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1

조현 이남곡 인터뷰 6


'있는 그대로 본다'(여실지견)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이남곡 #공자 #논어를 연찬하다

조현TV휴심정
600 views  Dec 3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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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공자는 아는 것을 안다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어, 이제 그게 사실 많은 사람들이에
공자에 대해서 그 이야기할 때 지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아, 대부분
사람들이
안다고 하는 것하고 모른다고 하는
것을 이렇게 정확하게 그걸 잘
몰라요. 어, 뭐 실제로는 모르는데
안다고 생각하는 또 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
어. 어 근데
보통은 이제이 말을 사람들이 막 제일
많이 이야기를 해. 아까 이야기 뭐라
그러죠? 안다고 하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른다 모른다고 하는게 진짜라는
거다.
자기 자신에 대한 소위 메타인지라
그러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거지.
자기 자신을 아는 거예요.이 이게
모르는 것인지 아는 것인지 대한게
돼야 이걸 안다고 하는데
나는이이 대부분 사람들이이 말을
가지고 공자의 어떤 지에 대한 태도를
말해. 라는 그거보다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흘러 넘어가는
무지
그 그 문장이이 문장보다 훨씬 더
나는 공자의 그 인식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네.
어, 안다고 하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른다고 모른다고 한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이다 하는 거는
어 거짓된 어떤 허위에 또는 왜곡된
어떤 지혜에 대한 판단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어 사람은 누구도 누구도
사실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것
이것을 자각하는 것이 사실은 예
지혜 시작이다. 참된이다. 그리고
그게 바탕이 됐을 때 진정한 호학
배우고 싶어지는 거예요. 예.
내가 안다고 생각하면 배우고 싶어지질
않죠. 내가 아는 누가 다른 사람
이야기하면 그거 걸리죠. 오히려
내가 아는거 틀리면
그 그런게 없어지는 상태
그가 지혜 출발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 예.
그러니까 우리 이제 이나욱 선생님도
상당히 초기에 이제 불교적인 관점도
그러면서 이제 공제를 탐구했기 때문에
무지의 자각에 대해서 어떤 불교적인
관점과에
굉장히 이제 회통을 시킨 측면이 많이
이제 관점이 등장하는데
제가 보기엔 어떻게 보면은 이제
부따의 관점에서는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일체는 승산 선사가 얘기했듯이
오직 모를 뿐이고 어 우리가 실제를
보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자신의 어떤 감각 신호를
통해서만 이제 간접적으로 우리가 우리
모니터에 뜬 다큐멘타리가 유교에 대한
다큐멘터리 62 자체가 아니고 어떤
PD의 각색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유기한 다큐를 보듯이 모니터를 통해서
우리가 뇌의 각색과 연출을 통해서
우리가 편집된에
것을 자각하기 때문에 그게 팩트
사실이 아니고 실제가 아닌
상이 상
상이다. 상이다. 그게 이제 부다의
관점이고 그렇지만 공자는 제가
보기에는 이제
그렇다면은 이제 완전히 붙다 관점과
똑같다면은 아예 일체 우리가 어떤
안다고 고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했다는
것은 이제 공작께서는 굉장히 현실을
중시하고 실사 수식으로 이미 우리가
이제 무지의 바탕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공자는 우리가 현실적인
관점에서 현실적인 삶에서 에서 서로
의견이 다를 경우에 더 소통이 될 수
있도록 더 겸하게 실사 구지적으로
사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발을 딛고
사는 현실의 관점에서 그것을 풀어낸
것이 아닌가?
이제 조선생 그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 같은데
그런 면도 있어요. 그런 면도 있는데
어 무지를 자각한 상태가
모든 지혜 참된 지혜에 바탕이 된다고
하는 거는
나는 석가나 공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다름이 없어요. 어 다만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아이
뭔가 그 공자가 현실에 발을 딛고서
있어서 여러 가지 그 점이 내가
공자하고 통하는 점이에요.
예.
어 수행 따로
일상적인 삶 따로 있는게 아니고 이게
일치돼. 근데 요건 보통 많이 이들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공자한테는
정치 경제 현상 사회 현상과 자기를
변화시키는 어떤 수행이란 말 공장
별로 안 수기라 그래. 투기 수기라
하는데
그것이 하 이렇게 하나가 돼 있어요.
그래서 보통 사람들이 어 공자
이야기할 때는 약점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면 공자는 말이지 수기를
이야기하는데 구체적인 수행 방법이
없지 않느냐 천만의 말씀이에요.
공자는 배우는 거 호학 그 자체가
수행이에요. 그다음에 모든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무적야 무막야
의지이라는 거예요. 이것이다라고 또는
이것이 아니다라고 단정하지 않고 오직
의에 따를 뿐이다하는 그 자체가
수행에
그다음에 화이부도 그 자체가 수행이에
저 사람을 나하고 다른 사람을 말하지
나한테 일치시키려고 하 하는 걸 하지
않는 거 그 자체가 수행이에 그러니까
되테면 공자한테 수행 방법이 없는게
아니고 수행이 바로 현실의
삶 정치 경제
그런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게 이제
공장한테 이제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보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아까 아는
걸 알 아는 걸 하고 모르는 걸
모르는 걸 아는 걸 하는 거는 이제
그 아까 조선생은 그거를대 중요하게
평가했는데 그건 마찬가지
공자가 제일 저 사랑했던 제자가
아내인데 아내를 하나님 모두를 잡아서
사람들은 이야기할 때
불 이과 불천노라는 이야기를래요.
잘못을 범할 수 있고 화가 나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출발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뭐 화가
나지 않는 상태라든지 또는 잘못이
없는 무어 위에 그런 걸 상 전혀
상정하잖아요.
예. 불 이과 불천인데 요것도
사람들이 보는 사람마다 좀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불이가라는게 두 번
잘못을 범하지 않는다는 이야긴데
한 번 범한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않는다라고 보통 많이 그렇게 봅니다.
내 나한테 그렇게 다가오지 않고
그런도 있지만은
잘못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게 두 번
잘못하는 거예. 불과라고 하는 두 번
잘못 보지 않는다는 자기가 잘못했으면
바로 잘못을
알아차리는 거 잘못을 알고 누가
잘못했다고 지적을 하면 받아들인 거예
그래서 그다음에 뭐가 뭐 하느냐니까
과즉 물탄계야
잘못이 있으면 바로 기탄없이 바로
고친다 이게 그게 돼 그게 그게 되는
거예요.
불천노도 마찬가지. 불천노도 한강에서
뺨 맞고 아니 한강에서 뺨 맞는게
아니고
한강이 아주 눈 그다음에 사람한테 좀
이렇게 화나면 그 강아지를 찾다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불처돌 근데 사실은
어 그런 면도 있겠지만 나는 2차
화살을 맞지 않는다는 거.
그렇죠.
2차 화살. 그러니까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요.
이게 2차 화살이
그러니까 한 번 화가 났는데 그게
빌미가 돼 가지고 또 생각할수록 더
화가나 이걸 안 한다. 그니까
사람의 어떤 불완전성이라는 걸
인정하는 바탕에서 제시를 하고 있
모델로 인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 조선생이 이야기한 그런 뭐 아는
걸 안다 그러고 모르는 걸 모른다는게
참된
그런 점에서 받아들여집니다.
사람들 들어가 있던 이런 관계 속에서
그러나
그보다 하나 더 나가는게 밑에 바탕이
있는 거예요.
예. 예예.
그데 보통 말할 때
특히 불교에 또 뭐 상당하 좀 이렇게
스님들 이해하다 보면
있는 그대로를 봐라 이런 말을 해.
네.이
말이 사실은 아이
모순되는 말입니다. 있는 그대로 봐라
하는 거는 멸실
그 말은 이해는 돼. 있는 것을
바라는 건 당신의 어떤 주관이나 예
당신의 어떤 이해 관계나 당신의 어떤
그런 어 사고 방식 아 그 그런 걸
떠나서 객관적으로
사물을 봐라. 실차 구시해라 하는데
근데 사실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어요. 사람은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없다는데
출발해야 돼. 예예. 그 보통 있는
그대로 보자 하는 말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대답의 비과학적인 말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출발해 예
그것이 무지의 자각예 아주 정확하신
말씀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부다의 어떤 관점으로 보면은 우리가
이제 무심이라고 하는데 뭐 징오라든가
우울이라든가 모든 이렇게 마음의
갈등이라든가 적이라든가 이런
애착이라든가 이런 것도 근본으로
보면은 무심 뭐 고통이할 것도 없고
우리가 생사도 볼 리 없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은 실은 그보다도 고통을
굉장히 중요한네 가지 진리 중에
하나로 출발해는데 고통이라 할 것이
없다 그러면 수행도 필요 없고
깨달음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근데
하여튼 현실을 인정하자. 그래서 저는
이제 무심 근본 당처에서는
무심이지만은 저는 이제이 유튜브
이름도 휴심인데 휴심인데 우리가
현실의 고통 현실에 지금 누군가가
분리을 당하고 폭행을 당했다. 뭐
성폭행을 당하고 무슨 아픔을 당했다.
그러면 이미 일어난 것을 한 마음을
쉬는 것도 중요한 것이 원래야 고통은
없는 거야. 음.
이렇게 하면 원래 지금 암한자가 암
걸려가지고 죽겠는데
원래
암도 없고 원래 생사도 없는 거야.
이제 이렇게 얘기하는 것과 근기에
따라서 붙다조차도 두 번째 화살을
맞지 말라는 또 설교를 하잖아요.
무심을 얘기함과 동시에
또 공자님께서도
이제
불천노
그렇죠. 불촌노라고.
화가 원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이제 화를 옮기지 않는 것 그 안의
경만해도 이건 거의 이제 우리가
성인으로 봐 주는 거죠. 그게 제가
보기에는 훨씬 더 인간적이고 현실의
땅을 딛고 있는 말씀이고 가르침이다.
이렇게 이제 왔는 것이죠. 원래 화가
없다. 원래 우울이 없다. 이런
거보다는 이렇게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때 한 생각을 딱 놓고 휴심하고
이것이 굉장히이 자세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렇게 이제에 보는
것이죠.
공자는 괴력 난신을 말하지 않았다고
그러는데 왜 그랬습니까?
그게 사실은이 공자의 가장 큰
특징이에요. 그리고 내가 볼 때는
21세기에 종교 혁명을
하는데 아 가장 중요한 어떤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괴라고 하는 건
이제 괴의함 이적이에요. 소위
말하면이 그여
미러클 미러클 기적
기적하고 좀 다를나 하여튼
과학적이거나 함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
음이
신비한 현상들 이적들
이적들 예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근데 보통 종교들은요 이적에 바탕
그런 걸로 현데 거기 그거 그거
그렇다고 이럴 테면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를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요게
아주 중요한테는
그런 세계예요.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는 부정하거나
그러질 않 그 미지의 세계로 놔두는
거지.
그게 바로 아는 걸 알다 그 뭐 그까
대부분 사실은이 허구의 허위에 바탕을
둔 신념책이라는 거는 모르는 걸
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고. 이제 그게
아까 이야기한 그 이야기 핵심이에요.
아는 걸 안다고 하고 모르는 걸
모른다 하는
괴한 걸 이야기하잖아요.
그다음에 역력은 폭력입니다. 힘.
힘을게 폭력. 그니까 철저한
평화주의자예요. 공자는. 음.
그다음에 란이야. 란 이게 아주
중요한 개념인데 란. 난을 예전에 그
공자에 대해서 대단히 수구적인 사
사람 반동적인 사람이다 하는 거.
나를
부정해. 예. 나를 이렇게 안 돼.
아 아직 어 소위 장난이라 해서 자금
만들 작정이 난 나는 만들면 안 되는
근데
어 나는 그래서 그 요번 책에서도
아마 그걸 하나 썼을 거예요. 난을
넘어 혁명으로라는 게
그까 공한테는 난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어 들어 있는 그런 창이
아니야.
그다음에 신도 마찬가지.음 신에
대해서도
어 이게 모르는 세계 미지 세계를
놔두는 거지. 그래서 그거를 마침 뭐
형태화시킨다든지 막 의인화 해 가지고
하는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는요네
가지 요소가 사실은 어 21세기 특히
문명 전환과 관련해서 종교의 역할
나는 새로운 어떤 종교의 어떤 나는
그 뭐 조금 말을 좀 거칠게 하면
종교의 혁명이 필요한 시대다 이렇게
생각하는데에
그런데 바로 괴력 난심 같은 거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은 공자의
정신이랄랄랄할까 정신 살렸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입니다. 예.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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