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알라딘: [전자책] 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epub 이진경

알라딘: [전자책] 불교를 철학하다

[eBook] 불교를 철학하다 -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epub 
이진경 (지은이)휴(休)2016-12-19 

전자책정가
9,600원

종이책 페이지수 356쪽,

책소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자 이진경이 그간 공부했던 과학, 철학, 예술 등이 불교적 사유의 흐름 속에서 섞이고 변성된 것들로, 자신도 모르게 밀려들어갔던 심연 속에서 보고 생각한 것들을 촘촘하게 담아낸 책이다. 현대철학으로서의 불교, 즉 불교의 개념을 현대로 가져와 우리 삶 속에 투영해보고 융합해봄으로써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불교로의 재탄생을 이야기했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25가지 개념을 다루는 방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무언가에 섞여 들어가며 스스로 바뀌어간 ‘불교의 초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연기, 무상, 인과, 무아, 보시, 중생, 분별, 중도, 공, 윤회, 자비, 마음, 식, 십이연기(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에 대한 이치와 지혜를 설명하면서 ‘21세기’라고 명명되는 이 시대의 연기적 조건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불교로,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의 방향을 조명한다.
목차
제1장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
연기: 외부에 의한 사유

1. 형이상학이여, 안녕
2. 당신의 본성은 당신의 이웃이 결정한다
3. ‘자업자득’의 업력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제2장 세상에 똑같은 두 장의 나뭇잎은 없다. 하지만…
무상: 차이의 철학과 필연적 무지

1. 잎이 질 때 드러나는 본체
2. 환(幻), 필연적 무지
3. 집단적 환상과 무상의 정치학

제3장 나비의 날개를 타고 끼어드는 것
인과: 분석적 인과성과 연기적 인과성

1. 인과를 모르면 여우가 된다
2. 나비효과, 혹은 차이의 반복
3. 연기적 인과성, 연기적 합리성

제4장 내가 죽는 곳에서 만인이 태어나느니…
무아: 비인칭적 죽음과 부모 이전의 ‘나’

1. 카게무샤의 눈물
2.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
3. 수정란도 되기 전의 나

제5장 존재 자체가 선물이 될 수 있다면
보시: 불가능한 선물과 절대적 선물

1. 소모적 장식과 선물
2. 무주상보시, 혹은 절대적 선물
3. 부처의 선물, 보살의 선물

제6장 모든 개체는 공동체다
중생: 공동체의 존재론과 중생

1. 모든 개체는 중생이다
2. 모든 중생은 공동체다
3. 중생은 부처인데, 왜 부처가 되어야 하는가

제7장 부처는 똥이고, 소음은 음악이다
분별: 척도의 권력과 타자성

1. 분별, 선택 이전의 선택
2. ‘옳은 것’의 힘
3. ‘초험적 경험’, 혹은 분별을 넘어선 분별

제8장 극단보다 더 먼 ‘한가운데’
중도: 중도의 존재론, 파격의 논리학

1. 있으면서 없는 것
2. 중도와 중용의 차이
3. 파격의 논리학

제9장 사물의 구원, 혹은 쓸모없는 것들의 존재론
공: 존재의 사유와 순수 잠재성

1. 연기적 조건 ‘이전’의 존재
2. 불생불멸의 잠재성
3. 존재는 왜 보이지 않는가

제10장 죽음의 불가능성이 왜 고통이 되는가
윤회: 영원회귀와 니힐리즘

1. 영생의 고통이라니
2. 고통의 피안에서 차안의 해탈로
3. 노바디(nobody)의 윤회

제11장 연민의 윤리에서 우주적 우정으로
자비: 타자의 윤리학과 존재론적 우정

1.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
2. 연민 없이 사랑하라
3. 미움 없이 미워하라

제12장 자유의지 없는 세상에서의 자유
마음: 마음의 물리학과 능력의 윤리학

1. 내 마음도 내 마음이 아니다
2. 어떤 마음이 내 마음을 만드는가
3. 행을 닦을 때, 우리는 무엇을 닦는 것일까

제13장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갖고 있다
식: 분자적 인식론과 식의 존재론

1. 눈 없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는 것들
2. 분자들의 지각, 세포들의 인식
3. 신체는 식을 만들고, 식은 신체를 만든다

제14장 무지 이전의 무명에서 생멸 이전의 ‘존재’로
십이연기: 무명의 카오스와 무지의 코스모스

1. 십이연기를 지금 다시 묻다
2. 무명(無明): 무한속도로 변하는 세계를 어찌할 것인가
3. 행(行): 태초에 행동이 있었으니라
4. 식(識): 동물 이전의 인식능력
5. 명색(名色): 안팎의 식별이 ‘나’를 만들고
6. 육처(六處): 이유 있는 허구의 여섯 시종들
7. 촉(觸): 있어도 만나지 못하면 없는 것이니
8. 수(受): 기쁨과 슬픔의 자연학
9. 애(愛): 분별심은 왜 지혜 아닌 무지로 인도하는가
10. 취(取): 가지려는 마음의 수동성
11. 유(有)/생(生): 생성보다 존재가 선행한다는 믿음이라니
12. 노사(老死): 고통과 두려움이 그려낸 생의 초상화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방법은 많지만, 무엇보다 명확하고 뚜렷한 방법은 '연기'라는 말로 요약하는 것이다.
P. 18
‘연기적 사유’는 이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무상함의 저편을 찾는 게 아니라, 무상함을 보는 것이 지혜임을 설하고,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음을 가르친다. 심지어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 그렇기에 가변적 세계의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으라고 말한다. 아주 달라 보이는 것에서도 ‘동일한 것’을 찾는 ‘동일성의 사유’와 반대로, 아주 비슷한 것에서도 ‘차이’를 보는 ‘차이의 사유’라고 할 것이다. _p.18  접기
P. 43-44
불교의 가르침을 꼽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제행무상이 바로 본체고, 그것 이외의 본체는 따로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도를 깨친다는 것은 바로 이 무상을 통찰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상함을 아는 것뿐 아니라, 무상 속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자신이 만나는 모든 것을 무상함 속에서 대하는 것이다.
무상이란 무엇인가? 아니, 상(常)이란 무엇인가? 항상 그대로인 것, 항상 동일하게 있는 것이다. 조건이 달라져도 그 동일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상을, 불변의 실체를 추구한다 함은 변화 속에서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걸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상이란, 그런 동일성이 없음이고, 그런 동일성에 반하는 것만이 있음을 뜻한다. 동일성에 반하는 것은 ‘차이’다. 무상을 본다 함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봄이다. 항상된 것을 찾음이 달라 보이는 것마저 ‘동일화’하려 함이라면, 무상을 본다 함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차이화’하고 있음을 봄이다. 동일성이 없다 함은 오직 차이만이, ‘차이화하는 차이’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상의 통찰은 곧바로 ‘차이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_p.43-44  접기
P. 87-88
자아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이든 단단해지는 순간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무아란 그런 벽을 반복하여 깨고 지금의 ‘나’를 반복하여 넘어설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아란 지금의 내가 죽고 다른 ‘나’가 태어나는 사건이며, 그런 사건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끝없는 변이의 과정을 기꺼이 수긍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를 넘어서려고 선택하는 것 역시 ‘나’의 선택인 한, 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건 나의 죽음이 아니라 확장에 불과한 거 아닌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내게 다가오는 삶은 대부분의 경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온다. 나의 죽음을 동반하는 나의 선택이란 ‘외부’라고 불러 마땅한 그 뜻하지 않은 것과 내가 만나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뜻하지 않은 것이 내 안으로 밀려들어옴을 수긍하는 것이다. _p.87-88  접기
P. 108
먼지를 포함하여, 모든 것의 존재는 시방삼세 존재자들의 연쇄가 준 선물이다. 준다는 생각 없이 준 선물이다. 그렇기에 무주상보시는 어딘가 특별히 따로 있기 이전에, 우리의 삶 속에 항상 있는 것이다. 나의 존재가 기대어 있는 것, ‘연기적 조건’이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내게 존재를 선물하는 것이다. 그러니 연기에 대한 깨달음이란 자신의 존재가, 매순간 자신의 삶이 이 우주적 연쇄의 존재자가 주는 선물임을 깨닫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법을 깨달은 사람이 부처라면, 부처란 매순간의 존재와 삶이 거대한 우주적 스케일의 선물임을 알고 받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_p.108  접기
P. 165
중도는 유무를 떠나는 것뿐 아니라, 진위를 떠나고, 선악을 떠나고, 남과 여, 적과 친구 같은 모든 이항대립을 떠나는 것이다. 어디서나 이항적인 양극단을 떠나라는 가르침이다. 그런 점에서 중도는 어떤 문제나 사태에 적용되고 관철되어야 할 ‘사유의 방법’에 가깝다. 즉 사태나 문장을 명료하고 뚜렷하게 하여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는 서구의 논리학적 사유방법과 반대로 양극단이 서로 섞이거나 중첩되기도 하고, 하나가 반대의 것으로 전변되는 아주 다른 종류의 ‘논리학’이다. 극단의 중간이 아니라, 극단을 넘나들며 해체하는 횡단의 사고다. _p.165  접기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진경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전환기 한국사회의 토대를 분석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써서 24세에 이진경이라는 필명을 얻었다. 본명은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논문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대한 공간 사회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식 공동체 ‘수유너머104’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천착해 『철학과 굴뚝 청소부』를 썼고,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변혁을 모색한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의 필로시네마』를 썼다. 푸코, 들뢰즈, 가타리의 철학과 함께 자본주의의 외부에서 삶의 탈주를 꿈꾸며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역사의 공간』,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 접기
최근작 : <철학의 모험>,<수학의 모험>,<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 총 90종 (모두보기)
SNS : //twitter.com/solaris00
출판사 제공
책소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자 이진경, 불교를 말하다!

현대의 과학, 철학, 예술은 물론 우리 사회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의해 침윤되고 혼합된 불교의 모습을 찾아서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불교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방법은 많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명확하고 뚜렷한 방법은 ‘연기’라는 말로 요약하는 것이다. 즉 연기가 불교의 요체고, 석가모니가 자신의 깨달음을 펼치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개념이다. 연기(緣起)란 무엇인가? 연(緣)하여 일어남(起)이다. 연한다는 것은, 어떤 조건에 기대어 있음이다. 따라서 연기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반대로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혹은 사라짐이다. 《중아함경》에 있는 유명한 문구가 그것을 요약해준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이처럼 불교의 오랜 역사가 언제나 자신이 처한 연기적 조건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대결하며 스스로를 갱신해온 것임을 안다면, 현대의 과학, 철학, 예술은 물론 우리 사회나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의해 침윤되고 혼합된 불교의 모습을 ‘순수한 불교’를 준거로 비난하는 것처럼 거리가 먼 것은 없을 것이다.

신간 《불교를 철학하다》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자 이진경이 그간 공부했던 과학, 철학, 예술 등이 불교적 사유의 흐름 속에서 섞이고 변성된 것들로, 자신도 모르게 밀려들어갔던 심연 속에서 보고 생각한 것들을 촘촘하게 담아낸 책이다. 현대철학으로서의 불교, 즉 불교의 개념을 현대로 가져와 우리 삶 속에 투영해보고 융합해봄으로써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불교로의 재탄생을 이야기했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25가지 개념을 다루는 방식으로 써내려간 이 책은 무언가에 섞여 들어가며 스스로 바뀌어간 ‘불교의 초상’에 더 가까울 것이다. 연기, 무상, 인과, 무아, 보시, 중생, 분별, 중도, 공, 윤회, 자비, 마음, 식, 십이연기(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에 대한 이치와 지혜를 설명하면서 ‘21세기’라고 명명되는 이 시대의 연기적 조건에 부합하는 또 하나의 불교로,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의 방향을 조명한다.
인터넷을 통해 지구상의 모든 곳이 연결되고, 기계와 인간이 섞이고 합체되며, 생명체가 복제되고 매매되는 시대에 어떤 현대철학보다 더 현대적인 철학으로, 어떤 윤리보다 더 현대적인 삶의 방법으로서 불교가 재탄생되어야 한다는 한 현대철학자의 경계를 허무는 관점과 폭넓은 사유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세속을 벗어난 수행과 고된 깨달음의 여정을 뛰어넘어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하게 우리 삶 속에 살아 숨 쉬는 깨달음의 실천적 요체로서 다가온다.

‘무아’의 철학,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다

그런데 왜 현대철학자가 ‘불교’를 이야기할까? 또 그에게 불교란 어떤 의미일까? 철학자 이진경에게 ‘불교’는 아주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진 종교였고, 아득한 먼 곳에서 가끔씩 보내는 철학적 눈짓에 불과했다. 한 번도 절에 가본 적이 없었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철학적 향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찾아서 읽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성철 스님의 법어집 《자기를 바로 봅시다》를 접한 후 《벽암록》의 심오함과 유머러스함, 고준함에 ‘매혹’되었고, 가까운 이들과의 갈등에서 시작된 당혹스런 일련의 일들을 겪으면서 ‘아상’에 대해, 그 아상이 만드는 세계의 일방성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었다. 내 기준에 따라 세상사를 분별하며 내 맘에 들지 않는 얘기는 싫다고 쳐내고 맘에 드는 얘기만 기대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이를 계기로 점차 ‘무아’를 설하는 철학(4장 참고)에 빨려 들어갔고, 세상을 향해 분별하고 재단하던 시선을 비로소 내 자신을 보는 데 내 자신이 만든 세상의 협소함을 보는 데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전에 읽고 생각하고 행하던 모든 것, 가령 ‘차이의 철학’이니 ‘공동체’니 하는 것들이 ‘무아’의 철학 없이는 공허한 것이 될 것임을 직감했고, 그 직관 속에서 그것들 또한 변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운명의 지침들이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불교, 또 하나의 현대철학,
25가지 불교 개념으로 삶을 사유하다

이 책은 뛰어난 균형감각으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철학자 이진경이 ‘불교’에 매혹되고 예고 없이 맞닥뜨린 삶의 심연 속에서 보고 생각하게 된 것들, 불교가 신체와 영혼에 스며들어 만들어낸 사유의 단면을 섬세하면서도 통찰력 넘치는 문장으로 보여준다.

■ 연기: 외부에 의한 사유
‘연기적 사유’는 무상함을 보는 것이 지혜임을 설하고,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음을 가르친다. 저자는 이러한 ‘연기’를 이야기하며 세르반테스와 메나르의 《돈키호테》가 똑같은 글이지만 시대와 조건에 따라 다른 문체와 의미를 갖는다는 것, 바이올린 역시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악기가 된다는 것, 흑인이 노예가 되었던 것은 백인과의 끔직한 만남에 기인한다는 것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좋은 본성을 가지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웃이란 밖에서 오는 것, 즉 바이올린이나 흑인의 본성은 그것의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외부’에 있다고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연기적 사유는 어떤 것의 본성을 그 외부에 의해 포착하는 ‘외부성의 사유’다.

■ 무상: 차이의 철학과 필연적 무지
무상을 본다 함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차이화’하고 있음을 봄이다. 우리는 동일한 신체를 갖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의 세포들은 생명하며 바뀌어가고 있다. 나뭇잎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스스로와도 끊임없이 달라지는 무상한 ‘차이화’ 과정 속에 있다. 가령 ‘남성’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남성’이라고 동일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차이가 숨어 있다. 힘 좋은 남성, 눈물이 많은 남성, 남성을 좋아하는 남성 등. 남성적 정체성을 가르치고 강요하는 동일성의 사유는 이 모든 차이가 최소화되고 사라지도록 억누르는 반면, 무상과 차이를 본다는 것은 ‘남성’이란 동일성 안에서 수많은 차이가 숨어 있음을 보고, 그것들에 따라 동일한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는 것이다. 차이의 철학은 그런 차이화에 대해 억지로 막지 않고 열어둘 것을 요구한다.

■ 인과: 분석적 인과성과 연기적 인과성
분석적 인과성은 수학적 공식으로 정확하게 표시되는 보편적 인과법칙을 찾는 것이라면, 연기적 인과성은 초기 조건의 차이에 따라 인과의 작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북경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한다고 언제나 캘리포니아에 폭풍이 부는 건 아니고, 사회주의 사회라고 반드시 셀프서비스가 없어야 하는 건 아닌 것처럼.

■ 무아: 비인칭적 죽음과 부모 이전의 ‘나’
무아란 ‘본래의 자아’나 ‘불변의 자아’ 혹은 ‘참된 나’나 ‘진정한 나’ 같은 건 없음을 뜻한다. 자아란 언제 어떻게 형성된 것이든 단단해지는 순간 나를 가두는 벽이 된다. 무아란 그런 벽을 반복하여 깨고 지금의 ‘나’를 반복하여 넘어설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무아란 지금의 내가 죽고 다른 ‘나’가 태어나는 사건이며, 그런 사건을 영원히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죽음을 불랑쇼는 ‘비인칭적 죽음(비인격적 죽음)’이라고 명명했고, 누군가 죽으며 비워진 자리에서 ‘누군가’ 다른 이가 탄생하는데 이를 ‘비인칭적 탄생’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그런 비인칭적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사건의 영원한 반복임을, 기쁜 긍정의 정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무아란 능력의 최대치를 뜻하는 잠재성을 향해 우리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고, 자아 형성 이전의 아기가 가진 잠재적 능력을 통해 다른 ‘나’들로 바꾸어가는 것이다.

■ 보시: 불가능한 선물과 절대적 선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란 주었다는 생각 없이 주는 것, 그런 만큼 받으려는 마음도 동반하지 않고, 그렇기에 받은 이에게 어떤 채무감도 부과하지 않는 것, 따라서 교환으로 이어질 이유가 없는 증여, 이것이 절대적인 증여고 그렇게 주어지는 것이 ‘절대적 선물’이다. 선물인 줄도 모르는 채 주고받는 선물, 있을 수 없는 선물이란 점에서 ‘불가능한 선물’이라고 하였다. 저자는 ‘무외시(無畏施)’처럼 존재 그 자체로 선물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편안함이든 긴장감이든 자신에게 어떤 도움으로 다가왔다면, 그것이야말로 절대적 선물이고 무주상보시일 것이라고 말한다.

■ 중생: 공동체의 존재론과 중생
중생이란 수많은 것이 하나의 ‘무리(衆)’를 이루어 살아가는(生) 개체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는 개체다. 무리지어-살아가는 중생은 모두 그 자체로 공동체다. 개개의 인간이나 동식물만 중생이요 공동체인 게 아니라, 내 몸도, 심장이나 허파, 세포도 모두 중생인 동시에 공동체고,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진 가족이나 마을도 중생이요 공동체다. 중생은 공동의 삶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입이나 호오 분별에서 벗어나 몸이나 지구의 고통에 눈을 돌리고, 그것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통찰해야 한다. 좋은 삶을 위해선 지혜(인연으로 다가오는 것을 오는 대로 긍정하고 그것과 기쁘게 공생하는 법을 아는 것)가 필요하지만, 선악호오의 분별을 떠날 때에만 지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 분별: 척도의 권력과 타자성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 옳은 것과 잘못된 것과 같은 이차적 관념이 덧붙여진 구별이나 판단, 인식을 분별이라 한다. 분별은 모두 ‘나’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남들도 행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분별의 행위 속에 숨어서 작동한다. 그 척도를 내려놓지 않으면 남의 처지가 보이지 않고, 남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에 분별심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알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타자성’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여는 것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20세기 현대예술의 역사는 분별심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카소, 뒤샹, 장뒤페를 비롯하여 현대음악가 루이지 루솔로 역시 관념과 척도를 깨버리자 어떤 것도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 중도: 중도의 존재론, 파격의 논리학
중도란 진위와 선악 같은 양자의 ‘중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떠나서 사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길이다. 사태나 문장을 명료하고 뚜렷하게 하여 진위를 정확하게 판단하려는 서구의 논리학적 사유방법과 반대로 양극단이 서로 섞이거나 중첩되기도 하고 극단을 넘나들며 해체하는 횡단의 사고다. 눈 안에 들어선 격자, 사유를 직조하는 ‘이치’를 파괴하여 틀을 벗어나서 사유하게 하는 ‘파격의 논리학’이다.

■ 공: 존재의 사유와 순수 잠재성
공은 어떤 규정성이나 본성이 없기에 연기적 조건에 따라 그 조건이 규정하는 규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알도 될 수 있고, 식재료도 될 수 있고, 남을 괴롭힐 무언가가 될 수도 있고, 실험재료도 될 수 있고…. 규정성은 없지만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갖는 상태가 바로 공이다. 공성을 본다는 것은 용도의 규정 속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런 규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잠재성을 보는 것이다. 사물의 공성을 보는 것, 고기의 규정성에서 벗어나 소나 돼지의 잠재성을 보는 것, ‘흑인’이란 규정에서 벗어나 어떤 한 사람의 잠재성을 보는 것. 그러나 더 중요한 진실은 그런 ‘구원’의 행위를 통해 사물이나 사람과 새로운 관계에 들어가는 구원하는 자가 자신이란 사실이다.

■ 윤회: 영원회귀와 니힐리즘
윤회하는 수많은 생의 긍정은 수많은 생을 반복하여 사는 힘의 긍정이다. 이것은 그때마다 주어진 삶의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살아내는 힘을 긍정한다는 점에서 니체가 말하는 영원회귀의 사상과 매우 가깝다. 극락이든 구원이든 현세를 떠나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 현세적 삶 안에 있으며, 그 삶을 긍정적으로 사는 것임을 말한다. 윤회하는 삶은 ‘나’라는 실체가 없을 때만 가능하다.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 그것만이 윤회하는 것이다. 그 ‘아무도 아닌 자’는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어떤 능력을 뜻하는 것이다.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고 한다면, 윤회란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이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이 능력을 ‘생명’이라고 부른다면, 윤회란 니체의 말처럼 영원한 시간을 반복하여 되돌아오는 어떤 동일한 힘이 그때마다 다른 양상들로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다.

■ 자비: 타자의 윤리학과 존재론적 우정
자비란 우정과 공감이라는, 우리 중생들이 고통에 찬 세상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버티게 해주는 두 가지 관계를 집약한 개념이다. 남에게 기쁨을 주려는 마음과 남에게 고통과 슬픔을 덜어주려는 마음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는 가까이 있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고통받는 불쌍한 ‘타자(과부, 고아, 빈민 등)’를 향한 연민에 대해 설한 반면, 달라이 라마는 인간이 아닌 것을 포함하는 ‘모든 중생이 나와 마찬가지로 기쁨을 얻고자 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함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평등한 자비심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는 연민의 감정이 아니라 중생에 대한 인식이 오히려 강조되어 있다. 중생은 불쌍하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부처’가 될 능력을 가진 존재이다. 모든 중생은 잠재적 부처라는 점에서 평등하지만, 현행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조건에 따라 다른 지위와 규정을 갖고 살아간다. 그렇기에 현행화된 세간에서는 조건에 따라 많고 적음,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이 교차하며 자비행이 행해지게 마련이다.

■ 마음: 마음의 물리학과 능력의 윤리학
일체유심조의 ‘마음’은 내 마음이 아니라 내게 다가와 나를 둘러싼 것들에 속한 마음이다. 마음은 모두 무언가를 만들어낼 능력을 갖는다. 그것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마음들의 연쇄에 의해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다른 산출능력을 갖는다. 흑인을 노예로 삼으려는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흑인의 마음과 자유인으로 대하려는 마음에 상대하는 흑인의 마음은 같을 수 없다. 유전자조차 그러하다.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나의 마음, 너의 마음은 모두 35억 년간 생명의 역사라고 불리는 연기적 조건이 기억되고 집적된 것이며, 그런 외부적 조건이 내부화된 것이다. 나에게 작용하는 모든 마음이 응집되어 내부화된 것이다.

■ 식: 분자적 인식론과 식의 존재론
식의 개념은 육근(눈, 귀, 코, 혀, 몸, 의식) 각각의 인식능력이나 그것이 얻은 식의 독자성을 사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서 인식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해준다. 나아가 인간 아닌 생명체의 ‘인식능력’이나 그것으로 얻은 ‘식’에 대해 사유할 수 있게 해준다. 세포의 핵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전자, 아니 핵산들의 식의 작용은 세포별로 고유한 단백질을 만든다. 분자적 식의 작용으로 인해 생명체의 신체는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생명체라는 존재방식은 물론 그 존재 자체가 유전자나 그 이하 수준에서 진행되는 식의 작용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식의 작용은 단지 인식론의 영역뿐 아니라 ‘존재론’의 영역에도 속한다. 존재하는 것들의 존재이유나 존재양상을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시적 식의 작용은 생명체의 존재를 특정한 양상으로 구성하고, 그 존재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일차적인 성분인 것이다. 분자적 식의 개념을 통해 이제 우리는 미시적 식의 존재론에 도달하게 된다.

■ 십이연기: 무명의 카오스와 무지의 코스모스
십이연기(무명/행/식/명색/육처/촉/수/애/취/유/생/노사)는 생과 사, 늙음 등 열두 개 사태들의 연관을 연기법에 의해 포착하여 설명한 것이다.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가장 근본적인 고통인 ‘늙고 죽음(老死)’은 ‘태어남(生)’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며, 태어남은 ‘있음(有)’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한다. 있음은 ‘집착/취착(取)’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고, 집착은 ‘애착(愛)’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며, 애착은 쾌감이나 불쾌감 같은 ‘감각작용(感受, 受)’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한다. 감각작용은 감각기관과 외부의 만남 내지 ‘접촉(觸)’ 없이는 있을 수 없으니 접촉을 조건으로 하고, 그런 접촉은 눈과 귀, 코 등 여섯 개의 ‘감각기관(六入, 六處)’을 조건으로 하여 가능하게 된다. 이런 육처는 사물(色)을 구별하고 그것을 파악하는(~라고 명명하는) 작용(名色)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하고, 명색은 분별능력이나 분별작용(識)을 조건으로 가능하게 된다. 분별작용은 필경 살기 위해 발동되는 충동이나 의지, 그에 따른 행동(行)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행동이나 의지는 세상이 무언지 알지 못하는 조건 위에서, 즉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하여 발생한다.
이 개념들을 세심하게 따져보면 수많은 의문을 야기한다. 이는 ‘십이연기’의 가르침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자명한 연쇄가 아니며, 사용된 개념들 또한 상식이나 통념과 같지 않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십이연기를 우리가 처한 지적·존재적 조건에서 사유를 이끌어낸다. 상투적 ‘지식’이 아니라 우리 삶을 깊이 통찰하는 지혜의 단서로서.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이 아직 없습니다.
마니아 읽고 싶어요 (41) 읽고 있어요 (12) 읽었어요 (47) 
이 책 어때요?
구매자 분포
0% 10대 0%
14.9% 20대 4.8%
15.4% 30대 11.7%
10.6% 40대 16.5%
3.7% 50대 13.3%
1.1% 60대 8.0%
여성 남성
평점 분포
    8.6
    56.2%
    25.0%
    12.5%
    6.2%
    0%
100자평
    
 
등록
카테고리
스포일러 포함 글 작성 유의사항 
구매자 (6)
전체 (11)
공감순 
     
불교의 요체는 연기(緣起)이다. 불변하는 영원한 존재는 없으니 무상함의 사유가 바로 지혜이다. 연기에 바탕하여 이시대 불교를 현대적인 철학과 윤리로 접근하고 재탄생시키려는 새로운 융합의 철학적 사유가 탁월하다. 현실의 굴뚝청소에서 내면의 청소로 이어지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돋보인다.  구매
현정 2017-03-12 공감 (11) 댓글 (0)
Thanks to
 
공감
     
이진경 교수는 불교전공자는 아니지만 어설픈 ‘불교주의자‘들에 비해 훨씬 더 불교의 본령에 육박하고 있다.전공이 아니고 기고가 무슨 문제란 말인가.불교 자체가 그런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지난한 자기 갱신의 역사이거늘.다만 이 책의 관점을 절대화하지 말자.그 또한 아상일 테니.  구매
흰바람벽 2017-10-25 공감 (5) 댓글 (0)
Thanks to
 
공감
     
믿음에 입각한 책보다 불교를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책.  구매
heru25 2019-10-09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불교의 혁명성을 한껏 드러낸 책.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통섭‘을 보여준다. 불교가 지니는 현대성과 창조성을 이렇게 매력적으로 드러내긴 어려울 듯.  구매
박하향 2017-01-17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저자가 들뢰즈에 대해 많이 공부해서 그런지 들뢰즈로 불교 철학하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들뢰즈와 관련된 용어들이 많이 보였지만 잘 읽히고 괜찮았다  구매
koziro 2016-12-08 공감 (2) 댓글 (0)
Thanks to
 
공감
더보기
마이리뷰
구매자 (3)
전체 (5)
리뷰쓰기
공감순 
     
경계를 흐리는 종교 새창으로 보기
  사피엔스, 호모데우스, 21세기를 위한 제언에서 유발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인간 공동체가 만들어낸 강력한 하나의 허구로써 인간의 적응도를 높이는데 큰 공헌을 해왔다.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날수 있게 해주었고,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그리고 삶의 목표를 제시하며 도덕적 인간공동체를 만들어주었고, 신에 대한 공동의 믿음으로 강한 결속력을 부여했다. 종교는 필요로써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와 우주를 설명해주기도 하였는데 과학기술이 발달한 현재에 이르러선 이런 종교의 설명은 불합리한 측면이 많아졌고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 부분도 사실이다. 때문에 몇몇 종교는 애써 현대과학의 성과에 대응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하나 그런 논란에서 비켜나있는 종교도 있다.

 세계 3대 종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불교 중 현대과학의 설명과 많은 부분에서 합치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불교다. 책은 그런 불교의 현대성과 미래성을 과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부처와 과학기계장치가 결합된 파격적 모습을 표지로 선정했다. 그리고 책의 저자역시 불교의 여러 철학을 설명하며 현대 과학과 이를 결부시키기도 한다.

 불교에서 시작은 공이다. 우주와 세계는 공이다. 텅비었다는 뜻인데 사실 그렇지가 않다. 양자역학에 의해 입자는 언제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어 완벽한 진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공에서 말하는 무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사실 무언가가 이루어질 수 있는 수많은 규정가능성을 갖는 무규정성이 된다.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공은 모든 가변성의 바탕이고 근거가 된다.

 이런 공에서 연기가 시작된다. 무언가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관련하여 생겨난다. 따라서 연기는 연하여 일어난단 뜻으로 어떤 조건에 의하여 일어나고 어떤 조건에 기대에 존재함을 말한다. 즉, 인간이든 사물이든 절대불변의 본성 같은 것은 없으며 특정한 관계에 따라 다른 본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자는 관찰자의 영향을 받으며 이로 인해 입자의 위치와 속도 두가지를 완벽하게 측정하는 것을 불가능하다. 또한 사람이나 사물간에는 상성이 있고, 서로 영향을 받는다. 즉, 연기적 존재인 것이다.

 다음은 무상과 무아다. 고정 불변의 진리와 존재는 없기에 모든 것은 항상 빠르게 변화한다. 같은 사람만 하더라도 세포단위에서 무수한 교류와 변화가 있으며 1년여의 시간이지나면 사람에게서 이전의 세포는 남아 있지 않다. 또한 늙어가며 다른 것과 연기해 꾸준히 영향을 주고 받으며 변화한다. 때문에 무상이나 무아는 본래의 자아나 불변의 자아는 없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나나 사물은 특정한 연기 조건에서 만들어진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무상이나 무아는 이런 내가 죽고 다른 내가 계속해서 생성되는 것이며 이것을 우주와 함께 무한히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무상과 무아속에서도 열역한 제2법칙을 무시하고 생겨난 생명은 본래적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다. 세계에 던져진 생명은 이런 의지로 인해 살고자 하나 세계는 무명이다. 무명이란 무상과 무아의 세계로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포착할수 없는 세계다. 하지만 생명은 살아남아야하기에 억지로 무명의 세계의 속도를 늦추고 멈추고 관찰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식이라고 한다.식은 환경과 개체의 만남이고, 반복되는 만남에 대한 지각과 포착이며 그럼으로써 발생하고 발전한 지각능력과 포착능력들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이 환경에 대해 유전자에 새긴 것들이나 지능, 그리고 사람과 생명이 만들어낸 모든 지식과 밈등은 모두 이 식으로 인한 것들이다. 이 식은 생명체의 생존과 번식에 유용한 것이기에 무지이나 반드시 필요한 무지다.

 우주의 모든 것은 연기적 존재로 서로 연결되었으며 불성을 갖는 평등한 것들이지만 식으로 인해 생명체는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 경계는 생존을 위해 피아를 구분하는 것으로 그 경계는 사실 매우 모호하다. 숨을 내쉬며 외부가 금방 나의 내부가 되고 내부의 공기가 외부의 것이 된다. 먹이의 섭취는 다른 것을 내몸으로 만드는 것이고 배설은 나의 것을 외부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경계는 필요하고 생명체가 만들어낸 대표적 경계는 면역계다.

 하여튼 식은 호오나 미추처럼 선호를 나타내는 이차적 관념인 분별로 이어진다. 이는 이차적 관점으로 생득적인 것도 아니고 재인식이며 선별이다. 하지만 이 이차적 관념은 곧 일단 생명체에 정착되면 오히려 생각이전에 일어나고 감각보다 앞서 감지되며 이성보다 강하게 작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인 것이어서 너무 단순하여 정확한 지각을 막고, 분별은 너무 빨라서 생각하기 전에 판단하게 된다는 점이다. 즉, 분별은 다른 것들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든다. 이런 분별은 개인적 차원 뿐만 아니라 사회적, 집합적으로도 이루어진다. 분별의 척도라는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분별을 넘어서는 것이 중요해진다. 연기적 존재가 본성을 거부하고 타자성을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분별을 넘어서기 위해선 낯선 것과의 만남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분별하기 어려운 것과의 만남으로 분별이 정지되고 비로서 제대로된 생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만남을 위해 다양한 책을 읽고, 여러 사람과 세계, 견해를 접하는게 중요하다. 이처럼 분별심을 내려놓는 다는 것은 타자성의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이고, 분별을 떠났을 때 비로서 어떤 조건에서 어떤게 더 나은지 제대로 분별할수 있다.

 불교는 상당히 평등한 종교인데 이런 점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불성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는 점에서 읽을 수 있다. 이 중생은 모든 인간에서 사물, 생명체와 작은 것들도 의미한다. 불성은 연기적 조건이 달라짐에 따라 다른 존재자와 현행활 도리 수 있는 잠재력인데 이게 가능한 것이 부처다. 즉, 부처는 연기법의 작용을 통찰하여 그에 응하되 내부화된 성향에 머물지 않고 그 때마다 적적한 대응의 양상을 찾아내는 능력에 보여된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부처를 대하는 것이 자비이며 자비를 부처가 아닌 자에게도 행하는 이유는 모두가 잠재적 부처이기 때문이다.

 

- 접기
닷슈 2019-10-14 공감(26) 댓글(2)
Thanks to
 
공감
     
철학자 이진경의 놀라운 불교 철학 새창으로 보기 구매
불교의 의미를 어떤 전공자보다 래디컬하고 설득력 있게, 그러면서 자유롭게 풀어쓴 책이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이다. 제목에 철학이란 말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듯 이진경은 '외부, 사유의 정치학', '필로 시네마;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 철학 저서들을 쓴 저자이다.

 

문화의 '우리 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처럼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이 소비되는 방식에 근본적 문제제기를 한 '불온한 인문학'(2011년 6월 출간)에 수록된 '횡단의 정치, 혹은 불온한 정치학'에서 저자는 하이데거의 개념들과 유식불교나 화엄학의 개념들간에 유사한 개념들을 찾아 대응시키는 것 등을 횡단으로 간주되는 유비적 대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의 관심이 불교 철학으로 드러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충격을 의도하고 쓰지 않았겠지만 이진경의 책은 래디컬한 만큼 충격적이다. 개인적으로 김영명의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를 가장 핵심적 불교 비판서이자 애정의 서라 생각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대목은 다음의 구절이다. "기존 불교계는 자동차는 엔진, 브레이크, 바퀴 등 즉 자동차 전체보다 작은 단위의 실체들이 일시적으로 만나 이루어진 것이기에 자동차라는 실체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자동차의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 그 부품들의 실체는 인정한다."는 것이다.(163 페이지)

 

각설하고 이진경의 책은 불교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의도한 빛나는 책이다. 연기(緣起), 무상(無常), 인과(因果), 무아(無我), 보시(普施), 중생(衆生), 분별(分別), 중도(中道), 공(空), 윤회(輪回), 자비(慈悲), 마음, 식(識), 십이연기(十二緣起) 등 열 네 개념에 대해 저자가 펼치는 사유는 놀랍다.

 

모호한 부분에 대해서도 명쾌하고 논란이 분분한 부분에 대해서도 의연한 것이 저자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과장하면 카뮈가 그르니에에 대해 한 “문득 적절한 말, 정확한 지적을 에워싸고 모순이 풀려 질서를 찾게 되고 무질서가 멈춰 버린다.”란 말을 해도 좋을 듯 하다.

 

저자는 철학에 익숙하기에 동서 사유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금강경 등의 불교 경전, 벽암록 같은 선불교 공안집, 유식(唯識) 불교 등은 물론 보르헤스, 마르크스, 생물학, 나비효과,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카게무샤(かげむしゃ)', 매트릭스(영화), 데카르트, 스피노자, 블랑쇼, 포틀래치 개념, 조르주 바타유, 프로이트, 양자역학, 현대음악, 진은영의 시, 니체 등을 여유롭게 횡단한다.

 

전체가 버릴 것이 없지만 특별히 몇 부분을 보자. 저자는 공(空)을 어떤 규정성도 없음으로 정의한다. 어떤 규정성이나 본성이 없기에 연기적 조건에 따라 그 조건이 규정하는 규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다. 공은 단지 없음을 뜻하는 무(無)가 아니라 차라리 가능한 규정성들이 너무 많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가령 달걀은 식재료도 될 수 있고 남을 괴롭힐 무엇인가(투척용)가 될 수 있고 실험재료도 될 수 있고... 무질서가 아닌 무한질서로서의 카오스가 생각난다. 인연을 의지해 생기는 연기는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는 없음을 가르친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본성이 달라진다.(18 페이지)

 

저자는 가변적 세계의 저편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무상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으라는 가르침을 전한다. 니체는 가변적 세계의 저편을 추구하는 행위를 니힐리즘으로 규정했다. 공성(空性)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179 페이지)

 

저자는 어떤 누구도 될 수 있는 '아무도 아닌 자', 그것만이 윤회하는 것이라며 절대적 가변성을 갖는 이 능력을 무아라 한다면 윤회란 그때마다의 연기적 조건에 따라 수많은 존재자가 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이 펼쳐지는 장이 될 것이라 결론짓는다.(21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여러 생의 윤회든 한 생 안에서의 윤회든 그것은 나나 진아(眞我), 아트만보다는 무아나 생명이라고 불리는 게 더 적절한 어떤 힘의 영원한 흐름이다. 윤회를 긍정하는 것은 이 힘의 되돌아옴, 이 흐름의 가변성 그 자체를 긍정하는 것이다.(218 페이지)

 

압권(壓卷)은 마음 즉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한 해명이다. 저자는 마음을 논하며 스피노자의 자유의지 부정을 논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쓸 때도 그것은 그가 겪은 어떤 사건, 혹은 사람이 무언가 쓰도록 촉발했기 때문이고 그런 자극을 표현할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247 페이지)

 

심지어 화장실에 가는 행위조차 신체의 어떤 상태가 요구한 것을 따른 것이다. 신장이나 방광이 앞장서는 그런 촉발이 없다면 소변기 앞에 서려는 마음이 생겼을 리 없다. 소변을 보는 것도 내가 마음 먹기 이전에 신체가 마음먹은 것이고 그 신체에 흡수된 수분이 마음 먹은 것이다.

 

내가 내 뜻대로 행위한다고 즉 자유의지에 따라 행위한다고 믿는 것은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원인을 하게 만든 원인을 모르고 있음을 뜻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라 할 때 그 마음은 저렇게 나로 하여금 무언가를 하게 하는, 내게 다가온 것들에 속한 마음들이다.(247 페이지)

 

그렇기에 일체유심조는 연기법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연기법의 다른 표현이고 내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식의 관념론과 반대되는 방향의 사고이다.(248 페이지) 저자는 이 부분에서 스피노자의 능산적 자연과 소산적 자연을 활용한다.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하는 '마음이 모든 것을 산출하는 역할'을 능산적 마음, 나의 마음이나 개미의 마음 등 각각의 마음은 그것에 의해 산출된 능력이란 점에서 소산적 마음이라 설명한다.(251 페이지) 대표적인 것 몇 가지를 들었지만 전편이 이런 논리와 흐름으로 진행된다.

 

화려하면서 꼼꼼하고 치밀하면서 자유로운 책이 ‘불교를 철학하다’이다. 자주 들여다 보아야 할 책이다. 놀라운 책이기 때문이고 더 배우고 적응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비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다른 생각이기에 비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유식무경(唯識無境)은 다르게 볼 여지가 충분하다 하겠다. 적극 추천한다.

 

- 접기
벤투의스케치북 2018-11-09 공감(14) 댓글(0)
Thanks to
 
공감
     
제대로 된 책입니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불교를 제대로 철학했습니다. 평이하지만 깊이를 갖고 있습니다. 불교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심길 2017-02-09 공감(3) 댓글(0)
Thanks to
 
공감
     
불교를 철학하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통해 ‘익숙해진다’는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 부모님이 특별한 종교 활동을 하지 않았기에 무신론자로 살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이웃집 어른을 따라 교회에 다니다 부흥회의 분위기에 질겁하고, 소풍 길에 다녔던 절은 볼 거리이거나 쉼터 이상의 의미가 없었다. 책을 통해 이슬람을 만나고 왜곡된 프로파간다에서 참모습을 찾으려 읽는다. 부모님과 함께한 어린 시절의 익숙함이 종교보다 자신을 믿고 살아간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시대정신을 잊지 않고 살아 온 이진경님이 불교를 종교보다 철학으로 이해하고 안내하는 불교철학 기본서 라고 판단한다. 바람 쐬러 다녔던 절, 스님들, 불교라는 종교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일체유심조’와 ‘가는 걸 잡지 말고, 오는 걸 막지마라’ 정도였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보왕삼매경’을 보고 좋다고 느낀 것도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 불교 철학을 온통 이해했다고는 더욱 말할 수 없다. 몇 가지 불교 철학 개념을 알고 이해한 것만으로도 기쁘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는데, 1장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에서 막혔던 가슴이 터지고, 답답함이 사라지며 ‘아 ! 그래, 그래’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연기적 사유’를 이해했기 때문이다. 책이란 독자가 읽었을 때 책이다. 가지고만 있으면 책이 아니라 짐이거나 스트레스일 뿐이다. 좋아했던 남자의 변심을 원망하고 안타까워하고 붙잡아 두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연기’를 받아들이지 못함이다. 연기緣起가 무엇인가? 어떤 조건에 연하여 일어남이고, 어떤 조건에 기대어 존재함이다. 그 조건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음, 사라짐이다.

“‘연기적 사유’는 모든 형이상학적 사유와 결별한다.” 주역의 모든 것은 변한다와 같은 변화를 긍정함을 토대로 한다. 그러니 불변한 것을 찾으려는 서양의 형이상학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다. 어떤 조건에도 변하지 않는 본성이나 실체 같은 건 없다. 하나의 동일한 사물이나 사실조차 조건이 달라지면 그 본성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신혼 초기에 남편과 아내의 모습이 10년, 20년 후에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연기적 사유는 동일한 것조차 조건에 따라 본성이 달라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업’이란 하던 것을 계속 하게 하는 성향으로 관성적인 잠재력이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업은 본성이 아닌 것조차 반복되면서 본성처럼 몸과 입, 의지에 달라붙어 관성적인 언행을 만들어낸다.” 연기적 조건의 차이에 업의 힘이 끼어들어 변화를 만들어간다.

 

불교의 가르침중 하나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상이란 조건이 달라져도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이고, 무상이란 동일성이 없음, 동일성에 반하는 ‘차이’가 있음이다. “무상을 본다는 것은 동일해 보이는 것조차 끊임없이 달라져가고 있음을 봄이다.” 무상을 보지 못하고 동일성을 유지하려 할 때 애착과 집착이 일어나 고통을 느끼고 고통을 받는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동일성의 사유’도 배운다. 차이에서 출발하는 불교 철학은 차이화에서 생긴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동일성에 가두려는 힘에 대항하며 차이를 긍정할 것을 요구한다.

 

근대 과학의 분석적 인과성과 불교 철학의 연기적 인과성을 비교한다. ‘동일한 조건’이라면 이라는 단서로 독립변수와 종속 변수로 분석하는 인과는 서양의 분석법이다. 분석적 인과성에서 변수간 인과관계가 필연적이어야 하지만, ‘연기적 인과성’이란 필연성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필연성을 가진 법칙마저 조건에 따라 다른 결과를 빚어내는 우연성도 무시하지 않는다. ‘카게무샤의 눈물’에서 우리는 조건, 관계에 따라 다른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아가 강하면 빨리 늙는다”를 풀어낸다. 자아는 ‘환경이나 관계 등 외부와의 만남에 의해 그때마다 만들어지는 잠정적인 안정성’이라 본다. 행동패턴은 익숙해진 일상생활을 쉽고 편하게 해 주는데, 이는 새로운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패턴 안에 제약된다. “삶의 가능성이 ‘나’라고 불리는 성격이나 패턴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오십 정도가 되어야 자아가 안정된다는 말은 자아에 갇혀가는 시기라는 말이다. 자아가 강하다는 것은 나와 남에게 자랑거리가 아니다 남에게 폐가되고, 나에게 안타까운 어떤 상태를 표시할 뿐이란다. 그렇기도 하다.

 

지구는 가장 큰 공동체다. “일정하게 유지되는 대기비율처럼, 지구의 온도 역시 그런 항상성을 갖는다. 이런 이유에서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일 뿐 아니라, 강한 의미에서 하나의 생명체다.”

 

끌어당겨 내 것으로 가지려는 마음(탐심 貪心), 밀쳐 내거나 제거하려는 마음(진심 嗔心) : “오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치달리고, 갖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집착하며, 가버린 것을 붙잡으려 애쓰고, 바로 옆에 있는 것을 피하려 하며, 피할 수 없이 다가온 것을 밀쳐내려 버둥거린다.”

 

‘도’라는 지혜는 선악호오, 미추정사 美醜正邪를 분별하지 않는 것이 요체다. 분멸은 모두 ‘나’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호오미추의 척도를 내려놓고 애증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저 사람이 하는 얘기가 들리고 그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니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호오미추의 판단을 떠나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공空’이란 연기적 조건을 모두 지워 남는 것이 아무런 본성도 규정성도 없음이다. “공성을 본다는 것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윤회’는 영생불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삶이란 모면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기에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런 고통 속에 영원히 머문다는 것이다. 윤회의 중단은 고통스런 삶의 중단이요, 그로부터 벗어남이다. 열반, 해탈은 영원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연기적 조건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은 당대에는 혁명적 발상이다. “고통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차분하게 직시하고 그 안에서 넘어서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새로운 깨달음의 길을 다시 찾아 나선 이유였다.” 고통이나 번뇌 없는 깨달음은 없다. 윤회하는 현세적 삶과 별개의 해탈이나 극락 같은 것은 따로 없다. 윤회하는 삶을 떠나야 할 것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긍정할 만한 것으로 바꾸어가라는 가르침이다. 고통에서 배우려고만 한다면 깨달음을 향한 길을 알려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이다.

 

“가까운 자가 아니라 멀리 있는 자를 사랑하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최대한 기쁨을 주고 최대한 슬픔을 덜어주며 살라.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베푸는 자비와 사랑은 집착이다. “연민 없이 사랑하라.” 동정이나 환대는 평등성과 거리가 멀다. 동정이나 연민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의 비대칭성이 전제되어 있다.

 

一切唯心造 : “내가 갖고 있는 마음이 일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밖에서 내게 다가온 연기적 조건이, 그 조건 속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들이 나의 마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만든다.”

 

十二緣起 : 無明/行/識/名色/六處/觸/受/愛/取/有/生/老死

앞에 것이 뒤 것의 조건이다. 뒤는 앞이 있어서 일어난다.

 

“미움 없이 미워하라.”와 “눈 업이 보고, 코 없이 냄새 맡는 것들”, “十二緣起”의 어느 부분들은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불교를 철학하다>는 휴에서 2016년 11월 초판을 내놓았고, 2017년 9월 초판 6쇄, 본문 356쪽 분량을 읽었다. 

- 접기
grhill 2018-07-14 공감(1)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이리뷰] 불교를 철학하다 새창으로 보기
조금 아쉽.
hiphop99dan 2018-01-04 공감(0) 댓글(0)
Thanks to
 
공감
마이페이퍼
전체 (9)
페이퍼 쓰기
좋아요순 
읽을 책이 쌓여서, 이번 주는 도서관 꾹 참고 있는 ... 새창으로 보기
읽을 책이 쌓여서, 이번 주는 도서관 꾹 참고 있는 책 읽자 했건만... 마음이 들썩들썩~ 평일엔 도서관 가기 힘들텐데 하는 초조한 마음이 오후가 지나면서 심해져.. 에라 모르겠다. 또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장 가까운 도서관엔 이미 빌린 책이 많으니, 두 번째로 가까운 도서관으로~ 훗~ 나 좀 천재같아.)

<초조한 마음>이 생각보다 두꺼워서 깜놀. <감정의 혼란> 분량 즈음으로 내 멋대로 생각해놓고, 빨리 못 읽을 거 같아 초조한 마음이 든다. 책 제목과 싱크로율 1000%
다시 데려가겠다던 <불교>와의 약속도 지키고,
수연님과 함께 읽을 줌파 라히리 책도 챙기고,
팟케스트에서 듣다가 추천 받아 읽고 싶은 책도 빌리고... 하.. 또 5권 꽉 채웠엉.ㅠㅠ
















- 접기
붕붕툐툐 2021-04-11 공감 (30) 댓글 (6)
Thanks to
 
공감
 
찜하기
와~ 반 이상 이해가 안되는데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 새창으로 보기
와~ 반 이상 이해가 안되는데 이렇게 재밌을 수가 있다니..
정말 나의 배경지식을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던 부분을 읽을 때는 이해가 쏙쏙, 흐름이 줄줄~ 모르는 부분을 읽을 때는 하얀 것은 종이, 검은 것은 글자.
그래서 주기적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혹은 한 장씩 읽고 함께 토론해 보고 싶어지는 책이기도 하다.
강연을 다시 책으로 낸 거라 말씀하시는 톤으로 적어놔서 그런지 읽히긴 정말 잘 읽힌다.(이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렇게 흐름을 꿰고 있다니 나로서는 놀라울 따름.

정말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왜 막시무스님이 주기적으로 굴뚝청소를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지 진짜 완전 알겠음.(막시무스님 감사해용!)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싶은 책장에 넣었는데, 그때 북다이제스터님이 <불교를 철학하다> 구절을 올리셨는데 그게 또 너무 좋아서 담았다. 댓글로 북다님이 두 작품의 작가가 같다는 걸 알려주셔서 완전 운명적인 책이 되었음.(옷깃만 스쳐도 운명 남발하는 거 아시죠?)(북다님, 감사해요!! 저자 따윈 신경 안 쓰는 저에게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당장 집에서 세번째로 가까운 도서관에서 두 권 다 빌렸으나, 이건 다 읽고 <불교>는 뚜껑도 못 열어보고 반납..ㅜㅠ 괜찮다. 또 빌릴 거니까! 다시 데려와 주겠노라고 사진도 찍어놨다.












- 접기
붕붕툐툐 2021-04-11 공감 (30) 댓글 (8)
Thanks to
 
공감
 
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