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8

적을 정치적으로 사유하기 -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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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정치적으로 사유하기적의 계보학③
강혁민(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사후연구원) |
 승인 2024.03.13 04:22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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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혁민 박사


폭력과 적대의 세계 안에서 살아가는 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인류역사를 통틀어 전쟁과 폭력이 부재한 시대를 찾아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모든 문명, 모든 역사, 모든 국가에서 우리는 폭력과 적대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폭력을 배태한 또는 폭력으로부터 잉태된 ‘적’과의 동침일지 모른다. 이렇듯 ‘적’은 인간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한 핵심 요소다.

적을 향한 부정적 인식을 다급히 드러낼 필요는 없다. 적이 곧장 ‘악’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다원적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들에게 타자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논쟁의 맞수임을, 싸움의 상대자가 아니라 대화의 참여자임을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적은 논쟁에 참여하는 상대자일 뿐이며 이들과의 쟁투를 통해 최선의 선택을 만들어 내는 것이 민주주의다. 민주사회에서 적은 절대 악이 아닌 논쟁적 타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과 악을 동일시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할만 하다. 인간이 가진 폭력의 역사, 전쟁의 경험은 평화공존이나 도덕적 공동체를 긴박하게 요청하기 때문이다. 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적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가다.

칼 슈미트(Karl Schmitt)는 이 궁금증을 풀게 해 줄 좋은 출발점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슈미트의 ‘적’ 개념을 통해 우리는 적을 절대 악으로 규정하지 않고 정치적 맞수로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사실 슈미트의 적 개념은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의미를 파악함으로써 온전하게 이해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적과 동지의 구분’이 바로 그것인데, 이 단순하고 명료한 개념은 정치적인 것의 포괄적 의미규정 뿐만 아니라 적을 구분하는 행위가 바로 정치적인 것임을 일깨웠다.

슈미트에게 적은 ‘구분된’ 타자다. 타자는 구분되며, 친구가 아닌 존재들이다. 그러나 적은 마땅히 부정되고 제거되어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으로 시인되어야 할 존재들이다.(미주 1) 슈미트에게 적은 자유주의적 인식에 따른 도덕관념이 적에게 부여한 악의 형상을 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적은 구분된 타자로서 인간들의 정치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이자 실존적 대립항일 뿐이다. 내가 적을 구분하듯이 적도 나를 적으로 구별하는 상호적 행위가 바로 정치적인 것이며 따라서 적은 불가피하며 상호적이다.

슈미트의 적, 그리고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누구보다 활발히 논의한 것은 벨기에 출신 정치이론가 샹탈 무페다. 무페는 에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포스트-맑시즘과 급진민주주의를 주장한 대표적 여성학자다. 무페는 그의 수많은 저작에서 현대 민주주의가 갖는 맹점, 즉 정치적인 것에 대한 사유의 무능력을 꼬집고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에 다시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유럽의 현실정치, 보다 정확히 말하면 좌파정치는 자유주의가 제안하는 정치적 올바름이나 본질주의에 갇혀 정치적 사유를 하기에 역부족하다고 보았다.(미주 2)

무페가 주장하는 급진민주주의는 기존의 정치적인 사유의 무능력을 드러낸 좌파정치를 소생시키고 보다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를 되새겨 정치를 도덕주의, 보편주의, 합리주의로 몰아가는 ‘비정치적인’ 관습이나 인식과 절연한 급진적 기획을 가리킨다. 급진민주주의는 정치를 쟁투 또는 경합의 장소이자 과정으로 이해한다. 정치는 결코 최종적 결론이나 상태를 경험할 수 없으며, 불균등한 헤게모니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정치적 집단들의 선택 과정이다.

▲ 적대 감정 혹은 존재론적으로 실존하는 적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사유하냐가 중요하다. ⓒGetty Images


무페의 급진적 기획은 한 사회와 국가에 발생하는 갈등이나 적대가 어떤 일탈의 결과가 아닌 - 슈미트의 주장과 같이 - 정치적으로 자연스러운 결과다. 적 또는 적대는 사회를 구성하는 본연의 모습이자 필연적 상태다. 무페가 보기에 인간 사회는 끊임없는 갈등과 쟁투의 상태에 있으며 민주주의는 이러한 쟁투의 과정을 추동하고 다원적 이익 집단들의 상호공존을 위해 갈등적 합의를 만들어 내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적은 정치적 기획 안에 존재하는 구분된 타자이며 그렇기에 적은 제거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적은 언제나 이렇게 낭만적으로 실재할까? 절대 그렇지는 않다. 존재론적으로 적은 우리 곁에 언제나 존재하지만 그것의 실재와 발현은 결코 온순하지도 않으며 정의롭지도 않다. 적은 때때로 파국적으로 다가온다. 동시에 적대적 감정을 부추겨 인간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사유를 폐기하고 전쟁이나 폭력을 일삼게 한다. 적은 실로 대량학살의 현장에, 종교적 폭력에, 일상적 범죄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여 중요한 것은 적을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다. 적에 대한 증오감정, 편견, 기억에 녹아든 적대적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다스리고 민주적인 관리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극복이 가능한 것일까? 적에 대한 급진적 관점이 이러한 질문들에 줄 수 있는 답은 무엇인가?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이익, 관심, 정체성 등이 생겨난 조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그 원인을 정치적으로 경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적대를 파국적 폭력이 아닌 경합적 쟁투의 현장으로 초대하여 서로를 인식하고 정치적 선택에 참여하도록 돕는 것이다. 사실, 이유 없는 폭력은 상상하기 힘들다. 정치적 진공상태에서 발생한 폭력은 야만일 뿐이다. 많은 경우 폭력은 정치적 욕구와 관련되며 그것이 만족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따라서 폭력의 구조를 정치적 사유하는 것, 그리고 적대적 집단들을 경합의 과정으로 초청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이 초갈등사회로 진입했다. 갈등의 다양성은 물론이거니와 갈등의 경험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적의 계보학은 바로 이러한 갈등해결의 다급한 요청과 맞물려 있다. 그러나 갈등의 현상만 바라보고 성급히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습적 정치행위는 위험하다. 시급한 해결은 적이 아닌 악을 규정하게 하며, 악을 하루 빨리 제거함으로써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이분법적 사고와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가 갈등을 아니, 적을 정치적으로 사유하고 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길 원한다면, 양립할 수 없는 정치적 입장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이를 경합적 쟁투로 변환시킬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다름이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비정치적 갈등인식을 벗고, 항존하는 적대를 받아들여 서로 쟁투할 수 있는 민주적 조건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것이 적을 정치적으로 사유하고 적들을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미주
(1) 성정엽,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 개념”, 민주법학 제72호 (2020), 49-79.
(2) 샹탈 무페/이보경 역, 『정치적인 것의 귀환』, 서울: 후마니타스, 2007.


강혁민(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사후연구원) hyukmin2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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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적을 구분하듯이 적도 나를 적으로 구별하는 상호적 행위가 바로 정치적인 것이며 따라서 적은 불가피하며 상호적"이라는 문장(슈미트의 입장),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이익, 관심, 정체성 등이 생겨난 조건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 그 원인을 정치적으로 경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무페의 경합적 민주주의의 핵심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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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상 2024-03-14 09:48:01


잘 읽었습니다. 현실 정치에서 귀감이 될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정치화 되는 세상에서 어떻게 적이자 타자를 받아들여 삶의 조화를 이룰 것인지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공부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