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반양장) -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김홍경 (지은이)들녘201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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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 32,000원 880쪽
책소개
잇따른 고고학의 발굴은 우리 시대의 중국학에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고고학적 발굴 중에서 가장 의미 깊은 것은 마왕퇴 한묘의 백서와 곽점 초묘의 죽간, 즉 초간이다. 이 두 발굴에 모두 『노자』와 관련된 자료가 있다. 마왕퇴 백서의 완전한 『노자』 갑본과 곽점 초간의 『노자』 원시 자료를 기본으로 하고, 기타 통행본을 꼼꼼히 비교 참조해가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것이 이 책이다.
백서 갑본에 따르면 지금껏 통행되어왔던 『노자』가 상당히 달라진다. 형이상학적인 “도편”보다 “덕편”을 앞세운 것은 그 시대의 『노자』가 통치술(처세술)을 중심에 내세우는 잡가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그 핵심적 목표는 위험이 없는 장구한 생존, 즉 장생구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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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서문_ 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덕편
도편
참고문헌
조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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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김홍경의 『노자』는 체제부터 기존의 『노자』와는 다르다. 우선 『도덕경』이 아닌 『덕도경』의 편제를 취하기 때문이다. 1973년 중국 호남성 장사의 마왕퇴에서 발굴된 『노자』의 형태를 좇아 「덕경」을 「도경」보다 앞세운 것이다. 이러한 판단에서 알 수 있듯이, 김홍경의 『노자』는 통행본으로 알려진 왕필(王弼)본이 아니라, 마왕퇴 백서(帛書)본, 그것도 갑본을 저본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1993년 중국 호북성 형주 근교의 곽점에서 발견된 초간(楚簡)본 『노자』도 중요 자료로 반영한다. 다시 말해, 김홍경의 『노자』는 두 차례에 걸친 세기적인 발굴을 기반으로 『노자』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시도한 것이다.
이 책은 『노자』의 진(秦) 제작설을 주창한다. 왜냐하면 『노자』는 기본적으로 군주의 통치를 위해 정리된 것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노자』의 제작자는 진과 한(漢) 정부의 관계를 고려했다는 학설을 받아들인다. 이때 무위(無爲)는 임금의 통치술이 된다. 게다가 『노자』는 도가로 분류되기 전에 잡가적이었다고 말한다. 이는 사마담이 도가를 도덕가로 부르면서 음양/유/묵/명/법의 장점을 계승했다고 기록한 것과 같다.
이 책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각 장마다 꼭지글이 달려 있어 큰 주제를 생각하게끔 돕는다는 것이다. 『회남자』, 『장자』, 『여씨춘추』는 물론, 『논어』와 『맹자』까지 인용해가면서 사상의 지형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각 문장마다 해석이 매우 상세하여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높은 가치를 지닐 것이다. 번역의 충실함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노장철학』『위진현학』 저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홍경 (지은이)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유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고, 「조선초기 유학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성균관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 출강했다. 1997년에는 중국 국가교육위원회의 초청으로 베이징대학교에서 연수했으며, 2001년 여름 미국으로 건너가 방문학자 자격으로 오리건대학교에 머물렀다. 1989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성균관대학교 강사노동조합 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조선초기 관학파 유학사상』(한길사)과 몇 권의 공저가 있고, 논문으로는 「성자의 유희」(시대와 철학) 외 다수가 있으며, 번역서로는 『음양오행설의 연구』(신지서원)와 몇 권의 공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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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노자 (반양장)>,<한국유학과 열린사유>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늙은 선생이 전하는 삶의 기술
잇따른 고고학의 발굴은 우리 시대의 중국학에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고고학적 발굴 중에서 가장 의미 깊은 것은 마왕퇴 한묘의 백서와 곽점 초묘의 죽간, 즉 초간이다. 이 두 발굴에 모두 『노자』와 관련된 자료가 있다. 마왕퇴 백서의 완전한 『노자』 갑본과 곽점 초간의 『노자』 원시 자료를 기본으로 하고, 기타 통행본을 꼼꼼히 비교 참조해가며 새로운 해석을 내놓은 것이 이 책이다.
백서 갑본에 따르면 지금껏 통행되어왔던 『노자』가 상당히 달라진다. 형이상학적인 “도편”보다 “덕편”을 앞세운 것은 그 시대의 『노자』가 통치술(처세술)을 중심에 내세우는 잡가적 성격을 띠고 있었고, 그 핵심적 목표는 위험이 없는 장구한 생존, 즉 장생구시에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면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노자』가 진시황 때 편집되었으며, 여러 사상을 종합적으로 흡수한 늙은 선생(老子)의 지혜서임을 설파하고 있다.
고고학의 발굴로 새 빛을 보게 된 『노자』
『노자』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책 중의 하나다. 동북아 삼국은 물론, 라틴어 번역본을 비롯해 수많은 언어권에서 번역 소개되었다. 『노자』는 실로 작은 책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연구와 해설이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적은 글에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오묘한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통행본으로만 전해지던 『노자』는 1973년 마왕퇴 백서와 1993년 곽점 『노자』 원시본의 발굴로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갖게 되었다. 이를 모두 포괄하는 『노자』 번역 및 해설서가 없어, 저자는 이 책을 내게 되었다.
가장 판이한 점은 기존의 “도편·덕편”의 순서가 “덕편·도편”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이다. 원래 『노자』는 도와 덕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 덕보다 도가 존재론적으로 상위 개념이라고 해서 덕이 없다면 『노자』는 죽은 책이고 공언이며, 덕이 중국 특유의 실용 정신에 부합한다고 해서 도가 없다면 『노자』는 중심을 잃는다.
그렇더라도 “덕편·도편”의 순서로 된 것은 편집 당시의 『노자』가 처음부터 통치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자』는 국가와 개인을 동일체로 파악한다는 전제하에서 수양론으로 곧바로 연결될 수 있고, 통치론을 큰 안목에서 합리화하기 위해 동원한 “도” 개념에 주목하면 형이상학을 읽을 수도 있으며, 그 형이상학을 발전시켜 신비주의로 빠질 수도 있고, 장생구시의 가치관에다 다른 계열에서 발전한 “기”와 음양오행설을 접목시키면 정기 양생론이 되는 등 그야말로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힐 수 있다.
이 같은 방대한 해석 경향에 간섭받지 않고 백서 시대의 『노자』를 그대로 구성해보겠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그 기본을 정리하면, 첫째 『노자』는 기원전 286년 이후 어느 시점에 편집된 책이며, 둘째, 『노자』는 여러 사상 경향을 흡수한 잡가적(종합주의적) 책이며, 셋째, 『노자』는 당대의 필요에 따라 통치술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노자』는 도가로 분류되지만 오로지 도가로만 한정될 수 없고, 유가와 묵가를 겸하며 명가와 법가를 합하고 있다는 점은 명백하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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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경이라고 해서 텔레비전에서 한의학 강의를 한 그 사람인줄 알았다.
흔한 이름이 아니고, 한의학과 노자는 왠지 가까운 느낌이어서...
그런데 동명이인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처럼 노자를 느긋하게 즐기려는 사람에게 적합한 책은 아니었다.
백서와 왕필의 주해서를 분석하는 책으로 상당히 전문적인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부분의 해석들을 주로 읽어나갔다.
노자는 비유로 가득한 책이라서, 내맘대로 읽는 노자가 제일 좋다.
그리고 어린 왕자를 몇 번 읽을 때마다, 가슴을 치는 구절이 다르듯이, 노자도 그렇다.
한국에서 노자를 시장 바닥으로 내놓은 선구자가 도올이다.
그를 '돌'이라고 유사품을 만들어 강의한 코미디언도 있는데, 멋진 아이디어다.
도올과 돌 사이엔 별 차이가 없다.
그의 강의록이 노자와 21세기란 책으로도 나왔는데, 지나친 현학과 천박한 어휘 사용으로 노자를 웃긴 남자로 취급당했다.
난 개인적으로 '도올'이란 말이 우습다. 올이 높다랗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도가 높다랗다고 하는 이름을 짓고서는 노자를 강의하다니... 수능 점수는 높다란 사람일는지 몰라도, 험담을 입에 담고 사는 그가 높다랗게 보이진 않았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노자>는
'전국 시대'는 지극히 '남성성'이 강조된 시대였다. 그래서 노자는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이 이 책이다.
노자란 이름, 즉 늙은이의 노래란 제목이 이미 남성적이기 보다는 여성적이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반어로 가득한 노자에는 정언약반 正言若反(올바른 말은 마치 삐딱한 듯 하다.)의 수사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에선 덕도경의 순서로 해설을 달았다.
도는 좋은 삶의 길, 좋은 삶의 근거가 되는 <윤리적, 존재론적 범주>라면,
덕은 구체화된 무엇으로 도의 결과, 작용, 드러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덕은 도의 집인 것이다.
도가 만물을 태어나게 한 뒤, 덕이 그것을 기른다는 것에서 덕을 앞세운다.
이번에 덕도경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구절들은 이렇다.
나에겐 항상 세 가지 보물이 있다. 자애, 검소함, 천하에 감히 나서지 않는 것이다.
내 말은 무척 쉽고, 행하기 쉽지만, 사람들은 알지도 행하지도 못한다.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것 같다. 大巧如拙
爲學者一益 聞道者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也 無爲以無不爲 將欲取天下也 恒無事 及其有事也 又不足以取天下矣 학문을 하는 자는 날마다 더하고 도를 들은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어 무위에 이르니 무위하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바야흐로 천하를 취하려 한다면, 언제나 일이 없음으로 해야 할 것이니, 만약 일이 있음이면 천하를 취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성인은 모두를 어린이로 대한다.
작은 것을 보는 것은 눈이 밝다고 하고,
부드러움을 지키는 것을 강하다고 한다.
덕을 두텁게 머금은 사람은 갓난아이와 같다. 含德之厚者 比於赤子
억세지면 곧 늙어버린다. 이것을 부도라고 말한다. 物壯卽老 謂之不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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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두께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전문가가 만든, 전문가를 위한 책인 듯 한데,
'수컷 모 牡' 자와 '암컷 빈 牝' 자를 혼동해서 수컷 모 牡자만 잔뜩 적어 놓은 것을 보고 신경질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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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30 공감(4)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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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보지 않고 노자를 말한 책.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에서는 [노자]를 제외하고
[노자]에 대해 논한 사람들의 말을 알 수 있다.
[백서 갑]을 저본으로 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백서 갑도, 아니라, 백서 을, 혹은 통행본, 즉 현행 [도덕경]에 꾀어 맞추어 보고,
[노자]를 잡가서라고도 하고, 정치술이라고도 하고 처세술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또 본인의 창조적 고민도 있었겠지만, 일본의 사이토 세쯔도, 중국의 양계초, 혹은 서양의 누구와 같은 사람의 입장을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노자 백서에는 이런말이 있다.
其出也, 彌遠, 그 나간다 함은, 더욱 멀어진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노자를 논한 사람들의 말(대게 노자가 혐오한 학자들이다)을 따라가다 보면,
점점 더 노자를 알기 어려워 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자들은 날마다 더하기만 하니, 정작 비워 진 이 道를 알 수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이 책 역시, 날마다 노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하는 지식과, 말을 더 할 뿐,
정작 [노자]가 쓴 바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를 들어 보자, 초간 노자에 여성성이 없다고 하지만, [초간 노자]에는 女, 奴와 같은 표현이 나온다. 어떻게, 大白女辱, 女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쓰였다 해도, 女가 본래 음전히 앉은 여자의 꼴인데서, 의역하면, 크게 깨끗한 흰 빛은 욕됨에 음전히 앉는다 볼 수 있다. 이는 백서나 통행본이, 大白如辱이나, 大白若辱이라 옮겨, 크게 흰 빛이 더러움 같다 보고, 동일률을 위배해 모순에 빠졌던 것이지만, 기간 꿈 보다 해몽이라던 것처럼, 역설적으로 이해해 왔던 것 보다, 훨씬 좋은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백서 갑 33번째에도 있으니, 天將建之女以玆垣之라 한 것이 그것이다.
또 [백서 노자]를 저본으로 해서 [초간 노자]는 아직 노자라 하지 못하고, 춘추시대의 이런저런 사상을 묶은 잡가서라 했지만, 정작 [백서 노자]는 [초간 노자] 전부를 모두 인용, 수록해 옮겨서, 이를 노자로 보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게다가 몇몇 글자들, 즉 여기서 나오는 女나 '클 비丕' 혹은 {爲心}과 같은 글자들은 [초간 노자]의 글자를 그대로 빌어 쓰고 있으며, 심지어, [백서 을]이나 현행 [도덕경]은 [초간 노자]에 근거해 [백서 갑]의 글자를 수정해 나가기도 했건만, 답답한 일은 이 무슨 '안경'을 쓴 사람들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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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읽기 2007-09-10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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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를 읽으면 정말 삶의 기술을 알게될까?
보는것만으로도 가슴이 딱딱막히는 책이다. 무게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근데 왠지 죽기전에 이런책도 한번쯤은 읽어봐야할것같은 생각이 든다. 학교때 한문교과서에 '공자왈~', '맹자왈~'할땐 가슴으로 느끼기보단 외워야한다는 생각에 짜증만 났었는데 역시 입장에 따라서 무언가를 대하는 마음까지 달라지나 보다.
책의 구성은 일단 한장을 원문으로 소개하고, 그 옆에 우리말로 해석이 되어있다. 그 다음장엔 한구절씩 잘라서 해설을 붙여놓았는데.. 솔직히 한장을 읽기도 버겁기만하다. 그나마 학교때 한문을 특별히 잘했었고, 유달리 좋아했던 사람이였던 나조차도 손놓아버린지 10년이 흐르고나니 글자가 가물거리고, 소화가 잘 되지않은 느낌이다. 그러나 수백년이 흘른 지금까지도 잊혀지지않고, 회자되는 책이라면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을것이다. 쉽게 읽히는 책보단 어렵지만 조금씩 읽는책도 그만의 매력은 있을테니깐. 마지막으로 읽어나가기조차 힘든책을 직접 만든 저자가 정말 존경스럽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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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른세상 2003-10-19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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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있는 사상, 깊이 있는 해석
많은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렇다고 선문답처럼 뜬구름을 잡지 않으면서도 심오한 사상을 얘기하는 책이 노자이다. 낮은 곳의 사상, 부드러움의 사상, 깊이의 사상으로서 노자는 다른 고전 사상들과 결을 달리한다. 그런만큼 노자의 해석은 어려운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신중하게 노자를 해석한 책이다. 신중한 해석이라고 해서 난해하지는 않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을 수 있는 책이다.
바람소리 2011-03-17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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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가기 새창으로 보기
종전의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책은 1973년 중국 호남성 장사에서 발견된 백서(帛書)본을 토대로하여 덕경,도경순으로 배열을 하고 있으며, 장의 수는 통행본의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도덕경은 이 책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다.
사실 기존의 다른 책도 많이 보아왔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한자가 5천여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석이 중의적으로 가능한 부분이 많고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야하는 애매함이 있었다.
김홍경의 백서본을 보면서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저자는 또한 자세한 설명을 달고 있다. 여기에는 도덕경에 국한하지 않고
사서삼경의 내용을 인용하기도 한다.
저자가 설명을 잘해서 인지는 모르나, 이해하기는 수월했다.
그사이 나 자신도 동양철학과 사상에 대해서 이전보다 깨우침이 늘었기도 하다.
도덕경을 보면서 느끼는 부분은 참으로 옳은 얘기인데,
막상 현실에서는 전쟁터이다 보니 삶을 임전하는 자세로 살게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과정에서 앞만 보는 것이아니라 주위도 보고 뒤도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노자철학이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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