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역 예수의 언어 - 영원불멸의 고전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와 진리의 가르침
김학철 (지은이)중앙books(중앙북스)2025-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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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초역 예수의 언어』는 국내 최고의 종교학자 김학철 교수가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그가 살았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오늘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책이다. 예수를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지혜로운 스승으로서 조명하며, 그의 언어 속에 담긴 실존적 통찰과 인문학적 가치를 되살린다.
이 책은 네 복음서에 전해지는 예수의 언어를 통해 삶의 방향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루 한 장씩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성찰의 씨앗을 틔우도록 이끈다. 예수의 언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길을 제시하며, 종교적 신앙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찰과 용기를 건네준다.
목차
프롤로그.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
1장. 마음 고쳐먹기
2장. 생각 다시 하기
3장. 인생 새로 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학철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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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분야 : 다이어트 1위 (브랜드 지수 169,113점), 여행 2위 (브랜드 지수 438,338점), 인터넷 연재 만화 6위 (브랜드 지수 263,991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살다 보면 예수를 갈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의 가르침
삶이 흔들릴 때 예수를 만나라!
<차이나는 클라스>, <세바시>, <삼프로TV>
김학철 교수가 현대어로 풀어낸 예수의 모든 말
종교를 넘어 내 삶을 바꾸는 실천적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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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지혜가 시인의 입을 통해 빚어져 나왔다.
시우수아선우아빠 2025-10-0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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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초역"이 붙은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이제서야 초역의 뜻을 깨닫다니... 민망하다. 초가 처음 초(初)라고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뽑을 초(抄)였다. 혹시 나와 같은 착각(?)을 하는 독자들을 위해 이야기하자면, 초역(抄譯)은 원문에서 필요한 부분만 뽑아서 번역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초역에 대해 왜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는, 이 책의 서두에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많은 목사님들이 성경은 한 절이 아닌, 전체 문맥과 맥락을 알아야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저자 역시 성경은 그렇게 번역을 해야 하기에, 고민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초역" 예수의 언어였기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종교의 성서나 정경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다른 종교의 정경을 읽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종교적 색채보다는 신약의 4복음서(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속에 등장한 예수의 언어를 통해 종교를 넘어선 삶의 방향과 가치관에 대한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예수가 성경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조언이라고 봐도 좋겠다 싶을 정도로 어렵지 않게 번역하고 있다.
사실 처음 한 장을 넘기며 낯섦을 느꼈다. 그동안 읽어오던 성경을 좀 더 편안하게 재해석하고 설명해 주고 있기에 성경이라는 느낌보다는 에세이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물론 해당 내용은 분명 성경에 있는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누구나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다.
예수의 언어 속에는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다.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스스로를 드러내며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그런 모습은 위선이고 잘못된 것이라고 꾸짖는 장면들도 많이 등장한다. 소위 돌직구를 날리는,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예수의 언어에는 사랑이 담겨있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배려하고,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을 어느 곳에서든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말씀이 여러 번 다른 번역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야기처럼 테마를 끊어서 번역하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40년 넘게 읽어 온 성경임에도, 이 책을 읽으며 새롭게 와닿는 부분들도 여럿 있었다.
한 공동체의 수준은
그곳에서 약한 사람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한 사람의 됨됨이는
약한 사람을 대하는 자사에서 드러납니다.
그대의 표정, 몸짓, 말 한마디에 흔들릴 수 있는 사람에게
함부로 하지 마세요.
하느님도 여러분을 그렇게 대하시잖아요.
- 마가복음 9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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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걸우네 2025-10-20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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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이 책은 출판사에서 협찬해주셔서 읽고 솔직한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살다 보면 예수를 갈망하는 순간이 찾아온다”라는 문구가 마음 한가운데 오래 멈췄다. 삶이 흔들릴 때, 그 흔들림만큼이나 나를 붙잡는 무언가를 원하게 되는데, 이 책은 바로 그 갈망을 예수의 언어로 다시 연결해 준다. 특히 마음 고쳐먹기 장에서, 예수가 말씀하셨던 언어들이 단순히 도덕적 교훈이나 규율이 아니라, 내면의 회복을 위한 초대라는 느낌을 주었다. ‘생각 다시 하기’ 편에서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던 믿음이나 세계관, 관계의 틀들을 한 번 더 들여다보게 만든다. 예수의 말 중 일부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나를 비추어 보라”는 성찰의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아주 와 닿았다.나에게 특히 감동적이었던 것은 이 책이 예수님의 언어를 “딱딱한 설교문”으로 담아내지 않고, 마치 친구가 보내는 편지처럼 다정한 어조로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복음 속 언어들이 현실적인 삶의 언어로 바뀌며,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삶의 질문 앞에 서게 한다.또한 “인생 새로 보기” 장에서, 예수의 언어가 비단 마음의 위로만이 아니라 행동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촛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삶 속 작은 선택들, 관계에서의 작은 태도, 나 자신에게 진실하게 살기 위한 작은 걸음들이 이 언어들을 곱씹을수록 조금씩 달라지는 힘이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 읽는 내내, 종교적 배경이 다르더라도 예수의 가르침이 가진 인문학적·실존적 깊이가 이렇게 보편적일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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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가이 2025-10-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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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신앙인에게 권하는 예수의 언어
초역이란? 원문에서 피룡한 부분만을 뽑아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김학철 저자는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기독교 교양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가 이번에 저술한 <초역 예수의 언어>는 성경 그중에서도 신약성경을 기반으로 하여 '예수의 말'을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스타일로 옮기고 있다.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문자를 넘어선 과감한 번역을 할 수 있는 초역. 그의 지인들은 그가 쓴 글을 보고 유대인들의 '미드라쉬'와 비슷하다고 평한다.
성서주석방법인 미드라쉬는 현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큐티인가 싶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을 급하게 읽지 않기를 당부한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천천히 읽어보았다..)
하루에 하나씩만 읽으며 성찰의 씨앗으로 삼으라고 한다. .(점점 더 큐티 느낌인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네 복음서 속의 '예수의 말씀'을 세 가지 주제로 나누었다.
마음고쳐먹기, 생각 다시하기, 인생 새로보기..
결국 세 가지 주제모두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해보고 행동하길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책을 보는 이유가 이렇지 않을까!
책의 문장을 통해 지금 이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고자 하는 마음이 투영되어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성경을 많이 읽은 사람일수록.. 사실 이 책은 어려울 수 있다.
한 예로, 마태복음 4:4절을 보자.
성경 구절은 이러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된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이것을 초역한다면 어떻게 될까?
"먹고사는 문제가 매우 중요하지만 "물질적 필요가 채워졌으니 이제 더 필요한 것이 없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한 말은 인간을 낮춰보려고 하는 악마의 입에서 나오지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참다운 삶을 알려주는 진리를 꼭 먹어야 하는 밥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
문장의 길이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어딘가 미묘하게 다르다고 느껴진다.
참다운 삶을 알려주는 진리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이라고 표현하는 데 초역은 이를 다르게 이야기한다.
작위적 해설이라고도 볼 수 없다. 다만 신앙인이 아닌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게, 조금 더 인생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난 반크리스쳔에 가깝다.
무종교인이긴 하지만 크리스천에 대한 반감이 있다.
아마도 내가 배교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한때는 믿었으나 지금은 믿지 않는 상태..
그래서 사실 <초역 예수의 언어>란 책을 받았을때.. 아 괜히 서평단 승낙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궁금했다.
분명 신앙을 넘어 '4대 성인'의 한 사람인데 그러한 분의 말씀을 꼭 신앙적 메시지로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말이다.
부처의 말씀은 꼭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많은 구절들이 인용되고, 삶의 중요한 메시지로 소개되기도 한다.
한때 "초역 부처의 말"이 엄청난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런데 왜 "예수의 말"은 종교라는 두터운 벽에 가려져 있는지..비종교인들은 다가가기 어려운지..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이러한 벽을 허물 수 있는 아주 적절한 책이다.
삶에서 만나게 될 여러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하면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이야기한다.
이야기 한편을 하나더 소개해본다. 누가복음 10장 29-37편의 긴 글이다. 이를 저자는 짧은 문장으로 초역한다.
29절.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절.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절.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절.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절.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절.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절.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법률가 그대는 내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나를 시험하듯 묻고는, 그대 스스로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답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내게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은가요? 아니면 그저 '이웃' 개념을 두고 논쟁하고 싶은 것인가요? 필요하면 논쟁을 해야겠지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웃'이 누구인지 말하기 이전에 이웃을 향한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지요."
얼마나 초역이 되었는가 느껴지지 않는가?
난 성경은 별로지만 '예수'라는 사람이 궁금해 하는 분
성경은 많이 읽었고, 예수님의 메시지를 좀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어 하는 분
성경을 '삶'에도 적용하여 살고 싶어 하는 분
이런 분들에게 천천히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를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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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디나 2025-10-2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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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영원불멸의 고전에서 길어올린 삶의 지혜와 진리의 가르침

<북유럽 서평 카페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그가 살았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오늘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했다. 국내 최고의 종교학자 김학철 교수가 예수를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지혜로운 스승으로서 조명하며, 그의 언어 속에 담긴 실존적 통찰과 인문학적 가치를 되살렸다. 이 책은 네 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에 전해지는 예수의 언어를 통해 삶의 방향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하루 한 장씩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문자적 번역을 넘어 독자의 마음에 성찰의 씨앗을 틔우도록 이끈다. 예수의 언어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길을 제시하며, 종교적 신앙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찰과 용기를 건네준다.
저자 김학철은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요?」란 제목의 〈서문〉에서 「마태복음」 등 네 복음서에 대한 설명으로 말문을 연다. 이에 따르면(존칭어를 예삿말로 전환: 독자) 예수의 말만 모은 초기 기독교 책들이 있다. 정경(正徑)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도마복음서」, 「디다케」 등이다. 또 「마가복음」에는 없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나오는 예수의 말씀 자료, 흔히 'Q(자료라는 독일어 Quelle에서 온 것)'라고 부르는 자료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그러나 지금 정경에 속한 네 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있다. 맥락을 갖는다는 뜻이다. 예수의 말이 전해지다가 거기에 이야기가 덧붙여졌고, 그것이 복음서에 수록되었는지, 아니면 예수의 말만 있었는데 복음서 저자가 그 말을 중심으로 이야기로 확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니면 예수의 말이 포함된 이야기 전체가 전승되어 복음서에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 과정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복음서에 나온 예수의 말은 대부분 이야기 속에 나온다.
이야기 속에서 예수의 말만을 따로 떼어 번역해 달라는 출판사의 제안에 잠시 머뭇거렸다고 저자는 밝힌다. 그러나 초역(超譯)이라면 상황은 다르다고 저자는 말한다. 초역은 원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말이 속한 이야기 맥락은 물론 역사, 사회, 문화적 맥락을 감안하여 문자를 넘어선 과감한 번역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서문〉에서 '문자적 번역'과 '초역'의 다른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자신이 왜 초역을 했는지를 독자들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말하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이 이야기 속의 맥락을 잡아낸 것이라는 점이고, 문자적 번역과의 다르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한 모임에서 '초역 예수의 언어'를 쓰고 있다고 알리면서 한 첫 번째 말의 초역을 들려주었다고 말한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증언을 했다. 거기에 서 있던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두 명이 과감히 요한을 떠나 예수를 좇아갔다. 예수는 자신을 따라오는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을 보고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나?'라고 묻는다. 이것이 「요한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이다. 그리고 그 한 문장을 이렇게 초역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였던 그대들, 그대들은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의식주가 해결되기를 바라는가? 안전을 바라는가? 돈과 명예와 권력을 원하는가? 자기 삶이 실현되기를 바라는가? 그대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대들이 나를 따르고자 할 때 그대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그 욕망은 무엇인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심연에 놓인 그 욕망은 무엇인가?'"(p.7)
저자가 초역 과정의 한 부분을 들려주자 모임에 참석한 한 분이 "미드라쉬로군"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유대인들에게 오래전부터 있었던 성서 주석 방법인 미드라쉬가 초역과 닮았음을 새상 깨닫게 되었다고 저자는 털어놓는다. 미드라쉬는 히브리어 동사 '다라쉬'에서 온 말로, '찾다', '연구하다', '해석하다' 등을 뜻한다. 현재의 삶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성서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미드라쉬 문헌은 2세기 것이니까 최소한 1,800년 이상 되었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예수가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건넨 일상의 조언부터 삶을 건 결단의 요청까지 오늘날 이해할 수 있는 교훈적 의미로 되살리려 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 이른바 실존적 함의 를 드러내려고도 했다. 가끔은 오래전에 읽은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처럼 쓰려고도 해보았다. 이런 저런 방법을 심사숙고해 결정한 것이 이 책에 활자로 나타난 것임을 저자를 밝힌다. 이에 따라 가급적 하루에 하나씩만 읽기를 독자들에게 권유한다. 이 책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 성찰의 씨앗을 마련하려는 목적으로 쓰였다고 역설한다. 이 책은 모두 3장(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마음 고쳐먹기〉, 2장 〈생각 다시 하기〉, 3장 〈인생 새로 보기〉 등이다. 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을 모아 세 축(3장)으로 엮었다. 각 구절은 단순한 교리의 지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물음이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들은 종교적 맥락을 넘어 일상에서 바로 실천 가능한 지혜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한글로 읽는 성경은 기독교인들이라면 세 가지 원어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쯤은 잘 알 것이다. 독자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의 구분에 대해서도 잘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다. 다만 그동안 영상이나 몇 권의 책을 통해 지식으로서의 성경의 겉만 조금 알 뿐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사전 공부로 백과사전을 통해 성경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았다. 사전에 따르면 성경의 언어는 세 가지로 기록되었다. ① 『구약성서』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되어 있다. 히브리어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언어로서 구약성경 대부분은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창세기, 에스라, 예레미야, 다니엘서의 일부에서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다. 고대 히브리어는 성경에서 ‘유다 방언’(왕하 18:26; 느 13:24; 사 36:11) 또는 ‘가나안 방언’(사 19:18) 등으로 불린다. 특히 ‘가나안 방언’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면서 가나안 사람들의 언어를 자신들의 언어로 만들어 사용한 것이 히브리어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이후(B.C. 586년경) 히브리어는 주로 문서 등 문어체로 사용되고, 일상 생활에서는 대부분 아람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후손들은 점차 히브리어를 잃어버려 성경을 읽기도 어려웠다. 이에 따라 70명(정확하게는 72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애굽에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모여 각처에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성경을 번역하게 된다. 이 성경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셉투아긴타’(Septuaginta, ⅬⅩⅩ)이다. ‘셉투아긴타’는 라틴어로 70을 뜻하는바, 성경 번역 학자들이 70명인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② 『신약성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 건설한 광대한 헬라 제국은 지중해 연안을 비롯하여 소아시아, 애굽, 인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나라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헬라어는 대부분 나라에서 공용어처럼 사용되었다. 신약성경이 헬라어 중에서도 보편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고 읽는 ‘코이네’로 기록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이네는 헬라 사회에서 대단한 문학적 가치를 지닌 수준 높은 고급 언어는 아닐지라도 모든 사상을 충분하게 전달하고 문법 체계가 단순하며 가장 보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여 복음 전파에 아주 유리한 특징을 갖고 있어 신약성경의 언어로 채택된 것 같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장(章)과 절(節)로 구분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이 처음부터 장과 절로 구분된 것은 아니다.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과 헬라어로 된 신약성경은 원래 장과 절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여기에 장(章) 구분을 한 최초의 인물은 영국 캔터베리(Canterbury) 대주교인 스티븐 랭튼(Stephen Langton, 1150-1228)이다. 이것을 영어성경에 최초로 적용시킨 사람은 영국 종교개혁자 위클리프(Wycliffe)로서 ‘위클리프 영어성경’(John Wycliffe’s Version, 1382)이 바로 그것이다.
한편 절(節)을 최초로 구분한 인물은 프랑스 궁정인쇄사 스테파누스(Robert Stephanus)로 그는 1551년 헬라어 신약성경에 처음으로 절을 구분하고 그것을 인쇄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적용시킨 최초의 영어 신약성경은 『제네바 성경』(Geneva Bible, 1500)이다. 하지만 이렇게 장과 절을 구분하는 것은 성경본문을 인용하기에는 아주 편리하였지만 때론 인위적으로 끊거나, 문법 체제에 맞지 않게 잘못 끊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폐단도 있었다. 그리하여 절 구분을 하지 않고 이전의 절 구분을 난외주로 처리한 성경이 나왔는데 곧 NEB(New English Bible, 1961-1970)가 그것이다. 한글성경의 장과 절 구분은 전통적으로 영어성경의 장과 절 구분법을 따른 것이다.
이 책 『초역 예수의 언어』는 『신약성서』를 텍스트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 이후는 『신약성서』에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네 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등은 『신약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철학사전에 따르면 『신약성서』는 일종의 고대문헌으로 간주하는 한 단일문서가 아니며 저자, 성립한 시기, 장소 등도 다양한 27개나 되는 여러 문서의 집성이다. 저자 문제는 복잡해서 동일 저자에 귀속될 수 있는 것도 몇 개 있지만(누가, 파울), 저자가 분명치 않은 것도 많다. 또 복음서 저자는 전승(傳承)을 편집한 사람으로 볼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저자는 아니다. 성립시기는 기원전 50년경부터(데살로니카인에게의 제1편지) 2세기 중반경 것(「베드로의 제2편지」)까지 포함되어 있다. 성립장소는 대부분 명확치 않지만 팔레스티나를 중심으로 해서 고대 지중해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고 추정된다. 이들의 문학 유형도 다양해서 복음서, 서간, 묵시문학 등으로 나뉜다. 더욱이 서간이라 해도 구체적인 상황과 연결되어 있는 것, 또는 일반적인 성격의 것도 있다.
또 「사도행전」은 역사서라기보다 오히려 「누가에 의한 복음서」로 이어지는 일종의 복음서라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신약』은 『구약』과 함께 「경전」, 즉 교양과 신앙생활의 기준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신약』에 담긴 여러 문서는 반드시 처음부터 경전을 의도하고 씌어진 것은 아니고, 또 이들 외에도 같은 종류의 여러 문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문서들에서 현재의 경전을 뽑아내고, 그 외를 「외경」이라고 한 것은 최종적으로 4세기의 교회였다.
당시 교회는 『신약성서』는 전체가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역사적 비판적 방법에 기초한 연구는 『신약』에 담겨져 있는 각종 문서에 있어서는 성립사정이나 문학 유형뿐만 아니라 사상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있다. 경전 이외의 각종 문서의 연구로 이들 사상이 각기 특정 사상조류에 속하고 있는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신약성서』로서의 사상을 구하는 입장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우에도 그 내부의 사상의 다양성은 인식되어진 위에 통합을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종래 대잡파(大雜把)로 파악되어온 기독교사상은 개개의 문헌으로 재음미되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 김학철에 따르면 예수는 2,000년 전 팔레스타인 땅을 걸었던 한 인간이자, 동시대를 살아간 이들에게 직접 말을 건넨 존재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의 말은 종교적 해석과 전통 속에서 여러 겹의 의미로 덧입혀졌다. 저자는 그 겹겹의 해석을 걷어내고, 문자 그대로의 번역을 넘어 오늘의 삶과 맞닿은 초역(抄譯)으로 다시 풀어냈다. 초역은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사회적 맥락을 고려해 지금 우리의 삶에 울림을 주는 언어로 되살리는 일이다.
예수의 언어가 이토록 위대한 이유는 모든 이를 일깨우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예수의 한마디 한마디는 특정 종교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한 말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성찰할 수 있는 삶의 원리로 이어진다.
예수의 언어는 시대를 넘어 오늘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고, 우리 각자가 마주한 현실 속에서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교리를 따르기 위한 성경 해설서가 아니다.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예수를 절대적 존재라기보다 삶을 성찰하게 하는 멘토이자 길잡이로 바라보며, 그가 전하려 했던 생생한 메시지를 오늘의 자리로 불러온다. 저자는 예수의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우리 내면 깊숙한 갈증을 비추는 거울로 삼는다.
"내가 미리 말해둘 것이 있습니다. 내가 떠난 후 그대들은 지역 회당에서 쫒겨날 겁니다. 회당에서 주도권을 잡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박해하고 그대들을 죽이려고 할 겁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고, 그분에게 제물을 드리려는 것으로 생각하겠지요.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하느님을 거스르면서 하느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다니요. 그러니 그들은 하느님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고 할 수 있지요. 내가 미리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것은 그대들이 이 박해 때문에 흔들려 스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지요. 고통의 때가 왔을 때 낙심하지 마세요. 악을 행하면서 선의 편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어디든지 있기 마련입니다.(p.222) - 「요한복음」 16:1-4 - '하느님을 위한다는 착각' 중에서
저자 : 김학철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연세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소장, 한국기독교교양학회 부회장,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연세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신약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기독교 교양을 학문의 주제로 삼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기독교 교양학 및 신약성서를 주제로 한 수십 편의 논문 외에도 《허무감에 압도될 때, 지혜 문학》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입 맞출 때》 《마태복음서: 고전으로 읽는 성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기쁨: 사도 바울과 새 시대의 윤리》 《렘브란트, 성서를 그리다》 《손으로 읽는 신약성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세바시〉, JTBC 〈차이나는 클라스〉, CBS 〈잘잘법〉, 〈삼프로TV〉 등 방송과 유튜브에 출연해 성서와 기독교 교양을 소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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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술 2025-10-1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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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성경은 단순한 종교 서적이나 고대 문헌이 아닌,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권위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의 모든 기록은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지적 호기심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 바울은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고 말했다.
성경은 총 66권으로,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죽음, 부활 사건에 있다. 이 사실을 전하는 증언이 바로 신약성경의 복음서이다.
이 책은 국내 최고의 종교학자 김학철 교수가 2000년 전의 예수의 가르침을 종교적 틀에서 벗어나, 그가 살았던 역사와 문화적 맥락에 비추어 오늘날의 삶 속에서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예수를 단순한 종교적 인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자 지혜로운 스승으로서 조명하며, 예수의 말이 단순히 종교적인 상징이나 성경의 구절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임을 강하게 증명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는 것은 예수의 언어는 단순한 도덕적 가르침을 넘어, 인간 존재의 깊은 내면을 흔들고, 삶의 방향을 바꾸는 근원적인 진리의 말씀이었다는 사실이었다. 예수의 언어 한마디 한마디는 시대를 초월해 지금의 나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도전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은 네 복음서에 담긴 예수의 말을 모아 ‘마음 고쳐먹기’, ‘생각 다시 하기’, ‘인생 새로 보기’라는 세 축으로, 모두 170개의 문장을 중심으로 하루 한 장씩 곱씹으며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사랑, 용서, 믿음, 가난, 부, 진리, 고통, 죽음과 영생,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각각의 문장에 짧지만 깊은 통찰을 덧붙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종교적 신념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언어로 확장된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에게도 예수의 말을 통해 자기 삶의 기준과 태도를 재정비해 볼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고, 주제를 배치하고, 맥락을 설명하여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삶의 갈증을 풀어내는 길을 제시하며, 종교적 신앙을 넘어 누구에게나 통찰과 용기를 건네준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살아가는 방식은 예수의 언어 앞에서 어떤 모습인지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한다. 저자는 “말 속에 거하라. 그 말은 당신을 새롭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신앙인들에게는 말씀의 체온을 되찾게 하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향한 안내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우리 속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성령의 역사로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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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예수의 언어 요약 및 평론
1. 요약: 복음서의 언어를 새로 읽는 시도
김학철의 <초역 예수의 언어>(2025)는 신학자이자 문학적 감각을 지닌 저자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주요 어록과 선언을 현대적 언어로 다시 풀어내고 그 맥락을 해석한 책이다. 저자는 전통적인 교리적 해석이나 묵상집의 틀을 넘어, 예수라는 인물이 당대 사회 구조 속에서 던진 언어가 지닌 원초적 충격과 혁명적 의미를 복원하고자 시도한다.
책은 예수의 언어를 몇 가지 핵심 주제로 나누어 살펴본다.
첫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재definition이다. 예수가 말한 하나님 나라는 죽어서 가는 내세가 아니라, 지금 이 땅의 불의한 질서가 overturn되는 현실적이고도 영적인 사건이다. 저자는 비유(Parable) 속에 담긴 낯섦과 엉뚱함에 주목한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나 겨자씨 비유 등은 당시 경제적·사회적 상식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메시지였음을 밝힌다.
둘째, <사랑과 용서>의 정치학이다. 예수가 제시한 원수 사랑이나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는 가르침은 단순한 도덕적 순응이 아니다. 그것은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와 억압적인 율법 체계 아래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불의에 저항하는 비폭력적이며 적극적인 방식이었다.
셋째, <소외된 자들을 향한 부름>이다. 예수의 언어는 당시 종교적·사회적으로 배제되었던 세리, 창녀, 병자, 이방인을 향해 열려 있었다. 예수는 그들을 제도적 단죄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우선적 초대 손님으로 승격시켰다.
저자는 원어의 숨은 뜻과 역사적 정황을 세심하게 짚어내며, 2,000년 동안 익숙함 속에 갇혀 있던 예수의 어록에 새로운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2. 평론: 익숙함의 탈을 벗겨낸 날카로운 언어적 복원
김학철의 <초역 예수의 언어>는 교회사적 매너리즘에 빠진 현대 기독교에 경종을 울리는 세련된 비평적 과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예수의 언어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위험함>과 <급진성>을 성공적으로 추출해냈다는 점에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복음서의 구절들은 종교적 수사학이나 도덕적 당위로 매끄럽게 가공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언어학적·역사비평적 도구를 통해 그 겉껍질을 벗겨낸다. 저자가 보여주는 예수는 친절하고 매끄러운 설교자가 아니라, 기득권의 언어 체계를 흔드는 언어적 해방가이자 낯선 입문자다. 예수가 사용한 비유들은 당대 청중에게 위로를 주기보다는 심각한 신학적·사회적 곤혹감을 안겨주는 장치였다는 사실을 저자는 명확히 지적한다.
문체 측면에서도 이 책은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초역(初譯/超譯)'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저자는 고답적인 종교 용어를 배제하고 현대인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감각적이고 명징한 어휘를 선택한다. 신학적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문학적 입문서로서의 접근성을 확보한 점은 매우 높게 평가할 만하다.
다만, 일부 해석에서는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예수의 언어를 지나치게 순화하거나 인문학적으로 재구성함으로 인해, 성서 원문이 가진 초월적이고 종말론적인 긴장감이 다소 완화된 듯한 인상을 준다. 예수의 언어는 사회 혁명적 메시지임과 동시에 신적 권위에 기반한 치열한 종말론적 선언이었기에, 이러한 신학적 무게감이 인문학적 매끄러움에 묻히지 않도록 읽는 이의 주의가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초역 예수의 언어>는 굳어버린 교리 속에서 예수의 진짜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박제된 경전의 문자를 다시 살아있는 언어로 호흡하게 만든 신학적·문학적 성과라 할 수 있다.
혹시 이 책의 특정 비유나 구절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더 자세히 다루어 주기를 원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