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4

칼럼 - [희년책읽기] 「토지와 경제정의」(대천덕) 서평 - 알게 되면 모른 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

칼럼 - [희년책읽기] 「토지와 경제정의」(대천덕) 서평 - 알게 되면 모른 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

[희년책읽기] 「토지와 경제정의」(대천덕) 서평 - 알게 되면 모른 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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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되면 모른 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
[희년책읽기] 「토지와 경제정의」(대천덕) 서평






이철빈 / 희년함께 회원


「토지과 경제정의」, 이 책은 예수원의 설립자이자 토지정의 운동의 선각자이신 故 대천덕 신부님의 유고집이라 불리는 책이다. 이 책은 토지와 경제에 대한 명백한 성경의 가르침이 있으며, 그 정신이 어떻게 이어져왔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떻게 실천해나갈 것인지 그 방향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은 먼저, 성경에 제시된 안식년, 희년법 등을 통해서 본 토지법, 그리고 그 법 위에 기반해서 어떻게 사회가 운영되어야 하는지 등을 제시한다. 토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므로, 영원히 하나님의 것이고 인간은 그저 사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 받은 토지를 기반으로 노동을 해서 생산활동을 해야 하며, 그것을 향유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임을 천명한다. 그러나 토지를 인간 임의대로 사유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기본권까지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인 것이다.



토지와경제정의.jpg이 책은 ‘하나님 나라와 토지법’이라는 안경을 끼고서 구약성경의 초반부에서 시작해서 신약의 초대교회 공동체에 이르기까지를 개괄한다. 사실, 이전까지는 성경을 영적인 구원의 역사로 해석하는 관점만 접하다보니, 이 책의 관점은 무척 생소하게 다가왔다. 특히, 구약의 왕국 분열~왕국 멸망 그리고 예언서의 저술 등의 배경에 토지 문제가 깔려있다는 해석은 무척이나 새롭게 다가왔다. 대표적인 예가 나봇의 포도원 사건인데, 이전에는 그저 하나의 해프닝이나 악한 왕의 악행이라고만 치부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이 해석에 따르면 하나님의 토지법을 지키기 위해 토지 매매를 거부한 나봇과 이방의 토지법을 들여와 사회경제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한 아합과 이세벨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바알의 대결 구도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바알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즉, 페니키아인들의 신인 바알을 숭배하고, 온갖 음행과 부도덕을 행할 뿐만 아니라, 토지를 사유하고 빈부격차를 조장하는 사회문화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의 율법을 받았고, 그 율법을 지키며 사는 공동체 사회였지만, 오므리와 바알 그리고 이세벨에 의해 하나님의 토지법이 폐기되고, 이방의 토지법과 문화가 이식된다. 그 후로는, 바알주의가 스며드는 가운데 여호와주의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과의 영적, 실제적 대결이 계속 이어진다.


故 대천덕 신부님의 문제의식은, 이 끊임없는 긴장과 대결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는 사람들이 적다는 점이다. 책의 서두에서 이런 구절을 써놓으신 것이 정말 인상 깊었다.


“한국에는 경제 문제와 영적인 문제가 서로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른바 ‘영적’인 문제만 다루는 사람들과 ‘실제적’인 문제만 다루는 사람들은 진실(또는 현실)을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6p,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中)



즉, 이 문제는 결코 영적이기만 하거나, 실제적이기만 한 문제가 아니라, 영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문제임을 인식해야함을 상기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사람들의 대결이고, 동시에 부와 가난의 문제에 관해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대결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교회의 역할이 막중함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하며, 실제적인 사회 변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것이다. 숱한 방해가 있겠지만, 이 모든 일을 성령과 함께해야함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라고 한다. 교회의 타락을 회개하며, 교회갱신 운동, 새로운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회개하자고, 기도하자고 외치는 소리는 많지만 공허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회개해야할 수많은 문제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토지문제, 부와 빈곤의 문제와 관련해서 교회가 책임을 통감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책에서 지적하듯, 교회가 로마 제국에 예속되고 세속 체제로 편입된 이래로, 교회는 언제나 지주이자 권력층이었고, 토지와 가난의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아왔다. 토지는 인간의 생활 터전이자 근원이기에 부와 가난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에도 교회는 외면했고, 성경을 입맛대로 번역하면서 기독교를 그저 영적이고 내세적인 종교로만 국한시켜버렸다. 성속이원론을 신봉하고,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개인의 영혼 구원 의미로만 격하시켜버리면서 하나님을 모독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희년, 토지문제, 예수원 정신 등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몰랐거나 편협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희년은 그저 하나의 이상적인 율법으로만 이해하고, 토지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예수원은 그저 자연 속에서 기도하기 좋은 기도원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 참 씁쓸하다. 교회가 초대교회의 삶,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잊고 산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고, 누군가 내게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말해준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종 율법을 주셨고, 선지자들을 통해,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알려주셨다. 그 중, 희년은 하나님 나라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개념이며, 이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야할지 알려주는 방향타와 같다. 희년의 개념에 비추어보며 우리 사회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늘 점검해야한다.


희년학교에서 강의를 들었을 때, 故 대천덕 신부님의 마지막 유지는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 지붕에 올라가서 외쳐시오!”였다는 것이 기억난다. 평생을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 나라를 공부한 영적 지도자의 결론은 ‘토지’였다. 뭣이 중헌지도 모르고, 부차적인 것을 추구하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의 예언자는 마지막까지 토지와 경제정의를 부르짖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로는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을 흔히 하곤 한다. 희년은 복음의 정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알게 되면 모른 체할 수 없는 그런 무언가. 세상을 바라는 관점,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는 방식, 내가 살아내야 할 삶 등, 하나님은 내게 희년을 통해, 이 책을 통해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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