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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위당 장일순은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시대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찾았고,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함께했다. 그는 ‘시대와 불화’하는 이들에게 기대고 싶은 스승이자 머무르고 싶은 안식처였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폭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목차
추천하는 말: 무위당의 생애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그린 귀한 책 5
1. 글을 시작하면서
생전에 만나지 못한 죄책감에서 21 / 헨리 데이비드 소로와 무위당 장일순 25
2. 출생과 성장
부농의 아들, 비범한 선대 33 / 서울의 배재중고등학교로 유학 38 / 국대안(國大案) 반대에 앞장서다 43
3. 전쟁 경험과 교육사업
총살 직전에 겨우 살아 돌아오다 49 / 청소년 교육에 온 힘을 쏟다 53
4. 정치 활동의 좌절, 그리고 결혼
총선에서 떨어지다 61 / 엘리트 여성 이인숙과 결혼 64 / 중립화 통일방안에 매료되다 68 / 사회대중당의 혁신적인 정강정책 73 / ‘영세중립화 통일’을 역설한 선거유세 75
5. 8년형 선고, 3년 수형생활
5·16 쿠데타 이후 구속되다 83 / 쿠데타 세력의 민간인 대량학살 음모 87 / 쿠데타 사법부, 8년 징역 선고 88
6. 옥고와 고난의 세월
서대문형무소 수감과 부인의 옥바라지 97 / 동서의 고전 읽으며 옥살이 102 / 군부정권 참여 제안을 단호히 거부하다 106
7. 출감 이후의 활동
3년 만에 출감했으나 111 / 학생들 굴욕회담 반대시위로 이사장에서 물러나 114 / 자신에게 진실하고 타인에게 거짓되지 않는 삶 120
8. 가톨릭을 기반으로 한 사회개혁운동
지학순 주교와 만나다 127 / 평신도 중심의 자립하는 교회 132 / 장일순의 신용협동조합운동 137 / 남한강 대홍수와 재해대책사업위원회 활동 142 / 탄광촌에서 광부들 의식을 일깨우다 150
9. 유신체제의 폭압 속에서
한국 천주교 최초의 시민문화센터, 원주 가톨릭센터 159 / 맑은 성정과 사심 없는 포용력 165 / 지학순 주교,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다 168 / 원주를 민주화의 해방구로 만든 두 사람 175
10. 생명운동으로 동학을 부활시켜
동학과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부활시키다 183 / 사회활동 기조가 된 동학사상 187 / 작은 벌레도 거룩한 스승이다 190 / 실천하는 행동인, 고뇌하는 사색인 192 / 생명사상의 원류, 동학 195
11. 깨어 있는 지식인들의 교사
민주화 운동가들의 정신적 구심체 203 / 다시는 그런 인물 나오기 힘들 것 207
12. 저항과 예술의 변증법
유신의 심장을 겨눈 비수, ‘원주선언’ 213 / 난을 닮고 난을 치다 218 / 개성 있고 생명력 있는 글씨, ‘무위당체’ 226
13. 다시 반동의 시대를 겪으며
청강(靑江)에서 무위당(无爲堂)으로 235 / 복권되었으나 정치참여 안 해 238 / 신군부 쿠데타, ‘서울의 봄’ 짓밟다 241 / 광주학살 주범 전두환의 5공화국 출범 245 / 폭압 속에 저항자들 보듬어 250
14. 한살림운동: 밥상살림, 농업살림, 생명살림
‘한살림운동’을 시작하면서 259 / 「한살림선언」 통해 생명운동 지향성 밝혀 268 / 화합의 논리, 협동하는 삶 271 / “이 땅의 사람들이 사람답게 사느냐” 273 /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나는’ 276
15. 다시 반동의 시대를 겪으며
김민기의 <아침이슬> 283 / 눈물 많고 정이 깊은 사람 289 / 강연회가 된 해외여행 292 / 국무총리직 제안을 거절하다 297
16. 해월 최시형 추모사업
해월 최시형 추모비문 세우다 303 / 최시형 추모비를 세운 이유 307 / “아이들까지도 지극히 섬기는 모범적인 삶” 310 / “들풀 한 포기에도 존경을 바치는 마음” 313
17.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다
겸손한 마음, 부드러움의 철학 321 / 무욕의 자세로 보통사람이 되고자 326 / 오염되지 않는 도덕의 목소리 329
18. 올곧은 정신으로 깨어 있기를
병고에도 왕성한 활동 337 / 대학에서의 특강과 열띤 반응 344 / ‘자기를 속이지 않는 삶’ 349 / ‘노자’를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다 354 / 이현주 목사와 ‘노자 대담’, 책으로 묶여 356
19. 삶의 이삭 줍기
추수 끝난 논에서 주운 이삭 몇 알 365 / “무위당 선생은 지성스러운 분” 366 / “다음에 작품이 필요하면 또 찾아오십시오” 367 / 부채질로 아내를 재우다 369 / 올 수 없는 아이들 369 / 아인슈타인과 서신 교환 370 / 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372 / 원주천 둑방길에서 주워 핀 담배꽁초 373 / 스스로 매 맞은 사연 374 / 원주에서 길을 물어야 376
20. 운명 그리고 삶의 궤적
자택에서 조용히 눈을 감다 381
덧붙이는 말: 고결한 삶, 참되게 살아온 생애 389 / 무위당 장일순 생애 연보(年譜) 397 / 주(註)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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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시대 구분의 편의상 일제강점기에서 해방된 뒤의 역사를 현대사라고 치면, 한국 현대사 70여 년은 다른 나라(민족)의 700년에 버금가는 격변과 격동의 시기였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 사자는살아있다
추천글
“당대의 논객이자 우리 근현대 인물연구의 권위자이신 김삼웅 선생님께서 『장일순 평전: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을 쓰셨습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첫 ‘평전’이 됩니다. 『장일순 평전』은 다른 여러분들이 시도했다가 중도에 접기도 한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부담이 있는 일입니다.
『장일순 평전』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변곡점들과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원주 지역 인사들과 무위당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함께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보면 선생님의 내면에서 움직여갔을 생각의 변화도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간에 축적된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서 생명사상의 얼개도 짐작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삶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위당의 생애를 느낌표 많은 글로 단정하고 아름답게 그려주신 귀한 책입니다.”
- 이철수 (목판화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휴심정 5월 21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19년 5월 17일자 '새책'
문화일보
- 문화일보 2019년 5월 17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삼웅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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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사의 물줄기를 인물 중심으로 추적해 온 대표적인 역사학자이자 평전 작가. 2025년 제2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했다.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과 성균관대 교수를 거쳐 제8대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했으며, 동학·천도교 사상과 3·1혁명, 독립운동사를 관통하며 민족사의 주체적 흐름을 복원하는 데 힘써 왔다.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 규명 및 제주 4·3 사건, 민주화운동 관련 위원회에서 핵심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로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을 재조명하는 데 주력해 왔다.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를 비롯해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이승만 평전》, 《박정희 평전》, 《김대중 평전》, 《노무현 평전》, 《신영복 평전》, 《3·1혁명과 임시정부》 등 평전 집필을 통해 많은 역사 속 인물들을 기록해왔다. 접기
최근작 : <이종일 평전 : 언론의 길을 묻다>,<할 말이 있다>,<만해 한용운 평전> … 총 192종 (모두보기)
무위당사람들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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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위당사람들은 무위당 장일순이 평생 추구한 생명운동과 협동운동, 지역공동체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국의 한살림 조직과 협동사회단체와 견고한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 협동운동과 생명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무위당사람들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선구자이자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며, 교육자이자 서예가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기리고 세상에 알리고 있다. 무위당사람들은 전국의 12개 무위당학교와 연계하여 생명운동에 관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감으로써 서로 연대하며 함께 잘 사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www.muwidang.org | T. 033-747-4579 접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나라 생태·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현실에 참여했던 장일순
서거 25주기를 맞아 ‘무위당사람들’이 감수한, ‘무위당 장일순 첫 평전’ 출간!
사람들은 장일순의 어떤 모습에 그를 따랐고, 왜 지금도 여전히 그리워하는가?
무위당의 생애를 단정하고 아름답게 그린 귀한 책!
무위당(无爲堂) 장일순은 시대를 내다보는 깊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하고, 시대마다 자신에게 맡겨진 역할을 찾았고, 소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늘 소외되고 핍박받는 민초들과 함께했다. 그는 ‘시대와 불화(不和)’하는 이들에게 기대고 싶은 스승이자 머무르고 싶은 안식처였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폭압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하고, 피폐해진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전개했다.
장일순은 지구의 종말을 재촉하는 물질문명 대신 생태문명론을 줄기차게 제시한 생명·생태운동과 협동운동의 선구자였다.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사유하는, 20세기 후반 시대정신의 표상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 체하지 않았고, 관직을 맡지도 않았다. 수많은 연설과 인터뷰를 했지만, 글 한 편도 책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가는 곳마다 존경을 받고,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설까?
무위당 장일순의 치열하고 폭넓은 삶과 심오한 사상을 담은 평전을 쓰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마음에 부담이 되는 작업이고, 실제 여러 사람이 시도했다가 중도에 포기할 만큼 녹록지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장일순의 평전이 나오지 못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장일순 평전』에서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사상을 객관적이고도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장일순의 서거 25주기(5월 22일)를 기념해 출간된 이 책은, 무위당이 평생 추구한 사상과 운동을 따르고 실천하는 모임 ‘무위당사람들’이 감수한 ‘무위당 장일순의 첫 평전’이라 더 큰 의미가 있다. 무위당의 대표적인 시서화 작품 50여 점과 함께,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무위당의 사진들(무위당 선생의 유족 측에서 제공)도 함께 실었다.
“무위당 선생님의 첫 ‘평전’입니다. 무위당 선생님의 삶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기회이자, 무위당의 생애를 느낌표 많은 글로 단정하고 아름답게 그려주신 귀한 책입니다.”―이철수(판화가)
민주화운동, 협동운동, 그리고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
무위당 장일순은 세상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정의의 가치와 자연의 이치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았다. 정의가 무너진 시대에는 정의와 진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투쟁하며 싸웠다.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창하다가 박정희 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해 투옥되어 3년 동안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학순 주교와 함께 사회개혁운동과 신용협동조합운동, 사회문화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박정희와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며 원주를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으로 만들었다.
또한 장일순은 동학과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부활시켜 그때까지 생명·생태사상이 척박한 이 땅에 생명·협동운동의 주춧돌을 놓고, 도농직거래 조직 ‘한살림’을 세운 뒤에 가장 실질적인 녹색운동이고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인 한살림운동을 펼친다. 한살림운동은 ‘생명’이라는 시대정신과 ‘협동’이라는 전통적이고 구체적인 가치가 결합된 운동으로, 표면적으로는 농산물 직거래 조직이지만 병들고 죽어가는 이 땅의 하늘과 흙과 물과 밥상을 살리자는 운동이다. 장일순은 민주화운동, 협동운동에 이어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뜻을 실천하며 살았다.
장일순은 이처럼 치열하게 살면서도 많은 사람을 벗으로 사귀고 자신을 낮추며 살았다. 그는 ‘밑으로 기어라’를 실천하며, 겸손하고 고결하게 살다 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봉산동 토담집에는 군 장성에서부터 장바닥 아주머니들까지 그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한 사람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지극함으로 따뜻하게 맞았다. 그가 떠난 지 25년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를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의해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참되게 살다 간 ‘참사람’, 무위당 장일순의 첫 평전!
장일순은 실천하는 행동인이자 고뇌하는 사색인이었다. 참으로 참되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참되게 산 ‘참사람’이었고, 어느 철학자보다 사상의 깊이가 깊었다. ‘걸어다니는 노자’라는 말을 들을 만큼 노장사상에 조예가 깊었고, ‘살아 있는 해월(최시형)’이라고 불릴 만큼 동학사상에 대한 연구도 전문가 못지않았다. 틀에 박힌 것을 무시하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그것도 도덕적인 품위와 순수성을 지키면서 걸었다. ‘제일 잘 놀다 간 자유인’이라는 평처럼, 그는 자유인이었고, 그 자유는 도덕률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길에는 동반자도 많았고, 그가 뿌린 씨앗은 여전히 자라고 있다.
이런 장일순의 모습을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아내는 일은 녹록지 않은 작업이다. 마음에 큰 부담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무위당의 삶과 사상을 담은 평전이 지금까지 나오지 못한 것은 이런 까닭들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사)무위당사람들에 따르면, 여러 사람이 ‘장일순 평전’을 쓰려고 시도했다고 중도에 포기했다고 한다. 『장일순 평전: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은 장일순이 떠난 지 25년 만에 처음 출간되는 평전이자, 무위당이 평생 추구한 사상과 운동을 따르고 실천하는 모임 ‘(사)무위당사람들’이 감수한 ‘무위당 장일순의 첫 평전’이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 유족 측에서 제공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장일순의 사진들은 물론 그의 대표적인 시서화 작품 50여 점도 함께 실어 더욱 뜻깊은 책이다.
‘우리 시대의 논객이자 대한민국 근현대 인물 연구의 권위자’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장일순 평전』을 통해 무위당의 치열한 삶과 심오한 사상 세계를 이해하기 쉽게 들려준다. 장일순의 삶과 사상은 지속가능한 생태적 삶과, 인간은 물론 뭇 생명들과 함께 사는 상생의 시대를 고민하는 우리에게 좋은 지표이자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장일순이 남긴 많은 유산 중에서도 가장 값진 유산은 ‘그이처럼 살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가치관의 새 지평을 열어준 것이라 한다. 장일순의 고결한 삶만이 남길 수 있는 유산이기 때문이다.
장일순은 높은 관직을 맡지도 않았고, 책 한 권도 쓰지 않았는데 가는 곳마다 존경을 받고,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선다. 왜일까? 저자는 그 이유를, 지식인으로서 정직함과 엄격성, 불의에 맞서는 장렬함과 자신에 대한 청렬함을 갖춘 데다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과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시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기어라, 모셔라, 함께하라!”
우리 옷을 입은 가장 실질적인 녹색운동이고 새로운 사회·문화운동인 한살림운동을 통해 장일순이 실천한 생명사상은 ‘기어라, 모셔라, 함께하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어라’는 민중과 함께하며 늘 겸손하라는 당부이고, 생명사상의 핵심인 ‘모셔라’는 세상의 모든 것이 온 우주의 선물인 것을 깨달아 잘 모셔야 한다는 뜻이다. ‘함께하라’에는 나와 자연이 하나가 되면 우리의 환경을 살릴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무위당의 뜻과 사상을 실천하는 모임, ‘무위당사람들’
(사)무위당사람들은 무위당 장일순이 평생 추구한 생명운동과 협동운동, 지역공동체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여 공동체적 삶을 구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전국의 한살림 조직과 협동사회단체와 견고한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 협동운동과 생명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무위당사람들은 우리나라 협동조합운동의 선구자이자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운동과 생명운동을 전개한 사회운동가며, 교육자이자 서예가인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기리고 세상에 알리고 있다. 무위당사람들은 전국의 12개 무위당학교와 연계하여 생명운동에 관한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감으로써 서로 연대하며 함께 잘 사는 공동체사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디어 소개]
☞ 연합뉴스 2019년 5월 8일자 기사 바로가기
☞ 경향신문 2019년 5월 30일자 기사 바로가기
☞ 한겨레 휴심정2019년 5월 21일자 기사 바로가기 접기
장일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다. 작가 김상웅이 계속 인물 평전을 써주면 좋겠다. 특히 잊혀져서는 안 될 시당 여준의 평전을 써주기를 소망한다.
아하브 2024-01-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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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소감을 한 줄로 적자면, ‘생전에 한번이라도 뵈었다면...‘. 어떤 인품이어야 기차역에서 돈을 읽어버린 이, 운동하다 피신한 이 등등 모두의 그늘이 되어줄 수 있을까.
웃음소리 2024-11-0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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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인데, 한편의 영웅신화를 본 느낌!
오래 전 '노자이야기, 나락한알속의 우주, 좁쌀한알' 등의 무위당선생에 관한 책을 몇권 읽었을 뿐이다. 당시 느낌은 꽤 속물스런 내 머리론 그의 비범광대한 삶이 쉽사리 이해되지 않았고 좀 과장된게 아닌가도 싶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감동을 느낀게 사실이다.
그리고 이후에도 마음이 시끄럽고 사는게 피곤할 때 나도 모르게 들쳐보면서 위로받고 마음을 잡는데 도움이 되곤 하였다.
최근 출간된 이책은 우리나라 해방전후 근현대사의 권위자이신 김삼웅선생(전 독립기념관장 역임)께서 쓰신 평전으로, 안개속에 가려진 듯 잘 드러나지 않았던 무위당 장일순선생의 은밀한(?) 삶에 관해 우리 현대사에 실제 어떤 영향과 족적을 남겼는지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어 기술하였다.
질곡어린 우리 현대사와 무위당 개인의 역경어린 삶은 서로 거울에 비춰진듯 조응한다는 점에서 우리 현대사의 흐름이 피부에 와닿은 듯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는 보기 드문 텍스트로 보인다.
또한 정통역사가의 객관적 시각으로 실제 사실을 기술한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읽다보면 어느새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는 듯, 또는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 한 위대한 영웅의 드라마틱한 천로역정의 신화를 읽는 것 같기도 한 먹먹뭉클한 카타르시스 같은 걸 느끼게 하였다.
더구나 요즘 출간되는 책들에서 보기드문 조그만 폰트체에 400쪽 가량의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단숨에 읽힐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어 한편의 대하역사 블록버스터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평소 우리 역사와 무위당선생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무어라 간략히 내용을 요약하거나 평하는 것은 능력밖의 불가한 일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말하고 싶은 바는, 현시대 자본주의 역사상 최악의 버전인 신자유주의로 인해 국가간 지역간 계층간 빈부격차와 갈등의 극대화, 산업혁명이후 오래 지속된 무차별 대량생산에 의한 극심한 환경파괴로 공해와 기상이변 심화 등, 이러한 문제들에 관해 이미 오래전 70년대부터 그 심각성을 예견하여 문제의 핵심을 꼬집고 더 나아가 근본적인 대안까지 제시한 점은 그가 시대를 앞선 혜안을 가진 선각자이자 진정한 지식인이었음을 말해준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자본주의의 물질주의 세계관의 비인간적, 반생명적인 측면과 드러나는 폐해를 비판하며, 이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능케 하려면 인간과 자연 속의 모든 생명체 심지어 한갖 눈에 띄지도 않는 미생물까지도 존중하며 동고동락 공생해야만 한다는 생명공동체사상인데, 무거운 주제이지만 이를 보통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논리로 주장하여 그 보편타당성을 직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다.
오히려 설명하는 제 말이 더 어렵다. 궁금하시면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각설하고 책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구절을 일부 인용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 지금 세계문명은 핵무기, 공해같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어요.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느냐, 사람의 욕심에서 온 거란 말이에요. 지구가 병이 들고... 오염된 이런 공해의 일체가 욕심에서 온 거란 말입니다. 자연보호 하자고 하면서도, 자연을 착취하는 생산을 계속하고 있단 말이에요. 병주고 약주는 거지, 그렇지 않습니까?
원인에 대한 방향 전환을 하지 않고, 문제의 결과만 땜질을 하려 드니까 그게 되나요? 되지를 않지요. " - p28
"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중에 원주의 지주들 대부분은 북한군에 붙잡혀 처형되거나 북으로 끌려갔다. 장일순의 집안도 원주에서 알아주는 지주집안 이었기에 누구보다 먼저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전쟁이 벌어진 뒤에도 장일순 가족은 피난을 가지않고 원주에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일순 가족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는데 각지의 소작인들이 경쟁하다시피 장일순 가족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작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피신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보기 드문 현상이었다. 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장일순 집안이 소작인들에게 베푼 넉넉한 인심과 돌봄 덕택이었다. " - P49
" 정치가 사람 살리지 않고, 사람 사는 길로 가지 않고 어떻게 잘 될 수 있겠습니까? 그건 거짓 정치죠. 우리 사회에는 국민을 갈라놓고 지배당하고, 지배하는 쪽에 붙어 먹는 패거리들이 있습니다. 정치를 통해서 어떤 개인의 명예라든지, 기선을 잡는다든지 그런 따위의 망상은 버려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근래 몇해 동안에 찾아오는 사람과 얘기를 해보면 대개 다 그 지경이라.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내면의 생활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그러서부터 문제를 풀어서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자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의 통일도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끼리 살아갈 수 있는 조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문제라고 봐요.
지금 더러 통일운동 하는 사람들이 온단 말씀이야. 그래서 내가 자네들 통일운동을 북쪽하고 하는 건가?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 그래서 이렇게 말했지. 자네들 국민하고도 통일운동을 제대로 못하면서 무얼 북쪽하고 통일운동을 해? 또 나아가서 남한 내부가 지역감정으로 갈갈이 찢어져 있는데, 그 이해관계도 감정적으로 골이 깊은데, 그런 통일운동도 못하면서 뭐 어디하고 통일운동을 해? " - P255
"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오늘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사람이 있었지 않아요? 어차피 사람은 자기 나름의 사는 즐거움이 있고, 보람이 있어야 하니까. 그러면 내일 망한다 해도 그냥 밀고 가야 된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요. 또 한가지는, 그렇게 하면 소망(희망)이 있다고 믿어요. " - P278
" 아마도 한살림운동이 현재 벌이고 있는 농산물 직거래와 같은 활동은 어떤 사람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이 공해세상에서 자기들만이라도 살아남아보고자 하는 지구적인 소시민운동 쯤으로 보일지 모른다.
혹은 이 운동이 급속도로 와해되어가고 있는 농촌에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하는 사람이 살 수 있고, 그래서 마침내 살아 있는 땅과 마을을 새로운 형태로 돌이키는데 기여하고자 하는 필사적인 노력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그런 노력이 무슨 현실적인 효과가 있겠느냐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스로의 생존의 바탕을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것을 '진보'라고 여기는 이 어리석음과 무책임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배적인 습관과 타성을 거부하고 사람살이의 올바른 방식으로 '흙의 문화'의 재생을 위해 누군가가 헌신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 - p279
" 고향 후배가 (무위당)선생님을 찾아와 선거에 출마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후배의 말을 다 듣고 난 무위당은 아무 말없이 붓과 벼류를 꺼내 글을 써내려갔다.
'배고픈 사람 배불리 해주어라. 세금 조금 내보내라. 부역 없게 하라.'
다 쓴 글을 후배에게 보여주며 '이대로 실천할 자신 있으면 출마하고, 자신 없거든 출마하지 말라'고 준엄하게 말했다. 글을 본 후배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
(부역賦役: 국가의 공공사업을 위해 보수없이 국민에게 책임을 지우는 노역)
"장일순이 제자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주 한 말이 있다. 글씨로도 써서 나눠주었다.
'저파비(猪怕肥)였다. 돼지 저, 두려워할 파, 살찔 비'
곧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이다. 돼지는 살이 찌면 도살당하기 때문이다.
'저파비'앞에 '인파출명(人怕出名)'이 있었다. '사람은 세상에 허명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라'라는 뜻이다.
군사정권기는 물론 지금도 얼마나 많은 각계의 명사들이 허명을 날리다 날개도 없이 추락하는가. 장일순은 이를 경계하고 항상 허명을 내지 않으려 애썼다. 마음을 비우는 일, 달리 말하면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을 살고자 했고 이웃들에게 솔선했다. " - p327
" 노자에 그런 말이 있어요. '생이불유(生而不有)요, 장이부재(長而不宰)라.
이것은 자연하고 함께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귀중한 제목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낳지마는 그 자식은 자기 것이 아니란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랬어도 그 사람들을 '야,자'하고 부리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그 말이에요. '야,자'하고 마구 부리는 그런 태도는 다시 얘기해서 독재의 태도요 내 맘대로 하려는 태도요. 소유하려는 그런 태도란 말이에요. 그건 자연스런 태도가 아녜요. 자연은 소유하려는게 없어요. " - P343
" 1987년 1월 공안당국의 물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무위당 선생에 얽힌 일화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1988년에 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에서 만남의 집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서화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박정기씨는 유명한 서울대 교수를 찾아가 작품후원을 부탁했다.
그러자 '제 작품은 아무리 작아도 400만원이 넘습니다. 제가 박종철이 죽은 거하고 무슨 연관이 있나요? 그 아이가 죽으면 죽었지. 왜 이렇게 와서 날 괴롭히는 겁니까?'
교수에게 단번에 거절당한 박정기씨는 전태일 열사의 모친 이소선 여사와 함께 무위당 선생댁을 찾았다. 서화전 계획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난 무위당은 두말 없이 그 자리에서 벼루와 먹을 꺼내 난을 쳤다. 무위당 선생은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형상을 한 난을 포함해 다섯 점의 작품을 신문지에 말아 건네주며 말했다.
'원하시는 일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작품이 필요하면 또 찾아오십시오.' - P368
" 하루는 장일순이 원주천 둑방길을 걷다가 가난한 후배 화가를 만났다. 그림은 잘 그리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작품이 팔리지 않아 담배도 못 사 필 정도로 생활이 곤궁한 고향 후배였다. 장일순은 골초 후배에게 담배 사 피우라고 돈을 주고 싶었지만 가난한 자신도 가진 돈이 없었다. 주머니에 있는 담뱃갑을 꺼내서 통째로 손에 쥐어주고 걸음을 옮겼다. 후배 화가가 멀어져가는 장일순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만치 가던 장일순이 땅바닥을 한참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길가에 버려진 담배꽁초 하나를 집어 들더니 불을 붙이곤 한 모금 길게 내뿜으며 원주천을 바라보았다. 순간 화가는 눈물이 핑 돌았다. " - p373
"어느해, 아내의 생일날 장일순은 나무 칠기 바구니를 선물했는데, 그 안에 메모를 딱지 모양으로 접어서 넣어두었다. 메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여(汝)보세요. (汝: 당신 여)
평생을 피곤하게 사시는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 마음에 있는데 표시가 잘 안되네요. 오늘 보니까 피나무로 만든 목기가 있어 들고 왔어요. 마음에 드실지.
이 목기가 겉에 수없이 파인 비늘을 통해 목기가 되었듯이 당신 또한 수많은 고통을 넘기며 한 그릇을 이루어 가는 것 같아요." -p369
" 2018년 경희대 전호근교수(철학박사)는 '원주의 민주화운동과 무위당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한 무위당학교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 현대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어떤 고난을 거쳐 성장해 왔는지 알려면 그리고 앞으로 그 가치를 지킬 수 있을지 알아보려면 원주에 가서 길을 물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을 합니다. 그만큼 원주는 현대 한국사회의 시대정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역사적 공간입니다.
원주는 1970년대 서슬퍼런 유신독재 체제 아래서 '원주선언'을 시작으로 민주화의 불길을 지폈고, 이후 계속해서 인권운동, 농민운동,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 등이 일어난 공동체 정신을 구현하는 요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련의 운동을 조사해보면 늘 '장일순'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원주는 작은도시이지만 무위당선생님의 정신을 물려받은 도시, 원주에서 이룬 성취들이 한국사회의 정신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바가 큰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주와 무위당을 떼어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p376
"조선후기의 학자 홍길주의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문장보다 귀한것은 몸을 지키는 위엄을갖추는데 있다. 지위가 낮아 미천하고 문장도 별반 놀랄 만한 것이 없는데도, 가는 곳마다 존경받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지위가 위세당당하고 문장도 화려함을 갖추었는데도, 가는 곳마다 능멸과 업신여김을 받는 사람이 있다. 어째서 그러겠는가?'
장일순은 높은 관직은 물론 책 한권 쓰지 않았는데도 가는 곳마다 존경을 받고, 사후 25년이 지난 지금도 그리워하고 따르는 사람이 줄을 선다. 왜일까? 지식인으로서 정직함과 엄격성, 불의에 맞서는 장렬함과 자신에 대한 청렴함을 갖춘 데다가,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과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모습이 시공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장일순은 일속자(一粟子,좁쌀한알)의 낙관으로 쓴 글씨에서 자신의 삶을 압축하듯 말한다.
萬古長空, 一朝情華
영원한 시간과 공간에서, 어느 아침 피어난 꽃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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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Ho 2019-06-0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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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평전을 읽고.
이영희 '대화' 속에 존경하는 분으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언급하는 부분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이야기를 읽게 되었고, 상당한 감명을 받은 바 있었다. 무위당에 대한 평전을 통해 그의 삶과 민주 운동과 생명 운동에 대한 그의 기여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딱 한 가지 궁금함과 아쉬움을 느낀 곳이 있었다. 91년도로 기억하는데, 김지하씨의 조선일보 투고 사건에 관하여 투고한 신문사가 조선일보라는 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이다. 당시 공안정국이라고 이름 붙이던 91년 무렵은 그래도 민주화로 방향을 잡아 앞으로 나가던 도상이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시 군에서 전역하여 공부하던 나로서는, 연속적으로 벌어지던 분신자살 투쟁으로 인해 마음에 큰 괴로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김지하씨의 투고는 생명을 운동의 이념의 도구로 던져버리는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는 글이어서, 나에게는 참으로 진실을 외치고 용기 있는 글로 받아들여졌고, 그 생각은 이 평전을 읽은 지금도 동일하다. 그런데 이 평전에서 그 글의 내용에 대한 평가를 명시하지 않은 채 투고한 신문사를 나무라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 이 평전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심은 김지하의 글 내용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그 내심이 평전 저자의 것인지, 장일순 선생의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그런 내심이 장일순 선생의 생각이었다면 그 생각은 전혀 그의 생명 사상에 부합하지 아니한다고 생각된다. 평전 작가로서는 그 사건에 대한 장일순의 생각을 분명히 기술하였어야 할 것인데, 기술하지 아니한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 내심이 평전 작가의 것이라면, 평전 작가로서 월권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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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토 2019-07-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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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만물과 하늘을 하나로 떠받든 삶
일제시대에 태어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은 채 참되게 살고자 했던 삶의 궤적이다. 저항운동의 흐름에 함께하면서도 기존 운동방식과 결을 달리했던 그의 방식이 잔잔한 물결처럼 펼쳐진다.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의 삶을 넘치지 않게 써내려가기는 했지만 그의 향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아쉽다.
바람소리 2021-12-2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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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당의 아름다운 삶_장일순 평전
대학시절 무위당의 사상을 좋아해서 노자의 도덕경도 찾아보고,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도 하면서 아껴쓰고, 함께쓰는 활동을 했다.
법학과 학생이면서도 공부를 조금 소홀히 하고 그런 일을 할 정도로 좋아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삼웅 前독립기념관장님은 한국 평전 문화를 새로 쓰고 계신 분이다. 일전에 신문기사로 본적이 있는데, 한국만이 평전문화에 인색하고 쓰기를 꺼려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평전을 잘못 썼을 때 오는 그 엄청난 부담과 대립, 후손들, 얽혀있는 다수의 인물들 등으로 인해 진보고, 보수를 떠나서 현대의 인물에 대한 평전을 작성하기를 꺼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관장님은 이에 개의치 않고, 많은 자료와 풍부한 경험에 입각해 한국의 현대를 수놓은 수많은 인물들을 복원해 내고 있다. 나는 이 작업을 열렬히 응원한다.
우리의 인물을 많이 기록해 놓을 필요가 있다. 역사란 이런 기록물로 인해 사관이 이해하고, 해석해내는 작업을 하는데 그런 사료나 당대의 평가가 없다면 역사를 소설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사는 학문이 되고, 드라마도 팩션 중심으로 할 수 있지만, 고구려사는 대부분 픽션 또는 거의 상상속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는 것 역시 기록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장일순 평전』에서는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변곡점들과 인물을 적절히 배치하면서, 원주 지역 인사들과 무위당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고 함께 선생님의 삶의 궤적을 따라다가보면 선생님의 내면에서 움직여갔을 생각의 변화도 조금씩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그간에 축적된 자료를 적절히 활용해서 생명사상의 얼개도 짐작하게 하셨습니다.
모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삶을 객관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p.10 판화가 이철수님의 이 책에 대한 평가
사실 위의 말로 이 평전의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
생전에 무위당을 만나지 못한 죄책감으로 이 평전은 시작한다.
무위당 장일순은 엄혹한 시대를 정말하면서도 '길이 없는 길'을 찾아 나선 후학들에게 '길'을 제시하고, 양심수들을 위로하고, 청년들에게 미래의 눈을 틔운 구도자 또는 경가의 모습으로 존재했다. 그러나 그는 나서기를 꺼리고, 지도자인 체하지 않았다.
한국사회의 모순이 겹겹이 쌓인 채 독재자와 추종자들의 감언이설이 민중의 이성을 가리던 시절, 장일순은 어디에도(무엇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시대를 내다보는 심원하고 예리한 통찰력으로 민중(민족)의 앞길을 제시했다. 그래서 누군가는 장일순을 20세기를 산 '21세기형 인물'이라 평한다. ---P.23
아니 이런 분이 있었기에 21세기 오늘의 자유와 한국사회의 민주화, 발전이 올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 시대를 변혁한 큰 업적과 공로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한 알의 작은 좁쌀(一粟子)를 자처하며 살아간 그야말로 참거인, 큰 스승이었다.
많은 유묵과 글씨(휘호)는 남겼지만 그에 대한 글은 글 한 편도, 책 한권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무위자연, 노장사상을 실천하다 돌아간 인물이다.
장일순의 길은 20세기 후반 한국 지식인으로서 걷기 쉬운 노선이 아니었다.
그의 삶은 아래와 같이 몇 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 미군 대령의 국립 서울대학 총장 부임에 반대 투쟁한 학창시절
2) 혁신정당 후보로 총선에 나왔다가 실패한 시절
3)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창했다가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투옥된 30대 시절
4) 농촌과 광산촌을 살리고자 신용협동조합운동을 시작한 중년 시절
5) 지학순 주교 등과 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시기
6)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와 민주인사들을 보호한 시기
7) 농민·노동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승화시킨 시기
8) 민주세력을 통일운동으로 결집한 민족통일국민연합을 결성한 시기
9) 도농직거래 조직인 '한살림'을 창립한 시기
10) 본격적인 생명사상운동을 벌인 시기
미국에 월든의 '소로'가 있다면 한국에는 원주의 장일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일순은 그러면서도 현실참여적인 농민,노동운동을 생명운동으로 승화시켰다.
무위당은 나라를 빼앗긴지 18년(십팔년)되던 슬픈 1928년 10월 16일 강원도 원주시 평원동에서 아버지 장복흥(張福興)과 어머니 김복희(金福姬) 사이의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무위당의 할아버지 여운(旅雲) 장경호(張慶浩)는 포목상을 하면서 집안의 가세를 크게 일으켰다. 무위당의 첫번째 스승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할아버지는 서울을 오가면서 문물을 익히고, 독립운동가들과도 교우했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익히는 한편 생명공경의 자세를 배우고, 할아버지와 절친하던 독립지사 차강 박기정선생에서 서화를 익혀 나중에 일가를 이뤘다.
(이 책에는 선생의 많은 글씨, 그림 작품이 나온다)
1940년 원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배재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똑똑한 첫째 형 철순이 죽자 그 집안의 기둥이 되고 그는 할아버지의 뜻대로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한다. 그가 문과를 택하지 않고 공대를 간 것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후에 1946년 8월 23일 군정법령 제 102호를 통해 경성제국대학, 경성의전, 경성치전, 경성법전, 경성고공, 경성고상, 경성고농을 통합하여 국립 서울대학교를 신설하고 총장에 미군 대령을 임명한다는 국립대 실시령을 내렸다.
무위당은 이에 반대한 국대안 파동을 하다가 제적되었다. 그 후 원주에 정착 대성학원을 세우고 활동한다.
한국전쟁을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접한다. 그는 중립 통일을 내세웠지만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다. 원주에서 교육사업을 하다가 민의원(지금의 국회의원)선거에 나서 낙선했다. 그는 당시 귀족 자식들만 다닌다는 덕수 초등학교를 나와 경기여고,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이인숙과 결혼한다. 이인숙의 집안도 좋은 집안이고 엘리트 코스만 밟았으나 후에 박정희 군부 쿠데타에 의해 시국사범으로 남편이 잡혀가는 역경을 당한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부인은 옥바라지를 한다.
지역협동운동을 하면서
장일순은 우주 천지만물이 모두 한 생명의 끈으로 이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협동적으로 존재할 때만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했다. "우주의 모든 생명의 존재 법칙인 협동과 공생을 민중이 본받고 실천하여, 자본가에 대한 경제적 약자의 대항 수간이라는 의미를 넘어, 진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p.150 주장했다.
지역농민, 탄광촌의 광부들을 계몽하는데 힘썼다. 박정희 시대에 자칫하면 용공분자나 사상범으로 잡혀갈 위기에서도 신념을 지켰다.
장일순 선생은 동학의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명사상을 공부하여 자신의 사상과 결합해 우리민족의 사상 체계에 다양함을 부여했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교수는 장일순이 한살림 공동체를 실천하고 있는 생명운동의 근처에는 만물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생명계의 모든 이웃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한 해월 최시형의 사상이 중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무위당 선생의 가장 큰 업적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잊혀져 가는 해월 최시형 선생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그분의 사상을 조명하고 새롭게 정립하였으며, 한살림운동을 통해 생활 속에서 실천했다는 것이다." ---p.186 ~ 187
장일순은 늘 역설했다. 많이 늦기는 했으나 지금이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길은 멀리 있지 않다고, 동학의 시천주(하늘님을 모신다)와 사인여천(事人如天, 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의 사상과 경천,경인,경물의 정신을 찾는다면 인간과 하늘, 사람과 자연이 동귀일체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인류·지구촌을 구원할 수 있다고.
하지만 사회는 그를 생명운동과 무위자연, 농민운동에 집중 할 수 있게 놔두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 개헌(개헌이 아닌 악헌이지만)이 일어나고, 지학순 주교 등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는 가두시위에 참여하며 사회운동도 하게 된다. 이후 다시 고향에 돌아와 농민운동을 하였으나, 김지하 등과 함께 기존의 농민운동이 실패했다고 판단하여 도시와 농촌이 직거래를 하고 자연요법으로 농사를 짓는 한살림운동을 전개했다.
그를 한 마디로 평가해본 그의 글과 그림에 있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장일순의 심경을 보여주는 생과 사를 초탈한 글귀들이다.
그는 세상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정의의 가치와 자연의 이치에 자신을 맞춰가며 살았다. 한번도 사적인 이익을 위해 손을 대거나 자리를 탐하여 조직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무위당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두번이나 다닌 한마디로 평온하고, 세태에 영합해서 잘 살수도 있었지만, 과감히 그를 떨치고 자신의 정의를 실천하며 살았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체 게바라 같은 삶이다.
과감히 자신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는 그 열정을 존경한다.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사회의 예와 도덕, '같이'의 정신이 사라진 2019년 오늘 그를 추억해본다.
* 이 리뷰는 두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꼼꼼이 읽고 쓴 글입니다.
水流元在海(수류원재해) 물은 흘러가도 바다에 있고
月落不離天(월락불리천) 달은 져도 하늘을 벗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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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는살아있다 2019-06-0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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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순 평전 -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 요약 및 평론
1. 요약
독립운동가 출신 역사학자 김삼웅이 집필한 <장일순 평전 -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속에서 민주화 운동과 생명 운동, 그리고 자생적 생태 사상을 일구어낸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의 일생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전기이다. 저자는 장일순의 삶을 단순한 한 인물의 일대기에 머물게 하지 않고,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독재 시절, 그리고 현대 생태 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 전체의 맥락 속에서 그 의미를 조명한다.
장일순의 삶은 크게 <학창 시절과 4·19 혁명기>, <민주화 운동과 원주 캠퍼스>, 그리고 <생명 운동과 한살림>의 세 단계로 나뉜다. 경성전기공업학교와 서울대학교 미학과에서 수학한 그는 해방 후 고향 원주로 돌아와 교육 운동을 시작했다. 대성학원을 설립하여 청년들을 양성하던 그는 1960년 4·19 혁명 공간에서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했다가 5·16 군사정변 이후 옥고를 치렀다.
이후 그는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원주 가톨릭 센터를 중심으로 강원도 지역의 사회 운동을 이끌었다.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 원주는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거점이 되었으며, 장일순은 김지하, 조화순 등 수많은 비판적 지식인과 운동가들에게 사상적 쉼터이자 길잡이 역할을 했다. 그는 결코 자신을 투사로 포장하지 않았으며, 전면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사람들을 엮어주고 보살피는 모심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장일순의 사상은 민주화 운동에서 <생명 운동>으로 일대 전환을 맞이한다. 그는 사회 구조의 변화만으로는 인간의 구원과 사회적 평화에 한계가 있음을 직시하고, 동학의 사상과 장자의 무위자연을 결합한 생태 철학을 발전시켰다. 이는 1986년 한살림 농산물 직거래 운동의 창립으로 이어졌고, 도시와 농촌이 함께 살아가는 자생적 생협 운동의 기틀을 마련했다.
2. 평론: 변혁의 시대를 묵묵히 받쳐준 밑받침의 기록
김삼웅의 <장일순 평전>은 한국 현대사가 낳은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이자 실천가였던 장일순이라는 인물을 꼼꼼한 사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복원해 낸 노작이다. 저자 특유의 강직하고 민족주의적인 사학 시각이 장일순의 다채로운 삶과 결합하여, 거친 한국 현대사 속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시대를 견디며 스스로를 태워 타인을 비추었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이 평전의 가장 큰 덕목은 장일순이라는 인물이 가졌던 <사상적 진화의 궤적>을 명확히 밝혀냈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장일순이 걸어온 청년기의 민족주의와 통일 운동, 중년기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 그리고 장년기의 생명 운동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유기적 흐름임을 증명한다. 장일순에게 있어 민주화는 인간다운 삶의 회복이었고, 생명 운동은 그 인간다운 삶이 발붙일 터전인 지구와 자연을 살리는 일이었기에, 그의 생애는 변혁의 연속이 아니라 깊어짐의 과정이었다.
또한 이 책은 '지도자'에 대한 통념을 뒤집는 장일순 특유의 <하심(下心)의 리더십>을 돋보이게 한다. 정치적 권력이나 조직의 헤게모니를 쥐려 했던 여느 투사들과 달리, 장일순은 늘 자신을 '지렁이'나 '밑바닥의 흙'에 비유했다. 저자는 장일순이 주도권을 쥐는 대신, 고초를 겪는 이들을 품어주고 조언을 건네는 '원주의 거목' 역할을 자처했음을 수많은 관계자의 증언으로 입증한다. 이는 현대 정치와 사회 운동이 지닌 권력 지향적 한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울림을 준다.
다만, 평전의 특성상 인물에 대한 저자의 헌사와 애정이 깊다 보니, 장일순 사상이 지닌 현실 정치적 한계나 생명 운동 초기의 구조적 긴장 관계에 대한 비판적 거리는 다소 좁게 느껴진다. 또한 그가 구사했던 깊은 동양 사상적 통찰이 평전의 서사적 정리에 다 담기지 못하고 정치·사회적 업적 중심으로 소비된 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극단적인 진영 대립과 생태적 위기가 엄습한 오늘날, 우리에게 시대를 살아가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묻는다. <장일순 평전>은 단순히 지나간 민주화 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책이 아니라, 타인을 섬기고(모심) 스스로 낮아짐으로써(무위)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한 성자의 아름다운 발자취이자 modern 사회를 향한 고결한 사상적 유산이다.
==<장일순 평전―무위당의 아름다운 삶> 요약 평론
김삼웅의 <장일순 평전―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은 한국 현대사의 격동 속에서 교육운동가, 민주화운동가, 협동조합운동가, 생명사상가로 살아간 무위당 장일순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복원한 책이다. 2019년 장일순 서거 25주기를 맞아 출간되었으며, 장일순의 사상과 운동을 계승해 온 ‘무위당사람들’의 감수를 거쳤다. 장일순이 남긴 강연과 대담을 모은 <나락 한 알 속의 우주>가 그의 육성을 통해 사상을 보여주는 책이라면, 김삼웅의 평전은 그 사상이 어떤 시대적 경험과 실천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생애사라 할 수 있다.
책은 장일순의 삶을 몇 차례의 중요한 전환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첫째는 식민지와 해방, 한국전쟁을 통과하며 형성된 민족의식과 평화사상이다. 둘째는 교육사업과 현실정치 참여, 중립화 평화통일론으로 이어지는 사회개혁의 시기다. 셋째는 군사정권의 탄압과 옥고를 거친 뒤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한 협동조합운동과 민주화운동이다. 넷째는 산업문명과 기존 사회운동의 한계를 반성하면서 생명운동과 한살림으로 나아간 후기의 전환이다. 김삼웅은 이러한 변화가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에 대한 장일순의 일관된 신념이 시대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한다.
장일순은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의병계열 서화가 박기정에게 서예와 동양적 정신세계를 익혔다. 동시에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동양사상을 함께 받아들였다. 이러한 복합적 배경은 훗날 그가 동학, 불교, 노장사상, 그리스도교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열린 종교사상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특정 교리의 정통성을 주장하기보다, 서로 다른 종교 전통에서 생명 공경과 자기 비움의 공통된 가르침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해방 후 경성공업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장일순은 미군정의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반대하는 국대안 반대운동에 참여했다가 제적되었다. 이후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했지만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계속하지 못했다. 이 경험은 장일순이 일찍부터 권력과 제도가 인간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데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게 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제도 안에서 안정된 지위를 얻기보다 교육과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 민중의 자립을 돕는 길을 선택했다.
전쟁 이후 원주로 돌아온 장일순은 가난 때문에 중등교육을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대성학원을 세우는 데 참여했다. 그에게 교육은 출세를 위한 경쟁수단이 아니었다. 교육은 사람이 자기 존엄성을 깨닫고 공동체의 책임 있는 주체로 성장하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는 교사와 학생 사이의 위계적 관계보다 서로 배우고 성장하는 관계를 중시했다. 이러한 교육관은 훗날 협동조합운동에서 나타나는 자치와 상호부조의 원리와도 연결된다.
장일순은 한동안 제도정치에도 참여했다. 1958년 민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1960년에는 사회대중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당시 그는 미국과 소련 어느 한쪽에도 예속되지 않는 중립화 평화통일을 주장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이 주장이 문제가 되어 체포되었고, 군사재판에서 중형을 선고받아 약 3년 동안 복역했다. 장일순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적 반공주의가 지배하던 당시 정치환경에서는 용납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옥중생활은 그의 삶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권력을 획득하여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정치의 한계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권력은 정의로운 목적을 내세우더라도 집중되는 순간 인간을 억압하고 운동을 관료화할 수 있었다. 출옥 이후 장일순은 중앙정치보다 지역사회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로부터의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의 가장 구체적인 자리에서부터 사회를 바꾸려는 새로운 실천의 시작이었다.
1960년대 중반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와의 만남은 장일순의 활동에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두 사람은 원주 지역의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들이 고리채와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신용협동조합과 생활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장일순은 외부 지도자가 주민을 계몽하고 지휘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고 운영하는 방법을 익히도록 도왔다. 장일순이 주도한 원주 지역의 협동조합운동은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과 생명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1970년대 장일순과 원주 지역 인사들은 박정희 정권의 부정부패와 독재에 저항했다. 지학순 주교, 김지하, 박재일 등과 연결된 원주 공동체는 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이 되었다. 그러나 장일순은 투쟁의 전면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보다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고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운동의 지도자이면서도 지도자의 자리를 거부했다. 사람들은 그를 찾아와 고민을 이야기했고, 그는 명령하거나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함께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도왔다.
장일순이 사용한 ‘무위당’이라는 호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의 욕심과 명예를 앞세워 일을 억지로 만들지 않고, 사람들이 가진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1980년대 이후 사용한 ‘일속자’, 곧 ‘좁쌀 한 알’이라는 호 역시 자신을 낮추는 동시에 작은 생명 속에 우주 전체가 깃들어 있다는 사상을 표현한다. 그는 때로 존재하지도 않는 ‘쥐뿔’을 뜻하는 ‘서각’이라는 호까지 사용했다. 이러한 이름들은 단순한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자아와 권력을 비워야 생명 전체와 연결될 수 있다는 그의 철학을 나타낸다.
1970년대 후반부터 장일순은 기존 민주화운동과 민중운동의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독재정권에 맞서는 일은 필요하지만, 적을 쓰러뜨리고 새로운 권력을 세우는 방식만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운동 조직 내부에서도 권력욕과 파벌, 인간소외가 되풀이될 수 있었다. 더욱이 산업화와 경제성장 과정에서 농촌과 자연이 파괴되고 있었지만, 진보운동조차 생산력 발전과 경제성장을 당연한 목표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장일순은 사회문제의 뿌리를 단순히 소유관계나 정치권력에서만 찾지 않았다. 인간이 자연과 다른 생명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문명적 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보았다. 자본주의와 국가사회주의는 서로 대립했지만, 자연을 개발하고 생산을 확대해야 한다는 성장주의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사회변혁은 정권이나 소유제도의 변화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인간과 자연, 생산자와 소비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전체를 다시 조직해야 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생명운동과 한살림운동이 태어났다. 한살림은 유기농산물을 판매하는 경제조직을 넘어 농촌과 도시가 서로의 생명을 책임지는 관계를 만들려는 운동이었다. 농민은 소비자의 먹을거리와 생명을 지키고, 도시 소비자는 농민의 생활과 농토를 지킨다. 시장에서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더 낮은 가격과 더 높은 이익을 놓고 대립하지만, 한살림에서는 양자가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구성한다. 장일순은 협동조합을 자본주의 시장의 결함을 보완하는 부분적 제도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과 생활방식을 연습하는 공간으로 이해했다.
그의 생명사상은 동학의 ‘시천주’와 ‘사인여천’에서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 인간은 자기 안에 하늘을 모시고 있으므로 다른 사람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 장일순은 이를 인간관계에 한정하지 않고 모든 생명으로 확장했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 흙과 물에도 우주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운동은 거대한 구호보다 밥 한 그릇을 귀하게 여기고, 물건을 아껴 쓰며,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상적 태도에서 시작된다.
김삼웅은 장일순의 사상만큼이나 그의 인간적 면모를 강조한다. 그는 검소하게 살았지만 엄숙주의자는 아니었다. 술과 사람을 좋아했고, 농담과 해학을 즐겼다. 찾아오는 사람을 신분이나 이념에 따라 차별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집과 시간을 기꺼이 내주었다. 서화 작품을 많이 남겼지만 작품을 상품이나 권위의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필요한 사람에게 글씨를 써주고, 작품 판매로 얻은 돈도 운동과 이웃을 위해 사용했다. 그의 생명사상은 강단의 이론이 아니라 손님을 맞고 밥을 나누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생활 속에서 구현되었다.
이 평전의 가장 큰 장점은 장일순을 추상적인 ‘생명사상의 성인’으로만 묘사하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구체적 사건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국대안 반대운동, 한국전쟁, 중립화통일론, 5·16과 옥고, 원주 협동조합운동, 반독재 민주화운동, 농촌 위기와 한살림의 탄생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생명사상이 갑자기 출현한 낭만적 자연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정치운동과 사회운동을 직접 경험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고민한 끝에 얻은 사상적 결론이었다.
특히 김삼웅은 장일순의 삶에서 ‘권력을 갖지 않는 지도력’을 발견한다. 장일순은 많은 사람과 조직에 영향을 미쳤지만 공식 직책과 명성을 탐하지 않았다. 운동이 성장할수록 자신은 뒤로 물러났고, 자신의 이름으로 학파나 교단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정치와 종교, 시민운동의 지도자들이 자신을 조직과 동일시하고 권위를 세습하려는 경우가 많은 한국 사회에서, 그의 태도는 매우 드문 사례다. 그는 지도자의 위대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가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도자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드는 데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평전으로서의 한계도 있다. 김삼웅은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삶을 꾸준히 복원해 온 전기작가이며, 인물의 역사적 공헌과 도덕적 품격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때문에 장일순에 대한 존경과 찬사가 책 전체를 지배한다. 책의 부제인 ‘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이 보여주듯, 장일순의 모순이나 실패, 가족과 주변 사람이 경험한 갈등은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진다. 평전이 비판적 전기라기보다 정신적 계승을 위한 헌사에 가까워지는 부분이 있다.
또한 장일순이 정치운동에서 생명운동으로 전환한 과정에는 더 깊은 분석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환이 국가권력과 계급문제에 대한 관심을 약화시킨 것은 아닌가, 협동조합과 생활운동이 거대 자본과 국가의 구조적 폭력에 얼마나 맞설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자기 비움과 화해를 강조하는 무위의 윤리가 억압받는 사람에게 먼저 인내와 양보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오용될 가능성도 있다. 장일순 자신은 독재에 저항했던 사람이지만, 그의 후계자들이 생명과 화합만을 강조한다면 정치적 급진성이 제거될 위험이 있다.
한살림운동 역시 현실에서 성장하면서 조직의 관료화, 친환경 상품의 중산층 소비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이해충돌이라는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장일순의 생명사상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가 만든 조직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있지 않다. 변화한 경제환경 속에서 협동의 정신을 노동, 돌봄, 주거, 에너지, 금융과 같은 영역으로 확장하고,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대응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장일순 평전>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상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한 입문서다. 장일순의 삶은 민주화운동과 생명운동, 동양사상과 그리스도교, 정치적 저항과 일상적 실천이 서로 분리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준다. 그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사람이 먼저 자신의 권력욕과 소유욕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동시에 자기수양을 현실도피로 만들지 않고 교육, 협동조합, 민주화운동, 농업과 소비의 변화로 연결했다.
김삼웅이 그려낸 장일순의 아름다움은 흠 없는 성인의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자신을 낮추면서도 시대의 불의에서 물러서지 않은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그는 높은 자리에 올라 세상을 움직이는 대신, 낮은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다. 거대한 체계를 세우기보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한 알의 곡식과 한 포기의 풀을 존중했다. 그러나 그 작은 실천에서 민주주의, 생태문명, 종교적 영성이 하나로 만났다.
장일순의 삶이 오늘날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정의를 말하면서 우리는 조직 안에서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있지 않은가. 생명을 말하면서 우리의 소비는 농민과 자연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변혁을 주장하면서 권력을 차지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지 않은가. 장일순은 완성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세상을 살리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자신을 비우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 생명을 공경하며, 함께 살아갈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장일순 평전―무위당의 아름다운 삶>은 한 사회운동가의 전기인 동시에 다른 성공관을 제시하는 책이다. 장일순은 지위와 부, 명성과 권력을 얻지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과 운동의 정신적 원천이 되었다. 그의 삶은 성공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랐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생명을 살리고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을 내려놓았는가로 평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평전의 다소 이상화된 서술을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는 있지만, 경쟁과 성장, 자기과시가 지배하는 시대에 장일순의 무위와 모심의 삶은 여전히 강한 대안적 울림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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