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이야기 - 열망의 유토피아가 온다
주요섭 (지은이)모시는사람들201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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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총체적인 위기와 극단에 내몰린 우리 생명의 활로를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전환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제안한다. 내 삶을 전환하며, 우리 사회를 전환하며, 마침내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모색과 실천 경험의 재음미, 그리고 새로운 사회,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절절한 생명운동의 전망을 담아냈다.
목차
I 전환, 깨어나기 다시 살기
호랑나비 애벌레의 깨달음
숨과 틈, 그리고 공모-자유시장의 제국에서 살아남기
반(半)백수로 다시 살기
몸 생명에 관한 명상
교황 프란치스코와 자본주의 넘기
II 전환, 사회적 중심 이동
생명평화와 문명의 전환
박애의 패러다임과 호혜사회의 비전
생명경제와 체제 전환
모심의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생명정치와 민회운동
민회운동과 사회협약
III 전환, 열망의 유토피아
한국형 전환운동을 제안한다
전환이 개벽이다-동학혁명 2주갑에 생각하는 생명운동의 길
지금여기 전환이다-열망의 유토피아와 이매지널 네트워크
IV 보론 전환의 사회운동
한국 생명운동의 현재와 미래
무위당과 영성적 사회운동
동학혁명과 열망의 사회운동
접기
책속에서
P. 23 설국열차와 같은 폭주의 애벌레 기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이심전심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미 설국열차의 바깥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한국사회 여기저기서 자라나고 있습니다. …(중략)… 최근 몇 년 사이 해방 후 처음으로 귀촌귀농 인구가 이촌이농 인구를 넘어섰습니다. ... 흐름이 바뀌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가 거센 열풍으로 대세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경향각지에서 수많은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정부, 시민사회, 재계가 앞 다투어 마을기업과 사회적 기업을 돕겠다고 나섭니다. 접기
P. 35 자본주의의 약탈적 팽창은 ‘비(非)’자본주의의 세계가 존재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근래 20여 년 동안 지구 자본주의를 이끌었던 동력은 지금껏 시장경제의 광대한 변방이었던 중국과 인도가 개발의 나팔을 불며 진군하는 데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촌과 농업이라는 개발의 처녀지를 희생시키고,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비화폐적 돌봄노동을 딛고 한국 자본주의는 성장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접기
P. 46 노동시간 단축은 ‘시간 주권’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아 얻는 화폐소득은 줄어들지만 대신 임금노동에서 해방되어 더 많은 자유 시간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돈 대신 시간을 취하는 것입니다. 정말 반절은 돈벌이 노동을 하고 반절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반(半)백수가 되는 것입니다. …(중략)… ‘자유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바로 노동시간 단축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접기
P. 50 삶의 전환이란 노동시간 단축이 보여주듯 곧 다운시프트(downshift, 축소 전환 혹은 축소 이행)입니다. 삼소(三少) 혹은 3S.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씁니다. 느리게(slow), 조그맣게(small), 유연하게(soft). 그리고 세 개의 S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S가 있습니다. Simple,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 우리 시대 행복의 길입니다. 다운시프트는 새로운 풍요입니다. 돈은 적게, 삶은 풍요롭게. 삶의 전일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접기
P. 84 삶의 전환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흐름으로서의 귀농과 산촌 유학이 생명 감각의 적극적이며 긍정적(positive) 대응이라면, 자살과 저출산은 극단적인 부정적(negative) 반응이다. 차라리 그것은 생명 지속 불가능성에 대한 일종의 최후의 저항이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OECD 최저의 출산율은 이를 반증한다. 묻지 마 살인과 막장 범죄는 더욱 끔찍하다. 살아 있으되 삶이 아니다. 어느 한편에선 부동산 투기 실패로 세 모녀가 자살을 하고, 다른 한편에선 고급 유모차가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접기
P. 92 좌와 우, 여성과 남성을 넘어서야 한다. 생명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사회주의·공산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고자 했으나 오히려 산업문명의 구조에 함몰됐다. 이제 산업문명을 제패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나,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후의 가치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문명의 척도는 ‘삶·생명’이다. 모든 존재는 살아 움직인다. 살아 있는 존재는 각각 다르되 모두 연결되어 있다. 관계적이고 변화하며 다양하다. 접기
P. 133 호혜사회는 사랑과 자비와 우애와 형제애가 자연스러운,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기초가 되는 열망의 유토피아다. 성장의 한계, 경쟁의 한계를 넘어서 ‘삶의 길(life based path)’에 대한 열망이다. 경제적 인간을 넘어서는 호혜적 삶의 양식, 우-자유와 좌-평등의 균형 위에 우애의 시선을 담은 열망의 사회. 2008년 봄 촛불의 대하(大河)처럼 열망이 솟구친다. 접기
P. 141 자본주의는 부의 대가로 지구생태계와 인간성과 공동체를 치명적으로 파괴하였고, 급기야 자본의 재생산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아니다. 체제 전환의 때가 되었다. 사회적 위기, 생태적 위기, 그리고 경제 시스템 그 자체의 위기를 인정하고 또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생활양식의 전환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기약할 수 없다. 거꾸로 ‘또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체제 전환’이다. 접기
P. 169 한국의 민주주의가 초라하다. ‘민주화’라는 말이 극우파 인터넷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고,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문을 닫았으니 민주주의 그 자체는 몰라도 ‘민주화’와 ‘민주화 세력’의 위기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70~80년대 세대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신화가 사라졌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니다. …(중략)…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민주주의가 절실하지는 않다. 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만도 아니다. 나와 우리의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을 담기에 투표용지의 크기는 너무 작다. 찬성/반대 둘뿐인 선택지는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정녕 ‘새 정치’가 절실하다. 접기
P. 177 전교 1등을 고수해 온 고등학생이 “머리가 가슴을 갉아 먹는다.”고 호소하며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지고, 조기유학을 위해 아이를 미국에 보낸 40대 가장이 “아빠처럼 살지 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삶의 위기, 생명의 위기다. 자기 삶의 지속 가능성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는 더 이상 삶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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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주요섭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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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1983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으나 시절을 좇아 학생운동에 전념했다. 1980년대 말 고향 정읍에 돌아와 지역공동체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정읍과 서울을 오가며 ‘지역’, ‘생명’, ‘전환’을 화두로 생명민회, 초록정치연대, 대화문화아카데미, 한살림전북생협, 모심과살림연구소, 한살림연수원 등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존경하고 친애하는 선생님들, 벗들과 함께 <(사)밝은마을_생명사상연구소>와 <지리산연찬>, <전북생명평화포럼> 등에서 활동하며 공부하고 있다. 『세계화는 지구환... 더보기
최근작 : <호모 쿠란스, 돌보는 인간이 온다>,<한국 생명운동과 문명전환>,<한국 현대의 사회정치 이념과 세력> … 총 9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책은 총체적인 위기와 극단에 내몰린 우리 생명의 활로를 모색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전환운동의 철학과 방법론을 제안한다. 내 삶을 전환하며, 우리 사회를 전환하며, 마침내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모색과 실천 경험의 재음미, 그리고 새로운 사회, 유토피아를 열망하는 절절한 생명운동의 전망을 담아냈다.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깨어나 다시, 중심이동하며 유토피아를 열망한다
긴장 타자 대한민국,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희극의 시대는 가고, 비극의 시대가 다가온다
마르크스는 역사가 비극으로 한번, 희극으로 한번 되풀이된다고 했다. 그러나 2015년 대한민국에서 역사는 “희극에서 비극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의 확장 과정은, 고난스러웠지만 결말은 희극이었다. <국제시장>의 덕수는 고난으로 점철된 생을 살았지만, 생의 마지막 대목에서 “아버지, 내 잘 살았지요!”라고 소리 칠 수 있었다.
다가오는 시간은? 경제위기와 민주주의의 후퇴로 인하여, 비극의 막장극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예고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우리는 사상 유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지만, 우리 생의 마지막,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일찍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비통하게 부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말이다. 낭만적인 읊조림이 아니다. 1920년대의 대공황은 파시즘의 발호로 귀결되었다. 지금 우리는 그 지옥의 입구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조)부모님들은 “늬들이 전쟁을 겪어 보지 않아서” “늬들이 보릿고개를 겪어보지 않아서”를 입에 달고 살았다. 공포의 ‘D’(디플레이션)이든, 무지막지해 보이는 원전1호기 수명연장이 불러올 비상사태든, 우리도 훗날 ‘늬들이~’를 뇌까릴 수 있을 테니, 불행 중 다행인가? 적어도 4.16을 함께 목격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람들은 기본 조건을 갖추었다.
통일대박론-한국 자본주의의 한계에 대한 자백
전복당하는 배에서는 가만있으면 안 된다!
지금 광장에서는 또 한 번 ‘종북놀/몰이’가 시작된다. 그러나 그건 아니란 건, 너도 알고 나도 안다. 알면서 속이고, 속아 주는 거다. 단지 시간 끌기일 뿐인 온갖 작태에 짜증이 나긴 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호, 아니 어쩌면, 지구호 전체가 그런 놀/몰이에 몰두할 만큼 한가한 시점이 아닌 거다. 그러한 장난으로 돌 던지기 놀이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왜 통일대박론을 내놓았을까? 시중의 여론은 부정적이다 못해 냉소적이다. 씨도 뿌리지 않고 추수할 기대에 부푸는 건 고사하고, 상대방의 염장(전단 살포 방조)을 지르면서 입으로는 잘해 보자고 말하는 셈이니, 가야 할 길이 먼 북한이 “통일 대박론은 전쟁 대박론”이라고 격앙하는 건 북한으로서의 고육지책인 셈이다.
무엇보다 통일대박론은 ‘섬나라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자백에 다름 아니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한국 경제는 미국의 경이적인 성장 국면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동북아 균형자는커녕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한 것은 어떤가. 그예, 북한이라는 미개척 시장에서 한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한 것이 통일대박론이리라. 이제 그도 안 되니, ‘제2의 중동붐’ 운운하지만, 그건 또 쪽박난 제2의 자원외교 아닌가 의심케 된다. 이쯤에서, 대한민국호가 위기에 봉착해 있음을 진정으로 실감해야 한다.
부자(父子)가 일자리를 다투며, 생식 욕구마저 차단당하는 사회!
질문은 단 하나!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수십만 국민의 뜻을 대변하는 한 진보정당은 허무하게 해산되고, 몰락에 몰락을 거듭해 가는 시민단체!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도도한 압박에 ‘을의 반란’을 꾀한다고 하지만, 겨우 깃털에 계란 얼룩이나 묻히고 마는 ‘갑남을녀.’ 눈에 보이는 갑은 갑이 아니다. 진정한 갑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존재할 뿐! 그들에게는 갑이라는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는다.
SNS 화면에서의 화려한 ‘을의 승리’를 만끽하고, 현실로 돌아와 보면, 아버지는 아들의 일자리를 탐하고, 아들은 일자리를 선점한 아버지를 증오한다. 아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눈물바람을 하지만, 눈을 들어 미래를 보면, 연애와 결혼과 출산과 우정과 집 한 칸은 온데 간데 없는 ‘오포세대’가 아들의 현실이고 우리의 미래다. 희망은커녕 생식 욕구마저 차단당한 사회, 모든 을(乙)에게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자본주의 '이후', '바깥'을 상상하라!
혹은, 21세기에는 21시간 노동을!
이대로는 정녕 아니다. 탈출은 이미 시작되었다. 길이 있어서 길을 나서는 것이 아니다. 무작정의 액소더스, 생명 감각이 시키는 대로, 전복당하는 배에서 탈주하는 쥐떼들처럼이라도, 지금은 탈출할 때다. 예컨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의 진출에 목을 매는 대신, “반(半)백수 노동”이 정답일 수 있다. 한계비용 제로시대를 염두에 두어도 좋다. 과잉노동→과잉생산→과잉소비→과잉탄소(오염)→죽음의 과잉이 지난 세기까지의 삶의 방식이라면, 노동시간단축→나눔/돌봄노동의 증대→생명과 평화의 상생경제가 미래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만능열쇠가 아니라고 한다면, 좋다. 중요한 것은 지금 ‘죽음’의 계곡을 향해 질주하는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징후도 없지 않다. 힐링 신드롬, 귀농귀촌-최근 귀농인구가 이농 인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는 통계가 있다, 협동조합, 인공지능 열풍은 전환의 구체적인 징조이다. 40년 전 <꽃들에게 희망을!>이 예견했듯이, 애벌레 무리를 밟고 올라서서, ‘최고의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비의 비상, “전환”이 답이다. <설국열차>가 예고했듯이, 죽음을 무릅쓰고 ‘머리칸’으로 전진하는 삶이 아니라, 열차 밖 세상으로 나아가는 도약, “전환”이 답이다.
열망하라, 생명 살림의 봄, 유토피아를!
내가 바뀌면, 바뀌어야만 세상이 바뀐다
정치경제적 불평등, 생태환경의 불균형, 영성과 영혼계의 부조화. 한마디로 오늘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 불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 삶·생명의 위기는 공허한 위기론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현실이다. ‘세월’을 견디는 어린이·학생, ‘열정페이’를 견디는 젊은이, ‘유리천정’에 갇힌 여성들, 빈곤의 절벽 위에 선 노인들, 누구랄 것 없이, 전환만이 희망이다. 1%의 기득권자를 제외하고 99%는 변화를 원한다. 아니, 이미 ‘전환’은 시작됐다.
전환에는 흔들림이 뒤따른다. 어떤가. 그 흔들림에 몸을 내맡기고 불안을 견디는 것은. 견딤의 그 시간을 ‘고치의 시간’이다. 무한경쟁 혹은 불멸의 식욕에 짓눌린 애벌레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의 시간, 무의 시간이 아니라 열망의 시간이다. 열망함으로 새로운 유토피아를 숙성시키는 잉태의 시간이다. 바야흐로 때가 되었다. 그날, 죽은 겨울나무에서 새봄 꽃잎이 돋아나듯, 죽음 같은 욕망 아래에서 숨죽이던 열망의 약동으로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이 책은 2013년 봄, 절망의 끝에서 전환의 시대를 예감하고, 2014년 봄, 동학농민혁명 2주갑 120주년의 봄에 전환의 시대를 공감하고, 2015년 봄, 전환의 시대의 약동을 절감하며 써 내려간 글들을 모은 책이다. 전환의 방법은 결국 고전적이다. 우리 시대의 전환은 “의식의 전환, 생활의 전환, 체제의 전환”이며 “주체의 전환, 가치의 전환, 운동의 전환”이다.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문명의 전환”이다.
■ 모들아카데미 저자 초청 이야기 마당 - 作黨 2015, 전복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
<전환이야기-열망의 유토피아를> 출간을 맞아 ‘전복당할 것인가 전환할 것인가’를 주제로 저자 초청 마당이 열립니다. 이번 행사는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개벽신문 공동 주최로 강연과 문화 행사, 저자와의 대화 등이 진행됩니다.
일시 : 2015년 3월 27일(금) 오후 7:00 ~ 8:30
장소 : 수운회관 1003호(서울시 종로구 삼일대로457(경운동))
강사 : 주요섭_모심과 살림연구소 소장
사회 : 윤법달_서울디지털대학 교수
주최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 개벽신문
문의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02-735-7173)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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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전환의 시기를 맞아야 할까?
‘전환이야기’의 저자는 이 책을 생각과 삶과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바꾸자는 이야기라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고 있으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바꿔야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걸까? 그리고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무엇일까?
이 책 초반부에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문을 인용하여 ‘현대 사회가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말을 한다. 자본주의로 인한 사회 문제들에 관한 책이 어디 한 두 권인가? 이 책 역시 우리사회의 전환이라는 모티프를 가지고 우리사회의 올바른 전환과 전환에 이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하나로 삶의 전환을 다운시프트라 하여 삼소, ‘적게 일하고, 적게 벌고, 적게 쓴다’를 제시하며 이 세 가지를 아우르는 단 하나의 S를 simple, 단순 소박하게 사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한 살림(한국 최대의 생협)을 예로 들어 시장에서의 호혜성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호혜’란 단어를 정말 많이 마주치게 된다. 호혜란 ‘양편이 서로 특별한 편의와 이익을 주고받는 일’로 정의되며 저자는 호혜시장 창조를 또 다른 전환의 한 형태로 소개하고 있다. 이런 호혜는 민이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 과정이 없는 민주주의, 호혜가 없는 즉 마음이 담긴 주고받기가 없는 민주주의 비판에서도 등장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학을 통한 전환의 모습도 보여준다. ‘길은 우리 안에 있다’, ‘깊은 마음’, ‘공동체’, ‘개벽’, 한 마디로 ’생명‘이라는 화두를 던지는 동학에서 혼자만 잘 사는 것이 아닌 나와 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전환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요즘은 한 마디로 소비사회라 할 수 있다. 나의 사회적 지위가 나의 소비 행태로 나타날 수 있는 이런 불필요하게 과잉된 소비사회에서 호혜의 마음을 잊지 않고 나와 너, 너와 나를 생각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아니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명이라도 노력하고 그 한명의 노력이 전해진다면 저자가 꿈꾸는 전환이야기가 망상이 아닌 현실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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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2015-04-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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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의 시간 – 전환이야기
한마디로 ‘전환’은 어려운 것이다. 기존의 체제와 사고방식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매우 어렵고 시간이 걸린다. 특히, 이들에게는 전환을 견디는 것뿐만 아니라, 전환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이 시기를 혼란과 불안이 교차하는 시기로 규정한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의 환경운동가 폴 호켄의 말을 빌어 ‘축복받은 불안’의 시기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록 전환이 힘겨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애벌레가 고치의 시간을 견뎌 나비로 환골탈태하듯이 강한 애벌레가 아니라 새로운 존재 즉 나비로 거듭나야만 더 높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시기는 불안과 혼란으로 견디기 힘들기는 해도 이 시기를 무사히 견디면 한 단계 더 나은 삶으로 전진할 수 있는 축복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환을 크게 세 가지 수준으로 설명한다. 첫째, ‘의식의 전환’으로 삶의 중심 가치 즉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즉, 전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 개인 의식의 전환이다. 둘째, ‘생활의 전환’으로 생활양식을 바꾸는 일이다. 예를 들면 기존의 개인주의적,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아니라 일이나 돈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잘 살 것인가 즉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는 생태적 삶이나 사람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동을 통해서 생활을 영위하고자 하는 공동체적인 삶 등으로 이동해가는 것이 그것이다. 이 두 번째 전환은 개개인의 의식전환을 바탕으로 실제 생활면에서 전환을 실천하고, 이를 공동체로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다. 마지막은 ‘체제의 전환’ 즉 사회경제 시스템의 중심이동이다. 즉, 위 두 수준의 전환이 더욱더 정착 확대되어 사회 체제 전체의 전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쉽게 말해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라는 것이 바로 전환의 가장 핵심적인 논리이다.
저자는 위의 세 가지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혹은 필요한, 즉 개인, 종교, 정치, 사회 등의 다양한 전환과 그에 대한 서술을 이 책에 포함하고 있다. 사실 위에서 ‘전환’은 어려운 것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전환’운동 혹은 이론에 그다지 많은 전문성이 없는 상태에서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특히, 각 장들이 전환이라는 주제를 다루고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하나의 책으로 유기적으로 연결 된다 기 보다는 각 각 따로 읽히는 편이어서 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 ‘아..결국은 이런 이야기구나’하는 하나의 완결된 느낌을 갖기 힘들었다. 하지만, 왜 지금 시점에서 전환이 절실한지, 전환운동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서술은 매우 신선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전환에 대한 의미규정과 분류 역시 앞으로 전환운동을 이해함에 있어 그 틀을 제공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즉, 전환이 무엇이고, 수준에 따라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 그 외의 논의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전환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하면서, ‘각비-엑소더스-깨달음-새 공동체-체체전환’이라는 저자가 제시한 한국형 전환운동의 프로세스에 대해 생각해본다. 저자는 이 과정이 순차적이지 않고, 불연속적이고 불균등하며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전환은 개혁처럼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는 개념은 아니기에 천천히 점진적으로 변화해가다보면 종국에는 ‘어..바뀌었네’하고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어제와 오늘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십년 전과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고치의 시간을 견디는 것은 어쩌면 영원처럼 느껴질 정도로 길고 힘들 수도 있지만 계속 노력하다보면 나비가 된다는 자명한 사실처럼, 지금의 변화의 움직임이 미약하고 작을지라도 어느 순간 돌아보면 ‘전환’을 이루었음을 느끼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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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nder76 2015-04-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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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이야기
[전환 이야기] 책 제목을 보고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고등학교 교육까지 주입되어 왔던 편협하게 고정되어 있던 현대사와 국제정치에 대한 의식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고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 인식을 전환시켜 주었던 이영희의 [전환 시대의 논리]였다.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아주 큰 인식적 충격과 전환을 안겨주었던 [전환시대의 논리]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의식을 깨는 것이라면 [전환이야기]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전환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0년대 후반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패망하면서 세상은 자본주의의 논리 그 중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사회정의도 민주주의도 함몰되어 버린 현실에서 과연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체제는 과연 어떤 형태와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의구심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작가는 전환을 “의식의 전환, 생활의 전환, 체제의 전환”이며 “주체의 전환, 가치의 전환, 운동의 전환”이라고 하며, “내가 바뀌면 우리가 바뀌고, 우리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문명의 전환”이라고 한다. 작가의 “전환”에 대한 규정과 자본주의 이후의 가치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만을 봤을 때, 책의 전반적 흐름은 매우 의식적이고 정치적일 것이라는 선입감을 갖게 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작가의 경륜을 엿볼 수 있는 해박하고 날카로운 통찰력이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참 평온하고 공정하다는 느낌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로운 창의력을 고양하는 한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경제 영역의 자유를 인간과 사회 전체로 일반화하려는 체제라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부의 대가로 지구생태계와 인간성과 공동체를 치명적으로 파괴하였고, 급기야 자본의 재생산 자체가 한계에 봉착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아니다. 체제 전환의 때가 되었다. 사회적 위기, 생태적 위기, 그리고 경제 시스템 그 자체의 위기를 인정하고 또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 생활양식의 전환만으로는 건강한 삶을 기약할 수 없다. 거꾸로 ‘또 다른 삶’에 대한 열망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에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시스템의 자기조직화가 시작되고 있다. 이제 ‘체제 전환’이다.”이라 주장에 더욱 강한 기대감을 갖기도 하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초라하다. ‘민주화’라는 말이 극우파 인터넷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조롱거리가 된 지 오래고, ‘민주’라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문을 닫았으니 민주주의 그 자체는 몰라도 ‘민주화’와 ‘민주화 세력’의 위기는 분명하다. 무엇보다 70~80년대 세대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했던 민주주의의 신화가 사라졌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은 더 이상 전설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더 이상) 민주주의가 절실하지는 않다. 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일자리 문제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만도 아니다. 나와 우리의 복잡하고 섬세한 마음을 담기에 투표용지의 크기는 너무 작다. 찬성/반대 둘뿐인 선택지는 차라리 폭력에 가깝다. 정녕 ‘새 정치’가 절실하다.”는 주장에도 씁쓸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고, “진보는 국가 교육에 편향되어 있으며, 우익은 시장 교육만이 경쟁력 강화의 해법이라고 강변한다. 국가 교육과 시장 교육을 넘어 (지역)공동체 교육으로 새롭게 창조해 내야 한다.”는 한국 교육 현실에 대한 인식도 공감한다.
그러나 작가의 전환론에 대한 주장에 한참 기대나 흥분을 가져보고자 하면 해박한 종교적 사례와 개벽 이야기가 오버랩 되면서 왠지 종교 서적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과, 작가가 정말 주장하고픈 얘기가 무엇인지도 헷갈렸다. 새로운 전환 시대에서 문명의 척도는 ‘삶·생명, 평화, 박애’라는 가치가 종교적 사회 운동에서 태동하였고, 종교적 가치와 끈이 잘 연결된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한다. 새로운 전환의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탈종교, 비종교라고 작가가 지속적으로 주장하지만 작가의 결론은 결국 종교로 귀결되고 있는 순환론적 오류에 빠져 있다는 생각도 들기도 했다. 동학 계열의 민족종교의 논리가 스스로는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주장과 너무나 유사하며, 기독교, 천주교, 불교의 교리에 해밝은 것도 너무나 닮았고, 이러한 세계적 종교는 하나로 통하고 연결된다는 주장도 흡사하다. 물론 동학의 교리와 정신을 더 높게 사고, 현대에서도 이러한 동학의 정신을 분명 계승해야 하는 것은 맞다. 동학의 숭고한 정신과 교리를 이어받아 생명, 평화, 박애라는 가치를 널리 퍼뜨리고 동학운동에서와 같이 포접 활동과 유사한 사회 협동조합도 분명 긍정적인 요소가 아주 많고 사회 변혁의 한 주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집도 한살림조합원의 집이고, 각종 반찬과 과일을 한살림에서 조달하고 있다.
의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는 공감하지만 이러한 의식의 전환은 결국 체제의 전환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 비약이고 이분법적이고 너무 단계론적 접근인 것인가? 사회 전반적으로 협동조합 열풍이 불지도 않고 있으며, 귀농귀촌 인구가 이농 인구를 넘어서고, 무엇보다 모든 계층을 망라하여 일어나는 힐링 신드롬이 있다고 체제 전환의 신호탄이라고 보기에는 작가의 너무 때 이른 상황 분석이 아닌가 한다. 겨울동안 얼어붙어 있던 대지에 마치 너무 이른 봄날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보고 작가는 조급하게 아니 너무나 많은 갈증과 열망으로 진짜 봄 기운을 받은 소생(蘇生)을 보고 싶어서 눈에 그렇게 아지랑이가 보이는 것은 아닌지 한다. 물론 우주의 긴 시간의 차원에서 보면 자본주의 위기가 시작되었다고는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자본의 권력이 너무나 강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화폐의 지배는 맹위를 떨치고 있고, 자본주의 생활양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산업문명을 제패한 자본주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나, 새로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후의 가치와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는 작가의 순수한 주장처럼 정말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아니면 대천재가 나타나 새로운 전환 시대의 논리가 필요하다고 작가처럼 열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초라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한국의 정치 현실이 초라하고 국민들의 의식 수준을 그렇게 만들고 조작하고 조롱하는 것이 초라하지만, 긴 우주의 시간으로 봤을 때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도 무작정 낙관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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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유수 2015-04-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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