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5

알라딘: 오강남의 생각 2022

알라딘: 오강남의 생각


오강남의 생각 
오강남 (지은이)현암사2022-06-24








































미리보기

정가
18,000원

Sales Point : 1,392

9.2 100자평(1)리뷰(7)
이 책 어때요?
전자책
12,600원

392쪽

책소개

『예수는 없다』로 한국 기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오강남 교수.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명예 교수인 그가 일상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비교종교학자의 눈으로 풀어낸 책 『오강남의 생각』이 출간되었다.

오강남 교수는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종교와 사회,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왔다. 때로는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깨달음을 짤막하게, 때로는 묵직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쓴 그의 글들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으며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들을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서 오강남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대면 예배를 강행해 물의를 일으킨 몇몇 교회를 비롯해 문자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고 팬데믹 이후 여러 종교들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예측한다. 또 표층을 벗어나 진정한 깨달음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심층 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1. 기독교를 생각하며
새로운 기독교?
신비 중의 신비(玄之又玄)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고
부활절 아침에
부활 이야기-그 깊은 뜻
성경은 신화인가
천국이 어디 있는가?
천국과 김칫국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부처님 오신 날 일부 기독교인들의 행태
가짜 목사를 경계하라
종교인이 더 윤리적일까?
“생각하는 기독교인이라야 산다”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몇 가지 질문
성경과 동성애
캐나다 연합교회-열린 교회의 예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
어느 학생의 변화
동방으로부터의 선물

2. 팬데믹 시대의 종교를 생각하며
신이 문제다
신이 왜 문제인가?
좀생이 하느님?
그리스도인들의 ‘얌체 감사’
기도의 목적
팩트 체크
코로나 바이러스는 하느님의 벌이다?
코로나19 이후
믿음이 우리를 살려주는가
한국 기독교 어디로 갈까?
하느님을 시험할까 말까
집단감염의 진원지 교회
선교 – 예수님의 명령?
기독교의 선교, 미션(Mission), 사명이 무엇일까
코로나 이후의 한국 종교

3. 종교의 심층을 생각하며
종교가 무엇인가
윤리적 가치관을 가지기 위해 믿음이 필요한가?
아인슈타인의 종교관
천당과 지옥을 넘어서는 신앙
담배 피우면서 기도하기
종교가 사악해질 때
‘하나님’이 문제로다
다석 류영모 선생님
다석의 고독
기독교인인가 기독교인이 아닌가
종교의 표층과 심층 -21세기 원불교에 바란다
성덕도의 가르침
종교 선택은 신중하게
신학도들이 세계 종교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한국에는 왜 광신도가 많은가?
기독교 폭력을 없애려면
탈종교화 시대의 종교 아닌 종교
불교와 성경

4. 사회와 정치를 생각하며
포도원의 품꾼들-발상의 전환
포도원의 품꾼들-그 종교적 의미
바른 말[正語]
스스로 쟁취하는 권리
초우위 목표에 대한 인식
점을 믿을까?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을까?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
종교에서 말하는 지도자의 덕목
의사들의 진료 거부 사태를 보며
고등 교육에 빠져 있는 것
한국말 하는 외국인들
외국인 아나운서를 기용한다면
누구도 외딴 섬일 수 없다
누가 주인인가?
자동차 여행기

5. 나의 삶을 생각하며
뿌리
안동역에서
어머님의 일기장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자전적 고백

6. 떠나신 분들을 생각하며
작은 거인 정대위 박사님
안명(安命)임을 알면서도-심재룡 교수를 생각하며
『강아지 똥』 권정생 선생님
존 셸비 스퐁 신부의 부음을 듣고
틱낫한 스님과 그리스도교

7. 그 밖의 생각들
노년을 생각한다
종교학은 오늘 한국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종교다원주의를 위한 여러 가지 비유들

책을 마치며
참고 문헌
접기


책속에서


P. 40~41 심층 차원의 기독교는 하느님의 나라가 정말로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디에 있다고 할까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아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도마복음」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나라는 여러분 안에 있고, 또 여러분 밖에 있습니다”라고 하였... 더보기
P. 43~44 생각해봅시다. 고통당하고 있는 동료 인간들을 외면한 채 나 먼저 천국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면, 설령 외면하지 않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내가 천국 가는 데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이기적이고 반종교적인 마음가짐이 어디 있겠습니까? 천국이란 결코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 더보기
P. 50 어떤 역사, 과학, 사회, 정치 분야의 학문적 발전은 모두 하느님을 빼고 설명하려 노력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야의 질문에 대해서 그 대답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갖다 대면 이성과 지성의 활용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P. 80 저는 성경뿐 아니라 모든 경전은 transformation(변혁)을 위한 것이지 information(정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역사적 사실이나 과학적 정확성은 성경 저자들의 일차적 관심이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이상스러운 얼굴 그림은 인체 구조에 관한 생물학적 정보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보는 ... 더보기
P. 96 자녀 다섯 명을 가진 아버지가 있다고 합시다. 그중 둘째 아들이 병이 났습니다. 그러면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이 지금까지 자기에게 얼마나 효도했는가, 또 얼마나 열렬히 낫게 해달라고 자기에게 애원하는가에 상관하지 않고 무조건 그 아들을 병원으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이렇게 지상의 아버지마저 아들이 병들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더보기
더보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2년 6월 30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오강남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과 명예 교수. 우리 시대 대표적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 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으며,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있다.
저서로 문자주의에 빠진 한국 기독교계에 경종을 울린 명저 『예수는 없다』와 종교의 심층을 탐구한 『진짜 종교는 무엇이 다른가』를 비롯하여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 등과, 노장 사상을 풀이한 『도덕경』과 『장자』가 있다.
번역서로는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예수』,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기도』,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등이 있으며, 제17회 《코리아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접기

최근작 : <[큰글자도서] 오강남의 생각>,<오강남의 생각>,<살아 계신 예수의 비밀의 말씀> … 총 70종 (모두보기)
인터뷰 : 예수는 없지만 예수는 있다 - 2002.12.03


출판사 소개
현암사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2024 변호사시험법전>,<각본 없음>,<2024 법전 세트 - 전2권>등 총 520종
대표분야 : 철학 일반 5위 (브랜드 지수 124,032점), 음악이야기 8위 (브랜드 지수 19,775점), 불교 11위 (브랜드 지수 45,984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예수는 없다』로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기독교에 파문을 일으킨
우리 시대의 대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그가 기독교와 종교, 사회, 삶에 대해
던지는 날카로운 통찰들!

『예수는 없다』로 한국 기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근본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오강남 교수.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 종교학과 명예 교수인 그가 일상에서 만난 이야기들을 비교종교학자의 눈으로 풀어낸 책 『오강남의 생각』이 출간되었다. 오강남 교수는 평소 페이스북을 통해 종교와 사회, 삶에 관한 이야기들을 나누어왔다. 때로는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한 깨달음을 짤막하게, 때로는 묵직한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쓴 그의 글들은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으며 생산적인 토론의 장이 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을 받은 글들을 모아 정리하여 책으로 펴냈다.
이 책에서 오강남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대면 예배를 강행해 물의를 일으킨 몇몇 교회를 비롯해 문자주의에 빠져 있는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고 팬데믹 이후 여러 종교들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 예측한다. 또 표층을 벗어나 진정한 깨달음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심층 종교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에서는 자전적 고백을 통해 기독교 배경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고민하고, 심층 종교를 향해 걸어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 부분은 저자 개인의 삶이기도 하지만 종교를 불문하고 신앙을 가진 이들이라면, 그리고 자신의 종교에 대해 성찰하고 고민해본 적 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책 말미에 실린 <노년을 생각한다>에는 이제 노년에 들어선 입장에서 정신적 완성과 관련하여 노년이 어떤 시간이 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오강남 교수의 글은 언제나 명쾌한 표현과 이해하기 쉬운 비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편안함으로 독자들이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었다. 이 책 역시 오늘의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종교와 영성, 진실한 자아와 관련한 질문들에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만을 보호해주시는가?

코로나19는 우리 삶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강타했다.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던 때, 종교를 믿는 이들은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가 큰 고민이었다. 그때 몇몇 교회에서는 “하나님은 예배하러 모인 사람은 병이 걸리지 않게 보호해준다”며 대면 예배를 강행해 집단 감염의 진원지가 되는 등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오강남 교수는 하느님이 기독교인만을 특별히 더 사랑하여 코로나 상황에서도 이들만을 보호해준다는 이런 믿음은 하느님을 옹졸한 ‘좀생이 하느님’으로 만드는 믿음이라고 비판한다.
<믿음이 우리를 살려주는가>에는 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마을에 홍수가 났는데, 한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을 구해주실 것이라며 자신을 구하러 온 구호정을 세 번이나 돌려보낸다. 결국 물에 빠져 죽은 그가 하나님 앞에 가서 “나같이 믿음 좋은 사람을 구해주시지 않으면 어쩌냐”고 따지자 하나님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너한테 세 번이나 배를 보냈는데 네가 다 거절하니 어쩌겠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적적인 방법으로 도움의 손길을 뻗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코로나나 기타 재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의료진이나 당국의 지침을 잘 따르는 것, 혹은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곧 신이 보낸 구원임을 깨달아야 한다.

문자주의에서 벗어나라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중 한 명인 루돌프 불트만은 성경은 기본적으로 ‘신화적’으로 쓰였다고 주장했다. 그 신화의 껍데기를 깨고 그 속에 있는 내용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런 맹목적 믿음으로 동성애자 등 소수자를 배척하기도 한다. 저자는 한국의 기독교가 이런 문자주의에서 벗어나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한 종교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학비평가 노스럽 프라이의 “성경이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면 그것은 오로지 우연일 뿐이다”라는 말처럼 성경은 변화를 위한 것이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층 종교의 진리와 깨침은 너무나 엄청나고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말로 다 형용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 일부라도 전달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상징적, 은유적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성경을 비롯한 많은 종교 경전들이 상징과 비유가 담긴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한 특성과 그것이 쓰인 시대적 배경을 무시하고 ‘성경에 쓰여 있는 대로’만 해야 한다고 하면, 그 사람은 부모의 깊은 뜻을 생각하지 못하고 강가에 묻어달라는 유언대로 강가에 부모의 묘를 쓴 ‘청개구리’나 다름없다.

성경에 나와 있다고 그 말의 전후 문맥이나 역사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문자 그대로 진리라고 믿어야 하는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노예제도를 묵인하는 것, 남녀차별을 당연시하는 것,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것, 인권을 무시하는 것, 돼지고기나 바닷가재 등은 먹지 말라는 것, 인종차별을 종용하는 듯한 것, 아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 입다의 경우처럼 딸을 죽이는 것, 장애인은 성전에 접근하지 말라는 것 등등 요즘의 고양된 가치관이나 의식구조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런 말들이 성경에 있다고 해서 무조건 그대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107쪽)

타인을 존중하고 윤리적인 시민이 되기 위하여

한국에는 유독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광신도가 많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 종교만 옳다고 하는 배타적 태도를 취한다. 아마도 일반 신도의 경우 대부분 자신들이 다니는 특정 종교의 성직자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그 말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종교만 옳다고 고집하는 ‘종교 문맹’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세계의 종교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 원만한 인성을 가진 훌륭한 시민을 키워내기 위해 윤리적 삶에 관한 과목들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미국의 연구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에서 ‘윤리적이 되기 위해 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경제와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일수록 ‘필요 없다’는 대답이 높게 나온 것이다. 북유럽과 서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70퍼센트 이상이 ‘신에 대한 믿음이 필요 없다’고 대답했다. 서방 세계 중에서는 미국이 ‘필요 없다’고 답한 사람이 54퍼센트로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했는데, 아마도 기독교인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필 주커먼은 전통 종교가 없으면 없을수록 더 윤리적이 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5대 범죄 도시가 모두 이른바 남부의 기독교의 영향이 큰 지역인 바이블 벨트(Bible Belt)에 속한 도시들이고, 미국 교도소 수감자 가운데 무신론자는 0.5퍼센트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종교인이 더 윤리적일까?’ 하는 질문에 결코 그렇다고 할 수 없어 보인다. 티베트 불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도 이제 인류는 개별 종교들이 제시하는 종교적 윤리가 아니라 종교와 관계없이 인간의 내면적 양심에 근거한 ‘세속적’ 윤리를 계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과응보 때문이 아니라 윤리적 삶 자체가 기쁨이라는 의식을 북돋워주는 성숙한 종교, 심층적 종교가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진리를 찾기 위한 인생의 여정

이 책에는 오강남 교수의 신학적 고백이 담긴 <내 생애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이란 글도 실려 있다. 평생 학자로서 종교와 관련된 책들을 써온 저자가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정신적 눈뜸’의 순간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신학은 자전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도 있을 만큼 어떤 사람이 왜 그런 신학적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가는 그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오강남 교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를 다니면서 자랐지만,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한국 개신교를 비판해왔다. 그가 그렇게 변화한 것은 성경을 공부할수록 더욱더 많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점차 성경 속의 이야기들이 글자 그대로 맞을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 그는 대학을 진학하면서 신학이 아닌 종교학을 택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폴 틸리히라는 신학자도 말했듯 ‘존재’라는 것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신이 존재한다면 그 신은 이미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은 완전히 없다고 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신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석 류영모의 말을 따르면 신은 ‘없이 계신 이’이다.
이후 서양 종교와 동양 종교를 둘 다 공부하며 불교의 ‘공(空)’ 사상에 빠져든다. 절대적인 것에는 인간의 사견이 들어갈 수 없기에 ‘텅 빈 상태’라는 공 사상과 더불어 여러 종교들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깨침’을 이해하면서 “종교라는 것이 결국 교리나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체험과 깨달음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에 대한 것으로 정리된다.

종교가 외면받는 시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세계적으로 탈종교화는 이미 멈출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 역시 경제와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탈종교화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탈종교화’라고 해서 종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강남 교수는 개인의 이익만을 기원하는 ‘표층 종교’가 점차 줄어들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나’를 찾고자 하는 ‘심층 종교’가 많은 이들에게 점점 다가갈 것으로 본다. ‘영성(spirituality)’을 중시하는 최근 젊은이들의 경향도 이 현상의 한 증거다.
종교학자는 사람들을 에베레스트산으로 직접 인도해 가는 이는 아니다. 그러나 산 정상에 올라갔다 온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고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구해서 그들이 어떤 장비를 가지고 어떤 루트를 통해서 어떻게 올라갔는가 하는 것은 알게 된 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것이다.
『오강남의 생각』은 종교를 믿는 이들에게는 지금의 종교를 어떻게 해야 올바르게 믿을 수 있는지 안내하고, 종교를 믿지 않지만 성숙한 인간으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려준다. 기존 종교들이 말하는 고정관념에 갇혀 답답함을 느꼈던 이들에게 새로운 깨달음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접기



구매자 (1)
전체 (1)
공감순







저자가 머리말에서 양해를 구한 대로, 기존에 발표한 글들을 모아놓은 관계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만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는 책. 저자의 책을 겨속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무척 신선하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bongsun 2022-07-17 공감 (3) 댓글 (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구매자 (3)
전체 (7)
리뷰쓰기
공감순




종교, 신비를 감지하는 감수성(출처 : 인문공간 세종)






이런 게 종교라면

나는 비종교인이다. 대학 다닐 때 학생 식당이든 어디든 내가 혼자 있기만 하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성경공부를 권하는 사람들의 공격적이고 집요한 전도 방식, 예수천국 불신지옥 같은 단선적이고 선정적인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가톨릭은 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서른 즈음에는 성당에 다닌 적도 있는데 성당 앞 온갖 소원 내용이 담긴 포스트-잇을 읽어보다가 피식 웃음이 났다. 모 빌딩 203호가 몇 달째 비어 있으니 임차인을 구해달라거나(월세를 내리면 간단할 것을) 늘푸른 고등학교 3학년 몇 반 아무개가 무슨 대학 무슨 과에 합격 하게 해달라거나(기도를 안한 애는 그 이유로 불합격해도 좋은가) 하는 아주 구체적이고 기복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서로 사랑하게 해달라거나 힘든 이웃에게 힘을 달라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하나님이 공인중개사나 입학 컨설턴트도 아니고 무척 머리가 아프거나 바쁘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쟁 중인 이슬람 국가 아프가니스탄에 기독교를 선교하러 간 기사를 접하고는 해당 교인들의 행동이 무모하거나 무례하게 느껴졌다. 최근 코로나 팬데믹에도 신천지 등 교회가 집회를 강행해서 교회를 집단감염의 진원지로 만들고 광화문의 기독교인 집회가 정치 권력을 행사하는 과격한 교회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도 나에게 종교에 대한 혐오를 강화시켰던 것 같다.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 코로나가 왔다는 말을 들을 때면 이러면 하나님은 뭐가 되나 한숨이 나왔다. 헌금을 둘러싼 지저분한 이권 싸움, 교회를 목사 아들에게 증여하는 등 신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쓰는 흔한 소식도 종교 혐오에 한몫했던 것 같다. 신에게 복을 빌고 한편으로 신의 겁박에 두려움으로 떨며 자기만 옳고, 자기만 잘살자고 하는 것이 종교라면, 종교가 왜 필요한가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오강남 선생님의 책을 읽고보니 나처럼 뜨악한 경험을 통해 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유럽, 미국, 우리나라 등 전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비종교인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선생님은 『오강남의 생각』에서 편협하고 기복적인 종교를 비판하고 종교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말씀하신다. 문제는 애꿎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며 그 의미를 호도하는 자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이 문제라기보다 신에 대한 인간들의 낡은 생각이 문제이다. 진정한 종교란 서로 미워하고 자기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가 서로 엮여 상호작용하고 있는 신비를 깨닫는 감수성으로 비움이라는 자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한다.




상호 연관이라는 우주의 신비

오강남 선생님은 주위를 둘러보면 만물이 서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 서로 연결된 것이 바로 우주의 신비라고 한다. 그 예로 먹는 밥 하나에도 벼를 키우기 위한 땅, 물, 공기, 해, 농부, 농부의 조상, 농기구,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과 쇠붙이, 그 쇠붙이를 만들기 위한 광부와 불 등이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든다. 쌀 한 톨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고, 내 속에도 우주가 다 들어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는 신비로움을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나 혼자 산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리학자이자 깊은 종교심을 가졌던 아인슈타인도 지성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간접적이고 여린 그림자로만 다가오는 아름답고 숭고한 신비로움을 감지하는 것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심오한 경험이라고 했다. 종교의 핵심은 만물이 서로 연관되어 있고 모두가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의 일부임을 아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참된 종교인이라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감사하다는 ‘얌체 감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참된 종교인은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고, 이때 자비(compassion)는 영어로 함께(com) 아파함(passion) 즉 ‘공감능력’을 뜻한다. 나와 세계가 연결되어 있고 나도 그 세계의 일부분이라면 ‘나 혼자에게만’ 행운이 찾아오고 불행은 비켜가라 빌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갈 방식을 찾고 공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 지점에서, ‘어느 누구도 외딴 섬일 수는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 종교란 나의 행복과 안위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이도 외딴 섬일 수 없이 서로 연결된 망에 있음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갖는 것이다.



정보(information)대신 변화(transformation), 비움

오강남 선생님은 종교의 문자주의를 청개구리식 해석이라고 비판하고 시대적, 문헌적 맥락을 파악할 것을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날마다 죽노라’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덤을 오가는 것이 아니라 매일 영적 죽음과 부활의 기쁨을 누리는 삶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만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면 단순히 동성애만 반대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서 지시한대로 동성애자들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 성경은 동성애뿐만 아니라 다른 행위들도 금지하는 조항이 많은데 선별적으로 다른 조항은 무시하고 동성애만 금지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맥락이 중요한데 성경이 명한 동성애금지는 당시 어린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성적 쾌감으로 삼던 관행을 금지를 뜻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종교가 상호연결된 우주의 신비, 자기 변화, 비움을 깨닫고 찾는 일이라면 나도 기꺼이, 그리고 절실히 종교를 공부하고 탐구하고 싶어졌다. 불교는 부처라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부처라는 스승에게 배우는 종교라는 말도 생각났다. 오강남 선생님은 현실적으로 생각보다 별로 기독교인이 성경을 읽지 않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 기독교도 예수를 일단 믿으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성경을 많이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하고 배우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포도원의 주인 구절 해석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임금 노동자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당 노력을 배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배려, 발상의 전환, 가치 전도, 역지사지의 원리가 작동하는 곳일 것이다.

선생님께서 책 들어가는 글에서 처음 인용하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 선생님의 말씀이 인상 깊다. 오강남 선생님은 우연히 만난 종교를 절대화해서는 안된다고, 어디에 태어났다는 것이 곧바로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특정 종교를 결정하는 이유가 된다면 백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KKK단원이 된 것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반문한다. 종교는 우연히,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또는 어떤 일을 계기로 무조건 거부하기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관찰하고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은 “생각”이 바로 자기변화를 이끌기 위한 감수성을 깨우는 시작이 아닐까.
- 접기
아바 2023-04-04 공감(8) 댓글(0)
Thanks to
공감



오강남의 생각

저자는 기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종교학자다. 물론 주장하는 바는 기독교라는 종교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최근 몇년 전부터는 모든 종교를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로 대별하여 심층종교로 나아가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는 것으로 안다. 대별하는 기준은 기복을 비는 행위로 믿거나, 해당 종교의 정경을 문자주의 적으로 믿으며 행동하는 것을 표층종교라 하였으며, 심층종교는 그런 문자주의적인 이해를 넘어 변화(transformation)을 추구하는 것이라 한다. 일반적인 상식선에 맞지 않는 종교인들을 제외하고 그들의 교리를 상세히 보다 보면 결국에는 그너머에서 추구하는 상이 유사하다는 것에서는 동의 할 수 있다.

처음 80여페이지까지는 기독교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데, 난 기독교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다. 책에서 짚은 것과 같은 이유로 그러한 것이다. 저자가 책 속에서 아버지가 아들이 효도를 안한다고 벌을 주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물론 현실에서도 그러한 아버지가 있을 수 있으며 말한 효도가 어떤 내용인지 생각해봐야 할 수도 있겠다. 허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벌을 내리는. 신을 나는 상정할 수 없다. 그렇게 편협한 신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권역에서 일하는 상인들에게 보호를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저자는 이러한 점을 눈치 채고 어릴 적부터 문자주의적 이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데 저런 식의 믿음을 가지고 전도랍시고 시도를 하는 교인들은 어떤 이들이란 말인가.

책은 저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에 적은 글들을 모아 낸 책이라 한다. 눈여겨볼만한 내용들도 있었지만, 종교라는 관심사에서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흥미가 없는 점도 있으며, 공간한 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싶은 만큼 신변잡기의 내용도 좀 있으며, 종교인(종교학자도 종교인이라 치는가?) 특유의 착한 헛소리도 있다.

- 접기
가넷 2023-10-30 공감(3) 댓글(0)

Thanks to
공감



오강남 선생님 책 보고 신선한 충격 그리고 시선집중

[출처: 인문공간 세종]
아무것도 모르던 청소년 시절에 교회를 친구의 강력한 추천으로 같이 간 적 있었다. 그때의 주된 목적은 기도하고 나면 맛있는 과자, 초코파이를 준다는 말에 솔깃해서 먹었던 추억이 있었다. 당시 기억으로는 오직 하나님을 믿고 기도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기도하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 있다. 그래서 꾸준하게 성경 공부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하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그래야 천국 간다고 매번 강조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나도 모르게 바쁘다는 핑계로 교회와 떨어져 지냈다.
오강남 선생님의 최근 『오강남의 생각』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통쾌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얘기해주시다니! 읽으면서 지루함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다 읽었다.

신 없는 사회
유럽에서는 교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유럽 중에서도 북유럽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국가들은 ‘신 없는 사회’로 가고 있다고 한다. 많은 신학자들이나 문명비평가들은 옛 재래식 기독교는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잃었다고 한다. 이것은 북유럽의 타락을 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미신에 가까운 기독교 교리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들의 나라의 범죄율을 보면 세상에서 다른 나라와 비교 했을 때 가장 훌륭하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기독교가 사회에 공헌을 해야 함에도 적지 않은 교인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 기독교가 어느 면에서 역기능으로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을 표방하는 교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아니라 오히려‘사랑’을 가져다주는 웃지 못할 비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한국에 기독교의 본질을 망각한 기형적 기독교가 급성장하는 것은 세계인들에게 수치스러운이라고. 『오강남의 생각』 P.115
신 없는 사회로 가고 있는 북유럽의 사례를 통해서 우리도 한번 깊게 생각해야 한다.

종교의 사악과 무지 확신
학창시절 영어를 배우겠다고 금발의 백인 선교사를 만난 적이 있다. 성경을 통해서 프리토킹도 하면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때 통역해주시는 한국인 선생님도 있었다. 매번 강조하면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절대로 감리교회, 기독교교회, 일요일에 가는 교회 믿으면 안 된다. 그런 곳에 가면 천국에 갈 수 없다. 오직 토요일만 예배하는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교회이다. 그때는 “알겠습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근본주의 그룹은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를 차지도 않지만 그 자체로 폭력이다.” “근본주의자가 가진 정신적 구조는 신의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다.”(p157) 이 말씀은 2014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다.
자기 종교만의 진리이고, 믿음을 강요하는 종교, 타 종교를 배척하는 행위도 역시 근본주의 종교이다.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하지 않았지만, 신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나를 설득 시키려고 했던 그들의 말들이 하나의 폭력이라니! 지금 생각해서 보니 이게 어쩌면 가장 무서운 폭력이다면 소름이 끼친다.
재미있는 사실은 사악해 지는 요인과 교단이 성장하는 요인과 겹친다는 것이다. 브루스 바워 등 몇몇 종교학자들은 교단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5가지 언급한다.
1. 교리의 절대화
2. 획일적인 행동 강령
3. 무조건적인 순종
4. 철통같은 소속감,
5. 열렬한 전도열
위에 5가지를 보면 우리가 증오하는 공산주의보다 완전한 억압이 아닐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해야될지 고민을 안 해볼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지한 자의 확신과 그 확신에 근거한 행동이라고 하는데, 확신 중에 가장 강력한 확신은 자기가 신의 명령이나 계시를 받았다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강남의 생각』 P.115
미국의 43대 대통령 조지 W.부시는 2001년 9.11 사건을 빌미로 이라크를 침공하게 된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조지 W.부시는 감리교 신자이면서 빌리 그레이엄 목사에 의해서 크리스천으로 변신하게 된다. 침공 결정할 당시 기자들이 아버지와 상의를 해보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나는 나의 아버지보다 하늘 아버지와 상의한다.”라고 했다. 하남의 말씀이고 명령이라니! 이런 확신 때문에 전쟁을 일으키다니 충격적이지 아닐 수 없다.
- 접기
행복을만드는나 2023-04-04 공감(3) 댓글(0)
Thanks to
공감



내 곁에 있어야 하는 종교(출처 : 인문공간 세종)



표층 종교는 지금의 내가 잘되기 위해 믿는 종교라면 심층 종교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나를 찾고자 하는 종교입니다.

표층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반면 심층 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합니다.

표층 종교는 경전의 문자에 매달리는 문자주의라면 심층 종교는 문자 너머에 있는 속내를 꿰뚫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표층 종교는 절대자를 나의 밖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심층 종교는 나의 밖에서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찾습니다.

표층 종교는 주로 내세 중심적이지만 심층 종교는 ‘지금 여기’에서 의미 있는 삶, 환희와 기쁨의 삶을 강조합니다.

표층 종교는 모든 사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반면 심층 종교는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결되고 의존되어 있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라고 믿습니다. (132)



오강남 선생님의 『생각』을 읽으며, 교회나 절에 가지 않더라도 종교 없는 종교 생활이 가능하겠구나 하는 ‘위안’이 들었다. 나는 종교가 참 좋아 보였다. 어린 시절 엄마 따라 절에서 잠을 자고 절 밥을 얻어먹는 추억도 떠오르고, 엄마가 부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는다. 엄마를 보노라면 종교가 주는 위안은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자식 잘 되라고 맞춤법이 전혀 맞지 않는 글씨로 노트에 빼곡히 주문과 같은 글을 쓰다가, 본인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인생의 우여곡절들이 받아들여지면서 편안해지셨다고 했다. 엄마에게 부처님은 투철한 종교 대상이 아니었던 듯 누굴 전도하거나 자식들더러 부처님을 믿으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단지 가족들의 안녕을 구할 신을 찾다가 가까이 있는 절에 다니게 되었고, 절에 다니다 보니 쉬기도 하고 가족들에 대한 부담감에 짓눌릴 때 부처님에게 떠넘기기도 하면서 힘이 생기더라고 했다. 엄마에게 부처님은 든든한 속풀이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편안함과 안정감이 자식인 우리에게도 전해지는지 엄마가 절에 갔다 오면 그냥 좋았다.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아 ‘엄마 또 언제 가냐’고 묻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종교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엄마 말마따나 부처님을 보고 나면 ‘마음이 개운허지야’ 때문이다. 누군가가 진짜 마음이 개운해지면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이 풀리고 그 사람이 말이 참말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심층 종교로 향하고 있는지는 저절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표층 종교인에게 볼 수 없는 내면의 변화가 있고, 이것이 전염되기 때문이다.









어느 국장님의 정년퇴임식이 생각난다. 정년을 마치는 자리에 후배들과 가족들과 직원들이 초대되는지라 보통은 30년 넘게 무탈하게 직장을 다니게 해준 배우자나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데, 글쎄 이분은 고마운 것도 하느님에게 고맙고, 퇴임사 내내 교회 다니라는 이야기만 해서 눈살을 찌푸린 적이 있다. 그때 종교가 참 무섭구나를 느꼈는데,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표층 종교였던 것이다. 심층 종교는 영성을 강조한다고 했다. 영성을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지식이 아니라 자연지(自然智)인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지혜가 필요한 이유가 때에 맞게 말하고 처신하며 주기를 타고 변화를 도모하게 하기 때문이다. 오강남 선생님은 ‘종교라는 것이 결국 교리나 믿음의 문제라기보다 체험과 깨달음의 문제’라고 했다. 바로 이 자리에서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 체험하고 깨달은 것을 전하기 위해 종교가 영성이 지혜가 필요했던 것이다.
- 접기
세종에달보러오소 2023-04-04 공감(2) 댓글(0)
Thanks to
공감



표층 종교에서 심층 종교로



예수님은 가끔 광야에 나갔다. 세속적인 문명, 도그마에 사로잡힌 종교로부터 멀리 떨어진 ‘빈 들(Remote place)’로 나간 것이다. 세례 요한이 유대교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광야의 쿰란으로 간 이유도 이와 같다. 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관습으로부터 떠나는 것 자체가 부패한 종교와 관습에 대한 대안일 때도 있다. 부조리한 모습이 보일 때 떠나기도 하지만 떠나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래서 교단을 떠났다. 떠나오니 더 잘 보인다.



떠나오니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비본질인지 알맹이와 껍데기가 구별된다. 성경을 성경으로 읽을 때보다 장자와 노자를 통해 읽을 때 더 은혜가 된다. 역사와 철학과 심리학과 문학으로 성경을 읽으니 그 세계가 더 깊고 넓다. 문자 너머에 있는 말씀의 신비가 파동치는 것을 느낀다. 그 말씀은 문자로 된 성서의 외피를 뚫고 들어가 우주의 심연에서 울리는 징 소리를 들려준다. 수백만 광년 사이에 흐르는 셀 수 없는 별들과 은하(空 Space), 그리고 물질의 최소단위인 원자까지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파장 안에 있다. 세계는 나뉘고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구성체다. 이것이 내가 새롭게 읽은 탈교리화된 성경이다.



그런데 반갑게도 이러한 생각의 지평을 오강남 교수님이 펼치고 있다. 오강남 교수님은 종교를 표층 종교와 심층 종교로 분류하고 제도와 교리로 사람을 구속하고 그것으로 교단이나 개인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를 표층 종교라고 한다. 이런 표층 종교는 기복 중심의 종교다. 이에 반해 심층종교는 내면을 들여다 보고 참나를 찾고자 하는 종료라고 정의한다.



혐오와 배제의 도그마를 넘어 관용과 포용, 환대와 사랑으로 풍성한 연대를 이루는 게 심층 종교다. 그것이 이 세계를 구원할 종교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이게 답이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고민한 문제가 이것이다. 기독교가 구원의 종교라고 떠드는데, 왜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에 혐오와 배제가 그토록 심했는가. 교회가 있는 곳에 왜 전쟁과 학살이 끊이질 않는가. 기독교가 득세한 곳에 왜 불평등과 계급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가. 기독교가 표층 종교화됐기 때문이다.



기독교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에 대해 오강남 교수님은 같은 논의를 이어간다. 종교가 세계와 인간의 심층을 보게 될 때 이 세계의 불평등과 전쟁 같은 부조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사회의 일부 집단에 불과하지만 사람의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그 어느 집단보다 크다. 종교가 썩으면 그 사회 전체가 부패하고 인간은 타락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과 사회에 끔찍한 재앙이다. 마녀사냥, 십자군 전쟁, 탈레반 같은 외적인 재앙뿐만 아니라 정상 사회에 배제와 혐오 같은 바이러스가 신의 이름으로 번식하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사람을 병들게 하고 세계를 부패하게 만든다. 그것은 종교가 신의 이름으로 배양하는 악성 종양이다.



난 제도권 교회, 교리화된 교단 밖에서 예수님의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지금 읽은 <오강남의 생각>이다. 오후에 책을 받고 밤 늦은 시간까지 단숨에 읽었다. 이미 페북을 통해 접한 짧은 에세이들인데도 새롭고 신선하다. 마음에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이야기와 맥락이 흘러간다. 쉽게 읽히면서도 성찰적 즐거움과 깊은 사유를 경험하게 하는 책이다.



오강남 교수는 보수 기독교인들로부터 비판받는 분이다. 하지만 그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읽어보지도 않고 교단이나 교리적 이해 가운데 분리하고 혐오하는 정서에 편입돼서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목소리 높이는 사람들이 많다. 읽어보고 비판하는 자와 읽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비판하는 사람, 읽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들이 있다. 어떤 식으로 책을 읽든, 책을 읽고 비판하든 동의하든 그것은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우선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권고한다. 지성적인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는 QT 책으로도 손색이 없다. 챕터들이 매우 짧고 간결하다. 하지만 깊이 있는 사유와 통찰로 종교를 넘어 세계와 인간의 문제를 꿰뚫고 있다. 바쁜 일상에서 하루에 한 꼭지씩 읽고 깊이 생각하며 QT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1. 표층 종교는 지금의 내가 잘되기 위해 믿는 종료라면 심층 종교는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참나를 찾고자 하는 종교입니다.
2. 표층 종교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조하는 반면 심층 종교는 이해와 깨달음을 중요시 합니다.
3. 표층 종교는 경전의 문자에 매달리는 문자주의라면 심층 종교는 문자 너머에 있는 속내를 꿰뚫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4. 표층 종교는 절대자를 나의 밖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심층 종교는 나의 밖에서뿐만 아니라 내 안에서도 찾습니다.
5. 표층 종교는 주로 내세 중심적이지만 심층 종교는 ‘지금 여기‘에서의 의미 있는 삶, 환희와 기쁨의 삶을 강조합니다.
6. 표층 종교는 모든 사물이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믿는 반면 심층 종교는 모든 것이 서로서로 연결되고 의존되어 있고, 근본적으로는 ‘하나‘라고 믿습니다.

p. 132 ‘코로나 이후의 한국 종교‘ 중


- 접기
복숭아악당 2022-07-26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