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31

너름새 처소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노자와21세기(상)

너름새 처소

도올 김용옥 선생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노자와21세기(상)
도올 김용옥이 말하는 노자와 21세기(상)
지은이: 김용옥
출판사: 통나무
봉사자: 김진국
방송문화의 한 전기를 위하여
요즈음 내 마음은 백담의 푸른 물처럼 맑다. 세상일을 다 놓아버려 집착하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환자도 보지 않고, 대학강단에 서지도 않고, 외유도 삼가고 오로지 집안구석
에 쑤셔 박혀 사랑하는 책들을 벗삼아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인간의 생각의 여로를 탐색하는 재미로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 수 있는 삶은 물론 나 자신의
어려운 노력으로 얻은 것이기는 하지만, 하여튼 고맙기 이를 데 없고, 또 송구스러운 느낌도 든다.
이렇게 한가로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끊임없이 하고싶은 공부를 하는 것과,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내 자신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첫째로, 요즈음은 남의 생각을 열심히 나열하는 그런 짓에는 별 취미가 없다. 어릴 때는 그런 과정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도 하는 즐거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참 내 생
각이 아니면, 이다지도 정보가 소통되어 있는 세상에, 어디엔가 다 쓰여져 있을 법한 얘기들을 반복하는데 내 정력을 허비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런 만큼 정직한 내 생각이라는 것은 글로 옮길 수 있을 만큼 모양을 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 도올 김용옥선생
너름새 2013. 3. 6. 15:23 http://blog.daum.net/busoong1/17336292
둘째로, 아무리 내 생각이 모양이 잡혔다 하더라도 치러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팔로 쓴다 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품을 완성하는 과정과도 같아 잔손이 많이 가고
그것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통째로 필요한 것이다. 건물을 하나 잘 지으려해도 그 건물 하나를 짓는데 만 십여년의 세월을 건축가나 공인들이 전념하는 상황은 흔히 있는 일
이다. 하물며 철학적 건축물을 하나 짓는데 십여년의 전념할 수 있는 세월이 통째로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대인들에게는 이렇게 통째로 철저
히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 지지 않는다. 나 역시 겨우 한 두해 놀았는데, 이 정도로는 사상가 내음새를 피우기에는 텍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머니사정도 생각 안 할 수 없
다. 이상과 현실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비좁은 삶의 틈새의 비효율성을 한탄하면서, 하염없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발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하자니...
그러던 어느 날 따르르릉 무정재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저희 방송사에서는 요번 밀레니엄 전환기를 맞이하여 좀 사려 깊은 기획을 하나 했습니다..."
무슨 부탁이든지 무조건 거절하기로 악명이 드높은 나, 사실 거절의 미덕을 성공적으로 발휘 못하면 이 소란한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도저히 "놀 수"있는 시간을 획득하기란 불가능
한 것이다. 전화를 거시는 피디님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절망에 가까운 떨림이었다. 나 도올의 악명을 이미 익히 탐지하신 훌륭한 분이셨던 것 같다. 그런데 궁합이란 참 묘한 것이
다. 그렇게 까다롭게 선을 많이 보아도 어그러지기만 하는 혼사가 되려면 순식간에 짝, 우아한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는 것이다.
"알기 쉬운 고전강의라고요?..."
나는 순식간에 까다로운 요청 몇 가지를 했다. 그런데 상대방 측에서는 내가 응해주기만 한다면 그러한 조건을 다 수용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신실한 자세를 보여주
었다. 기철학의 대작을 쓰는 대공사계획이 차질이 생겨 우울하던 차에 이 방송사의 제안은 순간 나에게 새로운 삶의 젊은 의욕을 소생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찬 전율
이 나의 맥박을 고동치는 것이었다.
이미 저승의 객이 되어버린 한창기선생께서 나에게 성북동 한옥처마끝 툇마루에 앉아 문득 던진 한마디가 생각난다.
"오늘 웠 우리 조선의 역사가 요 모양 요 꼴이 된 줄 아시오? 일제식민지의 비극일 것 같소? 몰지각한 좌.우이념의 투쟁일 것 같소? 정신못차리는 정객들의 부패와 우롱때문일 것같
소? 안일한 학자들의..."
한참 동안 열변을 토하시던 끝에 단도직입적으로 내뱉은 한마디! 내 평생 두고두고 생각해봐도 일리가 있는 명언이었다.
"테레비때문이오! 테레비! 테레비만 안 생겨났더라도 우리민족이 이토록 타락하지는 않았을 게요. 인류는 앞으로 이 테레비 때문에 패망할 것이오!"
당시 나는 이 퉁명스러운 이 한마디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살다보니까, 이 세상 저 세상 다 돌아다니면서 생각해 보니 한창기선생의 그 한마디는 두고두고 생각해 볼만한
명언이었다.
해방이후의 우리사회의 본질적으로 부정적인 변화의 상당부분이 우리 삶의 공간으로 테레비라는 괴물이 진입함으로써 생겨난 사태임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테레비만 생겨나지 않았더라도..., 분명 이 테제는 클레오파트라의 코보다도 더 불가능한 전제임이 틀림없지만, 테레비라는 괴물이 산출한 문화의 양태는 현실적인 우리의 삶 그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 옛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격언이 있다. 막상 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참 무지막지한 말이다. 맨손으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 봐야 호랑이에게 먹힐 것
은 뻔한 이치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이 생겨났을까? 이 속담은 곧, 테레비가 인류를 패망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막는 힘도 테레비 자체로부터 우
러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은유하고 있는 말은 아닐까? 테레비의 막강한 힘이 반지성적이고 반도덕적이라고 한다면, 지성과 도덕이 바로 테레비라는 호랑이 굴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아이러니를 은유하고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진입이 성공하면 테레비는 건강을 되찾고 그 사회 또한 건강을 되찾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테레비는 호랑이보다도 더
흉폭한 광란의 위력을 계속 발휘할 것이 틀림이 없다.
사실 테레비는 이미 어떤 "물건"이나, 소유의 대상이 될 수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나로부터 객관화되고 타자화될 수 없는 "사회"다. 내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로부터 유
리될 수 없듯이, 나 또한 테레비라는 사회로부터 유리될 수 없다. KBS나 MBC. 이런 괴물들이 이미 어떤 한 개의 권력중심이 소유하고 콘트롤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닌 것이다. 그것
은 수 없는 관계망에 의하여 얽혀있는 거대한 사회며 그 사회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인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회는 역사를 지니고 있고, 또 그 시간 속에서 자기동일적 성격의 변화를 수반한다. 사회 즉 관계그물이라고해서 그것이 손을 댈 수 없는 성역이라든가, 방치될 수밖
에 없는 자동기계라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그 창조적 변화의 계기는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우리자신이 개척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사회의 문제는 정치만의 문제도 아니요, 교육만의 문제도 아니요, 경제만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큰 문제는 바로 매스컴 전반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으
며,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매스컴의 창조적 계기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도덕적 구심체가 부재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제1의 관건은 테레비 프로그램을 만드는 당사자와 피디를 지원하는 모든 협업체계의 "인식의 변화"다. 인식의 변화라는 것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법과
과정과 목표에 대한 자유로운 인식의 지평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그램에 대한 생각 그 자체가 어떤 고정의 틀이나 선입견에 얽매여 있지 않은 것을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제작 당사자들의 인식이 고정적 틀에 얽매어 있게 되는 가장 중요한 현실적 이유가 바로 "시청률"이라는 문제인 것이다. 영화가 크게 흥행이 된다고 해서 반드시 명화는 아
니다.그렇다고 흥행이 안되는 영화일수록 명화라는 논리 또한 성림될 수는 없다. 진정한 명화라고 한다면 대개 어느 점도의 홍행성 또한 확보되는 것이 대체적 상리일 것이다. 그
렇다면 명화란 무엇인가? 명작은 어떻게 해서 태어나는 것일까?
여기 본질적인 "영상론"을 논구할 자리는 아닌 것 같다. 단지 흥행만을 목표로 해서 영화를 만든다든가, 단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테레비 프로그랩읖 제작한다들가 하는 것을 결
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확인하는 것으로 우리의 논외를 끝내야 할 것 같다. 시청률경쟁의 궁극적 선은 결국 보다 많은 사람을 테레비 앞에 앉히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가치
판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보다 많은 사람이 테레비 앞에 앉어 있는 사회일수록 좋고 건강한 사회일까? 그 사회의 성원이 바쁘게 자기 일하면서 활동하느라고 테레
비 볼 시간도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일 안하고 운동 안하고 넋없이 테레비 앞에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어느 것이 더 우리의 건강한 모습일까?
나는 사회 전반적으로 테레비 시청률이 내려가는 편이 좋은 사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생각은 현실과 무관한 하나의 유토피아적 꿈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이러한 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시청률을 내리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 그 문화정책이 중요하다는 것은 새삼 부언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문화정책외 가장 비중있는 섹터로서 우리는 교육정책을 꼽는다. 물론 교육이 제대로 되
어야 그 나라의 미래가 확보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십년지계는 수목에 있고 백년지계는 수인에 있다는 옛말 그대로 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정책의 가장 고질적
병폐는 지나친 "간섭"에 내재한다 초등.중.고등(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학교 교육까지는 국가의 간섭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국가의 대계의 플랜을 잡는데 긍정적으로
든, 부정적으로든, 교육에 관한 국가의 개입이 배제된다면 그 사회는 유기적 균형성이 완전히 깨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대학교육은 거의 완벽하게 국가의 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대학교육은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나 자유경쟁의 사회체제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운영되도록 방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학이야말로 사학이 관학을 리드해야 하
며, 사학은 국가제 도의 통제권 상위의 도덕성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국가의 개입이 어느 상황에서든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효과만을 잉태시켜 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브레인 코리아"와 같은 발상 그 자체가 근원적으로 대학의 성격 자체를 잘못 이해한데서 출발한 발상인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브레인 코리아"에 투입할 돈을 그 일부만 건전한 테레비문화에 투입한다면, 아마도 브레인 코리아를 통해 소기했던 문화정책의 몇배의 효과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어차피 국민을 교육시킬 수 있는 매체로서 국가정책의 효율성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테레비만큼 강력하고 효율적인 매체는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현실이다. "시청률"경잼으로 테레비 프로그램이 날로 날로 천박해지고 감각적으로 흘러가고, 또 국민의 감성구조 자체가 그러한 방향으로 같이 흘러가서 악순환
의 상보적 싸이클을 형성하는 이러한 비극적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방식이 테레비를 "시청률경쟁"에서 해방시켜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테레비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고 상대적으로 테레비 시청률을 낮추어가는 방향으로 곳짖를 잡아야만 그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브레인 코리아"와 같은 발상은 애초
에 대학을 대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방송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했어야 했던 프로그램이었다. 대학은 이미 국가의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돈을 더 퍼넣는다고 더 아웃
푸트가 생겨나는 그러한 자븐주의적 체제가 아니다. 교육은 철저히 비자본주의적 "원칙"에 의해서 운영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테레비는 통제 조절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자본주의적 체제속의 한 매카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다큐멘타리를 아무리 잘 만들어야 시청률 7% 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연속방송극은 가볍게 만들어도 시청률 5%는 훌떡 넘어간다. 그런데 좋은 다큐멘타리를 만들려면 동
일한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제작비가 연속방송극의 100배가 넘을 수도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다류멘타리 제작 피디가 100배의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는가?
바로 이러한 질문에 선진국의 관계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의 피디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수밖에 없다는데 바로 우리 방송문화의 고질적 병폐의 한 근원적
요소가 내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전한 방송 펀드가 턱없이 부족하며, 일본에서 쥐꼬리만큼 주는 펀드광고라도 나면 컴피티션에 열을 올려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나는 77년 가을 기나긴 유학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한 이래 ,한국의 방송계와 끊임없는 애증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국민들의 많은 사람들이 내가 테레비에 많이 나온 사람으로 인식
하는 평판에 흔히 부닥치게 되는데, 사실 나는 내 이름의 인지도에 비한다면 테레비에 그 모습을 나타낸 사례가 극소한 인물이다. 정식적인 프로그램에 나간 것이 근 20년 동안 단
두차례 밖에는 없다. 그 한번이 74년 3월, "MBC 이야기쇼 만남"에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주제의 강의로 2회 나간 사건이고, 또 한번이 5월 24일부터 6회에 걸쳐 나간, SBS 명의
특강이었다.
나는 테레비에 나가기를 싫어하는 그런 성스러운 사람이 아니다. 테레비에 나가기를 좋아한다. 나는 인생을 적극적으로 산다. 많은 것을 체험하고 싶어하고, 내가 가진 것이 있으
면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싶어한다. 대학에서 4.50명 놓고 강의하는데 피땀흘리는 정열을 소비하느니, 그 열정과 에너지를 테레비영상을 통해 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다고 한
다면 얼마나 기쁠 것인가? 귀국직후부터 나는 방송사에 나의 고전강의를 꾸준히 건의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계획은 항상 좌절 되었다.
그 첫째 이유는, 윗사람들이 보시기에 김용옥은 항상 불안한데가 있다는 것이다. 말을 너무 토하게 하여 좀 곤란한 상항을 발생시킬 소지가 항상 있다는 것이다. 이점도 물론 시인
하고 그분들의 걱정 또한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애에 공통적으로 닥치는 시련의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문제는 상호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고 표현을 아름답게 다듬음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앨수도 있는 것이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내가 제안하는 프로그램의 파격성이나. 기존의 안일한 궤도
와의 마찰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새로운 요소들을 수용하기를 두려워하는 관성의 체계에 있는 것이다. 즉 "인식의 변화"를 수용하기가 두려운 것이다.
나는 테레비에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의 테레비 방송사들은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해 주질 않았다. 천하의 아니하면 하지 아니하고, 천하의
아니면 하지 아니하고, 천하의 대도가 아니면 행하지 아니하는 것은 선비가 지켜야 할 기본약속이다. 뜻을 얻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도를 행하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도를 행
하는 것은 선비의 삶의 기본자세이다. 내 어찌 구구이 사람앞에 서기를 희구하리오?
요번 EBS 밀레니엄특강 고전강의는 내가 원하는 프로그램의 형태로 방송사에 수용된 최초의 전기이다. 내가 하고 싶은 강의가 테레비 영상을 통해 국민에게 널리 다가가는 최초
의 계기가 EBS 교육방송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나는 무한한 자부감을 느낀다.
첫째, 나는 우리나라 방송문화의 개선을 위하여 "인식의 변화"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가 교육방송을 통해 이루어질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퍽으나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문화의 수준은 단순한 상업성을 뛰어넘는, 그러한 전제로서 운영되지 않는 체계가 바르게 작동될 때만 그 .꾸준한 기준이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EBS 교육방송 자체의 인식의 변화와 또 EBS 교육방송을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육방송이 훌륭하고 인기있는 방송으로 재인식될 때 우리
나라의 방송문화 전반의 개선의 가능성이 엿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둘째, EBS 교육방송이 새로운 지평을 열음으로써 기타 방송사의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을 인식하는 태도의 변화나, 국민의 표현되지 않은 숨은 열망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나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러한 모든 가능성에 대한 바람은 오로지 냉혹한 현실적 판단 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적 여건의 변화가 전무한 상팡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목표는
시청률의 저하가 아닌 시청률의 제고라고 하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현실적 인식이다. 나의 지상의 목표는, 철학은 매우 쉬운 것이며, 재미있는 것이며 아름다운 것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특히 동양고전의 강의가 현금 테레비 영상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코메디안들의 쇼프로 보다도 더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의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 고도의 지적인 엔터테인먼트의 예술이라는 것을 우리나라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내 머리속
에서만 우물쭈물 맴돌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아주 정직하고 단순하게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시키는 것은 나의 지식과는 별도의 또 하나의 고도의 예술이라는
젓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충실히 나열하는 것으로 명강의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의의 본질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나의 실존적 깨달음의 전달이다. 우리나라 대학이 지
식의 증대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 상황은 바로 교수님들이 지식을 생활화하고 예술화시키지 못하는 데 그 가장 근원적 까닭이 있는 것이다.
나의 교육방송강연을 계기로, 나를 뛰어넘는 많은 훌릉한 강의자들이 바톤을 이어주기를 갈망하는 것이다.

21세기의 3대 과제

난 주 오스트랄리아 시드니에 다녀왔다. 세계 디자이너들의(ICSID,ICOGRASA,IFI 3단체) 총회가 열리는데, 나보고 주제 강연을 하나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올 여름에
IFI(International Federation of Interior Architects/Desingers) 워크숍이 서울에서 열렸다. 내가 디자인에 대해서 뭘 알까마는 우연한 기회에 주제강연을 간곡히 부탁하길래, "흙,
건강, 디자인"(Soil, Health, Design)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국제회의가 되어 놓고 보니, 영어를 제대로 할 줄 알면서도 좀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사람을 고르다보니까 나같
은 사람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하여튼 요즈음은 그런 청탁이 적지 않다. 그런데 나 자신 또한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눈뜨고 보는 것이 다 디자인이요, 내
가 사는 집부터 입는 옷부터 이 글을 쓰고 있는 만년필까지 모두 다 디자인이니, 디자인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런데 많은 젊은이들이 디자인하면 무슨 밖에 있는 물건의 모양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기껏해야 나 밖에 있는 을 칸막아 처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동양사상으
로 말하자면 물건(things)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의 집적태며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의 "것"들을 디자인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 디자인이란 궁극적으로 나의 생각의
디자인이다. 나의 생각의 디자인이라는 것은 결국 내가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의 디자인인 것이다. 자기 머리속은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컴퓨터 화면만을 들여다보고 앉아있는 디자
이너들이 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디자인의 철학적 기초라고 생각하는 시간 공간도 궁극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하여튼 이
런 복잡한 얘기들을 쉽 게 풀어 주섬주섬 두어 시간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그것을 들은 외국사람들이 내 강의가 너무 좋아 자기들만 듣기가 아깝다고 세계인들이 모인 총회자리에
서 한번 다시 해달라는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좋은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좋다고 받아들이는 미덕은 확실히 우리보다 더 있는 것 같다. 요즈음 시간이 워낙 모자라 외유를 한다는
것이 무리였지만, 세계의 으로 꼽히는 시드니에, 아니, 이색적인 또 하나의 남반구 대륙구경을 한번도 한적이 없기에, 초청을 수락했다. 그러나 사실 속 마음으로는 좀 켕기는 구석
도 있었다. 외국학회에 나가 일개의 학인으로서 내 논문발표하는 것은 해본 짓이지만, 세계인들이 이목을 집중하는 자리에서 대접받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권위있는 연설을 한다는
것이, 한국말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다. 나는 당당히 7시간의 강연시간을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지만, 과연 영어로 세계각국의 청중들을 그 장시간동안
사로잡을수 있을까? 하여튼 안해본 짓이래서 미지수의 부정적 결과를 고려 안할수도 없었다. 말문이 확 막히면 어떻하나? 영어단어가 생각안나 떠듬거리면 어떻허나? 나라망신?
개망신? 평생을 외국어와 더불어 살아왔지만 아직도 외국어의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영어를 깊게 알수록 영어에 대한 절망감은 깊어져만 간다. 제기랄 내가 언재 이따위 고민하
고 산 적 있나? 하여튼 단 위에 올라서서 생각하자!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 규모보다도 훨씬 더 큰 시드니 컨벤션센터 전체를 빌려 행하여진 요번 총회의 회의실에서 나의 목소리는 울려 퍼졌다. 두시간 동안 미동도 없었다. 기침소
리 하나들을 수 없었다. 오직 낭낭한 나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을 뿐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게 영어가 잘 되었다. 아니 영어를 잘 했다기 보다는, 단 위에 올라선 후 순식간에 나
는 내가 외국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마지막, "인생이란 걸어가는 그림자... 인생이란 바보가 지껄이는 이야기..." 맥배드의 독백을 끝으로 강의를
마쳤을 때, 모든 사람이 한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곧 전 강의장이 기립박수의 열기속에 휩싸이고 말았던 것이다.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 인도 등지의 사람들도 나에게 달려와서 나의 강연이 동양인들의 프라이드를 높여주었다고 꼭 성자를 대하듯이 고꾸라지듯 절을 했다. 어느 임신한 오스트
랄리아 여인은 뱃속의 아기가 감동을 받아 두시간 동안 계속 자기 배를 찼다구 죠크를 했다. 그리고 나와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하여튼 요번 여행은 강
연의 성공으로 유쾌한 여행이 되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그곳 오스트랄리아 시드니 동포들은 그들 나름대로 내 강연을 요청했다. 마침 그곳 현지의 교민언론연합체가 결성되어 있어서, 그 언론인협회 주최로 내 강연
을 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내가 시드니에 도착한 것은 수요일 아침, 내가 떠나기로 되어있는 것은 일요일 밤이니까, 토요일 저녁밖에는 교민들이 모일 찬스가 없
다. 그런데 그곳 우리 신문들이 대개 주말에 한번 나오는데, 토요일 아침에나 받아보게 되리라는 것이다. 미국과 달리 테레비.라디오 등의 채널도 확보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요번
주말이 노동절 롱 위크앤드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시드니 교포사회가 역사가 짧고, 이런 사상강연같은 것은 전례가 없어, 몇 명이나 모일지 미지수라는 것이다. 부리나케 광고
를 해도 삼사십명 정도 올 것으로 예상을 해두는 것이 속 편할 것이라는 얘기였다. 그래도 최대규모로 잡아서 한 200명 예상하고 준비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명이 와 들어도
상관없다 했고, 수요일 저녁 그곳 현지 언론사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10월 7일 오후 7시, 버우드여자고등학교(Burweed Girl's Highsrhool) 강당 ! 아내와 내가 탄 차가 어둑어둑한 수풀길을 지나가는데 꼭 개화기에 선교사집회에 몰래 몰래 사람들이
고깔을 뒤집어쓰고 몰려드는 듯, 한 두사람씩 강당 앞길로 물밀듯이 모여들고 있었다. 매우 허름한 강당이었다. 강당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우리는 모두 얼얼한 충격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모여든 사람들이 700여명, 시드니 교민역사 최대의 인파를 기록했다. 그리고 내 싸인을 받으려고 자기들이 집에 소장하고 있는 나의 책을 가지고 나와서 줄을 선
모습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의 저술가로서, 하나의 사상가로서, 생애에 이 이상의 기쁨이 어디 있으랴!
이날 나는 세시간 십분 등안 열변을 토했다. 이날 강연은 무아의 열정 그 자체였다 강의가 끝났을 때 속옷턱터 겉 두루마기까지 완전히 땀이 흠백 젖어 있었다. 기진맥진해서 곧바
로 호텔로 돌아왔을 땐 오한이 났고 목구멍에서는 피가래가 끓었다. 그래도 유감이 없었고, 오랜만에 삶의 희열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늘씬하게 깊은 잠을 잤다. 내가 여기 21
세기 인류의 7대 과제 운운하는 것은 바로 시드니에서 처음 접한 것이다. 그날 시드니강연의 주제가 바로 이 3대 과제를 놓고 전개된 것이다. 나 는 미래학 운운하는 학자도 아니
요, 뭐 대단한 예언가도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일상의 지극히 상식적인 총념일 뿐이다. 나는 3대 과제로 다음의 세가지 화해를 들었다. 그 첫째가 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the Harmonγ between Man and his Environment)요, 그 둘째가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the Harmony between Religions)요, 그 셋째가 지식과 삶의 화해(the Harmonγ between
Knowledge and lIfe)다. 이것이야말로 곧 우리가 노자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형성하는 것이다.

1.인간과 자연환경의 화해

수년전의 일이다. 아프리카대륙과의 최초의 해후! 내가 탄 헬리곱터 탕가니카 호수 북단의 호반의 푸른 초원에 내렸다.내가 탄 헬리곱타가 검은 대륙에 착지하려고 접근을 시도할
때, 주변동네의 어린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어른거렸다. 바스라질 듯 해맑은 대기, 바다보다도 더 큰 호수, 호수를 병풍친 밋밋하면서도 웅장한 산맥의 준령, 이 모
든 것이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에게 문화충격이랄까, 삶의 환희라고 해야할까, 생명의 약동이랄까, 강렬하게 다가오는 무엇보다도 내 주변에 바글
거리는 까만 아동들의 얼굴이었다. 김서린 새벽 호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물고기들의 강렬한 몸짓보다도 더 투명한 빛을 발하는 그들 까아만 얼굴의 질점 하나 하나가 모두 인간
의 태고적 발랄함과 원초적 순결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것은 미대륙에서 경험하는 아메리칸불랙들의 얼굴과는 전혀 다른, 도저히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생명의 발출이었
다. 쵸코렐트를 던걱주는 덩치 큰 깜등이 자아이 아저씨들 트럭꽁무니를 열심히 뛰어다녔던 나의 추억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카사바 베이 대통령 별장을 방문한 국빈이 되어 짙
은 초록색 풀밭배경과 앙상블을 이루는 흑인 아동들의 얼굴에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며 그들과 곧 친하게 되었다. 그리곤 그들의 손에 이끌리어 바로 옆에 있는 흑인마을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마을이라고 해봤자 별로 크지도 않은 운동
장만한 황토벌 위에, 여인들이 물동이를 이고 모여드는 샘 펌프가 하나 한 가운데 놓여 있고 그 주변으로 초가지붕의 아주 단순한 원통모양의 막사들이 한 열 대여섯개 무질서하게
늘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 팡토 벽돌로 쌓아올린 원통모양의 담의 직경이래야 한 4.5메타될까? 그 지붕은 삿갓 모양으로 풀잎들이 이어져 있고, 그 위에는 호수에서 잡은 고기들을 건조하기 위해 척척 널
려놓았다. 대문에 해당되는 네모난 구멍은 거적대기 같은 것이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운데 직경의 7분의 7정도 만큼으로 하나의 사람키만한 칸막이 담이 처져
있었고 그 담 안쪽으로 나무 평상같은 것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부여시설은 따로 없고, 큰 깡통 안쪽을 진흙으로 이겨 만든 화덕같것 하나, 그것이 취사시설의 전
부였다 빠은 배급받고, 그 깡통에 숯불 피워 지붕에 있는 건어물을 기름에 볶아 빵에 찍어 먹는 모양이었다. 잠은 그 평상 위에서 한 식구가 모두 같이 담요 한장 덮고 자는 모양이
었다. 그것이 그나마 대통령관저 옆에서 보호를 받는, 그래도 제대로 된 한 모범적 마을의 모습이었다. 원시라든가, 빈곤이라든가, 미개라든가, 하는 말을 떠올리기 전에 나에게 충
격을 준 사실은 인간의 삶의 양태의 단순성(Simplicity)이었다. 인간은 이렇게도 단순하게 살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문명의 어느 구석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발랄하
게 약동치는 아동들의 모습을 연출해내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이었던 것이다.
나 자신의 리얼한 삶의 모습을 회상해보았다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대부분 국민학교를 다녔지만, 저 동구밖 눈들에 있는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서민들이 살고 있던 초가집 단칸방의 모습은 내가 지금 목격하고 아프리카초원의 가옥과 별 차이가 없었다. 우리는 겨울이라는 풍토때문에 벽이 두껌고 부뚜막 부엌이
따로 있었을 뿐이다. 그때만 해도 세멘트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아낙들의 최고의 꿈은 솥이 걸린 황토 부뚜막이 먼지가 안나는 세멘으로 덮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기름 때
를 묻혀 부뚜막의 흙을 굳혔지만, 그것도 몇년 지나면 다시 만들고 다시 만들고 해야만 했다.수수깡 엮어 흙을 발라놓은 벽은 갈라져 구멍이 숭숭했고, 종이를 발랐어야 흙과 떠서
그 사이엔 검펑이가 끼어 있었다. 방바닥 황토를 바른 위에 다시 바를 세멘트가 없으니까 장판을 해봤자 뜰 것이고, 아예 왕골자리나 삿자리를 깔았다. 겨울에 왕골자리 단칸방에
시커먼 광목 솜이불 하나 깔아놓으면, 요도 없이 밑으로 엄마.아버지.아기.메느리 할 것 없이 모두 부채살 모앙으로 쑥쑥 들어가 잤다. 애기가 똥이라도 싸는 바엔 아무리 똥을 닦
아내어 봤자 왕골 사이사이로 똥은 박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몇년을 지나게 되면 벽에 주렁주렁 매어놓은 메주냄새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어 매쾌한 내음새를 스물네시간 발했
다. 기절초풍 할 가관은 애기가 똥을 싸면 됫마당으로 나있는 방문을 열어 강아지이름이라도 부르면 졸랑졸랑 방으로 들어온 강아지는 열심히 애기똥을 한아먹고 나갔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정말 우리시대에는 흔히 체험하는 상식적인 것이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우리의 모습. 가끔 산토닌이라도 먹으면 똥구멍으로 삐질삐질 나오는 회충을 손으로 잡
아 빼는 것은 물론, 가끔 아악 소괴를 지르면 목구멍으로 지렁이같은 회가 한마리 요동을 치며 입안의 허공을 널름 거렸다. 저녁에 옷을 벗어 놓으면 엄마는 난닝구 이슴매 사이로
기어다니는 이를 잡느라 똑똑 거리고, 목양말은 매일 빵꾸가 나서 전기다마에 끼우고 기우느라 여인들은 손놀림을 쉴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고운참빗으로 머리에 긴 서캐를 긁어
내느라 정신이 없고, 머리맡 윗목에 놓은 걸레는 몽롱 얼어붙어 있었다.
우리 어릴 메만 해도 우리 삶속에 전기라는 에너지가 거의 황용되지 않았다. 장고가 우리 삶에 진입한 것은 겨우 70년대였다. 서민들은 등잔불 속에서 살거나, 전기가 들어온다 해
도, "보통"이니 "특선"이니 해서 하룻밤레도 전기가 수십번 나갔다. 왜 특선인데 이렇게 전기가 나가냐고 전기회사에 전화걸어 항상 호통치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음성이 지금도 눈
에 선하다. 극장에 가도 영화를 한번에 보는 예는 없었다. 목 전기가 나가기 때문에 영사기가 멈추었고 그럼 발전기를 돌려 다시 영사기를 돌려야 했다. 그러나 전기가 들어오면 발
전기를 껐다가, 또 다시 전기가 나가게 되면 또 블랙아웃! 너무도 멀리 사라진 듯한 우리의 삶의 모습이건만 이것은 불과 수십년전 우리 삶의 상식적 풍경들이었다.
내가 국민학교 5.6학년 때 비로소 형광등이라는 신기한 작대기 전구가 선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 때쯤 전 읍내에 한 가구정도 테레비라는 꿈같은 현실이 부잣집 안방을 장식하기
시작했고 밤이면 온 동네사람들이 그곳으로 마실을 왔다.
간편한 볼펜도 중학교때나 등장하기 시작했고, 학교에선 아동들 사이에는 누가 어떻게 연필을 더 예쁘게 깎느냐는 경기대회가 매일 열리는 판이었다. 말만 듣던 수세식 변소의 존
재는 온양 온천관광호텔에서나 확인할 수 있었고, 슈악 맴도는 변기의 소용돌이가 도대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너무도 희한한 광경을 바라본듯 감격스럽게 불알을 털럭이며 미
소지어야 했다. 집안에서 항상 더운물이 수도꼭지에서 나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비현실이 었다.
자아! 한번 생각해보자! 바로 몇년전의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한번 되돌아가 보자! 정확하게 지금으로부터 한 사오십년전까지만 해도 우리 삶의 기본 양식이나 보편적 주거환경이,
고조선시대의 사람들의 주거방식이나 삶의 양식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다. 단칸방짜리 온돌방식의 가옥구조가 우리인간의 문명의 세기 사천년동안 거의 변화없는 연
속성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40년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삶은 4,000년전의 이 땅의 사람들의 삶과 별 차이가 없었다. 마르코 폴로가 목격한 중국문명의 찬란함은 당대의 서양의
문명에 비해 더 화려한 것 이었다. 이미 청자개와를 해올린 신라의 고도 서라벌 경주, 불국사나 석굴암의 모습만 연상해도 그 웅장함과 단아한 문명의 아취는 쉽게 그려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명들은 결코 우리가 이 땅에서 한 40년 동안 자연을 착취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즉 대중적인 인간 삶의 기본적인 연속성이 크게 흩트러진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 연속성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화해의 연속성이었던 것이다.
70세기 인류사를 특징지우는 희대의 사건은 77세기를 통하여 기술(테크놀로지)과 과학(사이언스)이 본격적인 랑데뷰를 시도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기술과 과학을 동일한
것으로 착각하고 "기술과학"이니, "과학기술"이니 하고 무분별하게 말을 뭉뚱그려 사용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개념적으로 확연한 구분이있는 것이다.
기술이란 본시 삶의 예술(the art of hYing)의 모든 것을 지칭한다. 즉 기술이란 살아가는 방편으로서 필요한 모든 예술 즉 기예(테크네)를 말하는 것이다 까치가 휘엉청거리는 나
뭇가지 끝에 태풍에도 견디는 견고한 집을 짓는 것은 분명 까치의 "기술"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까치의 "과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과학이란, 인간의 지식을 특징지우는 어떠한 측면이다. 과학이란 본시 기술과는 무관한 인간의 사변이성의 산물인 것이다. 과학의 특징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법칙적으로 파
악하는 것이다. 이때 "법칙적"이라는 것은 대강 희랍인들에 의하여 "연역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이 연역적인 인간의 사유의 방법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학"이라는 것이다.
더 이상 깊게 이야기는 하지 않겠는데, 이 과학이라는 것은 기술의 전제위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과학은 인간의 사변이 고도화되면서 생겨난 하나의 철학체계요, 지식체계와도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원시인들이 토기를 굽는 것은 "기술"이다. 그러나 그들이 토기를 구을 때 과학이라는 연역적 전제를 꼭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혼과 불
에 대한 과학적 일반이론을 전혀 몰랐을지라도, 놀랍게 훌륭한 토기를 구워 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과 기술은 따로 따로 발전한 것이다. 기술의 역사, 그 정밀성과 고도성을 운운한다면, 아마 중국문명이나 우리 한국문명이 훨씬 더 서양문명을 앞
질렀을 것 이다. 몇백년전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 지구상에서 도자기를 굽는 기술은 우리 조선의 기술이 세계 최고의 수준을 과시하고 있었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수준은 기술
적 측면에서 분명 송자나 명대의 자기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그리고 당대 유럽은 1,300도에 가까운 가마의 기술을 상상할 수도 없었다. 나의 최근의 희곡작품인 "그, 불"
(1997년 6월 11일~77일, 동슬동 문예회관 대극장 초연)의 내용이 말해주듯이, 일본의 아리타 야키라든가 사쯔마 야키가 모두 정확하게 당대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우리
나라의 고도의 불의 예술이 전수되어 발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활판인쇄술만 하더라도, 서양사람들이 아무리 구구한 이설을 내어도 소용없을 정도로, 명백하게 그 자체로서 당대의 최고 ․ 최초의 기술이라는 사실은 의심
의 여지가 없다. 고려시대에 이미 성행했던 주자 인쇄는 차치하고서라도, 세종조의 갑인자같은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도무지 그 아름다움에 도취하여 눈을 땔수가 없을
정도로 정치하고 단초로운 품위가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나라 조선조의 목공예품을 보아도 그것은 디자인적으로나 크래프트맨십의 정밀성으로나 가히 세계 최고의 가품들이
다. 그런데 이렇게 명백히 세계최고의 기술의 대국인 조선의 후손들의 나라인 대한민국은 왜 이다지도 기술의 시대에 뒤진 모습을 하고 있는가? 왜 테크놀로지에 있어서 조차 일본
의 꽁무니도 따라가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 바로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결정적 열쇠가,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라는 이 한마디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부하던 과거의
찬란한 기술은 곧 과학의 전제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삶의 방편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것은 삶의 예술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소위 개화를 통하여 경험해야만 했던 서양 콤플렉스는 바로, 과학과 기술이 본격적인 랑데뷰를 시작하여 구성한 새로운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였던 것이다.
19세기초까지만 하더래도 동양과 서양은 소위 과학기술문명 전반에 있어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는 문명의 양태들이 아니었다. 서양 역시 우리보다 앞선다 할 것이 별로 없는, 과학
적으로,의학적으로, 종교적으로 매우 미신적인 수준에 머물렀던 그런 문명이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이래 서양의 문명의 모습은 완전히 그 이전과는 다른 단절의 양상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기술속으로 과학이 진입하고, 또 과학속으로 기술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렸을 때 동네에 가끔 강냉이를 튀기는 아저씨가 오면 흥미진진하다 쌀토락이나 강냉이나 누룽갱이 말린 것, 아무거나 갖다 주기만 하면 기다란 쇠통에 집어놓고 불위에 뎅글뎅
글 돌리는 그 태연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한참을 지 난 후 거대한 철망통을 씌우고, 으앗! 철통같이 닫힌 아구리를 지렛대로 후악 제치는 순간! 우리는 얼마나 간
이 콩알만해져 가지고 고사리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옹크려야 했던가? 갑자기 구수한 냄새가 천지에 진동을 하고 망탱이 주변에 떨어진 강냉이라도 주어먹을 국물이 있을까 하고
몰려드는 어린아이들! 뻥튀겨진 변모된 쌀보풀의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 아기들의 눈은 경이와 호기심에 찬 그런 눈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 이것은 순식간에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의 모습을 뻥 튀겨 놓았다. 이미 예전의 쌀토락이 아니고 예전의 누룽갱이가 아니다. 이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노름
인 것이다. 과학의 성과는 놀라운 기술의 진보를 가져왔다. 기술의 진보는 놀라웁게 우리의 과학적 사유의 영역을 넓혀갔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개발의 영역이 아니던
것이 마구 개발될 수 있게 되고, 인간사유의 대상조차 아니었던 것들이 마구 인간사유의 영역속으로 들어왔다. 공상이 마구 현실로 변모해갔던 것이다. 꿈이 현실로 된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것이다. 매우 기쁜 것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 기쁨에 도취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망각했다. 그들은 꿈 그 자체를 하나 둘 잃어가고 있었던 것 이다. 꿈은 무한히 꿀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 그 자체가 하나의 망상이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지나친 신뢰다. 꿈의 상실은 인간 그 자체의 도덕적 파멸인 것이다.
다시 한번 옛날로 돌아가 보자 4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일상적인 현실적 삶이 4,000년 전의 삶의 양태와 연속성을 과시하고 있었다는 그 사실은 바로, 40년 동안의 변화가 4,007
년 동안의 연속성을 근원적으로 단절시켜 놓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4,000년 동안 유지해왔던 옥수수 알갱이가 불과 40년 동안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는 전혀 다른 성질의
강냉이로 뻥튀겨져 버린 것이다. 그 뻥 튀김의 실체가 바로 내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라는 사건이다. 과학은 물론 우리 조선민족의 창안이 아니다. 그것은 희
람인들의 놀라은 사변 이성이 이룩한 인류의 최고의 씨앗이 르네상스이래 발아한 것이다. 우리는 70세기를 통해 단지 그것을 정확하게 배울려고 힘썼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서구
라파문명이 두세기 동안 달성한 것을 곧 사오십년 안에 달성하려고 몸부림졌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달성된 것인지 안된 것인지는 지금 내가 단안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외면
적으로 우리의 삶의 변화는 최소한 그 과학문명을 이룩한 주죽의 문명의 삶의 양태의 변화보다도 더 철저하고 근원적이고 더 그 변화의 폭이 큰 것이다.
4,000년 동안 인간이 건드릴 수 없었던 성역이 40년 동안에 무너졌다면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연의 에너지를 문명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식이 여태까지의 인류의 문
명사의 어떠한 방식과도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에너지의 전환이 바로 모든 에너지의 근원을 고갈시키고 파괴시키고 있다는 가공스러운 결과인 것이다. 자연의 에너지란
천지의 에너지며, 이 천지의 에너지란 곧 생명의 에너지인 것이다. 자연의 에너지의 고갈이나 파괴는 곧 생명의 고갈과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저 사막에 우뚝 서 있는 스핑크스나 피라밋은 한없이 신비롭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지구상의 문명의 소치라고 말한다면 지금도 풀 수 없을 정도의 어떤 문명에너지의 비약적 형
태를 가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일의 사막위에 아무리 피라밋이 수백개 들어섰다 할지라도 지구 전체의 기상상태를 파 괴시킬만한 환경의 오염이나 생태의 변화
를 초래한 바는 없다. 피라밋이나 만리장성은 인간의 인위적 장난의 극치라 말해도, 그것은 지금도 묵묵히 관광객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고요한 자연의 돌더미일 뿐이다. 그러
나 63빌딩 하나가 저지르고 있는 하천의 오염은 결코 묵묵한 한강의 석양의 아름다운 반사로 가리워질 수 있는 그러한것은 아닌 것이다.
밥을 급작스레 먹으면 체하는 것은 정한 이치다. 그리고 조금씩 먹지 않고 과식을 해도 반드시 부작용은 뒤따른다.소식을 하거나 적당히 먹어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가련한 인간은 그것 하나를 지키지 못한다. 맛있으면 과식하게 마련이고, 과식하면 설사나 배탈의 부작용이나, 장기적으로는 비만. 고혈압.당뇨 등의 지병이 생기게
마련이다. 4,000년 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성역들을 40년에 다 건드려 버렸다면, 4억만년 동안 순결한 처녀의 살결처럼 인간의 때가 묻지 않았던 도봉의 만장봉이 불과 몇십년 사이
에 알피니스트들의 핫켄이나 볼트, 온갖 인공확보물로 상처투성이가 되었다면, 해방후 불과 4.50년 동안에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로 인한 산업사회의 진보가 우리 문명의 모습을 되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뻥튀겨놓았다고 한다면, 이러한 역사의 과식 과속.과욕이 여러가지 병적 부작용을 초래할 것은 뻔한 이치인 것이다.
요즈음 사방에서 지진이 터지고 있다. 일본에서 LA에서 중국에서 터키에서 파키스탄에서, 그리스, 대만에서... 어마어마한 인간세의 불행을 초래하는 규모로 여기저기서 지진이 폭
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진의 발생은 역시 지각의 이동이라는 지질학적 법칙의 사실에서, 그 개연성을 지배하는 일반론에서 그 원인을 논구탈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가 천지를 하
나의 가이아로 본다면로 본다면, 거대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로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신화적 상상력을 여기 도입해서 생각해보 지 않을 수 없다. 이 지구상에 건설한 문명이
오죽이나 형편없는 것이었으면 저렇게 지신의 진노를 불러일으켰을까? 얼마나 지신을 화나게 만들었길래 자신의 몸뚱이를 더럽힌 저 문명의 장난을 저렇게 털어버리실까? 물론
지각의 판들(Plates)간의 충돌은(요본 대만지진은 북쪽의 두꺼운 유라시안판이 필리핀해 판을 밀어덮쳐 생겨난 것이다.) 예측불가능한 개연적 사태이며 지구내적 조건과 더 인과
적으고 밀착되어있는 사태일 것이지만 그러한 변화조차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일산.분당지구에 단 5도 정도의 지진이라도 발생한다면 "삼국지사"를 보
면 우리나라 또한 지진이 잦은 나라로서 작고 큰 주기적인 지진의 사례가 계속 등재되어 있는데? 과연 안전할까? 지신의 진노? 우리는 지장보살님께 무어라 해야할까? 지신의 진
노? 진노에 필요한 것은 화해의 요청이다. 여기 인간과 지신와의 화해,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인간과 그의 환경과의 화해라는 21세기의 제1주제가 등장하는 것이다. 천,지,인을 일
컬어 삼신이라고 한다면, 인이라는 일신은 천,지의 2신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천지의 멸망은 곧 인의 명망이기 때문이다. 단군이래 4,700년 동안의 연속성을 우리 한민
족이 불과 40년 동안에 불연속성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21세기 우리문명의 과제는 너무도 명약관화하다. 이제 우리는 그 40년의 죄업, 그 과욕과 과속과 과식과 과용의 부작용을 해
소시켜야 하는 과제상황을 떠안고 있는 것이다.

2.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

다음의 주제는 종교와 종교간의 화해다. 얼마전에 참으로 놀라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현각이라는 이름의 치국인 승려의 컬럼이었다(1999년 9월 28일) 현각은
얼마전 KBS의 다큐멘타리, "만행"이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낯익은 인물이었다. 해맑은 얼굴,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명료한 자세가 수도인의 기품을 물씬 풍긴다.
미국 동부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하바드대학에서 신학.철학을 공부한 나의 후배이기도 한데 참 사려 깊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 컬럼의 제목이 "화계사의 불"이었다. 얘기인 즉, 기독
교 광신도들이 화계사가 마귀사는 곳이라고 여러차례 와서 몰래 방화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배타적 전도주의(the exclusive evangelism)가 이 지경에 이르렀
다면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세지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연실색해지지 않을 수 없다.
화계사하면 우리는 숭산스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숭산스님과 나와의 해후에 관해서는 나의 책 "나는 불교를 이렇게본다"(1777)에 소상히 밝혀져 있다. 세계적으로 달라이 라
마와 더불어 4대 생불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숭산스님의 위대한 진면을 우리 국내 불교계나 종교계에서는 너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분의 가치가 그렇게 세
속적인 평가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삼 왈가왈 할 건덕지가 없다. 그러나 나와 화계사와의 관계는 참으로 먼 옛날, 나의 영혼이 순결한 하나님의 은혜속에 감싸여져 있었던
그 푸릇푸릇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 간다 화계사는 바로 내가 다닌 한국신학대학에서 엎드리면 코닿는 이웃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신학대학 입학원서를 사러 처음 방문했을 때 생각이 난다. 수유리 종점 못미처 마찻길 같은데서 버스를 내리면 그 신학대학 들어가는 길은 미루나무가 일렬로 쪼르란히
서 있는 아주 시골 동구밖 기다란 논두렁같이 생긴 그런 길이었다 그 미루나무 길을 따라 한참을 울창한 북악기슭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탁 트인 화창한 공간에 아주 아담한 금
잔디의 동산이 나오고 그 동산위로 하이얀 니은자 모양의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우뚝 솟은 탑꼭대기에는 히브리어로 "임마누엘"이라는, 조형적으로 참 인상깊은 글씨가 눈에
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앞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자그마한 다리가 있었는데 그 다리밑으로는 아름다운 개울이 졸졸 흘렀다. 그 개울은 바로 화
계사를 돌아 흘러내리는 수유계곡의 청청한 물이었다.
그 하이얀 임마누엘 탑을 들어섰을 때, 나는 갑자기 어떤 광채에 쏘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까만 두루마기를 입은 어떤 노신사가 우뚝 서 있었다. 흰 동정에 옅은 뼈테 안경을 쓴
얼굴에서 발하는 빛의 느낌이 나를 어지럽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키가 훤칠했고, 얼굴은 웃음이 만면하고, 추운 겨울이었지만 화색이 화창한 봄날씨보다 더 환했다. 옆에서 누구
와 유쾌히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 노신사의 모습에서 나는 신앙인의 삶의 어떤 영감같은 것을 읽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분이 누구인줄도 몰랐고 감히 말도 걸 생각도 못했다. 그
렇지만 그 순간 그 얼굴에서 받은 해맑은 느낌이 나로 하여금 신학대학 입학의 결심을 굳건하게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 그 분이 바로 문익환목사님이었던 것이다. 당대 구약학의
대가! 그리고 내가 뵈웠을 그 당시 그 선생님은 구약성경 공동번역판 원고집필에 몰두하고 계셨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지금 문익환하면, 맹렬한 공산주의 운동가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반정부 데모의 투사, 최루탄의 혼탁한 공기속을 홀로 거니는 거친 얼굴을 연상하기 쉽다. 내가 처음 뵈웠을 때의 문익환선생은 정말 완벽하게 그런 분위기와는 무관한 정신세
계에 사시고 계셨던 진정한 수도인의 한사람이었다. 그 뒤 나는 그 분에게서 구약개론을 들었다. 그리고 물론 그 분의 강의는 매우 듣기 쉬었고, 또 히브리 원전을 완전히 소화한데
서 우러나오는 내용이 풍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깨끗한 영적 체험담으로 우리 수강자들을 감동시키곤 했던 것이다. 저 멀리 교단에서 계신 모습은 항상 광채나는 해맑은 모습
이었다.
나는 그 당시 판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내가 고려대학교 다니던 것을 중퇴하고, 한국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된 동기는 관절염이라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과의 투쟁속에서 세계
를 바라보는 가치관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었기도 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로는 지극히 단순한 물리적 동기와 맞물려 있었다. 한국신학대학은 당시 전교생이 캠퍼스에서 사는 거의
유일한 기숙사대학이었다. 따라서 관절염으로 고통받는 나로서는 기숙사와 학교강의실이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별 불편없이 학교를 왔다갔다 할 수 있겠다는 계산은 하
나의 구원이었다. 당시 나는 구보나 오래 서있는 것이 불가능했다. 따라서 버스타고 학교를 통학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고 불가능에 가까웠다. 한국신학대학은 나에게 더 없는
배움과 삶의 보금자리였던 것이다.
당시의 한신의 캠퍼스는 정말 아름다웠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수 전원이 캠퍼스 안에서 같이 살았다. 조그마한 낮은 1.2층짜리 후생주택이 수유리 화계의 송림둔덕 위로 아름답
게 배열되어 있었다. 한 집에 보통 학생들이 7.8명 같이 살았다. 그리고 새벽 먼동이 트면, 학생들이 모두 소나무숲의 새벽기운을 헤치고 성스러운 본관의 채플 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채플가는 언덕위의 등성이 오솔길에서 만났다 여기저기 여명을 헤치고 나온 그들은 만나면 찬송가를 흥얼거렸다. 그러면 모두 교회에서 성가대의 경험이 있는 남녀였기 때
문에 꼭 한사람이 멜로디를 시작하면 테너.산르라노. 알토.바리톤의 사중주가 자연스럽게 울려 펴졌다. 푸르른 새벽기운, 여명이 입김을 붉게 물들이는 그 새벽, 우리들은 이러한
성스러운 합창속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한신대 학생들의 합창의 배경으로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화계사의 범종소리나 목탁소리가 같이 하모니를 이었다
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체험 속에서 성스럽게 살지라도 멀리서 울려 퍼지는 범종의 소리를 그 어느 누구도 불경스럽게 들은 적이 없다.
우리 한국신학대학 학생들은 때로 윗동네 화계사에 가끔 놀러가기도 했다 그리고 스님들을 한신대 마당으로 초청하여 졸졸 흐르는 시냇물 앞에서 축구대회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런 나의 과거 추억을 더듬을 때, 도무지 기독교인들이(물론 한신대와는 관련없다.) 화계사에 불을 지른다는 이야기는 상상할 수도 없다, 스님과 친구지간이래도, 신도와 신도끼
리는 잘 싸운다는 달라이 라마의 얘기가 얼핏 생각난다.내가 솜니 원광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들은 이야기이지만, 어느 이리 교회에서는 그 지역에서 오래 터전을 일궈온 원불교
가 망하기를 기원하는 저주의 대기도회가 열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물론 내가 잘못들은 풍문이기를 바라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교회 목사님은 교회사를를 크계 잘
못 배웠다. 기독교의 교회사는 바로 탄압속에서 강성해진 역사인 것이다 로마제국 속에서 "쿼바디스 도미네"를 외친 사람들의 역사가 그러했고, 모든 밋션 속에서 순교한 사람들의
역사가 그러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원불교가 망하기를 저주하는 동시에 곧, 원불교의 강성해짐을 돕고 있는 것이다. 그는 바로 원불교에 하나님의 은총을 빌고 있는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매우 하찮은 애기이지만, 만약 이런 사소한 얘기들이 자칫 감정싸움으로 번져 우리나라 종교신도들간에 대규모의 폭동사태가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러한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모든 종교형태가 그 종교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보수성과 광신성 즉 휜더멘탈리즘(Fundamentalism) 이라고 총칭되는
신령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되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프로테스탄티즘처럼 단시간 내에 폭발적인 교회조직을 확보한 사례는 이 지구상의 모든 기독
교전도사에 유례가 없는 사실이다. 세계사의 한 기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광신적 성격은 라스베가스에 가서 도박으로 신도들의 헌금을 날려버리는 목사님의 명예를 위하여 일국
의 최대방송조직을 장악하는 쿠데타군단의 조직력을 과시할 정도로 흥포하다. 뿐만인가? 조계종 총무원이라는 것이 도무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때만 되면 스님들이 창칼을 휘
두르며 싸우는 모습이 위성을 타고 전 세계로 방영되곤 하는 것이다. 내가 뉴욕에서 침구학 강의를 하는데 그곳에서 듣고 있던 점잖은 미국의사 한 분이 일어나서 갑자기 질문하기
를, 한국의 스님들이 낫, 칼을 들고 막 싸우는 모습이 미국 테레비 뉴스에 나오는데, 도대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으냐고 묻는 것이었다. 불교의 비폭력적 평화주의의 모습에
대한 평소의 인상과 한국의 불교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권승들의 광란 이면에는 아주 깊이 있는 수행불교의 전통이 우리 한국에는 살아있다고 강변을 할 수밖에 없
었지만, 맥락 없이 던져지는 이런 인상발언에 대해 나는 구차스러운 변명이상의 얘기를 할수가 없었다. 미국사회를 끊임없이 들끓게 하고 있는 한국산 종교의 갖가지 활약상, 신흥
종교라고 보통 범주화되는 대부분의 한국의 민간종교단체가 뉴스메디아를 장식하는 정보형태를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는 역시 지나치게 성스럽고 지나치게 영적이다. 역시 신령스
러운샤만들의 나라라고 해야 할까?
사람들이 종교를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실상은 모든 종교가 나쁜 것이다. 종교는 선이 아니라 악이다. 나의 갑작스러운 충격적 발언에 많은 사람이 의아스럽게 생각하겠
지만, 한번 마음을 놓고 생각해보라! 인간세상에 아예 종교라는 것이 있는 것이 좋겠는가, 없는 것이 좋겠는가, 개미사회에 목사개미와 개미교회가 있는 것이 좋겠는가, 없는 것이
좋겠는가?
사실 인간세에 종교라는 것이 없어서 생기는 불선보다는, 있어서 생기는 불선이 더 큰 것이다. 인류역사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라! 인류가 이 지구상에서 저지른 모든 끔찍한 대규
모 죄악상은 거의 99.95% 종교라는 명분아래 자행된 것이다. 멀리 눈을 안 돌려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의 살상전쟁이 모두 종교 때문에 생기고 있는 것이다. 이란,
이라크,이스라엘,아랄,코소보,널스니아,씨에라,레옹,라이베리아,인도,파키스탄.토오쿄오 지하철의 독극물 살인...셀 수도 없는 우리시대의 모든 비극, 인간이 개인적으로 저지를래
야 저지를 수도 없는 흥악한 대규모 악들이 모두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다. 생각해보라! 과연 종교가 좋은 것인가?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는 고대사회의 모든 제식이 종교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종교 때문에 인간을 희생하는 제물(human ,Sacrifice)이 생겨나고, 사제와
비사제간의 계급적 불평등이 생겨나고, 인간이 노예처럼 어떤 권위 앞에 족속되는 모든 모습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적 사유를 마비시키는 모든 기만적 행태가 종교에
속하는 것이다. 인간의 해방과 평등을 부르짓는 모든 종교의 슬로건의 이면에 반드시 종교라는 권위조직에로의 인간의 복속이 있지 아니한 예를 우리는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러한 해방. 평등의 실천만으로는 근원적으로 종교라는 조직이 유지될 길이 얼기 때문이다.
도대체 종교가 뭐가 좋은가? 없는 것보다는 있어서 해악이 더 큰 것이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아닌가? 우리나라 신흥종교의 모든 형태가 "사기성"을 지니지 아니한 예를
본 적이 있는가? 카메라 조작으로 성령이 내리는 것을 사진으로 찍어대고, 연보돈으로 축재하여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탁명환선생을 살해할 정도로 그 배면에는 확인되지 않은 의
문사들이 비일비재하고, 항상 검찰도 두려워 손을 대기 꺼려하는 암막의 베일이 종교가 아닌가? 도대체 종교가 뭐가 좋은가? 어떻게 종교를 선이라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나의 항변은 도무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항변해도 종교는 인간세에서 없어질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니이체는 이 종교란 놈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이 종교란 놈의 주범인 신을 살해하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1900년에 신의 막을 내린 20세기의 예언자 니이체는 드높이 선포했다. "신은 죽었다."
(God Is Dead!)
그런데 니이체는 헛지랄을 한 것이다. 도무지 죽일 수 없는 것을 죽인 것이다. 신은 결코 사살될 수가 없는 것이다. 니이체의 선포에도 불구하고, 20세기는 인류사상 가장 종교가
보편화되고 성행했으며, 인류사상 가장 많은 종교적 죄악이 저질러진 세기였다. 70세기는 인류사상 가장 많은 신흥종교들이 발생했으며, 70세기야말로 모든 신들의 그야말로 신나
는 축제장이었던 것이다. 니이체의 신의 사망선고는 결국 니이체라는 개인의 서구문명에 대한 양심선언에 불과했던 것이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허점을 파고든다. 인간의 의지가 발달하면 발달할 수록 그 이면에 생기는 공허를 파고든다. 인간은 강하지만 때로 한없이 나약하고, 혈기왕성하지만 때
로 한없이 가냘프고 감상적이다. 항상 사회라는 군집을 형성하여 북적북적 비벼대지만 그럴수록 고독하다. 인간은 합리적 이성을 추구하지만 때로는 비합리적 감성에 호소한다.
치밀한 분석에 열을 올리다가도 맹목적 믿음에 호소한다. 종교는 바로 이러한 인간의 배면에 구조적으로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이러 한 배면이 있는 한 종교는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종교는, 문학이나 시가 인간에게서 사라질 수 없는 것처럼, 그것 또한 인간존재의 본원적 측면을 형성하는 것이다.
종교는 분명히 악이다. 그렇다! 그것은 분명히 필요악이다. 그럼 이 악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악을 제거할 방도가 있는가? 니이체의 실패를 계속 반복해야 할까?
종교는 악이다. 그리고 종교는 근원적으로 인간에게서 제거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종교라는 악의 배면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종교적 악은 엄청난 선의 가
능성을 등반한다. 평소 때 할 수 없었던 희생을 가능케 하고, 개인의 욕망을 뛰어넘는 보편적 행위를 가능케 하며, 인간을 절망에서 구원하며, 죄의식을 씻어주고, 모든 인간을 사
랑과 화합으로 인도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의 믿음안에서 한 몸이 되며,서로의 생명의 가능성을 극대화시켜주며 아름다운 공동체생활을 가능케 하는 질서와 극기와 이
념을 제공한다. 종교는 악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세의 모든 악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선의 가능성, 그 에너지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종교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용렬한 무신론자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바로 종교를, 선의 가능성, 그 본래적 모습으로 복귀시켜
야 하는 것이다. 종교의 모든 죄악은 알고 보면, 종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종교를 빙자한 인간의 탐욕이 저지르는 것이다. 종교가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인
간이 저지르는 것이요 인간세의 제도가 저지르는 것이다. 종교는 어떠한 경우에도 교회나 승가의 역사로 이해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나 승가의 모습은 기독교
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기독교를 가장한 인간세의 조직의 모습이다. 기독교라는 추상체가 그 교회조직에 어떤 구실을 제공했을 뿐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조직의 이해관계
를 떠나 그 교회조직을 발생시킨 원초적인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로 회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
도의 교회를 봐서는 아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 그 자체를 듣고 보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30세기가 니이체의 예언과는 달리 종교가 지극히 성행한 시기라고 한다면, 우리의 문제의식은 제1의 주제와 일치한다. 즉 과학과 기술의 랑데뷰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놀라운 비
약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그만큼 종교계에도 놀라운 비약과 번영이 이 루어진 것이다.
과거에는 종교가 매우 편협한 지역주의(Localism)의 문화적 틀속에 갇혀 있었다. 대부분의 종교는 그 지역의 관습이나 제식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종
교조직을 구성하는 성원의 삶의 방식, 우리가 문화적 가치라고 부르는 갖가지 형태와 밀착되어 있었다. 종교의 보편화를 막는 일차적인 요소는 그러한 관습체계였다. 기독교가 아
직까지도 유태인 특유의 관습체계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그러한 해방이 바로 예수나 사도 바울이 원하던 바였지만, 한국의 목사님들은 아직도 구약과 신약을
구분 못하고, 새로운 약속(신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낡아빠진 옛 약속(구약)의 관습을 강요하있는 것이다. 전라도에서 발생한 종교를 보면, 전라도사람의 특유의 풍습과 촌스
러운 가치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종교는 종교를 형성하고 있는 사회구조 그 자체가 그러한 지역주의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의 그러한 방식의 조직이나 관습이나 율법의 특수성을 강요하
기 힘들다. 한번 생각해보자!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그 얼마나 한국사람들 입에서 마늘냄새가 난다고 쵸오센진을 경멸했는가? 일본시대 때 케이죠오에서 전차를 타면, 저 됫될
에서 한국사람이 한명 올라와도 앞문에 있던 일본사람이 "닌니쿠 니오이"하면서 오만상을 찌푸렸던 것이다. 일본사람들은 식생활이 비교적 담박한 편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
들은 한국사람의 마늘.파.생강.고추 운운하는 일곱가지 양념의 강력한 방향성을 감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불과 몇 년전의 일본문화다. 이러한 특수한 일본문화에서는, 예를
들면, 마늘을 저주하는 종교적 금기의 제식이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일본인들은 거의 마늘 처먹느라고 환장한 사람들처럼 되어 버렸다. 이제 한국의 "김치"가 세계인의 "킴치"가 되어 버렸고, 일븐은 이제 키무치의 대국이 되어가는 것
이다. 아지노모토 대신 키무치노모토가 대유행하고, 매운 음식이라면 그렇게도 질색하던 일본사람들이 한국의 신라면을 선호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세계 김치시장을 놓고, 한국
의 킴치상품과 일본의 키무치상품이 맞대결을 벌려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한국의 킴치상품계는 일본의 키무치는 김치로 규정할 수 없다는 선포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케이죠오가 아닌 토오쿄오에서 야마노테센 덴샤 됫문에 김치냄새를 풍기는 한국인이 올라타면 앞문에 앉아있는 일본인이 어디서 구수한 냄새가 난다고 입맛이라도 쩍쩍 다실 셈
인가? 엊그제까지만 해도 날생선을 먹는다 하면 귀신살코기라도 뜯어먹는 것인냥 질겁을 하던 양키 아저씨들이 이제는 스시바에 가서 사시미를 먹을 줄 모르면 맨하탄 한복판에서
도 문화인 행세를 할수가 없다. 기독교 성찬식에 포도주를 쓰는 것은 단순히 예수시대의 유대인들에게 통용되던 술이 포도주였기 때문에 생겨난 관습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성
찬의 본질적 의미와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그렇다면 신부. 수녀가 삥 둘러앉아 걸쭉한 막걸리를 바가지로 퍼잡수면서 성찬제식을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가? 4,000년의 연속성이 40년의 불연속성으로 단절되는 변차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삶의 양식이다. 지역주의의 편협성의 파괴다. 따라서 이제는 종교도
그러한 지역주의적 관습체계로부터 해방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름 공통적 이해의 폭이 증대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종교와 종교가 싸우는 것은 종교조직과 종교조직간의 진리의 상충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리의 상충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편견과 몰지각. 선입견과 몰이해에 뿌리박고 있다. 21세
기 인류의 촤대의 과재 바로 20세기에 벌린 인류의 종교의 잔치를 통해 21세 서로를 이해하는 공존의 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파티에서 한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낯설어지지 않게
마련인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이제 배타적 전도주의를 하루속히 포기해야 한다. 나의 믿음의 방식만이 오로지 인류를 구원한다는 좁은 편견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종교의 공존! 그렇다면 모든 종
교는, 사이비종교이든, 신흥종교이든, 저등종교 다 수용해야만 하는가!
종교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사이비와 진짜. 신흥과 구흥, 저등과 고등에 관한 명료한 가치기준을 내세울 수 있는 척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사이비라면 다 사이비일 수 있는
것이요, 진짜라면 다 진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세의 종교적 현황은 우리가 모든 종교현상을 모두 선으로 받아들이기에 어려운 측면들이 분명히 엄존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나 김용옥이 신일 수는 없다. 종교의고.저등, 다시 말해 신의 고.저등을 판단할 수 있는 신아니다.신을 법정에 세우는 하이에스트 코트의 판사는 아닌
것이다. 그러나 여기 내가 확연히 고등과 저등을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있다. 그것은 모든 고등종교는 "자기비판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가 매우 문제점이 많
은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등종교로 인정하는 것은 바로 기독교는 역사를 통해서 비관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왔다는 것이다. 역사를 통해서 기득교는 악을 최소화
시킬 수 있는 다양한 매카니즘을 확보해왔다는 것이다. 이미 기독교는 갈릴레오에게 천동을 강요하고 부루노를 화형에 처하는 그런 종교가 아닌 것이다. 불교 역시 기나긴 인간세
의 역사를 통하여 자기비판과 자기성찰의 확고한 대승정신을 함양해왔다. 불교처럼 반불교적 교리들을 자내에 수용 하는 폭넓은 증교는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신만 해도 그것은
불교를 부정하는. 인간의 본연의 깨달음의 성찰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이비종교나 신흥종교의 문제정은 바로 자기비관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를 비판하는 자들을 적대적 관계로만 설정하며, 자기들의 좁은 편견을 절대화시키고 우상
화시킨다. 기독교도 그러한 모랄에 사로잡혀 있는 기독교는 사실 기독교가 아니라 어느 목사 개인의 신흥종교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고등 종교의 조직은 리더십의 교체를 자유롭
게 행하는 매카니즘이 장착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이비종교는 리더십이 고착되어 있다. 종교가 자기를 개방할 수 없으면 그것은 종교의 자격이 없다. 어둡고 싸늘한 공기에
서만 존재할 수 있는 백설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태양의 밝은 양광아래서 금방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고 마는 그런 백설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순결을 가장
한 종교가 그러한 백설의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라는 것도 알고 보면 돈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아무리 종교정신이 위대해도 돈이 없으면 그 조직은 유지될 수 없다. 종교의 돈은 대개가 헌신하는 신도
들의 헌금이다. 그 돈에 진실이 있을 때 종교는 위대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돈이 어둡고 폐쇄되고 자만과 독선에 빠지면 결국 그 돈의 모임은 유지될 수가 없다. 종교도 돈이 없으
면 끝장이다. 종교도 흥행이 안되면 파장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흥망성쇠는 매우 단순한 것이다. 자체의 진실이 확보되면 그것은 자기갱생을 계속하고 그렇지 못하면 자망
한다. 우리는 종교의 부흥과 전도를 도울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망을 도와야 한다. 모든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사이비종교들이 자망하도록 우리는 우리민족을 개몽시켜야 하는 것
이다. 비판을 수용할 수 없는 모든 종교들이 폐업을 재촉하도록 우리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헌금을 안내면 종교는 자망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20세기가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지나치게 종교의 흥행이 잘 된 한 세기였다고 한다면, 21세기 우리역사는 종교가 흥행이 잘 안되는 세기가 되어야만 종교가 건전해지고, 종교간의 화평과 공존이 이루어질 것이다.

3. 지식과 삶의 화해

21세기 셋째의 주제는 지식과 삶의 화해(the Harmony Betwwen Knowledge and Life)이다. 이것은 노자철학 전반을 흐르는 반주지주의적 색채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지식이 본시
삶에서 나온 것이요, 삶을 위한 것이라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지식 그 자체가 삶을 괴롭히고, 삶을 위협하고, 삶을 노예화한다면 과연 어쩔 셈인가?
요즈음 부모님 노릇 하시는 분들의 공통된 고민중의 하나가 이런 것일 것이다
요즈음 애들은 공부를 참 안한다! 컴퓨터만 들여다 보고, 영화만 보고, 콜라텍,
락까페에 가서 춤추기는 열중해도, 공부는 안한다 피씨방, 비디오방, 디스코방에서는
몇날 몇일을 새면서 열중할 수 있어도 도무지 공부는 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지만
내 자식부터 그 모양이니 이것 참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 공부란
무엇인가? 이 "공부"란 놈에 대하여 나는 꽤 독장적인 새로운 나의 "공부론"이란
이론이 있다. MBC 이야기쇼 만남에 나간 나의 "공부란 무엇인가7"의 내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우리는 그 내용을 논할 계제가 아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공부"란 것은 "지식의 습득"과 관련된 것 으로, 더
구체적으로는 좋은 대학가는데 필요한 지식체계, 대학입시 이후에는 대학에서
가르치는 카리큐럼에 충실한 지식체계를 일컫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궁극적으로 그 지식체계계가 과연 우리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매우 근윈적인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부모님들께서 말씀하시는 "공부"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독서"다. "독서"도 만화책을 읽는 것이 이나라, 사려 깊은 책이나 전공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이다. 손쉽게 얻어지는 쾌락적 도서가 아닌, 쾌락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지는
그런 "독서"를 의미하는 것이다.
인생은 사는데 정말 재미잇는 것은 무엇일까? 맹자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조아하는 것으로 다음의 두가지를 들었다. 식과 색 그것은
참으로 천하의 명언이다. 사람이 일상적으로 사는데 "맛있게 먹는 것" 참 그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것은 없다. 하루하루의 일과 중에서 단 한번이라도 정말 맛있는
것을 먹어 보았으면 요새같이 퇴폐적인 외식 문화의 허식속에서 어쩌다 정말
정성스럽고 특이한, 맛깔스러운 음식을 만나면 정말 먹고 꼴깍 숨이 넘어가도 유감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쾌락을 만끽하게 된다. 음식의 묘미는 청결과 소재의 신선함과
조미의 프레이그런스, 삼립일체의 예술이다. 그런데 요즈음과 같이 하아타이로 그릇을
씻어대교, 공해로 쩌든 소재에, 온갖인공조미료를 퍼붓고 인공적인 된장,
꼬치장을처넣은 음식이 진미처럼 눈갑되어 나오는 세상엔 정말 향긋한 백미
밥한그릇이 오히려 귀하게 느걸지는 것이다. 요번 시드니에 가서 영어.우리말 두
강연의 성공도 유쾌한 것이었지만, 아내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우리
구어메이(미식가) 비각의 쾌거는 참으로 특기할 만한 사건이었다.
아내와 나는 중국에서 만났다. 중국에서 신혼생활을 했고, 중국말과 중국습관 속에서
평생을 살았다. 지금도 평상대화의 반은 중국말로 한다. 그래서 어디로 가든 꼭 들리는
곳이 차이나타운이다. 차이나타운에만 가면, 쎈스있게 선택하여 감만 잘 잡으면, 꼭 한
끼는 양식으로 니길니길 코팅되어버린 뱃속을 한번 유쾌하게 놀래켜 줄 찬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말을 잘한다는 것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아내와 나는 강언이 끝난 날, 단촐하게 둘이서 호텔을 나왔다.우선 길거리
키오스크에서 상세한 시드니의 지도를 하나 샀고, 도보와 공공 운송체계만을 이용하여
시내를 샅샅이 훌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유명한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부두가까지
걸어 나갔다가 그곳에서 센트랄 스테이션 파는 지하철을 탔다. 재미있는 것은
지하철이 이층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이었다. 홍콩이나 영국에서 이층버스는 많이
보았지만, 지하철이 이층으로 되어있는 사실을 예기치 못했던 것이었다. 센트랄
스테이tus을 빠져나와 벨모아 파크를 가로질러 차이나타운으로 향했다.
오스트랄리아 거대한 남쪽의 대륙이라는 이름의 이 오스트랄리아를 개발하는데
중국인 쿨리들의 어마어마한 노동력이 희생 제물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이곳에 일찍부터 정착하였고, 그들은 무시할 수
없는 상권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들이 시드니에 건설한 차이나타운은 유구한 역사와
보수적 전통과 풍요로운 현실이 잘 융합된 매우 깔끔한 곳이었다. 여기 저기
어슬렁거리다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오스트랄리아 차이나타운에 유달리 풍부한 것이
해산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오스트랄리아가 이 지구상에서 비교적 인위적
문명의 흐름에서 소외된 매우 청정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청정하기
이를 데 없는 남대양의 풍요로운 어장 한 가운데 있는 대륙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차이나타운 어느 매장앞 쇼윈도우를 지나다가 앗! 하고 나의 시선을 경악시킨
물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어항속을 어슬렁거리는 하나의 거대한 바윗덩어리와도
같았다. 영어로는 보통 "킹크랩"(King Crab)이라고 하지만 중국인들은 "왕게"라고도 하
지 않고, 아예 "황제게"라고 한다. 오스트랄리아의 게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초대형, 엑스라지 아니 슈퍼라지, 아니 크다는 표현이 도무지 적합치를 않은
그러한 것이었다. 어항속에 응크리고 있는 모습은 은자 그대로 거대한 태고의
암석이었다. 이왕지사엔 한번 이 놈을 먹어봐야겠다. 우리는 크랩요리를 잘 훌 수 있는
곳을 골랐다. 우리 감으로 굴번스트리트와 수쎅스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 크게 자리
잡고 있는 이라는 raht이 눈치 코치 다 때려 볼 때 명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있게 진탕에 을 시도했다. 퍽 큰
차이꾸안이었는데 거대한 한 변 적면이 온갖 어항으로 장식되어 있어 그곳에서 직접
해물을 고르면 바로 즉석요리를 해 올리는 그러한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어항앞에서
"황제게"를 찍었다. 그랬더니 웨이터가 우리를 의아스럽게 쳐다보면서 그것을 어떻게
먹으려고 하냐는 것이었다. 둔주고 먹는다는데 왜 못먹는다는 것일까? 저건 먹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전시용인가? 의아스러운 것은 내쪽이었다. 나의 반문을 받은 웨이터는 큰
그물을 집어넣어 게를 꺼냈는데, 자그만치 웬만한 어링아이 몽뚱이보다 더 큰 느낌이
들었다. 저울에 달더니 "치 꽁진"하고 외치는 것이다. 무게가 7킬로그램 나간다는
뜻이다. 7킬로그램면 어떻고, 10킬로그램이면 어떠냐. 한번 산해진미를
먹어보고나죽자꾸나 그랬더니 그 웨이터가 하는 말이 이것을 먹으려면 최소한
열사람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소하게 보이는 초라한 부부 둘이서 이 황제게를
처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아야기 인 듯이 애기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다
버리고 가도 좋으니 맛좀 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웨잍가 이것이 얼마인줄 아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마냐고 물었다. "뚜어 사오 치엔"
"세븐 헌드레드 달러스"
나는 여거서는 그만 기절초풍하고 말았다. 기권표를 던지지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슽랄리아 돈으로 700불이면 미화로도 500불이 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한
육심만원 되는 것이다. 게 한 마리 먹는데 육십만원, 아무리 미삭가의 탐욕을 마음것
발휘한다 해도 이것은 좀 심하다. 작전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부로 접근하다간
콘 코 다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수 없이 나와 버렸다. 미화 500불 우리는 아직도
학생감각에 살기 때문에 외국나가서 50불 쓰는 것이 좀 두렵다.그러나 무조건 후퇴는
곤란하다. 얌체같지만 나는 하는수 없이 SOSxmr전을 쳤다. 마침 그 송사장님의
회사건물이 바로 차이나 타운 근방이었고 또 다행이 저녁 7시경이었는데. 회사에
계셨다.
"시간이 있으시겠습니까?"
"아 물론 나가지요. 그런데 어디 계시지요?"
"여기 수쎅스 앤 굴번인데요 혹시 이라는 고을 아시는지요, 그 앞에
공중전화에서 걸고 있는 겁니다."
"XXXX 어떻게 아셨어요? 그 곳이 여기 차이나타운에서는 제일 고급이고 제일
음식을 잘하는 곳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 계세요. 제가 곧 가서 모시겠습니다. "
으음, 회심의 미소가 돌았다. 이제 한번 또 거하게 먹어보겠구나! 어차피 킹 크램은
속하는 것이고...허리띠부터 풀렀다. 송사장님은 바로 해물무역을 크게
하시는 분이었고, 그 주인과도 친구사이였다. 송사장님이 오셔서 다시
웨이터와 기나긴 협의를 거친 결과 우리가 낙착을 본 것은은 "러브스타"요리였다.
러브스타(바닷가재)하면, 나는 좀 일가견이 있는, 그리고 미식가로서 견식이 높다는
자부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미 전역에서도 러브스타의 고장으로는 보스톤항
이상을 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보스톤은 러브스타가 크고 풍부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보스톤 차이나타운의 러브스타 요리의 격조를 세계 어느 곳에서도 나는
경험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송사장님이 러브스타요리 운운할 때 나는 좀 불만스러웠다.
러브스타는 보스톤 6년유학시절때도 지겹도록 먹었고, 또 최근 보스톤생활을 통해서도
단골 메뉴였으니까! 그런데 웨이터가 어항에서 끌어올린 러브스타는 나의 눈을 다시
한번 의심케 만들었다․ "리앙 꽁진!" 7kg라는 뜻이다. 그리고 러브스타 한 마리에
200불을 받았다. 7Kg짜리와 실갱이를 치고 난 후인지라 나는 2kg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좀 거대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역시 러브스타의 모습을 한
것이있고,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큰 것인지, 200불이면 너무 호되게 받아 처먹는다는
생각만 들었을 뿐, 별감각이 없었다. 얼마후 ! 드디어 요리가 전개되었다. 우아! 문자
그대로 산해진미였다. 하나의 러브스타를 잡았는데, 아니 단 한마리의 러브스타를
잡았을 뿐인데, 아니 이렇게도 푸짐한 요리가 나오다니! 네가 보스톤에서 자랑스럽게
먹던 그런 러브스타의 살코기내용보다 실제적으로 한 열배는 되는 것 같았다. 이것은
완전히 우리의 상식적 개념을 뒤엎는 사건이었다. 진저(생강)소스, 오이스터(굴) 소스...
맛을 달리해서 푸짐하게 벌려 놓은 단 한마리의 요리를 우리 셋이서 먹다 먹다 다
끝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요리솜씨였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안에 그 딱
딱한 러브스타의 껍질들을 말랑말랑한 종이처럼 부드럽게 만들어 놓았는지,살은 뭉텅
뭉텅 푸짐하게 그 신선한 향기를 있는 그대로 발산했다. 남대양의 모든 신선한 바닷기
운을 농축한 듯 그 쫄깃쏠깃하면서 투명한 아삭아삭한, 그리핀 고상한 생강기름의 그
윽한 향기는 도무지 지상에서 내가 맛보았던 최상의 감띠로운 요리 같았다. 음식에 관
한 한 나는 실전에 강한 쿠킹의 도사이기도 하고, 다양한 국제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함부로 과찬하지 알는다. 그러나 시드니 수쌕스의 진 탕 러브스타 요리만은, 그 살점을
말캉 씹는 첫입의 순간에 그만 이제 죽어도 떠한이 없겠다는 감동의 눈물이 나을 지경
이었다. 이 지구상의 내노라하는 구어메이들이여! 시드니의 진 탕으로 가라 그리고 러
브스타 요리 한접시만 시켜먹게! 200불은 결코 아까운 돈이 아니니까!
맹자의 식색을 논하다가, 너무 이야기가 가로 새고 말았지만, 하여튼 인간에게 맛있
는 것을 먹는다는 것처럼 즐거운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 못지 않게 인간을 현
혹시키는 또 하나의 쾌락이 바로 색인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사랑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여기서 사랑이란 매우 구체적으로 이성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은
애타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열정이다. 사랑은 불꽃이다. 아니 그것은 훨훨 타오르는 열
화다. 사랑은 내 몸의 케미스트리인 것이다. 내 몸이 불타오르는 화학반응인 것이다.
모든 정신적 사랑도 결국은 신체적 사랑으로 골인한다. 아니 모든 정신적 사랑도 신체
적 사랑의 전제가 없다면 그와같이 열화와 같은 형태를 띨수가 없다. 신체적 사랑이
빠진 정신적 사랑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해도 그것은 그러한 전제와 가능성속에서 현
존하는 것이나. 이성의 교합의 순간처럼 인간에게 쾌락을 주는 것은 없다 아무리 부정
해도, 아무리 부정해도, 그것은 지고의 열락이다. 지고의 황홀경이다. 그러니 길거리가
온통 그러한 케미스트리로 들끓고 있는 환경에서 요즈음 젊은이들이 그러한 열락에 몸
을 내맡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짜릿한 몸과 몸의 언어는 아무리 되풀이해도 그
순간만은 어느 무엇도 비견될 수 없는 강렬찬 슬거움인 것이다.
몸과 몸의 만남, 규("구멍"의 뜻인데 동양고전의 표현이다)와 규의 만남,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해 인간관계의 자유로움을 획득한다. 세속적 규약으로부터의 해방을 획득한
다. 그래서 인간은 성이라는 자유의 매력에 매료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결코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두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자유는 순간이다. 그것은 세속
적 규율을 해탈시키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더 큰 규약과 제재와 규율속에 있는 것이
다. 그래서 그러한 규약과 규율의 질서를 획득하지 못할 때는 사랑은 파괴적이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의 모든 비극이 생겨나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인간존재의 파라독스
의 조건이다.
지 기시의 손을 빛나게 해주고 있는지 여인은 누구뇨?
오오 ! 그니의 이름디움은 정열의 횃불이 더 붉게 타오르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구나.
마치 검은 애티오피이의 황녀의 귀밥에 달려 있는 찬란한 보석처럼, 저 여인은 검은
뺨에 달려있는 듯 저 여인의 이름디움,만지기엔 니무도 현란하고 그럴다고 이 땅애 내
려놀기엔 니무도 고귀하다.보아라. 주변의 이기씨들 너머로 빛니는 저 자태 마치 떼지
어 다니는 까미귀속의 백설의 비둘기, 저 춤의 박자가 종료되면 저 여인이 멈출 곳을
내 미리 눈여겨 보아두마. 그리고 그너를 휘감이아 나의 무래한 손길이 축복을 받도록
해야겠군 나의 기슴이 여태까지 과연 사랑을 알았던가? 지금 불타오르는 나의 시선이
그것을 부정하네 나는 이밤까지 진정한 아름다움을 본적이 없었노라.
나는 대학교시절부터 계익스피어를 원서로 암송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나 자신
이 동양고전의 학문에 뜻을 두었기 때문에 너무 한문만 읽다보면 사람이 고리타분해지
고 구질구질한 냄새가 날 것 같은 컴플렉스 때문에 세익스피어를 암송하는 취미가 있
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세익스피어를 원어로 읽을 때 느끼는 그 마제스틱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의 감정을 후려쳐내는 언어의 마력은 이태백의 분방한 시나 감성적인 고시
나, 윤동주의 단아한 시의 맛과도 또 다른 깊이를 간직하고 있었다 상기 인용은 바로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쳐다보는 장면이다. 나의 번역이 세익스피어 원어의 맛을 얼
마나 울겨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 영문학자들의 현존 번역들은 너무도 살아
있는 예술의 감동을 무시하고 있다.
아 보아라! 그 얼마나 가슴설레이는 순간인가? 한 남자가 한 순결한 여인의 아름다
운 자태에 넋을 읽고 황홀경에 빠지는 그 순간의 감동을 어찌 이다지도 아름다운 언어
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인간에게 이 이상의 아름다운 순간이 또 있을 수 있는가
줄리엣의 손을 잡으면서
로미오 나의 천하고 무레한 손이 이거룩한 성소를 더렵혔다면 나의 부드러운 죄업은
이것이외다. 나의 두 입술이여 얼굴을 붉히는 두 순례자 되어, 여기 수줍게 서 있소이
다. 그 거친 만짐을 다시 하느적거리는 키스로써 부드럽게 고르려하오.
줄리엣 착하신 순례자시여 그대의 손을 너무 비하시키지 마옵소서, 고상한 예절로
나의 성소를 방문했거늘 성자에게도 순례자의손이 만질 수 있는 손은 있소이다. 손과
손이 맞닿으면 성스러운 순례자의키스가 되오이다.
로미오 성자에세도 거륵한 순례자의 입술이 닿을 수 있는 입숭이 있지 않소이까?
줄리엣 아아, 순례자이시오, 입숭은 기도에 써야하는 법이라오.
로미오 오 그렇다면, 사랑스렁운 성자이시여. 이손이 할수 있는 것을 이 입술이 할수
있게 하옵소서, 내 입술은 간구하오이라. 들어주옵소서. 소망이 절망으로 바뀌지 않도
록.
줄리엣 성자는 움직이지 않소 기도하는 자의 간구는 들을지라도.
로미오 그렇다면 움직이지 마옵소서. 나의 기도의 효험을 내가 받을 동안. (강렬한
키스를 한다)이로써 나의 입술의 죄가 그대 입술로써 씻어지오리다.
로미오 나의 입술의 죄라구요. 아 얼마나 감미로운 책망이시오니이까. 나의 죄를 내
가 다시 가져가 오리다. (두번재 강렬한 키스)
이 얼마나 미묘한 감정의 묘사인가? 처음 멀리서 바라본 로미오가, 곧바로 줄리엘과
키스를 교환하기까지, 그 성스러운 열화의 순간을 성자와 순례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끌어가고 있다 성자는 움직이지 않는 의 이미지요, 순례자는 움직이며 갈구
하는 의 이미지다.
그런데 나는 이 젊은이들의 열화의 순간을 이다지도 고요하고 성스럽게, 그러면서도
모든 격조와 섬세한 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감미롭게 표현하고 있는 세익스피어라는 작
가의 언어적 상황이 참으로 궁금했다. 과연 노련한 한 작가의 손에서 그냥 상상과 감
정이입만으로 이렇게 리얼한 언어들이 쏟아질 수 있을까? 도대체 세익스피어라는 천재
는 어떠한 인간이었을까? (로미오와 출리엘의 집필연대를 1577년으로 추정하면, 31세
의 작품이 된다.)
최근에 한국에도 영화를 통해 선 보인 톰 스토파드의 명작은 바로 이러한 나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고있다. 세익스피어의 언어는 죽어있는 상상의 언어가 아니라 살아있
는 삶의 언어였던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상상속에서 작품을 쓴 것이 아니라, 바로 젊은
이의 열화속에서 붓을 옮긴 것이다. 세익스피어는 열애중이었다 ! (쎄익스피어 인 러
브) 자기 신분을 속이고 남장을 해서 로미오의 역을 맡은 레쎞스가의 딸 비올라와, 당
시 무명작가인 세익스피어는 사랑중이었다 그 애절한 사랑,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업의 굴레속에서 그의 깃털 펜은 굴러갔던 것이다. 그 감미로운 속삭임들은 모
두 세익스피어의 삶의 현실적 고뇌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고뇌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20세기의 세익스피어라고까지 불리우는, 우리시대의 탁월한 극작가 스토파드의
고전해석이다. 물론 이 설정은 모두 픽션이다. 그러나 이러한 픽션은 우리에게 사랑의
진실을 가르쳐준다! 사랑! 사랑! 사랑! 사랑보다 더 행복한 삶의 순간이 어디 있으랴!
언젠가 공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색을 좋아하는 것만큼 공부하기를 좋
아하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의 자녀들이 여자를(이성을) 좋아하는 것만큼, 공
부를 좋아한다면 우리의 부모들은 그 얼마나 행복할까? 이런 말을 하는 공자 역시 색
골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체험이 없이 이런 말을 했을 리가 없다. 색을 좋아하는 것만
큼 공부를 좋아하는 자를 아직 보지 못했다 하는 것은, 실제로 보지 못했다 함이 아니
요, 그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어법이다. 즉 공자에게서도 공부함의 사상은 호색의 사상
이었다.호색의 강렬함의 자신의 체험을 기준으로 공자는 호학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이 때 바람을 피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맡은 주석가들이 이 언급이 공자가
음탕한 미녀부인을 만났을 때 즈음의 발설로 보고 있다.
그런데 사실 내 경험을 가지고 얘기를 하면 여자를 좋아하는 것만큼 공부하기를 좋
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호학의 즐거움이 호색이나 호식의 즐거움
에 결코 뒤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평생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사
실 공부는 재미있어서 하는 것이다. 재미가 없다면 내가 공부를 할리가 없다. 나는 어
려서부터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고, 또
공부를 하다보니까 공부가 재미있어진 것이다. 사실 호식의 즐거움은 너무도 짜릿하고
강렬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도저히 호색만으로는 재미가 없어서 살 수가 없다. 먹
기 위해서만 살고, 성교의 쾌감을 누리기 위해서만 산다고 한번 생각해보자 ! 과연 그
것이 재미있을까? 과연 그것이 우리에게 지속적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인가? 먹는것
도, 맛없는 것을 계속 먹다가 어쩌다 미식을을 만날때 우리는 더 없는 감미로움을 느
낀다. 색도 어쩌다 미색을 분위기를 만나야 즐길 수 있는 것이고, 로맨스도 뭔가 여운
이 감도는 정도래야 감칠 맛이 있는 것이다. 유곽의 여인들에게 있어서 성교가 과연
무슨 재미가 있을까? 매일 매일 닥쳐오는 기나긴 밤이 지리한 엔터테인먼트의 업보라
고 한다면 그것이 세익스피어 인 러브의 로맨스는 도저히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확언하건대, 공부하는 것만은 매일 매일 해도 재미있는 것이다. 최소한
미색보다 더 지속적이고 더 짜릿한 재미가 있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더듬는 공부의
황홀경은 사실 인디아나 죤스의 갖가지 어드벤처보다도 더 짜릿하고 더 스릴이있는 것
일 수도 있다. 그것은 현실적 시공에 얽매이지 않는 무궁한 모험인 것이다. 그리고 무
엇보다도 공부하는 재미는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해도 지칠줄 모르는 것이 공부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만 생각하고 느
낀다면 얼마나 좋으랴 ! 우리 한국의 부모님들께서는, 우리의 자녀들이 모두 나 도올처
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오죽이나 좋아하실까? 공부하라고 매일 매일 닥달치는 괴로움
도없을 것이요, 노상 어딜 갔다가 그렇게 늦게 들어오냐고 야단칠시름도 없을 것이다
웨 우리의 젊은이들은, 공부의 재미를 못느낄까? 나 도올의 이러한 진실하고 평범한
체험담이 도무지 그들에게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어떻해야 좋을까? 우리는 우리의 자
녀들을 식과 색의 쾌락에만 방치해 두어야 할 것인가? 오는 21세기는 그들의 세기가
될 것인가?
자아! 한번 잘 생각해보자! 이런 문제들을 곰곰이 짚어보자! 이런 문제들을!
길거리를 지나다 보면, 요즈음의 틴에이저치고 스케이트 보드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고. HOT같은 댄싱가수그룹의 춤같은 것을 흉내내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그리고 NBA 농구선수. 마이클 죠단 흥내내며 농구코트에서 공을 요리조
리 돌리고 굴리며 벼라별 묘기를 다 부리는 것은 다반사!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스
케이트 보드를 잘 타는 아이를 쳐다보는 것은 매우 즐겁지만. 실제로 그렇게 스케이트
보드를 잘 타기까지 보드에 들인 그 아이의 공력은 시간적으로도 어마어마한 것이지
만, 그 고된 훈련의 과정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즉 열
중은 했을지언정, 반드시 그것이 쾌감을 주기 때문에 그 고된 훈련의 시간을 소모하지
는 않았을 것이다. 힙합댄스만 하더래도 그것이 보기는 즐거을 수 있어도, 그렇게 즐겁
게 멋있게 동작을 맞추어 자유자재로 춤을 출 수 있게되기까지 들이는 몸의 공력은 참
으로 어마어마한 시간과 정력이 소비되는 것이다. 영화관 막간 선전에 나오고 있는 유
승준군의 헤드스핀을 쳐다보면 그 정도로 몸을 놀릴 수 있는 노력이라면, 임마누엘 칸
트의 (순수이성비판)도 독파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요즈음같이 청량한 천고마비의 계절에, 강변이나 해변에서 젊은이들이 요트를 타는
모습이나 물보라를 치면서 수상스키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이 난다. 그런데 문제
는 요트를 타고 싶다고 해서 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상스키를 타고 싶다 고
해서 스키구두를 발에만 끼면은 끝나버리는 그런 얘기가 아닌 것이다. 공부를 하는 것
과, 공부를 안하고 딴짓을 하는 것, 그 망자는 매우 다른 인간의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
만, 알고 보면 지극히 공통의 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노력과 시간과 훈련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부를 안하고, 노는 일조차, 노력과 시간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요즈음 젊은이들은 스케이트 보드나 힙합에는 그 쓰잘데 없는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면
서, 그 시간을 공부에는 쏟질 않는가? 분명 공부하는 것이 스케이트 보드보다는 더확
실한 효과가 있고, 더 지속적이고 더 다양한 재미를 즐 수 있으며, 더 확실한 삶의 가
치와 보람을 확보해준다는 것은 너무도 명약관화한데, 우리의 자식들은 왜 이것을 모
를까? 아무리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웁게 외쳐봐도 소용없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역
시 "맹자왈 공자왈""이나 "임마누엘 칸트"에게 보다는, "스케이트보드"나 "힙합" "테크노
댄스"로 가고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립씽크 힙합보다는 공부가 확실히 더 재미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런 나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 내가 공부가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냥 공부가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재미있게 느낄 수 있게 되기까지 재미없고
지루할 수도 있는 훈련의 기간을 포함한다는 사실이다. 힙합을 자유자재로 추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 자유자재로움에 도달하기까지는 결코 즐거을 수만은 없는 시간과 정력
이 소요되는 것과 매우 동일한 이치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분석의
최종 결론은 이러하다. 힙합을 배우는 과정과 공부를 배우는 과정을 비교하면, 역시 공
부를 배우는 과정이 더 어렵고, 더 시간이 많이 걸리며, 더 지루하게 느껴지며, 무엇보
다도 인간을 집중하거 만드는 흡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힙합이나 스케이트 보드는 그 습득과정이 재미없을지라도 사람을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분석에 있어서 우리가 최
종적으로 점검해야 할 사실은 바로 우리가 그냥 공부라고 말해온 내용, 즉 인간의 지
식이라고 부르는 이 사태의 본질적인 정당성에 관한 것이다. 과연 지식이 인간에게 절
대적으로 괼요한 것인가? 지식의 습득 과정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스케이트 보드나
힙합만큼도 매력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라면, 과연 그러한 지식이 우리 인간의 삶에 어
느 정도 정당한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인간이 꼭 지식을 추구해야만 훌릉해지는 것밀
까? 여기 지나온 20세기를 반성해 블때, 나는 단언한다. 지식(Knowledge)이 삶(Life)과
대적적(antithetical)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지식이 권위체계로서 삶 위에 군림해왔다는
것이다. 내가 산 세기를 회고해 볼 때, 나는 아무런 생각의 점검도 없이 무조건, 임마
누엘 칸트를 모르면 병신취급 받는다는 압박감속에서 살았다. 다방에서 오바깃털을 세
우며 커피향을 후후 불어가며 최소한 사르뜨르나 하이데가 점도는 씹어대야만 가오가
서는 삶을 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삶의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나의
삶의 모든 요구를 희생시키더라도 칸트나 하이데가를 알아야만 한다는, 검증되지 않은
강박관념속에 반세기를 산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의 젊은 아이들에게는 이러한 나의
강박관념이 말소되어 버린 것이다. 삶 앞에 지식이 권위적 존재로서 군림하고 있지 않
은 것이다. 풍요의 덕분일까?
21세기의 제3 주제로서 내가 말한 이 지식과 삶의 화해라는 문제는 인류문명사의 매
우 다양한 측면을 포섭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 지식의 정당성에 관하여 가장 본원적인
질문을 제기하고 있는 고전이 바로 이 노자의 정천언인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요청해야 하는 것은 지식과 삶의 화해의 문제다. 과연 나는 이성의
문재를 알기 위해, 그 난해한 언어로 쓰인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이해하느
라고 몇년 아니 몇십년의 세월을 투자해야만 하는가? 오는 21세기에도, 앞으로 100년
후의 조선의 대학생들에게도, (순수이성비판)이 고전의 자격을 가지고 있을 것인가? 그
렇다면 칸트는 전혀 공부할 필요가 없는가?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의 카리큐럼을 둘러
싼 모든 문제들이 이러한 본원적인 질문에 대한 명쾌한 비젼이 없이 우왕좌왕하는데서
생겨나는 과도기적 표류현실이다. 교육부는 암암리 자본주의적 효율성의 기준에 의해
학문 그 자체를 터무니 없이 천박하게 만드는 것만을 개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고 보수적인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의 주장이 그대로 21세기에도 지속적
인 정당성을 지닐 수 있을 것인지?
우리가 이러한 주제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르 고민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는 지식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다.
최근 "복제 양 돌리"의 문제를 두고, 또 유사한 사태의 무궁한 발전가능성을 전제로
전 세계적으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과연 인간의 지식이 모든 것을 다 알아낼
수 있고, 모든 꿈을 다 실현시킬 수 있다해서 우리는 지식의 진보에 따라 되는대로 다
캐내고 다 현실화시키면 되는 것인가? 유전자 조작이 쉽게 가능해진다고 해서, 수십억
만년을 통하여 형성되어온 DNA의 배열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이 과연 지식의 도덕성
인가? 지상의 배추와 지하의 무를 결합시키는 무추의 생산이 마음대로 가능해지고, 미
꾸라지 하나도 가물치보다 더 큰 거대종자로 개종하는 것이 마음대로 가능하다고 해서
과연 "생산성"의 이름아래 그것을 그렇게 조작하는 것이 과연 인간지식의 위대한 진보
의 도덕적 결과인가? 무와 배추가 아무 탈 얼이 엄존하는데, 왜 구태여 무추를 만들어
야 하는가? 미꾸라지는 몇백만년을 우러러 같이 살아온 그 모습대로 얼마든지 진흙속
에 뒹굴고 있거늘, 100마리분의 고기를 한마리 사육으로 얻기위해 과연 거대 미꾸라지
종자를 만들어야만 하는가? 국가예산을 낭비하면서 그따위 조작이나 하고 앉아있는 사
람들을 우리는 과연 과학자라고 불러야 하는가? 그따위 과학자들을 만드는 것이 과연
우리자녀들을 공부시켜야 하는 소이연일까?
인간의 지식은 시대에 따라 그 양태가 달라진 것이다. 20세기에 우리가 콤플렉스를
느낀 지식의 양태는 모두 이 "과학"이라는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다. 인문과학.사회
과학.자연과학 예술과학... 과학 아닌 지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까지만 해
도 우리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 즉 독서를 한다고하는 것은 모두 오늘의 개념으로 말
한다면 "고전학"에 불과했다. 그것은 전혀 과학(사이언스)이 아닌, 십삼사라고 하는 유
가경전의 습득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식의 체계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문명을 충분
히 운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21세기에 과연 과학이라고 하는 지끈체계가 20세기와 같은 권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우리가 과학이라고 하는 지식체계에 대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을 수 없
는 것은 바로 과학이 생산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명의 힘 때문인 것이다. 그것의 도덕
적 가치때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이 과학이라고 하는 정보체계가 점점 보편화되어
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과연 과학이라고 하는 지식의 한계는 설정되지 않아도 좋은 것
인가? 이러한 모든 문제에 관하여 나는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갈구한다. 결정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지라도 우리의 먼 훗날의 자녀들을 위하여 사려깊은 생각을 한 사
람들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노자도XX"이라고 하는 책
노자XXX이라는 것이 이 책의 원래의 이름은 아니다. 노자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해서
옛날에는 그냥 노자라고 불렀다. 그러니 노자라는 이금이 아마도 가장 오래된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노자는 두 X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편은 도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쓰여졌고, 한 편은 X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해서 쓰여졌다. 그러니
도X, XX의 이름이 가능하다. X본에 따라 도X이 앞에 오기도 하고,XX이 앞에 오기도
한다. 그러니 노자라는 책의 별명으로 도X도 가능하고, 『XX도 가능하다. 그런데
후대에 내져오면서 이 XX에 "X"의 권위를 부여하게 되었다. 그래서 XXX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중국의 명나라는 이 노자의 본명이 이씨라고 생각했고, X나라 XX과
XX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자를 매우 존중했다. 그래서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때
이미X나라 황실로부터 노자도XX을 전해 받았던 것이다.
논자라는 책의 저자인 노자는 누구인가? 노자는 "늙은 선생",(Old Maaster)이라는
뜻이며 그것이 곧 그 저자의 정확한 이름은 아닐 것이다. 이 노자라는 인물에 관하여,
XXX이라는 유명한 역사학자는 자신이 지은 사기라는 역사책 속에 역사적 인물의
전기를 모은 외전이라는 부분에서 "노자외전"(Biographices of Lao Tzu)을 지어
남기었는데, 그 외전에서 조차 노자가 누구인지를 확실히 말하지는 못했다. s자에
관하여 내려오는 여러 이야기들을 있는 그대로 다 실어 놓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XXX의 시대(BC 7세기)에 이미 노자라는 인물은 오리무중의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노자라는 책이 존재한다면, 분명 노자라는 책의 저자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와같이 간단치 않다. 우선 노자라는 책 자체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가지거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전을 대할 때, 불교이든, 기독교 성경이든, 유가경전이든, 춘추제가
경전이든, 우리가 현재 시중에서 사볼 수 있는 책의 모습이 곧 그 옛날의 책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유치한 생각이다. 기독교 성경만 해도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신약성경과 로마시대의 사람이 보았던 신약성경은 그 문자내용이 매우
다르다. 모든 고전이 옛날 어느 정확한 시점에 정확히 한사람에 의하여 쓰여져서 그
모습대로 오늘날까지 전해내려온 예는 거의 없다. 우선 옛날에는 요새와 같이
"인쇄"라고 하는 책의 유포방식이 없었다. 모두 가죽이나 비단이나 대나무나 파피루스
같은데에, 펜이나 붓으로 쓰거나, 칼이나 인두로 판 것이다. 그러니까 쓰는 사람마다
몇글자씩 달라지는 것은 물론, 착간,누락,첨가,삭제,유실 등등의 변화가 반드시
일어나게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고전은, 모두가 근세에 와서 인쇄술이
발달한 이후에 하나의 판본을 정해 정본으로 악속한 것이다. 그래서 고전이라고
부르는 많은 것들이 후대에 날조된 것도 많다. 조선말기에 성립한 책들을 가지고,
단군시대의 책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이야기들이 이러한 날조의 대표적
사례이지만, 이러한 날조는 이미 X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노자는 단행본으로 XX한 것이 매우 오래된, 그 정확한 추적이 가능한 희귀한 책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아주 확실하게 말하면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노자와 거의
유사한 책이 신약성서가 쓰여진 시대보다. 최소한 300년을 앞서 XX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1973년 11월부터 1974련 초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마왕뛔이라는 곳에서 분묘를
발굴했는데 그 3호분묘에서 대량의 XX가 나왔다 백서라는 것은 비단이 먹과 붓으로
쓴 책을 말한다. 이 백서중에 바로 오늘날의 노자책과 그 내용이 거의 비슷한
노자백서가 2종이 나왔는데 XX체로 쓰인 한 종을 보통 갑본이라 하고, XX체로 쓰인
한 종을 을본이라 한다.갑.을 모두 오늘날의 "XXX"이 아닌 "XXX"의 체제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가 볼수 있는 XXX과 큰 차이가 없다. 한 80퍼센트
이상이 대강 일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삼X분묘에 묻힌 연대를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비씨 168년이다. 이 노자 비단책은 여기 묻힌 XXXX의 아들이 생전에
보았던 X본 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백서의 출현으로도 노자라는 사람을 아는데는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이 백서의 출현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노자의 권위를 추락시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전이 얼마나 그 XX의역사가 정확한 전승을 지키고 있는가 하는 것을
입증하여 주었다. 그런데 최근에 더윽 놀랄 일이 하나 생겼다.
1973년 10월,XXX XXX XXX XXX XXX 에 자리 잡고 있는 전국시대의 분묘 하나를
발굴했는데, 그곳에서 804개나 되는 죽간(문자가 새겨진 대누무 쪽)에 쓰여진
일만삼천여 글자의 문헌이 발견된 것이다. 그런데 이 모두가 매우 심각한 개념성의
학술저작인 것으로 보아, 아마도 이 분묘주인 자신의 라이브러리가 같이 묻힌 듯 한데,
그렇다면 이 분묘의 주인은 대단한 사상가였을 것이다. 부장품중에 "XXXX"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는 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분묘의 주인은 X나라의 선생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맹자와 동시대며 맹자보다 약간 약간 나이가 많은 X나라의 사상가 XX의
묘로 비정하는 설까지도 제기되었다.
대부분의 문헌이 유가저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죽간 중에 도가저작으로서 노자
XX과 태일생수 일절의 2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획기적인 사실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이다. 이 분묘는 XX시의 하한선이 B.C. 370년 경이므로, 이 분묘속의 XX은 모두
B.C.300년 이전의 통용연대를 확보하는 것이다.그러니까 XXX의 XX보다보다 연대가 근
두세기까지를 소급할수 있다.내가 생각하기에 이 "XXXXXX"이라고 부르는 이 문헌들은
중국의 전국시대의 사상사를 재구성하는데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주
생생한 근거를 제시한다고 본다. 전국시대 중엽의 제1차 자료를 지금 우리가 우리의
XX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그 감홍이 전달될 수
없겠지만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이 문헌에 비정하여 많은 다른 문헌의 문제점을
비교검토함으로써 중국고대사상에 관하여 보다 정확한 추측이 가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XX의 출토로 요즈음 중국철학계는 구설에 안주할 수 없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이는 것이다.
노자의 문제만 하더라도 이 꾸어띠엔의 XXX이 마왕뛔이의 XXX보다 문헌학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마와뛔이의 XXX은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금본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주며, 판본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하여 주는 서지학적 보조자료의
역할이 XXX이었다. 그러나 XX의 XXX은 금본의 정당성 자체를 회의케하며,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경이라는 문헌의 성립과정에 대해 매우 결정적인 새로운 가설을
가능케한다.
XXXXXX(약칭하여 XX이라 한다.)은 갑.을.X.삼X로로 나누어져 있다. 갑 X의 것은
길이 32.3센티미터짜리 39매 되어있고, 을X의 것은 30.6센티미터짜리 18매, XX의
것은 26.5센티미터짜리 14매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XX가 오늘날 우리의
한문지식으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소전체와 예서체로 되어 있는데 반하여, 우리의
눈으로 보아 쉽게 식별하기 어려운 초나라의 독특한 자음로 되어있다(전국중가의
고전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백서의 경우 갑.을본이 동일한 내용의 중복되는 두
세트의 문헌임에 반하여 이 간서의 경우는 갑.을.X의 내용이 거의 중복되지 않으며
그것을 다 합치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도덕경 문헌의 5분의 2 정도의 분량을
형성한다. 그리고 간복의 내용이 대부분 오늘날 금본에 있는 내용이지만, 그그 장점의
체계가 금본과 크게 다르다는 사실이다.
흑자는 이 묘소가 이미 도굴된 사실이 있으며, 노자 X본이 XX하지 못한 것은 일부가
도둑맞았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고증가들이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지는
않는다. 바로 금본의 5분의 2를 형성하는 X본의 내용이야말로 성서문헌학ᄋ서말하는
복음서의 "Q자료"처럼, 도덕경의 가장 오리지날한 고층대를 형성하는 문헌일 것이라고
우리는 비정할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X본의 문제는 간단치가 않다. 갑본과 X본간에 금본의 64장 XXXX이
중복되어 나오고 있으며 그 문자의 표현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역시 갑.을.X본이
합쳐져서 하나의 XX한 텍스트를 이룬다기 보다는 제각기 다른 전승의 초사본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갑.을.X의의 어떤 프로토
텍스트가 있다는 가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갑본과 X본 두 텍스트 간의
문자를 비교해보면 갑본이 X본보다 오래된 초본임을 알수 있다. X본은 그 XX이 다른
것이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갑.을.X을 합친 내용이 노자라는 프로토 텍스트의 모습에
가까운 것일 것이라는 가설은 유용하다 그런나 갑.을.X본 모두 다른 전승의
소산이라고 한다면 노자 연구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지 않
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본 강의는 대중강연이다. 노자라는 문헌에 대해 전문척인 지식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차술세미나가 아니다 그리고 본 강의의
취지 자제가 노자의 생각을 전달하려는 것이지, 노자라는 문헌의 전문적 분석결과를
전달하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지학적 논쟁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너무도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는 것이며 여기 소개되어야 할 하등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XX초간본 노자를 살펴 본 나의 소감중에 가장 의미있는 사실은
그것이 노자라는 책의 형성파정에 대해 매우 설득력있는 새로운 가설을 가능케 한다는
젓이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XX대학에서 석사논문을 쓸 때부터 주장해 왔던 학설들과
대강 일치하는 것이다.
노자와 동시대 쯤에, 노자라고 하는 어떤 X의 역사적 인물이 있었고, 그 인물이
단일 저작물로서 노자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늘날의 노자와는 다른
모습이면서도, 그 배태를 형성하는 매우 절박한 사상형태였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과
같은 현묘한 형이상학적 인식론의 체계나, 지나친 정치철학적 주장이나 유ㅏ철학이나
타제가에 대한 명백한 비판의식을 수반하는 것이 아닌 질박한 내용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 이 삼백년 동안의 첨삭을 거치면서 발전하여 전국말기쯤에는, 오늘
우리가 보는 금본과 상응되는 새로운 프로토타입으로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전국말기의 사상가며 노자의 최초의 주석가인 한비자가 보았다고 하는 노자는 바로
백서의 모습에 가까운것이며, 내가 말하는 프로토타입의 문헌에 상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XXX이 아닌 XXX이다
그럼 오늘 우리가 보는 노자 금본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가? 그것이 바로
왕필이라고 하는 천재적 사상가가 주석을 단 판본을 말하며 보통 왕본이라고
지칭한다. 왕필이라는 사람은 A.D 226년에 낳아서 A.D. 249년에 죽은 위나라의
천재적 사상가였다.
그런데 여기 연대를 한번 잘 계산해 보라! 몇살에 죽었는가? 만 27살에 죽었다.
23살? 모차르트는 몇살에 죽었는가? 그래도 모차르트는 결혼도 했고 35살까지 살다
죽었다. 그럼 27살에 죽은 청년이 언제 무슨 사상을 구축할 수 있었던 말인가? 왕필이
노자를 주석한 것은 16살의 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니까 요즈음 나이로 중학교 3학년
정도의 소년이다. 그러나 이 소년 왕필의 노자주석은 거의 중국 전 역사를 통털어
가장 탁월하고 가장 심오하고 가장 널리 읽히는 주석으로 꼽히고 있다.
왕필이 활약한 시대는 삼국사의 조조, 유현덕같은 사람들이 활약하던 시대와
비슷하다. 왕필이 태어난 다음 해 3월에 제갈량이 그 유명한 XXX을 올리고 위를
쳤으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신라.고구려.백제가. 흥기하면서 서로 충돌을 일으키던
심국시대에 해당되는 시기다.
모차르트와 같이 17대에 이미 탁월한 음악가가 된다는 것은 요즈음 우리나라의
음악천재들을 보아도 이해가 갈 수 있다. 그리고 10대에 세계적인 수학자들이
배출된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간다. 그러나 10대에 인생에 대해 쓴맛 단맛을 다 겪고
인간과 우주에 대한 모든 통찰을 거쳐야 나을 수 있는 심오한 철리의 대가가 된다는
것, 그것도 현대의 인간들에게도 쉽게 접근이 될수 없었던 XX한 문헌이었던 고전의의
대가가 된다는 것, 그것도 보통 대가의 수준이 아니라 그 수천억의 인구가 살고 죽고
했던 중국땅덩어리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된다
는 것, 그것도 10대에, 그것은 아무래도 우리의 상식으로 쉽게 풀리지 않는다.
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UFO를 좋아하는 사람들, 에집트의 피라밋을 놓고, 나즈카의
지오글립스를 놓고 스페이스 커넥션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뭔가 고대사의
신비가 인간적 상식에 의해 풀리는 것을 공포스러위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희한한
가설에 인류가 호기심을 기울여 주는 것을 자기들의 종교로 삼는다. 그러나 왕필은
조금도 그러한 신비의 인물이 아니다.왕필을 보면 인간의 가능성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왕필의 성장과정은 정확하게 추정가능하며. 그는 당대의 최고의
라이브러리였던 "채옹의 만권지서"를 물려받은 서향지가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당근의 석학들과 괴담청론을 일삼았다.무엇보다도 왕필이라는 존재를 가능케 했던
것은 삼국시대라고 하는 변혁기. 흔돈기의 창조적 자유의 분위기였다. 나이를 불문하고
실력자를 실력자로서 대접하는 비권위주의적 분방함이 확보되지 않은 시대였더라면
왕필은 태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 어느 권문세가 이 사회의 리더들이 열살짜리 석학을 모셔다 그의 강론을
듣고 XX을 할 것인가? 그의 시대는 곧 완적, 혜강과같은 죽림칠현 기괴발랄하고
자유분방한 행동들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였고, 그러한 로맨스의 시대였고,
그러한 로맨스는 지교에 찬 속진을 부정하고 자연의 XX을 영탄하는 ejdisaidd,;
"귀거래사"와 같은 시조으로 이어지고 있는 그러한 시대였다
왕필이 노자를 주석했다 하는 것은, 요새 우리가 고전을 주해하는 책을 쓰는 것과는
좀 개념이 다르다. 우리는 기존의 텍스트가 대부분 이미 정립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
텍스트를 전제로 해서 주해를 단다. 그러나 왕필이 노자나 XX을 주해했다하는 것은,
그때까지 내려오던 다양한 전승의 텍스트 그 자체를,자기의 주석적 견해의 일관성의
틀 속에서 정비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왕필은 물론 이러한 작업을
텍스트의 "왜곡"이라고 생각치 않았다. 왕필의 손에서 일어난 텍스트의 변형 내지
외곡이 관하여 나는 매우 새로운 견해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견해들을
여기 피력할 생각은 없다. 그 또한 너무도 충격적이고 너무도 전은적인 논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가 현재 노자도덕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단 왕필이라는
어린, 그렇지만 만고의 걸출한 사상가의 손에서 변형된 텍스트이며, 대강 우리의
노자도덕경의 이해의 틀도 왕필의 X학적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는
대전제를 확실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여기 피력하는 것으로 우리의 논의는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왕본의 가치는 근 두 밀레니엄 동안 인류의 노자이해의 다양한 틀을
형성해온 것이며, 어떠한 타 판본의 재해석에도 불구하고 독림적인 가치가 인정된다는
것을 밝혀둔다. 그리고 왕본의 텍스트는 금서나 X본과는 또 다른 또하나의 XX의
소산일 가능성이 높다. 왕본 텍스트의 독립적 가치는 마치 산스크리리트 원본의
바즈라 쩨디까 수뜨라가 엄존하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금강경하면, 꾸마라지바의
XXX 텍스트가 더 총체적인 금강의 지혜의 이해의 틀을 형성해온 것과도 같다. 우리의
노자 강해는 바로 이 왕본의 해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학도들은 XX나 XX에서 제기된 많은 문제들을 비교적으로 검토.파악하는
자세를 잃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나 역시 왕본을 해석해가는 과정에서 XX와 XX의
연구성과를 도입할 필요가 있을 때는 그를 충분히 반영하도록 할 것이다. 왕본에
문제점이 발생할 때, XX니 XX의 기준이 더 진실하다고 판명되면 물론 새 자료에
의하여 왕본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형량해야 할 것이며, 왕본 텍스트의 정정이
요구될 때는 그를 정정하는 것이 당연한 학문적 자세일 것이다. 나의 요번 노자
강해는 1999년까지의 세계적으로 노출된 모든 정보를 종합하는 가장 새로운 노자
강해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사부집요 자부에 수록된 가장 흔한 청대의
회정장씨본 왕필주 노자 도덕론을 나의 강해의 자본으로 삼는다.
노자는 한마디로 지혜의 서이다. 그것은 어떤 종교의 교리를 말하거나, 어떤 물리적
사태의 규명을 목적으로 하거나 우리에게 특정한 교훈이나 가치규범을 강요하거나
하기 위한 책이아니다. 서양의 전통에 있어서 "지혜"란,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무엇이다 그러나 그러한 지혜란 근원적으로 "무당의 지껄임"이다. 동양에서 말하는
지혜란 그런 것이 아니다. 신이란 전제도,인간이란 전제도, 지혜 앞에선 성립하지
않는다.
지혜란 우리 삶의 과정적 행위의 지혜이다. 그런데 지혜의 특징은 일체의 권위적
실체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무전제"인 것이다.
지혜는 개념적 분석의 소산이 아니다. 이것은 분별적 지식을 뛰어 넘어 우리의 몸으로
궁극적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따라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공연히 선입견만 불어넣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노자는 공부하는 책이
아니라, 그냥 부담없이 정직하게 느끼는 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자에게서 무엇을
구하려 하지 말 것이며, 노자에게서 무엇을 배우려 하지 말 것인다. 그냥 그가 말하는
것을 빈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곧바로 나의 삶의 바른 가치의 한 측면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노자도덕론 상편
일장
도가도, 비상도,명가명, 비상명,무명, 천지지시,유명 만물지모,고상무욕이관기묘, 싱
유욕이관기교,차양자동,출이이명,동위지현,현지우현,중묘지문,첫째 가름,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지우면 그것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을 천지의 처음이라 하고, 이름이 있는 것을 만
물의 어미라 한다. 그러므로 늘 욕심이 없으면 그 묘함을 보고, 늘 욕심이 있으면 그
가장자리만 본다. 그런데 이 둘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앎으로나와 이름만 달리 했을
뿐이다. 그같은 것을 일컬어 가믈타고 한다. 가믈고 또 가믈토다. 모든 묘함이 이 문에
서 나오니 않는가.
1972년 여름, 나는 드디어 유학의 장도에 올랐다. 때마침 내 책상 한 구석에 쑤셔박
혀 있는 옛날 여권을 뒤적거려 보니까 쏭산 비행장, 입국도장이 1772년 8월 11일로
찍혀있다. 참 눈물겨웠던 여권이다. 나의 청춘의 모든 꿈을 간직했던 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누렇게 바래버린 이 여권 하나를 얻기 위해 그때는 얼마나 피눈물나는 노
력을 했어야만 했던가?
나의 비행기가 타이뻬이 시내를 누비며 고도를 낮추었을 때, 내가 처음 본 이국의
모습은 무언가 우울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구중중한 느낌이 드는데 사방에서 독
특한 중국인의 쌔리한 내음새가 풍겼다. 하여튼 그렇게해서 나는 갔고, 야자수
가 늘어선 시원한 교정의 대로를 걸어 들어갔다. 나의 고전학에 대한 열망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렇게 우울한 남방의 늦여름, 매일 비가 구중중하게 내리고, 관절염으로 습기라면
질색하던 나의 몸둥아리는 다시 쑤셔대기 시작할 즈음, 나는 그곳에서 지금 나의 아7
췌이 샤오지를 만났다. 중국학생들 사인에서 "빠이빠이팡팡더"라는 별명이 붙었던 췌이
샤오지는 너무도 발랄하고 하이얗고 아름다운 선배였다. 나보다 유학을 4년이나 먼저
가 있었던 고참 선배였다. 우리의 만남은 우연하게 그렇지만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그
러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졌다. 몰론 결혼전의 일이다. 최소저는 나에게 학교 근
처의 영화관 하나를 소개했다. 최소저는 대만의 지리와 풍물에 밝았던 선배였고 나는
남방풍토에 아직 익숙치 못한 풋내기였을 뿐이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최소저가 길거
리 지나가다 파란 과일을 몇 개 사더니 그 자리에서 껍질을 까니, 향기가 진동하고 그
속엔 말캉한 과일이 초록껍질과는 대조적으로 바알간 색깔을 드러냈다. 우아! 귤이었다
! 계절이 바뀌면서 첫 선을 보였던 푸르고 싱싱한 글껍질을 튕겨대는 그녀의 손놀림
하나하나가 경이로왔던 것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선 귤 구경을 하기가 힘들었다.
우리가 간 곳이 "똥난야시위앤"라는, 대만대학생들이 잘 가는 극장이었다. 그 앞에
즐비하게 널려있던 노점상들, 큰 도라무통 같은데다가 달걀을 잔뜩 집어넣고 찻잎과
간장국물로 바글바글 끓이고 있는 모습들이 참 이색적이었다. 그렇게 비좁은 길들을
헤치고 난생처음 들어가 본 외국극장! 중국의 젊은이들이 가득 찬 객석의 느낌은 옛날
내가 자주 가던 삼선교의 동도극장에 앉아있는 듯한 어지러운 느낌을 주었지만 때마침
보게된 영화는 내 평생 두고두고 있지못할 명화였다. 우연히 외국나간지 며칠도 안되
어 처음 들어가 본 영화, 중국어자막이 밑에 깔리는 것도 매우 이색적이었지만 나는
곧 그 영상속에 무아지경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목은 바로 "피들러 온 더 루프"라는 이
름의, 러시아 다이애스포라에서 사는 유대인의 애환서린 파란만장한 가족사를 그린 작
품이었다. 우리시대의 많은 사람이 이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기억할 것이다. 사실 나
는 지금 이 작품의 스토리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70세기 영화사상 그 찬란한
이름이 빠질 수 없는 뮤지컬 명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자봉틀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뼈빠지게 고생하던 딸 사위! 자봉틀을 사서 손으로 굴리는 그 바퀴가 돌아갈 때 감격
의 눈물을 흘리던 그들이 기억난다. 하나 둘씩 사랑하던 자식들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떠나간다. 어느 장면에선가 막내까지 결흔식을 올리고 난 노부부, 뚱뚱한 부인과
노신사는 환갑이 넘은 자신들의 삶을, 결혼식의 소음이 다 지나간 정적의 공허한 자리
에서 문뜩, 번개같이 회고한다. 그리고 그 노신사는 늙은 아내에게 외친다: "우리는 왜
저 아이들처럼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해 볼 수 없었는가? 우린 과연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를 단 한번이라도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 부인은 소리없이 수줍은 눈물을 떨구
며 고개를 저민다. 나의 희미한 기억속에도 각인되어 남아있는 인상적이었던 이 장면
은 바로 이들의 최초의 사랑의 고백장면이었던 것이다. 그 많은 자식을 낳아 소리없이
키우느라, 손바닥 발바닥이 다 닳도록 쉴새없이 노동하면서 박해를 받아가면서 살아야
했던 그들, 정말, 정말, 깊게 사랑하고 산 그들이었지만 "사랑한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을 해볼 여유가 없이 산 그들이었다. 우리는사랑한다 말해 본 적이 있는가? 사실 우
리 동양인들의 모든 선남자 선여인의 삶은 이렇게 이루어져왔던 것이다.
똥난야시위앤의 어둠과 빛속에서 서로를 훔쳐보며 다소곳이 얼굴을 붉히었던 소저와
도올, 그땐 우린 새악씨였고 총각이었다. 그 소저와 도올이 이제 세 아이를 키웠고 막
내까지 대학에 보내버리고 난 고적한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과연 사랑한다 말해본 적
이 있는가? 과연 사랑한다 말해야 할까?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라는 동양 제일의 지혜의 책 첫
머리는 바로 지붕위의 바이올린과도 같이 사랑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사랑을 사랑
이라 말하면 그 것은 늘 그러한 사랑이 아니다."
여기 "늘 그러한"이라는 말을 많은 노자의 번역자들이 영원불변의라는 말로 잘
못해석한다. 첫장부터 이렇게 노자를 잘못 해석하면 노자의 지혜는 마치 영원불변의
이데아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서양철학이나, 잠정적이고 덧없는 이 세상을 거부하고
천국의 도래를 갈망하는 기독교의 초월주의가 되기가 쉽다. 기독교의 본의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지만 후대의 헬레니즘과의 잘못된 결합으로 결국 서양의 초월주의는
기독교문명의 상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노자는 "항상 그러함"만을 말하지 "불변"을
말하지는 않는다. 동양인들에게는 "불변"이라는 것이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동양인들에게 "영원"(permanence)이란 "변화의 지속"일 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단지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생각이다. 그 생각을
노자는 여기 "말"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도를 도라고 말한다"는 것은 곧 시시각각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도를 변하지 않는
우리의 생각속에 집어넣는다는 뜻이다. 그렇게 생각속에 집어넣어져 버린 도는 항상
그러한 실제의 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불변의 영윈을 추구했다면 동양의
지혜는 변화의 영원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 그 (지붕위의 바이올린) 속에 나온 유대인 노부부는 평생을 항상 늘 그러한 모
습으로 살아왔다. 늘 그러한 변화의 모습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나와 아내가 매일 "아이 러브 유, 허니" 이따위 소리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늘
그러한 감정의 소통의 실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인들의 언어에 대
한 강한 거부감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거부감이 우리의 삶의 지혜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 어느 회사에 강남의 명문고를 나오고 서울대를 우수
하게 나와 입사한, 말을 또박또박 잘하고 모든 것을 명료하게 말로 잘 따지는 사원이
한명 있고, 시꼴 고등학교를 나오고 좀 시시한 대학을 나왔지만 과묵하여 여간해서 입
을 열지 않고, 어른이 핀잔을 주어도 따지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하면서 정확한 판
단력을 지닌 사원이 한명 있다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우리사회의 가치관은 과연 누구
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줄 것인가? 우리는 어른 앞에서 똑똑한 체 잘 따지는 젊은이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이성간의 사랑에 있어서도, 입발림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연발하
는 남자를 여자는 선초하지 않는다. 부부지간에 "아이 러브 유"를 연발해야 한다면 그
들은 곧 이흔소송법정으로 가야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동양의 지혜는 인간의 언어에
대한 깊은 거부감이 있다. 이것은 언어의 명료함을 거부하는 흐리멍팅함이나 모호함을
선호한다는 뜻이 아니다. 언어의 한계를 자각하지 못하는 자는 언어를 참으로 명료하
게 인식할 수 없다함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은 고착화되어버린 이를이 아닐 때만 항
상 그러한 이름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김용옥하면 김용옥이라는 이름
으로 김용옥을 인식한다. 김용옥? 아! 그 한복 입고 머리깎은 사람! 아 그 말 시원하게
하는 사람! 아! 그 특출난 사람! 김용옥은 양복을 입고 있을 수도 있고 머리가 금방 기
를 수도 있다. 시원하게 욕잘하는 것이 아니라 공손하기 그지없고 남 칭찬만 잘 할수
도 있다. 특출난 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평범한 사람일 수도 있다. 김용옥이라는 이름
은 나의 현실이 아닌 그들의 관념인 것이다. 명가명비상명!
이러한 노자의 언어의 거부가 동양문화 전통에서 과학문명의 저해를 가져왔다는 설
이 있는가 하면, 과학문명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상반되는 설이 있다. 자연에 대한 인
간의 그룻된 선입견을 제거시키고 자연의 객관성을 있는 그대로 확보해주었다는
가설이 가능한가 하면, 언어의 저부가 이성의 연역적 체계까지를 거부함으로써 과학언
어의 근원적 가능성을 봉쇄시켰다는 가설이 동시에 가능한 것이다. 그대들은 과연 노
자와 동양문명의 관계는 어떠한 것미었다고 생각하는가? 곰곰이 잘 생각해보라!
이장
천하개지미지쉬미,개지 선지 위 선,고유무상생,난이상생,장단상교,고하상경,음성상화,
전후상수,시이성인처무위지사
두째 가름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추한
것이다. 하늘아래 사람들이 모두 선한 것이 선하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 생하고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
이루며 김과 짧읍은 서로 겨루며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며 앞과 뒤는 서로 따른다. 그러하므로 성인은 함이 없음의 일에처하고
행불언지교,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위이불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이이불거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데 성인은 내가 그를 자라게
한다고 간섭함이 없고 잘 생성시키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 공이 이루어 져도
그 공속에 살지 않는다. 대저 오로지 그 속에 살지 아니 하니 영원히 살리로다
내가 타이빼이에유학하고 있던 시절이었다.다이빼이는 보닛 포르모사, 고산족의 고향
이다. 중국적인냄새라는 것은 대개 모두 에서 쫓겨온 국민당정권이 이주한 후
이 새롭게 지어낸 것이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그 땅의 전통이라 할 것은 별 것이 없었
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고도를 찾는 흥취는 대만땅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의 예외가 있었다. "꾸꽁"이라핀 불리우는
한 건물안에 들어있지만 이 에만 들어가면 중국문화의 향취를 흠뻑 들이킬 수
있다. 부패한 국민당정부가 의 에게 여지없이 깨져
거대한 포기하고 프로모사(포르투갈말로 "아름답다"라는 뜻이다. 1577년
명명)로 이주하면서도 포기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중국의 문화였다. 생각해보라!
호지명에게 쫓겨나는 아수라통의 월남정부가 월남의 고궁박물관을 먼저 옮긴다는 것을
생각할 수나 있는가? 중국고대로부터 청대까지에 이르는 7천여년 동안의 60만점이 넘
는 보물을 장개석정부는 난징으로부터 타이떼이로 먼저 조심스럽게 옮기는 작업을 선
행하고 나서야 비로소 군대를 퇴각시켰던 것이다.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집념의 깊
이를 헤아릴 수가 있다. 오늘날의 타이빼이의 보물컬렉션은 그 대부분이 청나라의
황제가 수집해놓은 것이다.
나는 유학시절 주말에 심심하면 꾸꽁을 가곤 했다. 그곳의 그윽하고 소조한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고품 하나 하나를 눈여겨 보고 있으면 온갖 상상의
실마리들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컬렉션의 격조가 높았다. 그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는 시간 흐르는 것을 몰랐다.
어느 날 나의 시선은 거대하고 웅장한 걸개그림에 멈추어 있었다.
초상화였다. 매우 늠름하면서도 인자한, 그러면서도 섬세한 얼굴이었다. 아! 이 자가
바로 양귀비와의 로맨스를 흩날린 음악의 명인 당명황이란 말인가
그런데 나의 시선에 들어온 그의 모습은 거구였다. 물론 황제의 초상화가 대강
거대하게 보이도록 그리는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하여튼 거구였다. 이 거구의
사나이와 그토록 애달픈 사연의 로맨스를 남긴 양귀비는 과연 어떤 미녀였을까?
요즈음 미녀라라 하면, 호리호리하기 이를 데 없는 가냘픈 몸매에 깊은 눈매 오똑
선 콧등을 생각한다. 꽃으로 비하면 의 이라 할까? 그러나 나라는
모든 것이 성대한 것이 기준이었다. 그 심볼이 이란 모란이었다. 함박꽃과
같은 푸짐한 여인의 모습이야말로 나라 여인의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다. 양귀비는
요새 기준으로 말하면 "똥보"였다. "뚱보"라는 너무 흑독한 표현을 쓰지 않아도 매우
통통한 볼륨이 있는 여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 거구의 당명황과 로맨스를 즐길
정도라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요새같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깨질 듯
바스락거리는 몸매로는, 정감의 소통이 어려웠을 것이다. 당나라의 감성적인 시인
당명황는 양가녀가 처음 을 만나기 위해 발탁되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싸늘한 기운 가시지 않은 따사로운 봄볕에 찬란한 여산의 온천 화청지에서 몸을
씻기웠네 따스한 온천물 그 기름진 하이얀 살갓을 스치며 미끄러지네.
여기 라는 표현 속에서 우리는 포퐁통한 하이얀 뚱보의 몸매를 연상할 수
있다. 이렇게 시작한 그 아름다운 남녀이야기도 전쟁에 쉽싸인 피묻은 티끌로
끝나버리고 말았지...그 비극적 망외역의 장면을 우리의 천재시인 (러티엔)은 다음과
같이 읊고 있다.
육군이 모두 말을 안들으니 황제인들 어떨소냐? 아 그 아릿다운여인의 눈매 이러저
리 비틀거리며 군마 발굽 속으로 쓰러져 갔네 꽃다운 머리장식 흙바람 속에 흩날려도
아무도 주울생각 하지않고, 취옥의 푸른날개 금동이 참새, 옥비녀 즐비하게 아아 군왕
은 얼굴을 가리우고 어쩔줄을 몰라 고개를 돌려 그녀의 최후으 시선이 맞닿을 때 끝까
지 남몰래 피눈물이 서로 흘러내렸지.
중국의 고전에서는 천하의 미녀로서 마오치앙과 시스를 꼽는다 그런데 이 서시라는
미녀는 바로 오월동주(료괌띠춘)의 주인공, 월나라의 왕 곽천이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헌상한 여인이었다. 구천은 오왕 부차로 하여금 이 여자에 넋을 잃고 국정을 태만케
한 것이다. 결국 이 미인계로 오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경국지색(나라
를 기울게 하리만큼의 아름다움)이라는 말도 생겨난 것이다. 혹설에 의하면 서시는 시
골의 나뭇꾼의 딸이었는데, 그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택하여, 꼭 (마이 페어 래이디)에
서 오드리 햅번을 훈련시키듯, 3년 동안, 피부를 가꾸게 하고, 고상한 말을 가르치고,
우아하게 걷는 것을 가르치어 그러한 천하의 미녀로 둔갑 시켜 진상했다는 것이다. 부
차는 진실로 서시를 사랑했을 것이다. 부차는 죽을 때 서시를 물에 빠트려 황천길에도
같이 데리고 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런데 이것은 주앙쯔가 꾸며낸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또 이러한 이야기가 전한
다. 서시가 예뻤던 것은 바로 그녀가 폐병장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장자는 "가슴을
있다)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아마도 이것은 요새 말로 튜버클로시스 즉
결핵증세에 가까운 것이었을 것이다. 사실 폐병을 앓는 여자는 예쁘기로 유명하다.
가냘프고 창백하며 항상 애수를 띠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시는 항상 가슴에 손을 대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시봉심"이라는 고사가 생겨나게
된것이다. 따라서 당대의 모든 미녀의 표준은 가슴에 손을 얹고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추한 여자들까지 모두 서시흉내를 낸다고 그 못생긴
얼굴에다가 또 얼굴까지 찡그리게 되니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추한 꼴을 보기가
괴로와 모두 달아났다는 코믹한 얘기들이 전한다. ,농교반갈(예쁜 흉내 내려다가 더
추하게 된다)
이러한 얘기들은 모두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인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야기시킨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시나 모장.
여희와 같은 미녀들, 아마도 요즈음 인기가 높다 하는 탤런트, 김희선과 같은
미녀들일까? 하여튼 이런 미녀들이 길거리를 걸어가면, 사람들이 졸졸졸졸 그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 그런데 이 미녀들이 물가에 가면, 고기는 놀라 물속깊이
숨어버리고, 새는 팔짝 날개를 휘젓으며 창공으로 높이 나르고, 사슴은 보자마자 사
생결단 죽으라고 도망간다. 과연 무엇이 천하의 정색이란 말인가.
고갱(Paul Gauguin, 1778~1703)이 그린 타히티의 여인들,그 투박하고 무뜩뜩한 남
태평양 섬의 여인들, 두터운 입술, 검은 얼굴에 무수통 같은 정강이에 퉁명스럽게 삐져
나온 마당발...참으로 못생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겠지만 그의 붉은 색조와 함께 발
하는 아름다움의 마력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맨하탄의 늘씬한 서구의 여인
들이 그 고갱의 그림 앞에서 자신들의 아름다움의 초라함을 탄식하고 있다면 과연 무
엇이 천하의 정색이란 말인가?
아름다움에 관한 인간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아름다움을 인간 외적 사물의 모습의
문제로 보는 객관주의와 아름다움의 인간 내적, 즉 인간이 사물을 인식하는 인식의 구
조에 내장되어 있는 그 무엇으로 파악하는 주관주의(subjectivism)로 크게 대별할수 있
다. 그런데 서양은 희랍인들의 탁월한 미의 인식아래 객관주의적 전통을 고수하였다.
그들은 아름다움이 어떤 이상적, 이데아적 형상에 있다고 보고, 그 형상의 비율을 찾으
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동양은 이미 노자이래 고대로부터 객관주의적 미의 인식을아
P 포기하였던 것 같다. 그래서 고대의 벽화로부터 그러한 이성적 비율의 추구가 나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그러한 객관주의적 저농은 칸트의 미하에 오면서 비로소 주관주
의적 전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리고 19세기를 거쳐 20세기에 이르면 미에 대한 다
i양한 생각들이 꽃을 피운다. 그것이 곧 서양미술사의 다양한 사조들로 나타나는 것이
다.
노자는 말한다. "천하의 kfka들이 아름다움의 아름다움됨만을 안다. 그런데 그 아름
다움이 추함일수 있는 것이다." 최소한 기원전 4.5세기 이전에 이러한 철학적 주제가
이미 충분히 논의 되고 있었다는 것은 츰으로 놀라운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실제로
서양에서는 컨트미학의 전향을 거쳐 19.20세기에나 이루어지는 최근세의 논의들이기
때문이다.
노자의 언어는 경이롭다. 노자는 붓의 상대어로서 "추"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붓의
상대어는 .오인 것이다 충국 고대어에서는 풍을 모두 요새 우리가 생각하는 "악"으로
읽어서는 아니된다. 악은 악이 아니라 오인 것이다. 오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싫
음"이요, "추함"이다. 미의 반대는 오요, 그 것은 "싫음"이요, "추함"이다. 다시 말해서 "
악"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악은 악의 실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우리에게 "싫은" 어떤 현상이요, 우리에게 "추하게 느껴지는" 현상인 것이
다 왕필은 미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나아가 즐기는 바의 것이요, 봄라는 것은 사람
의 마음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바의 것이다. 이것은 서구라파의 윤리사상에서 20세기에
나 다루게 되는 이모티비즘(emotivism)의 선구를 이루는 것이다. 실로 우리는 동양인
들의 사유의 깊이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금치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자는 아름다움의 논의를 단지 미학적 가치로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
라, 인간의 모든 가치론의 일반적 기저로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미의 문제는
미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2장에서 " 이 동일한 문맥
에서 병치되고 있는 이유인 것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과연 선은 존재하는가? 선이 존재한다면 선의 상대(반대)인 악이
존재하는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악은 악이 아니라 오라고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선이 존재한단 말인가? 악이 "오"로서 선의 상대어일 뿐이며, "악"은
근원적으로 존재할 자리가 없다면, 과연 선의 상대 개념으로서의 우리가 쓰고 있는
"악"에 해당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재미난 질문에 노자는 매우 현명한 답안을 내리고
있다. 그것은 불선
그렇다면 "불선"이란 무엇인가? 불선이란 "선이 아닌 것"이다. 선이 아닌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산이 아닌 그 무엇이 실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A에 대하여 B가 있다는 것과, A에 대하여 X라는 불규정자는 A가 아니라는 것과는
전혀 맥락이 다른 것이다. 철수에 대하여, 철수가 아닌 것이라는 것이, 곧 복동이를 의
미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선에 대하여 악이 있다는 것, 선과 악이 실체로서 동시적으
로 공존한다는 것은, 현재 우리의 서양언어화된 개념적 틀속에서는 사실적 기능을 가
지고 있다. 누구든지 선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옛말에는 이러한 식의 대답이 나올 수가 없었다. 이것은 모두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겨난 번역언어의 장난이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선의
반대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악이라고 대답하지 알았다. 그들은 그냥 "선하지 못함"이라
고 대답했던 것이다
선인에 대하여 악인이 있고, 선행에 대하여 악행이 있고, 선신에 대하여 악신이 있
고, 천사에 대하여 악마가 있고, 빛에 대하여 어둠이 있고, 창조에 대하여 종말이 있는
것은 모두 헤브라이즘의 전통속에서 나온 특이한 발상이다. 이 특이한 발상이 과학주
의와 더불어 20세기 인류의 보편적 사유방식으로 왜곡되어 정착된 것이, 바로 인류 70
세기의 발전이요 불행인 것이다. 인류치 21세기는 바로 다시 19세기 이전의 노자로 되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인간을 "악인"으로 바라보는 것과, "선하지 못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은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한 인간이 악인이 보면 그 인간은 악의 화신으로서 악의 실체가 되어 버
리기 때문에 개전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선하지 못한 인간"은 항상 선하게될 수 있는
것이다.
선에 대하여 악을 설정한다는 것과, 선에 대하여 불선을 설정한다는 것은 논점이 악
과 불선의 차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선 자체를 바라보는 생각이 전혀 다르다
는데 그 논의의 핵심이 있는 것이다. 악에 대한 선은 선 자체가 악처럼 실체화되어있
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불선에 대한 선은 선 자체가 불선처럼 실체화되어 있
지 않은 것이다.
선이란 무엇인가? 노자는 선을 먼저 말하지 않았다. 노자는 미를 말했을 뿐이다. 다
시 말해서 노자이게 있어서 선이란 미의 연장적 개념일 뿐이다. 즉 선은 미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선이 실체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선은 곧 미라 말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 선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천학문)식으로 선에 훈을 달때, "선" 이런 식으로
선을 실체화시키지 알는다. 보통 "착할 선," 이렇게 말하지만 착하다는 것은 인간의
행위에 관련된 가치판단이며, 그것은 에 성립한 이다. 중종조에 나온
를 보면 선은 "도할선"이라 을 달았다. 즉 "좋을 선"인 것이다. 선은
"좋음"인 것이다. 좋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감정의 일반상태와 관련된 것이다. 선은
인간에게서 "좋음"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에 악은
뭐라 훈을 달았나 찾아볼까? "모딜 악"이라 했고 그 뜻을 "염"이라 하였다. 즉 싫음인
것이다. .악이란 "모진 것" 이다. 모질다는 것은 콜지 않음인 것이다. 그 앞에 여를
훈하여, "됴할 호"라고 했다. 그리고 그 뜻을 "미지"라고 했다. 미라는 것은 곧
좋아함인 것이다 여기 17세기초의 한국인 석학, 최세진과 중국 삼국시대의 천재소년
왕필과의 놀라운 사유방식의 일치를 우리는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왕필은 뭐라
말했던가? 미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나아가 좋아하는 바의 것이다. 미는 곧 여요,
곧 선이다. 악은 모짐이요 싫음이요 곧 불선이다. 그것은 단지 "좋지 않음"인 것이다.
현재 인간세에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악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행위에 관
련된 것이다. 들판에 핀 백합꽃과 독초를 놓고 선 악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
면 인간의 행위에 관한 모든 악은 사실 알고 보면 악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싫어하는, 즉 좋아하지 아니하는 행위들일 뿐인 것이다. 그것을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
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선의 미로 환원될수 있는 인간의 가치에 불과한 것이다. 여자가
예쁘다는 다는 것은 선일수 있다. 러나 여자가 못생겼다고 악일 수는 없다. 악은 상
식적으로 인간에게 부정적인 가치이지만, 못생김이나 추함은 그 나름대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가치일 수 있는 것이다. 고갱의 그림속에서 추가 곧 아름다움일
수 있는 것처림, 추는 항상 긍정적인 가치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에 대하여
불선도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가치일 수 있는 것이다. 윤리적 악은 없다. 윤리적인 불선
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운리적인 불선은 심리적인 불선처렁 긍정적인 가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기서 노자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인간의 가치언어가
도의 실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이미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닌 것이다. 즉 미다 악다, 선이다. 불선이다.하는 것이, 모두 이미 말해버린 도
인 것이다. 그것은 즌재의 실상이 아닌 것인다. 따라서 노자는 화해를 요청한다. 미와
악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것은 실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다. 선이 불선과
대립하는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에 있어서는 양자는 전혀 대립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서로 생하고, 어려움과 쉬움이 서로 이루며, 김과 짧음이
서로 겨루며, 높음과 낮음이 서로 기울며, 앞과 뒤가 서로 따르는 것처럼, 단지 인간의
상대적인 즉 방편적인 개념구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단상교"라는 말은 그 말을 뒤
집어 번역하면, 장과 단이 실체적으로 먼저 존재하고 그 양자가 서로 비교된다는 뜻이
아니라, 장과 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로 비교될 때만이 상대적으로 파생되는 방편개
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장은 단과 비교될때만이 장이며, 그것이 사장한것과 비교될
때는 오히려 단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장이 곧 단이고, 단이 곧 장이므로 장과
단은 오직 상교의 관계에만 있는 방편적 설정이지, 절대적 설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무,장.단,고.하바로 이러한 이분적 상이성이 곧 우리 언어의 본질이다. 언어는
(bifurcation)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분리 이후의 사태는 한 표
사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별적 언어만이 에 접근하는 인간의 유일한 통
로라는데, 인간존재의 파라독스가 있는 것이다. 언어는 끊임없이 유동적인 존재를 고착
시킨다. 가도지도는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닌 것이다. 장과 단은 단지 상반되는데서만 발
생할수 있는 상대적인 가변적인 방편임에도 불구하고, 장은 장으로서만 자기동일성을
주장하고, 단은 단으로서만 자기동일성을 주장한다. 이것이 곧 언어의 비극인 것이다.
곧 언어의 비극인 것이다.
인간과 신은 마찬가지로 서로 인식되는 관계에서만 생겨나는 상대적 개념임에도 불
구하고, 인간은 인간으로서만 자기동일성을 주장하고 신은 신으로서만 자기동일성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신은 절대적인 권위자가 되어버리고 불완전한 인간은 그 권위에
복속하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도대체 인간없는 신이 뭐 말라빠진 명태 대가리 만큼이
라도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인간이 없는 저 황량한 숙음의 벌판에 서있는 하나님이 뭔
말라빠진 허수아비란 말인가? 도대체 신없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일까? 신과 인간은 이와같이 언어적 관계로 표상되는 어떤 뿐인 것이
다. 그런데 우리는 신을 신으로 고착시키려 하고, 인간을 인간으로 고착시키려 한다.
유와 무가 하고 하고, 것처럼, 인간과 신도 서로
길 생성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다면 인간 또한 신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언어외 고착성과 분별성, 그리고 실체성을 전제로 할 때, 우리 인간은 언어야말로 도
를 표현하는 가장 불완전한 도구임을 자각 해야하는 것이다. 도를 도라고 말하면 도가
아니요,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이라 말하면 그것은 이미 아름다움이 아닌 것이다. 거대한
창공의 화록을 수놓는 그 위대한 일몰의 황혼앞에서 우리는 언어를 상실케 되는 것이
다. "도가도비상도"라 한다면 우리 역시 그러한 산가 되어야만 이상적인 인간이 되는
것일까?
여기 "함이 없음의 일"와 "말이 없음 가르침"의 주어는 "성스러둔 사람"이다.
에는 성인이 성인으로 되어 있고 있는 성인으로 되어 있
다. 이 모두가 같은 음의 다른 인 것이다. 에는 성인이라 되어있다.
이 모두에 공통도니 것은 r 귀 글자인 것이디. 성인이란 한마디로 귀가 밝은 사람이다.
성인이란 노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현세의 지도자이다. 그는 이상적 군주이며 동
시에 노자가 말하는 도를 실천하는 성인이요, 인간으로 말하면 완벽한 도의 구현자다.
다. 그런데 이러한 군주는 성인이요, 성인이란 "귀가 밝은 자"다. 본시 "귀가 밝다"하는
것은 "신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다. 즉 옛날의 제정일치시대에는 신탁의 소리를 듣는
자들 즉 무당이 곧 성인이었던 것이다. 신의 소리를 인간에게 매개하는 자들이 모두 "
성인이었던 것이다. 체브라이즘의 전통에서는 바로 예언자들이 성인이었다. 예수도 물
론 이러한 성인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나 노자의 시대에 오면 그러한 종교적 함의는
탈락되고 철저히 비신화적 개념의 성인이 된다. 노자의 성인은 곧 백성의 소리, 교의
지혜의 소리를 잘 듣고 구현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노자의 일서는 본시 성인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다. 범인의 개인적 수양을
위하여만 쓰여진 책이 아니다. 노자철학은 기본적으로 일종의 사주지학인
것이다.그러나 사주의 의미를 "사회집단의 리더"로 볼 때, 사회는 무한한 층차를
지니므로, 수없는 계층이 수없는 리더들이 있을 수 있다. 노자일서는 바로 그들에게,
모든 리더들에게 리더십을 얻고자 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설파된 지혜의 서인 것이다.
이 성인은 반드시 함이 먼음의 일에 처하고, 말이 없음의 가르침을 헝하여야 하는
것이다.
무위 란 노자학의의 핵심적 사상을 이루는 개념으로 통상 유위와 대비되는 것이다.
무교는 "함이 없음"이다. 그렇다고 무위가 곧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위는 곧 무위이다. 무위의 위는 유위적이고 조작적인 도의 흐름에 배치되는
독특한 행위인 겄이다 그것은 위선적인 헝위이며 거짓적인 헝위이며 독선적인
해위이며 전제를 파악 하지 못하는 부분적인 행위이다. 당연히 모든 사회의 리더는
그러한 조작적인 인간이 되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는 잔 일을 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작은 일에 집착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리더는 자기는 함이 없이
남으로 하여금 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무위인 것이다.
XXXX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말을 내세우지 않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는 자기를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 내가 IMF와 같은 국난을
극복했다고 외치지 않는다. 내가 위대한 리더라고 말로 외치지 않는다. 그는 소리없는
실천의 가르침을 실천할 뿐인 것이다. 말로 자기를 나타낸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자기의 파산을 선고하는 것이다. 내면이 충만한 자들은 말을 앞세우지 않는다. 말 없
이, 물 흐르듯, 그냥 홀러갈 뿐인 것이다.
"만물작언이불사"는 XX XX에 "만물석XX시"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번에 나온
XXXX XX에 만물작언XX로 되어 있다. XX이 XX에근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판본의 일치에 근거하여 왕본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그러나 그 뜻을 깊게 생
각해보면 양자의 텍스트가 의미론적으로 XX한다고도 볼 수 있다. 작과 석은 끝나는 운
미가 공통되고 사와 시는 시작하는 음이 비슷하다. 모두 통가자들인 것이다. "만물시
XXX"는 만물이 생성되어 자라나도, 성인은 그 만물을 시작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이"다음 구문에서는 주어가 바뀐다는 것이다. "불시"의 주어는 성인
이다. "XX"의 X "XX한다.""주재한다,""제어한다"라는 뜻을 갖는다. 즉 앞서서 이끈다는
뜻이다.
전통적인 왕본은 만물작언이불사를 만물이 스스로 지어지는데,성인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백본.간본의 "XXXXXX"를 만물이 스스로 자라나는
데,성인이 주도하지 않는다"라고 번역하면 인위적으로 창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XX
는 상통할수 있다.그러나 왕본의 "불사"보다는 백.간본의 "XX"가 더 명료하다.
도 왕본의 위이불시가 XX XX에는 위이불지야로 되어있고 XX XX에는 위이불시야로
되어있는데, XX에는 위이불지야로 되어있다. 왕본의 XXXX는 "성인은 만물이 잘 되어
가도록 하면서도 그것에 기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통 해석된다. 그러나 XX과 XX XX
의"XXXX"는 매우 명료한 새로운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해 준다. 이때의"지"는 구체적인
지향성, 자기의 행위의 결과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어떤 방향성을 나타낸다. "XXXX"
는 곧 성인의 무위의특질을 나타내는 말이다. 곧 성인은 행위를 하되, 자기의 행위가
어떤 인위적 지향성의 범위내에 갇히도록록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되, 땀에 좁은
뜻을 두지 않는다"정도로 번역하면 될 것이다
재미있게도, 왕본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로서 잘 인용되는 "XXXX"는 XX에도 XX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후대의 첨가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XX은 XX의 공성이불거에
서 공이 빠져 있다. 그리고 "XXXX""XXXX"XXXX"는 세 개의 파라렐리즘을 형성하는 구
문이 되어 마지막의 부위불거야, 시이불거야와 연결되고 있다. 아마도 이 XX의 모숩이
가장 오리지날한 노자 2당의 모습에 근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그리고
갑.을본에는 이 구문이 재미있게도 "XXXXXX"로 되어있다.그 뜻은 대차가 없다.
금세기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럿셀경은 우리나라의 선남선녀들이 일볼세국주의 질
곡속에서 처절하게 독립만세를 부르고 있을 때, 유관순누나가 서대문 쳔형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있을 즈음,북경대학 철학과에서 명강의를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자라는 사상가는 도의 작용을 "소유없는 생산, "자기주장없는 행동", "자기주장없는
없는 발전" 이라는 세 마디로 압축해서 묘사하고 있다 이 말속에서 우리는 사려깊은
중국인들이 자신의 삶의 목표를 바라보는 매우 기본적인 개념의 틀을 끄집어낼수 있
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참으로 우리 서양의 백색인종들이 자신의 삶을 인식하는 가
치의 틀과는 너무도 다른 것이라는 것을 시민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소유, 자기주
장, 지배, 이것은 서망민들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열렬히 추구하는 가치의 전범
이다 이 가치의 전범들을 니이제는 하나의 철학으로 숭고한 듯이 건립하여 놓았다. 그
런리 이 니이럴체 제자들은 독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컷셀이 말하고 있는 "소유없는 생산"은 "XXXX"의 번역이고, "지배없는 발전"
은 "장이부재"의 번역이다.
"XXXX"가 비록 XX에 나오지 않고 있지만 그것은 노자사상을 대변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존재의 최대비극은 바로 자기가 생하는 모든 것을 자기가 소유하려는데
있다. 자식을 낳고도 자식을 "내 자식"라 하여 내가 소유하려 하고, 내가 깨우쳐 얻은
지식은 "내 지식"이라 하여 나만 소유하려고 애쓴다. 내가 애써 만든 단체를 "내 덕분
에 이루어진 단체"라 하여 내가 좌지우지하려 하고, 내가 이룩한 가정을 "내 집"이라
여 그 속에서 왕노릇하려고 애쓴다. 인간의 모든 행태가 이러한 소유의패턴속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물을 보라! 풀한포기도 새로 솟아나게 한 새싹을 헌싹이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낙은 헌싹에 의하여 소유되지 않기 때문에만 또 다시 새싹을 낳을 수 있
는 것이다. 헌싹이 새싹을 소유하면 그 새싹은 끊일없이 생성할 수 있는 길을 차단당
하게 되고 곧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생하되 생한 것ᄋ르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노자사상인 동시에 럿셀경이 말했듯이
우리 동방인의 지혜의 가장 근원적인 패턴이며 삶의 태도다. 후대의 모든 '무소유"를
말하는 불교적 사유가 바로 이 "XXXX"적인 노자사상의 틀 속에서 전개된 것이다.
생하되 생한 결과를 내가 소유하지 않을때, 당연히 지배나 권위나 모든 고착적 가치
가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즉 생은은 끊임없는 생사의 파정임으로 그 과정의 한 시점이
소유되는 순간에 그 자체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이나라 사다. 생은 한 시점
의 창조가 아니다 생은 영속되는 시점의 창조인 것이다. 그러므로 XXXX의 생은 영원
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Life is a PROCESS 생명은 하나의 과정인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은 자기의 공이 이루어져도 그 공속에 거할 수가 없다. 여기 "거"라는 것은 불교용
어로 말하면 "집작"이다. 전에 집착함이 없다. 그러므로 불거(집착하지 않는다)하기 때
문에 오히려 불거(영윈하다)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불거와 불거는 발음상으로 펀
(pun)을 이루고 있.다. 즉 비슷한 발음으로 다른 의미를 중첩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영원하고 싶어서 집착한다. 자기의 공을 세워 그 공을 영원한 고착적인 실체
로 남기고 싶어서, 건물을 남기고 비문을 남기고 동강을 남기고 책을 남기고 온갖 흔
적을 남긴다. 그러나 자기의 공에 집작하는 순간에, 그는 이미 X하는 것이다. 가버리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영원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공속에 거하지 않는 길
이다. 레닌의 동상이 쓰러지고 스탈린의 동상이 깨질 날이 있으리라고 얼마전까지 누
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렇게 어리석은 것이 인간의 업이려니... 한국의 지도자
들이여, 깊이 깨달을지니, 내가 지은 모든 훌륭한 업을 나의 공이라 생각치 말 것이다.
그것이 나의 공이라는 생각이 없을 때만 오직 그대는 영원하리니.
전통적으로 우리가 노자를 이해할 때, 노자사상의 핵심을 담은 부분으로서 왕본 제1
장. 제2장, 제3장을 중시한다. 중국고전은 대개 논어와 같은 어록체가 아니고, 일관된
사상논저 형식을 가지고 있을 때, 제일 앞 장이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는 개괄적 총론
의 역할을 하는 것이 통례이다. 중용의 제1장 속에 중용전체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다
고 말할 수도 있고, 대학의 제 1장속에 대학 전체의 내용이 다들어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장자의 경우도 소요유나 세물론이 그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노자의
경우도 물론 전통적으로 제1장이야말로 노자 전서의 내용을 압축한 총론적 장으로 노
자의 가장 대표적 문장으로 꼽혀왔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로
인하여 크게 수정되지 않으면 아니되게 된것이다. 우선 1773년 겨울에 출사된 XXX에
는 갑.을 본이 모두 XXX이 아니라 XXX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제 1장은
XX끝머리에 붙게 됨으로 꼭 45장 정도의 느낌이 든다.(고본은 오늘과 같은 장의 구분
은 없다). 그러니 그 중요성이 오늘의 1장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것은 뻔한 이치이
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1973년에 출토된 XXXX에는 아예 제1장도, 제3장도
ZZ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XXXX은 그것이 단순한 결락이라고 이라고 볼 수 없는, 그
것 나름대로 정연한 통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제는 심각해진다 XX에는 XX의 제
1장이라고 할 수 있는 XX 제 38장 "상덕부덕"X도 XX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노자사상의 가장 핵심적 중추로서 중새해왔던 1장과 37장이 모두 노자사상의
오리지날만 층대가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제1장의 내용은 우주
론과 인식론에 관계되고, 제7장의 내용은 가치론에, 제3장은 사회정치철학에 관계된다
고 말할 수 있다
XX에는 XX의 제2장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XX발견으로 우리는 이런 가설을 내려
볼 수가 있다. 노자철학의 핵심은 가치론에 있었다. 즉 노자철학의 가장 오리지날한 측
면은 우주의 도에 관한 XXX 사유, 즉 객관적 세계의 궁극적 진리에 관한 포괄적 이해
를 지향한 것익 아니라, 인성에 기초한 가치의 문제, 즉 XX,XX을 추뉴로 하는 인간론
의 소박한 성찰이었다. 그리고 자나친 사회정치철학적 관심도 그의 일차적 관심은 아
니었다. 물론 제2장의 내용이 이미 XX의 원리, 지도자의 가치관을 언급하고 있음으로
치관을 언급하고 있음으로 노자의 고층대의 사상에 이미 사회적 관심이 짙게 깔려있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노자철학의 발전경로는 다음과 같이 도식차할 수 있
을 것이다
사회론,우주른,가치른
XX에 1장.3장이 없다고 해서, 이리 150년 후의 XX에 나타나는 1장.3장의 내용이
XX의 시대에 완벽하게 존재하지 않았다는 가설도 무리가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
은 초본의 전승이 달랐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전국초기고부터 말
기에 이르는 노자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방식의 변화를 노자와 같이 도식화해 볼 수 있
다는 것이다. XX의 노자 이해방식은 지나치게 우주론화 되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는 것이다.
이 장의 첫머리에서 운운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몇마디 내 생각을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로 하는 것은 "시각"을 중심으로 한, 외재하는 사물의 형상에 관한 것이
다. 한 여자를 보고 예쁘다고 하는 것은 대개는 내 시각에 나타나는 감각의 구조상 외
재적 형상이 표상하는 그 무엇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이란 궁극적으로 나의 "
느낌"일 수밖에 없다. 나의 느낌을 떠난 아름다움은 존재말 수 없다. 그런데 나의 "느
낌"은 우선 시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의 느낌(Feeling)은 안.이.비.설.신.의... 시각
으로부터 시작해서,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개념적 인지 무의식적 아라야식까지를 포
괄하는 것이다. 눈으로만 아름답다고 해서 그 아름다운 느낌이 유지될 수는 없다. 그
여자와 같이 밥먹고, 같이 자고, 같이 일상생활하면서 느끼는 느낌은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아름다움은 우리의 느낌의 총체적인 건강속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 것은
나의 소박한 생각이다. 참고하시도록!
그리고 이 제2장에서 제기되었던 윤리적 2원성의 거부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20세
기가 윤리적 2원성성의 세기였다면 나는 21세기는 윤리적 비2원성의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윤리적 선.악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매우 필요한 상식적 가치기준이
다. 그러나 이 상식적 가치기준이 고착화될 때는 인간의 살아있는 현실이 윤리적 선
악의 판단에 예속되고 심지어는 인간 생명 자체의 파멸을 초래한다 윤리적 선.악의 판
단은 인간의 판단중에서 가장 천박한 판단이다. 이러한 판단을 우리는 항상 재고해 보
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악이나 선을 생각해보는 넓은, 포용적인 마
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한사람의 행위를 선과 악으로 구분지을 것이 아니라, 반드시
선과 불선으로 구분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선과 불선은 궁극적으로 아름다움과 추함
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이것이 노자의 지혜의 가르침이다. 모든 종교분쟁
도 내가 믿는 신만이 선신이고 다른 다른 신은 모두 악신이라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믿는 신이 선신이라고 한다면, 다른 신에게도 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
해야한다. 기껏해야 불선의 신밖에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불선의 신이라 해서 곧 악
신은 아니다. 불선의 신일 겨웅 내가 안믿으면 그뿐인 것이다. 그러면 종교분쟁은 일어
나지 않는다. 스비하!
3장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사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 즉무불치
셋째 가름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이 되질않게 할지니, 욕심낼 것을 보이
지 말라. 백성들의 마음으로 혀여금 어지럽지 않게 할지니. 그러하므로 성인의 다스림
은 그 마음을 비워 그 배를 채우게 하고, 그뜻을 부드럽게 하여 그뼈를 강하게 한다.
항상 백성으로 하여금 앎이 없게 하고 욕심이 없게 한다. 대저 지혜롭다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한다고 하지 못하게한다. 함이 없음을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음
이없으니.
21세기 인류 정치사를 특징지우는 가장 거대한 이벤트는 뭐니뭐니해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요, 공산사회와 민주사회의 대립이라고 흔히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21세기를 특징지우는 인류 정치사의 현실은 무엇이 될 것인가.
그런데 우리는 공산주의가 거의 소멸되어 버린 지금의 상황에서 진정으로 물어야 할
것은, 과연 20세기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의 세기였냐는 것이다. 과연 인류는
그러한 대립의구조속에서 살았던 것인가? 막스와 예수라는 두 유대인은 좌.우의 진영
에서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인가? 과연 소련이라는 강대국과 미국이라는 강대국
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빌해서 철의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이 꿈인지를 알지 못한다. 깨었을때 비로소 꿈이 꿈이었
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장자의 지혜로운 말이다. 그런데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의 깨어 있는 현실이 또 하나의 꿈이라는 것을
모를 수도 있다 또 하나의 새로운 깸이 올 적에 비로소 나의 현실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다. 대X이 오면 나의 깨어 있는 현실이 또 하나의 XX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원적 대립이라는 것은 하나의 현실이 아닌 꿈이었을 수도
있다 소련 즉 러시아는 도무지 역사가 일천하고, 역사적으로 아주 미개한 후진국이었
을 뿐아니라, 재정이나 기술이나 도덕.문화의 자체 축적이 상대적으로 빈곤한 나라였
다. 우리나라의 최근세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아라사는 일본의 전함과도 대항키 힘든,
로일전쟁에서 이미 게임도 안되는 참패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매우 빈곤한 나
라였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러한 수준의 나라가 어떻게 갑자기 세계 초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푸쉬킨이나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도 같은 위대한 문호가 몇
명 나왔다고 대답될 수 있는 문제일까? 과연 진실로 그토록 초강대국이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레이건-바오로교황인 바웬사-고르바쵸프를 조정하여 하루아침에 그 거대한 공
산세계를 무너뜨릴 수 있으며, 비록 그러한 XX의 변화가 왔다고 할지라도 어떻게 엊그
제까지 세계최강의 초강대국이 하루아침에 그토륵 못먹고, 남대문시장에까지 와서 빌
어먹는 비루먹은 사람들이 되었을까? 이렇게 명백한 현상들을 분석해볼 때, 우리의 해
답은 너무도 명료하다. 소련은 하나의 픽션이었던 것이다. 막스형님은 유려한 문체를
구사하는 털보아저씨에 불과했던 것이다. 철의 장막은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모종의 요구에 의하여 잠시 둘러헉졌던 병풍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것은 세계무대의
한 공연세트였던 것이다. 이 공연의 제작자.연출자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자국의 체제
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 놓은 픽션이 소련이었다는 것은 오늘날 정치학도들의 상식
이다. 다시 말해서 냉혹하게 분석하자면, 우리가 살았던 20세기는 자본주의와 공산주
의가 대립했던 적은 없다. 자본주의만 있었고, 자본주의의 존재양식의 다양한 한 방편
의 형태로서 공산주의라는 경제체제가 존재했을 뿐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연
이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하나의 주의로서, 20세기에 공산주의와 대립하여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집단이 자연발생시키는 시장의 구조에 내장되어 있는 하나의
유통체계일 뿐이다 그것이 산업혁명의 대량생산이라는 특수한 양식을 거치면서 우리에
게 특수한 것인냥 확대 해석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역사와 같이 내려온 것이며,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하는 인성(Human Nature)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것
이다. 따라서 2500년전 노자도 우리와 똑같이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를 내리며, 자본주의를 어떻게 제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
이다. 노자가 말하는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노자는 요새의 경제학자들처럼 매우 복잡
한 수량적 이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노자의 경제분석은 더 진솔하고 쉽게 우리
의 마음에 와 닿는다.
노자는 자본주의를 "인간의 욕망을 자극시키는 재화의 유통"이라고 규정한다 노자는
여기서 분명히 "화"라는 표현을 쓰고있다. 고어에서 "화"는 "곡"과 대비되는 단어며 그
것은 분명 도시산업구조에서 발생되는 상품(Goods)을 의미한다. "곡"은 농경사회에서
자급자족 가능한 곡식의 생산이다. 그런데 이 화의 세계는 "X"이라는 근원적인 모랄의
구조속에서 틀지워져있다고 갈파한라. "X"이란 인간에게 보다 많은 상품의 구매를
자극하게 만드는 인센티브의 경쟁적 생산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경쟁심리를 자극한
다. 노자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얻기 어려운 재
화의 품귀현상을 조장하는 방법이라고 갈파한다. XXXX를 끊임없이 X하게 만들어 인간
을 경쟁구조속으조 집어넣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끊임없는 상품의 생산을 재촉한다.
자본주의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욕심이 날 만한 상품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마음을
설레이게 만들고 한군데 안주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 전 국민을 도둑놈으로
만든다고 한다. 자본주의 체제내의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이윤의 추구를 위해서는
다 같이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개 인간을 자본주의의 경쟁체계로 휘몰아
넣는 방법은 문화적으로도 위대한 사람들의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우상을 향해 모든
사란들이 경쟁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이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하고, 인간이 더 많
은 지식을 추구하려 하고, 인간이 더 높은 지위를 획득하려 하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더 고매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모든 문화적 분위기가, 자본주의적 경쟁체제
를 조장케 만드는 첩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
하는 분위기를 유지한다. 간디와 같은 성자를, 에이브라함 링컨과 같은 인권의 수호자
를, 케네디와 같은 멋있는 대통령을,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를 숭상케 만든다. 이러
한 문화적 분위기가 없으면 자본주의는 인센티브의 끊임없는 생산에 실패한다고 한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자를 숭상케 한다는 것 자체가 그러한 가치관으로 인하여 자본
과 관련된 엄청난 산업구조가 태동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시 "E=MC2"을 몰라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E=MC2" 을 앓으로써 우주를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
게 되고, 원자폭탄을 만들게 되고, 물리학과가 생겨나고, 대단한 과학교육의 열기가 생
겨나고, 나사와 같은 엄청난 기관이 생겨나고, 스페이스를 탐색하는 엄청난 예산과 부
대산업들이 생겨난다. 훌륭한 사람을 숭상한다 하는 것은 곧 이러한 자본주의적 문명
전체의 구조란 유기적 '관련을 맺핀 있는 것이다.
현인을 숭상치 않으면 백성이 다투지 아니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만들지
않으면 백성이 도둑이 되지 아니하고,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
이 어지럽지 않게된다라는 이 세 마디의 언급속에서 노자는 인간의 사회제도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인 자본주의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의 인센티브에 기초한 인간사회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노자는
그것을 본연의 그 모습대로 시인하기만하는가? 물론 그럴 수는 없다. 노자가 말하려는
것은 본연에 대한 '시연"이다. 공산주의라는 것도 70세기에 인류가 자본주의라는
본연에 대하여 시도한 하나의 X연이다. 자본주의가 인류의 현실적 모습이라고 한다면
공산주의는 인류가 실현해야 할 이상적 모습으로 제시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가
유욕의 현실이었다면 공산주의는 무욕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항상 X연은
시연.본연앞에 무기력하다. 그것은 1세기의 좌절로 끝나버렸던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자본주의의 자기갱생의 한 방편으로서의 안티테제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사회.경제체제에 대하여, 노자는 국가의 개입을 원하는가, 완전한 방임을 원하는가?
이에 대한 노자의 입장은 매우 복잡하다. 일단 노자의 정치철학은 철저한 자연주의, 즉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 맡긴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취함으로, 외면적으로는 제도의
개입이 없는 무정부적 방임추뜩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3장의 분석은 우리에게
그렇게 간단한 해답만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유위라는 것은 이미 인간세에 엄존하는 죄악이다. 그러나 유위에 대하여 무위를
제시한다고 하는 것이, 단순한 방임의 수단으로 인하여 유위가 무위로 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않는다. 다시 말해서 유위를 무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가
없이는 유위의 치달음을 억제할 길은 넓다. 물론 노자는 유위를 무위화시키는 또
하나의 유위적 방법론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자)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억제의 방법론의 전제를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위가 저지르는 문제를 우리는 유위적 방법에 의하여 다 해결할 수는 없다. 그것은
유위의 악순환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라는 유위를 헤결하는 방법이 공산주의라는
또 하나의 유위일수는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제도적 문제를 공산주의라는 제도로
대치시키려고만 했다는데 사회주의 진영의 크나 큰 실패가 있었다. 막스는 인간의
유위적 욕망의 세계를 분석하는데만 주력했지, 그 욕망을 지어내고 있는 인간성 고
자체의 심연의 분석이 없었다. 욕망의 구체적 실현으로 나타나는 "노동"의 긍정과, 그
노동의 가치적 분배, 그것을 보장하는 제도적 개혁만을 생각했다. 맑스비게는 제도론만
있었고, 인성론이 없었다. 유인의 긍정의 다른 양식만이 존재했고, 유위의 본질적인
부정 즉 무위론이 없었다. 이것이 막스와 노자가 크게 다른 점이다.
노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방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본 장에서 (성인의 다스림),
즉 국가의 개입을 명백히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국가의 개입은 제도적
개입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연에 대한 재인식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X의
현실로만 치닫는 것, 인간의 욕망의 극대화라는 경향성은, 본래적인 본연이 아니라
문명이 장난질 쳐놓은 왜곡된 본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위에 대한
무위가 더 인간의 본연의 모습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새로운 인식 그러한 사고의
회전이, 우리는 노자에게서 요청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노자는
XX을 말하고, XXX을 말하고, XX를 말하고, XX을 말한다. 그것은 성인지X의
임페라티브인 것이다.
이것은 곧 인간세의 자본주의적 경향성 그 자체의 제도적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경향성에 역행하는 방향에서 국가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가 왜곡된 인간의 본연이라고 한다면 자본주의와 공존하는
인간의 모든 문화는 비자본주의적 인간의 본연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명력을 가지려면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인간세의 문화가 비자본주의적이어야
한다는 역설을 노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극대하시킨다.
그러나 욕망에 대한 포지티브 피드백은 인간 자체의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욕망에
대한 피드백은 반드시 네가티브해아 하는 것이다. 자볼주의는 문명을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이다. 문명은 결국 인간의 나태와 안락을 위한 것이다.그런데 인간의
문명은 반드시 반문명적 문화의 역설을 지닐 때 만이 지속성을 지닐 수 있다
불견하X! 욕심낼 만한 것을 보여주지 말라! 욕심낼 것을 계속 보여주는 것만이
우리는 자본주의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욕심낼 것만을 끊임없이 생산하는 악순환은
결국 자본의 파괴와 자연의 파괴와 인간의 파괴를 가져온다. 그러한 인센티브를
억제하는 방향에서 국가의 개입, 즉 성인의 다스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비극은 이미 "도가도비상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인간은 하도지도의 언어로
진입하면서 이미 문명으로 진입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본성을 왜곡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인의 다스림은 이러한 왜곡을 다시 역으로 해X시키려 하는 것이다.
견가X의 현실에 대해 성인의 다스림은, 우리의 자손들의 교육이 불견가X의 반문명적
역행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나태와 안락을
최소화시키는 반문명의 문화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 모든
교육의 모랄은 철저히 비자본주의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XXX.XX의 교육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라고 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문화마저 자본에 종속시킨다먼
그것은 인간의 파멸을 가져을 뿐이며,자본의 해체만을 가져올 이다 비자본주적
인간의 본연의 보존만이 자본의 축적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교육마저 자본주의적 X의
효율을 위한 모랄에만 종속된다면 그 사회는 건강한 자본의 싸이클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이상적 정치)은 그 마음을 비워(허기심) 그 배를 채워주고,
그 뜻을 약하게 하여 그 뼈를 강하게 해준다. 여기서 심이란 인간의 자율신경계의
모든 복잡한 이론을 말한다. 배은 인간의 자율신경계의 상징이다. 자율신경계의 특징은
"스스로 그러함"이다. 그것은 곧 "자연"이다. 그것은 곧 무위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뜻이란 간사한 것이다. 이랬다 저랬다 마음먹기에 따라 제멋대로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뼈는 우리의 사유가 쉽사리 먹히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몸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것이면서도 말이 없고, 생각이 없다. 그것은
묵묵히 바윗덩어리처럼 거기 있을 뿐이다. 인간의 뜻이란 쓸데없는 일을 벌리기
좋아한다. 욕망의 지향성에 따라 많은 유위의 세계를 지어낸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뼈를 갉아먹기만 하는 피곤일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뜻 있는 일을 했다"고
하는 많은 자위감은, 때로는 하잘 것 없는 유위적 문명의 장난의 한 굴레일 수도 있다.
네 뜻을 약하게 하고 네 뼈를 강하게 해라! 꾀 그렇게 바보스럽게 마음을 가득 채울
생각만 하느뇨? 마음일랑랑 비우고 때나 채우려므나! 불행한 소크라테스가 행복한
돼지보다 낫다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인 상념이다. 그러나 노자는 그러한 상념에
브레이크를 건다. 마음을 비우고 네 배때기나 불려라! 생각없이, 배때기나 불리는
인간이 노자의 사상은 아니다.그러나 과연 소크라테스의 불행이 진정 우리 문명을
위하여 필요한 불행인가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재고가 요청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배로 산다! 이것은 우리의 통념을 깨는 노자의 지혜다.
그리고 이것은 뇌중심의 서양인체해부학에 대하여 오장육부 복부중심의 한의학적
인간학의 지혜로운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요청하는 것이다.
항강 백성으로 하여금 무지 무욕하게 하라! XXXXXXX! 이 노자의 한 마디를 내가
처음 들은 것은 1779년 안암동의 강의실에서 였다. 아주 가냘프게 이를 데 없는
자그마한 선생님, 소근소근 귓속말씀 하시듯 잔잔하게 미소짓는, 우리시대의 노X의
석학, 김경탁선생님의 강의속에서 였다. 왜 위대한 통치자인 성인은 백성을 무지하게
만들고, 뭇 사람을 무욕하게 만드는가? 얼핏 어린 소년인 나에게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렇지만 그 언어의 과격성과 그 신랄한 역설은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파고
들었다. 나는 지금 유식해질려고, 유식해질려고 이 노자 정천언을 공부하고 있거늘,
내가 공부하고 있는 노자선생님께서는 나를 무지스럽게 만들려 하신다. 뭔가 해결되지
않는 숙제가 남았지만 통쾌하고 장쾌했다! 백성을 무지하게 만들고, 무욕하게 만들라!
이 한 마디 때문에 유가사상가들은 노자 일서를 우민정책의 이단서로 휘몰았다. 이 한
마디 때문에 노자는 XX의 X서가 된 것이다. 어떻게 성인이 백성을 무지스럽게 만든 단
말인가?
여기 내가 대학교 때 노자 일서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평생을 지키게 된 습관을
하나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나 도올의 존재의
파라독스요, 가려움이다.나는 평생 테레비를 보고 살지 않았다. 나는 평생 신문을
집에서 구독해 보고 살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신문에 글을 쓰고, 그러면서 나는
테레비에 시청률을 끌려는 속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인 나 존재의
기만성인가? 한국사람으로서 한국사회이서 살면서 평소 테리비를 보고 살지 않는다는
것은 얼핏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미션 임파서블처럼 들린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 무지한 가운데도 반세기를 무난히 살아왔다 그러면서도
정보에 어두운 사람이라는 소리는 안들었다
우리 인생은 지금 문명속에 있다 문명은 현재 너무 지나친 정보와 지식의 덩어리다.
문명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인간은 이 물밀 듯 닥쳐오는 정보와 지식에서 소외되면 한
시도 못살 것 같은 착각속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테레비를
집에서 안봐도 시외를 잠깐 나갔다와도, 요즈음은 사방에 테레비가 보인다. 길거리에
달려있는 대형 테레비에 나오는 타이틀만 보아도 모든 정보가 한눈에 압축해서
들어온다. 구태여 집에서 테레비 보느라고 시간쓰고 앉아있을 이유가 없다. 누가
보고서를 썼느니 누가 서류를 훔쳤느니 빼냈느니 북풍미 어쩌니 총풍이 어쩌니
물방울을 다이아가 쌓여 있었느니 달러뭉치가 냉장고에 차있었느니, 신창원이가
신출귀몰 돌아다니고 있느니. 잡혔느니... 이런 정보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시각각
촉각을 곤두세우고 생애의 모든 정력을 기울여 그러한 정보의 일련의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한달만 지나놓고 보면 그것은 단 한 줄의 스치는 이야기도 안되는 내용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전 국민이 한 달동안 그러한 정보의 흐름의 작품 속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보인가? 과연 이것이 지식인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그
많은 지식도, 신문을 한달동안 장악하는 엄청난 정보가 지푸라기 한조각의 가치도
없을 수 있는 것과도 같이, 우리삶에 한오라기 지푸라기의 가치조차도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정보에 대한 무지를 우리는 과연 무위라고 불러야 할까? 내가 무엇인가
딴데 열중했기 때문에 신문을 일년동안 전혀 안번다고 치자! 일년후에 논설위원
한분과 까페에 앉아 한 시간만 잡담을 나누어도 일년 신문의 정보가 다 내 머리속에
들어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가 나에끼 일년 늦게1 입력되었다고 내 인생에
무슨 큰 타격이 있을리도 만무하다. 그리고 더더욱 나보다 더 그런 정보에 둔감하게
살아도 되는 사람들이 소위 우리 백성의 99페센트를 형성한다고 확언해도 큰 무리가
없는 발언이다. 도대체 왜 우리 백성은 이렇게 지식과 정보에 시달려야 하는가?
노자가 말하는 것이 과연 무위일까? 노자가 말하는 것은 무지(Ignoranre)가 아니다.
무식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자의 무지는, 인간이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무관심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불필요한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영혼의 순결함(Purity),
그리과 인격의 소박함, 그리고 생활의 단순함(Simplicity)이다. 순결,소박,단순! 이런
것들을 노자는 "무지무욕"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연이어 말한다 "그놈의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좀 뭘 한다고
덤벼들지 못하게 하라!"(사부지자불감위야). 나는 어쩌다 그 유명하다는 하바드대학을
나왔다. 그런데,하바드대학 동창회에 해당되는 것이 한국에 있다. 하바드 클럽(Harvard
Club)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하바드 클럽속에는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벼라별 잡동사니가 다 들어있다. 학계, 재계, 언론계, 정치계, 법조계, 종교계... 도무지
안들어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묻겠다. 왜 이렇게 벼라별 어중이
떠중이가 다 하바드를 나왔는데 왜 우리나라가 요모냥 요꼴이냐?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녀를 하바드대학에 보내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향학열에 불타있는데,
서울대학 보내지 못해 안달인데... 생각해보라! 우리나라가 과연 하바드대학 나오고
서울대학 나온 사람이 없기 때문에 매일 매일 독직, 오직, 사직 사건이 터지고, IMF가
터지고, 폭력, 테러, 왕따, 강간, 살인, 음흥한 음모 사건이 터지고 또 터진단 말인가?
이것이 도무지 누구의 죄인가? 문명의 죄업을 한번 총체적으로 점검해보자! 지식을
소유했다 하는 사람들(학자), 지혜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 이들이 없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가?'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생긴 문제인가? 우리나라가 과연 무식해서
탈인가? 유식해서 탈인가
17세기 말기쯤만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너무 무지하다고 생각했다. 동양의
학문의 모든 것은 무지의 바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유지를 동경했다.
무지를 탈출해서 유지의 나라로 갈 것을 동경했다. 그것을 우리는 개화라고 불렀다.
어둠을 탈피하여 밝음으로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우리는 개명이라 불렀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의 학문을 배우고, 서양의 종교를 배우고, 서양의 예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학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신앙하고, 자본주의를 가속화시키고,
민주주의를 갈망했다.
이광수의 소설에 깔려있는 정조나, 심훈의 『상록수』를 생각해보라! 우리 개화기의
제비새끼 같은 아동들은 얼마나 지식의 열망속에 불타 있었던가? 사각모에 망또를
걸친 이수일, 심순애와 비극적 사랑을 나누는 이수일이 그 얼마나 동경의
대상이었던가? 그런데 이렇게 열렬한 갈망속에 한세기를 보내고 난 우리 민족이 이제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이켜 보자 ! 우리가 그렇게도 얕보았던 우리 전통사상의 지혜는
우리의 일세기를 근원적으로 반성케하는 21세기적 비젼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20세기가 무지로부터 유지에로의 탈출이었다고 한다면, 노자는 말한다.
우리의 21세기는 유지로부터 무지에로의 탈출이 되어야 한다고. 노자가 과연
우민사상가일까? 무지로부터 유지에로의 탈출이 그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생각해보라!
나 김용옥의 일생을! 유지에의 갈망 때문에 애를 태우며 그 얼마나 많은
어프리케이션을 내고, 그 얼마나 많은 학점과 디플로마를 따야 했는가? 그 얼마나
많은 장학금을 주선해야 했으며 피땀맺힌 향학의 열정적 시간들을 보내야만 했는가?
이런 김용옥이 수천수만명이 모여져서 만들어진 세기가 우리 조선민족의 20세기가
아니었든가? 생각해보자 ! 무지로부터 유지에로의 탈출이 그토록 어려웠다고 한다면,
유지로부터 무지에로의 탈출 또한 그토록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노자의 슬기를
우리는 이 3장을 읽으며 자각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노자 철학의 매우 철저
한 반주지주의적(Anti Intellctualistic) 정조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자의 반주지주의적 정조를 이해하면서 내가 서두에서 말한 21세기 문명의 7대 과제,
인간과 환경의 어울림, 종교와 종교의 어울림, 지식과 삶의 어울림이라는 화해의
주제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화나 개명, 발전이나 진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개화나 진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인 것이다. 직선적 발전을 가능케 하고 있는 원융한
순환의 무한성을 파괴해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후에 나오는 "빔"라는 주제와
관련시켜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제일 마지막 절의 "위무위,XXXX"라는 말은 텍스트의 문제와 더불어 노자사상의
근원적 성격에 관하여 많은 논란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구절이다. 먼저 무위란 문자
그대로 "함이 없음"이다. 그런데 무위라는 동명사구문을 목적어로 받는 본 동사를
보아라! 무엇으로 되어 있나?
함이 없음을 함(위)이라고 하는 매우 이율배반적인 동사로 되어 있다. 함이 없음이란
곧 "함"의 소실인데, 어찌 또 "함이 없음"을 "한다"는 말인가? 논리적으로 보면 함이
없음을 한다는 것은 분명히 형식논리적 모순이다. 그러나 노자가 말하건대 인간의
언어는 형식논리가 아니다. 형식논리는 오로지 수학에만 가능한 것이며, 수학은
과학언어의 방편일 뿐이다. 물리학자가 쓰는 일상언어 조차도 형식논리적으로는
모순투성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를 형식논리화할 수 있다는 20세기의
분석철학(Analytic Philosophy)의 믿음은 컴퓨터 언어의 뼈대를 제공하는데 수단적
가치가 조금 있었을지는 몰라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자격미달의 철학이었을 뿐이다. 분석철학자로 우려가 알고 있는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의미에서 분석철학의 기본 이념을 파괴하고자 했던 장본인이었다.
따라서 노자가 말하는 "함이 없음"이란, 함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명백하게 함의 대상(목적)으로서의 "함이 없음"이다. 무위란 위의의 부정이
아니라 위의 긍정이다. 무위는 인간의 욕망과 분별과 허위의식과 교만의식과 XX의
집착에서 나오는 작은 위 아니라. 그러한 모든 무위를 넘어서는 커다란 위(대위)인
것이다. 그것은 위의 부정으로서의 무위가 아니라, 곧 무적인 위인 것이다. 위가
사라진 순수 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함이 없어야"되는 것이 아니라, "함이
있어야"하는 것이다. 즉 무위를 위해야 하는 것이다.무위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노자는 한순간도 저 푸른 수풀속 암자에서 도를 닦고 앉아 있는 무인의
무위를 말하지 않았다. 노자는 은자의 도가 아닌 현자의 도를 말하며, 피세의 진리가
아닌 적극적 개세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노자는 현실의 혐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다. 무위무! 즉 노자가 말하는 무위는 적극적 위의
대상이다. 그것은 마치 금강경에서 여래가, 이 세계는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세계라 이름할 수 있고, 모든 모습은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모습이라 이름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같다.
여태까지는 "여래섨계비세계 시명세계", "여래설삼십이상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등의
구문을 "이것의 이름이 단지 세계요," "이것후 이름이 단지 상"이라고 하여, 세계와
사을 명언으로서부정한 듯이 잘못 이해하였다. 그러나 금강경의 설법은 이름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요, 이름할 수 있는 것, 이름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이름 이전에 우리의 사유의
전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가 곧 세계가 아니요, 구원이 곧 구원이
아니요, 나의 상이 곧 나의 상이 아니라고 하는 철저한 이상의 부정이다. 그러나
구극적으로 세계는 세계요, 구원은 곧 구원이요, 나는 곧 나인 것이다. 노자의 무위도
함의 기피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적극적인 사회철학이요,
정치철학이요, 구원의 진리며, 처세의 행동이다.
이러한 우리의 논의가 노자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아니라, 노자 자신의 강력한
발언이라는 것은 바로 "위무위"를 조건절로하고 있는 최후의 주절에서 여실하게
증명된다. 위무위! 그다음에 노자는 무어라 말했던가? 무불치
노자는 치(다스림)를 거부하는 철학이 아니요, 곧 치(다스림)의 철학인 것이다.
노자의 철학은 치세의 철학이요, 노자의 무위는 곧 치세의 방편인 것이다. 위무위하면
어떻게 되는가? 무위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무불"은 이중부정이다. 그것은 귿 "다
스려지지 않음이 없다"가 된다. 즉 "함이 없음을 함"은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음"을
위한 것이다.위무위는 피세의 방편이 아니요, 완벽한 치세의 방편인 것이다. 노자의
정치철학의 요점은 곧 무위(함이 없음)를 실천할 때, 그 사회의 지도자와 백성이 다
함께 무위를 실천할 때, 비로소 완벽하게 질서잡힌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치라는 것은
곧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치"는 "란"(어지러움)의 반대말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회를
"다스린다"(치) 하는 것은 곧 그 사회를 "질서있게 함" 즉 "질서지우는 것"이다.
위무위가 소극적 인성의 주장이 아니라 무불치의 적극적 치세의 주장이라는 것은 qkh
이 3장의 마지막 구절에서 명료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구문과 관련하여 재미난 판본의 문제가 있다. 이 7장 마지막
구절과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유명한 "무불란"의 구문이 77장과 48장에 나오고 있다.
37장과 48장의 무불치의 맥락은 뒤에서 다시 상술하겠지만 이미 불불치의논의의
맥락에 따라 우리는 이를 쉽게 해석할수 있다. "도는 항상 함이 없음으로 곧 하지
않음이 없다."(37장) "함이 없음에 이르게 도면 곧 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48장).
3장에는 무위 앞에 위가 있지만 37장,48장에는 위가 없다. 그러나 그 해석은
동일하다. "무위"를 조건절로 본다면 그것은 "함을 하지 않으면"의 뜻이 된다. 함을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함이 없음으로 곧 하지 않음이 없다. "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무엇이든지 다 잘 된다는 뜻이다.
무위와 무불위는는 형식논리적으로 반대의 뜻이지만, 이 반대적 상황은 곧 일치되는
맥락에 놓이게 됨으로써 서로의 뜻을 명료하게 해주고 보강해준다. 무위의 궁극적
존재의의는 무불위라는 것이다. 그것은 위무위가 무불치를 전제로 한 것이라는 우리의
노의의 맥락속에서 쉽게 해결될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1973년 출토된 백서는 현
금본의 체제와 거의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갑.을 X본에 모두,공교롭게도 이
"무위즉무불위" 구문이 빠져 있는 것이다. 37장의 경우는 "도향무명"으로만 되어 있고
48장의 경우는 그 부분이 마모되어 알수가 없게 되어 있다.
고대의 고문자학의 대가인 고명선생은 "X자노자"를 교주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백서 갑.을 두 본의 전면적 교감을 보고 난 후에, 나는 노자의 원본은 단지 "무위"만
말했을 뿐이며, 기껏해야 "무위즉위X불위"를 말했을 뿐, "무위즉무불위"를 말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위즉무불위"의 사상은 본시 노자에서 나온 사상이
아니다. 그것은 전국말기에 출현한 일종의 새로운 관념인 것이다. 이것은 곧 이 시기에
노자의 "무위"사상에 대한 개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이렇게 개조된
노자사상의 단편이 XXXX이나 한비자,려랍,XXX등의 책에 인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명선생의 주장은 노자사상의 오리지날한 층대 속에는 무위사상만
들어있지,무불위의 사상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무위만을 말했지, 무위의 적극적
정치사회철학적 실천의노리인 무불위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XX 제일 첫장인
38장에 나오는 구문을 인용하여 "(XX)무위즉무X위(X)"까지 밖에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위즉무X위"의 "무X'위"는 앞의 "무위"의 내용을 부연하는 종속적 의미밖에는
없다. 즉 무위는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서하는 행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즉 무위의
가치적 고착성을 거부하는 어떤 내용을 설명부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무불위"의
사상은 정치철학적 관심이 증대된 전국말기의 사상가들에 의해 찬입되었거나, XX의
XXXX의 정치사승을 반영하는 후대의 프라고먼트(fragment)일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명의 주장은 XX의 출현이후 매우 강력한 지지를 얻었고, 또 학계에 그러한
노자의 발전경로가 정설로 받안들여지는 그러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XX이 터진 것 이다. 신XX의 출현으로 고증가들의 시세는 치숫았다가 폭락하
고 또 급등하기도 하는 요즘 증권시장의 꼬락서니 같다.
20년후, 1983년, XX초묘가 출토되면서 문제가 되는 ,X서의 부분과 일치되는 현행본
37장과 48장의 XX이 나온 것이다. XXXX에 문제가 되는 37장,48장의 부분이 모두
실려있는 것이다. 자아! 어떻게 되어 있을까? 이렇게 흥미로운 일이 또 있을까?
X서보다 2세기가 앞선 XX자료에 동일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해답은 너무도 명백하지
않는가?
1) 37장은 "도XXXX"로 되어 있어, 그 부분은 오늘의 왕본보다는 X사본에 가깝게
되어있다. 전국중기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무라는 글자는 쓰이지 않았다. 여기서
망은 무로 바꾸어 이해하면 된다. "무"의 고자가 곧 "망"이다. a는 춤춘다는 뜻인
"무"라는 글자를 후대에 가차한 것이다. 그러니까 무라는 글자는 "없다"는 뜻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단지 발음이 같아 빌려온 글짜일 뿐인 것이다. 따라서 고명의의 주장은
37장의 경우 디펜스가 가능하다 그러나 48장은?
2) 47장은 "망XX망불위"로 정확히 오늘날의 왕본과 일치한다.그럼 고명은 어떻게
되었나?
요즈음 세계적으로 노자철학계에서는 고명을 신나게 두드려패는 논문이 난무하고
있다. 한마디로 고명은 똥이 되고 만 것 이다. 고명의 학설은 전혀 디펜스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고명은 누구나 가서 한번 안심하고 때려보는 동네북이 되고
말았다. 요즈음 고명을 타이르는 유행어가 있다: "무엇이 있다거나 긍정하는 설을
세우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이 없다거나부정하는 설을 tdn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까오밍선생! 조심허시게! 사실 새자료를 보고 까오미을 신나게 까는 놈들은 치사하다.
까오밍처럼 새로운 학설을 세우느라고 고심했던 흔적도 없이‥...그러나 48장의 XXXX
는 이미 전국중기의 사실을 제공하는 문헌이므로, 무불위사상이 전국말기의 날조라는
까오밍의 주장은 물론 틀린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위즉무불위의 사상은 노자의 원래
사상의 고층대에 속하는 것이다.
까오밍은 왜 그렇게 틀린 주장을 했을까? 그것은 바로 그가 문자학만을 좁게
천착하거 철학이나 사상을 넓게 섭렵하질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병통인 것이다. 너무
좁게 노자를 축자적으로 바라 본 것것다. XX자료에도 분명히 제3장이 실려았고 그
을본에 "무불치"가 명시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무불치의 사상이 곧 무불치의
사상과 동일한 논리구조라는 것을 인정했어야 했다.무불치만 내가 새기듯이 바르게
생겼어도, 무불치가 노자의 오리지날한 사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는 성립할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너무도 노자사상을 소극적인 무위(함이 없음)의 XXXX으로 좁게
규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자 무위는 무불위의 결과를 수반한다. 아니 무위는 어쩌면
무불위를 지향하는 방편적 무위였을지도 프른다. 노자의 무위는 결코 소극적 은둔이나
피세의 철학이 아니라 적극적 치세의 행동철학이요, 무위의 세계를 무위적으로
개변할려는 혁명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제3장은 앞서 말했듯이 XXXX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ᄐ서본에는 정연히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놀라웁게도, 오늘 우리가 보는 왕본과 XX의 내용은
2천2백녀이라는 엄청난 세월을 갹하고 있음에도 거의 일치한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중국의 고전이 얼마나 정확한 XX의 산물인가하는 경이로운 사실을
말해준다. XX의 출토는 기본적으로 중국 고전의 권위를 높여준 것이다. 그러나 왕본과
XX XX간의 주요한 차이를 여기 한번 샘플로서 제시해 본다.
1) "불상X"이 "불상X상"으로 되어 있다. "현인을 숭상하지 않는다."와 "현인을 높이지
않는다"는 별 차이가 없다. 상과 상은 통한다.
2) "XalstlaqnfX""이 "사민불X"으로 되어 있다. 심이 빠져있다. 후대에 그 뜻을 더
정교롭게 하기 위해 "심"을 첨가한 것 을 알 수 있다. "백성을 어지럽히지 않는다"와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에서 물론 전자의 표현이 더 총체적이고 단순하고
더 문장의 파라렐리즘에 적합하며, 더 고층대의 문헌이라는 것은 쉽게 추론할 수 있다
3) "시부지자불감위야위부위즉무불치"의 구문이 "사부지부감불위이기즉무불치의"로
되어있다. 이거은 좀 해설으 요한다.
우선 "지자"(지혜로운 자"가 "지"라는 한마디로 되어있는것도 흥미롭다. 지는 곧 지자
약칭일 것이다. 그런데 w;질,f "지자:로 바꾼 것은 후대에 "아는자"에 대하여 그 어감의
강도를 높이기 위하여 "지혜로운 자"의 뜻으로 변화를 준 것으로 볼 수도 있고, 또는
별 뜻이 없는 한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왕본의 "지자"는 후대 문헌에서는 불교와
관련하여 "지혜의 부정"이라는 뜻마저 담는 어떤 효과를 자아냈을 것이다. 하여튼
지자보다는 지자가 그 원형임이 틀림이 없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 다음의 구문이다. 만약 우리가 다음 구문을 쭉 붙여
읽으면 "시부지자불감XdnlXX, 즉무불치의"가 될텐데 그러면 그 뜻이 정반대가 된다
"대저 안다고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러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다시 말해서 "XXXX"를 붙여 읽으면 이중부정이
됨으로 "감히 하지 못하게 한다"가 아니라 "감히 하게 한다"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가 없다. 그림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 다음과 같이 끊어 읽는 것이다.
XXXXX,XXXX,XXXXX
대저 안다고 하는 놈들로 하여금 감히 덤비지도 못하게 하고, 뭘 하지도 못하게 할
뿐이다. 그리하면 다스려지지 않음이 없다.
이것이 바로 고문자의 소략함이다.
그런데 XXXX계열의 사람들은 이 구문헤서 "XXXX"를 앞쪽 구문 즉 "XXX"에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뒤의 구문 "XXXXX"에 연결시킨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제적으로 문장은 이렇게 끊어진다.
XXX,XX,XXXX,XXXXX
그리고 "XX"를 "XX"로 바꾸어 이해하면
XXXX,XXXXX
가 될 것이다. 따라서 중간의 "XX"를 빼고 앞에 X를 하나 더 첨가해서 문맥을
명료하게 만들면
XXX,XXXX
가 될것이다.그리고 앞에 "XXX,XX"의 구문이 너무 소략함으로 지에 놈"자"를 하나
더 붙이고, XX의 숨은 뜻인 "X"를 하나 첨가해서 그 문의를 쉽게 서술적으로 풀었을
것이다.그리고문장을 앞에서 종지시키는 어조사 "지"를 붙인다. 그리하면 당므과 같이
된다.
XXXX,XXXX
XX의 고문이 어떻게 오늘의 왕본의 모스으로변모해갔는지 그 변모의 과정을 이렇게
XX 텍스트를 비교해 보면 명료하게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작업이 바로 우리
전문가들이 하는 작업인데, 지금 이것은 대중방송을 위한 저술임으로 이런 작업을
일일이 다 밝힐 수가 없다. 매 장의 문자를 이렇게 다 풀면 아마도 수십만장의
원고라도 모자랄 것이다. 단지 우리 독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노자를 겉으로 보면
아주 단순한 몇마디의 말같이 보이지만 그 말 이면에는 독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문헌의 방대한 논의들이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왔다는 것이다.노자 하나만
하더라도 최소한 신약성서보다는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더 많은 인구에 의하여 독송된
문헌이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부터 재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1.2.3장은 노자 텍스트의
전체를 응집시킬 수 있을 만큼의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조금 자세히 서술한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1장은 워낙 내용이 방대하여 그것을 2장 3장만큼도
상세하게 논의못하고 지나친 것을 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첫장부터 너무 본격적으로
강의를 해대면 사람들이 기가 질려서 아예 노자 읽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볍게 탓치하면서 지나쳤으나 이것은 노자 전체를 읽고 난 후에 다시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 좋겠다. 강의 속에서는 보다 깊게 언급하겠다.
4)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중요한 텍스트의 사실을 말해 주고자 한다. 왕본과
X을본의 제일 마지막 구절을 한번 비교해보자!
왕본을 보면 "XX"와 "X"와 같은 소위 XX가 빠져 있고 아주 간결한 느낌이 드는
반면, XX을 보면 그런 허사가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 있는 듯 하여 아주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느낌이 든다. 얼핏 생각할 때, 어떠한가?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문장이
온찬 문장일까? 간결하고 절제된 문장이 고대문장일까? 우리의 일반적 상식은 XX가
:출토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영문의 문체스타일이 간결한데서 지리한데로 발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현 왕본의 문장같이 허사가 빠진 간결한 문장이 더 고대의
문장이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허사가 첨가된 것으로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XX의
출토로 이러한 문법학의 상식이 일X하게 되었다. 허사가 많고 구질구질한 문장이 훨씬
더 고X한 고층대의 문법에 속하는 문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고대로
올라갈수록, 일례를 들면, "X", "X"니 하는 허사가 많이 쓰였고 후대로 내려오면서
이러한 허사가 XX되어 오히려 간결하고 질박하게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상식을 뒤엎은 사건이다. 그리로 더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요번 새로 발굴된
XXX도, 왕본과 같이 간결하지 않고, XXX처럼 허사가 많아 그 문X가 하다는 사실이다.
이로서 전국시대의 문장은 요새 우리가 생각하는 고문보다 훨씬 더 XX의 리드믹한
일치가 없는 구질구질한 문장이라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xx나 xx의 문체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한 문어문(문장을 쓰기위한 문체)이 아니라, 바로 당시의 구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완벽한 어문일치의 문장인지는 알 수가 없어도 옛사람들은
참으로 말을 간결하게 했으며, 그 간결한 말 끝에 그 의미의 단락을 주기 위하여
구어적으로 생동감 있는 허사들이 많이 붙었을 것이라고 나는 추정하는 것이다. 이
xx나 xx를 생각하면서 나는 xx의 문체를 떠올린다. 논어의 문체는 유독 XXXX주엥서도
허사가 많기로 유명하다. 아마도 논어의 문체야말로 당시의 살아있는 구어의 문체를
보존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으로 우리는 재인식해야 할것이다. 이것은 내가 xx의
전문지식을 추구하는 젊은 학도들을 위하여 한마디 첨가하는 나의 소박한 소견이다
사장
도충,이용지혹불영, 연혜! 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담혜! 사혹존
오부지수지자, 상제지선
넷째 가름
도는 텅 비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퍼내어 써도 고갈되지 않는다.그윽하도다.만물의
으뜸 같도다.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고 얽힘을 푸는도다. 그빛이 튀쳐남이 없게 하고 그
티끌을 고르게 하네. 맑고 또 맑아라. 저기 있는 것 같에 나는 그나 누구의 아들인지
몰라. 하나님보다도 앞서는 것 같네.
"레지 아가씨 커피좀 더 채워줘요! " "그 만큼 찼으면 줬지 뭘?" "인색하게 굴지말구
컵에다 좀 더 부으라구."
우리가 대학다닐 즈음, 요즈음과는 사뭇 달라진 광경이지만, 학교앞 우중충한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푸루죽죽한 교복입은 대학생들의 모습은 한없이 심각하고 표정이
무거웠다. "레지"라는 것은 "레이디"(lady)의 와전인 듯, 다방에서 차를 나르는
아가씨들을 부르던 이름이다 예컨데 커피라면 요즈음과 같은 향긋한 내음새나는
원두커피를 갈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꿈이었다. 커피라면 모두 인스탄트
가루커피 ! 그것도 뿌연 연유를 집어넣고 설탕을 있는대로 네다섯 숟갈씩 퍼넣고
먹었으니 사실 커피맛이라기 보다는 커피를 빙자하여 당분을 섭취하는 쾌감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비리비리한 대학생들은 단 것을 섭취할 길이 도무지
없었으니까..그런데 문제가 되는 커피가 진짜가 희귀했다. 그 인스탄트 커피조차
요새처럼 정식으로 수입되는 제품이 없었고, 모조리 동두천이나 평택 등지의
피엑스에서 빠져나온 불법제품인데, 그 주변에는 가짜 제조공장이 많았다. 콩을 태워
어떻게 만드는 모양인데 그런 커피는 물에 타보면 새카만 색소가 먼저 번지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더 기발한 것은 다방 자체에서 "꽁피"를 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방에 손님들이 피우고 잿털이에 놓고 간 담배꽁초들을 한 냄뢰에 몰아넣고 끓여
커피와 섞으면 커피 비슷한 맛이 나는 것이다. 옛날에는 "꽁피"가 아주 끔찍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금 생각해보면, 악성 색소와 새까맣게 탄 콩가루를 타서 만드는
화학성의 위조커피보다는 아예 끙피가 더 위생적이고 맛도 좋았던 것 같다. 어차피
커피나 담배나 모두 자연물이고, 카페인의 사촌지간인데다가, 맛도 비슷한 것들이기
때문에, 몽피의 발상이 생각하는 것 만큼 그리 악질적인 것은 아니다.
이렇게 커피가 귀하던 시절, 안암동 주변 다방에서 나오는 커피가 오죽했으랴!
게다가 양심적인 맥심이나 네스카페 등의 진짜 커피가 나온다 하더래도 레지는
컵에다가 문자 그대로 커피를 삼분의 일 정도 밖에는 안따라가지고 나오는 것이다. 돈
없는 대학생, 어쩌다 큰 맘먹고 700원을 준비해서 들어 갔는데 커피 잔 한잔의 삼분의
이가 텅 비어있으니 부화가 날 수밖에! 책상 위에 동전을 두드리며 얌체같은
레지아가씨와 실갱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은 우리시대의 매우 흔한 광경이었다.
노자철학에 있어서, 아니 이것은 노자철학이라기 보다도 중국철학, 아니 동양인
사유전반에 깔린 중요한 테제중의 하나가 모든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그 존재가 지니는 기능(Function)에 의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존재는 객관적으로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존재이게끔 하는 어떤 기능에 의하여 그 존재가치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어느 존재가 존재가치가 없으면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실용주의적 생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양인들은, 인도인들도 그렇고 중국인들도
그렇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우주를 믿지 않았다. 내가 눈감는 순간 꺼져버릴 수도
있는 것이 곧 이 우주인 것이다(이런 사건의 확률이 너무 적어서 일상적으로 일어나지
알을뿐이다).
그런데 존재의 기능이란 무엇인가? 모든 존재를 존재이게끔하는 기능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다. 책상이란 존재의 기능은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그
앞에서 앉아서 글을 쓰게끔 하는 어떤 자세와 받침을 제공하는 기능일 것이다. 그런데
그위에서 밥을 먹을 때는 그 기능은 바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때는 이미 책상이
아닌 밥상으로'그 성격이 바뀌어 있다 왜냐? 앞서 말했듯이 존재가 그 존재의 기능에
의하여 규정된다 어떤, 책상이라는 고정된 실체는 없고 단지 내가 그것을 어떤
기능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 존재 자체의 규정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우리가 이름붙인 사물들, 집, 나무, 책상, 밥상,레지가 가지고 온
컵,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연필...이 무한하게 많은 다른 이름의 사물들을 바로
그것이게끔 하는 기능은 제각기 다른 맥락의 기능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그
이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만가지의 기능에 가장 공통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만물의 만가지 기능에 공통된 기능! 바로 이 기능을 노자는 묻고 있는 것이다. 이
기능이 무엇인가? 아는가? 노자는 이것을 바로 "빔" 즉 X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마 그 레지가 커피를 담아 가지고 온 컵을 생각해 보자! 그 컵의 기능은 커피,
음료수, 차 같은 것을 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담는 기능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그
컵이 비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컵이 꽉 차있으면그 컵은 무엇을 담는다는 구실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노자는 한발자욱 더 나아가 이런 말을 한다. 그 컵이 꽉 차 있으면
그것은 컵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 존재가 그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기능을
상실하면 곧 그 존재는 그 존재가 아닌 것인다. 그런데 기능의 상실은 곧 허의
상실이다. 그러니까 허의 상실은 곧 존재의 상실이다. 이것이 노자의 XXX(ㅣ매 샻
Ontology)이다.이것은 희랍인들의 존재론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도
판타레이를 말하고, 로고스를 얘기했지만, 불행하게도 X를 얘기하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철학자들이 그 어느 누구도 노자처럼 X의 XXX을 말한 사람이
없다. 바로 이 X라는 개념 하나의 갈림길 때문에 동양과 서양은 매우 다른 문명의
이야기를 지어냈던 것이다.
우리가 집을 짓는 것도 사람이 들어가 살기 위한 것이요, 어떤 주거공간을 만드는
것도 사람이 들어가 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XX틀의 조건은 단순하다. 그
방실이 비어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말한다. 방실이 꽉 차있으면 그것은
방실이 아니다. 무엇을 얘기하든, 노자는 초지지간의 만유의 XX는 바로 빔 때문에
XX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뉴턴은 만유인력을 말했지만, 우리의 노자는 만유X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X가 없는 XX는 XX가 아니다. 이것온 바로 동양인들이 사물을
바로보는 인식의 트을 규정하고있는 아주 유니크한 s자적 사유방식인 것이다.
그런데 내가 말을 하면 또 많은 유지의 식자들이 금방 이야기한다. 그것은 X의
XXX이라고...다시 말해서 그들은 노자가 말하는 X를 가장 서구적인 개념인
공간(Space) 개념의 여백 정도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언어의 세례를
받은 그들의 개념구조 속에서 노자의 허를 해소시켜버리는 것이다. 내가 다시 한번
정확히 강조하지만 노자의 또는 공간이 아니다. 노자에게는 공간이라는 기하학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노자철학에는 공간이 없다. 또는 공간이 아니다. 그럼
무엇이냐? 노자에게는 공간은 없고, 론만 있다. 사실 노자에게 있어서 허라는 것은
X의 한 양태에 불과하다. X이라는 X의 양태와 대비되는 상대적 개념의 X의 양태일
뿐인 것이다. 공간이 먼저 존재하고, 그 공간속에 X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X가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공간은 존재가 아니라 존재의
측면이다.
내가 또 이런 어려운 말을 하면, 독자들은 머리가 아리쏭해질 것이다. 그렇지만
닉네임 비밀번호
아리쏭한대로 그냥 두는 것이 좋다. 한 숟갈에 다 배부를 수는 없으니까. 지나치는
김에 살짝 건드런만 놓고 지나가자!
아까 다시 아주 이해하기 쉬운 다방 레지아가씨 얘기로 돌아가보자! 사실
레지아가씨 이야기와 노자의 X의 존재론은 이렇게 썩 잘 매치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가씨늘 그 집 마담 눈치보느라고 커피를 아꼈을 뿐일 것이다. 마담의 인색이
곧 노자의 X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 시전의 나는, 그 당시 담배연기 자욱이
피어오르는 어둑컴컴한 다방 창문사이로 스며드는 햇빛 조명에 놓인 커피 한 잔을
놓고 나는 노자를 깨우쳤다. 대학교 시절에 노자를 배웠던 나는, 노자가 말하는 의미를
나의 주변의 하찮은 XX속에서 반추하고 또 반추했던 것이다.
저 여자는 분명 커피를 아끼느라고 저 잔을 3분의 1밖에는 채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 덕분에 3분의 2의 X가 생기지 않았는가?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었다. 그것은
창녀질을 하고있는 아내 금홍이가 발가벗고 누워있는 그 미닫이 건너 방에 스며드는
손수건만한 크기의 햇빛줄기에 난무하는 무수한 먼지들의 군상을 발견하고 낄낄
거리는 우리의 위대한 소설가 이상군의 쾌락보다는 더 위대한 발견을 한 꾀락이었다.
나는 혼자 낄낄 거렸다. 아항.
그 3분의 2의 빔 때문에, 저 여자는 이 커피잔을 경쾌하게 날랐을 것이고, 또 나는
부족한 커피를 더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커피를 더 못 얻어먹는다 하더래도,
나쁜 뭉피가 내 몸속으로 적게 들어갈터이니 건강에 좋을 것이 아닌가? 왜 인간들은
잔을 채우려만 하는가? 저 아가씨처럼 잔을 비울려고 노력할 것이지. 갑자기 천박한
시골뜨기 레지아가씨가 위대한 노자철학의 화신으로 나에게 몽실몽실 피어오르는게
아닌가? 도을 그따위 개구라는 그만두게! 그래서 프로포즈라도 했단 말인가? 너무
이야기를 비약시키지 말고 차분하게 노자의 말씀을 들어보자구!
노자는 그 컵을 채우려는 인간의 행위를 유위라고 부른다. 유위란 곧 존재에 있어서
허의 상실이다 그러니까 그 반대방향의 행위, 즉 빔을 X대화는 방향의의 인간의
행위를 바로 무위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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