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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5

원불교(圓佛敎)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불교(圓佛敎)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원불교 (圓佛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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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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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개념
1916년 박중빈이 창시한 불법연구회를 계승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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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박중빈은 그의 나이 26세에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각하고,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으로써 
파란고해(波瀾苦海)의 일체생령을 광대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개교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정전(正典)』, 「개교의 동기」).

원불교 교명에 대하여 제2대 종법사인 송규(宋奎)는
 “원(圓)이란 형이상으로 말하면 언어와 명상(名相)이 끊어진 자리라 무엇으로 이를 형용할 수 없으나, 형이하로써 말하면 우주만유가 이 원으로써 표현되어 있으니, 이는 곧 만법(萬法)의 근원인 동시에 또한 만법의 실재인지라,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교법이 비록 천만가지로 말은 달리하나 그 실(實)에 있어서는 원(圓) 이외에는 다시 한 법(法)도 없는 것이다”
라고 밝혔다.

그리고 
“불(佛)은 곧 깨닫는다(覺)는 말씀이요 또는 마음이라는 뜻이니 
‘원의 진리’가 아무리 원만하여 만법을 다 포함하였다 할지라도 
깨닫는 마음이 없으면 다만 이는 빈 이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불(圓佛) 두 글자는 각자 마음에서 근본적 진리를 깨친 바탕 위에서 나타낸 것이므로 서로 떠나지 못할 관계가 있다”
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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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와 불교


원불교는 그 연원을 불법에 두고 있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불교이다. 
그러나 외면상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는 
  • 신앙 대상의 상징이 다르며, 
  • 불교와의 역사적 교섭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 교단의 운영방식과 제도면에서도 종래의 사찰제도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

즉 근본적 진리는 서로 상통하나, 교단은 기존 불교의 분파적 입장이 아니다. 
창조·모방·개혁을 시도하는 새로운 교단으로 볼 수 있다. 
소태산은 불법을 주체로 삼아 새 종교를 주창하였는데, 
그가 깨달은 일원상의 진리, 즉 법신불(法身佛)사상을 주체로 하고, 
모든 종교의 장점을 취하여 시대화·생활화·대중화의 개혁을 시도한 것이다.

시대화란 어느 시대에 처하든지 불법을 그 시대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을 말한다. 
시대적 변화에 잘 동화하면서도 높은 차원으로 사람들을 지도해나갈 수 있도록 불법을 응용하자는 뜻이다. 생활화란 생활 속에서 불법(佛法)을 찾고 깨달아서 그 불법으로 새 생활을 개척해 나가자는 것이다.

대중화란 민중화, 서민화 또는 시민화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특수한 계층을 위한 불교가 아니라 누구나 다 같이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국한 없이 불법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원불교는 정신개벽(精神開闢)을 표방하고 있다. 다른 기성종교와는 달리 우리 나라에서 발생된 종교로서 후천개벽의 이념과 그 맥(脈)을 같이하고 있다.

최제우(崔濟愚)·강일순(姜一淳) 이후 또 하나의 민중종교를 탄생시킨 소태산은, 앞으로의 세계는 동방이 중심이 되어 발전해가며, 특히 우리 나라가 그 중심국가가 될 것을 예견하였다.

‘정신의 지도국’·‘도덕의 부모국’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인류 보편윤리에 입각한 민족정기(民族精氣)를 되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인정신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다만 불교의 혁신에 그치지 않고 기성종교에 대하여 새종교의 출범이라 말할 수 있다.

소태산의 구도


소태산은 1891년 전라남도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7세에 우주 자연현상에 대한 의문을 일으켰고, 9세 되던 해에는 인간만사에까지 큰 의심을 일으켰다. 이를 해결해보려고 산신과 도사를 찾기도 하였으며, 극진한 공을 드린 일도 있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기도와 고행을 15년 동안 행하였다.

15세에 양씨(梁氏)와 혼인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계속하여 의문나는 일에 몰두하였다. 부모의 후원으로 가정을 겨우 지탱하여오다가 20세에 부친상을 당하자, 생활고는 더욱 심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장차 이 일을 어찌할고” 하는 탄식과 더불어 오직 의심뿐 모든 것을 갑자기 다 잊어버리는 지경(頓忘狀態)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온몸에 부스럼이 나고, 수염과 머리카락은 자랄 대로 자라 동네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린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험상궂게 변해 갔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완전한 폐인으로 인정하였다. 그러던 중 1916년 4월 28일 이른 아침, 문득 생각이 밝아지면서 온몸이 상쾌하여지고 모든 의심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그의 대각의 경지였다.

소태산은 그때의 깨달음의 경지를 “만유가 한 체성(體性)이며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라고 말하였다(대종경 서품 1장).

소태산은 우주 자연현상을 통하여 진리를 깨달은 그 순간 인간사 변혁도 절실하게 요청 받았다. 다가오는 세상의 인간화작업이 시급함을 느끼고 새 도덕의 확립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는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개교표어(開敎標語)를 내걸고 정신개벽의 기치를 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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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의 창교


소태산은 그가 태어난 고향을 떠나지 아니하고 구도(求道)하였으며 그곳에서 도를 이루었다. 또한 그가 창교이념을 실현한 곳도 고향이었다.

그는 1917년 고향에서 뜻 있는 동지들을 모아 저축조합을 조직하여, 근검절약과 허례폐지, 금주·금연과 숯장사라는 제1차 시련으로 경제적 기초를 세우고, 1918년 3월에는 조상 대대로 버려 둔 해변의 갯벌에 자력으로 방언공사(防堰工事)를 시작하여 제2차 시련을 감행하여 1년만에 2만 6,000평의 옥답을 개간하였다.

그 당시 쓰러져 가는 한민족 국가 사회에 생산기반을 조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원불교의 창립정신은 공익의 길로 나아가고자 함이었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일심합력으로 나아가면 장차 어떠한 큰 일이라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소태산은 제2차 시련을 거친 제자들을 이끌고 새로운 회상(會上) 창립을 위하여 제3차 시련에 들어갔다. 소태산은 8인의 제자들을 이끌고 산상기도에 들어갔다. 그 해 8월 21일 마침내 백지혈인(白指血印)의 이적(異蹟)이 나타났다. 기도를 마칠 무렵, 흰 종이에 맨손으로 인장을 찍자 혈인이 나타난 사건이다.

소태산은 “무아봉공(無我奉公)의 참뜻이 법계(法界)의 인증을 받았으니 만사는 이로부터 비롯되었도다”라고 말하며, 이 백지혈인의 기적은 진리로부터 새 회상의 창립을 인가 받은 것으로 해석하였다.

소태산은 방언공사와 산상기도를 통하여 교단창립의 기초를 다진 것이었으며, 소태산과 그의 제자들은 그의 탄생지인 길룡리를 토대로 또 다시 회상 공개의 준비에 들어갔다. 도와 학이 겸비된 수제자 송규(宋奎)를 얻은 후 교법의 틀을 짜 갔다.

한편 1924년 4월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지금의 원불교중앙총부)에 총부를 건설하려고,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명칭으로 교문(敎門)을 열었다. 여기에서도 그는 제자들과 6만여 평의 황무지를 개간하는 한편, 주경야독의 생활로 오늘의 원불교 터전을 닦아나갔다. 이 과정이야말로 원불교 창립의 제4차 시련이었다.

소태산은 당시 모여든 인재들을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을 제정하여 훈련, 육성시켰다. 낮에는 농업부에서 개간과 생산의욕에 불타게 하고, 밤에는 소태산의 직접 설교와 훈도로 새 회상 건설의 희망에 부풀게 하였다. 여기에서 바로 소태산이 실현하려고 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이 된 것이다.

동정일여(動靜一如)·영육쌍전(靈肉雙全)·이사병행(理事竝行)의 실천이기도 하였다. 원불교의 이러한 개척정신과 훈련방식은, 여기에 참여한 사람이면 그 누구나 근면하고 성실한 지도자가 되도록 한 것이었다.

1926년에는 민중의 생활의식을 개혁할 방침으로 신정의례준칙(新定儀禮準則)을 발표하고, 종래의 생활의식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사상을 널리 선양하였다. 1935년에는 산업기관으로 약업사 보화당(普和堂)을 개설하고, 교역자의 손으로 이를 운영하게 함으로써 생산성 있는 종교, 자력생활하는 종교의 터전을 닦아나갔다.

1940년에는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면 수계리에 대농장을 건설하였다. 이는 원불교 창립의 제5차 시련 작업이었다. 과수원과 축산업을 겸한 새로운 영농방식에 착수하여, 명실공히 산업종교의 면모를 갖춘 것이다.

소태산은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에 두고, 차츰 이를 추진해나갈 기관을 확장해나간 것이다. 「원불교」란 교명은 해방을 맞이하고 소태산의 유시에 의하여 제2대 종법사인 정산 송규가 개칭한 것이었으며, 1947년 4월에 재단법인 원불교의 등록을 필한 후 공포되었다.
접기/펼치기교리 및 교서


소태산은 그가 깨달은 진리를 ‘○’으로 그려 상징하고, 이는 불생불멸의 진리와 인과보응의 이치가 서로 바탕하여 우주만상이 전개되고 있음을 밝혔다. 원불교의 교리는 이 일원상의 진리를 최고 종지로 하였다. 곧 일원상의 진리는 만사만리(萬事萬理)의 근원이요, 만생령을 움직이는 생성력(生成力)이라고 본 것이다.

이 진리를 근거로 하여 소태산은 사은사요(四恩四要)의 신앙문(信仰門)과 삼학팔조(三學八條)의 수행문(修行門)을 열게 된 것이다.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존재를 서로 가능하게 하는 이법(理法)과 큰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이 ‘없어서는 살 수 없는 힘’의 관계를 ‘은(恩)’이라고 하였다.

인간이 이 큰 은혜를 자각하고 항상 감사(感謝)·보은(報恩)한다면, 진리의 위력을 얻게 되고 자신은 언제나 상생상화(相生相和)의 기운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은혜를 네 가지로 구분하여 사은(四恩)이라 하였는데, 천지은(天地恩)·부모은(父母恩)·동포은(同胞恩)·법률은(法律恩)이 그것이다.

이 사은에 보답하는 것을 밝힌 것이 신앙문이다. 또한 원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은 일원상의 진리에 근거한 것이어서 그릇됨도 없고, 요란함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다. 그렇지만 이 본래의 마음이 경계에 끌려 욕심을 일으키게 되어, 사람들이 이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을 수양하고, 사리(事理)를 연구하고, 작업을 취사하는 태도로써 끊임없이 수행해 나아가면 일원상과 같이 원만하고 거짓 없는 본래 마음을 회복하고, 그 마음을 활용하면 한없는 은혜와 위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 길을 밝힌 것이 수행문이다.

이 밖에 신앙문에 있어서는 자력양성(自力養性)·지자본위(智者本位)·타자녀교육(他子女敎育)·공도자숭배(公道者崇拜) 등 사회개조에 임해야 한다. 이 네 가지 실천요목을 사요(四要)라 이르고, 사은과 사요를 합하여 인생의 요도(要道)라 하였다.

수행문에 있어서는 신(信)·분(忿)·의(疑)·성(誠)의 조목을 추진해야할 네 가지 조목(進行四條)이라 하며, 불신·탐욕·나(懶)·우(愚)의 조목을 버려야할 4가지 조목(捨捐四條)이라 이르고, 이 둘을 합하여 8조라 하였다. 정신수양·사리연구·작업취사의 3학과 이 8조를 합하여 인생으로 꼭 수련하여야 할 공부의 요도로 정하고 있다.

이상의 내용을 다시 요약하면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우주만유가 천지·부모·동포·법률의 사은으로 얽혀 있으니, 인간은 1분1각도 이 은혜에서 떠날 수 없음을 알아 곳곳이 부처(處處佛像)요, 일일이 불공(事事佛供)하는 생활로 세상만사를 처리해 가자는 것이다.

또는,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법신불 일원상을 수행의 표본으로 하여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지 선(禪)하는 마음을 놓지 않고(無時禪 無處禪), 수양·연구·취사의 삼대력(三大力)을 길러나가자는 것이다. 전자의 사회적 실현이 곧 사요의 실천이며, 후자의 추진요소가 8조목이다.

이러한 신앙과 수행을 통하여, 인간은 마침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법신불일원상과 계합(契合)하여 스스로 부처를 이루고, 나아가 제생의세(濟生醫世)의 목표를 달성하자는 것이다. 원불교 경전은 9종 교서 및 그 밖의 교서로 나누어져 있다.

9종 교서는 『정전(正典)』·『대종경(大宗經)』·『불조요경(佛祖要經)』·『원불교예전(圓佛敎禮典)』·『성가(聖歌)』·『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세전(世典)』·『원불교교사』·『원불교교헌』을 말한다.

이 중 『정전』과 『대종경』은 원불교의 기본경전으로 『정전』은 소태산이 원불교 교리의 강령을 밝힌 원경(元經)이며, 제일경전(第一經典)이라고도 한다. 『대종경』은 소태산 일대의 언행록인 통경(通經)으로 총 15품 547장으로 되어 있다.

『불조요경』은 원불교의 보조경전으로서 원불교 사상과 관련이 깊은 불경과 조사(祖師)의 글을 선택·수록한 경으로, 『금강경』·『반야심경』·『사십이장경』·『현자오복덕경(賢者五福德經)』·『업보차별경(業報差別經)』·『수심결(修心訣)』·『목우십도송(牧牛十圖頌)』·『휴휴암좌선문(休休庵坐禪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원불교예전』은 개인·가정·교단에서 필요한 각종 예의규범을 수록하였다. 『성가』는 찬송·축원·전도의 성가집으로서 처음에 126장이 수록되었는데 계속하여 추가하고 있다. 『정산종사법어』는 정산종사(鼎山宗師, 宋奎)의 일대 언행록이며, 『세전』은 태교(胎敎)로부터 천도(遷度)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일세의 도리 강령이다.

『원불교교사』는 원불교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교단의 역사를 기록한 책으로 계속 추가하고 있다. 『원불교교헌』은 원불교 교단의 기본 헌장으로 전문 10장 90조로 되어 있으며, 교단 운영의 기본방침과 제도 및 기구와 하는 일들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 또한 시의에 맞도록 절차에 따라 개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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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및 체제


원불교는 교단을 총괄하기 위하여 중앙총부를 두고, 종법사와 수위단회(首位團會)·중앙교의회(中央敎義會)·교정원(敎政院) 및 감찰원(監察院)을 두고 있다. 그리고 각 지방별로 국내 15개의 교구와 500여 개의 교당이 있으며, 해외에는 미주동부교구·미주서부교구·유럽교구·일본교구 등 4개 교구와 40여 개의 교당이 있다.

아울러 교육기관·훈련기관·문화기관·복지기관·의료기관·산업기관 및 기타 관련 단체를 두고 있다. 신도는 약 100만으로 집계된다. 종법사는 교단을 주재하고 대표하며 수위단회의 회장이 된다. 수위단회는 교단의 최고의결기구일 뿐만 아니라 소태산의 초기 교단조직의 이념에 근거하여 ‘이단치교’의 교단통치의 최고기구로서 역할되고 있다.

중앙교의회는 교단의 의결기관으로 재가·출가 교역자들의 대표가 모여 교헌개정 및 예산결산을 하는 기관이다. 교정원은 교단의 중앙집행기관으로 종법사의 명을 받아 집행각부와 산하 기관 재단을 통리 감독하며 현재 1실 7부로 되어 있다. 감찰원은 교단의 중앙감찰기관으로 종법사의 명을 받아 교단감찰 전반을 책임진다.

원불교의 교도란 광의로 원불교에 입교하여 원불교의 교지(敎旨)를 믿고 실천하는 사람이며, 협의로는 연원에 의해 법명(法名)을 받고 4종의무(四種義務)를 이행하는 자를 일컫는다. 교도는 크게 재가교도와 출가교도로 구분된다.

출가교도는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 하며, 일에 따라 교무(敎務), 도무(道務), 덕무(德務)로 나뉘어져 있다. 교무란 소정의 교육과정을 거쳐, 교무자격을 취득하고 교리강설 법요의식을 집행할 수 있으며 교화업무를 전담하거나, 교화와 연관된 교단의 일반업무를 맡아한다.

도무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 도무자격을 취득하고, 교단의 교육, 행정, 자선, 연구, 기술 의료 등 전문분야에서 봉사한다. 덕무는 소정의 과정을 거쳐 덕무자격을 취득하고, 근로직에서 노무와 기능을 가지고 봉공하는 전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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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소태산이 죽고 난 뒤, 종법사가 된 정산(鼎山)송규(宋奎, 1900∼1962)는 일제강점기 말엽 극심한 탄압을 받다가 광복이 되자 임시로 내걸었던 ‘불법연구회’라는 간판을 내리고, 이미 내정되었던 ‘원불교’ 교명을 붙였다. 정산은 전재동포구호사업·교육사업·한글보급운동 등을 건국 3대사업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서울·익산·전주·부산 등지에 구호부를 설치하여 해외에서 귀국하는 동포들을 맞아 안내·급식·방역 및 치료 등을 실시하였다. 또한 친척과 가족을 잃고 방황하는 무의무탁한 동포들을 수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서울 덕성여학교 자리에 학병귀국자를 모아 건국을 위한 사상강연회도 가지고, 1946년에는 유일학림(唯一學林: 현 원광대학교 전신)을 개설하여 일제하에 실현하지 못하였던 교육사업을 개시하였다. 특히 국어교육의 시급함을 알고 각 지방의 교역자를 총부로 모이게 하여, 한글학자를 초빙하여 단기강습을 실시하였다.

그리고 단기 강습을 마친 교역자들이 각 지방에 돌아가 문맹퇴치운동에 앞장서게 하였다. 또한 정산은 해방 후 혼란기에 종교지도자의 처지에서 『건국론(建國論)』을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는 『건국론』을 통하여 정국안정의 지도강령을 밝히고 이를 실천하도록 각 방면에 지도하였다.

정산은 소태산의 대세계주의(大世界主義)의 뜻을 이어받아, 이를 우리 나라에서부터 실현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자 교단의 사업목표를 교화·교육·자선의 세 방면으로 다시 정비하였다.

그리하여 교육사업으로 1951년 종전의 유일학림 전문부를 개편하여 원광대학으로 만들고, 중등부는 원광남·녀중고등학교로 만들어 인가를 받았다. 1953년에는 특수한 훈련기관으로 동산선원(東山禪院)을 개설하고, 인재육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사회사업기관으로는 1945년 서울과 익산 총부내에 고아원을 설립하였고, 1950년에는 총부 구내에 요양원과 동화병원(東華病院)을 개원하였으며, 또 1952년에는 익산양로원을 세웠다. 1953년에는 총부 내에 있던 고아원을 익산 시내로 이전하여 운영하였는데, 전국을 통하여 모범적인 고아원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955년에는 익산시에 삼창공사(三昌公社)를 설립하고, 복숭아통조림 공장시설을 갖춤으로써 지역사회의 산업발전과 고용확대에 이바지하였다. 그 해 원불교의 발상지인 영광에 제2차 방언공사를 착공하여, 언답(堰沓)을 더욱 크게 늘렸다.

출판문화활동으로는 1951년에 원광사를 발족, 교단기관지 『원광(圓光)』을 편집·발간하였으며, 기타 교재 및 교양서적 등도 간행하였다. 1958년에는 교서편수기관(敎書編修機關)으로 정화사(正化社)를 발족시켜, 각종 교서의 편수를 완료하였다.

편술된 중요교서는 개정판 『정전』·『대종경』·『불조요경』·『원불교예전』·『성가』·『원불교교사』 등이다. 최근 교서편수위원회에서는 원불교 기본경전인 『정전』·『대종경』·『정산종사법어』 등을 영어·일어·중국어·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힌두어 등 외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산의 업적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매우 높게 평가되어야 할 몇 가지 작업이 있다. 첫째는 불법을 주체로 한 삼교회통사상을 삼교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통해서 구현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는 조국해방이 되면서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혼란상태를 잠재우기 위해 종교지도자의 입장에서 「건국론」을 집필하였다는 점이며, 셋째로 정산의 회갑식 기념 법설로서 삼동윤리(三同倫理)를 선포하였다는 점이다.

이 삼동윤리는 정산이 1962년에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 자기 평생의 게송이라고 하여 이를 강조하고 열반에 들었다. 동원도리(同源道理)는 모든 종교와 각종각파의 교단들은 다 같은 한 근원임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들은 서로 문호를 열어놓고 성자혼이 무엇인가를 체험하면서 그 근본을 추구하여 다 같이 일원화(一圓化)의 도리를 펴자는 것이다. 동기연계(同氣連契)는 지구상의 모든 인종과 생령들은 다 같은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인 것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인종이나 민족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모두 생성의 한 기운으로 연하여 있으니, 다 같은 동포·형제임을 자각하고 금수초목까지도 이를 함부로 하지 말자는 것이다.

동척사업(同拓事業)이란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사업이나 주의·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 궁극목적은 모두 잘 살기 위해 개척하자는데 있으니, 이 뜻을 알아서 대동화합하자는 것이다. 1962년 2월에 정산종사의 종통을 이어 대산(大山)김대거(金大擧, 1914∼1988)가 종법사로 취임하였다.

대산은 교조의 창조적 의지와 정산의 계승사업을 점철하여, 1963년에는 ‘개교반백년기념사업회’를 발족시켰다. 이 사업이 성취되자 교단이 내외적으로 알찬 실력을 갖추고, 세계를 향하여 봉공(奉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선사(先師)의 의지를 받들어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 일터, 개척하자 일원세계’라는 표어를 내걸고, 국내외의 교도 6만여 명이 모여 단합대회를 가졌다.

또한 대산은 1991년 교조 소태산대종사의 탄생백주년을 기념하는 대회를 개최하여 외국인 약 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인류문명과 원불교사상」이라는 주제를 걸고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대산은 소태산·정산의 뜻을 받들어 평소 주장해 오던 종교연합운동(U.R.M)을 국제적으로 발족시키는 행사도 가졌다.

이를 계기로 대산은 세계평화를 위한 삼대운동으로 심전계발, 공동시장개척, 종교연합운동 등을 제창하고 인간화 작업으로 각종 훈련을 강조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종교간 협력운동에 원불교가 앞장서도록 박차를 가해왔다. 1994년 11월 대산의 뒤를 이어 이광정(李廣淨, 호는 좌산 左山, 1936∼)이 종법사로 취임하였다.

좌산은 역대 종법사의 뜻을 계승하여 안으로 인재육성·체제정비·경제기반확립 등 내실을 통한 교단 각분야의 성숙을 이루고 밖으로 교화·교육·자선의 3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세계적 종교로서의 위상확립과 역할 수행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좌산은 세계교화의 한 단계를 열려는 작업으로 교헌을 개정하였다(제5차 개정).

교헌개정의 주요한 골자는 수위단회의 새로운 편성과 해외총부를 두고 이를 통해 세계교화로 나가는 방향을 설정한 것이다. 또한 좌산은 취임 후 특별사업으로 원불교방송국인 원음방송국(圓音放送局)을 개국하였으며, 정산종사탄생백주년기념사업을 추진하여 정산종사 탄생지의 성역화와 정산종사의 삼동윤리 이념을 더욱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좌산은 1995년 9월 22일 UN본부에서 개최된 UN창설 50주년 기념 WCRP 주최 강연회에서 세계평화의 이념 구현을 위해 연설한 바 있으며, 최근에는 UN의 NGO기구를 통해 21세기 인류보편윤리헌장(人類普遍倫理憲章) 편성에 삼동윤리 사상을 반영하도록 적극 노력하고 있다.
접기/펼치기원불교의 특징과 지향성


원불교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지향하고 있는 창조적 특징을 크게 종교적인 특징과 사상적인 특징, 그리고 사회적 측면에서의 특징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종교적인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으로부터의 종교라는 점이다. 원불교는 불교의 불법(佛法)을 주체로 하고, 한국에서 나온 개혁종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나왔다 하더라도, 그 내용 면으로 보면 국가적 종교나 민족적 종교에 한정되지 않는다.

종교가 절대적인 세계를 지향한다고는 하나, 그 종교가 발생한 지역에서 발전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대중화·생활화의 길을 걷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원불교는 한국에서 발생하였지만 조용한 가운데 변화를 시도하면서 인간의 의식구조를 전환시킴으로써 세계 인류에게 개명된 생활을 전개하도록 개혁하는 자세로 나가고 있다.

둘째, 자타력병진(自他力竝進)의 신앙을 제창한 점이다. 소태산은 우주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문자나 언어를 빌리기 전에 일원상(一圓相)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 ‘○’으로 상징된 진리 당체(當體)를 자타력 병진신앙체계로 형성한 것이다.

즉, 자력신앙이나 타력신앙의 어느 한 면에 기울어짐이 없이 원만한 신앙으로 조화롭게 추진시키도록 한 것이다. 

셋째, 불법으로 교리체계를 세우고 이를 주축으로 불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들을 시대화·생활화·대중화시키려 했다. 교조 소태산은 20여 년의 구도 끝에 대각을 성취하였다.

그러나 그 구도과정이나 출발점에서 어떠한 기성종교에 영향받은 바가 없었다. 대각의 내용을 통하여 볼 때, 궁극적 진리는 불타의 깨달음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소태산이 비록 불법에 변혁의 주체성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불교의 개혁만을 시도한 것이 아니며, 이를 기치로 종교혁명을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그는 새로운 교단을 세움에 있어 종교가 그 시대, 그 생활, 그리고 모든 대중을 선도하는데 적합한 종교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넷째, 종교윤리(宗敎倫理)를 제기한 점이다. 종교윤리란 명일심 통만법(明一心通萬法)의 정신이다. 현대처럼 지역과 공간을 좁힌 상황에서 모든 종교가 횡적으로 서로 넘나들고, 하나 되는 일부터 하여야 된다고 본 것이다.

자기 종교의 교리에 국집되지 말고 타종교 및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화해의 문호를 열어 놓는 윤리를 말한다. 이러한 종교윤리는 원불교에서 줄기차게 실천하여 왔는데, 소태산은 이를 일원주의로 표방했고, 정산은 이를 삼동윤리로 표방했고, 대산은 종교연합운동(UR)으로 표방해 오고 있다.

사상적인 면에서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존재철학(存在哲學)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존재개념은 서양인의 분석적인 태도에서 보는 존재라든가 사변적 인식론적으로 탐구하려는 진리의 논리적 추구가 아니다.

소태산이 대각(大覺)의 경지에서 바라다본 이 우주는 생생약동(生生躍動)하는 기운이 꽉 차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우주 및 인생의 근거를 밝힘에 있어서 철학적이기도 하지만 종교의 방향으로 이끌게 된 것이었다.

둘째, 보은사상을 제기한 점이다.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당위적(當爲的) 인간관계(人間關係)의 윤리만을 강조하는 것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 우주에는 무한한 생명력이 있으며 여기에는 기본적인 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과법칙이라는 것이다.

소태산은 인간의 자각을 통해서 ‘은(恩)’의 방향을 인과법으로 받아들여 구체적인 생성철학을 제기한 것이다. 우선 이 우주가 무심(無心)하지 않다고 하는 사실을 스스로가 체험하여 생성의 관계가 인과의 이치에 의해서 존재하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보은사상을 제기한 것이다.

셋째, 과학사상과 도덕사상의 일치이다. 물질은 과학을 의미하고 정신은 도덕문명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우세하여 인간의 정신세력은 날로 미약해가고 있음에 소태산은 도덕으로 축(軸)을 세우고, 과학을 활용하는 사상을 내세우며 주객이 전도되지 않고 과학을 활용하는 원형으로 되돌려 나가야함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과학은 아무리 그 세력이 우세하나 그것 역시 인간의 정신력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력은 도덕성으로 회복시키는 길밖에 없다고 소태산은 보았기 때문이다.

넷째, 새로운 역사관을 제시한 점이다. 소태산은 최초법어(最初法語)에서 ‘강자 약자 진화상 요법(强者 弱者 進化上 要法)’을 내놓았다. 강자와 약자가 항상 대결의식을 가지고 있어서는 인간다운 역사가 성립되지 않음을 간파한 것이다.

강자는 약자를 보호하여야 진정한 강함을 유지하며, 약자는 강자에게 배우고 단합력을 길러 지도력을 형성해 나가야 능히 강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을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도라고도 하며, 음양조화의 상생윤리라고도 표현한 바 있다.

그리하여 강자는 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먼저 진취력 있는 약자를 도와 강자이게 하며, 그러한 조화윤리로 더 내려서서 약자들을 강자로 변화하도록 지도하여 나가는 이념을 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측면에서의 특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척정신을 불러일으킨 점이다. 저축조합운동에서부터 교단 창립과정을 더듬어보면, 개인이나 단체나 사회를 막론하고 자립갱생의 개척정신으로 일관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태산은 인적·물적 자원이 고갈되어 있는 최저생활의 농촌에서도 저축으로 자본을 만들고, 맨손으로 언답을 일궈냈다. 그는 일제의 압제하에서도 이러한 창립정신에 입각하여, 주경야독의 간고한 생활을 디디고 서서 끊임없이 인재양성과 산업육성을 추진해 왔다.

둘째, 인간훈련을 강조한 점이다. 훈련이라고 하면 우선 군대훈련, 국가적 정책훈련, 산업가의 산업훈련 등을 들 수 있으나 소태산이 지향한 훈련이야말로 아무런 전제조건이 붙지 않는다. 순수한 「인간훈련」의 길을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훈련」이라 함은 의지교육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의지는 인격형성의 3대 요소 중의 하나다. 의지교육을 위한 프로그램은 첫째가 인고(忍苦)의 단련이며, 이는 인간교육의 중요한 요소로 도덕을 창출해 내는 방법인 것이다. 이와 같은 훈련된 인간이 나올 때 사회는 달라진다.

소태산은 명랑하고 진취적이며 참신하고 창조적이며, 자력적이고 봉사적인 인간상을 창출해 내려는 훈련법을 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훈련된 인간상을 전무출신(專務出身)이라고 하였다.

셋째, 남녀평등사상을 실현시킨 점이다. 그 당시 남존여비사상으로 묶인 제도 속에서 과감히 부녀자들을 신도로 만들어 훈련시켰던 것이다. 특히 조선조 남존여비사상에 찌든 속에서 일제가 되면서도 그대로 교육의 제한을 받았던 젊은 여성들을 인연 따라 모여들게 하고 그들에게 ‘남녀권리동일(男女權利同一)’을 내세워 교육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태산은 초창기 교육에서부터 그토록 무지몽매했던 젊은 여성들을 훈련시키며 교육하여 여자전무출신을 대량 배출해냈던 것이다.

남자교역자와 동등하게 교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했다는 점이며, 교단의 조직체제에 있어서도 최고 지도급인 수위단원을 남녀 10명씩 동등하게 선출해 냈다는 점이라든가, 지방교화의 책임자로 여자 전무출신을 등용시켰다는 점이다.

원불교는 오늘도 이 정신에 입각하여 중앙으로부터 지방 각 교화장소의 주역들은 여자전무출신이 60∼70%를 점유하고 있다.

넷째, 민주화의 선구적 역할을 들 수 있다. 교단조직법을 보면 교법전수를 단전(單傳)으로 하지 않고 공전(公傳)으로 하였으며, 남녀수위단회가 민주적 협의를 거쳐 교단을 통치하도록 하고 있다. 종법사외 모든 주요임원을 선거에 의한 임기제를 시행하도록 하며, 교조 재세(在世) 당시부터 민주방식으로 교단을 운영해 왔다.

원불교의 이러한 교단운영체제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상에서도 높이 평가할만한 제도였으며, 특히 종교적 지도자들의 카리스마를 극복해 나가는데 있어서도 매우 선구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

다섯째, 예법(禮法)의 개혁을 들 수 있다. 재래의 예법은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분수에 넘치는 낭비를 초래하게 하였으나, 소태산은 허례허식에 치우치지 않고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는 새로운 예법을 제정하였다.

원불교의 예전은 소태산 재세시에 이미 ‘신정의례준칙’이라고 하여 시행해 오면서 모든 사람들의 생활의식의 변화를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며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미 일제시에 『예전』을 발행하고, 이를 신도들에게 생활개조의 법으로 시행하도록 하였다.

이 『예전』의 형성은 민족해방이 된 이후 정산에 의하여 더욱 미래지향적인 예법이 되도록 보충하며 확대시키는 작업을 함으로써, 오늘날 『원불교예전』, 그리고 『세전』등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는 교역자들로부터 하나하나 실현하여 대중화되도록 교화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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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원불교정전 길라잡이』(원불교교화연구소, 2000)
『평화통일과 정산종사 건국론』(정산종사탄생백주년 기념사업회, 원불교출판사, 1999)
『소태산과 원불교사상』(류병덕, 원광대출판국, 1995)
『정산종사의 사상』(원불교사상연구원, 1992, 원불교출판사)
『인류문명과 원불교사상』 상·하(소태산탄생100주년 기념사업회, 원광사, 1991)
『원불교사상의 전개』 상·하(류병덕 편저, 교문사, 1990)
『한국사상과 원불교』(류병덕, 교문사, 1989)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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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류병덕

2023/10/25

알라딘: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 지구인문학의 발견 허남진,조성환,이원진,이우진 2023

알라딘: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 지구인문학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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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 Point : 360

10.0 100자평(6)리뷰(6)

288쪽

책소개
한국에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으로서의 지구인문학의 관점에서, 오늘 인류세의 생태위기와 기후위기 등 복합위기, 다중위기의 시대에 직면한 인류와 지구, 만물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미래를 모색하기 위하여 우리가 새롭게 가져야 하는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인간이 진보하는 동안 퇴보를 거듭하며 자원으로 전락해 온 지구의 반격, 인류 절망의 끝자락에서 지구 존재자들의 연결망을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축하는, 원리와 동력을 외래의 사상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사상과 실천들, 즉 이규보와 홍대용 등의 실학사상과 동학, 원불교, 한용운 등 개벽종교의 철학과 사상 등 토착적 사상의 맥락에서 찾아 내놓는다.

이들은 ‘지구적 상상’이나 ‘지구적 의식’으로 나아가서 지구공동체를 전망하고, 지구적 민주주의, 지구법과도 연계한다. 오늘 인류와 지구, 만물이 봉착한 위기는 인간을 만물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만물과 인간이 서로를 ‘님’으로 모시고 섬기며, 지구와 인간이 상호 증진하는 천-인관(天-人觀) 속에서 살아온, 동아시아와 한국 전통 철학에서 더욱 적실하게 찾아진다고 말한다.


목차


<프롤로그>

제1장 o 지구화 시대의 지구인문학 / 허남진·조성환
1. 지구화의 대두와 지구인문학
2. 한국사상과 지구인문학

제2장 o 두 사건에서 보는 지구적 전환 / 이원진
1. 홍대용의 자전설과 관점주의
2. 라투르의 대지설과 사고전시

제3장 o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 / 허남진·이우진
1. 토마스 베리의 지구인문학
2. 지구를 모시는 종교

제4장 o 인류세 시대 존재론의 전환 / 조성환·허남진
1. 애니미즘의 귀환과 퍼슨(person) 존재론
2. 이규보의 사물과 친구 되기
3. 한용운의 님학

제5장 o 지구학적 관점에서 본 먹음·먹힘의 철학 / 허남진·조성환
1. 발 플럼우드의 먹이/죽음론
2. 해월 최시형의 식천/제천론

제6장 o 인류세 시대 지구 담론의 지형도 / 조성환·허남진
1. Globe
2. Earth
3. Gaia
4. Planet

<에필로그>
접기


책속에서


P. 32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라는 지구적 위기는 인간이 산업 활동을 무분별하게 진행하면서 지구시스템을 교란시킨 결과이다. 기후붕괴와 생물대멸종이 임박한 현재의 급박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구적 전환이 필요하고, 지구적 연대 즉 지구공치(地球共治)가 요청된다. 아울러 인간 중심의 ‘인간세’에서 지구 중심의 ‘지구세’로의 전환... 더보기
P. 50동학에서 시작하여 천도교, 원불교에 이르는 근대 한국의 개벽종교에서도 지구학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구적 상상’(global imaginary)이나 ‘지구적 의식’(global consciousness)과 같은 개념을 찾을 수 있다. 해월 최시형의 천지부모 만물동포, 소태산 박중빈의 일원과 사은, 정산 송규의 ‘한 울안’과 ‘삼동윤리’, 천도교와 원불교의 사해일가(四海一家)나 세계일가(世界一家)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인간과 만물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토마스 베리의 지구공동체 개념과 상통한다. 접기
P. 102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최소한 두 가지 다른 정의를 갖는다. 첫째는 우리가 국민으로서 권리를 얻는 주권 국가라는 땅이고, 둘째는 우리가 거주하고 숨쉬는 땅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땅은 지구 또는 초월적 관점에서 보는 푸른 행성(Pale Blue Dot)이 아니라 일련의 부분적이고 국소적인 그래서 거칠고 불연속적인 임계영역에 가깝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주체의 지구-되기이며, 다른 이질적 존재자를 만날 수 있도록 민감성 과 공생성을 장착하는 일이다. 18세기의 홍대용은 리(理)와 태극의 전체성으로서 하늘이 가진 위계적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천의 관점[天視]에서, 우리가 지구에서 인간보다 더 우월할 수 있는 비인간과의 상호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홍대용의 시각은 임계영역이라는 얇은 피부에서 생물들이 공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서로를 스승 삼아 배우는 라투르식 생태계 개념과 상당히 유사하다. 라투르는 『우리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자연과 사회의 구분을 없애고 ‘사물의 의회’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에서는 지구적 전환을 촉구한다. 라투르의 사유가 고대 코스모스에서 서구 근대 과학적 지구(유니버스)로 갔다가 다시 인류세 시대의 지구중심적 사고로 돌아온 신코스모스로의 이동이라면, 홍대용이 일으킨 지구적 전환은 고대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고전적 코스모스에서 명시적으로 인간-자연의 구분을 없앤 ‘천인물합일’(天人物合一) 코스모스로의 이동이다. 접기
P. 142지구윤리는 지구와 비인간 존재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 그들을 ‘공경’하는 윤리이다. 최시형 식으로 말하면, 경천(敬天)과 경물(敬物)의 윤리이다. 개벽사상은 인간중심적 사유를 극복하고 현재의 지구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구공동체적 입장과 지구윤리론적 사유를 지니고 있다. 이는 굳이 서구의 이론을 추종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토착적이고 자생적인 사유를 통해 현재의 지구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접기
P. 176소태산 박중빈과 동시대를 살았던 일제강점기의 문인들은 님을 노래하기 시작하였다. 김소월의 「님과 벗」(1922), 「님의 노래」(1923)를 시작으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1926), 신석정의 「임께서 부르시면」(1931)이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로 들어오자 문인들이 최제우의 하늘님에서 ‘하늘’을 떼고서 ‘님’을 단독으로 노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늘님 철학과 님의 문학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시기는 서세동점과 일제강점기라고 하는 국가적 위기상황이자 한국인의 미래와 희망이 좌절된 상실의 시기 때문이다. 이 암흑기에 님이 철학화되고 문학화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희망과 미래에 대한 동경과 의지가 강렬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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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허남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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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학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HK연구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기후위기 시대 인문학을 모색하기 위해 지구인문학, 공생철학, 에너지 철학 등에 관심이 많다. 지은 책으로는 『개벽의 사상사』(공저), 『지구적 전환 2021-근대성에서 지구성으로 다시개벽의 징후를 읽다』(공저) 등이 있다.

최근작 :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개벽의 사상사>,<한국 종교교단 연구 XIII> … 총 9종 (모두보기)

조성환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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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에서 수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일본 와세다대학교에서 중국철학을 공부한 뒤에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한국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강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의 전임 연구원,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의 책임 연구원을 거쳐 현재 원광대학교 HK+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한국 근대의 탄생》과 《하늘을 그리는 사람들》, 《키워드로 읽는 한국철학》, 《동북아, 니체를 만나다》(공저) 역서로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인류세의 철학》(공역) 등이 있다.

최근작 : <한국의 철학자들>,<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동북아 인물전> … 총 23종 (모두보기)

이원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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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X-Media센터 연구교수 서양철학을 배웠으나 신문기자를 하는 동안 '한국 사람'에 관심을 갖게 됐고, 퇴계학을 공부한 뒤로는 쭉 매력적 한국학의 터무늬를 찾고 있다. 최근 SF와 미디어에도 관심을 갖고 있어 한국의 전통과 첨단을 하나로 잇고자 한다. 만든 작품으로 『성학십도 VR』(공동작품), 저서로 『블랙미러로 철학하기』, 『탠저블 필로소피』(공저)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니체』 등이 있다.

최근작 :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탠저블 필로소피 : 성학십도 VR>,<세계는 왜 한국에 주목하는가> … 총 11종 (모두보기)

이우진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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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교육대학교 교수. 공주교육대학교 글로컬인문학연구소 소장 공주교육대학교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교육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차세대 한국학자로 선발되어 워싱턴대학교에서 연구하였다. 저서로 KoreanEducation:Educational Thought, Systems and Content (공저)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 『정의를 위한 교육- 야누시 코르차크』, 『동아시아 양명학의 전개』가 있다.

최근작 :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 총 2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 지구인문학의 시선
21세기 사상적, 존재론적 전회에 관한, 전환을 위한 한국학의 발언

‘지구촌’, ‘지구공동체’를 말하자마자 ‘위험의 지구화’가 운위되고, ‘지구적 위험 공동체’가 눈앞의 현실로 전개되는 인류세의 문이 함께 열렸다.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는 인류세가 던지는 대의(大疑)에 대오(大悟)를 모색하는 ‘지구인문학연구소’의 ‘지구인문학’적 성찰의 대장정, 그 서막을 여는 책이다.

그 바탕에 도사린 ‘지구학’의 맥락만 보면 서구 발 인문학적 전환 담론의 수입학이거나 그에 대한 수동적 대응이라고 이해하기 쉬우나, 그보다는 저자들이 한국학 텍스트 강독과 동학, 한국유학, 한국종교, 한국철학자들에 대한 공부를 더해가며 기반을 다지고 21세기의 존재론적 전회의 거대한 흐름을 우리 눈으로 보아 내는 작업을 더하는 가운데, 본격적인 담론의 전개를 시도하는 첫 번째 결실이다.

지구인문학연구소가 구축한 한국학 또는 개벽학의 맥락과 21세기의 전 지구적 다중 위기를 대표하는 인류세 담론의 맥락은 ‘생명을 넘어서 살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바가 많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그 논의를 이규보, 홍대용 등의 실학자나 동학, 원불교 등의 개벽종교, 그리고 특히 한용운이 대표하는 한국 고유의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님’의 철학 같은 한국학에서 출발시키면서, 서양의 지구학과 대면한다는 점에서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인문학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인문학의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확장한다는 뜻이다. 동양학과 서양학을 통섭하는 일이지만, 주로는 그 균형점의 회복을 위하여, 동양학의 서양학에 대한 짝사랑을 넘어서 서양학에서 동양학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동양학(한국학)적 맥락에서의 말 걸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의 전개이다. 이는 지구-내-존재 전체의 존재론을 전개하는 일이며, 서구 인류학의 ‘퍼슨(person)’과 한국학의 ‘님’의 대화 시도가 대표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학 내에서의 인문학이 본래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아우르는 것이었다는 점이 천문학, 지리학, 인문학을 통섭하는 인문학으로서의 ‘지구인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1장에서는 ‘지구화 시대의 지구인문학’의 기본 의미를 살핀다. 지구인문학은 1990년대 이래 지구화 시대에 즈음한 ‘지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로서의 ‘지구학’ 중에서도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중심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학문적 경향을 의미한다. 가톨릭 신부이자 지구학자(geologian)를 자처한 토마스 베리는 인간과 지구가 상생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원으로서의 지구가 아니라 친교와 외경의 대상으로의 지구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러한 지구인문학적 지향은 조선 후기 동학과 실학에서도 찾을 수 있는바, 18세기 실학자 홍대용, 19세기 동학의 스승 최시형, 20세기의 천도교 철학자 이돈화, 원불교를 그 핵심 사례로 제시한다.

제2장은 두 개의 사건(인물)을 통해 ‘지구적 전환’의 의미를 살핀다. 조선 후기의 기학자 홍대용은 지구의 위상에 대한 관점 변화를 통해 사람과 자연 존재자의 연결망을 변혁하는 거대한 정치생태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브뤼노 라투르는 온전한 전체성을 지닌 객관적 과학으로서의 지구에서 벗어나, 부분으로서도 충족적인 대지로서의 지구로 관점 전환을 요구한다. 라투르의 지구적 전환이 고대 코스모스에서 갈릴레오 사건이 일으킨 서구 근대 과학적 지구에서 다시 인류세 시대의 지구중심적 사고로 돌아온 신코스모스로의 이동이라면, 홍대용이 일으킨 지구적 전환은 고대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고전적 코스모스에서 인간-자연의 구분을 없앤 ‘천인물합일’(天人物合一) 코스모스로의 이동이다.

제3장은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로서 지구인문학의 학문적 모토를 지향하면서 인간과 지구의 관계 정립을 위한 ‘지구종교’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지구종교’란 ‘인간과 지구의 상생을 위해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를 말한다. 먼저 지구에 대한 인간의 시선이 탐구나 정복의 대상에서 ‘공동운명체’로 변모하고 있음을 살펴보고 대표적인 사례로 토마스 베리의 지구학과 지구종교에 대해 검토한다. 다음으로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를 ‘지구종교’라고 개념화하고, 그러한 사례를 폴 왓슨, 래리 라스무쎈, 브론테일러 등을 통해 살펴보고, 근대 한국의 개벽사상을 지구종교와 지구윤리로 재해석한다.

제4장 ‘인류세 시대 존재론의 전환’에서는 캐나다의 오지브웨족의 언어에서 만물을 ‘person’으로 간주하는 사례를 출발점으로 하여, 여기에서 ‘person’은 한국철학적으로 한국어의 ‘님’에 해당한다고 보고, ‘님의 존재론’을 시도한다. 오지브웨족의 person과 한국어의 님은 인간 이외의 존재를 thing이나 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인간과 사물의 상호의존과 상호연대를 함축하는 님의 존재론이야말로 생태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포스트휴먼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장 ‘지구학적 관점에서 본 먹음-먹힘의 철학’에서는 ‘먹고 사는’ 일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논의를 출발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먹거리가 기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최근의 연구도 논의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특히 요즘과 같이 생태위기와 기후변화로 지구에서의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이 문제시되는 현실에서 먹음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이 장에서는 플럼우드의 음식(飮食) 철학의 철학적, 종교학적, 지구학적 의미에 주목하면서 ‘지구학자’로서 플럼우드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동학사상과 대면시키고자 한다.

제6장 ‘인류세 시대 지구 담론의 지형도’에서는 서양에서 논의되는 지구 담론의 흐름을 살핀다. 즉 ‘지구’를 가리키는 말로 Earth, globe, Gaia, planet 등의 개념이 각각 사용되고 ‘Gaia2.0’(브뤼노 라투르), ‘Eaarh’(빌 맥키번), ‘the Intrusion of Gaia’(이사벨 스텡제)와 같이 다양하게 재개념화되는 현장을 살핀다. 지구화 시대, 그리고 인류세 시대의 지구가 이전의 지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리고 인간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안된 이들 개념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고찰하고, 의미상의 차이를 살펴본다. 접기




10.0






지구인문학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을 요구한다.
깐도리 2023-08-2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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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갈 지구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하며 일정한 철학적 의미도 부여하고 있는 책
djkidol 2023-08-2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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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학 측면으로 홍대용, 최시형, 최제우를 들여다 볼 수 있어 좋았다
왕눈이 2023-08-1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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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지구학, 지구인문학, 인류세에서 지구세로이 전환을 이야기하듯, 인간 중심세계 질서에서 지구중심 세계로의 전환을 모색한다. 인간이 저질러 온 생태계 파괴와 무한정한 욕심이 빗어낸 기후위기라는 위험 앞에 인간은 겸허하게 자연과의 공존, 지구와의 공치의 사고로 전환해야...
moonbh 2023-08-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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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위기 시대를 맞은 오늘날 우리가 고민해볼 만한 화두를 논리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13 2023-08-2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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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지구인문학은 '지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라는 의미로, 간단히 '지구학' 이라고 한다. 1990년대 이래로 서양에서는 지구화라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함에 따라 지구화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지구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출현하였다. '글로벌 사회학' 이나 '글로벌 정치학' 과 같이 '글로벌'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학문 분야가 그것이다. (-12-)​​18세기 실학자 홍대용은 지구구형설을 바탕으로 중국은 물론 지구조차도 우주의 일부에 불과하고, 인간 존재 역시 지구적 관점에서 보면 만물의 일부에 불과핟자고 보았다. 19세기 동학... + 더보기
깐도리 2023-08-25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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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우리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와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함께 판단해 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 사회적 합의나 공존의 개념이 부각되어야 하나, 여전히 세계는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고 우리의 경우에도 이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도 기본적으로 이 책은 성찰과 공생의 의미가 잘 표현된 인문학 도서이다.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책에서는 다소 무거울 수 있고 일상에서는 적용하기 힘든 영역에 대해 일정한 방향성과 방식에 대해 조언하며 많은 이들의 참여와 관심을 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 더보기
djkidol 2023-08-25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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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본 도서 #어떤지구를상상할것인가? 는 #리뷰어스클럽 과 #모시는사람 으로부터 무료로 지원받아 지극히 주관적으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어떤 지구를 상상할것인가? 지구인문학의 발견이라는 문구를 보는데 먼가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인류세니 지구온난화니 다큐를 종종 접하다 보니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토착적 시각으로 지구학을 풀어봤다기에 호기심이 생겼다.

지구학의 토착? 학자로 제일먼저 홍대용이 나온다.
학창시절 홍대용이라는 학자를 접했던것 같지만 내 인생에 그리 영향력이 없었던지 정확히 뭘 한사람이지 기억에 없어 사전을 찾아봤다.
그가 쓴 [의산문답]이라는 책은 갈릴레이가 쓴 오디세이와 비견될 책이라고 하니 반성을 했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사람은 소우주, 거꾸로 말하면 우주는 거대한 신체.
[의산문답]은 지구학에서도 중요한 자료여서 2장까지 계속 나온다.
3장부터는 최제우, 최시형의 동학사상이 나온다.
학창시절 동학농민운동을 너무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사상이 참 좋았다.
단 한번도 지구학관점으로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접하니 되게 센세이션했다.
이 책에서 잠깐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언급이 되는데 '지구학'측면으로 생각하니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있는지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구학은 일종의 유토피아같다. 유토피아는 존재 하지 않지만 누구나 갈망하는것. 지구학적인 측면으로 세계의 과제를 생각한다면 그 어려운 매듭을 좀더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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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눈이 2023-08-1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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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세계화에서 지구화로



1990년대부터 서구 학계에서는 전 지구적인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개념 ‘지구화’는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의 확장이다. 세계화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를, 또 한편으로는 지구촌에 걸친 문화의 전파다. ‘지구화’라는 번역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독일 사회학자 올리히 벡이 쓴 책<지구화란 무엇인가>에서다. 그렇다면 지구학은 뭔가, 지구화의 정치, 경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 중심주의로 전환을 꾀하는 학문적 경향을 지구인문학이라 한다.



이 책에서 논하는 지구학, 지구인문학은 인간과 지구가 상생하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인데, 이제 우리는 어떤 지구를 상상해야 하는가이다. 2021년 유네스코 발행의<교육의 미래보고서> 열쇳말은 “우리가 공유하는 지구에서 모두가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가 협력해야 한다”라는 점이다. 지구, 연결, 그리고 협력이다. 현재 우리 눈 앞에 펼쳐진 생태와 기후위기는 인간만의 진보와 성장을 추구해 온 지구의 경고 또는 반격이 아닐까,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6장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우선 1장 지구화 시대의 지구인문학이란 글은 허남진과 조성환이 지구화의 대두와 지구인문학을 소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사상과 지구인문학과의 관계를 살핀다. 2장은 홍대용의 자전설과 관점주의와 라투르의 대지설과 사고전시라는 두 관점에서 본 지구적 전환을 이원진이 썼다. 3장은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로 토마스 베리의 지구 인문학을 소개하고 지구를 모시는 종교, 지구윤리를 어떻게 모색해야 하는가 하는 주제로 허남진과 이우진이, 4장 인류세 시대 존재론의 전환과 5장 지구학적 관점에서 본 먹음, 먹힘, 6장 인류세 시대 지구 담론의 지형도를 조성환과 허남진이 함께 썼다. 이 중 4장에서는 이규보의 사물 인식과 한용운의 님학, 그리고 5장의 해월 최시형의 식천/제천론은 눈여겨 볼만한 내용으로 지구인문학적 지향은 조선 후기의 실학이나 동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알게 모르게 서양의 것이나 중국의 잣대를 들이대고, 이렇게 하는 것이 고품격인양 하는 언행을 해온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 선조 중에서도 뛰어난 생각이 있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지구인문학이란 의미를 생각해본다. 현재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의 지역적 범위를 넘어서 지구로 그 범위를 넓혀보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학문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구분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통섭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양과 한국의 사고를 대비하고, 비교하면서 그 내용과 본질에 있어 크게 다르지 않음을 해명해내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의도적으로 이런 시도를 해 온 듯 보인다.









인간세 중심에서 지구세로 전환



200여 년밖에 되지 않은 산업화의 역사는 그 이전의 지구, 곧 만물이요, 자연이라는 사고를 순간적으로 바꿔놓고, 세상에 중심이 인간이며,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인간 이외의 것들은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두 복무해야 한다고, 즉,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인간 중심사상이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생태계의 파괴가 거리낌 없이 자행되고, 지구라는 일체화된 것을 대상화시키고, 지구의 모든 존재 위에 군림하는 인간상을, 그리고 이들의 세상인 인류세를.



한국사상 속의 지구인문학 사고의 흔적들



지구인문학적 관점에서 한국철학 세계를 살펴보면, 조선 초기 유학자 정지운과 이황은 중국의 태극도(만물생성도)에서 한 걸음 나아간 천명도(우주를 하나의 원으로 도상화)를 만들고 그 안에 인간과 만물을. 물론 여전히 인간중심주의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홍대용은 당시 세상의 중심인 중국을 축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중국 중심론의 우주론을 비판, 중국 역시 지방에 불과하다고 본 것이다. 그는 각 별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중심이라고, 중심과 주변이 없이 모두가 중심이라고 본 것은 당시로써는 꽤 도발적인 주장이었을 것이다. 물론 홍대용 이전에 김석문 또한 이런 주장을 했지만, 홍대용의 ‘사물 존재론’ 인간과 물 모두가 성(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뷔르노 라투르, 코스모폴리틱스로의 전환



라투르는 지구 대신 가이아 이론을 제시했다. 가이아란 어머니처럼 다정한 여신의 이미지가 아닌 인간 영역으로 침입해 온 매우 거친 자연을 말한다. 19세기까지 인간은 자연이 장관에 무력하고 압도당하며, 전적으로 지배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관점으로 뒤바뀌고, 이에 관한 대응으로 가이아2.0은 거친 자연으로, 다시 인간을 압도하려 한다. 여기서 공존이란 의미를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별로 들어보지 못한 지구학과 지구인문학이란 영역은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만물 즉, 인간과 물질 모두 지구라는 생각이다. 마치 생물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구의 절반이 인간의 영역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다른 종의 것이라는 생각과도 상통한다. 트로이 베티스, 드류 펜더그라스<지구의 절반을 넘어서>(이콘, 2023)는 월슨의 사고를 바탕으로 지구의 절반에 인간의 발길을 제한해 다양한 생물종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인류는 더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관한 생각의 전환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를 위해 과학수단을 동원하여, 온도 1.5도 낮추기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직접적인 시도는 국소요법이지 않을까 싶다. 단순히 온도를 낮추기 위해 동원하는 방법이 지구학적 관점, 즉 거시적 안목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대증요법으로 증상발현을 지연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없지 않을까, 문제는 사고다. 어떻게 생각하는가인데, 모든 만물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지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그 지평을 확장해야 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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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bh 2023-08-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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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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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의 핵심 키워드는 '지구화(golbalization)'이다. 'globalization'은 일반적으로 '세계화'로 번역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지구화'로 번역하여 사용하는데, 이 지점이 흥미롭다. '지구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1장에서 자세히 설명해준다. '지구화'는 '세계화'와 달리 경제적 현상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며 서구중심주의 사고에 오염되지 않은 단어이다. 또한 인간 및 국가를 초월하는 '지구공동체'의 개념과 결을 같이 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전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팬데믹 사태부터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까지. 국가 간의 경계를 짓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요즘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 중 많은 것이 범지구적 사안이다. 여러 국가들이 문제를 공유하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던 중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조금쯤 또렷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는 지구학적 관점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방식을 다시금 되짚어 보게 하는 책이었다.

​​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국내 사상에서 지구인문학의 뿌리를 찾아 소개해주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세계화'가 아닌 '지구화'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느끼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도 수백 년 전에 이미 지구학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 학자들이 있다는 점이 놀랍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특히 홍대용의 사상이 기억에 남는다. '초목은 지구의 털과 머리카락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과 이이다'라는 『의산문답』의 구절은 충격적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인간중심적인 사고관이 지배적이던 조선 후기에 저런 문장을 쓸 수 있었던 통찰력이 감명 깊었다. 환경 문제를 비롯해 온갖 위기에 맞닥뜨린 지구를 지속가능하도록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구는 인간의 소유가 아니다'라는 아주 간단한 명제를 확실히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 홍대용의 『의산문답』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번 여름도 무척 더웠다. 뉴스에서는 전력 수요가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뜨거운 거리에 활짝 열어놓은 가게 입구에서는 냉기가 줄줄 샜다. 소나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내렸다. 매번 일기예보를 빗나가 쏟아지는 빗줄기에 주변에서는 '우리나라도 이제 열대 스콜이 내리나 봐'라고 말하며 웃었다. 일상적으로 지나치는 풍경과 말들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기후 위기를 어느 때보다 절실히 체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생활 속의 실천은 미미하고 관심마저 부족한 듯 느껴진다. 지구를 소모품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요즘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는 마침 시의적절한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문학 #어떤지구를상상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