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s͏n͏e͏r͏d͏p͏o͏t͏f͏4͏0͏9͏0͏h͏u͏7͏6͏3͏6͏4͏0͏4͏7͏0͏6͏1͏l͏9͏3͏a͏t͏h͏1͏1͏i͏ ͏1͏7͏:͏m͏m͏y͏6͏0͏9͏f͏8͏l͏ ͏f͏c͏t͏9͏g͏1͏0͏J͏ ͏ ·
AI와의 질의⬝응답 중에는 사실 학회에서의 물음과 답변 및 대화보다 유익한 측면이 있다. 그런 기겁하리만큼 스마트한 답변, 늘 틀에 박힌 듯한 격자식 글. 질리기도 한다.
암튼 돌아봄(회상)과 나아감(전망)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흐르고, 패스하는 현재의 자리에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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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처녀작 『신학으로 가는 길』(1996년)
이 처녀작을 Shin선생님께 드렸는데, 보시더니 책 제목이 너무 얌전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AI에게 물었다:
“심광섭의 『신학으로 가는 길』이란 책을 아세요?”
나의 처녀작 『신학으로 가는 길』(1996년)
이 처녀작을 Shin선생님께 드렸는데, 보시더니 책 제목이 너무 얌전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
AI에게 물었다:
“심광섭의 『신학으로 가는 길』이란 책을 아세요?”
대답: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심광섭 교수의 처녀작인 『신학으로 가는 길』(1996년, 한국신학연구소) 말씀이시죠? 심 교수님 스스로도 신앙과 신학에서 '길'이라는 은유를 유독 아낀다고 고백했을 만큼, 그의 평생에 걸친 학문적 여정의 출발점이자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의미 있는 저서입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심광섭 교수의 처녀작인 『신학으로 가는 길』(1996년, 한국신학연구소) 말씀이시죠? 심 교수님 스스로도 신앙과 신학에서 '길'이라는 은유를 유독 아낀다고 고백했을 만큼, 그의 평생에 걸친 학문적 여정의 출발점이자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의미 있는 저서입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흐름과 신학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짚어볼 수 있습니다.
1. 탈형이상학적 '생(生)의 신학'으로의 전환
독일 베텔 신학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친 심광섭 교수는 이 책을 통해 기존 서구의 고착화된 형이상학적 틀을 비판적으로 성찰합니다. 고정된 교리와 딱딱한 사유 체계에 갇힌 신학이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의 역사와 삶의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 '탈형이상학적 생의 신학'을 모색하는 이정표를 제시했습니다. 신학을 하나의 고정된 성(城)이 아닌, 계속해서 걸어가야 할 '길'로 정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2. '예술신학'과 '기독교 미학'의 모태(야 이건 이후 저술들의 정보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자의 좋은 평가)
그의 초기 문제의식은 이후 심층적인 학문적 결실로 이어지게 됩니다. 굳어버린 논리의 신학을 넘어 하느님의 웅숭깊은 '아름다움'을 회복하고자 했던 노력은 훗날 『예술신학』, 『기독교 미학의 향연』, 『십자가와 부활의 미학』 같은 독창적인 기독교 미학 연구로 만개하게 됩니다.
안셀무스의 오랜 명제인 **"지성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을 **"아름다움을 찾는 신앙(fides quaerens pulchrum)"**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그의 예술신학적 선언의 씨앗이 바로 이 『신학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싹트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이론적 탐구를 넘어 종교적 영성과 예술, 그리고 삶의 자리를 하나로 엮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책입니다.
●신학의 길(밥법론)에 대한 평가를 알기 위해 두 번째 물었다.
“위 책에서 신학의 방법론으로 슐라이어마허와 칼 바르트 이후에 제시한 제3의 방법론에 대한 평가는요?”
심광섭 교수가 『신학으로 가는 길』(특히 제2장 「신학의 아레오바고」)에서 성찰하는 슐라이어마허와 바르트 이후의 '제3의 방법론'은, 역사적으로 두 극단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관계 방법론(Method of Correlation)'을 중심으로 한 중재신학적 흐름을 뜻합니다.
슐라이어마허가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감정에서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을 열었고, 이에 반발한 Karl Barth가 하느님의 주권적 계시와 말씀만 강조하는 '위로부터의 신학'을 세웠다면, 제3의 방법론은 이 둘 사이에서 "문화의 물음과 계시의 대답"을 연결하려 시도했습니다.
심광섭 교수가 이 제3의 방법론에 내린 평가는 '위대한 다리 놓기'라는 찬사와 '여전한 관념성의 한계'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양가적 시선을 담고 있습니다.
1. 긍정적 평가: 신학의 '공적 대화 광장(아레오바고)' 회복
심 교수는 제3의 방법론이 바르트식 신학이 빠지기 쉬웠던 '독선적 고립(성서주의적 게토)'을 깨부수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①대화적 신학의 기초: 신학을 교회 내부의 언어에만 가두지 않고 철학, 예술, 심리학 등 세속 문화의 실존적 질문들과 맞물리게 함으로써, 신학이 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공적 합리성'을 확보해 주었다고 봅니다.
②상황성의 인정: 복음이 진공상태가 아니라 인간이 발 디딘 구체적인 '상황(Situation)'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 있게 해석될 수 있다는 길을 열어준 공로를 인정합니다.
2. 비판적 평가: 서구 '형이상학적 틀'에 갇힌 추상성
그러나 심 교수의 궁극적인 문제의식은 이 제3의 길이 여전히 서구의 전통적인 관념적·형이상학적 이분법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①질문과 대답의 기계적 도식화: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철학적 '질문'으로 규정하고 복음을 그에 딱 맞는 '정답'으로 매칭하는 방식은, 자칫 삶의 생생하고 유동적인 역동성을 박제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②존재론적 추상성: 틸리히의 신학이 '존재-자체(Being-itself)' 같은 고도의 철학적 개념에 의존함으로써, 평범한 인간들이 일상에서 겪는 구체적인 고통, 생태적 연대, 그리고 육체적 감각의 자리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③심광섭 교수의 대안: '제3의 길'을 넘어 '생(生)과 미학의 길'로
심 교수는 이 평가를 바탕으로 슐라이어마허, 바르트, 틸리히를 모두 넘어서는 자신만의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신학의 방법론은 단순히 '개념적 상관관계'를 따지는 지적 작업이 아니라, 하느님이 창조하신 구체적인 **'생(삶)의 자리를 온몸으로 느끼는 공감'**이자, 그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발견하는 **'예술적·미학적 소통'**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에게 제3의 방법론이란 고마운 디딤돌이지만, 우리가 최종적으로 머물러야 할 종착지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제3의 방법론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세 번째 물었다: “존재론적 하느님 혹은 인간중심이 아니라 둘 사이에 일어나는 구원의 사건 중심의 방법론에 대한 평가를 주세요”
질문하신 지점은 20세기 현대 신학이 마주했던 가장 뜨겁고도 창조적인 전환점입니다. 고정된 존재론적 하느님(명사)도 아니고, 인간의 종교적 경험(주관주의)도 아닌, 하느님과 인간 '사이(Between)'에서 역동적으로 터져 나오는 '구원의 사건(Event)'에 주목하는 방법론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칼 바르트의 말씀-사건, 불트만의 실존적 만남-사건, 그리고 무엇보다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의 십자가와 부활의 역사적·종말론적 사건 신학이 이 흐름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심광섭 교수의 『신학으로 가는 길』의 문제의식과 현대 신학적 지평에서 이 방법론은 다음과 같은 명백한 빛과 그림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1. 긍정적 평가: '명사'의 하느님에서 '동사'의 하느님으로
①탈형이상학적인 역동성 회복
기존의 전통 신학이 하느님을 '영원불변하고 고정된 영적 실체(Substance)'로 갇혀 있게 했다면, 사건 중심의 방법론은 하느님을 역사 속에서 살아서 움직이시는 분으로 되돌려 놓았습니다. 하느님은 개념 속에 머무는 분이 아니라, 고통받는 인간의 역사 한복판으로 뚫고 들어오시는 '구체적인 사건 자체'가 됩니다.
②'사이(Between)'의 관계성과 소통 회복
구원은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떨어뜨리는 영적 물건도 아니고, 인간이 내면에서 자아내는 심리적 위안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 격렬하게 교차하는 '사잇공간'에서 일어나는 만남이자 사귐입니다. 이로 인해 신학은 독백을 멈추고 대화와 관계의 언어를 얻게 되었습니다.
③역사적·실천적 책임(Praxis)의 강화
구원이 '개념'이 아니라 '사건'이 되면서, 신학은 세상의 아픔과 불의에 침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 사건에 온몸으로 동참하는 '실천(Praxis)'이 신학의 핵심 방법론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해방신학이나 민중신학처럼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신학으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2. 비판적 성찰: '사건'이 지닌 양날의 검
그러나 이 위대한 돌파구 역시 신학 사상가들로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받습니다.
①지속성과 초월적 안정성의 약화 (역사주의의 함정)
모든 것을 '사건'과 '관계'로만 환원해 버리면, "구원의 사건이 눈에 보이지 않거나 침묵하는 순간에 하느님은 어디 계시는가?"라는 본질적인 의문에 부딪힙니다. 하느님의 초월적 안정성과 창조주로서의 영원한 존재론적 토대가 자칫 역사의 유동성과 덧없음 속에 휩쓸려 사라질 위험(기능주의나 역사주의로의 경도)이 있습니다.
②'사건'의 모호성과 자의적 해석의 위험
인간이 겪는 수많은 역사적·실존적 사건 중에서 "무엇이 진짜 하느님의 구원 사건인가?"를 판별하기가 모호해질 수 있습니다. 자칫 신학자나 공동체가 자신들의 사회적·정치적 지향점에 맞는 사건을 자의적으로 '하느님의 사건'이라 선언해 버리는 새로운 주관주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③심광섭 교수가 자아내는 미학적 승화: '생명의 아름다운 드라마'
심광섭 교수는 서구의 굳어버린 존재론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이 '사건 중심 방법론'을 적극 수용합니다. 다만, 그는 이 구원의 사건을 거칠고 메마른 정치적 투쟁이나 차가운 역사적 명제에만 묶어두지 않습니다.
그에게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구원 사건은 삼위일체 하느님이 인간을 초청하여 함께 자아내는 **'생명의 아름다운 춤(Perichoresis)'이자 '예술적 조화'**입니다. 구원의 사건을 미학적이고 영성적인 깊이로 한 단계 더 밀고 나간 셈입니다.
딱딱한 개념의 성(城)을 쌓는 신학보다, 매일의 삶에서 터져 나오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생생한 '사건'으로 경험하는 것. 이것이 심 교수가 『신학으로 가는 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울림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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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kwon Lee
·by author
"멋"집니다.
Philo Kalia
이명권 전 이렇게 여행을 즐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