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생명사상 너무 빨리 왔지만 이젠 지구적 과제”
강성만기자수정 2026-07-04
[짬] ‘김지하를 다시 본다’ 엮어 낸 임진택 명창
임진택 명창이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강성만 선임기자광고
2022년 6월25일 서울 천도교 대교당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 49재 추모문화제’에는 함세웅 신부와 이부영 동아투위 위원장 등 시민사회 원로와 소설가 황석영·윤정모, 철학자 김용옥 등 5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앞서 5월8일 시인이 세상을 뜨고 차려진 빈소의 “세상 썰렁한”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쓸쓸한 장례식 뒤 고인의 친구 이부영 위원장과 후배 유홍준 교수, 임진택 판소리 명창이 추모제 준비에 팔을 걷었다. 시를 무기로 박정희 군사정권과 맞서 네 차례 옥고를 치렀고 1980년대 초부터는 일찍이 생명사상을 한국 사회에 설파한 고인을 “이렇게 보내선 안 된다”며 뜻을 모은 것이다. 셋은 이듬해 염무웅 문학평론가와 함께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김지하 1주기를 추모하는 학술심포지엄도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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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은 최근 천쪽이 넘는 책 ‘김지하를 다시 본다’(개마서원)를 엮어냈다. 시인의 문학·예술과 생명사상을 집중적으로 검토한 1년 전 심포지엄 발제·토론문에 더해 주로 생명사상에 초점을 맞춘 고인의 산문 8편을 묶었다.
`민족예술창작원-마당판’ 예술총감독을 맡고 있는 임진택 명창을 지난 6일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옆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지하를 다시 본다’ 표지.임 명창은 이번 책에 실은 시인의 산문 선정을 전담했고 유홍준 교수가 이사장, 자신이 상임이사인 이애주문화재단에서 출판 비용도 부담했다.
먼저 왜 김지하 추모 사업에 열성인지 물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김지하 시인과 백기완 선생입니다. 김 시인이 설사 능멸 받아야 할 그런 일을 했더라도 저는 비난을 삼가야 할 입장입니다. 김 시인이 1991년 조선일보에 쓴 기고(`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시인이 붙인 원제는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와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품은 것을 두고 (진보 진영으로부터) 변절 혹은 배신했다는 말을 들었잖아요. 저는 항변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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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인이 오랜 시간 ‘정신적 혼돈’으로 힘들었다면서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기력이 있을 때의 말과 글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시인은 74년부터 6~7년 옥고를 치르는 동안 독방 생활을 오래 했고 심지어 1년반 동안은 독서와 접견조차 금지당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죽음에 가까운 체험을 하고 생명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과 함께 정신적 혼돈을 겪습니다. 80년대 후반 이후엔 정신적 각성과 맞물려 반복되는 혼돈의 시간이 길어졌어요. 병원에도 여러 차례 드나들었죠. 1991년 조선일보 글도 이런 건강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서울대 외교학과 2학년이던 1970년 문리대 연극회에서 김지하 선배를 처음 만난 그는 시인이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했다. “제가 1974년 민청학련으로 구속되고 어느 날 호송차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지하 형을 우연히 만났어요. 그때 저에게 유언처럼 말하더군요. 내가 꼭 하고 싶은 일이 문화운동인데 나는 죽으니 네가 하라고요.”
이 말을 따라 그는 석방 뒤 김지하 담시(이야기시) `소리내력’을 판소리로 만들어 자신이 직접 기획한 ‘구속자 석방 촉구 문화행사’에서 공연하기 시작했다. 임진택 문화운동의 출발이었다.
후배들에게 ‘두목’으로 불린 지하 형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자신의 호를 ‘한목’으로 지었다는 그는 시인을 활, 자신을 화살에 비유했다. 그는 한국 연극사에서 첫 마당극으로 기록된 ‘청산별곡’(원제 ‘진오귀’, 김지하 극본, 임진택 연출, 1973년)을 들어 그 뜻을 풀었다. “당시 김 시인이 처음으로 ‘마당극’이란 말을 쓰면서, 저에게 탈춤과 연극을 결합한 새로운 양식의 농촌계몽 연극 공연을 하자고 이끌었어요. 원주에서 연습하다가 작품이 보류된 뒤 제가 작품명을 ‘청산별곡’으로 바꿔 서울제일교회에서 공연했죠. 김지하라는 활이 쏜 화살이 되어 첫 마당극을 연출한 거죠.”
김지하 담시 ‘소리내력’, ‘똥바다’, ‘오적’ 세 편을 판소리로 창작한 임 명창은 박동실과 박동진 명창의 뒤를 잇는 자신의 창작판소리도 김지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김지하 담시는 전무후무합니다. 김 시인 말고 누구도 지금껏 담시란 말을 쓴 적이 없어요. 김지하 담시로 만든 ‘창작판소리’는 기존 박동실 박동진 명창의 ‘신작 판소리’와는 문법이나 구성에서 달라요. ‘신작 판소리’는 주로 인물전인데 비해 김지하 담시에 바탕한 ‘창작판소리’는 파격과 전복 등의 문법으로 옛 판소리의 틀을 완전히 바꿨어요. 진정한 의미의 ‘창작판소리’입니다.”
2년 전 시인의 썰렁한 빈소 보고
이부영 위원장·유홍준 교수 등과
추모 문화제·학술 심포지엄 열어
최근엔 학술행사 글 모아 책 출간
고인의 생명사상 대표산문 8편도 실어
“한국 첫 마당극 만든 임진택은
김지하란 활이 쏜 화살이었죠”
“지하 형, 오랜 기간 ‘정신적 혼돈’ 겪어
변절이나 배신 비판은 항변의 여지”
두 사람의 동행은 시인이 80년대 들어 생명사상에 경도된 뒤에도 이어졌다. 실천문학사 주관으로 1984년 남원의 은적암 등 동학 유적지를 둘러보는 사상기행에 함께했고 2003년부터 4년 동안 김 시인이 주도하고 경기문화재단이 지원한 ‘세계생명문화포럼’도 같이 이끌었다.
“지하 형이 1982년에 자신이 초고를 쓴 글 ‘생명의 세계관 확립과 협동적 생존의 확장’을 저에게 보여주며 의견을 묻더군요. 지학순 주교, 장일순 선생 등이 함께 검토한 이 보고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생명운동을 정리한 문건으로 한살림 선언(1989년)의 토대가 되었죠.” 그는 이 ‘원주 문건’을 보고 “형님 말씀이 백번 옳은데요. 너무 빨리 나온 것 같네요. 40년쯤 후라면 몰라도…”라고 답했단다.
“지하 형은 그 글에서 지금 인류 앞엔 전쟁과 핵폭탄으로 한꺼번에 바로 죽는 것과 수은과 같은 중금속 중독 등으로 서서히 죽어가느냐 양자택일의 길밖에 없다는 생각을 펼쳤어요. 사람 살린다는 과학과 문명이 실제론 사람과 생명체들을 죽이고 있다는 거죠. 저는 그 주장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고 답하면서도 바로 받아들였어요.”
40여년 전 그에게도 생소했던 생명운동과 생명사상은 이젠 우리 사회에서 무시 못 할 화두가 되었다. 이번 책이 고인의 생명사상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생명사상가 김지하’에게서 주목할 점이 뭐냐고 하자 그는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시인이 처음으로 동학사상에 바탕해서 생명사상을 펼쳤다는 점이다. “김 시인은 무엇보다 수운 최제우의 시천주(내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뜻) 사상에 주목하면서 ‘모심’을 생명사상의 핵심으로 제시했어요. 해월 최시형의 향아설위(제사를 벽이 아닌 사람 자신을 향해 드린다는 뜻)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동학뿐 아니라 유사종교로 따돌림당하던 증산도에서 개벽사상을 처음 끌어낸 점도 평가받아야죠.”
동학 전문가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이번 책에 실린 글 ‘김지하 생명사상의 뿌리’에서 “김지하는 수운 사상을 모든 우주 자연을 하나의 통일적인·유기적인 생명체로 보는 관점으로 풀었다”고 밝힌 뒤, 김지하가 동학을 생명의 사상, 생명의 세계관으로 풀어낸 일은 ‘개벽적’ 일대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임 명창은 시인이 생명과 자치의 연계를 강조한 것도 높이 봤다. “시인은 정치의 생명은 자치에서 시작한다면서 지방 자치에서 살림의 정치가 가능하다고 봤어요. 생명론에 입각한 정치행동을 강조해 동학의 포접처럼 지역마다 정치 조직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했죠. 시민의 자율성과 개별성을 중시해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는 말까지 했고요. 또 과학기술의 발전을 내다보면서 직접민주주의를 예견한 것도 주목할 만하죠. 실제 훗날 스마트폰 등 기술 발달로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기반이 마련되었잖아요.”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임진택 명창. 강성만 선임기자그는 이번 책에 실린 1980년대 이후 고인의 글을 두고 섬광(번쩍 비친 깨달음)과 섬망(인지기능 장애가 생기는 일시적 상태)의 교차 속에서 엄청난 독서와 건곤일척의 사색으로 나온 글이라고도 했다. “2004년에 형이 쓴 ‘생명평화선언’을 보면 우주로까지 사유의 지평을 확장해 생명론을 펼치고 있어요. 정신적 혼돈 속의 치열한 각성을 통해 생명의 본성을 밝히고 현대 문명을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비판하는 뛰어난 글이죠.”
인간 김지하는 한마디로 어떤 사람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악을 일부러 가장한다는 뜻을 담은 “위악자”라고 답했다. 그가 새로 만든 말이란다. “제가 ‘형, 굳이 왜 그런 이야기를 지금 해’하면 김 시인은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어떤 비판이 있더라도 지금 해야 한다’고 답했어요. 좋은 소리를 해 대접받으려 하지 않고 비겁하게 물러서지도 않는 ‘도도한 위악자’였습니다. 형이 가장 많이 한 말이 ‘공부해라, 정신 차려야 한다’였죠.”
인터뷰 중 티브이 화면에 비친 윤석열 체포 촉구 시위대를 보던 임 명창은 김지하가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를 보며 했던 말을 들려줬다. “2008년 시위를 두고 ‘저것이 민주주의다. 개벽의 조짐을 봤다’고 말하더군요. 당시 촛불 시위는 가정주부들이 아기들과 함께 나오는 등 시위가 매우 자발적이고 비조직적인 형태로 이뤄졌잖아요. 2002년 월드컵 응원과 2008년 촛불을 보면서 사회 대개혁을 넘어 문명의 대전환까지 예감했던 것 같아요. 2024년 말부터 추운 겨울, 젊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벌이는 저 열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시위 장면은 김지하 시인이 예견한 것처럼 혁명을 넘어 개벽을 향해가는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지난해 함세웅 신부와 이부영 위원장 등 민주화 원로들 중심으로 꾸린 ‘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인 임 명창은 인터뷰 끝에 이런 말을 했다. “김지하가 생명을 말한 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은 기후문제가 ‘기후위기’ ‘기후재앙’으로까지 다가왔고, 바로 몇 해 전 미증유의 전염병 코로나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었잖아요. 지난번 바이러스보다 두 배만 센 놈이 와도 우리 의료로는 감당할 수가 없어요. 지금 당장 윤석열 체포와 내란 종식이 급선무이고, 또 바로 ‘사회 대개혁’을 위한 논의들이 추동되어야 마땅하지만, 더불어 이제는 ‘문명 대전환’이라는 명제가 국가 방략으로 공론화되고 전 지구적 당면과제로 확산 논의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김지하를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김지하가 밉더라도 우리는 생명사상을 보편화하고 생명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구라는 별에 사는 우리는 갈 데가 없어요.” 이런 말도 했다. “70년대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었던 김지하 선배가 그동안 숱한 오해와 비난 속에 있었기 때문에, 저는 김지하의 진심을 두둔하기 위해서라도 줄곧 부당한 권력과 맞서는 투쟁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변절’이라는 멍에를 벗겨드려야 했으니까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