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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r͏S͏e͏s͏d͏p͏o͏n͏t͏o͏2͏1͏a͏7͏ ͏0͏4͏3͏h͏l͏6͏4͏5͏u͏9͏2͏a͏8͏1͏i͏m͏h͏1͏f͏l͏m͏:͏t͏2͏y͏f͏c͏u͏J͏ ͏g͏f͏3͏1͏h͏7͏9͏u͏1͏4͏u͏ ͏l͏a͏0͏ ·
한국신학의 길(1)
10대 후반, 20대 초반은 불확실한 현실과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운 방황기에, 무엇인가 명징하고 절대적인 답을 찾았던 시기였다. 처음에는 물리학과 수학에 그런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물리와 화학 실습의 엉성한 실험실 분위기도 싫었지만, 수업 시간 내내 출석 부르는 것 외에 한마디의 말도 없이 미분방정식과 함수론, 기하학 수업을 진행하시는 교수님의 수업은 내 길은 아닌 것이었다. 교수님은 방학 때 미분방정식 1,000문제를 연습하라고 나에게 당부했지만, 그러나 나는 동일성의 원리에 갇힌 수식보다는 말과 뜻풀이를 원했고, 삶(生)과 역사의 의미에서 절대를 구하고 싶은 것이었다. 처음 입문하게 된 기독교 신앙과 처음 읽는 성서는 찾던 대답을 줄 것 같았다.
신학자 칼 바르트의 “Deus dixit(하느님이 말씀하셨다)”. 바르트의 단호한 신학적 명제이다.
하느님이 말씀하실 것이다,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아니다. 하느님이 말씀하셨다, 완료형이다. 절대자에 대한 실존적 물음과 갈증, 갈망에 대하여 이 초월적 절대성이 답을 주는 것 같았다.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너희는 잠잠하라. “너희는 멈추고 내가 하느님인 줄 알아라.”(시 46:10) 얼마나 장엄하고 위대한 창조주의 말씀인가. 하느님이라면 이 정도 말씀의 권위가 있어야 는것 아니야!
18-19세기 낭만주의와 자유주의의 시대정신 속에서 왕성하게 자라온 신학, 그러나 20세기 초 1차세계대전이라는 공포와 악마적 전쟁의 경험 후에 바르트의 이 말씀은 산도 움직일 만한 큰 울림을 주었다. 아니 폭탄이었다. 해서 바르트의 말씀은 자유주의 신학의 마당 한 가운데 떨어진 폭탄이었다고 했다.
바르트의 이 신학적 선택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매우 압도적인 영향을 발휘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대표적이지만, 45년도 이후에도 헬무트 골비처와 에버하르트 융엘을 통해 계승되었다.
한국에 바르티안들이 많지만, 내 선생님 윤성범을 비롯하여, 나는 故 박순경 선생(이대)을 꼽겠다. 박순경은 신념이 강한 바르티안이다. 박순경의 역사신학, 민족신학, 통일신학의 역작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민족-민중 논쟁이 뜨거울 때 민중 대신 ‘민족’을 택했다.
힘차고 일관되게 바르트를 한국 민족의 과제에 적용하려 했던 신학자는 박순경이라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의 변증법을 통해 화해를 제시한 바르트, 하느님 나라와 비극적 민족 역사의 문제를 화해로 이끌려 했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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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의 길(2)
그러나 신학 공부하는 동안 물음이 없는 답, 바르트식의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 맹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바르트(1886~1968)의 신학과 길이 달랐다. 바르트가 ‘말씀을 들음’의 신학인데, 불트만은 말씀의 실존론적 해석학의 신학이다. 말씀과 실존, 실존과 말씀, 나는 ‘실존’에 끌렸다. 이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도 읽었다.
불트만과 하이데거(1889~1976)는 마르부르크 시절 동료이다. 하이데거는 1923년부터 1928년까지 마르부르크에서 가르쳤다. 하이데거는 《현상학과 신학》(Phänomenologie und Theologie, 1928년)을 불트만에게 헌정했고, 불트만은 응답으로 《신앙과 이해》(Glauben und Verstehen) 제1권(1933년)을 하이데거에게 헌정했다.
제임스 스마트(James D. Smart)는 《현대 신학의 분열된 정신: 칼 바르트와 루돌프 불트만, 1908-1933》(The Divided Mind of Modern Theology: Karl Barth and Rudolf Bultmann, 1908–1933)에서 20세기 신학사의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과 갈림길을 명쾌하게 분석했다.
불트만은 ‘실존’을 중심으로 신학했지만, 틸리히는 이보다 광범위한 철학 사상을 신학과 연결했다. 이성(인식론)과 계시, 존재(존재론)와 하느님, 실존(실존철학)과 그리스도, 생(생의 철학)과 영, 역사(역사철학)와 하느님나라.
신학이라 할지라도 질문이 있는 곳에 답이 있는 법이다. 틸리히는 답(하느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질문과 답의 관계를 신학으로 보았다. 신학은 전통적으로 변증신학인데, 변증신학이란 현대말로 ‘응답하는 신학(answering Theology)’이라 했다. 그러나 틸리히도 물음보다는 답을 중시했다.
복음이 답이다. 하느님(만이) 답이다.
이런 엄청난 말로 완전 환골탈태(換骨奪胎)한, 세뇌당한 신학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설교와 신학이 세상의 온갖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 같다. 틸리히마저 사실 그런 강박증에 걸린 것이 아닌가? 인간의 여러 문제들을 제대로 분석하고 솔직하게 진술하는 것만으로도 시원하지 않은가? 이에 대한 답을 구해서 말해야만 온전한 신학이 되는가?
틸리히의 사상적 후계자인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 이들 모두 문화와 전통, 인간 경험과 기독교 계시 사이의 대화를 신학의 핵심 과제로 삼은 거장들이다.
틸리히의 상관관계 방법은 ‘인간의 실존적 질문’과 ‘기독교 계시의 답변’을 짝지우는 일방향적 상응의 방식이다. 반면 데이비드 트레이시의 방법은 상호 비판적 상관관계(Method of mutual critical Correlation)의 방법이다.
인간의 텍스트/문화적 경험과 기독교의 전통적 계시는 양방향에서 서로를 비판하고 조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기독교 계시가 인간 문화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현대의 실존적 경험과 타 학문(사회학, 수사학, 텍스트 비평 등) 역시 기독교 전통의 가부장성이나 오류를 비판하고 수정할 수 있는 동등한 대화 파트너가 된다고 본다.
신학의 자료, 영역이 훨씬 넓어진 셈이다. 신학은 대답만이 아니라 물음과 대답의 영역을 동등한 비중으로 포함한다. 서양의 텍스트만이 아니라 동양의 텍스트와 콘텍스트가 다 신학의 영역(場)이 된 것이다. 놀라운 변화다. 그런데 사실이다.
틸리히의 도식은 자칫 신학을 '정답을 쥐고 있는 기득권자'로 만들 위험이 있다. 현대신학이 질문과 답 모두가 신학의 소관이며, 전통과 현대 경험이 서로를 대등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트레이시의 관점을 수용한 것은 신학의 자만심을 내려놓고 대화의 진정성을 확보한 탁월한 선택이었다.
복음이 어떻게 답인가? 답을 얻은 자는 안주하기 십상이다. 더 이상 물음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자칫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식론적 허위의식, 도덕적 위선자, 심미적 결정론자로 빠진다. 성경은 물음 천지다. 성경은 도저한 물음의 연속이다. 하느님은 거대한 물음이고 넘을 수 없는 도전이다.
⑴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물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누가 너의 벌거벗음을 네게 알렸느냐?” (창3:11)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창 3:11)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창 3:13)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창 4:9)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창 16:8)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 4:2)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9)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욥기 38:4)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에스겔 37:3)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요나 4:4)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 16:15)
"무엇을 구하느냐 / 무엇을 원하느냐" (마가 10:51)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마태 8:26)
"네가 낫고자 하느냐" (요한 5: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 21:15)
⑵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물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세기 4:9)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내가 어찌 늙었거늘 아들을 낳으리요" (창세기 18:13-15)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5)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사사기 6:13)
"어찌하여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으며, 어찌하여 주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으셨나이까?" (욥기 3:11, 7:20)
"내 하느님이여, 내 하느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옵니까?" (시편 22:1)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이리이까?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나이까?" (하박국 1:2-3, 1:13)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누가복음 1:34)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 10:17)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요한복음 3:4)
“주여 뉘시오니이까"(사도행전 9:5)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사도행전 16:30)
이제 신학도뿐 아니라 비신학도도 대등하게 성큼, 그 이전보다 수월하게 한국신학의 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한국신학의 길(3)_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신학의 핵심 주제는 ‘신’인데 서양의 무신론과 허무주의 이후에도 신에 대한 사유(Denken Gottes)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이 박사학위 논문에서 씨름한 주제였다. 마르틴 하이데거, 빌헬름 바이셰델, 베른하르트 벨테의 저작들을 중심으로 신론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지도 교수는 하이데거를 제외하고 바이셰델과 벨테의 모든 작품을 우선 다 읽으라 했다. 벨테의 학위논문은 구할 수 없어 프라이부르크 대학 도서관에 가서 복사했다. 그 당시에는 절판된 책들은 일일이 복사해서 제본하곤 했다. 서가에 그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구입한 새 책보다 제본에 더 애정이 간다. 손의 노동이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벨테는 야스퍼스 사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를 연구해 박사를 받았다. 나는 저작들을 읽다가 벨테가 사용한 ”탈형이상학“(Nachmetaphysik)이란 어휘가 눈부시게 들어왔다. 그래서 제목을 탈형이상학의 하느님이라 정한 것이다. 학위 받고 6년 후에 번역하고 150쪽쯤 보완하여 『탈형이상학의 하느님』으로 출간했다.
여기서는 “성스러움”(Das Heilige)에 관한 생각을 말하고 싶다. ‘성스러움’의 경험과 경험에 따른 이해가 시간과 장소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인데, 당시에는 하이데거의 횔덜린 해석에 나오는 여러 말들에 정신이 팔렸다.
횔덜린은 “궁핍한 시대의 시인”
“옛 신은 이미(Nicht-mehr) 떠났고, 새 신은 아직(Noch-nicht) 도래하지 않은” 중간의 시간, 이중 부재의 시대, 그래서 “세계의 어두운 밤”
그러나 시인에게 그 밤은 “성스러운 것을 데려오는 낮의 어머니로서의 성스러운 밤”이다.
시인은 밤의 어둠을 견뎌내면서 그 어둠 속에서 온전하지 않은 것을 온전하지 않은 것으로서 경험하는 가운데, 성스러운 것의 흔적을 찾는 길 위에 있다는 것이다.
밤을 밤으로서 경험하는 자, 칠흑같이 어두운 밤, 북두칠성 조차 보이지 않는 밤, 그 깜깜하고 어두운 밤을 온전히 밤으로서 견디어 내는 자, 시인이다.
그 침묵 속에서 힘겨운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내야 한다.
그 시간은 천상의 빛을 타고 도래하는 신들과 성스러운 것이 시인의 정신(영혼) 속에 닻을 내리는 시간이요, 따라서 신성하게 탄생하는 모든 것에 앞서 분만의 고통이 수반되는 성스럽게 강요된 절박한 시간이다.
그 때 ‘성스러운 불빛이 시인에게 갑자기 내리칠 때, 그 순간 시인에게는 신성한 충만이 축성된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또한 자란다"(Wo aber Gefahr ist, wächst Das Rettende auch.)
횔덜린은 '시인 중의 시인(Der Dichter des Dichters)'
“하지만 그대 시인들이여!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신의 뇌우(천둥)아래, 그 맨 머리로 서서,
아버지의 불빛을 몸소 제 손으로 잡아,
그 천상의 선물을 노래로 감싸
민족에게 전해주는 것이리라.”(Wie wenn am Feiertage... <마치 축제일처럼...>)
시인은 '신성한 벼락(빛)'을 대갈박으로 대+갈+박, 대머리로써 박치기할 태세로 맞이해야 한다.
시인의 사명은 옛 사제의 사명을 이어 받았다.
시인은 밤을 밤으로서 온전히 경험하는 지난함에서 성스러운 것의 흔적을 찾아 명명하고 거기에서 신적인 것이 나타나고 혹 신에 가까이 간다.
신의 이중 부재라는 어두운 세계의 밤의 시간에 신의 도래를 맞이함은 매우 지난한 일이다.
과학적 사유가 주류가 된 이후 신들은 모두 달아났는데, 신들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기대가 ‘시짓는 사유’(dichtendes Denken)에서 자라기를 정성으로 살펴야 한다.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하이데거는
“존재의 진리로부터 비로서 성스러움의 본질이 사유된다. 성스러움의 본질로부터 비로서 신성의 본질을 사유해야 한다. 신성의 본질의 빛 속에서 비로서 ‘하느님’이라는 말이 명명해야 할 것이 사유되고 말해질 수 있다”.
존재의 진리 – 성스러움(das Heilige) – 신성(Gottheit/das Göttliche) - 신(Gott)
'성스러움(Das Heilige)'과 '신성(Das Göttliche)', 그리고 '신(Gott)'은 엄격히 구분된다.
성스러움(Das Heilige)은 신 그 자체가 아니라, 신이 비로소 나타날 수 있도록 트여 있는 '존재의 열린 차원(공간/에테르)'를 말한다.
신성(Das Göttliche)은 그 성스러움이라는 공간 속에서 감지되는 거룩한 기운이다.
신(Gott)은 비로소 그 성스러움과 신성의 바탕 위에서 인간에게 가까이 오는 타자이다.
신은 아주 깊은 곳에 꼭꼭 숨어 계시다. 과학적인 사유 밖에 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신은 매우 은미하고 은폐되고 은닉되어 계신다.
이 사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동심원 이미지로 가시해봤다.(아래 이미지)
하이데거가 보기에 횔덜린은 이 어둠의 시대에 떠나간 신들의 '흔적(Spur)'을 추적하고 성스러움의 자리를 끝까지 지켜낸 시인. 횔덜린은 그 밤의 시대를 쌩몸으로 견뎌낸 고독한 파수꾼(목자)이었다.
하이데거는 슈피겔과의 대화에서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Nur noch ein Gott kann uns retten)."_ 하이데거, 유명한 《슈피겔》지 인터뷰 중
'세계의 밤(Weltnacht)'과 기술문명(Gestell, 닦달/몰아세움)의 시대, 곧 '신들이 달아난 시대(Die entflohenen Götter)'를 하이데거는 그래도 온전하게 할 자(das Heile)를 고대하는 것이겠지. 모든 것을 효율성과 소비의 대상,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현대의 거대한 '기술문명(Gestell)'이 성스러움의 자리를 완전히 몰아냈기 때문이다.
횔덜린은 그럴 수 있어, 그러나 하이데거 그대는?
횔덜린은 사랑하는 디오티마의 죽음과 사회적 고립 속에서 결국 정신적 유대를 잃고 튀빙겐의 네카 강가 탑(Turm)에서 생의 절반인 36년을 광인으로 살았다. 이 긴 시간을 속세의 추악함과 비열한 싸움에 영혼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인이 선택한 '마지막 거룩한 침묵'으로 읽는다. '스카르다넬리(Scardanelli)'라는 가명으로 탑 속에서 써 내려간 그의 말년 시들은, 그 어떤 소음도 섞이지 않은 지독할 정도로 맑고 순수한 '마음의 빛' 그 자체였다.
성스러움에 대한 다른 생각이야.
성스러움이란 속된 것에 대한, 속과는 다른 영역이 아니라 삶의 질곡, 갈등, 투쟁, 비열한 싸움 속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빛, 양심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속으로 구슬피 우는 소리(內音)가 아닐까.
시인 김지하는 시 <횔덜린>에서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이 지배하는
시인의 뇌 속에 내리는
내리는 비를 타고
거꾸로 오르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어둠을 어둠에 맡기고
두 손을 놓고 거꾸로 오르며
내리는 빗줄기를
거꾸로 그리며 두 손을 놓고
횔덜린을 읽으며
운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워서 사는 것도 아니다.’
-시집 『花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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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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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며칠 전 저 혼자만 쓴 원고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죠. 동학에서 말하는 신령에서 신과 영을 구분하고 신령을 통합적 사유로 이해를 했죠. 신은 생명 창조와 그 생명 역동성의 근원적 바탕이고, 령은 내게 잠자고 있던 신이 수심정기로 내 안에서 깨어나 밝게 움직이는 모습이고, 수운은 이를 강령降靈이라 했다. 천도교에서 천사문답이라 하는 것은 수심정기한 강령사태로서 1년 여 동안 진행됐는데 주변에서는 이를 두고 수운이 미쳤다고 했던 것이다. 신령이라 함은 신과 령이 수심정기로 한 몸, 한 마음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장이 어려워서 도대체 어떻게 일상적 언어로 쉽게 드러낼 수 있을까를 고심하는 것이죠.
선생님 글을 모셔서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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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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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영 神과 靈의 개념을 각각 따로 생각하면 선생님의 설명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의 개념이 극도로 발달, 강조된 서양신학과 철학 및 후에 들어온 영(Geist),그것도 대단히 지성적으로 들어온 영(헤겔의 경우), 물론 서양에서도 일반 대중의 삶은 신령한 삶을 살았다고 봅니다, 신령, 즉 신령하다, 신령한, 등 돔명사나 형용사로 사용하면 전혀 문제가 없고 오히려 영의 신성한 작용(활동, 움직임)을 통해 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보고 싶은데, 아직 제 머리 속에는 신과 영 그리고 신령이 혼란스럽게 오갑니다. 신이라는 개념을 최소화하고 영의 활동을 살리고 싶은데(이건 서양 신학 전통에 맞지 않고요), 그래서 강령을 말하고 싶은데.... 기다립니다. 그리고 무교에서 말하는 귀신, 강신 등의 세계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생각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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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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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형이상학의 하느님"- 이 제목이 글을 보니 심교수님의 신앙고백이 담겨있었네요..실존적 고백을 아는지 모르는지 "탈"이라는 글자 하나로, 논문집에서 비난에 가까운 고생(같은 분야 교수님에게..)를 하신 것..그 수고의 오해가 풀리는 순간입니다. 아퀴나스적인 고백이 깔려있는 글이라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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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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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규 참 나쁜 사람이죠.
악의적 의도가 있었으니까요.
다 오래전 일들, 화해하지 못하고, 아니 할 수 없는 종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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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soon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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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랜 옛길을 걸으셨군요. 그러다 한국의 친구들을 그리도 만나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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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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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soon Lim 오래된 옛길, 고향길입니다.
고향상실의 시대에 귀향의 길이기도 하구요.
Philo Kalia
r͏t͏S͏d͏e͏o͏s͏n͏o͏p͏g͏3͏i͏1͏ ͏s͏1͏t͏m͏u͏2͏t͏8͏u͏u͏f͏0͏6͏m͏1͏:͏t͏t͏8͏g͏g͏1͏3͏5͏a͏5͏f͏4͏u͏4͏6͏u͏A͏1͏4͏0͏f͏m͏i͏3͏ ͏c͏t͏a͏ ͏ ·
한국신학의 길(4)
한국신학을 생각할 때 가장 어려운 주제는 역시 신관일 것이다.
신관만 잘 풀리면 신학의 다른 주제들은 술술 풀릴 것이다.
서양의 유일신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는 말할 것도 없고, 서양철학(문학, 사회학, 심리학, 심지어 과학까지)도 끝내 ‘신’ 없이 살 수 없다고 야단법석을 떤다.
서양 학문의 신 관념은 너무 강하다. 강해도 너무 강력하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관건은 “살아계신 하느님”(Living and Vivid God)이다.
이에 반해 동양 학문은 신관념이 처음부터 약하고 희미하다.
화석에서 흔적을 찾아 생명을 재구성해야 하는 것 같다.
없어도 잘 살아온 것 같다.
동양철학자에 본체론과 태극론, 도론은 있어도 신론은 없다.
불교에는 신론이 당근 없다. 공(空)과 신을 비교하기도 하지만
김경탁 교수는 『한국의 원시종교사』의 일환으로 「하느님관념 발달사」를 60여 쪽 쓰기도 했다.
미조구치 유조는 『중국사상 명강의』에서 ‘天’개념을 처음 2강이나 할애한다. 그리고 ‘理’로 넘어간다.
한국유학자들은 『조선유학의 개념들』에서 太極과 理氣와 함께 鬼神 장이 있다.
조성환 교수는 중국의 天관념 대신 한국의 ‘하늘’을 제시한다. 이른바 “하늘철학”이다.
상생출판사에서 『하늘 天 上帝, 그 빅 히스토리』란 제목으로 2권이 있다.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중국과 한국의 긴 역사를 정리한 놀라운 연구서인 것 같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신관의 토착화』 심퍼지엄을 시도해 570쪽의 두거운 자료집을 낸 바도 있다.
동양, 한국의 신관 중에 어느 전통에서 그래도 살아계신 신(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까.
그래도 동학이다. 동학사상 속에 남아 있다. 대단히 옹골차게 남아 지속된다고 생각된다.
侍天主를 넘어 人乃天까지 갔으니까
평론가 임우기 선생이 동경대전의 “鬼神者吾也”를 중심으로 한 방대한 문학평론도 매우 흥미롭다. 은폐된 서술자로서의 귀신이지만, 역설적으로 사실상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계신 신(하느님)을 말하는 것인가!
앞서 횔덜린의 “성스러움”에 관해 이야기 하다가, 성스러움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성스러움’은 神이 숨쉴 수 있는 공간이다. 신이 관념이나 개념이기 이전에 어떤 체험이어야 한다면 그 체험은 ‘성스러움’의 체험일 것이다.
성스러움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우리의 역사적 체험은 무엇일까?
公共적 “성스러움이란 속된 것에 대한, 속과는 다른 영역이 아니라 삶의 질곡, 갈등, 투쟁, 비열한 싸움 속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마음의 빛, 양심의 우는 소리(音)가 아닐까”
관념적인 신개념도, 낯선 예수 그리스도보다는 현존하고 역사하고 움직이는 ‘영’개념이 더 적절한 개념으로 보인다. 영으로서의 하느님!
답이 아니라 문제의식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를 길로 보는 길-신학(Path-Theology)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대 극심한 고통이나 불의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길 자체가 조명"이라는 말은 때로 지나치게 천상적이거나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있다.
신학의 길에는 과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때로는 비틀거리고 휘청거리면서 칠흑 같은 어둠을 어둠으로써 견디고 박박 기어가면서도 바라보아야 할 '약속‘과 ’희망‘의 좌표인 북두칠성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인데, 북두칠성조차 사라졌다면 어쩔 것인데.
"답은 길에서 스스로 찾아진다"는 깨달음 같은 명제는 불교의 자각(自覺)이나 도가의 자연(自然)이나 수심정기 속에 살아 있는 하느님과 깊이 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신‘의 독특성은 인간이 길을 걸으며 스스로 일구어내는 내면의 빛 외에도, 내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순간 밖으로부터 침입해 들어오는 '사건' 같은 것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은총의 사건”이라고 부르지만, 횔덜린이 말한 대갈박에 여지없이 떨어지는 신의 벼락같은 것. 그것을 인간학적으로 내면의 자각, 심층의식이라고 환원, 축소할 것인가.
스스로 찾아가는 동양적 自得의 길에 몰두하다 보면, 나를 부수고 찾아오는 절대 타자인 신(God as Absolute Other)의 유혹과 '선물로서의 복음'이 지닌 파격(선물, 우연, 존재의 음성, 활동하는 無)을 자칫 내면적 영성으로 축소할 위험은 없는지 묻는다. 사실 내면과 외면은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니다.
성스러움은 다정하고 달콤한 위안이 아니라, 다가오는 순간 인간의 자아를 태워버릴 수도 있는 '신성한 벼락(빛)'이다. 횔덜린에 따르면 시인은 아무런 관념 없이 그 성스러움의 벼락을 알몸으로 맞아내고, 이를 민중이 견딜 수 있는 '시의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목자이다. 횔덜린의 서기(瑞氣)는 바로 이 신의 벼락을 맨몸으로 얻어맞고, 신이 쏜 화살이 심장에 박힌 자가 치러야 했던 지독한 아픔 속에서 부활하고 싹트는 神
서양 신관이 어떻게 한국 땅에 착근(着根)하는가를 따지는 토착화가 아니라 전통 신관이 수운을 통해 홀연 살아 역사하듯, 우리 몸과 마음 안에 살아계신 신의 기운을 느끼고, 신의 벼락을 맞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어디서?
우리가 앞서 말한 公共의 ’성스러움‘ 안에서.
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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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삼위일체란 환인, 환웅, 단군과 비슷한 거라고, 아니 어쩌면 삼신할머니 같은 거라고, 가끔 생각해봐요.
Philo Kalia
다미 재밌는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