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 삶의 모순과 철학의 위안
김시천 (지은이)책세상2013-11-05
368쪽
책소개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과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노자》를 정치적 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며 반대로《장자》는 정치적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한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자연스러운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목차
책을 펴내며 / 9
서장 _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 15
제1부 《노자》, 칼의 노래
1장 노자와 《노자》
-‘전설’을 해체하고 ‘인간’을 보다 / 31
1. 누구의, 누구를 위한 《노자》인가 / 31
2. 하나이면서 여럿인 《노자》, ‘노자열전’ / 34
3. 성인과 제왕, 그리고 범인 -《노자》 속의 인간들 / 55
4. 호모 임페리알리스의 《노자》 / 63
2장 《노자》의 두 전통
-통치술에서 철학의 지혜를 찾다 / 67
1. 하상공과 왕필, 두 밀레니엄 두 가지 해석 / 67
2. 논리와 해석 방법의 차이 -훈고와 의리 / 70
3. 우주와 인간, 기와 도 / 82
4. 우주론에서 심성론으로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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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김시천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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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상지대학교 교양대학에서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014년부터 인문학 전문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를 제작, 진행해 왔고, 2020년부터는 유튜브에서 새로운 인문학을 소개하는 방송 〈휴프렌즈〉와, 인간과 동물이 함께 사는 지혜를 모색하는 방송 〈휴애니프렌즈〉에 출연하고 있다. 그동안 쓰고 옮긴 책으로, 『철학에서 이야기로』,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무하유지향에서 들려오는 메아리, 장자』, 『죽은 철학자의... 더보기
최근작 : <동양철학산책>,<똥에도 도가 있다고?>,<근대 사상의 수용과 변용 1> … 총 4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무위자연의 신화를 넘어 치열한 삶의 이야기로
- 우리 시대 노장을 읽는 아주 특별한 방법
《노자》와《장자》는 유교 중심의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공맹과 대등한 사상적 지위를 누려보지 못한 채 늘 이단으로 여겨졌으나 오늘날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고전 중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는 책이 되었다. 특히 1999년에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라는 강연은 노자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이후 다양한 대중 강연이 노자와 장자를 다루어왔다.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을 비롯한 서구 이론의 영향을 받은 해체론적 노자 해석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대중에게《노자》와《장자》에 대한 어떤 고정된 인상이 각인되었다. 탈속, 자연, 유유자적, 현자, 탈정치, 반문명 같은 개념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인상은 과연 올바른 이해의 결과일까?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 노자와 장자를 전공한 동양철학자가 그간의 노장 공부의 결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텍스트의 문맥을 놓치지 않는 전공자의 시선을 통해 노장에 대한 통념이 실제의《노자》,《장자》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즉 이 책은 두 문헌의 내부에 있는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기존의 연구 성과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통해, 상식으로 굳어진 노장 철학의 주제들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오늘’의 시각으로 재검토함으로써 기존의 논의와 다른 해석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정치적/ 사상적/ 사회적 패권을 놓고 다투었던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헌으로서 정치권력을 차지하려는 자들을 위한 기술적 지침서와 같은 책이며, 반면《장자》는 권력을 차지하지 못한 지식인들을 위해 세상과의 불화를 해소하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두 문헌이 이렇게 이질적임에도《노자》와《장자》는 ‘노장’이라는 말로 한데 묶여 실제와는 동떨어진 고정관념을 낳아왔으며, 이러한 고정관념에 일조한 주제들 중 대표적인 것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이 ‘무위無爲’라는 것,《노자》가 페미니즘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것,《장자》가 기술 문명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 무위는 노장을 이해하는 키워드로 간주될 만큼 노장의 독보적인 개념도 아니고 탈속적/ 반문명적인 삶과 연관되는 개념도 아니다. 또《노자》와 페미니즘,《장자》와 기술 문명 비판을 연결 짓는 것은 문맥을 간과한 채 원문을 선별적으로 인용하거나 잘못 이해한 것으로, 전통과 탈근대적인 것을 잘못 연결한 결과이다.
저자는《노자》와《장자》를 이렇게 읽어내는 것에서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노장을 어떻게 삶에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그리하여 노장을 도가나 도교라는 이름의 철학이나 종교로 받아들이지 말고,《장자》의 ‘유遊’(노님) 개념에 입각해 ‘도술道術Tao-techniques’의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자고 제안한다. 여기서 도술이란 신비한 초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부정하거나 삶에 종속되지 않고 삶을 누리는 기술, 정치와 문명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누리는 기술을 말하며, 이러한 시각은 철학과 종교의 이분법,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다. 결국 이 책은《노자》와《장자》에서 삶의 기술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국내 학자의 독창적인 노장 연구서가 드문데다, ‘무위자연’이라는 표현이 대변하듯 탈속적/ 탈정치적/ 반문명적 사상이라는 노장 사상에 대한 일면적 통념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노자》와《장자》에 대한 역사적 해석과 쟁점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삶의 양식으로서의 ‘도술’이라는 21세기 노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하는 이 책은 저자가 줄곧 견지해온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대한 학문적/ 실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노래하는 노자의 칼, 춤추는 장자의 방패 - 노장과 ‘모순’
이 책의 제목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는《노자》와《장자》를 둘러싼 여러 차원의 모순을 환기한다. 우선 글자 그대로 ‘창(칼)과 방패’로서의 ‘모순’이다. 저자의 이해에 따르면《노자》는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는 데 필요한 자질이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과 같은’ 책이고,《장자》는 권력의 중심부로 나아가지 못한 자가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하는 ‘방패와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성격이 다른 두 책이 마치 동질적인 것인 양 ‘노장’이라는 말로 함께 묶여 거론되니 이 또한 모순이다.
한편,《노자》와《장자》는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았던 조선 사회에서 이단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지만, 모순되게도 이이, 박세당, 홍석주, 서명응, 한원진 같은 정통 유학자들에 의해 주석되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박세당의《신주도덕경》과《남화경주해산보》, 이이의《순언》, 홍석주의《정노》, 한원진의《장자변해》같은 노장 주석서가 쓰이고 읽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노자》와《장자》는 이단이면서도 ‘바깥’에 있지 않고 ‘안’에 있었던 셈이며, 저자는 이러한 모순을, 성리학이라는 정치적 교조를 고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금단의 노장을 읽으며 자유를 꿈꾸었던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분열된 내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저자는《노자》와《장자》에서 이런 중층의 ‘모순’을 읽어내며, 결국 삶 자체가 그렇게 모순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게다가《노자》와《장자》모두 단일 저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니어서 여러 목소리를 내는데다 모호한 언어로 되어 있어 해석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니, 노장 읽기는 모순으로 가득해 종종 길을 잃게 만드는 우리의 삶과 닮았다. 저자는 노장의 모순이 삶의 모순과 유비를 이루기에 오히려 삶에 위로를 준다고 말하며, 나아가 도가나 도교 대신 ‘도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철학이나 종교 아닌 삶의 기술로 받아들여 현실적 동반자로 삼을 방법까지 모색한다.
《노자》- 패권 지망자들의 책, 권모술수의 책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노자》는 전국 시대 말기에서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완성된 책이다. 그리고《노자》의 저자는 노자라는 한 사람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신원을 알 수 없는 여러 사람이다. 이 복수의 저자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었는지는《노자》텍스트에서 어떤 사람들이 주역으로 등장하는지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통념과 달리《노자》에는 “정치적 세계의 비정함에 냉소를 보내고 문명을 비판하고 유가와 같은 도덕적 엄격주의에 식상한 인간, 환경과 자연의 가치를 긍정하고 페미니즘적 세계관을 지향하는 인간”은 등장하지 않는다.《노자》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상은 오히려 성인聖人, 후왕侯王, 사士 같은 권력자들이다. 이는《노자》의 저자나 독자가 패권 지망자들이었음을 짐작게 하고, 실제로《노자》는 내용상 권모술수를 포함한 “권력의 기술”에 대한 책이나 다름없다.
《노자》에 대해서는 수많은 주석자들에 의해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졌고 그러한 해석들에서 공통의 기반과 의미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대표적인《노자》해석으로는 한나라 하상공과 위나라 왕필의 해석이 꼽힌다. 두 사람의 주석서는 똑같이《노자》를 다루면서도 아주 다른 해석으로 나아간다. 하상공이《노자》자구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는 데 충실한 편이라면 왕필은 유가의 입장에서《노자》를 해석한다. 그리하여 하상공의 해석은 도교의 차원과 연결되고 왕필의 해석은 유학자들의 해석의 토대가 되면서 다양한 조류를 만들어나가게 되었다. 그런 만큼 어떤 주석서를 통해《노자》를 읽는가에 따라《노자》의 얼굴이 달라진다.
그렇다면 조선 사회에서는《노자》가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유학 아닌 것은 이단으로서 철저히 배척했던 조선조에서 뜻밖에도 이이의《순언》, 박세당의《신주도덕경》, 홍석주의《정노》, 서명응의《도덕지귀》등 모두 다섯 권의《노자》주석서가 쓰였으며,《선조실록》에는 과거시험 답안지에 노장의 문장이 인용된 것을 놓고 임금과 신하가 왈가왈부하는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이는 모두 임금과 신하들, 그리고 과거에 응시한 선비가《노자》와《장자》를 읽어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이단의 문제점을 알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읽어야 한다는 논리를 앞세우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조선 사회에서 정통인 유가와 이단인 도가 사이의 소통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장자》- 출사하지 못한 비운의 지식인의 책, 세속에서 노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책
《장자》는 긴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문헌으로 추측되지만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장자》는 진晉나라의 곽상이 틀을 갖춘 것으로 33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장자가 지은 것은 ‘내편’ 7편뿐이고 나머지는 후학들의 글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따라서《장자》에는 서너 갈래의 다른 목소리가 뒤섞여 있으며, 이는《장자》해석의 어려움을 낳는다.《장자》의 어느 편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중국 철학계에서《장자》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중국인의 패배주의와 노예근성의 정신적 근원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에 중국 고유 종교인 도교의 사상적 원류, 유가를 계승한 사상, 중국 예술 정신의 원류라는 등등의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한국 학계에서도 이런 식의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한다. 저자 김시천은《장자》의 이야기들에서 얻을 수 있는 장자에 대한 정보를 통해서 “뜻을 품었으되 가난해 벼슬에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한 지식인”을 장자의 일관된 모습으로 포착해내고,《장자》를 “비운의 지식인”의 책으로 본다. 치자의 영광과 명예로 나아가지 못하고 불행과 억압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삶의 기술을 이야기한 책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가《장자》에서 가장 주목하는 개념은 ‘유遊’이다. ‘유’는 ‘노닐다’에 가까운 개념으로, 잠정적 ‘떠남’과 떠났다가 ‘돌아옴’을 전제한다. 떠남이 정치적 야망이나 사회적 관계를 포함하는 세속의 삶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이라면, 돌아옴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에서의 깨달음을 안고 세속의 삶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쳐 돌아왔을 때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 다툼과 경쟁과 갈등에서 벗어나게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삶의 태도가 “탈속적 태도”도 아니고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거나 변화시키려는 변혁적 실천”도 아니며, 다만 “한 개체가 겪는 갈등과 억압을 승화시킨 태도”라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유’는 삶의 보전이라는 ‘양생’의 논리와 이어지며, 또한 문화와 예술에 영감과 창조적 활력을 준다고 본다.
《장자》역시 조선 시대에 유학자들 사이에서 읽혔고 박세당, 한원진에 의해 주석되었다. 다만《장자》는 대체로 유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져,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에 가까운 존재였다.
《노자》와《장자》에 대한 통념은 올바른가
두 문헌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위나 억압을 거부하고 자연 속에서 초탈한 태도로 살아가는 현자의 격언쯤으로《노자》와《장자》를 떠올리는 통념과 거리가 있다. 저자는 노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많다고 보고 이를 점검한다. 여기서의 논점은 ‘무위자연’이 노장을 대변하는 개념인가,《노자》가 페미니즘과 닿아 있는가,《장자》가 기술 문명에 반대하는가 하는 것이다.
유가는 ‘유위有爲’를 주창했고 노장은 ‘무위’를 주창해 유가를 비판했으며, 유위는 인위에 상응하고 무위는 자연에 상응한다는 것이 통념상의 도식이다. 하지만 저자는《논어》,《맹자》,《순자》,《묵자》등 여러 고전 문헌들의 ‘무위’ - ‘유위’ 용례를 분석해, 무위와 유위가 대립되는 개념이고 무위와 자연이 상응하는 개념이라는 상식은 틀린 것임을, 그리고 무위란 “제자백가의 공통 개념으로서 어느 특정 학파가 전유한 것이 아니며, 기본적으로 정치 행위 이론”임을 밝힌다. 따라서 무위자연을 도시와 문명을 떠나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는 삶과 연관 짓고, 무위자연이 노장이 추구하는 삶의 대명사라고 이해하는 것은 수정되어야 한다.
그럼《노자》와 페미니즘의 관계는 어떠한가? 저자는《노자》가 여타 문헌에 비해 여성성을 중시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것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을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의 차원은 아니라고 말한다.《노자》의 몇몇 표현들을 들어《노자》를 페미니즘과 연결시키는 것은, 유가는 뭔가 부정적인 사상 체계이고 도가는 뭔가 긍정적인 사상 체계라는 도식적 선입견 때문에《노자》에 나오는 여성성 강조의 표현 하나도 과도한 의미를 담아 해석한 결과라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으로 노자의 시대는 가부장제 완성의 정점이었는데 그러한 시대에 노자가 여성을 찬양하고 페미니즘 철학을 전개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일이냐고 저자는 반문한다.《노자》에서 볼 수 있는 여성성의 강조는 여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남성적 강함에만 의지하는 정치는 온전하지 못하니 군왕은 여성의 유약함을 가장하는 교묘한 ‘술수’ 또한 겸비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장자》가 기술 문명을 비판했다는 상식 또한 잘못된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식이〈천지〉편에 나오는 ‘기심機心’이란 말을 “편리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원문의 맥락을 따른다면 ‘기심’을 “최소 투자 최대 효과의 심리”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렇다면〈천지〉편의 이야기에서 기심을 비판하는 것은 “기회주의적 심리를 비판한 것이지 고도의 기술적 성취 그 자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양생주〉편에 나오는 포정?丁의 이야기에서는 기술에 대한 긍정을 읽을 수 있다. 소를 잡는 데 있어서 기술을 넘어 도의 경지에 오른 포정의 칼놀림을 보고 문혜군이 ‘양생의 도’를 터득했다는 이 이야기로 미루어,《장자》에서는 기술이 비판되는 것이 아니라 도에 이를 수 있는 방법으로서 긍정됨을 알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노장, 삶의 기술로서의 ‘도술’을 위하여
-21세기에《노자》와《장자》를 어떻게 향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노장’은 “《노자》와《장자》라는 텍스트에 담긴 내용 혹은 그와 관련된 문헌에 담긴 철학적, 사상적, 종교적 전통”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노장이 유가 전통에 포섭된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노자》와《장자》가 한대漢代 이래 제자백가의 하나인 ‘도가’로 분류되고 20세기에 ‘도교’의 기초 경전으로 이해되면서 노장은 철학적, 종교학적으로 언제나 도가와 도교라는 더 큰 범주와 철저하게 관련돼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맥락에서 벗어나 노장을 철학이나 종교로서 대하지 말고 우리의 삶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지속시키며 향유할 방법을 모색하자고 말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방법은 노장을 도가/도교 아닌 ‘도술’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저자는 다시 ‘유遊’라는 개념에 주목한다.
저자는 ‘유’ 개념을 현대라는 패러다임으로 가져와 ‘유’를 정치를 부정하기보다 정치를 누리고, 문명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문명을 누리는 태도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유’에 이르도록 해주는 것이 양생養生nourishing-life의 기술(자의적 권력에 맞서 자신의 생명과 삶을 보전하는 기술)과 달생達生mastering-life의 기술(양생의 기술을 삶의 다양한 영역에 적용하는 기술)이며, ‘도술’이란 이러한 삶의 기술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 시대라는 틀 안에서의 고전 읽기를 고민해온 저자는 이처럼 노장 전공자로서의 진지한 노장 읽기를 통해 통념에 가려져 있었던《노자》와《장자》의 실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전을 삶 속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저자 자신의 바람처럼 학술적 연구서이면서 작은 이야기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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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장자를 알고 싶다면 꼭 봐야 할 책! 뒤섞이고 엉클어져 길을 헤매는 동양철학을 구원할 진리. 구매
서재필 2013-12-1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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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7책] #15 - 노장을 해체하라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 새창으로 보기 구매
《노자》를 읽는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이렇게 말한다. '노자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기본적으로 나는 마음의 위안 따위를 경계하는 입장이라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불편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읽었다는 뜻이다. 이런 식의 태도는 성서를 읽는다는 평범한 교인에게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위해 성서를 읽는다. 문제는 그런 독해가 심각한 오독의 가능성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기 위해 읽기. 그런 읽기는 특정 부분만 닳고 닳도록 주무른다. 마치 관광지에서 특정 부위로 유명한 동상을 만지는 것처럼. 복을 바라는 저 손길!
흥미롭게도 그런 신앙인들은 교회 밖에서도 발견된다. 동양철학이라는 분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유가'에 경도된 사람들은 주희의 주석을 보석처럼 받드는 반면, '도가'에 경도된 이들은 주석 따위는 별로 상관치도 않고 생태니 자유니 하는 말을 멋대로 갖다 붙인다는 점이다. 공통점은 자구 해석에 집착한다는 점인데 이는 마치 성서에 한 점 오류가 없음을 주장하는 저 신앙인들에 비견할만하다. 그러니 역사니, 해석이니, 문헌 비평이니 하는 문제는 전혀 고려할만한 게 아니다.
《노자》를 좀 공부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점은 대중들이 그토록 《노자》를 사랑하면서도 그에 관한 이론적 연구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삼키기 쉬운 유동식 마냥 잘 가공된 《노자》에 젖었기 때문이며, 그것만이 《노자》의 본 모습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적지 않은 연구자들이 이야기하는 노자와 장자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자》가 사실은 권력을 취득하기 위한 방편을 제공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벽창호가 되어 버리곤 한다.
대체 왜 이런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동양 철학'을 소비하는 특정한 버릇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연, 자유, 평등, 생태... 이런 개념을 버리고 다른 식으로 읽을 길은 없을까? 나에게는 저 말들이 내용없는 껍질처럼 느껴진다. 마치 십자가 아래 부르짖는 공허한 소리들 처럼. 그런면에서 이른바 노장철학이라는 것을 대중적으로 소비하는 데 기독교적 관점이 크게 작동하고 있다는 점은 숙고해볼 만한 부분이다.
여러 곳에서 발표한 논문을 묶어서 한 권의 책이라기 보다는 논문집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나름 한 권의 책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나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장점이 많은 책이다. 《노자》와 《장자》를 공부한다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한다.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이야기하면, 이 책을 읽은 뒤 《노자》나 《장자》를 읽을 욕망이 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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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사랑취두부 2015-11-0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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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물러나 노자와 장자 보기 새창으로 보기 구매
노자와 장자에 관심을 가지고 읽는 분들중에 한권의 주석서나 해설서만
보신 분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책이다.
한 걸음 물러나 노자와 장자라는 책을 좀 더 크고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제목의
노자의 칼에서 칼은 가지기 위한 행위이고,
장자의 방패에서 방패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다.
삶은 가지기 위해 그리고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분주한 모순이라는 얘기다.
지금 우리는 이런 모순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에 대한
해결책을 노자와 장자의 도가적 전통을 통해 찾아보자고 말한다.
쉽게 읽히는 듯 하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다.
다음에는 좀 더 깔금하게 정돈된 글쓰기 김시천 선생이 도가사상에 대한
책을 내주시기를 기대한다.
이 책과 철학에서 이야기로라는 책 모두 읽이보면,
김시천 선생은 노자와 장자를 읽는 행위를
우리 삶의 현실과 연결시키는 것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모른다.
노자와 장자가 무슨 말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물론 우선 그 내용을 알아야하지만),
그래서 노자와 장자를 통해서 우리 삶이 어떻게 윤택해질 것인가야말로
시간들여 노자와 장자의 지혜를 빌리는 이유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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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휴암주 2016-06-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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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시대에 따라 달리해석된다! 새창으로 보기
이책을 처음 알게된 것은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에서였다 김시천, 오상현!! 이두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는 논어 한구절을 중심으로 주제를 잡아 이야기를 풀어간다. 기존에 논어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오해를 이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많이 걷어냈다. 그리고 도올김용옥 선생의 '논어 한글역주'를 사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중!! 김시천 쌤이 자신의 전공인 '노자'에 대해서 강의를 하시기 시작했다. 그의 책!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를 읽겠다는 생각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쉽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 무더운 여름을 이책을 읽으며 지내보기로 결심하고 책을 빼들었다.
1. 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노자!!
김시천 쌤이 가장 난감해하는 질문이 '좋은 도덕경 해설서 있으면 추천해달라'라는 말이라한다. 천의 얼굴을 하고 있는 노자! 그런데,어떤 책을 추천해주어야할까? 막막하기만 하단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도올의 도덕경 강의에서 알고있는 노자에 관한 상식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은 노자의 여러얼굴중 하나였다. 도덕경이 병법서로도 읽힌다는 사실을 아는가? 호모 임페리얼리스인 노자가 군주들을 위해서 쓴책을 우리는 패미니즘적 시작에서 생태환경적 시각에서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통쾌하게 깨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도덕경에 대한 상식들은 유학자들에 의해서 해석된 도덕경이라는 사실도 아울러 지적해준다.
이책을 쉽게 읽으려면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 - 노자 편들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팟캐스트를 듣고 혹은 같이 듣고 읽는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 유학자들이 종하한 장자!!
이 책은 장자라는 책을 과연 노자와 같은 부류의 책으로 읽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유학자들이 왜? 장자라는 책을 좋아하는지, 특히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이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그리고 장자에게 갖고 있었던 갖가지 오해들을 말끔히 설명해준다. 그런데, 이 부분을 쉽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아마도 '장자'라는 책을 읽어 봐야겠다. 읽지 않고 이책을 읽다보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물론,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 -노자편에서 장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설명이 안된 부분을 읽다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3. 평범한 상식에 도전하라!!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평범한 상식에 도전하라는 말이었다. 우리가 당연시하며 알고있었던 상식들을 이책은 통쾌하게 반박한다. 과연 그것이 맞을까? 어떤 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갖고 있었던 오해! 그 오해를 걷어내려면 상식에 도전해야한다.
또한가지, 평범한 진리이지만, 고전이란, 천의얼굴을 하고 있다. 고전을 읽으면서도 과거의 책 속에서 현재의 지혜를 얻으려 하기에, 자연스럽게 과거의 책은 오늘의 문제에 답을 해주도록 읽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바꿔가며 지혜를 주는 책이 바로 '도덕경'이다. 그래서 도덕경을 논어 다음으로 읽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평범한 상식에 도전하고, 이시대의 도덕경과 장자 읽기에 대해서 고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천의 얼굴을 하고 있는 고전의 재미에 빠져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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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6-08-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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