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화(火)를 돌보고 안아주라 / 허우성
기자명 허우성 입력 2022.09.24
추모 특집 / 틱낫한(釋一行) 스님
— 틱낫한 스님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
필자는 틱낫한 스님(1926~2022)을 오래전에 친견한 적이 있다. 1980년대 중반 하와이대학 유학 시절 캠퍼스 강당에서 스님의 강연을 듣고, 그 직후 스님이 베트남 난민들의 처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잠시 본 적이 있었다. 그들이 모두 명절을 맞이하는 아이들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마냥 싱글벙글하며 그를 환대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란! 옆에서 보기만 해도 즐거웠다. 하나의 경이였다. 아, 한 사람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저렇게 큰 기쁨을 줄 수 있다니!
이제 그분이 떠나셨다.
필자는 그의 여러 책을 읽어보았고 The Sun My Heart를 《마음모음》(2004, 나무심는사람)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한 적도 있다. 여기서는 Anger: Wisdom for Cooling the Flames(2001, Riverhead Books, New York)에서 몇 부분을 골라서 번역 소개한다. 각자의 마음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화, 증오, 원한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줄여보자는 의도다. 번역하면서 행복했다.
당신은 여전히 고통과 화의 기슭에 서 있다. 왜 당신은 이쪽을 떠나 저쪽 기슭으로, 화가 없는 평화와 해탈의 기슭으로 건너가지 않는가? 그곳이 훨씬 더 즐겁다. 왜 몇 시간, 하룻저녁, 심지어 며칠 동안 화를 내며 지내는가? 당신을 피안으로 재빨리 건네줄 수 있는 배도 있다. 그 배는 바로 알아차림의 호흡을 통해 우리 자신을 되찾고 고통, 화, 우울을 깊이 들여다보며 그것들을 향해 미소를 짓게 하는 수행이다. 우리는 이렇게 고통을 극복하고 피안으로 건너간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유다.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화 · 절망 · 질투 · 미망이라는 정신적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 이 독(毒)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한 행복할 수 없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님을 배운다. 우리의 몸은 마음이고, 동시에 마음은 몸이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분리할 수 없으니, 화는 정신적 실재만이 아니다. 불교에서 몸과 마음의 형성을 나마루파(名色)라 부른다. 그것은 심리 · 신체(psyche-soma)라는 한 물건이다. 동일한 실재가 때론 마음으로 때론 몸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화, 좌절, 절망은 우리의 몸 그리고 먹는 음식과 관련이 크다. 화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먹고 소비하는 전략을 짜야 한다. 식사는 문명의 단면이다. 우리가 음식 재료를 만드는 방식, 음식의 종류, 먹는 방식은 문명과 많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선택은 평화를 가져오고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화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 안에 화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우리가 광우병에 걸린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속에 화가 들어 있다. …… 우리는 달걀이나 닭고기를 먹을 때 거기에도 화가 많이 들어가 있음을 안다. 화를 먹으니까 화를 낸다. 오늘날 닭은 걷거나 뛸 수도 없고 흙 속에서 먹이를 찾을 수도 없는 대규모 현대식 농장에서 사육되고 있다. …… 그들은 좁은 닭장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한다. 밤낮으로 서 있어야 한다. …… 닭들은 화가 나 있다. …… 우리는 먹는 음식으로 화를 키울 뿐만 아니라 눈과 귀와 의식을 통해 소비하면서도 화를 키운다. 문화상품의 소비도 화와 관련이 있다. 따라서 소비 전략을 세우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잡지에서 읽는 것, 텔레비전에서 보는 것에도 독성이 있다. 그 안에 화와 좌절이 들어 있다. ……신문 기사, 심지어 대화에 화가 많이 들어 있기도 하다.
화가 나면 당신 자신에게 돌아가 화를 잘 보살펴라 …… 아무 말도, 아무 일도 하지 마라. …… 집에 불이 나면 가장 급한 일은 집에 불낸 방화범으로 보이는 사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 불을 끄는 것이다. …… 당신이 그를 쫓는 동안 집은 홀랑 타버릴 것이다. …… 따라서 화가 났을 때 다른 사람을 계속 상대하거나 말다툼하거나 벌주려고 하면, 모든 것이 화염 속에서 타는데 방화범을 쫓아다니는 사람과 똑같아진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속의 불을 끌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를 주셨다. 즉, 알아차림 호흡과 알아차림 걷기, 화를 안아주는 방법, 우리 생각의 본성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사람도 아주 괴로워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이다. 이런 방법들은 매우 유용하며 부처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것이다.
화는 아파서 울부짖는 아기와 같다. 아기는 아기를 안아줄 엄마가 필요하다. 당신은 당신의 아기인 화의 어머니다. 알아차림 호흡의 수행을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아기를 안아주는 어머니의 에너지가 생긴다. 화를 안아주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기는 즉시 편안해진다.
저 엄마는 누구인가? 살아계신 부처님이시다. 알아차림의 능력, 이해하고 사랑하고 돌보는 능력은 우리 안의 부처님이시다. 우리가 알아차림을 할 수 있을 때마다, 그것은 정말로 우리 안의 부처님을 만든다. 당신 안에 부처님이 있으면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다. 당신 속의 부처님을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을 알면 만사형통이다.
당신의 화는 꽃과 같다. 처음에는 화의 본성도 원인도 모른다. 그러나 알아차림의 에너지로 그것을 안아주는 방법을 안다면 화는 자신을 열기 시작한다. 당신이 좌선을 하거나 호흡을 따라가거나, 걷기 명상을 하면 알아차림의 에너지가 생겨서 화를 안아줄 수 있다. 10∼20분이면 당신의 화는 당신에게 자신을 연다. 그러면 당신은 홀연 당신이 내는 화의 진정한 본성을 보게 될 것이다. 화는 단지 잘못된 생각이나 미숙함 때문에 일어났을 수 있다.
화가 나는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이 만들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당신의 모든 고통에 대해 상대를 비난한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당신 안에 있는 화의 씨앗이 고통의 주요 원인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우리 모두의 의식 깊은 곳에 화의 씨앗이 있다. 그런데 우리 중에는 화의 씨앗이 사랑이나 자비의 씨앗보다 더 큰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과거에 수행을 하지 않아서 화의 씨앗이 더 클 수 있다. 우리가 알아차림의 에너지를 끌어올리면, 우리가 얻는 첫 번째 통찰은, 우리의 고통과 불행의 주된 원인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화의 씨앗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고통에 대해 그 사람을 비난하기를 멈춘다. 상대방은 부차적인 원인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부처님은 결코 우리에게 화를 억제하라고 조언하신 적이 없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으로 돌아가 화를 잘 돌보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내장, 위장, 간과 같이 우리 몸에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멈추고 몸을 잘 관리해야 한다. ……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화나지 않은 척하지 마라. 고통받지 않는 척하지 마라. 상대가 당신에게 귀한 사람이면, 당신은 화가 났고 괴롭다고 고백해야 한다. 조용히 그에게 말하라.
화는 우리 안의 에너지 지대이면서 우리의 일부다. 우리가 돌봐야 하는 아픈 아기다. 가장 잘 돌보는 방법은, 화를 안아주고 돌볼 수 있는 또 다른 에너지 지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 두 번째 에너지 지대가 알아차림의 에너지다. 알아차림은 부처님의 에너지다. 우리는 그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고, 알아차림의 호흡과 걷기를 통해서 그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우리 속의 부처님은 그저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라 실재다. …… 에너지 지대 1은 화, 에너지 지대 2는 알아차림이다. 수행이란 알아차림의 에너지로써 화의 에너지를 인지하고 안아주는 거다. 폭력 없이 부드럽게 해야 한다. 이는 우리의 화를 억누르는 행위가 아니다. 알아차림도 당신이고 화도 당신이므로, 스스로를 이들이 서로 싸우는 전쟁터로 만들면 안 된다. 알아차림은 선하고 옳고, 화는 악하고 틀렸다고 믿지 마라. …… 화는 부정적인 에너지이고 알아차림은 긍정적인 에너지라는 점만 인정하면 된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에너지를 돌보기 위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다.
자아는 비아(非我)의 요소로 구성된다. …… 당신 자신 안에는 조상, 지구, 태양, 물, 공기, 당신이 먹는 모든 음식 등, 손으로 만질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비아적 요소가 아주 많다. 이것들이 당신과 별개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들이 없으면 당신은 살 수 없다. 싸우고 있는 두 당사자들이 협상을 원하고, 양측이 자신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가정해 보자. 상대 정당, 상대의 나라, 상대 국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신, 자신의 나라, 자신의 정당, 자신의 사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아와 타자는 별개가 아니다. 왜냐하면 양측의 고통, 희망, 화는 거의 같기 때문이다.
당신이 자비와 비폭력으로써 행동할 때, ‘둘이 아님(不二性)’에 근거하여 행동할 때, 당신은 아주 강해야 한다. 이제 당신은 더 이상 화가 나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처벌하거나 비난하지도 않는다. 당신 안에서 자비심이 계속해서 성장하니 불의와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단신이었다. 그에게는 폭탄도 총도 정당도 없었다. 그는 화가 나서가 아니라 단순히 ‘둘이 아님’의 통찰력, 자비의 힘에 따라 행동했다.
알아차림의 에너지에는 통찰의 에너지와 집중의 에너지 두 가지가 있다. 집중은 우리를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주목하게 한다. 집중하면 보는 에너지는 더 강해져서, 통찰이라는 돌파구를 만들어낸다. 통찰은 항상 당신을 해방시키는 힘이 있다. 알아차림이 있고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방법을 안다면 집중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집중을 유지하는 방법을 안다면 통찰도 생긴다. 그래서 알아차림은 인지하고, 안아주고, 완화시킨다. 알아차림은 깊이 들여다보게 해서 통찰을 얻게 해준다. 통찰이 해방의 요인이다.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변화시킨다. 이것이 화를 다스리는 불교 수행법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의식 깊은 곳에 화의 씨앗을 가지고 있다. 그 씨앗에 싹이 트지 않으면 …… 당신은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 당신은 미소 짓고,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이것이 화가 당신 안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화는 당신의 마음 의식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항상 당신의 장식(藏識) 안에 있다. 누군가가 당신 안에 있는 화의 씨앗을 건드리는 행동이나 말을 하게 되면, 화는 재빨리 거실에 나타난다. 선한 수행자는 화나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사람이 아니다. 이건 불가능하다. 그는 화와 고통이 생기자마자 이것들을 잘 처리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 당신은 당신의 화를 돌보기 위해 알아차림의 씨앗을 초대한다. 알아차림의 호흡과 걷기는 여기에 도움이 된다.
최근 미국에서 대학 교수 한 사람이 플럼빌리지에 왔다. 그는 토머스 머튼과 나에 대한 책을 몹시 쓰고 싶어 했다. …… 나는 즉시 말했다. “왜 당신은 당신 자신에 관해 책을 쓰지 않습니까? …… 그것은 머튼과 나 자신에 대한 책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는 “아직 아무도 당신에 관한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대답했다. “나는 나에 관한 책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당신이 당신 자신에 관한 책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당신 자신을 불법(佛法)과 수행의 도구로 바꿔서 자유인,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해 책을 쓰세요. 그러면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깨달음은 설거지나 상추 재배와 이어져 있다. 수행이란 깊은 알아차림과 집중으로 일상의 매 순간을 사는 법을 배우는 거다. 예술 작품의 구상과 전개는 정확하게 이와 같은 우리 일상의 수많은 순간에 일어난다. 음악이나 시를 쓰기 시작하는 시간은 아기를 분만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아기를 낳자면 아기가 이미 당신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당신 안에 아기가 없다면 책상 앞에 여러 시간 앉아 있어도 분만도 생산도 불가능하다. 당신의 통찰과 자비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 능력은 당신의 수행 나무에 피는 꽃이다. 이러한 통찰과 자비심이 꽃피울 수 있도록 우리는 일상의 매 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불교도들이 매일 독송하는 《반야심경》은 지혜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다. 당신이 쓴 것도 하나의 《반야심경》이다. 다른 보살이나 부처님의 마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경이기 때문이다. …… 부디 자신의 《반야심경》을 지어 거룩한 장소에 보관하자. 그 경전을 자주 외도록 하자. 그러다가 화가 당신을 덮치고 당신이 제대로 화를 안을 수 없을 때 당신의 《반야심경》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을 집어 들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독송하자. 그러면 당장 자신으로 돌아올 것이며 고통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당신 스스로의 《반야심경》을 읽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된다.
수행자는 정말로 어머니처럼 행동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고 인류와 세상에 뭔가를 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 각자는 자기 안에 아기, 즉 아기 부처를 품고 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의 아기 부처다. 우리는 아기 부처를 잘 돌보기 위해 알아차림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진실한 러브레터를 쓰고 다른 사람과 화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부처님의 에너지다. 진실한 러브레터는 통찰, 이해심, 자비로 쓰인다. 그렇지 않으면 러브레터가 아니다. 진실한 러브레터는 상대방 안에 변화를 이루고, 그래서 세상에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 안에 변화를 이루기 전에, 당신 안에 먼저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당신은 한평생 편지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 ■
허우성 woohuh@hanmail.net
서울대학교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미국 하와이대 철학박사. 저서로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과 역서로 데이비드 로이의 《돈, 섹스, 전쟁 그리고 카르마》 《문명 정치 종교(마하트마 간디의 도덕 정치사상)》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 명예교수, 경희대 비폭력연구소 소장. 본지 편집위원.
허우성 woohu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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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 스님의 『화』가 20여 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틱낫한 스님 하면 『화』(초판 2002. 4. 3)가 연상될 정도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대중적인 문체나 용어로 번역하면서, 고유의 색깔, 즉 불교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린 측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표적인 예로, 원서의 mindfulless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마음챙김’ 혹은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자각’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이번 번역본은 이런 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 철저히 원서에 근거하여 번역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즉 원서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번역에 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국 스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이야말로 틱낫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하겠다.
이번 번역본은 이런 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 철저히 원서에 근거하여 번역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즉 원서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번역에 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국 스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이야말로 틱낫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하겠다.
출판사 소개
- 최근작 : <한국 군승제도 연구>,<주희 철학사상의 불교적 뿌리>,<정본 우리말 금강경>등 총 596종
- 대표분야 : 불교 7위 (브랜드 지수 136,029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틱낫한 스님의 『화』가 20여 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틱낫한 스님 하면 『화』(초판 2002. 4. 3)가 연상될 정도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대중적인 문체나 용어로 번역하면서, 고유의 색깔, 즉 불교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린 측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표적인 예로, 원서의 mindfulless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마음챙김’ 혹은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자각’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이번 번역본은 이런 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 철저히 원서에 근거하여 번역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즉 원서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번역에 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국 스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이야말로 틱낫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하겠다.
2.
현대인들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화(분노)’를 촉발, 촉진시키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물질주의, 이기심, 무한경쟁 등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화·절망·질투·미망 등 마음 작용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마음 작용을 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독들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화, 절망, 좌절감 등에서 벗어나 나와 상대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것은 난해하거나 깊은 이론적 공부, 극한의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로 마음챙김 수행 하나면 된다.
‘화’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화’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스님은 화는 정신적, 심리적 현상이지만, 생물학적, 생화학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즉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며,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다. 따라서 화의 뿌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에도 존재하며, 결국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등 ‘마음챙김 먹기 수행’을 하라고 한다. 스님은 이 책의 시작을 이렇게 몸을 다스리는 문제,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먹는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의외성(?)을 보여준다. 이는 곧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은 화를 어린아이와 같은,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화’도 우리의 일부라고 본다. 몸 어딘가가 아플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아픈 부위에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게 된다.
“당신의 화를 아주 부드럽게 안아주세요. 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의 아기와 같습니다. 당신의 위나 폐와 같습니다. 폐나 위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버리려 하지는 않지요. 당신의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화는 우리가 내쳐야 할 대상도,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도 아니다. 우리는 화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안아주고 미소를 보내면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챙김 수행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의 불꽃을 끄기 위해 아주 효과적인 도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음챙김 호흡과 마음챙김 걷기를 하는 방법, 화를 안아주는 방법, 우리 자신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의 특성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
좋은 가르침이란 그것을 우리의 삶에 직접 적용해서, 우리의 고통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 수행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화는 씨앗의 형태로 우리 안에 있으며, 사랑과 자비심의 씨앗도 같은 곳에 있다. 수행이란 부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지 않고,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적인 물주기’라고 표현한다.
간혹 화에 대한 잘못된 속설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일부에서 ‘화’는 발산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화를 발산할 때 그것은 화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고, 따라서 화를 발산할수록 그것은 화의 씨앗을 자라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관건은 그 화를 발산하고 상대에게 터트리느냐, 아니면 그 순간 화를 알아차리고 안아주고 미소짓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챙김 수행에 달려 있다.
3.
이처럼, 마음챙김은 화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를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다. 마음챙김은 접하고, 인지하고, 인사하고, 안아주는 것으로, 다투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마음챙김의 역할은 아픈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는 어머니와 같다. 우리 안에 있는 화는 우리가 잘 돌봐주어야 할 아기이다.
수행자는 화와 고통이 생기자마자 이것들을 잘 돌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화의 에너지가 나타날 때 화에 압도되어 지배 당하기 쉽다.
우리의 고통과 불행의 주요 원인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는 화의 씨앗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상대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상대는 오직 부수적인 요인일 뿐이다.
무언가-화(분노), 좌절, 절망 심지어는 사랑까지도-에 얽매여 있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마음챙김 수행에 있다.
이 책을 통해 ‘화’의 본성을 이해하고 ‘화’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 행복에 가까워지기를 기대한다. 접기
틱낫한 스님의 『화』가 20여 년 만에 새롭게 선보인다. 틱낫한 스님 하면 『화』(초판 2002. 4. 3)가 연상될 정도로, 이 책은 한국의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대중적인 문체나 용어로 번역하면서, 고유의 색깔, 즉 불교적인 정체성을 잊어버린 측면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대표적인 예로, 원서의 mindfulless는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에서 핵심적인 개념으로 ‘마음챙김’ 혹은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를 ‘자각’ 등으로 번역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이번 번역본은 이런 점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 철저히 원서에 근거하여 번역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즉 원서의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번역에 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하고 있는 한국 스님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번 번역본이야말로 틱낫한 스님이 전하고자 하는 가르침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하겠다.
2.
현대인들은 개인적, 사회적으로 ‘화(분노)’를 촉발, 촉진시키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의 욕망을 부추기는 물질주의, 이기심, 무한경쟁 등이 자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고,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해 틱낫한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행복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자유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화·절망·질투·미망 등 마음 작용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마음 작용을 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독들이 우리 마음에 있는 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이 책은 화, 절망, 좌절감 등에서 벗어나 나와 상대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리고 그것은 난해하거나 깊은 이론적 공부, 극한의 수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바로 마음챙김 수행 하나면 된다.
‘화’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화’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스님은 화는 정신적, 심리적 현상이지만, 생물학적, 생화학적 요소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즉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니며, 몸이 마음이고 마음이 몸이다. 따라서 화의 뿌리는 마음만이 아니라 몸에도 존재하며, 결국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어떻게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지, 자신의 몸을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 등 ‘마음챙김 먹기 수행’을 하라고 한다. 스님은 이 책의 시작을 이렇게 몸을 다스리는 문제,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먹는 문제로부터 시작하는 의외성(?)을 보여준다. 이는 곧 일상과 수행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은 화를 어린아이와 같은, 돌보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 따라서 우리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화’도 우리의 일부라고 본다. 몸 어딘가가 아플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아픈 부위에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게 된다.
“당신의 화를 아주 부드럽게 안아주세요. 화는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의 아기와 같습니다. 당신의 위나 폐와 같습니다. 폐나 위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버리려 하지는 않지요. 당신의 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화는 우리가 내쳐야 할 대상도,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도 아니다. 우리는 화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안아주고 미소를 보내면 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마음챙김 수행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의 불꽃을 끄기 위해 아주 효과적인 도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마음챙김 호흡과 마음챙김 걷기를 하는 방법, 화를 안아주는 방법, 우리 자신이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의 특성을 깊이 들여다보는 방법……”
좋은 가르침이란 그것을 우리의 삶에 직접 적용해서, 우리의 고통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마음챙김 수행은 위대한 존재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할 수 있다.
화는 씨앗의 형태로 우리 안에 있으며, 사랑과 자비심의 씨앗도 같은 곳에 있다. 수행이란 부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지 않고, 긍정적인 씨앗에 물을 주는 것이다. 이것을 ‘선택적인 물주기’라고 표현한다.
간혹 화에 대한 잘못된 속설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일부에서 ‘화’는 발산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화를 발산할 때 그것은 화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고, 따라서 화를 발산할수록 그것은 화의 씨앗을 자라게 할 뿐이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화를 내지 않을 수는 없다. 관건은 그 화를 발산하고 상대에게 터트리느냐, 아니면 그 순간 화를 알아차리고 안아주고 미소짓느냐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마음챙김 수행에 달려 있다.
3.
이처럼, 마음챙김은 화를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화를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다. 마음챙김은 접하고, 인지하고, 인사하고, 안아주는 것으로, 다투거나 억압하지 않는다. 마음챙김의 역할은 아픈 아이를 안아주고 달래는 어머니와 같다. 우리 안에 있는 화는 우리가 잘 돌봐주어야 할 아기이다.
수행자는 화와 고통이 생기자마자 이것들을 잘 돌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반면 수행하지 않는 사람은 화의 에너지가 나타날 때 화에 압도되어 지배 당하기 쉽다.
우리의 고통과 불행의 주요 원인은 상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 있는 화의 씨앗이다. 따라서 자신의 고통에 대해 상대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상대는 오직 부수적인 요인일 뿐이다.
무언가-화(분노), 좌절, 절망 심지어는 사랑까지도-에 얽매여 있으면 자유롭지 못하다. 진정으로 살아 있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진정으로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마음챙김 수행에 있다.
이 책을 통해 ‘화’의 본성을 이해하고 ‘화’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모두 행복에 가까워지기를 기대한다. 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