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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6
2023/05/31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한국학, 무엇이 문제인가 일요서울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한국학, 무엇이 문제인가 < 일요서울i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한국학, 무엇이 문제인가
기자명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5.26
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2021.7.2.)이 이루어지면서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한류 현상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지로 확산되면서 한국어·한국학 교육 및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는 달리 국가적·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고 한국학은 뿌리 없는 꽃꽂이 식물과도 같이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한국학은 현대과학의 방법론을 기용하지 못한 채 ‘낡은’ 전통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산(産) 정신문화의 진면목은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 콘텐츠의 빈곤과 불균형 또한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이 직면한 딜레마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학이 직면한 최대의 딜레마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한국 사상 및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우리 상고사(上古史: 삼국 정립 이전 광의의 고대사)에 대한 제도권 합의의 부재로 인해 한국학 교육 자체가 뿌리 없는 꽃꽂이 교육, 생명력을 상실한 교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역사가 외적의 강압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과 정권 탈취 세력의 기만책으로 인하여,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위조되어 삼국 정립 이전의 유구한 역사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학 관련 서적들도 연구의 시대적 범위를 대부분 삼국시대 이후에 집중함으로써 한국학 콘텐츠의 심대한 빈곤과 불균형을 초래했다.
둘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하나의 딜레마는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유럽중심주의)의 망령, 그리고 ‘자학적(自虐的)’ 역사관인 반도사관(식민사관)에 함몰되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역사철학적 및 정치철학적 토양이 척박해지고 극명한 이분법에 기초한 한반도의 이념적 지형이 고착화되면서 심지어는 우리 역사 자체가 정쟁(政爭)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학 연구의 바탕이 되어야 할 우리 역사가 권력의 시녀 노릇이나 한다면, 어떻게 한국학이 인류 사회의 원대한 미래적 비전을 담을 수 있겠는가. 한국학의 한계성은 우리 내부의 정치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수천 년의 영광스러운 우리 상고사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반도사관이 고착화되고 민족적 자존감이 심대하게 훼손되면서 우리 민족집단 자체가 스스로를 ‘주변적 존재’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사대주의가 발흥하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셋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다른 딜레마는 목하 진행 중인 한·중 역사전쟁과 한·일 역사전쟁이 한국의 역사문화 침탈은 물론 정치적 노림수를 가진 고도의 정치적 기획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고대사 침탈은 2002년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서 고구려 등을 ‘중국 지방 정부’로 편입하는 작업을 국책사업으로 공식 진행하면서 시작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04.7)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되자, 환인·집안(集安) 등지의 유적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안내문이 게시되었다. 바이두 백과사전(2016)에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중국사의 나라로 서술하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요하문명의 대표 문화로 꼽히는 홍산문화 유적이 발굴되면서 그 문화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동이족으로 밝혀짐에 따라 홍산문화는 중국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 한·일 역사전쟁은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던 시기인 188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몇 자를 파괴·변조하여 마치 왜(倭)가 백제를 정벌하고 신라 등을 궤멸시킨 것처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가 하면, 일본의 야마토(大和)정권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진출해서 6세기 중엽까지 임나일본부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역설을 조작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면서 환국·배달국·단군조선과 북부여에 이르기까지 무려 7천 년이 넘는 우리 상고사를 신화라는 이유로 잘라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는 결정적으로 뿌리가 뽑혀버렸다.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한국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제가 날조한 역사나 읊조리며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문명의 파편이나 주워 담는 식의 종속적 한국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mzchoi33@naver.com
[최민자의 한국학 산책] 한국학, 무엇이 문제인가
기자명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3.05.26
한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설립 이래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의 지위 변경(2021.7.2.)이 이루어지면서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되었다. 문화적으로도 한류 현상이 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유럽 등지로 확산되면서 한국어·한국학 교육 및 한국 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는 달리 국가적·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고 한국학은 뿌리 없는 꽃꽂이 식물과도 같이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한국학은 현대과학의 방법론을 기용하지 못한 채 ‘낡은’ 전통에 머무르고 있으며, 한국산(産) 정신문화의 진면목은 드러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 콘텐츠의 빈곤과 불균형 또한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학이 직면한 딜레마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첫째, 한국학이 직면한 최대의 딜레마는 우리 역사의 뿌리이자 한국 사상 및 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는 우리 상고사(上古史: 삼국 정립 이전 광의의 고대사)에 대한 제도권 합의의 부재로 인해 한국학 교육 자체가 뿌리 없는 꽃꽂이 교육, 생명력을 상실한 교육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역사가 외적의 강압과 내부의 사대주의자들과 정권 탈취 세력의 기만책으로 인하여,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조직적으로 위조되어 삼국 정립 이전의 유구한 역사가 상당 부분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학 관련 서적들도 연구의 시대적 범위를 대부분 삼국시대 이후에 집중함으로써 한국학 콘텐츠의 심대한 빈곤과 불균형을 초래했다.
둘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하나의 딜레마는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유럽중심주의)의 망령, 그리고 ‘자학적(自虐的)’ 역사관인 반도사관(식민사관)에 함몰되어 역사의 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역사철학적 및 정치철학적 토양이 척박해지고 극명한 이분법에 기초한 한반도의 이념적 지형이 고착화되면서 심지어는 우리 역사 자체가 정쟁(政爭)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학 연구의 바탕이 되어야 할 우리 역사가 권력의 시녀 노릇이나 한다면, 어떻게 한국학이 인류 사회의 원대한 미래적 비전을 담을 수 있겠는가. 한국학의 한계성은 우리 내부의 정치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수천 년의 영광스러운 우리 상고사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반도사관이 고착화되고 민족적 자존감이 심대하게 훼손되면서 우리 민족집단 자체가 스스로를 ‘주변적 존재’로 인식하게 됨으로써 사대주의가 발흥하게 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셋째, 한국학이 직면한 또 다른 딜레마는 목하 진행 중인 한·중 역사전쟁과 한·일 역사전쟁이 한국의 역사문화 침탈은 물론 정치적 노림수를 가진 고도의 정치적 기획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 고대사 침탈은 2002년부터 중국 정부가 나서서 고구려 등을 ‘중국 지방 정부’로 편입하는 작업을 국책사업으로 공식 진행하면서 시작되는데 이것이 이른바 ‘동북공정’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2004.7)에서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되자, 환인·집안(集安) 등지의 유적에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안내문이 게시되었다. 바이두 백과사전(2016)에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를 중국사의 나라로 서술하는 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러나 요하문명의 대표 문화로 꼽히는 홍산문화 유적이 발굴되면서 그 문화의 주인공이 전형적인 동이족으로 밝혀짐에 따라 홍산문화는 중국 황하문명의 원류인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 한·일 역사전쟁은 일제가 한반도 침략을 노골화하던 시기인 188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광개토대왕릉 비문의 몇 자를 파괴·변조하여 마치 왜(倭)가 백제를 정벌하고 신라 등을 궤멸시킨 것처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가 하면, 일본의 야마토(大和)정권이 4세기 후반에 한반도에 진출해서 6세기 중엽까지 임나일본부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약 200년간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역설을 조작했다. 또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조선사편수회가 설치되면서 환국·배달국·단군조선과 북부여에 이르기까지 무려 7천 년이 넘는 우리 상고사를 신화라는 이유로 잘라 없애버렸다. 그리하여 우리 역사는 결정적으로 뿌리가 뽑혀버렸다.
문명사적 대전환기에 ‘한국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일제가 날조한 역사나 읊조리며 사대주의와 서구적 보편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문명의 파편이나 주워 담는 식의 종속적 한국학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mzchoi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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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자
2023/05/26
Philo Kalia - *21세기에 소환되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5) 이야기
(3) Philo Kalia - *21세기에 소환되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5) 이야기... | Facebook
*21세기에 소환되는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5) 이야기
내일(16.10-17.30) 현대신학 가나안 교회에 초청한 장효진 박사의 강의 제목이다.
장효진 박사는 2021년에 박사학위(연세대)를 받고 대학 강사를 하면서 미사리에 위치한
Cafe 베르그송의 대표, 다중지성의 “광장”을 운영한다.
스피노자 당대의 공격과 배제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시점에서
스피노자가 다시 소환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피노자를 전공한 장효진 박사가 그 의문점들을 풀어줄 것이다.
책방에 진짜 스피노자 연구가 많다.
서가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스피노자를 읽어야지... 하세월인가?
*골라봄
- 스피노자, 『스피노자 서간집』
- -, 『에티카』
- -, 『스피노자 선집』, 황태연 옮김.
- -, 『지성교정론』
- -, 『정치론』
- -, 『신과 인간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짧은 논문』
- 발타자르 토마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서동욱,진태원, 『스피노자의 귀환 - 현대철학과 함께 돌아온 사유의 혁명가』
- 성회경, 『스피노자와 붓다』
- 심강현, 『 욕망하는 힘, 스피노자 인문학 - 처음 만나는 에티카의 감정 수업』
- 손기태,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 자유를 향한 철학적 여정』
- 스티븐 내들러, 『스피노자와 근대의 탄생 - 지옥에서 꾸며진 책 <신학정치론>』
- 안토니오 네그리, 『전복적 스피노자』
- 안토니오 다마지오, 『스피노자의 뇌 - 기쁨, 슬픔, 느낌의 뇌과학』
- 알렉상드르 마트롱,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
- 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와 정치』
- 워런 몬탁, 『신체, 대중들, 역량 - 스피노자와 그의 동시대인들』
- 이근세, 『스피노자. 욕망의 기하학』
- 이수영,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스피노자 철학 읽기』
- 진태원, 『스피노자, 윤리학 수업』
-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 -, 『스피노자와 표현 문제』
- 최민자, 『스피노자의 사상과 그 현대적 부활』
- 토마스 쿡, 『 스피노자의 <에티카> 입문』
- 피에르 마슈레, 『 헤겔 또는 스피노자』
- 피에르-프랑수아 모로, 『스피노자 매뉴얼 - 인물, 사상, 유산』
---------
*다음은 2022. 1. 11에 올린 글이다.
드디어 장효진(Hyojin Jang) 박사가 예목원 살롱에 왔다(어제 저녁). 장 박사는 그동안 박사논문 과정을 모두 마쳤다. 마침내 박사님이 된 것이다. 고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장 박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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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제목은 “내재성 개념에 기반한 스피노자의 종교철학”이다.
데카르트 철학의 이원론에 대한 반동의 과정에서 형성된 스피노자의 내재주의(범신론)을 연구한 것이라고 밝힌다.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무신론으로 규정되어 유대교에서는 물론 기독교에서도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당시 스피노자가 네덜란드 유대교 사회에서 정죄당하고 추방당한 종교재판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파문선고를 바이셰델의 <철학의 뒤안길>(201)에서 읽을 수 있다. 지금도 유일신관 중심의 기독교는 범신론을 이단시하거나 의혹의 눈초리를 버리지 못한다. 이런 신관을 가진 기독교는 이원론을 사랑한다. 하나님과 세계, 하나님과 인간, 현세와 내세, 하늘과 땅, 선과 악, 빛과 어둠을 갈라놓으니, 관념과 현실의 이원론의 늪에서 헛다리를 짚거나 허우적댈 수밖에 없다.
장박사는 앙드레 토젤의 연구를 빌어 스피노자는 범신론이 아니라 “역량론”
(puissantialism, 참고로 네이버나 구글에 이 단어는 아직 없음)이라고 하지만
PUISSANT | English meaning - Cambridge Dictionary
very strong, powerful, and effective: The king introduced some of his most significant reforms as an advertisement of his own ever more puissant authority.
범신론은 만물 하나하나가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만유(세계) 안에 신이 철저히 내재한다는 의미로서,
자연 안에서 신성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범신론은 유한과 무한의 일치를 주장한다.
이 사상은 루터에게도 나타나며 특히 슐라이어마허는 스피노자를 계승하여
종교의 고유하고 참된 대상은 유한한 존재 안에 드러나는 무한한 존재, 신적 생명과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범신론은 유한자 안에 무한자가 현존한다는 원리이기 때문에,
이 원리를 따른다면 우리는 자연 안에서도 생생하게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다.
자연을 대상화하여 신적 현존성을 상실한 현대인은 무신론자가 되거나 유신론자라 하더라도 생생한 자연의 녹색 빛이 사라진 회색빛으로 떨어지는 낙엽이 되어가고 있다.
장박사는 논문에서 데카르트의 기독교-플라톤적 이원론에 대한 스피노자의 내재적 통합(Deus sive Natura), 인간론에서는 이원론에 기초한 주체의 자유의지에 반하여 스피노자의 개체론과 결정론을 대립시켜 전개한다.
논문의 꽃은 제5장 스피노자의 종교론의 세 가지 범주를 말하는 부분이다.
주요 주장은 피에타스(pietas)에 기반한 스피노자의 종교이해이다.
피에타스란
- “부분적 대상인식에서 벗어나 자연 전체를 사랑하고
- 자연 전체의 무한한 일부로 우리 자신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으며,
- 이를 통해 신의 무한한 역량을 공유하고
- 쾌활함과 환희의 정서를 함께 향유할 수 있다
고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욕망을 피에타스라고 칭한다.”(197). 논문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다.
바이셰델은 스피노자 철학의 근본 특징을
“무상함에 대한 비애의 경험에서 출발해 참된 사랑을 통해 영원한 것으로 뻗어 나가서 그 사랑 안에 안주하는 것”이라고 정리하면서,
이것을 “신을 향한 정신적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어 시인 노발리스의 “스피노자는 신에 취한 사람이다”를 첨언한다.
사람이 취한 신이란 세계 밖, 하늘 위에 홀로 외롭게 계신 신이 아니라 만물에 철저히 내재한 신이니 스피노자는 만물, 곧 자연, 동식물, 인간, 사회, 국가 등에 철저히 취한 사람일 것이다.
이원론적 데카르트주의와 근대 기독교의 이원론적 태도와 철저한 유신론에 대한 반동으로
철저한 내재주의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위르겐 몰트만은 하늘 상징이 의미하는 바를 “하느님을 향하여 열린 창조의 면이 곧 하늘”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하늘은 땅의 상대적인 피안이고 땅은 하늘의 상대적 차안이다.
창조는 하늘에서 상대적 초월을, 땅에서 상대적 내재를 발견한다.
하느님을 향하여 개방된, 탈중심적인 세계는 초월과 내재의 변증법적 구조를 갖는다.
그러므로 하늘의 상대적 초월을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과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몰트만의 설명이다.
장효진 박사가 최근에 시작한 중요한 일은 다중지성의 “광장”이다.
한국사회 지성의 광장이 되길 바랍니다.
철학, 종교, 인문학, 예술, 대중문화, 여가와 오락 등이 모여
심포지엄을 이어나가는 자유롭고 너른 광장이 될 것입니다.
논문에서 “스피노자의 다중”(207)이란 말이 언급되는데,
다중에서 암시되는 스피노자의 윤리, 정치사상은
이제 논문을 도움닫기로 삼아 높이뛰기하는 높고 넓은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식당에선 저녁 8시 50분이 되면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다들 나가고 우리만 남았네. 스피노자는 신에 취하고 만물에 취했는데, 요 짧은 시간으로는 도무지 취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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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Taechang Kim, Philo Kalia and 92 others8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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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 KaliaTaechang Kim 제가 한 권 받은게 있음니다만... 장박사에게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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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echang KimPhilo Kalia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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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 Kalia이정만 아, 그러시군요. 이렇게 연결되니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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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 Kalia이원검 관심과열정에 감사드리며저도 님을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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