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쓴 글이 무섭다. 하지만 어느 교수님과 한 약속 때문에 펼쳐 놓는다. 두려움은 탐욕에서 온다는 것을 안다. 이런 나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복음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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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부스러기(마가 7:24-30) : 비평연습 4회차 글쓰기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오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닿으면 더는 가지 않고 친구들에게 안녕! 했다. 이상하지. 길은 이어져 있고 경계는 없었지만 더 나아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정의 벽을 느꼈다. 그 골목에 닿기 전에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은 학교가 너무 가까워서 부러웠고, 그 골목에서 더 걸어가야 하는 친구들의 집들은 먼발치에서 아득했다. 기억 속의 나는 그 경계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막상 가보면 고갯마루가 이어져 있지마는 왜인지 무섭고 신비로운 세계가 숨겨져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산 너머처럼, 어린 시절 집으로 오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첩첩이 드리워져 있었다.
본문에서 예수는 두로 지역으로 간다. 다른 사본에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까지 찾아온 바리새인들 및 율법학자들과 율법을 어떻게 해석할까 한바탕 논쟁을 마친 후였다. 구약 역사서는 가나안을 점령한 이스라엘의 국경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로 요약한다. 브엘세바는 남쪽 경계고 단은 북쪽 경계다. 두로는 단과 위도가 거의 비슷하고 시돈은 조금 더 북쪽으로 떨어져 있다. 제국의 땅이라 쉽게 넘을 수 있는 경계였지만 유대인의 심정에서 두로는 이방 땅이었다. 예수는 이 경계를 방금 넘은 것이다.
사실 이 경계를 넘을만한 상황이었다. 당시 갈릴리 바다 북안 게네사렛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논쟁하러 예수를 찾아 왔고, 오병이어를 얻어먹은 군중들은 오늘은 또 무슨 먹거리를 줄까 궁금하여 몰려들었다. 아픈 사람들은 병을 고치려 보호자와 함께 몰려들었다. 제자들은 밤새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넌 참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한밤중에 물 위를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배가 없었던 거다. 그 시끌벅적한 가운데 논쟁이 벌어졌으니 말 그대로 야단법석(惹端法席)이었다. 그 전에도 예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버린 적이 있다(마가 6:45-46). 그러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바리새인들이 쫒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자, 고 이방 땅으로 넘어가신 것 같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는 아무도 모르게 숨으려고 했다고 기록한다(마가 7:24).
예수의 은신처에 그리스 여인이 찾아온다. 논쟁하러 온 것도 아니고 빵을 얻어먹으러 온 것도 아니었다. 대화 가운데 빵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여인의 관심사는 빵이 아니었다. 어미는 자기 입에 들어가는 빵보다 자식이 삼키는 빵이 더 배부른 법이다. 이 여인의 소원은 자기 딸이 낫는 것이었다. 아람어로 말하는 예수와 헬라어를 쓰는 여인이 어떤 언어로 대화하였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이 여인은 예수 앞에 저자세로 엎드려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예수는 거절한다. 자식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아마도 단호히 말한다. 민중신학자 김진호는 이 장면에서 예수가 귀족 여인을 개 취급함으로써 두로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던 갈릴리 민중들의 현실을 거꾸로 적용하였다고 해석한다(https://owal.tistory.com/624). 이렇게 해석한다면 예수의 말은 통쾌하도록 매섭고 차가웠을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이 여인이 “하느님의 잔치상이 넘쳐흐른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인정하도록” 한 수 가르쳤다고 평가한다(https://url.kr/ca6ups). 이런 장면에서라면 예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을지 모른다.
마가복음은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 성전을 산산이 부수고 메시야공동체와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며 유대 전역을 쓸어버린 정복전쟁(AD 63-70)을 겪으며 이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달은 마가공동체가 신앙의 고백을 남긴 구전이다. 공동체는 사라졌고 말씀만 남았다. 그런 시각에서 마가 문헌에 기록된 수로보니게 여인은 새끼를 품고 불에 끄슬린 암탉의 품에서 생존하여 기어 나오는 병아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마태 23:37, 누가 13:34)” 하나님도[?]자식에게 빵을 주고 싶지만 먹지를 않아 고통스러운 어미였다. 고통에서라면 지지 않을 이 여인은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개라도 되겠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품어 구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러면 나를 구해 주십시오. 그 품에 나라도 품어 살리십시오. 여인은 이렇게 애원하고 있다.
경계 안쪽에서 군중들은 요구한 것은 입으로 먹을 빵이었다. 예수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을 주겠다 하여도 군중들은 됐다고, 빵이나 달라고 요구했다. 모세의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고도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가나안에 닿기 전에 죽어버린 이야기를 하여도 그들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소위 메시야공동체의 정체였다. 예수가 그토록 주고 싶었던 빵에 군침을 흘리는 여인을 경계를 넘어 이방 땅에서 만나다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예수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헬라 여인을 만났고, 말마따나 자식에게 줄 빵을 개에게 주었다. 사실 먹겠다는 자식이 없어 남은 빵이 바닥을 굴러다니다가 개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사건이 예표라도 된 것처럼, 복음은 이스라엘 경계를 넘어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를 지나 로마로 흘러들어갔고 예수의 복음은 바울의 입을 빌려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부스러기를 먹고 있다.
덧붙여, 지금 교회가 가진 진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빵은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 살찌우고 있는가. 여전히 입맛없는 자식들 앞에서 천덕꾸러기처럼 굴러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 이 식탁 앞에서 군침을 흘리는 이방인은 누구일까. 우리 시대에 복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 우리는 예수처럼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계를 넘어 낯선 땅으로 들어가 지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를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을 수도 있다.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 복음의 새로운 맛을 느끼는 소망의 식탁에 어색하게나마 앉게 된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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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ewon Jung사랑하는 우리 현주언니의 글을 제3시대 웹진에서 보게 되다니!!!! 언니의 묵상은 여전히 힘이 있고 따뜻하고, 소망이 됩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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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un Ju Kim읽어 줘서 고마워 희원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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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여는 말] 웹진 <제3시대> 180호 : ‘말 걸기’의 기술, 말 건넴-받음의 순간들
웹진 제3시대
조회수 116
웹진 <제3시대> 180호 : ‘말 걸기’의 기술, 말 건넴-받음의 순간들
웹진 <제3시대> 180호는 연구소에서 진행한 강좌 '비평연습02. 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의 특집을 겸하여, <'말 걸기'의 기술, 말 건넴-받음의 순간들>이라는 주제로 구성하였습니다.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저마다의 기술을 들여다보고, 누군가 우리에게 말을 건네 오는 특별한 장면에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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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걸기", 사실은 이랬답니다」(황용연)는 지난 7~8월에 진행된 <비평연습02. 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 강사였던 필자가 강좌의 취지와 소회를 밝히면서, '말 걸기'의 의미를 전해줍니다. 성서에 대한 접근을 일방적 전달이 아닌 ‘나눔의 과정’으로 만드는 ‘말 걸기’의 특징이 ‘예측불가능성’임을 이야기해줍니다.
「말 걸기 방식, 내가 오롯이 있기 위하여」(홍성훈)는 필자가 타인에게 ‘관조’의 대상이 되곤 했던 “상냥하고도 쓸쓸한 예의”를 넘어,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와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타인을 그곳으로 초대하는 과정이 어떻게 ‘무대’에서 이루어졌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충만감”을 ‘일상’에서도 오롯이 잇기 위해 자신의 언어와 방식을 찾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음을 전해줍니다.
「우리가 아끼는 것들」(이성철)은 아끼는 마음에 함부로 쓰지/하지 않았던 어떤 '조심성'에 대해, 그리고 “밥값보다 가성비가 좋”은 식욕억제제를 둘러싼 일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끼는 것과 연결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눠줍니다. 점차 무언가를 ‘하지 않음’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되는 현실 너머 “서로가 아끼는 것들에 조금씩 가까워”지기 바라는 마음을 전합니다.
「감별사들을 위한 대답은 없다」(김윤동)는 ‘말문 막히는 순간’의 경험을 나눠주면서 어떤 말의 대답은 그 말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진위’를 묻는 말에 담긴 “서열을 나누고 차별을 행하는 습속”을 비판하며, 진짜/가짜의 구분이 아닌 저마다의 질서와 이름에 주목하자고 말합니다.
이번 호에는 지난 7~8월에 진행된 <비평연습02. 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 강좌를 수강하신 김현주 선생님의 글쓰기를 담아보았습니다. 열성적으로 강좌에 참여하고 글쓰기와 피드백을 진행해주신 강사 및 수강생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글들을 통해 ‘비평연습’의 시간을 되감아 봅니다.
「그의 이름은(창세기 2:4-3:24) :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김현주)
「빵 부스러기(마가 7:24-30) : 비평연습 4회차 글쓰기」(김현주)
이번 호 ‘특별 연재’ 코너에는 「인터뷰 : 그대를 찾아서 11」(강윤아)를 싣습니다.
‘프로그램 리뷰’에는 지난 8월에 진행된 강좌 <안병무학교 여름 학기 : 여성의 눈으로 그리는 마가복음>에 대한 리뷰 「한 여름 밤의 강의」(이현지)를 싣습니다.
‘민중신학 다시 읽기’에서는 안병무, 「나의 삶의 자세」(『현존』, 1976.5.)를 소개합니다.
앞으로도 웹진 <제3시대>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리며, 웹진에 글을 기고하기 원하시는 분은 언제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공식 메일 3era@daum.net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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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기획 기사] "말 걸기", 사실은 이랬답니다(황용연)
웹진 제3시대
조회수 59
"말 걸기", 사실은 이랬답니다
황용연(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1.
강사 노릇을 적지만 안 해 본 것도 아닌데 [비평연습]이라는 강좌 이름을 듣고 나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강사로서 내용을 전달하라면 하겠고 주장을 하라면 하겠는데 이건 내용 전달이나 주장 전달이 문제가 아니라 강좌에 참여해서 저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이 결국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야 성공한 강좌일 터이니 말입니다. 그게 참 막막하더군요.
기획안을 내기 직전까지도 뭘 해야 하나 고민만 거듭하다가 결국 든 생각이 에라 인터넷 필명을 쓰는 대로 삐딱선이나 타 보자 일단 이끔이인 내가 재미있어야 뭘 해도 하지였지요. 그래서 과거에 설교를 했거나 글을 썼던 주제들 중에서 삐딱선을 재미있게 탈 만하다 싶은 걸 골라서 가안을 제출했는데, 조정을 거치니까 창조, 여성, 성탄, 고난, 부활, 신-인간 이런 식으로 뭔가 신학적 체계가 잡힌 듯한 개별 강의 제목이 나오는 걸 보고 어라 이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란 생각이 들기도 했었네요.
2.
위에 적은 것과 같이 일단 강좌하는 내가 재밌자 컨셉이었는데 강좌 전체 컨셉을 이걸로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떤 컨셉을 내세워야 할까 하다가 문득 든 생각이 '성서와 함께 말 걸기'라는 말이었습니다. 강좌 소개 영상에서도 한 이야기인데, 제가 지금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설교 대신에 하늘뜻나누기라는 용어를 씁니다. 하늘뜻은 설교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설교에 청중으로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라는 이야기죠. 좀 더 나가면 하늘뜻을 찾을 수 있는 자리는 바로 그 나눔의 과정이라는 말도 됩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하늘뜻나누기는 교회의 역사가 길어지면서 설교+토론 형식으로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그 하늘뜻나누기의 컨셉을 이 강좌에 적용한다면 어떤 컨셉이 될까 생각해 본 것이 '성서와 함께 말 걸기'였던 셈입니다.
설교의 자리를 하늘뜻나누기로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늘뜻이라는 것은 사실은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일 터입니다. 평소에 자신에게는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는 사람이라도 사실은 할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고 어떤 계기가 있으면 말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란 말도 되겠지요. 그렇다면 한 사람이 그런 계기를 거쳐서 말을 누군가에 걸게 되면 말 걸기의 대상이 된 그 사람도 자기 말을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다시 말 걸기를 할 수 있게 되기도 하겠고요. 이왕 성서라는 것을 같이 읽을 바에야 그런 말 걸기의 계기가 될 수 있게 읽으면 되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을 덧붙이면서 탄생한 말이 이 강좌의 전체 제목이었던 [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였습니다.
3.
강좌를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이 있다면 "성서를 읽고 성서와 함께 말 걸기"는 역시 예측불허의 과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제가 강의를 준비하면서도 강의 준비를 위해 여러 자료를 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많이 받았고 몇몇 강의는 처음 생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른 내용으로 준비를 하게 되더군요. 앞에서 썼던 대로 무엇보다도 내가 재미있어야 뭘 해도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런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재미있게 강의를 준비하고 나면, 저는 저 나름대로 중심과 강조점을 형성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서 강의를 이끌어 나가기 마련인데요. 수강생 여러분들도 재미있게 들어 주신 것 같은데 정작 쓰시는 글들의 착안점은 제가 생각했던 중심과 강조점과는 조금 다른 지점이 되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 착안점이 생기면 거기서 시작되는 글쓰기가 굉장하게들 진행되었습니다. 명색이 이끔이라서 쓰신 글들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야 하는데 글 한 편이 나올 때마다 뭘 어떻게 피드백을 해야 하나 머리를 참 많이 싸맸었죠.
하긴 생각해 보면 "말 걸기"라는 게 이런 예측불허의 과정일 수밖에 없기도 하겠더라고요. 각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다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어쨌든 제 강의의 어느 부분에서 수강생분들이 자극을 받아서 훌륭한 글들을 쓰셨다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한 "말 걸기"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고요. 물론 제 생각엔 이끔이가 잘 했다기보다 수강생분들이 워낙 훌륭하셨다라는 쪽에 한 표입니다.
4.
이 칼럼에서 야구 이야기를 가끔씩 했었는데, 응원팀 야구 선수 중에 타격폼이 정말 독특한 선수가 있습니다. 스윙하면서 몸을 거의 뒤집어버리다시피 타격을 하는데, 신기한 건 완전히 뒤집어졌다 싶으면 홈런이 나온다는 겁니다.
최근에 야구 중계를 보면서 이 선수의 타격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해설자가 타격폼이 독특하지만 저건 자기 스스로에게 맞는 최선의 타격폼을 찾아낸 것이라 코멘트를 하니까 캐스터가 그 말을 받아서 역시 타격폼에 정답이란 없는 거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해설자가 다시 받기를 정답이 없는 게 아니라 정답을 찾은 거라고 하더군요. 타자들에게 다 통하는 정답은 없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답이란 건 각자 찾아야 하는 거란 이야기겠죠.
종교인이란 명칭을 가지고 살다 보니 어떤 단일한 정답, 흔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단일한 정답이 존재하고 그 정답을 실현 혹은 실천하면 되는 것인 양 이어지는 말들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됩니다. 따지고 보면 이런 말들이 꼭 종교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지금 막 시작된 대통령 선거 경쟁에서 유력한 양 진영 모두 "XXX만은 안 된다"라는 단일한 정답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양 밀어붙이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앞에서 "말 걸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했었는데, 이 "말 걸기"라는 건 단일한 정답이라는 것과는 좀 거리가 멀어 보이죠, 확실히? 누군가 자기는 이 말이 하고 싶어서 말을 건네면, 그 말을 받는 사람은 그 말에서 또 다른 지점에서 자극을 받아 다른 말을 건네는 과정이니 말입니다.
그렇게 말 걸기가 이어지는 과정이 순탄한 과정이지만은 않겠죠. 이곳저곳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할 텐데요. 아마도 그 불협화음의 순간에 필요한 말이 어쩌면 어디선가 들었던 이런 말일 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 타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데 충돌이 생긴다면,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충분하게 요구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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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기획 기사] 말 걸기 방식, 내가 오롯이 있기 위하여(홍성훈)
웹진 제3시대
조회수 120
말 걸기 방식, 내가 오롯이 있기 위하여
홍성훈(작가)
한때 어머니와 다니는 일이 안심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어디를 가든, 나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할 때면 이렇게 운을 뗐다.
“얘가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중인데요. 제가 얘 낳을 때 난산을 해서 장애로 만들었어요. 아이고, 그때 조금이라도 힘을 줘서 쑥 낳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래도 머리는 좋아서 대학원까지 갔고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머니의 타임라인에서 나의 시간은 늘 같은 방향으로 흘렀다. 본인이 심한 난산을 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 이야기의 종착점은 내가 어느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가, 였고 한 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그 자리까지 갔다는 게 핵심 포인트였다. 어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어서 어느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듣곤 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빠르게 나타났다. 나를 보는 시선이 45도에서 40도로 약간 이동했는데 그 각도는 휠체어가 아닌 그 위에 앉은 나를 조금 더 들여다 볼 수 있는 시야를 틔워 주었다. 곁에 있는 나는 뭘 그런 얘기까지 하냐는 식으로 어머니의 팔을 툭 쳤지만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극대화하기 위한 연출 기법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나도 은근히 즐기고 있었다. 어머니와 같이 있으면 사람들에게 굳이 나를 애써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라는 말은 꽤 효과가 있었다. 몇몇은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나에게 의사를 물어보기 시작했으니까. 바로 직전까지 아무리 나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머니나 활동지원사 선생님과만 시선을 맞추고 나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두 사람에게 물어본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어머니는 기가 막힌 솜씨로 타인과 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숙련공인 셈이었다. 아들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는 죄책감과 그럼에도 이렇게 잘 키워냈다는 자부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어머니의 이야기가 자주 반복될수록 내가 나를 설명하는 언어들이 점차 줄어만 갔다. 어느 순간 어머니와 비슷한 방식으로 나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을 스스로 발견할 때면 하던 말을 뚝, 멈출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죄책감을 이용하는 비열한 짓이었다. 또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나 사이에 어떤 경계선이 생겨났다. 견고하게 그어진 경계선 속에서 사람들에게 나는 ‘관조’의 대상이었지, ‘비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더 이상 사람들은 나의 일상을 뒤흔들 만한 말을 하지 못했고 나도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상냥하고도 쓸쓸한 예의였다.
‘전환’의 순간이 찾아온 건 공연 무대에 섰을 때였다. 아주 우연한 연결로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공연 팀에 합류했다. 사실 무대에 서는 일은 전부터 꿈꿨던 일이었는데, 무대만이 주는 긴장감을 느끼고 싶었고 관객들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는 내가 어떤 ‘역경’을 딛고 왔는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고 관객들과 함께 있을 것인지가 중요했다. 그것은 서로의 삶의 맥락을 잇거나 다시 만들어내는 일이었으며 서로의 말을 잘 듣고 응답을 주고받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소통방식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보아야 했다. 나는 말을 하기 위해 어깨 근육을 사용하는 사람이다. 음성언어가 아닌 문자언어, 즉 타이핑으로 말을 만듦으로써 사람들과 소통을 해오고 있다. 의학적 관점에서는 이런 나를 일컬어 ‘언어장애인’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이들이었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반드시 침묵이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나의 타자 속도가 빠르다면 어느 정도 침묵의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침묵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한 손가락을 재게 놀리려고 애쓰지만 그럴수록 오타가 발생하는 빈도가 더 늘어나기만 했다. 나는 느린 타자 속도와 종종 발생하는 오타를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무대에서만큼은 다르게 접근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상대방의 소통방식에 나를 맞추려 하기보다는 나의 소통방식으로 초대하고 싶었다. 무대는 얼마든지 삶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가지고 있는 공간인 만큼 한번 시도해보고 싶었다. 나는 무대에 설치된 스크린에 문자를 찍고, 하고 싶은 말을 관객들에게 전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의 속도나 오타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면서 한 글자씩 나의 말을 완성해나갔다. 관객들은 나의 말이 완성되기까지 기다려주었고 그 말에 대한 응답을 그들의 방식으로 들려주었다. 그렇게 나와 관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의 어떤 부분을 이어나갔다. 일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충만감이 느껴졌고 삶의 지지대 하나가 세워진 느낌이었다.
공연이 끝난 이후로도 나는 나를 설명하기 위한 언어와 방식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무대가 아닌 일상에서도 내가 오롯이 있기 위해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
사진 : 정택용 X 0set 프로젝트
ⓒ 웹진 <제3시대>
정연선22시간전
나무가 있습니다
감나무인 지
사과나무 인 지
은행나무 인 지
사람들은 그 열매나
더 자세히 보는 사람은
잎이나 색을 보고
감나무라 믾말하고
은행이라고 합니다
나무는 어머니 입니다
열매는 자식입니다
어머닌 잘생긴 열매도
좀 이그러진 열매도
맛이 들고 성숙하여
또 다른 생명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훌륭한 나무이고
열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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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기획 기사] 우리가 아끼는 것들(이성철)
웹진 제3시대
조회수 155
우리가 아끼는 것들
이성철(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원)
아끼다보면 더 애틋해 지는 것들이 있다. 돈, 새로 산 옷, 시간, 읽고 싶던 책, 사랑, 먹고 싶은 음식, 용서, 친구. 느린 나는 이런 것들을 아주 소중히 또 천천히 묵혀둔다. 언제 샀는지 기억나지 않는 책을 어느 날 꺼내 읽으면 위로를 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용서와 냉장고 안의 음식은 입에 담지 못하고 버려진다. 아마 내게 아끼는 마음은 소중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함부로 쓰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밖에 나가 밥 먹을 시간을 아껴 책상에 앉아 회의를 하며 밥을 먹고, 만나지 못해 더 이상 취향을 모르는 친구에겐 선물목록 베스트 선물을 카톡으로 보낸다.
어떤 것을 마주해야할 때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했다. 미루고 미루다, 아끼다 똥이 되는 그 직전의 순간을 사랑하며 쓸모 있음과 없음, 그 사이를 기다린다. 친구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을 지금 하느냐, 할 이야기가 있을 때 하느냐. 이 안주를 지금 이 술과 함께 먹느냐, 나중에 다른 술과 함께 먹느냐 같은 것들 말이다. 그날도 배달 어플로 어렵게 저녁메뉴를 고르고 배달 도착 전, 기숙사 앞으로 나가는 길에 Y를 만났다.
몇 년 전에 알고 지내던 Y는 3년 만에 만나 복도를 마주하고 서로의 앞방에 살고 있다. 마주보며 산 지 반년이 지나가지만 배달음식을 받으러 방을 나오다 마주칠 뿐이었다. 우리는 종종 서로의 방 앞에서 마주치면 안부와 손에 든 배달음식 메뉴를 물었다. 그날 친구는 메뉴가 아니라 본인이 요새 살이 빠진 것 같지 않냐고 물었다. 원래 마른 체형의 친구였는데 정말 살이 더 빠져보였다. “야 임마 우리 지금껏 헛살았어, 살을 빼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어”라며 배달 음식 봉지를 흔들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는 책상에서 약봉투를 가져와서 알록달록한 약들을 보여줬다.
이야기인즉슨, 살 빼는 약을 처방받아 먹는 친구가 추천해줘 약을 먹으니 3주 만에 5키로가 빠졌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계속 식욕억제제를 먹고 있다고. 정상체중이지만 직장생활로 살을 뺄 시간이 없어 스트레스라고 말하니 체중도 BMI도 재보지 않고 약을 처방해줬다는 것이다. 처방받은 약은 탄수화물 흡수를 방해하는 마약류인데, 하루에 6개의 알약이 들어있는 약 한 봉지와 근육을 유지하기 위한 닭가슴살 하나, 치즈 한 장 정도를 먹으면 문제없이 살이 빠진다고 했다. Y는 만족스런 표정으로 약의 효과를 설명해줬다. 전엔 식욕억제제나 다이어트 약을 먹는 사람들은 의지가 박약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다이어트 한다고 굶은 뒤 늦은 밤 폭식하고 오는 자괴감이 없어져서 좋고 무엇보다 약 한 봉지가 밥값보다 가성비가 좋아 매끼 먹을 메뉴 고르지 않아도 된다, 싸고 배고프지 않으니 약을 먹지 않는 게 바보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등등. 그래도 같이 나가서 삼겹살은 한번 먹자고 약속을 하고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Y는 약을 먹은 후로 밥을 먹지 않아도 힘이 난다고 했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아도 먹는 양이 줄었다고. 같이 먹는 밥의 의미를 잃은 사람들은 밥을 먹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다. 서로의 안부 묻기를 주저하고, ‘조만간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를 아끼며 살아간다. 약속이 없으니 머리를 자르는 기간이 미뤄지고 계절이 지나도 새 옷 사기를 주저한다. 연결되려던 노력이 줄어들고 우리는 이제 무언가를 하지 않음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배달 어플에 1인분 주문이 있지만 가격과 양은 1인분스럽지 않아 1인 가구의 식사는 대단하거나 초라하다. 돈을 아끼거나 건강을 아낀다지만 사실 둘 다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서로가 아끼는 것들에 조금씩 가까워져 서로를 아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면 좋겠다. 오늘 저녁엔 뭐가 먹고 싶은지 묻는다면, 한 끼 밥이 처리하고 때워야 하는 일에서 조금은 의미 있는 일로 변하지 않을까. 이제 우리가 상하기 전에 나는 내 방문을 열고 너의 문을 두드려 우리 같이 밥 한 끼를 먹자. 시간이 늦었으면 조금 식상하지만 치킨도 좋아. 맥주는 내가 가져갈게. 그렇게 조금씩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아끼지 말고 서로를 아끼자.
Y와 인사를 하고 들어와 배달 봉투를 풀고 조금 식은 삼겹살을 먹었다. 1인 세트였으니까, 그뿐이다. 우리는 아직 서로를 포기하거나 방치하지 않았다. 삶과 힘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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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기획 기사] 감별사들을 위한 대답은 없다(김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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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별사들을 위한 대답은 없다
김윤동(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기획실장)
주얼리/액세서리 숍을 운영하다 보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이거 ‘가짜’죠? 또는 ‘가짜라 변하죠?’라고 묻는 질문들이다. 숍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린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줄 몰라서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다.
이런 진짜와 가짜를 묻는 질문들 아래에는 주얼리/액세서리 중에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것은 가짜이고, 고가의 보석은 변하지 않는다는 선입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우주 속 광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귀금속이라고 불리는 순도가 높은 금, 은, 다이아몬드라도 변한다. 공기에 노출되고, 사람 피부에 닿으면 변한다.
변하는 것은 색 뿐만이 아니다. 색이 변하지 않더라도 보석은 잘 긁히고 깨진다. 무른 광석은 말할 것도 없고, ‘모스 경도’로 따졌을 때 가장 단단한 광석이 다이아몬드는 어떠한가? 어떤 것으로 긁어도 긁히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귀금속의 대명사가 바로 이 다이아몬드인데, 이 다이아몬드는 잘 긁히지는 않는 광물이지만, 결이 일정하게 나 있기 때문에 자신보다 잘 긁히는 금속과 부딪히게 되면 쉽게 쪼개지고 깨져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값어치도 당연히 변한다. 동네 금은방만 가도 알 수 있듯이 금을 사는 가격과 파는 가격이 다르다. 물론, 세계의 금 ‘시세’라는 게 변동하면서 가지고 있는 금값이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수천만 원~수억 원을 주고 산 주얼리도 구입한 그 순간부터 값어치는 떨어진다. 시장의 원리에 의해서 값어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자체가 값어치가 변한다는 의미다.
조금 덜 변하고, 느리게 변할 뿐 모든 귀금속, 광석은 변한다. 다른 것보다 빨리 변하고 무르고 잘 깨진다고 해서 ‘가짜’라 불리는 것이 온당한가? 모든 금속이나 광물은 각자의 이름이 있다. 백금, 금, 은, 황동, 청동, 다이아 등. 이런 이름이 있는 모든 광물들도 변하는데, 상대적으로 지구에 매장량이 많고 색이 변하고 그로 인해 가격이 저렴한 광물이라는 이유로 이름이 아니라 ‘가짜’라고 불리는 것은 온당치 않다.
‘가짜냐’, ‘가짜라 변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긴 설명을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간단히 대답한다. “금도 변해요. 조금 늦게 변하는 것뿐이죠.”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도쿄 올림픽 이후, 전과는 달라진 장면들이 보이곤 한다. 과거에는 메달 자체가 당연시되는 종목이나 선수가 메달을 따지 못 하거나 높은 순위를 얻지 못하면 대중들은 비난 일색이 되고 선수들은 귀국을 할 때면 고개를 숙여 석고대죄를 하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이와 달리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가 경기 자체를 즐기고, 관람하는 이들도 선수들의 최선을 다 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인기종목, 대중적인 프로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아주 다양한 종목에서 각자의 최선을 다하는 아마추어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국위선양’을 따지며 대한민국의 메달 순위가 올라가면 국격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적어지고, 선수 개개인이 최선을 다해 경연과 경쟁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서 스포츠의 본 취지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개인과 팀의 목표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한 사람들이 탄식하고 애석해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저 메달을, 나아가 금메달을 딴 사람만이 ‘진짜’ 스포츠 선수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선수 대우도 받지 못하던 시절은 이제 간 것 같다.
이제 차별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감별사들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디에든, 무엇이든 고유의 질서와 이름이 있다. 다짜고짜 ‘진짜예요? 가짜예요?’라고 물으면서 서열을 나누는 습속을 들키지 말아야 한다.
누가 진정한 페미냐, 누가 진정한 진보냐, 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냐, 누가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있는가 등과 같은 소위 ‘진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아야 한다. ‘진정성’의 문제를 개인과 특정 팀이 자발적으로, 내부적으로 묻는 것에는 의의가 있을 수 있으나, 그 질문이 바깥을 향할 때는 분명 차별의 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서열을 나누고 차별을 행하는 습속을 드러내기 전에 한 숨을 쉬고 자신을 객관화해볼 수 있는, 성찰적이고 겸손한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진위’의 경계를 끝없이 허물고자 하는 이 시대의 요청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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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비평연습 특집] 그의 이름은(창세기 2:4-3:24) :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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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창세기 2:4-3:24) : 비평연습 1회차 글쓰기
김현주(대전보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첫 사람의 이름은 사람일까, 아담일까, 남자일까? 그대와 함께 사는 강아지의 이름은 개인가, 댕댕이인가? 시츄일수도 있고 푸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대가 애완하는 강아지를 개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는 여느 강아지와 다른 내 아이이며 내가 이름을 부를 때 꼬리를 흔들며 달려와 안기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의 몸짓을 춤으로 담은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다. 동대입구역에서 야간노동을 하는 그분의 이름은 배남이였다. “내가 배남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았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이제껏 누가 볼까 창피하던 청소하는 모습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거기에서 아름다움을 발견당하는 경험을 그분은 눈물로 감격했다.
성경의 첫 사람은 아담이다. 창조설화에는 개체의 이름과 종의 이름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첫 사람을 좀 알아보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읽어야 한다. 한글 성경에서는 아담을 사람이라고도 번역했고 남자라고도 번역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의 이름은 아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첫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첫 사람은 이름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고 아무도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지어 불러줄 이가 아무도 없는 아담에게서 절대 고독의 무게가 느껴진다.
흥미롭게도, 이름이 없던 첫 사람의 직업은 작명가였다. 그는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살았다. 짐승을 보고 그가 이르는 것이 그 이름이 되었다. 허나 그가 지어준 이름은 상대와 관계를 구성하는 애칭이 아니라 공식적인 명칭이었다. 아담은 여러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으나 무엇과도 벗 삼지는 않은 것 같다(창 2:18-20). 첫 사람이 하나님이 데려온 강아지에게 ‘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아니면 ‘댕댕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까? 전자였다. 만일 후자였다면 하나님이 추가로 여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을 테다. 사람이 혼자라서 좋지 않으니 짝을 지어 주자던 하나님의 첫 시도는 뜻을 이루지 못하여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창조자가 첫 사람의 이름을 지어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나는 하나님이 첫 사람의 짝(돕는 베필)이 되어줄 수는 없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마치 첫 사람이 어떤 짐승도 짝으로 삼을 수 없었던 것처럼 하나님도 사람의 짝으로는 맞지 않았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비유하였다. 이 편지는 성경에 새겨져 기독교 세계에서 가부장을 지지하는 메시지로 기능해 왔다. 성인지 감수성이 좀 생기고 나서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에서 아내의 복종은 수월하고 남성의 사랑은 엄청 힘들다는 식으로 양보하기도 하지만 그런 시각으로 남편과 아내의 위계를 해체하지는 못한다. 비록 바울이 윤리적인 설교의 형식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이 비유를 부부관계의 첫 모형인 창조 설화의 첫 남자와 아내의 관계에 비추어 보면, 바울의 비유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동등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수는 생전에 딱 한 번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미래형으로 말한 것 외에 교회라는 것을 시도한 적이 없다. 베드로와 긴장 관계에서 정통성이 간절했던 바울이 본격적으로 교회를 세우고 관리하면서 자신이 세운 교회의 권위를 그리스도와 동등한 수준으로 주장하고 싶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동등함은 동일함이 아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다르고 사람과 짐승이 다른 것처럼 존재는 구별이 되지만 남자와 여자는 그런 구별이 없다는 정도로만 이해하여도 교회의 위상은 상당히 올라간다.
이 동등한 여자와 남자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나님은 첫 사람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들어 데려왔다. 이제 첫 사람 아담은 더 이상 아담이 아니다. 계산을 해 보면, 갈빗대를 잃은 아담은 당연히 원래 아담보다 모자란다.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 아담에게서 떼어낸 갈빗대는 여자가 되었기 때문이다(창 2:23). 여기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표현에 NASB는 fashion이라는 동사를 썼다. 상당히 모양을 낸 것 같은 느낌이다. 들짐승도 날짐승도 움직이지 못한 아담의 굳은 마음을 흔들어보겠다는 창조자의 의지겠다. 갈빗대를 잃어 아담보다 조금 모자라게 된 (첫 사람이 아닌) 첫 남자는 이제 여자에게서 자신의 모자람을 채워 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른다(창 2:24). 합본 편집된 성경에서 가장 앞자락에 기록된 노래다.
사람이라는 보통명사로 불리던 이름 없고 외로운 작명가에게 이제 재미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동안은 갈빗대가 있어서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갈빗대를 잃고 부족함이 생기자 관계에 대한 갈망도 생긴 것이 우연일까? 처음 만들어진 완벽했던 첫 사람은 여러 짐승과 심지어 창조주에게도 무심했다. 세상에는 동식물이 가득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역동하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그가 ‘홀로’라서 좋지 않다고 하였다. 복잡한 놀이공원에서 홀로인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거나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창조자가 그의 벗이 되어주는 대신 그에게 벗을 만들어 준 이유는 아무래도 그에게 부족했던 것이 바로 ‘부족함’ 그 자체였기 때문일 것 같다. 갈빗대라는 것이 신체 기관인지 마음의 조각인지 영혼의 부스러기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빠져 나간 ‘빈자리’가 없는 첫 사람은 완벽하지만 무언가 모자랐던 것이다. 이름이 없어도 부족함이 없던 그에게 결핍이 없어서 부족했다는 역설이 흥미롭다.
이어서 선악과를 먹는 장면에서 우리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분명히 첫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말했다는데, 여자의 말에서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고, 어기면 우리가 죽을 것이라고 하셨다.’고 묘하게 달라져 있다. 남자가 들은 말을 여자에게 정확히 전달했다면 여자가 열매를 가져와도 바로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는 했겠지. 사실 남자도 헷갈렸을까? 여자가 열매를 먹었다는데 죽지 않고 와서 열매를 주니까 아마 괜찮은가보다 믿었을지도 모른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 아담은 망설이지를 않는다. 하나님의 명령은 막연하지만 그걸 어기고도 생존한 아내가 와서 하는 말은 구체적이다. 그래 너만 먹을 순 없지. 나도 먹어보자.
그런데 여자만 열매를 먹어서는 나타나지 않던 열매의 효과가 남편도 먹고 나서야 나타난다. 그들은 눈이 밝아졌다. 이름이나 짓던 한량이 노동으로 옷을 지어 벗은 몸을 가린다. 벗은 몸이 부끄러울 수 있는 여건은 누군가가 쳐다볼 때다. 길고양이는 옷을 입는 법이 없다. 그래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고양이는 인간의 몸을 쳐다보지 않는다. 관심이 없으므로. 마치 백인 여성이 흑인 남성 노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옷을 갈아입었다던 상황처럼 상대의 시선이 나에게 의미가 없다가, 눈이 밝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상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선악과를 먹은 효과는 일차적으로 개인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타났다. 만일 첫 사람이 홀로일 때 선악과를 먹었다면 도대체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여자가 뱀을 만나 열매를 따 먹은 후 남편 것도 따서 가져올 때 옷을 입었을 리가 없다. 눈이 밝아진다는 것은 상대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져서 관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것은 창조된 동산의 파국이자 인간이 만드는 새로운 관계, 사회의 시작이었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몬스터’의 몬스터는 괴롭힐 대상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서 죽임으로써 피해자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세상을 외롭게 살아가게 한다. 이 만화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는 사람은 존재도 없는 것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성경은 끝내 가인과 아벨과 셋의 아버지인 첫 남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마치 절대적인 존재인 양 내내 아담이었다. 그러나 첫 여자의 이름은 ‘생명’이었다. 하와라는 이 이름은 창조된 동산을 떠나 인간의 사회로 가면서 죽음과 고통을 경험하게 될 아내에게 선물처럼 남편이 지어준다. 첫 남자가 죽을 때까지 아내를 ‘생명’이라고 불렀다니, 애절하지 않은가! 그는 죽을 운명이었지만 그의 입으로는 생명이라는 단어를 끊임없이 말했을 것이다. ‘생명’이라고 불리는 그의 아내는 세 아들을 낳았고 가인과 셋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창 4:1, 15). 아벨의 이름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 ‘부족함’이 완벽함이 지닌 모자람을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을 앞에서 말했다.
첫 사람이자 첫 남자인 이름 없는 사나이는 바울이 로마 신도들에게 보낸 편지에 ‘장차 오실 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언급된다(롬 5:14). 죄를 지은 첫 사람이라는 멸칭을 장차 오실 분의 모형으로 역전시키는 바울의 논리가 흥미롭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인 아담은 갈빗대를 지녔던 첫 사람일까, 아니면 갈빗대를 잃고 여자의 짝이 된 첫 남자일까? 다시 묻자. 예수는 남자였을까? 요셉의 정자 없이 마리아의 태에서 성령으로 발생되었다면 일단 Y 염색체를 인간에게서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굳이 남성일 필요가 없지.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성이든 굳이 공개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예수는 남성이 아니라 인간으로 성육신하였고 인간으로 살았고 인간으로 부활하였다. 예수는 혼인하지 않았고 자녀를 낳지 않았다. 남성으로서 생식능력을 확인한 바 없으니 남성이었다고 주장할 생물학적 근거도 없다. 그러니 예수의 모형으로 언급되는 아담은 갈빗대를 지닌 첫 사람이라고 하자. 그 사람 안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그들의 관계도 들어있었다. 선악과를 먹고 죽음을 맛본 이는 개별적인 여자,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이 된 인간(人間)이었다. 이 비밀을 자기 몸에 간직한 아담은 누군가의 남편이기 전에 온전한 원형적 인간이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누가 지어 준 이름으로 불리며 개인적인 관계 속에 머물 수가 없었다. 그는 모든 인간의 대표가 되어야 했고 모든 인간관계를 구성하는 초주체(hypersubject)여야 했으니까. 그리고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는 아담의 이름으로 인류와 만났다. 첫 사람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자 비로소 모든 관계를 왜곡시킨 초주체로 이름을 얻는다. 이것은 공자가 논어에서 답한 세상을 바로 세우는 정명(正名)이다. 이제 나는 초주체라는 괴물이 해소된 새로운 세상에서는 hyposubjects가 이름을 얻을 수 있겠다는 꿈을 꾸고 있다.
(Hyposubjects are necessarily feminist, colorful, queer, ecological, transhuman, and intrahuman. Hyposubjects make revolutions where technomodern radar can’t glimpse them. They patiently ignore expert advice that they do not or cannot exist. They are skeptical of efforts to summarize them, including everything we have just said. Timothy Mor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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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비평연습 특집] 빵 부스러기(마가 7:24-30) : 비평연습 4회차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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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부스러기(마가 7:24-30) : 비평연습 4회차 글쓰기
김현주(대전보건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과 오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닿으면 더는 가지 않고 친구들에게 안녕! 했다. 이상하지. 길은 이어져 있고 경계는 없었지만 더 나아가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정의 벽을 느꼈다. 그 골목에 닿기 전에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친구들은 학교가 너무 가까워서 부러웠고, 그 골목에서 더 걸어가야 하는 친구들의 집들은 먼발치에서 아득했다. 기억 속의 나는 그 경계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한다. 막상 가보면 고갯마루가 이어져 있지마는 왜인지 무섭고 신비로운 세계가 숨겨져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산 너머처럼, 어린 시절 집으로 오는 길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들이 첩첩이 드리워져 있었다.
본문에서 예수는 두로 지역으로 간다. 다른 사본에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갈릴리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까지 찾아온 바리새인들 및 율법학자들과 율법을 어떻게 해석할까 한바탕 논쟁을 마친 후였다. 구약 역사서는 가나안을 점령한 이스라엘의 국경을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로 요약한다. 브엘세바는 남쪽 경계고 단은 북쪽 경계다. 두로는 단과 위도가 거의 비슷하고 시돈은 조금 더 북쪽으로 떨어져 있다. 제국의 땅이라 쉽게 넘을 수 있는 경계였지만 유대인의 심정에서 두로는 이방 땅이었다. 예수는 이 경계를 방금 넘은 것이다.
사실 이 경계를 넘을만한 상황이었다. 당시 갈릴리 바다 북안 게네사렛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논쟁하러 예수를 찾아 왔고, 오병이어를 얻어먹은 군중들은 오늘은 또 무슨 먹거리를 줄까 궁금하여 몰려들었다. 아픈 사람들은 병을 고치려 보호자와 함께 몰려들었다. 제자들은 밤새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넌 참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한밤중에 물 위를 걸어서 바다를 건넜다. 배가 없었던 거다. 그 시끌벅적한 가운데 논쟁이 벌어졌으니 말 그대로 야단법석(惹端法席)이었다. 그 전에도 예수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제자들을 배에 태워 보내버린 적이 있다(마가 6:45-46). 그러다 이제 더는 안 되겠다, 바리새인들이 쫒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자, 고 이방 땅으로 넘어가신 것 같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는 아무도 모르게 숨으려고 했다고 기록한다(마가 7:24).
예수의 은신처에 그리스 여인이 찾아온다. 논쟁하러 온 것도 아니고 빵을 얻어먹으러 온 것도 아니었다. 대화 가운데 빵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여인의 관심사는 빵이 아니었다. 어미는 자기 입에 들어가는 빵보다 자식이 삼키는 빵이 더 배부른 법이다. 이 여인의 소원은 자기 딸이 낫는 것이었다. 아람어로 말하는 예수와 헬라어를 쓰는 여인이 어떤 언어로 대화하였을지 궁금하다. 적어도 이 여인은 예수 앞에 저자세로 엎드려 간절히 소원을 빌었다.
예수는 거절한다. 자식에게 줄 빵을 개에게 줄 수 없다고, 아마도 단호히 말한다. 민중신학자 김진호는 이 장면에서 예수가 귀족 여인을 개 취급함으로써 두로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던 갈릴리 민중들의 현실을 거꾸로 적용하였다고 해석한다(https://owal.tistory.com/624). 이렇게 해석한다면 예수의 말은 통쾌하도록 매섭고 차가웠을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이 여인이 “하느님의 잔치상이 넘쳐흐른다는 사실을 예수님이 인정하도록” 한 수 가르쳤다고 평가한다(https://url.kr/ca6ups). 이런 장면에서라면 예수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을지 모른다.
마가복음은 로마 군단이 예루살렘 성전을 산산이 부수고 메시야공동체와 예루살렘 교회를 파괴하며 유대 전역을 쓸어버린 정복전쟁(AD 63-70)을 겪으며 이것이 마지막이 아님을 깨달은 마가공동체가 신앙의 고백을 남긴 구전이다. 공동체는 사라졌고 말씀만 남았다. 그런 시각에서 마가 문헌에 기록된 수로보니게 여인은 새끼를 품고 불에 끄슬린 암탉의 품에서 생존하여 기어 나오는 병아리와 같은 느낌을 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마태 23:37, 누가 13:34)” 하나님도 자식에게 빵을 주고 싶지만 먹지를 않아 고통스러운 어미였다. 고통에서라면 지지 않을 이 여인은 자식의 병을 고치기 위해 개라도 되겠다고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품어 구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러면 나를 구해 주십시오. 그 품에 나라도 품어 살리십시오. 여인은 이렇게 애원하고 있다.
경계 안쪽에서 군중들은 요구한 것은 입으로 먹을 빵이었다. 예수는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생명의 빵을 주겠다 하여도 군중들은 됐다고, 빵이나 달라고 요구했다. 모세의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먹고도 생명의 양식을 먹지 못하여 가나안에 닿기 전에 죽어버린 이야기를 하여도 그들은 예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소위 메시야공동체의 정체였다. 예수가 그토록 주고 싶었던 빵에 군침을 흘리는 여인을 경계를 넘어 이방 땅에서 만나다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예수는 이스라엘의 경계를 넘어서 헬라 여인을 만났고, 말마따나 자식에게 줄 빵을 개에게 주었다. 사실 먹겠다는 자식이 없어 남은 빵이 바닥을 굴러다니다가 개의 입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사건이 예표라도 된 것처럼, 복음은 이스라엘 경계를 넘어 마케도니아를 거쳐 고린도를 지나 로마로 흘러들어갔고 예수의 복음은 바울의 입을 빌려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그 부스러기를 먹고 있다.
덧붙여, 지금 교회가 가진 진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빵은 자식의 입으로 들어가 살찌우고 있는가. 여전히 입맛없는 자식들 앞에서 천덕꾸러기처럼 굴러다니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면 이 식탁 앞에서 군침을 흘리는 이방인은 누구일까. 우리 시대에 복음은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현될까. 우리는 예수처럼 우리 앞에 보이지 않는 막막한 경계를 넘어 낯선 땅으로 들어가 지낼 수 있다. 거기서 우리를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을 수도 있다. 새로움에 마음을 열고 복음의 새로운 맛을 느끼는 소망의 식탁에 어색하게나마 앉게 된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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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특별 연재] 인터뷰 : 그대를 찾아서(강윤아)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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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그대를 찾아서 11
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91년 예술제인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당시 공연 체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40대가 된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경동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초반에 소개한 바 있다.]
*이전 연재 보기 _ 클릭
H는 “그대” 당시 고1이었고 극중 탕자 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현재 우리나라 어느 치과대학병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인터뷰는 2020년 여름 전화로 실시하였다. 아래 대화에서 K는 나다. H와의 어린 시절 친분으로 서로 격식을 차리지 않았다.
K: 공연 영상을 보니 어땠어요?
H: 다시 보면서 짠 하더라고. 진짜 그럴 때가 있었구나 생각도 들고. 어렸을 때 신우회 멤버들 모습을 보니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뭉클하더라고 […] 당시에 강남의 D 학교를 다녔는데 입시가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이런 교회 예술제 공연 활동을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부모님이 걱정을 하셨던거 같아. 성적이 굉장히 중요한 때였던거 같은데… 예술제 연습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학교 공부도 열심히 했던거 같아. 그래서 오히려 성적이 오르는 기현상이 있었는데 (웃음) 농구하고 교회 다니고 예술제 준비하고 공부하고 그렇게 세 가지 밖에 없었던거 같아 그 때는. 옛날이다 옛날. 내가 그 때 왜 그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했냐 하면 그 때 내가 고1이었고 고2, 고 3 때는 대입 준비를 더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고1때 내가 열심히 좀 잘해보자. 고2 누나들도 친하고 그러니까 열심히 도와보자. 고2 누나들이랑 친했어. 내가 좋아하는 누나들이었어.
K: 친하니까 열심히 해보자는게 어떤 마음이지?
H: 우리가 교회 다니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부모님이 다니셨던 교회라서 어려서부터 친했던 친구들이랑 다니는 교회이기 때문에. 흔히 친구 때문에 교회 다닌다는 얘기가 있잖아. 그런 의미지. 친한 누나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잘 알던 동생들이랑 함께 한다는. 동고동락. 라면 끓여먹고 밤 늦게까지 하는게… 좋잖아.
K: 그 자체가 재미있는거지.
H: 그지. 그 자체가 재미있지. 어려서부터 친하고 잘 알던 신우회 친구들이고 선후배니까… 그냥 학교 선후배랑은 다른 개념이지. 가족 같은 개념이지 어떻게 보면.
K: 대학 이후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좋은 모임들이 있는데 신우회 때처럼 가족 같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해.
H: 맞아. 그런 어렸을 때 추억들을 찾아서 되새기면서 살아가는데 […] 대학 때는 신우회 랑은 느낌이 다른게 확실했고 대학 들어가고 다 자기 길을 가게 된거지. 그때부터는 가족 같은 코이노니아는 쉽지 않은거였지요.
[…]
K: 그런데 강남 D고의 문화에서는 사실 그냥 공부만 잘 하면 되는거잖아.
H: 그렇지. 공부만 하면 되는 분위기지.
K: 그래도 오빠는 교회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했던거지?
H: 그렇지. 참고로 D고에서 서클 그러니까 동아리 활동이 되게 활발했었는데, 나는 그걸 하지는 않았으니까. 대신 교회에서 예배 드리고 신우회 참가하고 예술제 준비하는게 나한테는 어떻게 보면 과외 활동이었던거지.
[…]
K: 중고등부의 일들이 신앙 활동이었다고 기억해요 아니면 과외 활동이었다고 느껴져요?
H: 신앙 활동과 과외 활동을 떨어뜨려 생각할 수는 없는거거든. 왜냐하면 코이노니아도 몸으로 드리는 예배에 포함되니까. 기도하고 말씀 읽고 그거만 신앙 활동이라고 얘기하기는 힘든거지. 두 가지를 분리하기는 어려운거 같아.
[…]
K: 공연이나 공연할 당시 생활에 대해서 더 기억나는 점이 있다면?
H: 그 때 추억들이 인생을 살아갈 때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살잖아. 어렸을 때 좋았던 기억과 분위기와 환경. 그런 향수를 감사하고 있어. 경동교회만의 자유스러움과 문화 활동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교제… 함께함의 풍성함이라고 얘기해야 되나? 그 세 가지 정도가 [대학 졸업 후 유학생활 할 당시] 미국에서 다녔던 교회를 선택할 때 도움이 되었던거 같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공동체나 교회를 정말 찾고 싶었던 것 같아. […]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 지금은 찾은 것 같아. 그런 면에서 나는 되게 복 받은 것 같아.
K: 추억을 크게 자유로움, 문화적 즐거움, 풍성한 교제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 […] 그러한 것들이 묘하게 섞여 있었지.
H: 맞아. 이게 한 데 어우러지지 않으면 그렇게 좋은 추억들이 쉽지 않지요. […] 아무튼 그런 것이 나는 좋아 보였고 늘 그런 교회와 공동체를 찾아다녔었거든.
H가 현재 다니는 교회와 옛날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공통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K: 오빠가 계속 교회 얘기를 하는 것이 재미있는데… 뭔가 신우회나 “그대”가 결국은 오빠가 일관되게 추구하거나 찾아온 교회 내지는 예배의 모델? 이런 거였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H: 음… 그치… 교회의 원래 모습… 그런 거를 찾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신우회랑 예술제 때문이라기 보다는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 같아. 인과관계는 아니지만 상관관계는 있는거지.
K: 교회를 찾는 과정에서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은데… 그럼 혹시 교회 밖의 삶에 있어서 그 사건이 영향을 준 바가 있는지?
H: 아까 얘기 했던 것들이 학교 공부, 교회, 운동인데… 사람이 사는데 전인격적으로 성장하는거. 호울 맨(whole man)이라고 말하는데, 누가복음 2장 52절 말씀처럼 학문적, 신체적, 영적, 사회적 영역 네 가지가 균형있게 성장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지혜가 자라는거는 학문적인 영역에서 중요한 거고 키가 자란다는거는 신체적인 거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앙적인 거고 사람과의 관계는 사회 생활이지요. 축은 항상 영적인거지요. 예를 들어 대학교수인 내가 학문적으로도 발전해야 되고 사회적으로 사람들과의 관계성도 중요하잖아. 그리고, 삶을 좀 다양한 면에서 누리는 데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 거 중에 하나가 운동이거든. 운동이라는거는 사실 하나의 방편 중 하나인데. 그 때 내가 농구를 좋아했는데 지금도 농구를 하고 있거든. 내 나이 때 농구하는 사람 없거든. 골프 치거나 아니면 운동 안 하거나. 나이가 들었는데도 꾸준히 즐겁게 한다는거지. 물론 내가 좋아하는거니까 하는거긴 한데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거든. 학생들이랑 젊은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으면 농구나 요즘 학생들이 좋아하는걸 하는 개념이지.
K: 그러니까 사회적인거랑 체력적인게 둘 다 중요한데 농구에서는 두 가지가 분리가 안 된다는거지.
H: 그렇지. 영적인 것 외에도 그런 문화 생활… 내가 하고 싶은걸 꾸준히 할 수 있다는게 감사해. 어떻게 보면 당시 교회 생활도 취미 생활로 했을 수 있잖아.
K: 그러니까 신우회 예술제 등의 활동에 영적인 부분은 당연히 있는거지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부분도 있고 그게 오빠가 계속해서 중요하게 생각해온 영역들에 포함이 된다는거지.
H: 그렇지.
K: 재미있네.
H: 근데 그게 어느 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게 균형있게 발전을 해야되고. 그런걸 나는 좀 중요하게 생각해. 가정적인 면도 되게 중요하거든. 요즘 삶의 질 워라벨이라고 강조 많이 하잖아. 그게` 중요한거같아 점점.
K: 맞아. 재미있다. 마침 가족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은 지난 주 통화에서 오빠가 그랬잖아. 신우회나 예술제 같은 경험이 중요하다고 느껴져서 오빠네 애기들도 그런 체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고. 그게 어떤거지?
H: 응. 그런 곳을 계속 찾고 있는데… 예를 들면 대안학교 같은… 애들 계속 공부만 시킬거면 강남에 보내거나 유학을 보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는 싫고… 한국에서 그런 자유롭고 인성과 지성과 체력적인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어… 애들 막 계속 공부만 시키는게 아니라 전인(全人)이 될 수 있는… 전인격적인 그런 데를 계속 찾고 있어.
K: 그런 데가 잘 없어.
H: 찾기 어렵지. 그런 곳이 있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잘 용납을 안 하는 것 같아. 이렇게 좀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그래서 좀 아쉽긴 하지요. 그래도 부모로써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해야지. 그런 분위기에서 자랄 수 있도록. 계속 고민하고 찾아보는거지.
K: 그러면 신우회가 우리에게 있어서 뭔가 대안적인 교육이기도 했던걸까?
H: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아. 우리 때는 실질적인 대안학교들이 거의 없었고 그런 면에서 신우회나 예술제가 공부나 입시 위주의 분위기에서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학교 역할을 해 줬던 거 같아. 감사하게도 돌아보니까 그렇다는거지요. (웃음) 지금도 그런 부분… 진정한 대안 교육을 찾고, 계속 고민하고 있고 기도하고 있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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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민중신학 다시 읽기] 나의 삶의 자세(안병무)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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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무, 「나의 삶의 자세」, 『현존』 제71호, 현존사, 1976.5.
삶에는 연습이 없다
흔히 듣는 말이지만 나도 인생의 지각생이다.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형광등처럼 스위치를 눌러도 불이 켜지는 동작이 늦다. 그래서 삶에 연습이 없다는 것도 늦게야 깨달았다.
사람들 중에는 학구심이 왕성하다는 표시로서 나는 학생 기분에 산다는 말을 곧잘 한다. 겸손한 말도 되고 구도자적 자세라는 말도 된다. 또는 몸은 늙었어도 언제나 어린애 마음이라는 말도 곧잘 한다. <다 됐다> <다 안다>라는 자세는 확실히 성장의 정지를 말하는 것이다. 언제나 배우고 알겠다는 노력이 왕성한 만큼 젊은 자세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거기 속임수가 있다. 그것은 그러는 동안 언제나 삶의 전선에서 책임을 도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만년 학생 기분이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되도록 결론은 짓지 않고 계속 넓게 그리고 많이 흡수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다. 그런데 그러는 동안 어느듯 50의 고개를 넘었다.
오래도록 무슨 일이나 다음을 위한 경험을 쌓기 위한 연습처럼 생각했는데, 하다가 잘못되면 시정하면 될게 아니냐는 마음에서 였다. 그러나 살아온 과정을 보면 연습이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비록 연습이라고 했어도 그것은 모두 현실이 되어 밖으로부터 나를 규정하는 척도가 됐고 나 자신은 내가 한 <연습>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다. 당장에는 몰랐다. 그러나 그런 것이 모두 전과범의 신상 카아드서 반영되듯 내 생에 씻을 수 없는 흔적으로 남아버렸다. 내가 연습이라고 생각한 일들이 나를 몰고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젊은이들에게 <삶에는 연습이 없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고등학교 생활은 대학생을 위한 연습기로 알거나, 처녀시절은 결혼생활을 위한 연습기로 안다. 또 어떤 직장을 가진 이는 그 자리를 어떤 목표를 위해서 길가는 나그네가 잠간 거쳐 갈 나무 그늘 만큼이나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의 삶 자체에는 의미가 없고 자기가 내세운 다른 목표의 그림자에 눌린 ?지적 삶이 된다.
아니! 삶에는 연습도 없고, 삶은 잠간 거칠 수단이 될 수 없다.
생활은 차야 한다. 공백을 두면 곰팡이가 낀다. 삶을 채우기 위해서는 여기 지금의 내가 하는 일, 내가 가진 관계에서 충실히 해야 한다. 다음의 일을 위해 지금의 나의 최선을 보류해도 좋다는 법은 없다. 그럴 때 그 다음의 길은 막혀 버린다.
삶에는 연습이 없다. 내일 하늘에 오를 입장권을 손에 쥐었드라도 오늘은 내 선 자리가 내 현실의 전부다. 이것이 늦게 배운 내 삶의 지혜 중 하나다.
공성이불거
공을 들였으면 거기 머물지 말라. 이것은 노자에게서 배운 말이다. 나는 이것을 일찍부터 내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내가 애써 이루어 놓은 일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이고 내 공이 든 일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내가 만든 것이고 내 공이 든 일이니 나는 그것에 붙어 덕을 보겠다는 생각은 제가 이룩한 일을 제가 다 뽑아 먹어야 하겠다는 심보다. 그런 모습은 그물을 쳐놓고 거기 걸리는 벌레들을 잡아 먹기 위해 기다리는 거미를 보는 느낌이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바로 공 세운 자신일 경우가 많다. 생애를 바쳐서 애써 길러 놓은 자식을 잃은 부모,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사업을 무너뜨리는 일군 중 많은 경우는 제 세운 공에 집착하여 나 아니면 안되다는 자부심이 행패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럴만한 능력이 없는데도 한사코 제가 드린 공에대한 권리를 주장하다가 안되면 원망과 독기로 세운 것을 헐어버린다.
나는 다알리아와 같은 꽃을 싫어한다. 꽃이 흉해서가 아니다. 다 시든 뒤에도 떨어지지 않고 축 늘어 붙어 있는 꼴이 보기 싫기 때문이다. 필 때는 활짝 피고 질 때는 미련없이 깨끗이 지는 꽃이 좋다. 그렇지 않은 것은 새 순을 방해한다.
우리는 다알리아 같은 인간을 얼마나 많이 보고 있나! 이미 기력도 없고 아무 것도 감당하지 못하면서도 제 공이 든 일이라고 해서 죽는 날까지 터주대감 노릇 할려는 통에 새 사람의 등장을 가로 막고, 새로운 길은 막아 버리므로 자기와 더부러 만들어진 일 자체도 망치는 것이다.
나는 볼품없는 꽃으로 있을 망정 져야 할 때는 깨끗이 지는 꽃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무리 정성을 바친 일이라도 남이 무어라고 하기 전에 내 할 일이 끝났다고 보여졌을 때는 홀홀히 미련없이 거기를 떠나버리는 <용기>를 기르고 있다. 그래서 큰 일도 못하고 출세도 못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더러운 출세보다 이름없이 개끗히 살다 지는 삶이기를 바란다.
더불어 잘 사는 일
<잘 살아 보자>, <잘 산다>는 우리나라의 말처럼 모호한 것은 없다. 외국어로는 도저히 번역될 수 없다. <그 사람 잘 살아> 할 때 무얼 말하는가? 대체로 돈도 잘 벌고 세력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처럼 이기적인 말도 없을 것이다. 거기 윤리적인 고려는 깡그리 빠져 있다.
요새는 잘 산다면 거의 돈이 많다는 뜻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돈벌기 위해 수단벙법을 가리지 않는다. 이래서 우리 현실은 잘살겠다는 욕심의 각추전장이 된 인상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점점 더 그 터전을 늘리는데 혈안이 되고, 못사는 사람은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격의 원망과 증오심으로 찬다. 잘 사는 경쟁 때문에 이웃집의 가구를 보면 빚을 내서라도 보다 좋은 것 아니면 적어도 그와 같은 것을 장만해야 한다.
눈 앞에 게딱지 같은 오막집들이 옹기종기 한데 자기만은 고래같은 집을 짓고 굽어 볼 수 있는 것에서 삶을 즐기고, 주위는 그날 그날의 끼니에 떨고 있는데 그걸 굽어보면서 진수성찬이 맛있게 목구멍에 넘어 가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그것으로 잘 사는 것을 시위할 수 있는 그 심보가 잘 사는 표상이라면 분명히 새로운 <인간족>의 탄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가끔 <잘 사는 족속>의 집에 가면 큰 집이 텅 비었음에 놀라곤 한다. 삶이 팽창해서 집이 커진 게 아니라, 큰 집을 짓고 그걸 채울만한 삶이 없어 쓸모없는 가구, 안보는 호화판 전집, 어울리지 않는 그림들을 마구 진열했다. 그런 것들은 삶과는 유리된 악세사리라는 것은 얼른 보아 알 수 있다. 이게 다 <잘 산다>는 것을 돈 많다는 것과 직결시키는데서 온 희비극이다.
잘 산다는 것은 <더불어 잘 사는 일>이어야 한다. 집 식구가 더불어 하나처럼 같은 호흡을 해야하고 가진 물건과 내 취미가 조화돼야 한다. 그러나 내 주변이 못사는데 나만 잘 살 수는 없다. 주변이 굶주림에 아우성치는데 내 앞의 갑진 음식이 그렇게 소화가 잘 되며 내 눈 앞에 한 장의 연탄이 없어 오들오들 떠는 것을 보면서 <우리 집은 너무 더워서> 자주 문을 열어 찬 공기로 배기하는 것을 자랑으로 하는 따위를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면 어딘가 잘못되게 하닌가!
어떤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 집안을 두리번거리다 하는 말이 <안박사님 처지에 이건 너무합니다>라고 한다. 그 말에 나는 얼른 찌그러진 몇 점의 골동품을 생각하고, “미안합니다. 사실은 저것들은 산 것이 아니라 어떤 제자가 갖다 준 것입니다”고 했드니 그건 동문서답이었다. 그는 우리집이 너무 초라하다는 뜻으로 한 말이었다. 내가 그에게는 못사는 것으로 보인 것이다.
나는 잘 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까닭은 나보다 못 사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나는 지금보다 더 좋은 집을 쓰고 더 잘 살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그만큼 못사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풀이 죽을 것만 같다. 내가 부자가 되어 소유가 많아지드라도 겉은 초라하게 하고 값진 것은 숨기지 모른다. 까닭은 못사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나는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모두 더불어 잘 살기를 원한다. 너를 잘 살게 하는데 내 삶의 행복을 느끼고 그러므로 거기서 내 동일성(identity)을 찾겠다.
우리의 문제는 국민소득이 낮은 데 있는게 아니다. 아니! 더불어 사는 풍토가 없기 때문이다.
나의 신앙
나는 부끄러움 없이 살지 못한다. 까닭은 이기성에서 탈피못했기에! 나는 그리스도교도다. 그러므로 예수의 교훈이나 그의 삶이 나의 생각이나 삶의 기준이 돼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그 중에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는 것은 예수가 가난한 자, 눌린 자의 친구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가 그러한 소의자들을 위한 사랑을 설교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 자기를 두고 거기서 자신의 동일성을 찾았다. 그는 주린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그리고 감옥에 갇힌 자를 자신과 일치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으나,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는 길을 택했으며 그런 행위가 마침내 집권자들의 비위를 상하게 해 정치범의 누명을 써서 처형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는 도저히 그를 모방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나의 부끄러움이며 잘 못 산다는 콤플렉스의 근거다. 그러나 그에게서 나는 사람답게끔 잘 사는 윤리의 근거를 찾았다. 그 제1장은 눌린 자, 가난한 자, 억울한 자의 편에 선다는 것이다. 이것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한 요소다.
ㅇ세력들이 횡포를 부린다. 약한자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도 바로 약하기 때문에 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한다. 부한 기업주들의 횡포에서 서민들은 생존의 위협을 당한다. 공장에서는 품팔이 노동자들이 일한 만큼의 보수를 받지 못하고도 해고가 무서워 손발이 묶여 있다. 웃음을 팔고 몸을 판돈을 포주들이 가로채어도 침묵해야 한다. 불우한 가정에서 났기에 남의 집 식모로 있어야 하는 소녀들이 주부들의 횡포에 받을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오히려 매질을 당한다. 부모없는 어린 것들에게 돌아갈 양육비를 가로채는 악덕 (자선) 사업가들 때문에 고아들은 배를 주린다. 당하는 자들은 이미 결박된 상태이기에 권리를 찾을 길이 없다. 이런 사실들을 외면하고 종교니 사상이니 떠드는 것은 거짓말이다. 정말 인류의 사랑을 그 중심으로 하는 종교라면 바로 저런 이들의 대변자가 되고 저들의 인권을 찾아주어야 한다. 고발운동, 악덕상품의 불매운동, 억울하게 투옥된 자들을 위한 해방운동은 비록 종교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아도 종교의 본뜻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은 설득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존중하며 그렇기 때문 폭력으로 하는 싸움은 반대한다. 인권운동은 폭력적 혁명을 사전에 저지하는 운동이어야 한다. 아무리 화급해도 해방운동은 이성에 호소해야 한다. 그 때문에 수난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이 호소는 중단할 수 없다. 일의 성패는 내가 결정할 수는 없다. 나는 그저 심으련다. 내가 거두기까지 하겠다고 서두를 때 사랑의 운동은 폭력운동으로 둔갑된다.
예수는 바로 가난하고 눌린자와 자기를 일치시키는데 삶의 뜻을 제시했다. 그러므로 나도 나의 생의 의미를 이런 데서 찾으려고 한다. 눈 앞에 있는 형제의 수난을 외면하고 천국으로 향하는 직통로는 없다. 남이야 어떻든 내 영혼의 구원만을 위해 발버둥치는 자들이 만일 종교인이라면 그건 종교적 이기주의자다. 이런 이기적인 자들이 수용되는 곳이 천국일진대 나는 거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겠다. 그런 곳에 예수가 있지는 않을 터이니까.
출처 : 심원 안병무 아키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