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4

[인도 철학 10강 제7강 생성과 존재- 되다와 있다의 철학 ]

 [인도 철학 10강 제7강 생성과 존재- 되다와 있다의 철학 ] 
崔明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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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철학 10강 제7강 생성과 존재- 되다와 있다의 철학  ] 
-있다는 것

대승불교 世親은 5세기 倶舎論에서 상키아파 초기 사상가 바리샤가나의 말을 인용.
“있는 것은 있다 없는 것은 없다. 없는 것은 생겨 나지 않고 있는 것은 멸망 하지 않는다”

이건은 因中有果 베단타의 상카라의 주장과 같음. 

상카라가 인정한 것은 현상계 일체는 허망하고 비실재적인 것이라는 것. 
그런데 인중유과의 입장에서 정말 이와같이 부정적인 결론만인가? 
[인과유과론은 원인에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것]

인간 세상이 허망하고 비실재적인 것이라는데 인간은 적극적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채 살아갈 수 있는가? 별도의 다른 차원에서 무언가 좀 더 긍정적인 의미를 발견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발상에서 종교의救済論이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다음과 같이 생각 되어지기도 하였다. 
  • 근본적인 일자는 실재한다. 
  • 실재하는 그 일자가 이 세상에 여기저기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 삼라만상이 실재하는 것이다.

일본 불교 쿠카이(空海)
영원하며 여기저기 편재하는 하나의 부처는 결여되거나 부족하거나 변하지 않고 
삼라만상은 그대로 하나의 부처 그 자체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무수한 여러 부처들은 모두 나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의 부처이다(大日如来)
이것은 샹카라가 명지에 의해서 이 세계에서 우유적인 속성이 제거 되었을 때 
자기도 세계도 모두가 본래의 브라만과 하나가 된다는 말과 같다
-된다는 것

倶舎論에서 世親이 三世実有説批判…과거 현재 미래 세가지가 존재한다는 주장.  
영원한 실재성에 대해 영원한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와 같은 영원한 실재에 과거 현재 미래 라는 구별 즉 변화가 있는가 
라는 질문하며 4명의 論者를 소개.

法救…현재 과거 미래에 존재하는 것은 (달마) 존재하는 방식의 차이는 있어도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금과 우유의 예로 비유) 실체는 불편이지만 모습, 존재 방식이 변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웃다라카 아르니와 샹카라의 설과 같다. 
접시 항아리 등은 변용된 것이고 근본은 흙이다. 이것은 転変을 말하는 사람들의 설이고 상키아파가 받아들여야 된다고 함. 
-샹카라에 의한 인중무과론 비판

브라흐마 수트라…
결과인 현상계는 원인인 브라만과 다른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다른 성전에도 나와 있다며 원인과 결과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성전의 말을 논거로 들고 있다. 
이 도리의 설명을 상카라는 우유, 흙, 금으로 비유.
요구르트로부터 우유가 만들어지는 것은 인중무과설로는 있을 수 없는 것.
나타나기 이전에 결과가 원인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인중무과설을 주장한 것은 바이시카파임. 
상카라는 이것을 비판하고 비판에 대한 반론을 상정하여 다음과 같이 말함. (바이센카파 반론상정,,,,샹카라의 주장생략)

세친은 이것은 전변転変을 주장하는 자의 설, 전변설이라 함..
실재가 그 본질을 잃어버린 일이 없고 실재로서 자기 동일성을 가지며 변화하는 것을 주장 하는 것.

상카라는 
  • 원인으로서 브라만은 영원 불변의 실재이기 때문에 그것이 변화 한다는 것은 결코 인정할 수 없는 것. 
  • 따라서 상카라에게 있어 원칙적으로 상키아파 같은 전변설은 인정할 수 없는 것. 
  • 그렇기 때문에 그는 현상 관계를 브라만의 거짓 나타남으로 표현하고 본래적으로 허망한 거라고 주장. 
  • 바이센카파를 비판하려고 금과 우유의 비유를 써도 브라만이 현상계로 변화한다라는 의미로 전변설을 그대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베단타파 속에는 변전설을 인정하고 현상계도 또한 실재라고 주장하며 상카라의 이 세상이 허망한 거라고 하는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는 사상가도 있었다
-바스카라의 Bhaskara 不一不異説 세계는 실재한다

그도 브라흐마 수트라의 주석서를 씀. 
그는 상카라를 불교의 생각과 같은 가상논자라고 비판. 
그는 원인인 브라만결과인 현상계의 관계는 불일불이로 주장.
브라만은 변전을 자성(스스로 변하는 성질)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전지 전능 하기 때문에 그 자신의 의지로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웃다라카의 영향,자기 자신을 자기가 만들었다 라는 말은 타이티리아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 

바스카라는 전지전능의 최고위의 자기(파라마토만)가세계 창조의 의지와 파괴의 원인. 파라마토만과 이슈바라와 브라만을 같은 신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

(이슈바라를 세속적인 것으로 하위에 둔 상카라와 다름) 바스카라의 브라만는 인격신적인 색채가 강함.각각의 사물에 들어있는 힘은 사람의 지로는 알 수 없다고 함. ”…브라만의 변천이 어떻게 특정될 수 있냐, 자기 의지에 의해 자기 자신을, 세계의 이익을 위해 항상 변천하는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해 변천 되는 것“

바스바라는 
  • 상카라 이전의 베단타의 전통적 생각을 가지고 (불일불이론) 
  • 상카라 의 혁신적 생각을 비판. 
  • 상식선의 비판. 바스카라의 브라만은 상카라의 인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브라만이 아니라 인간과 강하게 연결된 세계이익을 위한 인격 신임에 주의.
철학자의 신 vs 신앙자의 신 - 라마누자.(베단타 속에서도 인격신적인 요소가 강함)..

베다이래의 비슈누신을 숭배하는 일파(10세기)의 3대임. 
바가바드키타(원래는 크리슈나 바스데바를 신으로 숭배하는 종파의 성전)를 1세기경에 비슈누의 성전으로 편입. 
철학자 파스칼은 ‘아브라함,야곱,이삭의 신’과 ‘철학자, 현자의 신’을 대립 시킴.
이 구도로 보면 철학자의 신은 ‘근원적 일자, 형이상학적인 실재’..
아브라함의 신은 ‘신앙자의 신’이라고 볼 수 있다. 

인격적인 신과 비인격적인 신의 구별, 
철학자의 신은 상카라가 생각한 근원적 원리로써의 브라만, 
신앙자의 신은 바스카라의 인격신으로서 브라만, 이슈바라…
인격신을 본격적으로 베단타사상 속에 등장시킨 것이 라마누자. 

세계를 창조한 비슈누. 
그에게는 다양한 현상세계와 개인의 실재성을 인정한 다음 
어떻게 브라만 즉 비슈누의 일원성을 설명하는가가 문제.
-라마누자의 피한정자 不二一元説 양태로서의 세계

라자누마의 설은 피한정자의 불이일원론이라 불리는데 그러면 한정된 자는 누구인가? 

누가 누구에의해 한정된 것인가? 
그는 우유 등의 비유언급은 없지만 그가 남긴 각종 문헌에서 보건데 
한정된 자는 브라만. 

브라만은 個我와  세계의 제사물을 신체로서 
그 신체에 의해 한정된 자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음.

그럼 상카라와 뭐가 다른가?
라마누자는 브라만의 신체로서 존재하는 실재성이 의심없이 실감 되어져 있다는 점. 
아마 라마누자는 인과적 변화도 양태의 변화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었을 것이다.
-마드바의 이원설 二元説..모든 것은 실재이다. 

12세기 남인도의 비슈누교도. 브라흐마수트라 주석서와 바가바드기타 주석서등이 남겨져 있음. 
이원설이라 불리는 이유는 
  • 정신적인 개아와 물질적인 이 세계의 제사물이 브라만과 같은 레벨의 실재이며 영원 불멸이라고 주장. 
  • 다양한 개인과 세계의 사물의 구별이야말로 실재.

“이 세상에는 다섯 개의 구별이 있다. 
  • 個我(시바)와 신(이슈바라)의 구별. 
  • 신과 제사물의 구별, 
  • 個我와 個我 상호간의 구별, 
  • 個我와 제물질을 구별, 
  • 제물질 상호의 구별, 
그리고  이 구별은 진실재이다. ”

그럼 인간 개인의 자립성이 강해졌을 때 신과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힌두교에서 신앙의 형태를 나타내는 말‘바쿠티’가 유명. 
이 말은 信愛、献愛、誠愛、献信의 라는 말로 번역 된다. 
전신전령을 다하여 신에게 맡기는 신앙  ‘절대귀의’를 나타내는 말로 일찍부터 바가바드기타에서 보여진다.

‘바쿠티’가 종교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가바드 기타가 성립된 것 보다도 훨씬 뒤인 6세기에 들어가서 비슈누교가 퍼지고 나서임. 

‘바쿠티’에 의한 해탈을 설파한 것은 라마누자이다. 
그가 생각한 바쿠티는 개인측에서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고 
신에게 은총을 구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라마누자 이후의 슈리 바이슈나바는 ‘바쿠티’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로 분열. 
신앙을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와 
인간의 노력을 인정하지 않고 신의 은총에만 매달리는 자로 나뉘어진다. 

인도 중세와 근세에 걸친 종교사, 힌두교사의 문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