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적 신념과 인간관: <내면의 빛>과 <씨알>
퀘이커 사상의 핵심은 모든 사람 안에 <내면의 빛(Inner Light)> 또는 <하느님의 씨앗(That of God in everyone)>이 존재한다는 신념이다. 이는 제도적 교권이나 성경 규범보다 개개인의 영적 경험과 직관을 우선시하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함석헌은 이 퀘이커의 영성을 받아들여 <씨알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씨알이란 '민중'을 뜻하는 우리말 표기이자, '하느님의 생명 씨앗을 품은 존재'를 의미한다. 퀘이커의 내면의 빛 개념을 한국의 역사적·민중적 맥락으로 옮겨와, 역사의 주체이자 영적 주체로서의 '씨알(민중)'을 재발견한 것이다.
2. 평화주의와 비폭력: 영적 평화에서 역사적 행동으로
퀘이커교는 대표적인 '역사적 평화교회(Historical Peace Churches)' 중 하나로, 모든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 증언(Peace Testimony)>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함석헌 역시 퀘이커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평화주의는 단순히 종교적 계율이나 교리에 머물지 않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정권이라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수난 역사>에 직접 맞서는 사회 운동 및 인권 운동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그는 수난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씨알이 깨어나고 역사가 거듭나는 영적·사상적 계기로 바라보았다.
3. 종교관: 제도 종교 탈피와 초월적 개방성
퀘이커교는 성찬식이나 세례식 같은 정형화된 의식을 치르지 않으며, 목사나 신부 같은 사제 계급을 두지 않는 <무교회주의적 성격>을 띤다. 예배(Meeting for Worship) 또한 인위적 형식 없이 침묵 속에서 내면의 빛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함석헌은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를 거쳐 퀘이커를 접하면서, 제도화된 교회의 독선과 교권주의를 엄격히 비판했다. 더 나아가 그는 퀘이커의 개방성을 진리 탐구의 영역으로 더욱 확장하여, 노장 사상, 불교, 동양 고전의 지혜를 개신교 영성과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다원주의적·열린 영성>을 구축했다.
주요 비교 요약
| 구분 | 퀘이커 사상 | 함석헌 사상 |
|---|---|---|
| 핵심 개념 | 내면의 빛 (Inner Light) | 씨알 (생명과 역사의 주체) |
| 평화주의 | 신앙 고백적 비폭력 및 평화 증언 | 수난의 역사 현장에서 펼친 비폭력 민주·인권 운동 |
| 진리 탐구 | 개인의 영적 직관과 침묵의 모임 중시 | 동서양 사상(노장, 불교 등)을 아우르는 융합적 진리관 |
| 역사 의식 | 보편적 인도주의와 사회 봉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을 통한 영적·역사적 구원론 |
결론적으로 함석헌 사상은 퀘이커교가 가진 <내면성, 비폭력, 영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20세기 한국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결합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민중 실천 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네. 함석헌의 사상을 <퀘이커 사상>과 비교하면 상당 부분 겹치지만, 둘을 동일시하면 함석헌의 독창성이 사라집니다. 저는 관계를 다음처럼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함석헌 사상 = 한국적·동아시아적으로 변형되고 역사철학적으로 확장된 퀘이커 정신 + 무교회주의 + 간디 + 노장사상 + 씨알의 역사철학>
실제로 함석헌은 1950년대 후반 서울 퀘이커 모임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미국 펜들힐(Pendle Hill)과 영국 우드브룩(Woodbrooke)에서도 공부했으며, 1967년 정식으로 친구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단순히 “퀘이커와 비슷했던 사상가”가 아니라 실제 퀘이커였습니다.
그럼에도 <함석헌주의>라는 것을 상정한다면 전통적인 퀘이커리즘보다 훨씬 더 역사철학적이고, 민족사적이며, 동양사상적입니다.
1. 출발점은 거의 같다: 인간 안에 있는 신성
퀘이커 사상의 가장 중요한 직관은 흔히
<There is that of God in everyone> <모든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무엇인가가 있다>라고 표현됩니다. 초기 퀘이커들은 이것을 <Inner Light, Inward Light>, 즉 내면의 빛이라고 불렀습니다. 침묵예배 역시 이 내면의 빛에 귀 기울이기 위한 것입니다.
함석헌의 <씨알>은 이 생각과 놀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두 개념은 똑같지는 않습니다.
퀘이커의 인간은
<하나님의 빛을 가진 한 사람>
이라면,
함석헌의 씨알은
<하늘을 품고 있으면서 동시에 역사를 떠받치는 평범한 사람>
입니다.
즉 함석헌은 퀘이커의 <Inner Light>를 개인의 영성에서 끝내지 않고 역사와 사회의 주체론으로 확대합니다.
그래서 함석헌에게 “씨알”은 단순한 민중도 아니고 프롤레타리아도 아닙니다. 이름 없는 사람, 밟히는 사람, 고난받는 사람이면서 그 안에서 생명과 역사가 자라나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이미 함석헌은 조지 폭스보다 훨씬 역사철학적으로 갑니다.
2. 침묵과 내면성: 매우 퀘이커적이다
함석헌에게 중요한 것은 조직이나 교리가 아니라 <속사람>입니다.
이것은 그의 무교회주의 경험에서 이미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우치무라 간조 계열의 무교회주의를 접했고, 성직자·성례전·교회조직을 절대화하지 않는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퀘이커를 만났을 때 상당한 친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 미국 퀘이커가 함석헌에게 “당신은 퀘이커가 되기 전부터 이미 퀘이커였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둘 모두 다음을 경계합니다.
- 성직자의 종교 독점
- 교리의 절대화
- 제도의 자기목적화
- 종교 권력
- 외형적 예배가 신앙 자체가 되는 것
그리고 둘 다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의 내면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
는 쪽에 서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함석헌은 매우 퀘이커적입니다.
3. 그러나 함석헌에게는 <고난의 역사철학>이 있다
여기가 가장 중요한 차이입니다.
전통적인 퀘이커리즘에는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역사철학이 없습니다.
함석헌은 한국사를 단순한 왕조사나 민족 영광의 역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한국사는 오히려
<고난의 역사>
였습니다.
그런데 그 고난을 단순한 실패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 어떤 <뜻>이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성서의 예언자적 역사관, 기독교적 섭리관, 헤겔적 역사관, 민족적 경험 등이 섞여 있는 독특한 사유입니다.
그래서 함석헌에게 역사는
<하나님 → 개인>
이라는 수직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하나님 → 역사 → 고난 → 씨알 → 새로운 인간>
이라는 과정이 됩니다.
퀘이커리즘보다 훨씬 거대한 역사철학입니다.
4. 퀘이커의 평등주의가 함석헌에게서는 <씨알 민주주의>가 된다
퀘이커 전통에는 매우 강한 평등주의가 있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본질적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남녀의 영적 평등을 일찍부터 주장했으며, 노예제 폐지와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 논리는 단순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빛이 있다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본질적으로 우월할 수 없다.>
함석헌은 이 원리를 정치적으로 극단까지 밀고 갑니다.
왕도,
대통령도,
장군도,
목사도,
지식인도
씨알보다 위에 있지 않습니다.
국가도 씨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따라서 함석헌의 민주주의는 제도적 민주주의보다 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안의 주체성을 깨닫는 것>
이 민주주의의 시작입니다.
이것을 저는 <퀘이커 평등주의의 한국적 정치철학화>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5. 비폭력에서는 매우 가깝지만 함석헌에게 간디가 하나 더 들어간다
퀘이커의 평화증언(Peace Testimony)은 함석헌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한국 퀘이커사 연구에서도 1960년대 이후 함석헌의 퀘이커 수용과 민주화·인권 활동을 밀접한 관계로 봅니다.
그러나 함석헌의 비폭력은 퀘이커 평화주의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간디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함석헌의 비폭력은
<전쟁하지 않는다>
정도가 아니라
<폭력적인 권력에 비폭력으로 저항한다>
는 적극적 정치 행동이 됩니다.
한 연구가 함석헌의 평화사상을 “폭력을 대치하고 저항하는 힘으로서의 비폭력”이라고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퀘이커:
평화증언 → 전쟁과 폭력 거부
간디:
사티아그라하 → 비폭력 저항
함석헌:
씨알 → 비폭력 민중저항
으로 발전합니다.
6. 함석헌은 퀘이커보다 훨씬 동양적이다
이 점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함석헌은 기독교인이었지만 노자·장자와 동양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연구자들도 그의 노장 이해가 국가주의·제국주의에 맞서는 비폭력 평화주의와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함석헌의 사유에는
<억지로 하지 않음>
<작은 것>
<낮아짐>
<비움>
<생명>
<스스로 그러함>
같은 노장적 감각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함석헌의 하나님은 서양의 군주적 하나님 이미지에서 상당히 멀어집니다.
여기에 노자·장자, 불교, 동학까지 읽어낼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반면 고전적 퀘이커리즘은 아무리 자유롭다 해도 기본 어휘는
God
Christ
Spirit
Light
Grace
등 성서적·기독교적입니다.
현대 자유주의 퀘이커에서는 훨씬 다원화되었지만 역사적 기원은 분명합니다.
7. 종교다원주의에서도 함석헌은 상당히 멀리 나간다
함석헌 후기 사상에서는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라는 식의 주장은 거의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는 여러 종교를 인간이 궁극적 진리를 찾아가는 다양한 길로 보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퀘이커 자료에서도 함석헌을 종교다원주의적 사상가로 소개합니다.
이 점은 현대 자유주의 퀘이커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러나 초기 퀘이커의 조지 폭스나 로버트 바클레이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다릅니다.
그들에게 <Inner Light>는 막연한 우주적 영성이 아니라 상당히 분명하게 <Christ the Light>였습니다.
따라서
17세기 퀘이커
→ 기독교 신비주의적
20세기 함석헌
→ 기독교를 중심으로 출발하지만 종교보편주의로 확장
현대 자유주의 퀘이커
→ 종교다원주의까지 포용
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8. 가장 큰 차이는 <씨알>이라고 생각합니다
표로 압축하면 훨씬 명확합니다.
| 주제 | 퀘이커 | 함석헌 |
|---|---|---|
| 인간 | 모든 사람 안의 하나님의 빛 | 씨알 |
| 하나님 경험 | Inner Light | 속사람·생명·뜻 |
| 종교 | 직접적 신앙 체험 | 직접적 체험 + 종교보편주의 |
| 예배 | 침묵과 기다림 | 침묵·명상·사유 |
| 성직자 | 원칙적으로 불필요 | 종교 엘리트주의 비판 |
| 평등 | 모든 사람 안의 빛 | 씨알의 존엄 |
| 평화 | Peace Testimony | 비폭력 저항 |
| 정치 | 양심적 사회참여 | 씨알 민주주의 |
| 역사 | 특별한 통일적 역사철학은 약함 | 고난을 통한 뜻의 역사 |
| 국가 | 국가권력에 대한 양심적 비판 | 강한 국가주의 비판 |
| 동양사상 | 본래는 거의 없음 | 노장·불교·동양철학과 통합 |
| 민중 | 보편적 개인 | 역사 주체로서의 씨알 |
여기서 결정적인 차이가 보입니다.
<퀘이커의 중심은 Light이고, 함석헌의 중심은 씨알입니다.>
9. 그래서 함석헌을 단순히 “한국의 퀘이커 사상가”라고 하면 절반밖에 설명되지 않습니다
함석헌의 사상적 계보를 시간순으로 보면 오히려 이렇게 됩니다.
<장로교적 기독교>
↓
<우치무라 간조·무교회주의>
↓
<성서적 역사관>
↓
<간디>
↓
<퀘이커>
↓
<노자·장자 등 동양사상>
↓
<씨알사상>
↓
<비폭력 민주주의와 세계주의>
따라서 퀘이커는 함석헌에게 “출발점”이라기보다 <그가 이미 찾아가고 있던 길을 확인해 준 전통>에 가깝습니다.
1950년대에 퀘이커를 본격적으로 만나기 훨씬 전부터 무교회주의, 평화주의, 직접적 신앙, 제도교회 비판 같은 요소가 이미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미 퀘이커였다”는 말은 꽤 정확합니다.
10. 동시에 함석헌은 퀘이커를 한국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것이 더 흥미로운 결론입니다.
서양 퀘이커의
<Inner Light>가 함석헌에게 오면서
<씨알>
이 되고,
퀘이커의
<Equality>가
<씨알 민주주의>
가 되고,
퀘이커의
<Peace Testimony>가
<독재에 대한 비폭력 저항>
이 되고,
퀘이커의
<직접적인 하나님 경험>
이
<뜻·생명·역사의 영성>
으로 확장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간디의 사티아그라하,
노장의 무위,
동양적 생명관,
한국인의 고난의 역사
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함석헌 사상>을 굳이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함석헌 사상은 퀘이커적 내면의 빛을 ‘씨알’이라는 역사적 인간론으로 바꾸고, 그것을 비폭력·민주주의·동양적 생명사상·고난의 역사철학으로 확장한 한국적 보편주의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함석헌에게는 퀘이커 전통보다 훨씬 강한 <문명비판>과 <역사 전체에 대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는 개인의 영성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국가주의, 민족주의, 전쟁, 독재, 기계문명과 집단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문명>을 생각했습니다.
이 때문에 함석헌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오히려
<조지 폭스 → 톨스토이 → 간디 → 함석헌 → 동학·장일순>
이라는 계보와,
<우치무라 간조 → 김교신 → 함석헌>
이라는 계보를 동시에 놓고 보는 것이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동학과 퀘이커> 문제까지 연결하면, <퀘이커의 Inner Light – 동학의 侍天主/人乃天 – 함석헌의 씨알>이라는 세 개념을 비교하는 것이 다음 단계가 될 것 같습니다. 세 사상이 놀랄 만큼 가까우면서도, <신·인간·민중·역사를 연결하는 방식>에서는 꽤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함석헌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씨알 사상과 평화주의는 퀘이커교(종교성공회/Friend)의 신학 및 철학과 깊은 저수지를 공유하면서도,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 속에서 독자적인 한국적 개신교/민중 사상으로 단련되었다. 두 사상 사이의 주요 접점과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1. 영적 신념과 인간관: <내면의 빛>과 <씨알>
퀘이커 사상의 핵심은 모든 사람 안에 <내면의 빛(Inner Light)> 또는 <하느님의 씨앗(That of God in everyone)>이 존재한다는 신념이다. 이는 제도적 교권이나 성경 규범보다 개개인의 영적 경험과 직관을 우선시하는 영성으로 나타난다.
함석헌은 이 퀘이커의 영성을 받아들여 <씨알 사상>으로 발전시켰다. 씨알이란 '민중'을 뜻하는 우리말 표기이자, '하느님의 생명 씨앗을 품은 존재'를 의미한다. 퀘이커의 내면의 빛 개념을 한국의 역사적·민중적 맥락으로 옮겨와, 역사의 주체이자 영적 주체로서의 '씨알(민중)'을 재발견한 것이다.
2. 평화주의와 비폭력: 영적 평화에서 역사적 행동으로
퀘이커교는 대표적인 '역사적 평화교회(Historical Peace Churches)' 중 하나로, 모든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평화 증언(Peace Testimony)>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함석헌 역시 퀘이커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평화주의는 단순히 종교적 계율이나 교리에 머물지 않고,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독재정권이라는 <한국 사회의 극심한 수난 역사>에 직접 맞서는 사회 운동 및 인권 운동의 언어로 확장되었다. 그는 수난을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씨알이 깨어나고 역사가 거듭나는 영적·사상적 계기로 바라보았다.
3. 종교관: 제도 종교 탈피와 초월적 개방성
퀘이커교는 성찬식이나 세례식 같은 정형화된 의식을 치르지 않으며, 목사나 신부 같은 사제 계급을 두지 않는 <무교회주의적 성격>을 띤다. 예배(Meeting for Worship) 또한 인위적 형식 없이 침묵 속에서 내면의 빛을 기다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함석헌은 우치무라 간조의 '무교회주의'를 거쳐 퀘이커를 접하면서, 제도화된 교회의 독선과 교권주의를 엄격히 비판했다. 더 나아가 그는 퀘이커의 개방성을 진리 탐구의 영역으로 더욱 확장하여, 노장 사상, 불교, 동양 고전의 지혜를 개신교 영성과 적극적으로 융합하는 <다원주의적·열린 영성>을 구축했다.
주요 비교 요약
주요 비교 요약
| 구분 | 퀘이커 사상 | 함석헌 사상 |
| 핵심 개념 | 내면의 빛 (Inner Light) | 씨알 (생명과 역사의 주체) |
| 평화주의 | 신앙 고백적 비폭력 및 평화 증언 | 수난의 역사 현장에서 펼친 비폭력 민주·인권 운동 |
| 진리 탐구 | 개인의 영적 직관과 침묵의 모임 중시 | 동서양 사상(노장, 불교 등)을 아우르는 융합적 진리관 |
| 역사 의식 | 보편적 인도주의와 사회 봉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수난을 통한 영적·역사적 구원론 |
결론적으로 함석헌 사상은 퀘이커교가 가진 <내면성, 비폭력, 영적 자율성>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이를 20세기 한국이 겪은 수난의 역사와 결합하여 <동서양을 아우르는 독창적인 민중 실천 철학>으로 승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함석헌의 <씨알사상>과 동학을 비교하면, 앞에서 본 <함석헌과 퀘이커>보다 오히려 더 가까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사람 속의 신성>, <평등>,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생각>, <생명>, <비폭력적 문명전환>에서 두 사상은 상당히 깊게 만납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습니다. 동학은 <한울님을 모신 인간>에서 출발하는 종교운동이고, 함석헌은 <스스로 생각하고 역사를 책임지는 씨알>을 중심으로 하는 역사철학에 더 가깝습니다.
저는 핵심 관계를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동학의 시천주가 “사람 안에 하늘이 있다”고 말한다면, 함석헌의 씨알은 “그 하늘을 품은 평범한 사람이 역사를 만들어간다”고 말한다.>
1. 가장 가까운 지점: <시천주>와 <씨알>
동학의 가장 근본적인 명제는 최제우의 <시천주 侍天主>, 곧 <한울님을 모신다>입니다. 인간은 외부의 멀리 있는 신을 찾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신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근원적 존엄성이 있습니다.
최시형은 이것을 더욱 사회적으로 밀고 나갑니다.
<사인여천 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
그리고 후대 천도교에서는 이것이
<인내천 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으로 표현됩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말하면 <인내천>이라는 문구 자체는 최제우의 원문이 아니라 손병희 시대에 정식 교리로 확립된 표현입니다.
함석헌의 <씨알>도 이와 상당히 비슷합니다.
씨알은 단순히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계급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그 안에 생명과 정신과 역사를 만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는 인간론입니다. 연구에서도 함석헌의 씨알을 민중 개개인의 자율성과 잠재적 역량을 긍정하고, 그들을 역사의 주체로 세우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시천주 → 사람 안의 하늘>
과
<씨알 → 사람 안의 생명과 역사적 가능성>
은 상당히 가깝습니다.
2. 그러나 <씨알 = 인내천>이라고 해버리면 차이가 사라집니다
둘의 방향이 조금 다릅니다.
동학은 먼저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를 묻습니다.
답은
<한울님을 모신 존재다>
입니다.
함석헌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런 인간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를 묻습니다.
그 답이 <씨알>입니다.
따라서 강조점의 차이를 아주 간단히 말하면,
동학:
<존재론적 존엄성>
함석헌:
<역사적 주체성>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동학에도 강력한 사회변혁 사상이 있었고, 함석헌에게도 인간의 내적 신성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심축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3. <사인여천>과 씨알 민주주의
여기서 두 사상은 정치적으로 아주 가까워집니다.
최시형의 <사인여천>은 엄청난 급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을 하늘처럼 대하라.”
19세기 신분제 조선사회에서 이 말은 단순한 도덕적 친절이 아닙니다.
양반과 상민,
남자와 여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위계질서 자체를 흔드는 명제였습니다.
동학이 만인의 평등을 강조하면서 한국 근대사회로의 이행에서 선구적인 의미를 가졌다고 평가되는 이유입니다.
함석헌의 씨알론도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갑니다.
함석헌에게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은 왕도 아니고 장군도 아니고 대통령도 아닙니다.
<씨알>입니다.
따라서 국가와 정부가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씨알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동학의
<사인여천>
은
함석헌에게서
<씨알 민주주의>
와 상당히 가까워집니다.
4. 그런데 함석헌은 <민중>보다 <개인>을 더 놓치지 않습니다
여기에 흥미로운 차이가 있습니다.
동학은 매우 강한 공동체 종교였습니다.
포덕하고,
접(接)을 만들고,
공동체를 조직하고,
함께 주문을 외우고,
수련하고,
농민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실제로 동학은 각 지역에 접소와 접주를 둔 상당히 강력한 조직을 발전시켰습니다.
반면 함석헌은 조직된 민중을 말하면서도 항상
<생각하는 개인>
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 유명한 표현,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가 바로 그것입니다.
함석헌에게 씨알은 집단 속에서 사라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스스로 생각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한 사람>
입니다.
이것은 퀘이커의 개인적 양심과 무교회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들어간 부분입니다.
그래서
동학은 조금 더
<공동체적 민중>
이고,
함석헌은
<개별적 씨알들의 공동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동학의 <개벽>과 함석헌의 <역사>
여기서는 두 사상이 아주 흥미롭게 교차합니다.
동학에는 <후천개벽>이라는 강력한 개념이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과 같은 질서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동학은 현실을 단순히 참고 견디라고 하지 않습니다.
<보국안민>
<광제창생>
<후천개벽>
이라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역시 동학의 현실개혁 의지가 후천개벽과 보국안민을 통해 표현되었고 결국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함석헌에게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 <역사>입니다.
함석헌은 역사를 고정된 운명으로 보지 않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뜻>
이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보면 상당히 비슷합니다.
동학:
<낡은 세상 → 개벽 → 새로운 세상>
함석헌:
<고난의 역사 → 씨알의 각성 → 새로운 역사>
입니다.
6. 그런데 동학의 <개벽>과 함석헌의 <뜻>은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동학의 개벽에는 우주론적 성격이 강합니다.
세계의 질서 자체가 변합니다.
하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새롭게 됩니다.
함석헌의 <뜻>은 좀 더 역사철학적입니다.
그는 사건을 해석합니다.
왜 한국민족이 이렇게 고난을 받았는가?
그 고난에서 무엇이 탄생하는가?
역사가 어디로 가는가?
따라서,
<동학은 우주론적 변혁>
에 더 가깝고
<함석헌은 역사철학적 변혁>
에 더 가깝습니다.
7. 생명사상에서는 동학이 오히려 함석헌보다 더 급진적입니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시형은 인간만 존중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삼경 三敬>은
<경천 敬天>
<경인 敬人>
<경물 敬物>
입니다.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공경하며,
<사물까지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최시형에게 우주는 하나의 생명적 관계망입니다. 그는 <이천식천 以天食天>, 즉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독특한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생명의 상호의존성과 순환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언어로 바꾸면 상당히 생태학적인 세계관입니다.
함석헌에게도 생명사상은 중요하지만 씨알론의 중심에는 아무래도 <인간과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생태철학이라는 관점만 놓고 보면
<최시형 → 장일순 → 김지하>
로 이어지는 계보가 함석헌보다 더욱 직접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8. 그래서 장일순이 두 사상의 중간다리처럼 보입니다
이전에 살펴보신 무위당 장일순을 여기에 놓으면 매우 재미있습니다.
대략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최제우>
시천주
↓
<최시형>
사인여천·이천식천·경물
↓
<장일순>
생명·무위·밥·농업·협동
이라는 동학적 흐름이 있습니다.
한편 다른 쪽에는
<유영모>
씨알
↓
<함석헌>
씨알·역사·비폭력·민주주의
라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장일순에게서 이 둘이 상당히 만납니다.
9. 국가를 보는 눈에도 상당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동학은 처음부터 국가 자체를 부정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보국안민 輔國安民>
즉
<나라를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
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운동이 전개되면서 부패한 관료제와 신분질서에 대한 저항으로 발전합니다.
함석헌은 이보다 훨씬 더 명시적인 국가주의 비판자가 됩니다.
함석헌에게
국가,
민족,
당,
교회
모두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씨알보다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 사상을 비교하면
동학:
<좋은 나라를 만들어 백성을 살린다>
에서 출발하지만
함석헌:
<국가 자체도 씨알의 양심 아래 있어야 한다>
까지 갑니다.
함석헌에게 퀘이커의 반국가주의적·평화주의적 요소가 들어간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10. 민족주의에서도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동학은 조선 후기의 위기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
서학의 확산,
국가 질서의 붕괴,
농민의 빈곤
속에서
<동학 東學>
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느 정도
<서학 西學>
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동학에는 강한 민족적·토착적 성격이 있습니다.
함석헌도 처음에는 한국민족의 역사와 고난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민족주의를 넘어섭니다.
<씨알>은 한국인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이 씨알입니다.
그래서 함석헌의 후기 사상은 상당히 세계시민주의적입니다.
즉,
동학:
<한국에서 시작하여 보편으로>
함석헌:
<한국의 고난을 통해 인류 보편으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방향은 비슷하지만 함석헌의 탈민족주의가 더 분명합니다.
11. 종교를 바라보는 방식도 다릅니다
동학은 분명히 <종교>입니다.
창시자가 있고,
종교체험이 있고,
주문이 있고,
수련이 있고,
교리가 있고,
공동체가 있습니다.
최제우는 1860년 종교체험을 통해 한울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이해했고, 이를 토대로 동학을 창도했습니다.
함석헌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갑니다.
그는 기독교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종교를 넘어서는 종교>
를 추구합니다.
교회도,
교단도,
교리도
절대화하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함석헌은 오히려 퀘이커와 무교회주의에 더 가깝습니다.
12. 결정적으로 다른 점: 동학에는 <수련>이 있습니다
이 차이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학은 사상이면서 동시에 수행체계입니다.
시천주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문,
성·경·신,
수심정기,
양천주
등을 통해
<내 안의 한울을 실제로 살아내는 인간>
이 되어야 합니다.
최시형의 <양천주 養天主>는 이미 몸 안에 모신 한울님을 끊임없이 길러야 한다는 뜻입니다.
함석헌에게도 자기수련과 내면적 성찰이 중요하지만 동학처럼 체계적인 수행법이 형성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핵심은
<생각>
<양심>
<침묵>
<역사적 실천>
입니다.
따라서
동학은
<수행하는 종교>
이고,
함석헌 사상은
<성찰하고 행동하는 철학적 영성>
에 더 가깝습니다.
13. 표로 놓으면 전체가 선명해집니다
| 주제 | 동학 | 함석헌 |
|---|---|---|
| 인간의 본질 | 한울님을 모신 존재 | 씨알 |
| 핵심 개념 | 시천주 | 씨알 |
| 인간 존엄 | 사인여천·인내천 | 씨알의 존엄 |
| 주체 | 민중·동학 공동체 | 생각하는 씨알 |
| 초월자 | 한울님·지기 | 하나님·뜻·생명 |
| 역사 변화 | 후천개벽 | 씨알을 통한 역사변혁 |
| 윤리 | 성·경·신 | 양심·사랑·비폭력 |
| 수행 | 주문·수심정기·양천주 | 침묵·생각·자기성찰 |
| 공동체 | 포덕·접 조직 | 느슨한 씨알 공동체 |
| 정치 | 보국안민·반봉건적 개혁 | 민주주의·반독재 |
| 평화 | 생명존중이 강함 | 명시적 비폭력주의 |
| 자연 | 경물·이천식천 | 생명사상 |
| 민족 | 민족종교적 성격 강함 | 후기에는 탈민족·세계주의 |
| 종교 | 새로운 종교 창시 | 제도종교 초월 |
| 궁극적 변화 | 개벽 | 인간·역사·문명의 혁명 |
14. 그런데 더 깊이 보면 <씨알>은 동학과 퀘이커의 중간에 있습니다
앞의 질문과 연결하면 재미있는 삼각형이 생깁니다.
퀘이커
<Inner Light>모든 사람 안에 하나님의 빛이 있다.
↓
동학
<侍天主>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
↓
함석헌
<씨알>
그 신성한 한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고 역사의 주체가 된다.
세 사상 모두
<신성은 성직자·왕·엘리트가 독점할 수 없다>
고 말합니다.
이것이 놀라운 공통점입니다.
그러나 강조점이 다릅니다.
<퀘이커 = 양심>
<동학 = 모심>
<함석헌 = 씨알>
이라고 압축할 수 있습니다.
15. 제가 보기에는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이것입니다
동학의 핵심 동사는
<모신다>
입니다.
하늘을 내 안에 모시고,
사람을 하늘처럼 모시고,
자연과 만물을 공경합니다.
반면 함석헌 사상의 핵심 동사는
<생각한다>
에 가깝습니다.
씨알은 깨어나야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권력에 휩쓸리지 않고,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서 매우 압축하면,
<동학의 인간은 ‘하늘을 모시는 사람’이고, 함석헌의 인간은 ‘하늘을 품고 스스로 생각하는 씨알’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제가 보기에는 함석헌 사상의 독특한 위치가 나타납니다.
<퀘이커의 Inner Light>
+
<동학의 시천주>
+
<무교회주의의 자유로운 신앙>
+
<간디의 비폭력>
+
<노장의 무위와 생명>
+
<한국의 고난의 역사>
가 함석헌의 <씨알> 안에서 묘하게 만납니다.
다만 <함석헌이 동학에서 직접 씨알사상을 가져왔다>고 단순화해서는 곤란합니다. 연구에서는 씨알 개념의 직접적인 사상적 계보를 류영모에서 함석헌으로 보는 설명이 강하며, 씨알사상 자체가 노자를 비롯한 동양적 자연·생명사상과 기독교를 회통하면서 발전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씨알>과 동학의 <시천주·사인여천> 사이에는 매우 강한 구조적 친연성이 있습니다. 실제로 시천주와 씨알을 인간의 자유와 공동체적 연대라는 동일한 인간존엄의 맥락에서 연결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다음 단계로는 <퀘이커의 Inner Light — 동학의 시천주 — 함석헌의 씨알 — 장일순의 생명>을 네 축으로 비교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한국적 영성의 계보가 만들어집니다. 특히 <함석헌에서 장일순으로 갈 때 인간 중심의 씨알이 어떻게 만물·밥·농업·생태의 생명사상으로 확대되는가>가 중요한 차이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