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2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은이),김홍희 (사진)열림원1999
책소개
1998년 TV 다큐멘터리 '만행'의 주인공이자 벽안(碧眼)의 스님 현각의 구도기. 하버드 대학원생이었던 폴 뮌젠(법명: 현각)이 1989년 큰 스님 숭산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기까지의 이야기, 한국과 불교에 관한 느낌 등 젊은 수행자의 맑고도 치열한 발자욱이 새겨져 있다.
숭산스님에게 들었던 화두를 통해 큰 충격을 받고 한국을 방문하여 동안거에 들어갔던 이야기,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번뇌와 선택의 고통.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가운데서 더욱 더 정진했던 선(禪)수행과 자신의 길을 확인하는 과정이 감동스럽다.
목차
1. 숭산 숭산 숭산
2. 나의 가족
3. 가풍
4. 이상한 아이, 폴
5. 알고 싶을 뿐
6. 뒷길로 오는 가르침
7. 죽음에 대한 기억
8.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9. 예일 대학 입학
10. 독특한 룸메이트, 네드
11. 나는 미국의 386세대
12. 공부를 하는 이유
13. 행동하는 학생의 데모
14. 내가 나를 모른다
15. 데모를 그만두고 만난 키르케고르
16. 전생을 노래한 시인들
17. 외우다시피 한 쇼펜하우어
18. 고뇌의 밤들
19. 흑인 거지, 관세음보살을 만나다
20. 참선센터는 진리의 문인가
21. 하버드 신학대학원 입학
22. 하버드의 인기 강좌
23. 케임브리지 젠센터
24. 미국식 참선수행
25. 동안 인터뷰, 공안수행
26. 나의 마지막 스승
27. 하버드란 동굴
28. 한국에 대한 기억
29. 김치 한입 베어물고
30. 부처님 머리에 담뱃재를 털고
31. 드디어 서울로
32. 꿈의 화계사
33. 신원사 동안거
34. 오케이, 원더풀 인터뷰
35. 벽암 큰스님
36. 아! 스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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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9 모든 사람들의 겉의 직업은 달라도 내면의 직업은 하나입니다.
바로 우리의 본성을 찾아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 나무마차
저자 및 역자소개
현각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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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교를 나와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 숭산 스님(1927~2004)을 만나 출가했다. 출가 이후 한국 선원에서 30여 차례에 걸쳐 안거했으며, 한국 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화계사 국제선원장을 지내고, 2009년 독일 뮌헨에 불이선원(不二禪院)을 여는 등 유럽에 한국 불교를 전파하는데 힘써오고 있다. 대표 저서로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가 있다.
최근작 : <선의 나침반>,<부처를 쏴라>,<공부하다 죽어라> … 총 13종 (모두보기)
김홍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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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철학, 국문학과 문화학 전공. 1985년 도일하여 도쿄 비주얼 아트에서 사진은 물론 뼛속까지 전업 작가로 살아남는 법을 익혔다. 2008년 일본 니콘의 ‘세계 사진가 20인’에 선정되었고, 2019년 ‘애지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비교종교학과 역사와 지리에 흥미가 많으며 뇌와 마음의 활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사진가로서 30회 가까운 개인전을 치렀고, 작가로서 《국제신문》의 ‘세상 읽기’ 칼럼을 8년, ‘Korea Now’를 1년 4개월 연재했다. 불꽃같은 삶을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KBS 〈명작 스캔들〉의 MC, EBS 〈세계테마기행〉 볼리비아, 짐바브웨, 인도네시아 편, 부산 MBC 〈포토에세이 골목〉, 채널 T 〈김홍희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10부작 등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재담과 훈훈한 인상을 시청자들에게 남기기도 했다.
저서로 『방랑』, 『나는 사진이다』, 『세기말 초상』, 『결혼시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몽골 방랑』, 『상무주 가는 길』, 『김홍희 사진 택리지 - 루트 777』, 『사진 잘 찍는 법』 등이 있고 현각 스님의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법정 스님의 『인도 기행』, 조용헌의 『방외지사』 등에 사진을 실었다. 접기
최근작 : <결혼시말서, 이미지의 해석>,<부산>,<청춘방랑> … 총 33종 (모두보기)
SNS : http://facebook.com/PGhongheeKim
현각(지은이)의 말
내가 하버드와 예일에서 공부했을 때 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교수님들로부터 배웠다. 나를 비롯한 친구들의 꿈은 그런 교수님들처럼 사는 것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니체, 하이데거 등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과 생애를 공부했다. 아예 독일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생각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일년 동안 독일어를 배우면서 쇼펜하우어를 탐독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 같은 가르침은 완전한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베리타스(Veritas)가 아니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베리타스를 하버드 대학원에서 발견했다. 그가 바로 지구의 반바퀴를 돌아서 온 한국의 숭산 큰스님이었다. 이 책은 내가 어떻게 숭산 큰스님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의 도정을 걸어왔는가 하는 이야기다.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진리를 찾아 걸어온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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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고요하고 깊은 밤, 이불을 덮고 자리에 가만히 누워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 지금 이순간 난 무엇 때문에 숨쉬고 있는가, 아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란 놈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나는 대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아...'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의문과 함께 끝없는 상념 속으로 빠져들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흘러내린 눈물이 베갯잇을 적시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난 내 자신을 질책하며 '난 남자고 어엿한 성인이다.'라며 애써 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을 부정하기에 바빴다.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또 날이 밝으면 바쁜 일상속으로 들어가며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세상일에 정신을 쏟으며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을 보게되었고 현각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매스컴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곤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근데 얼마 전,그 책 첫 장을 넘기고 2권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벅찬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다. 적막한 밤, 순수하게 나 홀로 나와 대면할 때 흘러내렸던 눈물이 어쩌면 나의 가장 솔직한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 성찰'과정 속에서 어김없이 부딪쳐야 했던 '절대자'와 '진리'라는 명제들과 그 과정 속에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던 '종교'라는 문제. 내겐 수없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얼키고 설킨 실타래와 같은 것이었다. 집안 큰집으로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사를 지내왔지만, 성경을 읽고 몇 년 간 꾸준히 교회를 나가기도 한 기독교신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근본적인 의문을 풀지 못했고, 나또한 지금 현각스님인 '폴'이 가졌었던 의문을 끝없이 던질 수 밖에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친구에게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랑 조상님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는데,그럼 그 분들은 다 지옥에 가 있겠네?'라고 했던 물음부터 지금 공부하며 공감하는 '내 것이 소중한 만큼 남 것도 소중하다'는 다원주의적 종교화해의 모습까지. 난 내가 지금까지 수없이 고민하며 가지게 된-체계는 잡히지 않았지만- 생각들을 현각스님의 글 속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쁘고 설랬는지 모른다.
우리가 최고의 명문이라고 부르는 예일과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석학이 보장된 부와 명예를 버리고, 또한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이별까지 감행하며 가야했던 진리(VERITAS)의 길. 그 진리의 길을 그 외국 스님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우리의' 선불교에서 찾았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때론 더 한국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우리네 종교생활 모습. 하루하루 서구보다 더 서구화 되기를 갈망하는 우리네 현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하는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
숭산 스님이 폴에게 던진 첫 질문인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은 날 늘 깨어있고 내 자신을 비울 수 있게끔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와 대면하며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통해 신 앞에 겸허해 지고 싶었고, 내가 찾는 하나님은 교회라는 '틀'안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수없이 날 괴롭혔던 얼키고 설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한가닥의 실을 잡은 느낌이다. 현각 스님처럼 살 순 없지만,또 세상사에 바빠 고요히 내 자신을 만나기 힘들겠지만,2004년 새해에는 겸손하고 편견없이 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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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쌤 2004-01-08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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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부처
불교계무교라는 희안한 단어까지 만들어가며 나의 무교성을 주장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불교에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작년 연등행사에 우연히 참여했던 것을 계기로 더욱 불교에 마음을 빼앗겨 아무것이라도 좋으니 불교계 서적을 읽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고른 책이 바로 이 "만행"이다. 저자가 외국인인데다 화려한 경력을 버리고 승복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흥미로웠기에 선뜻 손이 갔고, 한 번 읽다보니 푹 빠져서 단번에 읽어버렸다. 저자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해가 가면서 점차 "하나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섬기는 방식인 "기독교" 에 회의감을 느껴 기독교와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젠", 바로 불교이다. 숭산큰스님을 만나며 그는 드디어 불교가 다른 종교보다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충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불교에 귀의한다.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영화같은 그의 삶은 독자를 불교의 세계로 한 발 더 이끌어준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나는 기독교의 교리를 비롯해 기독교적 신 자체에 대해 깊은 불신감을 품고있다. 유일신 사상으로 절대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그 폐쇄성과 배타성에는 이미 신물이 났고, 신(영생)이 아니면 죽음(지옥)뿐이라는 극단성에는 질려버렸다. 인간과 신을 분리하고 그저 그것에 매달리는 기독교보다 자기 안의 신성을 믿고 그것을 키워나가며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는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것은 나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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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na 2004-06-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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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찾아서..
현각 스님
하버드 대학원 강의에서 숭산 큰스님을 만나 그분의 강의를 듣고
그토록 갈구했던 진리에 대해 10년 동안 쌓였던 체증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분이야말로 나의 스승이다 생각하고 숭산 큰스님을 따라 한국 화계사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숭산? 처음 듣는데 그분이 어떤 분이길래 그 누구도 대답 못했던 진리에 대해,
현각 스님의 막힌 체증을 풀어 주었나... 싶었다.
그 분은 유일하게 우리나라 불교를 세계로 전파하는 스님이라고 할 수 있고,
얼굴부터 어린아이의 맑은 미소, 정말 부처님의 얼굴이라고 한다.
전세계 4대 생불 중 한 분이시라고 한다.
달라이 라마, 숭산 큰스님, 베트남의 팃낫한 스님, 캄보디아의 마하 거사난다 스님.
지금 미국엔 불교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우리나라엔 어쩌면 부모님 세대들의 종교, 구식종교라고 불교가 인식되어 있다면 여러 외국에는
1950년대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신세대의 종교라고 칭할 정도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현각 스님은 종교를 개종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고 매 생활에 충실히 살아가고 계신다.
그는 다만 예수님의 진리를 찾아라는 그 말에 나를 찾고자 불교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누구보다 잘 융합하여 그렇게 한발한발 나서며 살아 가고 계시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불교가 새로운 눈으로 받아들여진다. 부처라는 것. 나를 모르는데 무얼 알겠는가..
불교란 어떤 종교일까.. 궁금증이 인다. 알면 알수록 신비한 불교..
나는 그 불교에 매력을 느낀다
곧 다가오는 석가탄신일에 가까운 절에 들러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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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우 2004-05-0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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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마라톤 (1, 2)
구 도서관에서 하는 독서마라톤에 신청을 한 뒤에 대출한 책.
2권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진리에 대해 진지한 탐색의 자세를 가진 폴이 한국 불교과 인연이 닿아 하버드 대학원 졸업 후에 '출가'라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지도 모를 선택을 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며 겪은 일들과 감상을 재미있게 들려준다. 비단 불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종교에 대해서 항상 가졌던 의문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질문을 '무조건 믿어야 한다.'로 일축해버리곤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깊은 공감을 느끼게 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지식을 가진 그가 보고 느끼고 성찰을 통해 얻은 세상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맑은 눈동자, 걱정이나 고통없는 평온한 얼굴을 볼 수 있는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 평온함의 일부를 읽는 사람에게 나누어주니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진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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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디스사운드 2010-07-11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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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매력적인 이유
참 재밌게 읽었던 책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을 만나면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이 책에서 스님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물어보곤 했다. 나 역시 그런 것들이 참으로 궁금했기때문이다. 그러나 나역시 아직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출신이면서도 불교에 매료되어 먼나라 먼땅인 이곳까지 와서 수행을 하고 있는 저자의 모습이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불교가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저자가 이곳까지 와서 불교를 수행하는지.. 이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종교를 막론하고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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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느티나무 2003-07-07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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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사랑한 현각스님
2권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한순간 깨져버리고 출가를 결심, 스님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잠깐 주지스님자격으로 미국으로 갔을 때 한국을 그리워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는 그의 안달못함이 어린아이의 졸라댐 같기도 했었다. 한국의 풍경, 김치와 된장찌개, 특히 뽕짝에 반했다는 그의 대목에서 정겨움을 느꼈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인 뽕짝을 통해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나 보다.
그리고 서양의 불교열풍을 소개하고 있었다. 불교가 서양에 빠르게 깊숙이 전파되어가고 있다해도 왠지 어색함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치 서양의술의 한계를 동양의학으로 찾고자 대체의학로써 택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낱 유행과 신드롬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아무래도 서양의 불교역사가 무척 짧기 때문일거다. 정착이 되면 나름대로 특색 있는 불교문화가 꽃 피울 것 같다. 현각스님의 이야기를 통해서 불교의 매력가 얼마나 어필될 수 있는지 알았다. 그리고 현존하는 4대 생불에 숭산 큰스님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스님의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행적또한 진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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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치타 2004-04-0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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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한국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한국의 말과 역사를 좋아했다.
미국에 오고나서 나는 내 나라 한국이 이 거대한 미국 땅에 비해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으며, 사람만 바글바글한, 특별하게 매력을 끌 것도 없는 나라다..라는 생각에 내 나라가 부끄러웠다. 나는 도대체 왜 한국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고생을 하는가? 미국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고생스럽게 영어를 배울 필요도 없고, 미국 사람으로서 미국에서 잘 먹고 잘 살 것을.
이런 했던 나의 생각을 우연히 읽게 된 이 책(흑백사진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 책의 사진이 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외국 스님이 별 볼일 없는 한국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나..어디 한 번 살펴보자 하는 심정이었다.)을 통해서 바꾸게 되었다.(아는 친구가 읽으라 몇 번 권했으나, 하버드란 말에 귓등으로 흘린 것이 몇 개월이었다. 또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똑똑하고 잘난이들의 지겨운 자기자랑..그 쯤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아, 나의 교만과 어리석은 선입견.)
한국을 부정하면서부터 느꼈던 내면의 고통(한국인이면서 그 자체를 부정하고 픈 욕구에서 발생되는)의 이유를 발견하고, 원래 좋아했던 내 나라에 대한 감정을 되새길 수 있었다. 아, 맞다. 따뜻하고 정이 많은, 약속 잘 지키고, 한 번 내뱉은 말에 책임감을 느끼는, 끈기와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나의 나라.
미국에 산 지 이제 거의 4년이 되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아무리 마이클 잭슨처럼 성형수술을 몇 번 받아 피부색을 바꾼다고 쳐도, 내 안의 한국정서, 문화, 느낌들은 벗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나라는 자체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따로 존재하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나 자체인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면 할수록 더욱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나의 나라를 인정하고, 한국인임을 인정하는 과정은 중요하다. 그것은 곧, 내 자신을 인정하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불교에 대한 관심과 스님들의 희생과 자기찾기에 대한 노력에 머리숙여 존경심을 가지게 된다.
내 나라의 깊은 정신세계와 진정한 아름다움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외국 스님에게서(내가 추앙해마지 않던 이 땅을 버리고 과감히 한국으로 가 불자가 된) 깨닫게 되어 부끄러움 마음이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이러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진정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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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 2006-09-0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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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스님께
진리를 찾아 강렬한 구도를 하시는 현각스님을 보고 진리란 자신이 찾아야 얻을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좀더 현각스님의 진리에 대한 구도가 자신만의 도를 찾는 현세의 불교 진리보다는 좀더 남을 살리고 이 전 인류를 위하는 진리를 찾고자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나 혼자 득도를 한들 그것이 과연 진리인가? 불교의 결론을 내려보기로 나는 그렇다. 나름대로 그 진리를 찾는것은 좋으나 어느것이 참 진리인가는 좀더 깊게 생각해볼 일이다
김대균 2001-11-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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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2권>은 1권에 이어 한국 선불교의 본격적인 수행 공간에 뛰어든 현각 스님이 겪은 치열한 정진과 구도(求道)의 심화 과정을 다룬 책이다. 1권이 서구적 지성주의의 한계와 출가에 이르는 내적 결단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2권은 한국의 전통 선원(禪院)에서 마주한 신체적·정신적 한계 극복, 선(禪)의 본질적 체험, 그리고 스승 숭산 대선사와의 깊은 법적(法的) 교감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도서 핵심 내용 요약>
선방에서의 극한 수행과 용맹정진 저자는 송광사, 신원사 중악단, 계룡산 고운사, 설악산 봉정암 등 전국의 유서 깊은 사찰과 토굴을 오가며 안거(安居)와 결제(結制)에 참여했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장좌불와와 참선, 영하의 강추위 속에서 묵언과 화두 참구로 이어지는 전통 선원의 일과는 서구 출신 수행자에게 가혹할 정도의 육체적 고통을 안겼다. 특히 무릎 통증, 수면 부족, 문화적 생소함 속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망상과 회의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그는 분별심과 신체적 자아에 대한 집착을 해체해 나갔다.
<오직 모를 뿐>과 화두 참구의 심화 스승 숭산 스님이 던진 <이 뭣고(What is this?)>,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는 가르침은 저자의 뼛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는 책에서 읽은 불교 철학이나 언어적 개념을 모두 비워내는 철저한 무심(無心)의 경지를 추구했다. 한국의 선지식들과 문답을 주고받고, 스승과의 독참(獨參)을 통해 자신의 좁은 견해와 아상(我相)이 깨지는 순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일상의 매 순간이 곧 깨달음의 장이자 수행처임을 체득해 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회향(廻向)과 세계 전법의 자각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저자의 관심은 개인적 해탈에 머무르지 않고, 고통받는 중생을 향한 자비와 전법(傳法)으로 확장되었다. 1990년대 후반 조계종에서 정식 승려 안수를 받고, 서양과 동양을 잇는 가교로서 불교의 지혜를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명감을 확립했다. 그는 산중에서의 깨달음이 저잣거리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보살도의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2권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비평 및 작품 분석>
<실천적 선(禪)의 생생한 현장성> 2권의 가장 큰 성취는 동양 사상의 추상적 담론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수행 체험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에 있다. 관념적인 교리 설명 대신, 차가운 방바닥에서 마주한 졸음과의 사투, 다리의 통증,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공포를 여과 없이 서술한다. 이를 통해 선불교가 안락한 사색이 아니라 자신의 온 존재를 던져 한계를 부수는 처절한 영적 투쟁임을 극명하게 입증했다.
<문화적 번역과 보편적 영성의 확인> 저자는 가톨릭적 배경과 서양 철학적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국 간화선(看話禪)을 재해석했다. 기독교의 신비주의나 서양 실존주의와 불교의 무아(無我)·공(空) 사상이 맞닿는 지점을 포착해냄으로써, 한국 불교가 특정 민족이나 지역의 전유물이 아닌 전 인류를 위한 보편적 치유의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1990년대 말 한국 사회가 자국의 정신문화를 세계적 시각에서 재평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수행자의 인간적 번민과 투명한 성찰> 완벽한 도인의 면모를 꾸며내기보다, 때로는 미국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 낯선 규율에 대한 저항감, 끝없는 자기의심에 흔들리는 모습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러한 투명성은 텍스트에 깊은 진정성을 부여하며, 독자로 하여금 깨달음이란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 부단히 자기를 비워내는 과정 자체임을 깨닫게 만든다.
<만행 2권>은 지적 호기심을 넘어 실존 전체를 걸고 진리를 탐구한 한 서양인의 치열한 내면 기록이자, 현대 문명의 혼란 속에서 본래 면목을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뛰어난 수행록이다.
현각, <만행 2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1999) — 1,000단어 요약·평론
<만행 2>는 1권과 함께 1999년 열림원에서 출간된 현각의 구도기이다. 현재 일부 서점 자료에는 2002년판이 표시되지만 초판은 1999년 11월에 나왔다. 2권은 모두 23개의 짧은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출가를 결심하다>, <‘현각’으로 다시 태어나다>, <부모님 전상서>, <나는 불교로 개종했는가>, <사랑과 자비는 하나>, <과학적이기 때문에>, <오, 숭산 큰스님>, <버릴 때 얻는 것>, <아시아적 가치> 등 제목만 보아도 1권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출가·불교·동서종교 비교>를 다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보기에는 1권보다 2권이 현각이라는 사람의 종교사상을 이해하는 데 더 중요하다. 1권이 “왜 하버드 학생이 불교에 끌렸는가?”를 보여준다면, 2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불교에서 무엇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기독교·과학·서양문명과 어떤 관계 속에서 이해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1. 하버드에서 출가로 ― 선택의 문제가 구체화된다
1권에서 폴 뮌젠은 이미 숭산을 만나 선불교에 강하게 끌린 상태였다. 그러나 2권에서는 그것이 호기심이나 지적 관심을 넘어 <삶 전체를 바꾸는 선택>으로 변한다.
하버드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하지만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부할 수 없다. 신학과 철학은 종교에 관해 수많은 말을 하지만 자신이 숭산을 만나 경험했던 “지금 이 마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이때 출가는 낭만적 탈출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 애정관계, 학력, 사회적 미래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적인 결정이다. 실제로 책에는 여자친구와 헤어지는 문제, 부모에게 자신의 출가 사실을 알리는 편지, 자신의 선택이 가족에게 주는 충격 등이 상당히 솔직하게 나온다.
이 점이 중요하다. 현각의 출가는 단순히
<서양이 싫어서 동양으로>
간 사건이 아니라
<어떤 삶을 진실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실제로 살아야 한다>
는 결론이었다.
그에게 종교는 점차 <믿는 내용>보다 <삶의 형태>가 된다.
2. ‘현각’으로 다시 태어나다
책의 전반부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당연히 폴 뮌젠이 출가하여 <현각>이라는 법명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적으로 보면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이름을 새로 받았으니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오히려 모든 정체성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인,
하버드 출신,
가톨릭 가정의 아들,
불교 승려,
한국에서 수행하는 외국인….
이 모든 것은 결국 조건에 따라 만들어진 이름이다.
따라서 현각의 구도는 <폴이라는 자아를 버리고 현각이라는 더 좋은 자아를 얻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진짜 문제는
<폴도 현각도 붙잡지 않는 마음>
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각’으로 다시 태어나다>와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은 서로 연결된다. 출가란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얻는 사건이 아니라 욕망과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이다.
3.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 ― 책의 중심 사상
<만행 2>의 핵심을 하나만 뽑으라면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삶>을 꼽겠다.
숭산의 선에서는 끊임없이
“무엇을 원하는가?”
가 문제가 된다.
돈을 원하고 명예를 원하는 것은 물론 집착이다. 그런데 깨달음을 원하는 것도 집착일 수 있다. 훌륭한 스님이 되고 싶다는 욕망조차 하나의 자아 프로젝트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이다.
현대인은 흔히 소비주의를 버리고 명상과 영성을 찾으면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가
<깨달은 사람이 되고 싶다>
로 바뀌었을 뿐이라면 욕망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선에서는 “나는 깨달음을 얻겠다”는 생각까지 놓으라고 한다.
이것이 숭산이 가르친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과 연결된다.
4. “나는 불교로 개종했는가?” ― 현각 종교관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2권에서 특히 주목할 장은 <나는 불교로 개종했는가>, <스님과 신부님>, <사랑과 자비는 하나>이다. 목차의 배열 자체가 현각이 자신의 불교 귀의를 기독교의 부정으로만 이해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불교도가 되었다고 해서 예수의 가르침을 단순히 틀린 것으로 폐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독교의 사랑(agape)
과
불교의 자비(karuṇā)
사이에는 깊은 공통성이 있다고 본다.
이것은 종교다원주의적인 태도와 상당히 가깝다.
현각에게 핵심은
“당신이 어느 종교가 옳다고 믿는가?”
보다
“당신의 삶에서 사랑과 자비가 실제로 나타나는가?”
이다.
그래서 그의 불교는 교리적 불교라기보다 <실천적 불교>이다.
이 지점은 퀘이커 전통과도 흥미롭게 만난다. 신학적 명제를 정확하게 승인하는 것보다 삶에서 진실·평화·사랑이 구현되는가를 더 중요하게 보는 종교관이기 때문이다.
5. 불교는 왜 서양에서 매력적인가
<나의 도반들>, <서양의 불교 바람>, <나는 불교로 개종했는가>에서 현각은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서양에서 불교가 확산되는 현상을 생각한다.
그가 보는 서양 현대인의 문제는 물질적 빈곤이 아니다.
오히려 풍요 속의 정신적 빈곤이다.
좋은 교육,
직업,
소비,
개인의 자유,
과학기술
을 갖추었음에도 “그래서 나는 왜 살아가는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불교는 몇 가지 특별한 매력을 가진다.
초월적 인격신을 반드시 믿으라고 하지 않는다. 교리보다 직접적인 수행을 강조한다. 자기 마음을 스스로 관찰하도록 요구한다. 과학적 사고와 반드시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명상이라는 실천 방법까지 있다.
현각 자신이 바로 이런 서양인의 전형적인 사례였던 셈이다.
6. 그러나 <불교는 과학적이다>라는 주장은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2권에는 <과학적이기 때문에>라는 장이 있다. 여기서 현각은 당시 널리 유통되던 “아인슈타인이 불교야말로 현대 과학에 부합하는 종교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후대의 독자라면 이 부분은 반드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현재 문헌 연구에서는 아인슈타인이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이며 현대 과학의 요구를 충족할 종교가 있다면 불교”라는 유명한 문장을 실제로 말했다는 확실한 출전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불교학자 Donald S. Lopez Jr.를 비롯한 연구자들도 이 문장을 아인슈타인의 확인된 발언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글에서 <cosmic religious feeling>을 말했고 불교를 그 사례 중 하나로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만행>을 지금 다시 읽을 때 중요한 수정점이다.
1990년대에는
<불교 = 과학적 종교>
라는 담론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불교와 과학이 대화할 수 있다”와 “불교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를 구별해야 한다.
불교의 무아·연기·공은 철학적·수행적 명제이지 자연과학의 실험가설과 동일하지 않다.
현각의 열정은 이해되지만 이 부분에는 당시 서구 불교 담론의 <과학주의적 낙관>이 들어 있다.
7. 숭산 ― 이 책의 실제 두 번째 주인공
<만행> 두 권의 진정한 두 번째 주인공은 숭산이다.
2권 후반의
<오, 숭산 큰스님>
<큰스님이 미국 속으로>
가 그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현각이 숭산에게 매력을 느낀 이유는 숭산이 거대한 불교철학 체계를 강의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복잡한 질문을 하면
“모른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직 그것을 하라.”
는 식으로 되돌려준다.
이것은 철학적 설명보다 수행적 전환을 요구한다.
숭산의 탁월함은 한국 선불교를 서양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대단히 간단한 언어로 번역했다는 데 있다.
<Don’t know mind>,
<Just do it>,
<Try, try, try for ten thousand years>
같은 표현들은 전통 선불교를 영어권 문화에 맞게 재구성한 일종의 현대적 선 언어였다.
바로 이것이 현각에게 결정적이었다.
8. “버릴 때 얻는 것”
<버릴 때 얻는 것>은 현각의 출가 경험 전체를 압축한다.
세속적으로 보면 그는 상당히 많은 것을 버렸다.
하버드라는 학력,
미국 엘리트 지식인의 경력,
경제적 안정,
가족이 기대했던 삶,
연애와 결혼 가능성.
그런데 현각은 바로 그 포기 속에서 자유를 얻었다고 느낀다.
불교적으로 이것은 역설이 아니다.
붙잡고 있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소유물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잃을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그러므로 “버린다”는 것은 빈곤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준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만행> 두 권 가운데 지금 읽어도 가장 설득력 있는 대목이다.
비판적 평론
그러나 <만행 2>에는 세 가지 한계가 분명하다.
첫째, <서양=물질주의·지성주의, 동양=영성·수행>이라는 이분법이 너무 쉽게 나타난다.
실제로 서양 기독교에는 사막교부, 베네딕도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십자가의 요한, 토머스 머튼 같은 깊은 관상전통이 있다. 반대로 한국불교 역시 돈·권력·교단정치·위계질서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현각 자신이 훗날 한국불교의 제도주의와 권위주의를 강하게 비판하게 된다.
둘째, 한국 문화에 대한 이상화가 있다.
<나는 한국 문화에 빚진 사람>, <나의 전생 이야기>, <아시아적 가치> 등에는 당시 현각이 한국과 동양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나타난다. 처음 한국을 찾았을 때 낯설지 않았다는 감정을 전생과 연결하기도 한다.
이것은 개인의 종교적 체험으로서는 존중할 수 있지만 역사적·사회학적 설명은 아니다.
셋째, 숭산이라는 카리스마적 스승에게 너무 많은 무게가 실려 있다.
스승과 제자의 강렬한 관계는 수행을 촉진할 수 있지만 종교사회학적으로는 언제나
<스승의 권위와 제자의 자율성>
이라는 문제를 남긴다.
<만행>은 이 부분을 거의 비판하지 않는다.
1권과 2권을 함께 읽으면
두 권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권 | 2권 |
|---|---|
|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
| 지적 방황 | 삶의 결단 |
| 서양철학·하버드 | 출가·수행 |
| 숭산과의 만남 | 숭산을 스승으로 받아들임 |
| 불교의 발견 | 불교적 삶의 해석 |
| 질문 | 선택 |
| 구도자 폴 | 수행자 현각 |
따라서 <만행 1·2> 전체의 구조는
<지식 → 의문 → 스승 → 수행 → 출가 → 놓아버림>
이라고 할 수 있다.
종합평가
<만행 2>는 불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책은 아니다. 오히려 <한 현대 서구 지식인이 어떻게 종교적 인간으로 변해 가는가>를 보여주는 영적 자서전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버드 출신 미국인이 한국 스님이 되었다”는 당시 한국 언론이 좋아했던 이야기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많이 아는 것과 깊이 사는 것은 같은가?>
현각이 내놓는 대답은 분명하다.
아니다.
종교를 연구하는 것과 종교적으로 사는 것은 다르고,
자비를 이해하는 것과 자비롭게 사는 것은 다르며,
무아를 설명하는 것과 자아를 내려놓는 것은 다르다.
그래서 <만행 2>의 가장 좋은 부분은 불교를 찬양하는 대목보다 <종교는 결국 삶으로 검증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현각의 훗날 한국불교 비판도 <만행>과 단절이라기보다 오히려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처음부터 종교제도 자체보다 <살아 있는 수행>을 원했다. 하버드의 신학이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떠났듯이, 한국불교 제도가 수행을 가로막는다고 느꼈을 때 다시 그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각의 전체 여정은 단순한
<가톨릭 → 불교 개종>
이 아니다.
오히려
<제도종교 → 질문 → 수행 → 또 다른 제도 → 다시 질문>
이라는 반복적 구도의 과정이다.
그렇게 읽으면 <만행 1·2>는 1990년대의 유행했던 ‘벽안의 스님’ 이야기를 넘어선다. 이것은 현대 후기산업사회에서 종교를 떠난 사람이 다시 영성을 찾고, 동양종교를 발견하며, 마침내 <어떤 종교를 믿느냐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묻게 되는 하나의 흥미로운 현대 종교사적 사례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저는 <만행> 다음에는 현각 개인을 더 읽기보다 <현각–숭산–토머스 머튼>을 비교해 보는 것이 흥미롭다고 봅니다. 세 사람을 놓으면 <선 수행, 기독교 관상, 종교다원주의>가 어디에서 만나고 어디에서 갈라지는지가 아주 선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