태이
거나 선정의 상태이거나를 막론하고 결코 부정당함이 없이 항존하고 있는 순수식으로서의 자아
야말로 실재라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러한 자아가 곧 다름 아닌 브라흐만이요, 브라흐만이 유일의 실재라 한다. 그
렇다면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일상적 경험의 다양한 현상 세계를 샹카라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샹카라에 의하면 이 하나의 실제인 브라흐만은 우리의 무지나 환술의 힘 때문에 잡다한 이름과
현상을 가진 현상세계로 나타나 보이게 된다고 한다. 즉 세계는 브라흐만의 가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샹카라의 이러한 입장을 브라흐만 가현설이라 부른다. 세계를 브라흐만으로부터
전개돼 나온 것으로 보는 브라흐만 전변설과 구별되는 이론이다.
양자 다 브라흐만을 세계의 질료인으로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전자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가현
으로 보고 후자는 세계를 브라흐만의 전변으로 보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양자 모두 결과가 원인
에 이미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인중유과론으로 간주되나, 브라흐만 가현설은 원인만이 실재하
고 결과는 원인의 가현이라고 보는 반면에, 브라흐만 전변설은 결과를 원인의 전변으로 보는 것
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무지는 존재도 아니고 비존재도 아닌 규정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왜냐하면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이며 무지도 브라흐만에 근거해야 하는 고로 무지는 존재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이 현상세계를 나타내게끔 하므로 비존재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무지의 본질은 샹카라에 의하면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물을 오인하게끔 하며, 그 위에서 다른 사
물을 보게끔 하는 가탁에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두울 때 길에서 밧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
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실재로 존재하는 것은 브라흐만 혹은 아트만 뿐인데 사람들이 무지로 인
하여 잡다한 현상과 대상의 세계를 그 위에 뒤집어 씌워서 본다는 것이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 무지의 영향으로 인하여 우리는 본래 아무런 속성도 없는 브라흐만을 세계
를 창조하고 지배하는 주재신으로서 인식한다고 한다. 이 신은 세계의 질료인과 능동인이며 성
스러운 베다를 고취해 냈고 세계의 윤리적 질서를 보호하는 자이다. 따라서 샹카라는 브라흐만
을, 아무런 속성도 없는 높은 브라흐만과 속성을 가지고 현상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가진 낮은 브
라흐만의 두 가지로 구별한다.
전자는 어떤 현상이나 속성이나 제한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엄격히 얘기해서 우리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순수한 존재이다. 우파니샤드에 따라서 오직 "무엇도 아니고 무엇도 아
니"라는 부정적 표현밖에는 할 수 없는 실재인 것이다.
단지 명상을 통하여 순수 존재와 순수 식으로 체험되는 것일 뿐이다. 반면에 주재신은 인격적인
신으로서 수많은 훌륭한 속성과 형상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동시에 제한된 존재인 것이다. 이
신은 인간과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갈 수 있으며 우리의 종교적인 경배의 대상이 되는 존재이다.
샹카라는 이렇게 '높은 브라흐만'과 '낮은 브라흐만'을 구별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의 저서들을
통하여 두 개념을 엄격히 구별함이 없이 혼용하기도 한다.
무지는 또한 브라흐만, 즉 우주의 궁극적 실제인 최고아를 수없이 많은 제한된 개인아로 나타내
게끔 한다. 개인아란 다시 말해서 최고아가 무지의 영향 아래서 나타내게 되는 수많은 현상적 자
아들인 것이다. 마치 해나 달이 하나이지만 많은 물통에 비칠 때 여럿으로 나타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혹은 한없는 공간이 좁은 병 안에서 제한된 공간들로 나타나 보이는 것과도 마찬가지라 한
다.
이렇게 절대아를 제한된 개인아로 나타나게끔 하는 것은 우리의 몸과 감각기관과 의근과 같은
한정적 부가물들의 영향 때문이며, 이 부가물들은 곧 무지의 소산인 것이다. 따라서 무지를 제거
하는 순간 우리는 제한된 현상적 자아가 망상일 뿐이며 실제로는 절대적 자아 즉 브라흐만 자체
임을 깨달아서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높은 브라흐만과 낮은 브라흐만, 최고아와 개인아의 구별은 높은 지식과 무지로 인
한 낮은 지식, 혹은 궁극적 진리와 세속적 진리의 구별을 초래한다. 용수와 같이 샹카라도 철저
한 일원론적인 존재론을 위하여 인식적 이체설을 주장해야만 한 것이다. 즉 궁극적 진리에 의할
것 같으면 개인아와 창조신은 어디까지나 모두 망상에 지나지 않으나 세속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볼 것 같으면 개인아와 창조신, 속전과 해탈, 윤회 등이 모두 실재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샹카
라는 이와 같은 지식의 이중성의 이론에 입각해서 베다와 '기타'와 '브라흐마경' 등을 철저히 일
원론적으로 해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베다는 개인아, 업, 윤회, 해탈, 창조, 주재신 등의 실재성을 인정하는 부분을 많이 갖고
있다. 정통 바라문교도로서의 샹카라는 이들도 다 베다의 성스러운 진리이므로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이체설에 입각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던 것이다. 즉, 세속적 진리는 궁
극적 진리로 이끌기 위한 수단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서, 베다는 양자를 다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
다. 결국 베다 자체도 다양성의 세계에 속하는 것으로서 이 세계의 언어를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무지를 제거하고 참다운 인식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모든 현상세계의 차별성과 다양성을 부정하고 최고아만의 유일무이한 실재성을 주
장하는 샹카라의 철학을 불이론적 베단타 철학이라 부른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궁극적 진리의 관점에 따라서 현상세계가 비록 망상이라 할지라도
세계는 결코 '공중의 꽃'이나 '토끼의 뿔'과 같은 전혀 근거가 없는 망상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세계는 어디까지나 브라흐만이라는 실재를 근거로 하여 나타난 가현이지 전혀 사실무근의 환상
은 아닌 것이다. 샹카라는 또한 불교의 유식철학의 주관적 관념론을 배척한다. 샹카라에 의하면
외계가 비록 가상이기는 하나, 유식철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식의 전변으로서의 주관적 가상
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가상이라는 것이다. 세계는 단순히 관념상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의 최고 목표는 지고선인 해탈에 있다. 샹카라에 의하면 해탈은 오직 지식에 의해서만 가능
하다. 선한 행위와 신에 대한 경배도 물론 해탈에 도움을 주지만 그들은 궁극적으로 무지에 근거
한 것으로서 우리를 현상의 세계에 계속 얽매는 것이다.
높은 지식은 지각이나 추론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지식은 오로지 계시, 즉 베다의 공
부로부터 얻어진다고 한다. 베다 가운데서도 특별히 지식편인 우파니샤드의 가르침이 중요하다.
샹카라에 의하면 베다는 전체가 다 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서 영원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
은 물론 세속적인 진리의 차원에서 얘기되는 진리이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을 통하여 샹카라철학의 전통성과 보수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높은 지식
을 얻기 위하여 베다의 공부와 더불어 선한 행위와 명상, 특히 우파니샤드의 말들을 경건하게 숙
고하고 반복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개인아가 곧 최고아라는 것을 아는 지식, 현상세계의 다양성과 윤회의 세계가 환상 뿐이라는 지
식은 모든 업을 파괴한다고 한다. 지식을 얻은 자에게는 업도 존재하지 않고 업의 결과인 육체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에게는 또한 지켜야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샹카라
에 의하면 지식은 업의 씨를 태워버린다. 그러나 이미 그 씨가 발아하기 시작한 업, 즉 현세의 원
인이 되고 있는 업은 파괴할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완전한 지식을 획득한 자라 할지라도 현재의 몸은 당분간 존속한다고 한다. 마치 도공의
녹로가 그릇을 다 만든 후에도 얼마 동안 계속해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한다. 그러나 깨달
은 자는 현재의 몸을 파괴할 수는 없으나 그것에 의하여 더이상 속임을 당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생해탈의 상태이며 사후에야 비로소 육체를 완전히 벗어버린 탈신해탈을 성취하는 것이다.
한편 낮은 지식의 소유자는 브라흐만을 자기의 자아로 깨닫지 못하고 창조신으로 믿고 숭배한
다. 샹카라에 의하면 이러한 사람의 영혼은 사후에 신들의 길을 통하여 낮은 브라흐만과 연합한
다. 이 상태는 아직 해탈은 아니지만 점차적인 해방을 통하여 완전한 지식과 해탈에 이른다고 한
다. 이보다도 더 낮은 단계의 사람은 높은 지식도 낮은 지식도 없는 사람으로서 단지 선행을 행
한 사람이며, 이들은 사후에 조상들의 길을 따라서 달에 도달하여 거기서 업의 보상을 누리고 난
후 또다시 지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이 때 윤회의 주체가 되는 것은 개인아이며, 이 개인아는 무지의 소산인 여러 부가물들을 동반하
고 사후에 존속한다고 한다. 우리의 거친 육체는 사후에 물질적 요소들로 되돌아가지만 개인아
는 다른 부가물들과 함께 존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가물들에는 의근과 감각기관들, 목숨, 세신
이 있다.
여기서 감각기관이란 것은 육체적인 기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 혹은 씨를 말하며,
세신은 육체가 파멸한 후에도 남게 되는 '육체의 씨를 형성하는 미세한 요소들'을 의미한다. 이
러한 부가물들은 우리가 해탈을 얻기전까지는 영원히 개인아들에 부착되어 따라다닌다는 것이
다. 이밖에도 개인아는 미래의 생을 결정할 업의 소의를 변하는 부가물로 지니고 있다고 한다.
3. 샹카라 이후의 불이론적 베단타철학
▲ 위로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은 인도철학사에 있어서 오늘날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며 그
는 인도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로서 추앙받아 왔다. 따라서 그의 철학은 수많은 그의 제자들과 추
종자들에 의하여 활발한 논의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그의 저술들에도 다시 많은 주석서들이 씌
어지게 되었다.
샹카라의 제자인 파드마파다(9세기)는 "브라흐마경"의 처음 4절에 대한 샹카라의 주석의 복주인
"판차파디카"라는 중요한 저술을 했으며 이 주석은 프라카샤아트만(1100년경)의 "판차파디카주
해"라는 또 하나의 복주를 낳았다. 한편 샹카라의 제자 수레슈바라는 샹카라철학을 체계적으로
다루는 "나이스카르미야싯디"와 샹카라의 "브르하드아라냐카 우파니샤드"의 주석에 대한 복주를
썼다. 샹카라의 또 하나의 제자인 아난다기리도 "브라흐마경소"에 대하여 "냐야니르나야"라는 복
주를 저술했다. 한편 9세기의 바차스파티미슈라도 "브하마티"라는 유명한 주석을 써서 샹카라철
학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싸르바나주나아트만은 샹카라의 경소에서 요점을 간추려 "쌈크
셰파샤리라카'라는 강요서를 저술했다.
이들 샹카라의 추종자들에 있어서 논의된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무지, 또는 환술의 존재론적
인 가치에 대한 문제였다. 이들은 대체로 무지나 환술을 상키야철학의 프라크르티와 같이 다양
성의 세계를 산출시키는 어떤 창조적인 원리로 보았다.
샹카라에 있어서 무지가 단순히 그로 인해 현상세계가 나타나게 되는 망상적인 힘이었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샹카라의 추종자들은 무지를 좀더 실체화해서 보는 경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또한 무지는 모든 현상 세계를 나타나게끔 하므로 비존재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존
재라고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에 의하여 무지는 사라지게 되며 결국 브라흐만만이 유
일한 실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 불이론적 철학자들은 모두 무지를 구성할 수 없는 어떤 것
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 무지가 누구에게, 혹은 어디에 속한 것인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철학자들의 입장을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다. 단지 그 요지만을 말할 것
같으면 답은 두 가지 선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무지는 브라흐만에 근거를 두고 브라흐만을 대상으로 하는 어떤 힘이라는 견해이고, 다
른 하나는 무지는 개인아에 근거하며 브라흐만은 무지의 대상은 되지만 소의는 될 수 없다는 견
해이다. 만다나미슈라와 바차스파티미슈라와 같은 베단타철학자는 후자를 택하고 있으며 바차
스파티의 주석서의 이름에 따라 '브하미티'학파라 부른다.
반면에 수레슈바라, 파드마파다, 프라카샤아트만, 사르바쥬나아트만 등의 학자는 전자의 견해를
취하고 있으며 이들을 프라카샤아트만의 주석서의 이름에 따라 '비바라나'학파라 부른다. 브라
흐만에 근거를 둔다고 하는 이론의 장점은 세계의 원인을 브라흐만 자체에서 찾는다는 것이나,
문제는 어떻게 무지가 순수식인 브라흐만에 근거할 수 있으며 어떻게 브라흐만 자체가 세계의
다양성에 책임을 질 수 있겠는가이다.
반면에 무지의 소의가 개인아이며 브라흐만과는 무관하다고 할 것 같으면, 문제는 무지가 브라
흐만을 떠나서 하나의 독립적인 힘으로 간주되는 것이며 논리적으로도 순환논법을 범한다는 것
이다. 즉 개인아가 이미 무지의 산물인데 어떻게 무지가 개인아에 속하겠느냐는 것이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현상세계를 브라흐만의 가현으로 보는 브라흐마가현설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난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샹카라의 불이론적 철학은 또한 슈리하르샤(A.D 1150년)와 그의 제자 칫츠카(A.D 1220)에 의하
여 새롭게 계승 발전되었다. 전자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저서는 '논파의 미미'이고, 후자는 슈리
하르샤의 저서에다가 주석을 썼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등'이라는 독자적인 저서도 썼다. 이들은
특별히 불이론적 입장에 서서 경험의 세계에서 주어지는 여러 범주들을 실재론적으로 해석한 정
리철학을 공격했다.
슈리하르샤는 용수의 방법과 비슷하게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상대
방의 모든 사유의 범주들을 모순적인 것으로 떨어뜨리는 파괴적 변증법에 주력하였다. 결국 유
일한 실재인 브라흐만은 모든 현상세계의 사유의 범주와 언어를 초월한 실재라는 것이다. 현상
세계 또한 무지의 소산이므로 존재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브라흐만을 근거로
하여 분명히 나타나 보이는 세계이므로 비존재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규정불가능한 어떤 것이
다. 따라서 슈리하르샤에 의하면 이러한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하여 어떤 범주를 채
용하여 분석을 하고 한계를 짓고 하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무의미하며 자기 모순에 빠지는 행위
라는 것이다.
슈리하르샤는 이 점에서 정리철학이 제시하는 여러 범주들의 정의와 설명이 공허하고 타당치 못
함을 밝히고, 결국 그 범주들은 정의할 수 없고 따라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이것은
현상세계 자체도 궁극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거짓 존재임을 말한다는 것이다. 슈리하르샤는 자
신의 논의까지도 포함해서 모든 철학적 논의가 결국 속체에 준한 것임을 말하며, 궁극적인 실재
는 직접적으로 깨달아야 하고, 진체와 속체의 구별마저 현상세계에서만 타당한 것이라고 얘기한
다.
슈리하르샤가 정리철학의 범주들을 비판함에 있어 주로 우다야나에 의한 정의들을 대상으로 하
여 이 정의들이 타당치 못함을 증명하려고 한 반면에, 그의 제자 칫추카는 좀더 나아가 범주들의
정의뿐만 아니라 범주들의 개념들 자체를 논파하려고 하였다. 그는 이러한 파괴적인 논파뿐만
아니라 그의 '진리의 등'에서 불이론적 베단타의 여러 중요한 개념들에 대하여 자신의 해석을 가
하고 있다.
그가 중관철학의 이체설을 미맘사학파의 쿠마릴라 브핫따의 비판으로부터 홍호하고 있음은 주
목할 만한 점이다. 그는 말하기를 이체의 구분은 어디까지나 현상세계에서 활동하는 지성에 의
해 하는 것이므로 궁극적으로는 비실재적이고 진리는 하나뿐이다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무지
속에 있는 한 우리는 이 구별을 할 수 밖에 없으며 속체를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
는 현상세계가 토끼의 뿔이나 공중의 꽃과 같이 전혀 근거없는 비존재가 아니라, 비록 가상이기
는 하나 브라흐만이라는 실재에 근거하여 나타나는 것이라는 불이론적 베단타철학의 실재관에
입각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