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6

알라딘: 삶을 위한 철학수업

알라딘: 삶을 위한 철학수업

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은이)문학동네2013-11-01



삶을 위한 철학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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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0쪽140*224mm470gISBN : 978895462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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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 공존을 위한 ‘상관 자유’를 찾아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 - 하버드 옌칭도서관에서 만난 후지쓰카 컬렉션

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비극의 비밀 - 운명 앞에 선 인간의 노래, 희랍 비극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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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우리 시대의 명강 시리즈 다섯번째 책으로, 저자가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은 결과물이다. 이 책은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이라는 네 가지 영역에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반문한다.

삶의 고통과 기쁨, 타인과 맺는 관계, 우리가 견고한 토대라 믿는 자아의 편향과 반성 없는 아상(我相), 내 것이면서도 때로는 내 것이 아닌 욕망 등 자유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매 국면마다 거기 항상 있으면서도 또 없다. 왜? 수많은 요구와 억압, 그리고 자아의 한계가 우리의 꿈과 욕망,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제한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은 대학에(또는 직장에) 가고 싶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만 어디 정녕 그것이 나 자신의 온전한 바람으로 형성된 욕망이던가? 누구나 ‘내가’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나의 자아조차 자유롭지만은 않다. 개인의 경험과 감각, 지성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시야 밖의 것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목차
머리말_
들어가며_ 한 줌의 용기, 한 걸음의 자유

1부 삶과 자유
첫번째 강의 [사건과 자유]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진” 사건에 대하여
두번째 강의 [긍정과 자유] 기적 같은 삶은 어디서 시작하는가?
세번째 강의 [고통과 자유] 피할 수 없는 고통, 그 ‘운명적인’ 만남에 대하여
네번째 강의 [기쁨과 자유] 기쁨의 윤리학과 웃음의 비행술
다섯번째 강의 [꿈과 자유] 꿈꾸는 영혼의 감옥

2부 만남과 자유
여섯번째 강의 [매혹과 자유] 술병 속의 연인이 내미는 매혹의 손
일곱번째 강의 [사랑과 자유] 미친 사랑의 노래와 냉혹한 연애의 법칙
여덟번째 강의 [우정과 자유] 친구와 적의 경계를 횡단하는 우정의 가능성
아홉번째 강의 [선물과 자유] 아, 존재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면
열번째 강의 [돈과 자유] 헝그리 정신과 궁상

3부 능력과 자유
열한번째 강의 [감각의 자유] 감각의 자유, 혹은 피 냄새가 나지 않는 비상의 방법에 대하여
열두번째 강의 [감정과 자유] 이 은밀한 복수의 드라마를 어떻게 정지시킬 것인가?
열세번째 강의 [지성과 자유] 누구에게나 주어진, 누구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선물에 대하여
열네번째 강의 [탈지성과 자유] 지성의 노예와 지성의 주인
열다섯번째 강의 [기억과 자유] 오, 시간의 이음매에서 벗어난 기억이여!

4부 자유와 욕망
열여섯번째 강의 [욕망과 자유] 언제까지 우리는 ‘그들의 삶’을 살 것인가?
열일곱번째 강의 [인정욕망과 자유] 날 선 자존심과 ‘그저 웃는’ 자긍심의 차이에 대하여
열여덟번째 강의 [속도와 자유] 속도의 강박증과 춤추는 신체의 시간
열아홉번째 강의 [공부와 자유] 공부와 학인, 혹은 학생부군손오공신위
스무번째 강의 [무아와 자유] 나 없는 자유의 유쾌한 웃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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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삶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유난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전체 노동자의반을 차지하고, 사회는 모든 곳에서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중산층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들은 가속적인 유행을 따라 소비의 연쇄 속에서 삶의 공허함을 잊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 우민(愚民)ngs01
‘잘나가는‘ 대학이 부유층에 점점 독점되어가고 있지만,
대학이 취업기관이 되기를 자처하는 바람에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를갖지 못한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 우민(愚民)ngs01
도덕은 어떤 조건이든 지켜야 할 규칙, 모든 조건을 넘어서‘ 준수되어야 할 초월적(transcendent)‘ 규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모세가 들고 내려온 돌판에 새겨진 신의 계명이든, 법적인 의무든, 혹은 상식이나 습속에 의해 만들어진 일반적 규칙이든 간에, 규칙은 규칙이니 지켜야 한다. 그렇게 규칙을 지키는 것을 ‘선(good... 더보기 - 우민(愚民)ngs01
삶에 그때마다 끼어드는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고통을 잊고 삶을 매끄러운 꿈으로 
봉합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그 힘겨운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 우민(愚民)ngs01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 우민(愚民)ngs01
자유로운 삶, 그것은 두 번의 긍정에서 온다. 자긍심이란 두 번의긍정에서 연유하는 이 자유로운 삶의 표현이다. 그 자유로운 영혼의편하고 여유로운 웃음이다. - 늑유온
좀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차이의 긍정이란, 나와 다른 어떤 것과의만남을 긍정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차이를, 나를 바꿀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선 지금의 ‘나‘에 대한믿음, 지금의 나의 동일성을 유지하려는 태도를 접어야 한다. 그러지못하면 차이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언제나 밀쳐내고 거부해야 할 어떤 ... 더보기 - 늑유온
˝이해할수 없어!˝는 내 지성의 무능력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이 전제하고 있는 것만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를 무심결에 토로하는무지의 표출이다.
 그 무능력한 자신만의 지성에 머물러 있는 한, 지성의 노예를 면할수 없다. ˝이해할 수 없어!˝는 그 노예의 언사고, 거기 동반되는 분노는 노예의 감정이다. 대개는 내... 더보기 - 몽이엉덩이
자존심은 약한 자들이 자신의 약함을 가리기 위한 방어기제고, 자긍심은 강한 자들이 스스로 갖고 있는 힘에 대한 긍정이다. 전자는 남을 향한 것이라면, 후자는 자기를 향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존심은 남얘기에 귀를 쫑긋 세우지만, 남의 비판에는 귀가 닫혀 있고, 자긍심은남 얘기에 귀를 세우지 않지만 남의 비판에는 열려 있다. 자존심은... 더보기 - 몽이엉덩이
p90 사물의 매혹에 사로잡혀 뜻하지 않은 세계 속으로 말려 들어가는 ‘수동성’이 사실은 자유에 더 가까이 있다고, 매혹당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안목이고 능력이며 그 매혹을 따라갈 줄 아는 용기야말로 자유를 향해 가는 힘이다.
p103 사랑이란 빨간 돌과 파란 돌을 섞어 탑을 쌓는 것이다. 미친 열정의 돌과 차분하고 안정... 더보기 -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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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진경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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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기 한국사회의 토대를 분석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써서 24세에 이진경이라는 필명을 얻었다. 본명은 박태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논문 ‘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대한 공간 사회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식 공동체 ‘수유너머104’에서 연구 활동을 하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근대성에 천착해 『철학과 굴뚝 청소부』를 썼고, 자본주의와 근대성의 변혁을 모색한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이진경의 필로시네마』... 더보기
최근작 : <철학의 모험>,<수학의 모험>,<감응의 유물론과 예술> … 총 90종 (모두보기)
SNS : //twitter.com/solaris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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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중쇄를 찍자 11>,<펠리시아의 여정>,<함께 오늘을 그린다는 것>등 총 3,576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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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철학이 우리의 삶을 구원하리라!
자기 앞의 생을 기꺼이 사랑하게 하는 것, 그것이 철학 본연의 용도
우리 시대 대표 철학자 이진경이 자유의 이름으로 호명하는 일상의 혁명

우리는 언제까지 ‘그들’의 삶을 살 것인가?
잃어버린 ‘나’의 목소리를 일깨우는 시간

삶을 구원하기 위한 최초의 발명품은 어쩌면 철학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삶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로-비오스(philo-bios)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철학이 무엇인가? 그것은 결국 지혜를 구하고 삶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거리의 철학자 이진경이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을 근원에서부터 다시 성찰하게 할 ‘삶을 위한’ 철학책을 출간했다.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시리즈 다섯번째 책이다.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cafe.naver.com/mhdn)에서 독자들과 교감하며 교류한 일상의 철학 이야기를 오롯이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더 이상 남의 삶을 살지 말고, 남의 꿈을 꾸지 말고 ‘나의 자유를 찾으라’!
나는 이미 나로 살고 있고, 나는 이미 내 뜻에 따라 움직이니 그것은 아주 당연한 말 아닌가? 그러나 ‘자유롭게 자신의 생을 살아간다’는 이 당연한 명제를 실제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충격적인 진실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오늘날,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찾아 헤매며 남이 주는 조언에 붙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꿈 없는 청소년과 꿈꾸지 않는 어른이 만든 세상은 어째서 그토록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우리가 진짜 자유를 누리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
인생의 모든 국면에서 일상의 자유를 촉발하는 대범한 사유의 모험

이 책은 ‘삶과 자유’ ‘만남과 자유’ ‘능력과 자유’ ‘자유와 욕망’이라는 네 가지 영역에서 우리가 정말 자유로운지 반문한다. 삶의 고통과 기쁨, 타인과 맺는 관계, 우리가 견고한 토대라 믿는 자아의 편향과 반성 없는 아상(我相), 내 것이면서도 때로는 내 것이 아닌 욕망 등 자유는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매 국면마다 거기 항상 있으면서도 또 없다. 왜? 수많은 요구와 억압, 그리고 자아의 한계가 우리의 꿈과 욕망, 사람 사이의 관계마저 제한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좋은 대학에(또는 직장에) 가고 싶어”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라고 생각하지만 어디 정녕 그것이 나 자신의 온전한 바람으로 형성된 욕망이던가? 누구나 ‘내가’ 이것을 원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나의 자아조차 자유롭지만은 않다. 개인의 경험과 감각, 지성이 오히려 족쇄가 되어 시야 밖의 것은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누구나 순간순간 어렴풋이 인지하는 부자유의 항목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부자유의 통속성을 끝까지 파헤치며 “도대체 왜 우리는 부자유의 사슬에 묶이게 되었는가?”를 묻고 또 묻는다. 독자는 마치 문답법을 통해 스스로 깨쳐가는 것처럼 책에 쓰인 근원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아가면서 자신을 제약하고 있던 ‘생각의 감옥’을 훌쩍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사유의 모험을 충동질하여 독자들을 시원하고 푸른 자유의 세계로 안내한다. “정말 이것이 내가 바라는 것인가?” ‘나’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형성한 외부의 요인은 무엇인지, 이를 처음부터 근원적으로 다시 사유할 때 우리는 진정 자유로운 나의 삶을 되찾아올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자기 앞의 생
자유란 그렇게 거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지 말 일이다. 이 책에서 글쓴이가 서두부터 줄곧 강조하는 것은 자유가 꼭 피를 흘려 투쟁하듯 얻어내는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적들은 외부에만 있지 않다. 억압의 상태가 아닌 상태, 부정적인 것을 걷어낸 상태가 곧 자유로운 상태를 뜻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용기면 충분하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친구와 나누는 우정을, 내가 새로운 감각에 눈과 귀를 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느끼는 감각을, 처음부터 다시 살펴보고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용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왜냐하면 자유는, 외부적인 요인을 부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자유는 나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저는 여기서,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근면함이 아니라 그것과 대면하는 약간의 용기를, 그것을 통해 문턱을 넘는 방법을 터득하려는 작은 용기를 촉발하려고 합니다. 자유란 단지 가능한 선택지의 수가 아니라 넘을 수 있는 문턱의 높이에 의해, 문턱을 넘는 능력에 의해 규정된다는 생각입니다. 힘들고 비루해지기 쉬우며, 자칫하면 찌그러지고 찌질해지기 쉬운 일상적인 삶이야말로 무엇보다 ‘지혜’가 필요한 곳이고, 그곳이 ‘지혜에 대한 사랑’을 자처하는 철학이 달려들어야 할 세계라고 저는 믿습니다. _머리말에서

거창한 용기는 우리를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는 길로 인도하지, 우리의 일상적 삶을 인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제대로 ‘인도되어야’ 할 것은 이 매일매일의 우리의 삶, 우리의 일상적 삶 아닐까? 지금 여기에서 매 순간 진행되는 삶 자체를, 매번 내딛는 발걸음을 자유로운 삶으로 스스로 밀고 가는 법, 그것이 철학을 통해 배워야 할 삶의 지혜다. 그러한 자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철학적 사유가 삶에 필요한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는 ‘삶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필로-비오스(philo-bios)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유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삶을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은 단지 한 줌의 용기다. 옳다고 주어지는 것이 정말 옳은지 다시 생각하고, 자신이 정말 긍정할 수 있는 좋은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은 이 한 줌의 용기로 시작한다. _본문에서

억압이나 구속의 부재, 이런저런 선택의 가능성, 이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조건일지는 모르지만, 그것 자체로 자유로운 삶을 뜻하지는 않는다. 자유란 이런저런 조건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발행되는 자판기 티켓이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든 나 자신이 만들어가야 할 세공품이다.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한 것이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선택지의 유혹 앞에서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는 능력이고, 이런저런 제약과 구속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이다. 어떤 상태에서도 우리는 그 자체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지만, 역으로 어떤 상태에서도 자유를 향해 걷기 시작할 수 있다. 자유를 위해선 자신의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자신의 생각만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 몸뚱어리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유롭기 위한 훈련이. _본문에서

■ ‘우리 시대의 명강의’는…
『삶을 위한 철학수업』은 ‘우리 시대의 명강의’ 시리즈 다섯번째 책으로, 저자가 2013년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금요일 네이버 문학동네 카페에 연재한 글을 엮은 결과물이다. ‘우리 시대의 명강의’는 대한민국 최초로 시도된 인문학 온라인 연재라는 점에서 많은 독서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일방향적 정보 전달 방식과 제한된 저자와 독자 간의 소통 방식을 벗어나 매주 업데이트되는 연재글을 기반으로 실시간 소통이 이루어졌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지적 탐험이 계속되었다.
지금까지 ‘우리 시대의 명강의’ 온라인 연재를 거쳐 출간된 책으로는 『삶을 바꾼 만남』(정민) 『권력과 인간』(정병설) 『궁극의 시학』(안대회) 『비극의 비밀』(강대진)이 있으며, 현재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에서 연재되고 있는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정민)은 2014년에 ‘우리 시대의 명강의’ 여섯번째 책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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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내가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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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힐링이나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도록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다. 뼈아픈 현실을 딛고 일어서도록 격려해주는 책이다. 더보기
몽이엉덩이 2020-04-20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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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잘못에는 진짜 너무 심하다 할 정도의 온갖 언어로 세치 혀를 놀리지만, 자신의 잘못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나는 특별하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행동을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확인 되지 않는 뉴스로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응집시키고 여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거짓말은 거짓... 더보기
우민(愚民)ngs01 2019-10-10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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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용기
읽자나 2018-06-22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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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보기드물게 내게 알찬 책. 내 삶 속에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들이 명확한 생각거리가 되었다.  구매
삼룡이와영구 2013-12-14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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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선생님 다른 책들보다 훨씬 말랑말랑하고 읽기 편합니다. 예도 풍부하고 좋은 문장도 많아요. 두고두고 읽을 만합니다.  구매
heru25 2014-05-2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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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히 샀다.  구매
madwife 2015-05-26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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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나가다보면, 인간에게 자유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다보면, 분명 책을 다 덮을 때쯤 독자는 한결 더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  구매
우리동네쿨가이 2015-01-04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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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철학적이고 명징하고 실용적이기까지 한 책. 내 삶을 가지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침서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밑줄 그은 문장들을 내 삶으로 그대로 가져오고 싶다.  구매
무쓸모 2018-11-0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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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삶을 위한 철학수업 새창으로 보기 구매
이 책은 힐링이나 어설픈 위로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도록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다.뼈아픈 현실을 딛고 일어서도록 격려해주는 책이다.
몽이엉덩이 2020-04-20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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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새창으로 보기
이 책에서 제일 느낌가는 내용이 자유스럽지 않은 두 인간의 유형이다.1. 소시민: 자기가 겪은 고통을 과장하여 자기의 비루함이 정당화되면서작아지는 인간....2. 난장이: 키가 작은 난장이가 아니라 세상을 자기 잣대로 작게 평가하여자신의 수준으로 세상을 축소시키는 인간.- 세상을 몇가지 관점으로 보면서 자기 생각을 바꿀 수 없는 골통같은 인간.둘 다 자기의 아상에 집착된 인간...그런 인간이 안되기 위하여 어떻게 삶을 통과해야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적은책.
팔루스의 기표 2017-01-12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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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라는 문턱을 넘어서기 위해 닥치고 자유~!!! 새창으로 보기 구매
    

삶을 위한 철학수업,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괴롭다, 고통스럽다, 이런 말은 사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제 40이 훌쩍 넘어가고 나니 힘겹게 계속되는 이 삶이 버겁기만 하다. 나를 옥죄는 책임과 의무라든지, 거미줄처럼 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회 네트워크가 가끔씩 나의 목을 조르는 기분이 들때가 있다.  답답함이라는 씨줄과 영겁의 굴레와 같은 날줄이 교차되어 중년이라는 삶의 옷을 짓는 중이다. 날씨도 한 몫 보태 비가 왔다 안왔다  오락가락하니 감정이 들쑥날쑥하며 널뛰기를 한다. 거기에 밥벌이의 지겨움까지 더해 시종일관 우울의 교향곡을 울려댄다.  나이도 먹을만치 먹었으니 아이처럼 엉엉 소리내어 울 수도 없는 일, 퍼부어대는 빗줄기처럼 돋아나는 고통의 소름도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 점점 고독이란 물을 먹고  솜처럼 무거워져만 가는 이 삶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지 당최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삶에 그때마다 끼어드는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고통을 잊고 삶을 매끄러운 꿈으로 봉합하기 위한 매일 매일의 그 힘겨운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삶의 무게라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꿈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야 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근면함이 아니라 그것과 대면하는 약간의 용기, 그로인해 문턱을 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고, 

 

자기 스스로 행동하는 것, 거기에 덧붙이면 자기 스스로 하고 싶은 행동을 할 때 우리는 자유롭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붙는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책임’이라는 자유의 역설이 ,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을 알아야 한다는 역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를 위해선 자신의 ‘자유의지’만이 아니라 자신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또한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 몸뚱어리를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자유롭기 위한 훈련이.    

 

그래서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약간의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나’를 넘어설 용기가.

 

    내 인생을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인생의 그래프는 굴곡이 많지 않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삶은 굴곡이 심한 그래프다. 자신의 다리를 먹어치운 고래를 찾아 목숨 걸고 쫓아다닌 <모비딕>의 에이허브 선장처럼,  <타인의 삶>에서 안기부에 일하던 비즐러가 자신의 전부이자 전체였던 사회주의를 버리고 자유를 위해 권력을 헌신짝처럼 버렸던 그 용기를, 비록 비극이었지만 오대수를 향한 복수만이 목적이었던 삶을 살았던 이우진에게조차, 또는 <창수야>에서 우연히 만난 한 여자에게 자신의 전부를 걸어버린 삶조차 부럽다. 나에게는 무언가에 -그것이 정의라 하더라도 - 열정과 같은 몰입이, 정열이, 사랑이, 용기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그러나, 결국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자유'이다. 삶에서 한 발 내어보는 용기,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용기, 사랑이던, 그것이 복수이던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은 용기', 모든 것이 용기의 결여였다.  

    

 



 


저자는 삶에서, 만남에서, 능력에서, 욕망에서 우리가 진정 자유로왔는지를 물어보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심연의 자유를 응시하게 한다. 고통을 겪는다거나, 고통의 크기에 따라서 삶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아니며, 고통을 통해 삶에 물음을 던지며, 고통을 통해 '자유'로와 지고자 할 때, 그때 비로소 고통은 지혜로운 안내자로 찾아온다고, 니체가 ' 나락으로부터, 심각한 질병과 회의의 질병으로부터 돌아오면서 사람은 새로 태어난다. 낡은 껍질을 벗고, 더 민감해지고 좋은 것에 대한 보다 섬세한 혀를 지니게 된다. 더 천진난만한 동시에 이전보다 백배나 더 영리해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니체 -즐거운 학문)라고 하였던 것처럼, 우리 심연 안에 잠든 '자유'를 깨우게 하는 것은 '삶이라는 고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은 책을 읽기 전의 나와 몇 년동안 책을 가까이 한 지금의 나와 비교를 자주 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을 자꾸 떠올리는 것은 책을 읽으니 자꾸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무언의 충돌이 내 안에서 자꾸 일어나는 것만 같아서이다. 삶에 대한 고통도 마찬가지, 단조로왔던 젊은 날의 삶이 그리운 것은 점점 복잡해져가는 중년의 삶이 버겁기 때문이다. 현실의 고통은 모두 과거에서 시작되어 현실로 이어왔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미래, 그 미래에는 유토피아의 미래가 기다릴까? 천만에 틀렸다. 미래역시도 지금과 같다. 방법은 현실의 문턱을 어떻게 넘느냐이다. 그 문턱을 넘게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라는 한 걸음이다. 그만 징징대고 나를 위해서 , 닥치고 자유하리라~~~!!

 

 

유토피아란 부재하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고

그런 그리움에 떠밀려 다니며 만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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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4-07-21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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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삶을 위한 철학수업 새창으로 보기
타인의 잘못에는 진짜 너무 심하다 할 정도의 온갖 언어로 세치 혀를 놀리지만,
자신의 잘못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나는
특별하니 그럴 수 있다는 식의 행동을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가짜 뉴스를 양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확인 되지 않는 뉴스로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응집시키고 여론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양산한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공직자가 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잘못은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이다...

어공이던 늘공이던 공직자의 우선 조건은
도덕성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직자의 그릇된 행동 하나가 온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반도가 둘로 나뉜 상황도 안타까운데...
그 절반인 대한민국에서 같은 상황을 두고 둘로 나뉜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올바른 지도자의 부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권력에 오르면 눈과 귀가 멀게 되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대로 해석을 하는 것인지 심히 걱정이
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잘못 것은 잘못인 것이다. 권력으로 덮고 여론이 잠잠해 지기만을 기다린다면 더 큰 파장이 올 수도
있다....
이건 이념 논쟁이 아니다.
그냥 잘못된 것은 잘못 된 것이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이 공염불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절대로 말이다....
삶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지금은 유난히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노동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전체 노동자의반을 차지하고, 사회는 모든 곳에서 양극화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중산층이라고 믿고 싶어하는 이들은 가속적인 유행을 따라 소비의 연쇄 속에서 삶의 공허함을 잊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대학이 부유층에 점점 독점되어가고 있지만,
대학이 취업기관이 되기를 자처하는 바람에 지적·문화적 헤게모니를갖지 못한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도덕은 어떤 조건이든 지켜야 할 규칙, 모든 조건을 넘어서‘ 준수되어야 할 초월적(transcendent)‘ 규칙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모세가 들고 내려온 돌판에 새겨진 신의 계명이든, 법적인 의무든, 혹은 상식이나 습속에 의해 만들어진 일반적 규칙이든 간에, 규칙은 규칙이니 지켜야 한다. 그렇게 규칙을 지키는 것을 ‘선(good)‘이라 하고 그것을 어기는 것을 ‘악(evil)‘이라 한다. 

삶에 그때마다 끼어드는 고통보다 더 힘든 것은 고통을 잊고 삶을 매끄러운 꿈으로 
봉합하기 위한 매일매일의 그 힘겨운 노력인지도 모릅니다. 

자유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결부된 것이다. 삶이나 행동의 방향과 결부된 어떤 힘이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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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19-10-10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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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르고, 데치소'의 삶을 위해 새창으로 보기 구매
대학원 세미나에서 가장 싫어했던 시간은 질문시간이었다. 매주 돌아가면서 한 명씩 발표를 하는데, 그날의 발표자가 열 장 정도의 소논문을 나눠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프린트물을 조용하고 빠르게 (다시 말해 웅얼웅얼) 읽어 내려간다. 기계적인 발표가 끝나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더듬더듬 궁금하지도 않았던 걸 의무적으로 묻는 것보단 차라리 발표하는 쪽이 편할 때도 있다. 내 순서가 되기 전에는 항상 심장이 쿵덕쿵덕 뛴다. 당혹스런 마음에 바보 같은 질문을 쏟아내면 한참 뒤에야 ‘이런 질문을 해야 했는데!’ 하고 후회하기 마련이다.

나만 이런가 싶어 다른 친구들에게도 사정을 물어보니, 의외로 다들 비슷하다고 한다. 전날 미리 발표문을 보내주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차라리 혼자 차분히 읽을 시간을 주면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을. 즉석에서 만들어낸 질문이 좋은 질문일 리도 없다. 무슨 질문을 하는지도 모르고, 빙빙 돌려가며 말을 늘려 그럴싸하게 포장해 대충 질문을 하고 나면, 내 차례가 지났다는 안도감에 어떤 답변이 돌아오는지 상관하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매주 이런 식은 아니었다.)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입학했지만, 실상은 시간에 쫓겨 제대로 읽지도 않고 의무적인 질문을 뽑아내기 바빴다. 『삶을 위한 철학수업』에 나온 표현을 빌자면 “내 삶의 속도와 내가 사는 속도 간에 간극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꽤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투도 느리고, 행동도 굼뜨다. 게다가 이해 속도도 더딘 듯싶다.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제대로 읽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질문을 해야 하는 시간은 내게 큰 스트레스였다.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교수님께서는 단호하게 수면 시간을 줄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도 비슷한 의문이 일었다. 나는 ‘진짜 나’를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나는 지금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살고 있을까?

이 책은 참된 나, 자유로운 나로 살기 위한 스무 가지 방법을 말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고 대면하자, 살면서 부딪히는 부정적 사고(事故)를 긍정적 사건(事件)으로 만들자, 수동적인 삶을 능동적인 삶으로 바꾸자,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자, 헝그리 정신과 궁상을 구별하자 등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았다. (요약해놓고 보니 흔하디흔한 책처럼 보이지만, 가벼운 문장은 한 줄도 없다.) 내용 가운데 가장 동감했던 부분은 우리의 삶과 속도에 관한 부분이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빨리빨리”의 세상, 가속만이 존재하는 세상을 살고 있다며, 나를 옥죄고 구속하는 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무엇보다 나 ‘자신의 속도’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나에게 맞춰 조절하면 자신의 삶을 음악으로 만들고, 춤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속도는 시간 문제와 직결된다. 다른 일들을 빨리 처리해 버리면 나에게 쏟을 시간이 많아질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착각이다. 빨리 살아갈수록, 더 많은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시간에게 시간을 주라(Dare tempo al tempo)”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본래는 ‘어렵고 중요한 일일수록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라는데, 내게는 여유로운 삶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오늘날 사람들은 지나치게 바쁘게 살고 있다. 정류장에 미리 나가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어리석다 말하고, 길을 걸을 때조차 걷는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누군가와 문자를 주고받거나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자칭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나지만, 며칠 전 운전을 시작하면서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딱히 급하지도 않은 길인데 무심코 계기판을 보면 속도가 100km/h를 넘어 있고, 전에는 기분 좋게 산책 겸 걸어 다녔던 길도 이제는 차를 끌고 가고 싶어 한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삶의 곳곳에서 과속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일의 전후나 내 마음을 살피지 않고 성급히 화를 내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순간의 분을 못 참고 다짜고짜 화를 내놓고 다음 날, 그다음 날에야 ‘아차, 내 잘못도 있었구나’ 하는 민망한 경험도 겪는가 하면, ‘찬찬히 잘 얘기했으면 서로 감정이 상하지 않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또한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남에게 떠밀려 선택을 했다가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좋아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데, 일단 사귀면서 알아가자는 말에 덜컥 시작했다가 끝이 안 좋았던 연애 경험 말이다. 어찌 보면 내 마음을 천천히 깊게 살피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겠다.

피아노건 첼로건 기타건 어떤 악기를 배우든지 선생님들은 항상 느리게 연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빠르게만 연주하다 보면, 정확한 연주도 불가능할 뿐더러 나중에 느린 곡들은 연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조금이라도 멜로디가 손에 익으면 빠르게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 자꾸만 손이 다급하게 움직인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속도를 무시하고 의욕만 앞서다 보면 반드시 손가락이 엉키고, 어딘가 틀리고, 곡을 망친다. 곡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느리고 정확하게(largo, deciso)’ 연주하는 게 우선이다.

이제 빠르게 사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남들 하는 대로, 남의 속도에 맞춰 별 생각 없이 살면 되니까. 하지만 나의 속도보다 빨리 떠밀리며 살아가다 보면 발이 엉켜 넘어지고, 과속해 사고가 난다. 앞에서도 음악 얘기가 나왔지만, 참 신기한 것이 빠르게만 연주하는 사람들은 느린 곡을 잘 연주하지 못하는 반면(,) 느린 곡을 잘 연주하는 사람들은 빠른 곡도 곧잘 연주한다는 사실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빠르게 사는 법만 아는 사람은 느리게 살 수 없겠지만, 느리지만 명확하게 생각하며 사는 법을 익힌 사람은 완급을 조절해 가며 멋진, 혹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터이다. 내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동안 철학은 아무리 인간과 삶을 말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이야기였다. 항상 궁금했다. 왜 나는 좋은 이야기를 듣고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까? 왜 나의 감동은 한순간에 그칠까? 그런데 이제 답을 알 듯싶다. 어쩌면 그동안은 책의 내용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시간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침잠하고 사색하는 시간 없이 남들의 속도에 맞춰 바쁘게 살아 온 탓은 아닐까? 오늘부터 내 삶을 ‘느리고 정확하게’ 연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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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2015-03-02 공감(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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