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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2018. 1. 28. — 카마다 토지 : [고사기]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일본서기]를 읽으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테마가 되고 ...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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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4. —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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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1)
by소걸음Jan 24. 2018
개벽신문 제67호, 2017.9
대담 :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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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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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화에 앞서
(1) 영성으로 여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
카마다 토지 교수는 1951년에 토쿠시마현(德島県)에서 태어난 탁월한 신도학자(神道學者)이자 수행자이자 시인이다. 내가 아는 그의 책만 해도 25권에 이르고, 그가 쓴 논문과 수필 그리고 칼럼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는 철저한 수도·수행·수련을 쌓아서 신도적(神道的) 영성 인간의 길을 일관되게 걸어온 인물이다. 종교적·문화적 활동도 활발하고 광범위하여, 신도(神道) 노래를 작곡·작사·연주하고 직접 노래까지 부른다. 그가 애용하는 자연악기 - 특히 돌피리(石笛) - 에 혼을 담아서 부는 신묘한 음령(音靈)은 심신혼(心身魂)에 깊게 울려 퍼진다. 영화도 제작하였는데 거기에는 ‘카마다혼’(鎌田魂)이라고 할만한 것이 용해되어 있다.
카마다 교수의 신도학에는 물학(物學)·심학(心學)·기학(技學)·영학(靈學)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시류와 상황에 의해 좀더 강조·특화되는 변주는 있지만-. 그것은 김태창 선생의 한학1에 물학(物學=자연미학)·심학(心學=도덕리학)·실학(實學=실언실행학實言實行學)·영학(靈學=활명신생학活命新生學)이 상극·상화(相和)·상생적으로 연동하고 있는 것과 깊게 공명한다. 그래서 이 대화는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기보다는 혼과 혼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영성의 철학대화가 되리라 기대된다.
이번 대화는 일본적 영성의 카마다 토지적인 체인과 한적 영성의 김태창적 체득이 그 사이에서 야마모토 쿄시적 직각(直覺)을 통해서 어우러진, 새로운 차원을 열기 위한 진지한 시도이다. 전지구적·전인류적으로 보편타당한 것을 만들어내기 직전의 일본인과 한인(韓人)의 만남에서 생성되는 함께 공공하는 영성의 철학 대화이다.
무엇보다도 일본인과 한인이 영혼의 식민지화·영토화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영혼의 탈식민지화’를 실현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영성의 작용에 주목했다는 점이 이번 대화의 가장 큰 의의라고 생각한다. 그 작용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일본인과 한인이 근원적 생명력을 개체생명의 내부에 내폐(內閉)시키는 것(物)이 아니라, 개체생명과 개체생명의 사이·만남·어우러짐에서 드러나는 영적인 운동과 소통 그리고 변화를 창발·촉진·진화시키는 일(事)을 말한다.
(2) 영성과 마주하는 것의 곤란함과 진지함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 영성(스피리츄얼리티)은 어려운 문제이다. 마음도 충분히 가시화될 수 없지만 영(靈)이나 영성은 그 이상으로 가시화될 수 없고 양화될 수 없으며 측정될 수 없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의식을 그쪽으로 향하게 하거나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경우에는 직관이나 상상력이나 추측이나 비유를 구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근대 신도영학(神道靈學)을 기초지운 혼다 치카아츠(本田親徳. 1822-1889)는 “영으로 영을 대한다(以靈對靈)”고 했는데, “뇌로 영을 대하”거나(以腦對靈) “물리학으로 영을 대하”는 것에는 방법론적으로 대상론적으로 커다란 한계가 있다는 뜻이리라. 이전에 “카마다 토지의 스피리츄얼리티 5원칙”을 만들어, ‘일본 스피리츄얼 케어워커2 협회’의 홈페이지 등에 공개한 적이 있다:
1.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3요소는 ①전체성(통째) ②근원성(뿌리) ③심화·변용(깊어짐)이다.
2.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삶의 나침판’(생명의 콤파스)이자 ‘도(Way)’이다.
3. 스피리츄얼리티(영성)는 ‘혼자’이면서 ‘함께 가는 두 사람[同行二人]’이다.
4. 스피리츄얼 케어는 ‘사이’에 있는 작용을 감지하는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의 임기응변적 발동이다.
5. 스피리츄얼 케어는 ‘생태지(生態智=자연에 대한 깊고도 신중한 공포와 외경에 기초하여 생활 속에서의 예민한 관찰과 경험으로 단련된, 자연과 인공의 지속가능한 창조적 균형유지 시스템의 기법과 지혜)’에 의해 연마된다.
이번 대화에서도 이와 같은 내 나름대로의 ‘영성’론을 피력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차이가 부각되었다. 그 차이 중의 하나는 수평축과 수직축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타계관(他界觀)의 핵심에는 ‘상세’(常世)3나 ‘니라이카나이’4와 같은 수평적인 바다 저편에 혼이나 신이나 조상의 혼령[祖靈]이 사는 세계가 상정되고 있다. 그에 반해 한인의 타계관의 중심에는 ‘하늘’이 있다. 하늘로부터의 수직적인 시선과 바다 저편으로부터의 수평적인 시선에 의해 생기는 마음과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이웃나라라고 해도 당연히 공통점과 함께 커다란 차이도 있다. 그 차이가 풍토와 역사적 경험에도 기초하고 있음을 새삼 재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차이를 염두에 두면서 ‘보편적 영성·지구적 영성’에 이르는 길을 ‘스사노오적 영성’의 발로·발현으로서 탐구해 나가고 싶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김태창 선생과 야마모토 쿄시 편집장에게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드리고 싶다.
2. 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 :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의 만남
야마모토 쿄시(山本恭司 [미래공창신문] 편집장) : 카마다 토지 선생님의 [강좌 스피리츄얼학(전7권)]5의 제3권 [스피리츄얼리티와 평화]6가 이번에 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겠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란 무엇인가요?
카마다 토지(鎌田東二. 교토대 교수) : 저는 ‘스피리츄얼리티’(spirituality)와 ‘영성’(靈性)이라는 말을 번역어로 서로 연결시키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스피리츄얼리티=영성에는 크게 네 가지 특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근원성’입니다. 자기 자신을 근원에서부터 성립시킨 인간존재의 가장 근간에 있는 것입니다. 가장 핵심이자 뿌리입니다.
둘째는 ‘전체성’입니다. ‘전체성’을 ‘토털리티’(totality)나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요컨대 우주의 부분이 아니라 우주 전체로, 보편성과 관련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는 ‘변용성’입니다. 심화, 성숙해 나가는 것입니다. ‘변용’이란 한꺼풀, 두꺼풀 벗겨서 본질이 점점 드러나는 것을 말합니다. 가령 세 살짜리 아이가 내장하고 있던 근원성과 전체성은 역사와 경험이 가속되고 변용되어 80세가 되었을 때에는 깊이를 더해 가지요.
넷째는 나를 나이게 하는 ‘방향성’입니다. 저는 그것을 ‘생명의 콤파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영성’ 개념의 용례에 대해서는 카마다 선생님이 [신도의 스피리츄얼리티]7에 수록된 <‘일본적 영성’의 고찰>에서 스즈키 다이세츠(鈴木大拙. 1870-1966)의 논의를 인용해 가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김태창 선생님은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시는지요?
김태창(동양포럼 주간) : 제가 체험·경험·증험·효험의 과정을 겪으면서 체득한 것을 말씀드리면, 스피리츄얼리티=영성은 ‘개념’이기보다는 실동하는 ‘작용’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첫 번째 특징은 근원적 개신(開新) 작용입니다. ‘개신’이란 ‘새로운 차원·지평·세계를 연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활명신생’(活命新生) 작용입니다. 천명(天命)으로서의 생명, 즉 천지의 생명활동=우주생명=명(命)을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개체생명=생(生)을 새롭게 하는(新·改)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안(内)과 밖(外)을 그 사이(中·間)에서 양쪽을 양립양전(兩立兩全)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작용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생명 그 자체이게 하는 내재적 생명력으로서의 혼=넋과 그 외재적 타자의 동류(同類)의 생명력=혼=넋을 그 사이에서 맺고·잇고·살리는 작용입니다. 혼=넋은 개체내유(個体内有)의 생명력이고, 영=얼은 개체(생명)와 개체(생명) 사이에서 양쪽을 안고 넘어서는 생명력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민독창(爲民獨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여민공창(與民共創)의 작용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일본적 영성], 전후인 1946년에 [영성적 일본의 건설], 1947년에 [일본의 영성화]라는 영성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3부작을 가장 열정적으로 언급해 왔고 또 주목해 온 일본인이 바로 카마다 선생님이십니다.
종전 전후에 '영성 3부작'을 저술한 스즈키 다이세츠
카마다 토지 :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적 영성을 파토스(情動)적인 방면으로 드러낸 것이 정토종이고, 지적 방면으로 발현시킨 것이 선불교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에 반해 신도는 일본적 영성이 미숙하고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8의 신도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종교적인 깊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히라타신학(平田神學)은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국학자(國學者)의 신도 이데올로기의 원류이자 원흉이라고 대단히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히라타 아츠타네의 정치사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읽고 있었습니다만, 히 라타 아츠타네 속에 들어있는 오오모토교(大本教) 등으로 이어지는 영학적(靈學的)·영성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아츠타네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학적(靈學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론은 편협하고 부분적이며 일면적입니다. 히라다 아츠타네에 대한 스즈키다이세츠의 이해와 평가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인의 재기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부활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영성 3 부작을 발표한 그는 불교신자나 선수행자라는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우국지사의 입장에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미래공창(未来共創)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절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깊은 공명을 느꼈습니다.
저의 관심은,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성을 접근하는데 있어 일본국학(日本國學)이나 일본영학(日本靈學)의 의미파악 - 내부생명이나 생명의 내적 체험 - 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근원적인 생명의 개신력(開新力)이라고 하는 한영학(한靈學)의 작용과의 ‘상관연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지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카마쿠라불교(鎌倉佛敎)에서 일본적 영성의 시동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로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빌려서 일본화하여 사용했다는 점에 일본영학(日本靈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성적 일본’이란 생명적 개신력(開新力)에 의해 소생하는 일본이고, ‘일본의 영성화’는 일본인의 혼이 무위신앙(武威信仰=迷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자 평화일본의 건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에서 생각해 보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이 아닌 ‘영성’을 굳이 신생일본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성’이라는 말에다 근본적 개신력으로서의 역동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가 그 개신적 생명력의 약동에 눈을 떠서 그것을 체인(體認)·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소생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와 일체화된 2,600년 간의 신도국가(神道國家)가 망했다고 - .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왜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가 패전하기 1년 전에 쓴 [일본적 영성]을 카마다 토지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스즈키 다이세츠: 신도국가를 전면 부정, 카마다 토지: 자연생성력과 대지성을 평가
카마다 토지 :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자연’ 개념에는 쿠카이(空海. 774~835)9도 배운 자연지(自然智)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또 ‘스스로’와 ‘저절로’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일본신화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섬이 소금이 저절로 응결되어 생긴 오노고로섬(淡路島)입니다. 그리고 건국신화에서는 남신(男神)인 이자나기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가 성적 교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일본의 섬들(大八洲=오오야시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스히’(産靈)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입니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자연관이나 생명관 속에 생태지(生態智)로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대지를 영성의 근거로 가장 소중히 여겨 온 일본인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대지를 빼앗은 것은 실로 ‘절대모순’이군요. 게다가 그들의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식의 문화파괴에 손을 더럽히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 현인신(現人神)으로 군림하는 일본이라는 ‘자기’에 한반도 사람들을 ‘동일’화시키는(內鮮一體) 것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절대모순은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에게는 사상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의 국가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근대일본의 신도에는 과연 ‘영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일본신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카마다 토지 :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도는 생태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입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의 신도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국가관리적인 ‘인위신도’(人爲神道)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화하고 폭설을 내리고 태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다양한 자연의 형성력이나 생성력이나 무스히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삼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신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신을 제사지내 왔습니다.
제 연구실에는 오오모토교(大本敎)의 교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1836~1918)10의 [친필(お筆先)]이 있습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11은 귀문(鬼門)의 신인데, 이 친필에는 용문(龍門)의 음악공주(音姫), 비의 신, 바람의 신, 스와(諏訪)12의 신, 폭풍(荒れ)의 신, 지진의 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시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신의 원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국가신도’와는 다릅니다. 국가관리의 신도는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강한 국민국가,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견고하고 부국강병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된 문제의식은 종래의 신도적인 신성(神性)이나 불교적인 불성(佛性)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었다고 독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닐까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신도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이른바 기성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전쟁과 억압과 비리의 구(舊)일본의 파멸 위에 평화와 자유와 진리가 충만한 신(新)일본의 소생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이방인인 저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야마모토 쿄시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적 영성’의 ‘일본적’이라는 말입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는 ‘장소적 논리’가 있고, 그것은 결국 ‘대지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김태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한인(韓人)의 독자적인 사상철학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체감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먼저 건전하고 상생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본적’ 영성과의 대비로 ‘한(桓·檀·韓)적’ 영성의 특성을 저 나름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저에는 탈(脫)장소·초(超)장소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상관연동태’(天地相關連動態)이자 ‘천연성’(天然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다 선생님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대지성=자연성은 저의 정직한 감각에서 보면 지연성(地然性)=토지(土地)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과 같은 정태(情態)입니다. 반면에 제가 체감하고 있는 천지상관연동태=천연성은 천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동태(動態)입니다. 그래서 지연(地然)으로서의 자연과 천연(天然)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저를 포함한 일본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군요.
김태창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한인(韓人)에는 일본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상·철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로서의 한인을 외부에 실재하는 별도의 주체로 정당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폐된 근대한일사, ‘청일전쟁’에서 동학군 대량학살
야마모토 쿄시 : 저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시형의 행동과 사상철학을 앎으로써 한적 영성의 심오함과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깜짝 놀랄 만큼 가치있는 학문과 미래개신(開新)을 향한 공동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한살림운동 특집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청일전쟁과 한반도 식민지화를 진행한 진상을 99.9% 이상의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의 통치자에 의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한반도에 대해서 왕궁침탈과 동학농민군 섬멸이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그 진상은 [미래공창신문]에 자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언젠가 교과서의 근대 일본사가 수정되겠지요.
먼저 일본인 자신이 역사의 진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에도시대의 일본인이 조선통신사를 대단히 존경하며 그 고도의 지식을 배웠듯이, 앞으로의 일본인도 ‘이질적인 타자’인 한인(韓人)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두 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개신(開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의 하나가 되는 책으로 저는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 사람들, 2014)13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그렇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은 25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사태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쿄시 : 실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는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도 이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다이세츠가 영성삼부작에서 ‘영성’의 내실로서 다룬 것은 여래(如来)의 대비(大悲)이자 보살의 서원(誓願)입니다. 즉 스즈키 다이세츠는 어디까지나 대승불교에서 영성의 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대비’(大悲)나 ‘자비’(慈悲)나 ‘반야의 지혜’나 ‘불성’이나 ‘법성’(法性)과 같은 불교용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경애체인지(境涯體認知)로서 ‘영성’(=무분별지)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한 데에서 저는 국제인(國際人) 다이세츠의 탈일본화된 미래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카마다 선생님께서 히라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주로 인위적인 국가신도와는 다른 자연신도의 문맥에서 사용하였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마다 토지 : 히라타 아츠타네의 생각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흐름은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신도적인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도가 주자학과 하나가 되어 국가신학(國家神學)을 형성하고, 그것이 메이지헌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등으로 계승되어 가는 영학(靈學)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1875~1962)나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로 계승되어 가는 민속학과 같은, 보다 민간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의 신관(神觀)과 결부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히라타 아츠타네 내부에는 이른바 국가성과 민중성, 국가신도와 민중신도의 양극(兩極)이 있었던 것이지요.
야마모토 쿄시 :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는 원래 영성은 없다는 것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장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적 영성’을 굳이 히라타아츠타네 식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카마다 토지 : 그것은 ‘일본인의 혼의 행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면은 ‘야마토혼(大和魂)이나 ’야마토정신(大和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신도적인 문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츠타네가 사사(師事)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시키지마(敷島)의 야마토정신(大和心)을 누가 물으면 아침해에 비쳐지는 산벚나무꽃"이라고 노래했고, 그 전의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1697~1769) 등은 [만요슈(万葉集)]의 정신을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히라타 아츠타네에 이르면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에 이미 원형적인 신화(原神話)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일본적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기(記紀)]14나 축문(祝詞)15은 그런 일본적 영성을 부분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라고나 할까, 보다 심층에 있는 근원성이나 보편성을 ‘영성’에서 찾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즈모(出雲)의 신(神)이 지니고 있는 힘, 즉 ‘카쿠리요’(幽世=저세상)의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야마토정신이 완성되어 안심하기 위해서는 사후의 생존까지를 포함한 진혼(鎭魂)을 말하고, 그 혼의 행방을 내다본 상태에서 영성이라는 존재를 실감하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라타신학(平田神學),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로 흘러들어간 것은 그런 혼의 세계에 대한 체험·체현·체득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영학(靈學)의 방향이 히라타신학 속에 있는영성적 방향을 계승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피리츄얼리티의 한 요소로 카마다 선생님은 우주전체의 보편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드셨습니다. 한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7년에 쓴 [일본의 영성화]에서 기기신화(記紀神話)의 우주생성 이야기에 대해 “보통의 논리 형성 및 과학적 사상 위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비합리성”, “원시민족의 망상담(妄想譚)”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영성이 일본의 신도보다 도리로 보나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나 뛰어나다는 전거로, 가령 <보현보살의 십원(十願)>을 의역(意訳)하여 “제불여래(諸佛如来)의 본체는 대비심(大悲心)이고, 이 대비(大悲)는 중생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숭고한 뜻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단지 모든 생명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도 강도 돌도 흙도 별도 눈도 모두 일체중생이다. (중략) 비에도 꽃에도 산에도 구름에도 이 자비심을 비춰주는 것이 있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러한 중생을 상대로 모든 공덕과 모든 혼을 거기로 회향(回向)하고, 그것에 따라서 함께 아뇩다라삼막삼보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은 무궁함을 지니고 있다, (중략) 제불여래는 하나같이 이 대비(大悲)를 체(體)로 하고 있다. 이 대비체(大悲體)가 곧 영성적 생활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日本の靈性化], 法蔵館, 1947)
지금까지의 카마다 선생님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동학사상이 각성”
김태창 : 먼저 카마다 선생이 국가신도 혹은 인위신도(人爲神道)와는 다른 자연신도(自然神道)를 강조하고, 그 맥락에서 영성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신 점에 저는 공통인식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국학(國學)은 그것이 일본에서이건 한국에서이건, 내부결속을 위해서는 순기능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이나 문화의 벽을 넘어서 국가간·민족간·문화간의 대화·공동(共働)·개신(開新)을 실천하는 데에는 역기능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적’(韓的)이나 ‘한인’(韓人) 또는 ‘한민’(韓民)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하나의 차원에 고정·폐쇄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인을 일본인이게 하는 원상(原像)으로서의 영성을 의미깊게 논구하기 위해서 신도적(神道的)·불교적 배경을 명시하려고 하는 카마다 선생과 야마모토 편집장의 의견을 성의를 담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확인한 상태에서 굳이 ‘한적 영성’(=한인적·한민적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체험적 실감을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이지안지’(以地安地=땅으로 땅을 편안하게 한다)적 생명력이고, ‘한적 영성’은 ‘이천벽지’(以天闢地=하늘로 땅을 연다)적 생명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무한한 포용성과 평화성과 평등성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한인(韓人)의 역사적 집합체험, 그리고 저의 개인적 체험의 핵심에는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대지를 빼앗기고,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토대로서의 토지를 뿌리째 뽑힌 “저주받은 대지의 백성”(Frantz Omar Fanon. 1925~1961)의 무의식이, ‘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한(恨)’의 의식과 무의식의 형태로, 삶 속 가장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습니다. 대지야말로 실로 전란과 살육과 억압과 불평 등과 비리비도(非理非道)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대지박탈의 실체험이 적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야마모토 쿄시 :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본인은 대지를 상실한 난민으로 세계에 흩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은 싫더라도 대지를 빼앗긴 백성의 비참함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의 일본은 일찍부터 원전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7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국자멸의 길이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생각있는 동아시아의 이웃나라 사람들과 연계해서 생명소생·활명(活命)연대 운동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김태창 : ‘한적 영성’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이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정토교(浄土教), 특히 신란(親鸞) 등과 선불교에서 그 지적(知的)·정적(情的) 자각의 계기를 확인하는 것과 대비해서 보면, 한적 영성은 최제우나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거기에서 촉발된 민중/농민 운동/투쟁에 의해 확실히 자각·각성·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 다시개벽’(再開闢)적 영성이자 ‘시천주’(侍天主)적 영성이자 ‘내유신령(内有神霊) 외유기화(外有氣化) ’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석
1 ‘한학’의 ‘한’은 ‘한글’이나 ‘한겨레’ 또는 ‘한사상’이라고 할 때의 ‘한’을 말한다.
2 ケアワーカー : ‘care’와 ‘worker ’를 합쳐 만든 일본식 영어로 ‘개호복지사(介護福祉士)’의 다른 말이다. 노인이나 장애자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3 옛날에 바다 저편에 있다고 여겨졌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나라로, ‘토코요노 쿠니’(常世の国)라고도 한다.
4 아마미(奄美)나 오키나와(沖縄) 지방에서 믿어지고 있는 설화로, 바다 건너편이나 바다속 또는 땅속에 있는
낙토(樂土)를 말한다. 매년 신이 이곳에 찾아가서 풍년을 약속해 준다고 여겨지고 있다.
5 鎌田東二 編集『, 講座スピリチュアル学(全7巻)』(東京: 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4-2015)
6 鎌田東二 編集『,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と平和(講座 スピリチュアル学 第3巻)』(東京: 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5)
7 鎌田東二『, 神道のスピリチュアリティ』(東京: 作品社, 2003)
8 에도시대 후기의 국학자·신도가(神道家)·사상가·의사.
9 헤이안시대 초기의 승려로 일본 진언종(真言宗)의 창시자이다. 시호는 홍법대사(弘法大師). 804년에 사이쵸(最澄)와 함께 당나라에 가서 장안(長安)에 있는 청룡사(青龍寺)의 혜과(慧果)에게 배웠다. 806년에 귀국하여고야산(高野山) 금강봉사(金剛峰寺)를 세웠다.
10 처음에는 콘고교(金光教)의 포교소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892년(메이지 25년)에 갑자기 신이 들려 오오모토교를 창시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 신앙을 설파하였고『 친필』을 저술하였다.
11 ‘艮’(우시토라)는 동북쪽을 의미한다.
12 오늘날 ‘나가노현’(長野県)의 옛 지명.
13 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의 공저로 모시는사람들 출판사에서 2014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저는 中塚明·井上勝生·朴猛洙『, 東学農民戦争と日本 : もう一つの日清戦争』(高文硏, 2013)이다.
14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합쳐서 부르는 말.
15 신도에서 신에게 올리는 기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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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by소걸음Jan 28. 2018
[개벽신문] 제68호, 2017.10
대담 :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1회분 : https://brunch.co.kr/@sichunju/162
(지난 호-1회-에 이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세계
야마모토 쿄시 : 그럼 지금부터는 스즈키 다이세츠에서 벗어나서 카마다 선생님의 기기(記紀)신화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신화를 어떤 관점에서 읽으시는지요?
카마다 토지 : [고사기]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일본서기]를 읽으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습니다. [고사기]에서는 특히 이즈모신화(出雲神話)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보다 약간 앞서 편찬된 [이즈모국 풍토기(出雲国風土記)]에는 나라를 끌어당겼다는 ‘쿠니비키신화(国引き神話)’가 나옵니다. 한반도에서 호우키다이센(伯耆大山)1 등의 산에 밧줄을 걸고 모두가 힘을 합쳐 “쿠니코 쿠니코”(国よ来い来い=나라여 오라! 오라!)라며 잡아당겼다는 이즈모(出雲)지역 신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투쟁이나 제압에 의해 빼앗은 것이 아니라, 지금 식으로 말하면 자연스런 상태에서 대륙이동이 일어난 것을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는 한반도에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에는 머리카락을 자신의 태내(胎内) 속에 던져 버리고, 기의 나라(紀州)에 다양한 나무가 자라게 했다는 수목창조신화(樹木創造神話)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즈모신화(出雲神話)에서는 한반도와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의 관계가대단히 친근감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야마코토 쿄시 : 신(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 신라에는 귀중한 보물이 있으니까 복속시키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발단이 되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신라정벌을 했다는 기술이 [기기(記紀)]에 나옵니다. 이즈모(出雲) 신화는 그와 같이 힘을 배경으로 한 언향화평(言向和平)2이나 정벌복속(征伐服属)적인 야마토적 분위기와는 느낌을 달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쟁을 피한 오오쿠니누시(大國主) 황천의 나라의 대신(大神)으로
카마다 토지 : 예, 정복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야마토조정이 일본의 통치체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세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는 정벌·평정의 방향으로 나아갔고, 다른 하나는 ‘건국신’인 이즈모의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3가 자신들이 열심히 만든 그 나라를 ‘양보한다’는 독특한 표현으로 평화를 달성합니다.
저는 이 선양(禪讓) 문제를 [스피리츄얼리티와 평화]라는 책에서 <일본의 평화사상 - ‘선양’ 문제를 생각한다>4는 논문으로 다루었습니다. ‘선양(国譲り)’이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땀 흘려서 건설한 국토를 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가 어떻게 양보할 수 있었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그것은 본토결전(本土決戰)과 같은 형태로 싸워서 패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아예 회피한 것입니다.
선양의 조건은 (야마토 정권이)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를 창건하여 그 제사를 지내고,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大国主命)는 황천의 나라, 즉 저 세상(隠れ世)의 오오카미(大神)가 된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적 영성의 일종의 복잡한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천황가를 중심으로 한 신도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하게 존재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를 중심으로 한, 그 이전의 선주민족(先主民族)을 포함한 신들 혹은 인간들의 신도적 영성이 있습니다. 오오쿠니누시(大国主)도 물론 신이기 때문에 180 또는 181명의 다양한 신들을 낳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데구치나오(出口なお)적인 직관과 신관(神觀)이 되면, 귀문(鬼門)에 봉인되어 온 숨겨진 신 ‘ 동북의 금신’(艮の金神)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무수한 신들(八百万の神々)의 문제가 성립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범주로 말하면, 아마츠카미(天津神) 계통과 쿠니츠카미(国津神) 계통의 두 범주가 있는데, 이 쌍방이 화해함으로써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간 것이지요.
야마타노 오로치는 살아있다 나와라, 21세기의 스사노오!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보다는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大国主命)의 아버지 또는 조상이라고 말해지는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 쪽에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사노오노 미코토는 야마타노 오로치(八岐大蛇)5를 죽인 후에 쿠시나다공주와 결혼하여 이즈모국을 세우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구름이 겹겹이 피어난다는 이즈모국에 겹겹이 친 울타리처럼 구름이 피어오른다. 아내를 숨기려고 궁전에 겹겹이 담을 쳤지. 마치 그 겹겹이 친 울타리처럼.”(八雲立つ 出雲八
重垣 妻隠みに 八重垣作る その八重垣を)라고 노래했습니다. 행패를 부려 다카마노 하라(高天原)에서 추방된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일약 파사(破邪)의 영웅이 되어, 이즈모국에 평화와 노래의 문화를 가져다 준 것이지요.
카마다 토지 : 와카(和歌)나 거문고(琴)를 켜는 것과 같은 예능·예술적인 힘이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 것이지요. 신도적 영성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점에 있어서, 제 경우에는 쿠니츠카미(国津神)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신도적 영성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 왔습니다.
이세진궁(伊勢の神宮)이나 천황을 중심으로 한 영성이라고 하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나 신사본청(神社本庁)이 그 대표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표면적인 신도적 영성을 일본적 영성의 전체로 보기에는 역시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저에는 역시 유라시아와 미크로네시아6, 폴리네시아, 북미대륙이 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환태평양(Pan-Pacific)적 영성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도는 그런 유라시아·환태평양적 문화를 마치 교향악처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범지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한 번 기초로 삼아서 ‘신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저의 과제입니다.
김태창 : 카마다 선생의 말을 저 나름대로 이해하면서, 일본적 영성을 일차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삼차원 상관연동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여 그 특징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첫 번째 차원은 아마테라스로 대표되는 일본적 이성으로, 말하자면 좌안적(左眼的), 좌뇌적(左腦的) 이성인간의 원형입니다. 두 번째 차원은 츠키요미노 미코토(月読命)7인데, 이것은 일종의 일본적 감성으로, 우안적(右眼的)·우뇌적(右腦的) 감성인간의 원형입니다. 그다지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일본에는 이것도 있습니다.
세 번째 차원은 스사노오노 미코토로 대표되는 영성입니다. 이것이 일본적 영성인데, 호흡적(鼻息的)·개척적 영성인간의 원형입니다. 아마테라스와 츠키요미가 정주자적(定住者的)인 것과는 달리 스사노오는 천지왕래적(天地往来的)·이주자적(移住者的)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한일영성개신의 공진·공명·공감 가능성이 있는데, 아쉽게도 주류 일본사상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거의 거론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카마다 토지 : 재미있는 견해이군요. 스사노오는 유배된 왕,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이니까요.
김태창 :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추방되거나 욕을 먹거나 하는 것은, 일본은 기본적으로 다카마노 하라(高天原)의 차원에서는 이성지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성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영성은 곤란하지요. 그래서 거기에 그려지고 있는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모습도 굳이 말하자면 악인(惡人)입니다.
스사노오는 다카마노 하라에서는 장난꾸러기나 야쿠자 같은 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는 그것을 묘사하는 양식입니다. 즉 이성인간이나 감성인간이 압도하고 지배하는 곳에서는 영성인간은 굳이 말하자면 질서파괴자로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결국에는 배제·추방됩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일본에서는 영성인간에 대해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성인간과 감성인간으로부터 오해받거나 매도되어, 온갖 중상모략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위에도 괜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을 일본에 온 순간부터 줄곧 해 왔기 때문입니다.
카마다 토지 : 아, 그런가요?
김태창 : 겨우 최근에 들어서야 마침내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영성론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일본적 영성에 관한 관심에서 카마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낀 것은 사루타히코(猿田彦)8입니다. 쿠니츠카미(国津神)인 사루타히코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만, 제가 카마다 선생의 여러 묘사 속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길내기’(道開き)라는 말입니다. 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마다 토지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태창 : 하지만 그 ‘길내기’는 일본에서는 전혀 환영받지 못합니다. 기존의 길이 굳어진 곳에서 개개인이 별도의 길을 내면 곤란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카마다 토지 : 길이 만들어진 곳에 다시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길을 파괴하는 것이 되니까요.
김태창 : 일본적 ‘화(和)’를 깨트리는 악인 취급을 받게 되지요. 실은 저도 사루타 히코처럼 철학적 길내기를 시도했는데 오해와 비난의 집중공격을 적지않게 받았습니다.
카마다 토지 : 그런가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을 갖춘 영성인간 미래공창은 철학적 길내기에서
김태창 : ‘일본적 영성’은 통합지배적 영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압도하는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내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야말로 창발개신(創發開新)적 영성의 작용이고, 그 자각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적 영성’의 근원력·활명신생력(活命新生力)적 개신(開新)의 작용과 공진(共振)·공명(共鳴)·공동(共働)입니다. 한적 영성은 기본적으로 개천개지개인(開天開地開人)의 개신(開新)을 통해서 신천신지신인(新天新地新人)의 상관연동적 혁신을 실천하는 영도(靈道)·영통(靈通)·영변(靈變)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카마다 토지 : 신천지인(新天地人)인가요?
김태창 :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아우러지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길내기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항상 하나의 나라로 수렴되지 않고 적어도 세 나라로 나뉘어 있는 상태가 줄곧 이어져 왔습니다. 이것은 일본적 시각에서 보면 ‘분열상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적 영성의 측면에서 보면 견고한 일원 통합지배가 아닌 고차기능적인 유연한 다극공동상생(多極共働相生)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카마다 토지 : 도주제(道州制) 같은 지방분립자치인가요?
김태창 : 다른 말로 하면 일본적 영성에 공동일체화적(共同一體化的)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한적 영성은 다이공동화적(多異共働化的)인 역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차이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데서 종래의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이 서로 어긋나기만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적 전통에서 보면 한적 영성은 위험해 보이는데,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일본에서는 별로 선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하는 철학의 대화활동을 통해서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그렇다면 한적 영성은 “화이부동”(和而不同)적인 작용이고, 일본적 영성은 “동이불화”(同而不和)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태창 : 바꿔 말하면 일본적 영성에서는 뚜렷한 만물일체화적인 특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해도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요. 이에 반해 한적 영성에는 만물생생적인 특징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것을 상생적으로 살리는 작용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본교(日本敎)적 영성이 작용하고 한민사이에서는 상생상활적 영성이 작동하고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반인권주의국가로 후퇴
야마모토 쿄시 : 전후(戰後) 일본의 부흥은 동서대립의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일본인이 일치단결해서 경제를 부흥시켜 나갔다고 하는 일국만민(一國萬民)적인 강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은 세계사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고 겉돌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상징이 원자력발전소 정책이겠지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온 제도가 보장해 온 기성의 이익구조에 따를 뿐,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하는 의지도 사명도 느낄 수 없습니다. 정치와 매스컴이 구체제를 진정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 등에 자랑해 온 ‘법의 지배’라는 것의 편의주의가 오늘날의 헌법 해석 변경과 그것의 법제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나라’와 ‘지배층’만 있고 ‘사람’은 그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권감각의 결여상태가 헌법 위반의 법률제정에 의해 고정화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한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매일 밤 펼쳐지는 활기에 넘친 시민활동에 비하면, 일본의 도시는 생기 없는 정연한 질서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는 서로 감응하는 ‘사람’과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이후 군사정권에 압박받아온 한국이 1980년대에 민중의 궐기에 의해 획득한 ‘민주주의’는, 1860년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을 이은 것입니다. 일본군에 의해 섬멸된 동학농민군의 혼백이 역사의 표면에 용솟음친 것이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시작된 한국민주화입니다. 실로 피를 대가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견고합니다. 세계의 최첨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은 국회도 언론계도 매스컴도 활발하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이래로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과거의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을 그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의 귀환이나 중국이나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공허한 우월의식에 집착하는 풍경은 한심함을 넘어서 우스꽝스러울 정도입니다.
김태창 : 제가 왜 이 정도까지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을 대비적으로 제시·논의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한일간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라고 하는 통찰을, 지난 25년간 일본에 살면서 겪은 경험과 철학대화를 통해서 체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적 영성이 만들고자 하는 평화는 무위(武威)에 의한 평정동화(平定同化)입니다. 반면에 한적 영성이 생성하는 평화는 당사자 전원의 활발한 발언과 그 모순 대립에서 연유하는 불화·반감·원한의 해원상생적(解寃相生的) 유화해소(宥化解消)의 과정입니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인(韓人)들의 평화실현 과정이 어수선하고 시간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생각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적 평화건설 과정은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폭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무사적 영성” - 스즈키 다이세츠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 - 과 선비적(=文士的) 영성이 상반충돌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한일간의 공공하는 영성의 철학대화를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좌 스피리츄얼학(제3권)]에 <문명문화간 대화와 한일간 영성평화의 문제>라는 글에 담았습니다. 이것은 함께 공공하는 영성을 새밝힘하는 한일학자간 영성철학대화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마다 토지 : 찬성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요. 저는 아까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삼층적 영성의 이해방식에 찬성합니다. 거기에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고사기]의 서두에 왜 ‘삼’(三)의 조합이 저렇게 많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카와이 하야오(河合隼雄. 1928~2007)9 선생이 한가운데가 텅 빈 ‘중공구조’(中空構造)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중공구조가 역으로 일본인의 무책임체제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엄청난 사고를 일으켜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를 파악한다”거나 “헤아린다”거나 “이심전심”이라는 말처럼,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낌새를 파악해서 실행하는 문화는 실로 강력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 “굳이 말로 하지 않는 문화”에 제일 어울리지 못하고 울부짖고만 있다가 결국에는 노래를 부른 것이 스사노오였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평화를 희구한 신
야마모토 쿄시 : 이즈모국에 내려온 이후의 스사노오의 정상적인 태도와 다카마노 하라에서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비교해 보면 전혀 딴 사람 같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카마다 토지 : 스사노오의 난폭한 행동의 근본 원인은 어머니의 상실입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것이지요. 그의 슬픔과 아픔과 울분, 즉 영적인 아픔(spiritual pain)을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무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임무도 완수하지 못한 채 그냥 울고만 있는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렇다면 이 울기만 하는 이상한 울보라고 할 수 있는 스사노오가 어떤 영성적 세계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평화’에 대한 염원입니다. 즉 어머니도 자신들의 세계도 편안해지고 모두가 안전하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한 끝에, 이즈모에 내려와서 야마타노 오로치라는 괴물을 퇴치한 것이지요.
그 괴물이 자연재해인지 인적재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런 거대한 폭력이라고나 할까 폭압 같은 것을 막고, 그것을 없애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에 노래를 부르고, 자신들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안락하게 사는 길을 제시한 것이지요. 그것이 와카(和歌)의 도(道)입니다.
여기에 스사노오노적 영성의 한 형태가 나타나고, 이것이 오오쿠니누시(大国主)에게 전해집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천상의 거문고’(天の詔琴=아메노 노리고토)라고 불리는 거문고를 오오쿠니누시가 이어받은 점입니다.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평화의 길(道)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판 이무기는 ‘원자력마을’ 반생명적 경제기술관료체제
김태창 : 이전에 제가 동경대학에서 대화를 할 때에 청중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야마타노 오로치는 정말로 죽었는가?”라고, 일본인들이 깜짝 놀랄만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일본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적 시각에서 스사노오적 영성을 말할 때에 그 작용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적이 바로 야마타노 오로치인데, 이 야마타노 오로치는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기술관료체제’에 다름 아닙니다.
이 방대한 관료체제는 모든 인간의 생명―몸과 마음과 넋의 영위―을 통합·지배·관리하고 그 조직 자체의 권력과 이익을 일방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1 이후에 일본에 나타난 야마타노 오로치는 원자력마을입니다.
그것은 현대판 ‘햐쿠마타노 오로치(百岐大蛇)’(=백 갈래로 갈라져서 인간을 엄습하는 커다란 뱀)이지요. 그것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적인 이성이나 츠쿠요미노 미코토(月読命)의 감성으로는 맞설 수 없습니다. 스사노오적 영성이 다시 한 번 퇴치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기기](記紀)에서는 죽었던 야마타노 오로치가 오늘날 일본에서 날뛰고 있는 셈이군요. 그렇다면 이번이야말로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연 어떻게 21세기의 야마타노 오로치를 퇴치할 수 있을까요?
김태창 :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 힘이 일본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의 생명을 빼앗게 됩니다. 어여쁜 여자아이를 차례차례로 데려가서 죽이는(=먹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직접적·간접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대의 야마타노 오로치는 경제 논리·기술 논리·관료 논리로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하는 힘으로, 반(反)생명적으로 작동합니다. 이곳으로 모든 것을 통합시키려는 방대한 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활명연대(活命連帶)할 것인가가 긴급히 요청되는 바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스사노오적 영성을 시급히 그리고 전면적으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마다 토지 : 실로 근원적 개신력(開新力)의 발로이군요.
야마모토 쿄시 : 근원적 생명력과 정반대되는 힘은 근원적 파괴력입니다. 아까 논의에서 나왔듯이 근원적 생명력을 영성적 영성이라고 한다면, 생명력으로서의 영성을 파괴하는 작용은 마왕(魔王)이나 마성(魔性)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카마다 선생님은 젊었을 적에 ‘마기’(魔氣)를 체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체험이었고, 거기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요?
마기(魔氣)는 안에도 밖에도 있다
카마다 토지 : 얘기가 좀 깁니다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거나, 영능(靈能)이 있는 사람들의 권유로 성지(聖地)나 영지(靈地) 등을 다니면서 다양한 유형의 빙의현상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혼령이나 신들에게 인도되고 있는 자신은 큰 틀에 있어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87년, 저는 어느 성지에서 ‘마기’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했습니다. 결국 그 마기는 저의 ‘밖’에도 ‘안’에도 있으면서 서로 호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마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문에 시달려서, 자신의 근간에 있는 것까지 의심하게 되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마기는 힘, 권력, 지배, 사기(邪氣), 책략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사명감은 갈기갈기 찢겨서,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근원적인 생명력의 원천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마기를 목격하고 며칠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막 잠이 들었는데 대뇌의 중심부에서 빛이 작렬하고, 그날 이래로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잠이 드는 뇌의 회로가 파괴된 것입니다. 한숨도 못자는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었다면 저는 분명 미쳐서 죽거나 자살하거나 살인을 했겠지요.
제가 마기에서 해방된 것은 불면상태가 시작된지 40일째 되는 춘분의 날이었습니다. 친구와 오른 시치멘산(七面山)10의 정상에서 백설(白雪)을 머리에 이은 후지산과 우측 상공의 아침해를 크게 감싸안은 무지개의 대원(大圓)을 본 저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경배하였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류테키(龍笛)11를 꺼내 연주를 했는데, 그 이후로 저는 아침해와 후지산이 저의 주치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기(魔氣)는 저의 ‘밖’에도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탈마(脫魔) 체험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만들었습니다: “마기도 부처도 나의 바깥에는 없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샤먼적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체의 수행을 포기했습니다. 수행이나 초능력의 획득에 의해 인격이 파괴적으로 변용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자의 ‘중용’이나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 또는 붓다의 ‘중도’(中道)의 중요성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성(魔性)이라는 자타의 파괴적 변용을 저지하는 것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태도”이자, 신불(神佛)이나 자연이나 타자에 대한 외경과 감사, 그리고 그것들의 은혜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코토 쿄시 : 카마다 선생님은 한 인간의 혼 속에는 마성도 있지만 영성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으셨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라는 말처럼, 자신이 ‘대단하다’거나 ‘성장했다’거나 ‘선택된 자’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심리현상 그 자체가 자기 안의 마기(魔氣)의 작용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마기’란 인간의 마음이나 신체를 마비시키는 힘입니다. 불교에서는 ‘마라’(魔羅. 산스크리트어 ‘māra’의 음사·음역)나 ‘마장’(魔障. 마기의 장애적 작동)이라는 말로 사용되어, 주로 성불적 인격의 파괴자라는 이미지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나 악마라는 말로 생명과 평화의 파괴자 - 궁극적으로는 신과 인간의 상생적 화해를 방해하고 붕괴시킨다 - 라는 이미지가 그 특징이지요.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마기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격파괴적이고 평화파괴적이 됩니다. 그것을 인격생성적으로 바꾸고, 생명과 평화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영성의 작용이 필수불가결하지 않을까요?
야마코토 쿄시 : 일본은 신국(神国)이고 영미(英美)는 귀축(鬼畜)이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민도가 낮다, 라고 자만했을 때에, 일본은 마성이 발흥하는 나라가 되어 결국 멸망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방금 카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신불(神佛)이나 자연이나 타자에 대한 외경과 감사의 마음을 작동시키는 것이 영성에 다름 아니고, 그런 혼과 혼이 국경을 넘어 서로 이어져서 보다 좋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共創) 나가기 위한 매체가 [미래공창신문](未来共創新聞)입니다.
아까 한적 영성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습니다만, 한적 영성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활발한 대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홀로’가 일본적이라면 ‘함께’가 한적이고, 거기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하는 철학’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두 번째가 ‘공동’(共働)입니다. 우열승패도 아니고 약육강식도 아니며 목숨을 건 쟁탈전도 아닌 서로 협력하는 관계, 이렇게 서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 위에서는 [장자]가 말하는 하늘의 피리소리(天籟)가 울려 퍼지고, 하늘·사람·땅이, 김태창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상관연동’(相關連動)하여 상화·상생·공복(共福)의 신세계가 개신(開新)됩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전 인류의 공복(共福)을 기원하는 숭고한 뜻을 세우면, 그 사람의 근원적 생명력은 생각지도 못한 예지(叡智)에 눈을 뜨고, 잠재해있던 능력이 개화(開花)되며,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환경도 그 뜻의 실현을 도와주듯이 선순환을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 환경오염, 차별, 기후변동 등과 같은 형태로 마성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성은 어차피 자기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생긴 환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김태창 선생님이 말씀하신 근원적 생명력으로서의 영성의 작용이 있고, 카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선인의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한 선한 힘을 안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힘의 연대가 미래공창(未来共創)으로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에서 희망의 미래개신(未来開新)으로의 새 출발의 전망 등에 대해서 카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일영성의 연대로
카마다 토지 : 김태창 선생님과는 이미 20여년에 걸친 친분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점에서 공명하는 바가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나 김태창 선생님이나 모두 스사노오적인 방랑인생을 걸어 왔습니다. 김태창 선생님의 경우에는 한국·일본·서양이라는 삼극 긴장관계 속에서의 방랑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근 10여년 동안 전개된 ‘공공철학’에 대한 생각과 실천과 전개와 개신(開新)이 있었겠지요.
그에 반해 저는 일본 안에서의 방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거기에는 근현대의 체제나 문화가 밀고 들어오는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여 추방된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1970년 5월, 일미안보갱신기(日美安保更新期)에 저는 오사카의 심재교(心斎橋)에서 <록큰롤 신화고>(ロックンロール神話考)라고 하는 언더그라운드 연극을 연출
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여러분, 천기(天氣=하늘의 기운)는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신대(神代)에서 자식을 찾으러 온 이자나기·이자나미와 현대에서 부모를 찾으러 집을 나온 소년소녀탐정단이 서로 뒤얽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모두가 죽음에 이르지만, 거기에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작용하여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끝나는 음악극이었습니다.
좋든 싫든 그것이 저의 원점으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옛날부터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천기가 죽는” 것입니다. 즉 이상기후에 의해 인류사적·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걱정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점점 급격하게 전개되리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연신도적(自然神道的)인 유라시아·환태평양 교향악적인 신도관(神道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김태창 선생님을 비롯하여 한국의 한적 영성이나 중국의 도적(道的) 영성과도 소통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NPO법인 동경자유대학 등의 활동을 통해서 제가 바라고 전개해 온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즐거운 세상바꾸기’(楽しい世直し)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마음바꾸기’(心直し)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도(道)를 신화실천하고 있는 것이 스사노오이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그 스사노오적 영성에 따라서 유랑을 거듭하면서 ‘신도노래작가’로서 자유분방하게 노래하고, 울고 웃고 놀면서 살고 싶습니다. ‘즐거운 세상바꾸기’란 ‘신놀이’(神遊び)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쪼록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태창 : 카마다 선생이 아마테라스도 아니고 츠키요미도 아닌 스사노오에서 신생일본의 원동력을 확인하셨다는 것과 일본과 세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여는 길에 가장 파괴적인 마장(魔障)으로서 “천기(天氣)가 죽는” 것을 지적하신 부분에 전면적으로 공감합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 일본신화의 스사노오는 한 신화의 단군과 상관연동적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사노오는 다카마노하라에서 내려와서 지상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신천신지신인(新天新地新人)을 개척했습니다. 단군은 천상세계에서 내려온 환웅과 지상세계의 웅녀와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천지공매적(天地共媒的) 영성인간으로 재새이화(在世理化)·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간세계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신생 스사노오”(鎌田東二)에 기대하는 것은 하늘과의 연결을 회복함으로써 “죽어가는 천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는 일입니다.
야마코토 쿄시 : 마지막으로 스사노오적 영성에 새롭게 빛이 비춰졌습니다. 야마타노 오로치는 죽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있음이 명확해졌습니다. 한인과 일본인 사이에 이렇게 깊은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이 충분히 발휘되어 대망의 미래공창(未来共創)이 시작되기를 기원하고있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을 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
주석
1 톳토리현(鳥取県)에 있는 산.
2 [고사기]에 나오는 말로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이루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복속시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3 [고사기]에 나오는 이즈모신화의 주신(主神)으로, 나라를 세워 경영한 뒤에 황실의 조상에 양보했다.
4 鎌田東二,「 日本の平和思想 - ‘国譲り’問題を考える」, 鎌田東二 編集,『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と平和(講座スピリチュアル学 第3巻)』(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5)
5 여덞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하고 무서운 뱀.
6 “작은 섬들”이라는 뜻으로, 태평양 중서부에 있는 섬들의 총칭.
7 기기신화(記紀神話)에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나 스사노오노 미코토와 함께 존귀한 신으로 출현하는데,
신화에서의 활약은 극히 적다.
8 일본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천손(天孫)이 강림할 때에 길안내를 했다.
9 임상심리학자로 일본의 융심리학 연구의 제일인자이다. 교토대학 교수와 문화청장관을 역임했다. 독자적인 시점에서 일본의 문화와 사회,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고찰하였고 이야기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10 야마나시현(山梨県)에 있는 해발 1989미터의 산이다. 니치렌종(日蓮宗)의 성산(聖山)으로 정상 근처에 경신원(敬慎院)이 있다.
11 궁중음악에서 쓰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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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특징은 ‘활명신생’(活命新生) 작용입니다. 천명(天命)으로서의 생명, 즉 천지의 생명활동=우주생명=명(命)을 살림으로써 모든 생명체의 생명활동=개체생명=생(生)을 새롭게 하는(新·改) 것입니다.
세 번째 특징은 안(内)과 밖(外)을 그 사이(中·間)에서 양쪽을 양립양전(兩立兩全)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서는 작용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을 생명 그 자체이게 하는 내재적 생명력으로서의 혼=넋과 그 외재적 타자의 동류(同類)의 생명력=혼=넋을 그 사이에서 맺고·잇고·살리는 작용입니다. 혼=넋은 개체내유(個体内有)의 생명력이고, 영=얼은 개체(생명)와 개체(생명) 사이에서 양쪽을 안고 넘어서는 생명력입니다.
네 번째 특징으로, 그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민독창(爲民獨創)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올라가는 여민공창(與民共創)의 작용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전쟁 말기인 1944년에 [일본적 영성], 전후인 1946년에 [영성적 일본의 건설], 1947년에 [일본의 영성화]라는 영성 3부작을 연달아 내놓았습니다. 3부작을 가장 열정적으로 언급해 왔고 또 주목해 온 일본인이 바로 카마다 선생님이십니다.
종전 전후에 '영성 3부작'을 저술한 스즈키 다이세츠
카마다 토지 : 스즈키 다이세츠는 불교의 입장에서 일본적 영성을 파토스(情動)적인 방면으로 드러낸 것이 정토종이고, 지적 방면으로 발현시킨 것이 선불교라고 이해했습니다. 그에 반해 신도는 일본적 영성이 미숙하고 순수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 1776-1843)8의 신도는 대단히 정치적으로, 종교적인 깊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히라타신학(平田神學)은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나 제국주의와 연결되는 국학자(國學者)의 신도 이데올로기의 원류이자 원흉이라고 대단히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는 히라타 아츠타네의 정치사상과 연결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읽고 있었습니다만, 히 라타 아츠타네 속에 들어있는 오오모토교(大本教) 등으로 이어지는 영학적(靈學的)·영성적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몰랐습니다. 아츠타네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학적(靈學的)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론은 편협하고 부분적이며 일면적입니다. 히라다 아츠타네에 대한 스즈키다이세츠의 이해와 평가는 치우쳐 있다는 것이 저의 입장입니다.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패전이라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일본인의 재기와 일본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부활을 어떻게 도모할 것인가의 문제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봅니다.
영성 3 부작을 발표한 그는 불교신자나 선수행자라는 입장에 머무르지 않고, 한 사람의 우국지사의 입장에서 인간과 국가와 세계의 미래공창(未来共創)에 대한 뜨거운 염원을 절규하고 있었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바로 이 점에 깊은 공명을 느꼈습니다.
저의 관심은, 스즈키 다이세츠의 영성을 접근하는데 있어 일본국학(日本國學)이나 일본영학(日本靈學)의 의미파악 - 내부생명이나 생명의 내적 체험 - 에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과 근원적인 생명의 개신력(開新力)이라고 하는 한영학(한靈學)의 작용과의 ‘상관연동’이 가능한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이지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카마쿠라불교(鎌倉佛敎)에서 일본적 영성의 시동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굳이 기독교 신비주의자로부터 ‘영성’이라는 말을 빌려서 일본화하여 사용했다는 점에 일본영학(日本靈學)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성적 일본’이란 생명적 개신력(開新力)에 의해 소생하는 일본이고, ‘일본의 영성화’는 일본인의 혼이 무위신앙(武威信仰=迷信)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자 평화일본의 건설에 대한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파악에서 생각해 보면, 스즈키 다이세츠가 ‘불성’(佛性)이나 ‘신성’(神性)이 아닌 ‘영성’을 굳이 신생일본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영성’이라는 말에다 근본적 개신력으로서의 역동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과 국가가 그 개신적 생명력의 약동에 눈을 떠서 그것을 체인(體認)·실천함으로써 새로운 일본소생의 길을 열어 나가기를 기대했다는 것이 저 자신의 개인적인 독해입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에 의해 나라가 망했다고 하였습니다. 정치와 일체화된 2,600년 간의 신도국가(神道國家)가 망했다고 - .
김태창 : 스즈키 다이세츠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전쟁을 일으키고, 일본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여 참담한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은 왜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서 자기 나름대로 답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요?
야마모토 쿄시 : 스즈키 다이세츠가 패전하기 1년 전에 쓴 [일본적 영성]을 카마다 토지 선생님은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스즈키 다이세츠: 신도국가를 전면 부정, 카마다 토지: 자연생성력과 대지성을 평가
카마다 토지 : ‘일본적 영성’을 근거지우는 것으로 ‘장소적 논리’가 있습니다. 스즈키 다이세츠의 말로 하면 ‘대지성’(大地性)입니다. 그것은 자연이 지닌 커다란 역동으로, 거기에는 생태지(生態智)가 깃들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자연’ 개념에는 쿠카이(空海. 774~835)9도 배운 자연지(自然智)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은 또 ‘스스로’와 ‘저절로’라는 말로도 표현됩니다.
일본신화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섬이 소금이 저절로 응결되어 생긴 오노고로섬(淡路島)입니다. 그리고 건국신화에서는 남신(男神)인 이자나기와 여신(女神)인 이자나미가 성적 교합을 통해서 주체적으로 말을 겁니다. 여기에서 생겨난 것이 일본의 섬들(大八洲=오오야시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사고방식이 나타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연생성력으로서 ‘무스히’(産靈)의 힘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사를 포함한 모든 것을 낳고 만들어 나가는 ‘스스로성’과 ‘저절로성’입니다.
이러한 무스히의 힘이나 자연생성력이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 있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것은 일본인의 자연관이나 생명관 속에 생태지(生態智)로서 대단히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대지를 영성의 근거로 가장 소중히 여겨 온 일본인이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대지를 빼앗은 것은 실로 ‘절대모순’이군요. 게다가 그들의 모국어인 한국어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식의 문화파괴에 손을 더럽히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이 현인신(現人神)으로 군림하는 일본이라는 ‘자기’에 한반도 사람들을 ‘동일’화시키는(內鮮一體) 것에 아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 절대모순은 패전한 지 70년이 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일본인에게는 사상철학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메이지(明治) 이후의 일본의 국가신도는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으로 좌절되었습니다. 이 근대일본의 신도에는 과연 ‘영성’이 있었는가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종래와는 다른 일본신도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요?
카마다 토지 :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신도는 생태지를 핵심으로 하는 ‘자연신도’(自然神道)입니다. 그러나 메이지 이후의 신도의 핵심에 있는 것은 국가관리적인 ‘인위신도’(人爲神道)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신도’에서는 ‘무스히’를 포함해서 자연생성력이 가장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지진을 일으키고 화산이 분화하고 폭설을 내리고 태풍이 부는 자연의 활동 속에서 다양한 자연의 형성력이나 생성력이나 무스히의 힘을 느끼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면 삼가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연신도이고, 그것을 위해서 신을 제사지내 왔습니다.
제 연구실에는 오오모토교(大本敎)의 교조인 데구치 나오(出口なお. 1836~1918)10의 [친필(お筆先)]이 있습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11은 귀문(鬼門)의 신인데, 이 친필에는 용문(龍門)의 음악공주(音姫), 비의 신, 바람의 신, 스와(諏訪)12의 신, 폭풍(荒れ)의 신, 지진의 신 등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메이지시기에 쓰여진 것인데, 이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일본인에게 있어서의 신의 원형입니다.
그것은 이른바 ‘국가신도’와는 다릅니다. 국가관리의 신도는 서구열강에 대항하는 강한 국민국가, 즉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보다 견고하고 부국강병적인 국가체제를 구축해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저는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된 문제의식은 종래의 신도적인 신성(神性)이나 불교적인 불성(佛性)의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에 있었다고 독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다 근원적이고 포괄적인 작용으로서의 ‘영성’에 기대를 건 것은 아닐까요? 스즈키 다이세츠는 신도이든 불교이든 기독교이든 이른바 기성종교의 틀에서 벗어나서 전쟁과 억압과 비리의 구(舊)일본의 파멸 위에 평화와 자유와 진리가 충만한 신(新)일본의 소생을 간절히 바랬던 것이 아닐까요? 그 마음이 이방인인 저에게도 울려 퍼집니다.
야마모토 쿄시 :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일본적 영성’의 ‘일본적’이라는 말입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일본적 영성의 근간에는 ‘장소적 논리’가 있고, 그것은 결국 ‘대지성’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연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을 김태창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한인(韓人)의 독자적인 사상철학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체감적 견해를 말씀드리면, 먼저 건전하고 상생적인 대화를 진행하기 위해서 ‘일본적’ 영성과의 대비로 ‘한(桓·檀·韓)적’ 영성의 특성을 저 나름대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근저에는 탈(脫)장소·초(超)장소의 논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천지상관연동태’(天地相關連動態)이자 ‘천연성’(天然性)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카마다 선생님 그리고 스즈키 다이세츠의 대지성=자연성은 저의 정직한 감각에서 보면 지연성(地然性)=토지(土地)가 저절로 그렇게 있는 것과 같은 정태(情態)입니다. 반면에 제가 체감하고 있는 천지상관연동태=천연성은 천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동태(動態)입니다. 그래서 지연(地然)으로서의 자연과 천연(天然)으로서의 자연이라는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저를 포함한 일본인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군요.
김태창 :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한인(韓人)에는 일본인과는 다른 독자적인 사상·철학·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자로서의 한인을 외부에 실재하는 별도의 주체로 정당하게 설정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폐된 근대한일사, ‘청일전쟁’에서 동학군 대량학살
야마모토 쿄시 : 저는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시형의 행동과 사상철학을 앎으로써 한적 영성의 심오함과 보편성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한반도에는 일본인이 깜짝 놀랄 만큼 가치있는 학문과 미래개신(開新)을 향한 공동 기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 <한살림운동 특집호>를 만드는 과정에서 저는 일본 군국주의가 지금까지 청일전쟁과 한반도 식민지화를 진행한 진상을 99.9% 이상의 일본인이 모르고 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근대 일본의 통치자에 의한 역사의 은폐와 왜곡이 있습니다. 청일전쟁 때 한반도에 대해서 왕궁침탈과 동학농민군 섬멸이 비밀리에 행해졌습니다. 그 진상은 [미래공창신문]에 자세하게 밝혀놓았습니다. 언젠가 교과서의 근대 일본사가 수정되겠지요.
먼저 일본인 자신이 역사의 진실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에 에도시대의 일본인이 조선통신사를 대단히 존경하며 그 고도의 지식을 배웠듯이, 앞으로의 일본인도 ‘이질적인 타자’인 한인(韓人)으로부터 적극적으로 배우는 자세를 갖는다면 두 나라의 미래는 반드시 밝게 개신(開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단서의 하나가 되는 책으로 저는 [동학농민전쟁과 일본 - 또 하나의 청일전쟁](모시는 사람들, 2014)13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가장 중시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있습니다.
김태창 : 그렇습니까?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은 25년간의 일본생활에서 얻은 실감입니다. 사태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근본적인 차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야마모토 쿄시 : 실은 오늘날의 일본인에게는 스즈키 다이세츠가 말하는 ‘일본적 영성’도 이해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스즈키 다이세츠가 영성삼부작에서 ‘영성’의 내실로서 다룬 것은 여래(如来)의 대비(大悲)이자 보살의 서원(誓願)입니다. 즉 스즈키 다이세츠는 어디까지나 대승불교에서 영성의 내용을 취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굳이 ‘대비’(大悲)나 ‘자비’(慈悲)나 ‘반야의 지혜’나 ‘불성’이나 ‘법성’(法性)과 같은 불교용어로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성과 지성의 한계를 넘어선 경애체인지(境涯體認知)로서 ‘영성’(=무분별지)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한 데에서 저는 국제인(國際人) 다이세츠의 탈일본화된 미래지향성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까 카마다 선생님께서 히라타 아츠타네가 스즈키 다이세츠보다 먼저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하였고, 그것을 주로 인위적인 국가신도와는 다른 자연신도의 문맥에서 사용하였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카마다 토지 : 히라타 아츠타네의 생각은 상당히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메이지 이후의 흐름은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서 두 갈래로 나뉘게 됩니다. 하나는 국가신도적인 천황을 중심으로 한 신도가 주자학과 하나가 되어 국가신학(國家神學)을 형성하고, 그것이 메이지헌법으로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 1871~1948) 등으로 계승되어 가는 영학(靈學)과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國男. 1875~1962)나 오리구치 시노부(折口信夫. 1887~1953)로 계승되어 가는 민속학과 같은, 보다 민간적이고 민중적인 방향의 신관(神觀)과 결부되어 갔습니다. 이처럼 히라타 아츠타네 내부에는 이른바 국가성과 민중성, 국가신도와 민중신도의 양극(兩極)이 있었던 것이지요.
야마모토 쿄시 : 히라타신도(平田神道)에는 원래 영성은 없다는 것이 스즈키 다이세츠의 주장이었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일본적 영성’을 굳이 히라타아츠타네 식으로 말한다면 어떤 것이 될까요?
카마다 토지 : 그것은 ‘일본인의 혼의 행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일면은 ‘야마토혼(大和魂)이나 ’야마토정신(大和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국가신도적인 문맥에서도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아츠타네가 사사(師事)한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는 "시키지마(敷島)의 야마토정신(大和心)을 누가 물으면 아침해에 비쳐지는 산벚나무꽃"이라고 노래했고, 그 전의 카모노 마부치(賀茂真淵. 1697~1769) 등은 [만요슈(万葉集)]의 정신을 사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히라타 아츠타네에 이르면 [고사기(古事記)]나 [일본서기(日本書紀)] 이전에 이미 원형적인 신화(原神話)가 있었는데, 바로 거기에 일본적 영성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기(記紀)]14나 축문(祝詞)15은 그런 일본적 영성을 부분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다 더 근원적인 신화라고나 할까, 보다 심층에 있는 근원성이나 보편성을 ‘영성’에서 찾으려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이즈모(出雲)의 신(神)이 지니고 있는 힘, 즉 ‘카쿠리요’(幽世=저세상)의 영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진정으로 야마토정신이 완성되어 안심하기 위해서는 사후의 생존까지를 포함한 진혼(鎭魂)을 말하고, 그 혼의 행방을 내다본 상태에서 영성이라는 존재를 실감하는 삶의 방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히라타신학(平田神學), 히라타신도(平田神道)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데구치 와니사부로(出口王仁三郎)로 흘러들어간 것은 그런 혼의 세계에 대한 체험·체현·체득을 중시하였습니다. 즉 영학(靈學)의 방향이 히라타신학 속에 있는영성적 방향을 계승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피리츄얼리티의 한 요소로 카마다 선생님은 우주전체의 보편성을 포함한 ‘전체성’을 드셨습니다. 한편 스즈키 다이세츠는 1947년에 쓴 [일본의 영성화]에서 기기신화(記紀神話)의 우주생성 이야기에 대해 “보통의 논리 형성 및 과학적 사상 위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비합리성”, “원시민족의 망상담(妄想譚)”이라고 비판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대승불교의 영성이 일본의 신도보다 도리로 보나 지향하는 방향으로 보나 뛰어나다는 전거로, 가령 <보현보살의 십원(十願)>을 의역(意訳)하여 “제불여래(諸佛如来)의 본체는 대비심(大悲心)이고, 이 대비(大悲)는 중생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하면서 그 숭고한 뜻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이란 단지 모든 생명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살고 있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산도 강도 돌도 흙도 별도 눈도 모두 일체중생이다. (중략) 비에도 꽃에도 산에도 구름에도 이 자비심을 비춰주는 것이 있는 것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불교는 이러한 중생을 상대로 모든 공덕과 모든 혼을 거기로 회향(回向)하고, 그것에 따라서 함께 아뇩다라삼막삼보디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바람은 무궁함을 지니고 있다, (중략) 제불여래는 하나같이 이 대비(大悲)를 체(體)로 하고 있다. 이 대비체(大悲體)가 곧 영성적 생활의 축을 이루는 것이다.” ([日本の靈性化], 法蔵館, 1947)
지금까지의 카마다 선생님의 논의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김태창 선생님께서 의견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동학사상이 각성”
김태창 : 먼저 카마다 선생이 국가신도 혹은 인위신도(人爲神道)와는 다른 자연신도(自然神道)를 강조하고, 그 맥락에서 영성을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신 점에 저는 공통인식의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국학(國學)은 그것이 일본에서이건 한국에서이건, 내부결속을 위해서는 순기능적인 효력을 지니고 있습니다만, 국경을 초월하고 민족이나 문화의 벽을 넘어서 국가간·민족간·문화간의 대화·공동(共働)·개신(開新)을 실천하는 데에는 역기능적인 장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도 ‘한국’이라는 말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굳이 ‘한적’(韓的)이나 ‘한인’(韓人) 또는 ‘한민’(韓民)이라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하였습니다. 국민국가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자각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인간으로서의 위상을 하나의 차원에 고정·폐쇄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철학은 ‘나라’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일본인을 일본인이게 하는 원상(原像)으로서의 영성을 의미깊게 논구하기 위해서 신도적(神道的)·불교적 배경을 명시하려고 하는 카마다 선생과 야마모토 편집장의 의견을 성의를 담아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여기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라는 전제를 확인한 상태에서 굳이 ‘한적 영성’(=한인적·한민적 영성)에 대해서 좀 더 덧붙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체험적 실감을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은 ‘이지안지’(以地安地=땅으로 땅을 편안하게 한다)적 생명력이고, ‘한적 영성’은 ‘이천벽지’(以天闢地=하늘로 땅을 연다)적 생명력이라고 요약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대지를 모성의 상징으로 이해하고, 거기에서 무한한 포용성과 평화성과 평등성을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한인(韓人)의 역사적 집합체험, 그리고 저의 개인적 체험의 핵심에는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대지를 빼앗기고, 생명과 생활과 생업의 토대로서의 토지를 뿌리째 뽑힌 “저주받은 대지의 백성”(Frantz Omar Fanon. 1925~1961)의 무의식이, ‘한’의 부정적 측면으로서의 ‘한(恨)’의 의식과 무의식의 형태로, 삶 속 가장 깊은 곳에 농축되어 있습니다. 대지야말로 실로 전란과 살육과 억압과 불평 등과 비리비도(非理非道)의 아수라장에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근원적 생명력의 원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일본인은 대지박탈의 실체험이 적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어떻습니까?
야마모토 쿄시 : 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에서 일본인은 대지를 상실한 난민으로 세계에 흩어지게 되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인은 싫더라도 대지를 빼앗긴 백성의 비참함을 알게 되겠지요. 그러나 현실의 일본은 일찍부터 원전 재가동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70년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망국자멸의 길이지요. 바야흐로 지금은 생각있는 동아시아의 이웃나라 사람들과 연계해서 생명소생·활명(活命)연대 운동을 위해 일어나야 할 시기입니다.
김태창 : ‘한적 영성’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일본적 영성이 카마쿠라(鎌倉)시대의 정토교(浄土教), 특히 신란(親鸞) 등과 선불교에서 그 지적(知的)·정적(情的) 자각의 계기를 확인하는 것과 대비해서 보면, 한적 영성은 최제우나 최시형의 동학사상과 거기에서 촉발된 민중/농민 운동/투쟁에 의해 확실히 자각·각성·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면 ‘ 다시개벽’(再開闢)적 영성이자 ‘시천주’(侍天主)적 영성이자 ‘내유신령(内有神霊) 외유기화(外有氣化) ’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주석
1 ‘한학’의 ‘한’은 ‘한글’이나 ‘한겨레’ 또는 ‘한사상’이라고 할 때의 ‘한’을 말한다.
2 ケアワーカー : ‘care’와 ‘worker ’를 합쳐 만든 일본식 영어로 ‘개호복지사(介護福祉士)’의 다른 말이다. 노인이나 장애자의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3 옛날에 바다 저편에 있다고 여겨졌던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나라로, ‘토코요노 쿠니’(常世の国)라고도 한다.
4 아마미(奄美)나 오키나와(沖縄) 지방에서 믿어지고 있는 설화로, 바다 건너편이나 바다속 또는 땅속에 있는
낙토(樂土)를 말한다. 매년 신이 이곳에 찾아가서 풍년을 약속해 준다고 여겨지고 있다.
5 鎌田東二 編集『, 講座スピリチュアル学(全7巻)』(東京: 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4-2015)
6 鎌田東二 編集『,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と平和(講座 スピリチュアル学 第3巻)』(東京: 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5)
7 鎌田東二『, 神道のスピリチュアリティ』(東京: 作品社, 2003)
8 에도시대 후기의 국학자·신도가(神道家)·사상가·의사.
9 헤이안시대 초기의 승려로 일본 진언종(真言宗)의 창시자이다. 시호는 홍법대사(弘法大師). 804년에 사이쵸(最澄)와 함께 당나라에 가서 장안(長安)에 있는 청룡사(青龍寺)의 혜과(慧果)에게 배웠다. 806년에 귀국하여고야산(高野山) 금강봉사(金剛峰寺)를 세웠다.
10 처음에는 콘고교(金光教)의 포교소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892년(메이지 25년)에 갑자기 신이 들려 오오모토교를 창시했다. ‘동북의 금신’(艮の金神) 신앙을 설파하였고『 친필』을 저술하였다.
11 ‘艮’(우시토라)는 동북쪽을 의미한다.
12 오늘날 ‘나가노현’(長野県)의 옛 지명.
13 나카츠카 아키라·이노우에 가쓰오·박맹수의 공저로 모시는사람들 출판사에서 2014년에 번역되어 나왔다.
원저는 中塚明·井上勝生·朴猛洙『, 東学農民戦争と日本 : もう一つの日清戦争』(高文硏, 2013)이다.
14 『고사기(古事記)』와『 일본서기(日本書紀)』를 합쳐서 부르는 말.
15 신도에서 신에게 올리는 기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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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학자간 영성개신 철학대화(2)
by소걸음Jan 28. 2018
[개벽신문] 제68호, 2017.10
대담 : 김태창 | 동아포럼·카마다 토지 | 교토대학
정리 : 조성환
[편집자주] 이 글은 동양포럼의 김태창 선생과 교토대학의 카마다 토지 교수가 2015년에 ‘영성’을 주제로 나눈 대화로, [미래공창신문] 영성특집호(제24호. 2015년 6월)에 실린 글을 조성환 박사가 번역하고 각주를 단 것이다. 분량상 2회에 나누어 연재한다.
1회분 : https://brunch.co.kr/@sichunju/162
(지난 호-1회-에 이어)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세계
야마모토 쿄시 : 그럼 지금부터는 스즈키 다이세츠에서 벗어나서 카마다 선생님의 기기(記紀)신화관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카마다 선생님은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신화를 어떤 관점에서 읽으시는지요?
카마다 토지 : [고사기]에는 불교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만 [일본서기]를 읽으면 불교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습니다. [고사기]에서는 특히 이즈모신화(出雲神話)가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보다 약간 앞서 편찬된 [이즈모국 풍토기(出雲国風土記)]에는 나라를 끌어당겼다는 ‘쿠니비키신화(国引き神話)’가 나옵니다. 한반도에서 호우키다이센(伯耆大山)1 등의 산에 밧줄을 걸고 모두가 힘을 합쳐 “쿠니코 쿠니코”(国よ来い来い=나라여 오라! 오라!)라며 잡아당겼다는 이즈모(出雲)지역 신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인 투쟁이나 제압에 의해 빼앗은 것이 아니라, 지금 식으로 말하면 자연스런 상태에서 대륙이동이 일어난 것을 이야기로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는 한반도에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으로 돌아갈 때에는 머리카락을 자신의 태내(胎内) 속에 던져 버리고, 기의 나라(紀州)에 다양한 나무가 자라게 했다는 수목창조신화(樹木創造神話)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즈모신화(出雲神話)에서는 한반도와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의 관계가대단히 친근감 있는 영역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야마코토 쿄시 : 신(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이 신라에는 귀중한 보물이 있으니까 복속시키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발단이 되어 진구황후(神功皇后)가 신라정벌을 했다는 기술이 [기기(記紀)]에 나옵니다. 이즈모(出雲) 신화는 그와 같이 힘을 배경으로 한 언향화평(言向和平)2이나 정벌복속(征伐服属)적인 야마토적 분위기와는 느낌을 달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전쟁을 피한 오오쿠니누시(大國主) 황천의 나라의 대신(大神)으로
카마다 토지 : 예, 정복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야마토조정이 일본의 통치체제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다른 세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하나는 정벌·평정의 방향으로 나아갔고, 다른 하나는 ‘건국신’인 이즈모의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3가 자신들이 열심히 만든 그 나라를 ‘양보한다’는 독특한 표현으로 평화를 달성합니다.
저는 이 선양(禪讓) 문제를 [스피리츄얼리티와 평화]라는 책에서 <일본의 평화사상 - ‘선양’ 문제를 생각한다>4는 논문으로 다루었습니다. ‘선양(国譲り)’이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땀 흘려서 건설한 국토를 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가 어떻게 양보할 수 있었는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지요. 그것은 본토결전(本土決戰)과 같은 형태로 싸워서 패한 것이 아니라, 전쟁을 아예 회피한 것입니다.
선양의 조건은 (야마토 정권이)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를 창건하여 그 제사를 지내고,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大国主命)는 황천의 나라, 즉 저 세상(隠れ世)의 오오카미(大神)가 된다는 설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일본적 영성의 일종의 복잡한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표면적으로는 천황가를 중심으로 한 신도적 영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명백하게 존재하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오오쿠니누시노 카미(大国主神)를 중심으로 한, 그 이전의 선주민족(先主民族)을 포함한 신들 혹은 인간들의 신도적 영성이 있습니다. 오오쿠니누시(大国主)도 물론 신이기 때문에 180 또는 181명의 다양한 신들을 낳고 있습니다. 이 흐름이 데구치나오(出口なお)적인 직관과 신관(神觀)이 되면, 귀문(鬼門)에 봉인되어 온 숨겨진 신 ‘ 동북의 금신’(艮の金神)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서 무수한 신들(八百万の神々)의 문제가 성립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범주로 말하면, 아마츠카미(天津神) 계통과 쿠니츠카미(国津神) 계통의 두 범주가 있는데, 이 쌍방이 화해함으로써 ‘일본’이라는 나라를 만들어 간 것이지요.
야마타노 오로치는 살아있다 나와라, 21세기의 스사노오!
김태창 : 저의 개인적인 문제관심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보다는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大国主命)의 아버지 또는 조상이라고 말해지는 스사노오노 미코토(素戔嗚尊) 쪽에 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스사노오노 미코토는 야마타노 오로치(八岐大蛇)5를 죽인 후에 쿠시나다공주와 결혼하여 이즈모국을 세우고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구름이 겹겹이 피어난다는 이즈모국에 겹겹이 친 울타리처럼 구름이 피어오른다. 아내를 숨기려고 궁전에 겹겹이 담을 쳤지. 마치 그 겹겹이 친 울타리처럼.”(八雲立つ 出雲八
重垣 妻隠みに 八重垣作る その八重垣を)라고 노래했습니다. 행패를 부려 다카마노 하라(高天原)에서 추방된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일약 파사(破邪)의 영웅이 되어, 이즈모국에 평화와 노래의 문화를 가져다 준 것이지요.
카마다 토지 : 와카(和歌)나 거문고(琴)를 켜는 것과 같은 예능·예술적인 힘이 상황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된 것이지요. 신도적 영성의 근거를 어디에 둘 것인가, 라는 점에 있어서, 제 경우에는 쿠니츠카미(国津神)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신도적 영성의 근간은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해 왔습니다.
이세진궁(伊勢の神宮)이나 천황을 중심으로 한 영성이라고 하면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나 신사본청(神社本庁)이 그 대표이기도 합니다만, 그런 표면적인 신도적 영성을 일본적 영성의 전체로 보기에는 역시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근저에는 역시 유라시아와 미크로네시아6, 폴리네시아, 북미대륙이 땅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환태평양(Pan-Pacific)적 영성 같은 것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도는 그런 유라시아·환태평양적 문화를 마치 교향악처럼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범지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다시 한 번 기초로 삼아서 ‘신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가 저의 과제입니다.
김태창 : 카마다 선생의 말을 저 나름대로 이해하면서, 일본적 영성을 일차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삼차원 상관연동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여 그 특징을 포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첫 번째 차원은 아마테라스로 대표되는 일본적 이성으로, 말하자면 좌안적(左眼的), 좌뇌적(左腦的) 이성인간의 원형입니다. 두 번째 차원은 츠키요미노 미코토(月読命)7인데, 이것은 일종의 일본적 감성으로, 우안적(右眼的)·우뇌적(右腦的) 감성인간의 원형입니다. 그다지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일본에는 이것도 있습니다.
세 번째 차원은 스사노오노 미코토로 대표되는 영성입니다. 이것이 일본적 영성인데, 호흡적(鼻息的)·개척적 영성인간의 원형입니다. 아마테라스와 츠키요미가 정주자적(定住者的)인 것과는 달리 스사노오는 천지왕래적(天地往来的)·이주자적(移住者的)인 특성이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한일영성개신의 공진·공명·공감 가능성이 있는데, 아쉽게도 주류 일본사상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고 거의 거론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카마다 토지 : 재미있는 견해이군요. 스사노오는 유배된 왕, 어쩌다 찾아오는 손님이니까요.
김태창 : 스사노오노 미코토가 추방되거나 욕을 먹거나 하는 것은, 일본은 기본적으로 다카마노 하라(高天原)의 차원에서는 이성지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감성이 그것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영성은 곤란하지요. 그래서 거기에 그려지고 있는 스사노오노 미코토의 모습도 굳이 말하자면 악인(惡人)입니다.
스사노오는 다카마노 하라에서는 장난꾸러기나 야쿠자 같은 식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거기에서 무엇을 했는지보다는 그것을 묘사하는 양식입니다. 즉 이성인간이나 감성인간이 압도하고 지배하는 곳에서는 영성인간은 굳이 말하자면 질서파괴자로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결국에는 배제·추방됩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일본에서는 영성인간에 대해 가급적 언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성인간과 감성인간으로부터 오해받거나 매도되어, 온갖 중상모략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위에도 괜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경험을 일본에 온 순간부터 줄곧 해 왔기 때문입니다.
카마다 토지 : 아, 그런가요?
김태창 : 겨우 최근에 들어서야 마침내 일본에서도 제대로 된 영성론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 일본적 영성에 관한 관심에서 카마다 선생의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느낀 것은 사루타히코(猿田彦)8입니다. 쿠니츠카미(国津神)인 사루타히코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만, 제가 카마다 선생의 여러 묘사 속에서 특히 관심을 가진 것은 ‘길내기’(道開き)라는 말입니다. 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마다 토지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태창 : 하지만 그 ‘길내기’는 일본에서는 전혀 환영받지 못합니다. 기존의 길이 굳어진 곳에서 개개인이 별도의 길을 내면 곤란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카마다 토지 : 길이 만들어진 곳에 다시 새로운 길을 내는 것은 길을 파괴하는 것이 되니까요.
김태창 : 일본적 ‘화(和)’를 깨트리는 악인 취급을 받게 되지요. 실은 저도 사루타 히코처럼 철학적 길내기를 시도했는데 오해와 비난의 집중공격을 적지않게 받았습니다.
카마다 토지 : 그런가요?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이성과 감성을 갖춘 영성인간 미래공창은 철학적 길내기에서
김태창 : ‘일본적 영성’은 통합지배적 영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압도하는 가운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길내기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원동력이야말로 창발개신(創發開新)적 영성의 작용이고, 그 자각적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한적 영성’의 근원력·활명신생력(活命新生力)적 개신(開新)의 작용과 공진(共振)·공명(共鳴)·공동(共働)입니다. 한적 영성은 기본적으로 개천개지개인(開天開地開人)의 개신(開新)을 통해서 신천신지신인(新天新地新人)의 상관연동적 혁신을 실천하는 영도(靈道)·영통(靈通)·영변(靈變)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카마다 토지 : 신천지인(新天地人)인가요?
김태창 : 그렇습니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아우러지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길내기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항상 하나의 나라로 수렴되지 않고 적어도 세 나라로 나뉘어 있는 상태가 줄곧 이어져 왔습니다. 이것은 일본적 시각에서 보면 ‘분열상태’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적 영성의 측면에서 보면 견고한 일원 통합지배가 아닌 고차기능적인 유연한 다극공동상생(多極共働相生)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카마다 토지 : 도주제(道州制) 같은 지방분립자치인가요?
김태창 : 다른 말로 하면 일본적 영성에 공동일체화적(共同一體化的)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면, 한적 영성은 다이공동화적(多異共働化的)인 역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이 차이가 제대로 인식되지 않는데서 종래의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이 서로 어긋나기만 했던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듭니다. 일본적 전통에서 보면 한적 영성은 위험해 보이는데, 그것은 이미 만들어진 질서를 파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일본에서는 별로 선호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하는 철학의 대화활동을 통해서 점점 알게 되었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그렇다면 한적 영성은 “화이부동”(和而不同)적인 작용이고, 일본적 영성은 “동이불화”(同而不和)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김태창 : 바꿔 말하면 일본적 영성에서는 뚜렷한 만물일체화적인 특징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해도 ‘일본’을 중심으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요. 이에 반해 한적 영성에는 만물생생적인 특징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모든 것을 상생적으로 살리는 작용입니다. 일본에서는 일본교(日本敎)적 영성이 작용하고 한민사이에서는 상생상활적 영성이 작동하고 있다고도 느꼈습니다.
반인권주의국가로 후퇴
야마모토 쿄시 : 전후(戰後) 일본의 부흥은 동서대립의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았다는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일본인이 일치단결해서 경제를 부흥시켜 나갔다고 하는 일국만민(一國萬民)적인 강점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일본대지진 후의 일본은 세계사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고 겉돌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상징이 원자력발전소 정책이겠지요.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어온 제도가 보장해 온 기성의 이익구조에 따를 뿐, 원자력발전소가 없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자고 하는 의지도 사명도 느낄 수 없습니다. 정치와 매스컴이 구체제를 진정으로 바꾸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일본이 중국이나 한국 등에 자랑해 온 ‘법의 지배’라는 것의 편의주의가 오늘날의 헌법 해석 변경과 그것의 법제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나라’와 ‘지배층’만 있고 ‘사람’은 그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권감각의 결여상태가 헌법 위반의 법률제정에 의해 고정화되려 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좋은 대조를 이루는 것이 한국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매일 밤 펼쳐지는 활기에 넘친 시민활동에 비하면, 일본의 도시는 생기 없는 정연한 질서라는 느낌이 듭니다. 한국에는 서로 감응하는 ‘사람’과 ‘사람’이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된 이후 군사정권에 압박받아온 한국이 1980년대에 민중의 궐기에 의해 획득한 ‘민주주의’는, 1860년에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을 이은 것입니다. 일본군에 의해 섬멸된 동학농민군의 혼백이 역사의 표면에 용솟음친 것이 광주민주화항쟁에서 시작된 한국민주화입니다. 실로 피를 대가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견고합니다. 세계의 최첨단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요. 한국은 국회도 언론계도 매스컴도 활발하게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고 있습니다.
한편 일본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이래로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과거의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을 그리워하는데 그치지 않고,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의 귀환이나 중국이나 한반도 사람들에 대한 공허한 우월의식에 집착하는 풍경은 한심함을 넘어서 우스꽝스러울 정도입니다.
김태창 : 제가 왜 이 정도까지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을 대비적으로 제시·논의하는가 하면, 그것이 바로 한일간의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라고 하는 통찰을, 지난 25년간 일본에 살면서 겪은 경험과 철학대화를 통해서 체감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적 영성이 만들고자 하는 평화는 무위(武威)에 의한 평정동화(平定同化)입니다. 반면에 한적 영성이 생성하는 평화는 당사자 전원의 활발한 발언과 그 모순 대립에서 연유하는 불화·반감·원한의 해원상생적(解寃相生的) 유화해소(宥化解消)의 과정입니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한인(韓人)들의 평화실현 과정이 어수선하고 시간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으로 생각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한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적 평화건설 과정은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폭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무사적 영성” - 스즈키 다이세츠도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말 - 과 선비적(=文士的) 영성이 상반충돌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제시하면서 한일간의 공공하는 영성의 철학대화를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강좌 스피리츄얼학(제3권)]에 <문명문화간 대화와 한일간 영성평화의 문제>라는 글에 담았습니다. 이것은 함께 공공하는 영성을 새밝힘하는 한일학자간 영성철학대화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카마다 토지 : 찬성입니다.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지요. 저는 아까 김태창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삼층적 영성의 이해방식에 찬성합니다. 거기에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만 [고사기]의 서두에 왜 ‘삼’(三)의 조합이 저렇게 많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카와이 하야오(河合隼雄. 1928~2007)9 선생이 한가운데가 텅 빈 ‘중공구조’(中空構造)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중공구조가 역으로 일본인의 무책임체제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엄청난 사고를 일으켜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 일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분위기를 파악한다”거나 “헤아린다”거나 “이심전심”이라는 말처럼, 구체적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낌새를 파악해서 실행하는 문화는 실로 강력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그 “굳이 말로 하지 않는 문화”에 제일 어울리지 못하고 울부짖고만 있다가 결국에는 노래를 부른 것이 스사노오였습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며 평화를 희구한 신
야마모토 쿄시 : 이즈모국에 내려온 이후의 스사노오의 정상적인 태도와 다카마노 하라에서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비교해 보면 전혀 딴 사람 같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카마다 토지 : 스사노오의 난폭한 행동의 근본 원인은 어머니의 상실입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한 것이지요. 그의 슬픔과 아픔과 울분, 즉 영적인 아픔(spiritual pain)을 아버지를 포함해서 아무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로 하지 못하고 자신의 임무도 완수하지 못한 채 그냥 울고만 있는 상태가 지속됩니다.
그렇다면 이 울기만 하는 이상한 울보라고 할 수 있는 스사노오가 어떤 영성적 세계를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평화’에 대한 염원입니다. 즉 어머니도 자신들의 세계도 편안해지고 모두가 안전하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세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한 끝에, 이즈모에 내려와서 야마타노 오로치라는 괴물을 퇴치한 것이지요.
그 괴물이 자연재해인지 인적재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런 거대한 폭력이라고나 할까 폭압 같은 것을 막고, 그것을 없애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을 때에 노래를 부르고, 자신들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안락하게 사는 길을 제시한 것이지요. 그것이 와카(和歌)의 도(道)입니다.
여기에 스사노오노적 영성의 한 형태가 나타나고, 이것이 오오쿠니누시(大国主)에게 전해집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천상의 거문고’(天の詔琴=아메노 노리고토)라고 불리는 거문고를 오오쿠니누시가 이어받은 점입니다. 거문고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평화의 길(道)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판 이무기는 ‘원자력마을’ 반생명적 경제기술관료체제
김태창 : 이전에 제가 동경대학에서 대화를 할 때에 청중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야마타노 오로치는 정말로 죽었는가?”라고, 일본인들이 깜짝 놀랄만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일본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현대적 시각에서 스사노오적 영성을 말할 때에 그 작용을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적이 바로 야마타노 오로치인데, 이 야마타노 오로치는 오늘날로 말하면 ‘경제기술관료체제’에 다름 아닙니다.
이 방대한 관료체제는 모든 인간의 생명―몸과 마음과 넋의 영위―을 통합·지배·관리하고 그 조직 자체의 권력과 이익을 일방적으로 확대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11 이후에 일본에 나타난 야마타노 오로치는 원자력마을입니다.
그것은 현대판 ‘햐쿠마타노 오로치(百岐大蛇)’(=백 갈래로 갈라져서 인간을 엄습하는 커다란 뱀)이지요. 그것은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적인 이성이나 츠쿠요미노 미코토(月読命)의 감성으로는 맞설 수 없습니다. 스사노오적 영성이 다시 한 번 퇴치해 줄 수밖에 없습니다.
야마모토 쿄시 : [기기](記紀)에서는 죽었던 야마타노 오로치가 오늘날 일본에서 날뛰고 있는 셈이군요. 그렇다면 이번이야말로 숨통을 끊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연 어떻게 21세기의 야마타노 오로치를 퇴치할 수 있을까요?
김태창 : 그렇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그 힘이 일본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전 세계인들의 생명을 빼앗게 됩니다. 어여쁜 여자아이를 차례차례로 데려가서 죽이는(=먹는) 것은 인간의 근원적인 생명을 죽이는 것으로, 직접적·간접적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세계적인 시야를 갖고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대의 야마타노 오로치는 경제 논리·기술 논리·관료 논리로 모든 것을 단번에 해결하고자 하는 힘으로, 반(反)생명적으로 작동합니다. 이곳으로 모든 것을 통합시키려는 방대한 힘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활명연대(活命連帶)할 것인가가 긴급히 요청되는 바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스사노오적 영성을 시급히 그리고 전면적으로 부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마다 토지 : 실로 근원적 개신력(開新力)의 발로이군요.
야마모토 쿄시 : 근원적 생명력과 정반대되는 힘은 근원적 파괴력입니다. 아까 논의에서 나왔듯이 근원적 생명력을 영성적 영성이라고 한다면, 생명력으로서의 영성을 파괴하는 작용은 마왕(魔王)이나 마성(魔性)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카마다 선생님은 젊었을 적에 ‘마기’(魔氣)를 체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체험이었고, 거기에서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요?
마기(魔氣)는 안에도 밖에도 있다
카마다 토지 : 얘기가 좀 깁니다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보이거나, 영능(靈能)이 있는 사람들의 권유로 성지(聖地)나 영지(靈地) 등을 다니면서 다양한 유형의 빙의현상을 보아 왔습니다. 그리고 혼령이나 신들에게 인도되고 있는 자신은 큰 틀에 있어서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987년, 저는 어느 성지에서 ‘마기’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했습니다. 결국 그 마기는 저의 ‘밖’에도 ‘안’에도 있으면서 서로 호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저는 마기에 사로잡혀 있다는 의문에 시달려서, 자신의 근간에 있는 것까지 의심하게 되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마기는 힘, 권력, 지배, 사기(邪氣), 책략으로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제가 어린 시절부터 느꼈던 사명감은 갈기갈기 찢겨서,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근원적인 생명력의 원천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마기를 목격하고 며칠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막 잠이 들었는데 대뇌의 중심부에서 빛이 작렬하고, 그날 이래로 한숨도 자지 못했습니다. 잠이 드는 뇌의 회로가 파괴된 것입니다. 한숨도 못자는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었다면 저는 분명 미쳐서 죽거나 자살하거나 살인을 했겠지요.
제가 마기에서 해방된 것은 불면상태가 시작된지 40일째 되는 춘분의 날이었습니다. 친구와 오른 시치멘산(七面山)10의 정상에서 백설(白雪)을 머리에 이은 후지산과 우측 상공의 아침해를 크게 감싸안은 무지개의 대원(大圓)을 본 저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며 경배하였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류테키(龍笛)11를 꺼내 연주를 했는데, 그 이후로 저는 아침해와 후지산이 저의 주치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기(魔氣)는 저의 ‘밖’에도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탈마(脫魔) 체험 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만들었습니다: “마기도 부처도 나의 바깥에는 없다.” 그 이후로 저는 저의 샤먼적 체질을 변화시키기 위한 일체의 수행을 포기했습니다. 수행이나 초능력의 획득에 의해 인격이 파괴적으로 변용되는 것을 눈앞에서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공자의 ‘중용’이나 소크라테스의 ‘무지(無知)의 지(知)’ 또는 붓다의 ‘중도’(中道)의 중요성을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성(魔性)이라는 자타의 파괴적 변용을 저지하는 것은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는 태도”이자, 신불(神佛)이나 자연이나 타자에 대한 외경과 감사, 그리고 그것들의 은혜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야마코토 쿄시 : 카마다 선생님은 한 인간의 혼 속에는 마성도 있지만 영성도 있다는 사실을 몸소 깨달으셨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가 숙여진다”라는 말처럼, 자신이 ‘대단하다’거나 ‘성장했다’거나 ‘선택된 자’라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심리현상 그 자체가 자기 안의 마기(魔氣)의 작용이라고 생각해도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김태창 : ‘마기’란 인간의 마음이나 신체를 마비시키는 힘입니다. 불교에서는 ‘마라’(魔羅. 산스크리트어 ‘māra’의 음사·음역)나 ‘마장’(魔障. 마기의 장애적 작동)이라는 말로 사용되어, 주로 성불적 인격의 파괴자라는 이미지가 강조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에서는 사탄이나 악마라는 말로 생명과 평화의 파괴자 - 궁극적으로는 신과 인간의 상생적 화해를 방해하고 붕괴시킨다 - 라는 이미지가 그 특징이지요.
개인도 조직도 국가도 마기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격파괴적이고 평화파괴적이 됩니다. 그것을 인격생성적으로 바꾸고, 생명과 평화를 충실히 하기 위해서는 영성의 작용이 필수불가결하지 않을까요?
야마코토 쿄시 : 일본은 신국(神国)이고 영미(英美)는 귀축(鬼畜)이며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은 민도가 낮다, 라고 자만했을 때에, 일본은 마성이 발흥하는 나라가 되어 결국 멸망했습니다. 이와 반대로, 방금 카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신불(神佛)이나 자연이나 타자에 대한 외경과 감사의 마음을 작동시키는 것이 영성에 다름 아니고, 그런 혼과 혼이 국경을 넘어 서로 이어져서 보다 좋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共創) 나가기 위한 매체가 [미래공창신문](未来共創新聞)입니다.
아까 한적 영성에 대한 언급이 잠깐 있었습니다만, 한적 영성에는 무엇보다도 먼저 활발한 대화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으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홀로’가 일본적이라면 ‘함께’가 한적이고, 거기에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공하는 철학’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두 번째가 ‘공동’(共働)입니다. 우열승패도 아니고 약육강식도 아니며 목숨을 건 쟁탈전도 아닌 서로 협력하는 관계, 이렇게 서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 위에서는 [장자]가 말하는 하늘의 피리소리(天籟)가 울려 퍼지고, 하늘·사람·땅이, 김태창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면, ‘상관연동’(相關連動)하여 상화·상생·공복(共福)의 신세계가 개신(開新)됩니다.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전 인류의 공복(共福)을 기원하는 숭고한 뜻을 세우면, 그 사람의 근원적 생명력은 생각지도 못한 예지(叡智)에 눈을 뜨고, 잠재해있던 능력이 개화(開花)되며, 그 사람을 둘러싼 모든 환경도 그 뜻의 실현을 도와주듯이 선순환을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세계는 전쟁, 환경오염, 차별, 기후변동 등과 같은 형태로 마성의 영역이 점점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성은 어차피 자기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생긴 환각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는 김태창 선생님이 말씀하신 근원적 생명력으로서의 영성의 작용이 있고, 카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선인의 그 누구도 미치지 못한 선한 힘을 안으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 힘의 연대가 미래공창(未来共創)으로 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여기에서 희망의 미래개신(未来開新)으로의 새 출발의 전망 등에 대해서 카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자유롭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일영성의 연대로
카마다 토지 : 김태창 선생님과는 이미 20여년에 걸친 친분이 있는데, 여러 가지 점에서 공명하는 바가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나 김태창 선생님이나 모두 스사노오적인 방랑인생을 걸어 왔습니다. 김태창 선생님의 경우에는 한국·일본·서양이라는 삼극 긴장관계 속에서의 방랑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고 추측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최근 10여년 동안 전개된 ‘공공철학’에 대한 생각과 실천과 전개와 개신(開新)이 있었겠지요.
그에 반해 저는 일본 안에서의 방랑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거기에는 근현대의 체제나 문화가 밀고 들어오는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여 추방된다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1970년 5월, 일미안보갱신기(日美安保更新期)에 저는 오사카의 심재교(心斎橋)에서 <록큰롤 신화고>(ロックンロール神話考)라고 하는 언더그라운드 연극을 연출
했습니다. 이 연극에서는 “여러분, 천기(天氣=하늘의 기운)는 죽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신대(神代)에서 자식을 찾으러 온 이자나기·이자나미와 현대에서 부모를 찾으러 집을 나온 소년소녀탐정단이 서로 뒤얽히는 과정에서 다양한 사건들과 조우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모두가 죽음에 이르지만, 거기에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작용하여 부활할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끝나는 음악극이었습니다.
좋든 싫든 그것이 저의 원점으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옛날부터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천기가 죽는” 것입니다. 즉 이상기후에 의해 인류사적·문명사적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걱정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점점 급격하게 전개되리라는 느낌이 듭니다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자연신도적(自然神道的)인 유라시아·환태평양 교향악적인 신도관(神道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관점에서 김태창 선생님을 비롯하여 한국의 한적 영성이나 중국의 도적(道的) 영성과도 소통해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습니다. NPO법인 동경자유대학 등의 활동을 통해서 제가 바라고 전개해 온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즐거운 세상바꾸기’(楽しい世直し)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마음바꾸기’(心直し)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도(道)를 신화실천하고 있는 것이 스사노오이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그 스사노오적 영성에 따라서 유랑을 거듭하면서 ‘신도노래작가’로서 자유분방하게 노래하고, 울고 웃고 놀면서 살고 싶습니다. ‘즐거운 세상바꾸기’란 ‘신놀이’(神遊び)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쪼록 앞으로도 오래도록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태창 : 카마다 선생이 아마테라스도 아니고 츠키요미도 아닌 스사노오에서 신생일본의 원동력을 확인하셨다는 것과 일본과 세계의 바람직한 미래를 여는 길에 가장 파괴적인 마장(魔障)으로서 “천기(天氣)가 죽는” 것을 지적하신 부분에 전면적으로 공감합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로 일본신화의 스사노오는 한 신화의 단군과 상관연동적으로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사노오는 다카마노하라에서 내려와서 지상세계의 사람들과 함께 신천신지신인(新天新地新人)을 개척했습니다. 단군은 천상세계에서 내려온 환웅과 지상세계의 웅녀와의 결혼을 통해 태어난 천지공매적(天地共媒的) 영성인간으로 재새이화(在世理化)·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인간세계를 개척했습니다. 제가 “신생 스사노오”(鎌田東二)에 기대하는 것은 하늘과의 연결을 회복함으로써 “죽어가는 천기”에 생명을 불어넣어 소생시키는 일입니다.
야마코토 쿄시 : 마지막으로 스사노오적 영성에 새롭게 빛이 비춰졌습니다. 야마타노 오로치는 죽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엄청나게 거대해지고 있음이 명확해졌습니다. 한인과 일본인 사이에 이렇게 깊은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인 올해를 기점으로 일본적 영성과 한적 영성이 충분히 발휘되어 대망의 미래공창(未来共創)이 시작되기를 기원하고있습니다. 오늘 귀중한 시간을 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끝)
주석
1 톳토리현(鳥取県)에 있는 산.
2 [고사기]에 나오는 말로 “표면적으로는 대화를 통해서 평화를 이루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복속시키려는 태도”를 말한다.
3 [고사기]에 나오는 이즈모신화의 주신(主神)으로, 나라를 세워 경영한 뒤에 황실의 조상에 양보했다.
4 鎌田東二,「 日本の平和思想 - ‘国譲り’問題を考える」, 鎌田東二 編集,『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と平和(講座スピリチュアル学 第3巻)』(ビイングネットプレス, 2015)
5 여덞 개의 머리를 가진 거대하고 무서운 뱀.
6 “작은 섬들”이라는 뜻으로, 태평양 중서부에 있는 섬들의 총칭.
7 기기신화(記紀神話)에서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나 스사노오노 미코토와 함께 존귀한 신으로 출현하는데,
신화에서의 활약은 극히 적다.
8 일본신화에 나오는 신으로 천손(天孫)이 강림할 때에 길안내를 했다.
9 임상심리학자로 일본의 융심리학 연구의 제일인자이다. 교토대학 교수와 문화청장관을 역임했다. 독자적인 시점에서 일본의 문화와 사회, 일본인의 정신구조를 고찰하였고 이야기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10 야마나시현(山梨県)에 있는 해발 1989미터의 산이다. 니치렌종(日蓮宗)의 성산(聖山)으로 정상 근처에 경신원(敬慎院)이 있다.
11 궁중음악에서 쓰는 대나무로 만든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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