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1

崔明淑 - [제8 강 말과 존재 : 말은 브라만이다] 바르토리하리Bhartrhari ”변용은 말에 의한 파악이고... | Facebook

崔明淑 - [제8 강 말과 존재 : 말은 브라만이다] 바르토리하리Bhartrhari ”변용은 말에 의한 파악이고... | Facebook
崔明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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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 강 말과 존재 : 말은 브라만이다]

바르토리하리Bhartrhari

”변용은 말에 의한 파악이고 명명이다.  ‘흙이다’만이 진실이다“웃다라카아르니의 말인데 상카라가 이것을 받아들여 모든 현상계는 언어에 의한 파악이고 명명이며 그렇기 때문에 허망하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뭔가 갑자기 등장하는 느낌. 그래서 바르토리하리를 살펴 보겠다. 바르토리하리는 5세기의 북인도에서 활약한 시인이자 문법학자.  문법학은 베다성전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보조학. 당나라 의정 (634-713)은 인도 여행기에 바르토리하리가 죽고 40년 지났다라고 언급. 그렇지만 그것은 잘못된 것임. 그러나 7세기는 인도 사상사중 가장 화려한 시대
말은 불변의 실체를 지시 한다

바르토리하리의 “문장 단어론” ’말은 불변의 실체를 지시한다‘여기서 말하는 실체는 브라만. ’금은 여러 형상에 의해 개별화. 반지 팔찌 귀걸이 등 명칭으로 지시되는 것으로 결국은 되는 것이다’ ‘형상은 웃다라카의 말을 빌리면 말에 의한 파악이고 명명이다‘ 바르토리하리는 파탄잘리가 만든 대주해서의 영향이다“……실체는 같고 형상은 부서져도 변함 없는 실체 그대로 ” 대주해서는 바르토리하리만이 아니라 인도 전통적 철학자 누구에게나 영향을 줌, 파탄잘리는 금의 비유에 앞서 흙으로 항아리, 접시…의 비유도 언급 했기 때문에 웃다라카아르니의 가르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음은 틀림 없다. 사상의 전통이라는 것은 면면히 이어지는 것.

지시와 의미

말은 항상 불변의 실체를 지시한다. 여기의 불변의 실체는 브라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어떻게 말에 의해 지시될 수 있는가. 
지시와 의미를 구별할 생각해 보자. 반지나 팔찌가 금을 지시한다는 것이 바르토리하리의 주장. 반지나 팔찌라는 말은 무엇을 지시 하고 있는가? 금을 지시하고 있지만 의미는 다른것이다. 
금 의 비유로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말은 불변의 실체인 일자 브라만을 지시한다. ”

실재와 우유적 속성

“아트만, 사물, 본성, 신체, 진실재라는 말은 모두 실체라는 말의 동의이다”실체를 진실적인 것으로 바꾸어 말하고 비진실한 우유적 속성 즉 실체와 다른 어떤 속성을 우연히 띤 것에 의해 한정되어 존재한다. -바르토리하리
상카라는 이슈바라는 무명 無明에 의해 만들어진 명칭과 형태라는 우유적 속성에 한정 되어 있다‘ 상카라는 하위의 브라만, 바르토리하리는 비진실된 우유적 속성의 브라만이 한정 된다, 이 한정된 브라만은 현상계 제사물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 이 생각은 베단타파에게 널리 받아들여진 것이다.바리토리하리에게 이 개념은 후세만큼 중요시 샐각 안 함. 
반지는 금을 본질로 하는 것이지만 금을 본질로 하는 모든 것이 반지는 아니다. 왜냐하면 우유적 속성을 의미하는 반지라는 말은 그것에 위해서 한정을 받아 한정적인 의미로 밖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우유적 속성을 의미하는 말도 결국은 실체(금)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존재 와 인식

“실재와 비실재 사이의 구별이 없다라고 선인들은 말하고 있고 (우리는)잘 생각하지 않고 비실재라고 한다. 개념 구분에 시간에 의한 구별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데 시간에 의한 구별이 실제로는 인식되어진다. 제속성과 절대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인식이 마치 동일한 것처럼 정립되어진다”
존재에 관한 사항과 인식에 관한 사항이 서로 섞여 있다. 비실재적인 것들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여주고 있다고 높은 곳에서 보며 분명히 하고 있는 그런 기술. 
일상적으로 인식은 대상없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인식 내용과 대상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는 인식 속에 대상의 제속성이 존재하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고 하고 있다!“ 인식과 대상을 절대적으로 구별하고 양자를 혼동이 우리들 (인식 주체)에게일어나는 인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인식 대상이 바깥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가 어떤가는 인식이 일어나는데 어떤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인식은 그 자체에 의해서 생겨나는 거다. 바리토리하리는 불교의 유식파와 생각이 같다. (헤라라자13-14세기,불교논리학자 달마킬티의 해석도 그러함, 그러나 두 사람은 훨씬후대의 사람)

실재의 이중성

“비 실재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일자도 아니고 개별적인 것도 아니다 연결 된 것도 아니고 되어 따로 떼어 진 것도 아니다 변화 하는 것도 아니고 변화 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생략” 브라만의 모순되는 2개의 양태를 헤라라자는 절대적 레벨의 실재인 최고의 브라만과 일상적 레벨의 실재인 하위 브라만으로 구별을 언급하고 있다고 해석.  그러나 과연 바리토리하리가 그 같은 구별을 명확하게 인정했는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브라만을  최고위와 하위의 구별을 한 것은 샹카라에 의해서 였다. 헤라라자가 샹카라의 영향을 받아서 해석 하는 것으로 보여 짐.  ’바리토리하리가 단지 브라만이 2가지 측면이 있다고만 인정한 것이고 아직 이 양측면을 특수한 말로 부르지는 않았다‘-나카무라 겐

불변의 실체는 어떻게 변화 하는가

“…현상계에 있어 제변용이 소멸했을 때는 진실재인 근본 질료인 브라만만이 남는다……본래 不生불생이고 불변인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갖지 않는 진실재인 브라만 속에 서로 모순되는 생기生起하는 제양태様態가 있는 것처럼 인식 되는 것이다”
불변하는 브라만이 어떻게 현상계로 변화 하는가..? 불변의 브라만이 변화상変化相이 있는 것처럼 인식 되고 있는 것 뿐이다라는 결론. 이것은 상카라가 현상계는 허망하다라고 한 것과 같다. 샹카라의 전단계처럼 생각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르토리하리와의 차이점은 이 결론이 문법학파의 전통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온 것이다라는 점이다. 문법학에서는 중요한 과제. 말이 항상 대상을 지시하고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야말로 사람과 사람간에 커뮤니케이션을 행하게 하는 것. 그들에게 있어서 말은 영원 불변의 실체인 것이다. 파탄잘리 대주해서에서 이 모순을 회피하기 위해서 ‘관념이 변화 하는 것이다. 문법 요소는 변하는 것이 아니다’ 관념의 변화에 의해서 요소 X 에 대한 생각 대신에 요소 y에 대해서 그 사람이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다라고 말한다. 말 자체의 관념 레벨에서 전위가 일어난다고 한다. 무언가가 부분적으로 변화하거나 무언가에 무언가가 덧붙여 지는 것이 아니라 관념 속에서 말 자체가 다른 말로 순식간에 바뀌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신하여 바뀌다‘ 변신하다’‘ 변성하다’

이즈츠도시히코의 상카라철학에 대한 기술-의식과 본질

“우리의 경험적 세계는 우리 자신의 의식의 덮어씌우는 기능에 의해서 여러 모습으로 분절되어 나타나는 브라만의 거짓모습이다. 어디에도 분절선이 없는 절대 일자가 분절된 형태로 우리들의 표층의식에 비추는 거다. 절대 일자가 객관적으로 자기 분절 할 리가 없다.”
이 부탁을 구축이란 말로 바꿔 말하면 그대로 바리토리하리의 생각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