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 작가 정보 | |
|---|---|
| 본명 | 김영일(金英一) |
| 출생 | 1941년 2월 4일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목포부 |
| 사망 | 2022년 5월 8일(81세) 대한민국 강원도 원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시인, 작가 |
| 학력 | 서울대학교 미학 학사 |
| 경력 | 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원광대학교 석좌교수 |
| 본관 | 김해 |
| 종교 | 천주교(세례명: 프란치스코) |
| 필명 | 호(號) 지하(地下) |
| 활동기간 | 1969년~2022년 |
| 배우자 | 김영주 |
| 자녀 | 김원보(장남), 김세희(차남) |
| 친지 | 박경리(장모), 정일성(외숙부) |
김지하(金芝河, 1941년 2월 4일~2022년 5월 8일)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본관은 김해이며,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다.[1]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2] 《토지》를 집필한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이다. 1970년대 유신 독재에 저항하여 투옥됐다. 1980년부터 동서양 철학과 한국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생명 사상'을 제창하였다.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고 회고록 『흰 그늘의 길』과 저서 『김지하 사상전집』이 있다.[3]
생애
유년기
1941년 3월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아버지 김맹모(金孟模)와 어머니 정금성(鄭琴星)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金海金氏) 경파(京派) 24세손이며,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익금리에 대대로 살아온 집안이다. 증조부 김영배(金永培)가 암태도(岩泰島)에서 투전판에 얽힌 싸움으로 가족을 데리고 당시 동학 대두령이었던 사촌 형 김인배(金仁培)가 살고 있던 옛 고향 김제로 이주하였다. 이후 증조부는 사촌 형 조직에 들어가 갑오년 광양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고 영광 법성포로 피신하여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조부는 법성포에서 거주하다가 목포에 정착하였다. 역전 시장에서 청과물 장사, 포목 장사서 기계 수선까지 해 상당한 재산을 모았다가 골패로 재산을 날렸다. 아버지 김맹모(金孟模)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전기기술을 공부한 후 귀국하여 목포에서 전기 기술자로 활동하였다. 일본에서 기술을 배울 무렵에 공산주의를 접했다고 한다.
목포산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목포중학교 2학년에 다니던 1954년 아버지를 따라 원주로 이주했다[4]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유학, 중동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 뒤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진학하여 1966년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에 4·19혁명과 5·16 군사 정변을 겪었고, 6·3사태 등을 접하면서 그는 학생운동에 가담하여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66년 서울대 졸업 후에도 박정희 정권의 장기집권에 반대하는 운동에 가담, 동참하였다.
문단 등단 이후
1969년 시 황톳길을 발표하여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필명은 '지하'(地下)였는데, 이것이 굳어져 이름처럼 사용하면서 이름을 지하(芝河)라 하였다.
1964년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적극 가담했다가 체포·투옥되어 4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1970년 정치인과 재벌1 관계의 부패와 비리를 질타한 오적(五賊)을 발표하여 반공법 위반으로 체포·투옥되었다가 풀려났다. 이를 오적 필화 사건이라 한다. 19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하였고[5], 아들 김원보, 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의 연루자로 지목 체포되고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해 11월 18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김지하의 구명을 위해 프랑스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미국의 노엄 촘스키 등 해외 문인 및 지식인들과 연대해 김지하 시인에 대한 '사법 살인'을 막고자 나섰다.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가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의 진상을 밝혔다가 같은 해 3월 13일 서울에서 원주 집으로 가는 길에 중앙정보부가 연행해 다시 구속되었다.[6] 이후 재판을 받고 다시 무기징역에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었다.
1980년대 이후
1980년대 이후, 각 종교의 생명 존중 사상을 수용하고 생명 운동을 벌이는 데 힘썼다. 1991년 분신 정국 당시 김지하는 1991년 5월 5일,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라는 글로 그들의 죽음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그는 생명에 대한 그의 존중심에서 나온 비판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를 돕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면서 많은 이들의 비난과 원성을 사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박두진, 고은의 시, 황석영, 최인훈, 이청준, 박경리 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도 유럽과 미국에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했다.
민족문학작가회의가 독재자 박정희의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릴레이 시위에 동참하기로 하면서 1964년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에 나선 이후 처음으로 시위에 나서기로 하면서 2001년 5월 4일 서울 시청 앞에서 작가회의 이사장인 소설가 현기영과 대외협력위원장인 소설가 이경자, 그리고 자유실천위원장인 소설가 김영현과 함께 차례로 '박정희 기념관 반대 1인 시위'를 했다.[7]
2007년 대선 전에 손학규를 한나라당에서 탈당하도록 권유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손학규는 한나라당을 탈당해 민주당에 입당했다.[8]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9] 현대 한국의 도교로 유명한 종파는 국선도, 단학선원, 연정원이 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국선도, 김지하는 연정원과 인연이 있다.
작품 세계
70년대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참여시인이었던 김지하는 8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 사상과 불교의 미륵 사상, 화엄 사상, 유교, 선불교·기(氣)철학 등의 여러 가지 사상들을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재해석하고 이를 모두 융합, 수용하여 생명사상을 제창했으며, 풍자력을 갖췄으면서도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썼다. 대표작으로는 《오적》, 《새》, 《황톳길》, 《타는 목마름으로》[10] 등이 있다.
2022년 6월 25일 서울 삼일대로 천도교 대교당에서 49재 추모문화제가 열린자리에서 시인의 미발표 시 8편<교감, 헌화, 열리리, 심화, 사랑은 공경, 처용, 살아라, 하늘세계>이 공개됐다. 1999년 문화계 후배 임진택에게 희곡을 써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대신 건넨 작품들이라 한다.[11]
작품과 저서
시집
- 대설 남 1~4
- 타는 목마름으로
- 황토(풀빛판화시선 1)
- 밥
- 민족의 노래 민중의 노래
- 애린
- 제자리를 찾는 시(1985)
-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
- 친애하는 국민여러분!
- 별밭을 우러르며
- 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 한 사랑이 태어나므로
- 말뚝이 이빨은 팔만사천개
- 모로 누운 돌부처
- 생명
- 병든바다 병든지구
- 동학이야기
- 중심의 괴로움
- 틈
- 검은 산 하얀 방
- 님
- 황토
- 빈산
- 생명과 자치
- 2002 월드컵 포에버
- 마지막 살의 그리움
- 미의 여정
- 셋과 둘 그리고 혼돈
-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 편지 꽃과 그늘 기
- 예감에 가득 찬 숲 그늘
- 김지하의 화두
- 당신을 버릴때
- 절 그 언저리
- 사이버 시대와 시의 운명
- 못난 시들
기타
- 율려란 무엇인가
- 사상기행 1~2
- 생명과 평화의 길
- 유목과 은둔
- 탈춤의 민족미학
- 똥바다 : 김지하가 짓고 임진택이 고쳐 만든 창작 판소리
저작
- 옹치격(김지하산문집)
- 민족주의 평화 중용 (공저, 2007년, 까치)
- 현대문명의 위기와 시대정신
- 흰 그늘의 길:김지하 회고록
- 생명학1~3
학위
- 1985년 미국 사회연구대학교 명예박사
상훈
- 1975년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 1981년 국제시인회 위대한 시인상, 브루노 크라이스키상
- 1993년 <이상문학상> 수상
- 2002년 제14회 정지용문학상
- 2002년 제17회 만해문학상
- 2002년 제10회 대산문학상
- 2003년 제11회 공초문학상
- 2005년 제10회 시와 시학상 작품상
- 2006년 제10회 만해대상 평화부문상
- 2010년 제6회 경암학술상 예술부문
- 2011년 민세상
가족 관계
기타
6.3 사태
박정희 정권이 추진하던 한일회담이 굴욕외교회담이라 판단한 그는 서울대학교 후배 김덕룡, 고려대의 이명박, 이재오 등과 함께 6.3 시위에 참여한다. 한일회담을 반대한 학생시위에 앞장섰다가 체포된 그는 투옥, 4개월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
오적 필화 사건
1970년 부패된 정권을 비판한 《오적(五賊)》이라는 시를 써서 《사상계》 5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실리면서 문제가 되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00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
민청학련 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7월 9일 결심 공판에서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013년 1월 4일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 국가보안법상 내란선동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판결 선고 후 "보상금을 받으려 재심을 신청했다. 완전히 무죄를 선고하지 않은 이유는 돈을 적게 주려는 것"이라며 1월 10일 재심판결에 항소를 하였다.[12]
변절 논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열사의 사망 이후의 대치정국에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는 글로 그들의 죽음을 비난해 재야 진보세력과 맞서는 행보를 보이며 '변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후 2009년, 촛불 시위 반대와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객들을 비난하는 행보를 보였으며 2012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 데 이어 다른 대선 후보를 비난하고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고 리영희 교수를 매도해 인터넷에서 "자신에게 씌워졌던 ‘빨갱이’란 누명을 거꾸로 다른 사람에게 씌우고 있다","유신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됐다"는 비판을 받고있다.[13]
죽음의 굿판 논란
1991년 4월 26일 명지대 앞에서 대학 측의 일방적 등록금 인상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진압하다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군(당시 19세)이 쇠파이프에 머리를 맞아 사망했고 이후 숨가쁜 ‘분신·투신 정국’이 전개되는 상황에서 5월 5일, 김지하는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로 그들의 죽음을 비난해 큰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더 이상의 죽음이 나와서는 안된다는 뜻”이라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을 돕는 결과를 낳았다.[14]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 논란
2008년 이명박 지지로 인해 네티즌들로부터 맹공격을 당하던 작가 황석영에 대해 2009년 5월 1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시비걸지 말라"고 일침을 가했다. "작가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15]"는 시각을 공개적으로 피력했다. 그는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라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했다.[16] 진중권이 일관성을 비판하기 위해 황석영을 금붕어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 그는 "작가라는 것이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라며 황 씨의 행보에 작가적 정당성을 부여했다. 이는 진 교수가 황 씨를 가리켜 '금붕어 기억력'이라고 비난한 것에 대한 노골적인 반박이다.[15] 5월 19일 진중권은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을 글을 올려 "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라는 미학이론은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 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라고 말했다[15]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객 "맑스 신봉자" 발언
2009년 5월 부산일보에 게재한 칼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추모객들을 향해 "봉하마을에서 악을 쓰는 맑스(칼 마르크스) 신봉자"들이라고 표현했다. 해당글에 대해 네티즌들은 "내가 아는 그 김지하가 맞는가" "정말로 '타는 목마름'의 그 김지하 시인 맞나"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문과 마르크스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자살까지도 애도하게 하는 이유는 왜 빼먹었는지" "삶은 무조건 고귀하고 죽음은 무조건 비겁한 것인가"라며 그의 글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김지하 시인 안목으로는 자살이라는 것이 비겁한 행동이었겠지만 고인을 추모하는 사람은 각자 자기 자신의 이유가 있어서 추모하는 것"이라며 "그걸 마치 옳지 않다라는 듯이 하는 자세가 별로 좋은 자세는 아니다라며 비판했다.[17]
공산화 지지자 발언
2013년 1월 8일 CBS 라디오에 출현하여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국민 48%는 공산화 좇는 세력 맞지 않나"라고 한 발언[18] 등이 논란이 되었다.[19] 문재인, 안철수 후보에게 막말을 했으며 이정희 후보에게 욕설을 하는 등[20] 입에 담지 못한 막말이라는 평과 비판이 이어졌으며[21] 이에 대해 한 칼럼니스트는 좌충우돌하던 언행에서 무엇보다 끔찍스러웠던 것은 정제하지 않고 내뱉는 막말이라며 김지하가 공론장에 내뱉는 '한마디로 X 같아서…' 등의 욕설은 더 이상 시인의 언어는 아니라고 평했다.[22] 또한 민청학련 무죄 판결에 대해서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것에 대해 평론가는 김지하가 ‘돈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을 옹호하기로 마음먹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약일 수 있다며 그와 비슷한 연령대의 생활은 보수주의가 지배를 한다며 김지하는 시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버린 것이라고 평했다.[23]
김지하를 연기한 배우
같이 보기
각주
- [YES24]
- “네이버 지식백과 김지하”.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시인 김지하, 지구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찍다”. 오마이뉴스. 2007년 8월 30일.
- 홍미희. “목포가 낳은 세계적인시인 - 노겸(勞謙) 김지하(金芝河, 1941- )”. 《목포출신문학인소개》.
- “지하, 박경리 딸 김영주와 결혼… 주례 김수환 추기경”.
- '유신 광기 절정... 김지하의 신변에 불길한 예감', 《한겨레》2012년 2월 14일자
- 한겨레신문 국제 | 문화>출판 | 문화] 2001-05-07 / 최재봉
- 김지하“‘손아무개한테 가봐라’말하는 정도로 돕겠다”
- “김지하, 변절의 길 걷는다,,,박근혜 지지선언”. 뉴스플러스. 2012년 11월 6일.
- 이 시는 가수 김광석이 노래로 부르기도 하였다.
- “김지하 미발표 시 8편 첫 공개”. 중앙일보. 2022년 6월 25일.
- “김지하 시인, '사실상 무죄' 재심판결에 항소”. 동아일보. 2013년 1월 10일.
- “김지하, 또 백낙청 공격에 문단 "안타깝다"”. 경향신문. 2012년 12월 5일.
- “강경대 사망 20주기 등록금 투쟁서 비롯, 정권 퇴진 운동으로 달궈져”. 경향신문. 2011년 4월 24일.
- “"황석영은 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포기했다"”. 《황 씨를 옹호하고 나선 시인 김지하》. 2014년 12월 6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 “김지하 "작가는 좌우 오갈 자유 있어야"”.
- 김지하 "봉하마을에서 악을 쓰는 맑스 신봉자" 논란
- “국민 48% 공산세력" 김지하 막말 논란에 의견 분분”. 브레이뉴스. 2013년 1월 8일.
- “김지하 '막말'발언 논란, 누리꾼 비난 '봇물'”. 뉴스포스트. 2013년 1월 8일.
- “김지하, 또 막말...”. 한겨레. 2013년 1월 8일.
- “김지하의 막말, 지적 수준 의심스러워”. 시사브리핑. 2013년 1월 9일.
- “이준희 칼럼 김지하, 황석영”. 한국일보. 2013년 1월 9일.
- “이택광의 왜?시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버린 김지하”. 경향신문. 2013년 1월 10일.
외부 링크
金芝河
金 芝河 | |
|---|---|
| 生誕 | 1941年2月4日 |
| 死没 | 2022年5月8日(81歳没) |
| 職業 | 詩人・思想家 |
| 言語 | 朝鮮語 |
| 国籍 | 韓国 |
| 最終学歴 | ソウル大学校文理科大学美学科 |
| ジャンル | 詩 |
| 代表作 | 『五賊』 |
| 主な受賞歴 | ロータス賞、クライスキー人権賞 |
| 金 芝河 | |
|---|---|
| 各種表記 | |
| ハングル: | 김지하 |
| 漢字: | 金芝河 |
| 発音: | キム・ジハ |
| ローマ字: | Kim Chi-Ha |
金 芝河(キム・ジハ、きん しが[1]、김지하、Kim Chi-Ha、本名:金 英一(キム・ヨンイル、김영일)、1941年2月4日 - 2022年5月8日)は、大韓民国の詩人・思想家。ペンネームの「芝河(チハ)」は同音の「地下(チハ)」に由来する[2]。本貫は金海金氏[3]。
生涯
生い立ち

全羅南道木浦市大安洞に映画技師の一人息子として生まれる。1954年、父親の仕事の関係で江原道原州市に移住[5]。中学時代から詩作を始める。1959年、ソウルの中東高等学校卒業。同年3月、ソウル大学校美術学部美学科(現・哲学科)に入学。美術学部はのちに文理科大学に統合された[6]。
1960年4月に発生した反政府デモ(4・19学生革命)に参加。1961年、5・16軍事クーデターでの朴正煕政権登場以降、反政府活動を強める。
1964年5月20日、韓日会談反対闘争の一環として、ソウル大学校文理科大学の学生が「民族的民主主義葬礼式」を開いた。金が書いた弔辞を同大学政治科の宋哲元が朗読した[4][5]。6月3日、国会議事堂前の太平路通りは、市内17大学、1万5千人の学生で埋め尽くされた。同日20時、政府はデモ激化を理由として、非常戒厳令を宣布した(6.3抗争)[7]。同月、金は運動を指導したとして逮捕された。9月に起訴猶予処分を受けた[5][2]。以降も学生運動を主導した。
1966年9月、ソウル大学校卒業。江原道の炭鉱で働く[5]。
長篇詩『五賊』
1970年、張俊河の主宰する総合雑誌『思想界』5月号に長篇詩「五賊」を発表した。金は財閥、国会議員、高級公務員、将軍、長官次官の“五賊”をパンソリの節に合わせて痛烈に風刺した[6]。6月1日、「五賊」は最大野党の新民党の機関紙『民主前線』60号に転載された。6月2日、金と『思想界』発行人の夫琓爀は逮捕され、新民党は強制捜査を受けた(五賊筆禍事件)[8]。肺結核が再発し、逮捕から1か月後に釈放される[5]。「五賊」は「週刊朝日」1970年6月26日号に全訳で紹介された[9]。
当局からの逃亡生活を余儀なくされるが、地下活動を続け、軍事政権下で民主化運動をリードした。同年12月、最初の詩集『黄土』をハンオル文庫から刊行[5]。
1971年12月25日、『黄土』や「五賊」のほか、評論や戯曲を収録した日本語の翻訳書『長い暗闇の彼方に』が中央公論社から出版された。同社の宮田毬栄が編集し、タイトルも宮田が考えた[10]。翻訳者の渋谷仙太郎は日本共産党「赤旗」記者だった萩原遼のペンネーム。同書により、金芝河の名前は日本でも広く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
1972年4月、金は長編風刺詩「蜚語」を発表したが、4月12日に検挙され、木浦市の国立結核療養院へ強制軟禁された[6][11][12]。宮田が立ち上げた「金芝河救援国際委員会」の依頼により、鶴見俊輔、真継伸彦、金井和子の3人は同年6月29日、金の釈放を求める署名を持って韓国に渡り、病室で金と面会した[6][13][14]。
民青学連事件
1974年4月3日、民青学連事件[注 1]が発生。事件の関与者として指名手配を受け、4月9日から地下に潜行。4月25日、逃亡先の全羅南道黒山島で逮捕された[5][17][2][18]。7月9日、韓国非常普通軍法会議は金に死刑を求刑[18]。翌10日、宮田毬栄は「金芝河救援国際委員会」を拡大・発展させ「金芝河らを助ける会」を設立。「金芝河を殺すな! 釈放せよ!」という朴大統領に送る要請文を書いて署名運動を行った。日本では大江健三郎、遠藤周作、松本清張、柴田翔、谷川俊太郎などが、外国ではサルトル、ボーヴォワール、ヘルベルト・マルクーゼ、ハワード・ジン、ノーム・チョムスキー、エドウィン・ライシャワーなど数多くの知識人が賛同した[11][10][19]。7月13日、非常普通軍法会議第一審判部は金に対し死刑判決を下した[5]。16日までに、金ら14人に死刑、15人に無期懲役、日本人の太刀川正樹と早川嘉春を含む26人に懲役15年から20年の刑が科せられた[20]。
同年7月16日夕方から19日にかけて金石範、金時鐘、李恢成、真継伸彦、南坊義道らは数寄屋橋公園でハンガー・ストライキを行った[20][21][22]。7月20日早朝、宮原昭夫は国鉄藤沢駅前でハンストに入った[23]。7月21日、国防部長官の徐鐘喆は金の死刑を無期懲役に減刑した[24]。7月27日から30日にかけて鶴見俊輔、金達寿、李進熙、針生一郎ら4人は、全被告の釈放を求める第二次ハンストを数寄屋橋公園で行った[5][11][25][26]。8月8日には「金芝河らをたすける国際委員会代表団」が韓国に派遣された。団長は日高六郎で、大島孝一、ジョージ・ウォルド、反戦活動家のフレッド・ブランフマン、福音館書店編集長の藤枝澪子らがこれに参加した[22]。
1975年2月15日、朴大統領の刑執行停止措置により人革党関係者をのぞく148名が釈放された。金もこのときに出獄。2月25日から27日にかけて「東亜日報」に手記『苦行―1974』を掲載し[5]、人民革命党事件の捏造を批判した。3月13日、反共法違反容疑で再逮捕された[27]。
1980年12月11日、釈放される[28]。通算7年にも及ぶ獄中生活に対し、軍事政権の言論弾圧に屈しなかったとして、ロータス賞(特別賞、1975年)、クライスキー人権賞、偉大な詩人賞、鄭芝溶文学賞、空超文学賞、怡山文学賞、大山文学賞を受賞。
以降、詩作以外にも随筆や談論集を発表し、パンソリや仮面劇の伝統を生かした『櫻賊歌』『蜚語』などを発表。1982年頃からは、地域自治を提唱するサルリム(生命)運動や環境問題、消費者共同体運動、東アジアの伝統を見直す活動など、詩作以外にも活動を広げる。しかし、生命運動などを通じて神秘主義的な言動が顕著になったことで、民主化運動(特に学生運動)に対する思想転向と受けとめる者も現れ、韓国内では賛否両論を巻き起こした。
1991年4月には、明知大学校生の姜慶大殴打致死事件を契機に起こった一連の焼身自殺事件に対して、その抗議姿勢を批判して1991年5月5日付の『朝鮮日報』コラムに「死(焼身自殺)による礼讃を止めよ!(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 치워라!)」とのアピールを出している[29]。この文章は国内に激烈な反響を引き起こす。
自身の政治的立場は「中道進歩」としており、1998年〜2008年の10年間続いた進歩政権、特に盧武鉉政権については厳しい批判をしている[32]。2007年の大統領選挙ではソウル大学時代の先輩で親交が深い孫鶴圭支持を表明[33]。2012年大韓民国大統領選挙では、自身が弾圧を受けたときの大統領である朴正煕の長女で与党・セヌリ党の大統領候補となった朴槿恵支持を表明した[34]。
人物
日本語訳書
- 『長い暗闇の彼方に』(渋谷仙太郎 訳、中央公論社、1971)
- 『五族黄土蜚語』(姜舜 訳、青木書店、1972)
- 『金芝河詩集』(姜舜 訳、青木書店、1974)
- 『民衆の声』(金芝河作品刊行委員会 編訳、サイマル出版会、1974)
- 『不帰』(李恢成 訳、中央公論社、1975)
- 『良心宣言』(井出愚樹 編訳、大月書店、1975)
- 『わが魂を解き放せ』(井出愚樹 編訳、大月書店、1975)
- 『深夜』(鄭敬謨 訳、土曜美術社、1976)
- 『金芝河作品集』(1・2、井出愚樹 編訳 青木書店、1976)
- 『獄中から』(井出愚樹 編訳、大月書店、1977)
- 『苦行 獄中におけるわが闘い』(金芝河刊行委員会 編訳、中央公論社、1978)
- 『飯・活人』(高崎宗司・中野宣子 訳、御茶の水書房、1989)
- 『金芝河 生(いのち)を語る』(高正子 訳、協同図書サービス、1995)
- 『傷痕に咲いた花』(金丙鎮 訳、毎日新聞社、2004)
映画
脚注
注釈
出典
- “金芝河”. 日本大百科全書(ニッポニカ). 2022年12月31日閲覧。
- “「独裁に対抗した抵抗文学の象徴」韓国詩人の金芝河氏、永遠に輝く文学の星に(2)”. 中央日報 (2022年5月9日). 2024年12月24日閲覧。
- 김지하 (2001年9月25日). “김지하 회고록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부처'<2>” (朝鮮語). www.pressian.com. 2022年7月18日閲覧。
- 『コリア評論』1964年7月号、コリア評論社、58-60頁、「韓国日誌」。
- 『苦行 獄中におけるわが闘い』 1978, pp. 660–670.
- 平井久志 (2024年7月7日). “「この金で逃げてくれ!」唐十郎が頼んだ韓国詩人 アングラ演劇の旗手と韓国の大詩人との邂逅”. 東洋経済オンライン. 2024年12月30日閲覧。
- 林建彦 1967, pp. 189–191.
- 『コリア評論』1970年8月号、コリア評論社、60-62頁、「韓国日誌」。
- 『長い暗闇の彼方に』 1971, p. 191.
- 増田恵美子 (2024年4月13日). “<土曜訪問>出版の仕事 人生かけ 日本で初の女性文芸誌編集長を務めた 宮田毬栄(みやた・まりえ)さん(元編集者・文筆家)”. 東京新聞. 2024年12月30日閲覧。
- “「言葉の力に魅了された『金芝河との52年』が 私を目覚めさせてくれました」”. ハンギョレ新聞 (2022年7月6日). 2024年12月24日閲覧。
- “(天声人語)金芝河さんを悼む”. 朝日新聞 (2022年5月12日). 2024年12月30日閲覧。
- 土倉莞爾「非暴力直接行動と鶴見俊輔」 『関西大学法学論集』2021年11月22日発行。
- 鶴見俊輔・上野千鶴子・小熊英二『戦争が遺したもの』新曜社、2004年3月11日。ISBN 978-4788508873。。
- “国家情報院、「人革党・民青学連事件はねつ造」”. 東亜日報 (2005年12月8日). 2024年12月24日閲覧。
- 高槻忠尚「74年の韓国政府転覆事件『朴政権のでっちあげ』 情報院究明委」 『朝日新聞』2005年12月8日付朝刊、7面。
- “詩人の金芝河さん、39年ぶり無罪判決 民青学連事件”. 朝日新聞 (2023年1月4日). 2024年12月24日閲覧。
- “会の歴史・2”. 日本現代詩人会. 2024年12月24日閲覧。
- 李美淑『「日韓連帯運動」の時代』東京大学出版会、2018年2月28日。ISBN 978-4-13-056115-0。
- 『朝日新聞』1974年7月17日付朝刊、19面、「韓国軍法会議の判決に 抗議行動広がる 東京ではハンスト 国際連帯も」。
- 村松武司「1974年7月―金芝河たちの処刑」 『朝鮮研究』1974年6・7月合併号、日本朝鮮研究所、57-62頁。
- 太田修「金大中拉致事件から始まった日韓連帯運動」。同志社大学、2021年3月。
- 『朝日新聞』1974年7月21日付朝刊、3面、「宮原氏 ハンスト続行」。
- 『コリア評論』1974年10月号、コリア評論社、57-60頁、「韓国日誌」。
- 中島健蔵『回想の文学 1』平凡社、1977年5月25日、8-9頁。
- “「民族詩人金芝河(キムジハ)の夕べ」における金達寿の所感(音声)”. 神奈川近代文学館 (2021年1月21日). 2024年12月24日閲覧。
- '유신 광기 절정... 김지하의 신변에 불길한 예감', 《한겨레》2012년 2월 14일자
- 『コリア評論』1981年2月号、コリア評論社、59-61頁、「韓国日誌」。
- 「焚身自殺 분신자살」関連のことば「死の儀式をやめなさい」、李鍾珏『はやり言葉でわかる韓国いまどき世相史』(亜紀書房)167-168頁
- 恩地洋介 (2022年7月29日). “故・金芝河さん(韓国の詩人) 独裁と闘った「抵抗詩人」”. 日本経済新聞. 2024年12月24日閲覧。
- アジア詩文学史の記念碑 伝説の「五賊」遂に日本上陸! 梁石日
- 47NEWS地球人間模様「戦い続ける詩人、金芝河」47NEWS(2009年3月4日)2012年12月9日閲覧。
- “김지하 “‘손아무개한테 가봐라’ 말하는 정도로 돕겠다””. ハンギョレ(本国版). 2007年3月22日. 2012年12月9日閲覧.
- “韓国大統領選 「恩讐を越えて」あの金芝河氏が朴槿恵候補を支持”. MSN産経ニュース. 2012年12月1日. 2012年12月1日時点のオリジナルよりアーカイブ. 2012年12月9日閲覧.
- “김지하, 39년 만에 무죄(金芝河、39年ぶりに無罪)”. 京郷新聞. 2013年1月4日. 2013年1月5日閲覧.
- 고병준 (2022年5月8日). “Poet and democracy activist Kim Ji-ha dies at 81” (英語). Yonhap News Agency. 2022年5月8日閲覧。
参考文献
外部リンク
- 『金芝河』 - コトバンク
- 共同通信社「47NEWS」・地球人間模様 - ウェイバックマシン(2010年10月1日アーカイブ分)
Kim Chi-ha
Kim Chi-ha | |
|---|---|
Kim Chi-ha | |
| Born | Kim Yeongil 4 February 1941 |
| Died | 8 May 2022 (aged 81)[1] |
| Occupation | Writer |
| Language | Korean |
| Period | 1963–2022 |
| Korean name | |
| Hangul | 김영일 |
| Hanja | 金英一 |
| RR | Gim Yeongil |
| MR | Kim Yŏngil |
| Pen name | |
| Hangul | 김지하 |
| Hanja | 金芝河 |
| RR | Gim Jiha |
| MR | Kim Chiha |
Kim Jiha or Kim Chi-ha (Korean: 김지하; born Kim Yeongil (김영일); 4 February 1941 – 8 May 2022) was a South Korean poet and playwright.[2]
Biography
Kim Jiha was born Kim Yeongil (김영일; 金英一) on 4 February 1941 in Mokpo, Zenranan Province, Korea, Empire of Japan (now South Jeolla Province, South Korea). As a university student, Kim took part in April Revolution demonstrations that toppled the regime of South Korean President Syngman Rhee in April 1960.[3] In March 1963, under the pen name Kim Jiha, he published the poem "Evening Story" (Jeonyeok iyagi) in the journal Mokpo Literature. In 1964, Kim took part in the demonstrations against the normalization treaty establishing diplomatic relations with Japan, for which he was briefly arrested.[4] In 1966, he graduated with a degree in Aesthetics from Seoul National University. He made his official literary debut in 1969.[2]
Kim was a dissident under the Park Chung Hee regime, which began when Park came to power in a coup d’état in May 1961. During this period, Kim took the pen-name Jiha because it is the Korean word for "underground".[5]
Kim first came to widespread attention in May 1970 with his poem Five Bandits, which led to him being arrested under the Anti-Communist Law, though the poem says nothing about either communism or North Korea.[6] The title of Five Bandits is a reference to the "Five Traitors" who signed the treaty turning Korea into a Japanese protectorate in 1905.[7] In Five Bandits, Kim described how about "ten years ago" the eponymous bandits came to dominate South Korea, rapaciously devouring everything as they set out to loot the country.[7] One of the "five bandits" is described as a general who is a great Japanophile and who began his military career fighting for the Japanese in World War II; the character of the general was clearly supposed to be Park, who was often expressed his admiration for Japanese militarism and who like the unnamed general fought for Japan in World War II, which is why the poem was promptly banned and Kim arrested.[7] Sasanggye magazine, in which it was printed, was pulled from circulation and never permitted to publish again.[8]
After accusing the regime of extracting false confessions with the use of torture, he was tried and sentenced to death in 1974, which was commuted to a life sentence and eventual release following a public outcry. When he further accused the government of using torture to get confessions in the 1974 People's Revolutionary Party case, he was once again sent to prison and his life sentence renewed.[9] He was subject to torture himself.[8]
Personal life
As a Catholic, he compared the suffering of the Korean people with the greater suffering of Jesus Christ.[citation needed]
Kim died at his home in Wonju after suffering from an undisclosed illness for a year.[10]
Work
From his first collection, The Yellow Earth, to his collection of lyrical poetry, Looking up at a Starry Field, Kim has displayed a broad literary range including both narrative and lyrical poems, ballads, taeseol, drama, and prose. His works also cover the full gamut of religious thought and philosophy, from the Donghak, to the Catholic, Jeungsan, Avatamska, Zen, and Maitraya tradition.[2]
The majority of Kim's poems also present satirical social critiques. In The Yellow Earth and With a Burning Thirst, the poet offers a scathing invective of society through the medium of lyric poetry. In ballads such as "Five Bandits" (Ojeok) and "Groundless Rumors", he employs a pansori rhythm and occasionally obscure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to satirize the misdeeds and corruption of those in power. The pansori rhythm is present again in A Rain Cloud in these Days of Drought, a collection of narrative poems that examine the life and death of Choi Jeu. Love Thy Neighbor, when compared to Kim's earlier works, focuses more directly on the notion of romantic love, thus marking a turning point in the poet's thematic focus. Looking up at a Starry Field and The Agony of the Center reflect this shifting thematic interest in their lyrical content and intent in relating the individual's interior monologue. These works also reveal a strong undercurrent of Romanticism, in focusing more deliberately on the poet's desire to connect with nature than on his discontent with society.[2]
In the 1980s Kim's poetry and thought underwent yet another transfiguration. Distancing himself from the struggle of the labor movement then the dominant theme of the era, the poet was able to develop a fresh perspective on life.[2]
In his play The Gold-Crowned Jesus[11] a leper, the most despised outcast class in Korea, encounters the imprisoned Jesus. Jesus tells the leper that he must help liberate Him. By helping the poor, the gold crown of Jesus will be removed and His lips freed to speak.
Awards and honors
- 1975 Lotus Prize for Literature[12]
- 1981 'Grand Poet Prize' at the International Poets' Conference.[2]
Works in translation
- "Aufgehen der Knospe" (German Language)
- Heart's Agony: Selected Poems of Chiha Kim (1998)
- Cry of the People and Other Poems (1974)
- The Middle Hour: Selected Poems (1980)
- The Gold-Crowned Jesus and Other Writings (1978)
- Five Thieves (Thai translation by Jiranant Phitpreecha in 1989)
Works
- The Yellow Earth, With a Burning Thirst, South (Nam)
- Love Thy Neighbor 1-2 (Aerin 1-2)
- Black Mountain, White Room (Geomeun san hayan bang)
- A Rain Cloud in These Days of Drought (I gamun nare bigureum)
- My Mother (Naui eomeoni)
- Looking up at a Starry Field (Byeolbateul ureoreumyeo)
- The Agony of the Center (Jungsimui goeroum)
- Rice (Bap)
- Boat Songs of the South Land (Namnyeokttang baennorae)
- Livelihood (Sallim)
References
- "Poet and democracy activist Kim Ji-ha dies at 81". 8 May 2022. Retrieved 8 May 2022.
- LTI Korea Author Database: http://klti.or.kr/ke_04_03_011.do# Archived 21 September 2013 at the Wayback Machine
- Hwang, Kyung Moon A History of Korea, London: Macmillan, 2010 page 240
- Hwang, Kyung Moon A History of Korea, London: Macmillan, 2010 page 240.
- "Kim Chi-Ha / 김지하 ( Poet and Playwright )". www.korea-fans.com. Retrieved 28 January 2020.
- Hwang, Kyung Moon A History of Korea, London: Macmillan, 2010 pages 236-237.
- Hwang, Kyung Moon A History of Korea, London: Macmillan, 2010 page 241.
- Kang, Sugwon (1977). "The politics and poetry of Kim Chi-ha". Critical Asian Studies. 9 (2): 3–7 – via Taylor & Francis Online.
- William Shaw, ed. Human Rights in Korea: Historical and Policy Perspectives p. 184-5.
- "S. Korean dissident poet Kim Chi-ha dies at 81". Hankyoreh (in Korean). Retrieved 10 May 2026.
- Kim, Chi-ha, (1978). The Gold-Crowned Jesus and Other Writings
- Arana, R. Victoria (2008). The Facts on File companion to world poetry: 1900 to the present. Infobase Publishing. p. 244. ISBN 978-0-8160-6457-1. Retrieved 25 November 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