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주요섭.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주요섭. Show all posts

2023/04/30

2023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전개 주요섭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전개

-‘생명운동가’ 김지하를 기리며



주요섭(생명운동가)



1. 다시, 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2. [1980년대]생명사상의 구성 생명운동의 태동 

1)로터스상 수상 연설과 원주보고서

2)생명사상의 구성과 정립: :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3)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


3. [1990년대]생명운동의 양 날개 

1)개벽과 생명운동

2)생명정치운동의 실험

3)생명문화운동의 전개


4. [2000년대]생명운동의 차원변화

1)생명과 평화의 길 

2)세계생명문화포럼과 생명사상·생명운동의 전지구적 확장

3)촛불과 화엄개벽의 꿈


5. 생태파국시대의 생명운동과 흰 그늘의 길




1. 다시, 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새삼스러울 수도 있다. 김지하(1941-2022)의 생애 후반 40년은 의문의 여지없이 심원한 생명시인이자 생명사상가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오늘날 김지하의 감각과 사유는 한국  생명운동 , 나아가 한국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다면, 왜 다시, ‘김지하와 생명운동’인가? 왜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관계를 다시 질문하려 하는가? 오늘의 초점은 ‘생명운동가’ 김지하이다. 김지하는 분명 시인이었고 생명사상가였지만, 또한 김지하는 ‘생명운동가’였다. 스스로 그것을 자임했거니와 그의 폭넓은 활동은 생명운동가라는 말에 부족함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말이다. 김지하는 이미 “감옥 안에서 생명운동을 결심했다”고 말하고 있다(『흰 그늘의 길3』). 그의 생명사상은 생명운동의 실천과정에서 더욱 깊고 넓어졌으며, 또한 섬세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부가 필화(筆禍)나 설화(舌禍)로 격발되기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지하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을 때에도 생명사상을 품고 있었고, 생명운동의 감각으로 행동했다. 예컨대, 그는 1975년 양심선언에서 “동학의 속삭임”을 언급했고, 1976년 최후진술에서 “시천주/양천주/체천주” 등 동학의 언어를 빌어 그의 민주화운동이 ‘천주(天主)운동’이었음을 밝힌다.

  이 글의 목적은 ‘생명운동가’로서의 김지하를 조명하는 것이다. 시인이나 사상가로 설명할 수 없는 ‘생명운동가’ 김지하의 면모를 관찰한다. 한국 생명운동 40년 역사에서 김지하는 간과되었다. 감옥에서의 극적인 생명체험 끝 생명사상을 태동시킨 것은 물론 인정되고 있지만, 대체로는 1991년 ‘죽음의 굿판’으로 기억되고, 여성 대통령 지지자로 언급된다. 김지하에게서 열정적이고 치밀한 사회운동가를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그는 ‘이변비중(離邊非中)의 차원변화’ 와 ‘초월적 돌파’ 를 위해 용맹정진한 ‘생명운동의 전사’였는지도 모른다. 환경부 직원들 앞에서 ‘생명운동’을 ‘환경운동’과 구별했고, 서유럽의 근본 생태주의운동과도 다르다며 각을 세웠다.  


“나는 환경운동과도 다르고, 근본 생태주의운동과도 또 다른, 생명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글에서는 김지하의 생명사상이 처음으로 문자화된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으로부터 시작해 생명운동가로서 절정의 활동력을 보여준 2000년대까지 생명운동 및 사회적 활동 연대기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이 작업을 통해 한국 생명운동사에서 ‘생명운동가’ 김지하가 재조명되고, 나아가 한국 생명운동의 잠재력이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단, 이번 작업은 ‘김지하와 한국 생명운동’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보는 시론적인 작업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활동과정과 활동내용에 관한 연구는 향후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다. 특히 이글에서 ‘율려학회’와 ‘세계생명문화포럼’ 등 김지하의 생명문화운동 부분은 스케치 머물고 있음을 밝힌다.


2. [1980년대]생명사상의 구성 생명운동의 태동


생명운동은 물론 사회운동으로서 ‘집합적 행동’이고 사회적 소통의 형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한국 생명운동의 태동에는 가톨릭과 원주라는 종교적·지역적 배경이 엄존했다. 그러나, 그것을 담론으로 구성하고 서사를 창조해낸 것은 분명 김지하라는 ‘인물’ 이었다. 1980년대 한국 생명운동의 태동기, 김지하는 고유의 생명사상을 주창·구성·정립하고, 생명운동의 근거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1)로터스상 수상 연설문과 원주보고서


”나의 생명운동 제안은 사실상 그날의 원주 가톨릭센터 이층 수상식장에서였다. 명시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그 내적 흐름은 그러했다.“(『흰그늘의 길3』, 41)


김지하는 광주학살의 ”비참과 죽음의 공포“가 사람들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1980년 12월 석방됐다. 6년여만이었다. 그리고, 1년 후 1981년 12월 김지하는 로터스상 수상 연설을 통해 ‘생명의 세계관’을 제안한다. 이 상은 1975년 김지하의 감옥 시절에 이미 수상이 결정된, 아시아·아프리카 작가회의 수여하는 문학상이었다. 김지하의 고백에서 보았듯이, 이 연설문 안에 생명사상의 핵심이 다 들어있었다. ‘생명의 세계관’과 ‘생명의 존재양식’이 명시되고, 생명의 존재양식, 즉 생존양식은 ‘공동체’적이면서도 ‘영성’적이라는 점이 적시된다. 그리고, 후천개벽과 음(陰)개벽을 천명한다.  


“우리는 이 비참과 죽음의 암흑 한복판에서 그 암흑이 지닌 양면성(兩面性), 암흑의 의미, 그 모순의 신비를 발견함으로써 비참과 죽음의 암흑 그 자체를 그대로 뒤집어 유럽인과 모든 형태의 민중의 적(敵)마저도 포함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에 찬란한 부활을 가져다 줄 세계사적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역사적 책임을 걸머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존엄한 생명의 존중과 사랑’이라는 보편 진리를 생활적으로 구체화시키고 새롭고도 폭 넓은 세계관을 창출해내야 하며 영성적(靈性的)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새로운 생존양식을 창조해내야 합니다. 인간과 자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에 결정적인 친교와 평화를 성취시킬 생명의 세계관, 생명의 존재양식을 출현시켜야 합니다.”(강조는 필자)


이뿐만이 아니다. 놀랍게도 김지하의 ‘개벽사상’과 ‘전환담론’이 이미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에는 내장되어 있었다. 나아가 강증산의 ‘음개벽’을 빌어, 여성의 시대를 선포한다. 


“현대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시대이며 음개벽(陰開闢)의 때입니다. 이제까지의 인류문명사는 선천(先天)시대였고 음과 양이 갈등하는 시대, 즉 양이 지배하는 시대였습니다. (중략)  이 전환이 곧 부활이요, 이 전환이 곧 단(斷)이며, 이 전환이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 민중을 포함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전체 민중이 수행해야 할 세계사적 책임의 내용입니다. 이 대전환은 무엇보다도 먼저 정신개벽, 즉 문화적 대변혁을 전제로 합니다. 전환과 변혁의 주체는 물론 민중입니다.  (중략)  오늘날 후천개벽의 시대에는 음과 양이 조화하는 시대, 즉 음이 지배하기 시작하는 시대입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대동을 이루는 것, 즉 '여성적인 것'이 그 지배를 넓혀가는 역사이며 새로운 형태의 모권(母權)이 중심으로 되어가는 문화의 때요, 해원과 상생의 때입니다.“(강조는 필자)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봄, 드디어 ‘생명운동’이라는 말이 적시된 문서가 발표된다.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이하 ‘원주보고서’)이란 문서가 그것이다. 이 문서는 ‘생명운동에 관한 원주보고서’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1970년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으며 지역협동운동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던 원주의 사회운동가들이 이 문서를 통해 사회운동의 방향전환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원주보고서」는 개요, 본문, 각론의 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개요’가 1985년 출간된 『남녘땅 뱃노래』에 「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으로 보아 이 부분은 순수하게 김지하의 글로 보인다. 본문과 각론은 원주캠프의 좌장이었던 장일순을 비롯한 원주의 활동가들에 의해 보완되거나 공동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문서 앞의 로터스상 연설문과 달리 가톨릭적 언어로 쓰여있는데, 이 문서가 공식적으로는 가톨릭 원주교구 사회개발위원회의 활동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 문서에서 김지하는 당대를 ‘생명위기시대’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협동적 삶으로의 전환’과 산업문명의 쌍생아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시에 넘어서는 ‘문명의 전환’이 요청된다고 밝힌다. 그리고, 유물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전통적인 사회운동 노선에서 ‘생명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으로의 전환을 선언한다. 

  물론 키워드는 ‘생명’이었다. 이때 생명은 ‘이념’에 대한 안티테제였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와 같은 이념의 환상을 깨뜨리며, 고통과 죽음의 생명세계를 알아차리게 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차원의 사회운동의 길을 제안했다. 그리고, ‘생명운동이라는 희망’을 선언한다.


“제3세계 민중자신을 비롯한 전 인류와 전 생명계, 전 우주적인 생명의 부활, 해방, 완성을 향한 세계사적 대전환에 대해 제3세계 민중운동이 짊어진 역사적 책임의 내용이 그 확실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광활한 대륙에서, 수십억 민중의 일상적인 영성과 생존 속에서 생명운동이라는 대전변이 일어나야 하고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이야말로 죽음에 직면한 전 인류 전 중생의 유일한 희망이다”.(강조는 필자)


  「원주보고서」 이후 생명운동은 스스로를 다른 사회운동들과 구별하면서 자신을 생성해갔다. 조선 말 동학이 서학 및 성리학과 싸우면서 자신을 정립했듯이, 생명운동은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보와 보수 양쪽과 거리를 두면서 자신만의 사회운동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이변비중(離邊非中), ‘양끝’도 아니고 ‘중간’도 아니었다. 새로운 범주, 도식, 패러다임으로의 ‘차원변화’였다.


2)생명사상의 구성과 정립: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김지하의 관점에서 생명운동으로의 ‘전환’은, (생명체험에 의거한 생명사상의 통찰이 그렇듯이), 단순히 ‘방향바꾸기’가 아니었다. ‘차원변화’였다. 그리고 그 설명의 논리가 원효의 화쟁사상으로부터 얻은 ‘이변비중(離邊非中)’ 개념이다. 이는 「원주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내내 결정적인 화두가 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넘어서기라는 실천적인 과제이기도 했다. 


“생명의 진리는 중도다. 그것은 양쪽 가장자리를 떠나면서도 가운데가 아니다(離邊非中). 그것은 모두(全)이며, 모든 것이 생명의 씨앗임(處處皆佛)을 믿는 것이며 이 믿음으로부터 오는 사랑의 실천(慈悲行)이다. 제3세계 민중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다같이 떠나면서도 그 중간길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것, 어떤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모든 사람 속에 활동하는 반생명적 경향을 반대하고 모든 것, 모든 사람 속에 숨은 채 드러나는 생명의 씨앗을 현실적으로 꽃피우는 일이다. (중략) 스스로 창조하고 스스로 해방하고 반생명에 저항하다 죽고 다시 부활하여 스스로 확장함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키고 체제 자체의 역사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근원적으로 철저히 소멸시킬 전면적인 부활과 해방과 개벽을 가져오는 변혁운동이며 동시에 자비와 사랑의 운동인 것이다.”(강조는 필자)


로터스상 수상 연설문과 「원주보고서」를 통해 ‘생명의 세계관’이 제안되고 생명운동으로의 차원변화가 이루어진 후, 김지하는 『대설 남』을 통해 생명사상의 한국적 원형을 판소리 형식을 빌려 형상화한다. 그리고 1984년 출간된 이야기 모음집 『밥』과 1985년 출간된 『남녘땅 뱃노래』(특히 2부)를 통해 그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론의 핵심내용이 구성되고 정립된다. 1989년 「한살림선언」을 포함해, 이후의 논의는 이들의 변주, 혹은 심화·확장이라고 말해도 아주 잘못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아래 『밥』과 『남녘땅 뱃노래』(2부)의 목차가 이를 증거한다. 


『밥』의 목차


창조적인 통일을 위하여; 〈로터스상〉수상연설, 

인간 해방의 열쇠인 생명

일하는 한울님

나는 밥이다

천지굿

똥 또는 광대

생명의 담지자인 민중


『남녘땅 뱃노래』(2부)의 목차


삶의 새로운 이해와 협동적 삶의 실천 

인간의 사회적 성화(聖化)

은적암기행

구릿골에서

남녘땅 뱃노래

앵산기행

민중문학의 형식문제


그리고, 1985년 「민중문학의 형식문제」를 통해 ‘신명’의 예술론을 펼친 김지하는 1986년 발행된, 한국전쟁 당시 죽임당한 원혼들의 해원을 노래한 시집 ‘검은 산 하얀 방’ 서문에서 ‘신명의 생명사상’을 대답한다. 김지하는 스스로 묻는다. “그 소리, 속으로부터 울려나오던 그 소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도대체 그 무엇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조짐인가? 이런 일은 무슨 힘에 의해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고, 김지하는 스스로 답한다. 


“이 물음에 대답할 자는 오직 하나─

모든 것을 아우르며 모든 것을 놓아주며 모든 것을 살아 뜀뛰게 하는 활동하는 무(無), 신명─

지금 여기 죽임당하는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솟구쳐 출렁거리며 모든 존재를 죽임에서부터 살려내고 인간의 사회적 삶과 내적인 삶,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 무생물, 물질과 기계까지도 거룩하게 드높이고 서로 친교하고 공생하고 해방하고 통일하여 ‘한울’로 살게 하는 가없는 저 화엄의 바다, 그 약동하는 생명의 물결뿐이리라.”


3)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


신명은 ‘생명을 생명이게 하는’ 어떤 힘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살아있는 것을 살아있게 하는 힘‘에 대한 체험적 통찰이며, 그러므로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신명’의 생명사상이다. 그렇다. ‘신명 없는 노래’는 ‘죽은 노래’가 되고, ‘신명 없는 노동’은 ‘죽은 노동’이 된다. 생명운동은 곧 ‘신명 살림 운동’이고, ‘신명 나는 세상’이 ‘생명사회’인 것이다. 그러나, ‘신명 나는 세상’은 저절로 이루지지 않는다. 김지하에게 생명운동은 “인위적이고 자각적이며 조직적인 것”이다. 생명운동은 ‘인위적 무위’일 수밖에 없다. 생명운동의 역설이다.


“생명운동은 인위적이며 자각적이며 조직적인 것입니다. 생명운동에 인간의 역사적 사회적 생명, 즉 민중생명의 인위적이고 능동적인 자기회복운동 속에서 자각적으로 진행됩니다. 전 우주중생의 생명운동이란 현실적으로는 인간의 인위적인 죽임, 즉 억압과 분단과 왜곡 소모 파괴 약탈 오염 변질 멸종 등에 대한 저항을 민중생명의 인위적인 자기회복운동 속에서 진행한다는 이야기입니다.”(『김지하전집1』, 「인간의 사회적 성화」)


생명운동은 신명나는 활동이고 생명의 결대로 사는 삶과 사회를 지향하지만, 그 역시 사회운동인 이상 하나의 인위적 사회기획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지하는 끊임없이 조직을 시도했다. 특히 생명운동의 초창기 ‘생명운동의 근거지’ 만들기가 절실했다. 전국 곳곳에서 실현지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했다. 


“나는 전부터 고향에 돌아가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고, 이제는 낙향하여 생명과 영성과 지역공동체운동을 새로운 시작하려는 높은 뜻이 있었다.”(『흰그늘의 길3』, 137)


김지하는 1985년 여름 전라도 해남으로 이사했다. 원주에서 빚어진 여러 가지 “불화와 집안의 내적 갈등에서 벗어나고 악화되는 신병치료와 생명사상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원주를 떠나면서 가톨릭과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땅끝 해남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또 다른 계기이기도 했지만, 김지하 생명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애린』 연작에서 보여지듯, 새로운 것은 항상 끝에서 시작된다. 수운 최제우가 ‘하늘님체험’을 체험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펼치다 눈을 피해 전라도 남원에 갔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남접의 씨앗을 뿌려졌듯이 김지하는 해남의 아우들에게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의 씨앗을 뿌린다. 그리고 이는 훗날 광주한살림과 전북한살림을 포함해 호남지역 생명운동의 뿌리가 된다. 김지하도 그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해남의 아우들)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사상과 지역공동체운동에 관한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흰그늘의 길3』, 144)


김지하가 해남에 머물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지역의 후배들, 김성종, 천용식, 박순태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1987년 여름부터 광주 무등산에서 감잎차를 공동 제다(製茶)하며 ‘광주한살림공동체’를 준비했다(모심과살림연구소, 2007: 106-107).


“광주는 처음부터 유기농산물직거래보다 문화운동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었다. 이들은 1988년 봄, 광주 주월동에 한 살림농장을 세워 젊은이 30여명이 공동체생활을 하며 녹차와 감잎차를 생산하고 달과 장승, 종이공예, 전통염색 공예품 들을 공동생산하는 등 생명문화에 기초한 생활문화운동을 전개하며 생산과 배움 그리고 치유를 통합하는 한살림 실현지를 꿈꾸었다. 이때 한광석이 시도했던 전통염색은 이후 우리 사회에 전통염색이 널리 퍼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8년 여름부터 유기농산물 공급 사업을 시작한 뒤, 1990년에 광천동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출판, 교육, 도농직거래, 녹색환경운동, 주민자치운동, 의료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하지만 내부 구심력을 잃고 직거래 사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지 못해 1992년에 활동을 중단하고, 2003년 다시 유기농산물 직거래 논의가 시작될 때까지 긴 휴면 상태로 접어든다. 하지만 초창기 광주한살림은 생명사상에 기반을 둔 생명문화운동의 폭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주고, 배움과 치유의 터전 그리고 생산이 결합된 한살림마을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모자람이 없는 실험이었다.” 


한편, 1988년 4월 김지하는 원주의 동지들과 함께 <한살림모임>의 준비에 착수한다. 또 다른 의미에서 생명운동의 근거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986년 12월 <한살림농산>의 설립으로 본격화된 유기농 생산소비운동과 더불어 생명운동의 또 하나의 수레바퀴인 생명문화운동을 시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벽적 문명전환 운동을 펼칠 수 있는 큰 틀의 생명운동에 대한 열망이 컸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그늘로부터 새 빛이 돋으리라”고 믿으며 <한살림모임>에 큰 기대를 가졌다. 1년여간의 연구와 토론 끝 최혜성의 대표 집필로 선언문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1989년 9월 29일, <한살림모임> 창립식과 함께 「한살림선언」이 발표된다. 

  한국 생명운동사에서 「한살림선언」은 서구의 공산당선언에 버금간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역사적인 문건으로 이후 한국 생명-생태-환경운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살림모임>은 창립 후 생명사상과 관련된 대중강좌를 개설하고 『한살림』(1990)이라는 무크지를 발행하기도 하고, 『공생의 사회 생명의 경제』(1990) 등 생명운동 관련된 책들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살림모임>의 활동은 재정적인 문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오래지 않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를 계기로 김지하는 박재일의 한살림과도 멀어지게 된다. 김지하는 훗날 “한살림 문화운동의 중지는 ‘운동’의 정지”였다고 회고한다(『흰그늘의 길3』, 244).  그만큼 아쉬움이 컸다는 말이다. 


3. [1990년대]생명운동의 양 날개 


세인들에게 1990년대의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지만 , 김지하에게 1990년대는 생명운동의 양 날개를 펼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양 날개는 ‘생명정치’와 ‘생명문화’였다. <생명민회>가 만들어지고 경기도 부천과 전북 부안 등에서 ‘생명과 자치’의 실험이 이루어진다. 다른 한편, <율려학회> 등 생명문화운동단체들이 창립되고 새 담론이 제시되었으며, 서울과 지방을 넘나들면서 생명문화의 개화를 꿈꾸었다.


1)개벽과 생명운동


「한살림선언」이 발표된 1년 후 1990년 8월 김지하는 수운회관에서 「개벽과 생명운동」이라는 제목으로 긴 강연을 한다. 김지하는 이 강연을 통해 ‘생활협동운동’과 구분되는 ‘생명문화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을 강조하며 「한살림선언」에 버금가는 강령적 비전을 제시한다. 「개벽과 생명운동」은 김지하 개인의 것이었지만, 1981년 로터스상 수상 연설 이후 10여년 간 심화·확장된 생명운동론의 결정판이었다. 특히 개벽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 문명전환운동으로서의 생명운동의 비전과 전략이 담대하게 펼쳐진다. 김지하에게 개벽이 천도(天道)라면, 인사(人事)는 생명운동이다. 


“개벽은 천도요, 인사는 생명운동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인간, 사회, 자연생태계의 파괴와 근원적 우주 생명의 질서로부터의 이탈이 극에 달한 현실 속에서 그 생명의 본성을 인식하고 그 생명의 본성과 질서에 따라서 살려고 하는 생명운동을 통해서만이 개벽을 실천할 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강조는 필자)


강연은 놀랍게도 “나는 찢어진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어서 강연은 현 시대를 ‘만연된 병적 현상’과 ‘생명의 상실’으로 진단하고, 개벽의 전망을 제시한다. 김지하에게 개벽은 “한 마디로 우주질서 전체가 바뀐다는 뜻이며, 우주질서의 변화 속에서 인간의 질서, 인간의 역사적인 모든 조건도 또한 변한다는 뜻이며 5만 년의 인류문명사 전체가 대전환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개벽의 관점에서 생명운동의 철학과 비전을 밝힌다. 세계관과 생활양식의 대전환, 사회와 문명의 대전환을 선포한다. 김지하가 제안하는 ‘생명문화운동의 6대 방향’은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함께 탁월한 시대적 적실성으로 30년이 훨씬 지난 오늘에도 큰 영감을 준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자기실현 

생명공동체 건설 

생태계의 균형 회복 

중도적 민족통일 

새로운 문명의 창조 

우주와 인간 간의 관계 정립 


2)생명정치운동의 실험


그리고 김지하는 한편으로 <한살림모임>과 함께, 다른 한편 개인적으로 다양한 생명운동들을 펼쳐나간다. 1990년 4월 21일 <한살림모임> 등 여러 단체가 함께 마련한 ‘지구의 날’ 행사에 참여하기도 하고, 1991년엔 ‘지구의 날’ 행사와 이른바 ‘은행나무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또한 1993년 4월 환경운동연합 창립대회에 참석하여 “김지하가 ‘생명’이라는 술을 부어준” 최열을 위해 축사를 하기도 한다(신동호, 2007).

  특히 ‘은행나무 살리기운동은 기존의 환경운동과 구분되는 김지하의 생명론적 환경운동을 잘 보여준다.  1991년 4월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던 높이 25m, 둘레 10.7m에 달하는 거대한 은행나무 앞에 김지하과 풍수지리 전문가 최창조, 단식농성을 하던 환경운동가 차준엽 등이 모였다. 인근의 아파트 신축으로 수령이 500여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가 고사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준엽 대표의 단식 8일째 되던 4월 22일 제2회 지구의 '지구의 날'에 김지하는 차준엽과 함께 환경선언문을 읽었다. 제목은 ’환경에서 생명으로!‘였다. 

  

”시민 각자 각자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커다란 생명의 그물임을 깨우치고 생명의 원리를 공부하며, 그 원리에 따라 총체적 오염에 스스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모든 환경운동은 이제 포괄적 생명운동으로 크게 차원변화를 해야 한다.

  생명의 또 하나의 원리는 창조적 영성이다. 방앗골 은행나무 주변토박이 주민들은 요즘 매일밤 산신령과 큰 호랑이 꿈을 꾸고 있다. 생명은 그렇게 신령한 것이다.“(강조는 필자)


다시 ’차원변화‘다. 주민과 함께 하는 생명운동은 이제 ’주민자치‘, ’생명정치‘로 비약한다. 김지하는 1992년 지방자치선거가 부활한 것을 계기로 시민 참여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내건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에 참여한 바 있는데 , 이제 본격적인 생명정치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해 생명운동과 주민자치에 관한 담론을 모은 책들을 연이어 펴낸다.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1991), 『옹치격』(1993), 『틈』(1995), 『생명과 자치』(1995)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1994년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이하 생명민회)>의 창립 제안으로 구체화된다.


“이에 대안운동으로서의 새로운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환경, 자치, 문화 등을 한 고리안에 통합시킬 생명운동을 제창하며 생명가치, 곧 보편적 삶의 통합을 추구하는 민초들의 모임인 생명민회 운동을 제안하는 바이다.”


  김지하에게 주민자치는 ‘생명운동의 정치형식’이었다.  김지하에게 ‘지역은 생명운동의 틈’이었다. 틈을 통해 기존의 질서와 다른 새로운 시공간이 태동한다. 김지하는 <생명민회>를 통해 생명운동의 조직화를 시도한다. <생명민회>는 생명운동단체들 중 유일하게 ‘정치(자치)’를 표방한 단체로써, 1995년 전면 실시 예정인 지방선거를 앞두고 설립되었다. 김지하는 생명운동의 ‘정치형식’으로서 주민자치와 민회운동을 내걸고, 이창식(YMCA) , 강대인(대화문화아카데) 등과 함께 <생명민회> 활동을 이끌었다. 특히 생태정치학자 문순홍(1957-2005) 등 소장학자들과 함께 공동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때 발표된 「생명민회를 제안한다」 는 한국형 ‘생명정치’의 원형을 보여주었다. 이 문서는 김지하와 문순홍의 공동작업의 결과로 명시되어 있다. <생명민회>는 먼저, “현재의 세계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서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특히 「생명민회를 제안한다」의 ‘생성적’ 시공간관은 2023년 오늘의 생명운동에도 통찰의 원천이 된다. 


① 열려있는 선형이 아니라 ‘닫혀있는’ 그물망의 원으로

② 단선형 절대시간에서 복선형 상대시간으로

③ 절대공간에서 상대공간으로 : 다층의 동위상화


그리고, 미래세계는 현 세계 속에 만들어진 ‘틈’으로 엿보인다. ‘틈’으로부터 생성된다. 


“현재의 세계는 자신의 모습으로 실체적인 외형과 가치내재적 내용이란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 반면, 바라직한 사회는 구체적 외형을 가지지 못하고 오직 의식속에 이미지로만 낡은 삶의 틀속에 존재한다. 즉, 이 세계에서는 그 가치체계가 구체적인 제도/법률/학문체계 속에 감추어져 있으면서 무의식속에 숨어서 보편화되어 있다. 반면 바람직한 세계는 현실세계를 위태롭게하는 문제군들이 만들어낸 의식의 “틈” 속에 과거의 구체적 경험과 더불어 이미지로서 엿보인다. 그러나 현 체제의 보편적 의식과 무의식은 상식의 세계를 이루고 있어, 이 “틈” 속에 살아 숨쉬는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도록 막거나, 보더라도 곧 부인토록 만든다. 따라서 미래의 세계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틈”을 확장시키기 위해 제도와 삶의 방식 속에 감추어져 있는 상식을 걷어내고, 이를 새로운 가치체계로 전치시킬 필요가 있다.“(「생명민회를 제안한다」)


<생명민회>는 구상에 머물지 않았다. <생명민회>를 통한 생명-자치운동의 전국적 네트워크를 기대했고, 청년들의 조직화를 도모했다. 실제로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생명사상 및 생명운동 강좌를 통해 청년모임이 만들어지고, 전북 부안 등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생명가치’가 실현되는 주민자치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또한 ‘그물코’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생명문화운동과 생명자치운동의 연결고리를 꾀했다. 

  그러나 <생명민회>의 활동은 문순홍의 투병과 이른 죽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활동이 중단된다. 훗날 김지하는 이 시기의 활동을 이렇게 회고한다.


“그물코는 간행물의 제목이기도 했는데, ”생명문화운동과 지역의 풀뿌리 정치 등을 연결하고 동북아와 세계의 환경, 생활협동, 유기농 등 시민생명운동을 네트워킹하는 그야말로 ‘그물코’가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세한 형태로마나 경기도 부천과 전라북도 부안에 근거지를 만들고자 몇 년간 노력했다.(흰그늘의 길3, 240) 특히 부안 변산반도에 전남 전북 충남 경기를 잇는 풀뿌리 생명운동의 근거지를 장만하는 것. 부안에 자주 갔다. 김지하에게 그것은 ”작지만 큰일이었고 오래됐지만 새길이었다.“(『흰 그늘의 길3』, 240) 


3)생명문화운동의 전개


환경-생명운동과 자치-생명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김지하는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생명운동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날 수는 없었다. 1990년 후반 김지하는 역량을 생명문화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심한다. 자치-생명운동을 위해 자주 방문하던 전북 부안 변산의 바닷가에서였다. ‘변산의 밤’에 김지하는 ‘시인’과 ‘문화’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생명운동, 풀뿌리지역운동, 사회변혁운동도 중요하지만, 시인이 노력해야 할 것은 ‘마음보’를 바꾸는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생명문화운동이요, 영성운동이었다(『흰그늘의 길3』, 252). 이때 문화운동이란 “문학과 예술, 역사, 철학 세 방면의 통합된 큰 틀의 문화를 바꾸고 새로운 창조하는 운동”이다(『흰그늘의 길3』, 253).

  김지하는 생명운동의 핵심은 ‘접화군생(接化群生)’ 네 글자라고 누차 강조한 바 있다.  ‘접화군생’은 최치원의 그 유명한 난랑비서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결국 생명운동이란 뭇 생명과 모시고 어울리는 ‘풍류’ 세상인 것이다.  

  이런 감각은 1996년 7월 ‘신풍류회의’의 발족으로 이어졌다. 김지하를 비롯해 미술과 국악, 문학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인 6명이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고 <신풍류회의(新風流會議)>를 발족한다. <신풍류회의>는 “본디 우리 스스로가 갖고 있던 풍류사상의 큰 회복을 통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리고, 1998년 생명문화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위해 <율려학회>가 조직된다(『흰그늘의 길3』, 264~268). ‘율려’는 생명문화운동의 새로운 키워드이다. 김지하를 비롯해 강준혁·김영동·김정헌·임진택·채희완·정희섭 등은 1998년 8월부터 9회에 걸친 준비모임을 갖고 새로운 인간상과 우주질서를 우리의 고대로부터 공부한다. 그리고, 1999년 8월 4일 공식적으로 창립대회를 개최한다. 

  김지하에 의하면, “율려는 우주만물의 생명질서에 알맞은 음악”이다. 율려는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동양의 음악의 이름이다. 율(律)은 양(陽)이고 려(呂)는 음(陰)이다. 우주의 12계절에 비유하면, 6개월은 따뜻한 계절인 양(陽)이고 나머지 6개월은 추운 계절인 음(陰)인데, 바로 이 음양(陰陽)의 음률을 '12율려(律呂)'라고 한다. 동아시아 사상에서 율려는 음악적 척도이지만, 삶과 세계의 준거가 된다.  

  한편, 김지하는 <율려학회>와 별도로 지역의 영호남의 지역활동가들과 문화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삼남민족 네트워크>를 결성한다(『흰그늘의 길』, 273-276). 1999년 개천절에 남원 교룡산성 선국사 은적암터에서 2박 3일의 판이 열렸다. “동학사 속의 동이사상 문화사를 공부하는 삼남민족 네트워크 구성”했다. 김지하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 ”아! 그날을 어찌 잊겠는가! 그날에 푸르른 하늘이 그토록 활짝 열렸으며...“


4. [2000년대]생명담론의 확장과 차원변화


2000년대 들어서며 김지하의 생명운동은 더욱 활발해진다. 삼보일보와 오체투지와 같은 생명운동의 현장에 참여하고, 세계생명문화포럼을 개최하여 생명사상의 지평은 전지구적인 차원으로 개방된다. 아울러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단체를 창립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펴내며, 김지하 고유의 ‘생명평화운동’을 펼쳐나간다. 그리고, 다시 이변비중의 차원변화. 화엄개벽의 촛불을 켠다.


1)생명과 평화의 길


새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2000년대의 첫 10년은 한국 생명운동의 절정기였다.  지리산 생명평화결사와 삼보일배, 그리고 오체투지를 거치면서 생명평화운동으로 확장되고, ‘생명평화’ 가치는 전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생명과 평화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생명운동가 김지하도 함께 했다. 

  김지하는 2001년 4월 지리산 실상사에서 도법 스님과 등과 함께 젊은 학자·학승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리산’을 주제로 공부를 시작한다. 김지하는 지리산 공부모임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리산은 한국전쟁을 전후해 좌우익 대립이 가장 치열했던 곳입니다. 민간인과 군경을 합쳐 1만명이 죽어나갔어요. 그러나 그곳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들이 몸을 숨기는 곳이었고 혁명투사들이 정기를 받은 장소입니다. 삶과 죽음, 투쟁과 화해가 함께 숨쉬는 산이지요. 전쟁·배제·대립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화해·사랑·모성·자비를 철학화, 사상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지하는 같은 해 5월 26일 열린 ‘생명평화 민족화해 지리산 위령제’의 공동봉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2003년은 한국 생명운동의 신기원이 열린 해였다. 2003년 3월 25일에서 5월 31일까지 불교의 수경스님과 가톨릭의 문규현 신부가 중심이 되어 전북 서해안의 대규모 간척사업 저지를 위해 ‘삼보일배(三步一拜)’가 진행됐다. 삼보일배는 한국 사회운동의 새 지평을 여는 대사건이었다. “환경에서 생명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선언되고, 운동방식에 있어서도 간디의 비폭력 투쟁에 비견되는 ‘거룩한 사회운동’의 모델이 만들어졌다(주요섭, 2023).

  김지하에게 삼보일배는 ”이 세대의 징표“였다. 김지하(『생명학1』, 5)에 따르면, ”이제까지의 시민운동에서 생명운동은 그 차원이 변했다. 형식은 시민운동이지만, 내실에서는 사회적 공공성을 넘어서 우주사회적 공공성, 생태적 연쇄저항, 생명학의 영역으로 성큼 들어왔다. 새만금 간척 중단을 요구하며 삼보일배 55일째를 맞이한 순례단에게 김지하는 헌시를 보내기도 했다.  제목은 ‘三步一拜(삼보일배)’다. 

  그리고 5년 후 2008년, 김지하는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대운하에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에 다시 함께 한다. 그해 4월에는 종교환경회의가 개최한 ‘문명전환기 생명평화운동의 방향과 역할'이라는 주제의 대화마당에서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강의를 통해 김지하는 “역사상 사회공공성을 지닌 현안이 시민운동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하며 "한반도 대운하 정책 논란이 새로운 차원의 사회적ㆍ문화적 운동의 시초가 될 것"이라고 예감했다.

  5년 전 삼보일배로 새만금을 살리기 위한 거룩한 투쟁에 나섰던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는 2008년 9월 4일 4대강으로 상징되는 “개발과 파괴, 생명의 죽음과 약자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참회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지리산 노고단 천고제가 참석한 김지하는 “광장의 촛불. 이제 산에 오릅니다.”로 시작되는 고천문을 짓기도 했다. 

  김지하의 ’생명과 평화의 길‘은 대안적 경제시스템의 제시로 이어지기도 했다. 2008년 11월 일본의 후쿠오카에서 열린 ‘호혜를 위한 아시아 민중기금’의 아시아 확대회의에 제안자로 참석하여 기념 강연을 한다. 일본의 생협 및 환경운동단체들과 한국의 일부 생협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팔레스타인,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민중단체들이 참가한 가운데, 김지하는 칼 폴라니의 ‘호혜’, ‘교환’, ‘재분배’ 개념을 빌려 ”호혜를 전면(前面)에, 교환을 일상으로, 획기적 재분배를“이라는 슬로건을 제시한다. 호혜와 교환이 융합된 ‘호혜시장’ 개념을 제안한다. 사실 이 슬로건은 한살림운동에서 상품을 파는 동시에 선물을 나누는 ‘매장/나눔터’의 이중구조를 통해 나름대로 구현되어왔다. 

  한편, 김지하는 2004년에는 ‘생명과 평화의 길’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직접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의 단체를 조직한다.  2004년 8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활동을 시작했다.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정성헌을 비롯해, 삼남민회·율려학회·생화생명공부모임·지리산공부모임 등의 형태로 10여 년 동안 함께 활동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김지하는 ‘생명과 평화의 시대’를 열어나갈 새로운 패러다임의 모색하는 화두로 ‘그늘이 우주를 바꾼다’ 를 제시한다. 이후 <생명과 평화의 길>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세계생명문화포럼을 주관하고, 2007년 <생명학회>를 창립을 주도하는 등 생명학을 체계화하고 생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다. 김지하는 2005년에 같은 제목의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펴내기도 했다.

 

2)세계생명문화포럼과 생명사상·생명운동의 전지구적 확장


이제 생명평화의 지평은 동아시아와 전 세계로 확장된다. 생명문화의 확산과 생명학의 정립을 중심으로 고유의 생명문화운동을 계속 이어오던 김지하는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세계생명문화포럼>(2003~2006년) 개최한다. 이를 통해 국내외의 생명담론 집대성하고, 생명운동의 지평을 지구로 확장하고자 했다. 세계생명문화포럼은 그 규모에 맞게 국내외 성과를 집대성했다. 


“아름다운 모심 힘찬 살림” 


2003년 12월 18일 경기도 수원에 있는 경기중소기업종합지원센터에서 '세계생명문화포럼-경기 2003' 개막식이 열리고 3박 4일이 포럼이 시작됐다.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생명문화”를 주제를 논의하기 위해 한국과 해외 15개국 108명의 학자와 문화예술인,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생명과 관계된 문화적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 옛 아시아의 문예와 지혜들을 전면적으로 탐색·재조명하고, 세계 곳곳에서 논의되고 실천된 생명문화 등 동서양의 여러 사상과 그 사례들을 나누고자” 했다. 

  ‘생태주의와 생명사상’, ‘생명의 문화적 통로’, ‘공생의 삶과 생명의 경제’, ‘동아시아의 역사와 상생’로 구성된 4개의 주제마당과 ‘생명문화와 지역발전계획-‘살림’의 경기도 만들기‘를 주제로 하는 특별마당이 열렸고, 국내외의 저명한 환경운동가와 지식인이 초대되었다. 반다나 쉬바(인도 환경운동가), 리카르도 나바로(‘지구의 벗’ 의장), 수잔 레이시(예술가), 발 플럼우드(호주 국립대학 연구원), 미조구찌 유조(동경대 명예교수) 등이 그들이다. 

  3박4일의 포럼을 마친 참가자들은 「수원 세계생명문화 선언문」을 발표한다. 선언은 “개개 인간의 삶이 소중하게 여겨지며,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인간의 활동과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는 것”을 최고의 목적으로 하는 ‘생명문화의 원칙’을 따랐음을 확인하고, 1)전체마당 선언과 2)주제마당 선언 3)‘행동 추천’으로 구성된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 중에서도 특히 호주의 생태여성주의자인 발 플럼무드(Val Plumwood)가 제안한 “생명권에 대한 존중”은 큰 주목을 받았다. 김지하는 이후 여러 차례 플럼우드를 언급하며, 파국적 생태위기의 유일한 해결책은 (플럼우드와 합의한) '인격-비인격, 생명-무생명 모두를 우주의 공동주체로 다 함께 모시는 문화와 생활의 대변혁'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전하고 있다.  플럼우드의 ‘비인간 생명권’ 개념은 ‘선언문 1-4’에 반영되었다. 선언문의 ‘주권국가’처럼이란 표현은 ‘비인간-비생명’에 대한 ‘윤리적’ 고려만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져 있다.


“1.4 인간을 넘어선 세계(다른 생명 존재)에 관해서, 우리의 삶이 다른 생명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우리의 철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구체적인 행동도 중요하다. 모든 문화와 전통은 반드시 자신의 관행과 전통을 주의 깊게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인간을 제외한 생명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모르고 있다면, 이제 그 영향을 우리 자신이 깨닫고, 그에 따른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곧 우리의 의무이다. 인간을 제외한 종들은 고유한 권리와 영토를 가지고 있는 “주권국가”처럼 인정되어야 한다. 우리는 인간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 “주권국가”들과 평화적인 공존과 상호존중을 목표로 하여야 한다.(강조는 필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진행된 세계생명문화포럼의 주제를 일별한다. 

  2003년에는 ”21세기 문명의 전환과 생명문화“를 주제로 ”여러 생명담론들과 실천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정리“했다. 

 2004년에는 ”한국의 생명담론과 실천운동“을 주제로, 한국 생명사상의 조명을 통해 생명운동의 대중화 촉발을 기대했다. 

  2005년에는 ”동아시아 문예부흥과 생명평화“를 주제로 ‘동아시아 사상 문화의 르네상스 탐색과 호혜망 구축을 모색’했다. 

  4년째 2006년에는 ‘생명사상과 전 지구적 살림운동’을 주제로 3년 동안 진행된 세계생명문화포럼의 사상을 통합적으로 회고하여, 21세기 새로운 학문이자 실천사상으로서의 ‘생명학’을 정립하며, 전 지구적으로 ‘살림운동’을 확산하는 메시지의 전 세계로 발신하는 것을 기대했다.  


3)촛불과 화엄개벽의 꿈


‘후천개벽’은 김지하 생명사상이 처음으로 문자화되었던 1981년 로터스 수상 연설에서부터 김지하 생명사상의 열쇠말이었다. 김지하의 시대인식이자, 문명사적 대전환의 비전을 제시하는 핵심 개념이었다. 그것은 우주론적이면서도 사회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2008년을 전후해 드디어 ‘화엄개벽’으로 종합된다. ‘화엄개벽의 길’(법보신문) , ‘화엄개벽의 모심’(대화문화아카데) 으로 선포된다.

 

“이 지구와 전 인류의 오늘의 삶과 의식 안에 모심의 화엄개벽이 이루어질 수 없다면 지금의 대혼돈은 내일 없는 대붕괴로 귀일하고 말 것이다.”(「화엄개벽의 모심」) 


그런데, 김지하에게 화엄개벽은 관념의 산물이 아니었다. ”촛불을 켜라, 모셔야겠다.“(흰그늘의 길3, 426)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김지하는 이미 화엄개벽을 예감했고, 또 체험했다.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촛불 현장이 그곳이다. 김지하는 촛불에 ‘진심’이었다. 그의 촛불에 대한 관심은 2002년 6월 서울 월드컵 당시 출현한 '붉은악마'에 대한 경탄과 재해석에서 시작되었다. 2002년 6월 ‘유월개벽’ 이라는 김지하의 기고글은 이를 보여주는 증거 중 하나이다(『흰그늘의길3』, 351-369).


  김지하에게 촛불은 “우리 시대의 4.19”였다. 김지하에게 촛불은 “68혁명보다 훨씬 더 깊고 더 넓고 더 거창한 문명사 전체의 근본적 대전환과 직결돼 있다.”(2009a: 44) 그리고, 김지하에게 촛불은 ‘숯불’과 ‘횃불’과 구별되어야 한다.  “지난해 시청 앞에 켜진 촛불은 바로 이 돌아옴이었다. 네페쉬하야의 예루살렘 입성소식이었으니 이 소식을 모심이 다름아닌 촛불이다. 촛불은 횃불이 아니다. 숯불도 아니다.”(화엄개벽의 모심) 

  김지하에게 촛불은 ‘하아얀 어둠’, ‘흰 그늘’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그 원형은 김지하 생명사상의 태동기에 한 편의 시로 출현한 바 있다. ‘촛불’이라는 제목의 시가 그것이다.


촛불


나뭇잎 휩쓰는

바람 소리냐 비냐

전기는 가 버리고 

어둠 속으로 그애도 가버리고 

금세 세상이 온통 뒤집힐 듯 

눈에 핏발 세우던 그 애도 가버리고 

촛불 

홀로 타는 촛불 

내 마음 휩쓰는 것은

바람 소리냐 비냐. 

(『검은산 하얀방』, 1986: 21)  


그렇다면, 김지하의 화엄개벽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만물해방’이다. ‘인간해방’이 아니다.  김지하는 신유물론에 버금가는 통찰력과 실질적 탐색을 진행한다. 그의 슬로건은 ‘물질이 메시아다’이다.


“나는 지난 촛불의 '온라인, 오프라인 화백'의 저 시끄러운 쌍방향 통행들과 광장의 직접민주주의에서 희미하게 화엄경을 느꼈다. 또한 그때 동시에 느꼈다. '우주만물이 물질의 굴레에 갇힌 채 자기들을 해방해줄 메시아가 올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성경 구절이다.

메시아는 누굴까?

물질 자신이다.

물질 자신이 물질 자신을 인식하고 해방한다.

사실은 물질 안에 있는 신과 영과 생명이 그 주체로서 물질 자신을 자기조직화하여 해방하는 것이겠다. 이것이 곧 창조적 진화다. 화엄경의 진리와 근본에서는 같다.”(『촛불, 횃불 숯불』, 92, 강조는 필자)


일찍이 김지하는 돌멩이의 생명성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물질이 메시아다. 21세기 첫 번째 바이러스인 ‘사스’가 유행했을 때, 김지하는 경북의 산간을 헤메인다. 치유물질을 찾기 위해서였다(『초미』). 4대강의 반대운동을 펼칠 때에도 김지하는 ‘죽임당하는 강’과 동시에 그 강의 재생능력에 주목했다(「변혁적 생명학」). 

  김지하는 화엄개벽을 통해 ‘차원변화의 차원변화’를 보여준다. 김지하의 촛불과 화엄개벽론은 2009년 출간된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 4권에 풍부하게 결집되어 있다. 


1권 『방콕의 네트워크』. / 서문: 모심, 화엄개벽의 길

2권 『촛불, 횃불, 숯불』. / 서문: 촛불, 횃불, 숯불

3권 『새 시대의 율려, 품바품바 들어간다』. / 서문: 사타구니 대해탈의 첫 샘물

4권 『디지털 생태학』 / 서문: 붉은악마에서 이미 촛불을 보다


5. 생태파국시대의 생명운동과 흰 그늘의 길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동아시아는 향후 2~3년 안에 정치, 경제, 사회, 사상, 문화적 대변동을, 향후 7~8년, 또는 13년 안에 온 세계와 연계되어 생명, 생태, 생활, 물, 식량, 건강, 에너지 등등에서 생태적, 기후적, 우주적 대변동, 악질만세(惡疾滿世)의 대병겁(大病劫)을 맞이하게 된다. 불가피하다. 시간이 많지 않다.“ 


김지하는 꼭 집어서 ‘13년’이라고 적시한다. 2008년에 쓴 글이니 13년을 더하면 2021년인 셈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던 시기다. 물론 우연이겠지만, 예사롭지가 않다. 김지하의 생명운동은 처음부터 개벽운동이었다. 

  파국의 위기가 운위되는 오늘 김지하의 개벽담론은 서유럽의 ‘파국담론’과는 결이 다른, 또 다른 전환담론의 가능성을 예감케 한다.  김지하의 생명사상과 생명운동은 한국 생명운동의 잠재력이다. 전지구적 생명운동이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10월 세상을 떠난 세계적인 과학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는 묻는다. “근대화할 것인가? 생태화할 것인가?” 그리고 그는 물론 방향으로 ‘생태화’를 지시한다. 그리고 전략으로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제시한다. 수많은 동서의 지식인들이 그를 인용해 “인간과 비인간의 집합체를 하나의 세계”로 여기는 코스모폴리틱스를 논했고, 국내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그를 소개하고 논문을 썼다(김환석, 2017). 그러나, 김지하의 ‘우주생명학’에 주목하는 사람이 없었다. 

  최근 서유럽의 생태철학에서 이른바 ‘어둠의 생태학(dark ecoloyg)(티머시 모턴, 2022)‘이 주목을 받고 있다. 서유럽에 ‘어둠의 생태학’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둠보다 깊은 ‘심연의 생명사상’이 있다. 김지하의 ‘명(冥)의 생명사상’(『아우라지 미학』)이 그것이다. 그리고, ‘심연’의 어둠은 ‘희망’의 어둠이기도 하다. 김지하는 말한다.


 “이 어둠. 이 절망을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희망은 ‘명(冥)’에 있다. 김지하가 「화엄개벽의 모심」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종말이 개벽”이기 때문이다. ‘지구적 비상사태와 새로운 생태신학의 전환점”을 탐색하는 여성신학자 캐서린 켈리는 『지구정치신학(2022)』에서 “시작에서 종말로 가는 시간이 아니라 종말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시종(始終)’과 ‘종시(終始)’는 구별되어야 한다. ‘종시의 시간’을 구성해야 한다.

  ‘생명운동가’ 김지하를 일별해보았다. 그는 시인이고 사상가였지만, 분명 그는 생명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인의 감수성과 사상적 깊이로, 김지하는 한국 생명운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안에 있다. (물론 수많은 다른 감각과 사유와 사건들이 한국 생명운동사에 스며들어 있다.) 

  김지하 평생의 화두는 ‘모심’이었다. “내 생애를 통틀어 더듬어 찾아온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한마디로 줄여 말하면, ‘모심’ 즉 ‘侍’ 한글자라고 즉 대답하겠다.”(『흰그늘의 길3』, 424) 그런데, 이때 모심은 ‘허공에의 모심’이다(『김지하전집』, 11). 비약을 위해서는 허공에 발을 내딛어야 한다. 화엄개벽의 ‘풍요로움’의 원천은 ‘허공에의 모심’에 있었던 것이다. 1976년 김지하가 ‘최후진술’에서 언급한 ‘천주운동’도 어쩌면 ‘허공에의 모심’이었을 것이다. ‘활동하는 무’를 모심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흰 그늘의 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지하의 생명운동의 길이었을 것이다.


“흰 그늘은 논리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희망, 그러나 현실적인 치유에 대한 희망이다.”(『흰그늘의 길』, 415)





참고문헌


김소남. 2017. “1970~80년대 원주그룹의 생명운동 연구”. 동방학지 제178집. 171∼211쪽

김소남. 2017. 『협동조합과 생명운동의 역사』. 소명출판.

김지하. 1984. 『밥』. 분도출판사.

김지하. 1985. 『남녂땅 뱃노래』. 두레.

김지하. 1986. 『검은 산 하얀 방』. 분도출판사.

김지하. 1996. 『생명과 자치』. 솔

김지하. 2002. 『김지하 전집2(사회사상)』. 실천문학사

김지하. 2005. 『생명과 평화의 길』. 문학과 지성사.

김지하. 2008.  『흰 그늘의 길 3』. 학고재.

김지하. 2009a.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1-방콕의 네트워크』. 이룸. 

김지하. 2009b.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2-촛불, 횃불, 숯불』. 이룸. 

김지하. 2009c.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3-새 시대의 율려, 품바 품바 들어간다』. 이룸. 

김지하. 2009d. 『소근소근 김지하의 세상이야기 인생이야기4-디지털 생태학』. 이룸. 

김지하. 2013. 『수왕사』. 올리브앰앤비

김지하. 2014a. 『아우라지 미학』. 다락방.

김지하. 2014b. 『초미 첫 이마』. 다락방.

김지하. 2018. 『우주생명학』. 작가.

김환석. 2017.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와 기술사회의 민주주의”. 사회과학연구, 30(1), pp.1-18.

김희정. 2010. “감응과 척도 그 현대적 의미”. 東亞硏究 제59집(2010년 8월), 163-186.

모심과살림연구소 편. 2012. 『생명운동자료모음』. 모심과살림연구소.

모심과살림연구소. 『스무살 한 살림 세상을 껴안다』. 도서출판 한 살림. 

문순홍. 2006. 『생태학의 담론(문순홍유고선집1)』. 아르케

신동호. 2007. 『자연의 친구들(환경운동 25년사)1, 2』. 도요새.

윤형근. 2003. “한국의 생태담론과 생명운동”. 계간 사상 2003년 겨울호 96-126.

임나영. 2022. 동시대 미술에 나타나는 파라픽션(Parafiction) 연구: C.램버트비티의 이론을 중심으로. 이화여대 예술조형학부 석사 논문.

장일순, 『나락 한알 속의 우주』. 녹색평론사.

제인 배넷. 2020. 『생동하는 물질 사물에 대한 정치생태학』. 문성재 역. 현실문화.

주요섭. 2015. 『전환이야기』. 모시는 사람들.

주요섭. 2023. 『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 풀씨.

캐서린 켈러. 2022. 『지구정치신학-지구적 비상사태와 새로운 생태신학의 전환점을 위한 투쟁』.  박일준 번역. 대장간.

티머시 모턴. 2022. 『인류-비인간적 존재들과의 연대』. 김용규 번역.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2023/04/12

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 – 다른백년

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 – 다른백년


주요섭의 [다시 생/명]
페미니즘, 생명·전환 운동의 최전선주요섭 2022.01.14 0 COMMENTS


대전환기란 무엇보다 사상적 대전환기이다. 그러나 사상의 전환은 신체의 전환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의 자기생산을 겨우겨우 뒤쫓아가는 신체와 그 신체를 뒤따르지 못하는 정신의 괴리가 치명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포와 불안과 죽음정치로 이어진다. 자각은 고사하고, 가벼운 질문조차 내뱉기 어렵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다. 불편하다. 불쾌하다. 고통스럽다. 그리고, 2022년 1월 대선판에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적 공격에서 그것을 절감한다.



오늘날 페미니즘-운동은 이론과 실천의 최전선이다. 이슈, 행동, 활력, 영향력, 대중적 참여 등 모든 면에서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생명-문화적 현상이다. 지난 수년간 목격했던 치열한 전투의 현장들이 떠오른다. 광화문 퀴어페스티벌, SNS에서의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 강남역·대학로 여성 혐오 규탄집회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이다. 사실은 가정, 학교, 기업, 골목길 등 모든 삶의 현장이 페미니즘-운동의 전선이다. 오늘날 페미니즘은 대전환시대의 가장 치열한 사상적, 실천적 전위다.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온다

대전환은 무엇보다 신체적이다. 실제적이고 실존적이다. 코로나19의 대전염병과 기후재난은 직접적인 고통의 원인이 된다. 디지털기술과 인공지능은 우리의 신체를 재-지배하고 재-구성한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몸은 모바일과 디지털 기기에 길들여진다. 사회적으로도, 예컨대 사랑과 가족과 노동에 대한 기존의 믿음을 뒤흔든다. 적응하기에 바쁘다. 거꾸로 길들어짐에 무감각하다. 사회·경제·문화적 이중화(dualization)는 우리의 실존을 두 개의 차원으로 갈라놓았다.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묘사하듯이 혹 천국과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 칼끝 위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세계가 출현할 수도 있다.

이에 대응하는 사회적 움직임도 매우 분주하다. 생명운동들도 여기에 응답하려 한다(생명의 움직임이라는 의미에서 ‘생명-운동’이라는 표현이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생명운동은 항상 생명운동들이었다. 이미 수많은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나름의 몸짓과 감각과 언어로 활동을 전개해왔다. 수많은 실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구글 검색과 유튜브 검색에서 만날 수 있는 생명운동들은 주로 기독교 생명운동과 가톨릭 생명운동이다. 그리고 가끔 새마을운동중앙회의 생명살림운동이다. 적어도 구글 검색과 유튜브에서는 한살림의 생명운동도 없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나 생명평화결사의 생명운동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생명운동은 낙태반대운동, 동성애반대운동 등 이미 보수 기독교운동에 의해 전유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출현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운동들은 또 다른 삶의 형식을 함께 만들어가는 ‘구성적’ 생명운동이며, 보이지 않는 생명의 흐름을 알아차리는 ‘정동적’ 생명운동이며, 매 순간 자신을 또 다른 차원으로 변신시키는 ‘트랜스’ 생명운동이다. ‘몸-생/명’의 관점으로 말하면, 감응 체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사회적 경험의 형식을 창조하는 ‘감응’과 ‘우형’의 생명운동들이다. 절망(絶望)과 선망(羨望) 사이, 희망(希望)의 사건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페미니즘-운동이 그것이다.



새로운 지평을 여는 페미니즘–운동

페미니즘-운동은 각비(覺非)의 사유를 실천한다. 치열하게 저항하되, 대안을 특정하지 않는다. 오늘날 페미니즘-운동은 이를테면, 생명의 원초적 저항이다. 매 순간 일상화된 신체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고, 구조화된 신체적 위협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 아울러, 페미니즘 고유의 생명 감각을 ‘생명의 사유’로 발전시키고 사회적 실천을 생산한다. 수천 년 고착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고 결혼·가족 제도를 균열시키고 있다. 켜켜이 쌓인 고통만큼이나 내공도 단단하다.

페미니즘은 정신의 운동이 아니라, 무엇보다 신체의 운동이다. 몸의 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몸의 운동’이다. 살아있는 몸 안에서 저항의 생명력이 폭발한다. 페미니즘-운동에서 몸은 사유와 실천의 원천이다. 또한 ‘몸-생/명’의 그것처럼, ‘표층의 몸’과 함께 ‘심층의 몸’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체험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진보적 사회운동이 ‘생각의 운동’이거나 ‘재현적 모델의 운동’이라면 페미니즘은 ‘느낌의 운동’, ‘살아있는 삶의 운동’이다. 이념의 운동이 아니라, 경험의 운동이다.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인간을 체험케 하는 운동이다.

또한 진보적 대안운동은 투명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은 불투명하다. 혼란스럽고 분열적이고 우발적으로 경험된다. 또한 페미니즘은 쉽사리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경계를 넘나들고 경계 너머를 상상하고 실험한다. 페미니즘 운동은 ‘대안’을 만드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평’을 여는 운동이다. 사상, 이론, 방법, 에너지, 조직 등등 모든 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다.

페미니즘은 인식론적 장애물을 넘기 위해 몸부림친다. 구성적 사유를 한다. 젠더는 물론이거니와 개념과 제도, 그리고 신체와 자아마저도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임을 자각한다. 그러므로 또 다른 개념과 제도와 자아를 발명하고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은 권력과 정치를 회피하지 않는다. 집단적 결정과 권력의 역동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역동의 근거와 실제는 몸이다. 정동이다. 제도와 법을 바꾸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절 때마다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변화를 만들어간다. 대화를 나눌 때와 호칭과 대화에서, 결혼을 고민할 때, 매 순간이 정치다.

페미니즘은 생태적이다. 굳이 에코-페미니즘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좋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가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적 억압과 계급적 착취와 깊게 관련되었음을 몸으로 알아차린다. 연민의 감각으로 지구-생명공동체를 재창조한다. 나아가 우주-생명공동체를 상상한다.



페미니즘은 ‘다시 개벽’ 운동이다

페미니즘-운동은 페미니즘 운동들이다. 수많은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들이 다양한 사상과 활동으로 기존의 생명운동과 사회운동을 자극한다. 새로운 지평을 열도록 충격한다. 기존의 생명운동은, 이를테면 개체 중심적 생명운동이었다. 생명의 세계관은 관계와 연결을 강조했으나 그것은 개체적, 유기체적 생명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 있었다. 『생명의 그물』이라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책 제목이나 ‘인드라망의 그물’ 은유도 개체와 개체의 연결을 중심으로 하는 개체적 생명관을 반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 특히 정동이론을 수용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젠더’라는 관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유기체적 생명에 대한 사유를 통해 사회/자연의 경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유기체라는 생명형식은 분명 실제적이지만, 동시에 유기체 역시 하나의 구성적 생명형식인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개체적 자아를 전제로 하는 유아론(唯我論)적 감각을 훌쩍 넘어서려 하고 있다. ‘탈아(脫我)’의 체험을 사회화하려 한다. 페미니즘의 생명 이해는 생명의 개체성을 전체로 하는 ‘생명권-재산권’ 개념과 ‘생명의 존엄’이라는 관념을 넘어서 인간과 사회와 생명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개체 중심의 민주주의 담론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트랜스’의 관점으로 인간과 생명을 다시 보도록 자극하고 있다. 영성과 우주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은 문명전환운동이다. 150년 전 오만 년 옛 질서를 급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동학의 ‘다시 개벽’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지점이 중요하다. 페미니즘-운동으로 인해 ‘문명전환’이라는 거대담론이 고담준론에 머물지 않고 생활 속에서부터 변혁적 힘을 얻게 되었다. 전통적인 남자의 일과 여자의 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성애적 사랑만을 고집하는 것은 옛 이야기가 되었다. 가족제도도 바뀌고 결혼문화도 변화하고 있다. 부계 가족문화는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다. 그리고 공동체의 형식과 돌봄체계가 재구성되고 있다.

그렇다. 문명사적 대전환기, 페미니즘-운동으로부터 배운다. 19세기 중반 동학의 교조 수운 최제우는 ‘다시개벽’이라고 말했고, 그의 후계자 해월 최시형은 ‘후천개벽’이라고 고쳐 말했다. 그리고 20세기 벽두에 또 다른 방식으로 동학의 계승을 자처했던 강증산은 ‘양(陽) 개벽’에 빗대어 ‘음(陰) 개벽’을 주장하며 또 다른 인류사적 서사를 발명했다. 21세기 페미니즘은 기존의 질서에 격렬히 저항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개벽’의 새로운 서사를 만들며 새로운 질서를 추동하고 있다. 팬데믹과 기후재난의 자연-인류사적 대전환기 속 ‘인간 이후’의 지구-우주적 비전으로 나아가고 있다.



자기구원의 사상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정말 놀라운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자기생산’의 역량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자기가 자기를 생산하고 또 재-생산한다. 일상화된 공포와 불안과 불합리에 치열하게 맞서면서, 또한 국가권력과 거대기업 같은 거대 권력에 대해 저항하면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언어를 생산해낸다. 활동과정에서 수많은 또 다른 삶의 형식들을 발견하고, 발명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생명으로 재-창조한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기해방-자기구원’ 운동이다. 수운 최제우는 깨달음 체험을 한 후, 집에 있던 여종 둘을 해방한다. 한 명은 며느리로 또 한 명은 수양딸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노비들에게 그것은 이를테면, ‘타력 해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페미니즘은 ‘자력 해방’이다. 자기가 자기를 해방한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자기를 구원하다. 페미니즘은 ‘자기구원-의 사상’이다. 그리고 ‘자기구원의 세계들’을 발명하고 있다.
주요섭

주요섭(사발지몽). 생명과 전환을 화두로 오랫동안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해왔으며, 최근에는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를 중심으로 감응(感應)과 우형(又形)을 키워드로 하는 ‘또 다른’ 생명사상·생명운동의 태동을 탐문하고 있다.

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

연구보고서 - 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
HOME
연구소 자료곳간
연구보고서

연구보고서

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



1 / 126






=====

목차



I. 대전환, 또 다른 세계감의 출현

1. 종말의 감각, 확실성의 종말

2. 소환되는 생명담론, 응답 없는 생명운동

3. 또 다른 ‘생각/느낌’의 지도 그리기



II. 또 다른 이론과 운동으로부터 배우기

1. 진리의 종언, 인간의 종말

2. 체계이론: 현실은 항상 ‘구성’된 현실이다

3. 정동이론: 행동 이전에 ‘정동’이 있다

4. 페미니즘: ‘트랜스’, 우리에겐 n개의 성이 있다

5. 성찰: 생명사상·생명운동에 관한 몇 개의 물음표



III. 또 다른 생명의 세계관 설정하기

1. ‘생/명’으로 생명에 관해 다시 생각하기

2. 생명은 ‘생’이다

3. 생명은 ‘명’이다

4. 생명은 ‘/’이다

5. ‘몸-생/명’의 세계관, 감응과 우형의 생명활동



IV. 또 다른 생명운동을 실험하기

1. 왜 ‘생명’운동이었을까?

2. 사회는 재-발명되어야 한다

3. 판/마당과 사건 만들기

4. 카오스 생명과 시/민 주체성

5. 저항과 꿈꾸기의 사회운동



V. 다시 생명, 또 다른 세계의 태동

1. 또 다른 생명운동들이 온다

2. 대전환의 사상들

3. 살아있는 희망





※ 연구보고서 파일 다운로드 ▼

2020 몸-생/명의 세계관, 저항과 꿈꾸기의 생명운동(주요섭)_다운로드.pdf

2023/04/11

주요섭 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

(5) Facebook: 이무열 enopSordstth5 2 chm0370mha43 1 66 h 18052g9iuc3t6cl66ffgfht92hch73   · 생명과 전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발지몽(주요섭)선배님에 오랜시간 공들인 책이 나왔습니다. (전통)생명사상과 사회과학을 횡단하며 전환을 위해 물건 하나를 내놓으려한 고민과 열정을 아는 이로서 한껏 축하드립니다. ‘초월적 돌파’를 화두로한 생명과 전환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서울 외에 대전과 전북에서도 북 토크를 준비 중이라 하니까 이번 북 토크에 함께 못해도 너무 아쉬워 마세요. 참고) 책은 4월20일부터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고 현장에서는 저자 싸인본으로 판매합니다. 서울은 김지하선생님과 연이 있는 #카페마고 에서(예전엔 살롱 마고) 북토크 신청은 아래로 https://forms.gle/Pihxd44uUiVwi2L88 All reactions:33You, 강길모, Sunghwan Jo and 30 others 9 comments 5 shares

생명과 전환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사발지몽(주요섭)선배님에 오랜시간 공들인 책이 나왔습니다.
(전통)생명사상과 사회과학을 횡단하며 전환을 위해 물건 하나를 내놓으려한 고민과 열정을 아는 이로서 한껏 축하드립니다.
‘초월적 돌파’를 화두로한 생명과 전환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 드립니다.
서울 외에 대전과 전북에서도 북 토크를 준비 중이라 하니까 이번 북 토크에 함께 못해도 너무 아쉬워 마세요. 😊
📌 참고) 책은 4월20일부터 온라인으로 구매 가능하고 현장에서는 저자 싸인본으로 판매합니다.
서울은 김지하선생님과 연이 있는 #카페마고 에서(예전엔 살롱 마고)
북토크 신청은 아래로 👇
https://forms.gle/Pihxd44uUiVwi2L88









All reactions:33You, 강길모, Sunghwan Jo and 30 others


9 comments

5 shares

Like




Comment


Share


9 comments

Most relevant





2023/02/12

알라딘: 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알라딘: 마음 농사 짓기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전희식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9-03-20























Sales Point : 100

8.7 100자평(0)리뷰(6)


책소개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그의 시골집에서 동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읍내를 넘어 버스를 타고 오가는 도시의 아스팔트, 마침내 비행기를 타고 오가는 중국과 남미에 이르는 해외까지 삶의 현장에서 농작물을 기르고, 사람과 더불어 일하고, 세상을 살리는 ‘농사 너머의 농사’를 통해 내 마음의 행방을 알아채고, 내 마음 농사를 짓는 이야기들을 담아낸 책이다.


목차


제1부 ………… 농부, 마실을 나가다
나를 알아채는 시간 / 30년 저 너머에 / 황금 개띠라고 하는데 / 나에 대한 믿음의 과잉 사태 / 단순하게 살기와 잡동사니 / 술과 헤어진 뒤 / 야단스럽게 반기기 / 백중 풀베기 / 오늘도 역시나 피난 보따리 / 난방비 제로와 노동의 다양성 / 상류 사람의 도덕적 의무 / 개장수 노릇 / 내가 만든 송곳 하나 / 들깨와 참새 그리고 가로등 / 산과 들판은 겨울 채비로 바쁘다 / 내 식으로 차레 지내기 / 우리 동네 순애 씨 / 밥상 앞에서의 신미란다 원칙 / 믿음의 조건과 유효기간 / 밑그림이 없는 사람

제2부 ………… 농부, 더불어 살다
막상막하 연극놀이 / 할머니와의 약속 / ‘노인의 날’은 언제인가? / 눈 오는 날의 우편배달부 /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 빛나는 졸업장 / 동북아시아 농민들 / 자연농법과 한울살림 / 잘 먹는다는 게 뭘까 / 고속도로 공짜 뒷담화 / 참 스승의 길을 간 김인봉 교장선생님 /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 / ‘소농’을 ‘혁명’이라 부르게 된 현실 / 동학으로 새로 짜는 모심의 삶

제3부 ………… 농부, 세상 속으로 가다
촛불광장에 서서 / 동학농민군과 세월호 참사 / 잠들지 못하는 영혼 / 영덕의 핵전 막기 / ‘진보’의 신개념 / 꿈같은 상상 / 재생에너지는 영원한가? / 자제된 힘 / 농촌 도로에는 왜 인도가 없을까? / 정의로운 음식과 정의로운 사람 / 공동체에서 조화롭게 살기 / 경고? 부탁? 협박? 고백의 언어 / 사람이면 다야? / 밥상을 점령한 유전자조작식품 / 나도 가해자다 / 살충제 달걀, 육식 문화가 문제다 / ‘혁명’과 ‘깨달음’ / 북핵 운전석 앉으려면 미국 움직여야 /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중단해 주십시오” / 상업성 친절의 뿌리, 공짜 점심은 없다 / 농민기본소득, 또 말하기 입 아프다 / ‘가빠 농법’으로 풀 관리하기


책속에서


P. 14~16 명상을 마치고 열이틀 만에 내 휴대전화와 책, 필기도구를 돌려받고 든 생각은, 평소에 우리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을 참 많이 하며 산다는 것이었다. (중략) 감각에 매이지 않고 단지 바라볼 수 있는 힘, 그 힘을 기르는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닥친 일을 바르고 조화롭게 처리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P. 37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곳에서 일하는 그 후배는 늘 긴장이 연속되는 상황에 있었고 긴장은 사건과 사고를 유발했다. 악순환이었다.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오르내렸다. 그에게 ‘요란스럽게 반겨 주는 놀이’를 제안했다. 사소한 일들에도 한꺼번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는 ‘놀이 시간’을 가져 보라고 했다. 특별한 조건이 없이 해 보라고 했... 더보기
P. 44~45 지난겨울은 추위가 유난히 심해서 난방비가 많이 들었다고들 하는데, 가만히 돌이켜보니 우리 집 난방비는 거의 제로(0)에 가까웠다. (중략) 보일러가 없다. 전기장판도 안 쓴다. 대신 아궁이에 불을 때 방을 덥힌다. 그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해서 스위치만 건드리면 난방이 되는 게 아니고, 몸 노동이 필요하다. 나무를 해 와야 하고 (... 더보기
P. 68 (겨울나무는) 추위가 몰려오는데도 껴입지 않고 도리어 한 꺼풀씩 벗는다. 엄한 겨울을 견뎌야 할 자연의 겨울 채비는 실은 봄 채비다. 꽃 피울 새봄을 위해 벗고 버리는 것이다. 비상시국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자연의 가르침이다.
P. 74~75 도리깨질은 칼질 노련한 외과의사 못지않은 정교한 타격이 요구된다. 한 마당만 두드려 주고 가리라 했는데 순애 씨의 입꼬리가 양 귀에 걸린 모습을 보고 한 마당만 더 인심을 쓴다는 게 들깨 다발이 한마당 거리만 남게 되었다. (중략) 내가 도리깨를 내려놓았을 때는 타작마당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더보기



추천글
그의 발길 따라 글맛이 다르다. 김홍도나 신윤복의 풍속화를 닮은 입담이 세태를 밝히기도 하고, 질긴 실사구시의 쓴소리가 영성 회복을 일구기도 한다. 줄기차게 자기성찰하며 발품 파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땀내가 향기로 퍼지기를 바란다. 틈날 때마다 맨발걸음하는 그가 맘 편히 디딜 곳이 많도록.
- 김유경 (예술평론가, 자유기고가)

온전한 존재로 성장하는 여러 방법 가운데, 한울님을 ‘모시고 살리는’ 일상의 삶을 엮은 선생의 글은 읽는 재미와 독서하며 얻는 성찰도 크다. 삶을 수행처럼, 수행을 삶으로 행하며 얻은 통찰 덕분에 하루하루가 신비의 연속이고 매 순간이 신성함을 깨달으니 어찌 感於物 謝於心(감사)하지 않으리. 행함은 부족하고 말만 많은 시대. 行으로 마음 길 내는 힘을 선생에게서 받아 모신다.
- 최현미 (중학교 교사,『나는 오늘도 교사이고 싶다』공동 저자)

저자는 묻는다. 먹고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내 돈벌이는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가. 그 물음에 스스로 답하는 이야기를 엮었다. 나도 살고, 농사도 살고, 땅도 살고 그래서 지구도 살 수 있는, 글 쓰는 농부 전희식의 지혜가 아름답고 즐겁다.
- 강성미 (사단법인 유기농문화센터 원장)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게다.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 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다.
- 윤덕현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9년 4월 1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전희식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1958년에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인천에서 살다가 시절 인연을 만나 1994년에 농촌으로 내려가서 전북 완주에서 12년 전북 장수에서 16년을 살았다.
요즘은 온 삶 상담과 수련 지도, 농촌 지역 통합 돌봄 일에 집중하고 있다.
쓴 책으로 <똥꽃>(2008. 그물코), <아름다운 후퇴>(2012, 내일을 여는 책), <소농은 혁명이다>(2016. 모시는 사람들), <삶을 일깨우는 시골살이>(2016. 한살림) <마음 농사 짓기>(2019, 모시는 사람들) 등이 있으... 더보기

최근작 : <습관 된 나를 넘어>,<지구별 생태사상가>,<개벽의 징후 2020> … 총 2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글 쓰는 농부, 마음 농사를 짓다!!

농사, 농업, 농부, 농촌
한때 ‘아스팔트농사’가 유행이었다. 쌀이나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를 위해, 농민들이 서울로 몰려와 아스팔트를 점거(?)하고 투쟁을 벌인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쌀농사가 오래되었다지만, 그에 못지않은 건 ‘자식농사’다. 전통적인 의미야 어쨌건 간에, 지금으로서는 자식들이 정의롭고 자주적이며 행복한 삶을 산다면, 자식농사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겠다. ‘도시농업’이라는 말이 생긴 지도 오래 되었으니, 도시농부가 있는 건 당연하다. 초기에는 ‘텃밭’ 등에 한정되었으나, 이제 생물 다양성 보전, 기후조절, 대기정화, 토양보전, 공동체문화, 정서함양, 여가지원, 교육, 복지 등의 다원적 가치를 도시에서 구현하며 지속 가능한 도시, 농업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는 전반적인 활동을 일컫는 말로 확장되었다.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
이러저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란 단지 농촌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니 농촌에 사는 농민들이 도시로 올라오고, 도시 삶에 찌든 사람들이 귀농하는 것만이 농사 문제의 전부일 수는 없다. 어느 경우든 농사란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를 가리키는 속 깊은 뜻을 가진 단어임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말하면, 농사란 기르는 일이다. 씨앗을 심고서 기다리는 일이다. 비를 기다리고, 햇빛을 기다리고, 바람을 기다리며 그것들을 모시는 일이다. 기르는 것, 기다리는 것이 시간을 따라 흘러가되, 그것에 정성을 들이는 일이 농사다. 그 정성들임을 일컬어 ‘살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모두가 농부, 농부가 하는 일이 모두가 농사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가 된다. 그러므로 농부는 도시에도 있고 농촌에도 있다. 학교에도 있고 병원에도 있고, 촛불광장이나 공장, 바닷바람 드센 배 위에도 농부는 있다. 기르는 사람, 살리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정성들이는 사람은 누구나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부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농사가 된다. 먹을 것을 기르는 일, 입을 것을 만드는 일, 살 집을 만들고 가꾸는 일, 함께사는 세상, 더불어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하는 일이 모두 농사가 된다.

세상에는 ‘20모작+’을 하는 농부도 있다
오직 내 한 몸으로 지탱하고 경작할 수 있는 농사에 충실한 농부도 있지만, 세상의 심어서 기르고 살리는 정성이 필요한 온갖 일들에 두루 손품과 발품, 하다못해 말품이라도 파는 농부도 적지 않다.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의 저자 ‘글쓰는 농부 전희식’이 바로 그런 경우다. 『똥꽃』을 위시해서 『소농은 혁명이다』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권의 저서를 낸 ‘작가’이기도 하지만, 그는 ‘글쓰기’와 ‘(작물)농사’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전국 곳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품앗이에 여념이 없다. 그가 간여하는 농사일들을 헤아려 보면, 20모작은 너끈히 되고도 남는다.

도리깨질에서 지구의 미래 걱정까지
이 책에 등장하는 그의 농사 너머의 농사일을 눈에 띄는 대로만 언급해 봐도 이는 금방 드러난다; “마음(영성)수행, 민주화운동 역사증언, 이웃 할머니와 어울리기, 마실 다니기, 농촌 체험 단체손님 안내, 해외 명상 유적 탐방, 귀농과 마음수양 강연, 동네 쓰레기 청소, 환경 친화적 난방(땔감나무), 강아지 분양, 농사 용품 재활용, 친환경 생활여건 조성 공공신고 활동, 촛불시위 참여, 동네 어른들 봉양, 동네사람들, 농부의 시각으로 세상 바라기, 농업 관련 국제행사 참가, 귀농 강연, 시민사회활동, 한울살림 활동, 한울농법 보급, 사회장 장례 치르기, ‘\소농혁명운동, 핵전반대 활동, 동학 활동….”

모든 농사는 마음 농사로 통한다
개인적인 활동이든, 긴급한 사회문제에 참여하는 활동이든 그는 모든 ‘농사현장’에서 단지 당면한 농사일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언제나 거리감을 잃지 않고 반성과 조심을 거듭한다. 그 하나하나가 마음 농사짓기이다. 백남기 농부 또는 의로운 한 교장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지나가던 마을에서 우연히 일손을 거들게 된 도리깨 타작마당에 이르기까지, 서울 광화문에서 중국의 한 농촌 마을에 이르기까지 그의 마음 농사짓기는 계속된다. 분명히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에서도 그는 관성적으로 사람과 사건을 대한 태도를 스스로 경계한다. 뿐만 아니라 사물 하나하나에도 그의 마음은 소홀하지 않는다. 동학의 경물(敬物) 사상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그에게는 그것이 체화(體化)되고 심화(心化)되고, 의식화(意識化)되어 있다. 그 눈으로 사람과 만물을 바라보고 그 마음으로 그들과 소통하고, 그 마음을 따라 실천하고 살아간다.

성내지 않는 그 마음이 살리는 마음
일이 많다고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늘 챙긴다고 긴장된 삶의 연속은 더더욱 아니다. 저자가 스스로 “어떤 조건에서도 긴장 없이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일상. 시골에 살면서 겪는 여러 일화들 중심으로 정리한 글들”(9쪽)을 모았다고 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농촌의 삶’이 선사하는 평화와 행복을 만끽하며 산다. 이제는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가 평소에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성을 안 내는 기 고마워. 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아.”(205쪽)라고 말한 그대로 그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든, 해학과 풍자 넘치는 마을에서든 웃는 표정과 넉넉한 마음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가는 곳마다 기다려주고, 함께해주고, 살리고, 기른다. 그 갈피, 순간마다 그는 ‘나를 알아챈다.’

이야기를 만들다, 기록하다, 노래하다
그러고 보면 농사 중에서도 제일은 마음농사다. 마음농사는 쌀농사나 다른 농사를 뒷자리에 놓는 농사가 아니라, 그것을 모시는 농사다! 마음농사는 그 자체로 살리는 일이다. 마음으로 짓는 농사요, 마음을 짓는 농사다. 농사를 짓되 마음에 거리낌을 남기지 않는 농사요, 농사를 지으면서, 마음을 기르는 농사다. 글쓰는 농부 전희식은 그 갈피와 순간들에서 이야기를 발견하고, 기록하고, 노래한다. 스스로 정의하기를, 그 마음 농사짓기는 모두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마음 농사의 시간은 소중하다. 이야기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들이 소중한 것은 그곳에 공감이 담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담은 다시 시간을 따라 그 공간(마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야기텃밭이다, 생각의 텃밭이다, 마음의 텃밭이다.

지금 왜 다시 마음 농사인가?
귀농귀촌은 이제 ‘하면 좋은 것’에서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나는 자연인인다!’ 같은 프로그램이 장년층에게 인기 프로그램으로 고정되는 현실이다. 무엇 때문일까? 1인당 소득 1000불일 때도, 자식 둘셋은 대학을 다녔는데, 소득 3만 불이 되어서는 아이 하나 키우기도 힘들고 50, 60대는 일할 곳이 없는 데 산업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고, 5000만이 넘는 인구에도 ‘출산율’이 안 오른다고 아우성인가. 무엇 때문일까?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숙고하기보다 여전히 외형의 크기와 성장 신화에 매여 있는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마침 3.1운동 100주년이지 않은가. 접기

===

평점
분포

8.7

마이리뷰



농사, 우리 몸과 마음을 살리는 길



귀농해서 살고 있는 전희식의 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몇 년에 걸쳐 다양한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일들을 겪어가는 농부의 일상이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농촌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나오고, 우리나라 정치의 모습도 나오고, 농사에 관한 전희식의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가 원하는 것은 농사는 사람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 어떤 존재 하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존재 하나만 잘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립과 공생이 함께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농사라는 것.



그런 농사의 바탕은 바로 마음이고, 그러므로 농사는 곧 마음 농사이기도 하다는 것. 우리가 마음 농사를 잘 짓는다면 사회가 어지러워질 이유가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있는데 어떻게 혼란한 사회,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겠는가.



그가 촛불을 보면서 한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특정 권력자를 쫓아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삶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촛불이 지닌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이 권력자들의 모습만 바꿔놓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만큼 농사에 대해서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관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먹을거리가 우리 삶에 기본이 되는데, 그 먹을거리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사회는 암울한 미래로 나아갈 뿐인데...



농사를 짓지 않으면 오히려 잘한다고 장려금을 주는 나라, 농민들이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나는 사회에서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고 하면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되받아치는 사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수만 잘 사는 성장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농사를 무시하고 어떻게 성장이 지속될 수 있단 말인가. 전희식은 그점을 답답해 한다. 그래서 그는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먼저 소득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최고임금상한제... 아니면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과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사람의 차이가 20배를 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을 내야 한다고... 그 차익은 다른 사람에게 써야 한다는 것. 만약 돈을 더 벌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임금을 올려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고...



차액으로 남은 이익들은 복지나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귀농해서 살아간다고 사회 문제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귀농해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함께 살아감이 중요함을 농사를 지으면서 매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희식의 글은 농사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를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농사에 대해서, 어떤 농사가 바람직한지, 또 농사를 통해서 우리는 공생의 의미를 깨우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교육에 대해서 지금 말들이 많다. 공정을 추구하는 정권에서 공정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입시의 공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대학입시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누구도 교육에서 농사를 다뤄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농사에 대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그렇게 흙을 만지고 다른 생명을 기르고, 그 생명으로 인해 살아감을 깨우치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는 하지 않는다. 그냥 지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와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을까만 생각한다.



농사를 통해서 공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함께 살아가는 마음을 지니게 할 수 있는데, 또 인간만이 아니라 이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존재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겨나게 할 수 있는데, 미세먼지, 기후변화 이런 것들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교육개혁에서 농사는 다뤄지지 않는다.



그렇게 학생들은 삶에서 농사를 저 먼 우주, 우리가 알 수 없는, 가지도 못하는 우주 이야기로 인식하게 된다. 아마도 전희식이 강연을 거절하지 않고 다니는 이유는, 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못한 이런 농사에 대해서 학생들이 조금이라고 알려주려고 그러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들에게도 농사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고 있으니...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많은 사람들이 즐겨본다는데, 그들 자신이 바로 그런 자연인이 아니더라도 자연인처럼 자연과 동화되어 살 수 있음을, 농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다고 이 책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인공지능 시대 운운하는 이때, 어쩌면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농사가 시대를 이끄는 길임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 접기
kinye91 2019-09-27 공감(19)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이 들려주는 ‘리얼 다큐 수필‘



농부 전희식이 들려주는 '마음 농사 짓기'라는 제목만 보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 책이 나의 마음에 이렇게 울림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읽을까 말까 고민했던 것은 일단 읽고 보니 안 읽었으면 후회했을 법한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농사'를 짓는 '농부'가 들려주는 이야기『마음 농사 짓기』는 다양한 주제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전희식.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운동가다. 도시에 살다가 1994년부터 전라북도 완주, 2006년부터 장수에서 농사짓고 산다. 농민단체와 생명평화단체, 채식과 명상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 농사 짓기-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도 결국은 나를 알아채는 시간이라는, 그런 시간을 살자는, 마음의 심층을 꿰뚫어보자는 권유라고 할 수 있다. (5쪽_머리말 中)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농부, 마실을 나가다', 2부 '농부, 더불어 살다', 3부 '농부, 세상 속으로 가다'로 나누니다. 나를 알아채는 시간, 30년 저 너머에, 단순하게 살기와 잡동사니, 백중 풀베기, 막상막하 연극놀이, 자연농법과 한울살림, 잘 먹는다는 게 뭘까, 촛불광장에 서서, 동학농민군과 세월호 참가, 영덕의 핵전 막기, '진보'의 신개념, 재생에너지는 영원한가?, 농촌 도로에는 왜 인도가 없을까?, 밥상을 점령한 유전자조작식품, 나도 가해자다, 동물복지농장에 대한 살처분을 중단해주십시오, '가빠 농법'으로 풀 관리하기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머리말부터 공감하며 읽어나가게 되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세상의 소리에도 귀 기울이는 농부이기에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명상도 하러 다니고, 자동차를 없애고 자전거를 타거나, 집에 냉방기와 선풍기는 안 들이는 고집도 있다. 세상 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에는 높일 줄 아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농촌에서의 삶이 궁금해서 읽어나갔지만 그곳에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 여행을 가거나 명상 혹은 연수를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기대 이상의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편의 영상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선명한 이미지가 그려질 때가 많다. 그것은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일상의 생생한 체험과 실천으로부터 우러나온 살아있는 글이기 때문일 게다. 소소한 일상의 깨달음에서부터 문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긴 '리얼 다큐 수필'들을 한 편씩 시청하다보면 따뜻한 된장 국물처럼 위로를 얻을 때도, 혹은 겨울산 약수처럼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을 것이다.

_윤덕현 (다큐멘터리 감독,『가슴의 대화』저자)




이 책은 읽기 전보다 읽으면서 글의 힘을 느낀 책이다. 각각의 글이 <경남도민일보>에 실렸거나 <불교신문>, <오마이뉴스> 등에 썼던 글을 묶는 등 이미 발표한 글이기에 완성도가 더 높은 글을 엄선해서 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느낌으로 책을 접하든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줄 책이라 생각된다. 그야말로 '리얼 다큐 수필'의 진수를 볼 수 있으니 일독을 권한다.
- 접기
카일라스 2019-04-12 공감(6) 댓글(0)
Thanks to
공감



나를 알아갈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책..



마음 농사 짓기 조금 생소한 책 제목 때문에 책을 선택해서 읽게 되었다.
친환경농사 관련 도서인가? 아님 시골로 내려간 도시사람 얘기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농사 관련도서가 아닌 읽는 사람들에게 시골의 따뜻한 모습과
감성을 전달해주는 책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정도로 농사관련 내용보다는 저자 자신이
시골 생활에서 겪고 느끼는 삶의 한부분을 표현한 책으로 보는것이 맞을듯 싶다.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농사에 전념해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닌 자신이 시골이 좋아서 도시생활하다가
시골로 내려가서 시골생활 이야기과 채식, 명상 관련 책을 쓰고 여기저기 바쁘게 강의도 하면서 살아가는
농부 보다는 농부의 마음을 가진 전형적인 마음이 시골인 사람으로 생각해볼수 있다.
책의 내용은 3부분으로 1부는 자신의 시골생활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룬다면 2부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골생활 모습에 대한 궁금한 내용을 다루는 시골생활의 궁금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였고 3부에서의 내용은 우리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사회문제까지
커져가는 먹거리 문제에 대한 내용으로 많은 의견과 생각이 필요한 책으로 시작은 궁금함으로 책을 읽었다면
마지막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말고 어서빨리 고치고 바꾸지 않으면 미래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중요한
사항에 대한 내용까지 다루어서 사회적 이슈 문제로 크게 생각해봐야 되는 내용으로 1부에서는 작은 개인적인 사실 내용을
다루고 2부에서는 우리라는 생각으로 좀더 커다란 내용을 만들어 갔다면 3부에서는 모두의 문제로 아주 커다란 사회문제까지
그냥 농부가 아니라 책 내용 그대로 세상속으로 가는 농부를 심도있게 이끌어 보인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예전에 있던 시골 인심도 사라져가고 먹거리 농산물로 기업에서 장난으로 인해서 우리가 가정의 식탁의 의험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의 모든 시작이 땅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끝나는 것인데 사회가 너무 이익을 보기위해서 어서빨리 달라져야 함을
이책 곳곳에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촛불광장 이야기..
세월호 참사 이야기..
살충제 달걀 이야기.. 등등 이제는 달라지지 않으면 모두가 함께 사라져버리는 위기의 단계까지 왔음을 인지하고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고 이제라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밝은 미래가 없음을 저자는 자신의 위치에서
알리고자 강연회와 세계 여러곳을 다니며 알리고 있다.
지금은 저자 하나의 작은 소리로 생각 되지만 모두 함께 외친다면 커다란 소리가 될수 있음을 인지하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저자의 이야기를 이 책을 읽으므로해서 나부터도 아주 작은것부터라도 실천을 해보려 한다.
- 접기
ksmhanmail 2019-04-17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별난 주장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은‘ ? - [마음 농사 짓기]



'별난 주장도 아니'고 '특별하지도 않은' ? - [마음 농사 짓기]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 운동가' 의 글을 만난다. 요란 떨지 않고 말 그대로 차분하고 소소하고 마땅한 이야기들이다. 쉬 읽히고 쉽게 다가온다. 책장을 넘기는 게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하다. 물론 적극적?으로 자극적인 글을 찾아 만나는 내게는 참 많이도 심심하고 담백한 그러 이야기들이다.


오늘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라 ( ~ ) 오늘의 나는 오늘 이렇게 살고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나는 과거 모든 순간들의 총합이라는 ( ~ ) 과거 어느 한 부분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모두는 한 덩어리로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 ( ~ ) 별난 주장도 아니요 특별하지도 않은 진리다 (19)

세상은 뭐가 바뀌어야 달라졌다고 할 수 있는가. 세상은 ㅜㅁ엇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거기에서 나는 무엇인가. 어디쯤에 위치하는가. (20)

살아가며 문득 던져 보았거나 생각해보았던 질문들이 곳곳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농부의 발길을 따라가다, 나는 멀리 떨어져 있구나, 그렇지 나는 도시생활을 하는 '생태'도 '영성'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그러다가 늘 알고 있지만 실천은 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눈길이 멈춘다.


"정리정돈의 핵심은 제자리에 놓기가 아니라 버리기" (30)

조건을 따지지 않고 수용하는 것,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 박수와 환호로 상대를 반기는 것, 자연의 속성이 그러할 것이다. (37)

그래서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이리라. 너덜너덜해지는 일상 속에서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시간 속에서 평소 지나치던 순간을, 뻔한 이야기를, 다른 눈으로 다른 소리로 들려주는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가 아니라 '차레'라는 말과 '저를 드린다'는 '절'의 어원까지, 신선하고 설득력 있는 얘기들이다.


차례가 아니고 차레하는 것이다. 차례(茶禮)는 한자말의 훈에 있듯이 차를 올려 제사를 지낸다는 것으로 물이 탁해서 늘 차를 달여 마셨던 중국 얘기이고, 앞뒷산에 약수가 철철 흐르는 우리나라는 차례가 아니라 차레를 했다는 것이다. 차레는 채우고 비운다는 뜻이다. 모든 재례는 결국 채우고 비우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비워 내고 나서 채우는 게 아니라 맑고 밝은 사랑과 용서와 포옹으로 채워 나가면 탁하고 어리석은 욕심스런 것들이 그냥 비워진다는 얘기다. (69)

어느 지혜로운 사람이 일러 주었다. "절을 드린다."는 "저를 드린다."가 어원이라고 (203)


그리고 개인과 사회를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바라보게 될 다양하고 넓은 시선, 몸과 마음의 이분법을 넘어 도달하는 지점, 밖과 안에서 동시에 싸워야만 이룰 수 있는 그 '어떤 혁명'에 대한 이야기도.


어떤 혁명도 개인의 버릇과 삶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면 실패하는 법이다. 한 개인이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뀌고 그 변화가 사회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 진정한 혁명이라고 본다. (113)

내용과 형식, 안과 밖이 하나 되는 삶이란 지루하고 길고 힘든 시간을 거쳐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곳이리라. 그렇게 분투하고 채우고 버리며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도 고민해야겠다. 그러니까 심심하고 담백하게 보이던 책 속에서 이처럼 여러 생각의 뿌리들이 쏟아져 나오니 지루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글 쓰는 농부'이자' 생태영성 운동가' 의 소소한 일상이.


먹고살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는가. 그만큼 벌면 나는 행복할 것인가. 꼭 그렇게 벌고 쓰고 살아야 하는가. 내가 쓰는 돈이 다 나를 살리는 지출인가. 나를 도리어 지치게 하는 지출인가. 내 돈별이는 생태윤리적으로 당당한가. 전 세계인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써도 괜찮은가 (186)

내 대답은
"뜨끔" 이라고..
- 접기
들풀처럼 2019-04-22 공감(0) 댓글(0)




마음농사 짓기


1998년 12월 6일 우리 부부가 결혼한 날이다. 햇수로 20년이 되었다. 성격이 많이 다른 두 사람이 만났으니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이런 싸움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경상도 사람 특유의 무뚝뚝함과 큰 목소리가 꼭 싸우자는 듯하다. 게다가 성격이 느긋한 것 같은데 급하다. 그래서 버럭 거리기 일수다. 오죽했으면 아내가 버럭이 아빠라고 부를까? 매년 신년 계획을 세울 때 1차 목표가 다정다감으로 삼는다. 물론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세상살이가 만만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가족에게 주는 고통이 작은 것이 아니다.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마음 농사짓기] 와의 만남은 7년 대한에 만난 한줄기 단비와 같다. 농사는 심어서 기다리며 기르고 살리는 일이다. 새해가 시작되면 날 좋은 날을 가려 씨앗을 심어서 온 정성을 드려 보듬어 주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랑을 나누며 기다려 주는 것, 그렇게 결실을 맺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꼭 결실을 거둬야겠다. 는 마음 또한 욕심이다. 그것조차 내려놓고 편안함으로 만나는 것이다. 책에는 그런 마음이 잘 담겨져 있다. 더욱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두려워한다. 혼밥, 혼술, 혼영등 혼자서 즐기기를 원한다. 이것이 단지 혼자라서 좋은 것이 아니라 혹시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은 아닐까?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마음 농사짓기] 이럴 때 이 책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생태농부 전희식이 일상에서 펼치는 다양한 마음씀씀이가 두려워하는 당신을 잘 감싸줄 수 있을 것이다.
- 접기
손세학 2019-04-16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검색 결과 총 16

1.
  • [국내도서] 똥꽃 - 농부 전희식이 치매 어머니와 함께한 자연치유의 기록 
  • 전희식김정임 (지은이) | 그물코 | 2008년 3월
  • 12,000원 → 10,800 (10%할인), 마일리지 600원 (5% 적립)
  •  (11) | 세일즈포인트 : 2,115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2.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 이 책의 전자책 : 9,800원 전자책 보기
3.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4.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5.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 이 책의 전자책 : 9,270원 전자책 보기
6.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 이 책의 전자책 : 11,200원 전자책 보기
7.
  • 양탄자배송
     내일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8.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9.
  • [국내도서] 소농은 혁명이다 - ‘똥꽃’농부 전희식이 꿈꾸는 희망농촌 
  • 전희식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 2016년 5월
  • 13,000원 → 12,350 (5%할인), 마일리지 650원 (5% 적립)
  •  (2) | 세일즈포인트 : 185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 이 책의 전자책 : 9,100원 전자책 보기
10.
  • [국내도서] 엄마하고 나하고 - 치매 어머니, 아들과 함께 다시 세상을 만나다 
  • 전희식 (지은이) | 한국농어민신문 | 2010년 2월
  • 12,000원 → 10,800 (10%할인), 마일리지 600원 (5% 적립)
  •  (1) | 세일즈포인트 : 154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4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12.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 이 책의 전자책 : 8,400원 전자책 보기
13.
  •  출판사/제작사 유통이 중단되어 구할 수 없습니다.
14.
  • [국내도서] 마음 농사 짓기 - 농부 전희식의 나를 알아채는 시간 
  • 전희식 (지은이) | 모시는사람들 | 2019년 3월
  • 15,000원 → 14,250 (5%할인), 마일리지 750원 (5% 적립)
  •  (6) | 세일즈포인트 : 100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15.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
16.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2월 13일 출고
    (중구 서소문로 89-31) 지역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