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3

인중유과와 인중무과에 대한 단상

 인중무과론 因中無果論 :
인도 철학에서, 
  • 결과가 원인 속에 내재하지 아니한다는 이론
  • 원자들의 결합에 의하여 최초의 원인인 원자들과는 전혀 다른 현상 세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인중유과와 인중무과에 대한 단상 : 네이버 블로그

인중유과와 인중무과에 대한 단상  파천 단상   
2011. 6. 12. 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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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중유과(因中有果)인중무과(因中無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지 제법 되었는데, 찾아보니 정리한 것을 올리지 않았더군요. 요지는 간단합니다. 

인과의 그침 없는 상태,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즉시, 분별이 생겨나고 명색(名色, 형이상학적 개념자와 그 대상)으로 정의될 경우, 그침없는 인연, 연기 자체의 정의와 모순된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인중무과는 그래도 이해하기 쉬워보입니다만 인중유과와 인과를 동일시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조건이 되는 것과 함께 작용할 때만 인과는 성립하지 원인 그 자체가 그 결과가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인중유과 또한 분별에 따른 정의라 보입니다.



 약간 속되지만  똥에 대한 비유를 통해서 이것을 종종 설명하고는 합니다. 
인중유과의 경우는 똥을 먹으라고 합니다. '원인 속에 결과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밥과 똥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인중무과의 경우는 굶으라고 합니다. 원인 중에 결과가 없으므로 굳이 밥을 먹고 똥을 눌 필요는 없지요.



  이 비유에서 강조하는 바는 밥을 먹는 행위소화 작용, 그리고 그 밥의 내용 등 어느 것 하나도 빼놓지 않아야만 '밥을 먹으면 똥이 나온다'는 인과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조건을 빼놓고는 인과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인중유과/인중무과 그럴싸한 표현이지만 결국은 인과의 그침을 나눈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용수의 사유>에 나오는 이 부분을 옮겨둡니다.

담정 _()_



앞에서 용수의 사유의 근거가 되는 ‘8불 중도 연기사상’의 그림에서 살펴보았듯, 
연기(운동성)가 의존적이며 조건적이라는 점에서 용수의 철학적 사유는 확실하게 변증법과 유사성을 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교적 연기사상에서 원인과 결과[因課, hetu phala]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 봐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특정한 원인이 아닌 모든 보편적 원인과 조건이 가진 총체성에 의해서 어떤 한 행위자의 업(業, karma)이 발생하기 때문에,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이나 ‘인중무과론(因中無果論)’ 등 힌두의 6파 철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는 용수에게 비판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불생(不生, 새로 발생할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하여 설명하겠다. 여러 논사(論師)들은 사물이 생기는 과정[相]에 대하여 갖가지로 설명한다. (원인에서 결과가 생긴다고 할 때) 어떤 이는 <원인과 결과가 동일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원인과 결과가 다르다.>고 하며 어떤 이는 <원인 속에 이미 결과가 내제해 있다[因中有果].>라고 하고 어떤 이는 <원인 속에 결과가 내재해 있지 않다[因中無果].>라고 하며, 어떤 이는 <자기 스스로 생(生)한다.>라고 하고…….’

 

청목이 <중론>의 「제1관인연(觀因緣)품」에서 예를 들어 보인 이와 같은 원인과 결과에 대한 상호 관계성 가운데, 어느 한 쪽에 강조점을 찍으면 그것은 다시 상견과 단견으로 빠진다. 오직 ‘8불 중도’가 가르쳐 주는 총체적인 부정형만이 이를 피할 수 있게 한다. 이와 같은 특징으로 인해 사물의 현상과 이를 묘사한 개념의 변화가 가지는 서구 변증법과 불교적 인과 개념은 유사성을 갖고 있으나 결코 동일한 종류가 아니다. 중관사상은 논리 이전으로 돌아가 ‘고통에서의 해방’이라는 붓다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을 강조하지, 결코 인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용에 대한 각주는,



김성철 (역), <중론>, p. 30. 김성철의 각주에 따르면, 인중유과론은 힌두 6파 철학의 상키아(saṃkya)와 베단따(Vedānta) 학파의 세계관이며 인중무과론은 ‘바이셰쉬까(Vaiśeṣika)’의 세계관이라고 한다. 김성철 역에 의하면 <중론>에는 이 인중유과와 인중무과에 대해 「제5관오음품」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게송, 「제15관유무품」의 열 번째 게송의 청목소를 예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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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유과
#인중무과
#모두틀렸다
[출처] 인중유과와 인중무과에 대한 단상|작성자 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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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까라의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에 대한 한 해석
An Interpretation of Satkāryavāda in Śaṅkara

인도철학 학술저널
인도철학 제44호  2015.1 45 - 73 (29page)
박효엽

초록·

베단따를 체계화한 샹까라는 상크야 학파처럼 인중유과론(satkārya-vāda)을 ‘결과가 원인에 미리 존재하는 것’, ‘물질적 원인과 그 결과가 동일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그는 상크야 학파처럼 결과란 원인 속에서 미리 존재하지만 미현현인 상태이다가 단지 현현인 상태로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샹까라에게 인중유과론은 창조나 생성에 관한 이론이자 실재와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에 관한 이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샹까라의 인중유과론은 실재와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보다 ‘의존관계’를 지시하는 편에 가깝다. 이 경우에 의존되는 실재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인 반면에, 의존하는 현상이란 ‘원인에 의존한 채로 현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존관계는 그의 핵심 개념인 ‘본질의 동일성’(tādātmya) 또는 ‘실재의 유일성’을 통해 더욱 명료하게 확인된다. 

그런데 샹까라에게 인과이론이란 경험적 영역에 속하는 ‘관계’를 통해 실재적 영역에 속하는 ‘무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즉 인과관계도 의존관계도 수행론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샹까라의 체계는 인과관계에서 시작하여 인과관계를 벗어남으로써 끝나는데, 
이는 ‘의존적인 속박의 삶’으로부터 ‘자립적인 자유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전환에 인중유과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How does Śaṅkara, a great philosopher of Advaita Vedānta, understand the problem of satkāryavāda, i.e., the theory of preexistence of the effect in its cause? Although satkāryavāda was organized by Sāṃkhya School ahead of his age, it is very useful to get a glimpse of the way he accepts this theory in his period, since the importance of his position as well as of the problem of satkāryavāda in the history of Indian philosophy cannot be emphasized enough. Specially, to know the way he makes use of satkāryavāda in his system provides indirectly a valuable information about the origin and purpose of that very theory. Śaṅkara makes out like Sāṃkhya School that satkāryavāda is ‘preexistence of the effect in its cause’, ‘identity of the material cause with its effect’. Besides, he is of the opinion like Sāṃkhya School that the effect is nothing but a manifest transformation of the unmanifest cause. Thus satkāryavāda of Śaṅkara must be the theory of creation or production and that of causal relationship between reality and appearance. However, his satkāryavāda is better to be regarded as ‘dependent relationship’ than ‘causal relationship’ of reality and appearance. In this case, reality or the ground of being dependent on is that which exists by itself, while appearance to be dependent on is that which is manifested being dependent on the cause. And this dependent relationship is to be distinctly confirmed by his key-concept of ‘tādātmya’ or ‘oneness of reality’. And yet, the causal theory of Śaṅkara is a mere device to go forward ‘non-relationship’ belonging to the transcendental realm through ‘relationship’ belonging to the empirical realm. In other words, causal relationship and dependent relationship are no more than an indispensable device for the area of practice. In short, as the system of Śaṅkara starts from recognizing causal relationship and ends in escaping from it, so this process means a conversion from the life of being dependent on or Bondage to that of being independent of or Freedom. In this very conversion satkāryavāda plays an important ro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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