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츠카 야스오(大塚恭男)의 1993년 저서 <동서 생약고>(東西生薬考)
<동서 생약고> 요약 및 평론
<동서 생약고>는 일본의 대표적인 한의학자이자 의사학자인 오츠카 야스오가 1993년에 출간한 저작이다. 저자는 동양과 서양의 전통 의학이 자연의 약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발전시켜 왔는지를 비교문화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단순히 약물의 효능이나 화학적 성분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류가 질병과 자연을 마주하며 쌓아 올린 지적 체계의 형성과 융합을 조망한다.
<1. 핵심 내용 요약>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인식 차이> 동양과 서양은 모두 식물, 동물, 광물 등 자연에서 약재를 구하는 것으로 의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를 질병 치료에 적용하는 사유 방식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했다. 고대 그리스의 4체액설에 기반한 서양 의학은 갈레노스를 거치며 체액의 불균형을 교정하는 수단으로 생약을 바라보았다. 서양에서는 생약의 성질을 온·열·한·량 등 네 가지 성질과 건·습의 조합으로 파악하여 질병의 원인을 직접 억제하거나 배출(설사, 사혈, 구토)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동양의 전통 의학, 특히 중국과 일본으로 이어진 한의학은 음양오행설과 기(氣)의 개념에 기대어 약재를 이해했다. <신농본초경>에서 제시된 상약, 중약, 하약의 분류 체계는 인간의 본성을 기르고 몸 전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전인적 접근을 중시했다. 단일 성분의 직접적 작용보다는 여러 약재가 이루는 상호작용(군신좌사)을 통해 인체 고유의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방제학이 발달했다.
<실크로드와 대항해시대를 통한 약재의 교류> 생약은 고립된 채 발전하지 않았다. 감초, 육계, 대황, 인삼, 아편 등 주요 생약은 실크로드와 해상 교역로를 통해 끊임없이 동서양 사이를 넘나들었다. 서양의 대황(Rhubarb)은 동양의 장 세척과 열을 내리는 용법과는 다소 다른 맥락으로 수용되었고, 서양의 아편 역시 동양에 유입되면서 통증 완화와 지사제 등 고유의 처방 체계에 편입되었다. 대항해시대 이후에는 신대륙의 약재인 키나수피(키니네 원료) 등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전통적 질병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약재의 이동은 곧 문화적 번역과 의학적 체계의 재해석 과정이었다.
<본초학과 근대 식물학·약학의 분기> 18세기 이후 서양에서는 린네의 식물 분류학과 화학 혁명이 결합하며 생약에서 유효 성분을 추출·단리하는 근대 약리학이 태동했다. 생약의 복합적 작용은 단일 분자의 화학적 기전으로 환원되었다. 반면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에도 시대 란가쿠(난학)의 유입으로 네덜란드의 의학 지식을 접하면서도, 고유의 본초학 체계를 단번에 버리지 않고 <본초강목> 등의 지식을 바탕으로 자생 약초를 재검토하는 독자적 '고의학(古醫學)'과 실증적 본초학을 발전시켰다. 저자는 서양 약학이 '분석과 순수화'로 나아갈 때, 동양 의학은 '관계와 복합성'을 유지했음을 규명한다.
<2. 평론: 융합적 시선과 근대주의에 대한 성찰>
<탈서구중심적 의사학 연구의 모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서양 근대 의학을 발전의 최종 도착지로 두고 전통 의학을 미신이나 전근대적 유물로 치부하는 단선적 진보관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오츠카 야스오는 서양의 생약학 또한 수천 년간 경험주의와 고유의 철학에 기대어 작동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동양 본초학과 서양 마테리아 메디카(Materia Medica)를 동등한 층위에서 비교함으로써, 질병을 다루는 인류의 지혜가 지역적 환경과 철학적 전제에 따라 어떻게 다양화되었는지 객관적으로 증명한다.
<환원주의 약리학에 던지는 화두> 현대 약학은 특정 유효 성분만을 추출하거나 합성하여 질병을 표적 공격하는 방식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환원주의적 접근이 생약 특유의 다성분 복합 작용, 즉 성분들 간의 상승작용이나 부작용 상쇄 메커니즘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함을 지적한다. 생약을 복합 처방의 형태로 다루어 온 동양 의학의 지혜는 현대 과학이 규명해야 할 또 다른 미개척 분야이며, 단순한 경험의 집적을 넘어선 정교한 시스템적 사고의 산물이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한계와 현대적 의의> 책의 논의는 방대한 문헌 고증과 사료 분석에 기반하고 있어 인문학적·역사의학적 깊이가 탁월하지만, 1990년대 초반의 시점에서 서술되었기에 최신 생약 약리학이나 시스템 생물학적 연구 성과까지는 포괄하지 못한다는 시대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의 생약관을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지 않고 문명 교류의 산물로 읽어내는 저자의 거시적 통찰은 오늘날 통합 의학이나 천연물 신약 개발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동서 생약고>는 생약이라는 구체적인 매개체를 통해 인간이 질병을 해석하고 자연과 관계를 맺어온 방식을 탐구한 의사학적 수작이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동서양 지적 전통의 만남과 분기를 날카롭게 포착함으로써 현대 의학이 잃어버린 생태적·전인적 감각을 되살리는 데 기여한다.
大塚恭男 <東西生薬考>(1993) — 1,000단어 요약·평론
<東西生薬考>(동서 생약고)는 오쓰카 야스오(大塚恭男)가 1993년 창원사(創元社)에서 펴낸 310쪽의 책이다. 책은 크게 <1. 東西伝統医薬の流れ―동서 전통의약의 흐름>과 <2. 東西生薬考―동서 생약고> 두 부분으로 구성되며, 감초(甘草), 인삼(人参)을 비롯해 동서양에서 오래 사용해 온 생약 73종을 다룬다. 출판사 소개 그대로, 각 생약의 약효만 나열하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설화·풍습·역사와 동서양의 사용법을 비교한다. 귀중한 옛 채색 식물도판이 많이 수록된 것도 특징이다.
앞서 읽은 <東洋医学>(한국어판 <일본의 동양 의학>)이 <한방이라는 의료체계>를 설명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그보다 한 층 아래로 내려가 <약 하나하나의 생애>를 추적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약물학 교과서라기보다는 의학사·식물학·민속학·종교사·비교문화사가 교차하는 독특한 저작이다.
1. 핵심 질문: 인간은 왜 어떤 식물을 ‘약’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현대 약리학은 약물을 주로 유효성분으로 이해한다. 어떤 식물에서 특정 화학물질을 분리하고, 그것이 수용체·효소·신경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측정한다.
오쓰카는 그보다 앞선 질문을 던진다.
<도대체 인간은 수천 년 전 어떻게 이 식물을 약으로 선택했는가?>
어떤 것은 먹어보고 알았을 것이다. 어떤 것은 우연히 효과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식물은 모양이나 색깔 때문에 신성한 힘이 있다고 믿었고, 어떤 것은 신화·주술·종교의 일부가 되면서 약으로 사용되었다. 한 식물이 중국에서는 한 가지 용도로, 그리스·로마나 중세 유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와 용도로 쓰인 사례도 있다.
따라서 생약의 역사는 단순히 <과학 이전의 불완전한 약리학>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연을 해석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관점이다.
2. ‘동양의 본초’와 ‘서양의 herb’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우리는 흔히 동양에는 <본초학 本草學>, 서양에는 근대 약학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서양에도 오랫동안 식물·동물·광물을 이용하는 거대한 전통의 약물문화가 있었다.
그리스·로마의 약물학, 중세 수도원의 약초원, 르네상스 시대의 herbals, 민간의 약초 치료가 그것이다. 근대 화학약품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 의약품의 상당 부분 역시 자연물에서 왔다.
오쓰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이 평행성이다.
동양의 <본초서>와 서양의 <herbal>은 문화적 언어는 달라도 놀랄 만큼 비슷한 일을 했다.
식물의 모습을 기록하고,
어디에서 자라는지 설명하고,
어떤 부위를 사용하는지 적고,
어떤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 전하고,
때로는 전설과 종교적 의미까지 덧붙였다.
즉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과 유럽의 고전적 본초서는 서로 다른 문명에서 발생했지만 모두 <자연을 약물의 보고로 읽는 인간의 지식체계>였다.
바로 여기서 책 제목의 ‘東西’가 의미를 갖는다.
오쓰카의 목적은 어느 쪽이 더 우월했는지를 판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멀리 떨어진 문명들이 동일한 식물을 어떻게 발견하고 해석했는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3. 감초는 이 책의 방법을 가장 잘 보여준다
대표적인 예가 감초(甘草, licorice)다.
감초는 중국의 <신농본초경>에 등장하는 아주 오래된 약물이면서 유럽에서도 고대부터 사용되었다. 현대 한방에서는 수많은 복합처방에 들어가는 대표적인 생약이다. 감초는 중국과 유럽 모두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문자 그대로 <동서 생약>이다. 현대 연구에서도 감초의 주요 성분인 glycyrrhizin과 그 약리작용이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오쓰카에게 더 흥미로운 것은
<동일한 식물인데 왜 중국에서는 처방을 조화시키는 약으로 발전하고, 서양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약물로 사용되었는가?>
라는 질문이다.
여기서 중국 한방 특유의 <君臣佐使>라는 사고가 나타난다.
한방 처방에서는 하나의 약이 단독으로 작용하기보다 여러 생약이 군(君)·신(臣)·좌(佐)·사(使)의 역할을 나누어 전체 처방을 만든다. 실제로 오쓰카의 <東西生薬考>는 오늘날 한방교육 자료에서도 이 군신좌사의 설명을 위한 참고문헌으로 인용된다.
따라서 생약 하나를 이해하려면 그 식물의 성분만 봐서는 안 되고 <어떤 약들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사용되었는가>를 보아야 한다.
이것은 오쓰카의 동양의학관과도 정확히 연결된다.
4. 인삼: 약효와 상징이 결합한 식물
또 하나의 대표적인 약물이 인삼(人参)이다. 출판사의 복간 안내에서도 감초와 함께 이 책의 대표적인 사례로 인삼을 특별히 언급한다.
인삼은 동아시아에서 단순한 식물이 아니었다.
‘人参’이라는 이름 자체가 뿌리가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는 관찰과 관계된다. 귀한 산삼을 발견하는 과정에는 산신·꿈·길흉 등의 민속이 결합했고, 중국·조선·일본에서 인삼은 약이면서 동시에 고가의 상품이고 정치적·외교적 교역품이었다.
오쓰카가 이런 사례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약효와 문화적 의미를 역사적으로 완전히 분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근대 약리학은 “인삼의 어떤 성분이 어떤 생리작용을 하는가?”를 묻는다.
전통사회는 동시에
“이 뿌리는 왜 사람처럼 생겼는가?”
“왜 오래 사는 산에서 발견되는가?”
“생명력을 보충해 주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물었다.
오늘날에는 후자의 추론 가운데 상당 부분을 과학적 근거로 인정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약물 선택과 이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역사적 사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5. 유럽의 약초도 ‘과학적’이지만은 않았다
이 책의 장점은 동양의학만 신비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서양의 약초사에서도 종교·점성술·유사성의 사고가 풍부했다.
예컨대 식물의 형태가 어떤 신체기관을 닮으면 그 기관의 질병을 치료한다고 보는 사고가 있었다. 현대적 관점에서는 비과학적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보내는 기호>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금잔화 Calendula의 사례가 좋은 예다. 16세기 유럽 본초서들은 금잔화를 월경, 치통, 눈의 충혈, 피부 치료 등 여러 용도로 기록했다. 오쓰카는 이런 옛 유럽 본초 기록도 폭넓게 끌어온다. 현대 일본의 약용식물 연구기관도 <東西生薬考>에 기록된 이러한 유럽 본초 자료를 소개한다.
즉 오쓰카는
<동양 = 신비주의 / 서양 = 과학>
이라는 단순한 구도를 무너뜨린다.
동서양 모두 자연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동시에 상징적으로 해석했다.
6. 생약은 문명 사이를 이동한다
이 책에서 특히 흥미로운 또 하나의 주제는 <약의 이동>이다.
식물에는 국경이 있지만 약물지식에는 국경이 없다.
무역로, 전쟁, 종교, 제국, 의사의 여행을 통해 약과 지식이 이동한다.
어떤 생약은 중국에서 시작되어 일본으로 갔고, 어떤 것은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왔다. 반대로 지중해 세계에서 사용되던 약물이 아라비아·페르시아 의학을 거쳐 동쪽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오쓰카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중국의 약>, <서양의 허브>라고 고정해 부르는 것들이 실제 역사에서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변형되었다는 사실이다.
마늘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이 책의 229쪽은 고대 서양에서 포도주와 함께 마늘을 사용하는 치료법을 소개하는 자료로 후대 문헌에서 인용되고 있다.
즉 약물사는 일종의 세계사다.
7.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 경험은 미신과 과학의 중간에 존재한다
오쓰카가 전통 생약을 다루는 태도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두 극단을 모두 피한다는 점이다.
첫 번째 극단은
<옛사람들이 사용했으므로 효과가 있다>
는 주장이다.
두 번째 극단은
<현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모두 미신이다>
라는 주장이다.
오쓰카는 양쪽 모두를 경계한다.
수백 년의 경험적 사용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 경험이 곧 약효의 과학적 증명은 아니다.
반대로 고대 문헌에 신화적 설명이 들어 있다고 해서 그 식물의 실제 약리작용까지 부정할 이유도 없다.
바로 여기에서 오쓰카의 특이한 이력이 힘을 발휘한다. 그는 한방의 대가 오쓰카 게이세쓰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도쿄대 의학부에서 현대의학과 약리학을 공부한 연구자였다.
따라서 그의 관심은
<전통을 믿을 것인가 버릴 것인가>
가 아니라
<전통 속에 축적된 경험을 현대 과학의 질문으로 어떻게 바꿀 것인가>
였다.
8. 평론: 이 책은 의학책보다는 ‘비교문명사’로 읽는 것이 더 좋다
나는 <東西生薬考>의 가장 큰 가치를 약효정보보다 <비교의 방법>에서 찾는다.
오쓰카는 73종의 식물을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문명 간의 차이보다 공통점을 발견한다.
인간은 어디에서 살든
아플 때 주변의 자연을 살펴보았고,
식물을 먹거나 발라 보았으며,
효과와 실패를 기억했고,
그 경험을 이야기로 전했으며,
마침내 그것을 의학체계로 만들었다.
그러므로 본초학은 자연과학이 시작되기 이전의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을 체계적으로 관찰하고 기억한 가장 오래된 지식 형태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것을 현대 약리학과 동등한 과학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바로 그 중간지대가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장소다.
9. 지금 읽을 때의 한계
다만 1993년의 책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에는 생약의 유효성분, 독성, 약물상호작용에 대한 지식이 훨씬 많이 축적되었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전통적 효능을 오늘날의 의학적 효능으로 곧바로 읽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16세기 유럽에서 이 식물을 월경·치통·눈병에 사용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학사적 사실이지만,
<그 치료법의 효과가 현대 임상시험에서 입증되었다>
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책의 두 층위를 구별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사용했는가>와
<실제로 현대 의학적으로 무엇이 효과가 있는가>
는 별개의 문제다.
이 구별만 지킨다면 책은 오히려 지금도 상당히 현대적이다.
10. <일본의 동양 의학>과 함께 읽으면 보이는 오쓰카의 사상
앞서 읽은 <東洋医学>(1996)과 이 책을 함께 놓으면 오쓰카의 전체 구상이 명확해진다.
<東西生薬考>(1993)은
약은 어떻게 인간문화 속에서 만들어졌는가?
를 묻는다.
<東洋医学>(1996)은
그렇게 발전한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어떻게 다른가?
를 묻는다.
하나는 <약의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의학체계의 역사>다.
그러나 둘을 관통하는 사상은 같다.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적대적인 두 세계로 만들지 말라.>
서양에는 서양의 전통 생약학이 있었으며, 동양의 본초에도 풍부한 경험적 관찰이 있었다. 현대의학은 이 두 전통을 모두 비판적으로 계승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오쓰카는 전통주의자가 아니라 <통합주의적 역사주의자>에 가깝다.
종합평가
<東西生薬考>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약초 73종을 통해 쓴 ‘인간과 자연의 세계문화사’>
라고 하고 싶다.
처방을 배우려는 독자에게는 <東洋医学>이나 임상 한방서가 더 직접적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어떻게 약으로 만들었으며, 서로 만나지 않았던 동서 문명은 왜 비슷한 식물을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용했는가>에 관심이 있다면 오히려 <東西生薬考>가 오쓰카의 책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중국 중의학–한국 한의학–일본 한방> 비교와 연결하면 더욱 흥미롭다. 세 나라의 의학제도는 근대에 크게 갈라졌지만, 그 아래에는 훨씬 오래된 <본초라는 공통의 지식세계>가 존재한다. 오쓰카는 바로 그 층까지 내려간다.
그래서 이 책의 진짜 주제는 약초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에서 무엇을 보고, 그것을 어떤 이야기와 경험으로 지식화해 왔는가>이다.
그 점에서 <東西生薬考>는 의학사 책이면서 동시에 종교와 민속, 과학이 아직 분리되기 이전의 인간 정신사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앞의 <일본의 동양 의학>보다 세진님의 관심사에는 오히려 이 책이 더 흥미로운 면이 있습니다. 특히 다음으로는 이 책에서 보이는 <본초학의 자연관>을 <도교적 자연관·신농본초경·서양 중세의 약초와 기독교적 자연관>과 비교하면, 단순한 동서의학 비교를 넘어 <동서양이 자연을 어떻게 ‘의미 있는 세계’로 읽었는가>라는 종교·철학적 차원까지 갈 수 있습니다.
私は矢数道明先生と大塚恭男先生に仕えさせていただき、多くを学び、人生の恩師と尊崇している。道明先生と永別したときは沈痛の一方で、感謝の気持ちに満たされていた。どうして恭男先生では心に穴が空いてしまったのだろう。うまく整理できないが、師と仰ぐ以上に先生が大好きで、心のボスとしていたからかもしれない。私は北里東医研に在籍した十三年間、公私ともに先生にかわいがっていただき、主人に従う子犬のように慕い続けてきた。でも永別がこんなに早く来るとは。
学会や研究会の宿泊先でも、一同でお話をうかがったことは数え切れない。毎年の東洋医学会と医史学会の学術総会、富士市での東西比較医学史シンポジウム、道明先生の主唱で発足した東洋医学研究機関連絡協議会の会合などなど。先生は気どらない飲み屋がお好きで、ご自宅近くの店にはよく皆でお伴させていただいた。酔うと必ず漢詩を口ずさみ、時には揮毫される。運良くいただけた揮毫は日付・場所のメモと一緒に横浜の自宅に保存してあるが、いま茨城にいて見ることができない。
先生のご業績はとても多いが、東洋医学界と医史学界への貢献も大きく、その恩恵を私たちは受け続けている。医史学会の常任理事として東洋医学史の研究を牽引されてきたこと。小川鼎三先生のあとを承け、谷口財団による東西比較医学史国際シンポジウム(一九七六~九八)を酒井シヅ先生と開催され、アジアと欧米の若手研究者の交流と育成に努められたこと。このシンポジウムには私も二度参加させていただき強い刺激を得たが、先生たちと過ごした泊まり込みの楽しい日々は忘れられない。しかし私たちにとって最大の恩恵は、道明先生に協力されて北里東医研に医史学研究室(医史研)を開設されたことだった。矢数・大塚両所長のもと、存分に研究させていただいたおかげて今の私たちがあ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